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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철의 조언: 심술궂은 사람을 대하는 8가지 방법 - 이병철이 인생을 바꾸는 궁극의 기술을 공유합니다 | 이병철의 | 가르침 | 이병철 | 인생조언 | 삶의지혜 | 오디오북

옛사람들의 지혜23:37

Transcription

그 사람의 얼굴빛이 흐려지는 순간, 당신의 하루는 왜 이렇게 쉽게 기울까? 나는 젊은 시절부터 이런 질문으로 나를 달련했다.

타인의 심술에 반응하는 자는 장사꾼이고, 기준으로 응답하는 자가 경영자다. 어느 겨울, 거래처 대표가 서류를 책상에 내던지며 말했다. "조건을 더 깎이요, 아니면 끝이요?" 방안의 공기가 얼어붙었다. 나도 혈기가 있었다. 그러나 나는 분노 대신 원칙을 꺼냈다. "우리는 가격을 팔지 않습니다. 신뢰와 납기를 팝니다. 그 두 가지가 무너지면 값이 내려도 손해요." 침묵이 흘렀다. 결국 그는 서류를 다시 주어 담았다.

심술 굳은 사람을 대하는 첫째 방법은 내 감정의 주도권을 회수하는 것이다. 심술은 상대 내면에서 부는 바람일뿐, 내 배의 키까지 빼앗을 권리는 없다. 나는 중요한 결정을 앞두고 세 가지만 확인했다. 첫째, 우리의 약속이 무엇이었는가? 둘째, 수치로 검증된 사실은 어디까지인가? 셋째, 장기적 관계의 비용은 얼마인가? 이 세 질문을 종이에 적어 놓고 목소리의 높낮이가 아니라 근거의 논낮지로 답했다.

가정에서도 예외는 없다. 자녀가 투정으로 요구할 때, 돈으로 달라면 요구는 커지고 기준은 작아진다. 규칙을 지키는 대신 결과만 원하면 회사는 이익표를 얻고 신뢰표를 잃는다. 심술은 번개처럼 번지지만, 원칙은 등대처럼 천천히 이긴다. 나에게 원칙은 두 줄이었다. 사람을 남기고 돈을 남겨라. 단, 순서는 바꾸지 마라.

상대가 날카로울수록 나는 절차를 더 또렷하게 밟았다. 회의록을 공유하고, 결론 전의 의도를 확인하고, 서명을 서두르지 않았다. 심술과 마주칠수록 나는 알았다. 단단한 경영은 타인의 감정이 아니라 나의 규율에서 시작된다는 것을. 자, 오늘 밤 책상 위에 당신의 기준 세 가지를 적어라. 내일 아침, 그 기준으로 첫 대화를 시작해라. 배는 이미 바람 속에 있다. 키를 잡는 손만 당신의 것이다.

나는 일찍이 알았다. 심술은 원인 없는 결과가 아니라 뿔이 있는 가지라는 것을. 젊은 시절, 나는 경남의 한 공장을 세우려 했다. 기계는 들려왔으나, 가장 숙련된 기술자가 늘 인상을 찌푸리며 현장을 휘저었다. "이런 설계는 엉터리요, 젊은 사장 나불랭이가 뭘 안다고?" 젊은 노동자들은 그 앞에서 입을 닫았다. 공장은 기술자 한 사람의 불평에 눌려 시작도 하기 전에 흔들리고 있었다.

나는 그를 따로 불렀다. 밤이 깊어 사람들의 발길이 끊긴 공장 한 기계 옆에 앉아 물었다. "선생이 두려워하는게 무엇이요?" 그는 한참 말이 없었다가 결국 입을 열었다. "내가 평생 쌓은 손맛이 헛대히 될까? 두렵소. 너희는 효율만 말하지만, 기계는 정성을 모르면 금방 고장나." 그제야 알았다. 그의 심술은 게으름의 산물이 아니라 자존심의 울음이었다. 나는 말했다. "선생, 그 자존심을 공장 전체의 규율로 세워주시오. 기계에도 손맛이 필요하다면, 우리 모두에게 가르쳐 주시오." 그 후 그의 목소리는 불평에서 훈계로 바뀌었다. 젊은 노동자들은 주눅이 아니라 존경으로 귀를 기울였다. 공장은 점차 숨을 쉬기 시작했다.

심술 굳은 사람의 불만 뒤에는 언제나 지키고 싶은 무언가가 있다. 돈일 수도, 명예일 수도, 혹은 가족과의 기억일 수도 있다. 나는 늘 그 뿌리를 찾았다. 가지를 흔들며 싸우지 않고, 뿌리를 어루만지며 길을 찾았다. 당신 주위에도 있을 것이다. 늘 불만을 말하는 상사. 이유 없이 화를내는 동료. 그들의 심술을 그냥 불편함으로만 여기지 말고 물어라. "무엇을 그렇게 지키고 싶으신 겁니까?" 그 질문 하나가 싸움터를 협력의 장으로 바꿀 수 있다. 심술에 가면 뒤에는 언제나 인간의 두려움이 숨어 있다. 그 두려움을 본 자만이 사람을 얻는다.

심술은 불과 같다. 불은 기름을 주면 번지고, 바람을 막으면 더 세게 치솟는다. 나는 정치인도 아니었지만, 사업을 하다 보면 수없이 많은 권력자와 이해 관계자 앞에 섰다. 특히 젊은 시절, 어느 지방 유지가 술자리에서 내게 삽돼지를 하며 큰 소리 쳤다. "이봐, 이 사장은 젊은 주제에 너무 잘난 척이야. 어디서 배워 먹은 건가? 대답해 봐." 분명히 반박할 말은 있었다. 그의 말은 앞뒤가 맞지 않았고, 내가 틀리지 않았다는 확신도 있었다. 그러나 나는 웃으며 잔을 들어 말했다. "선생님 말씀 귀담아 듣겠습니다. 부족한 점은 꼭 가르쳐 주십시오." 그리고는 잠시 후 자리를 피해 바람을 쐬러 나갔다.

그날 이후 나는 배웠다. 심술의 순간에 정면으로 맞받아치면 결국 두 사람 다 불타버린다. 감정이 끓는 자리에서 이기려는 자는 오래 못 간다. 불은 이겼다고 꺼지지 않는다. 재로 남아 다시 타오른다. 내 방식은 단순했다. 감정이 올라온 순간, 자리를 살짝 비켜나기. 상대의 말에 즉시 흥분하지 말고, 후일 다시 말씀 듣겠습니다라고 넘기기. 반드시 시간이 지난 뒤, 상대가 가라앉았을 때 차분히 다시 이야기를 꺼내기. 이것은 회피가 아니라 시간을 아군으로 삼는 지혜였다. 사업은 전쟁 같지만, 모든 싸움이 전투로 끝나야 할 필요는 없다. 기다릴 수 있는 자만이 큰 판을 이긴다.

나는 종종 젊은 직원들에게 말했다. 불이 일어났을 때 물을 들이붓는 것은 누구나 한다. 그러나 바람이 잦아들기를 기다릴 줄 아는 자가 진짜 승부사다. 심술 굳은 사람을 만났을 때, 당신이 해야 할 일은 불길 속에 뛰어드는 것이 아니다. 한발 물러서서 불이 스스로 꺼질 시간을 주는 것이다. 그때 남는 것은 재더미가 아니라 다시 대화할 수 있는 자리다.

나는 사업을 하며 수탁에 맞았다. 강직한 관료, 완고한 협력사, 때로는 내 가족까지도. 그들의 심술은 종종 격렬한 파도 같았다. 회의실에서 관료가 책상을 치며 외쳤다. "당신의 계획은 허황하다. 예산을 낭비할 뿐이요!" 그 순간 방안의 공기는 바늘처럼 날카로웠다. 젊은 직원들은 눈을 피했다. 누구도 입을 열지 못했다. 내 안에서도 파도가 일었다. 당장 반박하고 싶었다. 논리와 자료는 충분히 준비되어 있었다. 그러나 나는 알았다. 지금은 논리로는 아무것도 바꿀 수 없는 순간이라는 것을. 흥분한 사람은 귀를 닫는다. 파도는 스스로 물러나야 한다.

나는 그에게 이렇게 말했다. "말씀 잘 들었습니다. 오늘은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내일 다시 의견을 나누지요." 그날 회의는 그렇게 끝났다. 대신 다음날 새벽, 나는 직접 그의 방을 찾았다. 커피 두 잔을 들고. "어제 말씀, 제가 충분히 듣지 못한 것 같습니다. 다시 한번 설명해 주실 수 있겠습니까?" 분위기는 전날과 전혀 달랐다. 파도가 빠져나간 바다처럼 고요했다. 그는 차분히 자신의 우려를 풀어 놓았다. 나는 그 의견을 일부 반영했고, 그는 오히려 내 정책의 가장 강력한 협력자가 되었다. 심술의 파도는 반드시 물러난다. 중요한 것은 그 순간을 견디는 일이다. 감정이 고조된 순간에는 진실도, 신뢰도, 논리도 닿지 않는다. 그러나 파도가 빠지고 나면 같은 말도 다르게 들린다. 나는 늘 내 자신에게 이렇게 되뇌었다. "오늘의 파도에 맞서리 하지 말고, 내일의 바다를 준비하라."

당신도 기억하라. 심술 굳은 사람을 만났을 때, 그 자리에서 답을 내려 하지 마라. 사람의 감정은 환경에 크게 흔들린다. 나는 그 사실을 일찍 깨달았다. 회의실이라는 닫힌 공간. 서로 마주 앉아 날 선 말이 오갈 때면 작은 오해도 전쟁으로 번졌다. 어느 날 고향의 도로 건설 문제로 지역 유지와 마주 앉았다. 그는 처음부터 얼굴을 찡그리며 소리쳤다. "당신은 이 땅을 모른다. 주민을 무시하는 결정이야." 그 자리에서는 어떤 설명도 들리지 않았다. 공기는 곤두서 있었고, 벽은 우리 둘을 적으로 만들었다.

그날 밤 나는 생각했다. 이 전쟁터를 다른 곳으로 옮겨야 한다. 다음날 새벽, 나는 전화를 걸었다. "선생님, 오늘 아침 강가를 함께 걸으며 이야기할 수 있겠습니까?" 그는 잠시 머뭇거렸지만 결국 나왔다. 안개가 깔린 강둑을 나란히 걸었다. 앞을 바라보며 이야기를 나누니, 전날의 날카로움은 사라졌다. 우리는 어린 시절의 추억을 이야기했고, 고향 사람들의 삶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리고 나는 조용히 말을 꺼냈다. "저도 이 땅의 아들입니다. 이 길은 제 고향을 위한 길이기도 합니다." 그 순간 그의 표정이 누그러졌다. "당신 말도 틀리진 않군. 우리가 같은 것을 바라보고 있는 걸지도 모르지." 그날 이후 그는 내 반대자가 아니라 협력자가 되었다.

나는 확신한다. 심술은 닫힌 공간에서 자라나고, 열린 환경에서 누구러진다. 마주 앉으면 적이 되고, 나란히 걸으면 동지가 된다. 벽 안에서 토론하지 말고, 하늘이 보이는 곳으로 나가라. 당신이 심술 굳은 사람과 맞닥뜨린다면, 장소를 바꿔라. 답답한 방이 아니라 바람이 스미는 길 위에서 대화하라. 그 순간 마음의 방향도 달라질 것이다.

젊은 시절 나는 종종 이런 풍경을 보았다. 회의실 앞에서 눈치를 보는 후배들. 상사의 얼굴빛이 어두우면 입을 다물고 한숨을 쉬며 복도에서 중얼거렸다. "오늘은 또 심기가 불편하시네. 괜히 건드렸다가 하만나겠지." 그런 날이면 조직 전체가 무겁게 가라앉았다. 한 사람의 심술이 수십 명의 하루를 삼켜 버렸다. 나는 그때부터 결심했다. 상대의 기분에 내 인생을 맡기지 않겠다.

그날 상사가 불호령을 내렸어도, 다음날 아침 나는 여전히 웃으며 인사했다. "좋은 아침입니다. 오늘도 힘내시지요." 점심에는 밖으로 나가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동료들과 웃었다. 밤에는 장기적 비전을 이야기하며 술잔을 기울였다. 동기들이 물었다. "자네는 왜 늘 기분이 좋은가?" 그렇게 혼나면서도 나는 대답했다. "그분의 기분은 그분의 문제요. 내 기분은 내가 정한다." 이 깨달음은 단순하지만 강력했다. 심술 굳은 사람의 기분을 맞추려고 애쓰면 결국 나도 심술에 물든다. 하지만 내 기분을 스스로 지켜내면 오히려 그 밝음이 전염되어 주변을 바꾼다. 실제로 몇 해가 지나자 나를 향해 소리를 높이던 이들도 점차 태도를 바꿨다. "자네는 참 이상한 사람이야. 자네와 있으면 괜히 마음이 가벼워진다." 나는 알았다. 기분도 자산이다. 돈이 흘러가듯 기분도 전염된다. 심술은 어둠을 퍼뜨리지만, 기분 좋은 태도는 빛을 퍼뜨린다. 사업이든 가정이든 결국 남는 것은 그 빛이었다. 그러니 기억하라. 심술 구준 사람의 기분은 그의 몫이다. 당신의 몫은 오직 하나. 자신의 기분을 잃지 않는 것.

나는 국회 예산 위원회에 불려나가 수없이 공격을 받았다. 어떤 야당 의원은 내 정책을 가리켜 혈세를 낭비하는 전형이라며 목청껏 비난했다. 손에는 내 계획의 허점을 지적하는 자료가 들려 있었다. 솔직히 말해 나는 반박할 자료도 충분히 준비해 두었다. 그의 말이 얼마나 모순되는지 수치로 반박할 자신이 있었다. 그러나 나는 곧바로 맞서지 않았다. 잠시 침묵한 뒤 이렇게 답했다. "선생님의 지적은 귀하게 새겨듣겠습니다. 아직 부족한 부분이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오늘의 말씀을 정책에 반영하겠습니다." 순간 회의장의 공기가 변했다. 공격하던 의원은 오히려 말을 잊지 못했고, 주의도 놀란 눈빛으로 나를 보았다. 정치에서 흔히들 적석에서 이기는 것에 목을 맨다. 그러나 나는 알았다. 작은 승리는 오래된 원한을 남기고, 작은 양보는 오래된 협력을 남긴다.

며칠 뒤, 그 의원은 나를 따로 찾아와 말했다. "사실 나는 당신의 정책에 반대하려던 것이 아니라 내 입장을 지키려 했던 거요. 그런데 당신이 내 체면을 세워 준 덕분에 오히려 협력하고 싶어졌소." 그때 확신했다. 심술 굳은 사람에게 이겨서 얻는 건 적지만, 꽃을 건네면 얻는 건 신뢰라는 것을. 상대의 체면을 세워주고 작은 승리를 양보하면 결국 더 큰 길을 함께 갈 수 있다. 나는 후배들에게 늘 이렇게 말했다. "상대의 메아리를 거두려 하지 말고, 그 손에 꽃을 지어주어라. 이기는 자보다 기억되는 자가 결국 큰 승리를 거둔다."

나는 평생 많은 사람과 손을 잡았다. 그러나 끝내 손을 잡을 수 없었던 이들도 있었다. 어떤 이는 나를 향해 평생 비난만을 쏟아냈다. 내가 무엇을 제안해도, 어떻게 설명해도 그는 고개를 저었다. 처음엔 애써 설득하려 했다. 술자리를 만들고, 지인을 통하게도 했다. 하지만 결과는 늘 같았다. "나는 끝까지 당신과는 뜻을 같이 할 수 없다." 그때 나는 큰 깨달음을 얻었다. 세상 모든 사람과 화해할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억지로 다가서려 하면 내 에너지만 소모된다. 불가능한 화해는 싸움만큼이나 소모적이었다.

그래서 나는 방식을 바꿨다. 그와는 필요할 때만 차분히 대화했다. 감정은 섞지 않았다. 의견이 엇갈리면 더 깊이 파고들지 않고 이렇게 말했다. "선생의 입장은 존중합니다. 각자의 길에서 최선을 다합시다." 그 이상은 바라지 않았다. 결과는 의외였다. 거리를 인정하자 오히려 적대감이 줄어들었다. 그는 여전히 반대했지만, 나를 적으로만 대하지는 않았다. 그는 나를 찾아와 말했다. "끝내 뜻은 맞지 않았지만, 당신은 나를 억지로 바꾸려 하지 않았지. 그게 오히려 고마웠어." 나는 알았다. 적대하지 않으면서도 거리를 두는 것. 그것이 가장 성숙한 태도라는 것을. 모두를 깨우려 하지 마라. 억지 화해는 진실을 흐리고, 거리를 지키는 용기는 마음을 지킨다. 심술 굳은 사람은 당신의 인생에 반드시 나타난다. 그러나 그들과 싸우거나 달래거나 억지로 끌어안을 필요는 없다. 때로는 거리를 두는 것 자체가 가장 현명한 화해다.

나는 이런 해가 넘는 세월 동안 수많은 심술과 마주했다. 거래처의 거친 은사. 관료의 완고한 반대. 가정에서조차 스며드는 작은 불아들. 그때마다 나는 배웠다. 심술은 결국 상대방의 문제가 아니라 나를 비추는 거울이라는 것을. 상대가 심술궂게 보일 때는 어쩌면 내 마음이 이미 지쳐 있었던 것이고, 상대가 공격적으로 들릴 때는 내 속이 방으로 가득 차 있었던 것이다. 마음이 고요하면 상대의 칼날도 바람결로 느껴진다. 마음이 흔들리면 작은 말도 폭풍처럼 들려온다.

나는 내 자녀와 후배들에게 이런 말을 자주 남겼다. "남의 심술에 끌려다니면 그 인생은 빌려 사는 삶이다. 그러나 내 표정과 내 기분을 내가 지키면 그 인생은 내가 경영하는 삶이다." 심술 굳은 사람을 바꾸는 건 쉽지 않다. 그러나 나 자신을 지키는 건 가능하다. 먼저 내 마음을 다스려라. 상대의 뿌리를 이해하라. 불길에 뛰어들지 말고 흘려보내라. 파도가 잦아들 때를 기다려라. 자리를 바꿔라. 환경이 마음을 바꾼다. 상대 기분에 흔들리지 말고 내 기분을 지켜라. 꽃을 건네라. 체면을 세워 줘라. 끝내 맞지 않는 이는 거리를 지켜라. 이 여덟 가지 길은 단지 대인 관계의 기술이 아니라 인생을 잃지 않는 법이었다.

나는 이제 묻고 싶다. 당신은 오늘 누구의 심술 앞에서 있는가? 그 순간이야말로 당신의 기분, 당신의 철학, 당신의 인생을 경영할 기회다. 나는 젊을 때부터 이런 원칙을 세웠다. 문제는 곧 기회다. 심술 굳은 사람도 마찬가지다. 어느 날 한 협력 업체 사장은 늘 불평으로 회의장을 흔들었다. "삼성은 자기들만 챙긴다. 우리를 소모품 취급한다." 목소리는 거칠었고, 다른 업체들도 그 기세에 휩쓸렸다.

나는 그의 심술을 무시하지 않았다. 대신 노트에 적었다. 그가 가장 크게 불만을 토로한 부분은 무엇인가? 그 불만이 사실이라면 개선할 수 있는 길은 무엇인가? 불만을 반대로 활용하면 어떤 경쟁력이 되는가? 며칠 뒤 나는 공급망 관리 방식을 바꿨다. 하청을 단순히 을로 두지 않고, 동반자로 존중하는 계약 체계를 만들었다. 협력 업체를 살리는 것이 곧 우리를 살린다는 철학을 반영한 것이었다. 놀랍게도 가장 큰 불평꾼이 가장 충실한 협력자로 변했다. 그는 내게 말했다. "내 말을 이렇게 귀담아들은 사장은 처음이요. 덕분에 나도 다시 힘을 내고 싶어." 그 순간 나는 확신했다. 심술은 버려야 할 쓰레기가 아니라, 갈고 닦으면 경쟁력이 되는 자산이라는 것을. 불평은 약점의 신호이고, 약점은 곧 시장의 빈틈이다. 그러니 당신이 심술 굳은 사람을 만났다면, 그 목소리를 단순한 소음으로 흘려보내지 마라. 그 안에는 반드시 시장이 놓친 진짜 문제가 숨어 있다. 불평을 들을 귀를 가진 사람만이 누구도 보지 못한 길을 앞서 걸을 수 있다.

내가 인생을 경영하며 배운 세 가지 지혜가 있다. 첫째, 심술은 거울이다. 상대의 표정은 내 마음을 비춘다. 내가 조급하면 그의 눈빛이 가시처럼 보이고, 내가 평정하면 그의 말도 바람처럼 흘러간다. 둘째, 심술은 교사다. 불합리한 요구는 나로 하여금 더 철저히 준비하게 했고, 날 선 비난은 나의 신념을 단련했다. 심술 굳은 상대야말로 내 인생의 혹독한 훈련장이었다. 셋째, 심술은 선택이다. 그것에 끌려가 불행해질 수도 있고, 나의 기준을 지켜 성장의 발판으로 삼을 수도 있다. 선택권은 언제나 내게 있었다. 나는 자주 말했다. "사람을 이기는 자가 아니라 자신을 지키는 자가 오래 간다." 심술은 피할 수 없다. 그러나 그 앞에서 내 마음의 무게를 지켜내면, 오히려 그 심술은 내 뒤를 받쳐 주는 그림자가 된다. 내 인생을 돌아볼 때, 나를 크게 키운 건 호의적인 동료가 아니라 심술 굳은 사람들과의 긴장 속에서 쌓인 내 규율이었다. 그러니 기억하라. 심술의 그림자에 당신의 철학을 세워라. 그 그림자는 언젠가 당신의 길을 더 선명하게 밝혀주는 배경이 될 것이다.

나는 늘 이렇게 느꼈다. 사람의 심술은 불씨와 같다. 가까이 붙잡으면 손을 데이고, 멀리서 바라보면 가마의 열이 되어 나를 달련한다. 한번은 신공장 건설을 두고 지역 인사들이 회의실에 모였다. 그중 한 원론은 내게 계속 곤란한 질문을 던졌다. "왜 굳이 이 땅에 지어야 하나? 당신이 지역을 제대로 아는가? 일자리를 약속할 수 있나?" 말은 날카로웠고, 그의 목소리에 젊은 직원들조차 고개를 숙였다. 나는 그 자리에서 정면 승부를 걸지 않았다. 대신 조용히 메모했다. 그가 두려워하는 것은 무엇인가? 지역 경제, 주민 불신 혹은 자기 명예. 며칠 뒤 나는 직접 그를 찾아갔다. 술잔을 앞에 두고 차분히 말했다. "선생님이 우려하는 점 하나하나 준비하겠습니다. 주민 고용 비율 계약서에 담겠습니다. 일자리는 숫자로 보장하겠습니다." 그 순간 그는 나를 노려보던 눈빛을 풀며 이렇게 말했다. "내가 괜히 심술을 부린 게 아니야. 누군가는 주민 편에서 물어야 했지. 자네가 이렇게 답해 주니 안심이 되는구먼." 나는 알았다. 심술은 나를 무너뜨리는 시험이 아니라 더 단단히 만드는 불이라는 것을. 불씨에 휘둘리지 않고 견디면 결국 그 열기가 나를 강철로 바꾼다.

사업이 커질수록 온갖 목소리가 몰려왔다. 때로는 억지 주장, 근거 없는 비난, 시기와 질투가 뒤섞인 심술이었다. 젊은 시절에는 나는 억울해서 반박하고 싶었다. 그러나 시간이 갈수록 깨달았다. 모든 심술에 대응할 필요는 없다. 나는 원칙을 세웠다. 사실에 근거한 지적은 반드시 기록하고 반영한다. 근거 없는 비난은 흘려보낸다. 내 마음이 흔들리지 않도록 하루에 한 번은 차분히 나를 돌아본다. 흥미롭게도 내가 반박하지 않고 묵묵히 실행에 집중하자, 오히려 주변은 내 편이 되었다. "이병철은 헛소리에 휘둘리지 않는다. 결국 결과로 보여준다." 이런 말이 돌았다. 그때부터 나는 깨달았다. 심술에 맞서 이기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심술을 흘려보낸 뒤 남는 신뢰가 목적이라는 것을. 결국 기업을 지탱하는 것은 순간의 말싸움이 아니라 장기적 신뢰였다. 그래서 나는 내 자녀와 후배들에게 늘 말했다. "신수를 이기려 하지 말고 흘려보내라. 그러면 남는 것은 흙탕물이 아니라 맑은 강물 같은 신뢰다."

나는 살아오며 깨달았다. 나를 칭찬해 준 사람보다 나를 괴롭히고 걸던 이들이 오히려 더 큰 선물을 주었다는 사실을. 한 관리자는 늘 내 계획에 태클을 걸었다. "그건 위험합니다. 실패할 확률이 큽니다." 당시에는 심술로만 보였다. 그러나 시간이지나 돌이켜 보니, 그의 끈질긴 반대 덕분에 나는 위험 요소를 하나하나 보완할 수 있었다. 결국 그 프로젝트는 더 단단히 완성되었다. 심술 굳은 사람은 나를 시험하는 선생이다. 그들의 불편한 질문은 나의 눈을 넓히고, 그들의 반발은 나의 논리를 단련시킨다. 칭찬은 달콤하지만 금세 희미해지고, 심술은 쓰디나 오래 남아 나를 성장시킨다. 나는 늘 후배들에게 물었다. "내 앞에 까다롭고 불편한 사람이 있느냐? 그렇다면 네가 배울 수 있는 교실이 바로 거기다. 인생은 도서관보다 사람에게서 배운다." 심술 굳은 사람은 가장 힘든 교재이지만, 동시에 가장 값비싼 교재다. 결국 나를 크게 만든 것은 그들이었다.

나는 분명히 배웠다. 모든 사람을 끌어안으려는 욕심은 오히려 나를 소모시킨다. 끝내 뜻이 맞지 않는 사람이 있다면 억지로 바꾸려 하지 말라. 대신 거리를 두고, 그 거리를 벽처럼 세워라. 그 벽은 원망의 장벽이 아니라 서로의 영역을 지켜주는 울타리다. 나는 정치를 오래 본 사람으로서 끝까지 반대만 하던 동료들을 떠올린다. 우리는 한 번도 뜻이 맞지 않았지만, 나는 그들을 적으로 두지 않았다. 필요할 때만 차분히 협의하고, 그 외에는 거리를 지켰다. 그 덕분에 불필요한 싸움은 줄었고, 내 에너지는 더 큰 일에 쓸 수 있었다. 세상에는 어떤 심술은 품을 수 있지만, 어떤 심술은 품지 말고 거리를 두어야 한다. 그것이 성숙이다. 원수로 삼지 않고도 나와 다른 존재로 인정할 수 있는 지혜.

나는 늘 마음에 새겼다. 내 인생은 나의 기분과 나의 선택으로 경영한다. 남의 심술은 남의 몫으로 남겨둔다. 심술 굳은 사람은 어디에나 있다. 거래처에도, 직장에도, 가정에도 있다. 그러나 나는 이렇게 결론지었다. 그들이 내 인생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그들을 대하는 나의 태도가 내 인생을 바꾼다. 감정을 다스릴 줄 아는 자는 배의 키를 잡는다. 뿌리를 이해하는 자는 사람의 마음을 얻는다. 피말리지 않고 흘려 보내는 자는 시간을 아군으로 삼는다. 자리를 바꾸는 자는 환경을 지혜로 삼는다. 자기 기분을 지키는 자는 결국 빛을 전한다. 꽃을 건네는 자는 신뢰를 얻는다. 거리를 아는 자는 평화를 누린다. 나는 내 생을 돌아보며 이렇게 말하고 싶다. 심술은 바람이고, 인생은 나의 항해다. 바람을 바꿀 수는 없지만, 키는 언제나 내가 지고 있다. 다윗은 장의 나이 한남이 당신도 기억하라. 인생은 결국 내가 어떤 표정을 짓느냐로 완성된다. 심술 굳은 사람을 만날 때, 그들을 원망하지 말고 내 얼굴을 먼저 다스려라. 그 순간 당신의 인생은 이미 달라지기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