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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나’를 찾아 원하는 모습으로 사는 법 (부제 : 신이 되는 법) | 뉴스의 시대 마지막화

Sound Sound 다니엘30:24

Transcription

좀 이게 사이비 같을 수도 있는데 저는 신을 만난 적이 있다고 생각해요. 비유하자면 진짜 모든 것을 해낼 수 있는 완전한다. 나를 완전히 초월한다는게 이런 거구나를 경험한 적이 있습니다. 내면에 존재하는 신적인 존재. 진정한 나를 잠깐이나마 경험해 본 사람으로서 제가 비결을 공유하겠습니다. 요거를 해내지 못해 가지고 모든 시대 청년들이 기성 세대를 혐오하면서도 그냥 전처를 똑같이 밟는 거거든요. 그게 여러분들이 진짜 온전한 자신을 되찾는 길이고 신이 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니까 유세 시대를 마무리하면서 제가 마지막으로 드리고 싶은 말씀은 여기까지입니다. 음. 여기까지 할게요.

>> 네. 안녕하세요. 단니엘 님. 아, 네. 반갑습니다.

>> 네. 오늘이 10월 29일 뉴스의 시대 촬영입니다.

>> 네.

>> 네. 저번에 예고하셨던 대로 오늘이 마지막 촬영이 있는데요.

>> 네. 오늘이 정확히는 이제 르네상스 촬영 시작하고 얼마 안 된 다음부터 뉴스시대 30파까지 하고 끝내야겠다라는 생각을 했어요.

>> 그래서 30파라는 많은 화들이 있었었는데요. 그중에서도 다니엘 님이 원픽으로 꼽는 콘텐츠가 있다 어떤 걸까요?

>> 원픽으로 네네. 제가 개인적으로 만족감이 있었던 콘텐츠는 그 인사이드 아웃 엄청 홍행할 때 인사이드 아웃 분석했던 거 그게 왜 좋은 작품인지 그거에 대해서 다뤘던게 만족도가 높았고 도파민적으로 기억에 남았던 거는 뭐 성공학 다뤘을 때나 그리고 미니진 하이브 사건 다뤘을 때음 그때가 가장 이렇게 좀 도파민이 했었어요. 근데 막 그렇게 뒤끝이 즐겁진 않았습니다. 아무래도 타인에 대해서 욕을 하고 해야 되기 때문에 뉴스 시대 자체가 좀 어쩔 수 없는 거긴 하지만 근데 어쨌든 만족도가 제일 높았던 건 인사이드 아웃이었어요. 그냥 스스로도 다시 봐도 마음에 드는

>> 말들이 많아 가지고

>> 그러면 이제 구독자님들의 원픽을 제가 다시 봤거든요.

>> 조회수 무려 39만에 빛나는 그 레드필 지식을 아

>> 예 평해 주신 그 여자들이 좋아하는 진짜 남자다 남자 특징이

>> 영상이었거든요. 아 그때 이제 레드필 이제 그 채널 이제 좀 폭파당할 때 이제 제가 또 거기서 이제 팬들 데고 올려고 근데 그 콘텐츠 되게 좋아요.

>> 맞아요. 맞아요. 맞아요. 그리고 두 번째로 인기가 있었던게 조회수 14만에 빛났던 매력적인 사람에 대한 특징이었거든요. 그 약간 주식이랑 주식이랑 좀 엮어서 아 맞아 맞아 맞아.

>> 역시 좀 매력이나 뭐 남녀 심리 이런게 가장 인기가 많죠. 이제 다니엘 님이 하시고 싶으신 마지막 말씀이 있으셨다고 하셨잖아요.

>> 그렇죠. 예. 이거는 이런 말을 해야겠다. 한 1년 전부터 준비를 했어요. 오늘 마지막 회니까 좀 이야기를 해 보려고 하고요. 일단 오늘 2025년 10월 29일이 촬영을 마지막으로 뉴스세 시대라는 콘텐츠는 종료를 합니다. 오늘이 공식적으로 마지막에요. 오피셜로. 오늘은 그래서 우리가 뉴스라는 콘텐츠가 어떤 콘텐츠인가? 이제 목적과 본질에 대해서 좀 돌아가 보면 좋을 거 같아요. 그 뉴스는 기본적으로 알랭드 보통에 여기 가져왔는데 뉴스대라는이 저서를 읽고 영감을 받아 가지고 좀 충동적으로 기획한 콘텐츠고 요즘 유행하는 사회 이슈 그리고 뉴스 기사 뭐 대중 담론들을 여론에 대척하는 시선에서 평론하는 콘텐츠입니다. 평론 비평 비평이 맞겠다. 비평하는 콘텐츠입니다. 왜냐면은 그 뉴스세시드라는 책 자체가 어떤 내용이냐면 뉴스를 유회한 콘텐츠로 평가를 하고이 현대인들이 뉴스라는 특정 정치적 경제적 목적을 지닌 일종의 영혼의 팬데믹에 휘둘리지 말아야 한다. 요런 메시지하고 교육적 방향성을 제시하거든요. 알랭드 보통에 따르면이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미디어와 언론사는 뭐 봉사 단체나 교육 기간이 아니라 그냥 영리 기업이라는 겁니다. 어이 관점에 저도 동의를 해 가지고 시청자분들이 일종의 심리적 원근감을 가지고 요즘의 뉴스를 접할 수 있었으면 하는 마음에 콘텐츠를 기획했었습니다.라고 멋들어지게 의미 부여를 했지만 뭐 솔직히 말하면 콘텐츠는 그냥 핑계예요. 모든 유튜버들이 다 마찬가질 겁니다. 사실 제가 뭐 전하고자 하는 사상이 있는데 이제 뉴스시드라는 포장지가 괜찮아서 맞든 것뿐이죠. 이제 모든 전쟁에는 고상한 이유가 필요한 거니까. 콘텐츠라는 단어의 뜻 자체가 본질을 담는 포장지라는 뜻이거든요. 근데 요즘 우리가 경험하는 세상의 모습이 그렇습니다. 아무리 귀중한 선물도 포장지가 이쁘지 않으면 알아보고 싶지 않은게 사람 마음이거든요. 그래서 컨텐츠 제작 능력이 없는 회사는 절대 살아남을 수가 없는 요즘의 미디어 세상에서 본질보다는 포장지가 더 중요하게 여겨지는게 우리가 사는 세계의 현실이죠. 근데 지금까지 제가 말한 이 콘텐츠 업게 현실이 더 뉴스거리라고 생각을 해요. 어, 제가 하고 싶은 말은 뉴스를 종료한다고 아쉬워하실 필요는 없다는 뜻이죠. 그니까 저번화에서 말씀드렸듯이 뉴스 시대 이제 마지막 한다고 하니까 아쉬워하는 분들이 계시던데 그냥 포장지가 없어지는 겁니다. 저의 메시지와 사상은 없어지지 않아요. 뉴스에서 하지 못했지만 다루고 싶은 이야기들은 그타임이라는 요즘 많이 하는 콘텐츠에서 더 부드럽고 재밌게 다뤄볼 생각입니다. 어 다시 돌아와 가지고 그 피 님 심리적 원금감이 뭐죠? 이제 심리적으로 멀리서 바라보고 그 대상을 이렇게 감정적으로 보지 않고 이성적으로 바라보자라는 뜻일 거 같습니다.

>> 맞아요. 제 1학 때 설명을 드렸는데 굉장히 단순한 개념입니다. 가까이서 보면 크게 보이고 멀리서 보면 작게 보이는 거. 우리가 흔히 접하는 대부분의 뉴스하고 가십을 조금만 멀리 떨어져 가지고 넓은 지설에서 살펴보면 뉴스거리가 아니라는 걸 알 수가 있다는 겁니다. 그 어쩌면 문제라는 거 자체가 허상일지도 몰라요. 제가 제일 좋아하는 말이 뭐냐면 문제는 문제를 삼으면 문제가 된다거든요. 언론사가 문제로 사보면 문제가 되는 거고 뉴스거리가 아닌 것도 잘 포창하면 뉴스거리가 되는 거죠. 그리고 뉴스에 대한 진실이 뭐가 있을까요? 뉴스의 살인하고 간간 사건이 무수히 쏟아져 나온다고. 우리가 사는 세상이 디스토피아인 것도 아닙니다. 이거는 오히려 심리적 원근감을 갖고 보면 우리가 지금 살고 있는 세상이 아주 평화롭고 괜찮다는 증거가 되죠. 지금 우리가 발을 딛고서 있는 이 세계는 그런 일이 흔하지가 않고 특별하기 때문에 뉴스에 등장을 하는 겁니다. 뭐 원시 시대 때는 옛날로 돌아가 보자면 살인은 굉장히 흔했을 거고 간간이란 개념도 없었을 거예요. 완전 한번 망상 회로를 돌려보면 그 당시에 부족의 추장은 뭐 어떤 죄책감도 없이 부족에 사는 여인들을 취했겠죠. 마음껏 욕구를 풀었을 겁니다. 그런 개념이 없으니까. 또 여성 인권, 뭐 성평등 문제가 진짜 심각한 나라의 매체에서는 오히려 그것에 대해 잘 다루지 않는 법입니다. 또 사회적 불평등과 강력 범죄가 흔한 나라의 뉴스에서는 그게 뉴스거리가 아니니까 뉴스에 자주 안 나오겠죠. 이렇게 개방형 SNS에서 누구나 어떤 주제에 대해서 조명할 수 있고 전국민이 자유롭게 논쟁을 하고 어떤 사안에 대해서 혀를 끌 수 있다는 거 자체가 우리가 꽤나 괜찮은 세상에서 살고 있다는 증거가 됩니다. 너무 살기 좋은 세상이에요. 근데 애초에 요런 메시지를 전파하려는 콘텐츠다 보니까 제 콘텐츠 중에 가장 악플이 많았고 커뮤니티 사이트에 박제돼 가지고 비난의 대상이 되기도 했었죠. PD 님 누구보다 잘 아실 거예요.

>> 좀 많이 피곤하셨죠? 굉장히 뭐 다양한 분들을 많이 보셨을 것 같은데 특히 기억이 나는게 우리 그 하이브하고 미니진 씨 사건 다뤘을 때 그리고 또 한강시 노벨상 수상에 대해서 다뤘던 콘텐츠는 제 기억으로는 그때 실호 비율이 거의 20%에 가까웠을 정도로 공격을 당한 적이 있던 거 같아요. 그리 한강 씨는 내가 억울한게 나는 그게 한강 씨가 나한테 1등 소설가가 아니라는 것뿐이었고 나한테 2군이다 그거였는데 아 진짜 대단하더라고. 거의 한강 씨하고 자학 의탁을 하신 분들이 잘 많더라고요. 그래가지고 그런 의미에서 나는 다른 작가가 더 좋다. 근데 한강씨 너무 훌륭하고 나는 굳이 따지면 나한테 이군이다 그런 거였는데 근데 이게 저희 채널에서 실어 20%가 엄청난 거거든요. 그러니까 우리 채널이 생각보다 호감도가 굉장히 높잖아요. 그 나는 이상하게 또 하고 싶은 말을 다 해도 아무리 멋대로 그어도 막 평균 라이크 비율이 항상 97% 98% 찍히더라고. 그게 좀 신기하고. 어쨌든 평균 실호요가 가장 높은 콘텐츠가 뉴스의 시대였습니다. 그도 당연한게 뉴스의 시대는 어쩔 수 없이 그 절대 다수의 대중이 공유하는 감정에 반하는 말을 해야 되잖아요. 그러니까 이것도 결국 아무것도 아닌 뉴스고 당신들 지금 감정적이다. 요런 메시지를 전해야 되니까 그게 무조건 여론이랑 반대 배팅을 하거든. 뭐 유튜브의 경우 이제 멤버십 댓글 외에는 보통은 이제 제가 보지 않는데 한 때는 개인적인 생활 반경에서도 비난 여론이 느껴질 정도로 성가하신 적이 있었어요. 그게 또 처음 겪는 일이라서 그런지 꽤 스트레스를 받았습니다. 후회를 그렇게 하지는 않는 편인데 괜히 시작했나 돌아본 적도 몇 번 있고 물론 약간 통개했던게 하이브하고 미니 사건 1년이란 시간이 흐른 뒤 어떻게 됐죠? 제가 해석했던 그대로 사실이 밝혀지는 바람에 역주행을 하고 좋아요 비율도 회복하고 저를 언제 욕겠냐는 듯이 막 역시 다니엘의 성견지명은 엄청나다 막 호평하는 사람들이 막 나타났었죠. 예전에 악플 달았던 사람들한테도 대글 막 달리고 하니까 그거 지우고 도망가고 그런 걸 볼 때마다 이제 뉴스 앞에선 대중 심리라는게 정말 나약한 거 같습니다. 즉 뉴스의 시대라는 콘텐츠는 항상 댓글이 내용을 완성시켜 줬어요. 그 유튜브 채널을 한 5년 가까이 운영을 하다 보면 그 채널 운영 그 자체하고 조회수에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게 되거든요. 그니까 다른 분들은 어떨지 몰라도 저는 그렇습니다. 왜냐면은 대중은 무언가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아니니까. 대중이라는 군집은 사랑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그저 관심만 가질 뿐이죠. 그 군집은 감정과 주관이 너무나 연약해서 쉽게 불길이 되었다가 금세 재가 되어 버리곤 하곤 합니다. 덕분에 언제부턴가 매일 아침에 일어나서 다짐하는 데일리 슬로건이 이게 됐어요. 뭐냐면 대중으로 살 때 대중처럼 생각하지 말자. 또 유세 시대라는 콘텐츠를 종료해야겠다고 결심한 시기는 아까 말씀드렸듯이 올해 르네상스라는 문화 평론 콘텐츠를 시작하면서거든요.이 두 가지 콘텐츠의 차이점은 심플해요. 어 뉴스의 시대는 대중에 정설하는 대상의 흠을 잡아야 되는 콘텐츠입니다. 그러니까 약점을 잡고 까내려야만 쓸 만한 주장이 가능하죠. 근데 르네상스는 특정 대상의 강점과 빛나는 점을 조명합니다. 심리적으로 봤을 때 전자는 그림자를 끌어내는 거고 후자는 빛에 집중을 하는 거예요.이 이 두 가지 콘텐츠를 동시에 진행하면서 얻게 된 가장 큰 소득이 딱 하난 거 같아요. 내가 뭘 더 즐기는지 알게 됐습니다. 그니까 저는 확실히 대상의 약점을 까내리면서 주장하는 일에 피로감을 많이 느끼더라고요. 근데 특정 대상에 흠을 잡는 일이 생각보다 재미가 있는 일이거든요. 근데 즐겁지는 않아요. 재미와 즐거움은 다르니까. 그 사회학자 뱀핀처에 따르면 재미는 일시적인 쾌락이지만이 즐거움이라는 거는 과정 후에 얻게 되는 의미하고 뿌듯함입니다. 그래서 재미는 금세 휘발되지만 즐거움은 오래 가는 거죠. 그리고 건강한 성인이라면 재미보다는 즐거움을 추구해야 되는데 뉴스의 시대 콘텐츠 제작은 분명 재밌었습니다. 뭐 지적 우월감을 느끼기도 했어요. 하지만 크게 즐겁진 않았습니다. 약간 폭식하고 나서 느낌이랑 비슷해. 그 먹을 땐 맛있는데 이게 소화가 안 돼 가지고 다음날 하루 종일 고생하는 느낌. 반면에 르네상스라는 콘텐츠 제작은 재미는 다소 떨어질지 몰라도 늘 즐겁습니다. 무엇보다 대상의 흠을 잡는 일보다는 빛을 발견하는 일이 훨씬 더 어려운 거거든요. 뭐 비판하고 비난하고 약점을 잡고 물고 늘어지는 건 개나 소나 다 알 수 있는 일입니다. 그 모든 인간은 본능적으로 세상에 흠을 잡는 부정 편향이 있으니까. 근데 세상에 비하고 아름다움을 발굴하는 건 의식적인 노력이 필요해요. 엄청난 능력이 필요한 거지. 사운드사운드 다니엘이라는 유튜브 채널은 저하고 이제 제 회사가 운영하는 이제 교육 프로그램을 알리는 그런 훌륭한 마케팅 채널이기도 하지만 그런 경제적인 것들을 차취하면 나 스스로를 알기 위한 시험대로서의 역할이 되어줬다는 점에서 너무 유용한 거 같아요. 칼용이 말했듯이 행하는 인간이 누릴 수 있는 진짜 특권은 부가 아니라 나 스스로에 대해 정확히 아는 것이니까. 그래서 하고 싶은 콘텐츠가 생기면 그냥 다 시도해 봤습니다. 앞으로도 그럴 거고요. 그리고 유튜브 채널이 있으면 진짜 사회 실험을 마음껏 할 수가 있거든요. 이게 진짜 좋아요. 반응이 궁금해 가지고 사람들끼리 싸움도 더 붙여보고 논란도 일부러 만들어 보고 뭐 그건 지금도 그렇습니다. 특히 쇼츠는 목적 자체가 싸움을 거는 거라 가지고 제가 아무 생각 없이 던진 이야기로 막 사람들이 싸우고 논쟁하고 오해하고 그런 거 구경하는게 너무 재밌어요. 또 채널을 운영한다는 건 특정 캐릭터를 만들어내는 거기 때문에 그 제가 가진 모든 페라소나를 끌어내서 다양한 캐릭터도 만들어 보고 세상의 반응을 지켜봤던 거 같아요. 이런 과정을 5년 가까이 유지한 결과 이제서야 제가 뭘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또 어떤 것의 의미를 느끼고 어떤 것에 공허함을 느끼는지 알아낸 거 같습니다. 이제서야 더 이상 분리될 수 없는 세계 요소 인디비주얼이죠. 개인, 진짜 개인이 된 느낌이에요. 유튜브 채널 하면서 그런 느낌을 많이 받았습니다. 나를 세상에 여러 모습으로 드러냄으로써 개인적인 나약함, 그림자도 의식할 수 있었고 무엇보다 분석 심리학자들이 말하는 내면의 신적인 양상, 신은 내 안에 있다라는 말을 어렴풋이 경험을 했어요. 좀 이게 사이비 같을 수도 있는데 저는 신을 만난 적이 있다고 생각해요. 비유하자면 그니까 상징적인 말인데 진짜 모든 것을 해낼 수 있는 완전한다. 나를 완전히 초월한다는게 이런 거구나를 경험한 적이 있습니다. 제가 가장 좋아하는 영화 중 하나인 뭐 영화도 그렇고이 서사 자체를 좋아해요. 그 트로이에서 신의 아들인 아킬레스가 뮤즈인 브리세이스한테 이런 비밀을 알려줍니다. 어떤 내용이었냐면 아무도 알려주지 않는 비밀을 하나 알려 줄까? 신은 인간을 질투해. Not envious. 왜냐면 인간의 삶은 유한하거든. 그래서 인간의 삶이 아름다운 거야. 그렇기 때문에 지금 우리가 나누는이 순간도 아름다워. 어, 요런 대사가 있었고 어릴 때는 그냥이 말이 그죠 플러팅 멘트인 줄 알았는데 제가 신을 만나는 경험을 해 보니까 진짜 그렇더라고요. 내면에 존재하는 신적인 존재 진정한 나를 잠깐이나마 경험해 본 사람으로서 제가 비결을 공유하겠습니다. 뉴스의 시대 마지막 하니까. 그전에 이런 질문을 하고 싶어요. 우리는 나로 살 수 있을까요? 진짜 나라는게 있긴 한 걸까요? 님한테 질문하는 거예요.

>> 예전에 저도 그런 생각을 해 본 적 있었거든요. 뭐 내가 생각하고 행동하는게 내 자유지라고 생각했는데

>> 근데 다시 생각해 보면이 모든 것 또한 환경이 나를 그렇게 만든게 아닌가라는 고민을 하게 되더라고요.

>> 맞아요. 누구나 좀 생각이 깊은 사람들은 그런 생각을 하죠. 그도 그런게 뇌가학에서는 자유의지가 허상이라고 말하기도 하거든요. 뭐 맞습니다. 자연적 발생의 관점에서 봤을 때 우리의 존재는 그저 우연의 산물입니다. 유전자도 내가 선택할 수가 없고 그 많은 것들이 이미 정해져 있죠. 이걸 깨달을 때쯤 어른이 되는 거 같은데. 하지만 실존에 대해서 이렇게 질문해 보고 비판적으로 생각하는 자연물은 인간밖에 없다는 것도 사실입니다. 즉 인간을 인간답게 만들어 주는 거는 결국 질문일 겁니다. 그러니 내 안의 신을 경험하는 방법 첫 번째도 질문하는 능력에 있다고 봐요. 현 인류의 갈래인 호모사피엔스라고 하잖아요. 이것도 생각하고 질문하는 존재란 뜻이거든요. 그래서 지구라는 것은 결국 어떤 상황에서도 스스로 사고할 줄 알고 본능적인 행동을 조절할 수 있는 생물이 지배할 겁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이거에 대해 질문을 해 봐야죠. 내가 충분히 질문하고 있는가? 그리고 저번에 그 티타임에서 PD 님이 보라고 하신 댓글을 보다가 밑에 있는 어떤 다른 댓글을 봤어요. 제가 워낙 제 의견에 고집 있고 왕고한 편이니까 저의 좀 고집스러운 태도를 지적하는 분이 있더라고요. 빌게이치가 그랬대요. 나는 왕고한 태도로 성공을 했지만 요즘 시대는 유연함이 중요하다. 그러니까 저보고 이제 태도를 바꾸는게 어떻냐 요런 시청자분이 있었습니다. 음. 근데 이런 분들이 전형적으로 질문하지 못한 사람입니다. 어,이 사람은 신을 만날 수 없어요. 미디어하고 뉴스 같은 콘텐츠 창작자가 가장 원하는 순종적인 인간상 해석하지 않고 맹목적으로 복종하는 대중이니까요. 아마 그분은 절대 빌게이치처럼 될 수 없을 겁니다. 질문하지 못했으니까. 빌게이츠의 의견에 대한 제 생각은 그렇습니다. 빌게이츠의 말을 제대로 해석해 보면 결국 왕구한 태도를 유지해야지 성공할 수 있다는 뜻이거든요. 사람은 아래에서 위를 볼 때랑 위에서 아래를 볼 때 시선이 달라지기 마련입니다. 성공하는 과정에서 드는 생각하고 성공하고 나서의 생각이 달라질 수밖에 없다는 뜻이죠. 빌게이츠가 밑에서 위를 올라봐야 됐던 청년 시절에는 왕고하고 고지시했기 때문에 성공한 겁니다. 그러다가 산 정상에 다다르면 모든 사회적 엘리트들이 비슷한 생각을 해요. 뭐냐면 하, 풍경을 좀 보면서 올라갈 걸. 여기서 알 수 있는 진실은 빌게이츠가 풍경을 즐기면서 올라갔으면 정상에 오르지 못했을 거라는 거. 이거는 성공한 자들의 전형적인 기만입니다. 사실 기만하려고 해서 그런게 아니라 본인도 잘 모르는 거예요. 비슷한 맥락의 이야기로는 건강 관리하면서 시험쉬엄 하세요가 있죠. 성공한 사람들은 뭐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방송에 나와 가지고 건강 관리를 유의하라고 합니다. 근데 그 사람이 실제로 건강 관리 다하면서 일했으면 방송에 나오지도 못했습니다. 최고가 되지 못했을 테니까. 건강하고 수명을 포함한 삶의 모든 아름답고 안전한 요소를 포기할 각오만 있는 자만 빠르게 정상에 다다를 수 있는 법이죠. 즉 성공한 자들의 조언도 고지곧 믿지 말고 그들이 성공할 때 동반했던 실제 행동만 믿어야 됩니다. 뉴스도 마찬가지라는 거죠. 심지어 뉴스에는 행동이 없고 전달하는 말이 부성하기 때문에 더 위험해요. 그러니까 질문을 할 수 있는 사람들은 뉴스가 주는 정보하고 이념의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겠죠. 그래서 시청자분들도 이 점을 참고하셔서 인간으로서의 한계를 극복하시길 바랍니다. 신이 되는 법 두 번째 과거와 기존의 것에 대한 배움입니다. 의외죠. 스스로 생각하는 법을 배우기 위해서는 과거의 문화와 관습을 섣불리 무시해서는 절대 안 됩니다. 이거는 금기예요. 저는 스스로를 어떤 사람이냐고 되돌아봤을 때 고전적인 사상과 철학의 가르침을 전하는 지적 연결자라고 생각해요. 유튜브 채널에서는요. 그러다 보니까 좀 고리타분하다. 언제적 시절 이야기를 하냐 이런 핀잔 그리고 비판을 꾸준히 들어왔는데 이런 사람들 또한 전형적인 복종하는 대중입니다. 과거의 유산에 대한 무시. 이거는 정신적인 전염병이에요. 수세대를 걸쳐서 내려온. 이거 왜 이런 줄 알아요? 현대에 많은 사람들이 기술 사고라는 정신적 역경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기술 사고는 최신의 것이 더 훌륭한 것이다. 이런 잘못된 믿음에서 시작되는 지적 복종이죠. 이거 제가 만든 말이에요. 잠깐 같이 질문해 봅시다. 최신이면 다 좋고 훌륭한가요? 생각해 보면 최신이라서 더 훌륭한 건 과학 기술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스마트폰이나 PC는 최근에 등장한 것들이 대체로 더 훌륭하죠. 그런데 한 인간 인간의 생각 사상의 군집 철학도 그런가요? 가령 갓태어난한 어린아이가 30대인 저보다 기능적으로 더 유용하고 훌륭한가요? 철학은 어떨까요? 현 시대는 기술의 전성기지 철학의 전성기가 아닙니다. 그리스하고 로마 르네상거 시대 19세기 20세기 근현대 정도가 철학의 전성기였고 그 이후로 철학과 과학은 쇠퇴였습니다. 그 시절 질문할 수 있었던 사람들이 창조했던 철학적인 과학적인 질문들을 기술로 구현하는 시기가 현재일 뿐이죠. 지금은 기술의 전성기입니다. 철학과 과학의 전성기가 아니라 더 무서운 거는요. 질문하는 능력은 불편한 환경에서 시작이 된다는 겁니다. 지금은 기술의 시대죠. 기술이 발전할수록 철학과 과학적 사고의 수준은 떨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너무 편하니까요. 즉 인류가 리셋되지 않는 이상 철학의 전성기는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겁니다. 그런데도 최신의 것이 더 훌륭하다라는 잘못된 믿음으로 살아가는 일종의 유사 호모사피엔스들이 사회에 만연해 있습니다. 스스로를 그냥 기계로 보는 거예요. 젊음에 대한 맹목적인 예찬도 우리가 기술 사고에 중독되었다는 명백한 증거든요. 임문학과 철학의 수준은 현대인이 그리스인보다 훨씬 더 야만적일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직도 고데 그리스, 르네상스, 근대 철학자, 사상가 이분들의 저서가 조명받고 우리가 그들한테 배우는 거죠. 그래서 여러분들이 인간적 한계에서 벗어나고 싶다면이 기술 사고의 맹점에서부터 하루 빨리 벗어나야 될 겁니다. 조던 피터을 포함한 실존주의 정신문석학의 가치관을 지지하는 여러 학자들도 같은 말을 합니다. 개인주의자로서 주체적으로 살기 위해서는 과거의 문화와 유산들을 절대 무시해서 안 된다고. 요거는 무슨 뜻일까요? 음. 이런 겁니다. 모든 시대 청년들은 기존 그리고 과거의 질서의 반항심을 가지게 됩니다. 그래서 모든 시대 청년들이 버릇이 없다는 말이 나오는 거예요. 계속 그게 대대로 내려오는 거야. 그리고 기존의 것에 반항하고 새로운 문화를 지지하는게 건강한 청년들의 보편적인 모습입니다. 다만 하나 착각하는게 있어요. 내가 반항을 하고 있으니까 나는 주체적으로 살고 있다고 착각을 하는 거죠. 예컨데 저를 포함한 MG 세대들 중 다수는 이제 보수주의 그리고 가부장 질서에 대한 반발감이 있는 경우가 많고 또 특정 군집은 뭐 비온주의나 비출생주의 같은 기존의 친가정적인 세관에 반하는 가치관을 지지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인류가 늘 그래려왔던 것처럼 가정의 일원으로 소속되지 않고 나로 산다는 거 뭐 겉으로 보기에는 굉장히 자유롭고 주체적인 모습입니다. 하지만 주체성과 자유로움은 그런 겉으로 보이는 모습과는 전혀 상관이 없습니다. 자유라는 것도 뉴스처럼 심리적 원근감을 가지고 내부 심리를 들여다봐야 돼요. 그래야지 어떤 사람이 진정으로 자유로운지 알 수 있으니까. 자유롭게 산다는 건 뭘까요? 제 생각에는 자신이 원하는 바를 스스로 선택하고 그에 따라서 산다면 자유롭게 산다고 말할 수 있을 겁니다. 하지만 내가 원하는 바를 스스로 선택을 한다는 건 생각보다 쉬운 일이 아니에요. 선택을 하려면 인간으로서 걸을 수 있는 여러 가지 선택지에 대해서 배우는 것이 선행되어야 되니까. 그니까 애초에 유효한 선택지가 있어야 선택을 하는 거죠. 근데 우리가 진짜로 선택지가 있나요? 청년들한테 선택지가 있어요. 정말 여러 가지 선택지에 대해서 탐색을 해 봤을까 하면은 전 아닌 거 같거든요. 오히려 과거에 올해 공유되었던 시대 문화들을 무조건 나쁘고 낡은 것이라고 부정적 감정을 가진 채로 배제하진 않았나 요런 질문을 해 봐야 됩니다. 과거의 문화적 유산을 감정적으로 배제를 하는 거는 선택의 폭을 줄이는 거기 때문에 오히려 주체적인 선택에 방해가 됩니다. 쉬운 예를 들어 봅시다.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삶의 길 A, B, C, D가 있다고 가정을 하고이 모든 선택지에 대해서 편견이나 선입견을 최대한 줄여서 객관적으로 탐색해 본 다음에 최동적으로 D를 선택한다면 주체적으로 사는 것이 맞습니다. 자유로운 사람이죠. 하지만이 AC 선택지가 오래된 것이라고 해서 아예 배제를 해 버리고 D밖에 안 남아서 D를 선택한다면 그건 선택도 아니고 자유도 아니고 주체적인 모습도 아니에요. 단지 시대 문화에 휩쓸려서 선택을 강요받은 것과 같죠. 이런 모습이 바로 이제 모든 시대의 청년들이 주체성에 대해 착각하기 시작하는 집원입니다. 지금도 많은 청년들이 현재 유행하는 문화만을 선이고 진보적인 거라고 여기면서 과거에 공유되던 오래된 문화와 기성 가치관을 무시하는 우를 범합니다. 사실 그들이 누구보다 시대의 유행, 새로운 이념에 휩쓸려서 억압당하고 있는 것인데도요. 청년은 그저 청년일 뿐이지 더 깨어 있지도 않고 특별하지도 않습니다. 나이가 어리다고 청년이 아니에요. 어떤 상황에서도 질문을 할 수 있는 사람이 청년이고 진짜 자유롭게 선택하는 사람이라고 생각을 하거든요. 다른 예도 들어보면 많은 청년들이 사실 마음 깊숙한 곳에서는 기존의 보수적인 가족관을 원합니다.데 당연하죠. 자연스러운 거예요. 그게 인류가 수십만 년간 공유해온 집단 무의식이니까. 근데 이제 주변 친구들 그리고 내가 놀고 있는 커뮤니티에서 그거는 오래됐고 낡았으니까 유효하지 않은 거야. 그냥 말을 하고 동조하는 모습을 보면서 어 그런가 하면서 휩쓸리게 되죠. 요런 식의 동조는 젊은 여성들이 훨씬 취약합니다. 실제로 너무 많이 봤거든요. 저는 천명 이상의 여성들을 코칭했습니다.이 중에 꽤 많은 여성들이 가정의 이론으로서 소속이 된 관습적인 모습을 원하고 있었어요. 하지만 그것이 현대가 원하는 주체적인 여성상과 다르지 않나라는 의심도 같이 갖고 있었죠. 이렇게 유행에 휘들리는 거예요. 또 질문하지 않는 어른들의 신세한탄도 청년들의 선택에 많은 영향을 줍니다. 하지만 어른들의 신세한타는 믿을게 못된다는 걸 알아야 돼요. 어떤 부모님들은 너무 생각이 없이 나처럼 살지 마. 너의 삶을 살아. 요런 말을 레뱉는데 이런 말 진짜 함부로 하는 거 아닙니다. 자식한테 정말 안 좋은 영향을 주는 거예요. 그 후에 제발견의 저자 다니엘 핑크 연구에 따르면 모든 인간은 50세가 넘어가면 내가 행하지 못한 것에 대해 깊게 후회하기 시작합니다. 즉 어떤 선택을 해도 50대가 되면 후회를 한다는 거죠. 이제 저런 부모님들은 부정 편양에 빠져 버려서 내가 누렸던 행복에 대해서는 까맣게 잊어버리고 내가 놓쳤던 기회와 불행에 대해서만 자식들한테 전하는 거예요. 가정적으로 살아 가지고 누린 행복이 분명 있었음에도 내가 갖지 못한 것에 대해서만 이야기하는 건 듣는 사람에게 엄청난 폭력이 됩니다. 선택권을 빼앗는 거죠.이 이 말을 너무 하고 싶었어요. 저한테 자유가 뭐냐고 물어본다면 한용은 신의 복종이라는 실을 선물할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제가 여기 준비해 놨는데 한번 읽어 볼게요. 남들은 자유를 사랑한다지만은 나는 복종을 좋아하여요. 자유를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당신에게는 복종만 하고 싶어요. 복종하고 싶은데 복종하는 것은 아름다운 자유보다도 달콤합니다. 그것이 나의 행복입니다. 그러나 당신이 나더어 다른 사람을 복종하라면 그것만큼은 복종할 수가 없습니다. 다른 사람을 복종하려면 당신에게 복종할 수가 없는 가닥입니다. 한용은 복종. 어때요? 이거 어떤 씨 같아요? 복종을 한다는 단어를 들으면 언뜻 좀 부정적인 생각을 갖긴 하잖아요.

>> 하지만 내가 생각을 해서 당신을 정말 사랑해서 당신을 따르겠다라고 하는 것은 그게 진짜 자유가 아닐까?

>> 어. 어. 정확한데. 어, 맞아요. 이게 자유의 본모습이거든요. 그니까 제목도 복종이고 화자는 어떤 대상에 철저히 복종하고 있지만 사실 그는 자유인입니다. 왜냐면 자유도 알고 복종도 알지만 그가 스스로 복종하는 길을 선택했으니까. 그러니까 자유란 겉으로 드러나는 단순한 양상이 아니다라는 말이이 뜻이거든요. 권위에 순종하고 있는 사람도 스스로 순종을 하고 싶어서 순종한다면 그건 자유고 그저 복종하는 모습을 피하고 싶어서 자유를 택한 자는 오히려 자유롭지 못한 거죠. 즉 반항을 위한 선택은 억압의 다른 이름입니다. 어차피 인간은 누구나 어딘가에 복종하게 되어 있어요. 어떤 대상에 복종할지 선택하는 자유만 있을 뿐이지. 근데 내가 선택을 하려면 유효한 선택지가 있어야 됩니다. 근데 우리한테 진짜 선택지가 있냐는 거죠. 다른 선택지를 열린 마음으로 탐구해 본 적이 있긴 할까? 요런 질문을 해봤으면 좋겠습니다. 한 인간을 구성하는 사상과 가치관도 똑같아요. 극히 일부를 제외하면 어떤 시대, 어떤 문화도 특별히 우월하지도 열등하지도 않습니다. 시대 정신은 진화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형태 진보거든요. 그냥 자주 변하는 포장지일 뿐이죠. 그러니까 이럴수록 자주 변하는 포장지가 아니라 오래도록 변하지 않았던 걸 공부해 봐야 되는 겁니다. 철학과 임문학, 사회과학을 공부하면서 어떤 것이 인류 역사에서 오랫동안 변하지 않았는지 살펴보시길 바랍니다. 그런 거를 염두해 두면서 살아야 돼요. 왜냐면은 지금 우리가 사는 시대는 포장지가 너무 빨리 변하는 시대니까. 근데 항상 본질은 같거든. 그 이야기가 생각나는데 그 침창맨하고 친한 분 그 주오민 작가가 농담으로 한 말이 사실 되게 날카로운 이야기예요. 그분이 뭐라고 하셨냐면 비온주의는 결혼으로 완성된다. 그래서 비온주의를 증명하고 싶으면 꼭 결혼으로 해라 이런 말을 하셨는데 이게 진청한 깨달음의 핵심입니다. 명제가 뭔지 모르는 반명제는 아무 의미가 없다는 거죠. 그래서 저도 청년으로서 삶을 살고 있는 누군가가 뭐 비혼주의나 비출생주의 요런 걸 지지한다고 말하면 그 전에 영국 빅토리아 시대에 굉장히 보수적이고 가정적인 문화에 대해 자세히 공부해 보라고 권유합니다. 그니까 모든 감정을 최대한 배제하고 있는 그대로 제가 영상에서 빅토리아 시대의 결혼 제도를 자주 언급하는 이유가 우리 시대 청년들한테 필요한 이야기라서 그런 거예요. 실존주의 정신 분석학자들이 개인주의에 대해서 설명을 할 때 항상 이렇게 표현을 하거든요. 개인주의란 여러 종류의 꽃이 피어 있는 꽃밭채에서 모든 꽃의 향계를 직접 맡아보고 그중에서 마음에 드는 꽃송이를 꺾어 가지고 집에서 소중히 키우는 것이라고 여기서 여러 종류의 꽃은 인류가 오래도록 경험했던 여러 가지 삶의 모습들을 말할 거고 향을 맞는 거는 탐색하는 행위를 상징합니다. 즉 선택을 제대로 하려면 먼저 다양한 향을 맡아봐야 된다는 겁니다. 반면에 꺾 거울 꽃을 이미 정한 채로 꽃밭채 들어가는 거는이 개인주의와 그리고 자유, 주체적 상관은 완전히 반대되는 행위일 거예요. 우리가 제대로 된 선택을 하면서 자유롭게 살려면 내가 감정적으로 지지할 수밖에 없는 시대, 문화와 전혀 반대되는 것들에 대해서도 깊게 탐색하고 공부를 해 봐야 됩니다. 왜냐면은 기성 세대 문화도 그분들이 청년일 때는 진보였어요. 또 진보하는 것들이 굉장히 많기 때문에 오랫동안 변하지 않아온 교육적인 관념과 관습, 철학에 대해서 공부하는 습관을 들으시길 바랍니다. 요거를 해내지 못해 가지고 모든 시대 청년들이 기성 세대를 혐오하면서도 그냥 전처를 똑같이 밟는 거거든요. 기성 세대하고 반하는 삶을 살면 그게 정답이다. 이렇게 굳게 믿는 거지. 그러다가 결국 우리가 반항했던 기성 세대와 똑같은 모습으로 휩쓸리고 억압당하다가 죽을 겁니다. 물론 오늘 제가 드린 이야기 또한 뉴스를 대하는 평범한 대중들이 그러하듯 많은 사람들이 오해할 거고 멋대로 재단할 겁니다. 근데 마음껏 오해하셨으면 좋겠어요. 저는 유명해진다는 거는 더 많은 사람들이 나를 오해하는 일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저는 앞으로도 사람들이 꾸준히 더 많이 저를 오해했으면 좋겠습니다. 저도 아무것도 아니고 제 의견도 아무것도 아닙니다. 모든 거는 그냥 비어 있는 거죠. 저야 배우는 걸 좋아하고 더 많이 배우려면 나를 철저히 비워야 되더라고요. 근데 배우려면 돈이 들고 돈을 벌려면 나를 허상에 무언가로 채워 가지고 사람들의 관심을 끌어야 됩니다. 요게 현대 기호 자본주의의 알고리즘이지. 하지만 사실상 제가 하는 말은 아무것도 아닌 겁니다. 내가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 될수록 사람들은 나를 멋대로 오해해서 채우려고 노력할 거고 저는 그런 현상을 바랍니다. 간절히요. 그게 돈이 되거든요. 그리고 이게 바로 뉴스와 미디어가 원하는 겁니다. 저도 항상 바라고 있고요. 저는 사실 시청자분들이 저를 있는 그대로 받아 줄 거라는 기대 자체를 안 합니다. 어, 모든 시청자분들이 그렇게 고차온 적이라면 저는 돈을 벌 수가 없거든요. 그러니까 앞으로도 멋대로 해석해 주시고 꾸준히 오해해 주세요. 더 많은 사람들이 저를 오해해서 채울수록 저는 신이 되어 갈 테니까. 만약 이런 저의 제안이 싫다면 뉴스를 최대한 멀리하세요. 그리고 제 채널 또한 똑같은 수작을 부리는 미디어 채널일 뿐이니까 저의 말이 아니라 행동을 믿으셨으면 좋겠습니다. 그게 여러분들이 진짜 온전한 자신을 되찾는 길이고 신이 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니까 유세 시대를 마무리하면서 제가 마지막으로 드리고 싶은 말씀은 여기까지입니다. 음. 여기까지 할게요. 퇴근합시다. 예. 30까지 시청해 주셔서 감사네.

>> 다른 콘텐츠로 뵙겠습니다. 네. 수고했어요.

>> 수고했습니다. 다 [음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