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anscription
[음악] 여러분 잠시 눈을 감고 마음의 소리에 기울여 보십시오. 오랜 세월 홀로 지내며 나는 누구인가를 찾아 헤맨 당신. 혹시 그 질문 자체가 고통의 시작이었을지 모릅니다. 정말로 우리가 그토록 붙들고 있는 나라는 존재는 실체가 없는 환상일까요?
이 이야기가 끝날 때쯤 당신 삶에 깊은 평화가 찾아오는 비밀스러운 지혜를 선물해 드릴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한 스님의 깨달음을 통해 외로움과 고통의 근원을 들여다보고 진정한 자유를 찾아가는 길을 함께 걸어갈 것입니다. 그 길의 끝에는 상상조차 못 했던 놀라운 진실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진실은 에서 찾으려 할 때 오히려 더 멀어지는 신비로운 것이죠.
이 이야기를 끝까지 들으시면 삶에 무거운 짐을 내려놓고 마음의 평온을 되찾는 깊은 안식을 얻게 될 것입니다. 자, 그럼 고요한 오대산 월정사의 뜰에서 시작된 한 스님의 여정을 따라가 볼까요?
오래전 조선 시대 강원도 오대산 깊숙이 자리한 월정사는 고요함 속에 천년의 역사를 품고 있었습니다. 전나무 숲 사이로 난 길을 따라 한걸음씩 내디으면 도시의 소음은 저 멀리 사라지고 오직 바람소리와 새들의 지저귐만이 귓가에 속삭이듯 들려오는 곳이었죠. 이곳은 신라 시대부터 수많은 구도자들이 깨달음을 찾아 머물렀던 한국 불교의 성지였습니다.
그 옛날 월정사에는 대대로 전에 내려오는 특별한 청동 거울이 하나 있었습니다. 그 거울은 법당 뒤편 사람들의 발길이 닿지 않는 곳에 소중히 보관되어 있었지요. 매년 동짓날, 1년 중 가장 밤이 길고 해가 짧은 그날에만 거울을 꺼내 햇빛에 말리는 의식이 있었습니다. 거울의 뒷면에는 아무도 모르는 한 글자가 새겨져 있다는 소문이 돌았지만 오직 주지 스님만이 그 글자를 볼 수 있었습니다.
속세와의 연을 끊고 출가한 지 10년째인 수좌 성각 스님은 그 거울에 대한 이야기를 우연히 듣게 되었습니다. 절 마당을 쓸던 노보살님들의 대화 속에서 흘러나온 이야기는 그의 귀를 사로잡았죠. "글쎄, 저 거울을 들여다보면 진짜 자신을 볼 수 있다던데." "무슨 소리야? 거울은 그저 거울일 뿐이지. 뭘 더 보겠다고?" "아니야. 법당지기 스님이 그러시는데 저 거울에는 금강경의 깊은 비밀이 담겨 있대."
성각 스님의 마음은 그 말에 묘하게 끌렸습니다. 그의 내면에 웅크리고 있던 오랜 질문이 다시 고개를 드는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그 질문은 바로 "나는 누구인가?"였습니다. 이 질문은 지난 10년간 그의 모든 수행과 일상을 지배하는 그림자 같은 존재였죠. 그는 월정사의 고즈넉한 기와지붕 아래 밤하늘의 별을 바라보며 수없이 이 질문을 되뇌었습니다. 숲속을 걷거나 차담을 나누는 중에도, 혹은 공양을 할 때도 그의 마음 한구석에는 늘 이 질문이 아득히 메아리 치고 있었습니다. 고요한 절집 생활 속에서도 이 질문은 그의 내면을 휘젓는 거친 파도와 같았습니다. 그는 알 수 없는 불안과 공허함 속에서 이 질문의 답을 찾아 헤매고 있었고, 그 답을 찾지 못하면 결코 진정한 평화를 얻을 수 없으리라 직감했습니다.
그래서 청동 거울에 대한 이야기는 마치 깊은 잠속에 빠져 있던 그의 영혼을 흔들어 깨우는 작은 속삭임처럼 다가왔던 것입니다. 그저 단순한 소문일 수도 있었지만 성각 스님에게는 어떤 거대한 비밀의 실마리처럼 느껴졌습니다. 이 거울이 어쩌면 자신이 그토록 찾아 헤매던 진실의 문을 열어 줄 열쇠가 될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기대를 품게 되었죠. 그의 발걸음은 자신도 모르게 법당 뒤편 작은 방을 향하고 있었습니다.
성각 스님이 출가하게 된 근본적인 이유 또한 바로 이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 때문이었습니다. 그의 본명은 박성각. 여유로운 양반가의 셋째 아들로 태어나 부족함 없이 자랐습니다. 16에 혼인하고 18에 귀한 아들을 얻었으니 남들이 보기에 그는 그야말로 순탄하고 축복받은 삶을 사는 젊은 가장이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20살 되던 해, 그의 삶을 뒤흔드는 비극적인 사건이 찾아왔습니다. 평생을 꼿꼿하고 당당하게 살아오셨던 아버지가 갑작스럽게 돌아가신 것입니다.
장례를 치르던 날, 성각은 차갑게 식어 관 속에 누워 계신 아버지의 얼굴을 보았습니다. 평소 위엄 넘치던 아버지의 모습은 온데간데없었고, 그저 껍데기만 남은 듯한 시신만이 차갑게 그를 응시하는 듯했습니다. 그날 밤, 잠 못 이루며 홀로 앉아 있던 성각의 마음속에 섬뜩한 질문이 불현듯 떠올랐습니다. "아버지는 어디로 가셨는가? 살아계실 때 그토록 강했던 그분의 존재는 지금 어디에 있는가?" 아버지의 죽음은 그에게 삶의 허망함을 그리고 존재의 더듬음을 너무나도 강렬하게 각인시켰습니다. 마치 단단했던 땅이 갑자기 무너져 내리는 듯한 충격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질문은 곧바로 자신에게로 향했습니다. 더욱 무섭고 깊은 질문이 그의 마음을 잠식하기 시작했습니다. "나는 누구인가? 지금 이 몸뚱이가 나인가? 아니면 이 생각을 하는 내가 나인가? 언젠가 나 또한 죽으면 이 나는 과연 어디로 가는가?" 이 질문은 한번 마음속에 뿌리내리자 도저히 떨쳐낼 수 없는 거대한 그림자가 되어 성각을 덮쳤습니다. 아내와 사랑스러운 아들이 있었지만 그의 마음은 점차 메마르고 공허해져 갔습니다. 따뜻한 가족의 온기조차 그에게는 닿지 않는 듯했습니다. 집안일을 할 때도, 밥을 먹을 때도, 심지어 잠자리에 들어도 끊임없이 같은 질문이 그의 머릿속을 맴돌았습니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누구인가?" 밤마다 이 질문은 더욱 선명해지고 그의 존재를 뒤흔드는 듯했습니다.
결국 23살, 그는 집을 떠나기로 결심했습니다. 그의 결정에 아내는 울부짖었고 어머니는 노발대발하며 그를 붙잡았지만, 성각은 차마 발길을 돌릴 수 없었습니다.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지 못한다면 평생을 고통과 공허함 속에서 살게 될 것만 같았기 때문입니다. 그의 마음은 이미 굳건히 결심한 상태였습니다. 세상의 모든 부귀영화와 가족의 행복을 뒤로하고 오직 진실을 찾아 떠나는 고독한 구도의 길을 택한 것입니다. 그는 그렇게 삶의 모든 것을 걸고 스스로에게 던진 가장 근원적인 질문의 답을 찾아 길을 나섰습니다.
출가한 뒤, 그는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얻기 위해 온갖 수행법을 시도했습니다. 명상에 잠겨 눈을 감고 "나는 누구인가?"를 끊임없이 되뇌었습니다. 깊은 산사의 정적 속에서, 새벽의 차가운 공기 속에서 그의 목소리는 메아리처럼 자신에게 되돌아올 뿐이었습니다. 답은 나오지 않았습니다. 질문만이 더욱 선명하게 그의 존재를 옥죄어 오는 듯했죠.
그는 경전을 파고들었습니다. 금강경, 반야심경, 화엄경 등 불교의 심오한 가르침이 담긴 경전들을 밤낮으로 탐독했습니다. 모든 경전은 한결같이 무아(無我)를 말하고 있었습니다. "나는 없다. 실체가 고정된 나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 말은 그에게 도무지 이해되지 않았습니다. "지금 이렇게 생각하고 고민하고 괴로워하는 이 존재가 바로 내가 아닌가? 내 눈으로 보고 내 귀로 듣고 내 몸으로 느끼는 이 모든 것이 내가 아니라면 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그는 깊은 혼란에 빠졌습니다. 어떤 스님은 그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라는 것은 온 우주의 가일 뿐이다. 몸과 느낌, 생각과 의지, 그리고 의식. 임시로 모인 것일 뿐 실체가 아니다." 성각 스님은 다시 물었습니다. "그럼 그것들이 모이기 전에 나는 어디 있었습니까? 그리고 흩어진 후에 나는 어디로 갑니까? 지금 이렇게 온전히 작용하고 있다는 것을 아는 이 분 대체 무엇입니까?" 스님은 그의 질문에 선뜻 답하지 못했습니다.
또 다른 스님은 단호하게 말했습니다. "나를 찾지 마라. 나는 환상이다. 존재하지 않는 것을 애써 찾으려 하니 괴로울 수밖에 없다." 하지만 성각 스님은 그 말에도 쉽게 납득할 수 없었습니다. "그럼 지금 이 괴로움은 누가 느끼는 겁니까? 환상이 괴로워할 수 있습니까? 만약 모든 것이 환상이라면 이 깨달음을 향한 갈증 또한 환상이란 말입니까?" 그 스님 또한 그의 깊은 질문에 침묵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음악] 그렇게 20년이라는 세월이 덧없이 흘렀습니다. 청년 박성각은 어느덧 43살의 중년 스님이 되어 있었습니다. 그의 검었던 머리는 반백이 되었고 얼굴에는 깊은 주름들이 자리 잡았습니다. 20년간의 고된 수행은 그의 몸과 마음을 지치게 했지만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은 여전히 그의 심장을 꿰뚫는 날카로운 칼날처럼 남아 있었습니다.
어느 날, 그는 발길이 이끄는 대로 법당 뒤편의 작은 방으로 향했습니다. 그곳에 바로 대대로 전에 내려오는 청동 거울이 보관되어 있었습니다. 그는 조심스럽게 거울 앞에 섰습니다. 그리고 거울을 들여다보았습니다. 거울 속에는 수척하고 지친 얼굴의 한 남자가 비쳤습니다. 그의 눈빛은 깊은 고뇌와 오랜 방황의 흔적을 고스란히 담고 있었습니다. 성각 스님은 거울 속 자신에게 물었습니다. "너는 누구냐?" 거울 속 남자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같은 표정으로 그를 멍하니 바라볼 뿐이었습니다. "너는 나냐?" 다시 한번 물었지만, 여전히 거울 속 자신은 침묵으로 답했습니다. 그 침묵은 마치 그의 오랜 질문에 대한 메아리 없는 공허함 같았습니다.
답을 찾지 못한 채, 그는 거울을 조심스럽게 뒤집었습니다. 거울 뒷면에는 분명히 무언가가 새겨져 있었습니다. 그러나 어둡고 흐린 방 안에서는 햇빛이 충분하지 않아 글자가 희미하게 보일 뿐, 정확히 어떤 글자인지 알아볼 수가 없었습니다. 바로 그때, 삐걱거리는 소리와 함께 문이 열리고 주지 스님이 방으로 들어섰습니다.
"성각 스님, 거기서 무엇을 하는가?" 성각 스님은 화들짝 놀라 황급히 거울을 내려놓고 주지 스님께 고개를 숙였습니다. "죄송합니다, 스님." 주지 스님은 그런 성각 스님을 물끄러미 바라보더니 청동 거울을 들어 직접 들여다보았습니다. 그리고 깊은 한숨을 쉬며 물었습니다. "20년을 수행했는데 아직도 그 답을 찾지 못했느냐?" 성각 스님은 고개를 들지 못하고 답했습니다. "예. 부끄럽습니다, 스님. 아직도 저는 저 자신조차 알지 못합니다."
주지 스님의 얼굴에는 안타까움과 함께 묘한 빛이 스쳤습니다. "내가 해줄 수 있는 말은 이미 다 해주었다. 더 이상 이 절에서는 그대의 갈증을 풀어줄 수 없을 것 같구나." 성각 스님의 마음은 다시 한번 깊은 절망감에 휩싸였습니다. 20년간 매달려 온 월정사의 가르침이 자신에게는 닿지 않았다는 사실이 그를 더욱 괴롭혔습니다.
주지 스님은 잠시 침묵하다가 말을 이었습니다. "이제는 다른 분을 만나야 할 때가 된 것 같구나." "다른 분이요?" 성각 스님은 고개를 들고 주지 스님을 바라보았습니다. 그의 눈에는 희미한 희망이 깃들어 있었습니다. "오대산 깊은 곳에 정목 대사라는 분이 계신다. 세상과의 모든 연을 끊고 30년째 토굴에서 홀로 지내시는 분이지. 무아(無我)의 법문에 통달하셨다고 한다. 그분을 찾아가 보거라."
성각 스님의 가슴은 다시금 뜨겁게 뛰기 시작했습니다. 새로운 빛이 그의 오랜 어둠을 가르는 듯했습니다. "어디로 가면 됩니까, 스님?" 그의 목소리에는 간절함이 묻어 있었습니다. 주지 스님은 잠시 먼 산을 바라보며 대답했습니다. "상원사 넘어 깊은 계곡을 따라 이틀 길을 걸어야 할 것이다. 하지만 그분은 아무나 만나 주시지 않는다. 그대가 아직 준비되지 않았다면 결코 그분의 문턱을 넘을 수 없을 것이다."
성각 스님의 마음속에는 다시금 불안감이 스쳐 지나갔습니다. 20년을 헤매도 답을 찾지 못한 자신이 과연 그분께 나아갈 자격이 있을까? "어떻게 준비해야 합니까, 스님?" 주지 스님은 아무 말 없이 청동 거울을 가리켰습니다. "이 거울을 가져가거라. 그리고 그분께 보여 드려라. 그분께서 거울을 보시고 그대의 준비 상태를 판단하실 것이다."
성각 스님은 조심스럽게 거울을 받아들었습니다. 거울은 생각보다 묵직했습니다. 단순한 청동 조각이 아니라 어떤 깊은 세월의 무게를 고스란히 품고 있는 듯했습니다. 그날 밤, 성각 스님은 짐을 꾸렸습니다. 많은 것이 필요하지 않았습니다. 낡은 장삼 한 벌과 공양을 담을 발우 하나. 그리고 주지 스님이 건네주신 청동 거울이 전부였습니다. 다음날 새벽, 오대산의 기운이 아직 차갑게 내려앉은 시각, 성각 스님은 조용히 월정사를 떠났습니다. 20년 동안 그의 마음을 짓눌러 온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의 답을 찾기 위해 그는 모든 것을 뒤로 하고 다시 한번 미지의 길을 나섰습니다. 그 답이 오대산 깊은 곳, 정목 대사의 토굴에 있을 것이라 믿으며 그의 발걸음은 희망과 불안이 뒤섞인 채 묵묵히 산길을 향했습니다.
이틀간의 산행은 고되고 험난했습니다. 성각 스님은 상원사를 지나 점점 더 깊은 계곡을 따라 올라갔습니다. 처음에는 희미하게나마 사람의 발자취가 보였지만, 이내 길은 사라지고 오직 빽빽한 나무들과 짙은 안개만이 그를 에워쌌습니다. 오대산의 웅장하면서도 신비로운 기운은 그를 압도했습니다. 마치 세상의 모든 소음과 번뇌가 사라진 태고의 숲을 걷는 듯했습니다.
첫날 밤, 성각 스님은 거대한 바위 밑에서 잠을 청했습니다. 한 여름이었지만 산속의 밤은 차가웠습니다. 그는 얇은 장삼을 몸에 두르고 최대한 몸을 웅크렸지만 좀처럼 잠이 오지 않았습니다. 어둠 속에서 그의 마음속에는 다시금 오랜 질문이 떠올랐습니다. "나는 누구인가? 지금 이렇게 추위를 느끼는 것이 나인가? 그렇다면 이 추위가 사라지면 나 또한 사라지는 것인가?" 고통과 함께 질문은 더욱 선명해지고 그의 마음은 깊은 고독감에 젖어들었습니다.
둘째 날 오후, 성각 스님은 마침내 작은 토굴 하나를 발견했습니다. 돌을 쌓아 올린 허름한 집이었습니다. 지붕은 짙은 이끼로 덮여 있었고 문은 낡은 나무판자로 위태롭게 매달려 있었습니다. 마치 세상의 모든 풍파를 견뎌낸 듯한 고고한 모습이었습니다. 성각 스님은 조심스럽게 토굴 문으로 다가가 망설임 끝에 문을 두드렸습니다. 똑똑. 하지만 아무런 대답이 없었습니다. 그는 다시 한번 문을 두드렸습니다. 이번에는 좀 더 힘을 주어 그의 모든 간절함을 담아 두드렸습니다. 여전히 정적만이 흘렀습니다. 성각 스님은 기다렸습니다. 한 시간, 또 한 시간. 뜨거웠던 여름 해는 어느새 서산으로 기울기 시작했습니다. 그의 마음속에는 조급함과 함께 다시금 의문이 피어올랐습니다. "과연 내가 준비된 것일까? 정목 대사님께서 나를 만나 주실까?"
바로 그때, 삐걱거리는 소리와 함께 굳게 닫혔던 나무 문이 스르륵 열렸습니다. 문틈으로 한 노승이 서 있었습니다. 연륜을 훌쩍 넘긴 듯한 나이. 머리는 완전히 하얗게 세였고 몸은 마치 앙상한 나뭇가지처럼 보였습니다. 하지만 그의 눈빛은 놀랍도록 맑고 깊었습니다. 마치 세상의 모든 번뇌를 꿰뚫어 보는 듯한 청명한 빛이었습니다.
"무슨 일인가?" 노승의 목소리는 낮고 고요했지만 그 안에는 형언할 수 없는 위엄과 자비가 담겨 있었습니다. 성각 스님은 황급히 허리를 굽혀 깊이 절을 올렸습니다. "정목 대사님이십니까? 월정사 주지 스님의 소개로 왔습니다. 소승 가르침을 청하고자 합니다."
정목 대사는 아무 말 없이 성각 스님을 한참 동안 바라보았습니다. 그 시선은 너무나 깊어서 마치 성각 스님의 마음 가장 깊은 곳까지 꿰뚫어 보는 듯했습니다. 그의 오랜 고뇌와 질문, 그리고 간절함이 그 눈빛 속에 모두 담겨 있는 것 같았습니다. 긴 침묵 끝에 정목 대사가 다시 입을 열었습니다. "무엇을 배우고 싶으냐?" 성각 스님은 망설임 없이 답했습니다. "저는... 저는 제가 누구인지 알고 싶습니다."
정목 대사는 그 말을 듣고 희미한 미소를 지었습니다. 그 미소는 마치 오래된 친구를 만난 듯한, 혹은 모든 것을 알고 있다는 듯한 여유로움이 담겨 있었습니다. "그래. 월정사 주지 스님이 보낸 청동 거울을 가져왔는가?" 성각 스님은 깜짝 놀랐습니다. 자신이 청동 거울을 가져왔다는 것을 어떻게 아셨을까? 그는 황급히 보따리에 쌓여 있던 거울을 꺼내 정목 대사에게 건네드렸습니다.
정목 대사는 거울을 받아들고 햇빛에 비춰 보았습니다. 그리고 거울의 뒷면을 손가락으로 가만히 더듬었습니다. 한참을 보시더니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들어오시오." 토굴 안은 생각보다 좁고 단출했습니다. 평상 하나, 작은 탁자 하나, 그리고 경전 몇 권이 전부였습니다. 하지만 묘하게 편안하고 따뜻한 기운이 감돌았습니다. 마치 세상의 모든 번잡함이 사라진 오직 고요만이 존재하는 공간 같았습니다.
정목 대사는 작은 화로에 물을 끓여 차를 내왔습니다. 깊은 산에서 직접 캔 약초로 끓인 향긋한 차였습니다. 성각 스님은 조심스럽게 차를 마셨습니다. 차의 따뜻함이 그의 지친 몸과 마음에 스며드는 듯했습니다. 길고 긴 침묵 끝에 정목 대사가 다시 입을 열었습니다. "20년을 수행했다고 했지." 성각 스님은 차잔을 내려놓으며 답했습니다. "예, 스님. 20년을 헤맸습니다."
정목 대사의 맑은 눈빛이 그를 응시했습니다. "그동안 무엇을 깨달았는가?" 성각 스님은 솔직하게, 그리고 다소 부끄러운 마음으로 답했습니다. "아무것도 깨닫지 못했습니다, 스님. 오히려 더 혼란스러울 뿐입니다." 정목 대사는 그 말을 듣고 다시 한번 희미한 미소를 지었습니다. 그리고 나지막이 말했습니다. "좋다."
성각 스님은 정목 대사의 반응을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20년간 수행하고도 아무것도 깨닫지 못한 것이 어째서 좋다는 말일까? 그는 의아한 표정으로 정목 대사를 바라보았습니다. 정목 대사는 성각 스님의 마음을 읽기라도 한 듯 조용히 설명했습니다. "무언가를 깨달았다고 생각하는 사람에게는 더 이상 가르칠 것이 없다. 자신의 늪에 갇혀 버리기 때문이지. 하지만 아무것도 깨닫지 못했다는 것을 아는 사람에게는 무한한 가능성이 열려 있다. 빈 그릇만이 채워질 수 있는 법이지."
그제야 성각 스님은 정목 대사의 깊은 뜻을 어렴풋이 헤아릴 수 있었습니다. 그의 오랜 고통과 좌절이 오히려 새로운 시작의 발판이 될 수 있다는 말에 마음속에 희미한 희망이 솟아 올랐습니다.
정목 대사는 다시 청동 거울을 들어 성각 스님에게 보여주었습니다. "이 거울을 보시오." 성각 [음악] 스님은 거울을 들여다보았습니다. 거울 속에는 여전히 수척하고 지친 자신의 얼굴이 비쳤습니다. "누가 보이는가?" 정목 대사가 물었습니다. "제가 보입니다." 성각 스님이 답했습니다. "그 나는 누구인가?" 정목 대사의 질문에 성각 스님은 말문이 막혔습니다. 20년 동안 그가 그토록 애매던 바로 그 질문이었습니다. 머릿속은 수많은 생각들로 뒤엉켰지만 어떤 답도 내놓을 수 없었습니다.
정목 대사는 성각 스님의 혼란스러운 눈빛을 읽었지만 굳이 답을 재촉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조용히 거울을 뒤집었습니다. 거울 뒷면에는 햇빛에 반짝이는 한 글자가 선명하게 새겨져 있었습니다. 그 글자는 바로 '무(無)'였습니다.
"이것이 금강경이 말하는 핵심이요." 정목 대사가 고요히 말했습니다. "하지만 아직은 이 글자의 진정한 의미를 설명하지 않겠어." 성각 스님은 또다시 좌절감에 휩싸였습니다. 20년을 기다려 왔는데, 이제 겨우 그 실마리를 본 것 같은데 여전히 답은 영원하다니. "왜입니까?" 그의 목소리에는 실망감이 역력했습니다.
"그대가 아직 준비되지 않았기 때문이오." 정목 대사의 말은 단호했습니다. 성각 스님은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20년간 모든 것을 걸고 수행해 왔는데 아직도 부족하다는 말인가? "준비한 시간의 문제가 아니에요. 마음의 문제예요." 정목 대사는 성각 스님의 눈을 깊이 들여다보며 말을 이었습니다. "지금 그대의 마음은 나를 찾으려는 집착으로 가득 차 있어. 그대의 모든 노력이 그 집착의 그림자 속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지."
성각 스님은 혼란스러웠습니다. 집착이라니. 그는 진실을 향한 열망을 집착이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었습니다. "집착이요?" "그렇다네. 그대는 20년 동안 나를 찾으려 했어. 하지만 찾으려는 그 행위 자체가 바로 문제예요. 마치 눈으로 눈을 보려는 것과 같이 볼 수 없는 것을 애써 보려 하니 필요하고 괴로울 수밖에."
정목 대사의 말은 마치 망치로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듯한 충격으로 성각 스님에게 다가왔습니다. 그동안 자신이 해왔던 모든 수행과 노력이 오히려 자신을 가두는 족쇄였다는 깨달음은 그의 존재를 송두리째 흔드는 듯했습니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합니까?" 그의 목소리에는 간절함과 함께 길을 잃은 듯한 절망감이 뒤섞여 있었습니다.
정목 대사는 조용히, 그러나 단호하게 답했습니다. "찾지 마시오. 찾지 마시오. 대신 관찰하시오." 정목 대사의 목소리는 마치 산사의 고요함처럼 흔들림이 없었습니다. "관찰이요?" 성각 스님은 처음 듣는 말에 고개를 갸웃거렸습니다. 그동안 그는 찾고 알아내고 붙잡으려 노력해 왔지, 그저 관찰하라는 말은 낯설게 다가왔습니다.
"그렇다네. 나를 찾으려 하지 말고 지금 이 순간 일어나고 있는 모든 것을 그저 관찰하시오. 생각이 일어나면 생각을 관찰하고 감정이 일어나면 감정을 관찰하시오. 하지만 그것이 나라고 규정하거나 나의 것이라고 붙잡지 마시오." 정목 대사는 창밖을 가리켰습니다. 창밖으로는 오대산의 푸른 숲 위로 하얀 구름 조각들이 유유히 흘러가고 있었습니다. "저 구름을 보시오. 구름은 그저 흘러갈 뿐이요. 그대는 저 구름을 보면서 '저것이 나다'라고 생각하지 않소. 그저 구름이 흘러가는구나 하고 관찰할 뿐이지. 마찬가지요. 생각도 저 구름처럼 흘러가는 것이요. 감정도 저 구름처럼 흘러가는 것이요. 그것들이 곧 그대는 아니요. 그대는 구름이 아니듯이 생각도 감정도 그대가 아닌 것이지."
성각 스님은 정목 대사의 설명을 듣는 순간, 마치 먹구름이 거치고 한 줄기 빛이 비치는 듯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동안 자신은 생각과 감정, 몸의 감각 모두를 나라고 동일시하며 살아왔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것들을 붙들고 씨름하며 괴로워했다는 사실이 너무나도 분명해졌습니다.
"그럼 나가 아니고 감정도 나가 아니라면 저는 대체 누구입니까?" 성각 스님은 조심스럽게 질문했습니다. 그의 목소리에는 오랜 질문의 끝에 다가서는 듯한 미묘한 기대감이 서려 있었습니다. 정목 대사는 미소를 지었습니다. "좋은 질문이요. 하지만 아직 [음악] 답할 때가 아니오. 그대는 7일 동안 이곳에 머무르시오. 그리고 내일 관찰 수행을 하시오. 7일 후에 다시 만나겠소."
성각 스님은 주저 없이 정목 대사께 깊이 절을 올렸습니다. "알겠습니다, 스님." 그의 마음속에는 오랜만에 찾아온 명확한 길에 대한 희망과 함께 새로운 수행법에 대한 깊은 호기심이 뒤섞여 있었습니다. 그는 토굴 옆에 마련된 작은 방에 머물게 되었습니다.
정목 대사는 매일 새벽 한 번, 그리고 저녁 한 번씩 성각 스님에게 짧고 간결한 가르침을 주었습니다. 나머지 시간은 성각 스님 혼자 고요의 수행에 몰입했습니다.
첫째 날 새벽, 정목 대사가 말했습니다. "오늘은 그대의 몸을 관찰하시오. 호흡을 관찰하고 몸에서 일어나는 모든 감각들을 관찰하시오. 하지만 '내가 숨 쉰다. 내가 느낀다'라고 생각하지 마시오. 그저 숨이 들어오고 나간다. 감각이 일어난다. 이렇게만 관찰하시오. 마치 강물이 흐르듯 구름이 흘러가듯 자연스럽게 바라보는 것이 중요하네."
성각 스님은 평상에 앉아 눈을 감았습니다. 그동안 수없이 해왔던 좌선과 명상과는 사뭇 다른 방식이었습니다. 그는 그저 자신의 호흡에 집중했습니다. 숨이 조용히 코끝을 스치며 들어왔고 다시 조용히 나갔습니다. 처음에는 익숙한 호흡 명상과 비슷하게 느껴졌습니다. "내가 숨쉬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들었죠. 하지만 정목 대사의 가르침을 떠올리며 그는 그 생각마저도 내려놓으려 했습니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면서 이상한 일이 일어났습니다. "내가 숨 쉬고 있다"는 느낌이 점점 희미해지는 것이었습니다. 마치 멀리서 들려오는 소리처럼 그의 의식에서 멀어져 갔습니다. 누가 숨쉬는 것이 아니라 그저 숨이 일어나고 있었다. 호흡이라는 현상 자체가 스스로 일어나고 사라지는 것을 그는 생생하게 경험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순간, 성각 스님은 작은 충격에 휩싸였습니다. "내가 숨 쉬는 것이 아니라면 대체 누가 숨 쉬는가?"
저녁에 정목 대사를 만났을 때, 성각 스님은 조심스럽게 자신의 경험을 이야기했습니다. "스님, 관찰하다 보니 내가 숨 쉰다는 느낌이 사라졌습니다. 그저 숨이 스스로 일어나고 사라지는 것만 보입니다. 이것이 맞습니까?" 경목 대사는 그의 이야기를 듣고 다시 한번 잔잔한 미소를 지었습니다. "좋은 시작이요, 성각 스님. 바로 그것이네. 내일은 감정을 관찰하시오."
둘째 날, 성각 스님은 정목 대사의 가르침에 따라 감정을 관찰하기 시작했습니다. 아침에 잠에서 깨어나니 오랜 산행과 좁은 방에서의 잠 때문인지 몸이 뻐근했습니다. 불편하다는 느낌이 전신에 퍼져 나갔습니다. 예전 같았으면은 "아, 내가 불편해하고" 생각하며 그 불편함에 휩싸여 괴로워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번에는 달랐습니다. 그는 정목 대사의 가르침을 떠올리며 그저 지켜보았습니다. "불편함이 일어나고 있구나. 몸의 감각들이 저마다의 소리를 내는구나." 신기하게도 그렇게 관찰하니 불편함이 덜하게 느껴졌습니다. 내가 불편하다고 생각하며 주체가 되어 괴로워할 때는 그 감정이 나를 집어삼키는 듯했는데, 불편함이 일어나고 있다고 객관적으로 관찰하니 그 감정이 마치 스쳐 지나가는 구름처럼 견딜 만해졌습니다.
점심 공양 시간에는 따뜻하고 맛있는 산나물이 있었습니다. 입안 가득 퍼지는 향긋함에 즐겁다는 느낌이 일어났습니다. 그런 느낌 또한 관찰했습니다. "즐거움이 일어나고 있구나. 맛있는 음식을 통해 행복감이 피어나는구나." 그렇게 관찰하니 또 다른 것이 보였습니다. 즐거움은 영원히 지속되지 않았습니다. 잠시 강렬하게 일어났다가 이내 천천히 사라져 갔습니다. 마치 바닷가에 파도가 밀려왔다가 부서져 사라지듯, 감정 또한 끊임없이 생겨나고 변화하며 소멸하는 것을 성각 스님은 생생하게 느꼈습니다.
셋째 날, 성각 스님은 가장 어렵다고 여겼던 생각을 관찰했습니다. 그의 머릿속은 마치 거친 파도처럼 끊임없이 온갖 생각들로 요동쳤습니다. "저녁에는 뭘 먹을까? 고향의 아내와 아들은 잘 있을까? 내가 이 수행을 제대로 하고 있는 걸까? 이 길이 과연 맞는 길일까?" 예전 같았으면 그 생각들의 흐름에 휩쓸려 자신도 모르게 온갖 상념에 빠져들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번에는 달랐습니다. 그는 정목 대사의 가르침을 떠올리며 그저 관찰했습니다. "생각이 일어나고 있구나. 저 생각은 과거에 대한 기억이구나. 이 생각은 미래에 대한 걱정이구나." 신기한 일이 일어났습니다. 생각을 그저 관찰하니 생각과 자신 사이에 묘한 거리가 생겼습니다. 생각이 일어나도 "이것은 내 생각이다"라고 동일시하거나 그 생각에 매달려 끌려가지 않게 되었습니다. 마치 강 건너 불구경하듯 자신의 마음속을 흘러가는 생각들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된 것입니다.
넷째 날, 성각 스님은 깊은 혼란에 빠졌습니다. 몸도 감정도 생각도 모두 나가 아니라는 사실을 어렴풋이 받아들이고 나니, 이제 나는 대체 무엇이라는 근원적인 질문이 더욱 강력하게 그를 압박했습니다. 모든 것을 내려놓으니 오히려 허공에 매달린 듯한 불안감이 엄습해 왔습니다. 저녁에 정목 대사를 찾아가 그는 솔직하게 자신의 혼란스러운 마음을 토로했습니다. "스님, 관찰하다 보니 모든 것이 나가 아니라는 것은 알겠습니다. 하지만 그러니 더욱 혼란스럽습니다. 모든 것이 나가 아니라면 저는 대체 누구입니까?"
정목 대사는 그의 질문에 다시 질문을 던졌습니다. "지금 그 질문을 하는 것은 누구?" 성각 스님은 망설임 없이 답했습니다. "그것이 바로 저입니다." "그 나는 또 누구인가?" 정목 대사의 재차 질문에 성각 스님은 다시 말문이 막혔습니다. 깊이 생각하고 또 생각했지만 어떤 답도 찾을 수 없었습니다. 정목 대사는 그의 깊은 고뇌를 지켜보며 말했습니다. "계속 관찰하시오. 답은 머리로 생각해서 나오는 것이 아니오. 그대의 모든 분별심과 집착을 내려놓고 깊이 관찰하다 보면은 언젠가 저절로 진실이 보일 것이오."
다섯째 날, 성각 스님은 정목 대사의 가르침을 되새기며 더욱 깊이 관찰 속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는 자신이 나라고 생각하는 모든 것을 하나하나 꺼내어 철저히 관찰하기 시작했습니다. "이 몸이 나인가? 이 몸은 끊임없이 변한다. 어린 시절의 몸과 지금의 몸이 다르고, 지금의 몸과 늙었을 때의 몸 또한 다를 것이다. 이처럼 끊임없이 변해 가는 것을 어찌 나라고 할 수 있을까?" 그는 자신의 몸을 마치 흙으로 빚은 인형처럼 객관적으로 바라보았습니다. "이 생각이 나인가? 생각 또한 계속 바뀐다. 아까의 생각과 지금의 생각이 다르고, 어제의 생각과 오늘의 생각이 다르다. 변하는 것을 나라고 할 수 있을까?" 생각은 마치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처럼 끊임없이 흔들리고 사라지는구나. 그는 생각을 고정된 실체가 아닌 그저 일어났다 사라지는 현상으로 보았습니다. "이 감정이 나인가? 감정 또한 계속 바뀐다. 기쁨도 잠시 머물다 사라지고, 슬픔도 영원할 것 같지만 이내 스러져 간다. 변하는 것을 어찌 나라고 할 수 있을까?" 그는 기쁨과 슬픔, 분노와 평화가 마치 밀물과 썰물처럼 끊임없이 교차하며 흘러가는 것을 지켜보았습니다.
"그렇다면 나는 대체 어디에 있는가? 몸도 내가 아니고 생각도 내가 아니고 감정도 내가 아니라면 내가 존재한다는 것은 도대체 어디서 오는 것일까?" 이 질문은 그를 더욱 깊은 내면의 바다로 이끌었습니다.
여섯째 날 아침, 좌선 중이었습니다. 숲속에서 들려오는 청량한 새소리가 그의 귓가를 파고 들었습니다. 그 순간, 성각 스님에게 묘한 일이 일어났습니다. 새 소리를 듣는 '나'가 사라진 것입니다. 그저 새 소리가 있을 뿐이었습니다. 내가 듣는다는 주체가 사라지고 오직 들림이라는 순수한 현상만이 존재했습니다. 잠시 후 생각이 일어났습니다. 하지만 생각하는 '나'가 없었습니다. 그저 생각이 일어났다 사라진다는 현상만이 있었습니다. 호흡이 일어났습니다. 호흡하는 '나' 또한 사라졌습니다. 그저 호흡이 일어나고 사라지는 자연스러운 흐름만이 존재했습니다.
그 순간, 성각 스님은 깨달았습니다. 마치 천둥이 치는 듯한 강력한 깨달음이 그의 의식을 강타했습니다. "나라는 것은 환상이구나. 처음부터 실체가 없었구나." 그는 눈앞에 장막이 거치는 듯한 경험을 했습니다. 몸이 있고 생각이 있고 감정이 있고 감각이 있었지만 그것들을 소유하는 '나'는 없었습니다. 그저 이 모든 현상들이 인연 따라 일어나고 사라질 뿐이었습니다. 마치 거울 속에 비친 허상처럼, 실체가 없는 그림자처럼 말입니다.
성각 스님의 두 눈에서는 뜨거운 눈물이 하염없이 흘러내렸습니다. 20년 동안 그토록 찾아 헤매던 것이 애초에 존재하지 않았다는 사실. 그토록 붙잡고 씨름했던 '나'라는 것이 한낮 착각에 불과했다는 진실이 그의 마음을 울렸습니다. 그리고 그 진실을 알았을 때, 묘하게도 깊은 평화가 그의 내면에 찾아왔습니다. 그동안 그를 짓눌러 왔던 무거운 짐이 한 순간에 사라지는 듯한 가벼움과 해방감이 밀려왔습니다. 더 이상 찾을 것이 없으니 더 이상 괴로워할 이유도 없었습니다. 20년간의 고통이 눈 녹듯 사라지는 순간이었습니다.
일곱째 날 아침, 성각 스님은 정목 대사를 찾아갔습니다. 정목 대사는 그를 보자마자 잔잔한 미소를 지었습니다. "보았는가?" 성각 스님은 정목 대사께 깊이 절을 올리며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습니다. "예, 스님. 보았습니다." 그의 눈물은 슬픔이 아니라 헤아릴 수 없는 감격과 감사, 그리고 해방감의 눈물이었습니다.
[음악] 정목 대사는 아무 말 없이 따뜻한 차를 내왔습니다. 고요한 차담이 흐른 가운데 정목 대사가 다시 물었습니다. "무엇을 보았는가?" 성각 스님은 한참을 침묵하다가 떨리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습니다. "저는... 나는 없었습니다, 스님. 처음부터 없었습니다."
정목 대사는 고개를 [음악] 끄덕이며 그를 격려했습니다. "좋다. 계속 말해 보셔." "몸이 있고 생각이 있고 감정이 있고 감각이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이 끊임없이 일어나고 사라집니다. 하지만 그것들을 소유하는 나는 없었습니다. 마치 영화가 스크린에 상영되지만 그 영화를 보는 고정된 [음악] 관객이 없는 것처럼, 모든 것이 그저 인연 따라 펼쳐지는 현상일 뿐이었습니다."
정목 대사는 성각 스님의 말을 듣고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그의 눈빛은 만족감과 함께 깊은 자비로 빛났습니다. "그렇다. 바로 그것이네." 그는 청동 거울을 들어 성각 스님에게 건넸습니다. "이제 거울을 다시 보시오." 성각 스님은 거울을 받아들고 자신의 얼굴을 들여다보았습니다. 거울 속에는 여전히 그의 얼굴이 비쳤지만, 이제는 그 얼굴을 바라보는 시선이 완전히 달라져 있었습니다.
"무엇이 보이는가?" 정목 대사가 물었습니다. "얼굴이 보입니다. 하지만... 하지만 이것은 제가 아닙니다. 그저 거울에 비친 형상일 뿐입니다." 성각 스님은 더 이상 거울 속에 자신을 나라고 동일시 하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마치 하늘에 떠 있는 구름처럼, 그저 잠시 비쳤다 사라질 현상일 뿐이었습니다.
정목 대사는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말했습니다. "좋다. 이제 뒤를 보시오." 성각 스님은 거울을 뒤집었습니다. 거울 뒷면에 새겨진 '무(無)'라는 글자가 햇빛에 반짝이며 선명하게 빛났습니다.
"이것이 금강경이 말하는 핵심이요. 무아(無我), 우와(無我)는 나는 없다는 진실이지." 정목 대사는 차분하고 낮은 목소리로 무아의 진정한 의미를 설명하기 시작했습니다. 그의 목소리는 마치 산사의 계곡을 흐르는 물처럼 고요하면서도 깊은 울림이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평생 나를 찾으려 합니다. 진짜 나, 참된 나, 영원한 나. 하지만 금강경은 명확히 말합니다. 그런 나는 없다고. 아상(我相), 오상(五相)이 공(空)하다고. 우리를 괴롭히는 모든 번뇌와 고통은 이 나라는 착각에서 비롯되는 것이지."
성각 스님은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지난 20년간 자신이 겪었던 고통이 바로 나를 찾으려는 그 헛된 노력에서 비롯되었음을 이제는 분명히 알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두려워합니다. 나가 없다면 누가 살고 누가 수행하고 누가 깨닫는가? 나가 없다면 삶은 허무해지는 것이 아닌가?" "하지만 이것이 바로 깊은 착각이요." 정목 대사는 다시 창밖을 가리켰습니다. 토굴 아래로는 작은 계곡물이 졸졸 흐르고 있었습니다. "저 강을 보시오. 물이 끊임없이 흐르고 있습니다. 그런데 저 강에 강이라는 고정된 실체가 있어? 강은 그저 물이 흐르는 과정일 뿐이요. 순간순간 다른 물이 흐르고 있고, 그 흐름이 멈추면 강도 사라지지. 마찬가지요. 나라는 고정된 실체는 없어. 그저 몸과 마음의 흐름이 있을 뿐이요. 매 순간 다른 생각, 다른 감정, 다른 세포들이 일어나고 사라지지. 우리는 그 흐름을 나라고 착각하고 있는 것일 뿐이네."
성각 스님은 [음악] 정목 대사의 설명을 듣자마자 깊이 이해했습니다. 그의 머릿속을 맴돌던 수많은 의문들이 한 순간에 풀리는 듯했습니다. 강물처럼 흘러가는 존재. 고정됨 없이 항상 변화하는 삶의 본질을 깨달은 것입니다.
"그럼 스님, 제가 20년 동안 괴로워한 것은 대체 누가 괴로워한 겁니까?" 성각 스님의 목소리에는 아직 풀리지 않은 의문이 남아 있었습니다. 정목 대사는 자비로운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며 답했습니다. "아무도 괴로워하지 않았어. 괴로움이라는 현상이 있었을 뿐이지. 마치 비가 오지만 비가 나다라고 할 수 없듯이, 괴로움이 일어나지만은 괴로움이 나다라고 할 수 없어. 그저 괴로움이라는 현상이 인연 따라 일어났다가 사라지는 것일 뿐이네."
성각 스님은 그 말에 숨이 멎는 것 같았습니다. 내가 괴롭다는 주체조차 없다는 사실이 그에게는 충격적이면서도 동시에 엄청난 해방감으로 다가왔습니다.
정목 대사는 계속해서 금강경의 가르침을 이어갔습니다. "금강경은 말합니다. '수보리야, 만약 보살이 아상(我相), 인상(人相), 중생상(衆生相), 수자상(壽者相)을 가진다면 그는 참된 보살이 아니다.' 왜 그럴까? 왜 나라는 생각이 있으면 보살이 아닐까? 왜냐하면 이 나라는 생각이 바로 모든 고통의 뿌리이기 때문이네."
정목 대사는 차잔을 들어 보였습니다. "이것이 내 차잔이라고 생각하면은 언젠가 깨어질까 봐 두려워하고, 다른 사람의 차잔과 비교하며 더 좋거나 나쁘다고 판단하게 되지. 마찬가지요. 나와 남이 있다고 생각하면 비교가 생겨나고, 나는 가졌고 남은 가지지 못했다. 나는 잘났고 남은 못 났다'는 분별심이 일어납니다. 그래서 교만과 질투가 생겨나는 것이지. 또 나의 것이라는 집착이 생기지. 나의 가족, 나의 명예, 나의 재산. 그래서 탐욕과 분노가 생기는 것이고. 나라는 존재가 있다고 생각하면 두려움이 생기네. 이 나를 잃을까 봐, 나를 해칠까 봐, 나를 무시할까 봐. 그래서 불안과 공포가 생겨나 마음이 편할 날이 없지. 하지만 나가 없다는 것을 분명히 보면 이 모든 고통의 뿌리가 사라지는 것이네."
성각 스님은 그제야 지난 20년간 자신이 왜 그토록 괴로워했는지 완전히 이해했습니다. 그를 괴롭히던 것은 외부의 상황이나 타인이 아니라 바로 나를 찾으려는 그 집착, 나를 확인하려는 그 헛된 노력이었음을 깨달았습니다. 나라는 환상을 붙들고 있었기에 비교하고 집착하고 두려워했던 것입니다. 그 모든 괴로움의 근원이 바로 아상에 있었다는 사실을 그는 온몸으로 받아들였습니다.
"스님, 그럼 이제 저는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성각 스님의 목소리에는 새로운 시작을 향한 설렘과 함께 지난 삶의 방식이 완전히 무너져 내린 뒤의 막막함이 섞여 있었습니다.
정목대사는 자유로운 미소를 지었습니다. "내가 어떻게 살아야 하나가 아니네. 그저 삶이 일어나는 것이요. 배고프면 먹고, 피곤하면 자고, 해야 할 일이 있으면 하시오. 하지만 '내가 먹는다. 내가 잔다. 내가 한다'고 생각하지 마시오. 그저 먹음이 일어나고, 잠이 일어나고, 행함이 일어나는 것이요. 마치 구름이 흘러가듯, 물이 흐르듯 자연스럽게 모든 것이 펼쳐질 뿐이지."
성각 스님은 눈물이 멈추지 않았습니다. 지난 20년간 어깨를 짓누르던 무거운 짐이 한 순간에 눈 녹듯 사라지는 것 같았습니다. '나'라는 주체 의식이 얼마나 큰 고통을 가져왔는지. 그리고 그것을 내려놓았을 때 찾아오는 이 평화로움이 얼마나 큰 자유인지를 그는 온몸으로 체험했습니다.
"감사합니다, 스님. 정말로 감사합니다." 그의 목소리에는 진심 어린 감사가 가득했습니다. 정목 대사는 다시 한번 미소를 지으며 반문했습니다. "감사할 나아가 있어?" 성각 스님은 그제야 크게 웃음이 터져 나왔습니다. "맞습니다. 그동안 자신은 '내가 감사한다'고 생각했지만, 이제는 감사함조차 없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저 감사함이라는 순수한 마음이 저절로 일어나고 있을 뿐이었습니다. 모든 것이 홀로 작용하는 자연스러운 현상임을 그는 이제 알았습니다."
성각 스님은 그 후 한 달을 더 정목 대사의 토굴에 머물렀습니다. 그 한 달 동안 그의 삶은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더 이상 '나'라는 그림자에 갇혀 고뇌하지 않았습니다. 아침에 잠에서 깨어나면은 예전처럼 "나는 잘 잤나 못 잤나" 하고 자신을 평가하는 생각이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그저 몸이 자연스럽게 깨어났고, 새로운 하루가 고요히 시작될 뿐이었습니다.
동양을 할 때도 "내가 먹는다"는 생각이 사라졌습니다. 그저 먹음이라는 행위가 일어나고 있었습니다. 신기하게도 이렇게 먹으니 음식의 맛이 훨씬 더 선명하게 느껴졌습니다. 내가 맛본다는 주체 의식이 없으니 오히려 음식 본연의 맛과 향이 그대로 드러나는 듯했습니다.
일을 할 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계곡에서 물을 길어 오고, 땔감을 하고, 토굴 주변을 쓸 때도 "내가 하고 있다"는 생각이 없었습니다. 그저 일이 일어나고 있을 뿐이었습니다. 그러니 몸의 피곤함도 덜했습니다. 내가 수고하고 있다는 생각이 없으니 고통스럽거나 지겹지 않았습니다. 모든 행위가 그저 자연스러운 흐름 속에 놓여 있었고, 그의 마음은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는 평온함과 자유로움 속에 있었습니다.
어느 날, 성각 스님은 정목 대사에게 물었습니다. "스님, 신기합니다. 나가 없다는 것을 알았는데 오히려 삶이 전보다 훨씬 더 생생하고 선명하게 느껴집니다. 왜 그런 것일까요?" 정목 대사는 자비롭게 답했습니다. "나라 생각은 현실과 우리 사이에 마치 두터운 막을 만들어 놓는 것과 같다네. 내가 보고 내가 듣고 내가 느낀다고 생각하는 순간, 실제로 일어나는 현상과 우리 사이에 미묘한 거리가 생기지. 그것이 바로 자아가 만들어내는 분별심의 막이요. 하지만 나가 없으면 그 막이 사라지는 것이네. 그냥 봄이 일어나고, 들음이 일어나고, 느낌이 일어나는 것이지. 어떤 간섭이나 왜곡 없이 직접적이고 즉각적으로 모든 현상이 있는 [음악] 그대로 다가오네. 그래서 삶이 더욱 생생하고 온전하게 느껴지는 것이지."
성각 스님은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정목 대사의 설명은 그가 지난 한 달 동안 직접 경험했던 느낌과 정확히 일치했습니다. 세상이 훨씬 더 밝고, 소리가 더 또렷하고, 모든 것이 살아 있는 듯 생생하게 다가왔습니다.
한 달 후, 성각 스님은 정목 대사에게 하직 인사를 구하고 다시 월정사로 돌아가기로 했습니다. 떠나는 날 아침, 정목 대사는 청동 거울을 성각 스님에게 건네 주었습니다. "이것을 가지고 가시오." 성각 스님은 의아한 듯 물었습니다. "스님께서 가지고 계셔야 하는 거 아닙니까?" 정목 대사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습니다. "이제 그대가 가져야 할 때요. 그리고 이 거울에 담긴 가르침을 다른 이들에게도 널리 전하시오."
성각 스님은 깊이 절을 올리며 감사했습니다. "명심하겠습니다, 스님. 스님의 가르침을 절대 잊지 않고 세상에 널리 회향하겠습니다." 성각 스님은 떠나기 전 마지막으로 한 가지 질문을 더 했습니다. 그의 마음속에는 아직 풀리지 않은 의문 하나가 남아 있었기 때문입니다. "스님, 마지막으로 한 가지만 여쭤도 되겠습니까? 만약 나가 없다면 윤회는 어떻게 되는 것입니까? 죽으면 저는 어디로 가는 것입니까?"
정목 대사는 그 질문에 다시 한번 자비로운 미소를 지었습니다. "좋은 질문이요. 하지만 한번 생각해 보시오. 만약 나라는 것이 애초에 없었다면 윤회할 나 또한
없는 것이 아니겠는가?
정목 대사는 이어서 물의 순환을 비유로 설명했습니다. "보시오. 땅의 물이 증발하면 구름이 되고, 그 구름은 다시 비가 되어 땅으로 돌아오지. 하지만 이 물이 계속 같은 물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물의 분자들은 끊임없이 바뀌고 새로운 모습으로 변화하지. 마찬가지요. 몸과 마음의 흐름은 계속되지만, 나라는 고정된 실체가 윤회하는 것은 아니네. 그저 인연 따라 새로운 흐름이 펼쳐질 뿐이지."
정목 대사는 금강경에 또 다른 가르침을 인용했습니다. "금강경을 말합니다. '心不度現在心不可得(심불도심 불가득)'. 과거의 마음도 얻을 수 없고, 현재의 마음도 얻을 수 없으며, 미래의 마음도 얻을 수 없다. 왜 얻을 수 없을까? 왜냐면 고정된 마음이 없기 때문이요. 매 순간 다른 마음이 일어나고 사라질 뿐이네. 그러니 윤회 또한 나라는 주체가 반복하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변화하는 인연의 흐름 속에서 펼쳐지는 현상으로 이해해야 할 것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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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각 스님은 깊이 이해했습니다. 그에게 윤회는 더 이상 두려운 개념이 아니었습니다. 고정된 나가 없으니 윤회로부터의 두려움 또한 사라지는 것이었습니다. 모든 것이 그저 자연스러운 흐름 속에서 펼쳐지는 현상임을 깨닫자 그의 마음은 완전히 평화로워졌습니다.
"그렇다면 스님, 수행 또한 내가 하는 것이 아니겠군요." 성각 스님이 다시 질문했습니다.
정목 대사는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그렇다네. 수행 또한 그저 일어나는 것이요. 인연이 무익으면 저절로 수행이 일어나고, 인연이 물이 익으면 저절로 깨달음이 일어나는 법이지. 내가 수행한다, 내가 깨닫는다고 생각하면 그것이 오히려 집착이 되어 장애가 될 수 있네. 모든 것을 내려놓고 그저 흐름에 맡길 때 진정한 자유와 깨달음이 찾아오는 것이지."
성각 스님은 정목 대사께 마지막으로 깊이 절을 올리고 산을 내려갔습니다. 20년 만에 그는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진정한 답을 가슴에 품고 있었습니다. 나는 없다. 하지만 삶은 계속된다. 아름답게, 자연스럽게, 그리고 온전하게.
월정사로 돌아온 성각 스님은 주지 스님께 정목 대사와의 만남과 그에게서 얻은 깊은 깨달음을 소상이 보고했습니다. 주지 스님은 성각 스님의 변화된 모습과 맑아진 눈빛을 보고 크게 기뻐했습니다. 그는 성각 스님이 가져온 청동 거울을 법당의 가장 신성한 자리에 모셔 놓았습니다.
그날부터 성각 스님은 월정사에서 무아의 법문을 전하기 시작했습니다. 그의 법문은 지극히 단순하고 명쾌했습니다. "여러분, 나를 찾지 마십시오. 애초에 없는 것을 어떻게 찾겠습니까? 대신 지금이 순간 일어나고 있는 모든 것을 그저 관찰하십시오. 생각이 일어나는 것을, 감정이 일어나는 것을, 몸의 감각이 일어나는 것을. 하지만 그것이 나라고 집착하거나 동일시하지 마십시오. 모든 것이 그저 인연 따라 일어나고 사라지는 현상일 뿐입니다."
많은 스님들이 그의 법문을 듣고 그동안 마음속을 맴돌던 의문들을 풀었습니다. 성각 스님의 가르침은 복잡한 교리를 넘어 직접적인 체험을 통해 진정한 자유를 얻는 길을 제시했습니다. 그의 법문은 [음악] 탁월하고 심오하면서도 동시에 지극히 현실적이고 실용적이었습니다.
몇 년 후 성각 스님은 월정사를 떠나 다른 절의 주지가 되었습니다. 그곳에서도 그는 청동거울을 법당에 모셔 놓고, 그 앞에 작은 글씨로 그의 깨달음을 새겨 넣었습니다. "금강경이 말하는 무아(無我). 나를 찾지 말고 흐름을 보라. 그러면 자유다."
성각 스님은 평생을 이 무아의 가르침을 전하며 살았습니다. 그의 제자들 또한 스승의 법문을 이어받아 후대에 널리 전했습니다. 수백 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도 그 절에는 성각 스님이 전한 청동 거울이 고요히 남아 있습니다. 그리고 거울 앞에는 늘 이런 질문이 적혀 있습니다. "거울 속에 비친 그대는 진짜 그대입니까? 아니면 그저 잠시 머물다 지나가는 그림자에 불과합니까?"
이 질문은 시대를 초월하여 오늘날 우리에게도 동일하게 던져지는 근원적인 물음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평생 나라는 존재를 중심으로 세상을 살아갑니다. 나의 몸, 나의 생각, 나의 감정, 나의 가족, 나의 재산, 나의 명예. 이 모든 나의 것들이 우리의 삶을 구성한다고 믿습니다.
하지만 불교, 특히 금강경의 깊은 지혜는 우리에게 충격적인 진실을 일깨워 줍니다. 나는 없습니다. 무아(無我). 애초에 고정된 실체로서의 나는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나라고 부르는 것은 오직 몸과 느낌과 생각과 의지 그리고 의식이라는 다섯 가지 요소들이 임시적으로 결합하여 형성된 끊임없이 변화하는 현상들의 흐름일 뿐입니다. 마치 강물이 흐르지만 강이라는 고정된 실체가 없듯이, 우리의 존재 또한 매 순간 새롭게 생성되고 소멸하는 과정의 연속입니다.
하지만 여러분, 이것은 결코 허무주의가 아닙니다. 오히려 이 진실 속에는 우리가 그토록 찾아 헤매던 궁극적인 자유와 평화가 담겨 있습니다. 나라는 환상이 사라지면 나로부터 비롯된 모든 집착이 사라집니다. 나의 것을 붙잡으려 애쓰는 고통. 나를 타인과 비교하며 괴로워하는 번뇌. 나를 잃을까 봐 두려워하는 공포가 모두 사라지는 것입니다.
집착이 사라지면 고통 또한 그 뿌리가 뽑혀 더 이상 우리를 괴롭힐 수 없게 됩니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이 사라진 자리에 남는 것은 무엇일까요? 바로 순수한 현존, 있는 그대로의 삶, 자연스러운 흐름입니다. 내가 보고 내가 듣고 내가 느끼는 것이 아니라, 그저 봄이 일어나고 들음이 일어나고 느낌이 일어나는 직접적이고 온전한 삶입니다. 이것이야말로 삶의 모든 순간을 가장 생생하고 충만하게 경험하는 길입니다.
지금 당신은 어떤 외로움과 고통 속에 있습니까? 홀로 사는 삶이 버겁고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당신을 짓누르고 있지 않습니까? 어쩌면 그 고통의 근원 또한 나라는 환상에 대한 집착에서 비롯되었을지 모릅니다. 내가 외롭다. 내가 아프다. 내가 불안하다는 생각들이 당신을 더욱 깊은 고통 속으로 밀어놓고 있을 수 있습니다.
이제 이 이야기를 통해 얻은 지혜를 당신의 삶에 적용해 보십시오. 나를 찾으려는 헛된 노력을 멈추고, 지금이 순간 당신에게 일어나고 있는 모든 것을 그저 관찰해 보십시오. 생각이 일어나면 '생각이 일어나는구나' 하고 그저 지켜보십시오. 감정이 올라오면 '감정이 올라오는구나' 하고 그저 바라보십시오. 몸에 불편함이나 감각이 느껴지면 '감각이 일어나는구나' 하고 그저 알아차리십시오. 하지만 그것이 나라고 규정하거나 내 것이라고 붙잡지 마십시오.
모든 것이 그저 인연 따라 일어나고 사라지는 현상임을 깨닫는다면, 당신은 알게 될 것입니다. 진정한 나는 애초에 없었으며, 나라는 환상에서 벗어날 때 비로소 고통으로부터 자유로워지고 삶에 무거운 짐을 내려놓고 마음의 평온을 되찾는 깊은 안식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을 말입니다. 그 안식 속에서 당신은 진정한 평화와 행복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