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Get Our Mobile App

Take your business learning on the go!

Download on the App StoreGet it on Google Play

당신은 좌파입니까 우파입니까? | 전우용 교수 [더 피플]

삼프로TV 3PROTV1:01:42

Transcription

우리나라에는 사실 진보정당이라고 부를 수 있는 정당이 없었어요. 정치적으로 그런 의사를 표현하는 건 곧 죽겠다는 의무고요. 진보와 좌파를 이렇게 붙여 버리는 거 자체가 굉장히 맞지도 않지만, 그런 이분법 자체가 존재하지를 않았죠. 이제 그런 틀에서 우리 스스로 벗어나야 되고요.

그리고 이번에 이제 내란 사태는 한국 사회를 1987년 이전으로 되돌리려고 했다는 거고요. 그래서 이번 선거도 그렇고 우리 사회가 지금 다시 고민해야 될 문제는 우리가 알아온 보수나 진보라고 하는 이분법적 세계가 이제 실존하는 세계냐, 아직도 우리가 1987년에 독재 대 반독재라고 하는 세계 안에서 살고 있는데 관념만 그 세계로 좀 이행한 거냐? 이거를 좀 생각해 봐야 될 것 같아요.

자, 더 피플 시간으로 여러분 다시 뵙습니다. 삼프로TV 구독자 여러분 그리고 시청자 여러분. 글쎄요. 여러분들은 여러분들 스스로의 이념 지향에 대해서 어떻게 구분을 하고 계신가요? 여러분들 스스로가 나는 진보적이지, 나는 보수적이지, 이렇게 구분을 하실 텐데요. 어쩌면 이게 진보주의적이다, 보수주의적이다, 보수적이다, 진보적이다. 이 말의 참뜻을 우리가 알고 우리가 스스로 우리를 그렇게 구분 짓는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될 때도 있습니다.

역사학자 전우영 박사님을 모시고 진보와 보수, 그리고 요즘에 또 중도라는 얘기도 나오는데 그 참 의미와 그 생각을 한번 들어 보도록 하겠습니다. 역사학자 전우영 박사님 모시도록 하겠습니다. 어서 오십시오, 박사님.

네, 네, 안녕하세요. 네. 선거 앞두고 그 궁금해서 그 제가 오프닝도 그렇게 했습니다만은 진보, 보수라는 용어를 요즘 써도 되나 그런 생각도 들고요. 또 우리가 알고 있는 진보, 보수의 참뜻은 뭔지에 대해서도 좀 헷갈리는 시대를 살고 있는 거 같아서 박사님께 그런 말씀도 여쭤보고, 역사적인 어떤 진행은 어떻게 돼왔나도 한번 여쭤보려고 하는데요. 보수, 진보를 어떻게 구분하고 어떤 의미가 그 안에 투영돼 있는지 좀 여쭤 볼게요. 제가 대표님께 여쭤 볼게요. 예. 어떤 종류의 자동차를 좋아하세요? 저는 스포츠 유틸리티 좋아합니다. 예. 그 그것만 타고 있고요. 예. 예를 들어 이렇게 질문을 하면 이렇게 바로 답이 나오기도 해요. 근데 이제 보통은 이렇게 나눠서 묻죠. 그러니까 세단을 좋아하냐? 스포츠 유틸리티를 좋아하냐? 스포츠 유틸리티라면 4륜을 좋아하냐? 그냥 도시형 2륜을 타느냐? 국산차를 타느냐? 외국차를 타느냐? 굉장히 다양한 질문들을 해야 답이 나와요. 보통. 네. 그리고 이제 스포츠 유틸리티도 이게 뭐 국산 현대차도 있고 뭐 포르쉐도 있고 그렇잖아요. 그러니까 그런 것들에 대해서 원하는 답이 안 나올 수가 있거든요. 근데 계속 이렇게 둘로 둘로 나눠서 질문을 하면 어떤 차의 형태가 나오는데 네. 그게 처음에 자기가 생각했던 차가 아닐 수도 있어요. 이게 뭐냐면 이분법이거든요.

아하. 그 이분법은 인류가 가장 먼저 형성한 세상을 구분해서 인식하는 방법이에요. 판단하고 선택하기 위해서 네. 가장 기초적이면서도 굉장히 허점이 많은 구분법이거든요. 예를 들어 이런 거죠. 우리가 보수, 진보 말고 물과 이과. 그 왜냐하면 이게 이분법을 쓰기 시작하면 예, 사람이 그 분류 체계에 자기 정체성을 속박시켜요. 음, 자기가 세상을 좀 쉽게 이해하기 위해서 쓴 분류법인데 음, 근데 그 분류법에 자기를 집어넣게 돼요. 네. 무슨 얘기냐면 문과, 이과 한번 볼까요? 이건 우리 한국인들에게는 중학교 3학년 때 다시 되면 정말 심각한 가장 중요한 인생의 고민거리일 수 있죠. 음, 문과를 선택할 거냐, 이과를 선택할 것이냐. 근데 그리고 나서 사람들은 이제 나중에 그런 얘기를 해요. 문과형이다, 이과형이다. 세상에 문과와 이과만 있나 하고 문과와 이과가 정말 세상을 구분하는 것인가? 사람을 나누는 것인가? 음, 한국에서 문과와 이과로 나누지만 미국에서는 그런 기준이 없어요.

없죠. 당연히 없죠. 문과, 이과 구분하는 게 이해가 안 돼요. 그 사람들은. 그러고 나서 뭐 그러네요. 그렇죠. 사람들은 오히려 학부 졸업장이 이제 사이언스냐 아트냐, 예술과 과학으로 나누고 고등학교 때 입시에서도 문과, 이과 차별 같은 게 없잖아요. 없죠. 근데 우리는 그 틀을 만들어 놓고 우리 스스로가 그 안에서 내가 문과형인지 이과형인지를 고민하게 되는 거예요. 나중에 대학 들어서 아, 나 원래 이과 갔어야 되는데 문과 잘못 왔다. 이렇게 판단하기도 하고 네, 이런 거거든요. 구분법이라고 하는 것은 세상을 인지하는 틀뿐만 아니라 자기 정체성을 스스로 만들어 가는 과정이에요. 그렇죠. 그래서 이게 구분이 잘못되면 음, 이제 세상을 잘못 이해하게 되고 자기 정체성도 혼돈을 겪게 돼요. 네. 그러니까 우리가 보수냐 진보냐라고 우리가 정치 정당들을 구분하고 자기 스스로 그 구분하고 거기에 대해서 판단하면서 자기도 보, 내가 보수인가 진보인가 이걸 따져요. 그리고 언론, 여론 조사를 보면 꼭 그렇게 물어요. 그럼 누구를 지지하느냐 이렇게 물으면서 보수층, 진보층, 중도층으로 만들죠. 사실은 이분법이죠. 이분법에 안 들어가는 사람들이 이제 중도라고 이제 얘기를 하는 건데, 중도. 그러니까 거기에 자기가 선택을 해야 돼요. 내가 보수냐 진보냐라고 하는 것을 선택을 해서 이렇게 만들어 버리고 그럼 보수가 뭐냐를 거꾸로 따져 가는 거예요. 예. 내가 원하는 것은 이런 것인데라고 하는 이제 자기의 욕망이 있고 바람이 있고, 근데 세상에서 만들어 놓은 보수나 진보라고 하는 이미지와 틀이 있단 말이에요. 네. 거기에 자기를 맞춰 가는 거죠.

그렇죠. 거꾸로 떼요. 예. 사람이 자기 의사를, 정치적 의사를 정립해서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져 있는 세계에 자기를 우겨 넣는 거. 그래서 이런 문제들이 생겨요. 예. 불과 얼그제만 해도 작년만 해도 야, 우리나라 민주 국가야. 민주주의 파괴하려고 하는 거는 이제 좌파들밖에 없어. 이렇게 주장하던 이제 자칭 보수들이 있었단 말이에요. 그래서 이건 여기서 뭐 쿠데타가 일어난다든가 군사독재가 다시 진행된다든가 내란이 일어난다든가 이게 말이 돼? 라고 하던 사람이 음. 내란 사태를 직접 겪고 나서는, 개엄령을 겪고 나서는 그게 맞아. 이렇게 바뀌는 거예요. 보수는 마땅히 윤석열을 지지해야 돼라는 얘기가 하나 만들어지면 음, 자기가 거기에 반대했더라도 그쪽으로 따라가요. 네. 사람들이 그렇게 들어가는 거예요. 이게 틀을 잘못 잡아서 그런 현상이 있다는 거죠. 또 예를 들어 평소에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일본의 역사 교과서 외곡이나 독도 영유권 주장을 보면 무척 분개하던 사람이 네. 어. 윤석열 정부 들어와서는 친일 정책을 찬성하는 쪽으로 바뀌어요. 음. 이게 자기 생각이 바뀐 게 아니에요. 자기가 생각하는 보수는 마땅히 그래야 된다라고 하는 어떤 기준점들이 있고, 그와 관련된 사회적 담론에 자기 정체성을 우겨 넣는 거죠. 사람이 이상해지는 거죠. 중심을 못 찾게 되는 거예요. 그래서 이 전체가 바로 이분법적 현상에 좀 잘못된 이분법적 현상이라고 생각을 해요. 음. 그러니까 보수가 진보, 보수가 진보로 과연 세상이 나뉘는 건가? 또 그 이분법을 우리가 어 정당하게 수용할 것인가? 이 문제부터 좀 따져보죠. 음. 어떻게 생각하세요? 진보의 반대말이 뭘까요? 통상 정치 공학적으로 보수라고 쓰는데, 진보한다라는 거는 앞으로 나간다는 개념인가? 진보의 반대말은 퇴보죠. 퇴행이죠. 퇴행, 퇴보. 퇴보, 퇴행이죠. 영어 사전에도 프로그래시브 하면은 반대말이 리트로그래시브라고 나와요. 정확하게. 그렇겠네요. 진보의 반대말은 컨서버티브가 아니란 말. 예. 컨서버티브의 반대말, 보수의 반대말을 이렇게 찾으면 예. 이제 우리말로는 보수의 반대말 정도 되면은 음. 이제 사실은 그 격파 음. 부수는 것이니까 아니면 어 혁신 이런 정도가 혁신 정도가 보수의 반대말이 맞아요. 그리고 영어 사전에서도 이제 컨서버티브의 반대말은 레디컬이라고 분명히 나와요. 아, 급진적인. 급진적인 혁신주의 이렇게 나오는 것이 정상이거든요. 기억하시겠지만 80년대까지도 우리나라에서는 어 보수와 진보라는 구분법을 안 썼어요. 음, 그렇게 써 본 적이 거의 없어요. 보수 대 혁신. 그래서 보혁 대결 이런 식의 표현을 썼는데, 보수와 역시 보수와 진보를 나누지는 않았어요. 그리고 이 보수주의, 진보주의라고 하는 좀 묘한 이름들 속에 자기 정체성을 우겨 넣으면서 어떤 문제들이 생기냐면, 사실은 이런 문제들은 어 그러니까 이제 신과 구 사이에 어떻게 배분할 것이냐는 문제는 옛날부터 문제가 돼 있었어요. 중국 고대에서부터 나온 그런 얘기가 있잖아요. 온고이지신, 그 옛날 것을 연구해서 새로운 것을 안다. 또 조선 후기에는 그 말을 좀 더 어 좀 나름대로 창조적으로 이해를 해서 새로운 것을, 제도나 법을 만들 때에는 옛날 것을 기본으로 해서 새로운 것을 만들어야 된다. 그래야 혼란이 없다 해서 법고창신 이런 말도 했었어요. 네. 왜 이 말씀을 드렸냐면 현대 사회는 세 사회 자체가 엄청나게 빨리 변해요. 네. 가만히 있어도 세상이 변해요. 원래 보수라고 하는 것은 그 좀 있다 더 말씀을 드리겠지만 보수라고 하는 주인은 자기가 살아온 세계를 지키는 거예요. 그게 바뀌는 걸 원하지 않는 거예요. 예를 들어 이런 일이 있었어요. 일제강점기에 벌써 이제 저희 조부님 세대죠. 저희 조부님 세대고 제가 잘 아는 분의 조부님이셨어요. 평생 기차를 안 탔대요. 본인 가까운 데 여기 있었는데. 예. 첫 번째 저게 외놈들이 만들어 놓은 거라서 타기 싫다는 것이었고, 둘째로는 이분이 진짜 보수주의자인 거예요. 저런 걸 타기 시작하면은 내가 이미 익숙해져 있는 걸음속, 거리 감각 이런 것들이 다 바뀐다고 생각을 한 거예요. 네. 그 안 타는 거예요. 음. 그런 사람들이 옛날에 보수 주제였거든요. 근데 요즘에는 뭐 휴대 전화 나왔다고 그거 안 쓰는 사람 없잖아요. 그걸 쓰기 시작하면 자기 삶이 바뀌어요. 네. 새로운 이게 물질 세계가 너무나 빨리 변하고 있기 때문에 거기에 적응하는 것만으로도 사람은 자연스럽게 진보주의자가 돼요. 음. 진보라고 하는 것은 현대인들에게는 기본적인 삶의 태도예요.

그렇겠네요. 예. 어제 다르고 오늘 다르고 내일 다를 거라고 기대하고 사는 사람들이에요. 다들 그래요. 더 좋아질 거라고 기대하고. 사실은 옛날 그 우리가 200년 전만 해도 세상이 나아질 거라는 기대를 별로 안 했어요. 사람들이. 음. 행복이라는 단어 자체가 없었어요. 네. 사는 이유가 무슨 뭐 행복, 미래에 뭔가 더 나아지는 환경 이런 게 아니라 정말 하루하루 살아가는 거였거든요. 그게 중세인들까지 전 세계 인류의 공통된 삶의 습관이었어요. 그런 데서는 보수나 진보나 이런 것들이 선택 가능한 일일 수가 있겠지만 현대 삶에서는 진보라고 하는 것은 삶의 기본이에요. 음. 속도만 그럭저럭 따라가도 자기가 스스로 진보적인 인간이 될 수밖에 없는 거예요. 변화에 적응하고 변화에 익숙해지고 변화를 바라고. 그니까 과거에 자유한국당인가, 자유한국당이었는지 미래통합당이었는지 모르겠는데 뒤에다 크게 써 놨어요. 보수는 혁신합니다. 제가 그거 보고 한참 웃었어요. 보수는 혁신합니다가 이게 무슨 말이냐. 보수, 보수와 혁신은 반대말인데, 그 남자는 여자입니다라는 말처럼 들렸던, 따뜻한 아이스 아메리카노 주세요. 그 얘기네. 그렇죠. 그런 얘기죠. 보수 혁신합니다가 그런 거였단 말이에요. 그래서 이런 구분법, 일단 좀 개념을 좀 따져보고요. 구분법이 형성된다는 얘기를 좀 말씀을 드릴게요. 네. 사실은 이제 보수라고 우리가 부르는 이 태도, 그러니까 현실을 더 중시하는 태도죠. 옛날 것을 더 중시하는 태도. 지금 현실에 만들어진 것을 지키려고 하는 태도는 어떻게 보면 저는 그렇게 생각을 해요. 어, 노인들하고 대화를 하면 노인들 대화의 특징이 있어요. 나이가 들어갈수록 그래요. 보통 한 얘기 또 하고, 한 얘기 또 하고 그래요. 점점 그렇게 되는 거 같습니다. 그렇게 돼 가고요. 그리고 주로 이제 얘기하는 게 자기 왕년 얘기예요. 그때 내가 뭐 했지, 뭐 내가 왕년에 어떤 것까지 해봤어. 이런 얘기들을 많이 해요. 살아온 세월이 길고 살아갈 세월이 짧기 때문에 예. 그 사람들의 관심도 나이가 들어갈수록 자기 관심은 과거를 향해요.

그렇겠네요. 반면에 젊은이들은 이제 애들이나 젊은이들은 예, 왕년이 별로 없어요. 너 커서 뭐 될래? 이런 얘기 많이, 미래예요. 예, 미래를 더 많이 봐요. 미래에 관한 얘기들이 노인들한테 너 커서 뭐 될래? 그러면 욕이에요. 그죠? 다 이제 뭐 죽을 날만 기다리는 사람한테. 근데 젊은이들은 너 커서 뭐 될래? 라고 하는 질문에 대해서 자기들도 고민하고 주변에서도 물어보고 계속 자기 미래에 대해서 이 직장에 계속 다닐까, 이직할까 고민하고 이러는 게 이제 젊은이들의 그 생활, 세상을 보는 눈이잖아요. 저게 이제 이름해서 이제 우리가 말하는 보수적 또는 혁신적 아니면 진보적 관점의 차이가 나와요. 우리가 보수라고 하는 것은 과거를 더 많이 보는 시선이고요. 진보라고 보는 것은 미래를 더 많이 보는 시선이라고 저는 그렇게 정의를 해요. 그래서 어떤 거냐면 과거를 많이 보는 사람들은 내가 다 해 봤어. 그래서 한 그때 그때 우리 세대는 최선을 다해서 여기까지 온 거야. 네. 그리고 그만큼 해서 다른 거 시도들을 해 봤지만 다 안 되더라. 그러니까 우리 현실이 우리가 만들어온 현실이 이제 완성돼요. 예. 현실에 대해서 굉장히 강한 애착을 가져요. 음. 지금까지 그리고 그 현실을 지키고자 하는 어떤 가치들이 있어요. 예를 들어서 가족, 윤리, 그리고 공동체, 민족, 국가. 어, 근데 할리우드 영화를 좀 보면 예, 미국의 영화나 드라마들을 보면 이 보수적, 무파적 또는 보수적 이런 관점에서 만드는 영화들은 늘 마지막에 강조하는 게 그거예요. 가족의 가치. 음. 음, 가족밖에 없다. 그러니까 이 가장 중요한 이제 관점이 그런 것들이에요. 자기가 살아오면서 지켜오고자 했던 것들이 흔들리는 것을 원치 않는 거죠. 음. 그래서 보수적 가치가 보통 이제 윤리, 도덕, 그다음에 국가, 애국심, 그리고 어 가족 이런 걸 중시해요. 반면에 진보라고 부르는 사람들은 과거에 했던 실수를 뭐 많이 해서 지금까지 왔다 하더라도 아직도 우리 사회는, 내 삶에는 또 우리 사회는 문제가 많고 이거는 어떻게 하면 좀 더 나아질 수도 있겠다고 하는 미래에 더 많은 가치를 부여하거든요. 예. 음, 과거의 가치를 덜 부여하고 미래의 가치를 부여하기 때문에 뭐 바꾸려고 하는, 변화, 변화에 대해서 관심이 있고요. 그러다 보니까 윤리나 도덕같이 고정적이라고 보이는 것조차도 이거 좀 우리 윤리, 윤리 도덕이 잘못된 거 아니야? 이렇게 생각을 하는 거죠. 거기 가치를 덜 부여해요. 기존 질서를 흔들어 보려고 하고 그거를 어 바꿔 보려고 하죠. 우리들의 관념도 바꿔 보려고 해요. 그런 것들이 이제 유럽에서는 뭐 여러 가지 사례들이 있지만 가까운 68혁명 같은 경우에 금지하라, 또는 이제 모든 우리들의 관념을 무시해 버리죠. 자, 이런 사례를 한번 좀 들어 볼까요? 제가 중학교 다닐 때였었는데요. 70년대였어요. 학교에 기간제 이제 여자 선생님이 계셨어요. 원래 있던 선생님이 뭐 무슨 일 때문에 휴직인 기간제로 오셨는데 청바지를 입고 온 거예요. 그 잘렸어요. 바로. 그러고 보니까 저도 저희 학교에 그 중학교 때 청바지 입은 선생님 막 안 계셨던 거 같습니다. 그렇죠. 막 이제 68혁명의 여파인데, 그게 미국으로 건너가면서 이제 우리 통념을 부수는 어떤 액션을 하고자, 그 당시 진보주의 사조였죠. 하고자 했던 거예요. 왜 여자는 바지를, 여자는 바지를 입으면 안 되나? 왜 남자는 머리를 짧게 잘라야 하나? 음, 너무나 당연한 통념의 세계였잖아요. 남자는 단발, 여자는 머리를 기르고, 머리카락 모양만 보고 뒤에서 남잔지 여잔지 구분하는 세계, 바지 아랫단만 보고 남잔지 여잔지 구분할 수 있는 세계, 이걸 왜 우리가 구분하면서 살아야 하나. 그 사람들이 이제 그런 문제를 던진 거고, 그때부터 이른바 여자가 청바지를 입고 남자가 장발이라고 하는 이런 문화, 히피 문화라고 하는 것이 쭉 그 전 세계를 휩쓸었잖아요. 우리는 이제 68혁명의 정신을 수입할 수 있을 정도의 지적 기반은 갖추지 못했기 때문에, 지적, 사상적 기반은 갖출 수가 없는 형편이었기 때문에 그것만 수입했어요. 그래서 뭐 경찰관들이 또 자르러 다니고 그랬잖아요. 청바지 찢었다. 그래서 여성들 치마길이 단속하고 남자들 머리 그냥 자르고, 기존의 통념 자체가 남자는 머리가 짧아야 돼라는 통념 자체가 이걸 용납을 못 하는 거죠. 또 용납에 저항하는 것으로 표현됐던 것이고요. 어떤 이제 통념, 관습, 법률, 제도 이런 것들 자체를 다 가변적으로 봐요. 바꿀 거라고 보는 네. 그런 것들이 이제 진보적 가치관이라고 할 수가 있어요. 근데 제가 앞서 현대인은 전부 진보적이다라고 말씀을 드렸던 이유는 사람들 나이가 좀 더 젊은이냐, 늙은이냐라고 이렇게 물을 수가 없어요. 나이가 한 40대, 50대쯤 되면 시선은 많은 과거를 향하고 많은 미래를 향해요. 나이가 80되면 완전히 과거가 꽉 자기를 압도하고 있지만, 또 20살이면 미래가 전체를 자기를 압도하고 있지만, 나이가 3, 40대, 이제 중간쯤 되면, 인간의 평균쯤 되면 음, 일부는 과거를 보고 일부는 미래를 보는 거예요. 네. 그래서 사람들은 이렇게 진보와 보수로 나누지 않아요. 어떤 면에서는 근데 굉장히 가족주의적인데, 공동체적인 문제에 있어서는 변화에 역시도 민감하고 변화를 추구하고 이런 사람도 있고 음, 그러니까 어떻게 보면 이 사람이 보수야, 진보야? 자기 스스로가 헷갈리는 거예요. 그게 보통 사람의 기본이에요. 사실은 내가 가족주의자이면서 가족의 가치를 굉장히 중시하면서도 어 공동체적, 그 사회에 좀 변화를, 빠른 변화를 바란다. 이럴 수 있잖아요. 음. 내 가족 다 파괴해 놓고도 가족이라고, 혼자 사는 게 더 좋으면서도 아, 우리 사회가 변하면 안 돼. 도 있어요. 보수적인 면과 진보적인 면을 사람이 다 가지고 있어요. 이게 그래서 저는 우리 한국 정치 구조가 기본적으로 이거를 굳이 인위적으로 나눔으로써 마치 보수냐 진보냐라는 거 하는 나눔으로써 사람들한테 강요를 하는 거예요. 너 보수주의자가 될래? 진보주의자가 될래? 선택하라 그러는 거예요. 그런 거 없어야 돼요. 자기가 원하는 대로 표현할 수 있어야 되는데, 그게 올바른 이제 인간에 대한 태도일 거라고 저는 생각을 하는데, 이렇게 나눠 버린 거죠. 근데 이 나누는 과정도 그렇고, 나눈 이유도 그렇고 저는 그렇게 어 자연스럽다고 생각하진 않아요. 제가 두 가지 예를 한번 좀 들어 보죠. 네. 시진핑은 보수인가요? 진보인가요? 그 정치적인 행태는 매우 보수적인 거 같고요. 예. 그런데 또 그 뭐 사회주의자니까 진보, 이거 그걸 우리가 사회주의라고 하는 걸 그 통념을 벗어버리고 한번 보죠. 그 사회 내에서 그 사람이 취하고 있는 그 행태는 완전 보수적인 거죠? 김정은이 보수이냐? 진보인가? 보수죠. 그렇죠. 그 말씀드리는 거예요. 이렇게 말씀드리면 우리가 어 우리가 생각했던 통념 속에서의 보수하고 시진핑, 김정은이 보수로 들어와 버리면 세계적 비중에서는 전혀 다른 보수가 돼 버려요. 완전히 지키려고 하는 사람도 있잖아요. 그리고 예를 들어 또 하나 좀 보죠. 어, 미얀마 군부 독재 집단은 보수 세력인가요? 진보 세력인가요? 거기도 보수, 그건 보수라고 부를 수가 없죠. 예. 그냥 벌거벗은 군사독재. 그건 정치 이념이 중요하지 않은 거죠. 사람들이 아니, 폴포트가 그 사람이 아주 급진적인 좌파였지만 결국 군사독재였단 말이에요. 그런 것들에 대해서 우리가 보수, 진보로 나눌 수가 있느냐는 그렇죠. 그래서 보수와 진보라고 하는 것은 세상을 가로지르는 이분법이 되지 못해요. 첫 번째 드리고 싶은 말씀은 보수와 혁신이라도 보수와 진보도 아니고, 진보와 퇴보의 과정에서 봐야 되는 거죠. 우리도 마찬가지였어요. 음. 예를 들어 19세기 개화파가 막 활동할 때 그때 우리가 보수, 진보라는 개념을 썼느냐? 보수라는, 보수, 진보라는 이분법을 억지로 만들어서 거기다 집어넣은 것이지, 그 당시 사람들은 개화와 척사, 보통 이렇게 나눴어요. 개화냐 수구냐, 척사냐. 일본인들이 그 당시 나눴던 것은 개화당과 그다음에 수구당, 음, 그다음에 독립당과 사대당, 친일당과 친청당 이런 식으로 구분을 했죠. 이분법을 쓰더라도 그게 보수, 진보라는 개념이 없어요. 일제강점기에는 기본적으로는 친일이냐 반일이냐, 이제 친일파, 반일파로 나눴죠. 1920년대 사회주의가 수입된 다음에 이제 우파, 좌파 나누는데 이것도 좀 그래요. 우파, 좌파 나누면은 우파는 보수, 보수 우파, 진보 좌파 이런 식으로 나눠요. 음, 보통 이렇게 나누고 있죠. 우리가 네, 지금 사람들이 그렇게 나눠요. 근데 좀 다른 범주거든요. 처음에 프랑스 혁명 당시에 좌우파 얘기하면 프랑스 혁명 당시에 국민공회, 3부회에서 나왔잖아요. 국민공회에서 시작됐다 그러잖아요. 그때 지롱드가 우파, 자코뱅이 좌파 이렇게 나눴단 말이에요. 네. 이 사람들이 지롱드는 보수였나? 자코뱅은 진보였나? 이렇게 말이 되나? 어떻게 보세요? 글쎄요. 거기에 뭐 이념 지향이 있었던 거 같지 않고, 나는 태도죠. 행위가 급진적이냐 그렇죠? 아니면 점진적이냐, 뭐 그런 정도의 구, 그 점진이라고 지금 하셨잖아요. 지롱드는 우파인데 점진적이에요. 온건 진보. 그렇죠. 진보주의자예요. 음. 우파는 온건 진보주의자가 우파예요. 음. 좌파는 급진주의자고. 네. 그렇게 나누는 개념들을 계속 써 왔단 말이에요. 음. 그다음에 이제 1917년 러시아 혁명 당시에 어 레닌이 러시아 혁명을 하면서 자기들이 이제 진짜 좌파다 이렇게 얘기를 했던 것이고, 그러면서 끊임없이 이제 급진주의를 경계하고 그랬었죠. 네. 그러니까 진보 내에서 우파와 좌파가 나뉘는 거였죠. 음. 거기서 그 당시에 보수라고 부르는 것들은 어디 보수라고 부르기도 좀 그렇지만 왕당파, 왕당파, 기존의 질서를 지키고자 하는, 질서, 그 왕조 국가 체제를 지키고자 하는 사람들, 이런 개념이었던 거, 개념이었거든요. 그러니까 우리가 일제강점기가 되면서 이제 이념 부분, 이런 저 유럽의 이념 사전들이 들어오고 또 독립운동을 하면서 굉장히 다양한 이제 분류법들이 생겨요. 네. 첫째는 친일 세력하고 독립운동 세력이 있고요. 독립운동 세력 내에서도 일본에 대한 태도가 어떤 거냐? 좀 이렇게 무장을, 무력을 동원해서라도 일본과 싸우겠다. 이런 쪽이 이제 급진파가 되고요. 대체로 외교적인 수단을 통해서라도 어 이렇게 힘을 쓰면서 평화적으로 문제를 해결해 보자는 사람들을 이제 온건파, 이걸 우파라고 불렀어요. 보통. 네. 항일, 반일이라는 큰 카테고리를 묻고 그 내에서의 태도로 그렇죠. 예. 좌파야 우파냐를 나눴다는 거, 나누기도 하고요. 음. 그다음에 저 그 상황에서도 외교론자는 이런 거 다 포기하고 그냥 일본하고 협력해서 우리 민족의 실리를 양보하고 독립 문제를 아주 장기적으로 보자. 당장 독립할 생각하지 말자. 이 이 정도 좀 되면 이제 그 우파 중에서도 극우파다 이렇게 많이 봤고요. 그래서 사회주의 사상이 도입된 다음에 이제 사회주의자, 민족주의자, 그리고 사회주의를 전 세계적으로 좌파라고 부르는 게 일반화되다 보니까 이제 사회주의자가 좌파고, 민족주의자를 우파라고 불렀는데 또 그 와중에 또 나눠요. 민족주의도 좌파가 있고 우파가 있어요. 민족주의자 중에서 비타협적인 사람들을 좌파, 타협적인 사람들을 우파, 그래서 민족주의 우파라고 부르는 사람들이, 불린 사람들이 되게 민족 개량주의자라고 이제 같이 불리다가 1930년대 되면 대거 투항을 하죠. 음, 친일파가 돼요. 그래서 그런 좀 우리 역사를 가지고 있어요. 해방 이후에는. 그래서 이 와중에 미소가 분할해 버리니까 자연스럽게 또 이분법이 들어와서 살아남는 거예요. 음. 네. 그 전에 이분법은 친일이냐 반일이냐였어요. 사실 일제강점기에 가장 중요한 이분법은 친일파냐, 독립운동하는 사람이냐. 네. 그 나머지 무슨 사회주의냐, 민족주의는 부차적인, 부차적인 이념적 구분법이었거든요. 근데 미소가 이제 분할하면서 각각 자본주의 진영과 사회주의 진영의 대표가 남북을 분할해 버리니까 이제 이분법이 확 그쪽으로 바뀌어 버리는

생각을 했고, 사실은 통념이 그랬어요. 사회 통념이 음, 전두환 정권 때까지 저들은 독재, 군사 독재 집단이고, 그다음에 나머지 그 군사 독재에 맞서 싸우는 세력은 정치권에서는 민주당이고, 나머지 사회운동, 학생 운동이나 사회운동 영역에 일부 민주 세력이 있다. 사실 그 수도 굉장히 적었어요. 학생들 빼놓고 우리가 1970년대 민주 세력이라고 부를 수 있는 집단 자체가 없었어요. 일부 교회에서 지금은 이제 뭐 기독교계가 전부 이제 다른 어, 스탠스를 취하고 있지만, 음, 70년대만 해도 뭐 몇몇 목사님들, 강원용 뭐 아니면 어, 박형규, 문익환 이런 분들이 이제 나서서 이야기하는 정도였지, 몇몇 교회에서 시국 기도회 하는 정도고, 또 천주교회에서도 어, 좀 시국 기도회 열고 정의평화재단 만들고 이러는 게 70년대였잖아요. 조금씩 조금씩 민주주의 운동이 이제 시작이 된 거예요. 4·19 때 실패했던 4·19가 왜 학생들만 했는지도 좀 생각을 해 보셔야 돼요. 민주에 대한 관념이 보통 소인들에게 없었어요. 음. 투표를 빼앗긴 사람들, 투표권을 빼앗긴 사람들은 자기가 투표권을 빼앗긴 것도 가만히 있고, 투표권도 없는 학생들이 주, 주력이 돼서 민중 운동을 했잖아요. 근데 그런 걸 하면서 독립운동과 민주 운동이 비슷하다라고 하는 생각들을 좀 하게 된 거고요. 그러면서 어, 계속 이제 민주 세력 이런 말을 계속 썼다고요. 어, 90년대까지도 그랬어요. 노태우 정권 때까지도. 그 이런 시민 사회 운동하는 사람, 민주 세력 대동 단결 이런 말을 썼죠. 민주 대 반민주, 음, 세상은 그렇게 이분법적이라고 생각을 했어요. 저쪽은 반민주 집단이고, 그의 뭐 기득권 세력이고, 독재 응호 세력이고, 이쪽 야당과 시민 사회는 일부는 어, 민주화 운동 지지 세력이고, 민주 세력이고, 그래서 우리 사회의 과제는 민주화다. 우리 사회의 과제는 민주화다. 이게 하나의 시대적 과제라고 모두 다 인식을 했어요. 민주화라고 하는 것. 그렇죠. 민주 제도를 만들고, 직선제를 되돌리고, 이게 80년대까지의 보편적 정치 구분법이었어요. 정치를 이해하는 게 그랬죠. 1990년에 3당 합당을 하잖아요. 그렇죠. 한겨울이 있습니다. 근데 우리 좀 이걸 기억을 좀 되짚어 보죠. 87년, 예. 민주화 운동으로 이제 직선제 개헌을, 이제 헌법을 만들었잖아요. 참 많은 사람들, 그때까지 한번 조사를 해 봤더니 뭐 그 당시에 87년 이한열 열사 장례식 때 문익환 목사가 단상에 올라가서 어, 전두환 시절, 그 군사독재 시절에 사망한 사람들의 이름을 이제 열사여, 열사여 하면서 불렀던 게 굉장히 인상적이었죠. 장준하 열사여부터 이한열 열사여까지 이렇게 가는 그런 어, 수십 명의 이름을 불렀었는데, 많은 사람이 목숨을 잃었고, 뭐 6월 항쟁 당시에 이제 눈물 많이 흘렸고, 또 백골단에 끌려가서 매맞고, 어, 하여튼 저희 세대인데, 사실 제가 대학원 다닐 때 있었던 일이고, 제 후배들, 저 뭐 저희 동기들 이런 사람들 중에도 그때 맞아서 뭐 한쪽 눈이 실명하고 하거나 다치는 사람들이 꽤 있어요. 그래서 이제 결국 헌법 양보를 얻어냈는데, 이걸 우리가 민주화 운동의 승리라고 이제 기억을 해요. 저는 그 기억이 조작이라고 보거든요. 네. 민주 운동이 승리한 게 아니죠. 음. 승리했으면 민정당이 그 당시에 해체됐어야죠. 사실은 그래요. 민정당하고 합의해서 타협해서 민정당이 다수당인 상태에서 새로운 헌법을 만들 수밖에 없었잖아요. 그 저는 이 헌법은 민주화 운동 세력과 반민주 독재 세력, 그 당시 반민주 독재 세력이니까, 사이에 일종의 타협, 타협이에요. 타협이고, 음, 휴전 협정문이에요. 휴전 협정문에 가까웠어요. 음. 어. 근데 그나마 이제 그걸 어, 우리는 민주화 운동의 승리라고 기억하기로 합의를 한 것, 직선제가. 예. 그다음에 이제 선거에서 결국 노태우 씨가 당선이 됐잖아요. 내란 세력의 당선이에요. 사실은 이 사람 12·12 내란의 공동모의자이고, 5·17 그 내란의 공동모의자였잖아요. 당선이 돼 버렸어요. 민주 운동의 승리가 아니라 이제 일종의 휴전하고 나서 그 후속 협상 과정에서 엄청난 패배를 겪은 거라고 보는 게 맞는데, 그다음에 만들어진 당, 정당 체제가 사당 체제였어요. 자, 이 사당 체제였다면 우리가 지금과 같은 보수, 진보 이렇게 나누는, 나누는 체제가 계속 어, 가능했을까 좀 그런 의심도 좀 들어요. 네. 김영삼의 통일민주당, 김대중의 평화민주당, 노태우의 민정당, 정주일의 신민주공화당, 그 자민련이 후신이었고, 신민주공화당은 충청권을 근거지로 어, 의석 수를 보면은 이제 이 통일민주당과 평민당이 합해서 한 120몇 석 정도 됐었고요. 그 130 정도는 안 되는 정도였을 것 같고, 어, 민정당과 신민주공화당이 합해서 이제 나머지 한 170석 가까이 되는, 또 되는 이런 의석을 얻는 그런 구도가 만들어졌죠. 사당 체제였어요. 그리고 그 당시만 해도 우리가 이걸 뭐 보수, 보수당, 보수 정당이 둘, 진보 정당이 둘 이렇게 나눠 본 적이 없죠. 민주 계열의 정당이 둘이고, 독재 세력의 후예, 뭐 노태우 씨는 본인이 유신 잔당이 아니라 유신 본당이라고 그랬죠. 노태우 민정당이고, 예, 그런 거였단 말이에요. 세 분 다 고인이 돼 있어요. 예. 그게 이제 그 뭐라고 해야 할까, 1990년에 3당 합당을 하잖아요. 예. 3당 합당을 하면서 그때부터 이제 정말로 보수 대 진보라는 구도를 만들어 버려요. 우리가 얼마 안 됐어요. 사실은 35년 정도인데, 그 당시도 그걸 인정을 많이들 안 했는데, 이렇게 만든 거죠. 노태우, 김종필, 김영삼이 연합해서 한 당을 만들었는데, 이 당을 뭐라고 불러야 되느냐, 그걸 보수 대연합이라고 불렀던 거예요. 사실 그에 앞서서 지금 이제 박철언 회고록이나 노태우와 관련된 그 당시에 이제 뒷이야기들 들어보면 어, 김대중과도 단일화, 합당을 타진했다 그랬잖아요. 원래 그쪽으로 하려다가 포기했다는 거죠. 포기했다고 그러잖아요. 그럼 만약에 김종필, 김대중이 이제 동의를 하고 합당을 했다면 그 당이 됐을까요? 우리가 김대중 빼라고 부르면, 음, 저는 그래도 달라지지 않았을 거라고 생각을 합니다. 왜 그랬냐면, 그전에 그 이제 그런 논의와 앞서서 어, 92년 선거 때도 그렇고, 97년 선거 때도 그렇고, 김대중 사상 검증이라고 하는 것이 하나의 이제 우리 주류 언론들의 마치 과제로 인식을 했던 거 같아요. 양쪽에 한번 물어봐요. 김영삼의 사상은 뭐냐? 정치 이념은 뭐냐? 개혁적 보수주의라고 얘기를 해요. 앞뒤가 사실 안 맞죠. 음. 개혁적 보수주의라고 하는 게 제가 말씀드렸듯이 보수주의는 개혁에 대해서 기본적으로 주저하거나 반대하는 사람들이 보수주의인데, 한국 사회에서는 그렇게밖에 얘기를 할 수가 없는 거예요. 진보라는 얘기 자체가 어떤 통념 속에서, 통념 속에서 좌파처럼, 공산주의에 가까운 것처럼 보일 수 있으니까 개혁적 보수주의라고 얘기를 해요. 김대중한테도 물어봐요. 본인도 개혁적 보수주의예요. 음. 그럼 저 사람들은 뭐냐? 노태우와 김종필은 그럼 반개혁, 반, 저, 독재 세력이다 이렇게 볼 수밖에 없는 거죠. 음. 그러니까 개혁 보수 대 반민주 독재 세력 간의 싸움인 것처럼 그게 구도가 만들어졌어요. 김영삼, 김대중 사회는 별 차이가 없고, 양쪽 다 개혁적 보수 세력이고, 저쪽은 사실은 뭐 기득권 세력이고, 이렇게 이제 나눠서 인식하는 틀이 있었는데, 예. 3당 합당을 하면서 이제 3당 합당을 뭔가 이제 명분상으로 정당화할 필요가 있잖아요. 음. 3당 합당을 정당화하기 위해서 여기에다가 뭐라는 이름을 붙이냐면 보수 대연합이라는 이름을 붙였어요. 네. 그때 처음 나온 거군요. 그때 음, 보수가 하나로 뭉쳤다라는 거죠. 보수 대연합. 그러니까 실제로는 내란 독재 세력이 주축이고, 차마 민주 대연합이라고 할 수 없으니까, 그렇게 내란 독재 세력이 주축이고, 자기들을 이제 어, 언론, 미국에서도 이제 그런 식의 표현들이 나왔고, 미국 정치학계에서도 또 한국의 언론들도 그걸 수용을 해서, 음, 독재 정권을 독재 정권이라고 못 부르는 그런 상황을 만들어 버렸어요. 왜냐면 이 사람들이 독재 정권의 후계자들이니까, 다들 민정당이, 네, 또 신민, 그 신민주공화당이 다 독재 정권에서 주요한 역할을 했던 사람들이니까, 전두환, 독재 정권, 저, 박정희 독재 정권이라고 안 부른 거죠. 그래서 권위주의 정권이라고 한번 세탁을 해 주고, 이 세탁이죠. 권위주의 정권이라. 그리고는 또 하나는 이제 산업화 세력이었다. 그러면 그래도 산업화를 했다고 이제 이름을 좀 묘하게, 양, 이분법을, 그 당시가 이제 이분법을 만들어 가는, 만들어 가는 과정이었어요. 새로운 형태의 이분법을, 이분법을 만들어 가면서 이쪽은 산업화 세력, 이쪽은 민주화 세력, 산업화와 민주화가 같이 간다 이렇게 됐다가, 그랬다가, 이거 3당 합당하면서 자기들이 보수 대연합이라고 딱 이렇게 선점을 해 버린 거예요. 예. 그리고 언론이 그걸 이제 추인을 해 줬죠. 이렇게 써, 써 주는 거예요. 이제 민자당은 어, 김영삼이 들어감으로써 보수 정당이 된 거고, 그러면 김대중에게 이제 남은 게 평민당 하나고, 거기 안 따라가는 꼬마 민주당인데, 네, 자기는 보수라고 그래요. 이처럼 실제로 그 당의 국회의원들 중에 진보적인 사람이 없었어요. 평화민주당에 예, 뭔가 진보라고 부를 수 있는 게 아니었죠. 그냥 자기들 스스로 정체성이 개혁 보수인 사람들이에요. 예. 자기는 그러니까 뭔가 이제 급진적인 변화를 원치 않고, 점진적 민주화를 해 가면서 하겠다는 이런 사람들을 자기들이 보수니까 이쪽에다 이제 진보라는 이름을 붙이는 거예요. 그리고 또 그럴 만한 현실이 벌어질 수밖에 없었던 것이 어, 민자당이 탄생하면서 무려 218석의 초거대 여당이 되죠. 국회의 2/3를 차지해요. 세상 모든 일을 다 할 수 있어요. 요즘 그래서 언론들을 보면 제가 좀 어, 이게 그때 그 신문이 맞나 싶어요. 음. 왜냐하면 어, 조선일보나 이런 신문들을 보면 요즘 그런 얘기를 하잖아요. 이재명이 당선되면 음, 어, 입법부와 행정부를 행정을 동시에 장악한 독재 권력이 된다. 아, 그 얘기를 그때 했어야지. 하기야 지금은 어쨌든 과반수는 안 되, 저, 안, 안 되니까, 그때 했어야지. 야, 이걸 만들어 가지고 3분의 2 의석까지 만들어서 다시 독재하는 거다. 그때 했어야죠. 어, 그때 그걸 마치 보수 대연합이라고 이렇게 어, 써놨단 말이에요. 이렇게 돼 버리니까 이건 뭐 개헌 또 다시 할 수도 있고, 또 실제로 당시에 그 민자당을 만들었던 사람들, 노태우, 김영삼 그 전 대통령의 생각은 달랐지만, 그걸 주로 기획했던 사람들 생각은 이 당이 우리나라를 이제 내각제로 바꿔 가지고 일본식 체제로 바꾸려고 했던 거죠. 음. 그 안에 세 개의 개파가 그대로 있으면서 개파별로 장권을 나눠 먹는 일본식 내각제. 그래서 이름도 자민당을 거꾸로 해 가지고 민자당이라고 했잖아요. 정확하게 일본 모델을 만들려고 했던 거, 뭐 노태우, 박철언 이런 사람들 생각이었나 보죠. 박철언이 나중에 그런 얘기를 했죠. 그렇게 해서 김영삼이 계속 직선제 헌법 유지를 고집을 했기 때문에 그게 안 됐다고. 원래는 이렇게 만들어서 내각제 개헌을 해서 일본식 이제 민자당, 자민당 체제를 만드는 그 뭐, 시나리오를 짰니 뭐 그런 얘기 했죠. 예. 그런 얘기가 있었죠. 이제 그런 상황에서 이게 돼 버리니까, 헌법 개헌을, 개헌을 막고, 이런 내각제를 통한 이제 보수 대연합의 영구 집권을 맡고, 네, 이러다 보니까 이제 김대중, 평민당으로서는 일견 이른바 제3세력, 이쪽에 이제 지금 각도에서 보자면 좀 이제 거의 진보적인 사람들, 민주 운동 과정에서 성장한, 새롭게 등장한 진보적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좀 거기에 끼어 있었던 것이고, 특히 87년에 만들어낸 정치 체제보다도 더 중요한 것이 사회 기저의 변화였어요. 기저의 변화라고 하는 게 뭐냐면, 독재 정권 시절에 꿈도 꿀 수 없었던 단체들이 생기죠. 네. 1990년 3당 합당하고 그다음에, 그다음 다음에 사이에 어, 음, 이제 민노총, 민주노총, 또 전농, 전국농민회총연맹, 전국 도시민 운동 연합 같은, 또 전교조, 이건 뭐 나중에 김대중 때 합법화되지만, 음, 이제 기층에서 이런 조직화가 한편에 벌어지고요. 또 한편으로는 어, 정말 중요한 변화가 세계사적 지각 변동이라고 해서, 사회주의가 완전히 무너져 버리잖아요. 중국은 사회주의 공산당, 공산당 일당 독재 국가이긴 한데, 저걸 사회주의 국가라고 볼 수는 없죠. 엄밀하게 말하면 사회주의 국가는 주식 시장이 있으면 안 되는데, 되잖아요. 음. 그렇죠. 주식 시장이 있는 그런 사회주의 국가를 만들어 버린 거, 사회주의 국가가 아니죠. 음. 이제 그런 좀 세계사의 지각 변동이 같이 작용을 하면서 진보의 개념도 좀 바뀌긴 해요. 바뀌긴 하는데, 어쨌든 그, 그런 좀 민주노총이라든가 이런 새롭게 만들어진 기층 세력하고 때로는 음, 협조할 수밖에 없었죠. 음, 뭐 이제 정권에 대한 반대 운동, 대중 시위 이런 거 할 때는 어, 당하고 어, 그런 사람들하고 같이 대중 집회를 열기도 하고, 그러면서 이제 주로 언론들이 좀 앞장섰던 거 같아요. 음, 저쪽은 보수 우파, 이쪽은 진보 좌파 이런 개념들을 만들어 가기 시작하죠. 언론에서, 언론을 중심으로 돼서, 쉽게 보면 이분법 조작이에요. 음. 독재냐, 반독재 민주냐 이런 구도에서 살았던 사람들의 이런 자기 편을, 그래서 이제 이렇게 물어보죠. 너 독재 체제가 좋으냐? 아니면 민주주의가 더 좋으냐? 이러면 대답은 간단하잖아요. 다 민주주의가 좋다. 민주주의가 낫다고 생각을 했죠. 교과서에서 배우는 거니까. 근데 이때부터 이제 사람들의 정체성을 보수냐, 진보냐로 나누는, 음, 그러니까 제가 뭐 문과, 이과 예를 들어서 말씀을 드렸습니다만, 이 구분법이 세상을 인지하는 구분법만이 아니에요. 음, 자기 정체성을 재조직하는 구분법이기도 하죠. 사람들이 그 구분법에 따라가는 거죠. 나는 김대중을 지지하는, 김영삼을 지지하는 민주주의자였는데, 네, 저 당에 이제 같이 묶이다 보니까 같이 지지하는 보수주의자가 돼 버리는 거예요. 이런 식으로 이제 평민당을 진보 좌파로 몰고, 근데 그 당시에는 그렇게 성공적이지도 않았고, 또 그게 흔들리는 어, 경험들을 계속 했어요. 예를 들어 DJP 연합, 이건 뭐로 볼 거냐? 이회창에게 이제 남아 있는 거죠. 신한국당, 그 당시에는 이제 민자당이 김영삼과 김종필을 바꿔서 이회창의 신한국당하고 DJ와 연합된 평민당과 자민련하고 어디가 보수고, 어디가 진보인지 이런 구분을 할 수가 없게 돼 버린 거죠. 흔들려요. 이 흔들리는 경험 때문에 1990년에 이렇게 만들었던 보수와 진보의 틀이라고 하는 이분법적 틀은 1990년대 말, 2000년대까지도 정착을 못 했어요. 진보라는 말 쓸 수가 없어요. 그러네요. 예. 그리고 또 하나는 2002년인가요? 노무현 정권 출범을, 처음으로 민주노동당이 원내 정당이 되죠. 그렇죠. 예. 유명한 진보 정치, 진보 정치 실험을 했던 분들이 이제 그런 분들이에요. 지금 김문수 씨, 민중당, 예, 또 이명박 정부 때 2인자였던 이재오 씨 역시 민중당, 이분 전국연합 조국통일위원장까지 했던 분이거든요. 어떻게 보면 굉장히 강성 우파였죠. 민중이라는 말을 당으로 쓴다는 게 그때 당시 환경에서는 백기완 선생님이 먼저 썼죠. 87년 대, 사실은 민중의 당, 민주당 이런 당 운동은 87년 민주 운동 과정에서 나왔지만, 그때는 그게 굉장히 소수였잖아요. 그러니까, 근데 원내 정당까지 됐단 말이에요. 그러니까 음, 그런데도 어, 사실은 2004년 정도가 좀 저, 획기적이었다고 생각을 해요. 이제 20년 전인데, 그때 이제 노무현 정부가 들어서면서 노무현, 어, 탄핵, 그렇죠. 음, 음. 탄핵으로 이어진 국회, 탄핵으로 이어진 발언이 그거였어요. 탄핵으로 이어진 발언이 내가 뭘 잘해서 열린우리당이 표를 많이 얻을 수만 있다면 합법적인 모든 일을 다 하고 싶다. 뭘 하고 싶다. 그거 한 마디였죠. 합법적인 모든 일. 그것도 그냥 무슨 일이든 아니고, 합법적인 모든 일을 다 하고 싶다. 이게 대통령의 선거법 위반이라고 국회에서 탄핵을 했단 말이에요. 그리고 그 탄핵에는 새천년민주당도 가담을 했죠. 그렇죠. 예. 예. 오히려 그래서 탄핵이 통과된 거죠. 네. 왜 그랬느냐? 그에 앞서서 좀 어, 시민 사회에서 먼저 노무현 정부에게 그런 요구를 했어요. 새로운 정치 주체를 만들자. 보수 중심의 정치가 아니라 개파 중심 보수가 있고, 거기 따라다니는 의원들이 있고, 그래서 보수는 지나치고, 국민 여론은 도외시하고, 도외시하거나 부차적인 이제 이런 사람들이 정치를 해서 안 된다. 국민 속에서 성장한 세력이 새로운 정치 주체로 등장해서 진짜 민주주의를 구현해야 된다. 이런 주장을 하기 시작했고, 그렇게 해서 이 노무현 대통령 중심으로, 사실은 이제 정치적 현상으로는 그렇지만, 음, 어, 그 밑에 있었던 것은 시민 사회 운동, 노동 운동, 민중 운동, 예를 들어서 이런 운동 과정에서 성장했던 사람들이, 활동가였던 사람들이 예, 중심이 돼서 먼저 당을 아래로부터 만드는 이런 실험을 했던 거죠. 그리고 정치자금법 같은 거 개혁해서 예, 어, 돈 안 드는 정치, 가난해도 할 수 있는 정치, 음, 이런 걸 이제 꿈꿨던 거잖아요. 어, 뭐 이제 산프로TV 시청자분들이 저는 잘 모르겠어요. 여기는 이제 어, 다양한 분들 다 모시니까. 매우 다양합니다. 매우 다양하게 모시니까. 근데 제가 잘 안 봐서 좀 그런 기억이 없는데, 보면 지금도 지금 그래요. 당 문화가 어떻게 달라졌냐면,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은 무슨 유튜브 방송 나가면 앞에다가 팬말 이렇게 세워놔요. 후원금 계좌. 그게 이제 하나의 이른바 당 문화죠. 음, 소액, 다수 후원을 부탁하고, 그렇게 해서 그렇게 되면 이제 후원금 내준 사람들 눈치를 보는 당이 돼 버리는 거예요. 반면에 국민의힘 의원들이 그런 걸 제가 본 기억이 없어요. 여기서도 그러셨는지 모르겠는데, 어디서 이렇게 저, 후원금 계좌번호 공개하고 후원해 주십시오, 부탁하는 이런 걸 본 적이 없어요. 네. 근데도 후원금이 어떻게 차는지 잘 모르겠지만, 좀 달라졌어요. 그러니까 이런 식의 이른바 국회의원들이 국민들한테 어떻게 보면은 후원해 주십시오라고 부탁하는, 민망하게, 이게 어깨 힘 주고 이러는 게 아니라 이런 문화를 만들어 보겠다고 했던 것이 노무현의 그 열린우리당 실험이었어요. 그러면서 본인은 그렇게 얘기를 했어요. 우리 역사상 없었던 정당, 100년간 정당을 만들었다라고 생각을 했고, 너무 그게 뿌듯했는지, 표만 많이 얻을 수 있다면 이라고 했다가 이제 탄핵당하는 이런 일이 돼 버렸죠. 그리고 그다음 선거에서는 어, 이 탄핵에 대한 여파, 탄핵 여파라는 말이 나왔죠. 음. 그래서 처음으로, 음, 처음으로 막 반독재 민주화 운동과 가까웠던 그 당이, 반독재 민주화 운동을 했다기보다는 반독재 민주화 운동과 가까웠던 정당이 과반수를 차지하는 변화가 나와요. 예. 그래서 뭐 열린우리당이었죠. 탄핵이라는 얘기 막 했고 그랬죠. 그리고 이제 과반수가 되니까 이, 저, 이 당을 만드는 데 기여했던 시민 사회 단체들, 시민 사회 운동 세력 또는 민주화 운동이나 민주 운동 세력의 요구가 막 폭발하죠. 이제 다 과반수도 만들어졌으니까 할 거 해라. 굉장히 그 당시에 이제 우리 사회에서는 어, 사람들의 의견이 엇갈리는 문제들에 대해서 좀 강행하는 문제로 나왔죠. FTA 같은 거, 뭐 그런 것들, FTA나 이라크 파병 같은 경우는 오히려 이제 조선일보나 이런 데서 지지를 했었고요. 4대 개혁 입법이라고 해서, 예, 국가보안법 폐지, 첫 번째가, 네, 그다음에 언론 개혁법, 사립학교법, 예, 그리고 과거사 정리법, 예, 참, 저는 역사에서 이제 정치적으로 문제들이 해결되지 않고 넘어가고, 해결되지 않고 넘어가는 건 너무 답답한데, 너무 익숙해요. 또, 예를 들어서 또 일본은 지금 그런 얘기를 해요. 이, 이 윤석열의 내란에 가담한 사람들을 샅샅이 좀 찾아냈으면 좋겠다 생각을 하죠. 이건 뭐 대한민국의 민주주의 질서를 완전히 흔들어 버리고, 87년 이전의 독재 체제로 되돌리려고 하는 시도였는데, 여기 누가 어떻게 가담했는지, 지금이야 병력을 동원한 군인 장성들 일부만 재판받고 있지만, 실제로 뭐 민간에선 누가 이걸 조작을 하고 기획을 했는지, 노상균이는 도대체 왜 그런 수첩을 만들었는지, 얼마나 많이 죽이려고 했는지 이런 것도 샅샅이 밝혀냈으면 좋겠다 이런 생각을 하잖아요. 네. 또 밝혀내고 나면 어, 그러면 이제 우리 사회에서 어떤 세력이 사라질 거다. 이런 기대도 해요. 근데 그게 쉽지 않아요. 그렇게 되지 않거든요. 그 당시 노무현 정권 때 굉장히 역점을 줬던 것 중에 하나가 과거사 정리법이었어요. 그동안 어, 군사 독재 시절에 어, 그리고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에 이르기까지 그 시절에 억울하게 목숨을 잃은 사람들, 조작된 사건들, 이런 거 다 좀 밝혀내자. 밝혀내기만 하면 음, 어, 사람들이 양심이 있으니까 설마 저 사람들을 또 지지해야겠나 이런 생각을 했던 거 같아요. 근데 이런 건 그 사건에 관계된 사람들 또는 그 관련된 단체들, 이런 사람들한테 굉장히 심각한 문제잖아요. 사실은 우리가 5월인데, 지금 이제 5월도 다 가고 있고, 오늘이 5월 27일이죠. 그렇죠. 1980년 5월 27일 계엄군이 전남도청에 진입했던 그날이죠. 그때 광주 시민들이 그랬잖아요. 계엄군이 들어오는 게 분명한데, 남아 있으면, 전남대에 남아 있으면 다 죽는다. 음. 죽는 걸 알고 남은 사람들이 있어요. 왜 남았느냐? 일부는 살아서 세상에 알려라. 그러나 우리는 죽음으로서 먼저 간 자들의 죽음을 헛되게 하지 않겠다. 그래서 남아서 거기서 전남도청에서 최후의 수십 명이 거기서 목숨을 잃었죠. 죽을 걸 알면서 남은 그날이었어요. 음. 어. 그런 거예요. 그러니까 이제 그런 일들이 벌어졌는데, 저는 80년부터 지금까지 이제 45년인데, 언젠가는 계엄군 중에 양심 선언하는 사람이 나올 거야. 전두환이 부정하니까, 노태우가 부정하니까, 그런 기대를 했었어요. 근데 최근까지 딱 두 명 했더라고요. 네. 그때 동원된, 총을 쏘았던, 또 사람을 죽였던 계엄군 중에 나이가 이제 다 60대 후반이 돼 갈 텐데, 60대 중반, 후반이 돼 갈 텐데, 젊어도 60대 초반이겠죠. 어, 뭐 기억을 왜곡해서 기억하고 있거나, 조작했거나 이럴지 모르겠지만, 양심 선언하는 사람이 그렇게 없어요. 사실을 밝히는 사람이 그렇게 없어요. 무슨 얘기냐면, 그 군사 독재 시절에 이런 인권 유린에 가담했던 집단이 규모가 어마어마하잖아요. 자기 기억을 정당화하는 그런 사람들이 되니까 이걸 못 찾는 거예요. 게다가 사립학교는, 한국의 사립학교는 6·25 이후에 미국의 원조 자금이 굉장히 많이 들어오고, 카운터파트가 한국의 개신교 쪽이었기 때문에 음, 개신교 학교가 대단히 많아요. 그렇죠. 미션 스쿨이라고, 예예. 엄청나게 많아요. 사립학교 전체를 보면은 거의 2/3가 개신교일 거예요. 대학들만 봐도 그렇고요. 사립학교의 말 이런, 뭐, 가족 중심의 학교 경영, 또 수많은 비리들, 학생들에 대한 좀 어, 인권 유린, 이런 것들이 워낙 광범위하고, 저도 이제 그런 학교를 다녔으니까 굉장히 나쁜, 좀 비리 학교를 다녔으니까 너무 잘 알아요. 그 좀 바꿔 보자는 건 굉장히 큰 여론이었단 말이에요. 근데 그와 관련돼서 이 문제가 굉장히 중요한 인권과 관련됐다고 생각하는, 음, 또는 종교적, 선교의 자유와 관련됐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또 확 돌아섰죠. 그리고 국가보안법 폐지는 이건 사람들의 이제 안보 감정을 건드리는 문제였잖아요. 실제로 이게 뭐 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