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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을 묻기 전에 먼저 나를 묻자. 그 돈으로 무엇을 할 것이냐? 나는 평생 그 질문 하나로 길을 골랐다. 돈은 표지다. 내용이 비어 있으면 금박을 입혀도 종이 쪼아리다.
을지로의 새벽 쌀자루 두 개가 내 자본 전부였을 때가 있다. 나는 이윤표보다 사람의 얼굴을 먼저 살폈다. 눈을 맞추어 말을 걸고 아이에게도 어른처럼 예의를 지켰다. 어느 날 한 아주머니가 외상을 청하며 떨리는 손으로 치맛자락을 쥐고 섰다. 나는 장부를 덮고 고개를 끄덕였다. 쌀이 먼저요. 그분은 한 달도 채 안 되어 약속을 지켰다. 그리고 다섯 집이 더 찾아왔다. 그때 나는 배웠다. 신용은 돈보다 빨리 돈을 데려온다. 숫자는 금방 잊혀도 은혜는 오래 돌아온다.
사람들은 종종 내게 물었다. 부자란 무엇입니까? 나는 대답했다. 부자는 돈을 쫓는 사람이 아니라 가치를 먼저 보는 사람이다. 돈은 그림자의 언어고 가치는 몸의 언어다. 그림자는 빛이 바뀌면 사라지지만 몸은 넘어져도 다시 일어난다. 내가 택한 분은 통장에 찍히는 합계가 아니라 지켜낼 목록이었다. 원칙은 간단했다. 약속은 반드시 지킨다. 말은 아껴도 행동으로는 넘치게 갚는다. 사람의 신뢰를 한번 얻으면 내일의 자본이 오늘의 마음에서 생긴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나는 장부의 붉은 팬 대신 현장의 검은흙을 택했다. 손에 굳은살이 박이면 머리의 계산이 달라진다. 땀은 거짓말을 못 한다.
나는 또 하나의 질문을 품고 살았다. 오늘의 선택이 열을 부끄럽게 하지 않는가? 이 질문은 욕심을 걸러내는 채였다. 눈앞에 이익이 달콤할수록 나는 속도를 늦추었다. 빨리 가려면 멈출 줄 알아야 한다. 멈춤은 포기가 아니라 방향 확인이다. 길을 잃는 이들은 대부분 달리기만 잘한다. 나는 먼저 외를 찾고 그다음에야 어떻게를 꺼냈다. 가족을 먹여 살려야 했고 직원들의 월급날은 칼날처럼 정확했다. 책임은 무거웠다. 그러나 책임은 쇠덩이가 아니었다. 나에게 책임은 방향이었다. 무게는 나눌 수 있지만 방향은 흔들리면 모두가 넘어졌다. 그래서 나는 회장이라는 자리에서도 제일 먼저 출근하고 제일 늦게 부를 것다. 리더는 앞에서 당기는 사람이지 뒤에서 제촉하는 사람이 아니다. 인생은 생각보다 단순하다. 믿음, 행동, 기억. 믿음이 행동을 낳고 행동이 타인의 기억이 된다. 그 기억이 나와 회사를 다시 부른다. 이것이 나의 순환이었다. 돈은 그 뒤에 조용히 따라왔다. 따라오는 것을 굳이 끌어당기려 들지 않았다. 강을 거슬러 쟁여 놓은 물은 썩는다. 흐르게 해야 산다. 나는 사치 대신 단순을 골랐다. 단순은 가난의 다른 이름이 아니다. 단순은 집중에 다른 이름이다. 버릴수록 남는 것이 있다. 원칙, 신용, 사람이 셋은 무너지지 않으면 사업의 몸통은 다시 선다. 누구는 운을 찾는다 했고 누구는 비밀 공식을 묶건했다. 나는 그저 말했다. 회복이나 했어. 안 해본 사람이 세상을 먼저 의심한다. 해본 사람은 자신부터 단속한다. 밤이 깊을수록 마음은 소란해진다. 그럴 때 나는 처음을 떠올렸다. 빈손이었지만 비지 않았던 건 의지였다. 의지는 소리 치지 않는다. 의지는 끝까지 남아 있는 침묵이다. 남들이 비웃을 때 귀를 막지 않았다. 대신 손을 더럽혔다. 손이 더러워질수록 눈이 맑아졌다. 돈에 껍데기 넘어 사람과 약속과 길이 더 잘 보였다.
그리고 나는 오늘도 스스로에게 되는다. 그 돈으로 무엇을 할 것인가? 밥이 선명할 때만 나는 움직인다. 목적 없는 속도는 파국을 부른다. 속도의 시대일수록 방향의 사람이 이긴다. 나에게 부는 방향의 다른 이름이었다. 돈이 아니라 지켜낼 가치의 나침반. 그 나침반이 가르키는 곳으로만 나는 걸었다.
사람들은 종종 내게 물었다. 정애장, 그 많은 일을 하면서 두렵지 않았습니까? 나는 웃으며 대답했다. 두려움은 언제나 있었다. 하지만 두려움은 벽이 아니라 신호였다. 두렵다는 건 아직 내가 그 길을가 본 적이 없다는 뜻이었다. 그래서 나는 오히려 그 길을 골랐다.
1970년대 사우디 사막에서의 일이다. 섭시 50도의 열기. 모래 폭풍이 쉴새 없이 휘몰아치는 현장에서 우리는 수천억 원 규모의 도로 공사에 도전했다. 미국, 영국, 프랑스의 거대한 건설사들이 경쟁하고 있었다. 사람들은 한국이 무슨 수로 저희를 해내겠냐며 고개를 저었다. 그러나 나는 물었다. 왜 우리가 못해? 해보긴 했나? 해보지 않고 못한다고 말하는 건 아직 잠든 근육을 묶어 놓는 것과 같았다. 계약 협상에서 내가 내민 건 돈다발이 아니었다. 나는 단호히 말했다. 우리는 약속을 지킵니다. 계약하면 반드시 끝냅니다. 그 한 마디에 상대는 놀랐고 결국 현대 건설은 세계가 주목한 그 공사를 따냈다. 돈보다 앞선 자산은 신뢰였다. 신뢰가 있으면 없는 기술도 따라오고 없는 자본도 생긴다.
현장은 지옥 같았다. 식수조차 부족했고 기계는 자주 멈췄다. 노동자들은 탈진에 쓰러졌다. 그때마다 나는 스스로에게 물었다. 정주영, 네가이 고생을 하는 이유가 돈 때문이냐? 곧바로 속에서 대답이 튀어나왔다. 아니다. 우린 길을 만드는 중이다. 대한민국의 길. 나는 근로자들과 같은 천막에서 자고 같은 밥을 먹었다. 하루 수십개의 현장을 돌며 땀에 절은 사람들과 눈을 맞췄다. 우리는 돈 벌러 온게 아니다. 한국인의 실력을 증명하러 온 거다. 그 말을들은 현장 책임자는 훗날 내게 말했다. 그날 이후 우리는 단순히 도로를 까는게 아니라 사명을 짓는 현장에서 일하는 기분이었습니다.
한번은 기계 스무대가 동시에 멈춰 버린 적이 있다. 50도의 사막 열기 속에서 엔진이 모두 고장난 것이다. 그날 밤 나는 정비사들과 함께 손에 기름을 묻히며 밤을 세웠다. 기계가 다시 돌아갔을 때 정리사의 눈에 눈물이 맺쳤다. 회장님, 이제 다시 시작할 수 있습니다. 끝까지 해냅시다. 그 순간 나는 확신했다. 돈이 남기는 건 수익이지만 가치는 남는 사람을 만든다. 사우디 도로 공사가 완공되던 날 나는 광활한 사막을 바라보며 말했다. 우리는 도로를깐게 아니다. 한국의 이름을이 땅에 새긴 것이다. 언론은 이를 코리아 컨스트럭션 미라클이라 불렀다. 그러나 내가 얻은 건 명칭이 아니었다. 다음 기회였다. 쿠웨이트, 이란. 아랍 에미리트에서 새로운 문이 열렸고 실내는 불길처럼 번져갔다. 사람들이 물었다. 그 공사로 얼마나 벌었습니까? 나는 대답했다. 돈보다 더 큰 걸 벌었지. 대한민국의 가능성을 벌었고 현대의 신용을 벌었어. 나는 깨달았다. 돈은 언제든 흩어질 수 있다. 그러나 가치와 신뢰는 다음 문을 연다. 그것이 부자의 진짜 씨앗이다.
사우디 사막에서의 경험은 내게 하나의 길을 더 보여 주었다. 돈은 결과일 뿐이다. 진짜 분은 사람의 자존심에서 시작된다. 그 길의 다음 장은 자동차였다. 사람들은 코우음을 쳤다. 한국에서 무슨 자동차냐? 기술도 없고 경험도 없는데. 그러나 나는 되물었다. 못하는게 아니라 아직 안 해 봤을 뿐이다. 한일은 1973년 혼이라는 이름의 첫 국산차 프로젝트가 시작됐다. 디자인은 외국의 손을 빌렸지만 조립과 생산은 우리의 손으로 했다. 첫 자체가 조립 라인에서 흘러나왔을 때 나는 그 철을 쓰다듬으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이건 철로 만든 기계가 아니다. 우리 민족의 꿈을 씻는 데다. 거리에 토니가 등장하자. 한 청년이 말했다. 외제차만 가득하던 도로에 드디어 우리 차가 나왔다는게 믿기지 않습니다. 그 한 마디가 수천억의 이익보다 내 마음을 더 뜨겁게 했다. 그 순간 나는 알았다. 갇치는 돈을 넘어 사람의 가슴을 흔들 때 완성된다.
하지만 나는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만들었으니 이제 세계에 보여주자. 수출은 더 큰 벽이었다. 누구도 한국차를 믿지 않았다. 그러나 나는 확신했다. 이건 단순히 차를 파는게 아니다. 우리는 대한민국을 판다. 우리의 기술, 우리의 자존심을 판다. 처음 수출국은 에콰도, 이란, 이집트 같은 신흥국들이었다. 큰 돈은 되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말했다. 초기 수익보다 중요한 건 브랜드의 뿌리를 내리는 일이다. 마침내 1976년 포니가 캐나다 땅에 닿았다. 선진국 시장의 첫발을 내디든 순간이었다. 나는 사진으로 그 장면을 보며 눈시울이 붉어졌다. 저건 단순한 차가 아니다. 수십년 동안 한국은 못 한다는 말을 뒤집은 증거다. 혼인은 결국 세계 여러 나라로 퍼져 나갔다. 그리고 현대 자동차는 기술을 사드리던 나라에서 기술을 파는 나라로 변했다. 그 모든 시작은 단순했다. 돈보다 가치를 먼저 믿는 믿음. 나는 젊은이들에게 이렇게 말하곤 했다. 지금 눈앞에 이익보다 10년 뒤 누가 너를 기억할지를 먼저 생각하라. 돈은 언젠가 흔적 없이 사라진다. 그러나 가치는 이름을 남기고 이름은 길을 연다.
자동차를 세상에 내놓고도 나는 마음이 잦아들지 않았다. 새로운 파도가 몰려오고 있었다. 그것은 바로 바다였다. 1970년대 초 누군가 내게 말했다. 정회장 조선은 무리입니다. 기술도 경험도 자본도 없습니다. 나는 피식 굳으며 대답했다. 다 반대하면 그 길엔 반드시 기회가 숨어 있는 법이야. 나는 울산의 허허 벌판을 바라보며 결심했다. 여기에 한국의 배를 띄우겠다. 은행도 정부도 고개를 저었다. 그러나 나는 더 빠르게 움직였다. 조선소는 단순히 배를 만드는 곳이 아니라 미래를 짓는 터전이었다. 조롱은 거했다. 배를 본 적도 없는 나라가 VLCC 초대형 유조선을 만든다고 세계 언론은 비웃었지만 나는 단 한 번도 흔들리지 않았다. 조롱은 바람이고 성실함은 바위다. 바람은 지나가고 바위는 남는다. 1974년 마침내 현대 조선은 세계 최대 규모의 초대형 유조선을 완성했다. 진수식날 나는 울산 바다를 바라보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우리는 철덩이를 띄운게 아니다. 한국의 자부심을 띄운 것이다. 그 배에는 단순한 화물이 아니라 국민의 의지와 꿈이 실려 있었다. 그날 이후 한국은 선박 수입국에서 수출국으로 바뀌었고 몇 년 뒤엔 세계 조선 대국의 자리에 올랐다. 만약 돈만 보았다면 나는 시작조차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가치를 보았다. 국가의 미래, 젊은 세대의 기회, 그리고 한국도 할 수 있다는 믿음. 그것이 내 나침반이었다.
내 철학은 언제나 같았다. 돈은 따라오는 것이고 철학은 지켜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어떤 유혹에도 흔들리지 않았다. 해외 발주처가 뇌물을 요구하며 수백억원짜리 이차를 제안했을 때도 나는 단어이 거절했다. 돈은 다시 벌 수 있지만 신용과 철학은 무너지면 끝이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내게 답답하다고 했다. 조금 더 현실적으로 생각하라. 하지만 나는 말했다. 현실보다 중요한 건 신념이다. 한 번 꺾이면 두 번은 더 쉽게 꺾인다. 내게 기업은 공장을 짓는 일이 아니었다. 세상을 바꾸는 생각을 짓는 일이었다. 기계는 낡아도 건물은 무너져도 철학은 사람들의 마음에 남아 평생을 움직인다.
나는 평생 수많은 공장을 세웠다. 그러나 가장 오래 가장 깊이 투자한 건 사람이었다. 건물은 몇 달 만에 세울 수 있지만 사람은 몇 년이 아니라 평생을 걸려야 세워진다. 처음 공장을 세울 때였다. 용접도 조립도 해 본 적 없는 청년들이 도면을 들고 월등이서 있었다. 임원들은 불안해했다. 하지만 나는 말했다. 지금 모르는 건 부끄러운게 아니다. 안 해보는게 부끄러운 거다. 나는 기술자 한 명 한 명의 이름을 기억하려 했고 현장 소장의 의견을 끝까지 들었다. 사람을 단순한 인력이 아니라 현장을 바꾸는 동력으로 보았기 때문이다. 어느 날 조선소에서 큰 실수가 났다. 한 용접 기술자가 선박 외판을 잘못 붙여 수천만 원의 손해를 냈다. 임원들은 그를 해고해야 한다고 했다. 그러나 나는 단호히 말했다. 실수는 남겨도 된다. 그러나 사람은 붙잡아야 한다. 그 기술자는 이후 최고의 용접장인이 되었고 부배들에게 자신의 실수를 둘려주며 스승이 되었다. 나는 이렇게 생각했다. 돈은 장부에 남지만 사람은 조직에 남는다. 사람이 떠난 뒤에도 그가 만든 문화는 남는다. 그래서 나는 학벌이나 스펙보다 배장, 책임감, 실수를 대하는 태도를 더 중요하게 보았다.
리더의 책임도 마찬가지였다. 사우디 공사 한창이던 무렵 허염 속에서 현장 직원들이 탈진에 쓰러졌다. 나는 맨발로 물 한 통을 들고 현장을 돌았다. 그 모습을 본 소장이 말했다. 회장님 이러시면 체면이 나는 웃으며 대답했다. 리더가 체면 챙기면 일을 누가 하나? 체면은 끝나고 챙겨도 늦지 않다. 출장 중에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한 법인장이 보고서를 잘못 제출해 큰 손실이 발생했다. 모두가 책임자를 찾을 때 나는 전 직원 앞에서 말했다. 모든 책임은 내게 있다.이 조직의 방향을 정한 사람은 나니까. 그 법인장은 눈물을 흘리며 밤새 다시 계획서를 썼고 1년 만에 지점을 흑자로 바꿔 놓았다. 나는 평생 이런 리더십을 따랐다. 모든 책임은 내가 모든 공은 사람들에게 앞서가되 혼자 가지 않는 것. 그것이 내가 믿은 리더의 길이었다.
기업을 운영하다 보면 수많은 갈림길에 선다. 한쪽길은 돈을 택하면 편해지는 길. 다른 쪽은 가치를 지키려면 고통을 감수해야 하는 길이었다. 나는 언제나 후자를 선택했다. 그리고 단 한 번도 후회하지 않았다. 1990년대 초 현대는 해외 사업 확장을 앞두고 있었다. 국제 금융 기관들이 거액의 투자를 제한했다. 그러나 그 조건에는 기업의 경영권 일부를 넘기라는 조항이 숨어 있었다. 임원들은 속삭였다. 지금은 자금이 급합니다. 받아들여야 합니다. 나는 단호이 말했다. 우린 지금 당장 자금은 필요해도 정신은 팔 수 없다. 그 결정은 고통을 불러왔다. 한동안 자금줄이 막히고 사업이 흔들렸다. 그러나 몇 년 뒤 같은 조건을 받아들였던 다른 기업들은 외국 자본의 간섭에 휘둘리며 무너져 갔다. 나는 다시금 깨달았다. 단기적 성공은 외부에서 오지만 장기적 생존는 내부의 철학에서 나온다.
실패도 많았다. 자동차 품질 문제로 대규모 리콜 사태가 발생했을 때 손실은 막대했고 언론은 떠들썩했다. 사람들은 조용히 덧자고 조언했다. 그러나 나는 전 세계 딜러들에게 공식 사과문을 보내고 무상수리를 약속했다. 그때도 많은 이들이 물었다. 굳이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습니까? 나는 대답했다. 우리는 차를 파는게 아니라 신뢰를 파는 기업이다. 결과는 의외였다. 손해보다 더 큰 신뢰가 돌아왔다. 현대차는 고객 중심 기업으로 자리매임했고 더 많은 나라의 문이 열렸다. 나는 그때 배웠다. 돈은 이를 수 있다. 그러나 가치를 이루면 다시는 회복할 수 없다. 나는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았다. 실패는 나를 가르치는 스승이었다. 한 번의 손해가 더 큰 길을 열어 줄 수 있다는 것을 나는 수많은 현장에서 채득했다. 그래서 실패를 맞을 때마다 스스로에게 되물었다. 이건 갑진 실패인가? 헛된 타협인가? 가치를 지킨 실패는 두려울 이유가 없었다.
내 인생에서 가장 많은 이들이 고개를 갸웃한 순간이 있었다. 1998년 나는 여든을 넘긴 나이에 소대를 몰고 동력 땅으로 향했다. 언론은 떠들썩했고 주변은 만류했다. 회장님, 그 나이에 왜 그런 고생을 하십니까? 나는 단호히 말했다. 이건 이벤트가 아니다. 흔단의 벽을 소음으로라도 넘겠다는 진심이다. 그 소들은 내 청년 시절을 상징했다. 16세에 소 한 마리를 팔아 고향을 떠나 했던 뒤어. 68년이지나 그보다 열배 많은 소를 몰고 다시 돌아갔다. 돈으로 따지면 수십억이었지만 그날 나는 확신했다. 내 인생 최고의 투자는 바로이 길이었다. 북한과의 협상은 쉽지 않았다. 보이지 않는 벽, 언어의 벽, 감정의 벽. 그러나 소들이 걸어 들어가는 순간 그 벽은 무너졌다. 웃음이 터져 나왔다. 그날 이후 금강산 관광이 시작되었다. 1998년 11월 첫 관광선이 동해를 건너 금강산에 닿았다. 배 위에서 나는 가슴이 뭉클해 말을 잊지 못했다.이 길은 내가 평생 바라던 가장 아름다운 길이다. 많은 이들이 물었다. 금강산 관광 돈이 됩니까? 나는 웃으며 답했다. 동보다 중요한게 있어요. 이건 민족이 다시 손을 잡기 위한 징검달이요. 수익보다 비용이 많았고 정치적 상황에 따라 중단되기도 했다. 그러나 나는 단 한 번도 후회하지 않았다. 돈은이를 수 있어도 사람과 평화의 가치는 영원히 남기 때문이다. 그때 나는 스스로에게 자주 물었다. 네가 벌었던 가장 큰 수익은 무엇인가? 내 대답은 늘 같았다. 갈라진 민족 사이에 웃음을 만든 것. 그건 돈으로 셀 수 없는 가치다.
세월이 흘러 내 인생의 해가 서서히 저물무렵. 나는 종종 침대에 누워 과거를 떠올렸다. 을지로 쌀가게를 열던 날. 사우디 사막에서 땀흘리던 날. 혼니가 처음 도로위를 달리던 날 소대를 몰고 금강산을 향하던 날. 수많은 장면들이 파도처럼 스쳐 지나갔다. 사람들은 내게 물었다. 회장님, 그 많은 돈과 성공 중에 가장 자랑스러운 건 무엇입니까? 나는 조용히 미소지며 대답했다. 돈은 다 놓고 갈 것이다. 그러나 내가 지켜온 철학과 같이 그것만은 남는다. 내게 성공이란 숫자나 자산의 크기로 재는 것이 아니었다. 얼마나 많은 사람에게 희망을 주었는가? 얼마나 많은 이들이 나도 할 수 있다고 믿게 되었는가? 그것이 내가 말하는 진짜 부였다. 나는 자서전의 마지막 장에 이렇게 적었다. 나는 부자가 되기 위해 살아온 것이 아니다. 다만 가치를 믿었고 그 가치를 실현하려 노력했을 뿐이다. 그래서 나는 기업을 내 자식들에게만 물려주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남겨주고 싶었던 것은 계좌의 숫자가 아니라 아버지가 걸어온 길이라는 등불이었다.
사람들은 종종 나를 두고 무에서 유를 창조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나는 무에서 시작한 것이 아니라 언제나 믿음에서 시작했다. 사람에 대한 믿음, 가능성에 대한 믿음, 그리고 가치 있는 삶은 반드시 의미 있게 끝난다는 믿음. 마지막 순간 내가 가장 크게 느낀 감정은 후련함이었다. 어떤 유산보다 크고 어떤 상장보다 갑진 내 철학을 끝까지 지켜냈다는 확신. 그리고 나는 기도하듯 되었다. 내가 걸어온 길이 누군가에게 용기가 되기를 돈보다 가치를 줬는 삶이 세상에 더 많이 퍼지기를 돈은 쫓을수록 멀어지고 가치는 다가갈수록 사람을 끌어당긴다. 내가 평생을 통해 배운 단 하나의 진실이었다.
사람들은 나를 기업과 현대 그룹 창업자로 기억한다. 그러나 나는 스스로를 그렇게 부르고 싶지 않았다. 나는 단지 가치를 믿은 사람으로 남고 싶었다. 내가 자랑하는 것은 돈의 크기가 아니었다. 자랑하고 싶은 건 오히려 불가능해 보이던 꿈을 붙잡고 밀어붙였던 순간들 그리고 돈보다 철학을 앞세웠던 선택들이었다. 처음 내가 가진 것은 소 한 마리 망치하나 그리고 회복이나 했어라는 마음뿐이었다. 그러나 그 작은 출발은 수십만 명의 일자리를 만들었고 한국이라는 나라를 세계 무대에 올려 놓았다. 나는 확신한다. 돈은 따라오는 것이다. 그러나 가치를 줬는 자만이 돈을 부른다. 돈을 먼저 줬는 사람은 돈에 끌려다니지만 가치를 줬는 사람은 돈이 그을 따라온다. 후대에게 내가 남기고 싶은 말은 단순하다. 회계 장부에는 숫자가 남겠지만 사람들의 기억에는 당신이 무엇을 지켰는지가 남는다. 부자가 되고 싶다면 통장이 아니라 가슴에 남을 무언가를 만들어라. 내 인생을 한 문장으로 요약한다면 나는 이렇게 말할 것이다. 나는 돈보다 가치를 쫓았고 그 가치가 나를 진짜 부자로 만들어 주었다. 그리고 이제 그 믿음을 당신에게 맡긴다. 당신이 만들어갈 가치 있는 세상. 나는 그것을 믿는다.
나는 평생 수많은 산업을 일으켰다. 건설 자동차 조선 관광. 그러나 그 모든 길의 밑바탕에는 언제나 같은 씨앗이 있었다. 돈이 아니라 같이. 사람들은 말한다. 현실은 돈이 먼저 아닙니까? 나는 고개를 저었다. 현실이 돈을 요구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돈을 움직이는 힘은 언제나 가치였다. 돈은 모래와 같아서 움켜질수록 세어나가지만 가치는 땅과 같아서 씨를 심으면 다시 싹을 키운다. 나는 인생에서 수없이 많은 선택 앞에 섰다. 더 빠른 돈을 쫓면 길은 쉬워졌다. 하지만 나는 언제나 묶건했다. 오늘의 선택이 내 이름을 더럽히지 않는가? 그 질문에 답이 서지 않을 때는 아무리 달콤한 기회라도 뒤로 밀어냈다.
사람들은 종종 내게 운을 묻는다. 정혜장, 어떻게 금하는 기회를 잡으셨습니까? 운이 좋았던 겁니까? 나는 대답한다. 운은 신용을 따라온다. 신용을 쌓으면 기회가 스스로 문을 두드린다. 내가 걸어온 길을 되돌아보면 가장 갑진 순간들은 돈이 아니라 사람들의 눈빛 속에 있었다. 사막에서 함께 밤을 세운 정비사의 눈물. 첫 국산차에 올라탄 청년에 떨림 금강산을 바라보던 이들의 미소. 그것들이 내 통장의 숫자보다 훨씬 큰 재산이었다. 나는 믿는다. 불안 결국 남에게 남기는 감정의 크기다. 누군가의 희망이 되고 누군가의 용기가 되고 누군가의 길잡이가 되는 것. 그것이 진짜 부자의 이름이다. 그리고 이제 나는 묻고 싶다. 당신은 무엇을 남기려 하는가? 돈인가? 아니면 가슴에 남을 가치인가?
사람은 언젠가 모두 떠난다. 기업가도 노동자도 권력자도 돈 많은 부자도 예외는 없다. 남는 건 단 하나 그가 지켜온 철학뿐이다. 나는 마지막 순간을 준비하며 자주 스스로에게 물었다. 네가 세상에 남기고 싶은 건 무엇이냐? 내 대답은 언제나 같았다. 돈이 아니다. 나는 돈보다 가치를 쫓았다는 흔적을 남기고 싶다. 사람들은 성공을 자산의 크기로 제리한다. 그러나 내가 본 진짜 성공은 얼마나 많은 사람에게 희망을 불어넣었는가였다. 절망 속에서도 나도 할 수 있다는 믿음을 안겨 준다면 그것이야말로 부자다. 내 삶을 돌아보면 나는 늘 빈손으로 시작했다. 쌀가게를 열 때도 사막공사를 시작할 때도 조선소를 세울 때도 그러나 빈손이었지만 결코 비어 있지 않았다. 믿음과 의지가 있었다. 그 믿음이 나를 여기까지 데려왔다. 후대의 젊은 이들에게 나는 이렇게 말하고 싶다. 돈을 먼저 쫓지 마라. 가치를 쫓아라. 돈은 결국 따라온다. 돈을 줬는 자는 돈에 끌려다니지만 가치를 줬는 자는 돈이 그를 따라온다. 내 인생을 한 문장으로 새기자면이 말이 전부다. 나는 돈보다 가치를 쫓았고 그 가치가 나를 진짜 부자로 만들었다. 그리고 이제 나는 그 믿음을 당신에게 맡긴다. 당신이 세울 길 위에 어떤 빛을 남길 것인가? 그 빛이 돈의 그림자가 아니라 사람의 기억이 되기를.
나는 한 번도 내 삶을 화려하다 말한 적이 없다. 내게 삶은 언제나 버텨야 하는 전장이었고 믿음을 잃치 않아야 하는 시험되었다. 쌀가게에서 외상으로 쌀을 내주던 젊은 상인 사막에서 모래 폭풍을 맞으며 기계를 고치던 산네 배안척 본 적 없던 나라에서 거대한 유조선을 띄우겠다고 외치던 무모한 꿈꾸는 자 그것이 곧 나였다. 많은 이들이 나를 부러워하며 말했다. 정회장 당신은 부자라서 행복했겠군요. 나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다. 나는 부자가 되기 위해 살지 않았다. 나는 단지 가치를 지키기 위해 살았을 뿐이다. 가치를 줬는 사람에게는 실패조차 선물이었다. 넘어질 때마다 더 단단해졌고 거절당할 때마다 더 뚜렷해졌다. 돈은 흔들리지만 가치는 흔들리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후세들에게 부탁하고 싶다. 돈으로 세상을 재지 말라. 당신이 남기는 기억, 당신이 지키는 원칙, 당신이 끝까지 놓지 않은 신뢰가 곧 당신의 재산이고 이름이다. 나는 이제 세상과 작별할 준비가 되었다. 그러나 내가 남긴 철학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내 계좌가 아닌 사람들의 마음속에 남아 있기 때문이다.
나는 평생 두 가지 질문을 가슴에 품고 살았다. 첫째, 그 돈으로 무엇을 할 것인가? 둘째, 오늘의 선택이 10년 뒤 내 이름을 부끄럽게 하지 않는가?이 질문들은 내 삶의 나침반이었다. 돈은 언제나 필요했다. 가족의 밥상에도, 직원들의 월급날에도, 공장의 기계에도. 그러나 나는 돈을 목적지로 삼지 않았다. 돈은 길을 걷다 보면 따라오는 그림자였고 목적지는 언제나 가치였다. 가치는 눈에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사람의 기억 속에 신뢰 속에 자존심 속에 남는다. 나는 그것을 위해 살았다. 많은 사람들이 내게 성공 비결을 묻는다. 나는 한마디로 답한다. 가치를 먼저 보라. 그 눈이 부자를 만든다. 을지로 쌀가게에서 배운 신용. 사우디 사막에서 다진 약속. 토니의 바퀴에 실은 자존심. 울산 바다에 띄은 국민의 꿈. 금강산에 바람에 싫은 평화. 그 모든 것이 내부였다. 나는 떠나면서 내 자식들에게도 기업을 물려주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내가 남기고 싶은 건 숫자가 아니라 걸어온 길의 등불이었다. 그들이 그 빛을 따라 또 다른 길을 내주길 바랐다.
후세의 젊은 이들이여 돈을 손에 쥐여 애쓰지 말라. 돈은 언젠가 흩어지지만 가치는 영원히 남는다. 사람들의 마음속에, 역사 속에, 그리고 당신 자신의 삶 속에 사람들은 나를 두고 이렇게 말하곤 했다. 정주영, 그는 무에서 유를 만든 사람이다. 그러나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나는 무에서 시작한 적이 없었다. 언제나 내게는 믿음이 있었다. 사람에 대한 믿음, 가능성에 대한 믿음, 그리고 가치 있는 삶은 반드시 열매를 맺는다는 믿음. 믿음이 있었기에 나는 소 한 마리로 시작할 수 있었고 믿음이 있었기에 모래바람 속에서도 길을 뚫을 수 있었으며 믿음이 있었기에 바다에 배를 띄우고 산에 길을 내고 하늘로 수출기를 열 수 있었다. 돌아보면 내 삶은 언제나 의심과 조롱 속에 있었다. 불가능하다는 말은 나의 가장 친한 동행이었다. 그러나 나는 그 말을들을 때마다 되물었다. 해보기는 했나? 내 대답은 늘 행동이었다. 생각만 하는 사람은 늘 핑계를 찾지만 행동하는 사람은 끝내 길을 찾아낸다.
내가 평생을 두고 지켜온 철학은 단순하다. 구원은 따라오는 것이다. 그러나 가치는 만들어야 한다. 가치를 만들기 위해서라면 고통은 기꺼이 견디다. 왜냐하면 고통은 사라지지만 가치와 신뢰는 남기 때문이다. 이제 나는 눈을 감으며 바란다. 내가 걸었던 길이 누군가에게 용기가 되고 돈보다 가치를 줬는 삶이 또 다른 세상에서 이어지기를.
내 인생의 끝자락에서 나는 이렇게 고백할 수밖에 없다. 나는 단 한 번도 돈을 위해 살지 않았다. 돈은 그저 발자국 뒤에 남는 먼지였을뿐 내가 붙잡으려 했던 것은 언제나 가치와 철학이었다.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기억할지는 중요하지 않다. 기업가, 창업자 혹은 부자라 부른다 해도 내가 바라는 이름은 단 하나다. 가치를 믿은 사람. 돈은 세월과 함께 사라진다. 통장의 숫자는 줄어들고 건물은 낡고 권력도 흩어진다. 그러나 가치와 신념은 사람들의 가슴속에 남아 세대를 건너 이어진다. 나는 마지막 순간에도 내 자식들에게 계좌의 장고를 물려주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내가 남기고 싶었던 건 아버지가 걸어온 길이라는 등불이었다. 그 빛이 그들의 발걸음을 비추고 또 다른 세상을 밝히길 바랐다. 그래서 나는 이렇게 말하고 싶다. 부자가 되고 싶다면 돈을 쫓지 마라. 가치를 쫓아라. 돈은 언젠가 배신하지만 가치는 결코 배신하지 않는다. 가치를 줬는 자에게 돈은 그림자처럼 따라오고 그림자는 사라져도 길은 남는다. 내 인생을 한 문장으로 남기자면이 말이 전부 다 나는 돈보다 가치를 쫓았고 그 가치가 나를 진짜 부자로 만들었다. 그리고 이제 그 믿음을 당신에게 맡긴다. 당신이 세울 세상이 돈의 무게가 아니라 가치의 빛으로 채워지길 나는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