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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에게 잘 보이고 싶은 여러분, 잘 생각해 보세요. 그 누군가가 나를 잘 봐주는 게 왜 중요해요? 하나도 중요하지 않아요. 제가 다시 한번 얘기합니다. 하나도 중요하지 않습니다. 중요한 건 딱 한 사람밖에 없어요. [음악] 안녕하세요. 김주환입니다. 여러분의 질문에 대해 답변을 드리는 시간 [음악] 입니다.
많은 분들이요, 또 인정 중독에 대해서, 인간 관계 속에서의 어려움이라는 어, 다른 사람이 나를 만만하게 보면 어떡하느냐, 또 존중을 하려다 보면 상대방이 날 무시하는 건 아니겠느냐 등등에 걱정을 많이 하시고 질문을 주셨어요. 좀 구체적으로 질문 몇 개를 같이 살펴보고 말씀을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인정받고자 하는 마음이 지나칠 경우, 어느 정도 그 인정받고 싶어하는 자신을 알아차림으로써 그런 마음의 일면을 짐작하고 완화할 수도 있다는 것, 완화할 수 있다는 것에도 동의합니다. 그러니까 아, 내가 인정받고 싶어하는구나, 알면 좀 낫다는 거죠. 그러나 그것이 완전히 사라질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있습니다. 어쩌면 인정받고 싶은 마음이란 인간에게 자연스러운 욕구는 아닐까요? 타인에게 인정을 받고 싶은 거, 그 욕구? 맞아요, 자연스러운 거예요. 그런데 문제는 인정 욕구 자체가 아니라 인정 중독 상태에 빠진 것, 그게 문제입니다.
그러니까 누군가, 어, 나를 좀 이렇게 인정해 줬으면 좋겠다, 내가 어떤 뭐 일을 잘하거나 뭘 잘해서 사람들이 나의 전문성이라는, 나의 뭐 뛰어남을 인정해 주길 바란다, 거기까지는 좋아요. 그런데 거기에 얽매여서 타인의 인정과 타인의 존중을 받기 위해서, 그걸 위해서 내가 모든 걸 해나간다면 인정 중독이 되고, 그건 사람을 굉장히 불행하게 만듭니다. 즉, 인정 욕구는 괜찮은데 인정 중독은 우리를 불행하게 만듭니다. 그 차이는 어디 있을까요? 어떤 그 갈망이 일어나고, 그 갈망이 점점 커지고, 그게 중독이 안 되면 지독하게 부정적인 상태로 되는 것. 예를 들어 우리는 밥을 매일 먹어요. 근데 밥 중독이 아니라는 건 뭐냐면, 밥이 없으면 어떤 때는 빵 먹어도 되고, 국수도 되고, 또 오늘 아예 밥을 안 먹고 짜장면을 먹겠다, 그래도 되고, 뭐 여러 가지가 있죠. 그러니까 밥 중독은 되지 않는 거예요. 대체도 있고 뭐도 있고. 근데 이 인정 중독이라는 것은 달리 대체가 잘 안 됩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그냥 인정 욕구와 인정 중독의 가장 큰 차이점은 뭐냐면 충족되지 않았을 때 어떻게 되느냐는 겁니다. 중독 상태는 그것이 충족되지 않았을 때, 내가 이 인정이라는 마약을 원하는데, 그게 충족되지 않으면 극심한 고통과 불행감에 시달립니다. 단순히 인정 욕구 있는 사람은 내가 인정을 못 받아도, 내가 인정받는데 실패했다 하더라도 그렇게까지 불행해지지 않아요. 근데 인정 중독에 빠진 사람은 엄청나게 불행해져요. 더 나아가서 혹시나 저 상대방이 나를 무시하면 어떨까, 나를 인정하지 않으면 어떨까 굉장한 불안감을 느끼고 전전긍긍해요. 그래서 인정 중독에 빠진 상태는 불행한 상태예요. 내 삶을 살 수가 없는 상태예요. 왜냐면 내가 뭘 선택하든, 무슨 일을 하든, 물건 하나를 사든, 예를 들어 자동차를 하나 사든, 가방을 하나 사든, 뭘 하든 남의 눈에 어떻게 보일까, 어느 동네 몇 번 아파트에 살면 나를 무시하는 게 아닐까, 또는 이 나이에 뭐 어디에 몇 평 아파트 이상 살면 나를 인정해 주지 않을까, 이거에 따라 모든 걸 다 결정해 갑니다. 예를 들어 물건 하나 사려고 선택할 때도, 어머, 봐, 내가 이걸 사면, 이건 난 색깔이라 마음에 드는데, 그러나 이걸 내가 선택하는 순간, 내가 이거를 샀다는 걸 아는 내 지인들이 날 무시하진 않을까, 이걸 걱정해요. 또 더 나아가서 이걸 내가 살까 말까 하는, 나, 저거 갖고 싶다 하는 욕구, 무슨 명품 가방을 갖고 싶다는 욕구가 어디서부터 오냐면, 내 안에서부터 오는 게 아니라, 이 명품 가방을 내가 들어야 내 주변 사람들이 이걸 보고 날 멋있다고 해줄 거야라는 데서 오는 거예요. 그러니까 어떻게 되냐면, 내 삶이 전적으로 타인의 판단에 달려 있게 돼요. 그러니까 비유적으로 말씀드리면, 이 개목줄 있죠, 산책할 때 개 산책할 때 끌고 다니는 이 개목줄, 그 목줄을 여기다 달아 가지고 개줄을 이렇게 한 다음에, 그 개줄에 손잡이를 사람들한테 주는 거예요. 나는 목줄에 달려 있고. 무슨 얘기냐면, 나를 컨트롤할 수 있는 권한을 내 주변 사람한테 주는 거예요. 그래서 이 사람들이 인정해 주면 아, 꼬리 치고 행복하고, 이 사람들이 뭐 인정 안 해주면 나는 그냥 주눅 들고 불행해지는 거죠. 그게 인정 중독에 빠진 겁니다. 단순한 인정 욕구랑은 많이 다릅니다.
그래서 아주 단순한 건 그거예요. 내가 인정을 못 받으면 불행해질 것인가? 많이 불행해질 것 같다? 그 인정 중독 상태요. 내가 일상생활 속에서 사람들의 어떤 시선을 얼마나 의식하는가? 구체적인 사람도 아니에요. 그냥 막연한 주변 사람이 머릿속에 들어 있어서, 그 사람들에 의해서 얼마나 내가 통제받고 있나를 한번 생각해 보시면 돼요. 그것도 잘 모르겠다면 이걸 생각해 보세요. 어떤 선택을 할 때 또는 어떤 행동을 할 때 마음속으로 뭔가 변명이나 설명을 하고 있지 않나요? 지금 무슨 얘기냐면, 어, 내가 오늘 저녁 때 뭘 먹을 거야, 어디 가서, 근데 나도 모르게 누구 특정한 사람도 아니에요. 그냥 변명을 해요. 음, 오늘은 뭐 어디 가서 한번 먹어 줘야지. 음, 내가 그거 먹은 지 오래 됐으니까 이제 먹을 때도 됐지라고, 뭐 이렇게 합리화시키고, 내 속에서. 그러니까 나의 행동이나 나의 어떤 하는 일, 나의 선택을 계속 속으로 합리화하고, 변명하고, 설명하고 하는 습관이 있죠? 인정 중독이에요. 그걸 끊어야 돼요. 그래야 자유로운 인간이 돼요. 그래야 행복한 사람이 되고, 그래야 내 삶을 내가 살 수 있고, 그래야 전전두피질이 활성화될 수 있어요. 그렇지 않고 계속 누군가한테 이렇게 설명하는, 그거는 다른 사람한테, 그 다른 사람이 특정인도 아니에요. 많은 경우 특정인도 아니고, 그냥 누군가에 완전히 종속된 삶을 살게 되는 거죠.
자, 그다음 질문 관련된 다음 질문 하나 더 볼게요. 좀 더 가까워지고 싶은 상대 혹은 잘 보이고 싶은 상대에게 열등감을 느낍니다. 누군가한테 잘 보이고 싶어 그러면 열등감을 느낀다, 그래요. 그다음에 그걸 감추기 위해 하는 나의 모습, 열등감 느끼는 내 모습을 감추고 싶어, 결국 상대가 나의 그런 열등감을 알고서 나를 피하고 있는 건 아닌지 하는 그런 생각 때문에 불편함을 많이 느낍니다. 그러니까 전적으로 타인이 나를 어떻게 볼까 때문에 부들부들 떨고 있는 거예요. 타인의 판단에 내 삶의 모든 것을 걸고 있는 거예요. 그리고 질문 또 보면, 그리고 거의 모든 사람에게서, 부모님도, 남편도, 아이들에게도, 아이들에게는 그나마 그런 느낌이 적습니다. 입니다. 아이들에게는 가장 나다운 모습을 보여줍니다. 그러니까 부모님, 남편, 아이들에게도 불편감을 느끼는데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이 얘기는 뭐냐면, 부모님한테 잘 보이고 싶고 인정받고 싶은 그 욕구가 단순한 욕구를 넘어서 중독 상태에 빠져 있는데, 그래서 부모님으로부터 그걸 못 받으면 아주 마약 중독자, 마약 끊는 것처럼 괴로워지는 거죠. 두려운 거죠. 남편도 마찬가지고. 그래서 이분은 뭐냐면, 상대방에게 잘 보이고 싶대요.
누군가에게 잘 보이고 싶은 여러분, 잘 생각해 보세요. 그 누군가가 나를 잘 봐주는 게 왜 중요해요? 하나도 중요하지 않아요. 아니, 그래도 누군가 나를 잘 봐주, 뭐, 다시 한번 생각해 보세요. 그 누군가가 날 어떻게 생각하는 게 왜 중요한가? 제가 다시 한번 얘기합니다. 하나도 중요하지 않습니다. 중요한 건 딱 한 사람밖에 없어요. 내가 나를 어떻게 생각하느냐, 끝. 그죠? 근데 이분은 내가 날 어떻게 생각하는가조차 종속돼 있어요. 뭐 다른 사람이 날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게 먼저고, 다른 사람이 나를 무시하는 것 같아, 그러니까 나도 나를 무시할, 뭐 이런 식으로 가는 거예요. 그러지 마세요. 다른 사람이 나를 어떻게 평가하는가 아무 중요성이 없어요. 왜 그런 줄 아세요? 다른 사람은 여러분이 생각하는 것과 달리, 다른 사람은 여러분한테 별 관심이 없어요. 진짜요. 사람은 뭐에 관심 있어요? 다 각자 자기 삶에 관심이 있어요. 우리 사회에는 인정 중독에 빠진 사람으로 꽉 차 있어요. 그러니까 다 뭐예요? 저 사람이 날 어떻게 생각할까, 서로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거예요. 거기서 좀 빠져나오세요. 나, 이제 이 게임을 안 할래. 빠져나와. 이 게임이라는 건 뭐냐면, 이 인정 중독의 게임이라는 건 뭐냐면, 우리 의무 교육 시스템부터 시작해서, 어려서부터, 아주 어려서부터 엄마 아빠가 뭐 잘한다 그러면 와, 칭찬하고, 학교 가면은 뭐 친구들이 잘한다고, 어, 선생님이 잘한다면 와, 신나고 기분 좋고, 그다음에 뭐 학교 졸업하고 대학 가고 직장 생활하면서 뭐 하면서도 계속 되는 거예요. 계속 친구, 주변 사이, 친척들 사이 계속 되는 거예요. 그러니까 그거를 끊어내세요. 어떻게 끊어내냐면, 당신 애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 건 내 삶과 관련이 없다, 나라는 사람과 관련이 없다, 중요한 건 내가 나를 어떻게 생각하느냐, 그게 더 관련이 있는 거죠.
예를 들어, 그 예전에 그거 언제 한번 보여 드린 적이 있는데, 가끔, 아주 가끔 수업 시간에도 하는 거예요. 예, 여기 제가 막 돈을 꺼냈어요. 주머니에서 만 원짜리 하나가 있습니다. 낡고 낡은 오래된 만 원짜리 있어요. 자, 이 만 원짜리를 꾸겨, 돈을 원래 이렇게 구기면 안 됩니다. 화폐는 아껴 써야 되는데, 사실 요새는 화폐 별로 안 쓰죠. 다 신용카드 쓰고. 그러니까 돈을, 여기요, 꼬깃꼬깃 구긴 만 원 한번 드릴게요. 그냥 같죠? 자, 아까 펴 있을 때랑 구겨 있을 때랑 가치에 차이가 있어요, 없어요? 만 원짜리, 몇 % 쓰면 돼요? 예를 들어 이거를, 이걸 밟았다고 쳐요. 제가 밟았어요. 그러면 얘, 짓밟으면 얘 만 원의 가치가 저하돼요? 아, 조금 저하될 수 있겠지. 지저분한 만 원짜리 되니까. 하지만 이, 이게 만 원으로 살 수 있는 구매력이 떨어지냐고요? 아니요. 변함이 없어요. 이거 같은 거예요. 이거 누가 이렇게 험한 욕을 한다고 얘 가치가 떨어져요? 아니, 누가 얘 구긴다고 가치가 떨어져요? 아니, 누가 와서 밟았다고 이 가치가 변하냐고요? 아니라고요. 우리의 가치는 내 주변 사람이 와서 구기든, 짓밟든, 때리든, 뭐 욕을 하든 뭐든, 내 본연의 가치는 안 변해요. 뭐에서 결정돼요? 내가 나를 어떻게 생각하느냐, 이거에 의해서만 결정돼요. 내면 소통에 의해서만 결정돼요. 그 배경, 자, 모든 걸 알아차리는 그 우리의 진짜 셀프는 세상에 무슨 일이 생겨도 그것의 본성은, 그것의 진정한 가치는 절대 변하지 않아요. 내신 성적, 학교 성적 이런 거 거치고 오느라고, 남이 나를 어떻게 평가하느냐, 경쟁에서 얼마나 이기느냐, 그게 내 가치를 결정할 거야, 넌 몇 등이고 난 몇 등이고, 이런 패러다임에 사로잡혀 있기 때문에 우리가 착각 속에 살고 있는 거예요. 그냥 나는 나예요. 그냥 그 내 본연의 가치가, 그냥 나는 나니까 오늘 하루도 편안하고 행복할 수 있는 거예요. 주변 사람의 평가에 달려 있지 않다니까요. 그걸 깨고 나오세요. 그건 쓸데없는 열등감. 열등감이라는 게 뭐예요? 제보다 내가 못해, 잘하고 못하고가 어디 있어요? 다 기준이 뭐냐에 따라 다르죠. 인생의 목표가 다 똑같다고 착각을 해. 그러니까 먼저 도착한 사람, 나중 도착한 사람, 1, 2, 3, 4, 5등이 있게 되겠죠. 인생은 그런 공통의 목표가 없어요. 360도 어디로 달려가도 다 마찬가지예요. 심지어 안 달려가고 그냥 바닥에 주저앉아 있어도 훌륭한 한 판의 인생이에요. 난 이렇게 앉아 있는 사람이다, 끝. 누가 뭐라 그럴 거예요? 그러니까 얽매이지 마세요. 타인의 어떤 평가에 그렇게 얽매이지 마세요. 그걸 끊어내는 노력을 해 보시기 바랍니다.
또 다른 분, 비슷한 질문 또 한 분 있어요. 사람들이 저를 만만하게 보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아니, 남들이 나를 만만하게 보든 안 보든, 그리고 한번 생각해 보세요. 사람들이라는 그 사람들이 구체적으로 누구예요? 모르겠는데요, 이럴 거예요. 아마, 아, 내 친구들이야, 아, 뭐 내 주변 사람들이요. 그러면 그 사람 한 사람 한 사람의 삶을 자세히 한번 생각해 보세요. 그 사람들도 다 다 힘들고 불쌍한 사람들이에요. 보면 절대 내 삶을 절대적으로 평가할 만한 그런 사람들이 아니에요. 뭐 내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 다 그렇게 위대한 사람들인가? 설명, 위대한 사람들, 내 삶의 가치가 달라져요? 아니라고요. 여러분들이 그토록 두려워하는 주변 사람의 평가, 저 사람이 날 만만하게 보면 어떤가 하는, 그 사람 입장에 가면요, 그 사람도 아마 그런 두려움이 있을 거예요. 내 주변 사람 날 만만하게 보면 어떡하나. 인정 중독에 빠져 있고, 그런 사람이 요새 훨씬 더 많으니까. 그러니까 차라리 주변 사람들의 좋은 평가를 받겠다는 생각을 버리고, 평가하고 뭐 이런 거 하지 말고, 그냥 그 여러분의 주변 사람들을 사랑과 연민의 마음으로 대하세요. 그러니까 어떤 사람이 있어요. 그럼 이 사람으로부터 내가 평가를, 좋은 평가를 받고 싶어. 그럼 뭐예요? 내가 수동적인 위치예요. 이 사람이 평가의 주체이고, 이 사람이 주인공이라고. 그러니까 내 주변 사람을 다 주인공으로 놓는 거예요. 자, 나를 평가해 주세요. 좋게 평가해, 이러고 맨날 살고 있어요. 나는 평가 대상이야. 그러니까 불행해져요. 그러지 말고 여러분이 주인공이 되세요. 평가의 대상이 되지 말란 말이에요. 어떤 주인공? 사랑과 연민, 사랑과 존중, 배려를 나눠주는 주인공. 즉, 내가 따뜻한 마음으로, 아이고, 저 사람도 힘들겠다, 아이고, 저 사람도 어떻겠어, 그러니까 이렇게 사랑과 연민을 나눠주면 뭐예요? 내가 주인공이에요. 내가 평가의 대상이 아니라고요. 여러분을 대상화, 객관화시키지 마세요. 정말이지 지금 현대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는 이 입시 경쟁, 내신 성적 경쟁, 이걸로 가득 차 있어서 자꾸 나를 평가의 대상으로 놓도록 세뇌 교육을 받아왔고, 게다가 온갖 소셜 미디어 때문에 포스팅 올리고 뭐 올리고, 인스타그램에 뭐 올리고, 뭐 틱톡이 뭐니, 다 다 뭐예요? 평가의 대상이 되기를 원하는 거예요. 예, 자, 이 정도 음식을 내가 먹고 있어. 내 삶이 괜찮지? 나 이 정도 예쁜 옷을 오늘 입었어. 어, 나 나 괜찮지? 나 이 정도 몸매를 만들었어. 나 괜찮지? 좋게 평가해 줘. 좋아요 좀 많이 눌러 줘, 이거 하고 있는 거예요. 소셜 미디어를 그렇게 사용하지 마세요. 사랑과 존중을 나눠주는 주인공으로서 내가 소셜 미디어 하겠다, 차라리 그렇게 하세요. 그러면 어떻게 이걸 신경 쓰면서 만만하게 보는 거 같다, 이걸 신경 쓰면 더 민감하게 반응하고, 만만하게 보이지 않아야 되는 강박이 점점 피해 의식으로 발전했을 수도 있겠다. 어떻게 하면 상대방에게 만만해 보이지 않을 수 있을까요? 그리고 이러한 피해 의식에서 벗어날 수 있는 좋은 방법이 있을까? 이게 제가 지금 설명한 거예요. 어떻게 하면 상대방에게 만만해 보이지 않을까요? 방법은 딱 하나예요. 상대방에게 나를 평가할 그러한 권한을 주지 마세요. 여러분 머릿속에 그 권한을 주고 있는 거예요. 개목줄 해서, 자, 나 평가해 주세요라고 해서, 고난을 자꾸 준다, 하지 말고. 또 다른 말로 바꿔 말하면, 여러분들을 평가의 대상이라는 위치에 두지 마세요. 저 사람이 날 만만하게 보는 거 같아서 불안할 것 같아. 그러면, 난 평가의 대상이 아님을 깨닫고. 그다음에 뭐냐면, 나를 만만하게 볼 것 같은 그 사람을 한번 자세히 들여다보세요. 자세히 들여다보면요, 사람 다 불쌍해요. 진짜요. 자세히 들여다보면 삶이 다 힘들어요. 우리는 저마다의 전쟁을 겪고 있다고요. 겉으로는 멀쩡한 척 하지만 다 저마다의 전쟁, 힘들어요. 힘든 게 다 있어요. 고민이 다 있어요. 힘들어요. 그러니까 어떻게 해야 돼요? 내 주변 사람을 다 따뜻한 마음을 내서, 아이고, 저 사람도 힘들겠구나, 그렇다고 해서 힘들다니까 가서 뭐 위로해 주고, 아니, 그런 걸 하라는 뜻이 아니라, 그냥 마음을 내라는 거예요. 아, 저 사람이 고통에서 벗어나기를, 저 사람도 행복하기를, 야, 저 사람도 힘들겠구나, 힘내기를, 우리 내 인생 다 힘들지 뭐, 나만 힘들겠어? 너도 힘들지 않아? 그러면 그 사람들을 내가 이렇게 힘들어하는 사람임을, 따뜻한 마음을 내면 어떻게 되겠어요? 무슨 만만하게 날 보고, 그것 때문에 내 걱정이 되고, 이게 없어요. 만만하게 볼 것 같으니까, 무슨 노력을 해요? 만만하게 보이지 않으려고 내가 더 멋진 모습을 보이려고 노력하죠. 그건 뭐예요? 더 더 나를 평가 대상으로 두는 거예요. 절대 그거 하지 마세요. 내가 만만하게 보일 것 같으니까, 음, 두고 봐. 네가 나보다 돈이 많아서 날 만만하게 보는 거 같아. 음, 내가 돈을 벌고야 말겠어. 본때를 보여주지. 음, 내, 내가 힘이 약해 가지고 너 만만하게 보, 보는 거 같아. 음, 내가 파워를, 내가 길러 가지고 내가 보여주고 말겠어, 막 이런 걸로 가잖아요. 그럼 어떻게 돼요? 인정 중독에 더 빠져요. 계속 나는 평가 대상밖에 안 돼요. 그래서 이 사람이 나를 만만하게 보는 거 같아서 내가 이만큼 올라갔어요. 그 어떻게 될까요? 어, 얘는 만만하게 안 보는 거 같아. 근데 여기 올라가 보니까 이 위에 사람이 더 많이 보이는 거예요. 끊임없이 계속 돼요. 그러니까 이제 그만하세요.
그만, 하나만 더 할게요. 비슷한 얘긴데, 이분은 조금 다른 방식으로, 근데 이런 고민하시는 분들을 많이 봤습니다. 질문이 이래요. 20대 때는 제 자신이 정말 하얀 도화지 같다고 생각했어요. 누구를 만나는지에 따라 그림이 달리 그려지는 도화지, 상대에 따라 변화하는 저의 감정 때문에 사람 만나는 게 피곤할 정도니까요. 그래서 외부 활동을 많이 하면 저 혼자 지내는 시간이 꼭 필요했어요. 외부 활동 많이 해서 사람들 많이 만나면 다 이 도화지 됐다, 저 도화지 됐다, 이 그림 됐다, 저 그림 됐다, 피곤하니까 혼자 지내는 시간이 꼭 필요했다는 거죠. 다시 도화지가 깨끗해질 때까지요. 그때가 되면 친구들이 잠적했다고 서운해 하기도 하고, 그러니까 혼자 이렇게 숨어 있으니까 친구들이 잠적했다고 서운해 하기도 했어요. 요즘은 그런 감정 과잉 상태가 와서 편도체가 지나치게 활성화되면 걷거나 운동을 해요. 그러면 좀 가벼워요. 그렇죠? 편도체 안정화 되니까. 어떻게 다스리며 살아가면 될까요? 자, 여기서 내가, 라는 건 내 감정 상태가 그에 따라 변한다는 게 뭘까요? 그게 뭐냐면, 내가 내 인생의 주인이 아니라, 는 뜻이에요. 어떻게 하다 보니까 나는 다른 사람의 기분, 다른 사람의 의도, 다른 사람의 감정에 자꾸 맞춰주려는 노력을 해요. 그 왜 그럴까요? 그런 사람을 우리는 보통 착하다 그러죠. 왜 이렇게 됐을까요? 사람 맞춰주고, 이 사람 기분 맞춰주고, 왜 그럴까요? 그건 배려랑 달라요. 왜냐면 배려는 할수록 힘이 납니다. 전두엽 활성화하게. 근데 이분은 맞춰주는 거거든요. 할수록 피곤해집니다. 소진돼 가지고, 사람 많이 만나다 보면 소진돼, 혼자, 음, 이러고 있어야 돼. 소진돼 버려요. 왜 그러냐면 이 맞춰 준다는 의미에 뭐가 있는 거냐면, 그 사람의 좋은 평가를 받고 싶다는 게 있는 거. 그래서 난 하얀 도화지 같아. 난 아무것도 내가 주장하는 바가 없어. 친구, 누굴 만나도 어, 너, 너는 그런 걸 원하는구나, 네 감정이 그러구나, 그럼 거기에 동화돼 주고, 아, 이렇게 하는 거예요. 왜? 그래야 얘가 나를 좋은 친구로 생각할 테니까, 그래야 얘가 나를 좋아할 테니까. 또 이 사람 만나면 또 그대로 하는 거예요. 아, 모든 사람의 인정과 사랑을 받는, 그러니까 그게 딱 목표로 돼 있는 거예요. 어느 누구도 나를 미워할 수 없어. 모든 사람의 사랑을 얻고야 말 거예요. 그렇게 습관화된 거야. 어려서부터. 그래서 하얀 도화지가 돼 버린 거예요. 인정 중독의 전형적인 형태입니다. 이게, 아, 난 굳이 인정을 원하는 게 아니에요. 그냥 사람들 맞춰주다 보니 힘들다는 얘기예요. 아니, 그게 인정 중독이에요. 왜 내가 소진될 정도로 남에게 맞춰주는데? 왜 나는 하얀 도화지, 아무 그림도 없고, 다른 사람의 그림에 따라 나를 맞춰줘야 되는데? 왜냐면 인정받으려는 욕구가 엄청나게 강해서 그런 거. 그래서 그거를 지금 이런 고민이 있다 하시는 분은 인정 중독에 빠져나와야 돼요. 맞춰주는 게 아니라 진짜 두 발로 굳건하게 서서 나는 나, 이게 확실하게 자리 잡은 다음에, 그다음에 따뜻한 마음으로 존중과 배려와 사랑을 나눠주는 사람, 힘이 빠지고 이런 증상이 없어집니다. 사랑은 할수록 힘이 납니다. 저 사람이 나 때문에 행복해지는 게 보이잖아요. 그럼 내가 더 전전두피질 활성화한다고, 더 힘이 납니다. 하지만 그러려면 뭐가 먼저 있어야 돼요? 자, 키포인트 하나 말씀드릴게요. 뭐, 뭐가 있어야 될까요? 타인 긍정을 하기에 앞서 자기 긍정이 먼저 있어요. 그 자기 연민, 자기 용서, 자기 존중, 이런 거가 단단히 있는 상태에서 타인에게 사랑과 존중을 하면 모든 게 다 잘 돌아갑니다. 그런데 셀프에 대한 그런 건 없어요. 그냥 나는 그냥 빈 도화지 같은 거예요. 이런 상태로 맞춰주다 보면 그건 인정 중독의 한 형태이고 굉장히 힘들어집니다. 그래서 이 분께는, 제가 하얀 도화지 같은 분께는 어떤 조언을 드리고 싶냐면, 먼저 자기 연민, 자기 용서, 자기 사랑, 감사하기, 자기 존중 등 자기 긍정을 먼저 훈련해 보시기 바랍니다. 물론 그거에 대해서 제가 다른 강의에도, 예전에 라이브한 강의도 다 있고요, 그 내면 소통 책에는 10장, 책 10장에 잘 정리되어 있습니다. 인정 중독에 대한 질문들에 대한 답변은 여기서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