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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 사랑하는 보살님들 그리고 거사님들. 고요한 이 시간 제 목소리가 여러분의 마음에 작은 등불이 되기를 바랍니다.
지금 당장 눈을 감고 그날의 병실을 한번 떠올려 보십시오. 삑삑삑삑삑거리는 기계음 소리만 차갑게 울리던 그곳에서 임종을 앞둔 아버지가 혹은 어머니가 갑자기 허공을 휘저며 이상한 소리를 하던 그 순간을 기억하십니까? 분명 아무도 없는데 저기 문 앞에 누가 왔다면 손짓을 하고 이미 10수년 전에 돌아가신 할머니가 나를 데리러 왔다며 짐을 싸야 한다고 행설수설하시던 그 모습을 말입니다.
그 순간 여러분은 과연 어떤 말을 건내 주셨습니까? 가슴에 손을 얹고 솔직하게 답해 보십시오. 아이고 아버지 제발 정신 좀 찾으세요. 여기가 병원인데 누가 온다 그러세요? 약 기운 때문에 헛것이 보이시는 거예요.라며 짜증 섞인 목소리로 핀잔을 주지는 않았습니까? 아니면 선망 증세가 왔다며 의사를 불러 수면제를 더 놓아 달라고 제촉하진 않았습니까?
만약 그러셨다면 정말 죄송한 말씀이지만 여러분은 어쩌면 사랑하는 부모님의 마지막 가시는 길에 깊은 상처를 남기셨을 수도 있습니다. 그 순간 부모님은 헛것을 본게 아니었습니다. 노망이 나서 미친 것이 아니었습니다. 이승의 무거운 육신을 벗기 위해 영혼의 눈이 뜨이는 그 찰라의 순간에 여러분은 부모님을 정신병자 취급하며 저승으로 가는 문을 쾅 닫아버린 것과 다름 없기 때문입니다.
오늘 이 영상을 보시는 분들 중에는 이미 부모님을 떠나보내고 뒤늦게 가슴을 치며 우는 분들도 계실 것이고 앞으로 닥쳐올 이별이 두려워 잠 못 이루는 분들도 계실 겁니다. 하지만 명심하십시오. 사람이 숨을 거두기 직전 48시간은 산 사람의 시간이 아니라 죽음을 향해 가는 영혼의 시간입니다. 우리가 사는 이승의 법칙으로는 도저히 설명할 수 없는 기하고도 신비한 일들이 벌어지는 영적인 시간이지요.
의사들은 그것을 뇌의 산소가 부족해서 보는 환각이니 뇌 세포가 죽어가면서 생기는 선망이니 하며 대수롭지 않게 말합니다. 과학이라는 이름으로 그 신성한 순간을 병으로 취급해 버립니다. 하지만 수십 년간 수많은 죽음을 지켜보고 천도를 해온 이 노승은 단언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뇌가 만들어낸 가짜가 아닙니다. 왜? 죽음을 앞둔 사람들은 하나같이 똑같은 것을 볼까요? 왜 한국 사람도 미국 사람도 배우지 못한 사람도 박사 학위를 가진 사람도 죽음 앞에서는 똑같이 먼저 간 가족을 찾고 누군가가 마중을 나왔다고 말할까요? 그들이 모두 똑같은 환각을 본다는 게 말이 됩니까? 아닙니다. 그들은 진짜를 보고 있는 겁니다. 홀로 가는 저승길이 무섭고 외로울까 봐 먼저 간 인연들이 마중을 나온 것이고 저승사자가 그들을 인도하기 위해 문 앞에 당도한 것입니다.
그런데 세상에서 가장 믿고 의지했던 자식이라는 사람이 옆에서 헛소리하지 말라고 소리를 지르고 무섭다고 울고불고 매달리면 그 영혼이 마음 편하게 떠날 수 있겠습니까? 눈앞에 와 있는 어머니 손을 잡고 따라가야 하는데 자식이 뒤에서 옷자락을 붙잡고 흔드니 발길이 떨어지지 않는 겁니다. 그렇게 타이밍을 놓친 영혼은 갈 곳을 잃고 맙니다. 저승으로 따라 나서지도 못하고 이승에 머물지도 못한 채 차가운 구천을 떠도는 지방령이 되어 집안을 맴돌게 됩니다. 여러분이 무심코 내뱉은 한 마디가 부모님을 악귀로 만들고 집안에 우환을 불러오는 씨앗이 되었다면 이 얼마나 통탄할 노릇입니까?
이것은 공포를 조장하려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생과 사가 갈리는 그 엄중한 순간에 우리가 지켜야 할 최소한의 예의자 마지막 효도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오늘 이 노승이 의학적으로는 절대 설명할 수 없는 임종 직전 99%가 겪게 되는 세 가지 영적 신호가 무엇인지 낱낱이 알려 드리겠습니다. 왜 돌아가시기 며칠 전부터 고기를 끊으시는지 왜 허공에 대고 손을 뻗어 무언가를 잡으려 하시는지 그리고 숨이 끊기 직전 갑자기 정신이 맑아지는 회광반조의 순간에 어떤 비밀이 숨겨져 있는지 그 영적인 원리를 하나하나 풀어 드리겠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그 결정적인 골든 타임에 가족인 여러분이 부모님 귀에 대고 반드시 해줘야 할 천도의 말 한마디가 있습니다. 이 말을 해 주느냐 못 해 주느냐에 따라 고인이 극락으로 가느냐 지옥 같은 구천을 떠도느냐가 결정됩니다. 돈 드는 거 아닙니다. 어려운 경전을 외우라는 것도 아닙니다. 오로지 자식된 도리로서 따뜻한 말 한마디면 충분합니다. 이 골든 타임을 놓치면 고인은 차가운 저승길을 혼자 헤매야 하고 남은 자손들은 평생 가슴을 치며 후회하게 됩니다. 이건 미신이 아니라 영혼의 이치입니다. 지금 병상에 계신 부모님을 둔 분들이라면은 오늘 이 영상이 부모님을 극락으로 모시는 유일한 동아줄이 될 것입니다. 이미 떠나보낸 분들이라도 늦지 않았습니다. 지금이라도 이 원리를 알아야 가슴에 맺힌 응어리를 풀고 돌아가신 분을 위해 제대로 된 기도를 올릴 수 있습니다. 부디 딴짓하지 마시고 흐트러진 자세를 바로잡고 끝까지 귀를 열어 주십시오. 한 사람의 영혼을 구제할 수 있는 시간은 그리 길지 않습니다. 지금 바로 그 비밀의 문을 열겠습니다.
여러분, 여러분의 부모님이 임종 직전 갑자기 허공을 향해 손짓하며 알 수 없는 말을 한다면 그때 부모님은 헛것을 보는 것이 아닙니다. 그들의 영혼은 이미 새로운 문턱을 넘고 있습니다. 여러분, 그 순간 부모님의 손을 잡고 과연 어떤 말을 건네 주실 건가요? 그 한마디가 영원한 안식과 고통스러운 방황을 가르는 결정적인 열쇠가 된다는 것을 아십니까? 오늘 이 이야기 끝까지 들어주시는 분께는 돌아가신 부모님의 영혼이 극락 왕생할 수 있도록 돕는 특별한 여원 기도문을 선물로 드리겠습니다.
임종의 순간 우리의 무지한 행동과 말 한마디가 사랑하는 이에 마지막 길을 지옥으로 만들 수도 혹은 고통 없는 해탈의 길로 인도할 수도 있습니다. 지금부터 제가 들려드릴 이야기는 단순한 믿음의 영역을 넘어선 수많은 영혼의 길을 지켜본 자만이 깨달을 수 있는 깊은 진리입니다. 이 영상을 통해 여러분은 사랑하는 가족의 마지막 순간을 가장 아름답고 평화롭게 배웅하는 법을 배우게 될 것이며 동시에 여러분 자신의 마음속 깊이 자리한 슬픔과 두려움마저 치유받게 될 것입니다. 그럼 이제 고요히 눈을 감고 제 목소리를 따라 영혼의 문이 열리는 그 신비로운 순간 속으로 함께 걸어 들어가 볼까요?
자, 이제 본격적으로 저승으로 가는 문이 열릴 때 나타나는 첫 번째 신호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이것은 가장 흔하면서도 가족들이 가장 많이 실수하고 가장 많이 후회하는 순간입니다. 바로 저승사자의 방문 혹은 먼저 간 가족과의 조우입니다. 임종이 3일에서 4일 앞으로 다가오면은 환자는 침대에 누워 있다가 자꾸만 문 쪽을 쳐다봅니다. 혹은 천장 구석을 뚫어지게 응시합니다. 그러면서 혼자 말을 하거나 깜짝 놀라서 옆에 있는 이 자식의 옷자락을 꽉 잡기도 합니다. 이때 환자들이 가장 많이 하는 말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어머니가 오셨다. 저기 문 앞에 아버지가 서 계신다. 혹은 죽은 내 동생이 나를 데리러 왔다. 이런 말들입니다.
이때 가족들의 반응은 대부분 똑같습니다. 등골이 오싹해지니까 무서워서 혹은 부모님이 정신을 놓으신 것 같아서 이렇게 말합니다. 엄마 정신 차려. 거기는 아무도 없어. 벽이야. 벽. 아버지는 돌아가신 지가 언젠데 자꾸 그런 소리를 해. 제발 무서운 소리 좀 하지 마. 의사나 간호사들도 거듭니다. 환자는 산소 포화도가 떨어져서 헛것이 보이는 겁니다. 진정제 좀 놔 드릴까요?
사랑하는 보살님들, 거사님들 제발 부탁드립니다. 이때 절대 환자를 타박하거나 무시하지 마십시오. 그리고 약으로 재우려고 하지 마십시오. 그 순간 환자의 눈에는 여러분이 보지 못하는 세상이 보이고 있는 겁니다. 이것을 불교에서는 영안이 열렸다고 합니다. 육신의 눈인 육관은 서서히 닫히고 영혼의 눈인 영안이 뜨이면서 이승과 저승의 경계가 무너지는 것입니다.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평생을 이승에서 살던 사람이 이제 몸을 벗고 낯선 저승으로 떠나야 합니다. 그 길이 얼마나 무섭고 막막하겠습니까? 갓난아이가 처음 세상에 태어날 때 무서워서 울음을 터뜨리는 것처럼 영혼도 육신을 벗는 그 순간이 두렵고 떨립니다. 그래서 저승에서는 배려를 해 주는 것입니다. 홀로 오는 길이 외롭지 말라고 무섭지 말라고 그 사람이 평생 가장 의지하고 사랑했던 사람을 마중 보내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먼저 돌아가신 부모일 수도 있고 먼저 보낸 자식일 수도 있고 평생을 함께 했던 배우자일 수도 있습니다.
저승사자라고 하면 다들 검은 갓을 쓰고 도포를 입은 무서운 형상을 떠올리시는데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저승사자는 영혼을 데려갈 때 그 사람이 가장 편안해 하는 모습으로 변신해서 나타난다고 합니다. 그래야 영혼이 놀라지 않고 순순히 따라나설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아버지가 허공을 보며 어머니가 왔다고 미소를 지으신다면 그것은 진짜 어머니의 영과 가족이 오신 것이거나 저승사자가 어머니의 모습으로 마중을 나온 것입니다. 이것은 공포스러운 일이 아니라 오히려 감사하고 축복받아야 할 일입니다. 내 부모님이 외롭지 않게 가시겠구나 하고 안도해야 할 상황인 겁니다.
그런데 자식들이 옆에서 안 보인다고 소리를 지르고 헛것이라고 부정하면은 어떻게 되겠습니까? 환자는 혼란에 빠집니다. 분명 내 눈앞에 어머니가 와서 손을 내미는데 자식들은 없다고 하니 내가 미친 건가 싶어 불안해집니다. 더 무서운 것은 마중 나온 조상님이 자식들의 그 기세에 눌려 문 밖에서 들어오지 못하고 서성이다가 그냥 돌아가 버리는 경우입니다. 이것을 부정부정이라고 합니다. 산 사람의 강한 기운이 영혼의 접근을 막아 버리는 겁니다. 그러면 어떻게 됩니까? 임종을 맞이한 환자는 그 어둡고 낯선 저승길을 안내자도 없이 혼자서 더듬거려 찾아가야 합니다. 그 공포와 외로움이 얼마나 크겠습니까? 그래서 가다가 길을 잃고 구천을 떠돌게 되는 겁니다.
제가 아는 어느 거사님 이야기를 해 드리겠습니다. 이분은 노모가 돌아가시기 직전에 계속 누가 왔다며 문을 열어 달라고 하시는데 그게 너무 무서워서 방문을 걸어 잠그고 커튼까지 쳐버렸다고 합니다. 어머니가 저기 사람이 서 있다. 문 좀 열어라 하고 애원하는데도 엄마 제발 좀 그러지 마 하고 화를 냈다는 겁니다. 결국 그 어머니는 눈을 감지 못한 채로 돌아가셨습니다. 그리고 그 후로 그 집안에 줄초상이 났습니다. 꿈에 어머니가 나타나서 내가 그렇게 문을 열어 달라고 했는데 네가 막았다. 캄캄해서 나갈 수가 없다며 통곡을 하시더라는 겁니다. 이게 바로 자식이 부모의 저승길을 막은 꼴입니다.
그렇다면 이럴 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정답은 아주 간단합니다. 맞장구를 쳐 주는 것입니다. 환자가 보이는 것을 인정해 주고 환자가 안심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입니다. 만약 아버지가 저기 엄마가 와 있다라고 하시면 놀라지 마시고 침착하게 이렇게 물어보십시오. 아이고. 아버지가 보고 싶어서 할머니가 마중 나오셨나 보네요. 할머니 얼굴 보니까 좋으세요. 할머니가 웃고 계세요. 이렇게 물어보면은 환자들은 대부분 표정이 편안해지면서 그렇다고 대답합니다. 그때 자식들이 해야 할 결정적인 한 마디는 바로 이것입니다. 아버지 우리는 걱정하지 말고 할머니 손 꼭 잡고 따라가세요. 할머니가 좋은 곳으로 데려다 주실 거예요.
이 말이 왜 중요하냐면은 환자에게 떠나도 된다는 허락을 주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죽음을 앞둔 사람은 본능적으로 이승에 대한 미련과 가족에 대한 걱정 때문에 발길이 떨어지지 않습니다. 그런데 자식들이 먼저 조상님을 인정해 주고 그 손을 잡고 가라고 권유해 주면 마음에 짐을 내려놓고 편안하게 따라나설 수 있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살아 있는 자식이 할 수 있는 최고의 천도재입니다. 돈 들여서 굿하고 제사 지내는 거보다 임종 직전 그 순간에 조상님 손 잡고 잘 가시라고 말해 주는 그 한마디가 영혼을 천국으로 보내는 가장 확실한 티켓이 됩니다.
간혹 환자가 무서워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저기 시커먼 사람이 서 있다. 나를 잡으러 왔다라며 공포에 떨기도 합니다. 이것은 환자가 살면서 지은 업장이나 요장이 두껍거나 마음속에 해결하지 못한 한이 많아서 저승사자가 무섭게 보이는 것입니다. 이때는 가족들이 더 담대하게 대처해야 합니다. 환자의 손을 꽉 잡고 이렇게 말씀해 주십시오. 아버지 괜찮아요. 제가 옆에 있잖아요. 저분은 아버지를 해치러 온 게 아니라 아픈 몸 벗고 편안한 곳으로 안내하러 온 분이에요. 무서워하지 말고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찾으세요. 종교가 있다면 그 종교에 맞는 기도를 해 주시고 종교가 없다면 그저 편안하게 마음 먹으라고 다독여 주셔야 합니다. 절대로 같이 무서워하거나 울음을 터뜨리면 안 됩니다. 산 사람의 공포심은 죽어가는 사람에게 열 배, 100배로 전달됩니다. 기억하십시오. 임종을 앞둔 부모님이 누군가를 본다는 것은 뇌가 망가진 게 아니라 영혼의 세계로 들어가는 문이 열린 것입니다.
[음악] 그 문 앞에서 있는 존재들을 환영해 주십시오. 그리고 부모님께 그분들을 믿고 따라가라고 안심시켜 주십시오. 그래야 부모님이 이승의 고통스러운 껍질을 벗고 가벼운 영혼이 되어 훨훨 날아가실 수 있습니다. 불교에서는 이 모든 순간을 중음 중인의 과정이라 설명하기도 합니다. 육신과 영혼이 분리되는 혼란스러운 시기에 주변의 염원과 기도가 영혼이 올바른 길을 찾도록 돕는다고 말합니다. 예로부터 우리 조상님들은 돌아가시는 분의 눈에 나타나는 존재들을 단순한 환영으로 치부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 영적 현상을 이해하고 망자가 평안하게 저승길에 들 수 있도록 돕는 다양한 의례와 마음가짐을 전수해 왔습니다. 조계종의 가르침에서도 임종 전후의 마음챙김과 가족들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게 다루어집니다. 영가천도, 탱가젠도는 단지 죽은 후에 행하는 의식이 아니라 임종의 순간부터 시작되는 살아 있는 자들의 자비로운 행위입니다. 여러분의 따뜻한 시선과 말 한마디가 바로 그 첫걸음이 되는 것이지요.
자, 이제 첫 번째 관문을 통과했습니다. 하지만 [음악] 영혼이 떠나려고 해도 육신이 놓아주지 않아서 겪게 되는 끔찍한 고통의 단계가 남아 있습니다. 가족들이 억지로 밥을 먹이려고 하거나 몸을 주무르면 환자는 불에 타는 듯한 고통을 느낀다고 합니다. 영적 신호 2단계 육신의 옷을 벗는 과정에서 우리가 절대 하지 말아야 할 행동들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사랑하는 보살님, 거사님들. 첫 번째 관문에서 조상님을 잘 맞이하셨다면은 이제 영원히 낡은 육신의 옷을 벗어던지려는 두 번째 단계로 접어듭니다. 이 과정은 옆에서 지켜보는 가족들에게는 참으로 고통스럽고 안타까운 시간이지만 환자 본인에게는 이승의 끈을 하나하나 끊어내는 아주 중요한 작업입니다. 이때 나타나는 대표적인 영적 신호가 바로 고기를 끊는 것 그리고 짐을 싸거나 허공에 손을 뻗는 행동입니다. 많은 분들이 이 시기에 억지로 음식을 먹이려고 하거나 손을 묶어 버리는 실수를 범하는데 이것이야말로 떠나는 분을 고문하는 행위라는 걸 아셔야 합니다.
먼저 곡기, 곡식을 끊는 현상부터 말씀드리겠습니다. 임종이 일주일 혹은 며칠 앞으로 다가오면은 환자는 물 한 모음조차 넘기기 힘들어합니다. 평소 좋아하던 음식도 거부하고 입을 꾹 다물어 버립니다. 이걸 보는 가족들은 얘가 탑니다. 뭐라도 드셔야 기운을 차려서 일어나실 텐데 굶겨서 돌아가시게 할 수는 없지 않느냐 하며 억지로 미음을 쑤셔 넣거나 링거 영양제라도 놓아 달라고 사정을 합니다. 효심에서 우러나온 행동이라는 것. 이 노승도 잘 압니다. 하지만 영적인 관점에서 보면 이것은 정반대입니다. 사람이 죽음에 가까워지면 이승의 밥은 끊고 저승의 밥을 먹을 준비를 합니다. 육신이 기능을 멈추고 영혼이 빠져나가기 위해서는 몸을 비워야 합니다. 몸속에 음식물이 남아 있으면은 그것이 부패하면서 탁한 기운을 만들어 내고 영혼이 깨끗하게 빠져나가는 것을 방해합니다. 그래서 몸이 스스로 음식을 거부하는 것입니다. 일종의 자연적인 단식 수행인 셈입니다. 불교에서는 이를 입적, 루지전의 마지막 정화라고도 부릅니다. 육신의 속박으로부터 벗어나 영혼의 가벼움을 찾으려는 본능적인 움직임이라는 것이지요.
이때 강제로 음식을 주입하는 것은 마치 새롭게 날아오르려는 새 날개에 납덩이를 매다는 것과 같습니다. 그런데 여기에 억지로 음식을 밀어 넣으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소화도 안 되는 음식물이 위장에 쌓여서 썩어가고 환자는 배가 터질 듯한 고통을 느낍니다. 숨쉬기도 힘든데 속까지 뒤집어지니 그 고통은 말로 다 할 수 없습니다. 의학적으로도 이때 음식을 먹이면 구토를 하거나 기도 질식으로 이어져 오히려 임종을 재촉할 수 있다고 경고합니다. 게다가 영양제 주사도 마찬가지입니다. 몸은 이미 물을 배출하지 못하는데 수분을 계속 공급하면 온몸이 퉁퉁 붓고 폐에 물이 차서 숨소리가 거칠어집니다. 소위 가래 끓는 소리가 심하게 나는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이 과도한 수분 공급 때문입니다. 그러니 부모님이 음식을 거부하신다면 제발 억지로 드시게 하지 마십시오. 배고파서 돌아가시는 게 아닙니다. 자연스럽게 몸을 비우고 가벼워지려는 과정입니다. 대신 거즈에 물을 적셔서 입술만 축여 주시거나 마른 입안을 닦아 주시는 것만으로도 충분합니다.
[음악] 그것이 진짜 환자를 편안하게 해 드리는 길입니다. 다음으로 짐을 싸는 행동과 허공에 손을 뻗는 행동입니다. 이것도 정말 많이들 겪으시는 현상입니다. 기력도 없는 분이 갑자기 이불을 개거나 옷을 주섬주섬 챙기는 시늉을 합니다. 집에 가야 한다며 보따리를 싸는 시늉을 하기도 합니다. 이것은 무의식이 죽음을 여행으로 받아들이고 준비를 하는 것입니다. 영혼은 이미 떠날 채비를 마쳤는데 육신이 미련을 두고 있으니 무의식적으로 짐을 싸는 행동으로 나타나는 겁니다. 이때 가족들이 아버지가 노망 나셨나 봐 하며 짐을 뺏거나 다시 눕히려고 하면 환자는 불안해합니다. 오히려 그래요. 아버지 여행 갈 준비 다 됐어요. 빠진 거 없나? 잘 챙기세요.라고 맞장구쳐 주며 안심시켜 드려야 합니다. 마치 어린아이가 소풍 가기 전에 설레는 마음으로 가방을 챙기듯 영혼 또한 새로운 여정을 준비하는 순수한 마음일 수 있습니다. 우리가 그 마음을 헤아려 주고 격려해 주는 것이 중요합니다. 불교의 윤회 사상에 따르면은 죽음은 또 다른 생의 시작이며 현생의 짐을 내려놓고 새로운 곳으로 향하는 문턱입니다. 이 짐을 싸는 행위는 바로 그 문턱을 넘기 위한 마음의 준비인 것입니다.
가장 마음 아픈 것이 바로 허공에 손을 뻗어 허우적거리는 행동입니다. 누워 계신 환자가 허공을 향해 필사적으로 손을 뻗거나 무언가를 잡으려는 듯 손가락을 꼼지락거립니다. 마치 물에 빠진 사람이 지푸라기라도 잡으려는 것처럼 보입니다. 이것을 보고 어떤 분들은 무서워서 손을 이불 속으로 집어넣거나 묶어 두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것은 절대 해서는 안 될 짓입니다. 이 행동은 영적인 눈으로 보면 눈앞에 펼쳐진 거대한 업보의 강을 건너려는 몸부림입니다. 이승과 저승 사이에는 건너야 할 강이 있다고 합니다. 그 강을 건너려면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하고 잡을 동아줄이 필요합니다. 환자는 지금 그 강 앞에 서서 두려움에 떨며 손을 내밀고 있는 겁니다. 제발 나 좀 도와달라. 나 좀 잡아 달라고 애원하고 있는 겁니다. 그런데 그 손을 뿌리치거나 묶어 버리면 환자는 절망에 빠집니다. 그 공포심이 그대로 굳어서 영혼에 각인됩니다. 이럴 때는 가족들이 그 손을 꽉 잡아 주셔야 합니다. 그냥 잡는 게 아니라 온기를 전해 주면서 이렇게 말씀하셔야 합니다. 아버지 제가 손잡고 있어요. 무서워하지 마세요. 우리 아버지가 평생 얼마나 착하게 사셨는데 부처님이 다 알고 계세요. 걱정 말고 편안하게 마음 먹으세요. 이 한마디가 환자에게는 천군만마 같은 구명줄이 됩니다. 자식이 잡아준 따뜻한 손길을 느끼며 환자는 아 내가 혼자가 아니구나 하고 안도감을 느끼게 됩니다. 그 안도감이 있어야 영혼이 공포를 이겨내고 업보의 강을 무사히 건널 수 있습니다. 또한 허공에 손을 뻗는 것은 먼저 간 가족이나 신적인 존재를 향한 손짓일 수도 있습니다. 어머니, 저 여기 있어요. 데려가 주세요. 하는 신호일 수 있습니다. 그러니 그 손짓을 미친 행동으로 치부하지 마시고 그 간절함을 읽어 주셔야 합니다. 불교에서는 연기법, 연기파를 통해 모든 존재가 서로 연결되어 있음을 가르칩니다. 임종하는 순간 육신은 소멸할지언정 영혼은 여전히 살아 있는 가족들과의 인연의 끈을 느끼고 있는 것입니다. 그때 잡아주는 손길은 단순한 육체적 접촉을 넘어 영적인 교감과 지지입니다. 조계종의 수행자들은 이러한 임종 순간의 마음가짐을 매우 중요하게 여기며 자비로운 마음으로 망자를 배웅하는 것을 보살행, 보살싱의 하나로 봅니다.
보살님들 죽음은 육신의 옷을 벗고 새로운 옷으로 갈아입는 과정입니다. 우리가 옷을 갈아입을 때 누가 억지로 잡아당기거나 밥을 먹이려고 하면은 짜증이 나고 힘들지 않습니까? 하물며 평생 입었던 육신을 벗는 일은 살이 찢어지는 듯한 고통이 따를 수도 있습니다. 그 힘든 과정을 겪고 있는 부모님께 우리가 해드릴 수 있는 것은 억지 효도가 아니라 그저 가시는 길 편안하시도록 수리에 따르는 것입니다. 밥을 안 드시면 안 드시는 대로, 손을 뻗으면 잡아주는 대로, 그분이 원하시는 대로 맞춰 드리는 것이 최고의 임종 간호입니다.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자비심이며 부처님의 가르침을 실천하는 지혜로운 행동입니다. 영혼의 여정은 육체의 논리를 따르지 않습니다. 우리의 역할은 그들이 평화롭게 다음 단계로 나아갈 수 있도록 길을 열어 주는 것이지 억지로 이승에 붙잡아 두는 것이 아닙니다.
이제 마지막 세 번째 단계가 나왔습니다. 이것이야말로 죽음의 미스터리이자 영혼이 자식들에게 주는 마지막 선물 같은 시간입니다. 바로 회광반조, 회광반조입니다. 죽기 직전 꺼져가던 불꽃이 확 타오르듯 갑자기 정신이 맑아지는 이 기적 같은 순간에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요? 이 짧은 시간에 어떤 말을 하느냐가 고인의 사후 세계를 결정짓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이승에서의 마지막 골든 타임, 그 비밀을 풀어 드리겠습니다.
사랑하는 보살님, 거사님들. 이제 임종의 마지막 관문이자 영혼이 이승에 남기는 마지막 기적, 회광반조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이 시간은 하늘이 허락한 가장 슬프고도 아름다운 작별의 시간입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너무나 많은 가족들이 이 현상의 의미를 몰라서 엉뚱한 기대를 하다가 소중한 마지막 인사의 기회를 날려버리고 맙니다. 회광반조란 빛을 돌이켜 비춘다는 뜻입니다. 꺼져가는 촛불과 기름이 다 된 호롱불을 보신 적 있습니까? 불이 완전히 꺼지기 직전에 심지가 타 들어가면서 갑자기 확하고 불꽃이 크게 타오르는 순간이 있습니다. 그리고는 이내에 사그라들어 어둠 속으로 사라집니다. 사람의 목숨도 이와 똑같습니다. 혼수 상태에 빠져서 며칠째 의식이 없던 환자가 혹은 치매로 몇 년간 자식도 못 알아보던 노인이 갑자기 눈을 번쩍 뜨고 또렷한 목소리로 말을 합니다. 배가 고프다며 밥을 달라고도 하고 자식들 이름을 하나하나 부르며 옛날 이야기를 하기도 합니다. 얼굴 혈색도 마치 다 나은 사람처럼 불그스름하게 돌아옵니다.
이때 가족들은 흥분합니다. 기적이다. 우리 아버지가 살아나셨다라며 의사를 부르고 난리가 납니다. 병이 나왔다고 착각을 하는 겁니다. 하지만 보살님들 냉정하게 들리겠지만 절대 착각하시면 안 됩니다. 이것은 회복의 신호가 아닙니다. 영혼이 육신을 떠나기 직전에 마지막 남은 생명 에너지를 한 톨도 남김없이 몽땅 태우는 순간입니다. 사랑하는 가족들에게 [음악] 마지막 유언을 남기고 얼굴을 한 번 더 눈에 담으라고 신이 허락해 주신 30분 혹은 한 시간의 짧은 은혜입니다. 불교에서는 이 순간을 마지막 빛이 혹은 [음악] 최후의 음력 요리의 발현이라고 보기도 합니다. 오랜 수행을 통해 마음을 닦은 이들은 이 순간에 깊은 선정, 쉐엔딩에 들기도 하고 평범한 이들도 과거의 인연을 명확히 떠올리며 마지막 작별을 구할 준비를 합니다.
그런데 이 귀한 시간에 가족들이 의사 부르러 뛰어다니고 살았다면 희희낙락하다가 정작해야 할 작별 인사를 못 한다면 그 얼마나 통탄할 일입니까? 이런 회광반조의 순간이 오면 직감하셔야 합니다. 아 이제 정말 가시려나 보다. 마지막 인사를 해야겠구나 하고 마음을 다잡으셔야 합니다. 그리고 환자의 손을 잡고 그동안 못 다한 이야기 가슴에 맺힌 응어리들을 다 풀어내셔야 합니다. 사랑한다. 고맙다, 미안하다. 이 말들을 할 수 있는 진짜 마지막 기회입니다. 이 짧은 시간이 지나고 나면 환자는 다시 깊은 잠에 빠져들고 호흡이 거칠어지며 진짜 임종의 순간을 맞이하게 됩니다.
이때부터는 정말 중요한 것이 바로 청각, 팅조입니다. 많은 분들이 환자가 눈을 감고 의식이 없으면 아무것도 못 듣는다고 생각하십니다. 그래서 환자 옆에서 큰 소리로 울고불고 하거나 심지어는 장례 절차나 재산 문제를 논의하기도 합니다. 의사가 사망 선고를 내리기 전까지 아니 심지어 숨이 끊기고 나서도 한동안은 귀가 열려 있다는 사실을 명심하셔야 합니다. 사람의 오감, 우관 중에서 시각, 미각, 후각, 촉각은 다 사라져도 마지막까지 남는 것이 청각입니다. 불교에서는 이것을 이승의 소리를 듣는 것이 아니라 영혼의 귀가 열려 있는 상태라고 봅니다. 몸은 꼼짝 못 해도 귀는 다 듣고 있고 의식은 다 깨어 있습니다. 그런데 바로 귀 옆에서 아이고 아버지 우리 두고 가면 어떻게 하고 통곡을 하면은 그 소리가 떠나는 영혼에게는 천둥벼락 치는 소리처럼 고통스럽게 들린다고 합니다. 그리고 발길이 떨어지지가 않습니다. 자식들이 저렇게 우는데 내가 어떻게 가나 싶어서 가던 길을 멈추고 뒤를 돌아보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영혼을 집착하게 만들고 지방령으로 만드는 지름길입니다. 절대 환자 앞에서 가지 마라고 붙잡거나 대성 통곡하지 마십시오. 울음은 병실 밖에서 삼키시고 환자 앞에서는 최대한 차분하고 따뜻한 목소리로 말씀을 해 주셔야 합니다. 이는 육신의 고통을 넘어 영혼의 평화를 바라는 자비심의 표현이며 우리 조상들이 전해온 지혜로운 임종 의식입니다. 조계종의 수행자들은 임종 시 염불이나 진언이 바로 이러한 영혼의 청각을 통해 전달되어 망자를 인도한다고 가르칩니다.
그렇다면 이 결정적인 순간에 귀에 어떤 말을 해 드려야 고인이 극락으로 직행할 수 있을까요? 천도재를 지낼 때 스님들이 하는 염불보다 더 강력한 힘을 가진 것이 바로 혈육의 목소리입니다. 자식이 부모에게 해주는 마지막 한 마디가 영혼의 내비게이션이 됩니다. 딱 세 가지 포인트만 기억하십시오. 안심, 감사, 그리고 놓아주기입니다.
첫째, 안심시켜 드려야 합니다. 아버지, 무서워하지 마세요. 아버지가 평생 베푸신 공덕이 많아서 좋은 곳으로 가실 거예요. 부처님이 혹은 조상님들이 마중 나오셨으니까 그분들 손 잡고 빛을 따라가세요. 이 한 마디는 망자의 불안감을 잠재우고 평화로운 다음 여정으로 나아갈 수 있는 용기를 불어넣어 줍니다. 마치 어린아이가 어둠을 무서워할 때 부모가 곁에서 괜찮아 엄마 여기 있어 하고 속삭여 주는 것과 같습니다. 영혼 또한 마지막 길 앞에서 두려움을 느끼는 어린아이와 같으니 따뜻한 안심의 말로 손을 잡아 주십시오. 불교에서는 중음신, 중음신이 인생이 다음 생으로 나아가기 전 49일 동안 갈 길을 헤맸는데 이때 살아 있는 자들의 염원과 안심시키는 말이 길잡이가 된다고 가르칩니다.
둘째, 감사를 전해야 합니다. 미안하다는 말보다는 고맙다는 말이 영혼을 더 가볍게 합니다. 어머니 나와 주셔서 고맙습니다. 길러 주셔서 감사합니다. 어머니 덕분에 행복했습니다. 이제 우리 걱정을 마시고 편히 쉬세요. 감사하는 마음은 모든 죄업을 소멸시키고 영혼을 정화하는 가장 강력한 힘을 지니고 있습니다. 부모님과의 인연에 대해 진심으로 감사하는 마음을 전할 때 영혼은 이승에서의 모든 짐을 내려놓고 홀가분하게 떠날 수 있습니다. 죄나 후회, 죄책감 같은 부정적인 감정은 영혼을 무겁게 하여 다음 생으로의 전환을 방해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감사와 사랑은 영혼을 가볍게 춤추게 합니다.
셋째,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놓아드리는 것입니다. 이게 제일 어렵지만은 꼭 해야 합니다. 이제 무겁고 아픈 몸 벗어 버리고 훨훨 날아가세요. 뒤돌아보지 말고 가세요. 우리는 잘 지낼 테니 걱정 말고 가세요. 이 말을 계속해서 반복해 주십시오. 숨이 끊어지는 그 순간까지 아니 숨이 끊어지고 나서도 한참 동안 귀가에 속삭여 주십시오. 여러분의 목소리가 어두운 저승길을 밝히는 등불이 되어 영혼을 안전하게 인도할 것입니다.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영혼을 이승에 붙잡아 두려는 마음은 오히려 망자에게 고통을 안겨 줄 수 있습니다. 진정한 사랑은 놓아주는 지혜를 가르칩니다. 마치 둥지를 떠나는 새끼 새를 어미 새가 먼 발치해서 축복하며 바라보듯 우리 또한 부모님의 영혼이 더 높은 곳으로 자유롭게 날아오르도록 응원해야 합니다. 조계종의 선사들은 집착은 괴로움의 근원이라 가르치셨습니다. 살아 있는 자의 집착이 망자에게도 고통스러운 족쇄가 될 수 있음을 명심해야 합니다. 반대로 최악의 말은 가지 마. 제발 가지 마입니다. 이 말은 영혼의 발목에 쇠를 채우는 것과 같습니다.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영혼을 구천에 묶어 두는 짓입니다. 정말 부모님을 사랑하신다면 이제 그만 고통 없는 곳으로 가시라고 보내 드리는 것이 진짜 효도입니다.
사랑하는 보살님들, 거사님들. 임종은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입니다. 헌 옷을 벗고 새 옷으로 갈아입는 과정입니다. 그 순고한 순간을 슬픔과 공포로만 채우지 마십시오. 여러분이 의연하게 지켜주고 좋은 말로 배웅해 줄 때 부모님은 미소를 머금고 편안하게 눈을 감으실 수 있습니다. 회광반조의 기적과 마지막 청각의 비밀, 이 두 가지를 꼭 기억하셔서 부모님의 마지막 가시는 길을 꽃길로 만들어 드리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이 모든 과정은 단지 사랑하는 이를 배웅하는 행위를 넘어 우리 자신의 마음을 정화하고 삶과 죽음에 대한 깊은 이해를 얻는 수행의 길이기도 합니다. 슬픔은 자연스러운 감정이지만 그 슬픔에 매몰되어 망자를 붙잡는 것은 결국 우리 자신에게도 떠나는 이에게도 고통이 됩니다. 불교에서는 고통의 원인이 집착에 있다고 가르칩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는다는 고통은 그 사람과의 인연에 대한 집착에서 비롯되는 것이지요. 그러나 모든 존재는 인연 따라 왔다가 인연 따라 흘러가는 것, 무상무상의 진리를 깨달을 때 우리는 비로소 자유로워질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모든 과정을 마친 영혼을 위해 우리가 해 드릴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이별의 의식 그리고 남은 자손들이 받아야 할 복에 대해 말씀드리며 대단원의 막을 내리겠습니다. 마지막까지 [음악] 자리를 지켜 주십시오.
사랑하는 보살님, 거사님들. 긴 시간 동안 정말 무겁고도 중요한 이야기를 들으시느라 고생 많으셨습니다. 이제 우리는 임종이라는 거대한 파도를 넘는 법을 배웠습니다. 저승사자가 마중 나오는 신호부터 육신을 비우는 고통 그리고 마지막 회광반조의 기적까지. 이 모든 것은 공포가 아니라 떠나는 영혼과 남은 가족을 위한 하늘의 배려라는 것을 이제는 아시겠습니까?
마지막으로 제가 드리고 싶은 말씀은 죽음은 끝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우리 불교에서는 죽음을 옷을 갈아입는다고 표현합니다. 낡고 병들어 더 이상 쓸 수 없는 육신의 옷을 벗어버리고 새롭고 가벼운 영혼의 옷으로 갈아입는 과정일 뿐입니다. 혹은 무너져 가는 헌집에서 나와서 크고 튼튼한 새집으로 이사를 가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니 부모님이 숨을 거두시는 그 순간을 영원한 이별이라 생각하며 절망하지 마십시오. 오히려 평생 고생하신 부모님이 저 무거운 짐을 내려놓고 해방되시는구나 하고 축하해 드려야 할 일입니다. 여러분이 그런 담대한 마음을 가질 때 부모님의 영혼도 뒤를 돌아보지 않고 가벼운 발걸음으로 극락으로 향하실 수 있습니다. 여러분이 슬픔에 잠겨 울고불고 매달릴 때 영혼은 무거운 족쇄에 묶인 채 발길이 떨어지지 않습니다. 하지만 여러분이 평온하고 담대한 마음으로 이제 편히 가세요."라고 말할 때 영혼은 비로소 자유로워져 다음 생으로 나아갈 힘을 얻게 됩니다. 부처님께서도 말씀하셨듯이 모든 것은 변하고 영원한 것은 없습니다. 탄생이 있으면 소멸이 있고 만남이 있으면 헤어짐이 있습니다. 이 진리를 이해할 때 우리는 죽음 앞에서 평온을 찾을 수 있습니다. 슬픔 속에서도 지혜를 잃지 않는 것. 그것이 바로 불자의 마음가짐입니다.
이 땅에 오신 모든 생명은 한 때 인연으로 엮였다가 그 인연이 다하면은 각자의 갈길을 떠나는 나그네와 같습니다. 우리는 그 나그네에게 따뜻한 작별 인사를 건네고 편안한 여정을 빌어주는 호스트의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오늘 이 영상을 보신 여러분은 이제 선택받은 분들입니다. 남들은 부모님이 헛것을 본다고 미쳤다고 할 때 여러분은 아 조상님이 마중 오셨구나 하고 손을 잡아드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남들은 억지로 밥을 먹이며 고통을 줄 때 여러분은 입술을 축여 드리며 편안하게 해 드릴 수 있게 [음악] 되었습니다. 그리고 남들이 울고불고 매달릴 때 여러분은 귀가에 사랑합니다. 고맙습니다. 이제 편히 가세요.라는 천도의 주문을 외워 드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것이야말로 자식으로서 할 수 있는 최고의 효도이자 가장 아름다운 이별 아니겠습니까?
조계종의 수행은 단순한 경전 암송을 넘어 삶의 매 순간순간에 부처님의 자비를 실천하는 것입니다. 특히 임종의 순간은 그 자비심이 가장 빛을 발해야 할 때입니다. 이러한 지혜로운 임종 의식은 비단 불교인에게만 해당하는 것이 아닙니다. 어떤 종교를 가졌든 혹은 종교가 없든 사랑하는 이에 마지막 길을 존중하고 편안하게 배웅하고자 하는 마음은 인간 본연의 자비심에서 우러나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 노승은 오랫동안 수많은 임종 현장을 지켜보며 종교를 초월하여 이러한 마음가짐이 얼마나 중요한지 뼈저리게 느껴왔습니다. 결국은 사랑과 이해 그리고 놓아주는 용기가 가장 강력한 힘을 발휘하는 순간입니다.
자, 이제 마지막으로 오늘 이 자리에 함께하신 모든 분들과 그리고 지금 병상에 계시거나 이미 떠나신 모든 부모님들의 영가를 위해 제가 직접 극락 왕생 발원 기도를 올려 드리겠습니다. 이 기도는 단순한 소리가 아닙니다. 시공간을 초월하여 여러분의 부모님께 닿는 강력한 연파 예고입니다. 지금 계신 그 자리에서 두 손을 모으고 눈을 감으십시오. 그리고 부모님의 얼굴을 떠올리며 제 축원 소리에 마음을 포기해 주십시오. 비나이다. 비나이다. 부처님과 천지신명님께 비나이다. 오늘 이 인연에 닿은 모든 영가들이시어 살라생전 지은 무거운 업장은 이승에 다 내려놓으시고 오로지 맑고 향기로운 영혼만이 되어 저 밝은 빛을 따라가서 두려움은 사라지고 고통은 멈추고 그리운 조상님들의 손을 잡고 부처님의 품 안으로 드시어 부디 극락세계 상품상생 상승 하옵소서.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관세음보살.
사랑하는 보살님들, 거사님들. 기도는 입밖으로 내뱉고 글로 적어야 비로소 현실됩니다. 마음속으로만 생각하면 그저 생각일 뿐이지만 그것을 기록하면은 우주에 보내는 편지가 됩니다. 지금 바로 아래 댓글창을 여십시오. 그리고 그곳을 여러분만의 작은 법당이라고 생각하십시오. 거기에 떠나신 부모님의 성함 혹은 지금 곁에 계신 부모님의 성함을 적고 그분들께 꼭 하고 싶은 마지막 한 마디를 적으십시오. 사랑합니다. 고생 많으셨습니다. 이제 아프지 말고 편히 쉬세요. 쑥스러워하지 마십시오. 지금 적는 이 한 줄의 댓글이 부모님의 저승길을 밝히는 가장 밝은 등불이 될 것입니다. 이 노승이 오늘 밤 잠들기 전 여러분이 남겨주신 그 소중한 이름들을 하나하나 마음에 새기며 다시 한번 특별 축원을 올리겠습니다.
그리고 한 가지 더 부탁드립니다. 내 부모님만 생각하지 마시고 다른 분들이 남긴 슬픈 사연과 기도 댓글을 보시면은 따뜻한 좋아요 한번 눌러 주십시오. 남의 부모가 좋은 곳으로 가기를 빌어주는 그 선한 마음이 돌고 돌아 내 부모에게 더 큰 복으로 돌아오는 것이 불교의 연기법, 연기화입니다. 오늘 이 댓글창을 서로가 서로의 슬픔을 닦아 주는 거대한 천도재의 장으로 만들어 주십시오. 외로이 홀로 계신 분들이 이 댓글을 보며 서로에게 위로가 되고 공감과 사랑을 나눌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서로의 어깨를 토닥여 줄 때 그 온기가 영가들에게도 전달될 것입니다.
임종은 슬픈 끝이 아닙니다. 가장 순고한 완성입니다. 고통으로 점철된 육신의 삶을 마치고 영혼의 새로운 여정을 시작하는 성스러운 순간입니다. 이 진리를 깨달을 때 우리는 죽음 앞에서 더 이상 절망하지 않고 오히려 평화와 희망을 볼 수 있게 됩니다. 우리 조상들은 오래 전부터 죽음을 삶의 연장선으로 이해해 왔습니다. 상례, 쌍례, 나례, 지례 또한 단순히 망자를 보내는 것을 넘어 살아 있는 자들이 삶의 의미를 되새기고 가족의 유대를 강화하는 중요한 의례로 여겼습니다. 삶은 유한하지만 인연은 영원히 이어집니다. 부모님과의 인연은 육신이 사라져도 영혼 속 깊이 새겨져 다음 생까지 이어지는 법입니다. 그러니 부모님의 영혼이 평안하기를 바라는 마음은 곧 우리 자신의 영혼의 평화를 비는 것과 같습니다. 오늘 함께 나눈 이 지혜가 여러분의 가슴에 등불처럼 남아 훗날 닥쳐올 이별의 순간에 큰 힘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이 지혜는 단순한 지식이 아니라 마음 깊이 새겨진 자비와 평화의 씨앗이 될 것입니다.
그리고 오늘 이 자리에서 저는 여러분에게 한 가지 중요한 약속을 드리고 싶습니다. 삶은 예측할 수 없는 여정이지만 그 여정 속에서 우리는 항상 부처님의 가피, 자비와 지혜를 구할 수 있습니다. 혼자라고 느끼는 순간에도 여러분은 결코 혼자가 아닙니다. 부처님의 따뜻한 미소와 가르침이 늘 여러분 곁에 함께하며 이 노승 또한 여러분의 평안을 위해 늘 마음속으로 축원하고 있을 것입니다.
다음 시간에는 집에 절대 들이면 안 되는 물건과 드리면 대박 나는 물건, 바로 풍수 인테리어의 비밀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산 사람의 집이 편안해야 떠난 조상도 편안한 법입니다. 우리의 삶의 공간이 영적인 기운과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 그리고 그 기운을 어떻게 조화롭게 다스려 복을 부르고 애군을 막을 수 있는지 자세히 알려 드릴 것입니다. 일상 생활 속에서 실천할 수 있는 작은 변화들이 여러분의 삶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 깨닫게 되실 것입니다. 다음 영상도 놓치지 마십시오.
지금 여러분의 주변을 한번 둘러 보십시오. 혹시 낡고 오래된 물건들, 잡동사니들이 집안 곳곳에 쌓여 있지 않습니까? 풍수적으로 보았을 때 이러한 물건들은 정체된 기운을 만들고 심지어는 나쁜 에너지를 불러들일 수 있습니다. 특히 돌아가신 분의 유품 중에서도 망자의 집착이 강하게 서린 물건들은 집안에 불길한 기운을 드리울 수 있으니 주의해야 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무조건 버리라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망자의 좋은 기운이 서려 있거나 살아 있는 자에게 위로와 힘을 주는 물건이라면 소중히 간직해도 좋습니다. 하지만 그 경계를 아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풍수에서는 집안의 청결과 정돈이 매우 중요하다고 말합니다. 깨끗하고 정돈된 환경은 긍정적인 에너지를 흐르게 하여 거주하는 사람의 마음을 평온하게 하고 행운을 불러드립니다. 또한 빛이 잘 드는 공간, 통풍이 잘되는 것은 생기 활력을 불어넣어 삶의 활력을 더해 줍니다. 집안의 구조와 배치, 색상 하나하나에도 기운이 서려 있습니다. 예를 들어 침실은 안정과 휴식을 취하는 공간이므로 너무 밝거나 자극적인 색상보다는 차분하고 부드러운 색상이 좋습니다. 또한 침대는 벽에 붙이고 머리맡에는 창문을 두지 않는 것이 안정감을 줍니다.
현관은 집의 얼굴이자 복이 들어오는 통로입니다. 현관을 항상 깨끗하게 유지하고 밝은 조명을 두는 것이 좋습니다. 신발은 신발장에 가지런히 정리하고 불필요한 물건들은 두지 마십시오. 작은 풍경이나 종을 걸어두어 좋은 기운을 불러들이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또한 거실은 가족의 화목과 재물이 모이는 공간입니다. 거실에 밝고 온화한 그림을 걸어두거나 생기 있는 화분을 두는 것도 좋습니다. 특히 거실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햇살은 집안에 활력을 불어넣는 중요한 요소입니다. 주방은 건강과 재물을 상징하는 공간입니다. 항상 청결하게 유지하고
식기는 깨끗이 정리하십시오. 너무 많은 조리도그나 식자제를 쌓아두면 기운이 막힐 수 있습니다. 칼이나 날카로운 물건은 수납하여 보이지 않게 하는 것이 좋습니다. 주방에 싱싱한 과일이나 꽃을 두는 것도 좋은 기운을 더해 줍니다.
욕실은 물의 기운이 강한 곳이므로 항상 건조하고 청결하게 유지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곰팡이나 습기는 나쁜 기운을 모이게 할 수 있으니 주의해야 합니다. 욕실의 방향계를 두어 좋은 향기를 유지하는 것도 좋습니다.
우리 조상들은 오래전부터 자연의 이치와 집안의 배치를 조화롭게 연결하여 삶의 복을 빌었습니다. 풍수는 단순히 미신이 아니라 자연의 순리를 이해하고 그에 맞춰 살아가는 지혜입니다. 기을 정돈하고 필요한 물건만 두며 공간의 생기를 불어넣는 것은 결국 우리 자신의 마음을 정돈하고 평온을 찾는 과정과 같습니다. 깨끗한 환경은 깨끗한 마음을 만들고 깨끗한 마음은 좋은 기운을 불러드립니다.
특히 외로움을 느끼시는 어르신들께서는 집안 환경이 더욱 중요합니다. 정돈되지 않은 집은 마음의 혼란을 가중시키고 우울감을 깊게 할 수 있습니다. 반대로 작고 소박하더라도 안늑하고 정갈하게 꾸며진 공간은 마음의 평화를 가져다 주고 따뜻한 위안이 되니다. 여러분의 집은 단순한 거주 공간이 아니라 여러분의 영혼이 머무는 성스러운 공간입니다. 그 공간을 소중히 다루고 좋은 기운으로 채울 때 여러분의 삶에도 긍정적인 변화가 찾아올 것입니다.
집안에 들리면 좋은 물건들 중 하나는 바로 식물입니다. 생기는 식물은 죽은 공간에 활력을 불어넣고 공기를 정화하며 긍정적인 에너지를 발산합니다. 특히 잎이 둥글고 푸른 관엽식물은 마음을 편안하게 하고 재물운을 좋게 한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거실이나 현관, 공부빵 등에 두면 좋습니다. 다음은 너무 가시가 많거나 날카로운 식물은 피하는 것이 좋습니다. 또한 식물이 시들지 않도록 잘 관리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희든 식물은 오히려 나쁜 기운을 불러들 수 있습니다.
두 번째로 좋은 것은 맑은 소리를내는 물건입니다. 풍경, 종은 부드러운 음악이 흐르는 작은 스피커도 좋습니다. 맑고 창한 소리는 탁한 기운을 흩어주고 좋은 기운을 불러드인다고 합니다. 특히 현관에 작은 풍경을 달아두면 외부에 나쁜 기운이 들어오는 것을 맡고 집안에 평화로운 기운을 감돌게 할 수 있습니다. 영상 음악이나 자연의 소리를 틀어 놓는 것도 마음을 안정시키고 긍정적인 에너지를 채우는데 도움이 됩니다.
세 번째는 밝고 따뜻한 색상의 물건입니다. 특히 노란색이나 주황색 붉은색 계열의 소품은 집안에 온기를 불어넣고 활력을 더해 줍니다. 쿠션, 커튼, 작은 그림, 액자 등으로 포인트를 주는 것이 좋습니다. 너무 과하게 사용하는 것보다는 포인트로 활용하여 생기를 더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러한 색상은 마음을 밝게하고 우울감을 덜어 주는 효과도 있습니다.
네 번째는 가족 사진이나 추억이 담긴 물건입니다. 사랑하는 사람들과의 행복한 순간이 담긴 사진은 집안에 긍정적인 에너지를 채우고 보는 이에게 따뜻한 유안을 줍니다. 다만 돌아가신 분의 사진을 너무 많이 걸어두거나 망자의 유품을 마치 재단처럼 모셔 두는 것은 좋지 않습니다. 산자의 공간에는 산자의 기운이 더욱 충만해야 합니다. 망자의 사진은 잘 정리하여 앨범에 보관하거나 한두 장 정도만 소중하게 두는 것이 좋습니다. 중요한 것은 망자에 대한 그리움과 사랑을 잊지 않히 다음 여정을 떠날 수 있도록 놓아주는 마음을 갖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불쌍이나 성경 혹은 자신이 믿는 종교의 상징물을 두는 것도 좋습니다. 이러한 상징물은 집안에 평화롭고 신성한 기운을 불러들이고 마음을 경건하게 합니다. 매일 아침 저녁으로 그 앞에서 작은 기도를 올리거나 명상하는 시간을 가지는 것은 정신적인 안정과 치유에 큰 도움이 됩니다. 불쌍이나 성경은 단순한 장식품이 아니라 여러분의 믿음과 수행의 의지를 담는 신성한 대상이 되어집니다.
반대로 기반에 드리면 좋지 않은 물건들도 있습니다. 첫째, 오래되고 낡아서 더 이상 사용하지 않으면서 공간만 차지하는 물건입니다. 고장 나거나 망가진 물건. 몇 년째 쌓아두기만 하고 쓰지 않는 물건들은 정체된 기운을 만들고 나쁜 에너지를 축적합니다. 이런 물건들은 과감히 버리거나 필요한 사람에게 나누어 주는 것이 좋습니다. 깨끗하게 비워진 공간은 새로운 기운이 들어올 자리를 만들어 줍니다.
둘째 너무 날카롭거나 공격적인 형상의 물건입니다. 뾰족한 장식품. 칼 같은 무기를 장식으로 두는 것은 집안의 불화를 초래하고 가족 구성원간의 다툼을 유발할 수 있다고 합니다. 이러한 물건들은 보이지 않는 곳에 안전하게 수납하는 것이 좋습니다. 집안은 평화와 안정을 위한 공간이어야 합니다.
셋째, 부정적인 의미를 지닌 그림이나 장식품입니다. 슬픈 표정의 임무화 흉칙한 형상의 조각품, 파괴적인 장면의 그림 등은 보는 이에 마음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칩니다. 집안에는 밝고 희망적인 기운을 불어넣는 그림이나 장식품을 두는 것이 좋습니다. 아름다운 풍경화, 행복한 [음악] 가족의 모습, 평화로운 부처님의 미소 등이 좋은 예가 될 것입니다.
넷째, 죽은 생명체의 박제나 표본입니다. 동물의 뼈나 박제 등은 생명력이 없는 죽은 기운을 내뿜어 집안의 활력을 떨어뜨릴 수 있습니다. 살아 있는 생명 즉 식물이나 싱싱한 꽃을 두는 것이 훨씬 좋습니다. 생명력을 상징하는 것이 집안의 복을 불러들이는 법입니다.
마지막으로 지나치게 많은 거울입니다. 거울은 기운을 반사하는 성질이 있어서 너무 많은 거울을 두거나 침실에 침대가 보이는 곳에 거울을 두면은 기운이 불안정해질 수 있다고 합니다. 특히 침대가 거울에 비치면 수면 중에도 기운이 분산되어 숙면을 방해할 수 있습니다. 거울은 필요한 곳에 적절하게 배치하고 침실에서는 가급적 피하는 것이 좋습니다.
기반의 풍수 인테리어는 단순히 밑적인 요소를 넘어 우리 삶의 에너지 흐름과 깊이 연결되 있습니다. 우리의 마음이 편안하고 안정될 때 외부의 복도 자연스럽게 찾아오는 법입니다. 혼자 사는 어르신들께서는 특히 집안 환경에 신경 써서 언제나 따뜻하고 평화로운 기운이 가득한 복음 자리를 만드시길 바랍니다. 그것이야말로 자신을 사랑하고 아끼는 가장 기본적인 행위이며 부처님께서 가르치신 자비심의 실천입니다.
또한 풍수와 더불어 우리 마음의 풍수도 매우 중요합니다. 기을 아무리 아름답게 꾸며 놓아도 마음이 어지럽고 부정적인 생각으로 가득하다면은 진정한 평화는 찾아오지 않습니다. 불교에서는 마음이 곧 모든 것을 창조한다고 가르칩니다. 우리의 마음이 밝고 긍정적질 때 그 에너지가 주변 환경에도 영향을 미쳐 좋은 기운을 만들어 냅니다. 그래서 매일 아침 잠자리에서 일어나면 가만히 앉아 잠시 명상하는 시간을 가져 보십시오. 눈을 감고 자신의 호흡에 집중하며 마음속에 자리한 모든 걱정과 불안을 천천히 내보냅니다. 그리고 밝고 긍정적인 에너지가 온몸을 가득 채우는 것을 상상해 보십시오. 오늘 하루도 감사합니다. 오늘 하루도 평안롭겠습니다라고 조용히 마음속으로 되내는 것도 좋습니다. 이러한 짧은 명상은 하루를 맑고 깨끗한 마음으로 시작하는데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혼자 계시다 보면 때로는 외로움이 밀려오고 과거의 아픔이 떠올라 마음이 괴로울 때가 있을 겁니다. 그럴 때는 억지로 밀어내려 하지 마시고 그 감정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십시오. 아, 내가 지금 외롭구나, 슬프구나.라고 자신의 감정을 인정해 주는 것만으로도 마음의 짐이 한결 가벼워질 수 있습니다. 그리고 잠시 그 감정 속에 머물렀다가 부처님의 자비로운 미소를 떠올리며이 또한 지나가리라고 되십시오. 모든 것은 영원하지 않고 변화한다는 무상의 진리를 마음에 새길 때 우리는 어떤 감정에도 휩쓸리지 않고 평온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또한 작은 감사 일기를 써보는 것도 마음의 풍수를 좋게 하는 방법입니다. 매일 저녁 잠자리에 들기 전 오늘 하루 있었던 일 중에서 감사할 만한 세 가지를 적어 보십시오. 거창한 일이 아니어도 괜찮습니다. 따뜻한 차 한잔을 마셨던 순간 창 밖으로 비치는 아름다운 노을 지나가는 이웃의 따뜻한 미소 등 소박한 일들 속에서도 감사의 대상을 찾을 수 있습니다. 감사의 마음은 우리 안에 행복의 에너지를 키우고 긍정적인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볼 수 있게 해줍니다.
만약 몸이 불편하여 집안을 정리하기 어렵거나 마음의 외로움이 너무 깊어 홀로 감당하기 힘드시다면 주저하지 말고 주변의 도움을 요청하십시오. 가까운 이웃이나 지인 혹은 복지관이나 사찰의 도움을 청할 수도 있습니다. 우리 불교에서는 서로 돕고 나누는 것을 보시 부수의 중요한 실천으로 여깁니다. 혼자 모든 것을 짊어지려 하지 마십시오. 도움을 요청하는 것 또한 용기이며 새로운 인연을 만드는 아름다운 시작이 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을 사랑하고 아끼는 마음입니다. 평생 자식들을 위해 가족들을 위해 헌신해 오신 여러분은 이제 자신을 위해 살아가야 할 시간입니다. 자신의 몸과 마음을 돌보고 좋아하는 것을 찾아 즐기며 새로운 배움에 도전하는 것은 여러분의 삶에 활력을 불어넣을 것입니다. 사찰에서 진행하는 명상 프로그램이나 불교 교양 강좌에 참여하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비슷한 연배의 도반 도반들과 함께 마음을 나누며 수행하는 것은 외로움을 극복하고 삶의 의미를 찾는데 큰 도움이 됩니다.
날이 찹니다. 부디 건강 챙기시고 부모님이 계실 때 한 번이라도 더 따뜻하게 손잡아 드리는 복된 날 되십시오. 사랑하는 보사님들, 거사님들, 부처님의 가피가 늘 여러분의 가정에 함께하기를 축원합니다. 성불하십시오.
오늘 우리가 나눈 이야기는 단순히 죽음에 대한 공포를 다루는 것이 아니라 삶의 마지막 순간을 어떻게 존엄하게 맞이하고 어떻게 살아가는 일을 평화롭게 떠나보낼 것인가에 대한 깊은 성찰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성찰은 결국 우리 자신의 삶을 더욱 충만하고 의미 있게 만드는 지혜로 돌아옵니다. 이벨은 아픔을 동반하지만 그 아픔 속에서도 우리는 사랑과 자비를 배울 수 있습니다. 육신은 사라져도 영혼의 인연은 끊어지지 않으며 우리의 마음속에 사랑하는 이의 존재는 영원히 살아 숨쉴 것입니다. 그러니 슬픔에 잠겨 절망하기보다는 그들을 위한 평화로운 염원을 보내며 우리 자신의 삶 또한 충실히 살아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기억하십시오. 부모님의 마지막 길을 편안하게 해 드리는 것은 곧 여러분 자신의 마음에 평화를 찾는 길입니다. 그리고 여러분의 마음이 평화로울 때 집안에는 좋은 기운이 가득차오르고 모든 인연들이 화목하게 살아갈 수 있습니다.
이 이 노성은 여러분이이 영상을 통해 얻은 지혜를 바탕으로 삶의 마지막 순간까지 아름다운 인연을 맺고 평화로운 마음으로 살아가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그리고 오늘이 자리에 함께 해 주신 모든 분들의 가정에 부처님의 가피가 항상 충만하여 만사 형통하시고 건강과 행복이 가득하기를 축원합니다. 우리는 모두 부처가 될 수 있는 씨앗을 마음속에 지니고 있습니다. 그 씨앗을 잘 가꾸어 꽃 피우는 것이 우리의 수행입니다. 성불하십시오.
삶의 여정은 때로는 고통스럽고 때로는 외롭고 또 때로는 알 수 없는 두려움으로 가득합니다. 특히 홀로 계신 어르신들께서는 더욱 그러하실 겁니다. 밤이 깊어질수록 밀려오는 정막감. 지나간 세월에 대한 회한 그리고 알 수 없는 미래에 대한 불안감들이 마음을 짓눌 때가 많을 것입니다. 하지만 여러분 기억하십시오. 여러분은 결코 혼자가 아닙니다. 부처님의 자비로운 눈길이 늘 여러분을 지켜보고 있으며이 노승 또한 여러분의 평안을 위해 늘 마음속으로 축원하고 있습니다.
외로움은 인간이라면 누구나 느끼는 보편적인 감정입니다. 하지만이 외로움 속에서도 우리는 깊은 깨달음을 얻을 수 있습니다. 홀로 있는 시간을 통해 우리는 자신의 내면을 깊이 들여다보고 진정한 자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이는 마치 고요한 산 속에서 홀로 수행하는 스님처럼 세상의 번잡함에서 벗어나 오직 자신에게 집중할 수 있는 귀한 기회가 됩니다. 혼자 있는 시간을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오히려 그 시간을 통해 자신과 더욱 깊이 연결되고 내면의 평화를 찾아보십시오.
불교에서는 모든 고통의 근원을 탐욕, 분노, 어리석음 세 가지 독산도에서 찾습니다. 외로움이나 슬픔 또한 이러한 독에서 비롯되거나 혹은 독을 키우는 씨앗이 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이러한 감정들이 마음속에 일어날 때 그것을 억누르거나 회피하기보다는 그 감정의 실체를 직시하고 이해하려 노력해야 합니다. 마치 거울을 통해 자신의 얼굴을 보듯이 마음의 거울을 통해 자신의 감정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연습을 하십시오. 그리고 그 감정의 근원을 찾아보십시오. 왜 지금 내가 외로울까? 무엇 때문에 슬플까? 그 이유를 알아차리는 것만으로도 감정의 힘이 약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을 겁니다. 그리고 그 감정의 주인은 바로 나 자신이라는 것을 깨달으십시오. 외부의 어떤 상황이나 타인의 행동 때문에 내가 외로운 것이 아니라 외로움을 느끼는 것은 내 마음이 그렇게 해석하고 반응하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깨달음은 우리에게 고통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는 힘을 줍니다.
또한 우리는이 세상의 모든 것이 인연 따라 생겨나고 사라진다는 연기법을 항상 마음에 새겨야 합니다. 사랑하는 여호와의 만남도 인연이요 헤어짐 또한 인연입니다. 가족의 죽음으로 인한 슬픔 또한 인연이 다하여 일어나는 자연스러운 현상입니다.이 진리를 이해할 때 우리는 슬픔에 잠겨 헤어나오지 못하기보다는 그 인연에 감사하고 그들의 평안을 빌어줄 수 있게 됩니다. 그러니 보살님들, 거사님들 여러분의 삶에 마지막 장을 쓰고 있는 지금이 순간 후회와 미련로 가득 채우지 마십시오. 오히려 지금까지 살아온 삶에 감사하고 앞으로 남은 시간들을 더욱 의미 있게 채워 나가십시오. 작은 일이라도 좋습니다. 매일 아침 창문을 열고 신선한 공기를 마시며 부처님께 감사 기도를 올리고 따뜻한 차 한잔을 마시며 햇살을 즐기는 것. 가까운 공원에 나가 천천히 산책하며 자연의 아름다움을 느끼는 것. 때로는 예전부터 읽고 싶었던 책을 펼쳐들고 새로운 지혜를 얻는 것. 이러한 작은 행동들이 여러분의 일상에 큰 활력을 불어넣을 것입니다.
삶은 매 순간이 깨달음의 연속입니다. 우리는 살아 있는 동안 끊임없이 배우고 성장할 수 있습니다. 나이가 많다고 해서 혹은 몸이 불편하다고 해서 배움을 멈추지 마십시오. 배우려는 마음이야말로 영혼을 젊고 활기차게 유지하는 가장 좋은 방법입니다. 불교 경전을 읽거나 유튜브에서 법문 영상을 찾아보는 것도 좋습니다. 요즘에는 집에서 편안하게 불교 강좌를들을 수 있는 좋은 기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리고 주변에 어려운 이웃들에게 작은 자비를 베푸는 것도 잊지 마십시오. 따뜻한 말 한마디 작은 도움의 손길 하나가 상대방에게는 큰 위안이 되고 여러분 자신의 마음에는 큰 기쁨으로 돌아올 것입니다.이 노순 오래 전부터 나눔과 배이 가장 강력한 수행이라고 가르쳐왔습니다. 누군가를 돕는 행위를 통해 우리는 자신 안의 자비심을 키우고 세상과 더욱 깊이 연결될 수 있습니다.
때로는 자신에게 솔직해지는 용기도 필요합니다. 내가 지금 무엇을 가장 원하는가? 내 마음의 평화를 가져다 주는 것은 무엇일까? 이러한 질문들을 스스로에게 던져보고 그 답을 찾아보는 시간을 가지십시오. 자식들을 위해 가족들을 위해 살아온 삶이었다면 이제는 오롯이 자신을 위해 살아갈 용기가 필요합니다. 그것이 바로 자신의 존재를 존중하고 사랑하는 방법입니다.이 노성은 여러분이 진정한 평화와 행복을 찾을 수 있도록 늘 마음속으로 기도할 것입니다. 여러분의 가슴에 부처님의 지혜가 등불처럼 밝혀져 어떠한 어려움 속에서도 흔들림없는 마음을 유지하시기를 바랍니다. 모든 생명은 소중하며 여러분 또한이 세상에 둘도 없는 [음악] 귀한 존재입니다. 자신을 아끼고 사랑하며 매 순간을 소중히 여기는 삶을 살아가십시오.
우리는 모두 죽음이라는 마지막 문턱을 넘어야 합니다. 그러나 그 문턱은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입니다. 낡은 옷을 벗고 새로운 옷으로 갈아입듯이 육신을 벗고 새로운 영혼의 여정을 시작하는 것입니다. 불교에서는 윤의 존대를 통해 영원히 끊임없이 새로운 생을 반복하며 깨달음을 향해 나아간다고 가르칩니다. 그러니 죽음 앞에서 두려워하기보다는 또 다른 배움과 성장의 기회로 받아들이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죽음은 우리에게 삶의 유한함을 일깨워 주고 지금이 순간의 소중함을 깨닫게 합니다. 마치 시안부 선고를 받은 환자가 남은 시간을 더욱 의미 있게 보내려 노력하듯이 우리 또한 죽음을 삶의 가장 강력한 스승으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왜 순간을 감사하고 사랑하며 후회 없이 살아가는 것 그것이 바로 죽음을 초월하는 가장 지혜로운 방법입니다.
그리고 49제에 대한 언급이 있었지요. 49제는 망자가 2승에서의 인연을 정리하고 다음 생으로 순조롭게 나갈 수 있도록 돕는 불교의 중요한 의식입니다. 육신을 벗어난 영혼 즉 중음신 쫑일인세는 49일 동안 새로운 생을 찾기 위해 방황한다고 봅니다.이 기간 동안 가족들의 진심어린 기도와 선업, 산계, 공덕이 망자의 앞길을 밝히는 등불이 되어줍니다. 단순히 형식적인 제사를 지내는 것을 넘어 망자를 위한 깊은 염원과 자비심이 담겨야 합니다. 49제는 망자를 위한 것이기도 하지만 남은 가족들이 슬픔을 극복하고 망자를 놓아줄 수 있도록 돕는 중요한 치유의 과정이기도 합니다. 가족들이 함께 모여 망자를 추모하고 좋은 추억을 나누며 망자의 극락 왕생을 빌어주는 것은 슬픔을 공유하고 서로를 위로하는데 큰 도움이 됩니다. 불교에서는 이러한 공동의 염원과 기도가 시공간을 초월하여 망자에게 전달된다고 믿습니다. 그래서 인종의 순간뿐만 아니라 망자가 떠난 후 49일 동안에도 우리는 망자를 위한 마음챙김을 게을리하지 않아야 합니다. 매일 아침 저녁으로 망자의 이름을 부르며 평화로운 곳으로 가기를 빌어주고 작은 선행이라도 베풀어 그 공덕을 망자에게 해양 내시앙하는 것이 좋습니다. 예를 들어 어려운 이웃을 돕거나 환경을 보호하는 작은 실천을 통해 얻은 공덕을 망자에게 돌리는 것입니다. 이러한 행위는 망자에게도 좋지만 동시에 우리 자신의 마음을 정화하고 선업을 쌓는데 큰 도움이 됩니다.
사랑하는 보살님들, 거사님들 우리의 삶은 마치 강물과 같습니다.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고 구비구비 흐르다 바다로 나아갑니다. 죽음은 그 강의 끝이 아니라 더 넓은 바다로 향하는 문과 같습니다. 그 문 앞에서 두려워 떨기보다는 지금까지 살아온 삶에 감사하고 앞으로 다가올 새로운 여정을 희망으로 바라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이 이 노승은 여러분이이 영상을 통해 얻은 지혜가 단순히 머리로 아는 지식이 아니라 마음 깊이 스며들어 삶의 모든 순간에 평화와 자비를 실천하는 힘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여러분의 삶이 부처님의 가르침 속에서 늘 평화롭고 행복하며 고통없는 깨달음의 길로 나아가기를 축원합니다.
이제 마지막으로 다시 한번이 영상을 보시는 모든 분들과 그 가족들의 건강과 행복 그리고 평안을 위해 짧은 연부를 올리겠습니다. 편안한 마음으로 함께 해 주십시오. 나무 아미타불 관세보살. 나무 아미타불 관세운 보살 나무 아미타불 관세보살.이 염불 소리가 여러분의 마음속에 작은 평화의 씨앗을 심고 그 씨앗이 자라. 여러분의 삶을 아름다운 꽃으로 가득 채우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모두 연결되어 있습니다. 제가 여러분을 위해 비는이 마음이 다시 여러분에게 돌아가 여러분의 삶을 밝히는 등불이 될 것입니다.이 세상의 모든 생명들이 고통없이 평화롭게 살아가기를 바랍니다.
삶의 마지막 순간에 대한 이야기는 어쩌면 불편하고 피하고 싶은 주제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피한다고 해서 오지 않을 죽음은 없습니다. 오히려 죽음을 직시하고 이해하려 노력할 때 우리는 삶을 더욱 충만하게 살아갈 수 있는 [음악] 지혜를 얻게 됩니다. 마치 어두운 터널의 끝에 빛이 있듯이 죽음이라는 터널의 끝에도 새로운 시작과 평화로운 빛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많은 어르신들께서 홀로 지내시는 동안 자신의 죽음에 대해 미리 생각해 보고 준비하는 시간을 가지는 것이 좋습니다. 유원장을 작성하거나 장례 절차에 대한 자신의 뜻을 미리 가족들에게 알리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이러한 준비는 죽음의 순간에 가족들에게 부담을 덜어주고 자신 또한 마음의 평화를 얻는데 도움이 됩니다. 불교에서는 이를 생전 유원 혹은 임종 준비라고 부르며 지혜로운 삶의 마무리로 여깁니다. 죽음을 미리 준비하는 것은 결코 불행을 불러들이는 행위가 아닙니다. 오히려 죽음을 삶의 한 부분으로 받아들이고 그 순간을 조놈하게 맞이하기 위한 현명한 태도입니다. 살아있는 동안 좋은 인연을 맺고 선한 업을 쌓으며 마음을 평화롭게 유지하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이제 여러분은 임종의 순간에 사랑하는 가족에게 어떤 말을 해야 할지 어떤 마음가짐으로 그들을 배웅해야 할지 알게 되셨습니다.이 지혜는 단순한 정보가 아니라 여러분의 마음속 깊이 자리하여 훗날 찾아올 이별의 순간에 큰 힘이 될 것입니다. 부모님과의 마지막 작별은 세상에서 가장 슬프면서도 가장 아름다운 순간이 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의 따뜻한 마음과 지혜로운 행동으로 그 순간을 빛나는 추억으로 만드시기를 바랍니다.
다시 한번 강조하건데 임종은 끝이 아닙니다. 새로운 시작입니다. 그리고 그 시작의 문을 여는 열쇠는 바로 여러분의 사랑과 자비 그리고 놓아주는 용지 속에 있습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처럼 모든 생명은 끊임없이 변화하고 순환합니다.이 순환의 고리 속에서 우리는 영원히 서로 연결되 있습니다. 그러니 부모님의 영혼이 편안히 다음 여정을 떠날 수 있도록 그리고 여러분의 마음에도 평화가 찾아올 수 있도록 오늘 배운 지혜를 꼭 실천하시기를 바랍니다.이 노승은 늘 여러분의 평안을 위해 기도하며 다음 시간에 더 유익하고 지혜로운 이야기로 다시 찾아뵙겠습니다. 그때까지 건강하시고 마음 평화로운 나날이 이어지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