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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승정 신부의 TV 성서 백주간 1회_[성경이란? 1부]

cpbcTV가톨릭콘텐츠의모든것46:04

Transcription

안녕하십니까.

[음악] [박수]

저는 저희 그 청소년 그 아들이 청년 회관에서 저희들이 이렇게 그 한 활동한 어 성서에 관한 여러 가지 말씀을 저와 함께 이렇게 나누어 주셨으면 합니다. 이곳에 와서 보니까 굉장히 어떤 그 장소라든지 그것이 뭐 일반 본당에서 할 때보다는 강의 듣기 좀 좋은 환경인 것 같아요. 그렇죠? 네. 그래서 어 여러분들에게도 다행인 것 같고 저도 좀 편안한 마음으로 강의를 할 수 있게 돼서 다행으로 생각하고 있고 또 이렇게 저한테 강의 장소 허락해주신 관장 신부님께 좀 저희 감사한 마음을 가져야겠습니다.

이번 한 해 동안은 어 이 중에서 굉장히 그 몇몇 분들은 제가 지금까지 백주 간의 가는 백주 관에서 했던 성소 연수에 가는 강의를 여러 번 들으신 분들이 있는데, 아 근데 금년 만큼은 제가 굉장히 전체적인 틀로 좀 바꾸었으면 바꾸려고 예정한 예정하고 있습니다. 이제 실험적인 이런저런 시도들을 하려고 예정하고 있기 때문에 아 조금은 다른 그런 그 틀에서 이번 한 해 동안 연수가 될 것이라고 생각하시면 되겠고.

두 번째로는 본래 프로그램대로 따지면 은 저희들이 1학기 때는 구약성경의 관해서, 2학기 때는 신약성경의 관해서 했던 것이 맥주가 년 수에 전체적인 틀이 였었는데, 아 지금 제가 틀을 바꾸다 보니까 아마 금년에는 한 해 내내 구약성경의 그래서 만하지 않을까 생각을 합니다. 아 그러면서 여러분들이 어 조금은 더 그동안 다루지 않고 계속해서 어 연수의 시간 동안에 좀 짧게 짧게 끊어 내 끌어서 뒷부분에 못했던 것들이 있죠. 그런 것들을 한번 한 번은 다 훑어 에 되지 않나 라는 생각에 어 전체적으로 시간적으로 좀 길어지지 않을까. 작년에 한 해 동안 했던 것을 금년에는 아 금년과 내년 1, 2년에 걸쳐서 하게 되지 않을까 하는 게 제 2 이상입니다.

조금은 아 바로 들으시는 분들의 입장에서는 어 한 해 동안의 다 끝나고 단락을 지어 지어 드리면 더 좋을 텐데 어 제가 이렇게 뭔가를 자유 요약하는 기술이 좀 부족한 것 같아요. 그래서 거기에 대해서 미리 양해 말씀을 좀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예. 저희들이 계속해서 다루게 될 그 기본적인 주제는 어 성경 또는 성서라는 것들의 성경 또는 성소라는 것을 우리가 주제로 다루게 되는데, 그것을 다루는 방법은 신학적인 방법입니다. 그렇죠? 제가 여러분들에게 예 앞으로 이제 소개를 해드리고 아 저는 이렇게 텍스트를 읽기 있습니다 라는 그런 텍스트의 이해 관한 그런 문제들은 어 신학적인 면에서 우리가 그 같은 텍스트 에 접근하는 것. 하나님의 말씀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는 것이냐 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신학이라는 것은 뭐 하는 학문일까요? 예를 들어 사회학이라는 것은 뭐 하는 학문입니까? 사회 관해서 연구하는 학문입니다. 교육학이라는 것은 교육원에서. 경제학은 경제 에 관해서. 신신 하던 신의 관해서. 하느님의 관해서 연구하는 겁니다. 그런데 좀 문제가 있습니다. 어떤 문제가 있느냐 그러면 하나님에 관해서 과연 그 하느님이 연구 대상이 될 수가 있느냐 라는 게 문제겠죠. 그렇죠? 여기서 항문 안 되는 건지 지성적으로 접근한다는 것인데. 그런 지성적인 접근의 하나의 대상이 될 수 있겠느냐 라는 면에서 모든 신학자들은 약간 출범 후 출발 전부터 조금 기우뚱 거리게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에 관해서 우리가 지성적으로 접근하는 것. 그것이 과연 옳은 일일까 아니면 그것이 과연 올바른 일일까 부터 생각을 해보죠.

아 제가 개인적인 저의 체험을 통해서 말씀드린다면 저는 신학 공부를 시작을 하면서 굉장히 후회했습니다. 작품으로 시작하면서 어떤 문제가 저한테 생겼냐 하면 그 전에는 굉장히 단순하게 어린이 같은 마음으로 하느님의 그래서 믿기가 쉬웠는데. 그렇죠? 어 어머 하나님은 이런 분야 저런 분야 적었던 채용을 가지고 하나님의 관해서 굉장히 단순하게 생각했었고 믿기가 쉬웠는데 신학 공부를 하면서 제 신앙이 강해졌을까 약해졌을까? 너무너무 그렇게 말씀하시면 제가 섭섭하겠죠. 아 아 예.

신학 공부를 하면 저는 굉장히 제 신학이 튼튼해질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라 항문 안 되는 겁니까? 좀 의심하는 겁니다. 정말 그럴까? 의식이 성적을 한번 판단해 보자. 그저 뭔가 좀 심하는 겁니다. 그래서 신학 공부를 하면서 신앙의 오히려 조금 흔들리는 그런 어떤 체험이 저한테 있었어요. 그리고 그것은 여러분들도 이제 신학적으로 텍스트 한번 읽어보자 라는 저의 의도와 함께 이제 리 계신다면 제가 아는 제가 드리는 단위의 말씀이 여러분들의 신앙을 조금 흔들어 놓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 저 저랑 같이 이제 일 년의 시간 이르기를 보내시면서 여러분들이 전에 랑은 좀 다르게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여러분들이 신앙이 흔들릴 수 있는 위험이 있으니까 더 열심히 기도하셔야 됩니다. 그렇죠? 그렇죠?

제가 신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칠 때도 여러분들이 정말 신학을 공부하기를 원하고 어떤 신학자 물소의 어 어떤 신학교에서 성장하는 것을 원한다면 어떻게 열심히 공부해야 됩니다. 그렇지 않으면 여러분의 신앙을 이룰 수도 있습니다 라는 말씀을 드립니다. 따라서 여러분도 성서 백주간 하시면서 는 정말 어떤 결심한 기도 생활과 함께 저희 이런 연수 또 백주간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이해하는 그런 시간을 갖지 않는다면 이것은 오히려 시작하지 않은 것보다 못할 수도 있다 라는 것을 생각을 하시고 또 집에서 성소를 읽으실 때는 꼭 제가 여러분들에게 나누어 드린 그와 같은 기도로 시작하고 기도로 끝내 지지 않아도 좋으니까. 그렇죠? 성서를 읽기 전에 항상 좀 기도하는 마음으로 제가 하느님 말씀을 이제 어 읽고 하나님 하나님을 만나고 싶습니다. 어떤 기도와 함께 성서를 그 읽기 시작하시고 또 성 설 글을 다 읽으시고 난 후에는 그저 일정한 분량을 어 읽으시고 난 후에는 정말 각 하나님 말씀에 대한 어떤 감사의 것 같은 기도 기니까 기도로 성서의 독서를 시작하시고 기도로 마무리 하는 그런 어떤 습관을 가지시면 참 좋겠다.

그리고 또 두 번째로 아 제가 여러분에게 꼭 가르쳐 드리고 싶은 어느 나누고 싶은 말씀은 집안에 가능하다면 어 성서를 읽는 일정한 공간을 가지셨으면 좋겠다. 그저 어느 자리는 내가 하나님 말씀을 있는 자리에 그렇게 일정한 공간에 성소 책을 놓으시고 거기서 일정한 시간에 조금씩 이렇게 많이 읽으실 필요는 없더라도 그냥 이렇게 그 성서를 읽으시는 그런 습관을 가지시면 좋겠다 라는 말씀을 꼭 드리고 싶습니다.

예. 그리고 또 어 그 성서를 읽으실 때는 어떻게 있는 게 좋을까요? 속으로 있는 게 좋을까요? 소리 내서 읽는 게 좋을까요? 예 맞습니다. 그렇죠? 하나님의 말씀을 항상 선포되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그 어 토마스 아퀴나스 송인도 항상 성경을 독서 할 때는 소리 그 누가 나한테 읽어줄 사람이 없으면 은 자신이라도 소리를 내서 읽고 자신의 귀가 그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서 경청해야 된다라는 그와 같은 말씀을 했습니다. 그래서 어 크 소리 내서 일진을 않으시더라도 자기 귀에 들릴 정도로 소리를 내서 독서 하시는 것이 교회의 어떤 정 전통적인 성경 독서의 방법 이라는 것에 대해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예. 따라서 시나 이제 하나님에 관해서 좀 논리적으로 생각해 보자. 그리고 하나님에 관해서 우리들이 조금은 더 약간은 좀 그것이 옳고 그러니 따지면서 한번 텍스트를 읽어 보자 라는 것이 요즘 현대 성서 신학에서 성경을 읽어 가는 하나의 방법이고 또 저도 그런 면에서 여러분들과 함께 접근을 하겠습니다. 그렇죠? 왜냐 저는 아직 그와 같은 방법을 통해서 우리가 텍스트를 이해했을 때 하느님 말씀으로서 의 성소의 말씀을 이해하는 데도 도움이 되지 않을까 라는 희망과 함께 제가 성소 신학을 하고 있는 겁니다. 근데 그런데 다음 주쯤 되가지고 생각해보니까 도움이 안 되겠다 싶으면 은 다음 강의는 이제 없겠습니다. 아 다 끝나는 겁니다. 자 하지만 아직까지는 그런 희망을 갖고 있습니다.

그러면 에서 성서 신학이 갖고 있는 큰 주제는 성서 내지는 성경이라는 한 권의 책입니다. 그렇죠? 제가 어디 가서 강의를 하든지 첫 번째 질문은 그렇다면 성경 또는 성서는 어떤 책이지요? 여러분에게 누가 물어봅니다. 어 내가 성당 다니고 싶은데 천주교 신자가 되고 되고 싶은데 거기가면 성경 또는 성소가 있다고 하는데 그 어떤 책이야? 그럼 뭐라고 말씀하시면 어떻게 설명하십니까? 그 저 나눠드린 거 보고 예 형님 하셔요. 안되는데. 예. 하나님의 말씀을 기록한 책입니다. 그렇죠? 누가 기록했을까요? 사람이 이렇게 있겠지요. 그래서 근데 사람이라고 얘기하면 폼이 안 나니까 성사가 또는 성소 기자라는 표현을 씁니다. 성서 기자가 적은 하나님의 말씀. 그 성서 기자가 하나님의 말씀을 어떻게 알아들었을까요? 아 맞습니다. 대단히 훌륭하십니다. 그렇죠? 영감을 통해서. 성령의 영감 또는 감도라키 말로는 esb 라디오라고 합니다. 여러분들 왜 영화에서도 스피릿이라는 말은 즉 인간이 어떤 영혼 정신에 관한 얘기지요. 벌써 인간의 정신에 뭔가를 불어넣어 줬다 라는 것이 이것이 성경 또는 성서에 대한 교과서적인 정의입니다. 성령의 영감 또는 감도를 받아 성사가 또는 성소 기자들이 적은 하나님의 말씀을 모은 책. 비 성소에 대한 기본적인 정의입니다.

여기서 영감을 받았다. 성령의 감도를 받았다는 이와 같은 그 하나의 진술은 상당히 중대한 의미를 갖습니다. 그것은 없던 우리들이 갖고 있는 일종의 상상을 그게 아니다라고 우리에게 얘기해 주는 겁니다. 그렇죠? 성령의 영감을 받아 감도를 받아. 그럼 거기 공통적으로 감이라는 한자가 어가 쓰이지요. 어떤 뜻입니까? 우리 말을 바꾸면 믿는다는 뜻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이 인간에게 주신 것은 뭐 하는 겁니까? 그 느낌은 주셨다는 겁니다. 그전에 민간의 쉬운 느낌입니다. 따라서 뭐를 부정합니까? 우리 1 우리가 흔히 그런 어 상상을 우리가 해볼 수 있어요. 성경 말씀은 하나님이 누군가에게 인간의 적힌 적었는데 불러주고 인간이 받아쓰기 한 거 아니냐? 아니라는 겁니다. 그렇죠? 하나님이 인간에게 주신 것은 단지 느낌이라는 겁니다. 지금 그 느낌을 인간은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을 가지고 자신의 언어로 그 느낌을 받아 적은 겁니다. 그런데 인간이 그것을 언어로 바꿀 때 인간의 언어 내지는 그 언어가 형성되는 사회 문화 역사적인 재앙이 있겠죠. 그 역사적인 제안으로 부터 성사가 되는 자유로울까요? 아니면 그 제안 안에 있을까요? 제안 안에 있는 겁니다. 그 제한 안에 있는 겁니다.

그래서 성경 안에서는 그런 성사가 들이 갖고 있는 역사적인 제한, 사회적인 제안들이 있고 그것을 뛰어넘어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이 있습니다. 그것을 우리가 생각하지 않고 그것을 그 입자 그대로만 우리가 생각을 한다면은. 그렇죠? 글자 그대로만 받아들인다면 오늘날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는 2011년 오늘의 사람들은 돼지고기 먹는 겁니다. 그 맛있는 삼겹살. 그 성경이 먹으라고 되어 있습니까? 못 먹으라고도 있습니다. 그렇죠? 우리가 하느님께 하느님을 만나는 시간이 그 구약 성경에 따르면은 토요일입니까? 일요일입니까? 토요일이 되는 거 안식일이 되는 거죠? 뭐 그것을 아직까지도 조금은 보익 그 고수하는 뭐 안식교라는 뭐한 그런 그리스도의 1 어 그 뭐라 그럴까요? 개신교의 1 뭐 부류가 있는 것처럼. 그렇죠? 어떤 한쪽을 그쵸 들어서 구약성경 안에서도 그런 신학적인 그 갈등이 생기는데 지금. 그렇죠? 그것은 하나님 말씀 내에 무슨 이라기 보다는 하나님의 말씀을 알아들은 사람들이 그것을 해석하면서 자기들의 갖고 있는 역사적. 그 송사가 들이 갖고 있는 역사적 사회적 문화적 한계 안에서 그것을 보고 있는 겁니다.

즉 대표에게 문제 중에 하나가 어 여성에 관한 이해 문제인데요. 그렇죠? 창세기 2장에서 하나님께서 여성을 창조하실 때 어떻게 창조하셨다 그럽니까? 남자의 갈비뼈에서. 그렇죠? 며칠 전에 제가 그 얘기를 들었는데. 그래서 여자가 특별하다라는 그저 여성은 남자는 그냥 흙으로 만들었고 여성은 뭐 본차이나 아 어 아. 근데 사실은 그 이야기가 이야기가 생성된 역사적 사회적 배경은 뭘까? 여성은 중요시하는 문 할까요? 아니면 여성은 약간은 좀 좀 아래로 보는 그런 시대적인 상황을 전제로 하겠습니까? 요즘 아래로 보는 겁니다. 그래서 여자는 남자에게서 나왔다라는 식으로 여성을 좀 다르고는 문화가 거기에 있는 겁니다. 따라서 창세기 1장에서는 그와 같은 것을 좀 교정합니다. 그래서 창세기 1장에 보면 은 들어가지 않아도 좋을 문장이 들어가 있습니다. 어떤 문장이냐? 그렇게 해서 하나님께서 인간을 만드셨는데 처음부터 남자와 여자로 만드셨다 라는 것이 일종의 나옵니다. 왜 그 구절이 들어갔을까요? 창세기 1장을 적은 그 저자는 이 장의 이야기를 알고 있는 겁니다. 미리. 그리고 거기에 대해서 신학적으로 아냐 그건 잘못 보고 있는 거야. 하느님께서 세상을 만드실 때 인간을 만드셨는데 본래부터 남자와 여자로 만드셨다 지. 남자를 만들고 거기서 남자의 어떤 갈비뼈에서 여자를 맞는 것은 안해야 라는 것은 교정하는 신학적인 하나의 수정. 그 컬렉션의 문제가 거기 담겨 있는 겁니다. 그렇죠? 구약성경 안에서도 따라서 그 어떤 신학이 점점 점점 발전하고 있습니다.

즉 구약성경의 아주 옛날에 신학은 오히려 다신적인 그런 문화를 갖고 있습니다. 여러분들 어 요 끼 같은 거 보면 1장에 어떤 얘기가 나오냐 하면은 하늘나라에서 하나님이 잔치를 벌이는데 그 신들이 아들들이 그 잔치에 갑니다. 그리고 사탄도 같이 갑니다. 우리는 헷갈리지요. 우리 알고 있는 거고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어 둘이 시간에 배웠는데 신의 아들들이 건 도대체 누구야? 지금 이걸 어떻게 된 걸까요? 본래의 구약성경의 사람들이 갖고 있었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갖고 있었던 확. 주 원시적인 신관은 다신적인 신관이 있는 겁니다. 그렇죠? 그것이 나중에 이제 역사적인 과정에 의해서 차우 차로 설명 드리겠지만 은 일신적인 사상으로 넘어 오긴 합니다만 아주 고대의 사상이 그렇죠? 그 성소 안에 부분적으로 계속해서 남아있는 흔적 들어옵니다. 창세기 그 첫 부분에서도 보면은 어 저기 신들의 아들과 사람의 딸들이 혼인하는 그런 장면이 나오죠. 그죠? 여러분들 공부하면서 어떻게 그 부분을 해석했습니까? 그런 거 물어보면 안 되나 보다. 그리고 그 냐 그쵸 어휘로 폐 의심하지 말고 믿어라 그랬으니까 뭐 이건 무슨 소린지 모르지만 그런 믿음 안 되나 물어보면 안 되나 보다. 사실 그런 건 많이 있습니다. 저도 아 제 방에 가면은 그 루트가 있는데 노트에 제목이 내가 하늘나라에 가서 물어볼 것들. 아 이해가 길 좀 제가 어떻게 다 알겠어요. 거죠? 그러니까 공부 해 봤지만 도저히 이해가 안 되는 것들. 또 뭐 하나님의 뜻이라고. 예. 지금 일본에서 그런 무서운 일이 일어났는지. 그렇죠? 뭐 어 그게 정말 뭐 하나님의 벗 하느님의 버리고. 저 그런 생각은 우리 하지 말아야겠습니다. 그렇죠? 정말 하나님께서 우리 주위에 그런 것을 어 그런 어떤 엄청난 그런 그것이 있다면 우리는 과연 하나님의 자녀로서 그리스도인으로서 어떻게 생각해야 하는지. 거기에 대해서 우리가 마음을 갖는 것. 그게 더 중요한 일이겠습니다. 그렇죠?

구약 성경에서도 뭐 어떤 사람이 태어나는 오면서부터 소경 이었는데 사람들이 그를 데리고 와 가지고 그렇게 물어보죠. 굉장히 어떻게 보면 좋지 않은 질문입니다. 이 사람이 태어날 때부터 소경인 것은 자기 잘못도 때문입니까? 아니면 이 사람 부모 아니면 선조들의 잘못 때문입니까? 그 예수님이 뭐 그렇게 텍스트에서 위치 서 있진 않지만 은 고객이 이렇게 힘드시면 서 어 이건 누구의 잘못 때문에 그런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이 사람을 통해서 드러내려는 것이다 라는 말씀을 하십니다. 그렇죠? 누가 뭐가 잘못되면 누구의 식 때문인가 라고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어떻게 자신의 영광을 드러내지. 나 그쵸? 그 우리가 정말 그런 그 이웃나라에 일어난 불행을 보면서 어떻게 그 안에서 우리들이 함께 도우면서 도움으로써. 그쵸? 우리가 우리 모두가 하나님 아래서 한 형제라는 것을 정말 어 우리가 피부로 체험할 수 있게 살 만해서 정말 우리가 그 하나님의 말씀을 살아있는 말씀으로 느낄 수 있을 것인가. 우리 그리스인들의 고민은 바로 그거예요 될겁니다. 아 이건 이 빗나갔습니다.

창세기의 저자는 따라서 아 모든 성소의 저자는 따라서 자신이 갖고 있는 사회적, 시대적, 문화적 한계 안에서 하나님께서 그에게 주신 그 느낌을 텍스트로 바꾸어 냅니다. 글로 쓴 되는 겁니다. 즉 인간은 언제 그렇습니까? 뭐 첫째 먹고 살기 위해서 또는 둘째 여러분들 언제 글을 쓰셨습니까? 뭐 누군가 누군가에게 내 마음을 전해야 할 때. 그렇죠? 뭐 여기 있는 분들 다 점잖게 앉아 있겠지만 그래도 한번쯤 뭐 그렇게 누가 만나는데 정말 마음에 들 때 내 마음을 전하기 위해서. 그죠? 이렇게 그럴 수 없던 편지를 썼던 그런 기억들이 있으실 겁니다. 그렇죠? 인간이 뭔가 전해야 될 게 있을 때 아 하나님께서 나에게 이런 느낌을 주셨는데 이걸 내가 세상과 나누어야 되겠구나. 자신의 부르심을 이해한 성사가 들이 그것을 글로 바꿉니다. 그렇죠? 그리고 글로써만 충분하지 않을 때 내가 글 쓰는 것만으로도 내가 전하고 싶은 것이 다 전해지지 않을 때 그 다음에 인간은 어떻게 합니까? 그때 인간은 그냥 그런 쓰는 게 아니라 시를 쓰기 시작합니다. 아 그쵸? 예 시를 씁니다. 그러니까 글만 가지고는 표현할 내 맘을 다 담아낼 수 없을 때 오히려 축약된 그 안에서 내 마음을 담아내기 위해서 시를 씁니다. 그리고 그 시 만으로도 충분하지 않을 때 그 때는 어떻게 합니까? 소설을 씁니다. 아 노래를 합니다. 해서요. 뭐 좀 소설을 쓸 수도 있겠지. 아 이런 거 기단 멜로디를 붙입니다. 즉 우리가 하느님과 함께 이야기를 나누는 방법도 그 거 같아요. 우리가 하나님께 기도를 하는데 첫째는 첫 번째는 말로 다가 그게 안 되니까 그 다음에 시로 하다가 그게 안 되니까 나중에 물로 하는 겁니까? 노래로 하는 겁니다. 그러자. 그죠? 그래서 여러분들이 왜 그 가장 좋은 기도는 성가 달하는 라고 얘기하는 것이 바로 그겁니다. 이제 뭔가 이것만 그런 담아낼 수 없을 때 인간이 표현할 수 있는 마지막은 아마 노래인 것 같아요.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지금까지도 어떤 음악 뭐 이런 것들이 인간이 살 인간 사회의 문화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것이 바로 그것이 아닌가 그런 생각을 해봅니다. 성경도 비슷합니다. 그쵸? 첫 부분에는 그런 창세기부터 그런 것들을 쭉 이야기로 나오다가 나중에 집 뒷부분으로 가면은 그저 시편이 나옵니다. 그리고 시편을 우리는 그냥 읽는 것이 아니라 이제 우리 전래 안에서는 노래로 어떤 기도의 형태로 그것은 이제 그것이 우리의 마음을 어떻게 담아낼 것인가 하는 것들은 정말 많은 예술가들 또 창작하는 사람들의 그런 어떤 그 창조적인 힘이 그 안에 자리 잡고 있는 것 같습니다. 예.

그런 역사적 사회적 문화적 한계뿐만 아니라 또 지식적인 한계도 있는 것 같습니다. 예를 들어 창세기를 쓰면서 창세기 의 저자가 하나님으로 같은 받은 느낌은 이거였을 겁니다. 이 세상의 다른 신이 아니라 그저 다신적인 신관을 갖고 있었으니까 다신적인 신관을 극복하기 위해서 나온 것이 이제 창세기입니다. 첫차로 좀 짝 좀 더 자세한 설명을 드리겠습니다. 그런데 이상의 다른 신이 아니라 쓴엘이라는 이름의 신이든지 라라는 이름의 신이라든지 투투라는 이름의 신이라든지 이런 신이 아니라 이 세상을 창조한 것은 너희를 이집트에서부터 해방시키고 너희에게 사십 년 동안 광야에서 너희와 함께 있었고 너희를 약속의 땅으로 들여보낸 야외 내가 바로 세상을 창조한 그 신야 라는 느낌을 누구인가 중 겁니다. 그 창세기의 저자는 그 느낌을 아 단지 이스라엘의 하나님인 줄 알았던 우리를 해방시켜 주신 그 하느님인 줄만 알았던 그 1 그 신 야외가 알고 보니까 세상을 창조한 신이었구나 라는 놀라움에 그 경탄에 가득차서 이제 창세기 1장 1절을 쓰는 겁니다. 그렇죠? 어떻게 시작합니다? 한 처음에 하느님께서 하늘과 땅을 창조하셨다 라고 시작합니다.

근데 저는 만약 그와 같은 느낌이 2011년을 살고 있는 저에게 왔다면 은 저는 그렇게 쓰지 않았을 겁니다. 저는 신학교의 가기 전에 대학교 대학에서 자연과학을 공부 했었습니다. 그러니까 자연과학에 관한 주식 지식이 좀 있겠지요. 그러니까 저는 어떻겠습니까? 한 처음에 하느님께서 빅뱅을 일으켰다 아 라고 썼을 겁니다. 그리곤 진심입니다. 그죠? 왜냐 오늘날 현대 가기 시작한 생각하고 있는 세상 창조는 세상의 가창 첫 번째 사건은 아마도 빅뱅이었을 것이다 라는 가설이 많은 사람들에게 인정이 되고 있으니까. 오입니다. 물론 많은 사람에게 인정되고 있고 제가 그 사실을 알고 있으니까 저는 그 빅뱅 일어났다는 과학적인 사실. 하지만 그 사건의 진정한 주체는 누구냐? 바로 우리 하느님이다 라는 이야기로 써 제 창세기를 시작했을 겁니다. 하지만 지금부터 3000년 4000년 전 하느님 창조의 이야기를 써야만 했던 그 창세기 의 저자는 오늘날 우리들이 알고 있는 그런 코스 홀로 지라든지 아니면 천체를 천체의 어 그예 관한 그런 학문들이라든지 뭐 그런 먹이 그 천체 물리학이라든지 이런 것들에 대한 지식이 있었습니까? 그런 좀머 없었습니다. 따라서 그렇게 쓰지 못했습니다. 그가 할 수 있었던 가장 좋은 방법은 뭐였을까요? 그가 알고 있었던 세상 창조의 이야기가 여러 가지가 있었을 겁니다. 그렇죠? 그와 같은 이야기를 이제 누구를 주체로 써내려 가는 겁니까? 그와 같은 각각이 독립된 이야기. 세상의 창조에 관한 이야기를 이제는 그 모든 이야기를 야외 하느님의 이야기로 바꾸어서 편지 펴내는 겁니다.

그러므로 창세기 1장에 나오는 창조 이야기, 창세기 2장 4절 이후에 나오는 창조 이야기, 아니 왼쪽에 나오는 노아의 홍수에 이야기, 아니면 마지막에 나오는 바빌론 내에 있는 바벨탑의 관한 그와 같은 이야기들은 본래는 다 독립적으로 이 있었던 세상에 기원에 관한 이야기였을 겁니다. 그쵸? 그런데 그와 같은 이야기들이 결과 같은 이야기들을 이제 창세기의 저자는 하나의 이야기로 묶어 내는 겁니다. 자세히 읽어보면 그 안에 조금은 모순이 있다 할지라도. 그죠? 창세기 1장에서 인간을 창조 해 놓고 2장에서 또 만듭니다. 그렇죠? 그리고 더 웃긴 건 뭡니까? 그 카인과 아벨이 나중에 태어났는데 카인이 아벨을 죽이지 않아요. 그리고 해서 카인이 뭘 두려워합니까? 다른 사람들이 나를 헐어 어떻게 하지 않을까? 근데 다른 사람들은 어디가 어디서 나온 겁니까? 고 이상하죠. 그렇죠? 뭐 거인족도 얘기도 나오고 뭐 신들이 야 어 아내들 이야기로 나누어 그런 것들. 나중에 노아의 홍수 가면 어떤 얘기가 나옵니까? 처음에는 모든 동물들을 한 쌍씩 집어넣으라고 했다가 나중에는 뭐 어떤 거라 7쌍, 어떤 것은 뭐 그렇죠? 뭐 이렇게 정결한 동물들 그렇지 못한 동물들 뭐 그런 것들도 구분합니다. 2 지금 이런 말이 쉽지 번을 하는 거. 그렇죠? 굉장히 애매합니다. 그렇죠? 그와 같은 것들은 같은 이야기들이 하나의 전승으로 있었던 것이 아니라 여러 가지 이야기들이 있었고 창세기 저자는 어떻게 한 겁니까? 그 그 모든 이야기들을 하나로 합하는 데 자신의 최선을 다해서 합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의 독자들이 읽기에는 일관성이 없는 겁니다. 그리고 그건 참 다행입니다. 라. 왜냐 그렇게 이야기들이 일관성이 없으니까 오늘의 사람들이 그것을 읽으면서 아 이게 본래 하나의 이야기가 아니었고 여러 사람들의 손을 거쳐서 이렇게 거쳐온 이야기 미역의 때 마 라는 걸 알 수 있는 증거가 되는 겁니다. 즉 편집자들이 전체를 그냥 매끈하게 잘 고쳐 때면 오늘나 저희 게 될 저희들은 별로 할 말이 없는 겁니다. 그렇죠? 제가 밥 먹고 살 방법이 없는 겁니다. 예. 예.

따라서 성소 성경이라는 말에서 제 우리가 관심을 가져야 될 말이 있다면 인습 2라디오. 이것은 하나님의 영감을 받아 인간이 쓴 거 쓴 글이다. 따라서 성경 성서는 하느님과 인간의 공동 작품이라는 겁니다. 하나님은 인간에게 인스파이웨어. 하나님은 인간에게 영감을 주었고 그 영감을 받은 인간은 자신의 언어로 그것을 바꾸어 썼는데 하필이면 우리 나라 사람을 골라 쓰면 좋았을 텐데 히브리 사람을 고르는 겁니다. 근데 그것도 다행인 것 같아요. 그렇죠? 하느님이 우리나라 사람에게 그 그런 걸 줘서 3000년 전에 줬다면 그게 지금 기록으로 잘 안 남아 있을 것 같아요. 히브리 사람들은 거기로 그 국제 굳게 지켜온 거잖아요. 그쵸? 우리는 예거 잘 묻힌 못 지키는 것 같아요. 멀쩡한 문도 막 불타고 이러는 거 보면. 그렇죠? 그래서 아무튼 전해진 것은 참 우리에게 다양한 일이 아닌가 그런 그 생각이 듭니다. 어떻지 우리 사람들에게 주셨다는 겁니다. 그래서 우리가 어 있는 그 구약성경은 거의 뭐 95% 이상 제가 어떤 부분에 이제 알아 메어 어떤 부분은 그리스도로 전해집니다 만 대부분은 다 히브리 말로 전해집니다. 들어서 그런 성경을 공부하는 전문가들은 그 히브리 말의 텍스트를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에 속도 접근을 해서 그 말을 우리말로 어떻게 바꿀 것인가 라는 건데 그게 참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래서 4 강의를 진행하면서 여러분들에게 제가 자주 그런 말씀을 드릴 거예요. 성경의 서는 이렇게 우리말 성경에서는 지금 이렇게 번역을 했지만 이런 뜻으로 읽을 수도 있습니다. 그저 한 문장을 우리가 번역할 수 있는 가능성이 여러 가지가 있잖아요. 이런 뜻으로 읽을 수도 있습니다 라는 제 제안에 말씀도 이제 자주 드리게 될 텐데 중요한 건 그렇다고 해서 지금 성경이 잘못된 번역이라고 말씀드린 건 절대로 아닙니다. 조 지금 성경도 훌륭한 번역인데 이런 다른 번역의 가능성도 있습니다 라는 말씀을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예. 따라서 교과서적인 정의 다시 한번만 반복하겠습니다. 성경은 또 성서는 성령의 감도 또는 영감을 받아 성사가 또는 성서 기자가 적은 하나님의 말씀을 모은 책. 이렇게 약간 신학적인 그 설명을 하도록 합시다. 그렇다면 문자 그대로 한번 돌아가 봅시다. 성경 또는 성소에서 성 이라는 말이 겹치지요. 성이라는 것은 어떤 뜻입니까? 거룩하다는 뜻입니다. 영어로는 홀리라고 우리가 얘기합니다. 예. 거룩하다는 것. 그렇다면 어떤 뜻일까요? 즉 이상하게 우리는 자주 쓰는 말인데. 그저 모두 다 알고 있다고 생각했 1 물어보면 은 그게 안 되는 것 되죠. 대한민국에서 가장 일반적인 방법인 4지선다형으로. 아 거룩하다. 크다. 작다. 높다. 낮다. 다 알고 있잖아요. 봐요. 아 높다는 뜻입니다. 높은데 어느 정도로 높으면 될까요? 63빌딩 정도 높은 거룩한 일까요? 제가 한 날 이거 1, 2, 3 주 전에 두바이 라는 곳에 갔다 왔어요. 자랑을 좀 해야죠. 2번 했는데 거기에 전 세계에서 제일 높은 빌딩 있어요. 128장짜리. 이제 제가 그 꼭대기 올라갔습니다. 엘리베이터 타고 10초 밖에 안 걸리더라고요. 예. 2 우선 감탄하실 필요가 없습니다. 아무튼 그래서 꼭대기에 올라갔는데 그 정도 올라가면 거룩한 겁니까? 그러면은 백두산 만큼 높은 거룩한 겁니까? 아 어느 정도 높아야 에 거룩한 겁니까?

맞습니다. 어느 정도 높아야 되냐면 기본적으로 인간이 갖고 있는 오늘날 천주 디오 교리적인 측면도 마찬가지입니다. 그죠? 교회가 각 여러분들의 가르치는 것도 역시 마찬가지고 근본적으로 우리가 갖고 있는 세계 상의 문제인데. 일종의 세계관입니다. 세상에 하나만 있는 것이 아니라 세상이 두 개가 있다는 겁니다. 하나는 우리가 살고 있는 지상의 있고 그리고 하나님이 살고 힘들이 살고 있는 얘도 옛날에 다신적인 신관으로 하자면 은 천상이 있다는 겁니다. 그럼 거룩한 되는 것은 어디에 속했다는 뜻입니까? 천상의 좋겠다 는 뜻입니다. 즉 거룩한 건 천상의 속한 겁니다. 비록 지상에는 있지만 하늘 나라에 속해 되는 겁니다. 그렇죠?

어떤 게 있습니까? 거룩한 거. 지상에 있지만 하늘나라에 있는 것. 예를 들어 성자 들어가는 건 거의 다 그렇습니다. 성체, 성혈, 성령. 뭐 성부, 성자, 성신. 속 그 그 성부, 성자, 성령은 뭐 지장이 있는 건 있는 존재는 아니죠. 그죠? 큰 힘은 천상의 계실 테니까. 아무튼 그런 걸 포함해서 성당 거룩함 니까? 거룩함 니다. 축성되었읍니다. 그죠? 검색어 라디오. 성당은 싸 크라 그 축성된 장소입니다. 주님이 아서 축성을 합니다. 그쵸? 어느 정도를 거룩한 야. 성당의 개념은 이 지상에 건설된 하나님 나라라는 뜻입니다. 여러분들 어 옛날에 지어진 외국 성당에 가보면 은 성당의 들어가자마자 성인들 상이 있습니다. 그 성인들 상이 입구 쪽을 바라보고 있겠습니까? 아니면 정면을 바라 볼까요? 입구 쪽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이상하게도. 어떤 뜻입니까? 누군가가 성당에 들어가면 천국의 미리 와있던 그 성인들이 우리를 맞이하는 겁니다. 이거 왔구나. 그래서 그리고 좀 더 가운데 가면 천사들이 있고 아주 중앙에 가면은 성 3의 내지는 성 가정의 모습을 우리가 성당의 중심에서 만날 수 있게 됩니다. 그래서 이곳은 들어서 따라서 제가 옛날에 신학의 공부하기 전에는 저는 그런 생각을 했었어요. 야 성당 서우 신 의 그 비싼 땅의 공간을 마련해 놓고 거의 쓰지를 않잖아요. 이건 잘못된 거 아닌가. 그리고 미사 드릴 때는 미사 들이 들이도 평소에는 뭐 주민들을 위해서 강연도 하고 어 의자 이렇게 놓고서 무슨 뭐 어 할머니들을 위해서 잔치를 좀 하고 그런 공간으로 이렇게 써야 되는 거 아니냐 생각을 저도 했었습니다. 그런데 요즘은 생각이 좀 바뀌었어요. 아니라 성당은 거룩한 곳이니까 그곳에서는 거룩한 1만 일어나야 하는 겁니다. 즉 떨어져 그 거룩한 곳에 들어갈 때는 우리 어떻게 들어갑니까? 우리도 거룩한 존재로써 그 안에 만들어 갈 수 있게 되게 들어가는 것이 합당하다고 생각해서 뭐 큰 죄가 있을 때는 고백 성사를 하고 작은 죄가 있을 때는 성수 예제를 하면서. 그죠? 그런 어떤 그 깨끗해진 모습으로 그곳에 있기를 바라는 겁니다. 그렇죠?

반대로 그와 같은 성당에서 만 성스러운 일들이 일어날 수 있습니다. 옛날 교회 법으로는 어 성당 아닌 곳에서는 미사를 하는 것이 가능하지 않았습니다. 요즘은 뭐 4 목적인 여러 가지 목적에 의해서 구형 미사를 하기도 하고 뭐 다른 그런 그 전례들이 성당 밖에서도 이런 합니다만 옛날에는 축성된 장소 이외에서 그 성사 적인 행위가 일어나서는 안 된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좀 성당 굉장히 중요합니다. 이 성당에서 혹시라도 이 성당의 성스러움을 훼손할 수 있는 일이 일어난다면 끔 어떻게 될까요? 그 성당은 더 이상 성당이 아닙니다. 성스러움이 뭐 예를 들어 그런 끔찍한 일을 일어나면 되겠죠. 예를 들어 성당에서 살인 사건이 일어났다. 그 미사 못합니다. 주교님이 와서 다시 축성해야 합니다. 예. 성당 중 특별한 장소입니다.

또는 성직자 그는 거룩한 일까요? 것 하고 나나씨 지금 옷 예. 도지 믿으실 수 없겠지만 아 거룩함 니다. 저와 같은 사제들 저기 앉아 계신 수 힘들은 성별된 존재입니다. 하느님이 거룩하게 따로 띄워 놓으신 존재입니다. 따라서 저희는 지장을 살아가지만 어디에 좋게 되는 겁니까? 천상에 좋게 되는 겁니다. 천상을 살아가듯이 저희들이 하루를 살아야 되는 겁니다. 그런데 천상에서는 예수님이 뭐라 그랬습니까? 천국에서 결혼하는 일이 있다고 있습니까? 아니죠. 천국에서는 모두 형제 자매로 살아간다고 했습니다. 그쵸? 여기는 진만이 그 어 좀 이렇게 그 연세 드신 분들이 래서 반응이 없는데 제가 청년들의 했어 청년들한테 강의 하다가 이야기라면 청년들이 데 굉장히 실망합니다. 굉장히 실험 호이. 그안 정말로 그런 거 없는 거예요. 어 이렇게 청년들을 아직 뭐 그런 그 가정이 라든지 뭐 이런 것들에 대한 어 그 꿈이 있는 거죠. 그렇다고 여러분들이 없다는 뜻은 아닙니다. 아 다우트 예. 그러니까 저희들이 혼자 살아가는 겁니다. 어떤 뜻입니까? 이 지상에 있어 이렇게 살지만 천상 이라면 이렇게 살 거야 라는 것을 그런 하나의 그 표지 로써 몇몇 사람들을 부르신 겁니다. 따라서 하느님의 뜻이 여기 있는 우리 모두가 다 사제가 되고 모두가 다 수도자가 되는 게 하느님의 뜻일까요? 아닙니다. 그건 하나님의 부르심이 아닙니다. 저는 죄악의 있는 수 염증 님들은 그와 같은 천상의 희망을 지상에서부터 꺼지지 않게 보존해라고 그런 부르심을 불렀고 여러분들에게 는 성 과정을 꿈이라는 그 부르심 들이 여러분들의 그쵸 여러분들 우리는 또 다른 의미에서 에 거룩함이 로써의 부르심입니다. 여러분들도 저도 그 부르심에 올바로 응답하지 못하는 거죠. 그렇죠? 예. 여러분들이 성 과정을 이루셨습니다 까? 축하 드립니다. 예. 저는 정말 아 정말 내가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의 뜻에 올바로 사는 그런 사재인가 라는 질문을 할 때마다 정말 2년 가슴을 치게 되는 것 같아요. 즉 저 조직에 있는 그 수임 조도 마저 비슷한 그 상황인 것 같습니다. 이제 저희 그 여러분들께 역시 마찬가지 하나님은 우리를 거룩한 가져보는 거룩한 직무 거룩한 삶으로 부르시는데. 그죠? 나중에 이제 오경을 하면서 말씀드리겠지만 레이 위에 중심 신학 중의 하나인 검 하나입니다.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거룩하신 것처럼 너희도 거룩해야 된다. 그쵸? 하나님이 거룩하신 것처럼 너희도 거룩한 백성으로 불렸다 라는 것이 어 그 성경의 구약성경부터 신약성경에 등장하는 아주 중요한 신학인데 우리들이 계속해서 그런 그 그런 하나님의 부르심에 정말 잘 응답하고 있나 우리들이 계속된 숙제인 것 같습니다. 파우더 선거 루카 되는 것의 의미입니다.

여러분들이 많이 하시고 있는 그 일반적인 신자들의 실수 중의 하나가 일반적인 세속적인 것을 그렇게 하늘나라에 라레 속한 것으로 교회가 9분해 낼 때 그것을 축성한다 그러거든요. 신자 분들이 그와 같은 것을 약간 좀 아 혼돈 하시는 것 같아요. 그래서 어떤 분이 저한테 와서 그렇게 얘기하면 심히 제가 집을 새로 산 했는데 저희 집을 축성 해주십시오. 제가 기분이 좋아지겠죠. 그 지금 축성 하면 그 다음에 그 집은 성당이 되는 겁니다. 그렇죠? 4. 또는 5. 10님. 제가 뭐 자동차를 새로 했는데 지금 차 축성 해주십시오. 축성된 그 자동차는 앞으로 거룩한 목적을 위해서만 성장 차가 된다는 의미가 아니라 즉 거룩한 목적을 위해서만 쓰여져야 됩니다. 그쪽은 따로 띄워진 거니까. 그저 떨어져 그것은 어 정확한 의미에서 의 표현은 아니겠습니다. 그때 표현은 권세 깔았어요. 축성한다는 말을 쓰지 않고 베넷 있으시오. 축복한다는 말을 씁니다. 하느님께서 그 복을 좀 하느님의 축복을 좀비로 주십시오 라는 그와 같은 의미입니다. 여러분들이 쓰는 그 성물 들도 물론 어 거룩한 목적을 위해서 당연히 쓰여 지겠지만 성물들의 경우에는 축복이라는 말을 쓰는 것이 좋습니다. 옛날에 이제 방사라는 말을 썼는데 요즘에 교회의 통일된 용으로 의료 축복이라는 것이 더 알맞은 영화인 것 같습니다. 축복해 주십시오 라고 쓰시는 것이 좋습니다.

성경 성서는 서재에 축복을 받을 필요가 있을까요? 없습니다. 성경은 성서는 그 자체로 거룩함 니다. 즉 여러분들이 집에서 성서를 필사 했다면 그건 거룩한 일까요? 거룩함 니다. 거룩함 니다. 무슨 일기를 쓰다가 어떻게 하다가 성경말씀을 하나를 썼다면 어떻게 될까요? 적어도 그 말씀이 있는 그 부분은 거룩함 니다. 그렇죠? 클라죠. 아 거룩한 거. 이제 앞으로 함부로 못 버리는 거예요. 그렇죠? 하지만 그건 그 자체는 거룩함 니다. 그래서 예루살렘에 있는 그 히브리 유니버스 티가 면은 거의 까지는 아니더라도 그 카피 하는데 복사하는데 가면 그 복사 종이를 버리는 그 휴지통이 잘못 복사된 것을 버려 휴지통이 두 개가 있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직접 본 건 아닌데. 근데 그 그 위에 뭐라고 했냐면 혹시 여러분들이 버리는 그 잘못 복사된 그 종이에 하느님의 이름이 거기에 있으면 그것은 별도로 버려 주십시오. 자 마치 뭐 성물 2 여러분들이 쓰다가 버려야 될 때가 되면 그냥 쓰레기통에 버리지 마시고 사무실로 갔다 주십시오 라고 본향 신부들이 요청하는 것 처럼 그와 같은 그 그 광고가 그 히브리 유니버시티 그 도서관에는 붙어 있다고 합니다. 예. 성경 성서 에서 거룩함에 그와 같은 의미입니다. 그렇다면 성서를 얘기했을 때 그 서

라는 것의 의미는 뭘까요? 책입니다. 성서를 책이라고 영어로는 뭐라 그러죠? 성격. 성서를 부를 때 바이블이라고 부릅니다. 바이블이라는 말은 그리스 말에서 나왔습니다. 그리스 말 디블로스라는 말에서 나왔습니다. 그렇죠?

여러분들이 뭐 저 고 대학까지 하실 필요는 없겠지만 비블로스라는 말에 아 약간 좀 축약된 형태로 비불리온, 그 다음에 그것의 복수형으로 비블리아 놓았다가 나중에 라이브리라는 말까지 오게 되는데 이것은 지나치게 고대 11 관련된 이야기 때문에 자세한 설명에 말씀드리지 않겠고, 그냥 우리가 알아야 될 것은 비블로스라는 말에서 바이블이라는 말 이 나왔다.

비블로스라는 말은 본래 어떤 뜻이었을까요?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말입니다. 종이가 나오기 전에 쓰였던 겁니다. 맞습니다. 라틴 말에는 파파이럴수, 피울수라는 말을 쓰는데 그 본래 그리스 말은 비블로스입니다. 부가 이제 키로 더 강하게 간 거죠. 그렇죠?

네, 물론 고대 그 헬레니즘 그 시기에 한 도시의 이름이기도 했습니다만, 이것은 파피로스의 일종의 그 식물의 이름입니다. 그 식물을 좀 쪽입니다. 그 갈대 같은 건데 대롱 같은 거죠. 그쪽에서 펼쳐 가지고 가로로 주었고, 그 다음엔 반대쪽에는 세로로 어 이게 초 세로로 쭉 였고 반대편에는 가로로 묶어 가지고 그 붙이니까 그것들이 서로 떨어지지 않는 거죠.

그래서 1면을 쓰는데 옛날에 쓰였던 카피를 수 종이의 크기는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A4G보다 쪼끔 더 큽니다. 1라인에는 12글자 정도가 개념. 고대에는 소문자 쓰지 않았습니다. 대문자로만 썼기 때문에 12글자 정도가 한 라인에 들어갔다 들어갔을 것이고, 전체적으로는 한숨을 해서 이 줄 정도가 들어가는 것이 파피루스 일반적인 형태입니다. 그렇게 많은 글자를 쓸 수는 없었습니다.

그리고 한 줄의 높이는 여러분 영어에서 인치라는 단위를 쓰시죠? 그게 행간의 그 행의 높이의 본래의 기준칩니다. 12.54cm 정도. 그 정도의 높이 내 크게 한 줄의 높이입니다. 그 그 씨가 비교적 큰 글씨로 대문자를 뭐 12글자 정도 쓰고 24줄 정도 서는 그 정도의 그 틀인데, 나중에는 이제 조금 더 빽빽하게 쓰게 되고 어 조금씩 이가 넘어가면서는 심지어 어떤 일이 일어나냐면 파피루스 1장 값이 이라든지 아니면 그런 그 필기하는 데 있어서 굉장히 어 돈이 많이 들어가게 되니까 어떤 일을 하게 되냐면 그것을 빨아서 쓰기도 합니다. 빨아 가지고 새로 쓰기도 합니다.

근데 요즘에 성서를 아니면 그 고대 문화를 연구하는 사람들이 정말 관심이 있는 것은 빨아서 쓴 나중에 문원일까요? 아니면 빨아서 지워진 고 걸까요? 예, 지워진 게 그게 옛날 거니까 요즘 사람들은 그런 걸 찾아냅니다. 그래서 콜로그래피라는 그런 일종의 뭐 엑스레이 같은 방법을 통해서 지워진 것을 또 억지로 찾아내는데, 심지어 어떤 것은 두 번 방법도 있어요. 그거를 또 열심히 추적하는 그런 어떤 수소 약자들이 하는 그와 같은 연구들도 있습니다.

예, 바이브 비블로스라는 말에서 나왔는데 따라서 그와 같은 것들은 책이라는 의미로 번역된 게 좋겠다.

아, 으. 땅. 하나님께서는 그 땅을 약속 거죠. 땅. 정말로 중요한 테마입니다. 그 역시 이용해서 구약성경에서 땅이라는 문학적 표상은 항상 생명 우림이 언어. 땅이 있기에 생명이 있다라는 것. 종말이 시작되는 곳이 어디냐? 예루살렘인데 시작되자마자 무덤을 열고 바로 나오더라구요. 좋은 스타트를 끊는 거죠.

뭐지 은행에 나오는 이유 퍼 굉장합니다. 우리가 생각하기 참호 어려운 것들을 얘기 합니다. 예를 들어 너희들이 한번 밭에 나가서 추수를 하거든 한번 쓸고 지나갔으면 두 번은 하지 마라. 그것은 가난한 사람들의 몫이다. 이런 얘기를 합니다. 그리고 그 추수를 한테 소외 1의 이런 거 채우지 마라. 걔들도 먹을 권리가 있다. 우리나라 헌법에 그런 거 있습니까? 동물들도 먹을 권리가 있다. 먹 0권 얻고 그런 것에 대해서 얘기 합니까? 1 놀랍습니다.

[박수]

[음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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