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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지능자의 게으름은 해결 방법이 다른 이유

뱀의지혜17:22

Transcription

저는 제가 지능이 낮고 의지가 약해서 게으른 줄 알았습니다. 그래서 모든 바로 시작하는 사람을 보면 똑똑한 사람은 역시 다르구나, 이렇게 생각하고 부러워하면서 살았어요. 하지만 실체는 그런 게 아니었습니다. 게으름을 벗어나지 못하는 이유는 지능과 방법의 문제가 아닙니다.

여러분도 이미 많은 기법들을 시도해 보셨을 거예요. 작은 일로 나눠서 조금씩 시작하기, 생각나면 일단 바로 시작하기 등이죠. 문제는 하루 이틀 익숙해지고 나서는 원래대로 돌아온다는 겁니다. 여러분도 그렇지 않으신가요? 저도 게으음으로 더 이상 손해를 보기 싫어서 분석적 도구나 문제 해결 이론 역시 잔뜩 배웠습니다. 하지만 이론과 현실은 달랐습니다. 아무리 기계처럼 계획해도 그걸 수행하는 내 몸은 인간이니까요. 이 해결할 수 없는 질문을 가지고 주변을 살펴보니 어떤 특별한 사람들은 무슨 일이든 일단 즉시 시작한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저는 이 타고난 시작의 재능을 가진 사람들이 너무 부러웠지만 금세 그 마음을 바꾸게 되었습니다. 그들이 현실에서는 어떤 모습으로 존재하는지 알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이들은 보통 세 가지 유형으로 관찰되었습니다. 첫째, 충동 조절을 못 해서 섣부르게 시작하는 사람. 둘째, 세상 물정을 몰라서 위험을 모르고 시작하는 사람. 셋째, 자기 과신에 심취해 무조건 될 거라 시작하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맹목적인 시작의 힘은 체력이 약해지거나 세상에 쓴맛을 보고 나면 금세 사라지게 됩니다. 쉽게 시작하는 데다가 좋은 성과까지 얻는 사람은 매우 소수라는 거예요.

게으름을 단순히 기능적인 문제로만 보면 반드시 큰 리스크가 따라옵니다. 우리 뇌가 왜 게으름이라는 브레이크를 밟고 풀어지지를 않는지, 그 이면을 확인해 봐야 한다는 것이죠. 오늘, 게으름의 실체를 낱낱이 밝혀 벗겨 보겠습니다. 믿고 따라오십시오. 시작이 어려운 데는 진짜 이유가 있습니다. 켈거리 대학교 비어스 스틸 박사가 2007년 심리학 전월에서 발표한 연구에 따르면 지연 행동은 자기 조절 실패의 한 형태이며 본능적으로 위험을 피하려는 행동과 연관될 수 있음을 밝혔습니다.

여기서 두 가지 힌트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첫째로, 우리는 자주 이런 말을 꺼내게 되죠. 일단 시작하면 되는데. 하지만 일단 시작이라는 허들이 생각보다 높다는 겁니다. 위험을 피하려는 본능적 두려움이 해소되지 않으면 우리 뇌가 생존을 보장받기 위해 겉부터 먹는 시스템을 끊임없이 가동합니다. 무의식 속 두려움이 행동을 막아버리고, 그 내면의 두려움을 회피하는 선택지로 게으름이 작동하게 됩니다. 둘째로, 막상 시작하고 나서도 위험을 피하려는 본능적 두려움이 해결되지 못하면 아무리 동기를 부여해도 행동이 지속되지 않습니다. 두려움은 단순한 감정이 아니라 신체적, 정신적 에너지를 절약하고 안전을 유지하려는 뇌의 자동 반응입니다. 따라서 단순히 해야 한다라는 동기만으로는 계속해서 에너지를 투자할 수가 없습니다. 이 두 문제가 결합되면 절망적인 세 가지 현상이 나타납니다. 머리가 좋다고 피해갈 수 없습니다. 오히려 인정받고 성과가 있는 분들이 더 크게 함정에 빠지게 됩니다. 이 함정을 깨닫고 나서 저는 게으른뱅이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사실은 겁쟁이였던 겁니다.

이 함정에 빠지면 첫째로, 실천 없이 이론만 축적하게 됩니다. 이는 이론이나 지식을 끝없이 쌓으면서도 실제 행동을 하지 않는 상황입니다. 문제는 실패감을 느끼지 않으면서도 지식 축적은 되기 때문에 스스로가 발전한다고 착각하는 그 굴레에 점점 깊이 빠져들게 된다는 점입니다. 하지만 이 학습 시간이 길어질수록 역설적으로 실천이 점점 어려워집니다. 준비한 기간 대비 저조한 성과가 나왔을 때에 두려움을 책임질 수 없다라고 느끼기 때문입니다. 그 압박감을 해소하기 위해 다시 지식 소비의 굴레로 들어갑니다. 둘째는 멀티태스킹과 산만함이 점점 많아집니다. 사람은 성공에 대한 압박감이 커질수록 한꺼번에 여러 목표를 잡게 됩니다. 동시에 여러 일을 하게 되면 성과는 없지만 그걸 하는 동안에는 심리적 안정감을 느낄 수 있다는 게 함정입니다. 시간을 알차게 쓴다는 착각을 하게 된다는 거예요. 멀티태스킹 연구자들이 동일하게 말하는 위험성은 여러 일을 동시에 처리하면 상황을 장악하고 있다는 착각을 얻는다는 것입니다. 불안한 감정을 느낄 틈이 없다는 거예요. 안정적 기분을 계속 느끼고 싶어서 더 많은 일을 하려 하는 회피적 사고로 흐르게 됩니다. 더군다나 머리가 좋은 사람은 자잘한 몇 가지 일 정도는 동시에 처리할 능력을 실제로 가지고 있기 때문에 더욱이 함정에 빠지기 쉽습니다. 셋째는 한 가지 실패에 과도하게 집착합니다. 학습이 길어지고 그 부담으로 지나치게 빠른 성취를 추구하거나 과도한 멀티태스킹을 시도하게 되면 당연히 제대로 일어낼 수 있는 것이 없습니다. 이런 작은 실패가 반복이 되면 자신의 능력 부족을 증명하는 것처럼 느껴지게 됩니다. 이 단계부터는 실패를 학습의 일부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과거 실수를 반복해서 곱씹으며 후회하는 경향이 많아집니다. 특히 지능이 높은 사람일수록 스스로 통제할 수 없는 요소에서 오는 실패를 더 견디기 어려워합니다. 나는 이런 실수를 하면 안 되는 사람이야라는 비합리적인 기대를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때문에 작은 실패조차도 자신의 자존감을 크게 흔들리게 만듭니다. 이런 집착이 강할수록 실패를 피하기 위해 새로운 도전을 회피하거나 실패를 정당화하기 위한 변명을 늘어놓기 쉽게 됩니다.

이 세 단계를 장기간 겪게 되면 성장을 향해 가야 할 에너지가 점점 자신의 감정을 보호하는 데만 쓰이게 됩니다. 실패를 극복하는 법을 배우기보다 실패를 하지 않으려는 방향으로 시도가 굳어집니다. 이것이 아무리 능력 있는 사람도 망하게 하는 감정의 함정입니다. 이제 이 문제는 단순히 지금 당장 시작하면 된다는 각오와 의지로 해결할 수 있는 단계는 한참 지났습니다. 두려움과 사회적 압박이 단단히 얽혀 있기 때문에 좀처럼 개선되지 않습니다. 때문에 권해드리고 싶은 것은 실패에 대한 근본적인 인식을 재정립하는 것입니다. 실패를 받아들이기 어려운 이유는 모든 원인을 자신에게서만 찾기 때문입니다. 실제로는 다양한 외부적 요소가 함께 작용하기 때문에 내부와 외부의 상호 관계를 이해해야 합니다. 그중에서도 오늘은 사회적 시선의 영향을 집중적으로 분석해 보겠습니다. 사회가 실패를 바라보는 시선은 갈수록 엄격해지고 그 비난의 강도는 점점 더 가혹해질 것입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실패에 대한 이런 사회적 반응의 본질을 정확히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실패란 나에게는 쓴맛이지만 남들에게는 계속해서 씹고 싶은 달콤한 가십거리입니다. 타인의 성공을 질투하고 남의 실패에서 위안을 얻는 것이 인간의 본성에 들어 있기 때문입니다. 특히 학업 성취가 뛰어났거나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사람일수록 주변에 더 강력한 질투와 비난에 노출이 됩니다. 이 때문에 타인의 평가라는 실체를 정확히 인식하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사람이 개인 대 개인으로 마주할 때는 상대방의 내면까지도 보려 하지만 인간이 집단이 되는 순간 상대의 잠재력이나 성장 가능성에는 관심이 없어집니다. 대신 상대의 부족함을 부각해 자신의 우월함을 느끼며 가짜 자존감을 채우려 합니다. 이것이 샤덴프로이데, 즉 타인의 불행을 은근히 즐기는 심리입니다. 샤덴프로이데가 가장 강력하게 발생하는 조건은 경쟁이 심하고 집단주의가 강하며 익명성과 스트레스가 높은 사회, 그리고 공정성에 대한 불만이 많은 사회로 연구자들은 꼽습니다. 이는 한국 사회가 가진 결정적인 취약점이기도 합니다.

따라서 강하게 권해드리는 것은 실패라는 결과를 타인의 평가나 사회적 가치와 연결짓지 말고 자기 자신의 기준으로 판단하는 것입니다. 진정한 조언인지 아니면 훈계로 위장한 비난인지를 철저하게 구분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렇다면 자신의 실수를 사회탓만 하고 인정하지 않겠다는 건가요? 그 태도야말로 진정한 오만과 실패 아닌가요? 저는 어릴 적에는 틀린 게 없다라는 말을 듣고 자랐는데 선생님 덕분에 그 의미를 제대로 깨달았습니다. 남의 말은 듣지도 않고 스스로까지도 끝까지 어기면 틀릴 일이 없긴 하겠어요. 좋은 의견입니다. 지금 해지 학생이 아주 좋은 사례를 보여줬어요. 지적한 대로 그런 태도는 오만으로 보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무조건 실패를 인정하는 게 능사는 아니라고 이야기하고 싶어요. 사실 우리가 두려워하는 건 실패 그 자체보다도 타인의 평가일 때가 많기 때문입니다. 말씀드리고 싶은 건 타인의 평가를 무작정 받아들이거나 무조건 무시하는 게 아니라 그것을 어떻게 해석하고 활용할지 관점을 바꿔 보자고 제안하는 겁니다.

다만 이 과정을 제대로 적용할 수 있으려면 먼저 인정해야 하는 전제가 있습니다. 특히 비방과 비난이 만연한 사회에서 실패를 진짜 발전의 기회로 바꾸려면 세 가지의 정신적 준비가 필요합니다. 이 준비가 없기 때문에 이론으로는 준비가 돼도 실제로 적용이 되지 않게 됩니다. 첫째로, 자기 기만을 버리시길 권해드립니다. 두려운 상황을 외면하고 사람들 반응 같은 건 두렵지 않아라고 거짓말을 하게 되면 오히려 답이 없는 상황이 됩니다. 대신 지금 나는 두려운 상황을 마주하고 있고 이건 내가 해결할 도전 과제다라고 정직하게 직시해야 합니다. 두려움은 단순히 밀어내야 하는 감정이 아니라 내 인생에서 해결해야 하는 숙제로 바라봐야 합니다. 그게 두려움이라는 감정이 존재하는 본연의 기능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구체화하면 두려움은 추상적이고 어찌할 수 없는 막연한 공포에서 분명히 직면할 수 있는 적으로 바뀌게 됩니다. 이때부터 행동의 이유와 목표가 선명해집니다. 둘째로는 한정된 것만 책임지셔야 합니다. 모든 문제를 다 해결하려 하고 모든 사람을 수용하고자 하면 반드시 무력해집니다. 내가 명확하게 책임지고 할 수 있는 영역과 불가능한 부분을 정확하게 구분해야 합니다. 막연히 두려움을 줄이겠다라고 결심하는 건 아무런 효과가 없습니다. 효과가 있는 대처는, 예를 들자면 120일 안에 이 프로젝트를 80% 완성하겠다처럼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목표를 설정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실행의 질서를 만들어 가는 구체적 실천이 추상적 공포를 다스리는 열쇠가 됩니다. 셋째는 현실을 인정하셔야 합니다. 현재 내 처지를 정확한 언어로 기록하여서 직시하여야 합니다. 현실과 상상 사이의 거리가 멀수록 그 사이로 생긴 알 수 없는 빈 공간에 두려움이 침입합니다. 사람은 알 수 없는 것에 두려움을 느끼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무조건 할 수 있다 같은 추상적인 확신과 더불어 무능하다 나는 제대로 할 수 없다와 같은 모호한 자기 비하 또한 실제 현실과 동떨어진 상상일 뿐입니다. 차라리 내가 지금 부족한 부분은 이 분야이고 그 이유는 이런 경험이 없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구체적으로 표현해야 행동으로 연결됩니다. 내 상태를 계속해서 점검하고 기록하여서 말로 하는 목표와 실제 행동이 일치하도록 유지해야 합니다. 이것이 두려움을 관리하는 강력한 방법입니다.

그래서 결국 하자는 게 뭐죠? 두려움에 이름 붙이고 기록하면 갑자기 현실이 마법처럼 바뀌나요? 오히려 실패가 더 선명해지고 압박감만 커지겠네요. 현실 즉시 책임지기, 결코 난 노력은 했소라는 자기 합리화로 도망치려는 거 아닌가요? 차라리 무감해지려 애쓰는 게 자기 자신에게 솔직한 방법 아닐까요? 결국 인간은 자신을 기만하지 않고선 견딜 수 없는 존재라고 생각합니다. 해지 학생이 지적한 부분도 일리가 있습니다. 현실을 직시하거나 책임을 구체화할 때 압박감이 더 커질 수 있죠. 그러나 여기서 강조하고 싶은 건 단순히 압박감을 덜거나 위로를 받자는 게 아니라 앞으로 타인의 피드백을 선별해서 활용하기 위한 기준을 세우는 준비 단계가 필요하다는 거예요. 두려움을 구체적으로 기록하고 명확히 하는 이유는 막연한 감정을 분석 가능한 정보로 바꾸기 위해서입니다. 이렇게 해야만 타인의 말에서 무의미한 공격과 진정한 개선을 구분하는 건설적 필터링이 만들어지기 때문입니다. 감정을 분석 가능한 형태로 전환하지 않으면 결국 타인의 모든 지적에 휘둘리거나 반대로 모든 피드백을 무시하는 극단적 태도로 빠질 가능성이 매우 큽니다. 앞서 말씀드린 세 가지 준비를 통해 이 필터링을 준비하게 되면 무의미한 비난과 유의미한 비판을 명확하게 구분할 수 있게 됩니다.

따라서 마지막 단계에서는 비난과 비판을 명확히 구분하는 기준을 정립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이 기준은 다음과 같은 세 가지로 제안드립니다. 첫째는 근거 있는 구체성이 있는가입니다. 비판을 구분하는 가장 간단한 잣대는 구체적으로 어떤 행동 결과에 대한 지적이며 그 근거가 명확한가입니다. 만일 상대방이 너는 안 돼, 그래서 문제야 같은 식으로 막연한 멸시만 쏟아낸다면 그것은 그저 감정적 공격에 가깝습니다. 내가 어떤 지점에서 미흡했고 어떻게 바뀌어야 하는지 언급이 없다면 건설적이지 않은 비난이라고 봐야 합니다. 반면 이런 피드백이 있습니다. 이번 프로젝트에서 타게팅 부분에 준비가 부족했던 것 같다. 다음엔 이런 자료를 미리 준비해 보면 좋겠다처럼 구체적인 행동 제안이 동반된다면 그것은 귀 기울여 볼 가치가 매우 큽니다. 심리학자 더글라스 스톤과 슐라한이 공동 저술한 땡스 포 더 피드백에서도 구체적 정보와 대한 제시가 담긴 피드백일수록 수용자의 학습 효과가 높다라고 설명합니다. 결국 이 지적이 실제로 내 행동 변화를 유도할 만한 설득력을 지니고 있는가를 본다면 가치 있는 피드백인지 판별이 가능합니다. 둘째로, 비난을 통해 상대방이 얻게 되는 이득이 있다면 의심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내가 너보다 낫다라는 우월심을 과시하려는 태도, 혹은 집단 내에서 특정 경쟁자를 견제하려는 정치적 의도가 깔려 있을 수 있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포인트는 말이 혹독해 보이더라도 실제로 내게 이득이 되는 개선 아이디어라면 받아들이는 편이 낫다는 겁니다. 반면 아무리 말이 세련되고 그럴 듯해 보여도 기저에 깔린 목적이 무너뜨리기 위한 것이라면 과감히 차단해야 합니다. 셋째로, 피드백의 내용이 내가 직접 통제가 가능한 부분인지 확인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서 발표할 때 준비 시간을 늘려라, 이 분야의 최신 자료부터 찾아봐라처럼 내가 직접 조정이 가능한 부분을 짚어 준다면 의미가 있는 피드백입니다. 행동 변화를 통해 결과를 바꿀 수 있기 때문입니다. 반면 당신 자체가 싫어 혹은 자격도 없으면서 말만 많다는 식으로 수정이 불가능한 인신 공격이거나 실체 없는 예언에 가까운 말이라면 고민할 이유가 거의 없습니다.

정리하자면 어떤 피드백이라도 실제로 내가 행동 변화를 통해 결과를 달리 만들 수 있다면 수용해 볼 가치가 있습니다. 이는 앞서 말한 자기 책임 범위를 명확히 하는 것과도 연결됩니다. 내 책임 범위 안에서 조율할 수 있는 내용이라면 기꺼이 검토하고, 그렇지 않은 부분은 심리적 무게를 덜어내야 합니다. 위와 같은 세 가지 필터링을 거치면 주변에서 쏟아지는 말들이 단순한 비방인지 아니면 개선이 담긴 소중한 조언인지를 훨씬 쉽게 구분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타인의 비판이 무서워서 게을러질 필요도, 무작정 모든 비난을 받아들여서 위축될 필요도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결국 주변의 언행을 정보화하는 태도가 형성되면 실패와 비판 또는 비난을 더 이상 자존감을 흔드는 공격이 아니라 내가 선택적으로 취할 수 있는 데이터로 보게 됩니다. 이 과정에서 오히려 두려워해야 할 건 실체 없는 막연한 사회적 평가가 아니라 오히려 건설적 정보를 놓치고 제자리걸음할 위험임을 자각하게 됩니다.

핵심을 요약드리자면, 게으름은 단지 지능이나 의지의 문제가 아니라 실패에 대한 본능적 두려움과 사회적 평가의 압박 측면이 매우 강합니다. 이를 극복하려면 두려움의 본질을 직시하고 책임을 명확히 구분하며 현실을 구체적으로 기록하는 게 필요합니다. 그래야 타인의 평가 중에서 의미 있는 비판과 무의미한 비난을 구별하여 내 성장을 위한 정보로 활용할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말씀드리고 싶은 건 사람은 누구나 두려움을 느낀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 두려움을 본능으로만 이해할지, 지성을 통해 정체를 파악할지에 갈림길 중 어느 것을 선택하는가에 따라 두려움은 인생을 멈춰 버리게 하는 재앙이 되기도, 강력한 에너지가 되기도 합니다. 우리가 어떤 때는 듣기 좋은 달콤한 말 대신 현실을 파악할 불편한 선택을 해야 할 때가 있습니다. 그 선택을 혼자 하기는 어렵지만 함께 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라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이 지성의 여정을 함께 하고 싶은 분이 있다면 구독해 주세요. 건강하고 당당한 지성으로 살아갈 수 있기를 응원드리며, 여기까지 영상 시청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