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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십니까? 오늘 이렇게 여러분과 함께 앉아 있게 되어서 참 기쁩니다. 오늘은 다소 무거운 주제일 수도 있지만 실은 가장 소중한 이야기를 나누려고 합니다. 죽음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죽음이라는 말을 들으면은 어떤 기분이 드시나요? 아마도 불편하거나 두려우실 겁니다. 당연한 일이지요. 저 역시 처음엔 그랬습니다. 하지만 오랜 시간 죽음에 대해 생각하고 많은 죽음을 지켜보면서 깨달은 것이 있습니다. 죽음을 생각할 때 비로소 삶이 보인다는 것을요.
오늘 여러분께 전하고 싶은 것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말라는 것이 아닙니다. 두려움은 자연스러운 감정이거든요. 다만 그 두려움 넘어 있는 깊은 지혜를 함께 발견해 보자는 것입니다. 죽음을 통해 삶을 더 깊이 이해하고 더 의미 있게 살아가는 방법을 배워 보자는 것이죠.
제가 처음 죽음을 가까이해서 본 것은 15살 때였습니다. 저를 키워 주신 할머니가 돌아가셨거든요. 그때까지 저는 죽음이 무엇인지 제대로 몰랐어요. 아니, 알고 싶지도 않았습니다. 근데 할머니의 마지막을 지켜보면서 큰 충격을 받았어요. 아침까지도 저와 이야기하시던 할머니가 저녁에는 차가운 몸이 되어 계시더군요. 그 순간 깨달았습니다. 아, 인생이란 정말 더는 것이구나. 오늘 있다가 내일 없을 수도 있는 것이구나 하고요.
그때부터 죽음에 대해 깊이 생각하기 시작했습니다. 왜 사람은 죽어야 하는가? 죽음이란 무엇인가? 죽음 이후에는 무엇이 있는가? 이런 질문들이 제 마음을 떠나지 않았어요. 절에 들어간 것도 그런 이유가 컸습니다. 삶과 죽음의 의미를 찾고 싶었거든요. 부처님의 가르침을 통해 이 근본적인 물음에 대한 답을 얻고 싶었습니다.
부처님께서는 사성제라는 가르침을 주셨습니다. 그 첫 번째가 고성제 즉 인생은 괴로움이라는 것입니다. 태어남도 괴로움이고 늙음도 괴로움이고 병도 괴로움이고 죽음도 괴로움이라고 하셨어요. 또한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지는 것도 괴로움이고 싫어하는 사람과 만나는 것도 괴로움이며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하는 것도 괴로움이라고 하셨습니다.
처음 이 가르침을 들었을 때는 너무 절망경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럼 인생은 괴로움 뿐인가? 희망은 없는 건가?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부처님께서는 절망을 주려고 이런 말씀을 하신 것이 아니라 현실을 정확히 보라고 하신 것이었어요.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보면은 모든 것은 변합니다. 생겼다가 사라지고 모였다가 흩어집니다. 이것을 무상이라고 하지요. 무상하기 때문에 괴로움이 생기는 것입니다. 영원히 간직하고 싶은 것들이 사라지니까요.
하지만 이 무상함을 받아들이면 오히려 자유로워집니다. 모든 것이 변한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집착하지 않게 되거든요. 좋은 일이 생겨도 너무 들뜨지 않고 나쁜 일이 생겨도 너무 절망하지 않게 됩니다. 어차피 변할 것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지요.
죽음도 마찬가지입니다. 죽음은 끝이 아니라 변화의 한 과정입니다. 몸은 사라지지만 그것이 전부의 끝은 아니에요. 물이 얼음이 되었다가 다시 수중기가 되는 것처럼 죽음도 하나의 변화 과정일 뿐입니다.
물론 이런 말씀을 드린다고 해서 죽음이 두렵지 않다는 것은 아닙니다. 저 역시 사람인지라 때로는 죽음이 두려워요. 특히 젊었을 때는 더 그랬습니다. 아직 하고 싶은 일도 많고 이루고 싶은 것도 많은데 죽으면 어떡하나 하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그런데 나이가 들면서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죽음을 두려워하는 것보다 의미 없는 삶을 사는 것이 더 두렵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어요. 오래 산다고 해서 좋은 것이 아니라 어떻게 사느냐가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절에서 생활하면서 많은 노스님들의 마지막을 지켜봤습니다. 그분들을 보면서 배운 것이 많아요. 어떤 분들은 죽음을 편안하게 받아들이시더군요. 마치 긴 여행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셨어요. 한 노스님께서 돌아가시기 전에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나는 할 일을 다 했다. 이제 갈 때가 되었구나. 그 말씀을 들으면서 깨달았어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으려면 후회없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을요.
또 다른 노스님께서는 이런 말씀을 하셨어요. 죽음은 옷을 갈아입는 것과 같다. 낡은 옷을 벗고 새 옷을 입는 것일 뿐이다. 그 말씀이 저에게 큰 위로가 되었습니다. 죽음을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으로 볼 수 있게 되었거든요.
하지만 죽음에 대한 이런 관점을 갖는다고 해서 삶을 소홀해도 된다는 뜻은 아닙니다. 오히려 반대예요. 죽음이 있기 때문에 삶이 더 소중한 것입니다. 영원히 살 수 있다면 오늘이라는 날이 그렇게 소중하지 않을 거예요. 하지만 언젠가는 끝이 난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하루하루가 귀중해지는 것입니다.
제가 아는 한 신도분이 계셨습니다. 평생 건강하셨는데 갑자기 암 선고를 받으셨어요. 의사는 6개월 정도밖에 못 산다고 했습니다. 처음엔 절망하셨지요. 왜 하필 나에게 이런 일이 생겼을까? 아직 해야 할 일이 많은데 어떡하나 하시면서요.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그분의 마음이 바뀌기 시작했어요. 남은 시간이 얼마 없다는 것을 알고 나니 정말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보이기 시작했거든요. 예전에는 사소한 일로 남편과 다투기도 하고 자식들에게 잔소리도 많이 했는데 그런 것들이 얼마나 의미없는 일인지 깨달으셨다고 해요.
그분은 남은 시간을 가족들과 함께 보내시기로 했습니다. 여행도 다니고 맛있는 음식도 함께 먹고 그동안 하지 못했던 이야기들도 나누셨어요. 그리고 평소에 소홀했던 사람들에게 안부도 물으시고 미안했던 일들에 대해서는 사과도 하셨습니다. 놀라운 것은 그렇게 살면서 그분이 오히려 더 행복해지셨다는 것이에요. 죽음을 앞두고 있는데도 예전보다 더 밝아지셨거든요. 죽음이라는 한계가 있기 때문에 오히려 삶이 더 생생해진 것 같다고 하시더군요. 그분은 결국 8개월 후에 돌아가셨습니다. 하지만 그 마지막 8개월이 그분의 인생에서 가장 충실하고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고 하셨어요. 죽음을 받아들이고 나서 비로소 진짜 삶을 살게 되었다고 말씀하시더군요.
이 이야기를 통해 깨달은 것이 있습니다. 죽음은 삶의 반대편에 있는 것이 아니라 삶을 더 깊이 있게 만들어 주는 것이라는 점입니다. 죽음이 있기 때문에 삶이 더 소중해지고 죽음을 의식할 때 비로소 진정한 삶을 살 수 있게 되는 것 같아요.
그렇다면 죽음을 의식하면서 사는 것이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할까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우선 순위를 명확히 하는 것입니다. 정말 중요한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을 구분하게 되거든요. 예를 들어 오늘이 인생의 마지막 날이라고 생각해 보세요. 그러면 무엇을 하고 싶으신가요? 아마도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고마웠다는 말을 전하고 싶으실 거예요. 그동안 미안했던 일들에 대해 사과하고 싶으실 테고요. 아름다운 것들을 보고 좋은 음식을 먹고 평화로운 시간을 보내고 싶으실 겁니다. 그런데 이상하지 않나요? 마지막 날에 하고 싶은 일들이 사실은 평소에도 할 수 있는 일들인데 왜 평상시에는 그런 것들을 소홀히 하면서 사는 걸까요? 왜 중요하지 않은 일들에 시간과 에너지를 낭비하면서 살까요?
죽음을 의식하고 사는 것은 매일을 마지막 날처럼 사는 것입니다. 오늘 하루가 내 인생의 마지막이라고 생각하고 살아 보세요. 그러면 자연스럽게 우선 순위가 정해집니다. 정말 중요한 것들에 시간을 쓰게 되고 사소한 것들에는 신경 쓰지 않게 돼요. 저는 매일밤 잠자리에 들기 전에 오늘 하루를 돌아봅니다. 오늘 하루를 어떻게 보냈는지, 의미 있는 일을 했는지,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는 일을 했는지 생각해 봐요. 그리고 만약 오늘 밤에 죽는다면 후회할 일이 없는지 자문해 봅니다. 처음에는 후회되는 일이 많았어요. 시간을 헛되이 보낸 것도 많고 해야 할 일을 미룬 것도 많았거든요. 그런데 매일 이런 반성을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하루하루를 더 의미 있게 보내게 되더군요.
죽음을 의식하며 사는 또 다른 의미는 집착을 내려놓는 것입니다. 어차피 가져갈 수 없는 것들에 너무 매달리지 않게 되거든요. 돈, 명예, 지위 이런 것들은 죽을 때 가져갈 수 없어요. 그렇다면 이런 것들을 위해 인생을 낭비할 필요가 있을까요? 물론 이런 것들이 아예 필요 없다는 말은 아닙니다. 살아가는데 필요한 만큼은 있어야 하지요. 하지만 그것들을 얻기 위해 정말 소중한 것들을 잃어서는 안 된다는 뜻입니다. 가족과의 시간, 건강, 양심, 평화로운 마음 이런 것들이 돈이나 명예보다 훨씬 중요한 것들이거든요.
저는 젊었을 때 꽤 야심이 있었습니다. 유명한 스님이 되고 싶었고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주고 싶었어요. 그래서 열심히 공부하고 글도 쓰고 강연도 했습니다. 어느 정도 알려지게 되었고 사람들이 찾아오기 시작했어요. 그런데 이상하게도 마음이 편하지 않더군요. 유명해질수록 더 많은 것을 요구받았고 더 완벽해야 한다는 부담감이 생겼어요. 실수할까 봐 조심스러웠고 비판받을까 봐 두려웠습니다. 명예라는 것이 생각보다 무거운 짐이더라고요. 그때 죽음을 생각해 봤어요. 내가 죽을 때 사람들이 나를 기억해 줄까? 기억해 준다면 어떻게 기억해 줄까? 유명한 스님으로 기억해 줄까? 아니면 좋은 사람으로 기억해 줄까? 생각해 보니 제가 정말 원하는 것은 유명한 스님이 되는 것이 아니라 좋은 사람이 되는 것이다군요. 죽은 후에 사람들이 저를 참 좋은 분이었다고 기억해 준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할 것 같았어요. 그래서 명예에 대한 욕심을 내려놓기로 했습니다. 유명해지려고 애쓰지 않고 그냥 제가 할 수 있는 일을 하기로 했어요. 글을 쓸 때도 많은 사람에게 읽히려고 하지 않고 그냥 제 마음을 솔직하게 담으려고 했습니다. 그러니 마음이 훨씬 편해졌어요. 부담감도 줄어들고 더 자유로워졌습니다. 그리고 오히려 그렇게 하니까 사람들이 더 좋아해지더군요. 꾸미지 않은 솔직한 모습을 더 편안해 하시는 거 같았어요.
죽음을 의식하며 사는 것에 또 다른 의미는 시간의 소중함을 깨닫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한정되어 있어요. 그렇다면 그 시간을 어떻게 써야 할까요? 저는 시간을 세 가지로 나누어 생각합니다. 첫째는 생존을 위한 시간입니다. 먹고 자고 일하는 시간들이지요. 이런 시간은 꼭 필요한 시간이에요. 둘째는 즐거움을 위한 시간입니다. 취미 활동을 하거나 휴식을 취하거나 오락을 즐기는 시간들이죠. 이런 시간도 필요해요. 인생이 너무 메마르면 안 되니까요.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세 번째 시간입니다. 성장과 기여를 위한 시간이에요. 나 자신을 발전시키고 다른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는 일을 하는 시간입니다. 이런 시간이 있어야 인생이 의미가 있어요. 문제는 많은 사람들이 첫 번째와 두 번째 시간에만 집중한다는 것입니다. 먹고 사는 일과 즐기는 일에만 시간을 쓰고 정작 성장하고 기여하는 일에는 시간을 쓰지 않아요. 그러니 시간은 많이 보내도 보람이 없는 거지요.
죽음을 의식하면 이런 시간 배분을 다시 생각하게 됩니다. 한정된 시간을 어떻게 써야 가장 의미 있을까 고민하게 되거든요. 그러면 자연스럽게 성장과 기여를 위한 시간이 늘어납니다. 성장이라는 것은 꼭 공부나 기술을 익히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아요. 마음을 성숙하게 만드는 것도 성장입니다. 더 자비로워지고 더 지혜로워지고 더 평화로워지는 것도 성장이지요. 기여라는 것도 꼭 큰 일을 해야 한다는 뜻이 아니에요. 가족을 잘 돌보는 것도 기여고 이웃에게 친절하게 대하는 것도 기여입니다. 자신의 일을 성실하게 하는 것도 사회에 기여하는 일이고요. 중요한 것은 나만을 위한 삶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에게도 도움이 되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그런 삶을 살 때 죽음 앞에서도 당당할 수 있어요. 나는 헛되이 살지 않았다고 말할 수 있거든요.
죽음을 통해 배우는 또 다른 지혜는 용서의 중요성입니다. 죽음 앞에서는 모든 원한과 미움이 무의미해집니다. 어차피 떠날 것인데 누군가를 미워하며 살 필요가 있을까요? 저는 젊었을 때 한 사람을몹시 미워한 적이 있습니다. 그 사람 때문에 큰 상처를 받았거든요. 몇 년 동안 그 사람을 생각할 때마다 화가 났어요. 그런데 어느 날 문득 생각해 봤습니다. 내가 죽을 때 이 미움을 가지고 죽을 것인가? 그때 깨달았어요. 미움은 상대방을 해치는 것이 아니라 나 자신을 해치는 것이라는 것을요. 내가 누군가를 미워하는 동안 그 사람 멀쩡히 잘 살고 있는데 나만 괴로워하고 있더라고요. 그래서 용서하기로 했습니다. 그 사람이 잘해서가 아니라 나를 위해서 용서하기로 한 거예요. 미움이라는 독을 더 이상 마시고 싶지 않았거든요.
처음엔 쉽지 않았어요. 억지로 용서하려고 해도 마음 한구석에서는 여전히 화가 났거든요. 근데 계속 노력하다 보니 점점 마음이 편해지더군요. 그 사람에 대한 분노가 사라지면서 제 마음에 평화가 찾아왔어요. 나중에 그 사람을 다시 만날 기회가 있었는데 전혀 불편하지 않더라고요. 오히려 미안한 마음이 들었어요. 그동안 그 사람을 미워하며 살았던 제 자신이 부끄러웠거든요. 용서는 상대방을 위한 것이 아니라 나 자신을 위한 것입니다. 미움과 원한은 독과 같아서 계속 마시면 결국 자신이 중독되어 버려요. 그런 독을 가지고 죽을 수는 없잖아요. 죽음을 앞둔 사람들을 보면 가장 후회하는 것 중 하나가 용서하지 못한 것들이에요. 그때 용서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고 후회하시더군요. 그렇다면은 살아 있을 때 미리 용서하는 것이 좋겠죠. 용서한다는 것이 상대방의 잘못을 인정한다는 뜻은 아닙니다. 잘못은 잘못이에요. 다만 그 잘못 때문에 내 마음을 계속 괴롭히지 않겠다는 뜻입니다. 상대방의 잘못에서 내 마음을 자유롭게 하겠다는 뜻이지요.
죽음을 의식하며 사는 것은 또한 감사하는 마음을 갖게 합니다. 당연하게 여겼던 것들이 얼마나 소중한지 깨닫게 되거든요. 아침에 눈을 떴을 때 숨을 쉬고 있다는 것이 얼마나 기적 같은 일인지 생각해 보세요. 심장이 뛰고 있고 피가 돌고 있고 뇌가 작동하고 있다는 것이 당연한 일이 아니에요. 언제든지 멈출 수 있는 것들이거든요. 따뜻한 밥 한 그릇을 먹을 수 있다는 것, 깨끗한 물을 마실 수 있다는 거. 편안한 잠자리가 있다는 거. 이런 기본적인 것들조차은 엄청난 축복이에요. 세상에는 이런 기본적인 것들조차 누리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거든요. 가족이 있다는 것, 친구가 있다는 것,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도 마찬가지예요. 혼자 외롭게 죽어 가는 사람들을 생각하면은 곁에 사람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한 일이지요. 건강하다는 것도 그래요. 아플 때만 건강의 소중함을 깨닫는데 건강할 때도 그 고마움을 느낄 수 있어야 해요. 몸이 자유롭게 움직인다는 것 아프지 않다는 것이 얼마나 큰 복인지 말이에요.
이런 감사함을 느끼며 사는 사람은 죽음 앞에서도 원망하지 않아요. 내가 이렇게 많은 것들을 누리며 살았구나. 참 복 많이 받고 살았구나 하고 생각하게 되거든요. 반대로 불평 불만 하며 사는 사람은 죽음 앞에서도 억울해요. 왜 나만 이렇게 빨리 죽어야 하나? 왜 나만 이런 병에 걸렸나 하고 원망하게 되지요. 같은 인생을 살아도 어떤 마음으로 사느냐에 따라 죽음을 맞는 태도가 달라지는 거 같아요. 감사하며 사는 사람은 죽음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지만 불평하며 사는 사람은 죽음까지도 불평의 대상으로 만들어 버려요.
죽음을 의식하며 사는 것에 또 다른 의미는 현재에 집중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과거에 대한 후회나 미래에 대한 걱정보다는 지금 이 순간에 마음을 두게 되거든요. 우리는 대부분 과거나 미래에 마음을 두고 살아요. 과거의 실수를 후회하거나 미래의 일을 걱정하면서 말이에요. 그런데 과거는 이미 지나갔고 미래는 아직 오지 않았어요. 우리가 실제로 살 수 있는 시간은 지금 이 순간뿐입니다. 죽음을 생각하면 이것이 더 명확해져요. 언제 죽을지 모르니까 지금 이 순간이 마지막일 수도 있거든요. 그렇다면 지금 이 순간을 소중히 여기고 충실하게 살아야겠지요.
지금 마시고 있는 차의 향을 맡으세요. 지금 만나고 있는 사람과의 대화에 집중하세요. 지금 하고 있는 일에 최선을 다하세요. 지금 보고 있는 풍경을 마음에 담아 두세요. 이런 것들이 현재에 집중하며 사는 것입니다. 현재에 집중하며 살면 삶이 훨씬 풍요로워져요. 같은 시간을 보내도 깊이 있게 살 수 있거든요. 반대로 과거나 미래에만 마음을 두고 살면 정작는 허술하게 넘어가 버려요.
저는 요즘 산책을 자주 합니다. 예전에는 산책을 하면서도 다른 생각을 많이 했어요. 내일 할 일을 생각하거나 어떤 글을 쓸지 구상하거나 했지요. 근데 이제는 산책할 때는 오직 산책에만 집중해요. 발걸음의 리듬을 느끼고 바람의 감촉을 느끼고 새소리에 귀 기울이고 나무와 꽃들을 유심히 봅니다. 그러면 같은 길을 걸어도 훨씬 더 많은 것들이 보여요. 예전에는 못 봤던 아름다운 것들이 눈에 들어오거든요. 현재에 집중한다는 것은 지금 하고 있는 일이 무엇이든 그 일에 온전히 마음을 두는 것입니다. 밥을 먹을 때는 밥맛에 집중하고 사람과 이야기할 때는 그 사람에게 집중하고 일할 때는 그 일에 집중하는 것이지요. 이렇게 살면은 삶의 질이 달라집니다. 바쁘게 살아도 여유가 생기고 같은 시간을 보내도 더 충실한 느낌이 들어요. 그리고 죽음이 와도 후회가 적어질 것 같아요. 매 순간을 충실하게 살았으니까요.
죽음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사랑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죽음을 의식하면 사랑의 소중함을 더 깊이 깨닫게 되거든요. 사랑하는 사람들과의 시간이 영원하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면 그 시간이 더 소중해집니다. 언젠가는 헤어져야 한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지금 함께 있는 시간을 더 감사하게 여기게 돼요.
저는 사람들에게 이런 말을 자주 합니다. 사랑한다면 표현하라고요. 마음속에만 담아두지 말고 말과 행동으로 표현하라고 해요. 언제 마지막이 될지 모르니까 후회하지 말라는 뜻입니다. 사랑한다. 고맙다, 미안하다. 이런 말들을 아끼지 마세요. 내일 말하면 된다고 생각하지 마시고 오늘 당장 표현하세요. 내일이 없을 수도 있거든요.
저는 부모님이 돌아가신 후에 많이 후회했어요. 살아 계실 때 좀 더 자주 안부를 물어볼 걸, 좀 더 자주 찾아뵐 걸, 좀 더 많이 사랑한다고 말씀드릴 걸 이런 후회들이 마음에 남더라고요. 그래서 지금은 주변 사람들에게 마음을 표현하려고 노력해요. 고마운 일이 있으면 바로 고맙다고 말하고 미안한 일이 있으면 바로 사과해요. 그리고 소중한 사람들에게는 자주 연락해서 안부를 물어봅니다. 사랑을 표현하는 것은 말로만 하는 것이 아니에요. 시간을 함께 보내는 것, 상대방의 이야기를 들어 주는 것, 필요할 때 도움을 주는 것 이런 것들도 다 사랑의 표현이죠.
특히 가족들과의 시간을 소중히 여기세요. 가족은 가장 가까이에 있지만 때로는 가장 소홀히 대하는 사람들이에요. 늘 곁에 있다고 생각하니까 당연하게 여기게 되거든요. 하지만 가족도 영원하지 않아요. 언젠가는 먼저 떠나는 사람이 있을 거고 나중에 떠나는 사람이 있을 거예요. 그렇다면 지금 함께 있는 시간을 더 소중히 여겨야 하지 않을까요? 저는 가끔 이런 상상을 해 봅니다. 만약 내일 가족 중 누군가가 세상을 떠난다면 오늘 그 사람에게 어떤 말을 하고 싶을까? 그러면 평소에 하지 못했던 말들이 떠올라요. 고맙다는 말, 사랑한다는 말, 미안하다는 말들이요. 그럴 때마다 생각해요. 그런 말들을 내일 하지 말고 오늘 해야겠다고요. 마지막에 후회하지 않으려면 평소에 표현해야 한다고요.
죽음을 의식하며 사는 것은 또한 물질적인 것보다 정신적인 것을 더 중시하게 만듭니다. 죽을 때 가져갈 수 있는 것은 물질이 아니라 마음의 자산들이거든요. 지혜, 자비, 사랑, 평화 이런 것들은 죽어서도 남는 것들이에요. 반면 돈, 집, 차, 명예 이런 것들은 죽으면 모두 남겨두고 가야 하는 것들이죠. 그렇다면 살아 있는 동안 무엇에 더 집중해야 할까요? 당연히 마음의 자산들을 쌓는데 집중해야겠지요. 물질적인 것들도 필요하지만 그것들을 위해 정신적인 것들을 희생해서는 안 된다는 뜻입니다.
마음의 자산을 쌓는다는 것은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할까요? 첫째는 지혜를 기르는 것입니다. 책을 읽고 사색하고 좋은 사람들과 대화하면서 생각의 폭을 넓히는 것이지요. 둘째는 자비심을 키우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들의 고통에 공감하고 도울 수 있는 일이 있으면은 돕도록 노력하는 것이에요. 셋째는 사랑하는 능력을 기르는 것입니다. 가족을 사랑하고 친구를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고 나아가서는 모든 생명을 사랑할 수 있는 마음을 기르는 것이지요. 넷째는 평화로운 마음을 유지하는 것입니다. 분노하지 않고 미워하지 않고 시기하지 않는 평온한 마음 상태를 기르는 것이에요. 이런 마음의 자산들을 쌓으면서 사는 사람은 죽음 앞에서도 두렵지 않아요. 진짜 가치 있는 것들을 이미 얻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죠.
죽음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또 하나 중요한 것은 유산에 대한 생각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유산은 재산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에요. 내가 이 세상에 남기고 갈 모든 것들을 의미합니다. 돈이나 재산도 유산이지만 더 중요한 유산들이 있어요. 내가 키운 자녀들, 내가 가르친 제자들, 내가 도운 사람들, 내가 쓴 글들, 내가 한 일들 이런 것들이 더 의미 있는 유산이지요. 나는 이 세상에 무엇을 남기고 갈 것인가? 이것을 생각하면서 살면 삶의 방향이 달라집니다. 그냥 하루하루를 넘기는 것이 아니라 무언가 의미 있는 것을 남기려고 노력하게 되거든요. 꼭 큰 일을 해야 한다는 뜻은 아니에요. 작은 일이라도 좋으니 다른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는 일을 하는 것입니다. 그런 일들이 쌓이면은 결국 의미 있는 유산이 돼요.
자식들에게 물질적인 유산을 남겨 주는 것도 좋지만 더 중요한 것은 정신적인 유산을 남겨 주는 것입니다. 올바른 가치관, 성실한 삶의 태도, 사랑하는 마음 이런 것들이 재물보다 더 소중한 유산이에요. 제자들이나 후배들에게는 지혜와 경험을 나누어 주는 것이 유산이겠지요. 내가 살면서 깨달은 것들, 실수를 통해 배운 것들을 전해 주어서 그들이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도록 돕는 것입니다. 사회에는 내가 한 선한 일들이 유산으로 남겠지요. 어려운 사람을 도운 일, 불의에 맞선 일, 아름다운 것을 만든 일, 이런 일들이 세상을 조금이라도 더 좋은 곳으로 만드는 유산이 되는 것입니다. 이런 유산을 생각하며 살면은 삶이 더 보람이 있어져요. 그냥 나만을 위한 삶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과 후세를 위한 삶을 살게 되거든요.
죽음을 의식하며 사는 것은 또한 일상의 소중함을 깨닫게 합니다. 평범한 일상이 사실은 가장 소중한 것이라는 것을 알게 돼요. 아침에 일어나서 세수하는 것, 아침 식사를 하는 것, 출근하는 것, 일하는 것, 집에 돌아와서 가족과 저녁 식사를 하는 것, 텔레비전을 보거나 책을 읽는 것, 잠자리에 드는 것, 이런 평범한 일상이 얼마나 소중한지 모르고 살 때가 많아요. 그런데 죽음을 생각해 보면은 이런 일상이 얼마나 소중한지 깨닫게 됩니다. 언젠가는 더 이상 할 수 없게 될 일들이거든요. 그렇다면은 할 수 있을 때 감사하며 해야겠지요.
특별한 일이 없어도 행복할 수 있는 사람이 진짜 행복한 사람이에요. 평범한 일상 속에서 기쁨을 찾을 수 있는 사람 말이에요. 아침에 눈을 떴을 때 아 또 하루가 시작되는구나 하고 감사할 수 있는 마음. 밥을 먹을 때 맛있다 하고 느낄 수 있는 마음. 가족들과 함께 있을 때 행복하다 하고 생각할 수 있는 마음. 이런 마음들이 죽음을 의식할 때 더 선명해져요.
죽음은 인생의 마지막 스승이라고 할 수 있어요. 죽음을 통해 우리는 삶의 진정한 의미를 배우게 되거든요. 무엇이 정말 중요한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는지 이런 근본적인 질문들에 대한 답을 얻게 됩니다. 물론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완전히 없앨 수는 없어요. 그것은 자연스러운 감정이니까요. 하지만 그 두려움을 지혜로 바꿀 수는 있어요. 죽음을 통해 삶을 더 깊이 이해하고 더 의미 있게 살 수 있게 되는 것이지요.
저는 요즘 죽음을 친구처럼 생각합니다. 언젠가는 만나게 될 친구로 말해요. 두려운 존재가 아니라 마지막에 나를 편안하게 해 줄 친구로 생각해요. 그렇게 생각하니 마음이 더 평화로워졌어요. 죽음을 친구로 여긴다는 것은 죽고 싶다는 뜻이 아니에요. 살아 있는 동안은 최선을 다해 살되 죽음이 와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겠다는 뜻입니다.
마지막으로 여러분께 당부하고 싶은 말씀이 있습니다. 죽음을 두려워하지만 말고 의미 없는 삶을 두려워하세요. 오래 사는 것보다 어떻게 사느냐가 더 중요해요. 매일밤 잠자리에 들기 전에 자신에게 물어보세요. 오늘 하루를 의미 있게 보냈는가?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는 일을 했는가?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사랑을 표현했는가? 후회할 일은 없는가? 이런 질문들을 매일 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더 의미 있는 삶을 살게 될 거예요. 그리고 언젠가 죽음이 와도 나는 후회 없이 살았다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죽음은 끝이 아니라 완성입니다. 한 편의 아름다운 시를 다 쓰고 마침표를 찍는 것과 같아요. 그 시가 아름답게 완성되려면 한 줄 한 줄을 정성껏 써야 하듯이 인생도 하루하루를 정성껏 살아야 해요. 여러분의 인생이라는 시가 아름답게 완성되기를 기원합니다. 그리고 그 마지막 줄을 쓸 때 미소 지으며 쓸 수 있기를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오늘도 여러분 모두 의미 있는 하루 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