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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말씀 대합니다. 창세기 37장 9절로 11절 하나님의 말씀을 봉독하겠습니다. 요셉이 다시 꿈을 꾸고 그의 형들에게 말하여 이르되 내가 또 꿈을 꾼 즉 해와 달과 열란별이 내게 절하더이다 하니라 그가 그의 꿈을 아버지와 형들에게 말하매 아버지가 그를 꾸짖고 그에게 이르되네가 꿈이 무엇이냐 나와네 어머니와네 형들이 참으로 가서 땅에 엎드려 네게 절하겠느냐 그의 형들은 시기하되 그의 아버지는 그 말을 간직해 두었더라.
요셉은 두 번의 꿈을 꿉니다. 첫 번째 꿈은 땅의 꿈이었어요. 예. 곡식단들이 이렇게 절하는 꿈이었고요. 두 번째 꿈은 하늘의 꿈입니다. 해와 달과 열란별들이 절하는 꿈이었습니다. 두 꿈 모두 다 요셉이 주가되는 꿈이에요. 어, 이거는 하나님께서 그 이 꿈을 통해서 말씀하시는 것이고 계시하시는 겁니다. 무엇을 계시하시냐? 밭에 곡식단들이 절한 것은 땅의 통치권에 대한 계시입니다. 예. 그리고 해달 별들이 절한 것은 하늘의 통치권에 대한 계시죠.
우리는 창세기 말씀을 통해서요. 이제 요셉이 총리가 됩니다. 이것을 인간의 성공 스토리로 보아서는 결코 안 돼요. 이 총리 요셉을 통해서 하나님이 말씀하고자 하시는 것은 땅과 하늘의 주되시고 통치권자가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계시하고자 함입니다. 우리 골로새서 1장 말씀을 신약의 말씀을 들어 살펴보겠습니다. 16절이에요. 만물이 그에게서 창조되 하늘과 땅에서 보이는 것들과 보이지 않는 것들과 혹은 왕권들이나 주권들이나 통치자들이나 권세들이나 만물이 다 그로 말미암고 그를 위하여 창조되었고 또한 그가 만물보다 먼저 계시고 만물이 그 안에 함께 섰느니라 그는인 교회의 머리시라 그가 근본이시요 죽은 자들 가운데서 먼저 신이시니이는 물의 으뜸이 되려하심이요 아버지께서는 모든 충만으로 예수 안에 거하게 하시고 그의 십자가의 피로 화을 이루사 만물 곧 땅에 있는 것들이나 하늘에 있는 것들이 그로 말미암아 자기와 화목하게 되기를 기뻐하십니라. 예.
바로 이 신약의 성경이 예, 오늘 이 주와 통치권자가 되는 요셉의 그림을 통해서 바로 이런 부분을 예수 그리스도가 하늘과 땅의 주되시고 통치권자가 되신다라는 것을 말씀하시고자 하심입니다. 그렇다면 요셉을 통해서요.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 인생의 주가 되시고 통치권자가 되신다라는 것을 이렇게 보여 주시는 의미가 뭘까요? 왜 이걸 계시하시고 설명하실까요? 요셉을 통해서 지금 요셉이 높임을 받습니다. 통치권자로 드러납니다. 하늘과 땅에 통치권자로 나타나요. 결국 이 요셉은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하고 있고 예수 그리스도를 보여주고 있어요.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의 주가 되시고 우리의 통치권자가 되신다라는 것을 보여 주시는 의도가 뭐냐고요? 의미가 어디냐고요. 자, 예수 그리스도는 만왕의 왕이고 만주의 주니까 너희들은 무조건 굴종해라, 복종해라, 따지지 말아라. 그걸 설명하고자 함일까요? 그럼 기독교는 맹종이죠.
바로 이게 중요한 부분인데요. 주가 된다라는 것은 오늘 골로서에서도 말씀하시는 것처럼 그는 우리의 머리시고 우리는 그의 몸인 거예요. 그러니까 이것은 관계 연합을 설명하는 겁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주가 된다. 그러니까 우리는 말없이 그의 종이 되어서 따라가야 된다는 게 아니라 우리의 모든 인생을 책임지고 계시고 그가 결정하시고 그에게 붙어 있는 겁니다. 구속과 연합이 머리와 몸의 관계죠. 그래서 여러분 순종한다는 것은요 그리스도께 말씀에 우리가 순종한다는 것은 마땅한 것이에요. 자연스러운 것이에요. 그리고 영광스러운 것입니다. 왜요? 예수 그리스도가 그 영광 가운데 주가되어 계시니까 우리가 그 예수 그리스도에게 붙어 있음으로 연합됨으로 그의 통치에 함께함으로 그 영광을 그대로 나누는 거예요. 그래서 성경은 우리를 공동 상속자다라는 표현을 하는 겁니다. 하늘의 영광을 그대로 갖는 거예요. 땅에서도 마찬가지고 요셉의 이 두 번에 이렇게 반복되어지는 꿈은요. 메시아 그니까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꿈이에요. 다른 설명을 하고 있지 않습니다. 그니까 요셉 개인의 이야기에 이야기로 끝나는 게 아니라 요셉을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와 교회의 구속과 연합을 설명하고 있는 겁니다. 그걸 개시하는 거예요. 나타내 주는 거라는 거죠.
그래서 요셉은 비전의 사람, 꿈의 사람 그렇게 성경은 말하고 있지 않아요. 하나님의 꿈을 실현하는 요셉입니다. 구속의 시련이죠. 교회를 예수님의 십자가에 묶어 버리는 참여시키는 그래서 요셉의 일거수 일투족 요셉의 인생의 모든 것들이 그의 형제들에게 어떻게 미치고 있는지를 이제는 창세기 후반이 그걸 다 기록하고 있는 거예요. 오늘 본문 9절을 볼까요? 요셉이 다시 꿈을 꾸고 또 그의 형들에게 말하여 이르되 내가 또 꿈을 꾼즉 그러니까 다시 꿈을 꾸고 또 꿈을 꾸고 그러니까 곡식단에 꿈을 꾸고 지금 또 해달 열한 별들이 또 했던 이 꿈을 지금 꾸는 거죠. 이것은 단순한 반복을 말하는 게 아니라 강조하는 거예요. 무엇을? 예. 하나님께서 분명하게 이루실 것이라는 것을 강조하는 겁니다. 내가 다시 꿈을 꾸고 또 꿈을 꿨는데 꿈이 뭐 내용이 비슷하더라 반복하는 게 아니라 그 꿈에 통해서 하나님이 이루실 것에 대한 것을 지금 강조하고 있는 겁니다. 뭘 강조하고 있냐? 둘 다 둘 다 꿈에 똑같은 부분이 강조되는 게 내게 절더이다예요. 그 꿈의 내용은 사실상 한쪽은 곡식단들이 절하는 것이 절하는 거고 하나는 그 해달 별들이 절하는 거지만 그 내용의 강조는 나에게 내게 절하더이다. 이 설명은 요셉을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가 표현되니까요. 예수 그리스도의 주되심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의 경배에 대한 설명이겠죠. 어 이것이 하나님의 확정된 뜻입니다. 하나님이 분명하게 이루시고자 하는 것은 뭐냐?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가 되게 하셔서 그 주대심에 연합하여 이루어지는 하나님의 구속 시련이에요.
우리 창세기 41장 한번 가 볼까요? 여기 32절에 보면요. 바로께서 꿈을 두 번 겹쳐 꾸신 것은 하나님이 이 일을 정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속히 행하시리에요. 그러니까 지금 요셉이 예, 꿈을 그 해석해 주면서 바로의 꿈을 지금 해석해 주는 장면이잖아요. 하나의 꿈은 그 살지고 그 아주 그 충성 아주 이렇게 좋은 암소 일곱을 그 일곱 마리를 나중에 그 파리하고 빼짝 마른 그 소가 그것을 먹어 버리는 그 첫 번째 꿈이었고 또 하나는 그 그 틈실한 그 일곱 이삭을 그 가늘고 동풍으로 바짝 말라 비틀어진 그 이삭이 일곱 이삭이 그것을 삼켜 버리는 근데 이것을 지금 요셉이 해석해 주면서 뭐라고 해요? 딱 하나를 얘기하죠. 하나님이 이 일을 정하셨다. 하나님의 확정된 뜻을 설명할 때 이렇게 두 번의 꿈을 반복시켜 이게 겹쳐 꾸게 하는 거죠. 그래서 뭘 강조하느냐? 하나님이 이 일을 이루신다라는 겁니다. 하나님의 뜻에 확정된 계시예요. 우리는 요셉의 인생 속에서 하나님이 이렇게 자꾸만 두 번의 꿈으로 하나님의 확정된 뜻을 보여 주는 게 뭐냐라는 것을 놓치면 안 돼요. 그게 뭐예요? 예수 그리스도가 주가 되시는 겁니다. 그리고 그 주되신 예수 그리스도에게 우리가 연합하여 얻는 구원을 설명하는 거예요. 성경 구원의 책이에요. 다른 것을 성경에서 요구하거나 찾지 마세요. 언약을 통하여 우리에게 약속하신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를 어떻게 구원하시느냐? 그가 주가 돼서 구원하신다는 거예요. 내게 저라더이다. 그가 우리의 통치권자가 되셔서 우리를 책임지신다는 겁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망하기 전까지는 우리는 망할래도 망할 수가 없는 거예요. 왜요?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의 주인이니까. 그가 우리의 생사 여탈권과 영혼의 모든 것을 결정하시고지고 계시니까 예수 그리스도에게 있는 것입니다. 구원은 예수 그리스도에게 속한 거예요. 그에게 두신 거라고. 그게 주대심을 통한 통치권자를 통한 우리의 구원을 설명하는 거예요. 나는 예수 그리스도의 주되심에 묶였나? 연합되 있나? 하나가 돼 있나? 이 설명이죠.
그렇다면 우리가 같이 해 볼 질문은 이거예요. 왜 주 예수 그리스도와의 주 예수 그리스도예요. 주 예수 그리스도와의 연합을 통한 구원이어야만 하나? 내가 믿으면 되는 거 아닌가? 이게 아니고 왜?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연합해서만이 얻어질 수 있는 구원이어야만 하나. 왜 그 그런 구원인가? 오늘 본문을 통해서 우리 좀 더 생각해 볼까요? 오늘 본문 10절을 보세요. 요셉이 그의 꿈을 아버지와 형들에게 말하매 아버지가 요셉을 꾸짖습니다. 그리고 그에게 이르되 네가 꾼 꿈이 무엇이냐? 나와네 어머니와네 형들이 참으로 가서 땅에 엎드려 네게 절하겠느냐? 그의 형들은 시기합니다. 또 그의 아버지는 그러나 그 말을 간직해 두었다라고 성경은 기록합니다. 어 이건 그 경쟁심을 말하는 게 아니에요. 그 요셉을 거부하는 태도를 지금 보여 주는 겁니다. 한쪽은 시기하죠. 그리고 그렇게 말한 그 야곱은 또 그 말을 마음에 지금 두고 있죠. 예. 지금 결국은 이 꿈을 통해서 요셉은 내게 저라더이다라는 말을 통해서 하고 싶은 하나님의 확정된 뜻은 이거였잖아요. 요셉을 통한 하나님의 구속 계획, 하나님의 구원 계획. 그걸 그대로 말했는데 지금 이것에 대해서 아 네가 나보다 높다고 형제들이 너한테 절하고 야 내가 또 어머니가 너한테 절한다는 것이야라는 이 이런 부분을 지금 말하는 게 아니라 11절에가 보면 그의 형제들은 그걸 시기해요. 그리고 야곱은 그것을 마음에 둡니다. 야, 여기서 시기한다라는 이 단어는 카나라는 히브리 단어인데요. 물론 이제 시기하다, 질투하다, 열심이다라는 뜻을 가져요. 그러니까 이것은 여기 시기했다라는 것은 하나님의 구속 계획과 연결해서 단순한 경쟁심이 아니라 구속 계획과 연결해서 어떤 설명을 하는 거냐면 시계했다. 아, 이 감정, 단순한 감정, 느낌, 기분, 나쁨을 말하는 게 결코 아니에요. 하나님이 세우신 그 구원의 내용과 질서를 거부하는 반응이에요. 아, 나는 그렇게 안 보이는데. 안 보이는 여러분이 문제가 있는 거예요. 하나님이 세우신 구원의 내용은 주 예수 그리스도를 주되게 하는 겁니다. 그 안에 십자가가 있죠. 질서는 뭐예요? 예. 예수 그리스도가 주가 되셔서 그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가 되게 하는 게 질서입니다. 그 예수 그리스도의 몸이 되게 하는 것이 하나님의 구속계의 질서예요. 멀치 따라가서 얻게 되는 구원이 아니라 처음부터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의 인생이 되시고 그리고 그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의 주가 되셔서 우리를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구속 계획이라고요. 근데 이것을 지금 거부하는 모습이 시기하되요. 나 이거 싫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높고 낮아짐 어 기분 나보가 아니라이 시기라는 것은 단순히 다른 게 아니라 하나님의 확정된 구속 계획에 대하여 왜 꼭 그 방법이야? 내 방법도 있는데라는 것에 대한 겁니다. 하나님의 구원 계시가 주어졌음에도 나름 자기 스스로의 방법을 고집하는 태도가 시기하되라고요.
로마서 10장을 우리 또 찾아보겠습니다. 로마서 10장을가 보시면요. 이렇게 말씀하시죠. 내가 증언하노니 그들이 예이 그들은 유대인이에요. 바리새인들이고 하나님께 열심은 있으나 올바른 지식을 따른 것이 아니니라. 하나님의 의를 모르고 자기 의를 세우려고 힘써 하나님의 의해 복종하지 아니하였느니라. 그리스도는 모든 믿는 자에게 의를 이루기 위하여 율법의 마침이 되시니라. 하나님의 의 이게 하나님의 방법이죠. 이 하나님의 방법 대신 하나님의 방법은 그리스도의 주되심입니다. 그리스도를 주가 되게 하셔서 그 안에 몸으로 연합되게 하는 이게 하나님의 의예요. 예수 그리스도가 모든 것을 다 하시고 다하신 그것을 그 안에 있는 자들이 받게 되는 거. 이게 하나님의 의죠. 이게 칭의고 전가된 의잖아요. 이게 그리스도의 의란 말입니다. 그런데 이 하나님의 의를 어떻게해요? 열심으로. 하나님께 대한 열심으로. 그거는 뭐냐면 하나님의 의가 아니라 자기 의, 내 방법, 내가 생각하고 내가 고하고 내가 편하고 내가 이해할 수 있는 것으로 받아들이는 거예요. 이게 지금 11 형제들이 보여줬 보여고 있던 시기하되라는 표현입니다. 신약의 바리새인들, 종교 지도자인 이들이 가지고 있는 그 모습과 같은 거예요. 우리 인생이 가지고 있는 모습이 이런 겁니다. 구원에 대한 이해가 잘못돼도 너무나 잘못돼 있죠. 그래서 하나님의 뜻은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이기에 주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이 깊어지면 깊어질수록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가 깊어지고 그 하나님의 구원의 은총 아래 뜻에 따라가는 삶을 기뻐하며 따라가거든요. 구원받은 자만 그렇게 갑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뜻을 모르면 확정된 하나님의 구원 계시를 알지 못하면 끊임없이 자기 방법을 세우죠. 자기 뜻을 이루려고 하죠. 하나님 말씀을 가지고 여전히 자기를 채워가죠. 하나님 말씀이 예수 그리스도가 주가된 자들에게는 틀림 없어요. 달고 오묘한 그 말씀이에요.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가 주가돼 있지 않은 자에게는 그 하나님의 말씀은 자신을 얼매고 괴롭히고 심판하고 정죄하고 판단받게 하는 율법인 겁니다.
형제들이 요셉을 시기하고 거부했습니다. 그런데 보세요. 보세요. 그러나 결국은 요셉 때문에 이 형제들이 구원됩니다. 이스라엘로 그들이 12 지파를 이루는 하나님 나라가 세워지는 그 구원 속에 들어가죠. 이스라엘 교회 구원은 예수 그리스도 예수님으로 받게 된 구원입니다. 이거 외에 다른 데에서 성경은 구원이 가능하다. 심지어 예수님은 우리의 구원을 해주 우리에게 우리가 구원받을 수 있는 어떤 조건을 갖다 준 분이라고 성경은 말하고 있지 않아요. 그냥 예수님은 그냥 구원 그 자체예요. 예수님이 오셔서 십자가에 죽으셨고 그가 부활하셨고 그래서 나의 모든 구원의 조건을 다 갖추었으니까 난 예수님을 이제는 내가 믿음으로 그래서 이 모든 것은 조건이고 내 믿음이 구원을 결정하는 것이다. 이 알미니우스 같은 해석은 잘못된 거라고요. 예수님은 우리에게 구원의 조건을 주시려고 사람되어 오신 게 아니라 우리는 애시당초 안 되고 할 수 없기에 예수님이 구원 자체로 들어오셨다고요. 왜 예수님이 하나님이신데 사람이 되셔야만 할까요? 구원의 조건을 주시려고요? 아니요. 우리 사람이 얼마나 어리석은 아세요? 시험지를 주고 답을 몰라요. 그래 답을 다 하나님이 불러 줍니다. 탁. 그러고서는 나올 때 이름 안 쓰고 나와요. 이게 우리 인간이에요. 알려주면 할 수 있는 게 인간이 아니에요. 우리 인간 안에서 할 수 없는 도저히 안 되는 게 뭐냐면 하나님의 확정된 뜻.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를 주가 되게 하시고 그 예수 그리스도의 주되심 앞에 기뻐 말씀에 따라가며 항복하며 하나님의 구원의 질서와 내용을 받아들이는 이 마음 수능하는 것이 인간의 본성에서는 불가능합니다.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를 중생시켰을 때 비로써 우리 안에 벌어지는 일이 하나님의 말씀이 달고 오묘하고 기쁘게 그 말씀 앞에 따라가는 이유가 예수 그리스도가 내 인생의 주가 되셨기 때문에 그런 거예요.
하나님은 시기했던 형제들에게 무슨 일을 이루어 내시는 건가? 무슨 일을 이루어 내시고 있나? 요셉을 통해서 애굽으로 팔려갔잖아요. 근데 그 팔려간 요셉이 가은 고초를 겪습니다. 안 겪어도 될 고초를 겪어요. 그 고초를 겪어서 총리가 됐다. 그 얘기가 아니라 그 모든 고초를 겪어서 그가 통치권자와 주가되는 모습. 바로의 다음 바로가 가지고 있는 모든 권세를 가지고 있는 요셉으로 등장해서 요셉이 한 일이 뭐예요? 자랑합니까? 형제들한테 내가 어 당신들이 팔아넘겼던 나다라고 하면서 막 자기의 권세를 보여 주나요? 아니죠. 요셉이 하고 있는 게 뭐예요? 하나님이 요셉을 통해서 하는 일이 뭐예요? 그 형제들의 회심 사건을 이뤄내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유다를 통해서 대속 사건을 깨닫게 하죠. 바로 이 지점이에요. 시기했던 형제들에게 비로소 중생을 잊게 하시고 회심케 하시고 십자가를 인격적으로 만나게 하시고 그래서 그들이 이스라엘 12 지파가 되는 겁니다. 요셉을 왜 앞서 보내서 요셉으로 하여금 통치권자의 자리에 왜 두게 하시나? 예. 그를 통하여서 이 일을 하시는 거예요. 어, 우리 인생들 속에 예수 그리스도가 오셔서 무슨 일을 행하셨나? 우리가 우리의 본성과 우리의 죄악으로는 할 수 없는 하나님의 구원 계획대로 하나님의 뜻을 이루셨어요. 사람으로 오셔서 하나님의 공의의 십자가에 심판을 받으시고 하나님에게 만족을 주실뿐만 아니라 하나님이께로부터 얻은 그 의를 우리에게 다 주셨어요.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신 구원입니다. 예수님이 다 하셨어요. 다 하신 그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 안에서 주가 되셔서 구원받은 우리 안에 그 구원 역사를 어떻게 이루어 가세요? 마치 요셉이 11 형제들을 도았듯이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말씀 앞에 다시 태어나는 중생을 경험시켜 주시고 회심케 하시고 믿게 하시고 칭의를 얻게 하시고 의롭다 하시고 여러분 이렇게 해야 구원받는 건가요? 아니잖아요. 이미 예수 그리스도가 사람되어 오셔서 그가 모든 구원이 되셔서 이 모든 것을 다 이루셨고 도우시잖아요. 우리로 하여금 중생, 회심, 믿음, 칭의 성화, 영화까지 다 도시잖아요. 별개가 아니잖아요. 이해하십시오. 7월이에요. 올해 다갔습니다.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구원 역사에 대한 바른 이해를 하셔야 돼요.
고린도전서 1장을 한번 보겠습니다. 너희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고 예수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와서 우리에게 지혜와 의로움과 거룩함과 구원함이 되셨다. 이 이 말씀이 무슨 뜻인지 읽혀지나요? 여러분 이 말씀은 그 신학적으로요. 너무너무나 중요한 말씀입니다. 무엇을 설명하는? 예수 그리스도와의 연합을 설명하는 연합이라는 의미가 갖고 있는 게 뭐냐면 나는 단순히 예수님과 함께 죽고 예수님과 함께 다시 살아났다. 그 정도의 연합만이 아니라이 말씀이 설명하는 건 뭐냐면요. 하나님이신 예수님이 사람이 되어 오셔서 우리가 얻어야 할 모든 구원을 다 사람이신 예수님이 하셨다는 겁니다. 그가 중생받으셨고 그가 회심하셨고 그가 부활하셨고 그가 칭의를 얻으셨고 그가 성화롭게 되셨고 그러면 이제 따져 묻죠. 예수님이 언제 중생했냐? 예수님은 언제 칭이 얻었냐? 음. 성경은 그런 거에 대해서 일일이 말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런 것들에 대해서 성경을 찾아보면 없는 건 아니에요. 중요한 건 그거예요.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우리 인생이 그 받아야 할 모든 것들을 성경에서 크게 보여 주세요. 이스라엘을 통해서 설명하는 게 그런 거죠. 여러분 예수님이 마태복음 2장에 그 헤롯 대왕의 죽음을 피해 애굽으로 내려가죠. 근데 이것은 호세아 선지자가 얘기했던 말 그대로입니다. 내 아들을 애굽에서 불러냈다. 이 장면은 구속사적으로 이스라엘이 반드시 애굽에 들어갔다가 나와지는 설명입니다. 왜요? 이 이 설명은 예수 그리스도와 상관이 있겠다라는 설명을 하고 싶은 거예요. 성경은.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가 굳이 애굽에 들어갔다가 나오시는 거예요. 이스라엘이 굳이 애굽에 들어갔다가 다시 가나안으로 나오듯이 예수님께서 죄가 없으십니다. 죄가 없기 때문에 사실은 세례를 받을 이유도 없어요. 세례라는 것은 죄를 씻겨내는 거니까. 그런데 예수님이 마태복음 3장에 보면 세례를 받으세요. 예수님이 왜 세례를 받을까요? 예. 바로 우리와 연합을 설명하는 거죠. 그래서 고린도서 10장에 보면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나온 그 사건 속에서 홍해를 굳이 건느죠. 여러분, 어, 출애굽하면서요. 홍해 이쪽 수꽃 아래로 이렇게 내려오는 길은 사실은 어, 광야로 들어서는 길에서 내려가는 길이에요. 굳이 홍해까지 가서 광야로 들어갈 이유도 없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들을 홍해로 이끌어내죠. 그리고 성경은 뭐라고 말해요? 그들이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나와서 홍해로 이렇게 들어갔다가 다시 나오는 것을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로 말하는 세례로 설명하죠. 그리고 예수님은 광야에서 반석이 되셔서 반석에서 물을 내신 그리스도로 소개하죠. 여러분, 이런 설명들이 왜 있냐는 거예요. 예수님이 광야에서 첫 복음 사역을 시작하기 전에 40일 동안 굶주인 후에 성령에 이끌려 시험을 당하시죠. 이런 설명들이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시험을 겪습니다. 다 실패하죠. 그러나 예수님은 성공하십니다. 승리하십니다. 왜요? 묶기는 거예요. 예수님이 주가 되셔서 그 모든 것들을 다 이루시고 이루신 모든 것들을 주시는 겁니다. 지혜가 되시고 구속함이 되시고 의롭다함이 되시고 거룩함이 되신 거예요. 누가? 예수님이. 그 예수님이 사람으로 오셔서 하신 모든 일거수 일투족이 우리의 구원의 모든 것들을 예수님이 충족시키셨고 행하셨고 이루셨고 하나님은 이 예수님만 보시고 예수님만 의롭다 하시고 예수님만 그 회심과 믿음을 인정하시고 예수님만 중생이죠. 예수님만 구원이세요. 그 예수님이 예수 그리스도로 우리의 주여 그리스도로 고백되어지는 자기 백성들 믿음으로 고백되어지는 자기 백성들 예수 그리스도를 주요 그리스도로 고백하는 그 자기 백성들이 예수님 안에서 구원받게 하신 거죠. 예수님만 구원하십니다. 근데 그 예수님이 우리 인생에 주가 되시고 그리스도가 되시는 자들은 그 예수님 안에서 구원받게 하신 것이 하나님의 확정하신 뜻이 올시다.
예수님이 하늘 보좌를 떠나서 사람으로 오셨을 때요. 저와 여러분이 된 겁니다. 아멘 한 사람만 오늘 말씀 잘 이해하신 거예요. 죽으시고 부활하시고 승하셔서 지금 하늘 보좌 영광 가운데 계신 것은 우리를 그렇게 하기 위함이에요. 예수님이 내려오지 않으셨으면 사람되어 오지 않으셨으면 우리 중에 어느 누구도 하늘로 올리울 자가 없습니다. 예수님이 그가 사람이 되어서 행하신 모든 구원 때문에 우리의 구원은 완벽하고 완전하고 하나님 앞에 다 성취된 거예요. 그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 오심으로 저와 여러분의 인생이 되셨고 그 우리의 인생이 되신 그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절하는 이것은 항복과 굴종과 맹종이 아니라 감사와 기쁨이고 영광스러움입니다. 천사는 이럴 수 없어요. 천사는 예수 그리스도의 주되심에 묶기지 않아요. 우리만이 십자가를 통하여서 예수 그리스도의 주되심에 이렇게 연합되는 거예요. 그래서 우리는 지금은 천사보다 잠깐 모자하지만 우리는 육이 있어서 죄된 몸을 갖고 있어서 그렇지만 장차 다시 배는 그 영광의 그날에는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요.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아들들이요. 천사는 우리를 수종드는 우리의 신부름꾼이요 우리의 종들이 되는 거죠.
로마서 1장을가 볼까요? 예수 그리스도의 종 바울은 사도로 부르심을 받아 하나님의 복음을 위하여 택정함을 입었으니 그다음 보세요. 이 복음은 그다음에 4절 맨 마지막 절에 뭐라고 돼 있어요?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시니라. 그러니까 복음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세요. 그죠? 그리고 그 복음의 내용이 지금 2절과 4절에 그 담겨져 있는 거예요. 복음은 주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내용은 뭔지 한번 볼까요? 하나님이 선지자들을 통하여 그의 아들에 관하여 성경에 미리 약속하신 거. 그의 아들이었어요. 그런데 이 아들을 성경에 지금 약속하셔요. 자, 복음의 내용입니다. 그의 아들에 관하여 말하면 육신으로는 다윗의 혈통에서 나셨고 성결의 영으로는 죽은 자들 가운데서 부활하사 능력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선포되셨다. 여러분, 요 복음의 내용이 뭘 말하는 걸까요? 키가 지금 어 예수님이 죽으시고 부활하시기 전에는 하나님의 아들이셨어요? 아들이 아니셨어요? 예. 성자 하나님 아들 하나님이셨어요. 응. 그러니까 이 땅에 와서 죽으시고 부활하셔서 여기 성경에 보면 하나님의 아들로 선포됐다. 그니까 하나님의 아들이 아니었는데 죽고 그다음에 부활하셔서 이제 비로소 하나님의 아들이 되어졌다는 설명이 아닌 거죠. 그러니까 죽으시고 부활하시기 전에도 이미 창세전부터 영광 가운데 삼위 하나님으로 아들 하나님으로 제2위 성자 하나님으로 영광 가운데 계셨던 분이 바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란 말이에요. 우리 주 예수님이란 말이에요. 그런데 보세요. 그런데 복음의 내용이 뭐예요? 그가 그가 육신으로는 다윗의 혈통에서 나셨고 성결의 영으로는 그 죽은 자들 가운데 부활하 왜 이런 일을 하신 거예요? 왜 예수님이 사람의 몸을 입고 피곤하고 낮은 몸으로 오셨고 그가 왜 또 성령의 은혜 가운데서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 왜 왜 왜 죽으시고 그러신 거예요? 누굴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하시기 위함입니까? 저와 여러분을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하시고자 함이라고 성경이 복음의 내용이잖아요. 여러분 이게 굿뉴스입니다. 예수님은 나를 위해서 죽으셨대. 그래서 나는 예수님 믿으면 천국 간대. 맞습니다. 그거 복음의 내용이죠. 그런데 지금 예수님이 하나님의 원래부터 아들이시고 영광이셨는데 그분이 왜 육신이 되어 오셔서 죽으시고 부활하셔서 하나님의 아들로 이렇게 선포가 되시는가? 누구를 위함인가? 예. 주라 고백하는 자기 백성들과 하나되어지는 거죠. 그래서 하나님의 아들들 되게 하시는 거죠. 우리가 그런 존재입니다. 예수님이 오셔서 우리 살려낸 거예요.
그 성경에서 그 창세기 3장 16절 뭐 독생자라는 단어가 있잖아요. 요한복음 1장에서도 독생자 모노게네스라는 뜻입니다. 근데 이 모노게네스라는 이 독생자라는 뜻은요. 어 유일무의한 아들이란 뜻이에요. 유일무의한 아들. 그리고 유일하게 난자. 유일하게 난자. 유일하게 난자 누구만 있어요? 성령으로 잉태되신 유일하게 난 자는 예수님밖에 없습니다. 그렇죠? 그래서 독생자라는 뜻으로 우리가 이해를 해야 되는 건 뭐냐면 아 독생자 왜 아들 그게 아니라 독생자가 성경이 독생자라고 말하는 모노게네스는요 유일하게 난 자 유일무의한 존재 누구예요? 독특하고 유일한 존재. 그런데 성경은 이 예수님을 마아들, 큰 아들 이렇게 소개해요. 왜 마아들이 되시고 큰 아들이 되는 거예요? 그가 우리의 으뜸이 돼서 우리와 묶여지기 위해서. 그 왜 아들? 그 혼자 예수님은 왜 아들이야? 나만 하나님 앞에 왜 아들이야?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그가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시고 영광 가운데 하셔서 이런 일이 뭐예요? 우리를 하나님의 아들들 되게 하신 일이죠. 그래서 독생자 거예요. 그래서 우리가 그 마다들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그 묶여져서 아들들 된 겁니다. 여기에는 그 어떤 천사도 그 어떤 사탄도 그 어떤 우리의 허무함도 우리의 부족함도 바꿔낼 수 없어요. 왜요? 하나님의 확정된 뜻이잖아요. 요셉의 꿈을 통해서 하나님이 내가 이룰 구원의 계획과 내용과 질서는 주 예수를 요셉을 통해 설명했듯이 주 예수를 통치권자여 주가 되게 해서 절하게 하는 그래서 여기에서 이루어지는 구원이다. 그리고 이 형제들을 요셉이 다뤄내듯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를 중생시키고 회심시키고 칭의하게 하고 성화롭게 하고 이 과정을 하나님이 섭리하시며 역사 속에서 이루어 내신다. 두 번의 꿈은 하나님의 확정된 구원 계획이고요. 주 예수 그리스도만 한다는 말씀입니다.
에베소서 1장을 한번 우리 볼까요? 같이 읽습니다. 하늘에 있는 것이나 땅에 있는 것이 다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되게 하려 하심이라. 하늘에 있는 것, 땅에 있는 것이 다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이 돼 있었습니다. 근데 여기 우리는 그 번역은 통일이라고 돼 있는데요. 원어에 보면 아나케 팔라오예요. 재통일입니다. 재통일. 다시 통일이에요. 그러니까 하늘과 땅이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이 돼 있었대요. 언제요? 네. 하나님의 영원한 확정된 구원 계획은 그리스도 안에서 십자가로 다 그들을 묶어 놓은 것입니다. 통일되 있었어요. 그런데 보세요. 예수님이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셔서 하늘에 있는 것과 땅에 있는 것이 다 하나님의 자기 백성들이 재통일되는 그리스도의 십자가 안에서 다시 통일되는 이것은 그 자기 백성들이 이 십자가를 인격적으로 갖게 되는 통일이죠.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를 가졌던 자기 백성들 안에 이루시는 일은 그거예요. 이들을 다 이미 구원됐습니다. 이미 하나님의 이중 예정이잖아요. 이미 구원하기로 한 자기 백성들은 선택하셨어요. 십자가로 구원하셨어요. 그런데 이 땅에서 이미 통일이었어요. 근데 이 땅에서 다시 통일이 된다는 건 무슨 설명이에요? 예. 하나님의 자기 백성들 안에 예수가 주가 되셔서 그들 안에 이루신 모든 구원을 펼쳐내시는 겁니다. 하나도 잃어버리지 않아요. 하나도 실패되지 않아요. 하나도 예외되지 않습니다. 여러분, 그러니까 저와 여러분이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고백한다라고 하는 우리는 하나님의 확정된 말씀 안에서 그 말씀을 즐거이 따라가면서 구원을 두렵고 떨림으로 항상 복종하며 이 복종은 맹종이나 굴종 아니에요. 즐거운 사랑과 순종입니다. 하나님 말씀을 즐기며 우리의 구원의 기쁨을 누리며 구원되어져 가는 겁니다. 그게 아나케팔라요?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다 아시고 다 아신 것을 우리에게 상급으로 주신 거예요. 상급. 하늘에 가면 무슨 개털 모자, 무슨 모자 쓰는 게 아니라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를 주가 되셔서 이루신 모든 것들의 그 기쁨과 영광스러움을 순종으로 말씀으로 맛보는 은혜, 즐거움, 구원의 즐거움 빼앗길 수 없는 그래서 사도 바울이 그러잖아요. 아그리바 앞에서도 당신이 내가 지금 수갑으로 찬 거 외에는 당신이 나와 같이 살기를 원한다. 나의 이 기쁨을 알기를 원한다. 이것이 상급이라고요. 사도 바울이 지금 낙원에서 갖고 있는 상급은 뭐겠어요? 예수 그리스도와 묶여져서 그 예수 그리스도 안에 갇혀져서 맛보았던 그 하늘의 기쁨들, 은혜들, 생명들, 진리들 이것이죠.
그래서 구원은 기억하세요. 아담이 범죄하기 이전으로 회복하는 것, 돌아가는 것 그거 구원 아니올다. 창세전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십자가로 우리를 통일시켰던 그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의 아들들 그 영광스러움을 회복받는 거예요. 십자가를 인격적으로 갖는 거예요.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이 달고 우묘한 겁니다. 기도가 행복한 거예요. 이 자리가 구원이에요. 구원받았다고 하면서 하나님의 말씀이 거고 거룩한 게 아니라 거북스럽다. 그거는 생각해 봐야죠. 아니에요. 예수 그리스도가 주가 되신 인생은 이 땅에서 믿음으로 살지 않으면 견딜 수가 없어요. 믿음으로 사는 겁니다. 빌립보서 3장 보시면 그는 만물을 자기에게 복종하게 하실 수 있는 자의 역사로 우리의 낮은 몸을 자기 영광의 몸의 형체와 같이 변하게 하시리라. 예수 그리스도의 다시 오시는 그날 우리의 죄고 이 낮은 몸이 예수님의 영광의 몸의 형체와 같이 화 변하게 된다고 말씀하시고요. 요한일서 3장에 보면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지금은 하나님의 자녀라. 장례에 어떻게 될지는 아직 나타나지 아니하였으나 그가 나타나시면 우리가 그와 같을 줄을 아는 것은 와 우리가 다시 오시는 그날 주님 앞에 주님과 같을 줄을 안니다. 그의 참모습 그대로 본답니다. 주를 향하여 이 소망을 가진 자마다 그의 깨끗하심과 같이 자기를 깨끗하게 하느니라.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의 연약함을 아시고 간구하시고 탄식하신다 그래요. 어 어떤 부분이냐면 보이는 것을 소망하는 것은 그거 누구나 할 수 있어요. 그건 소망 아니다. 보이지 않는 바를 소망하는 거. 그것을 참으로 붙드는 게 이게 참소망이다. 그런데 인생들이 이것을 참고 인내하는 것이 너무나 어려워서 성령이 이것을 우리의 그 연약함을 성령이 탄식하며 기도하신다. 이게 로마서 8장 말씀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뜻대로 간구하신대요. 하나님의 뜻대로. 하나님의 뜻이 뭐예요?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 오셔서 그가 삶을 살아내시며 그가 우리의 주가 되시는 거예요. 그리고 그 예수 그리스도에게 하나님은 모든 구원을 물으실 겁니다. 죄도 물으실 겁니다. 그리고 그 예수 그리스도가 그 하나님의 모든 것을 이루어내시고 우리의 주가 되시는 거예요. 우리의 주가 되신 예수님 때문에 우리의 구원은 확실한 거예요. 그 예수 그리스도의 주되심 안에서 성령께서 우리 안에서 이루시는 게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 그러는 그게 뭐예요? 미리 아신 자들로 그 아들의 형상, 마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는 거죠. 그래서 미리 정하신 자들로 부르시고 부르신 자들을 의롭다 하시고 그 의롭다 하신 자들을 영화롭게 이게 다 마다들 되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 안에 하나님이 이미 이루시고 이것을 이루어 가는 하나님의 확정된 뜻입니다. 두 번의 꿈이 단순히 반복이 아니라 도대체 무엇을 우리에게 뚜렷하게 해 주심인가? 아 그렇구나. 요셉을 통해서 열한 형제들이 이 자기 의를 가졌던 이 시기심이 그 안에서 회심이 되고 그 안에서 온전한 구원이 이루어져서 하나님 나라가 세워졌듯이 우리 안에 이 일이 이루어지는구나. 내 안에서 이 시기심, 자기 방법, 자기 어름, 자기의 다 뽑아내시고 오직 내 안에 예수 그리스도로만 높임을 받고 남게 하시는구나. 이 이 영광된 구원을 받은 하나님의 백성들은 이 영광의 구원의 삶을 살아갑니다. 이 복된 인생을 받은 자들이여 하나님의 영광 가운데 이 구원의 기쁨을 누리시며 사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원합니다.
성경에서 하나님의 말씀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빼고 내가 들어가면 다 저주받을 율법밖에 안 됩니다. 하나님 말씀에서요. 예수 그리스도가 들어가시고 그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나를 찾아내면 하나님의 말씀은 다 생명이 돼요. 여러분, 이제 우리가 성경을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그 목적 그대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찾아내는 그런 복된 인생이 되길 바랍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달고 오묘하다라는 이 진리를 꿀송이와 같 달콤하다. 송이 꿀과 같다라는 것이 도대체 무슨 의미인지를 여러분이 성경을 통해서 만나기를 바랍니다. 이 시간 우리 한 가지를 돌이켜면서 하나님 앞에 바로잡기를 원합니다. 저와 여러분은 예수 그리스도가 그리스도라는 것은 틀림 없어요. 주가 되셨습니까? 주가 되셨습니까? 주가 되지 않고서는 예수 그리스도가 이루신 모든 구원이 내 입술로는 그리스도 그리스도 말하지만 하나님께서 정하신 뜻은요. 예수 그리스도가 주가 되시는 거예요. 나의 결정권자가 되시는 겁니다. 그래서 모든 것을 의탁할 수밖에 없고 그리고 그 주가 되심 때문에 든든한 거예요. 흔들림이 없는 거예요. 그 어떤 송사에도 괴롭지 않은 거예요. 예수 그리스도가 나를 책임지시니까 여러분이 주되심을 다시 한번 돌아보며 그리스도만이 아니라 예수는 나의 주되심을 이 시간 깊이 고백하고 실질적인 여러분의 삶에도 이 믿음의 삶이 나타나지기를 권합니다.
같이 기도하겠습니다.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알고 고백하는 자리까지는 나왔지만 예수님이 나의 주이시다. 나의 모든 것의 결정권자이시다. 나는 그 예수에게 나의 모든 것을 의탁한다. 이 이 실질적인 사실이 우리 안에 믿음으로 결부되어 있는지를 돌아보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하나님 우리가 하나님의 구원받은 자녀이기에 우리로 하여금이 귀한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받게 하셨고 이 말씀 앞에서 성령께서 우리를 하여금 마음을 뜨겁게 하여 주셨사오니 주여 이제 예수 그리스도가 나의 인생에 그리스도요 주 되심을 고백하며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루어내신 모든 구원의 즐거움과 기쁨을 이 땅에서 누리게 하시고 다시 배는 그 영광의 그날 주님의 영광의 그 몸을 더입고 하나님 품에 안기는 우리 모두 되게 하여 주옵소서. 존개하신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올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