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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누구나 위로 향해 예의를 갖춥니다. 하지만 그 예의가 아래로 향하는 순간 이야기는 달라집니다. 나는 평생 동안 수많은 사람을 지켜보았습니다. 높은 자리에 오르면 누구나 고개를 숙이는 법을 배웁니다. 그러나 아랫 사람 앞에서 존댓 말을 쓰는이는 의외로 드니다. 그리고 이상하게도 나는 그들 중 많은 이들이 내 마음을 불편하게 했습니다. 왜일까요?
겉으로는 공손합니다. 그러나 그 말투 속에는 미묘한 거리감이 숨어 있습니다. 마치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세운 투명한 벽과도 같습니다. 그 벽은 신뢰가 아닌 계산에서 비롯됩니다. 진심이 아닌 형식으로 포장된 존댓말은 칼날처럼 차갑습니다. 나는 그것을 일찍히 간파했습니다.
1950년대 내가 작은 사업을 막 시작했을 때의 일입니다. 공장에서 일하던 젊은 직원들이 따물려 내 어깨를 주물러 주었습니다. 나는 늘 그들에게 고맙다고 했습니다. 그것은 존된 말이 아니었습니다. 단순한 마음의 인사였습니다. "수고했다. 덕분에 살겠다." 이 몇 마디가 그들에게는 힘이 되었고 나에게는 신뢰의 씨앗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며 회사를 키워갈수록 나는 다른 장면을 보았습니다. 윗사람에게는 굽실되면서 아랫 사람에게는 냉담한 관리자들. 겉으로는 예이발은 존댓 말을 쓰지만 그 말 끝에는 조롱과 무시가 담겨 있었습니다. 그들의 말은 부드럽지만 행동은 차갑고 마음은 공허했습니다. 나는 그 순간 확신했습니다. 겸손은 입술이 아니라 태도에서 시작된다. 진짜 존댓말은 언어의 형식이 아니라 마음의 표현입니다.
계산된 존댓말은 위험합니다. 그 사람은 타인을 대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유익을 지키려는 것뿐입니다. 기업은 사람의 순결로 움직입니다. 위로는 충성, 아래로는 멸시. 이런 조직은 오래 가지 못합니다. 나는 믿었습니다. 사람을 움직이는 힘은 돈이나 지위가 아니라 진심, 어린 존중이라고.
나는 한 번은 이런 장면을 보았습니다. 어느 중간 관리자가 내 앞에서 하소연을 했습니다. "회장님, 제 직원들은 아무것도 할 줄 모릅니다. 도무지 믿을 수가 없습니다. 제발 사람을 바꿔 주십시오." 나는 그때 차분하게 대답했습니다. "무능한 직원은 없다. 다만 사람을 쓰지 못하는 관리자가 있을 뿐이다."
이 말은 단순한 꾸질함이 아니라 내 철학의 핵심이었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저마다의 재능을 지니고 있습니다. 어떤이는 빠르게 계산을 잘하고 어떤이는 묵묵히 손발을 맞추며 또 어떤이는 불필요한 갈등을 막는 따뜻한 마음을 가졌습니다. 문제는 그 재능을 발견하지 못하는 리더입니다. 겉으로는 존댓 말을 쓰며 직원들을 대하지만 속으로는 무시하는 관리자. 그런이는 결국 조직을 병들게 합니다. 말은 공손하지만 눈빛은 차갑고 명령은 부드럽지만 책임은 남에게 미룹니다. 나는 이런 사람을 볼 때마다 위험하다고 느꼈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의 예인은 가짜이기 때문입니다.
내가 강조한 것은 거칠례가 아니었습니다. 사람의 가치를 직급으로 가음하지 말라는 것이었습니다. 그 가치를 인정하고 자리에 맞게 세워 주어야 비로소 조직이 살아납니다. 된말 한마디가 진심을 담을 때는 사람의 마음을 열지만 계산만 담을 때는 조직의 뿌리를 썩게 합니다.
내 경험은 일을 수없이 증명했습니다. 공장 바닥에서 묵묵히 일하던 한 직원은 작은 기회를 주었을 때 누구보다 빛났습니다. 그는 나중에 해외 사업을 책임지는 인재가 되었습니다. 만약 그의 소박한 성실함을 하찮다고 무시했다면 우리 회사는 결코 국제 시장에 나아가지 못했을 겁니다. 진정한 리더십은 위에 고개 숙이는 기술이 아니라 아래 사람을 어떻게 존중하느냐 판가음 납니다. 말의 논낮지가 아니라 마음의 깊이가 조직의 운명을 결정합니다. 나는 평생 그 믿음을 버린 적이 없습니다.
내가 자주 강조한 것은 겸손이었습니다. 겸손은 약함이 아니라 힘의 또 다른 얼굴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것을 자주 오해야 합니다. 높은 자리에 오르면 마치 배운 것 다 끝났다는 듯이 행동합니다. 더 이상들을 필요가 없고 배울 필요가 없다고 착각합니다. 나는 이런 자들을 많이 보았습니다. 젊었을 때는 소박하고 배우려는 자세가 가득했지만 승진하면서 말투가 점점 거칠러지고 귀는 다치고 눈은 교만해졌습니다. "당신의 아이디어는 시대에 뒤떨어졌어. 당신은 절대 해낼 수 없어." 이런 말을 아무렇지 않게 던지던 관리자를 기억합니다. 그는 결국 겸손을 잃었고 배움을 멈추었으며 그 끝은 몰락이었습니다. 한 때는 유능하다고 불렸지만 결정적인 순간 잘못된 선택을 했고 회사를 떠나야 했습니다. 나는 그에게 마지막으로 이렇게 말했습니다. "겸손을 잃으면 배움을 멈춘다. 배움을 멈추면 결국 가진 것도 잃는다." 이것은 단순한 충고가 아니라 내가 살아오면서 뼈저리게 확인한 법칙이었습니다.
성공은 재능만으로 오지 않습니다. 성공은 당신이 주변 사람을 대하는 방식에서도 비롯됩니다. 어떤이는 아랫 사람에게 존댓 말을 쓰며 나는 공손하다고 자부합니다. 하지만 그 말은 공허합니다. 진심없이 흘려보내는 존댓말은 누구의 마음도 움직이지 못합니다. 오히려 아랫 사람을 멀어지게 만들고 신뢰를 아삭아갑니다.
기업을 키운다는 것은 기술이나 자본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그것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를 어떻게 세우느냐의 문제입니다. 신뢰가 쌓이지 않으면 그 어떤 화려한 전략도 모래 위에 세운 성과 같습니다. 나는 믿습니다. 겸손은 사람을 배우게 하고 배움은 회사를 성장시키며 성장은 결국 함께 가는 길에서 나온다는 것을.
나는 늘 이렇게 말하곤 했다. "조직은 사람을 통해 숨쉬고 사람을 통해 무너진다." 1960년대 회사가 조금씩 덩치를 키워가던 시절이었다. 나는 현장에서 수많은 직원을 만났다. 어떤 직원은 말이 화려했지만 약속을 쉽게 어기고 또 어떤이는 낡은 신발을 신으면서도 항상 깨끗하게 손질해 나왔다. 말이 크고 번지르려한 사람보다 묵묵히 자신을 관리하는 사람이 훨씬 믿음직스러웠다.
나는 사람의 눈빛을 자주 살폈다. 미소는 지어도 눈동자는 차갑게 식어 있는 사람. 겉으로는 공손한 척 존된 말을 하면서도 속으로는 자기 이익만 계산하는 사람을 많이 보았다. 그들의 특징은 분명했다. 윗사람 앞에서는 깍드이 존댓 말을 쓰지만 아랫 사람 앞에서는 마음을 닫아버린다. 이들이야말로 위험한 인물이었다. 리더라면 조직의 순결를 살려야 한다. 그런데 이런 사람들은 조직의 혈관을 막아 버린다. 위에는 굽실거리면서 아래에는 차갑게 군다. 이 이중적인 태도는 언젠가 반드시 조직을 병들게 만든다.
그때 나는 깨달았다. 존댓말은 단순히 공손해 보이려는 형식이 아니라 사람의 마음을 여는 도구여야 한다는 것을. 나는 직원들에게 말투를 바꾸라고 강요하지 않았다. 다만 강조했다. "네가 하는 존댓말 속에 진심이 있느냐?" 진심없는 존댓말은 위험하다. 그것은 상대를 존중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방패일 뿐이다. 기업은 숫자가 아니라 사람이 키운다. 한 사람을 진심으로 대할 줄 모르는이는 백사람을 이끌 자격이 없다.
나는 늘 신입사원 앞에서조차 존중을 잃지 않으려 했다. 왜냐하면 그들의 눈빛 속에서 회사의 미래가 자라나고 있었기 때문이다. 내가 자주 했던 말이 있다. "거칠의 예의는 오래 가지 않는다. 하지만 진심은 세대를 이어간다." 존댓말은 형식일 수 있다. 그러나 진심을 담았을 때 그것은 겸손이 되고 겸손은 곧 배움의 뿌리가 된다. 나는 그 믿음을 평생 놓지 않았다.
1970년대 우리 회사는 처음으로 국제시장에 진출했다. 그때 나는 기술이나 자본보다 더 중요한 것을 확인했다. 바로 사람을 대하는 태도였다. 해외 바이어와 협상할 때 그들은 서류보다도 우리의 말투와 태도를 더 주의 깊게 보았다. 진심이 담긴 존중은 언어와 문화를 초월에 전해졌다. 반대로 얕은 존댓말과 공허한 미소는 금세 들통이 났다.
나는 내부적으로도 같은 원칙을 강조했다. "상대를 고객으로만 대하지 말고 한 인간으로 존중하라." 단순히 거래를 성사시키는 것이 아니라 신뢰를 쌓아야 한다는 뜻이었다. 신뢰가 있어야 다음 거래가 생기고 그다음이 이어진다. 회사의 성장은 결국 이런 관계의 연속 위에 세워진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일부 관리자들은 여전히 윗사람에게만 예의를 차리고 아랫 사람에게는 무심했다. 그들은 존댓말을 무기로 삼아 효율성을 해친다고 주장했다. "쓸데없는 존댓말은 시간 낭비입니다. 지시만 명확히 하면 됩니다." 이렇게 말하는 이들도 있었다. 그러나 나는 단어의 반대했다. "효율은 관계에서 나온다. 단 한 사람의 마음을 얻지 못하면서 어떻게 백 사람의 열정을 이끌 수 있겠는가?"
나는 직원들에게 직접 말을 건냈다. "고생 많았다. 네가 있어 다행이다." 이 간단한 한 마디가 현장의 분위기를 바꾸었다. 불만은 줄고 자발적인 제한이 늘었다. 사람들은 자신이 존중받는다고 느낄 때 더 큰 책임감을 갖게 된다. 존댓말은 형식적인 언어가 아니라 사람을 움직이는 힘이었다.
내가 본 위험은 이중적인 태도였다. 겉으로는 부드러운 존댓말을 쓰면서 속으로는 멸시하는 관리자. 그들은 조직의 독이었다. 나는 늘 경계했다. 존중은 약함이 아니라 강함이다. 진심어린 존댓말은 기업 문화를 살리고 공허한 존댓말은 기업을 무너뜨린다. 그래서 나는 말한다. "말은 영혼의 거울이다. 당신이 아랫 사람에게 건내는 말 한마디가 바로 당신의 품격이다."
나는 늘 사람을 관찰했다. 어떤이는 낡은 신발을 신고 다니면서도 그것을 늘 깨끗하게 닦아두었다. 또 어떤이는 폐의 자리에서 아무도 부탁하지 않았는데도 자발적으로 팬을 꺼내 메모하며 동료의 의견에 진심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의 말은 화려하지 않았지만 듣는 이의 마음을 울렸다. 나는 그런 순간마다 느꼈다. 겸손과 성실은 언제나 눈에 드러난다.
반대로 나는 교만이 서서히 스며드는 모습을 수도 없이 보았다. 직급이 오르자 말투가 달라지고 목소리가 커지며 존댓 말이 사라졌다. 그들의 언어에는 어느새 경멸과 불신이 담겼다. "너는 못해. 네 생각은 낡았어." 이런 말을 던지는 순간 그 사람은 이미 배움을 버린 것이었다. 겸손은 단순한 미덕이 아니다. 그것은 배움의 문이다. 겸손을 잃은 순간 배움은 멈추고 배움이 멈추면 결국 성장도 멈춘다. 나는 그것을 숱하게 목격했다. 회사가 어려운 고비를 맞을 때마다 겸손한 자는 끝까지 배우고 살아남았지만 교만한 자는 결국 스스로의 무게에 짓눌려 무너졌다.
나는 직원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존댓 말은 형식이 아니다. 그것은 네가 상대를 어떻게 바라보는가의 표현이다. 진심 없는 존댓 말은 위험하다. 하지만 진심을 담은 존댓 말은 사람을 살린다. 그것은 단순히 말에 높낮나지가 아니라 마음에 깊이다."
1970년대 해외 진출을 준비하던 시절에도 나는 같은 원칙을 강조했다. 새로운 시장 낯선 문화 앞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기술도 자본도 아닌 신뢰였다. 그리고 그 신뢰는 존중에서 시작된다. 상대를 하나의 인간으로 대하는 순간 언어의 장벽은 허물어졌다. 진심 어린 존댓말은 국경조차 뛰어넘는 다리가 되었다. 나는 확신한다. 성공은 재능에서 절반 나오고 나머지 절반은 사람을 대하는 방식에서 나온다. 그리고 그 핵심에 존댓 말이 있다.
1980년대 삼성은 세계 시장으로 본격적으로 뻗어나갔다. 그무렵 나는 젊은 직원들에게 자주 강조했다. "존댓 말은 남을 위한 것이 아니라 너 자신을 위한 것이다." 사람들은 종종 존된 말을 상대를 높여 주기 위한 형식증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내가 보기에 존된 말은 마음을 다스리는 훈련이었고 결국 자기 자신을 완성하는 길이었다. 왜 그럴까? 존댓말은 하인을 존중하는 동시에 자신의 언어를 절제하게 만든다. 절제 속에서 배움이 자라나고 배움은 곧 성장으로 이어진다. 성장한 사람만이 남을 이끌 수 있다. 존댓 말은 약점의 표시가 아니라 강자의 무기였다.
나는이 단순한 진리를 직원들이 몸으로 느끼길 바랐다. 실제로 나는 수십년간 직원을 지켜보며 확인했다. 초반에는 다소 답답해 보일 수 있어도 꾸준히 존댓 말을 중시한 직원들은 시간이 흐르며 중요한 책임을 맡게 되었다. 신뢰가 눈덩이처럼 쌓였기 때문이다. 반면 아랫 사람에게는 함부로 대하면서 윗사람에게만 깍듯이 공손한 사람은 결국 신뢰를 잃고 외로워졌다. 겉보기에는 강한 듯했지만 끝내 고립되어 무너졌다. 나는 늘 말했다. "성공은 혼자의 힘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수많은 계단이 쌓여야 오를 수 있는 법이다." 그 계단 하나하나가 바로 타인을 존중하는 말과 행동이었다. 존댓 말은 그 계단을 단단하게 만드는 못이었다. 그것을 소홀리 하면 사다리는 금세 무너진다.
오늘날 많은 이들이 효율과 속도를 핑계삼아 예의를 잊는다. 그러나 진짜 효율은 사람을 먹는 신뢰에서 나온다. 신뢰는 존중 위에 세워지고 존중은 언어 속에서 드러난다. 그렇기에 존댓말은 단순한 형식이 아니라 성공의 구조를 지탱하는 보이지 않는 기둥이었다. 나는 직원들에게 마지막으로 이렇게 당부했다. "말을 아꼈어라. 그 한 마디가네 품격이고네 미래다."
나는 늘 이렇게 생각했다. "사람을 존중하지 않는 조직은 오래 갈 수 없다." 회사의 성장은 기술이나 자본의 문제가 아니라 결국 사람과 사람 사이의 신뢰가 얼마나 단단한가에 달려 있었다. 나는 수많은 관리자를 지켜보았다. 어떤이는 아랫 사람에게 단 한 번도 고맙다라는 말을 하지 않았다. 늘 자신이 대접받을 자격이 있다고 믿었고 실패했을 때는 책임을 부하 직원에게 전가했다. 다른 사람의 성공은 가볍게 치부하며 운이 좋았다 고만 말했다. 겉으로는 깍듯이 존된 말을 하면서도 속으로는 멸시와 의심이 가득했다. 나는 그런 태도를 위험하다고 했다. 왜냐면 그것은 결국 조직을 안에서부터 썩게 만들기 때문이다.
반대로 진심으로 사람을 대하는 이들도 있었다. 젊은 직원의 작은 도움에도 "수고 많았다. 내 덕분이다"라고 말하는 관리자. 회의에서 신입의 의견을 끝까지 경청하는 상사. 그런 태도가 바로 회사를 움직이는 힘이었다. 그 한마디 존댓 말 속에는 사람을 살리는 힘이 숨어 있었다.
나는 한 번은 직원들에게 물었다. "네가 누군가에게 존댓 말을 쓰는 이유는 무엇인가? 상대를 높여 주기 위해서인가? 아니면 너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서인가?" 그 질문은 모두를 침묵하게 했다. 사실 많은 이들이 존댓 말을 방패처럼 사용하고 있었다. 그러나 내가 강조한 것은 달랐다. 존댓말은 상대를 높이려는 것이 아니라 나 자신을 단단하게 만드는 수련이라는 것이다.
회사가 국제 시장으로 뻗어나가던 시절에도 나는 같은 원칙을 반복했다. 문화가 다르고 언어가 달라도 진심어린 존중은 통한다. 그 존중을 표현하는 가장 기본적인 도구가 바로 말이었다. 단순한 예의 같지만 그것이 쌓여 신뢰가 되었고 신뢰는 곧 성과로 이어졌다. 나는 오늘도 후배들에게 말하고 싶다. "말은 너의 인격이다. 아랫 사람에게 던진 말이 결국네 미래를 결정한다."
나는 인생을 오래 살아오며 하나의 역설를 배웠다. 겸손은 약해 보이지만 결국 가장 강한 힘이 된다. 반대로 교만은 처음에는 강해 보이지만 끝내 스스로를 무너뜨린다. 처음 회사를 일으킬 때 나는 하루하루가 겁비였다. 자금은 부족했고 기술도 외국 기업들에 비하면 보잘 것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회사를 지탱한 것은 사람들의 믿음이었다. 젊은 직원들이 힘든 상황에서도 내 곁을 떠나지 않았던 이유는 내가 그들을 진심으로 대했기 때문이다. 나는 늘 작은 일에도 감사를 패했고 그들의 노력을 당연하게 여기지 않았다. 그 존중이 쌓여 회사에 버틴목이 되었다.
하지만 나는 정 반대의 모습을 한 관리자도 수없이 보았다. 겉으로는 존댓말을 쓰면서 속으로는 상대를 얕잡아 보는 사람. 그는 부하직원의 충성을 얻을 수 없었다. 아무도 진심으로 따르지 않았고 결국 혼자가 되었다. 그의 몰락은 시간이 해결했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며 확신했다. 존중 없는 말은 오래 갈 수 없다는 것을.
1980년대 글로벌 시장에서 수많은 협상을 하면서도 나는 같은 원칙을 지켰다. 기술과 제품은 복제될 수 있었지만 신뢰는 결코 쉽게 얻을 수 없었다. 신뢰를 쌓는 첫걸음은 늘 존중이었다. 그리고 존중은 언어 속에서 드러났다. 상대국의 언어를 제대로 발음하려 애쓰는 태도, 작은 약속이라도 반드시 지키는 자세. 그리고 아랫 사람에게도 변함 없는 존댓말. 그것이 회사를 움직이는 힘이자 나의 신념이었다. 나는 오늘날 젊은 세대에게도 같은 말을 전하고 싶다. "겸손은 너를 작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크게 세운다. 존댓 말은 약점이 아니라 무기다. 인생의 무게는 결국 인간관계에서 결정된다. 아랫 사람을 대하는 태도 하나가 너의 운명을 바꾼다."
나는 사람들에게 자주 말했다. "성공은 네가 무엇을 아는가가 아니라 네가 사람을 어떻게 대하는가에 달려 있다." 천구를 지식은 시간이 지나면 낡고 기술은 세상에 의해 대체된다. 그러나 인간관계에서 쌓인 신뢰와 존중은 시간이 흘러도 사라지지 않는다. 그것은 오히려 시간이 지날수록 더 단단해진다.
1970년대 내가 회사를 키우며 수많은 위기를 맞이했을 때 나를 지탱해 준 것은 거대한 자본도 아니었고 혁신적인 기술도 아니었다. 함께 고생을 나는 동료들의 눈빛과 신뢰였다. 그들은 내가 아랫 사람이라 불리된 시절부터 늘 존중과 감사를 잊지 않았음을 기억했다. 그 기억이 위기의 순간에도 회사를 지켰다. 존된 말은 단순한 형식이 아니라 그 신뢰를 쌓아올린 벽돌이었다.
나는 부하 직원들에게 항상 말했다. "네가 누군가에게 존된 말을 하는 순간 너는 스스로를 낮추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를 치우는 것이다. 사람은 자신보다 낮은 위치에 있는 이들을 대하는 태도로 평가받는다. 진짜 인격은 그곳에서 드러난다. 윗사람에게 예의 바른 것은 쉽다. 그러나 아랫 사람에게 진심으로 공선하기란 쉽지 않다. 그 어려움을 실천하는 사람이야말로 리더가 될 자격이 있다." 나는 수많은 관리자가이 진리를 놓치고 몰락하는 것을 보았다. 계산적인 존댓말, 위선적인 겸손은 오래 가지 않았다. 결국 그들의 언어는 사람들의 마음에 닿지 못했고 조직은 갈라졌다. 반대로 진심어린 존중을 실천한 이들은 시간이 갈수록 더 많은 사람을 끌어들였다. 그들의 곁에는 늘 사람이 모였고 그 모임이 곧 힘이 되었다.
오늘날 나는 후배들에게 이렇게 말하고 싶다. "네가 하는 말이네 인생의 사다리다. 그 사다리를 튼튼히 쌓아 올려라. 말은 형식이 아니라 운명이다."
나는 젊은 시절부터 하나의 습관을 지켰다. 바로 말을 아끼고. 그러나 반드시 감사할 것은 말로 표현하는 것이었다. 아무리 바빠도 직원이 도움을 주면 "고맙다. 내 덕분이다"라는 말을 입밖으로 꺼냈다. 그것은 단순한 습관이 아니라 나 스스로에게 하는 훈련이었다. 말은 영혼의 거울이었고 그 거울을 닥지 않으면 마음도 탁해지기 마련이었다.
나는 회사를 운영하며 숱한 순간을 목격했다. 어떤이는 큰 결정을 내린 뒤에도 부하 직원에게 "네 덕분이다"라는 인사를 잊지 않았다. 반대로 어떤이는 성과를 오롯이 자신의 공로로만 돌리며 다른 사람의 노고를 가볍게 무시했다. 시간이 지나자 두 사람의 운명은 극명하게 갈렸다. 전자는 신뢰와 존경을 얻어 더 큰 책임을 맡았고 후자는 결국 고립되어 자리를 잃었다. 진심어린 존된 말은 단순한 예의가 아니다. 그것은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보이지 않는 자본이다. 기술과 자본은 하루 아침에 무너질 수 있지만 존중에서 비롯된 신뢰는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그 신뢰가 위기 속에서도 회사를 지탱하는 힘이 되었다.
나는 후배들에게 늘 말했다. "말은 공기처럼 가볍지만 무게는 산보다 무겁다. 네가 던진 한마디가 사람을 살리기도 하고 무너뜨리기도 한다. 그렇기에 아랫 사람에게 건내는 존댓 말이야말로 진정한 시험이었다. 그 말 속에 진심이 담겨 있는지 아니면 계산이 숨어 있는지가 결국 그 사람의 인격을 드러냈다."
나는 늦은 나이에 깨달았다. 겸손는 약점이 아니라 가장 단단한 갑옷이다. 존댓말은 그 갑옷을 만드는 강철이었다. 꾸준히 닫고 다듬을수록 더 강해지고 더 많은 이들을 지켜줄 수 있었다. 오늘 내가 후배 세대에 남기고 싶은 말은 단 하나다. "아랫 사람에게 존댓 말을 아끼지 마라. 그것은 네가 강하다는 증거다."
나는 인생의 후반부에 들어서야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을 더 분명히 알게 되었다. 사람은 결국 자신이 쌓은 말 위에 산다. 돈으로 세운 집은 무너질 수 있고 권력으로 만든 탑은 흔들릴 수 있다. 그러나 존중과 신뢰의 말로 지은 관계는 쉽게 무너지지 않는다. 내가 회사를 키우며 수탄 위기를 맞았을 때 사람들은 내 곁을 떠나지 않았다. 왜 그랬을까? 그들은 내가 힘이 있어서가 아니라 내가 그들을 한 사람의 인간으로 되했음을 기억했기 때문이다. 나는 작은 순간에도 그들의 노력을 가볍게 여기지 않았다. 회의에서 신입의 의견이라도 끝까지 듣고 현장에서 땀을리는 이들에게 "덕분이다"라는 말을 잊지 않았다. 그 한 마디가 그들의 마음을 묶었고 위기의 순간 우리를 하나로 세웠다.
반대로 나는 다른 기업에서 정반대의 몰락을 보았다. 최고 경영자가 윗사람에게는 굽실되면서도 아랫 사람을 함부로 대했다. 그의 말은 늘 예의 바른 듯 둘렸지만 그 속은 공허였다. 결국 직원들의 마음은 떠났고 기업은 위기 앞에서 지탱할 힘을 잃었다. 나는 그때 더욱 확신했다. 존댓말은 형식이 아니라 운명을 가르는 힘이다.
나는 젊은 세대에게 이렇게 묻고 싶다. "네가 던지는 말 한 마디가 사람을 세우고 있는가? 아니면 무너뜨리고 있는가? 그 답은 곧 내 미래다." 아무리 지식이 많아도 아무리 돈이 많아도 말을 잘못 쓰면 인생은 무너진다. 반대로 지식이 부족해도 돈이 없어도 진심어린 존댓말 하나가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고 길을 열어 준다. 나는 마지막까지 믿는다. 겸손은 결코 작아지는 것이 아니며 존된 말은 결코 약함의 표시가 아니다. 그것은 가장 강력한 무기이며 동시에 가장 오래 가는 유산이다.
나는 말한다. "존댓 말은 단순히 남을 위한 것이 아니다. 그것은 너 자신의 마음을 단련하는 도구다." 많은 사람들이 예의를 형식으로만 여긴다. 그러나 나는 그것을 훈련이라 생각했다. 존댓말을 쓰는 순간 사람은 자신의 분노를 다스리고 성급함을 억누르며 언어를 고르고 또 고른다. 이 과정 속에서 마음이 정제되고 품격이 세워진다.
나는 수십년 동안 직원을 지켜보며 똑같은 패턴을 확인했다. 아랫 사람에게 존댓 말을 쓰며 진심으로 대하는이는 시간이 갈수록 신뢰를 얻었고 결국 더 큰 책임을 맡았다. 반대로 존댓 말을 형식적으로만 쓰거나 때로는 무례하게 말하며 상대를 낮추는 사람은 결국 고립되었다. 아무리 능력이 뛰어나도 인간관계의 토대가 무너지면 그 위에 쌓은 성은 무너질 수밖에 없다.
한번은 내가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존댓말은 상대를 위한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더 자신을 완성하기 위한 것이다." 이 말은 내 삶 전체에서 나온 결론이었다. 존댓말은 단순한 단어의 높낮지가 아니라 스스로를 다스리는 방식이었고 결국 그것이 나와 회사를 지탱하는 힘이 되었다. 겉으로는 강해 보여도 언어가 거칠고 존중을 모르는 사람은 오래 가지 못한다. 그들은 언젠가 반드시 무너진다. 그러나 부드러운 말, 진심 어린 존댓말을 꾸준히 실천하는 사람은 보이지 않는 뿌리를 내리고 그 뿌리가 폭풍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힘을 준다. 나는 오늘도 말한다. "말은 씨앗이다. 네가 뿌린 말이 언젠가네 앞에 열매로 돌아온다. 존댓 말은 그 씨앗 가운데 가장 튼튼한 것이며 그것을 뿌린 사람은 반드시 언젠가 풍성한 열매를 거두게 된다."
나는 늘 깨달음을 전하고 싶었다. 사람의 진짜 풍격은 아랫 사람 앞에서 드러난다. 윗사람에게 고개에 숙이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다. 그러나 힘이 약한 이들, 경험이 부족한 이들, 혹은 사회적 위치가 낮은 이들에게조차 존중을 잃지 않는 사람은 드물다. 나는 바로 그 순간에 인간의 진정한 가치를 보았다.
회사를 운영하며 나는 수많은 시험을 겪었다. 새로운 시장에 진출할 때마다 불안과 두려움이 있었지만 나를 지탱한 것은 직원들의 충성신과 신뢰였다. 그 신뢰는 하루 아침에 얻어진 것이 아니었다. 땀을리는 현장에서 내가 그들에게 던진 짧은 한 마디 "고맙다. 수고했다"라는 말이 쌓이고 쌓여 만들어진 자산이었다. 그것은 돈으로 살 수 없는 자본이었고 위기 속에서 우리를 살려낸 가장 강력한 힘이었다.
나는 경영을 하며 자주 이런 장면을 목격했다. 능력은 뛰어나지만 교만한 관리자는 결국 무너졌다. 반대로 능력이 조금 부족하더라도 겸손과 존중을 지닌이는 끝까지 살아남았다. 이것은 단순한 우연이 아니라 인생의 법칙이었다. 겸손은 배움을 낳고 배움은 성장을 낳았다. 반대로 교만은 배움을 멍치게 하고 결국 몰락을 불러왔다. 나는 후배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존댓말은 단순히 입에서 나오는 소리가 아니다. 그것은 네가 어떤 사람인지를 보여주는 증명서다. 사람들은 네가 가진 재산이나 직한보다. 네가 던진 한마디 말해네 진짜 모습을 본다. 그래서 존댓말은 너의 인격을 보여주는 가장 확실한 거울이었다."
오늘날도 나는 믿는다. 겸손은 약하지 않다. 그것은 가장 강력한 힘이다. 존댓말은 그 힘을 일상에서 드러내는 가장 쉬운 방법이었다. 작은 습관처럼 보이지만 그 습관이 운명을 갈랐다. 나는 오랜 세월 동안 사람을 지켜보며 하나의 확신을 얻었다. 인생은 결국 말로 세워지고 말로 무너진다. 권력도 돈도 명예도 시간이 지나면 사라진다. 그러나 사람의 마음속에 남은 한마디는 사라지지 않는다. 그것이 곧 인간의 운명을 만든다.
나는 후배들에게 늘 말했다. "네가 아랫 사람에게 어떻게 말하느냐가 곧 내 미래다." 많은 이들이 이 사실을 가볍게 여긴다. 하지만 나는 수십년간 이를 눈으로 보았다. 겉으로는 강한 척하며 아랫 사람에게 무리한 사람은 결국 고립되었다. 아무도 그와 함께 길을 걷고 싶어 하지 않았다. 반대로 작은 존댓말로 사람을 존중하던이는 시간이 흐를수록 더 많은 동료와 제자를 얻었다. 그것이 결국 그의 가장 큰 자산이 되었다.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존댓 말은 단순한 언어가 아니다. 그것은 마음을 다스리는 수련이며 사람과의 관계를 세우는 기둔이다. 그것은 작은 시야처럼 보이지만 세월이 지나면 거대한 나무로 자라 그늘을 드리운다. 그 나무 아래에서 사람들은 함께 쉬고 다시 힘을 얻는다. 기업을 키운다는 것은 바로 이런 숲을 만드는 일과 같았다.
나는 인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믿고 싶다. 겸손은 약함이 아니라 강함의 증거다. 존댓말은 굽힘이 아니라 품격의 표현이다. 그것을 꾸준히 실천하는 사람은 언젠가 반드시 더 큰 길을 걷게 될 것이다. 청취자여, 오늘부터 시작하라. 작은 한 마디라도 좋다. 가족에게, 동료에게, 아랫 사람에게 진심어린 존댓말을 건네보라. 21일만 실천해 보아라. 너의 관계가 변할 것이고 사람들의 눈빛이 달라질 것이다. 그리고 마침내 너 자신이 변할 것이다. 나는 이제 조용히 이렇게 말하고 싶다. "말은 너의 운명이다. 존댓 말은 내 인생을 지탱할 가장 튼튼한 계단이다. 오늘 그 계단을 놓아라. 그러면 내일 더 높은 세상이 열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