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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요즘 그 시대가 우리, 특히 젊은 분들한테 어떤 꿈, 뭐 희망 이런 거를 정말 계속 이렇게 얘기하고 사실 그런 흐름이 좀 많잖아요. 근데 저는 그런 얘기를 원래 잘하지도 못할 뿐더러, 제가 평소에 생각하는 제 생각은 뭐 말로만 그냥 응원한다, 힘내라 하는 게 무슨 캐릭터가 나와 무슨 의미가 있을까라는 그런 생각을 조금 해요. 그래서 저는 오늘 꿈, 뭐 희망 제가 이런 얘기는 여러분들한테 안 드리려고 해요. 그리고 여러분들이 들을 때 그렇게 막 따뜻하고 이런 얘기가 아닐 수도 있거든요.
제목은 제가 그렇게 지어봤어요. 냉정과 열정 사이. 학생들이 필기도 하네요. 대박이다. 이제 필기까지 해. 어, 저 필기 한다.
저는 사실 원래 한국을 대표했던 농구 선수였습니다. 제가 우리나라 그 프로농구에서 가장 꼴을 많이는 사람이에요. 한국 국적을 갖고 있는 사람 중에. 아, 아, 몰랐죠. 네. 그것도 압도적으로. 그래서 건물을 샀어요. 네. 그래서 근데 지금까지 제가 넣은 점수를 정확하게 저도 모르겠는데, 뭐 13천 몇 백점인데. 제가 프로선수 생활을 15년 했거든요. 근데 아, 15년 동안 매일 20점씩 넣으면 그렇게 돼요. 아, 말도 안 되는. 평균 20점 가까이 넣는다는 거는 그날 굉장히 뭐 칭찬받아 마땅한 점수인데, 이제 제 그 선수 생활 동안 매일 20점씩 한 거죠. 첫날부터 그만두는 날까지.
그니까 우리나라에 프로농구의 용병이 들어오면서 진짜 포지션이 어중간해진 진짜 선수들이 많았어요. 근데 그 가운데서도 지켜낸 자리는 진짜 어마어마한 거거든요. 용병들이 다 단한 거예요. 제가 아까 그랬잖아요. 압도적으로 제가 다른 선수들에 비해서 점수를 많이 넣고. 그래서 어 많은 분들이 저를 알게 됐고, 뭐 지금 방송도 할 수 있고 그렇게 됐는데. 그렇게까지 하기가 사실 쉽지 않았어요. 정말 쉽지 않았고.
농구를 내 직업으로 삼아야 되겠다라고 생각한 이후부터 제 어릴 적 꿈, 제 인생의 꿈은 오로지 한 가지였어요. 정말 압도적인, 아무도 범접할 수 없는 선수가 돼야겠다는 게 제 꿈이었어요. 선수가 돼야겠다. 그냥 1등이 아니라. 그냥 1등이 아니라 누구도 넘볼 수 없는 선수가 되고 싶다는 게 저만의 꿈이었어요. 그렇게 되기 위해서 제가 가장 노력을 열심히 하고 연습 많이 한 사람이라고 얘기 못해요. 근데 아마 다른 사람한테 없는 게 저한테 있었을까. 저는 끊임없이 제 스스로 아, 왜 그거밖에 못 했을까. 정말 냉정하게 저 자신을 평가했 선수생활 내내.
제가 선수 때 어느 날 시합에 나가서 뭐 20점 정도 했어요. 보통 20점 하면 뭐 기사에 나요. 오늘 뭐 수훈 선수 해가지고 굉장히 잘했다라고 칭찬하고. 15년 한 번도 시합이 끝나고 들어가서 거기에 만족을 해 본 적이 없었던 거 같아요. 감독 코치님이 잘했다라고 그러고 옆에서 뭐 친구들이 잘했다라고 해도 늘 가서 엄청나게 후회했어요. 아, 오늘 아까 저기서 저런 바보 같은 짓을 안 했으면 20점이 아니라 오늘 30점을 넣을 수 있고 40점을 넣을 수 있는 건데. 하, 나 왜 저거밖에 못 했을까라고 밤에 비디오를 계속 돌려보면서 늘 반성을 했어. 매 시합을 정말 나 혼자 이렇게 전쟁을 한다라는 느낌이 들 정도로 굉장히 치열하게 살았고 혼자 있는 공간에서 스스로 끊임없이 자책을 했거든. 진짜 막 30점 넣고 40점 넣은 날도 와 가지고 어, 이거밖에 못 하면 나는 앞으로 선수 생활 끝날 때까지 그냥 이러 이러다 많은 선수가 되는 게 아닐까라는 생각을 끊임없이 해왔어요. 그러고 내일 나가면 다시 오늘 한 바보 같은 짓을 하지 않겠다라고 다시 한번 생각하고.
진짜 목 디스크가 너무 심해서 수술을 하면은 경기를 쉬어야 되잖아요. 근데 쉬면 안 되니까 수술 안 하고 목 보호대라고 뛰어. 뒤로 꺾이면 그냥 선수 끝이야. 근데 수술이 없는 거야, 이 형한테는. 그래서 그걸 계속 그걸 끼고 있었구나. 그게 어떻게 상처럼. 자씨, 목이 진짜 심했어. 근데 그런 거 보면은 쫙 내서 낀 거예요. 그래서 제 농구 인생이 그렇게 막 이렇게 막 즐겁고 되게 기분 좋은 일만은 아니었어요. 너무 하루하루가 힘들어서.
TV 제가 뭐 결벽 뭐 이런 거 많이 나오잖아요. 깔끔 떨고 뭐 이런 게. 그게 다 그때 생긴 거예요. 왜 생겼냐. 내가 이렇게까지 하고 싶다면 마치 전쟁에 나가는 장수의 심정처럼 내가 내 방을 깨끗하게 정리하고 깨끗하게 씻고 구도자의 자세로 신성시 하면서 가서 오늘 시합을 해야겠다라는 일이 그렇게 생각했던 게 점점점점 커져서 이제 저한테 그 많은 징크스의 약간 결벽 뭐 이렇게 와가지고 아직도 지금 제가 그러고 있는데. 은퇴해도. 아, 거기서 나온 거구나. 모두 다 거기서 비롯된 거. 늘 같은 시간에 일어나고 같은 시간에 밥을 먹고 같은 시간에 화장실을 가고 같은 시간에 씻고 같은 옷을 입고 같은 신발을 신고 내가 가장 편한 마 그런 자세로 갔어요. 늘 그렇게라도 하고 싶어요. 간절하게.
지면 옷을 버렸어요. 다시 안 입었어요. 유니폼을. 이상한 일이지만 그렇게라도 하고 싶었어요. 또 질까 봐 겁나서. 어, 멋있어. 자유투라고 아시죠. 프리 공을 쏘기 전에 공을 한번 두 번 세 번 챙겨 들어갔어요. 지금 안 들어갈 때까지 세 번만 튕겼어요. 한번 안 들어갔어. 그러면 다른 숫자. 일곱 번 계속 쏠 때마다 일곱 번 안 들어가면 또 다른 숫자. 이게 말 같지도 않은 얘긴데 진짜 말 같지도 않은. 근데 그렇게 그렇게라도 넣고 싶었어. 그런 마음으로 했어요. 아, 저는 아무나 저렇게 못 살아. 사실 이런 완벽주의 때문에 주변인도 선수도 조금 힘들어했던 경우도 있어요. 그지.
제가 은퇴할 때 했던 얘기가 하나 있어요. 앞으로 평생 정말 평생을 후회하면서 살 것 같다라는 얘기를 했어요. 그때 예전에 제가 조금 더 몸 관리를 잘하고 조금 더 노력하고 술을 조금 덜 먹고 했다면 1,000점이 아니라 2만 점도 했을 수 있었을 텐데라는 후회가 너무 밀려와요. 그만두니까 이제 더 하고 싶어도 못 하니까. 그래서 TV 농구 중계를 제가 본다거나 이러면 아, 옛날에 진짜 막 몸 좋고 젊고 이럴 때 아, 좀 더 잘할걸. 이렇게 즐겁게 못 봐요. 은퇴를 했는데 은퇴를 한 지 벌써 이제 4년이 다 들어갔는데 그동안 저는 제가 갖고 있는 능력의 한계 안에서 최선을 다하려고 노력했지만 여러분의 큰 기대를 충족시켜 드리지 못한 거 같습니다. 죄송하게 생각합니다.
자, 남은 시간 2.9초. 78대 78 동점입니다. 자, 임재현. 정 잡니다. 서정은 돌아서면서 페이드. 서정. 서정은. 서정입니다. 했네요. 서정. 포. 아이, 참. 오늘 승부의 쐐기를 박습니다.
이렇게 말씀을 좀 드리고 싶어요. 여러분들이 모두 다 이런 생각으로 살 필요는 전혀 없어요. 사람마다 자기가 생각하는 목표나 행복이나 이런 게 기준이 다 다르잖아요. 전부 다 기준이 달라요. 그러나 자기가 어떤 일을 하든지 본인이 하는 일에서 내가 최고의 성과를 내보겠다. 내가 어떤 장인 최고가 돼 보겠다라는 분들은 제 얘기가 조금 도움이 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자기의 꿈이랑 가까이 다가가려면 자기 자신한테 한없이 냉정해져야 된다고 저는 믿어요. 제 경험을 통해서. 아무리 옆에서 누가 야, 너 정말 잘해. 야, 너 그 정도면 충분히 잘했어. 야, 파이팅, 힘내. 이거로 만족한다. 없어요. 거기를 걸어본 사람만이 할 수 있는 기스 글이라는 말 잘 아시죠. 옛날에 우리 히딩 감독님이 하셨던 계속 배가 고프고 계속 뭔가를 구해야만 더 스텝업이 된다라고 저는 생각을 해요.
샴페인을 너무 일찍 터트렸다는 말 하잖아요. 좀. 그렇죠. 샴페인 따는 건 조금 아껴놓고. 제가 오늘 제목이 냉정과 열정 사이라 그랬잖아. 여러분들이 갖고 계신 열정은 고대로. 자기 자신한테 대한 평가는 정말 냉정하고 박하게 하면 그 냉정함과 열정 사이에서 여러분들이 원하는 목표에 더 쉽게 도달할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어서 오늘 여러분들한테 주제 넘게 이런 말씀을 좀 드렸습니다. 감사합니다.
심이 터집니다. 장 선수. 뭐 그때 사실 운동 선수일 때는 서장훈 씨를 그냥 싸움 같이 약간 매너도 좀 없는 거 같고 잘하는데 왜 저럴까. 정의 안 간다 그랬는데 저렇게 치열한 삶인 줄을 몰랐어요. 나는 인생 살면서 제일 열심히 살았던 순간이 이제 음악대학 입시를 보게 결정이 난 거예요. 근데 음대 시험을 봐야 되는데 집에 피아노가 없었어요. 없었어. 조금 안 좋았어. 편이 피아노가 없는데 연습은 해야 되잖아요. 그래서 한 2, 3개월을 조이 편으로 연습했어. 갖고 진짜로 그렇게 손을 외워 가지고 이제 할 수 있는 연습을 한 거예요. 그러다가 이제 피아노가 생겨 가지고 했는데. 아니, 집에 이게 돈이 너무 많이 들어가기 시작을 하는 거 보니까 아, 이건 나한테 무리구나. 내가 실패하면 이건 완전히 집안이 어려워지겠다. 같아. 그 당시. 그래서 그 피아노를 되게 그때도 중고 피아노인데 못 팔겠다고. 그래서 지금 조카가 쓰고 있어요. 그렇게. 진짜 전 얼굴 자체가 너무 귀하니까. 그런 알어. 제가 좀 받을 건데. 오, 시. 폭발적인데.
자, 이거를 제가 왜 갖고 왔냐면 제가 만족할 만한 질문을 해 주시는 분들에게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장씨가 들고 있으니까 텀블러가. 정어. 저도 안 했어요. 네. 먼저 대체 불가능한 대한민국 국보급 센터 형님을 만나게 돼서 너무 오랜만에 들어서. 아, 내가 이런 얘기 들으면 울컥 울컥해요. 제 영광이고요. 네. 자기 자신에게 그게 냉정하다고 말씀하셨는데, 그래도 살면서 칭찬 한 마디가 되게 필요했던 저 없었는지. 어릴 때 그랬어요. 어릴 때 처음에 농구를 정말 너무 못해 가지고 그만두려고 그랬거든요. 근데 어느 정도 유망주가 되고 난 이후부터는 칭찬에 도취된 그나 이런 일은 별로 없었던 거 같아. 수. 그 거의 마지막쯤에 부상 때문에 많이 힘드셨어요. 네. 네. 그때도 되게 따뜻한 말 한마디. 아니요. 그때 그거는 이게 이게 진짜 저가 이래요. 너 질문 끊는 사람 처음 봤어. 농구 선수로서 그리고 방송인으로서 아니라 그냥 한 사람으로서 좀 이루고 싶은 것들이 이루고 싶은 거. 행복하게 살고 싶어요. 진짜 한 번을 행복하게 못 살았어요. 지금 제가 이제 예능을 하고 있는데. 지금은 그럼 어떻게 사느냐. 처음에는 그냥 했어요. 아, 누가 나오라 그러니까 잠깐 나가서 뭐 그냥 있다가 오고 뭐 이렇게 했는데. 아, 이것도 내가 정말 더 책임감을 갖고 최선을 다해야겠다라고 생각한 이유가 저 뒤에 스텝분들 우리 많이 계시잖아요. 앞에도 계시고. 이분들 전쟁이에요. 내가 구했던 거 같이. 이분들한테는 이게 이분들 전쟁이든. 근데 거기에 참여한 사람이 나는 어차피 잠깐 나왔다가 들어가면 되니까 이런 생각으로 한다는 게 너무 죄송했어요.
근데 조금 달라요. 농구. 그래도 마음은 조금 편해요. 농구할 때보다. 다은 마음으로 선수들이 다 같이 이렇게 하면 안 돌아갑니다. 또 그리고 또 예능에서도 모두 다 유재석처럼 하면 너무 힘들 것 같아요. 그요. 저한테 히어 형은 정말 훌륭한 센터예요. 훌륭한 성. 하지만 혹시 더 행복한 삶을 위해서 앞으로 사랑에 대해서는. 어. 던 던지지 않지. 대단하다. 사랑이요. 네. 아, 제가 사실 사랑에 대해서 뭐 말할 그 자격이 크게 없어 가지고. 나중에 그건 기회가 되면. 네. 그때 가서 생각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네. 안녕하세요. 네. 어, 사랑에 대해서 질문하셔서 여쭤보고 싶은 게 있는데요. 잘한다, 잘한다. 봐라. 지하게 연애를 하실 때도 자기 자신한테. [웃음] 박하신지. 내가 뭐 이런 얘기를 하고 있을 자격이 있나. 의미가 있나라는 생각이 자꾸 들어서. 하튼. 근데 뭐 그때는 뭐 그렇게까지 그러지는 않았던 거 같아요. 네. 아, 제가 지금 이제 고등학생 2학년인데. 고등학생 1학년 때. 그래서 전 제 나름 최선을 다했고 그 기대감이 저에겐 이제 부담감으로 바뀌어서 이제 저는 저 더 잘하는 친구들에게 이제 열등감만 더 높아지고 오히려 저는 더 작아진다고 생각하고 있거든요. 그래서 저에게 냉정하게 좀 조언 좀 해 주시면. 냉정하게 조언 안 해도 되고. 네. 말만 바 돼. 열등감이 아니라. 네. 그게 동기 부여라고 생각하면 돼요. 그 좋은 목표가 생겼잖아. 한 단계 발전할 수 있고. 그럼 그 친구들 목표로 나도 조만간에 저 친구들처럼 해봐야 되겠다라고 생각하면 간단히. 단어만 바꾸면 굉장히 생각이 달라져. 감사합니다.
튼 오늘 얘기 들어 주시느라고 너무 고생하셨고 감사합니다.
와, 맞다. 와. 아이고, 아이고. 습니다. 아, 몰랐어. 궁금한 거 중에 하나가 인생의 첫 골은 뭐였어요? 중학교 2학년 때인데. 농구를 시작한 지 한 1년밖에 안 됐었어요. 가비지 타임이라고 하는데. 가비 이미 시합이 스코어 차가 너무 많이 벌어져서 물 건너가. 예. 물 건너가는 게임에 후보 중에 후보였던 저를 넣었어요. 이제 보통 그럴 때는 후보를 넣. 그때 저랑 같이 뛰던 굉장히 잘하는 우리 선배가 다 제껴서 그냥 야, 하나 넣어라. 해가지고 하나 줬어. 아무도 아무도 관심이 없었을 거예요. 그 현장에 있던 거기에 있는 모든 분들. 어. 근데 그날 진짜 집에 가서 막 가슴이 두근두근 돼 가지고 잠을 못 잤어. 멋있어. 너무 영화 같아. 너무 좋은 거야. 그 느낌을 아직도 제가 기억을 하는 거 같아요. 그 가슴에 두근거림이. 그러면 예. 서장훈의 인생 마지막 골은 뭐였어? 아, 이게 은퇴식 하는 날. 그만두는 날인데. 무릎이 너무 아파서 너무 아파. 뛰지 못하겠어. 근데 이제 선수는 알아요. 슛을 던질 때 손에서 뜨면 이게 들어갔는지 안 들어갔는지. 그지. 근데 던졌는데 안 들어갔어. 분명히. 진짜 이렇게 삐져 들어가는 게 이렇게 들어가는. 우와. 투데. 이게 막 이렇게 들어가고 이렇게 들어가고 막 들어가는 거. 여여. 그래서 그날 제가 그 해에 넣은 점수 중에 제일 많이. 33점. 와, 진짜. 근데 진짜 그 생각이 되. 끝나고 나서 너 마지막 날은 좀 멋있게 그만둬라. 아, 라는 느낌을 제가 받았어요. 진짜 그날 하루 제가 살면서 평생 약간 제가 잘 이해가 안 되는 그런 날이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