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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가는 곳에 고통이 따른다. | 부처님 말씀

부처의말1:22:06

Transcription

[음악] 어느 날 아침 출근길 지하철 안에서 한 사람이 당신의 발을 밟고 지나갔습니다. 사과도 없이 그냥 지나쳐 갑니다. 그 순간부터 당신의 마음은 그 사람에게 [음악] 붙잡힙니다. 어떻게 사과도 안 하지. 요즘 사람들은 정말 예의가 없어. 회사에 도착해서도 점심을 먹으면서도 그 짧은 순간이 계속 떠오릅니다. 하루 종일 기분이 상한 채로 지나갑니다. 발을 밟힌 것은 단 몇 초였지만 고통은 하루 내내 이어졌습니다. 누가 당신을 괴롭힌 걸까요? 지하철에서 스쳐간 그 사람일까요? 아닙니다. 당신의 마음이 그 순간을 붙들고 놓지 [음악] 않았기 때문입니다.

부처님께서는 법구경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마음은 모든 법의 근본이요 마음이 주인이며 마음으로 이루어진다. 만약 [음악] 더러운 마음으로 말하거나 행동하면 괴로움이 그를 따르니 마치 술레바퀴가 소의 발자국을 따르는 것과 같다. 우리의 고통은 밖에서 오지 않습니다. 마음이 무언가를 붙들 때 그곳에 고통이 생겨납니다.

우리는 하루에도 수천 가지 생각을 합니다. 아침에 눈을 뜨는 순간부터 [음악] 마음은 쉬지 않고 움직입니다. 오늘 회의 준비는 다 했나? 어제 그 사람이 한 말은 무슨 뜻이었을까? 다음 달 카드값은 어떻게 내지? 내 모습이 다른 사람 눈에 어떻게 보일까? 마음은 과거로 달려가고 미래를 걱정하며 현재를 평가합니다. 그리고 그 모든 곳에서 우리는 무언가를 원하거나 [음악] 무언가를 거부하거나 무언가를 두려워합니다. 마음이 가는 곳마다 가래가 따라갑니다. 가래란 무엇일까요? 단순히 무언가를 원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이 있어야만 내가 행복할 수 있다는 집착입니다. 이것이 없어지면 나는 불행해질 것이다는 두려움입니다. 이것을 얻지 못하면 나는 가치 없는 사람이다는 동일씨입니다. 마음이 무언가에 가닿올 때마다 우리는 그것과 자신을 하나로 여기기 시작합니다.

한 젊은이가 승진에서 탈락했습니다. 능력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음악] 회사 사정 때문이었습니다. 하지만 [음악] 그는 며칠 동안 잠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내가 뭘 잘못한 걸까? 동료들이 나를 어떻게 볼까? 나는 결국 실패자인가? 승진 탈락이라는 사실 자체보다 그가 그 사실의 부여한 의미가 그를 괴롭혔습니다. 그는 승진과 자신의 가치를 동일시했습니다. 마음이 승진 성공이라는 이미지에 가닿았고 그것을 얻지 못했을 때 고통이 생겨난 것입니다. 부처님께서는이를 취온고라고 하셨습니다. 집착으로 인해 생겨나는 다섯 가지 쌓임의 괴로움입니다. 우리가 무언가를 나 또는 나의 것으로 붙들 때 그것이 [음악] 우리를 괴롭힙니다.

마음은 본래 고유하고 맞습니다. 마치 잔잔한 호수와 같습니다. 지만 바람이 불면 물결이 일어나듯 대상이 마음에 닿으면 번뇌가 일어납니다. 눈으로 아름다운 것을 보면 탐욕이 일어나고 추한 것을 보면 [음악] 혐오가 일어납니다. 귀로 칭찬을 들으면 기쁨이 일어나고 비난을 들으면 분노가 일어납니다. 이것이 육군과 육경이 만나 육식을 일으키는 과정입니다.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우리는 그 일어난 느낌을 붙듭니다.이 기쁨이 계속되어야 해.이 분노를 표현하지 않으면 내가 무시당하는 거야. 그렇게 마음은 일어난 느낌에 또다시 가고 그것을 키우고 증폭시킵니다. 처음에는 작은 물결이었던 것이 거대한 파도가 됩니다.

어떤 사람이 SNS에 자신의 일상을 올렸습니다. 처음에는 그냥 기록하는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누군가 좋아요를 눌러 주었고 댓글을 달아 주었습니다. 그 순간 그의 마음은 좋아하여 숫자에가 닿았습니다. 다음 계시물에는 더 많은 좋아요를 받고 싶어졌습니다. 사진을 찍을 때도 글을 쓸 때도 끊임없이 다른 사람의 반응을 의식하게 되었습니다. 좋아요가 적게 달린 날은 하루 종일 기분이 가라앉았습니다. 내가 뭘 잘못했을까? 사람들이 나를 싫어하는 건 아닐까? 이제 그는 SNS 없이는 자신의 가치를 확인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마음이 숫자에가 닿았고 그 숫자가 그를 지배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이것이 현대인의 고통입니다. 외부의 인정과 평가에 마음이 [음악] 가닿고 그것이 흔들릴 때마다 우리도 함께 흔들립니다.

부처님께서는 고통의 원인을 세 가지 도구로 설명하셨습니다. 탐욕, 성냄, 어리석음입니다. 탐욕은 무언가를 얻으려는 마음입니다. [음악] 성냄은 무언가를 밀어내려는 마음입니다. 어리석음은 실상을 보지 못하는 마음입니다.이 세 가지는 서로 얽혀 있습니다. 우리가 무언가를 탐할 때 그것을 방해하는 것에 화를 냅니다. 그리고 그 탐욕과 성냄의 근본에는 어리석음이 있습니다. 이것이 나를 진정으로 행복하게 할 것이다는 착각입니다. [음악] 이것만 있으면 내 문제가 해결될 것이다는 환상입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어떤가요? 원하던 것을 얻어도 잠시뿐 곧 새로운 갈망이 생겨납니다. 왜냐하면 행복은 외부 대상에서 오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행복은 마음의 상태입니다.

한 부자가 있었습니다. 그는 큰 집, 좋은 차, 명예로운 지위, 모든 것을 가졌습니다. 하지만 그는 행복하지 않았습니다. 밤마다 불안에 시달렸습니다.이 재산을 이르면 어쩌지? 사람들이 내 진짜 모습을 알게 되면 어쩌지? 더 성공한 사람들과 비교하면 나는 [음악] 아직 부족해. 그가 가진 모든 것이 그를 행복하게 하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그가 가진 것이 많을수록 이를 것에 대한 두려움도 커졌습니다. 마음이 소유에 가닿았고 그 소유가 그를 묶어두었습니다.

반대로 아무것도 가지지 않은 한 수행자가 있었습니다. 그는 바로 하나와 낡은 가사만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의 얼굴에는 평화가 가득했습니다. 왜일까요? 그의 마음은 소유에 가닿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는 가진 것과 자신을 동일시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어둠에도 기뻐하지 않고 이름에도 슬퍼하지 않았습니다. 이것이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무소유의 자유입니다.

우리는 [음악] 끊임없이 무언가를 얻으려 합니다. 더 많은 돈, 더 높은 지위, 더 좋은 관계, 더 나은 외모입니다. 이것만 있으면 행복할 거야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것을 얻고 나면 어떤가요? 잠시 기쁨이 찾아오지만 곧 익숙해집니다. 그리고 다시 새로운 것을 갈망하기 시작합니다. 이것을 쾌락의 채바퀴라고 합니다. 채바퀴를 아무리 빨리 돌려도 우리는 제자리에 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찾는 행복은 바깥에 [음악]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행복은 마음이 평화로운 상태입니다. 욕망에 휘둘리지 않고 두려움에 사로잡히지 않으며 현재에 머무는 상태입니다. 하지만 우리의 마음은 끊임없이 어디론가 달려갑니다. 과거의 후회로 미래의 걱정으로 다른 사람과의 비교로 달려갑니다. 그리고 그곳마다 고통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한 어머니가 있었습니다. 그녀는 자식을 너무나 사랑했습니다. 자식이 잘되기를 간절히 바랐습니다. 하지만 그 사랑은 점점 집착이 되어 갔습니다. 자식이 자신의 기대대로 살지 않으면 불안했습니다. 자식이 독립하려 하면 두려웠습니다. 내가 없으면 저 아이는 어떻게 살까? 그녀의 마음은 자식에게 가닿았고 자식의 모든 행동이 그녀를 흔들었습니다. 자식이 기뻐하면 그녀도 기뻤고 자식이 슬퍼하면 그녀도 슬펐습니다. 자식이 성공하면 그녀도 뿌듯했고 자식이 실패하면 그녀도 좌절했습니다. 그녀는 자신의 삶을 살지 못했습니다. 자식의 삶에 자신을 완전히 의지했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집착입니다.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집착입니다. 진정한 사랑은 상대를 잇는 그대로 존중하고 그의 길을 가도록 허락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집착은 상대를 내 마음의 안정을 위한 도구로 여깁니다. 내가 이래야 내가 편해. 내가 절해야 내가 행복해. 이렇게 마음이 상대에게 가다올 때 관계는 고통이 됩니다.

부처님께서는이 모든 고통의 뿌리를 가래라고 하셨습니다. 목마른 사슴이 신기루를 보고 달려가듯 우리는 실체 없는 것을 향해 달려갑니다. 영원하지 않은 것을 영원하다 여기고 괴로움인 것을 즐거움이라 여기며 실체 없는 것을 실체라 여깁니다. 이것이 상전도입니다. 거꾸로 보는 것입니다. 우리는 변하는 것을 변하지 않는다고 착각합니다. 젊음, 건강, 재산, 지위, 관계이 모든 것은 무상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것들이 영원할 것처럼 집착합니다. 그래서 그것들이 변하거나 사라질 때 큰 충격을 받습니다. 어떻게 이럴 수가 있어? 이건 불공평해. 하지만 불공평한 것이 아닙니다. 그저 모든 것은 변한다는 자연의 법칙일 뿐입니다. 우리가 그 법칙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영혼을 갈구하기 때문에 고통스러운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아름다운 꽃을 보았습니다. 그 꽃이 너무 아름다워서 꺾어서 집에 가져왔습니다. 꽃병에 꽂아두고 매일 바라보았습니다. 하지만 며칠 지나자 꽃은 시들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슬퍼했습니다. 왜 이렇게 빨리 시들어 버리는 거야? 하지만 꽃은 원래 시드는 것입니다. 그것이 꽃의 본성입니다. 만약 그가 꽃을 꺾지 않고 자연 속에서 있는 그대로 바라보았다면 어땠을까요? 꽃이 피고지는 모습을 통해 무상의 진리를 배웠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 무상함 속에서 [음악] 더 깊은 아름다움을 발견했을 것입니다. 우리의 집착도 이와 같습니다. 무언가를 소유하려 하고 영원히 간직하려 할 [음악] 때 우리는 그것에 진정한 아름다움을 놓칩니다. 그리고 그것이 변하고 사라질 때 고통받습니다. 마음이 가는 곳마다 고통이 따르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우리의 마음은 끊임없이 무언가를 붙들려 합니다. 과거에 좋았던 기억을 붙들고 미래의 이상적인 모습을 그리며 현재의 불만족스러운 상황을 거부합니다. 하지만 과거는 이미 지나갔고 미래는 아직 오지 않았으며 현재는 끊임없이 변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붙들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계속 붙들려 합니다. 마치 흐르는 강물을 손으로 움켜 주려는 것과 같습니다. 손을 펼치면 물은 자유롭게 흐르지만 손을 쥐면 물은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고 우리 손만 아플 뿐입니다.

한 학생이 시험에서 좋은 성적을 받았습니다. [음악] 그는 기뻤습니다. 하지만 그 기쁨은 오래 가지 않았습니다. 곧 다음 시험이 다가왔고 그는 불안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이번에도 잘해야 하는데 만약 이번에 못 하면 사람들이 실망할 거야. 이전의 성공이 그를 자유롭게 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 큰 [음악] 부담을 주었습니다. 왜일까요? 그의 마음이 좋은 성적이라는 이미지에 가닿았기 때문입니다. 그는 그 이미지를 유지해야 한다는 압박을 느꼈습니다. 이것이 성취의 역설입니다. 우리가 무언가를 이루었을 때 그것이 우리를 더 자유롭게 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것을 잃을까 봐 더 불안해집니다. 높은 곳에 오를수록 떨어질 것에 대한 두려움도 커집니다. 많이 가질수록 이을 것에 대한 걱정도 늘어납니다.

부처님께서는이를 유전문이라 하셨습니다. 우리는 [음악] 끊임없이 생각의 문을 통해 흘러다닙니다. 좋은 것을 보면 탐욕의 문으로, 싫은 것을 보면 성냄의 문으로, 알지 못하는 것을 보면 어리석음의 문으로 흘러갑니다. 그리고 그 문을 통과할 때마다 고통이 쌓입니다.이 고통은 [음악]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천천히 조용히 마음속 깊은 곳에 쌓여갑니다. 마치 먼지가 쌓이듯이 처음에는 느껴지지 않지만 시간이 지나면 마음을 뒤덮습니다. 그리고 어느 날 우리는 이유를 알 수 없는 공허함을 느낍니다. 왜 이렇게 사는게 힘들까? 왜 아무것도 만족스럽지 않을까?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게 뭘까?이 이 질문들은 모두 같은 곳에서 옵니다. 마음이 [음악] 밖으로만 향했고 안으로는 한 번도 들여다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하루 종일 바깥 세상을 봅니다. 누가 뭐라고 했는지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어떤 결과가 나올지 봅니다. 지만 정작 그 모든 것을 경험하는 주체인 마음은 보지 않습니다. 마음이 어떤 상태인지,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왜 이런 감정이 일어났는지 살피지 않습니다. 그래서 마음은 주인 없는 집처럼 됩니다. 온갖 손님들이 들락날락하지만 주인은 없습니다. 탐욕이 찾아와도 알아차리지 못하고 분노가 일어나도 그냥 따라가며 두려움이 엄습해도 그것에 휩쓸립니다. 이것이 우리의 일상입니다. 마음의 주인이 되지 못하고 마음의 손님들에게 끌려다니는 삶입니다.

우리가 고통받는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눈을 뜨고 있지만 진실을 보지 못하고 귀를 열고 있지만 진리를 듣지 못하며 마음이 있지만 실상을 알지 못합니다. 부처님께서는 자바암경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무명으로 인해 행이 있고 행으로 인해식이 있으며 식으로 인해 명색이 [음악] 있다. 이것이 있으므로 저것이 있고 이것이 생기므로 저것이 생긴다. 무명이 소멸하면 행이 소멸하고 행이 소멸하면 온갖 [음악] 괴로움이 소멸한다.

무명이란 밝음이 없는 상태입니다. 어둠 속에서 길을 잃은 것과 같습니다. 우리는 길이 어디 있는지 모르면서도 계속 걷습니다. 그리고 [음악] 같은 곳을 맴돌며 같은 고통을 반복합니다. 이것이 윤회입니다.

한 사람이 밤길을 걷고 있었습니다. 어두운 길 위에 밧줄이 놓여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그것을 뱀으로 착각했습니다. 순간 심장이 뛰고 온몸에 땀이 흘렀으며 공포에 사로잡혔습니다. 그는 뒤로 물러서며 비명을 질렀습니다. 하지만 누군가 등불을 가져와 비춰 주었습니다. 그제야 그는 그것이 밧줄일 뿐임을 알았습니다. 그 순간 공포는 사라졌습니다. 뱀은 처음부터 없었습니다. 다만 어둠 속에서 보지 못했을 뿐입니다. 우리의 고통도 이와 같습니다. 실체가 없는데 우리가 보지 못해서 실체라고 믿습니다. 영원하지 않은데 영원하다고 착각합니다. [음악] 내가 아닌데 나라고 집착합니다.이 모든 착각의 뿌리가 [음악] 무명입니다.

무명은 단순히 지식이 없는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음악] 우고 많이 아는 사람도 무명에 빠질 수 있습니다. 무명은 사물의 진실한 본성을 보지 못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현상을 봅니다. 아름다운 것, 추한 것, 좋은 것, 나쁜 것을 봅니다. 하지만 그 현상 뒤에 숨겨진 진실은 보지 못합니다. 모든 것은 인연으로 일어나고 인연이 다하면 사라진다는 것을 보지 못합니다. 모든 것은 서로 의지하고 있으며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보지 못합니다. 이것을 부처님께서는 연기법이라 하셨습니다. 이것이 있으므로 저것이 있고 [음악] 이것이 생기므로 저것이 생긴다는 법칙입니다.

한 젊은 여성이 거울을 보며 한 숨을 쉬었습니다. 내 얼굴은 왜 이렇게 못생겼을까? 그녀는 자신의 외모를 혐오했습니다. 다른 사람들과 비교하며 끊임없이 자신을 비난했습니다. [음악] 성형 수술을 고민했고 화장품에 많은 돈을 썼으며 SNS에서 예쁜 사람들의 사진을 보며 우울해했습니다. 하지만 그녀는 보지 못했습니다. [음악] 아름다움이란 고정된 실체가 아니라는 것을 말입니다. 시대가 바뀌면 아름다움의 기준도 바뀝니다. 문화가 다르면 아름다움의 정의도 달라집니다. 심지어 같은 사람이라도 보는 사람에 따라 아름답게 보이기도 하고 그렇지 않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아름다움은 어디에 있을까요? 대상에 있는 것일까요? 아니면 보는 사람의 마음에 있는 것일까요? 사실 아름다움은 어디에도 고정되어 있지 않습니다. 수많은 조건이 모여서 만들어낸 하나의 인식일 뿐입니다. 하지만 그녀는 이것을 보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자신이 만든 고통의 감옥에 스스로를 가두었습니다.

부처님께서는 12연기를 통해 우리가 어떻게 고통의 고리에 묶기는지 설명하셨습니다. 무명으로 인해 행이 납니다. 행위란 의지적인 행위, 업을 만드는 충동입니다. 보지 못하기 때문에 잘못된 선택을 하고 잘못된 행동을 반복합니다. 행으로 인해 식이 일어납니다. 식이란 의식 인식하는 작용입니다. 우리가 만든 업의 씨앗이 의식의 흐름 속에 저장됩니다. 식으로 인해 명색이 일어납니다. 명색이란 정신과 물질, 몸과 마음입니다. 의식이 몸을 받아 태어나고이 세상에 존재하게 됩니다. 명색으로 인해 육이 일어납니다. 육입이란 여섯 가지 감각 기관입니다. 눈, 귀, 코, 혀, 몸, 마음을 통해 세상을 경험합니다. 유기부로 인해 촉이 일어납니다. 촉이란 접촉 감각 기관이 대상과 만나는 순간입니다. 촉으로 인해 수가 일어납니다. 술한 느낌입니다. 좋다. 나쁘다 그저 그렇다는 느낌이 생겨납니다. 여기까지는 자연스러운 과정입니다. 문제는 다음 단계부터입니다. [음악] 주로 인해 애가 일어납니다. 애란 가래 집착입니다. 좋은 느낌에는 더 가지고 싶다는 마음이 나쁜 느낌에는 밀어내고 [음악] 싶다는 마음이 생겨납니다. 애로 인해 취가 일어납니다. 취란 붙잡음입니다. 가 구체적인 행동으로 나타나 실제로 무언가를 움켜 주려 합니다. 취로 인해 유가 일어납니다. 유란 존재 되어 만든 업이 다시 다음 생을 결정짓습니다. 유로 인해 생이 일어나고 생으로 인해 노사우비고가 일어납니다. 늙음, 죽음, 슬픔, 비탄, 고통, 근심이 뒤따릅니다. 이것이 고통의 사슬입니다.

한 사업가 있었습니다. 그는 작은 가게로 시작해서 [음악] 큰 회사를 만들었습니다. 처음에는 생계를 위해 일했습니다. 하지만 사업이 커지면서 그의 목표도 변했습니다. 더 많은 돈, 더 큰 명예, 더 높은 지위를 원했습니다. 경쟁자를 이기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습니다. 직원들을 착취하고 [음악] 거래처를 속이며 때로는 법을 어기도 했습니다. 그는 성공했습니다. [음악] 재산도 모았고 명예도 얻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평화롭지 않았습니다. 밤마다 악몽에 시달렸고 언제나 불안했으며 누군가 자신을 해칠까 봐 두려워했습니다. 그가 만든 업이 그를 괴롭히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는 자신이 한 행동들이 돌고 돌아 자신에게 돌아온다는 것을 보지 못했습니다. 눈앞에 이익만 보고 장기적인 결과는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이것이 무명입니다.

보지 못하면 우리는 같은 실수를 반복합니다. 같은 유형의 사람과 사랑에 빠졌다가 상처받고 같은 방식으로 화를 내고 후회하며 같은 욕망을 줬다가 실망합니다. 이번에는 다를 거야라고 생각하지만 결과는 항상 비슷합니다. [음악] 왜일까요? 근본 원인을 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표면만 보고 겉모습만 바꾸려 하기 때문입니다. 마치 병의 증상만 치료하고 원인은 그대로 두는 것과 같습니다. 잠시 증상이 사라진 것처럼 보여도 곧 다시 나타납니다. 부처님께서는이를 의사에 비유하셨습니다. 훌륭한 의사는 증상만 보지 않고 병의 근원을 찾아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도 고통의 증상만 볼 것이 아니라 고통의 뿌리를 찾아야 합니다. 그 뿌리가 바로 무명입니다.

무명은 세 가지 착각을 만들어냅니다. 첫째, [음악] 무상한 것을 영원하다고 여기는 착각입니다. 우리 몸, 우리가 가진 것, 우리의 관계이 모든 것은 변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것들이 영원히 지속될 것처럼 행동합니다. 건강할 때는 질병을 생각하지 않고 젊을 [음악] 때는 늙음을 생각하지 않으며 살아 있을 때는 죽음을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변화가 찾아왔을 때 충격을 받습니다. 둘째, 괴로운 것을 즐거움이라 여기는 착각입니다. 감각적 쾌락, 물질적 소유, 타인의 인정 이런 것들이 우리를 행복하게 할 것이라 믿습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잠깐의 만족 뒤에 더 큰 갈증이 찾아옵니다. 마치 소금물을 마시는 것과 같습니다. 마실수록 더 목이 마릅니다. 셋째, 나라는 것이 없는데 나라고 여기는 착각입니다. 이것이 나다. 이것이 나의 것이다라고 생각하지만 자세히 들여다 보면 고정된 나는 어디에도 없습니다. 우리 몸은 끊임없이 변하고 우리 생각도 매순간 달라지며 우리 감정도 흘러갑니다. 그렇다면 그중 무엇이 진정한 나일까요?

한 수행자가 스승에게 물었습니다. 제 안에 불성이 있다고 하셨는데 그것이 어디에 있습니까? 스승이 답했습니다. 내 손을 보라. 그것이 손이냐? 예, 손입니다. 손가락을 보라. 그것도 손이냐? 손가락은 손의 일부입니다. 손가락을 자르면 그것도 여전히 손이냐? 아닙니다. 그렇다면 손은 어디에 있느냐? 손가락에 있느냐? 손바닥에 있느냐? 손목에 있느냐? 수행자는 대답하지 못했습니다. 스승이 말했습니다. 손이라는 것은 여러 부분이 모여서 만든 이름일 [음악] 뿐이다. 그 자체로 존재하는 손은 없다. 마찬가지로 너라는 것도 몸과 마음, 생각과 [음악] 감정, 기억과 습관이 모여서 만든 이름일 뿐이다. 그 자체로 존재하는 고정된 나는 없다. 이것이 무아의 가르침입니다.

우리가 나라고 여기는 것은 끊임없이 변하는 과정입니다.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나는 다릅니다. 10년 전에 나와 지금의 나는 완전히 다른 사람입니다. 몸의 세포들은 교체되었고 생각도 바뀌었으며 가치관도 달라졌습니다. 그렇다면 무엇이 계속되는 것일까요? 단지 기억과 습관의 연속성입니다. 마치 촛불이 다음 촛불에 불을 옮기는 것과 같습니다. 불꽃 자체는 같은 것이 아니지만 빛은 이어집니다. 하지만 우리는 이것을 보지 못합니다. 고정된 자아가 있다고 믿고 그 자아를 지키고 키우려 합니다. 내 것, [음악] 내 생각, 내 방식을 고집합니다. 누군가 그것을 침범하면 화를 내고 위협받으면 두려워합니다.이 모든 것이 나라는 환상에서 비롯됩니다.

한 부부가 있었습니다. 결혼 초기에는 서로를 사랑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갈등이 [음악] 생겼습니다. 당신은 왜 내 말을 안 들어? 당신은 왜 내 방식대로 안 해? 당신은 왜 나를 이해하지 못해? 각자 자신의 관점이 옳다고 믿었습니다. 상대방이 변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결국 그들은 헤어졌습니다. 하지만 새로운 사람을 만났을 때도 비슷한 문제가 반복되었습니다. 왜일까요? [음악] 그들은 문제의 근원을 보지 못했습니다. 문제는 상대방이 아니라 자신의 집착이었습니다. 내가 옳다는 생각, 내 방식이 맞다는 고집이었습니다.이 집착을 내려놓지 않는 한 누구를 만나도 같은 갈등이 [음악] 반복됩니다.

보지 못함은 관계를 파괴합니다. 상대방의 입장을 보지 못하고 상대방의 고통을 보지 못하며 상대방도 나처럼 행복을 원한다는 것을 보지 못합니다. 오직 내 욕구, 내 기대, 내 상처만 봅니다. 에서 상대를 비난하고 요구하며 통제하려 합니다. 하지만 이것은 사랑이 아닙니다. 집착입니다. 상대를 내 행복의 도구로 여기는 것입니다. 진정한 사랑은 상대를 있는 그대로 보는 것에서 시작됩니다. 상대의 장점뿐 아니라 단점도 보고 상대의 빛뿐 아니라 [음악] 그림자도 보며 상대가 나와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음악] 무명 속에서는 이것이 불가능합니다.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무명이야말로 가장 큰 장애다. 무명이 있는 한 지혜가 일어날 수 없고 무명이 사라져야 비로소 해탈이 가능하다. 무명은 단순히 모르는 것이 아닙니다. 잘못하는 것입니다. 거꾸로 보는 것입니다. 진실을 가리는 베일입니다. 그 베일를 걷둬내지 않는 한 [음악] 우리는 계속 어둠 속을 헤멜 수밖에 없습니다. 같은 돌에 걸려넘어지고 [음악] 같은 구덩이에 빠지며 같은 고통을 반복합니다. 이것이 윤회입니다. 물리적인 삶과 죽음의 반복만이 아니라 [음악] 매순간 우리가 경험하는 심리적 윤회입니다.

한 사람이 술을 마셨습니다. 취한 상태에서 실수를 저질렀고 다음날 후회했습니다. 다시는 술을 마시지 않겠어. 하지만 며칠 후셨습니다. 왜일까요? 술을 마시게 만드는 근본 원인을 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외로움, 스트레스, 도피하고 싶은 마음 이런 것들을 해결하지 않고 술만 끊으려 했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습관을 바꾸지 못하는 이유입니다. 표면적인 행동만 바꾸려 하고 그 행동을 일으키는 깊은 [음악] 패턴은 보지 못합니다. 부처님께서는 이를 번뇌장이라 하셨습니다. 번뇌가 쌓여서 만든 장애물입니다.이 장애물이 우리 눈을 가리고 [음악] 귀를 막으며 마음을 흐리게 합니다. 그래서 진실을 보지 못하고 듣지 못하며 깨닫지 못합니다.

보지 못하면 우리는 지배당합니다. 감정에 지배당하고 [음악] 욕망에 지배당하며 두려움에 지배당합니다. 어떤 일이 일어났을 때 우리는 반사적으로 반응합니다. 누군가 우리를 비난하면 즉시 화를 냅니다. 누군가 우리를 칭찬하면 즉시 기뻐합니다. [음악] 무언가를 이르면 즉시 슬퍼합니다. 무언가를 얻으면 즉시 집착합니다.이 모든 반응은 자동적입니다. 우리가 선택한 것이 아니라 습관이 선택한 것입니다. 과거의 경험, 축적된 업, [음악] 뿌리 깊은 성향이 우리를 움직입니다. 우리는 자유롭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보이지 않는 줄에 묶여 있는 인연과 같습니다.

한 사람이 길을 걷다가 개에게 물렸습니다. 그 이후로 [음악] 그는 모든 계를 무서워했습니다. 작은 강아지를 봐도 심장이 뛰고 개 짓는 소리만 들어도 긴장했습니다. 이성적으로는 모든 개가 위험하지 않다는 것을 알았지만 몸은 자동으로 반응했습니다. 이것이 상처가 만드는 패턴입니다. 한 번의 경험이 마음에 각인되어 비슷한 상황이 오면 자동으로 작동합니다. 우리 모두는 이런 패턴을 가지고 있습니다. 어릴 때 [음악] 부모에게 버림받은 경험이 있다면 성인이 되어서도 사람들이 자신을 떠날까 봐 불안해합니다. 학창 시절 친구들에게 왕따를 당한 경험이 있다면 [음악] 사회생활을 할 때도 다른 사람의 시선을 지나치게 의식합니다.이 모든 것이 보지 못한 상처가 만드는 감옥입니다. 부처님께서는이를 업장이라 하셨습니다. 과거에 만든 업이 현재를 가로막는 장애입니다. 지만 여기서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업은 운명이 아닙니다. 바꿀 수 없는 것이 아닙니다. 만약 우리가 그 패턴을 명확히 본다면 우리는 그것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습니다. 보는 것 자체가 변화의 시작입니다. 무명이 사라지면 행이 사라지고 행이 사라지면 업의 사슬이 끊어집니다. 이것이 부처님께서 가르치신 해탈의 길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봐야 할까요? 첫째, 무상을 봐야 합니다. 모든 것은 변한다는 진리를 직접 [음악] 경험해야 합니다. 우리 몸의 감각을 관찰하면 알 수 있습니다. 기쁨도 잠시 후면 사라지고 고통도 영원히 지속되지 않습니다. [음악] 생각도 끊임없이 떠올랐다 사라집니다.이 이 변화를 있는 그대로 본다면 우리는 [음악] 집착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둘째, 고를 봐야 합니다. 집착이 만드는 괴로움을 명확히 봐야 합니다. 우리가 무언가를 원할 때 그것을 얻지 못하면 고통스럽고 얻어도 이를까 봐 불안하며 이르면 또 고통스럽습니다.이 악순환을 직접 경험하고 이해해야 합니다. [음악] 셋째, 무화를 봐야 합니다. 고정된 자아가 없다는 것을 나라고 여기는 것이 단지 과정일 뿐이라는 것을 봐야 합니다. 이것을 볼 때 나를 지키려는 필사적인 노력이 멈춥니다.

보는 것은 단순히 아는 것과 다릅니다. 머리로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온몸으로 경험하는 것입니다. 마치 불이 뜨겁다는 것을 책에서 읽는 것과 직접 불에 대는 것의 차이와 같습니다. 책에서 100번 읽어도 실제로 불의 뜨거움을 모르지만 한번 되어 보면 몸이 기억합니다. 마찬가지로 무상과 고와 무아를 100번 듣는 것보다 한 직접 경험하는 것이 더 강력합니다. [음악] 그 경험이 우리를 변화시킵니다. 보지 못해서 집배 봤던 상태에서 보기 시작하면서 자유를 찾아갑니다.

부처님께서 깨달음을 얻으신 후 처음으로 하신 말씀이 있습니다. 나는 모든 속박에서 벗어났다. 하늘의 속박에서도 땅의 속박에서도 벗어났다. 무엇이 부처님을 자유롭게 했을까요? 특별한 능력을 얻어서일까요? 신통력이 생겨서일까요? 아닙니다. 부처님은 보셨습니다. 있는 그대로를 보셨습니다. 그 봄 자체가 해방이었습니다.

사념 처경에서 부처님께서는 [음악]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몸에서 몸을 관찰하고 느낌에서 느낌을 관찰하며 [음악] 마음에서 마음을 관찰하고 법에서 법을 관찰하라. 부지런히 정진하여 분명히 알아차리고 세상의 탐욕과 근심을 버려라. 이것이 사념처네 가지 마음 챙김의 토대입니다. 알아차림이란 무엇일까요? 지금이 순간에 일어나는 것을 있는 그대로 아는 것입니다. 판단하지 않고 평가하지 않으며 바꾸려 하지 않고 그저 아는 것입니다. 숨이 들어오는 것을 알고 숨이 나가는 것을 압니다. 생각이 떠오르는 것을 알고 생각이 사라지는 것을 압니다. 감정이 일어나는 것을 알고 [음악] 감정이 변화하는 것을 압니다. 이렇게 단순해 보이지만 이것이야말로 가장 강력한 [음악] 수행입니다. 왜냐하면 알아차림은 무명을 [음악] 밝히는 빛이기 때문입니다. 어둠 속에서는 밧줄를 뱀으로 착각하지만 빛을 비추면 진실이 드러납니다. 알아차림이라는 빛을 비추면 [음악] 우리 마음의 움직임이 선명하게 보입니다.

한 사람이 명상 수련회에 참가했습니다. 지도자는 [음악] 단순한 지시를 주었습니다. 호흡을 관찰하세요. 숨이 들어올 때 들어온다고 알아차리고 숨이 [음악] 나갈 때 나간다고 알아차리세요. 처음에는 쉬워 보였습니다. 하지만 막상에 보니 엄청나게 어려웠습니다. 몇 번의 호흡도채 관찰하기 전에 마음이 딴 데로 갔습니다. 점심은 뭘 먹을까? 아까 그 사람이 한 말은 무슨 뜻이었을까? 내일 회사 가기 싫은데 마음은 끊임없이 어디론가 달아났습니다. 그는 좌절했습니다. 나는 왜 이렇게 집중력이 없을까? 하지만 지도자가 말했습니다. 마음이 달라난 것을 알아차렸다면 그것이 바로 알아차림입니다. 다시 호흡으로 돌아오세요. 그제야 그는 이해했습니다. 수행은 완벽하게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이 [음악] 떠났을 때 그것을 알아차리고 돌아오는 것이라는 것을 말입니다. 알아차림은 근육과 같습니다. 처음에는 약하지만 [음악] 훈련할수록 강해집니다. 처음에는 몇 초도 유지되지 않지만 계속 연습하면 점점 길어집니다. 놀라운 일이 일어나기 시작합니다. 일상생활에서도 자연스럽게 알아차림이 일어납니다. 화가 날 때 아, 지금 화가 나고 있구나라고 알아차립니다. 불안할 때 지금 불안한 마음이 일어나고 있구나라고 알아차립니다.이 이 알아차림이 일어나는 순간 무언가가 변합니다. 감정에 완전히 빠져들지 않게 됩니다. 감정과 나 사이에 작은 공간이 생깁니다. 그 공간이 자유입니다.

한 어머니가 있었습니다. 그녀는 10대 아들과 자주 다un. 아들이 방을 어질러 놓으면 화가 났고 공부하지 않으면 불안했으며 말데 하면 분노했습니다. 그래서 소리를 지르고 비난하고 때로는 채벌도 했습니다. 하지만 [음악] 매번 후회했습니다. 왜 나는 자꾸 이렇게 반응할까? [음악] 그녀는 마음 챙긴 명상을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큰 변화가 없었습니다. 여전히 화가 났고 여전히 소리를 질렀습니다. 하지만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소리를 지르는 중에 아, 지금 내가 소리를 지르고 있구나라고 알아차리게 되었습니다. 그 순간 잠시 멈춰 설 수 있었습니다. 완전히 멈추지는 못했지만 [음악] 소리의 크기가 줄어들었습니다. 시간이 더 지나자 화가 치밀어를 때 그것을 더 빨리 알아차리게 되었습니다. 화가 나려고 하는구나. 그러면 심호흡을 할 수 있었고 다르게 반응할 수 있었습니다. 결국 그녀는 아들과의 관계를 회복했습니다. 무엇이 그녀를 변화시켰을까요? 알아차림입니다. 알아차림은 우리에게 선택권을 줍니다. 자동 반응에서 의식적 응답으로 바꿀 수 있는 힘을 줍니다. 누군가 우리를 비난할 때 우리는 두 가지 길을 선택할 수 있습니다. 첫째는 자동 반응의 길입니다. 즉시 화를 내고 반격하며 관계를 망치는 길입니다. 둘째는 알아차림의 길입니다. 비난을 들었을 때 화가 일어나는구나라고 알아차리고 잠시 멈추며이 사람은 왜 이렇게 말했을까? 무슨 고통을 겪고 있을까라고 생각해 볼 수 있는 길입니다.이 선택은 우리 삶을 완전히 바꿉니다.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자극과 반응 사이에는 공간이 있다. 그 공간에 우리의 자유가 있다. 알아차림이 바로 그 공간을 만들어 줍니다.

몸을 관찰하는 것부터 시작해 봅시다. 지금이 순간 당신의 몸은 어떤 상태인가요? 어깨에 긴장이 있나요? 턱을 꽉 물고 있나요? 주먹을 쥐고 있나요?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의 몸 상태를 인식하지 못한 채 하루를 보냅니다. 긴장을 아는 채로 긴장이 있는지도 모르고 살아갑니다. 하지만 몸을 알아차리기 시작하면 놀라운 변화가 일어납니다. 긴장을 알아차리는 순간 긴장이 조금씩 풀립니다. [음악] 몸은 우리의 마음을 반영합니다. 마음이 불안하면 몸이 긴장하고 마음이 평화로우면 몸이 이완됩니다. 반대로 몸을 이완시키면 마음도 평화로워집니다. 그래서 부처님께서는 몸의 관찰을 가장 먼저 가르치셨습니다.

한 직장인이 매일 두통에 시달렸습니다. 병원에 가도 특별한 이상은 없었습니다. 의사는 스트레스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그는 명상을 시작했습니다. 앉아서 몸을 스캔하듯 관찰했습니다. 발끝부터 시작해서 다리, 배, 가슴, 어깨, 목, 머리까지 천천히 주위를 이동시켰습니다. 처음에는 아무 느낌도 없었습니다. 하지만 계속하자 미세한 감각들이 느껴지기 시작했습니다. 어깨가 바위처럼 굳어 있다는 것을 턱에 엄청난 힘이 들어가 있다는 것을 호흡이 약고 [음악] 빠르다는 것을 알아차렸습니다.이 알아차림만으로도 몸이 조금씩 변하기 시작했습니다. 의식적으로 이완하려 하지 않았는데도 긴장이 스스로 풀렸습니다. 몇 주가 지나자 두통이 줄어들었습니다. 그는 깨달았습니다. 문제는 [음악] 두통 자체가 아니라 몸의 긴장을 알아차리지 못한 것이었다는 것을 말입니다.

느낌을 관찰하는 것으로 나아가 봅시다. 우리는 하루에도 수천 가지 느낌을 경험합니다. 좋은 느낌, 나쁜 느낌, 중립적인 느낌입니다. 문제는 우리가이 느낌에 자동으로 반응한다는 것입니다. 좋은 느낌이 오면 집착하고 나쁜 느낌이 오면 거부하며 중립적인 느낌은 무시합니다.이 반응이 [음악] 가래를 만들고 가래가 고통을 만듭니다. 지만 느낌을 있는 그대로 관찰하면 어떻게 될까요? 아, 지금 기쁨이라는 느낌이 일어났구나.이 느낌도 잠시 후 사라지겠지. 아, 지금 불쾌함이라는 느낌이 일어났구나.이 느낌도 영원하지 않겠지. 이렇게 관찰할 때 [음악] 느낌은 그저 느낌으로 남습니다. 우리를 지배하지 못합니다.

한 사람이 맛있는 음식을 먹고 있었습니다. 처음 한두입은 정말 맛있었습니다. 하지만 계속 먹자 그 맛이 약해졌습니다. 보통은 여기서 더 많이 먹으려 하거나 더 강한 맛을 찾습니다. 하지만 그는 알아차렸습니다. 맛있다는 느낌이 처음보다 약해졌구나. 모든 즐거움은 이렇게 변하는구나.이 이 알아차림으로 인해 그는 과식하지 않았습니다. 만족을 알았습니다. 또 다른 날 그는 불쾌한 상황에 처했습니다. 누군가 무래하게 되했습니다. 화가 치밀었습니다. 하지만 [음악] 그는 관찰했습니다. 가슴이 뜨거워지고 주먹이 쥐어지고 얼굴이 화끈거리는구나. 이것이 화라는 느낌이구나. 그렇게 관찰하자 신기한 일이 일어났습니다. 화가 점점 약해졌습니다. 화를 화로 보는 순간 화는 힘을 잃었습니다. 이것이 느낌을 관찰하는 힘입니다.

마음을 관찰하는 것은 더 깊은 차원입니다. 마음의 상태를 있는 그대로 아는 것입니다. 지금 마음이 탐욕스러운가? 그렇지 않은가? [음악] 지금 마음이 성내는가? 그렇지 않은가? 지금 마음이 어리석은 그렇지 않은가? 지금 마음이 넓은가? 좁은가? 지금 마음이 고유한가? 산란한가? 이렇게 마음을 관찰하면 마음이 얼마나 빠르게 변하는지 알 수 있습니다. 방금 전까지 평화로웠던 마음이 갑자기 불안해지고 조금 전까지 기뻤던 마음이 갑자기 우울해집니다.이 변화를 보는 것 자체가 큰 깨달음입니다. 아, 마음이란 이렇게 무상한 것이구나. 그렇다면 [음악] 내가 마음과 동일시될 필요가 있을까?

한 수행자가 명상 중에 강한 욕망을 경험했습니다. 이성에 대한 욕망이었습니다. 처음에는 그 욕망을 억누르려 했습니다. 나는 수행자인데 이런 생각을 해서는 안 돼. 하지만 억누를수록 욕망은 더 강해졌습니다. 그래서 그는 방법을 바꿨습니다. [음악] 욕망을 잇는 그대로 관찰하기 시작했습니다. [음악] 욕망이 일어났구나. 몸에서 어떤 감각이 느껴지지 마음에서 어떤 이미지가 떠오르지 판단하지 않고 거부하지 않으며 [음악] 그저 관찰했습니다. 놀랍게도 욕망이 조금씩 약해졌습니다. 그는 깨달았습니다. 욕망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욕망에 저항하거나 욕망과 동일시하는 것이 문제라는 것을 말입니다. 욕망을 그저 마음에 일어난 현상으로 볼 때 그것은 힘을 잃었습니다.

법을 관찰하는 것은 가장 깊은 통찰입니다. 법이란 진리 자연의 법칙입니다. 온, [음악] 육입처, 칠각지, 사성제 등 부처님께서 가르치신 진리를 직접 경험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온을 관찰해 봅시다. 색, 수,상, 행식입니다. 우리가 나라고 여기는 것은이 다섯 가지 무더기일 뿐입니다. [음악] 몸이라는 물질, 느낌, 인식, 의지적 반응, 의식입니다. 이것들을 하나하나 관찰하면 알 수 있습니다. 어느 것도 고정되어 있지 않고 어느 것도 나의 통제 아래 있지 않으며 어느 것도 영원하지 않습니다. 그렇다면이 중 어느 것이 진정한 나일까요?이 이 질문을 깊이 관찰하면 나라는 환상이 무너집니다.

한 철학자가 평생 자아에 대해 연구했습니다. 수많은 책을 읽고 이론을 공부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확신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선사를 찾아갔습니다. 자란 무엇입니까? 선사가 답했습니다. 지금이 순간 당신의 경험을 관찰해 보십시오. 무엇이 있습니까? 생각이 있습니다. 그 생각이 당신입니까? 아닙니다. 생각은 왔다 갑니다. 감정은 어떻습니까? 감정도 변합니다. 몸은요. 몸도 늙고 변합니다. 그렇다면 무엇이 당신입니까? 철학자는 말문이 막혔습니다. 오랜 침묵 후는 웃음을 터뜨렸습니다. 찾을 수 있는 자는 없었습니다. 다만 찾는 과정만 있을 뿐이었습니다. 그 순간 그는 [음악] 평생의 짐을 내려놓았습니다. 지켜야 할 자아, 키워야 할 자아, 증명해야 할 자아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알아차림은 점점 깊어집니다. 처음에는 큰 것들만 알아차립니다. 강한 감정, 명확한 생각, 뚜렷한 감각만 봅니다. 하지만 수행이 깊어질수록 미세한 것들도 보이기 시작합니다. 생각이 일어나기 직전에 미세한 충동을 봅니다. 감정이 형성되기 전에 작은 느낌을 봅니다. 행동하기 전에 의도를 봅니다. 이렇게 더 일찍 알아차릴수록 더 자유로워집니다. 왜냐하면 개입할 수 있는 지점이 빨라지기 때문입니다. 감정이 폭발한 후에 알아차리면 이미 늦습니다. 하지만 감정이 일어나는 순간에 알아차리면 [음악] 방향을 바꿀 수 있습니다.

한 사업가 중요한 협상을 앞두고 있었습니다. 과거 같았으면 [음악] 긴장하고 불안해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번에는 달랐습니다. 그는 며칠 전부터 자신의 마음을 관찰했습니다. 불안이 조금씩 커지고 있구나. 완벽해야 한다는 생각이 계속 [음악] 떠오르는구나. 실패에 대한 두려움이 있구나. 이렇게 관찰하니 불안의 뿌리가 보였습니다. [음악] 내가 성공해야만 가치 있는 사람이다라는 믿음이었습니다. 그 믿음을 알아차리자 그것이 단지 믿음일뿐 진실이 아님을 깨달았습니다. 협상 당일 그는 평소보다 훨씬 편안했습니다. 결과에 집착하지 않고 최선을 다할 뿐이었습니다. 역설적으로 그 평온함이 협상을 성공으로 [음악] 이끌었습니다.

알아차림은 관계를 변화시킵니다. 상대방의 말을들을 때 우리는 [음악] 보통 반응을 준비합니다. 상대가 말하는 동안 내가 할 말을 생각합니다. 하지만 알아차림이 있으면 진정으로들을 수 있습니다. [음악] 상대의 말뿐 아니라 그 말 뒤에 감정도 표현되지 않은 욕구도들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내 안에서 일어나는 반응도 알아차립니다. 아, 지금 방어적인 마음이 일어나는구나. 지금 반박하고 싶은 충동이 생기는구나. 이 알아차림이 있으면 자동으로 반응하지 않고 [음악] 현명하게 응답할 수 있습니다.

한 부부가 상담을 받으러 왔습니다. 서로를 사랑하지만 자주 싸웠습니다. 상담사는 간단한 과제를 주었습니다. 마음에 배우자가 당신을 화나게 하는 말을 할 때 즉시 반응하지 마세요. 대신 세 번 깊은 호흡을 하고 당신 안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관찰하세요. 일주일 후 그들은 돌아왔습니다. 남편이 말했습니다. 신기한 일이 일어났습니다. 아내가 평소처럼 제게 잔소리를 했을 때 저는 호흡하며 관찰했습니다. 그랬더니 [음악] 화가 나는 이유가 보였습니다. 제가 무시당했다고 느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소리 지르는 대신 말했습니다. 당신이 그렇게 말하면 나는 무시당하는 느낌이 들어. 그랬더니 아내가 미안하다고 했습니다. 아내도 말했습니다. 저도 비슷한 경험을 했어요. 남편이 제 말을 안들을 때 [음악] 저는 보통 더 크게 소리쳤어요. 하지만 이번에는 제 안을 봤어요. 제가 외로움을 느끼고 있다는 것을 알았어요. 그래서 그렇게 말했더니 [음악] 남편이 이해해졌어요. 아라차림이 그들의 관계를 구했습니다.

알아차림은 또한 자비심을 키웁니다. 자신의 고통을 명확히 볼 때 다른 사람의 고통도 [음악] 이해할 수 있습니다. 아, 내가 이렇게 힘들었구나. 다른 사람들도 비슷한 고통을 겪고 있겠구나. 이 이해가 자비로 이어집니다. 누군가 나에게 상처를 줄 때 그 사람도 고통받고 [음악] 있기 때문이라는 것을 봅니다. 상처받은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주고 그 악순환이 계속됩니다. [음악] 하지만 알아차림으로 그 고리를 끊을 수 있습니다.

한교사가 문제 학생을 담당했습니다. 그 학생은 수업을 방해하고 친구들을 괴롭히며 선생님에게 반항했습니다. 교사는 처음에 화가 났습니다. 도대체 저 아이는 왜 저럴까? 하지만 명상 수행을 하면서 그녀는 다르게 보기 시작했습니다. 저 아이도 고통받고 있구나. 저런 행동 뒤에 무슨 상처가 있을까? 그녀는 학생과 개인적으로 대화를 나눴습니다. 알고 보니 [음악] 학생의 부모님이 이혼 중이었고 학생은 깊은 불안과 분노를 겪고 있었습니다. 교사는 학생을 벌주는 대신 이해하려 했습니다. 학생의 감정을 인정해 주고 안전한 공간을 제공했습니다. 시간이 지나자 학생이 변하기 시작했습니다. 문제 행동이 줄어들고 성적도 올랐으며 친구들과도 잘 지내게 되었습니다. 무엇이 그를 변화시켰을까요? 교사의 알아차림과 자비였습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사염천은 중생을 청정하게 하고 슬픔과 비탄을 넘어서게 하며 고통과 근심을 소멸시키고 바른 길을 얻게 하며 열반을 실현하게 하는 유일한 길이다. 유일한 길이라는 표현에 주목해야 합니다. 다른 길이 없다는 뜻이 아니라 이것이 [음악] 모든 길의 핵심이라는 뜻입니다. 어떤 수행을 하든 알아차림이 없으면 진정한 변화는 일어나지 않습니다. 기도를 해도 경전을 읽어도 절을 해도 알아차림 없이 기계적으로 하면 습관일 뿐입니다. 하지만 알아차림과 함께하면 모든 행위가 수행이 됩니다. 걷는 것도 수행이 됩니다. 발이 땅에 닿는 감각을 알아차리며 걷습니다. 왼발, 오른발 천천히 주에 [음악] 깊게 걷습니다. 먹는 것도 수행이 됩니다. 음식의 색깔, 냄새, 질감, 맛을 온전히 알아차리며 먹습니다. 말하는 것도 수행이 됩니다. 말하기 전에 의도를 알아차리고 말하는 동안 목소리를

알아차리며 말한 후 영향을 알아차립니다. 이렇게 [음악] 일상의 모든 순간이 수행의 기회가 됩니다.

한주부가 설거지를 싫어했습니다. 지루하고 의미없는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수행을 배운 후 설거지를 다르게 했습니다. 물의 온도를 느끼고 거품의 촉감을 느끼며 그릇이 깨끗해지는 과정을 관찰했습니다. 손에 움직임을 알아차리고 호흡을 알아차리며 떠오르는 생각을 알아차렸습니다. 그러자 설거지가 명상이 되었습니다. 끝났을 때 그녀는 평화로웠습니다. 설거지가 바뀐 것이 아니라 그녀의 관점이 바뀐 것입니다.

알아차림의 길은 점진적입니다. 하루 아침에 완전한 깨달음에 이르지 않습니다. [음악] 하지만 매순간 작은 해방을 경험합니다. 화를 알아차릴 때마다 화에서 조금 자유로워집니다. 욕망을 알아차릴 때마다 욕망에서 조금 자유로워집니다. 두려움을 알아차릴 때마다 두려움에서 조금 자유로워집니다. 이 작은 해방들이 모여 결국 큰 변화를 만듭니다.

부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게으르지 말고 부지런히 정진하라. 알아차림을 확립하고 마음을 잘 지켜라. 이것이 나의 마지막 가르침이다. 부처님의 마지막 말씀이 알아차림에 대한 것이었다는 사실은 의미심장합니다. 모든 가르침의 정수가 여기에 있기 때문입니다.

지금이 순간 당신은 무엇을 알아차리고 있나요? 호흡이 들어오고 나가는 것을 알아차리고 있나요? 몸의 감각을 느끼고 있나요? 마음의 상태를 알고 있나요? 이 알아차림이 바로 해방의 시작입니다. 보지 않으면 우리는 계속 집배받습니다. 하지만 보기 시작하면 자유가 찾아옵니다. 마음이 가는 곳에 고통이 따랐지만 [음악] 이제 마음이 가는 곳을 알아차립니다. 그 알아차림 속에서 고통은 힘을 잃고 평화가 자리잡습니다.

이것이 부처님께서 걸으신 길이고 우리 모두가 걸을 수 있는 길입니다. 한 걸음씩, 한 호흡씩, 한 순간씩 알아차리며 걸어가는 길입니다. 이 길의 끝에는 완전한 자유, 완전한 평화, 완전한 깨달음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나무 아미타불 [음악] 관세음보살 함께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나무 아미타불 관세음보살은 지혜의 아미타불과 자비의 관세음보살께 귀의한다는 뜻입니다. 이 염성 한 마디가 마음을 밝히고 삶을 부드럽게 합니다. 댓글에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을 한번 남겨 보세요. 당신의 그 한마디가 복덕의 씨앗이 되어 바라던 일이 이루어지기를 기도드립니다.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