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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십니까? 오늘이 뜻깊은 자리에 함께 해 주신 여러분께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오늘 여러분과 나누고 싶은 이야기는 노아줌에 관한 것입니다. 아마도 가장 어려우면서도 가장 아름다운 삶의 지혜 중 하나일 것입니다. 우리는 살면서 많은 것들을 붙잡으려고 합니다. 사랑하는 사람, 재산, 명예, 건강, 젊음, 심지어는 우리의 생각이나 감정까지도 꽉 움켜지려고 하죠. 하지만 우리가 무언가를 놓아줄 때 그것은 잃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가능성을 여는 것이에요. 다친 주먹으로는 아무것도 받을 수 없지만 열린 손바닥으로는 세상의 모든 선물을 받을 수 있는 것처럼요.
노아준과 포기는 전혀 다른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 둘을 혼동하는데 분명히 구분해야 해요. 포기는 절망에서 나오는 것이고 놓아주면 지혜에서 나오는 것이에요. 포기는 "어차피 안 될 거야"라는 체념이지만 놓아주면 결과가 어떻든 최선을 다하지 않은 수용이에요. 포기는 수동적이에요. 더 이상 노력하지 않고 그냥 손을 놓아 버리는 거죠. 하지만 놓아주면 능동적이에요. 계속 노력하되 결과에 대한 집착은 놓아주는 거예요. 포기는 사랑을 멈추는 것이고 놓아주면 사랑하는 방식을 바꾸는 것이에요. 예를 들어 자녀를 사랑하되 자녀의 선택을 존중해 주는 것이 놓아짐이죠. 자녀에 대한 사랑을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통제하려는 욕구를 놓아 주는 거예요. 포기에는 미련과 원망이 남지만 놓아주면은 평화와 자유가 따라와요. 포기한 사람은 그때 더 노력했으면 하고 후회하지만 놓아준 사람은 최선을 다했으니 괜찮다고 받아들여요.
우리가 집착하게 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첫 번째는 두려움 때문입니다. 이를까 봐, 떠날까 봐, 변할까 봐 두려워하는 마음이 집착을 만들어 내요. 사랑하는 사람이 떠날까 봐 더 꽉 붙잡으려 하고, 그 건강을 잃을까 봐 과도하게 신경 쓰고, 재산이 줄어들까 봐 움켜 주려고 하죠. 하지만 두려움으로 붙잡으려 하는 것은 오히려 우리가 두려워하는 결과를 만들어내는 경우가 많아요. 사람을 너무 붙잡으려 하면 지쳐서 떠나게 되고, 돈을 너무 아끼려 하면 기회를 놓쳐서 더 큰 손실을 보게 되죠.
두 번째는 통제 욕구 때문입니다. 모든 것을 내 뜻대로 조절하고 싶은 마음이 집착을 만들어내요. 자녀의 진로, 배우자의 행동, 회사의 방향, 심지어는 날씨까지도 내 마음대로 되기를 바라죠. 하지만 인생에서 우리가 진정으로 통제할 수 있는 것은 우리 자신의 태도와 반응뿐이에요. 다른 사람, 상황, 환경은 우리가 통제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거든요.
세 번째는 자의 확장 때문입니다. 우리는 자신이 소유한 것, 관계, 성취 등을 자아의 연장선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어요. 내 자동차, 내 명예, 내 아이들이 나의 일부라고 착각하죠. 그래서 그것들의 위협이 가해지면 자가 공격받는 것처럼 느껴져요. 자동차가 긁히면 내가 상처받고, 명예가 실추되면 내가 무너지고, 아이가 실패하면 내가 실패한 것 같이 느끼지요.
네 번째는 불안정한 자존감 때문입니다. 자존감이 외부의 것들에 의존하고 있을 때 그것들을 잃을까 봐 집착하게 돼요. 다른 사람의 인정, 사회적 지위, 물질적 성공 등으로 자신의 가치를 판단하니까 그것들을 놓치면 안 된다고 생각하는 거죠.
다섯 번째는 익숙함에 대한 선호 때문입니다. 변화는 불편하고 두려우니까 현재 상태를 유지하려고 해요. 비록 그것이 나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익숙하다는 이유만으로 붙잡고 있는 경우가 많아요.
그렇다면은 건강 놓아주면 어떻게 실천할 수 있을까요?
첫 번째는 현실 수용학입니다.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받아들이는 것이에요. 내가 바라는 것과 현실이 다를 때 현실을 바꾸려고 무리하게 노력하는 대신 현실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거예요. 예를 들어 자녀가 내가 원하는 직업이 아닌 다른 길을 선택했다면 그 선택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에요. 억지로 설득하거나 강요하려고 하지 않고 "아이 아이는 이런 길을 원하는구나"라고 수용하는 거죠. 하지만 수용이라는 것이 무기력하게 체념하는 것은 아니에요. 현실을 받아들이되 그 안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찾는 거예요. 자녀의 선택을 인정하면서도 그 길에서 잘할 수 있도록 응원하고 지원해 주는 것처럼요.
두 번째는 과정에 집중하기입니다. 결과에 집착하는 대신 과정 자체를 즐기고 의미를 찾는 거예요. 저는 젊은 시절 법문을 준비할 때 "사람들이 감동받을까? 내 말에 박수를 칠까?" 이런 결과만 생각했어요. 그러다 보니 법문을 준비하는 과정이 스트레스였고 법문 후에도 만족스럽지 못했어요.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오늘 이 법문을 통해 한 사람이라도 위로 받을 수 있다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준비하기 시작했어요. 결과보다는 정성스럽게 준비하는 과정 자체에 의미를 두었죠. 그러니까 법문 준비가 즐거워졌고 설령 반응이 좋지 않아도 최선을 다했으니 괜찮다는 마음으로 평안할 수 있었어요.
세 번째는 임시적 성격 인식학입니다. 이 세상의 모든 것은 변하고 사라지는 것이라는 불교의 무상 법칙을 깊이 이해하는 거예요.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도, 소중한 물건도, 심지어 우리 자신의 몸과 생각도 모두 임시적인 것이에요. 영원히 지속되는 것은 없어요. 이것을 진정으로 받아들이면 집착의 근본적인 원인이 사라져요. 저는 매일 아침 "오늘이 마지막 날이라면 어떻게 살까?"를 생각해 봐요. 그러면 사소한 것들에 집착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고 정말 중요한 것들에 집중할 수 있게 돼요.
네 번째는 감사 연습입니다. 가지고 있는 것에 감사할 때 이를 것에 대한 두려움이 줄어들어요. 매일밤 잠들기 전에 오늘 하루 감사한 일들을 세워보는 습관을 만들어 보세요. 건강, 가족, 친구, 지붕 아래에서 잠들 수 있는 것, 따뜻한 밥 한 끼, 이미 가지고 있는 것들의 소중함을 깨달으면 더 많이 가져야 한다는 욕구가 줄어들어요.
다섯 번째는 신뢰 연습입니다. 삶의 흐름에 대한 기본적인 신뢰를 기르는 거예요. "지금 당장 이해할 수 없는 일이 일어나더라도 분명 의미가 있을 거야. 좋은 방향으로 흘러갈 거야"라는 믿음을 갖는 거죠. 이것은 종교적인 믿음일 수도 있고 인생에 대한 철학적 신뢰일 수도 있어요. 중요한 것은 내가 모든 것을 통제해야 한다는 부담에서 벗어나는 것이에요.
노아줌의 구체적인 연습 방법들을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호흡과 함께하는 노아줌 명상부터 시작해 보세요. 편안히 앉아서 숨을 들이마실 때는 "받아들이고", 내쉴 때는 "놓아준다"라고 마음속으로 말해 보세요. 집착하고 있는 특정한 것이 있다면 내쉬는 숨과 함께 그것을 놓아 준다고 상상해 보세요. 주먹 쥐었다 펴기 연습도 도움이 돼요. 주먹을 꽉 쥐고 10초간 유지한 후 갑자기 펴 보세요. 그때 느껴지는 해방감을 기억해 두세요. 뭔가에 집착하고 있을 때 이 감각을 떠올리면 놓아주는데 도움이 됩니다. 내려놓기 의식을 만들어 보는 것도 좋아요. 집착하고 있는 것을 종이에 써서 태우거나 돌에 새겨서 강물에 던지거나 풍선에 적어서 하늘로 날려보내는 거예요. 상징적인 행동이지만 마음의 변화에 큰 도움이 됩니다.
가장 어려운 것 중 하나는 사람에 대한 집착 놓아죽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일수록 더 꽉 붙잡고 싶어 하죠. 자녀에 대한 집착부터 생각해 볼까요? 부모는 자연스럽게 자녀의 안전과 행복을 원해요. 하지만 그것이 지나치면 자녀의 자율성을 침해하고 성장을 방해할 수 있어요. 한 어머니가 저에게 상담을 요청하신 적이 있어요. 대학생인 아들이 부모와 의논 없이 전공을 바꾸겠다고 해서 고민이라는 거였어요. "제가 그 아이를 위해 얼마나 많은 계획을 세웠는데 갑자기 딴 길로 가겠다니 받아들일 수 없어요"라고 하시더라고요. 그 어머니와 여러분 대화를 나눈 후에 깨달은 것은 그분이 아들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그린 아들의 모습을 사랑하고 있다는 것이었어요. 진짜 그 아이가 원하는 것, 그 아이의 진짜 모습은 보려고 하지 않으셨던 거죠. "어머니, 아들을 사랑한다는 것은 아들이 행복하기를 바라는 것 아닌가요? 그렇다면 아들이 선택한 길에서 행복할 수 있도록 응원해 주는 것이 진짜 사랑 아닐까요?"라고 말씀드렸어요. 몇 달 후에 그 어머니가 다시 찾아오셨는데 표정이 훨씬 밝아져 있었어요. "아들의 선택을 인정하고 나니까 오히려 아들과의 관계가 더 좋아졌어요. 전에는 만날 때마다 다투곤 했는데 이제는 편안하게 대화할 수 있어요"라고 하시더라고요.
연인이나 배우자에 대한 집착도 마찬가지예요. 사랑한다는 이름으로 상대방을 구속하거나 통제하려고 하면은 관계는 시들어 버려요. 진정한 사랑은 상대방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상대방이 자신의 길을 갈 수 있도록 지지해 주는 것이에요. 떠나고 싶어 한다면 붙잡지 않고 보내 주는 것. 그것이 진짜 사랑이죠. "사랑한다면 자유롭게 해 주어라. 돌아온다면 그것은 당신 것이고 돌아오지 않는다면 원래 당신 것이 아니었다"는 말이 있어요. 이것이 놓아줌의 사랑이에요.
과거에 대한 집착도 놓아줘야 할 것 중 하나입니다. 과거의 실수, 후회, 상처 또는 좋았던 추억에 매달려 있으면 현재를 제대로 살 수 없어요. 어떤 분이 저에게 이런 이야기를 하신 적이 있어요. "스님, 저는 10년 전에 잘못된 투자로 큰 손해를 본 일을 아직도 잊을 수가 없어요. 그때만 생각하면은 잠이 안 와요. 그 돈이 있었다면은 지금쯤 얼마나 여유로웠을까 하는 생각이 자꾸 들어요." 저는 그분에게 이렇게 말씀드렸어요. "그 10년 동안 그 일을 후회하느라 보낸 시간과 에너지를 계산해 보세요. 어쩌면 그 손해보다 더 큰 손실일 수도 있어요." 과거는 바뀌지 않아요. 하지만 미래는 지금의 선택으로 바꿀 수 있어요. 과거에 아픈 기억을 놓아 주는 것이 쉽지는 않아요. 하지만 그 기억들이 우리를 계속 묶어두고 있다면 용기를 내어 놓아 줘야 해요. 그래야 새로운 경험과 기쁨이 들어올 공간이 생기거든요.
미래에 대한 집착도 마찬가지예요. 완벽한 계획을 세우고 모든 것을 예측하려고 하지만 인생은 계획대로 되지 않는 경우가 더 많아요. 물론 계획을 세우는 거 자체는 좋아요. 하지만 그 계획에 너무 매달려서 변화를 받아들이지 못한다면 문제가 돼요. 계획은 나침반과 같은 것이에요. 방향을 알려 주지만 길에서 만나는 예상치 못한 상황들에는 유연하게 대처해야 하는 거죠. 제 경험을 말씀드리면 젊은 시절에는 5년, 10년 후의 계획을 아주 세세하게 세워 놨어요. 몇 살에 무엇을 하고 언제까지 어떤 것을 이루겠다고 말이에요. 하지만 실제로는 그 계획대로 된 것이 거의 없어요. 오히려 계획에 없었던 일들, 예상치 못한 만남들, 우연한 기회들이 더 큰 의미를 가져다 주었어요. 지금 생각해 보면 그때의 계획이 실현되지 않은 것이 오히려 다행이라는 생각도 들어요. 그래서 이제는 큰 방향성은 유지하되 구체적인 것들은 유연하게 조정할 수 있도록 여유를 둬요. 마치 물처럼 흘러가면서도 자신의 본성은 잃지 않는 그런 삶을 살려고 노력해요.
물질에 대한 집착 놓아주기도 현대인에게는 중요한 과제예요. 우리는 더 많이 소유할수록 더 행복할 것이라고 착각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아요. 어떤 부자가 저에게 상담을 요청한 적이 있어요. 겉보기에는 모든 것을 다 가진 것 같았는데 정작 본인은 늘 불안하고 공허하다고 하시더라고요. "더 벌어야 한다는 강박. 이럴까 봐 하는 걱정 때문에 하루도 편안한 날이 없어요"라고 하시면서요. 그분과 대화를 나누다 보니 돈이나 물건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그것들에 대한 집착이 문제라는 것을 알았어요. 많이 가져도 더 가져야 한다는 생각. 이럴까 봐 하는 두려움 때문에 괴로워하고 계셨던 거죠. 물질에 대한 집착을 놓아 주는 것은 가난하게 살자는 뜻이 아니에요. 물질을 도구로 사용하되 주인이 되지 않겠다는 뜻이에요. 필요한 만큼 갖되 그것에 마음을 빼앗기지 않겠다는 의미죠. 제 경우에는 충분함의 기준을 정해 뒀어요. 이 정도면 충분히 행복하게 살 수 있다는 선을 정하고 그 이상은 집착하지 않으려고 해요. 더 많이 생기면은 나누어 줄 수 있어 감사하고 없어도 괜찮다는 마음을 유지하려고 노력해요.
성취에 대한 집착도 내려놓을 필요가 있어요. 우리는 끊임없이 무언가를 이루어야 한다는 압박감을 느끼며 살아가요. 더 높은 지위, 더 큰 성공, 더 많은 인정. 하지만 이런 것들을 추구하느라 정작 삶의 진짜 의미를 놓치는 경우가 많아요. 성취 자체는 나쁜 것이 아니에요. 하지만 성취가 목표가 되면 과정은 고통이 되고 성취하지 못했을 때는 절망이 되죠. 반면에 과정 자체를 즐기고 성취는 자연스러운 결과로 받아들이면 훨씬 건강한 삶이 가능해요. 저는 이제 성공의 정의를 바꿨어요. 얼마나 많은 것을 이뤘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의미 있게 살았느냐, 얼마나 많은 사람에게 도움이 되었느냐를 성공의 기준으로 삼고 있어요.
정체성에 대한 집착도 놓아줘야 할 것 중 하나입니다. 우리는 고정된 이미지를 만들어 놓고 그것에 매달리는 경우가 많아요. 하지만 사람은 계속 변하고 성장하는 존재인데 과거의 이미지에 갇혀 있으면 새로운 가능성을 차단하게 돼요. "나는 원래 내성적인 사람이야. 나는 수학을 못 해. 나는 예술적 감각이 없어." 이런 식으로 자신을 규정해 버리면 그 틀에서 벗어나기 어려워져요. 하지만 "지금까지는 그랬지만 앞으로는 어떻게 될지 모르잖아"라는 마음으로 열려 있으면 새로운 자신을 발견할 수 있어요.
타인의 평가에 대한 집착도 내려놓아야 해요. 다른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가 너무 중요하게 느껴져서 그들의 기대에 맞추려고 애쓰는 거죠. 하지만 모든 사람을 만족시킬 수는 없고 그렇게 살다 보면 진짜 자신을 잃어버리게 돼요. 물론 다른 사람의 의견을 아예 무시하라는 뜻은 아니에요. 건설적인 조언은 감사하게 받아들이되 그것이 나의 가치를 결정하지는 않게 하자는 거예요. 제가 법문을 할 때도 처음에는 사람들의 반응이 너무 신경 쓰였어요. 박수를 많이 치면 기분이 좋고 별로 반응이 없으면은 우울했죠. 하지만 이제는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 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는 마음으로 해요. 반응이 좋으면 감사하고 그렇지 않아도 괜찮아요.
건강에 대한 집착도 적절한 선에서 놓아 줄 필요가 있어요. 건강을 챙기는 것은 중요하지만 건강에 너무 집착하면 오히려 스트레스가 돼서 건강을 해칠 수 있어요. 완벽한 식단, 완벽한 운동, 완벽한 수면 이런 것들을 추구하느라 삶의 다른 즐거움들을 포기한다면 그것도 균형이 맞지 않는 거예요. 적당히 건강한 생활을 유지하되 때로는 유연함도 필요하다는 마음을 갖는 것이 좋아요. 또한 늙음과 죽음에 대한 받아들임도 필요해요. 우리는 모두 늙고 죽을 운명이에요. 이것을 부정하려고 하거나 극도로 두려워하면 현재를 제대로 살 수 없어요. 죽음을 삶의 자연스러운 부분으로 받아들일 때 비로소 진정으로 살 수 있는 거지요.
그렇다면 놓아줌을 실천할 때 주의해야 할 점들은 무엇일까요?
첫째, 놓아줌을 무관심과 혼동하면 안 돼요. 집착을 놓아 준다고 해서 아무것도 신경 쓰지 않는 것은 아니에요. 여전히 최선을 다하되 결과에 매달리지 않는 거예요. 자녀를 예로들면 자녀의 미래에 대한 집착은 놓아주되 자녀에 대한 사랑과 관심은 유지하는 거예요. 자녀의 선택을 존중하면서도 필요할 때는 조언하고 지원해 주는 거죠.
둘째, 놓아줌을 회피와 혼동하면 안 돼요. 어려운 상황이나 책임에서 도망치는 것은 놓아줌이 아니에요. 상황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면서도 자신이 해야 할 역할은 성실히 하는 것이 진정한 노아줌이에요.
셋째, 노아줌을 체념과 혼동하면 안 돼요. "어차피 안 될 거야"라는 포기가 아니라 최선을 다하되 결과는 받아들이겠다는 적극적인 자세가 필요해요.
넷째, 놓아줌은 단번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이해해야 해요. 오랫동안 가져온 집착을 하루 아침에 놓아 주기는 어려워요. 조금씩 단계적으로 연습해 나가야 해요.
다섯째, 놓아줌에도 우선 순위가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해요. 모든 것을 동시에 놓아 주려고 하면 오히려 혼란스러워질 수 있어요. 가장 괴롭히는 집착부터 하나씩 다루어 나가는 것이 좋아요.
도아줌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것들을 말씀드릴게요.
첫째, 내면의 평화입니다. 집착해서 자유로워지면 마음이 한결 가벼워져요. 항상 긴장하고 걱정하던 마음이 평온해지죠.
둘째, 진정한 자유입니다. 외부의 것들에 의존하지 않고 자신의 내면에서 행복을 찾을 수 있게 되어요. 남의 평가나 외부 상황에 휘둘리지 않는 진짜 자유를 얻는 거죠.
셋째, 깊은 관계입니다. 집착 없이 사랑할 수 있게 되면 관계가 훨씬 건강해져요. 상대방을 통제하려고 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게 되거든요.
넷째, 창의성과 유연성입니다. 고정관념이나 기존의 방식에 집착하지 않으니까 새로운 아이디어와 해결책을 찾을 수 있게 돼요.
다섯째, 감사와 만족입니다. 더 많이 가져야 한다는 욕구에서 벗어나면은 이미 가진 것들에 대한 감사를 느낄 수 있어요. 작은 것에서도 행복을 찾을 수 있게 되죠.
여섯째, 현재 집중하는 능력입니다. 과거나 미래에 대한 집착에서 벗어나면 지금 이 순간을 온전히 살 수 있게 돼요.
일곱째, 지혜와 통찰력입니다. 집착이라는 색안경을 벗고 나면 사물을 있는 그대로 명확하게 볼 수 있게 돼요.
노아줌의 여정에서 만날 수 있는 어려움들도 있어요. 가장 큰 어려움은 두려움이에요. "내가 이것을 놓아주면 아무것도 남지 않을 것 같아." 이런 두려움이 놓아줌을 방해해요. 이때는 작은 것부터 시작해 보세요. 큰 집착을 한 번에 놓아 주려고 하지 말고 비교적 덜 중요한 것부터 놓아주는 연습을 해 보는 거예요. 그러면서 "놓아줘도 괜찮구나. 오히려 더 좋아지는구나" 하는 경험을 쌓아가는 거죠.
두 번째 어려움은 습관의 힘이에요. 오랫동안 집착하는 방식으로 살아왔기 때문에 그것이 자동적인 반응이 돼 있어요. 의식적으로 계속 노력해야 새로운 습관을 만들 수 있어요.
세 번째 어려움은 사회적 압력이에요. 주변 사람들이 "더 열심히 해야 한다. 포기하면 안 된다"라고 말할 수 있어요. 노아중과 포기를 구분하지 못하는 사람들의 시선을 견뎌내야 할 때도 있어요.
네 번째 어려움은 완벽주의예요. 노아줌마저도 완벽하게 하려고 하면은 그거 자체가 또 다른 집착이 돼 버려요. 노아줌도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마음이 필요해요.
다섯 번째 어려움은 일시적 공허감이에요. 집착을 놓아준 초기에는 무언가 허전하고 방향 감각을 잃은 것 같은 느낌이 들 수 있어요. 하지만 이것은 일시적인 현상이니까 조급해하지 마세요.
놓아줌을 도와주는 일상의 지혜들을 나누어 드릴게요.
매일 아침. "오늘 나는 무엇을 놓아 줄까?"를 생각해 보세요. 하루 하나씩이라도 작은 집착을 놓아주는 연습을 해 보는 거예요.
물건 정리를 자주 해 보세요. 집안에 있는 불필요한 물건들을 정리하면서 마음의 집착도 함께 정리할 수 있어요. 1년 이상 사용하지 않은 물건은 과감히 버리거나 나누어 주세요.
자연 속에서 시간을 보내세요. 자연은 노아줌에 완벽한 스승이에요. 나무는 가을에 잎을 놓아주고 강물은 모든 것을 흘려보내면서도 여전히 아름다워요.
예술 작품이나 음악을 감상해 보세요. 아름다운 것들을 경험하면서 소유하지 않아도 충분히 즐길 수 있구나를 느낄 수 있어요.
봉사 활동을 해 보세요. 다른 사람을 위해 자신의 시간과 에너지를 나누어 주는 경험은 노아줌의 기쁨을 알려 줘요.
명상이나 기도를 해 보세요. 조용한 시간 속에서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보고 평화를 찾을 수 있어요.
좋은 책을 읽어 보세요. 지혜로운 사람들의 경험과 통찰을 통해 노아줌에 대한 이해를 넓힐 수 있어요.
노아줌과 통제 욕구의 균형에 대해서도 말씀드리고 싶어요. 인간은 본능적으로 통제하고 싶어하는 존재예요. 그 자체는 자연스러운 일이고 때로는 필요한 일이기도 해요. 중요한 것은 통제할 수 있는 것과 통제할 수 없는 것을 구분하는 지혜예요. 자신의 노력, 태도, 반응은 통제할 수 있지만 다른 사람의 행동, 자연재해, 경제 상황 등은 통제할 수 없어요. 통제할 수 있는 것에는 최선을 다하고 통제할 수 없는 것은 받아들이는 것이 지혜로운 삶의 방식이에요.
놓아주면은 여러 단계와 깊이가 있어요. 처음에는 물질적인 것들부터 놓아주는 연습을 시작할 수 있어요. 필요 없는 물건들, 과도한 소유욕에 대한 집착 등을 먼저 다룰 수 있죠. 그다음 단계는 감정적 집착을 놓아 주는 것이에요. 분노, 원망, 질투, 불안 등의 감정에 매달리지 않고 흘려보내는 연습을 하는 거예요. 감정이 일어나는 것은 자연스러운 것이지만 그 감정에 계속 머무르며 괴로워할 필요는 없어요. 더 깊은 단계는 관계에서의 집착을 놓아 주는 것이에요. 사랑하는 사람들을 통제하려는 욕구, 인정받고 싶은 욕구, 거절 당할까 봐 하는 두려움 등을 놓아 주는 거예요. 가장 깊은 단계는 자아에 대한 집착을 놓아 주는 것이에요. 내가 누구인지에 대한 고정된 관념, 남들에게 보여주고 싶은 이미지, 자존심 등을 놓아 주는 거죠. 이 단계에 이르면은 진정한 자유를 경험할 수 있어요.
놓아줌의 과정에서 겪는 내적 갈등에 대해서도 말씀드리고 싶어요. 머리로는 놓아주는 것이 좋다는 것을 알지만 마음으로는 여전히 붙잡고 싶은 것이 인간의 자연스러운 모습이에요. 이런 갈등이 있을 때는 자신을 다그치지 마세요. "왜 아직도 집착하고 있지"라고 자책하는 대신 "집착하고 싶은 마음도 이해할 만해"라고 자신을 이해해 주세요. 놓아주면 하루 아침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평생에 걸친 연습이에요. 때로는 놓아줬다가 다시 붙잡기도 하고 때로는 새로운 집착이 생기기도 해요. 그것도 자연스러운 과정이라고 받아들이세요. 제 자신도 아직 완전히 모든 집착에서 자유로워진 것은 아니에요. 때로는 여전히 결과에 매달리고 다른 사람의 평가가 신경 쓰이고 계획대로 되지 않으면 답답해 하기도 해요. 하지만 예전에 비해서 훨씬 자유로워졌어요. 집착이 생겨도 빨리 알아차릴 수 있게 되었고 놓아주는 것도 더 쉬워졌어요. 무엇보다 집착에 대한 죄책감이 없어졌어요.
놓아줌을 연습하면서 얻게 되는 가장 큰 선물은 현재 순간에 온전히 있을 수 있는 능력이에요. 과거에 대한 후회나 미래에 대한 불안에 사로잡히지 않고 지금 이 순간을 충분히 경험할 수 있게 되는 거예요. 어제는 이미 지나갔고 내일은 아직 오지 않았어요. 우리에게 실제로 주어진 것은 지금 이 순간뿐이에요. 하지만 우리는 대부분의 시간을 과거가 미래에 대한 생각으로 보내죠. 놓아줌을 연습하면 현재 머무르는 능력이 길러져요. 지금 이 순간의 아름다움을 느끼고 현재 주어진 것에 감사하고 지금 만나는 사람들과 진정으로 소통할 수 있게 돼요. 현재 순간에 온전히 있을 때 비로소 진정한 평화를 경험할 수 있어요. 과거에 대한 분노나 후회, 미래에 대한 불안이나 조급함에서 벗어나 지금 이 순간의 고요함을 느낄 수 있는 거죠.
마지막으로 노아짐의 궁극적인 의미에 대해 말씀드리고 싶어요. 노아짐은 단순히 무언가를 포기하거나 체념하는 것이 아니에요. 더 큰 사랑, 더 깊은 자유, 더 진정한 행복을 위해 작은 집착들을 내려놓는 것이에요. 강물이 바다로 흘러가기 위해 길목의 모든 것들을 안고 가지 않듯이 우리도 인생의 여행에서 모든 것을 다 가지고 갈 순 없어요. 정말 중요한 것들만 골라서 가져가고 나머지는 감사한 마음으로 놓아주는 것이 지혜로운 삶의 방식이에요.
놓아주면 사랑하는 방법을 바꾸는 것이기도 해요. 소유하고 통제하는 사랑에서 자유롭게 하고 응원하는 사랑으로 바뀌는 거예요. 이런 사랑이 진정한 사랑이에요.
놓아주면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는 겸손이기도 해요. 내가 모든 것을 알 수 없고 모든 것을 할 수 없다는 것을 받아들이는 거예요. 이런 겸손이 있을 때 다른 사람들과 진정으로 협력할 수 있고 도움을 받을 수도 있어요.
놓아주문 변화를 받아들이는 유연성이기도 해요. 세상은 끊임없이 변하는데 변화를 거부하고 과거에 매달리면 고통받을 수밖에 없어요. 변화의 흐름에 맞춰 유연하게 적응할 때 새로운 기회와 가능성을 발견할 수 있어요.
놓아주면 신뢰의 표현이기도 해요. 모든 것을 내가 통제하지 않아도 삶이 좋은 방향으로 흘러갈 것이라는 믿음이 있어야 놓아줄 수 있어요. 이런 신뢰가 있을 때 불안과 두려움에서 벗어날 수 있어요.
오늘 집에 돌아가시는 길에 한 가지만이라도 놓아줄 것을 정해 보세요. 아주 작은 것이라도 좋아요. 며칠째 신경 쓰고 있던 걱정거리, 누군가에 대한 서운함, 꼭 이루어야 한다고 생각했던 계획 무엇이든 하나를 골라서 마음속으로 놓아 주세요. 그리고 그것을 놓아 주었을 때의 해방감을 느껴 보세요. 마치 무거운 짐을 내려놓은 거 같은 가벼움, 숨이 깊어지는 거 같은 편안함을 경험해 보세요.
손을 꽉 주고 있을 때는 아무것도 받을 수 없지만 손을 펴면은 온 세상을 품을 수 있습니다. 여러분의 삶이 열린 손바닥처럼 언제나 새로운 은혜와 기쁨을 받아들일 수 있는 아름다운 삶이 되기를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집착해서 자유로워질 때 비로소 진정한 사랑을, 진정한 행복을, 진정한 평화를 경험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 모두가 노아줌의 미약을 통해 더욱 자유롭고 아름다운 인생을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