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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 여러분은 지금이 순간에도 수천 개의 생각들과 함께 살아가고 있습니다.
[음악] 아침에 눈을 뜨는 순간부터 밤에 잠들기 직전까지 끊임없이 떠오르는 생각들이 우리의 마음을 채우고 있습니다. 오늘 회의에서 실수하면 어떡하지? 저 사람은 나를 싫어하는 것 같아. 나는 왜 이렇게 부족할까라는 생각들이 [음악] 마치 진실인 것처럼 우리를 사로잡습니다.
하지만 부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마땅히 머무는 바 없이 그 마음을 낼지니라. 생각에 집착하지 말고 어디에도 머물지 말라는 가르침입니다. 이 말씀은 [음악] 우리가 믿고 있는 생각들이 실체가 없는 환영일 수 있다는 [음악] 깊은 통찰을 담고 있습니다.
어느 날 한 수행자가 부처님께 물었습니다. 세존이시여. 제 마음속에는 끊임없이 불안한 생각들이 떠오릅니다. 이 생각들을 어떻게 다스려야 합니까?
부처님께서는 잠시 침묵하시다가 하늘을 가르키셨습니다. 저 하늘을 보거라. 구름이 떠다니고 있지 않은가? 수행자가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았습니다. 네, 세존이시여. 구름들이 끊임없이 모양을 바꾸며 [음악] 흘러가고 있습니다.
부처님께서 다시 물으셨습니다. 그 구름들이 하늘을 더럽히는가? 수행자는 잠시 생각하다가 대답했습니다. [음악] 아닙니다. 세존이시여. 구름은 그저 지나갈 뿐입니다. [음악] 하늘은 언제나 맑고 깨끗합니다.
부처님께서 미소 지으시며 말씀하셨습니다. 너의 생각도 그와 같으니라. 생각은 [음악] 구름처럼 잠시 떠올랐다가 사라지는 것일 뿐 너의 본성을 더럽히지 못한다. 다만 내가 그 구름을 붙잡고 이것이 나다라고 믿을 때 고통이 시작되는 것이다.
우리는 매순간 수많은 생각들을 진실이라고 믿으며 살아갑니다. 누군가 우리를 스쳐 지나가며 인사를 하지 않았을 때 [음악] 저 사람이 나를 무시하는구나라는 생각이 떠오릅니다. 그 순간 우리는 그 생각을 진실로 받아들이고 마음속에 상처를 만들어냅니다. 하지만 [음악] 실제로는 그 사람이 그저 급한 일이 있어서 우리를 보지 못했을 수도 있고 깊은 생각에 잠겨 있었을 수도 있습니다. 우리가 만들어낸 생각은 단지 우리 마음이 지어낸 하나의 해석일 뿐 객관적 진실이 아닙니다.
부처님께서는 이러한 생각의 본질을 무상, 즉 항상 변하는 것이라고 [음악] 가르치셨습니다. 지금이 순간 여러분의 마음을 관찰해 보십시오. 방금 전까지 떠올랐던 생각이 지금도 그대로 있습니까? 아마도 이미 다른 생각으로 바뀌었을 것입니다. 생각은 마치 [음악] 강물처럼 끊임없이 흐르고 변합니다. 1초 전의 생각과 지금의 생각은 이미 [음악] 다른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그토록 변하기 쉬운 생각을 진실이라고 믿으며 [음악] 집착하는 걸까요? 한 제자가 부처님께 물었습니다. 세존이시여, 저는 제 생각을 믿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이해했습니다. 하지만 생각이 떠오를 때마다 그것이 진실처럼 느껴집니다. 어떻게 해야 합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물 위에 비친 달을 보거라. 그것이 진짜 달인가 아니면 물에 비친 그림자인가? 제자가 대답했습니다. 그림자입니다. 세존이시여. 그렇다. 하지만 어두운 밤 그 연목가에 선 사람은 물속에 달을 보고 진짜 달이라 착각할 수 있다. 마찬가지로 너의 생각도 마음이라는 물 위에 비친 그림자일 뿐이다. 하지만 내가 그것을 자세히 관찰하지 않으면 그것이 진실인 줄 착각하게 되는 것이다.
생각을 관찰한다는 것은 생각과 자신을 분리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나는 불안하다라는 생각이 떠오를 때 그 생각과 나를 동일시하는 대신 지금 불안하다는 생각이 일어났구나라고 관찰하는 것입니다. 이 작은 차이가 엄청난 변화를 만들어냅니다. 전자는 내가 불안 그 자체가 되어 버리는 것이고 후자는 불안이라는 생각을 지켜보는 관찰자로 [음악] 남는 것입니다.
부처님께서는 이것을 윗빠사나, 즉 있는 그대로 보는 것이라고 [음악] 가르치셨습니다. 생각에 대한 판단 없이 좋다 나쁘다는 평가 없이 그저 생각이 일어나고 [음악] 사라지는 것을 지켜보는 것입니다. 마치 길가에 앉아 지나가는 사람들을 바라보듯이 우리 마음속을 지나가는 생각들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어느 날 한 부유한 상인이 부처님을 찾아왔습니다. 그는 성공한 사업가였지만 끊임없는 [음악] 걱정과 불안에 시달리고 있었습니다. 세존이시여, 저는 많은 것을 이루었지만 마음의 평화를 찾지 못하고 있습니다. 사업이 망하면 어쩌나 경쟁자가 나를 이기면 어쩌나 하는 생각들이 [음악] 밤낮으로 저를 괴롭힙니다.
부처님께서 물으셨습니다. 그대의 사업이 지금 당장 망하고 있는가? 아닙니다. 세존이시여. 그대의 경쟁자가 지금 당장 그대를 이기고 있는가? 아닙니다. 세존이시여. 그렇다면 그대가 고통받고 있는 것은 실제로 일어나고 있는 일 때문이 아니라 그대의 생각 때문이 아니겠는가? [음악] 그대는 아직 일어나지도 않은 미래의 환영을 보며 괴로워하고 있다.
이 이야기는 우리 대부분이 겪고 있는 고통의 본질을 보여줍니다. 우리의 고통은 대부분 현실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만들어낸 생각에서 옵니다. 과거에 대한 후회, 미래에 대한 불안, 현재에 대한 불만족. 이 모든 것은 생각이라는 형태로 우리를 괴롭힙니다. 하지만 생각은 실체가 없습니다. 생각은 우리가 만들어낸 정신적 구성물일 뿐입니다.
금강경에서 부처님께서는 [음악] 마땅히 머무는 바 없이 그 마음을 낼지니라라고 [음악] 말씀하셨습니다. 이 구절의 깊은 의미는 어떤 생각에도 집착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좋은 생각에도 나쁜 생각에도 머물지 말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모든 생각은 일어났다가 사라지는 무상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어떤 생각에 머문다는 것은 그 생각을 진실로 받아들이고 [음악] 집착한다는 의미입니다. 그 순간 우리는 생각에 노예가 됩니다.
한 젊은 수행자가 명상을 하다가 갑자기 화가 치밀어 올랐습니다. 나를 무시했던 저 사람, 나를 배신했던 저 친구에 대한 생각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일어났습니다. 수행자는 명상을 중단하고 스승을 찾아갔습니다. 스승님 명상 중에 분노의 생각들이 끊임없이 일어납니다. 어떻게 해야 합니까?
스승이 물었습니다. 그 생각들을 없애려고 했는가? 네. 스승님, 그것이 바로 문제다. 생각을 없애려고 하는 순간 너는 그 생각과 싸우게 되고 [음악] 싸움은 그 생각을 더욱 강하게 만든다. 대신 그 생각을 잊는 그대로 바라보거라. 아, 지금 분노의 생각이 일어났구나 하고 관찰만 하거라. 싸우지도 말고 [음악] 따라가지도 말고 그저 바라보기만 하거라. 이것이 생각을 다루는 지혜입니다. 생각과 싸우는 것이 아니라 생각을 있는 그대로 관찰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생각을 억압하려고 하면 할수록 그 생각은 [음악] 더욱 강해집니다. 하지만 우리가 생각을 그저 관찰하기만 하면 생각은 저절로 힘을 잃고 사라집니다. 마치 구름이 하늘을 지나가듯이 말입니다.
부처님께서는 또한 모든 법은 마음이 만들어낸 것이다라고 가르치셨습니다. 우리가 보는 세상, 우리가 경험하는 현실은 우리 마음이 해석하고 구성한 것입니다. 같은 상황을 놓고도 어떤 사람은 기쁨을 [음악] 느끼고 어떤 사람은 슬픔을 느낍니다. 왜 그럴까요? 상황 자체가 기쁨이나 슬픔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그 상황에 대한 우리의 생각이 감정을 만들어내기 때문입니다.
비가 내리는 날을 생각해 봅시다. 농부는 비를 보며 기뻐합니다. 가뭄으로 메말랐던 논밭에 단비가 내리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소풍을 가려던 아이는 비를 보며 슬퍼합니다. 같은 비인데 한 사람에게는 축복이고 다른 사람에게는 실망입니다. 비 자체는 중립적입니다. 비에 대한 우리의 생각이 [음악] 기쁨이나 슬픔을 만들어내는 것입니다.
어느 날 두 수행자가 길을 걷다가 진흙탕을 만났습니다. 한 아름다운 여인이 진흙탕 [음악] 앞에서 망설이고 있었습니다. 첫 번째 수행자가 여인을 업어 진흙탕을 건너게 해 주었습니다. 두 수행자는 다시 길을 걸었습니다. 한 시간쯤 지나자 두 번째 수행자가 말했습니다. 형님, [음악] 우리는 수행자로서 여인을 가까이해서는 안 되는데 어떻게 여인을 업을 수 있었습니까?
첫 번째 수행자가 대답했습니다. [음악] 나는 진흙탕에서 그 여인을 내려놓았는데 자네는 아직도 그 여인을 얻고 있는가? 이 이야기는 생각에 집착하는 것이 얼마나 무거운 짐인지를 보여줍니다. 실제 행위는 이미 [음악] 끝났지만 그것에 대한 생각은 우리 마음속에서 계속 살아 있습니다. 우리는 과거의 일을 되풀이해서 생각하고 [음악] 미래의 일을 미리 걱정하며 현재의 순간을 놓치고 있습니다.
부처님께서는 이것을 아상, 즉 나라는 생각에 대한 집착이라고 하셨습니다. 나는 부족하다. 나는 실패자다. 나는 [음악] 사랑받지 못한다와 같은 생각들은 실제로 우리 존재의 본질이 아닙니다. 이것들은 단지 우리가 만들어낸 정신적 구성물일 뿐입니다. [음악] 하지만 우리는 이러한 생각들을 진실이라고 믿고 그것에 따라 살아갑니다.
명상을 하던 한 수행자가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그는 스승에게 달려가 말했습니다. 스승님, 저는 깨달았습니다. 저는 제 생각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스승이 물었습니다. 그렇다면 너는 무엇인가? [음악] 수행자는 잠시 침묵했습니다. 스승이 다시 물었습니다. 생각이 일어나기 전, 생각이 사라진 후에 남아 있는 것은 무엇인가? 수행자는 깊은 명상에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미소를 지으며 말했습니다. 고유함입니다. 스승님. 생각이 일어나기 전에도 생각이 사라진 후에도 항상 그 자리에 있는 고유함입니다. [음악] 이것이 우리의 본래 마음입니다. 생각들이 일어나고 사라지는 것을 지켜보는 고유한 [음악] 자가 그것이 우리의 진정한 본성입니다. 부처님께서는 이것을 불성이라고 하셨습니다. [음악] 우리 모두의 내면에 있는 깨어 있는 본성. 생각에 물들지 않은 맑은 본성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이 본성을 잊고 살아갑니다. [음악] 끊임없이 떠오르는 생각들과 자신을 동일시하며 [음악] 나는 불안하다. 나는 화가 난다. 나는 슬프다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정확히 말하면 불안이라는 생각이 일어났다. 화라는 감정이 일어났다. 슬픔이라는 느낌이 일어났다고 해야 합니다. 나는 이러한 생각과 감정들이 일어나는 것을 지켜보는 자각 그 자체입니다.
[음악] 부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생각을 믿지 마라. 생각은 오고 가는 것이다. 너희의 본성은 생각이 아니다. 생각이 일어나기 전부터 있었고 생각이 사라진 후에도 남아 있는 것. 그것이 너희의 진정한 본성이다.
한 제자가 물었습니다. 세존이시여 그렇다면 우리는 생각 없이 살아야 합니까? 부처님께서 웃으시며 말씀하셨습니다. 생각 없이 사는 것이 아니라 생각에 속지 않고 사는 것이다. 생각은 도구와 같다. 필요할 때 사용하고 필요하지 [음악] 않을 때는 내려놓아라.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생각을 내려놓지 못하고 생각이 주인이 되어 자신을 괴롭히도록 내버려 둔다.
실제로 우리의 많은 생각들은 쓸모없는 반복입니다. 같은 걱정을 수백 번 대풀이하고 같은 후회를 수천 번 곱씹으며 같은 불안을 매일 느낍니다. 이러한 생각들은 우리에게 아무런 도움도 주지 않으면서 [음악] 우리의 에너지를 소진시킵니다.
한 상인이 부처님께 물었습니다. 세존이시여, 저는 사업 결정을 내려야 할 때 끊임없이 고민합니다. 이렇게 하면 어떻게 될까? 저렇게 하면 어떻게 될까 하고 밤낮으로 생각합니다. 어떻게 해야 합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생각은 길을 비추는 등불과 같다. 어두운 길을 갈 때 [음악] 등불이 필요하듯 결정을 내릴 때 생각이 필요하다. 하지만 [음악] 등불을 들고 길을 가면서 계속 등불만 바라보면 어떻게 되겠는 가? 길을 [음악] 보지 못하고 넘어지고 말 것이다. 생각도 마찬가지다. 필요한 만큼만 사용하고 그다음에는 내려놓아라. 그리고 지금이 순간을 살아라.
지금이 순간을 산다는 것. 이것이 생각의 환영에서 벗어나는 첫 번째 열쇠입니다. 과거에 대한 생각도 미래에 대한 생각도 모두 지금이 순간에 일어나는 정신 활동입니다. 실제로 존재하는 것은 오직 [음악] 지금이 순간뿐입니다. 과거는 이미 사라졌고 미래는 아직 오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과거와 미래라는 환영 속에서 살며 유일하게 실제하는 현재를 놓치고 있습니다.
부처님께서는 이것을 연기법으로 설명하셨습니다. 모든 것은 원인과 조건에 따라 일어나고 사라진다는 [음악] 가르침입니다. 생각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떤 자극이나 상황이라는 원인과 조건이 있을 때 생각이 일어나고 그 조건이 사라지면 생각도 사라집니다. 생각은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실체가 아니라 조건에 따라 일어났다가 사라지는 현상일 뿐입니다.
어느 날 한 제자가 부처님께 물었습니다. 세존이시여, 저는 [음악] 제 생각들을 관찰하려고 노력하지만 생각이 너무 빠르게 일어나서 따라잡을 수가 없습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처음에는 그럴 수 있다. 하지만 계속 수행하거라. 마치 폭포수를 처음 보면 물줄기가 하나로 보이지만 [음악] 자세히 관찰하면 수많은 물방울들이 떨어지는 것을 볼 [음악] 수 있듯이 생각도 처음에는 끊임없는 흐름으로 보이지만 관찰을 계속하면 하나하나의 생각이 일어나고 사라지는 것을 볼 [음악] 수 있게 된다. 이것이 윗빠사나 수행의 핵심입니다. 매순간 일어나는 현상들을 잊는 그대로 관찰하는 것입니다. 생각이 일어나는 것을 알아차리고 [음악] 생각이 사라지는 것을 알아차립니다. 판단하지 않고 평가하지 않고 그저 지켜봅니다.
이러한 관찰을 통해 우리는 [음악] 점차 생각과 거리를 두게 됩니다. 생각에 휩쓸리지 않고 생각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됩니다. [음악]
한 수행자가 10년간 명상을 수행한 후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사람들이 물었습니다. 깨달음을 얻으니 어떻습니까? [음악] 더 이상 생각이 일어나지 않습니까? 수행자가 대답했습니다. 생각은 여전히 일어납니다. 하지만 예전에는 제가 생각이었다면 지금은 생각이 일어나는 것을 지켜보고 있습니다. 예전에는 폭풍 속에 있었다면 지금은 폭풍을 바라보는 산꼭대기에서 있습니다. 이것이 생각을 믿지 않는다는 것의 의미입니다. 생각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생각을 진실로 받아들이지 않는 것입니다. 생각을 우리 존재의 전부로 여기지 않는 것입니다.
생각은 마음의 표면에 일어나는 파도와 같습니다. 파도가 아무리 거칠어도 깊은 바다는 고요합니다. 마찬가지로 생각이 아무리 많이 일어나도 우리의 깊은 본성은 평화롭고 고요합니다. [음악]
부처님께서는 열반경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모든 번뇌는 생각에서 일어난다. 생각을 따르지 않으면 번뇌가 사라진다. 우리의 모든 고통, 불안, 두려움, 분노는 생각에서 시작됩니다. 누군가 우리를 비난했을 때 그 말 [음악] 자체가 우리를 괴롭히는 것이 아닙니다. 그 말에 대한 우리의 생각, 나는 가치 없는 사람이다. 나는 사랑받지 못한다와 같은 생각이 우리를 괴롭힙니다.
한 젊은이가 부처님께 달려와 분노의 찬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세존이시여, 어떤 사람이 저를 모욕했습니다. 저는 참을 수가 없습니다.
부처님께서 조용히 물으셨습니다. 누군가 너에게 선물을 주었는데 내가 그것을 받지 않으면 [음악] 그 선물은 누구의 것이 되는가? 젊은이가 대답했습니다. 그 선물을 준 사람의 것이 됩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그렇다. 누군가 너에게 모욕이라는 선물을 주었는데 내가 그것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그것은 그 사람의 것으로 남는다. 하지만 내가 화를 내고 고통받는다면 [음악] 너는 그 선물을 받아들인 것이다. 모욕은 내가 그것을 생각으로 받아들일 때만 너를 해칠 수 있다.
이 가르침은 우리에게 놀라운 자유를 줍니다. 우리는 어떤 생각을 받아들일지 받아들이지 않을지 선택할 수 있습니다. 누군가 우리를 비난해도 우리가 그 비난을 진실로 받아들이지 않으면 그것은 우리를 해칠 수 없습니다. 실패를 경험해도 우리가 나는 실패자다라는 생각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그것은 단지 하나의 경험일 뿐입니다.
부처님의 제자 중 하나였던 아난다가 물었습니다. 세존이시여 생각을 믿지 말라고 하셨는데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믿어야 합니까?
부처님께서 대답하셨습니다. 너의 직접적인 경험을 믿어라. 지금이 순간 내가 보고 듣고 느끼는 것을 믿어라. 생각은 과거와 미래에 대한 것이지만 경험은 항상 현재에 있다. 생각은 해석이지만 경험은 있는 그대로다.
지금이 순간 여러분의 직접적인 경험은 무엇입니까? 호흡이 들어오고 나가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몸이 의자에 닿아 있는 감각을 느낄 수 있습니다. 주변의 소리를들을 수 있습니다. 이것들은 생각이 아닌 >> [음악] >> 직접적인 경험입니다. 이 경험들은 과거도 [음악] 미래도 아닌 지금이 순간에 있습니다. 우리가 이 순간의 경험에 깨어 있을 때 생각의 환영은 힘을 잃습니다.
한 수행자가 스승에게 물었습니다. 스승님, 저는 명상할 때는 평화롭지만 명상을 마치고 일상으로 돌아가면 다시 생각들에 휩쓸립니다. 어떻게 해야 합니까?
스승이 말했습니다. 명상은 명상 방석 위에서만 하는 것이 아니다. 일상의 모든 순간이 명상이 되어야 한다. 설거지를 할 때는 설거지에 온전히 깨어 있고 걸을 때는 걷는 것에 온전히 깨어 있어라. 그러면 생각이 일어나도 금방 알아차리고 현재로 돌아올 수 있다. 이것이 마음 챙김입니다. 매순간 지금 일어나고 있는 것에 깨어 있는 것입니다. 생각이 일어나면 생각이 일어났음을 알아차리고 다시 현재로 돌아옵니다. 감정이 일어나면 감정이 일어났음을 알아차리고 다시 현재로 돌아옵니다. 이렇게 반복하다 보면 점차 생각과 감정에 휩쓸리는 시간이 줄어들고 현재에 머무는 시간이 늘어납니다.
부처님께서는 이것을 사념처라고 가르치셨습니다. 몸을 관찰하고 느낌을 관찰하고 마음을 관찰하고 법을 관찰하는 네 가지 마음 챙김입니다. 이 중에서 특히 마음을 관찰하는 것이 생각의 환영에서 벗어나는 핵심입니다. 마음을 관찰한다는 것은 생각이 일어나고 사라지는 것을 지켜보는 것입니다.
어느 날 부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 [음악] >> 숲을 걷고 계셨습니다. 부처님께서 갑자기 땅에서 나뭇잎 하나를 집어들고 물으셨습니다. 이 나뭇잎과 저 숲의 [음악] 모든 나뭇잎 중 어느 것이 더 많은가? 제자들이 대답했습니다. 당연히 숲에 나뭇잎이 더 많습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가르친 것은 이 [음악] 나뭇잎과 같고 내가 알고 있지만 가르치지 않은 것은 저 숲의 나뭇잎과 같다. 왜 내가 모든 것을 가르치지 않았는가? 그것들이 깨달음에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내가 가르치는 것은 오직 고통의 원인과 고통에서 벗어나는 길뿐이다.
생각을 믿지 않는다는 가르침도 마찬가지입니다. 이것은 단순한 철학적 개념이 아니라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한 실용적인 수행법입니다. 우리가 생각을 진실로 믿지 않을 때 그 생각으로 인한 고통도 사라집니다. 나는 부족하다는 생각을 진실로 믿지 않을 때 그로 인한 열등감이 사라집니다. 미래가 두렵다는 생각을 진실로 믿지 않을 [음악] 때 그로 인한 불안이 사라집니다.
한 노인이 부처님께 물었습니다. 세존이시여, 저는 나이가 들어 죽음이 가까워졌습니다. 죽음에 대한 두려운 생각들이 끊임없이 일어납니다. 어떻게 해야 합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죽음을 두려워하는 것은 죽음에 대한 생각을 두려워하는 것이다. 죽음 그 자체는 아직 오지 않았다. 하지만 [음악] 죽음에 대한 생각은 지금 내 마음속에서 너를 괴롭히고 있다. 그 생각을 관찰하거라. 죽음에 대한 생각이 일어날 때마다 아, 지금 죽음에 대한 생각이 일어났구나 하고 알아차리거라. 그리고 다시 현재로 지금이 순간의 호흡으로 돌아오거라. 지금이 순간에는 죽음이 없다. 오직 살아 있는 생명만이 있을 뿐이다.
이 [음악] 가르침은 우리 모두에게 적용됩니다. 우리가 두려워하는 대부분의 것들은 아직 일어나지 않은 미래에 대한 생각입니다. 우리가 후회하는 대부분의 것들은 [음악] 이미 지나간 과거에 대한 생각입니다. [음악] 하지만 지금이 순간 현재에는 오직 생명만이 있습니다. 지금이 순간 우리는 숨을 쉬고 살아 있습니다. 이것이 유일한 현실입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과거는 이미 사라졌으니 쫓지 마라. 미래는 아직 오지 않았으니 기대하지 마라. 과거는 과거에 버려두고 미래는 아직 오지 않았다. 다만 현재의 법을 현재에 관찰하여 흔들리지 않고 움직이지 않게 하라. 오늘 해야 할 일을 오늘 하라. 누가 알겠는가? 내일 죽음이 올지.
이 이 말씀은 우리에게 지금이 순간의 중요성을 일깨워 줍니다. 생각은 우리를 과거와 미래로 끌고 가지만 삶은 항상 현재에 있습니다. 우리가 생각 속에서 살 때 우리는 실제로는 살지 않는 것입니다. 우리가 현재에 깨어 있을 때 비로소 진정으로 살아 있는 것입니다.
지금이 순간 여러분에게 묻고 싶습니다. 어떤 생각이 여러분을 괴롭히고 있습니까? 어떤 생각이 여러분을 과거나 미래로 끌고 가고 있습니까? 그 생각을 잠시 내려놓고 지금이 순간을 느껴 보십시오. 호흡을 느껴 보십시오. 몸의 감각을 느껴 보십시오. 지금이 순간 생각 없이 존재하는 것이 어떤 것인지 경험해 보십시오.
부처님께서는 마땅히 머무는 바 없이 그 마음을 낼지니라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의 깊은 의미를 이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음악] 어떤 생각에도 머물지 않는 마음. 그것이 자유로운 마음입니다. 생각이 일어나도 그것에 집착하지 않고 생각이 사라져도 그것을 아쉬워하지 않는 마음입니다. 마치 하늘을 지나가는 구름처럼 생각도 그저 오고 가도록 내버려 두는 것입니다. 이것이 생각을 믿지 않는다는 것의 진정한 의미입니다. 생각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생각을 있는 그대로 보는 것입니다. 생각과 싸우는 것이 아니라 생각을 자유롭게 흐르도록 하는 것입니다. 생각을 억압하는 것이 아니라 생각에 휩쓸리지 않는 것입니다.
여러분 일상에서 이것을 실천해 보십시오. 불안한 생각이 떠오를 때 나는 불안하다가 아니라 불안한 생각이 일어났구나라고 말해 보십시오. 화가 날 때 나는 화가 난다가 아니라 화가 나는 감정이 일어났구나라고 관찰해 보십시오. 이 이 작은 변화가 여러분의 삶에 큰 변화를 가져올 것입니다.
생각은 실체가 아닙니다. 생각은 마음이 만들어낸 환영입니다. 하지만 [음악] 우리가 그 환영을 진실로 믿을 때 그것은 우리의 현실이 됩니다. 부처님께서는 이 진리를 [음악] 깨닫고 우리에게 가르쳐 주셨습니다. 생각을 믿지 말고 생각을 관찰하라고. 생각에 휩쓸리지 말고 생각을 지켜보라고. 그러면 우리는 생각의 환영에서 벗어나 진정한 자유를 얻을 수 있습니다.
우리는 지금까지 생각이 실체가 아니라는 것을 살펴보았습니다. 하지만 더 깊이 들어가 보면 [음악] 생각뿐만 아니라 우리가 보고 경험하는 이 세상 전체가 마음이 만들어낸 것임을 알게 됩니다. 부처님께서는 화엄경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모든 것은 오직 마음이 지어낸 것이다.
이 말씀은 단순히 생각의 차원을 넘어서 우리가 경험하는 현실 전체가 마음의 작용이라는 깊은 진리를 담고 있습니다. 어느 날 두 사람이 같은 정원을 걷고 있었습니다. 한 사람은 시인이었고 다른 한 사람은 사업가였습니다. 정원에는 아름다운 꽃들이 만개해 있었습니다. 시인은 꽃을 보며 감탄했습니다. 이 얼마나 아름다운가? 자연의 신비와 생명의 경의로움이 이 작은 꽃잎 하나에 담겨 있구나. 하지만 사업가는 같은 꽃을 보며 [음악] 전혀 다른 생각을 했습니다. 이 정원을 관리하는데 얼마나 많은 비용이 될까? 이 [음악] 땅을 팔면 얼마를 받을 수 있을까? >> [음악] >> 같은 정원, 같은 꽃을 보았지만 두 사람이 경험한 세계는 완전히 달랐습니다. 왜 그럴까요? 꽃 자체가 아름다움이나 가치를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음악] 바라보는 마음이 아름다움과 가치를 만들어내기 때문입니다.
부처님께서는 이것을 유식의 가르침으로 설명하셨습니다. 우리가 보는 세상은 >> [음악] >>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식, 즉 의식이 만들어내는 것입니다. 마치 스크린의 영사기가 영화를 투사하듯이 우리의 마음은 세상이라는 스크린에 자신의 해석을 투사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 투사된 이미지를 실제라고 믿으며 살아갑니다.
한 제자가 부처님께 물었습니다. 세존이시여, 제가 보는 이 나무, 이 돌, 이 하늘이 실제하는 것이 아니라는 말씀입니까?
부처님께서 대답하셨습니다. 내가 보는 나무는 나무 자체가 아니라 내 마음이 해석한 나무다. 나무를 보는 사람마다 다른 나무를 본다. 옥수는 나무를 보며 가구를 생각하고 새는 나무를 보며 둥지를 생각하고 나무꾼은 [음악] 나무를 보며 땔감을 생각한다. 그렇다면 진짜 나무는 무엇인가? 나무는 그것을 바라보는 마음이 없다면 존재하지 않는다.
이 [음악] 가르침은 처음에는 이해하기 어려울 수 있습니다. 우리는 세상이 우리와 독립적으로 존재한다고 믿어왔기 때문입니다. [음악] 하지만 깊이 관찰해 보면 우리가 경험하는 모든 것은 우리 마음을 거쳐야만 경험됩니다. 색깔도 소리도 맛도 냄새도 모두 우리의 감각 기관과 의식이 해석한 것입니다. 세상 그 자체를 직접 경험할 수 있는 방법은 없습니다. 우리가 경험하는 것은 항상 [음악] 마음이 해석한 세상입니다.
어느 날 세 사람이 같은 음식을 먹었습니다. 첫 번째 사람은 배가 고파서 그 음식을 매우 맛있다고 느꼈습니다. 두 번째 사람은 배가 불러서 그 음식을 그저 그렇다고 느꼈습니다. [음악] 세 번째 사람은 과거에 그 음식을 먹고 배탈이 났던 경험이 있어서 그 음식을 보기만 해도 불쾌함을 느꼈습니다. 똑같은 음식인데 세 사람이 경험한 것은 완전히 달랐습니다. 음식 자체에 맛이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경험하는 마음의 상태에 따라 맛이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부처님께서는 이것을 업의 가르침으로도 설명하셨습니다. 우리의 과거 행위와 경험들이 마음속에 씨앗으로 저장되고 그 씨앗들이 [음악] 우리가 보는 세상을 만들어 낸다는 것입니다. 두 사람이 [음악] 같은 상황을 경험해도 완전히 다르게 반응하는 이유는 각자의 [음악] 마음속에 심어진 씨앗들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한 마을에 [음악] 두 형제가 살고 있었습니다. 형은 항상 사람들에게서 좋은 점을 보았고 동생은 항상 [음악] 나쁜 점을 보았습니다. 어느 날 한 낯선 사람이 마을에 왔습니다. 형은 그 사람을 보고 말했습니다. 저 사람은 친절해 보여. 우리 마을에 좋은 친구가 될 것 같아. 하지만 동생은 [음악] 같은 사람을 보고 말했습니다. 저 사람은 수상해 보여. 조심해야 할 것 같아. 같은 사람을 보았지만 두 형제가 본 것은 완전히 달랐습니다. 이것은 그 낯선 사람이 친절하거나 수상한 것이 아니라 각자의 마음이 그렇게 해석한 것입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마음이 모든 법을 이끈다. 마음이 주인이고 마음이 만든다. 맑은 마음으로 말하거나 행동하면 즐거움이 그림자처럼 따라온다. [음악] 더러운 마음으로 말하거나 행동하면 괴로움이 수레바퀴처럼 따라온다.
이 이 말씀은 [음악] 우리가 경험하는 즐거움과 괴로움조차도 마음이 만들어내는 것임을 보여줍니다. [음악]
어느 날 한 상인이 사업에서 큰 손해를 보았습니다. 그는 너무나 괴로워하며 부처님을 찾아왔습니다. 세존이시여 저는 모든 것을 잃었습니다. 이 얼마나 큰 재앙입니까?
부처님께서 물으셨습니다. 그대가 잃은 것은 무엇인가? 돈과 재산입니다. 세존이시여. 돈과 재산이 그대의 몸속에 있었는가? 아닙니다. 그렇다면 [음악] 그대의 마음속에 있었는가? 그것도 아닙니다. 그렇다면 그대는 무엇을 잃었는가? 그대가 잃은 것은 돈과 재산이 아니라 돈과 재산에 대한 집착이다. [음악] 그 집착을 놓아 버리면 그대는 아무것도 잃지 않은 것이다.
이 이야기는 우리가 경험하는 손실이나 상실조차도 마음이 만들어낸 것임을 보여줍니다. 물질적인 것을 잃는 것 자체가 고통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그것에 대한 우리의 집착과 해석이 고통을 만들어냅니다. 같은 상황을 놓고도 어떤 사람은 재앙으로 보고 어떤 사람은 새로운 시작의 기회로 봅니다. 상황 자체는 중립적이지만 우리의 마음이 그것을 재앙이나 기회로 만드는 것입니다.
부처님께서는 또한 육근, 육진, 육식의 가르침을 통해 우리가 세상을 경험하는 방식을 설명하셨습니다. [음악] 우리에게는 여섯 가지 감각 기관이 있습니다. 눈, 귀, 코, 혀, 몸, 그리고 마음입니다. 이 [음악] 감각 기관들이 외부 대상과 만날 때 의식이 일어나고 그 의식이 우리가 [음악] 경험하는 세상을 만들어냅니다.
한 제자가 부처님께 물었습니다. 세존이시여, 그렇다면 외부 세계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말씀입니까?
부처님께서 대답하셨습니다. 외부 세계가 존재하는지 존재하지 않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내가 경험하는 세계는 [음악] 내 마음이 만든 것이라는 사실이다. 내가 세상을 바꾸려고 애쓸 필요가 없다. 내 마음을 바꾸면 세상이 바뀐다.
이것은 놀라운 가르침입니다. 우리는 평생 외부 세계를 바꾸려고 노력합니다. 더 많은 돈을 벌고 더 좋은 집에 살고 더 높은 지위를 얻으려고 애씁니다. 하지만 이 모든 것들이 우리에게 영원한 행복을 주지 못하는 이유는 [음악] 행복이 외부 조건에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마음속에 있기 때문입니다.
어느 날 한 왕이 부처님을 찾아왔습니다. 그는 막대한 부와 권력을 가지고 있었지만 행복하지 않았습니다. [음악] 세존이시여, 저는 모든 것을 가졌지만 만족스럽지 않습니다. 무엇이 문제입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그대는 밖에서 행복을 찾고 있다. 하지만 행복은 밖에 있지 않다. 행복은 그대의 마음속에 있다. 그대가 아무리 많은 것을 가져도 그대의 마음이 만족을 모른다면 그대는 행복할 수 없다. 어지라도 마음이 만족한다면 그는 왕보다 행복하다.
실제로 우리는 이것을 경험으로 알고 있습니다. 어떤 날은 작은 일에도 큰 기쁨을 느끼고 어떤 날은 좋은 일이 있어도 기쁘지 않습니다. 외부 조건이 아니라 우리 마음의 상태가 우리의 경험을 결정하는 것입니다.
부처님께서는 이것을 연기법으로도 설명하셨습니다. 모든 것은 조건에 따라 일어난다는 가르침입니다. 우리가 경험하는 세계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의 마음 상태라는 조건에 따라 세계가 달라 보입니다. 슬픈 마음으로 세상을 보면 모든 것이 슬프게 보이고 기쁜 마음으로 세상을 보면 모든 것이 기쁘게 보입니다.
[음악] 한 수행자가 명상 중에 깊은 통찰을 얻었습니다. 그는 [음악] 자신이 평생 실제라고 믿었던 세상이 사실은 자신의 마음이 만들어낸 영사물임을 깨달았습니다. 그는 스승에게 달려가 말했습니다. 스승님, 저는 깨달았습니다. 제가 보는 세상은 제 마음의 투사입니다. 제가 세상을 바꾸려고 애쓸 필요가 없었습니다. 제 마음만 바꾸면 되는 것이었습니다.
스승이 미소지며 말했습니다. 그렇다. 하지만 조심하거라. 세상이 마음에 투사라는 것을 이해하는 것과 그것을 직접 체험하는 것은 다르다. 계속 수행하여 그 이해를 깊은 체험으로 만들어야 한다.
이것이 중요한 지점입니다. 세상이 마음이 만든 것이라는 가르침을 머리로 이해하는 것과 그것을 직접 체험하는 것은 전혀 다릅니다. 우리는 이 가르침을 들으면 아 그렇구나 하고 이해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실제 삶에서 어려운 일을 만나면 여전히 그것을 [음악] 외부의 문제로 보고 반응합니다. 진정한 변화는 이 가르침이 우리의 [음악] 깊은 체험이 될 때 일어납니다.
부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세상은 마음이 만든 것이다. 하지만 이것을 단순히 아는 것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매순간 이것을 관찰하고 체험해야 한다. 기쁨이 일어날 때, 슬픔이 일어날 때, 분노가 일어날 때 그것이 마음의 작용임을 알아차려야 한다. 그렇게 계속 관찰하다 보면 어느 순간 깊은 깨달음이 올 것이다.
어느 날 한 제자가 시장에 갔다가 돌아왔습니다. 그는 매우 화가 나 있었습니다. 스승님, 시장에서 한 상인이 저를 속였습니다. 이 [음악] 얼마나 나쁜 사람입니까?
스승이 조용히 물었습니다. 그 상인이 지금 여기 있는가? 아닙니다, 스승님. 그렇다면 지금 너를 화나게 하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 제자는 잠시 생각하다가 깨달았습니다. 제 마음입니다, 스승님. 그 상인은 [음악] 이미 저 멀리 있지만 제 마음이 계속 그 일을 되새기며 화를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스승이 말했습니다. 그렇다. 너를 괴롭히는 것은 그 상인이 아니라 내 마음이다. 그 마음을 관찰하거라. 그러면 화가 저절로 사라질 것이다.
이 이야기는 우리가 경험하는 고통의 진정한 원인을 보여줍니다. 외부 상황이 우리를 괴롭히는 것이 아니라 그 상황에 대한 우리 마음의 반응이 우리를 괴롭힙니다. 누군가 우리를 비난해도 그 비난 자체가 우리를 [음악] 아프게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 비난에 대한 우리의 해석과 반응이 우리를 아프게 합니다.
부처님께서는 이것을 수상행식의 가르침으로 설명하셨습니다. [음악] 우리가 무언가를 경험할 때 먼저 감각적 접촉이 일어나고 [음악] 그다음 느낌이 일어나고 그다음 인식과 해석이 일어나고 그다음 반응이 일어납니다. 이 모든 과정이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것입니다. 외부 대상은 단지 >> [음악] >> 촉발 요인일 뿐 실제 경험은 모두 마음이 만들어냅니다.
한 노인이 부처님께 물었습니다. 세존이시여, 저는 젊었을 때 많은 것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나이가 들어 모든 것을 잃었습니다. 젊었을 때가 행복했고 지금은 불행합니다.
부처님께서 대답하셨습니다. 그대가 젊었을 때 행복했던 것은 많은 것을 가져서가 아니라 그대의 마음이 만족했기 [음악] 때문이다. 지금 불행한 것은 적게 가져서가 아니라 그대의 마음이 [음악] 불만족하기 때문이다. 마음이 만족한다면 적게 가져도 행복하고 마음이 불만족한다면 [음악] 많이 가져도 불행하다.
이것은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매우 중요한 가르침입니다. 우리는 끊임없이 더 많은 것을 추구합니다. 더 많은 돈, 더 큰 집, 더 좋은 차, 더 높은 지위를 얻으면 행복할 것이라고 믿습니다. 하지만 이것들을 얻어도 오래지 않아 다시 불만족을 느낍니다. 왜냐하면 [음악] 행복은 외부에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마음속에 있기 때문입니다. [음악]
어느 날 한 부자가 부처님을 찾아왔습니다. 세존이시여, 저는 큰 저택을 가지고 있지만 [음악] 만족스럽지 않습니다. 더 큰 저택을 지어야 할까요?
부처님께서 물으셨습니다. 그대의 저택에 [음악] 방이 몇 개나 있는가? 신계입니다. 세존이시여. 그대는 그 신계의 방을 모두 사용하는가? 아닙니다. 저는 주로 한 두 개의 방만 사용합니다. 그렇다면 그대에게 필요한 것은 더 큰 저택이 아니라 만족하는 마음이다. 그대가 가진 것에 만족한다면 그대는 [음악] 이미 충분히 부유하다.
이 이 가르침은 우리의 불만족이 부족함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만족할 줄 모르는 마음에서 온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우리는 항상 더 많은 것을 원하고 그것을 얻어도 또 다른 것을 원합니다. 이것이 바로 탐욕입니다. 탐욕은 [음악] 외부 대상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우리 마음이 만들어내는 것입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만족을 아는 자는 비록 땅에 누워도 즐겁고 만족을 모르는 자는 천상의 궁전에 있어도 즐겁지 않다. 만족을 모르는 자는 [음악] 부유에도 가난하고 만족을 아는 자는 가난해도 부유하다.
한 수행자가 깊은 명상 끝에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그는 자신이 평생 추구했던 것들이 실은 [음악] 마음이 만들어낸 환영임을 깨달았습니다. 명예를 추구했지만 명예는 단지 다른 사람들의 생각일 뿐이었습니다. 재물을 추구했지만 재물은 단지 종이와 금속일 뿐이었습니다. 권력을 추구했지만 권력은 단지 관계의 패턴일 뿐이었습니다. 이 모든 것의 가치를 부여한 것은 그의 마음이었습니다. 그는 스승에게 말했습니다. 스승님, 제가 평생 추구했던 것들이 모두 의미 없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허무함을 느낍니다.
스승이 말했습니다. 그것들이 의미 없다고 생각하는 것도 내 마음이다. 마음이 모든 것을 만들어 낸다는 것을 깨달았다면 [음악] 이제 내 마음으로 의미를 만들어 낼 수 있다. 허무함 대신 자유를 공허함 대신 평화를 만들어 낼 수 있다.
이것이 중요한 통찰입니다. 세상이 마음이 만든 환영이라고 해서 삶이 [음악] 무의미하다는 뜻이 아닙니다. 오히려 우리가 스스로 의미를 창조할 수 있다는 자유를 의미합니다. [음악] 우리는 외부 세계에 의해 결정되는 존재가 아니라 스스로 세계를 창조하는 존재입니다.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자신이 자신의 귀의처다. 다른 누가 귀의처가 되겠는가? 자신을 잘 다스린 사람은 얻기 어려운 귀의처를 얻은 것이다.
이 말씀은 우리가 외부가 아닌 내면에서 답을 찾아야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의 마음이 모든 것을 만들어내므로 마음을 다스리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어느 [음악] 날 두 수행자가 산을 오르고 있었습니다. 한 수행자는 계속 불평했습니다. 이 길은 왜 이렇게 가파른가? 돌은 왜 이렇게 많은가? 날씨는 왜 이렇게 더운가? 다른 수행자는 같은 길을 걸으며 감탄했습니다. 이 길이 가파른 덕분에 정상에서 더 아름다운 경치를 볼 수 있겠구나. 이 이 돌들이 길을 단단하게 만들어 주는구나. 이 따뜻한 햇살이 등산을 더욱 상쾌하게 해 주는구나.
같은 길, 같은 조건이었지만 두 수행자가 경험한 세계는 완전히 달랐습니다. 한 사람에게는 고통의 길이었고 다른 사람에게는 축복의 길이었습니다. [음악] 부처님께서 이 이야기를 듣고 말씀하셨습니다. 보아라. 외부 세계가 고통을 만드는 것이 아니다. 그것을 해석하는 마음이 고통을 만든다. 같은 상황에서도 어떤 마음으로 대하느냐에 따라 천국이 되기도 하고 지옥이 되기도 한다.
이것이 바로 화엄경에서 말하는 모든 것은 오직 마음이 지어낸 것이다의 깊은 의미입니다. 천국과 지옥도 외부 어딘가에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마음이 만들어내는 것입니다. 분노와 미움의 마음으로 살면 지옥에 사는 것이고 자비와 사랑의 마음으로 살면 천국에 사는 것입니다.
한 제자가 부처님께 물었습니다. 세존이시여, 지옥과 극락은 정말 존재합니까?
부처님께서 대답하셨습니다. 내 마음이 지옥이면 너는 지옥에 있는 것이고 내 마음이 극락이면 너는 극락에 있는 것이다. 죽어서 가는 곳이 지옥이나 극락이 아니라 지금 내가 어떤 마음으로 사느냐가 지옥인지 극락인지를 결정한다.
실제로 우리는 이것을 경험합니다. 같은 직장에서 일해도 어떤 사람은 매일 지옥 같다고 느끼고 어떤 사람은 감사하게 느낍니다. 같은 관계 속에서도 어떤 사람은 고통스러워하고 어떤 사람은 행복해 [음악] 합니다. 환경이 아니라 마음이 우리의 경험을 결정하는 것입니다. [음악]
부처님께서는 또한 8식의 가르침을 통해 마음의 깊은 층위를 설명하셨습니다. 우리가 의식하는 마음 아래에는 무의식의 층위가 있고 [음악] 그 아래에는 더 깊은 아래야식이 있습니다. 이 이 아래야식에 우리의 모든 경험과 습관이 씨앗으로 저장되고 이 씨앗들이 우리가 보는 세상을 만들어 냅니다.
한 수행자가 스승에게 물었습니다. 스승님, 저는 명상할 때는 평화롭지만 일상으로 돌아가면 똑같은 [음악] 패턴이 반복됩니다. 왜 그럴까요?
스승이 대답했습니다. 그것은 내 마음 깊은 곳에 저장된 습관의 씨앗들 때문이다. 표면적인 의식을 바꾸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깊은 무의식의 층위까지 변화시켜야 한다. 그러려면 오랜 수행이 필요하다.
이것이 왜 깨달음을 얻는 것이 어려운지를 설명합니다. 우리는 수많은 생에 걸쳐 쌓아온 습관과 조건화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것들이 마음 깊은 곳에 씨앗으로 저장되어 우리가 보는 세상을 만들어 냅니다. 이 이 >> [음악] >> 깊은 층위의 씨앗들을 변화시키려면 지속적이고 깊은 수행이 필요합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마음을 정화하는 것. 이것이 모든 부처님의 가르침이다. 마음이 모든 것을 만들어내므로 마음을 정화하는 것이 가장 근본적인 수행입니다. 마음을 정화한다는 것은 탐욕, [음악] 분노, 무지라는 삶독을 제거하는 것입니다.
어느 날 한 제자가 거울을 닦고 있었습니다. 다른 제자가 물었습니다. 왜 그렇게 열심히 거울을 닦는가? 깨끗한 거울에 세상이 있는 그대로 비치기 때문입니다.
부처님께서 이 대화를 들으시고 말씀하셨습니다. 마음도 거울과 같다. 마음이 깨끗하면 [음악] 세상이 있는 그대로 비친다. 하지만 마음의 탐욕, 분노, 무지라는 먼지가 쌓이면 세상이 왜곡되어 비친다. 그러므로 항상 마음의 거울을 닦아야 한다.
이것이 수행의 본질입니다. 마음의 거울을 닦는 것입니다. 탐욕이라는 먼지를 닦아내고 분노라는 먼지를 닦아내고 무지라는 먼지를 닦아내는 것입니다. 그러면 세상이 있는 그대로 우리 마음에 비칩니다. 우리가 만들어낸 왜곡과 환영이 사라지고 진실이 드러납니다.
한 수행자가 오랜 수행 끝에 마음의 평화를 얻었습니다. 사람들이 물었습니다. 세상이 달라 보입니까? 수행자가 대답했습니다. 세상은 그대로입니다. 하지만 제 마음이 달라졌습니다. 예전에는 세상을 [음악] 제 욕망의 렌즈로 보았다면 지금은 있는 그대로 봅니다. 예전에는 모든 것을 나와 관련지어 보았다면 지금은 그저 현상으로 봅니다. [음악] 이것이 깨달음의 핵심입니다. 세상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음악] 세상을 보는 방식을 바꾸는 것입니다. 우리가 만들어낸 해석과 판단을 내려놓고 있는 [음악] 그대로를 보는 것입니다. 이것을 부처님께서는 여실지견, 즉 있는 그대로 아는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세상을 있는 그대로 보는 자는 세상에 속박되지 않는다. 세상을 [음악] 자신의 욕망으로 보는 자는 세상에 속박된다. 우리가 세상을 우리의 욕망, 두려움, 기대로 보는 한 우리는 세상에 속박됩니다. 하지만 있는 그대로를 볼 때 우리는 자유로워집니다.
어느 날 한 왕자가 궁전을 떠나 수행자가 되었습니다. 사람들이 물었습니다. 왜 모든 것을 버리고 떠났습니까? 왕자가 대답했습니다. 저는 아무것도 버리지 않았습니다. [음악] 단지 환영을 환영으로 보았을 뿐입니다. 궁전도 권력도 부도 모두 제 마음이 만들어낸 가치일 뿐입니다. [음악] 그것들이 진짜 행복을 줄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음악] 저는 자유로워졌습니다.
이 이야기는 실제로 부처님 자신의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부처님께서는 왕자로 태어나 모든 것을 가지고 있었지만 그것들이 진정한 행복을 주지 못한다는 것을 깨달으셨습니다. 외부 세계에서 행복을 찾는 대신 내면의 평화를 찾기로 하셨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깨달음을 얻으셨습니다. 부처님께서 깨달음을 얻으신 후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음악] 긴 방황 끝에 집을
짓는 자를 찾았다. 집을 짓는 자여 다시는 집을 짓지 못하리라. 모든 석가래가 부러지고 데들보가 무너졌다. 내 마음은 무의에 이르렀고 모든 가래가 소멸했다.
이 말씀에서 집을 짓는 자는 우리의 마음을 의미합니다. 우리의 마음이 끊임없이 세계라는 집을 짓고 그 안에 갇혀 살아갑니다. 하지만 깨달음을 얻으면 마음이 더 이상 환영의 집을 짓지 않습니다.
한 제자가 부처님께 물었습니다. 세존이시여, 깨달음을 얻으면 세상이 사라집니까? 부처님께서 대답하셨습니다. 세상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세상에 대한 집착이 사라진다. 세상은 여전히 있지만 그것을 진짜라고 믿는 마음이 사라진다. 마치 꿈에서 깨어나도 꿈의 내용을 기억하지만 그것이 진짜였다고 믿지 않는 것과 같다. 이것이 깨달음의 본질입니다. 세상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에 대한 환영을 깨는 것입니다. 우리가 만들어낸 해석과 의미를 내려놓고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부처님께서는 금강경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모든 유의법은 꿈과 같고 환영과 같고 물거품과 같고 그림자와 같고 이슬과 같고 번개와 같으니 마땅히 이와 같이 관찰해야 한다. 우리가 보는 세상 우리가 경험하는 모든 것은 꿈이나 환영과 같다는 것입니다. 실체가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조건에 따라 일어났다가 사라지는 무상한 것입니다.
지금이 순간 여러분이 보고 있는 세상을 관찰해 보십시오. 그것이 정말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것일까요? 아니면 여러분의 마음이 해석한 것일까요? 여러분이 느끼는 감정들을 관찰해 보십시오. 그것들이 외부 상황에서 오는 것일까요? 아니면 여러분의 마음이 만들어내는 것일까요?
부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모든 것은 오직 마음이 지어낸 것이다.
이 말씀을 단순히 이론으로 받아들이지 마십시오. 일상의 매순간 이것을 관찰하고 체험하십시오. 화가 날 때이 화는 저 사람이 만든 것이 아니라 내 마음이 만든 것이구나라고 관찰하십시오. 불안할 때이 불안은 미래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내 마음이 만든 것이구나라고 관찰하십시오. 기쁠 때도이 기쁨은 외부 조건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내 마음이 만든 것이구나라고 관찰하십시오. 이렇게 계속 관찰하다 보면 점차 깊은 이해가 생깁니다. 우리가 경험하는 모든 것이 마음의 작용임을 직접 체험하게 됩니다. 그리고이 깨달음은 우리에게 엄청난 자유를 줍니다. 우리는 더 이상 외부 세계의 희생자가 아닙니다. 우리는 스스로 세계를 창조하는 창조자입니다. 마음이 만드는 세계를 이해하면 우리는 환영에서 벗어나는 길의 입구에 서게 됩니다.
이제 다음으로 나아갈 때입니다. 마음이 만든 환영을 깨고 진정한 자유를 얻는 구체적인 수행의 길로 나아갈 때입니다. 생각이 실체가 아니라는 것을 알고 마음이 세계를 만든다는 것을 이해했다면 이제 가장 중요한 질문이 남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이 환영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요? 어떻게 마음이 만든 감옥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을까요?
부처님께서는 사념처경에서 이렇게 가르치셨습니다. 몸을 관찰하되 부정함을 보고 느낌을 관찰하되 괴로움임을 보고 마음을 관찰하되 무상함을 보고 법을 관찰하되 나라는 것이 없음을 본다. 이것이 환영에서 벗어나는 가장 직접적이고 확실한 길입니다.
어느 날 한 제자가 부처님께 물었습니다. 세존이시여, 저는 제 마음이 환영을 만든다는 것을 이해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그 환영에 속고 있습니다. 어떻게 해야 합니까? 부처님께서 대답하셨습니다. 이해하는 것과 깨어 있는 것은 다르다. 내가 꿈을 꾸고 있다는 것을 아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매순간 깨어 있어야 한다. 지금이 순간 내 몸에서 일어나는 것을 관찰하거라. 내 느낌을 관찰하거라. 내 마음을 관찰하거라. 이것이 깨어 있는 것이다.
부처님께서 가르치신 사념처 수행은 네 가지 관찰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첫째는 몸에 대한 관찰입니다. 우리는 대부분의 시간을 머릿속 생각에 빠져 살아가며 몸의 존재를 잊고 삽니다. 하지만 몸은 지금이 순간을 경험하는 가장 직접적인 문입니다. 생각은 과거와 미래를 떠돌지만 몸은 항상 현재에 있습니다.
한 수행자가 스승에게 물었습니다. 스승님, 저는 명상할 때 계속 생각에 빠집니다. 어떻게 해야 합니까? 스승이 말했습니다. 내 호흡으로 돌아오거라. 숨이 들어오는 것을 느끼고 숨이 나가는 것을 느껴라. 생각이 일어나면 그것을 알아차리고 다시 호흡으로 돌아오거라. 호흡은 생각의 바다에서 너를 구해 줄 닭과 같다.
호흡에 대한 관찰은 가장 기본적이면서도 가장 강력한 수행입니다. 호흡은 우리가 살아 있는 매순간 일어나는 현상입니다. 의식하든 의식하지 않든 호흡은 계속됩니다. 하지만 우리가 의식적으로 호흡을 관찰할 때 놀라운 일이 일어납니다. 생각의 흐름이 느려지고 마음이 고요해지며 현재 순간에 깨어 있게 됩니다.
부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숨을 들이실 때 들이신다는 것을 알고 숨을 내실 때 내신다는 것을 알아라. 긴 숨을 쉴 때는 긴 숨임을 알고 짧은 숨을 쉴 때는 짧은 숨임을 알아라. 이렇게 호흡을 관찰하면 마음이 하나로 모이고 평화로워진다.
어느 날 한 제자가 시장에 갔다가 큰 소음과 혼란 속에서 불안을 느꼈습니다. 그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떠올리며 호흡을 관찰하기 시작했습니다. 숨이 들어오고 숨이 나갑니다. 처음에는 호흡이 빠르고 얕았습니다. 하지만 계속 관찰하자 호흡이 점차 깊어지고 느려졌습니다. 그리고 놀랍게도 주변의 소음은 그대로인데 그의 마음은 평화로워졌습니다. 외부 상황이 바뀐 것이 아니라 그의 마음이 바뀐 것입니다. 이것이 몸을 관찰하는 수행의 힘입니다. 몸으로 돌아올 때 우리는 생각의 환영에서 벗어나 현실로 돌아옵니다.
호흡뿐만 아니라 걷기, 서기, 안기, 눕기 등 모든 몸의 움직임을 관찰할 수 있습니다.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걸을 때는 걷는다는 것을 알고 설 때는 선다는 것을 알고 앉을 때는 앉는다는 것을 알고 누을 때는 눕는다는 것을 알아라. 몸이 어떤 자세를 취하든 그것을 잇는 그대로 알아차려라.
한 수행자가이 가르침을 실천하기 시작했습니다. 아침에 일어나면 지금 일어나고 있다고 알아차렸습니다. 세수를 할 때 지금 얼굴을 씻고 있다고 알아차렸습니다. 걸을 때 발이 땅에 닿는 감각을 느꼈습니다. 먹을 때 음식의 막과 질감을 온전히 느꼈습니다. 처음에는 이것이 이상하게 느껴졌습니다. 하지만 며칠이 지나자 놀라운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그는 이전보다 훨씬 더 생생하게 살아 있음을 느꼈습니다. 그가 스승에게 말했습니다. 스승님, 예전에는 하루가 어떻게 지나가는지도 모르고 살았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매 순간이 생생합니다. 같은 하루를 살아도 훨씬 더 풍요롭게 느껴집니다. 스승이 말했습니다. 그것이 바로 깨어 있는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잠들어 있다. 몸은 움직이지만 마음은 과거나 미래에 있다. 하지만 너는 지금 깨어 있다. 현재 있다.
몸을 관찰하는 수행은 또한 몸의 무상함을 깨닫게 합니다. 우리는 몸을 고정된 실체라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끊임없이 변화하고 있습니다. 세포들이 죽고 새로 생기며 호흡이 들어오고 나가며 심장이 뛰고 피가 흐릅니다. 몸을 자세히 관찰하면 그것이 고정된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흐르는 과정임을 알게 됩니다.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이 몸을 관찰하되 발끝에서 머리끝까지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피부로 둘러싸인이 몸이 온갖 부정한 것들로 가득차 있음을 보아라. 머리카락 털 손톱 발톱이 피부 살 힘줄 뼈 골수 신장 심장 간 능막 비장 폐 위 장똥 오줌 담즙 고름 피 땀 지방 눈물 콧물 짐 관절액을 보아라. 이 가르침은 몸에 대한 집착을 을 버리기 위한 것입니다. 우리는 몸을 아름답고 연구적인 것으로 여기며 집착합니다. 하지만 몸의 실체를 있는 그대로 보면 그것이 단지 여러 요소들의 일시적 조합일 뿐임을 알게 됩니다. 이것은 몸을 혐오하라는 뜻이 아니라 몸에 대한 환상을 깨라는 뜻입니다.
아름다운 젊은 여인이 부처님을 찾아왔습니다. 그녀는 자신의 아름다움에 교만했고 많은 남자들이 그녀에게 빠졌습니다. 부처님께서 그녀에게 물으셨습니다. 그대가 아름답다고 생각하는이 몸은 무엇으로 이루어져 있는가? 여인이 대답했습니다. 아름다운 피부, 빛나는 눈, 고운 머리카락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피부를 벗기면 무엇이 있는가? 눈을 들여다 보면 무엇이 있는가? 머리카락은 무엇으로 만들어졌는가? 이 이몸은 단지 여러 요소들이 모인 것일 뿐이다. 그것들을 하나씩 분해하면 아름다움이라고 부를 만한 것이 어디에 있는가? 여인은 깊이 생각에 잠겼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아름다움에 대한 교만이 환영임을 깨달았습니다. 아름다움은 몸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보는 사람의 마음이 만들어낸 것이었습니다.
둘째는 느낌에 대한 관찰입니다. 우리는 매순간 무언가를 느낍니다. 즐거운 느낌, 괴로운 느낌 혹은 즐겁지도, 괴롭지도 않은 중립적 느낌입니다. 하지만 대부분 우리는이 느낌들을 의식하지 못한 채 자동적으로 반응합니다. 즐거운 느낌이 오면 집착하고 괴로운 느낌이 오면 회피하려 합니다. 이것이 모든 가래와 고통의 시작입니다.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즐거운 느낌을 느낄 때는 즐거운 느낌을 느낀다는 것을 알고 괴로운 느낌을 느낄 때는 괴로운 느낌을 느낀다는 것을 알고 즐겁지도. 괴롭지도 않은 느낌을 느낄 때는 즐겁지도 괴롭지도 않은 느낌을 느낀다는 것을 알아라.
한 수행자가 명상 중에 다리에 심한 통증을 느꼈습니다. 처음에 그는 통증을 없애려고 애었습니다. 자세를 바꾸고 주의를 다른 곳으로 돌리려 했습니다. 하지만 통증은 계속되었고 오히려 더 강해졌습니다. 그때 그는 스승의 가르침을 떠올렸습니다. 통증과 싸우는 대신 통증을 관찰하기로 했습니다. 지금 다리에 통증이라는 느낌이 있구나라고 알아차렸습니다. 그리고 그 통증을 자세히 관찰했습니다. 놀랍게도 통증은 고정된 것이 아니었습니다. 강해졌다가 약해지고 날카로웠다가 둔해지고 퍼졌다가 집중되었습니다. 통증을 관찰하는 순간 통증에 대한 저항이 사라지면서 고통도 줄어들었습니다. 그가 명상을 마치고 스승에게 말했습니다. 스승님, 통증 자체가 고통이 아니었습니다. 통증에 대한 저항이 고통이었습니다. 스승이 미소지며 말했습니다. 그렇다. 통증은 단지 느낌일 뿐이다. 우리가 그것을 싫어하고 저항할 때 고통이 된다. 하지만 있는 그대로 관찰하면 그것은 단지 변화하는 감각일 뿐이다.
이것은 우리 삶의 모든 느낌에 적용됩니다. 불안이라는 느낌이 올 때 우리는 보통 그것을 없애려고 합니다. 하지만 없애려고 하면 할수록 불안은 더 커집니다. 대신 지금 불안이라는 느낌이 있구나라고 관찰하면 불안과의 관계가 바뀝니다. 불안이 나를 삼키는 것이 아니라 내가 불안을 지켜보게 됩니다.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느낌은 괴로움이다. 왜냐하면 느낌은 무상하기 때문이다. 즐거운 느낌도 언젠가는 사라진다. 그것에 집착하면 그것이 사라질 때 괴로움이 온다. 괴로운 느낌은 당연히 괴롭다. 중립적 느낌도 무상함으로 결국 괴로움이다. 그러므로 모든 느낌을 괴로움으로 보고 거기에 집착하지 마라.
한부자가 큰 사업 성공으로 엄청난 기쁨을 느꼈습니다. 그는 그 기쁨이 영원하기를 바랐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자 그 기쁨은 점차 사라졌고 그는 다시 공허함을 느꼈습니다. 그는 더 큰 성공을 추구했지만 마찬가지였습니다. 기쁨은 항상 일시적이었고 그 뒤에는 항상 공허함이 왔습니다. 그는 부처님을 찾아가 물었습니다. 세존이시여 왜 기쁨은 지속되지 않습니까? 부처님께서 대답하셨습니다. 모든 느낌은 조건에 따라 일어나고 사라진다. 기쁨도 마찬가지다. 그대가 기쁨에 집착하기 때문에 그것이 사라질 때 괴로움을 느낀다. 기쁨을 느낄 때 지금 기쁨이 있다고 알아차리고 기쁨이 사라질 때 기쁨이 사라졌다고 알아차려라. 집착하지 마라. 그러면 기쁨이 와도 좋고 가도 좋다.
셋째는 마음에 대한 관찰입니다. 마음은 끊임없이 변화합니다. 탐욕이 일어났다가 사라지고 분노가 일어났다가 사라지고 평화가 일어났다가 사라집니다. 하지만 우리는 보통 이런 마음의 변화를 의식하지 못한 채 마음의 흐름에 휩쓸려 갑니다. 마음을 관찰한다는 것은 이런 마음의 상태들을 알아차리는 것입니다.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탐욕이 있는 마음은 탐욕이 있다고 알고 탐욕이 없는 마음은 탐욕이 없다고 알아라. 분노가 있는 마음은 분노가 있다고 알고 분노가 없는 마음은 분노가 없다고 알아라. 어리석음이 있는 마음은 어리석음이 있다고 알고 어리석음이 없는 마음은 어리석음이 없다고 알아라.
한 제자가 명상 중에 강한 분노를 느꼈습니다. 누군가 자신을 부당하게 대했던 기억이 떠올랐고 분노가 치밀어 올랐습니다. 처음에 그는 그 분노에 휩쓸렸습니다. 저 사람이 얼마나 나쁜가? 나는 정말 화가 난다는 생각들이 꼬리를 물고 일어났습니다. 하지만 그때 그는 알아차렸습니다. 아, 지금 내 마음에 분노가 있구나. 이 이 간단한 알아차림이 모든 것을 바꾸었습니다. 분노는 여전히 있었지만 그가 분노와 하나가 되지 않았습니다. 그는 분노를 지켜보는 관찰자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신기하게도 관찰하는 순간 분노는 힘을 잃기 시작했습니다. 그가 명상을 마치고 깨달았습니다. 분노 자체가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분노와 자신을 동일시하는 것이 문제였습니다. 분노를 나의 분노가 아니라 일어난 분노로 볼 때 그것은 그를 지배할 수 없었습니다.
부처님께서는 마음의 무상함을 강조하셨습니다. 마음은 끊임없이 변화하므로 어떤 마음 상태도 연구적이지 않습니다. 화가 난 마음도 언젠가는 사라지고 슬픈 마음도 언젠가는 사라지고 기쁜 마음도 언젠가는 사라집니다. 이것을 깨닫는 것이 중요합니다.
한 수행자가 깊은 우울에 빠졌습니다. 그는이 우울이 영원히 계속될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스승이 말했습니다. 내 마음을 관찰하거라. 우울이 항상 같은 강도로 있는가 아니면 변화하는가? 수행자가 자세히 관찰하자 우울도 변화하고 있었습니다. 때로는 강했고 때로는 약했습니다. 때로는 무거웠고 때로는 가벼웠습니다. 스승님 우울이 변하고 있습니다. 그렇다. 모든 마음은 무상하다. 우울도 마찬가지다. 그것이 영원할 것 같지만 실은 끊임없이 변화하고 있다. 그리고 변화하는 것은 언젠가 사라진다. 그저 관찰하며 기다려라. 며칠 후 우울은 정말로 사라졌습니다. 수행자는 깊은 교훈을 얻었습니다. 어떤 마음 상태도 연구적이지 않다는 것, 모든 것은 지나간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넷째는 법에 대한 관찰입니다. 법이란 모든 현상, 모든 경험을 의미합니다. 법을 관찰한다는 것은 모든 현상이 무아, 즉 고정된 자아가 없다는 것을 관찰하는 것입니다.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모든 법은 무하다. 어떤 것도 이것이 나다. 이것이 나의 것이다. 이것이 나의 자다라고 할 수 없다.
한 제자가 부처님께 물었습니다. 세존이시여, 그렇다면 나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말씀입니까? 부처님께서 대답하셨습니다. 나를 찾아보거라. 몸이 나인가 몸은 끊임없이 변화하는데 무엇이 나인가 느낌이 나인가? 느낌은 계속 바뀌는데 무엇이 나인가 생각이 나인가 생각은 오고 가는데 무엇이 나인가 마음이 나인가 마음은 순간순간 변하는데 무엇이 나인가 그 어디에도 고정된 나는 없다. 있는 것은 끊임없이 변화하는 과정뿐이다.
이것은 매우 깊은 가르침입니다. 우리는 평생 나라는 것이 확고하게 존재한다고 믿어왔습니다. 하지만 자세히 관찰하면 나는 여러 요소들의 일시적 조합일 뿐입니다. 몸도 변하고 마음도 변하고 생각도 변하는데 그중 무엇을 나라고 할 수 있을까요?
한 수행자가이 가르침을 깊이 명상했습니다. 그는 자신의 몸을 관찰했습니다. 10년 전에 몸과 지금의 몸은 완전히 달랐습니다. 세포들이 모두 교체되었고 모양도 바뀌었습니다. 그렇다면 10년 전에 나와 지금의 나는가 다른가? 그는 자신의 마음을 관찰했습니다. 어제 화를 냈던 마음과 오늘 평화로운 마음은 너무나 달랐습니다. 그렇다면 화난 나와 평화로운 나는 같은가 다른가? 그는 자신의 생각을 관찰했습니다. 1분 전의 생각과 지금의 생각은 완전히 다릅니다. 그렇다면 그 생각들 중 어느 것이 나인가? 그는 깊은 통차를 얻었습니다. 나라고 부를 만한 고정된 실체는 어디에도 없었습니다. 있는 것은 끊임없이 변화하는 몸과 마음의 과정뿐이었습니다.
이 깨달음이 그에게 엄청난 자유를 주었습니다. 나를 지키고 방어할 필요가 없어졌습니다. 왜냐하면 지킬라가 애초에 없었기 때문입니다.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무아를 깨달으면 모든 집착이 사라진다. 나가 없는데 무엇을 집착하겠는가? 나가 없는데 무엇을 두려워하겠는가? 나가 없는데 누가 처받겠는가?
한 제자가이 가르침을 듣고 혼란스러워했습니다. 세존이시여 나가 없다면 누가 수행을 합니까? 누가 깨달음을 얻습니까? 부처님께서 미소 지으며 말씀하셨습니다. 비가 올 때 누가 비를 내리는가라고 묻지 않는다. 조건이 모이면 비가 내리듯이 조건이 모이면 수행이 일어나고 깨달음이 일어난다. 나라는 행위자가 없어도 행위는 일어난다.
이 이 가르침들을 실천하는 것이 윗빠사나 명상입니다. 윗빠사나는 있는 그대로 복이라는 뜻입니다. 우리가 만들어낸 해석과 판단 없이 현상을 잊는 그대로 관찰하는 것입니다.
부처님께서는 윗빠사나 수행의 방법을 구체적으로 가르치셨습니다. 앉아서 다리를 편안하게 하고 몸을 곧게 세우고 마음 챙김을 앞에 두어라. 마음 챙김을 하며 숨을 들이시고 마음 챙김을 하며 숨을 내쉬어라. 숨을 들이실 때 온몸을 느끼고 숨을 내실 때 온몸을 느껴라. 숨을 들이실 때 몸을 고유하게 하고 숨을 내실 때 몸을 고유하게 하라.
한 초보 수행자가이 명상을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매우 어려웠습니다. 몇 번의 호흡을 관찰하면 곧 생각에 빠졌습니다. 과거의 후에 미래의 계획, 온갖 잠염들이 끊임없이 떠올랐습니다. 하지만 그는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생각에 빠졌다는 것을 알아차리면 부드럽게 다시 호흡으로 돌아왔습니다. 이것을 수백번 수천 번 반복했습니다. 몇 주가 지나자 변화가 시작되었습니다. 호흡에 머무는 시간이 점차 길어졌습니다. 생각이 일어나도 금방 알아차리고 호흡으로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몇 달이 지나자 더 깊은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명상 중에 깊은 평화를 경험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이 평화는 일상 생활에도 영향을 미쳤습니다. 예전에는 작은 일에도 쉽게 화가 났지만 이제는 마음이 더 고요했습니다. 그가 스승에게 말했습니다. 스승님, 명상이 제 삶을 바꾸고 있습니다. 스승이 말했습니다. 명상이 너를 바꾸는 것이 아니다. 영상을 통해 내가 원래의 본성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평화는 밖에서 얻는 것이 아니라 안에서 발견하는 것이다.
윗빠사나 수행은 앉아서만 하는 것이 아닙니다. 일상의 모든 순간이 수행이 될 수 있습니다.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서 서 있을 때, 걸을 때, 앉아 있을 때, 누워 있을 때, 깨어 있을 때 항상 마음 챙김을 유지하라. 이것이 순고한 삶이다.
한 제자가이 가르침을 실천하기 시작했습니다. 아침에 일어나면 몸의 감각을 느끼며 천천히 일어났습니다. 세수를 할 때 물의 차가움을 온전히 느꼈습니다. 걸을 때 발이 땅에 닿는 감각을 알아차렸습니다. 먹을 때 음식의 막과 향을 충분히 느꼈습니다. 일할 때 하는 일에 온전히 집중했습니다. 대화할 때 상대방의 말을 온전히 들었습니다. 처음에는 이것을 기억하는 것조차 어려웠습니다. 하루에 몇 번만 알아차릴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계속 수행하자 마음 챙김이 자연스러워졌습니다. 그리고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같은 하루를 살아도 훨씬 더 풍요롭게 느껴졌습니다. 음식을 먹어도 더 맛있었고 경치를 봐도 더 아름다웠고 대화를 해도 더 깊었습니다. 마음 챙김이 삶의 질을 바꾼 것입니다.
부처님께서는 또한 자의 명상을 가르치셨습니다. 자의 명상은 자신과 모든 존재에게 자애를 보내는 수행입니다. 나를 포함한 모든 존재가 행복하기를, 모든 존재가 고통에서 벗어나기를, 모든 존재가 평화롭기를 하고 기원합니다.
한 수행자가 자의 명상을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형식적으로 느껴졌습니다. 하지만 계속 수행하자 마음에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자신에 대한 비판이 줄어들고 자신을 더 친절하게 대하게 되었습니다. 다른 사람들에 대한 분노도 줄어들었습니다. 심지어 자신을 힘들게 했던 사람들에게도 자애를 느낄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가 스승에게 말했습니다. 스승님, 자의 명상이 제 마음을 부드럽게 만들고 있습니다. 스승이 말했습니다. 자애는 우리의 본성이다. 다만 탐욕, 분노, 무지에 가려져 있을 뿐이다. 자의 명상은 그 가림막을 걷어내는 것이다.
부처님께서는 환영에서 벗어나는 길의 최종 목표를 말씀하셨습니다. 집착이 사라지면 해탈이 있고 해탈이 있으면 나는 해탈했다는 앎이 있다. 태어남은 다했고 청정한 삶은 이루었고 할 일을 다했으며 다시는 이러한 상태로 돌아오지 않는다는 것을 안다. 이것이 완전한 자유입니다. 생각의 환영에서 벗어나고 마음이 만든 세계에서 벗어나고 모든 집착에서 벗어난 상태입니다. 이것을 열반이라고 합니다.
한 제자가 부처님께 물었습니다. 세존이시여 열반은 어떤 것입니까? 부처님께서 대답하셨습니다. 열반은 탐욕의 소멸이고 분노의 소멸이고 무지의 소멸이다. 이것이 열반이다. 그렇다면 열반을 얻은 사람은 아무것도 느끼지 않습니까? 그렇지 않다. 열반을 얻은 사람도 여전히 보고 듣고 느낀다. 하지만 거기에 집착하지 않는다. 즐거운 것이 와도 집착하지 않고 괴로운 것이 와도 저항하지 않는다. 모든 것을 잊는 그대로 경험하되 자유롭다. 이것이 환영에서 벗어난 삶입니다. 세상을 떠나는 것이 아니라 세상 속에서 자유로운 것입니다. 경험을 피하는 것이 아니라 경험에 집착하지 않는 것입니다.
부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마지막 가르침을 주셨습니다. 자신을 등불로 삼고 자신을 귀처로 삼아라. 다른 것을 귀처로 삼지 마라. 법을 등불로 삼고 법을 귀처로 삼아라. 다른 것을 귀의처로 삼지 마라. 이것은 우리가 스스로 수행해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부처님조차 우리를 구원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스스로 길을 걸어야 합니다. 부처님은 길을 가르쳐 주셨을뿐 걷는 것은 우리의 몫입니다.
지금이 순간 여러분에게 묻고 싶습니다. 여러분은 어떤 환영 속에 살고 있습니까? 어떤 생각이 여러분을 속이고 있습니까? 어떤 마음의 습관이 여러분을 괴롭히고 있습니까? 이제 그 환영에서 벗어날 때입니다.
몸을 관찰하십시오. 지금이 순간 호흡을 느껴 보십시오. 숨이 들어오고 나가는 것을 알아차리십시오. 느낌을 관찰하십시오. 지금 어떤 느낌이 있는지 알아차리십시오. 즐거운과 괴로운가 중립적인가? 마음을 관찰하십시오.
이제 그 환영에서 벗어날 때입니다. 몸을 관찰하십시오. 지금이 순간 호흡을 느껴 보십시오. 숨이 들어오고 나가는 것을 알아차리십시오. 느낌을 관찰하십시오. 지금 어떤 느낌이 있는지 알아차리십시오. 즐거운가? 괴로운가? 중립적인가? 마음을 관찰하십시오. 지금 어떤 마음 상태인가요? 평화로운가? 불안한가? 화가 나 있는가? 법을 관찰하십시오. 이 모든 것이 무상하고 괴로움이고 무아임을 관찰하십시오. 이것이 환영에서 벗어나는 길입니다. 어렵지 않습니다. 특별한 능력이 필요하지도 않습니다. 다만 매 순간 깨어 있으면 됩니다. 지금이 순간에 온전히 현존하면 됩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게으르지 말고 수행하라. 방일하지 말라. 올바른 가르침을 따르는 자는 이 세상에서도 저 세상에서도 행복하다.
여러분의 삶 자체가 수행의 장입니다. 아침에 일어나는 순간부터 밤에 잠드는 순간까지 모든 순간이 깨어 있을 기회입니다. 설거지를 할 때 물에 감촉을 느끼며 깨어 있을 수 있습니다. 출근길을 걸을 때 발걸음 하나하나를 알아차리며 깨어 있을 수 있습니다. 대화를 나눌 때 상대방의 말을 온전히 들으며 깨어 있을 수 있습니다. 처음에는 자주 잊어버릴 것입니다. 생각에 빠져 한참을 지내다가 문득 깨어날 것입니다. 괜찮습니다. 그것이 수행입니다. 잊어버렸다는 것을 알아차리고 다시 현재로 돌아오는 것. 그것이 수행입니다. 이것을 수천 번, 수만 번 반복하십시오. 시간이 지나면 변화가 일어날 것입니다. 생각에 빠지는 시간이 줄어들고 현재에 있는 시간이 늘어날 것입니다. 마음이 더 고유해지고 삶이 더 평화로워질 것입니다. 같은 상황을 경험해도 반응이 달라질 것입니다. 예전에는 화를 냈을 일에 이제는 평온함을 유지할 것입니다. 이것이 환영에서 벗어나는 길입니다. 거창한 것이 아닙니다. 매순간 깨어 있는 것, 있는 그대로 보는 것, 집착하지 않는 것입니다.
부처님께서는 마지막으로 말씀하셨습니다. 모든 것은 무상하다. 게으르지 말고 정진하라. 이 말씀을 가슴에 새기십시오. 지금이 순간이 우리에게 주어진 유일한 시간입니다. 과거는 이미 지나갔고 미래는 아직 오지 않았습니다. 오직 지금만이 있습니다. 이 순간을 놓치지 마십시오. 이 순간에 깨어 있으십시오. 이 순간에 자유로우십시오. 생각의 환영에서 벗어나고 마음이 만든 세계에서 벗어나고 모든 집착에서 벗어나십시오. 그것이 부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가장 큰 선물입니다. 환영에서 벗어나 진실을 보는 눈. 고통에서 벗어나 자유를 얻는 길입니다. 이 길을 걷는 것은 여러분의 선택입니다. 하지만이 길을 걷는다면 그것은 여러분의 삶을 완전히 바꿀 것입니다. 지금이 순간부터 시작하십시오. 호흡을 느끼십시오. 몸을 느끼십시오. 마음을 관찰하십시오. 깨어 있으십시오. 그리고 자유로우십시오.
나무 아미타불 관세음보살 함께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나무 아미타불 관세음보살은 지혜의 아미타불과 자비의 관세음보살께 귀의한다는 뜻입니다. 이 염송 한마디가 마음을 맑히고 삶을 부드럽게 합니다. 댓글에 나무암아미타불 관세음보살을 한번 남겨 보세요. 당신의 그 한 마디가 복덕의 씨앗이 되어 바라던 일이 이루어지기를 기도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