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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십니까? 나의 오래된 벗들이요. 저는 김교수입니다.
어느덧 세상의 바람과 햇살을 맞으며 살아온지 100년이 넘었습니다. 백살이라는 나이. 어찌 보면 그저 숫자에 불과할지 모르나, 이 긴 시간의 강을 건너오며 제가 뼈저리게 깨달은 것이 하나 있습니다. 우리의 인생은 마치 긴 기차 여행과도 같습니다. 젊은 날에는 수많은 승객을 태우고 시끌벅적한 역들을 지나왔지만, 70이라는 나이는 이제 기차가 종착인 황혼을 향해 서서히 속도를 줄이며 들어서는 시간입니다.
지난 세기를 되돌아보니 우리는 참 많은 착각 속에 살았습니다. 인생의 가장 큰 후회는 돈을 많이 벌지 못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가장 큰 실수는 내 기차에 너무 많은 사람을 태우려 애썼다는 것입니다. 정작 나의 영혼을 알아주는 진정한 지기들은 없는데, 그저 빈자리가 두려워 억지로 채워놓은 인연들이 얼마나 많았습니까? 황혼이 내려왔는 이 시기, 북적이는 사람들의 소음은 결코 행복이 아닙니다. 그것은 그저 혼란일 뿐입니다. 혹시 여러분도 지금 그런 피로감을 느끼고 계시지 않습니까? 만나고 돌아오면 오히려 기운이 빠지는 무의미한 사교 모임들. 나를 잊을까 두려워 억지로 붙잡고 있는 식어버린 인연들 말입니다.
제 말을 부디 깊이 새겨 들으십시오. 70, 여러분의 남은 운명과 평화는 전적으로 여러분 주변의 고요함에 달려 있습니다. 사람이 많으면 기가 흩어집니다. 낡고 병든 인연을 곁에 두는 것은 마치 흐르지 않는 고인물을 집안에 두는 것과 같아, 여러분의 맑은 생기를 탁하게 만들고 하늘이 주신 수명을 갉아먹습니다. 나에게 맞지 않는 사람을 붙들고 있는 것은 내 인생의 귀한 에너지를 밑 빠진 독에 붓는 격입니다. 그것은 외로움을 달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의 운을 막는 일입니다.
오늘 저와 함께 여러분의 영혼을 위한 대수술을 시작해 봅시다. 복잡하고 얽힌 인연의 끈을 과감히 놓아 버리십시오.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비워야 채워지는 법입니다. 잡다한 것들을 모두 떠나보내고 오직 단 두 명의 친구만 남겨 두십시오. 그것이면 충분합니다. 아니, 오직 그것만이 여러분의 남은 생을 가장 품격이 있고 찬란한 황금빛으로 물들이는 비결이 될 것입니다.
자, 이제 마음에 문을 열고 귀 기울여 주십시오. 첫 번째로 우리가 과감하게 잘라내야 할 인연, 그것은 바로 거칠기만 한 술친구와 만날 때마다 신세 한탄만 늘어놓는 사람입니다. 여러분, 70이라는 나이는 인생의 겨울로 들어서는 입구입니다. 인정하기 싫더라도 우리의 육신은 예전 같지 않습니다. 남은 시간은 유한하고, 우리가 쓸 수 있는 기력은 정해져 있습니다. 그런데 이 귀한 시간에 왜 남의 불행을 듣느라 여러분의 생명을 낭비하십니까?
제가 100년을 살아보며 깨달은 우주의 이치가 하나 있습니다. 말에는 혼이 실려 있고, 소리에는 귀가 담겨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에너지의 관점에서 아주 냉정하게 말씀드리겠습니다. 입만 열면 자식 흉, 며느리 흉, 세상에 대한 원망, 아픈 몸에 대한 짜증을 쏟아내는 친구들이 주변에 있을 겁니다. 우리는 흔히 친구 된 도리로 그 이야기를 들어줘야 한다고 착각합니다. 하지만 영적인 눈으로 보면 그들은 지금 자신의 몸 안에 쌓인 검고 탁한 기운, 즉 나쁜 기운을 배설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들이 불평을 쏟아낼 때 여러분이 고개를 끄덕이며 맞장구를 쳐주는 그 순간,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아십니까? 그들의 탁한 배설물이 여러분의 맑은 영혼 속으로 고스란히 옮겨오는 것입니다. 그들은 쓰레기를 버리고 가벼워져서 돌아가지만, 그 쓰레기를 받아낸 여러분은 집에 돌아와 이유 없이 몸이 무겁고 머리가 아프고 밤새 악몽에 시달리게 됩니다. 이것은 단순한 피로가 아닙니다. 여러분의 운기가 오염된 것입니다. 나쁜 기운은 전염성이 강해서 결국 여러분 집안의 맑은 공기마저 흐리게 만듭니다. 이것이 바로 액운을 스스로 불러들이는 꼴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제 예를 하나 들려 드리겠습니다. 벌써 30년도 더 된 이야기입니다만, 제게는 김서방이라 불리던 친구가 있었습니다. 그는 사업으로 돈을 좀 벌었지만, 마음 깊은 곳에 지독한 외로움을 품고 살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혼자 있는 시간을 견디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매일같이 집으로 사람들을 불러들였습니다. 그의 거실은 언제나 북적였고, 웃음소리와 술잔 부딪히는 소리가 끊이질 않았지요. 그는 사람들 속에 둘러싸여 자신이 인기가 많다고, 사랑받고 있다고 믿었습니다. 제가 그에게 "여보, 기운을 좀 아끼게. 자네의 그 웃음은 진짜가 아니야."라고 충고했지만, 그는 "사람 사는 정이 그런 게 아니지 않소."라며 웃어넘겼습니다. 결국 70 중반이 넘어 그가 뇌졸중으로 쓰러졌습니다. 병상에 눕자마자 그 많던 친구들은 썰물처럼 빠져나갔습니다. 술과 유흥으로 맺어진 인연은 이익이 사라지면 안개처럼 흩어지는 법입니다. 제가 병문안을 갔을 때, 그 넓고 화려했던 집은 마치 무덤처럼 차갑고 고요했습니다. 망연자실하게 마른 친구가 제 손을 잡고 눈물을 흘리며 말하더군요. "교수님, 내가 헛살았습니다. 내 뼈와 살을 깎아서 남들 좋은 일만 시켜줬구려. 정작 내 몸 하나 돌볼 기운을 남겨두지 않았습니다." 그는 평생 남들의 감정 쓰레기통 노릇을 하느라 정작 자신의 생명력을 지키는 호신력을 기운을 다 써 버린 것입니다. 그는 그의 겨울을 쓸쓸히 눈을 감았습니다.
이 이야기를 듣는 여러분은 어떠십니까? 혹시 여러분의 전화번호부에도 삭제하지 못한 채 의무감으로 남겨둔 이름들이 있지 않습니까? 기억하십시오. 노년의 에너지는 양동이의 물과 같습니다. 젊을 때는 물을 좀 흘려도 금세 채워지지만, 늙어서는 한 방울의 물도 귀합니다. 의미 없는 사교 모임, 체면치레를 위한 식사 자리, 그저 시간이 남아서 만나는 관계들. 이 이 모든 것이 여러분의 양동이에 구멍을 뚫는 짓입니다. 그 구멍으로 여러분의 건강과 복록, 그리고 자손에게 물려줄 생기가 줄줄 새어 나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오늘부터 당장 실천하십시오. 이것은 비정한 것이 아니라 여러분의 영혼을 보호하는 순고한 결단입니다. 전화를 걸어 하소연을 시작하려는 친구가 있다면 정중하지만 단호하게 끊으십시오. "내가 요즘 기도가 필요해서 마음을 쉬게 하고 싶네."라고 말하고 거리를 두십시오. 만났을 때 기분이 좋아지는 사람이 아니라면 과감하게 인연을 정리하십시오. 여러분의 집은 사원 수행과 같이 정갈해야 합니다. 나쁜 말을 뱉는 사람, 기운을 빼앗는 사람을 여러분의 신성한 사원에 들이지 마십시오. 운명은 여러분이 누구와 함께 시간을 보내느냐에 따라 결정됩니다. 썩은 사과 하나가 상자 전체를 썩게 하듯, 부정적인 사람 하나가 여러분의 노년을 병들게 할 수 있음을 명심해야 합니다. 부디 껍데기는 가라앉게 두고 알맹이만 남기십시오. 그래야 여러분의 남은 생에 맑고 향기로운 복이 깃들 것입니다.
두 번째로 여러분이 목숨을 걸고 지켜야 할 인연, 그것은 바로 늙은 배우자 혹은 평생을 함께 해온 영혼의 동반자입니다. 나쁜 인연을 정리하여 비워낸 그 자리에 가장 먼저 모셔야 할 귀인은 먼 곳에 있지 않습니다. 바로 지금 등 돌리고 누워 있는 그 사람, 밥상머리에서 투덜거린다고 구박했던 바로 그 사람입니다. 많은 노인들이 범하는 가장 어리석은 실수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남에게는 관대하면서 내 곁을 지키는 배우자에게는 가혹하리만큼 인색하다는 것입니다. "지겨워 죽겠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지요.
제가 겪은 비극적인 이야기를 하나 해 드리겠습니다. 제 지인 중에 꽤 큰 사업을 일구었던 박 회장이라는 분이 계셨습니다. 밖에서는 호탕하고 인심 좋은 회장님으로 통했지만, 집안에서는 폭군이 따로 없었습니다. 늙어가는 아내가 음식을 조금만 짜게 해도, 걸음이 조금만 늦어도 불같이 화를 냈습니다. "도대체 할 줄 아는 게 뭐냐?"며 무시하기 일쑤였지요. 그는 늘 말했습니다. "돈은 내가 벌고, 저 여자는 편하게 살기만 했다."고 말입니다. 그는 자신의 성공이 오로지 자신의 능력 덕분이라고 믿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평소처럼 아내에게 "물 좀 가져오라."고 소리쳤는데 대답이 없었습니다. 부인이 부엌에서 쓰러져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난 것입니다. 박 회장은 처음에는 슬퍼하는 듯했지만, 내심 "이제 잔소리 안 듣고 자유다."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진짜 재앙은 그때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아내가 떠나고 정확히 1년 뒤, 저는 그의 집을 방문하고는 소스라치게 놀랐습니다. 그 화려했던 집안에 감돌던 온기는 온데간데없고, 마치 폐가처럼 썰렁한 냉기만 가득했습니다. 박 회장은 1년 사이에 10년은 더 늙어버린 몰골로 멍하니 앉아 있었습니다. 그가 떨리는 목소리로 제게 말했습니다. "교수님, 집안에 해가 져버렸습니다. 아무리 보일러를 떼도 뼈가 시립니다. 내 재산, 내 명예. 그 사람이 없으니 다 휴지 조각입니다." 알고 보니 아내가 떠난 후 자식들과의 발길도 끊겼고, 집안을 돌보던 보이지 않는 질서가 무너져 내리면서 재산 문제로 소송까지 휘말려 있었습니다. 아내라는 존재가 단순히 밥을 해주는 사람이 아니라, 그 집안에 복을 붙들고 있던 기둥이었음을 뼈저리게 깨달은 것입니다. 하지만 이미 버스는 떠난 뒤였습니다.
여러분, 이것을 에너지, 즉 기운의 위치로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부부란 무엇입니까? 이 우주에서 가장 강력한 음양의 결합입니다. 젊을 때는 사랑과 정욕으로 살지만, 늙어서의 부부는 서로의 생명을 지탱하는 에너지의 됨과 같습니다. 여러분의 배우자는 여러분 인생의 기억을 공유하는 유일한 목격자입니다. 이것은 엄청난 영적 힘을 가집니다. 내가 젊은 날 얼마나 찬란했는지, 우리가 얼마나 힘든 고개를 넘어왔는지 기억해 주는 사람이 곁에 있다는 것, 그것 자체가 여러분의 존재를 세상에 묶어두는 불이 됩니다. 그런데 늙어서 배우자를 구박하고 미워하는 것은 내 집의 기둥을 도끼로 찍어내는 것과 같습니다. 배우자에게 쏟아내는 독설과 짜증은 집안의 공기를 찢어 놓습니다. 집안에 흐르는 기운, 즉 가운(家運)이 찢어지면 어떻게 됩니까? 그 틈으로 병마가 들어오고, 그 틈으로 재물이 새어 나갑니다. 풍수지리를 따질 필요도 없습니다. 머리가 하얗게 센 두 노인이 서로의 등을 긁어주고 말없이 차 한잔을 나누는 그 평화로운 광경. 그것이야말로 세상에서 가장 강력한 풍수이자 나쁜 기운을 막아내는 최고의 부적입니다.
그러니 오늘부터 태도를 완전히 바꾸십시오. 이것은 상대를 위한 봉사가 아닙니다. 여러분 자신의 만년을 위한 생존 전략입니다. 아내의 주름진 얼굴에서, 남편의 굽은 등에서 부처를 보시고 예수를 보십시오. 그들이 두해지고 깜빡깜빡하는 것은 여러분을 괴롭히기 위함이 아닙니다. 그저 세월의 파도를 함께 맞으며 낡아진 돛단배일 뿐입니다. 낡은 배일수록 닻을 함부로 하면 가라앉습니다. 지금 당장 실천할 수 있는 비법을 드리겠습니다. 아침 식사로 오를 때 입을 꾹 다물고 속으로 세 번만 외치십시오. "이 사람이 내 생명줄이다. 이 사람이 내 복덩이다." 과거의 서운함이 떠오를 때마다 그것을 억지로 끄집어내어 현재의 시간을 오염시키지 마십시오. 그것은 스스로 독을 마시는 행위입니다. 그저 "살아 있어줘서 고맙소. 내 곁에 있어줘서 다행이요."라고 읍조리십시오. 말이 곧 기도가 됩니다. 여러분이 배우자를 귀하게 여기는 순간, 그 집안에는 황금보다 더 귀한 화목의 기운이 감돌게 될 것입니다. 그 기운이 여러분을 고독사로부터, 우울증으로부터, 그리고 늘그막의 비참함으로부터 지켜줄 유일한 방패임을 명심하십시오.
마지막으로 여러분이 세상 그 무엇과도 바꾸지 말고 목숨을 걸고 지켜야 할 두 번째 친구, 그것은 바로 거울 속에 있는 사람입니다. 태어난 순간부터 흙으로 돌아가는 그 순간까지 단 한 번도 배신하지 않고 여러분 곁을 지킬 유일한 동반자, 바로 여러분 자신입니다. 너무나 당연한 말 같습니까? 하지만 지난 100년을 살아오며 제가 목격한 가장 슬픈 진실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죽기 직전까지 이 소중한 친구를 철저히 외면하고 학대하다가 떠난다는 사실입니다. 평생을 누구의 엄마, 누구의 아버지, 어느 집안에 며느리라는 이름으로 사느라 정작 '나'라는 존재는 뒷방 늙은이 취급을 해오지 않으셨습니까? 자식들 입에 맛있는 것 넣어 주느라 나는 찬밥에 물 말아먹고, 자식들 새 옷 사 입히느라 나는 다 늘어난 속옷을 끼워 입으며 그것을 희생이자 사랑이라고 믿으셨을 겁니다.
제 고향 친구였던 최 여사의 이야기를 들려 드리겠습니다. 그녀는 동네에서 보살로 통했습니다. 평생 남편의 술 주정을 받아주고, 시부모 병수발을 들고, 아들 둘을 유학까지 보내며 헌신했습니다. 그녀의 입버릇은 항상 "나는 괜찮다. 나는 아무거나 먹어도 배부르다."였습니다. 그녀는 자신의 몸을 돌보는 것을 사치라고 여겼고, 자신의 감정을 살피는 것을 죄라고 여겼습니다. 70에 접어들어 남편을 먼저 보내고 이제 좀 편히 살아보려나 싶던 그때, 그녀에게 덜컥 위암 말기 판정이 내려졌습니다. 평생을 받쳐 키운 아들들은 어땠을까요? 병원비 문제로 서로 다투기 시작했고, 어머니는 "왜 건강 관리도 안 해서 우리에게 짐을 지우시냐?"며 짜증을 냈습니다. 병실에 누워 앙상하게 마른 최 여사가 죽기 며칠 전 제 손을 잡고 피를 토하듯 말했습니다. "교수님, 나는 자식들이 나를 버린 게 슬픈 게 아닙니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나를 가장 먼저 버린 사람은 바로 나 자신이었습니다. 내가 나를 귀하게 여기지 않는데 세상 천지 그 누가 나를 귀하게 여겨 주겠습니까? 내 몸한테 너무 미안해서 눈물이 멈추질 않아요." 그녀는 평생 자신을 하녀처럼 부려 먹었고, 결국 그녀의 영혼도 주인인 그녀를 떠나 버린 것입니다.
이것은 단순한 불효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이것은 우주의 냉혹한 법칙입니다. 에너지, 기운의 관점에서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여러분의 육체는 여러분의 영혼이 머무는 성전, 성대입니다. 그런데 이 성전을 청소하지도 않고 좋은 음식을 공양하지도 않고 늘 "못났다, 늙었다, 아프다"며 나를 향한 화살을 쏘아대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자신을 학대하는 마음은 강력한 살기가 되어 내면의 생명력을 파괴합니다. 내가 나를 홀대하면 내 몸을 감싸고 있는 보호막인 오라가 찢어집니다. 그 찢어진 틈으로 병마가 들어오고, 가난이 들어오고, 고독이 들어오는 것입니다. 많은 노인들이 겪는 원인 모를 통증과 우울증은 바로 오랫동안 무시당한 내면의 아이가 질러대는 비명소리입니다.
그러니 부디 오늘부터는 삶의 방식을 완전히 뒤집으십시오. 자식에게 줄 유산을 아껴서 보약을 지어두시라는 말이 아닙니다. 마음가짐의 혁명이 필요합니다. 진정한 건강은 약병 속에 있지 않습니다. 진정한 건강은 마음의 고요와 자존감에서 나옵니다. 심신이 하나라는 말은 빈말이 아닙니다. 마음이 편안하면 꽉 막혔던 혈관이 뚫리고, 내가 나를 사랑하면 죽어가던 세포도 다시 살아납니다. 이것이 바로 내공, 나이공이 회복되는 과정입니다. 이제부터는 가장 좋은 음식은 자식이나 손주가 아니라 국물 한 방울까지 여러분 자신이 드십시오. 옷장 속에 아껴둔 가장 좋은 옷을 꺼내 입으십시오. 남에게 보이기 위해서가 아니라 거울 속에 나에게 예우를 갖추기 위해서 말입니다. 그리고 하루에 한 번 조용히 눈을 감고 자신의 가슴에 손을 얹으십시오. 그리고 말을 거십시오. 70년, 80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이 험한 세상을 버텨내라 고생한 나의 심장에게, 달아버린 무릎에게, 주름진 손에게 진심으로 사과하고 감사하십시오. "고생했다. 미안하다. 그리고 사랑한다." 이렇게 자신과 대화하는 시간. 이것이야말로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기도이자 최고의 수행입니다. 여러분이 스스로를 귀한 손님처럼 대접할 때, 우주도 여러분을 귀한 존재로 대우하기 시작합니다. 그때 비로소 여러분의 노년은 초라한 독거가 아니라 찬란하고 위엄 있는 고독구도의 경지로 승화될 것입니다. 자신과 친해진 사람은 절대 외롭지 않습니다. 그 충만한 내면의 힘이 여러분을 마지막 순간까지 평안하게 지켜 줄 것입니다. 이것이 제가 100년을 살아보고 얻은 가장 큰 깨달음입니다.
자, 이제 우리는 마음의 방향을 완전히 돌려야 합니다. 지금까지 우리가 움켜지려 했던 그 모든 안간힘을 내려놓고 진정한 평안으로 들어가는 문을 열어야 할 때입니다. 100년을 살아온 제가 여러분께 드리는 마지막 처방은 바로 '빼기의 미학'입니다. 인생의 전반전이 무엇이든 하고 쌓아올리는 더하기의 싸움이었다면, 70 이후의 후반전은 철저한 비움의 기술에 달려 있습니다. 많은 분들이 불안해합니다. "교수님, 다 버리고 나면은 무엇이 남습니까? 너무 허전하지 않겠습니까?"라고 묻습니다. 하지만 기억하십시오. 그릇은 비어 있어야 무언가를 담을 수 있습니다. 꽉 차 있는 컵에는 아무리 귀한 차를 부어도 넘쳐 흐를 뿐입니다. 여러분의 삶도 마찬가지입니다. 불필요한 인연, 묵은 물건, 부질없는 욕심으로 가득 차 있으면 정작 노년에 필요한 맑은 생기와 복록이 들어올 자리가 없습니다.
지금 당장 전하기를 켜십시오. 그리고 지난 1년 동안 한 번도 목소리를 섞지 않은 이름들, 그저 체면 때문에 남겨둔 이름들을 과감하게 지우십시오. 아까워하지 마십시오. 그것은 인연을 끊는 것이 아니라 얽힌 실타래를 잘라내어 기운의 소통을 원활하게 만드는 풍수와도 같습니다. 만나지 않아도 되는 모임, 내키지 않는 술자리를 단호하게 거절하십시오. '아니요'라고 말하는 것은 무례한 것이 아니라 나의 남은 시간을 보호하는 가장 품이 있는 방패입니다. 관계에 가지치기를 할수록 여러분의 영혼이 숨 쉴 수 있는 여백은 넓어집니다. 그 텅 빈 공간이야말로 하늘의 복이 내려앉는 뜰 것입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 바로 고독을 바라보는 눈을 바꾸셔야 합니다. 많은 노인들이 외로움이라는 감옥에 갇혀 스스로를 괴롭힙니다. 하지만 제가 분명히 말씀드리건대, 외로움과 고독은 하늘과 땅 차이입니다. 외로움이란 무엇입니까? 남이 나를 찾아주지 않아 비참해하는 마음입니다. 타인의 관심에 목말라하는, 마치 구걸하는 거지와 같은 마음 상태입니다. 그러나 고독은 다릅니다. 고독은 타인이 없어도 스스로 충만한 상태, 홀로 있는 시간을 즐길 줄 아는 제왕의 마음입니다. 이것을 저는 '고독한 황홀경'이라 부릅니다. 70이 넘으면 우리는 누구나 혼자가 됩니다. 이것은 형벌이 아니라 신이 주신 선물입니다. 젊은 날의 소란스러움이 사라진 뒤에야 비로소 들리는 소리들이 있습니다. 아침에 일어나 홀로 차를 우리는 시간을 촬영하다 여기지 마십시오. 첫 잔에서 피어오르는 김을 바라보며 창밖에 구름이 흘러가는 것을 지켜보는 그 순간, 여러분은 혼자가 아닙니다. 여러분은 지금 거대한 대자연과 마주 앉아 대화를 나누고 있는 것입니다. 바람 소리, 새소리, 햇살의 따스함이 모든 우주의 기운이 오로지 여러분 한 사람을 위해 존재하는 순간입니다. 이것이 바로 옛 선인들이 말한 '무아일체(無我一體)', 나와 세상이 하나가 되는 경제입니다. 남들의 시선, 남들의 말, 남들의 평가, 이 시끄러운 껍데기들을 다 벗어버리고 오직 나의 숨소리에만 귀 기울이는 그 고요함. 그 속에서 여러분은 비로소 진정한 자유를 맛보게 될 것입니다. 그러니 부디 사람이 없음을 한탄하지 마십시오. 번잡한 인간 세상을 떠나 스스로의 내면에 고요한 암자를 짓고 그 속에서 왕처럼 굴림하십시오. 비우고 홀로 서십시오. 그때 여러분의 노년은 그 어떤 보석보다 찬란하게 빛날 것입니다.
자, 이제 우리의 긴 대화를 마무리할 시간입니다. 사랑하는 벗들이여, 60, 70억은 그 이상의 나이는 결코 인생이 저물어가는 슬픈 결말이 아닙니다. 오히려 남의 눈치를 보느라 입고 있던 거추장스러운 옷들을 하나씩 벗어던지고 가장 나다운 모습으로 돌아갈 수 있는 황금 같은 시기입니다. 기억하십시오. 노년의 행복은 무언가를 더 채우는 데서 오는 것이 아니라 불필요한 것들을 과감히 비워내는 비움의 미학에서 완성됩니다.
많은 분들이 혼자됨을 두려워합니다. 밤이 길어지는 것을 무서워합니다. 하지만 제가 100년의 시간을 건너와 보니 외로움(loneliness)과 고독(solitude)은 명백히 다릅니다. 외로움은 남이 나를 찾아주지 않아 비참해하는 마음, 즉 타인에게 의존하는 나약한 감정입니다. 하지만 고독은 다릅니다. 고독은 세상의 소음을 차단하고 오로지 나의 영혼과 독대할 수 있는 고귀하고 성스러운 시간입니다. 그것은 하늘이 노년에게 내린 마지막 휴가이자 축복입니다. 그러니 부디 홀로 있는 시간을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그 고요함 속에서 자신과 대화하십시오. 남들의 목소리가 사라진 그 자리에 비로소 내면의 지혜가 차오를 것입니다. 그 고독한 황홀경을 즐길 줄 아는 사람이야말로 진정한 어른입니다.
그리고 한 가지 더. 부디 스스로를 귀한 손님처럼 대접하십시오. 집에 혼자 있다고 아무도 보는 사람이 없다고 대충 끼니를 떼우지 마십시오. 혼자 드시는 밥이라 하여 찌그러진 냄비째로 드시거나 짝이 맞지 않는 그릇에 담지 마십시오. 찬장에서 가장 아껴두었던 예쁜 그릇을 꺼내 정갈하게 담아 드십시오. 집안에 혼자 있을 때도 낡고 늘어난 옷 대신 단정하고 깨끗한 옷을 입으십시오. 내가 나를 하찮게 대하면 세상의 운기도 나를 하찮게 여겨 비껴갑니다. 반대로 내가 나를 귀빈으로 대우하면 우주의 좋은 기운도 "이곳에 귀한 분이 계시는구나" 하며 여러분의 뜰 안으로 모여듭니다. 자존감이야말로 만년의 운명을 바꾸는 가장 강력한 부적입니다.
이제 오늘 밤 여러분께 작은 숙제 하나를 드리겠습니다. 잠자리에 들기 전 딱 10분만 텔레비전을 끄고 전화기를 내려놓고 고요히 앉아 보십시오. 그리고 마음속으로 두 번의 감사를 전하십시오. 첫 번째는 밉고 곱고를 떠나 내 인생의 긴 여정을 함께 해 주었던 배우자에게, 혹은 이제는 기억 속에만 존재하는 그 사람에게 "함께 해줘서 고마웠소."라고 전하십시오. 그 용서와 감사가 여러분의 가슴에 맺힌 응어리를 풀어 줄 것입니다. 두 번째는 70년, 80년이 모진 풍파를 견디며 단 한 순간도 멈추지 않고 뛰어준 여러분 자신의 심장에게, 그리고 이 늙고 병든 육체에게 "정말 고생 많았다. 버텨줘서 고맙다."라고 쓰다듬어 주십시오.
인생은 흐르는 물과 같습니다. 거센 계곡을 지나온 물일수록 하류에 닿으면 더욱 깊고 넓고 고요하게 흐르는 법입니다. 여러분의 남은 생이 그 잔잔한 강물처럼 평화롭기를, 세상의 짐을 모두 내려놓고 오직 나 자신과 나의 반쪽, 두 벗과 함께 가장 아름다운 석양을 맞이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부디 오늘 밤은 지나간 일에 대한 후회도, 오지 않은 내일에 대한 불안도 모두 내려놓으십시오. 우주의 따뜻한 품 안에서 어린아이처럼 고이 주무시길 바랍니다. 여러분의 밤이 평안하기를 기도합니다.
저는 김교수였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