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anscription
할렐루야. 아멘. 아멘. 잠깐 웃어 봅시다. 예. 자, 옆에 있는 분에게 다 우리 인사를 하대요. 어, 이렇게 한번 해 봅시다. 아, 저와 집사님은, 성도님은 동지입니다. 그렇게 한번 해 보세요. 자, 이렇게 또 한번 해 볼까요? 우리는 큐티 동지야. 자, 이렇게 한번 해 보세요. 예. 한번 더, 우리는 말씀의 동지입니다. 말씀의, 예. 할렐루야. 아멘. 감사합니다. 또 초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아, 1989년도. 어, 그때 아, 저는 부산에서 서울로 왔습니다. 서대문의 인론 동산교회 고동부 전도사로 부임을 하였는데, 교회에서 카세트테이프 하나를 우연히 발견하게 되었어요. 그리고 그 테이프를 제가 반복하여서 여러 번 들었어요. 어, 너무너무 은혜가 되어지는 거예요. 강의하셨던 분은 목사님이 아니고요, 집사님이셨어요. 아, 그래서 아, 제가 1990년도 다시 후암교회 중동부하고 청장년부 그룹을 맡으면서 우리 중동부 학생들에게 그 집사님을 초대를 하였습니다. 오셔서 저희 중동부 학생들에게 강의해 주시면은 어떻겠습니까? 기쁨으로 오셔서 말씀을 전하고 강의를 해 주었습니다. 참 좋았습니다. 질문 한 가지 할게요. 그 집사님 누구게요? 예. 아, 말씀 묵상과 적용에 대하여서 어, 강의도 해 주시고 간증도 해 주시고 이렇게 해서 학생들도 은혜 받았고, 선생님들도 은혜 받았고, 저도 참 좋았어요. 그래서 어, 오셔서 감사합니다라고 인사를 드리면서 어, 집사님께서 가시는 그 뒷모습, 그게 가방을 요렇게 둘러메고 가시는데, 아, 제가 그런 마음을 가졌어요. 내가 담임 목사가 되어지면은 저분을 다시 초대하여서 온 교인과 함께 강의를 다시 들어야 하겠다, 그렇게 생각을 하였습니다. 예.
아, 그러니까 지금부터 몇 년 전이었어요? 1990년도, 그때 제가 그런 마음을 가졌다라고 한다면은 몇 년이 되었을까요? 예. 그때 아, 목사님을 보셨던 분 한번 손 들어 보실까요? 없지요. 예. 없지요. 예. 저는 아, 그 모습을 보면서 너무도 예쁘기도 하시지만은 말씀의 은혜 가운데 젖어 계셨고요, 영혼이 굉장히 맑으시다, 그런 느낌을 받았어요. 어, 그래서 아, 참 좋았습니다. 네, 지금도 여전히 예쁘시고, 여전히 말씀으로 충만하시고, 여전히 영혼이 맑으십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예, 박수를 한번 보낼까요? 감사합니다. 예.
호주에서 개척을 하고 담임이 되어져서 목회를 하면서 목사님이 생각이 나서 메일을 보냈습니다. 아, 메일을 보내서 목사님, 이곳에 오실 수 없어요? 그렇게 아, 메일을 드렸더니 아, 갈 수 있다고 하시더니, 목회 일정이 바쁘셔 가지고 내가 못 가게 되었으니, 그러니 아, 여기 와서 목회자 세미나, 그때는 목욕탕 세미나였어요. 목욕탕 세미나에 참석하지 않겠느냐 제안을 해 주었어요. 그래서 제1회 목회자 세미나에 제가 참석을 했더래요. 아, 2014년도에요. 아, 그리고 2025년도에 아, 원래 목사님께서 호주를 다시 찾아 주셨어요. 다시 찾아 주신 것은 저는 하나님의 축복이고 저희들에게 큰 은혜다, 이렇게 생각을 하였습니다. 만남의 기쁨이요, 만남의 축복이었습니다. 근데 오셔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시는데, 오셔 가지고 오로지 강의에만 집중하시고요, 어떻게 하든지간에 호주에 있는 사람들이 큐티를 해야 된다고 그냥 아, 열과 성기를 다하여서 강의를 하시는데, 그 강의하시는 그 모습이, 말씀을 전하는 모습이 또한 너무 멋있는 거 있잖아요. 여러분 보셨어요? 예. 저는 봤어요. 예. 그래서 오셔서 다른 데 가시지 않고, 예. 아무도 가시지 않고, 오직 그냥 섬기고, 강의하고, 여기만 집중하시고 그렇게 하는데, 제가 아이고 목사님, 아, 건강 상하시면 어떻게 할까 걱정도 했는데, 나중에 여쭤 봤어요. 뭐, 조금 그렇지만 괜찮았다고 이런 말씀을 하시는데, 아, 목사님 건강을 위하여서, 사역을 위하여서 여러분들이 계속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저는 아, 다시 아, 이제 이번에 참석을 하게 되었는데, 아, 그러면은 1회 참석을 하겠고, 목사님 오셔서 세미나하셨고요, 그다음에 20회 여기에 참석을 했기 때문에 예, 세 번밖에 참석을 못 했어요. 그래서 아, 조금 예, 아쉽기도 합니다만은 아, 이번 20회 참석을 하면서 1회 때보다는 더욱더 말씀도 풍성하고, 어, 나오셔서 간증을 하시는 분도 풍성하고, 또 목사님들과 여러 스텝진들이 섬기는 모습들이 너무나 감탄스럽고 감격스러웠어요. 어, 모습을 보면서 헌신과 기쁨의 찬 모습으로 섬겨 주시는 그 모습을 보면서 어, 이런 생각을 갖게 되어져서요. 목사님이 참 좋으시고, 성도님도 너무 좋고, 목사님의 말씀을 듣고, 말씀을 묵상하면서, 그러면서 목사님은 예수님의 모습을 닮아가고, 성도 여러분들은 목사님의 모습을 닮아가면서 예수님의 모습을 닮아가는 그 모습을 바라보면서, 초대교회처럼 정말 따뜻한 교회, 그러면서도 동시에 불꽃과 같은 뜨거운 교회, 이런 교회를 경험할 수, 제게 기회를 주셔서 제가 목사님께, 제가 우리들 교회 성도 여러분들에게 삼석자를 대표하여서 인사를 드리면서 박수를 보내 드립니다.
제가 섬기고 있는 멸번 세순 교회는 이렇게 탄생을 하였습니다. 2003년도, 호주 빅토리아주의 아, 그곳에 연합 교단이 있습니다. 유나이팅 처치가 되어졌는데요, 동성애를 하는 사람에게 목사 안수를 주겠다라고 하는 이와 같은 결의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어, 이 유나이팅 처치 연합 교회에 소속되어 있는 일부 성도들이 이것에 대하여서 반대를 하면서 교회에서 나오셔서 세련드이 세순 교회에 요청을 하였습니다. 아, 당시 저는 시든이 세순 교회 담임 목사님은 지금 수영 교회에 담임 목사님, 이교 목사님께서 신는 세순 교회에서 목회를 하고 계셨는데, 시든이 세순교회 요청을 하였기 때문에 2004년도에 파송을 받아서, 그래서 어, 멜번 지역에서 교회가 시작이 되어진 것입니다. 개척과 함께 어, 큐티를 하였습니다. 그리고 큐티하면서 주중에는 부부 모임인 순모임이 있고, 주일 예배 직후 1부 예배, 2부 예배, 청년들은 청년부 예배 마치고 난 다음에 남성들의 큐티 그룹이 있고, 여성들의 큐티 모임이 있습니다. 코로나 바이러스 기간 속에서 제대로 모이지 못하였지만은, 그러나 꾸준히 지금도 모이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우리 전 세계에서 가장 큐티를 잘하고, 잘 적용하여서, 그러면서 하나님의 백성들이 모여 은혜를 나누는 곳이 있다라고 한다면은 당연히 우리들 교회지 않습니까? 그러니 자연스럽게 우리들 교회를 바라보게 되어지고요, 우리들 교회에 세미나를 통하여서 제가 은혜를 받고, 또 목사님 오셔서 저희 교회 성도들에게 또 많은 은혜를 주셔서, 또 도전을 받은 대로 지금 큐티를 그렇게 해 나가고 있습니다. 이 부분에 대하여서도 어, 굉장히 감사를 드리고 싶습니다.
자, 이제 말씀으로 들어가서 생각을 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남유다의 불행은 어디에서 출발하였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까? 남유다의 불행은, 예루살렘의 불행은 하나님의 말씀을 오랫동안 듣지 않았고, 그리고 타락한 양심에, 소견의 옳은 대로 행한 것으로부터 출발을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지 아니하니까 그들은 어리석게 우상을 숭배하게 되어진 것입니다. 우상을 숭배하게 되어지니 종교적으로, 영적으로 음란하게 되어지고, 동시에 바알 선지자, 아세라 목상을 섬기는 그 종교는 영적으로 타락할 뿐만 아니라 그 우상을 섬기면서 성행위를 하는 음란함이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지 아니, 우상 붙잡고, 우상 붙잡으니 음란한 행동을 하는 이와 같은 일들을 하게 되어진 것이죠. 그러니 하나님께서 어, 북쪽 이스라엘 나라는 이미 망하였고, 남유다를 바라보시면서 너무너무 안타까우셔서 선지자 예레미야를 보내 주었습니다. 예레미야는 통곡을 하면서 남유다의 왕들에게 그리고 고관들에게 그리고 유다의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였습니다. 어제 토요일 본문에는 예레미야가 어떤 상태에 있었을까요? 갇혔습니다. 갇혔기 때문에 어제 여러분들이 말씀을 나눈 것은 갇힌 것에 대하여서 간증을 하였어요. 어제 토요일 날 결혼식이 아, 판교 체플에서 있었는데요, 참석하여서 보았습니다. 신랑도 신부도 어, 이 결혼식에 큐티 간증을 그곳에서 하시더라고요. 그렇게 하면서 보니까 이 갇힘에 대한 부분들에 대하여서 어, 이 결혼식조차도 말씀을 나누는 것을 보면서 또 다른 은혜를 받게 되어졌습니다.
자, 그렇다라고 한다면은 오늘 본문 속에서 조금 더 더 들어가서 생각을 해 보면은 머무는 자와 항복하는 자에 대하여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2절 말씀을 봅니다.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이 성에 머무는 자는 칼과 기근과 전염병에 죽으리라. 그러나 바벨론에게 항복하는 자는 살리니, 그는 노략물을 얻음같이 자기의 목숨을 건지리라. 그렇게 말씀을 하였습니다. 자, 하나님께서는 이 예루살렘 성에 머무는 사람들은 칼, 기근, 전염병에 죽으리라. 그렇게 말씀을 하였습니다. 신명기 말씀부터 시작하여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징계할 때 칼, 기근, 그다음에 전염병, 세 가지를 징계하겠다. 세 가지를 통하여 징계하겠다. 그렇게 말씀을 하였습니다. 여기서 이 질문을 이렇게 해 봅니다. 아니, 왜 하나님께서 이 성, 예루살렘에 머무는 사람에게 칼과 기근과 전염병에 죽을 것이라고 그렇게 하였을까요? 그 답은 뻔하다고 하는 겁니다. 바로 예루살렘에 하나님의 말씀이 없습니다. 살아 있는 예배가 없다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성을 떠나라, 그렇게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만약에 하나님께서 제가 살고 있는 곳에서, 여러분들이 살고 있는 곳에서 떠나라고 그렇게 한다면은 쉽게 떠날 수 있겠습니까? 서울에서 떠나라. 경기도에서 떠나라. 그렇게 한다면은 쉽게 떠날 수 있겠습니까? 어떻게 생각을 하면은 우리가 살고 있는 이곳에는 칼의 전쟁이 없습니다. 한국도 마찬가지고, 호주도 마찬가지고, 칼의 전쟁은 없습니다. 그리고 아주 심각한 기근도 없습니다. 그리고 전염병, 전 세계적으로 있었지만은 그러나 이제 이것도 지나가게 되어졌습니다. 그렇다라고 한다면은 우리는 칼, 그다음에 기근, 전염병 없이 살 만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여기서 그치지 말고 조금 더 묵상하면서 생각을 해 봅니다. 하나님, 아, 문자적으로 눈에 보이는 칼, 기근, 전염병이 없다라고 한다면은 영안을 열어서 영적인 세계 속에서 우리가 생각하면서, 하나님, 어떤 칼이고, 어떤 기근이고, 어떤 전염병에 우리가 시달리게 될 것입니까? 이 이 질문을 하게 되어지면은 사단의 세력들은 오늘도 많은 크리스천들에게, 또 세속에 있는 사람들에게 사단의 칼날에 시달리도록 이렇게 하고 있다고 하는 거예요. 그래서 영적 전쟁이라고 하는 것을 생각을 해 보면은 지금도 이 사단의 칼날이 우리를 향하고 있다고 하는 겁니다. 어떤 기근으로 허덕이고 있는가? 말씀이 없는 기근이 아닐까요? 성령의 은혜가 없습니다. 성령의 능력이 없는 그 자체가 기근이 아니겠습니까? 그러면서 영적인 메마름으로 갈증을 느끼면서, 내 영혼의 하나님의 은혜가 채워지기를 바라는 이 마음으로 살아가고 있는데, 왠지 모르게 우리의 마음은 공허하기만, 그렇게 한다면은 우리에겐 기근이 다가오고 있다. 그렇게 생각을 해야 될 게 있습니다. 어떤 전염병으로 시달리고 있습니까? 현대 사회는 세계적으로 전통적인 기독교를 배척하고 있습니다. 다양한 종교를 인정을 하고 있습니다. 성소수자의 인권을 어, 이것을 그 인권이라는 이름으로 결국 믿는 크리스천들에 대하여 역차별을 하고 있는 이와 같은 가운데 있습니다. 우리가 생각하기 그 훨씬 뛰어넘는 이상한 사상의 흐름이 쓰나미처럼 밀려오고 있습니다. 정치, 특히 문화, 예술, 영화 부분에 있어서 잘못되어진 사상의 흐름들이 밀려오기 시작을 한 것입니다. 제가 살고 있는 호주는 어떠할까라고 할 때, 호주 시민권을 받기 위하여서 시험을 칠 때, 호주 사회는 어떤 사회입니까라고 이렇게 얘기할 때, 호주 사회는 기독교의 국가가 아니라 세속 사회다. 그렇게 답을 해야 이게 정답이 되어지는 거예요. 그러니까 세속 사회다라고 하는 것은 모든 종교를 다 인정을 하고, 그러면서 살아가자. 그렇게 되어지는 거예요. 저는 호주가 기독교 국가인 줄 알았더니 그것이 아니었어요.
자, 그렇게 되어지면서 이런 영적인 부분에 있어서도 우리가 이 성에 머물면서 다오이 되어지는 영적 전쟁, 영적 기근, 영적 전염병에 대하여서 생각을 해 봅니다. 그다음에 다시 말씀을 묵상하면서 우리들에게 현실적으로 밀려오게 되어지는 칼과 기근과 전염병이라고 한다면은 우리가 어떤 것이 있을까라고 이렇게 얘기할 때, 직장 생활을 하면서 여러 가지 위협을 받고 있다고 하는 것, 그리고 생활 속에서 어, 재정에 대한 기근은 없는가? 그다음에 정말 사랑하면서 살아가야 되는데, 사랑에 대한 기근이, 이것이 있음으로 인하여서 가정이 굉장히 메마르게 되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이들도 울고 있고, 부부가 서로 어, 이 여러 가지로 그 서로에 대하여서 어, 정제하고 있고, 그러면서 아픔을 많이 가지고 있다고 하는 거예요. 어, 호주는 이미 마약에 대하여서 상당히 허덕을 하고 있습니다. 이런 가운데서 한국은 어떠할까 할 때, 아이, 한국에도 마약이 점점 많이 들어오고 있고, 전염이 되어지고 있지 않습니까? 음란으로 점점 되어 있는 것이 점점점 이 사회가 그렇게 바뀌어 나가고 있다고 하는 거예요. 그래서 이런 현상 속에서 다시 질문을 다시 또 해 보는 겁니다. 왜 예루살렘 성에 머물면 안 된다고 반복하여서 계속해서 강조하고 있을까? 왜 항복하라고 하였을까? 라고 라고 하는 것에 대하여서 생각을 해 보면서, 그렇다라고 한다면은 나는 어느 자리에서 떠나가야 될 것이고, 그다음에 떠나가서 내가 머물러야 될 장소가 있다라고 한다면은 무엇인가, 그것에 대하여서 생각을 해 보아야 될 줄로 압니다. 제가 살고 있는 호주에 대하여서 조금 더 얘기를 하겠습니다. 동성애와 관계되어지는 부분을 반대하기 위하여서 박스힐이라고 하는 지역에 나가서 피켓을 들고 나가서, 그래서 교인들과 더불어서 함께 동성애 반대한다라고 하는 이 부분에 대하여서 또 시위도 하고 그렇게 하였습니다. 이런 피켓을 들고 시위할 때, 모든 그 호주 사람들이 차를 타고 지나가면서 창문을 열어 놓고 비난을 하기 시작을 하였어요. 그래서 어, 그 동성애에 반대한다고 시위하는 그날 호주에서 가장 많이 욕을 얻어먹었습니다. 왜냐면은 우리를 인권을, 이것을 생각하지 않은 이런 사람으로 그렇게 생각을 하게 되어진 거예요. 그리고 그 이후에 호주에서 어, 정책들이 바뀌어져 나가게 되어집니다. 이런 가운데서 어, 저희 교인 가운데서 한 교수님이 이렇게 얘기를 하는 거예요. 목사님, 교수 중에 자기가 여성인데 남성이라고 하면은 그러면은 그 사람은 어, 여성인데 남성이 되어지고, 또 남성인데 제가 여성이라 이렇게 얘기를 하면은, 그러면 여성이 되어진다고 하는 거예요. 그러면 어떻게 생각을 하게 됩니까? 만약에 저는 남자입니까, 여자입니까? 남자. 저 오늘부터 여자 할래요. 그러면 어떻게 될까요? 여러분들이 이렇게 얘기할까요? 아니에요. 목사님은 남자예요. 그러면은 왜 저한테 그런 얘기를 해요? 제가 수치심을 느꼈어요. 이렇게 가지고 얘기를 하면은 그러면 그 사람을 그 대학 사회에서 퇴출을 시켜 나가는 거예요. 그러면 어떻게 생각을 하세요? 자, NSW주. 저희가 살고 있는 곳은 빅토리아주고요, 뉴 어, 사우스웰즈라고 하는 이 시드니가 있는 그 지역 쪽에서는 성정체성의 문제 때문에 제가 아, 성에 문제가 생기게 된 것 같아요. 저를 위해서 기도해 주세요. 그래서 그 기도 제목에 부탁을 받고 기도하게 되어지면은 이게 불법이라고 하는 거예요. 예. 이런 사회로 바뀌어 나가게 되어지는 거예요. 기가 막히지 않습니까? 그러면서 우리 아이들이 학교에 다니면서 이제 아이들이 교육받는 것은 양성에 대하여서, 그다음에 여러 가지 성전환과 관계되어지는 부분에 대하여서 어, 이것을 가르치게 되어지는 겁니다. 우리 호주에서 이 부분에 대하여서 강하게 반대를 할 때, 시드니에서 이와 같은 얘기가 흘러나와서요, 어, 어떤 부분이냐면은 동성애를 허락을 해 주면은 그다음에 사람이 짐승과 관계하는 것을 허락해 달라고 그렇게 하는 이쪽으로 가게 되어진다고 하는 거예요. 그러면은 사람은 그 인격이 나중에는 짐승처럼 바뀌어지게 되어지는 이런 사회로 가게 되어지는 그 흐름에 대하여서 우리가 알고 있어야 된다. 그렇게 얘기를 하였습니다.
자, 그렇다라고 한다면은 다시 본문 속으로 들어와서, 하나님은 왜 떠나라고 하였을까? 첫째는 뭐였습니까? 하나님 말씀이 없다. 두 번째는 살아 있는 예배가 없다. 예루살렘은 어, 소위 말하는 도둑의 소굴이 되어 버렸다. 이런 생각을 하게 되어질 것입니다. 그러면은 왜 이 성에 머물면 안 되고 자꾸 항복을 하라고 이렇게 하였을까라고 생각을 하면서 저도 큐티를 하면서 묵상을 하면서 이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하나님께서 재건축을 하시려고 하는 거예요. 예루살렘을 다시 재건축을 하겠다라고 하는 겁니다. 그래서 예루살렘을 재건축하기 위하여서 예루살렘에 살고 있는 사람들을 바벨론으로 이주하여서 70년 동안 바벨론에서 고난 학교에서, 그곳에서 고난을 받으면서 양육받고 훈련받아야 되지 않겠느냐, 새롭게 되어야 되지 않겠느냐라고 하는 쪽으로 마음에 와닿게 되어졌습니다, 여러분. 어, 그래서 재건축을 하겠다고 비켜라라고 한다면은 쉽게 결정이 되어지지 아니할 겁니다. 여기서 이제 구속사적으로 생각을 해 볼 때에 이런 부분이 있습니다. 예루살렘은 말씀이 없는 곳이 되어 버렸습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는 제사가 사라진 곳이 되었었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면은 좋을까요? 청소해야 되고, 재건축해야 되지 않겠습니까? 바벨론에게 항복하여서 가라고 이렇게 합니다. 과연 예레미야는 하나님의 그 크신 계획에 대하여서 다 알고 있었을까요? 예레미야는 그곳에 가서 70년 만에 돌아올 것에 대하여서 이미 예언을 해 두었습니다. 그렇다라고 한다면은 그곳에 가서 잘 훈련받고, 잘 양육받고 돌아와야 된다고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제가 느낀 우리들 교회의 강점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묵상하고, 해석하고, 적용하고, 나누면서, 그리고 나눌 수 있는 공동체가 있습니다. 그 공동체에서 서로가 서로에 대하여서 위로하고, 격려하며, 양육을 시켜 줍니다. 양육을 받은 사람들이 모여서 다시 예배를 드리는 이 예배 공동체는 정말 은혜의 공동체, 뜨거움의 공동체다. 전 그렇게 느껴지게 되어집니다. 그러면서 생각이 이렇게 나는 거예요. 바벨론으로 가서 바벨론 제국의 통치 아래에서 고난을 받지만은 그곳에서 양육받고, 보이지 않는 하나님 앞에 훈련을 받아서, 행복이 아니라 거룩을 추구하면서 살아가는 사람. 행복이 아니라 뭐라고요? 거룩이다. 저도 오해를 했습니다. 예. 그래서 인생의 목적은 행복이 아니라 거룩이다. 아, 이렇게 살아가야 되지 않겠습니까? 자, 그러면서 예루살렘에 대하여서 다시 생각을 하게 되어졌습니다. 예루살렘, 그곳은 어떤 정체성을 가지고 있을까? 예루살렘에는 성전이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 예배드리는 솔로몬 성전이 있습니다. 그렇다라고 한다면은 범죄 소굴이 되던 솔로몬 성전을 하나님께서 버리시는 거예요. 그럼 버리면 어떻게 되어지는 겁니까? 완전히 지금 계속 예언해 주는 예언의 메시지는 이 성전이 파괴가 될 것이라고 그렇게 얘기를 하고 있지 않습니까? 예루살렘도 파괴가 되어지고요, 훗날에 나중에 스룹바벨 성전이 지어지게 되고, 느헤미야가 돌아와서 성벽을 다시 지을 때까지 완전히 이 성은 무너진 상태가 되어지게 될 것입니다.
자, 그런데 성경을 보는 가운데서 솔로몬의 백향목으로 지어졌던 아름다운 성전이 아니고, 스룹바벨이 돌아와서 짓게 되어지는 그 어 성전은 일반 잡목으로 짓게 되어지는 거예요. 백향목이 아닙니다. 일반 나무로 어, 짓게 되어지는 거예요. 자, 그러면서 이 부분에 대한 학계서 2장 9절에 있는 말씀이 우리들에게 도전을 주고 있습니다. 같이 함께 읽어 보겠습니다. 시작. 이 이 성전의 나중 영광이 이전 영광보다 크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내가 이곳에 평강을 주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잘 생각을 해 보면은 이런 뜻이 담겨져 있습니다. 새롭게 짓는 이 스룹바벨의 성전의 나중 영광. 그다음에 이전 영광. 이전 영광은 솔로몬 성전의 영광이고요, 스룹바벨의 성전의 나중 영광, 이렇게 얘기를 하고 있습니다. 근데 여기서 이제 신학적 얘기를 해서 죄송한데요, 스룹바벨의 성전은 비록 부족하지만은 신약 시대를 바라보면서 지어진 성전이라 하는 거예요. 솔로몬 성전보다 화려하지 않습니다. 초라합니다. 그러나 모든 포로 후기의 선지서는 다 예수님을 바라보면서 예언된 메시지이기 때문에, 예수님을 바라보는 성전이 되어지는 거예요. 여러분, 50평에 살다가 재건축하여서 25평으로 갔습니다. 어떻게 생각을 하면은 야, 정말 우리가 왜 이렇게 되었는가, 이런 생각을 갖게 되어지지만은 25평에서 하나님을 찬양하고, 하나님을 예배하게 되어지는 거예요. 그래서 이 예루살렘을 생각을 할 때, 예수님을 바라보고, 예수님을 생각하면서 예배드리는 그곳, 바로 그곳을 하나님께서 재건축하자 하는 뜻이 되어지는 겁니다.
자, 그렇다라고 한다면은 내가 적용하여서 내가 떠나야 될 것은 어디인가? 내가 항복하여 선택해야 할 것은 무엇인가? 만약에 떠날 수 있다면, 나 어디로 가는 것이 좋을 것인가? 만약에 떠날 수 없다라고 한다면, 내가 있는 이 자리에서 나는 나의 삶을 어떻게 변화시켜 나가야 될 것인가? 답은 하나님의 말씀을 다시 붙잡아야 되고요, 다시 하나님 앞에 뜨겁게 예배드릴 수 있는 이와 같은 공동체로 회복이 되어지는 이 자리로 나가야 되지 않겠습니까? 이 이 선택을 하지 않게 되어지면은 이 땅에는 기근과 전쟁과 전염병으로 인하여서 어려움을 당하게 될 것이다. 그렇게 말씀을 하고 있기 때문에, 예루살렘에 다시 하나님의 말씀이 임하여야 될 줄로 믿습니다. 아멘.
두 번째 생각을 해야 될 것은 나는 어디에 던져져 있는 것인가 하는 것입니다. 예레미야가 갇혀 있을 때도 있었지만은 마침내 진창뿐인 구덩이에 던져졌습니다. 6절 말씀을 제가 읽어 드리겠습니다. 그들이 예레미야를 끌어다가 감옥 뜰에 있는 왕의 아들 말기야의 구덩이에 던져 넣을 때, 예레미야를 줄로 달아내렸는데, 그 구덩이에는 물이 없고 진창뿐이므로 예레미야가 진창 속에 빠졌더라. 그렇게 얘기를 하고 있습니다. 자, 이게 진창이라고 하는 말, 우리가 엉망진창이 되었다, 그런 말을 사용하고 있지 않습니까? 이 이 부분에 대하여서 새 번역이나 쉬운 성경에서는 진창을 물이 질퍽한 진흙탕이다. 그렇게 번역을 해 두었습니다. 그러니 구덩이인데 거기에 빠져버리고 말았다라고 그렇게 얘기를 합니다. 우리가 이 땅에서 살아가면서 어떤 일을 만나게 되어지는 겁니까? 저는 부부 목장에도 가 보았고요, 여자 목장을 탐방을 하면서 참 좋았습니다. 정말 여기서 생활하면서 삶의 현장에, 때로는 엉망진창의 상황 속에서도 서로 위로하고 격려하는 모습. 그 모습이 너무나 아름다웠습니다. 공동체 안에서 마치 구덩이에 빠진 상황이 있었는데, 서로가 위로해 주고, 서로가 자기의 삶을 나누면서 다시 회복시켜 주는 이와 같은 모습을 보면서, 그 구덩이에 빠진 사람들을 위로와 회복으로 그들을 다시 끌어내는 이 아름다움을 제가 보게 되어진 것입니다. 그러면서 생각이 나서요. 우리는 어떤 어려움을 통하여서 우리의 삶이 자칫 잘못하게 되어지면은 구덩이에 빠져버릴 수도 있겠다. 그런 생각을 갖게 되어지는 것입니다. 이것은 호주도 마찬가지고, 한국도 마찬가지라고 하는 겁니다. 사람이 살아가고 있는 곳에는 어떤 어려움으로 인하여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 이런 상황을 많이 만나게 되어지는 것입니다. 잘못된 만남으로 인하여 울고 있을 때도 있고, 힘겨운 하루살이, 너무나 버거워서 몸부림을 칠 때도 있다고 하는 겁니다. 재정적 위기로 인하여 기가 막힐 구덩이에 던져져 있을 때도 있습니다. 음란의 문제, 마약의 문제, 자녀 양육의 갈등에 갇혀 있거나, 어떤 상태에 빠져서 나오지 못할 진창 속에 헤매고 있는 이와 같은 경우, 거기에도 있고, 여기에도 있고, 사람이 사는 곳에는 여러 군데 있다고 하는 거예요. 성경에도 나옵니다. 요셉도 구덩이에 빠졌습니다. 다윗도 시편 40편에 구덩이에 빠졌다고 그렇게 고백을 하고 있습니다. 이 어려움 가운데 빠지게 되어졌을 때에 나는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 것인가, 이런 부분들에 대하여서 생각을 해 봐야 될 것입니다. 내 힘으로, 내 지혜로 감당하기 어려울 때가 많이 있습니다. 포기하고 싶을 때도 많을 겁니다. 하지만 크신 하나님의 계획, 우리가 다 알 수 없지만은 주님을 바라보면서 고난의 학교를 통과해야 될 줄로 믿습니다.
저는 말씀을 준비하면서 즐겨 부르는 찬송이 생각이 났습니다. 주님여, 이 손을 꼭 잡고 가소서.
주 나는 주님께 속한 자들이여 주의 나라 위에 천신으로 살리라 주의 마음에 반한 자여 기신 한번 나는 주님께 나는 주님께 속한 자여 주의 나라 위에 조심 살리라 주의 마음에 각한 자되어 소 이루리라. 우리 이 시간 말씀을 생각하며 함께 기도하겠습니다.
내가 갇힌 곳, 내가 빠진 웅덩이, 엉망징창의 삶의 현장에서 찬양하며 기도하며 말씀을 붙잡고 이겨 나갈 수 있도록 기도합시다. 건져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할 수 있도록 주여 붙잡아 주옵소서. 주여 이렇게 세워 주옵소서. 다시 사명의 자리에 굳게 설 수 있도록 인도하여 주시고 우리에게 필요한 능력을 허락하여 주옵소서. 사명자는 망가지 않는다고 하였습니다. 망가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살리는 사람, 건져내는 사람이 될 수 있도록 하나님의 도움을 구합니다. 큐티의 결론은 영혼 구원이라고 했으니 사람을 살리는 사람 되게 해 달라고 우리 부르짖어 함께 기도하도록 하겠습니다.
주여 주님 우리를 살리신 주의 은혜를 보게 하여 주시옵소서. 하나님 아버지, 나의 영원한 아버지, 아버지 허락하시고 주의 곁으로 주여 사명자로 불러주시기 위하여서 나를 연장하시는 주님의 은혜를 바라보게 하여 주시옵소서. 하나님, 내가 받은 그 은총 안에서 하나님 아버지 찬양하며 인내하고 주님의 삶을 담당하여 이겨내는 아버지 믿음의 길에 아버지 우리 함께하여 주시옵소서. 섬겨 주옵소서. 은혜로우신 하나님, 새로운 영적 양육과 훈련을 위하여 결단하라고 말씀을 하였습니다.
내가 갇힌 곳, 내가 빠진 웅덩이, 엉망칭찬의 현상 현상 속에서 찬양하게 하여 주시고 기도하면서 이겨 나갈 수 있도록 축복하여 주옵소서. 건져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할 수 있도록 붙잡아 주옵소서. 주여 우리를 세워 주옵소서. 주여 다시 사명의 자리에 굳게 설 수 있도록 인도하여 주옵소서. 망가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살리는 사람, 건져낸 사람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축복하여 주시옵소서.
주님 앞에 귀한 물질 올려 드립니다. 하나님이여, 예물을 받으시고 영광을 받아 주옵소서. 우리의 눈물입니다. 우리의 땀입니다. 하나님께서 예물을 받으시고 삶을 축복하시고 가정을 축복하여 주시고 특별히 믿음의 자녀들을 축복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