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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6.22] 나는 믿습니다 (롬 10:9-10) - 토론토영락교회 전대혁 목사

토론토영락교회 Young Nak Church of Toronto32:02

Transcription

아, 그 오늘부터 새로운 시리즈 설교를 진행하려고 합니다. 그 새로운 시리즈 설교는 이제 사도신경 강해입니다.

어, 이제 우리가 매주일 혹은 아, 예배 때마다 암송하는 신앙 고백이 사도신경이죠. 그런데 의외로 이 사도신경이 마치 어떤 예배를 시작하는 뭐 시그널 아니면 주문 정도로 어, 습관화된 느낌으로 느껴질 때가 참 많습니다. 그 많은 성도가 뭐 특별한 감동이나 이게 감격 없이 어떤 점에서 기계적으로 이 사도신경을 매주 암송하는 경향을 이렇게 주변에서 쉽게 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사도신경은 말 그대로 우리 믿음에 대한 신앙 고백입니다. 우리가 무엇을 믿는지 교회 공동체와 함께 공개적으로 고백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저는 이런 생각을 해 보는데요. 우리가 믿는 바, 우리가 믿고 있는 것, 그 대상, 주제, 이것을 깊이 있게 묵상하면서 그것을 되새기면서 고백한다면 저는 그 고백의 순간마다 벅찬 감격이 따라올 수밖에 없다고 확신합니다. 왜 그럴까요? 우리가 믿고 있는 바, 우리가 믿고 있는 모든 그 진리는 정말 그 하나하나가 놀랍고 감격스러운 신비로운 하나님의 진리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자, 우리가 믿고 고백하는 내용들 하나하나는 정말 하나님의 진리를 담고 있습니다. 문제는 우리가 충분히 그 의미를 묵상하면서 고백하기보다 의식화된 어떤 순서로 사도신경을 어, 대할 때가 많기 때문에 당연한 감격이, 그 놀라운 감격이 어느 순간부터 우리의 삶에 또 우리 신앙 고백 가운데서 사라진 것이 아닐까 조심스럽게 진단해 봅니다.

어, 사도신경을 간략하게 설명하면 이렇습니다. 사도신경은 성경에 들어 있는 정말 대단한 양의 진리와 그 신앙의 내용들을 가장 간략하게 요약한 내용입니다. 이 사도신경에서 우리가 고백하는 그 내용들, 그 고백 하나하나의 문구를 그 자체를 그대로 우리가 성경 안에서 찾을 수는 없습니다. 이렇게 이해하는 것이 좋겠는데요. 자, 사도신경은 교회가 역사 가운데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아 아주 면밀하게 연구하고 또 함께 토론하면서 성경의 모든 내용을 요약 정리한 결과물로 어, 볼 수도 있습니다.

한 가지 우리가 생각해 볼 것은 우리 신앙생활의 모든 것은 어디에 근거를 두고 있을까요? 정확히 말하면 사도신경이 아니고 성경에 들어 있습니다. 어, 지도로 한번 이렇게 비유해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자, 성경을 이렇게 한번 비유해 보겠는데요. 우리가 걸어갈 수 있는 그 신앙의 모든 길이 이름부터 거리까지 자세하게 기록되어 있는 어떤 어, 점에서 어마어마하게 큰 지도가 바로 성경으로 한번 비유해 보는 것입니다.

자, 그런데 이 큰 지도를 그냥 펼쳐 놓고 보면 우리는 그 어마어마한 그 거대한 진리의 그 내용 앞에 어느 순간 압도당하게 될 수 있습니다. 혹은 길을 잃을 수 있죠. 성경을 펼쳐놓고 읽어도 어디로 가야 될지 모르는 것이 우리의 모습이기도 합니다. 자, 그래서 우리에겐 때론 이 큰 지도인 성경을 이해할 수 있는 작은 지도 혹은 요약도가 필요합니다. 그 역할을 교회 역사 가운데 이 사도신경이 잘해 주고 있었다는 것이죠.

자, 우리는 사도신경을 통해 성경이 과연 어떤 구조이고 무엇을 가장 중요하게 다루고 있는지를 어, 한눈에 볼 수 있게 됩니다. 자, 이런 점에서 성경의 모든 내용을 우리가 다 알지는 못한다 하더라도 이 사도신경의 내용들을 어, 하나하나 믿고 고백한다면 성경의 나머지의 내용들 역시 우리가 믿고 고백하는 것이다, 이렇게 인정할 수 있게 됩니다. 그래서 교회의 역사를 돌아보면 그리스도인이 되기 위해 세례를 받는 사람들은 반드시 이 사도신경의 내용들을 믿고 또 입술로 고백하도록 했습니다. 이 같은 배경을 생각하면 우리는 사도신경의 이 내용들을 하나하나 살펴보면서 성경과 기독교 신앙에 대한 충분하고 또 탁월한 정리를 할 수 있게 되는 것이죠.

어, 이 시리즈를 이제 시작하려고 합니다. 어, 그러면서 이제 가장 우선적으로 오늘 정리해 보려고 하는 것은 과연 믿음이란 무엇인가입니다. 이런 흐름으로 이해해도 좋습니다. 지난 주일까지 한 내용 다 기억하시죠? 우리 오랜 기간 동안 몇 달 동안 걸쳐서 하나의 초점을 갖고 복음서를 살펴봤습니다. 기억하시죠? 예. 어, 설마. 예. 다 기억하시는 눈빛으로 보는 것으로 제가 믿음으로 어, 받아들이고 어, 혹시 또 이제 그냥 전체적으로 한번 리마인더를 드리면 지난 주일까지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초점을 갖고 복음서를 살펴봤습니다. 큰 어, 두 개의 파트였죠. 예수 그리스도는 과연 어떤 분인가, 누구신가? 그리고 말씀을 통해 우리는 그분을 인격적으로 만나야 된다. 개인적인 관계를 맺어야 된다. 이것을 우리가 긴 시간 동안 정리했습니다.

그럼 자연스럽게 따라오는 질문이 있을 것 같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고 나서 말씀을 통해 만나고 나서 그다음은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합니까라는 질문입니다. 어,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우리는 믿음으로 살아가는 삶의 풍성함을 누리며 이 땅에서 우리가 살아가야 하는 이유를 살아내야 한다는 것이죠. 자, 자연스럽게 우리가 어떤 믿음을 갖고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잘 배우고 정리하는 일이 이 예수 그리스도의 만남 이후에 당연히 있어야 합니다. 앞으로 이 사도신경을 통해서 저는 이제 그 작업을 하려는 것입니다. 그 시작점에서 가장 우선적이고 자연스러운 질문이 그럼 그 믿음이란 것은 무엇인가? 이 질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자, 실제로 사도신경은 이제 원문을 보면 라틴어로 끌레도라는 말로 시작됩니다. 이게 가장 앞에 있습니다. 레도. 어, 끌레도라는 말을 번역하면 어떤 뜻일까요? 그게 오늘 설교 제목입니다. 나는 믿습니다. 어, 이렇게 한번 그 상황을 이해해 보시면 좋겠습니다. 그래도 나는 믿습니다. 뭘요? 나는 이제부터 고백하게 될 이 사도신경의 내용들 하나하나를 믿습니다. 이렇게 선언적으로 고백하는 것입니다. 자, 이런 점에서 이 끌레도, 나는 믿습니다. 혹시 이제 그 좀 기억을 더 어, 이렇게 잘 이렇게 기억하시기 위한 또 그냥 하나의 방법을 알려 드리면 그래도 나는 믿습니다. 이렇게 한번 어, 하셨던 예. 괜찮으시죠? 예. 그래도 그래도 나는 믿습니다. 어, 내 삶에 어떠한 상황이 돼도 나는 그래도 나는 믿습니다. 이렇게 한번 적용해 보셔도 좋겠습니다. 이 그래도 나는 믿습니다. 이 고백이 무엇을 정말 의미하는지 이것에 대해서 먼저 어, 이 사도신경 시리즈를 시작하면서 가장 먼저 한번 다뤄 볼 필요가 있습니다.

어,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이 본문은 익숙한 본문입니다. 로마서의 말씀이고 그리스도인들이 전도할 때 가장 많이 사용하는 본문이죠. 내용은 단순하고 명확합니다. 그 구원을 어떻게 받는가? 이 로마서의 굉장히 중요한 주제가 되는 구원을 어떻게 받는가? 이 이 질문에 대한 답으로 사도 바울을 통해서 주님은 두 가지를 오늘 본문에서 우리에게 소개합니다. 자, 그런데 한 가지 흥미로운 게 있는데요. 이 한글 성경으로도 충분히 확인이 되는 것입니다. 자, 오늘 본문에는 구원을 받기 위해 필요한 두 가지를 소개하는데 9절과 10절이 그 두 가지 내용을 순서만 바꿔서 반복적으로 소개한다는 것입니다. 어, 이게 구체적으로 이런 뜻입니다. 자, 9절을 한번 보시면 9절에서 사도 바울을 통해 주님은 네가 만일 네가 만일 첫째 내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면, 입으로 주를 시인하면 둘째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어떻게 해요? 내 마음에 믿으면 어떻게 됩니까? 구원을 받으리라고 설명합니다. 두 가지입니다. 자, 그런데 10절에 보시면 그 순서가 거꾸로만 되어 있고 내용은 똑같습니다. 사람이 첫째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둘째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이렇게 설명하는 것입니다. 똑같은 내용이죠. 똑같은 내용을 두 번 반복하는 것입니다. 성경에서 보통 이제 수사학적인 의미에서 같은 내용이 두 번 반복될 때는 특별한 강조의 의미가 있습니다. 자, 로마서 전체의 흐름을 생각하면 의에 이른다. 구원에 이른다. 이 말은 그 맥락상의 두 개가 같은 의미입니다. 어, 의에 이른다는 것은 의롭다 함을 받는 것은 구원에 이르는 것이고 구원에 이르는 것은 의에 의롭다 함을 인정받는 것, 이렇게 이해하셔도 좋습니다. 자, 이렇게 하나님의 구원을 받고 의롭다 인정을 받는 조건으로 사도 바울은 마음의 믿음과 입으로 고백하는 것이 두 가지를 소개하고 있는 것이죠.

자, 그럼 마음의 믿음과 입으로 하는 고백은 구체적으로 또 무엇을 가르킬까요? 이 이 두 가지는 결국 하나의 반응을 가르킵니다. 바로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내적이고 외적인 반응을 동시에 가르키는 것이기도 합니다. 아, 그에 대한 중요한 힌트를 우리 바로 오늘 본문 앞절인 8절에서 확인하게 되는데요. 우리 8절 한번 보실까요? 로마서 10장 8절에 보시면 이렇게 말합니다. 그러면 무엇을 말하느냐? 말씀이 내게 가까워 내 입에 있으며 내 마음에 있다 하였으니 곧 우리가 전파하는 믿음의 말씀이라 이렇게 말합니다. 자, 사도 바울은 여기서 이 신명기 30장 14절의 말씀을 인용하고 있는 것입니다. 자, 이 말씀을 인용해서 이제 맥락상 이 로마서 내용을 한번 떠올려 보시면 자신이 이 로마서 앞부분이 10장까지 오기까지 이 로마서 앞부분에서 쭉 설명한 모든 이 어떤 복음에 대한 설명과 선포 이 말씀을 방금 읽은 8절에서 뭐라고 말합니까? 믿음의 말씀이라고 부릅니다. 그리고 이 믿음의 말씀에 대한 두 가지 반응이 필요하다는 것인데요. 그게 바로 마음의 믿음과 입으로 하는 고백입니다.

자, 쉽게 다시 한번 설명하면 이 믿음의 말씀, 즉 로마서 앞부분에서 쭉 설명했던 복음과 기독교 신앙의 그 모든 내용들을 진짜라고 그것이 진리라고 첫째 마음으로도 인정하고 둘째 입술로도 인정하는 상태일 때 그때 그 사람에게 구원이 있다는 뜻입니다. 여러분, 기독교 신앙은 이와 같이 겉과 속이 같은 상태의 믿음을 본질로 하고 핵심으로 합니다. 마음의 믿음은 항상 입술의 고백으로 드러나게 되어 있습니다. 이제 우리가 입술의 고백이라고 하면 단순히 말로 하는 것만 떠올리기 쉽습니다. 하지만 좀 더 확대해서 생각하면 우리 입술의 고백이라는 것을 우리 삶으로 나타내는 모든 행동을 포함한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자, 동시에 이 입술의 고백, 우리 삶의 고백은 마음의 믿음이 없이는 불가능하게 됩니다. 이 이 두 가지는 마음의 믿음과 입술의 고백은 하나로 연결되어서 어떤 한 사람의 참된 믿음을 겉과 속으로 확신하게 하는 통로가 됩니다. 자, 따라서 이 두 가지 반응이 동시에 나타나지 않는, 이루어지지 않는 믿음은 가짜 믿음일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자, 이런 맥락에서 사도신경이 어, 교회 역사를 돌아보면 이 우리가 이제 세례와 예배 때 공개적으로 즉 입술로 고백하는 가장 분명한 신앙 고백으로 사용되어 온 것입니다. 앞서 설명한 것처럼 여러분, 사도신경은 무엇을 요약합니까? 성경의 모든 내용을 가장 간략하게 요약한 것이 사도신경입니다. 따라서 사도신경을 우리가 함께 고백할 때 그 행동의 의미는, 그 고백의 의미는 오늘 본문에서 말하는 이 로마서에서 말하는 이 믿음의 말씀, 즉 성경의 모든 내용을 내가 마음으로 믿고 입술로 고백한다라는 것에 가장 강력한 표현이 되는 것이죠.

여러분, 이것이 우리가 매주일마다 매번 사도신경을 고백할 때 기억해야 할, 떠올려야 될 우리의 행위에, 우리가 하는 그 고백에 담긴 의미입니다. 우리는 그냥 어떤 주문처럼, 예배를 시작하는 시그널처럼 이 사도신경을 외우고 마는 것이 아닙니다. 그냥 하나의 예배 순서기 때문에 혹은 그래서 뭐 형식으로 생각하고 그냥 읽고 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매번 이 사도신경의 고백을 진지하게 입술로 고백하면서 이 내용들을, 이 내용들을 정말 우리가 마음으로 믿고 입술로 혹은 삶으로 인정하고 있다는 결단과 헌신을 하는 과정이라는 것이죠.

그 실제로 사도신경에서 고백하는 그리고 이 초대교회 당시에 그리스도인들이 고백했던 이 믿는다라는 단어에는 우리가 지금 평소에 이게 익숙하게 생각하는 그 믿음의 이미지와는 그때와 지금이 상당히 큰 거리감이 있습니다. 크게 다른 부분이 있습니다. 우리는 믿음이라고 하면 그냥 어떤 어, 심하게 말하면 쇠뇌 혹은 어떤 감정적인 흥분으로 이해하는 이미지가 있습니다. 어, 잘 알지는 못해도 그냥 마음에 느낌이 있거나 확신이 생기면 그것을 믿음이라고 생각하는 모습이 있다는 것이죠. 뭐 이런 경우도 충분히 좀 생각해 볼 수 있는데요. 우리가 믿음이라고 할 때 우리는 우리가 바라고 원하는 어떤 것이 있는데 그것을 딱 얘기해 놓고 그것이 그대로 내가 바라는 대로 될 거야. 이것을 그대로 될 것을 확신하면서 막 기다리는 그런 것을 믿음으로 얘기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여러분, 이것은 어, 우리가 이 시대에 불완전하게 갖고 있는 믿음에 대한 이미지입니다. 사실 그래도 이 믿는다라는 단어가 이 초대교회 당시 혹은 이제 더 정확히는 사도신경이 정리되던 기독교 초기에 이 의미가, 믿는다라는 개념이 어떻게 사용되었는지를 그 연구해 보면 좀 더 분명한 어떤 믿음의 의미가 발견됩니다. 초대교회 당시 우리가 어떤 사람이 믿는다라고 말할 때는 그때 사용하는 단어들의 예들을 좀 용례 예를 한번 정리해 보면 이 믿음은 항상 어떤 사람이나 사물을 신뢰, 즉 기댈 수 있는 존재로 받아들이는 행동을 가리킵니다. 그냥 어떤 믿기 어려운 것들 혹은 존재하는지 잘 모르겠는데 그냥 내가 믿겠다라고 하는 그런 믿음과는 상당한 거리가 있습니다. 초대교회 당시 믿음은 머리와 가슴과 행동이 하나로 묶여서 어떤 대상을 인격적으로 받아들여 드릴 때 그때 사용할 수 있는 단어가 이 믿음이라는 단어였죠. 자연스럽게 이 믿음의 어떤 정의에 따라 항상 세 가지 중요한 반응이 뒤따르게 되어 있었습니다. 첫째는 어떤 사람이나 사물이 존재하고 있다. 이게 있다. 아, 이것의 이 사실에 대한 지적인 혹은 생각의 동의. 둘째는 그 대상이 신뢰할 만하다. 믿을 만하다. 즉 기댈 수 있는 존재라는 것에 대한 감정적인 혹은 마음의 인정이나 확신. 그리고 셋째는 이 대상이 진짜 존재하고 있고 어, 기댈 수 있는 대상이기 때문에 내가 그 대상에게 나 자신을 헌신하겠다. 의지하겠다. 이 이 의지적인 행동 혹은 어, 행동의 헌신이 세 가지 포인트가 이 반응이 성경에서 말하는 또한 이 초대교회 성도들이 믿음이란 것에 대해서 갖고 있었던 어, 인격적인 어떤 또 자연스러운 의미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자, 그렇습니다. 여러분, 기독교 신앙을 많은 사람이 오해하는 부분이 이것입니다. 놀랍게도 사람들은 기독교 신앙에서 말하는 믿음을 우리가 흔히 말하는 어떤 쇠뇌 혹은 심하면 최면과 같은 이미지로 설명할 때가 많습니다. 또 안타까운 것은 교회 안에서도 이렇게 믿음을 얄팍하게 설명하게 하고 있는 그런 모습을 흔하게 볼 수 있다는 것이죠. 뭐 예를 들면 믿어지지 않아도 믿습니다. 한번 100번, 천 번, 한 만 번 하시면 믿어집니다. 어, 이런 종류의 접근이라든지 아니면 믿어지지 않는 어떤 어, 기독교 진리에 대해서 특별한 종교적인 체험을 통해서 어, 믿음을 가져야 될 것처럼 가르치기도 합니다. 더 심각한 것은 뭐 어쨌든 그렇게 기독교 문화 안에, 교회 안에 들어왔을 때 아이 그냥 묻지도 따지지 말고, 따지지도 않고 그냥 믿어. 이것을 좋은 믿음, 강한 믿음으로 설명하는 분들도 상당히 많습니다. 죄송하지만 성경과 기독교 역사는 어, 이런 믿음을 참된 믿음이라고 말한 적이 한 번도 없습니다. 더 심하게 말하면 이런 현상, 이런 이미지는 현대 기독교가 우리 자신의 어떤 얄팍한 믿음을 좀 위안 삼기 위해서 만들어낸 또 하나의 우상으로도 볼 수 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그렇게 비인격적으로 그렇게 우리에게 다가오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은 그냥 믿어지지 않는 고대의 예전의 이야기들을 마치 묻지도 따지지도 못하게 입을 틀어맞고 그냥 세뇌시키듯이 우리에게 그렇게 이 영광스러운 복음을 그런 방식으로 전해 주지 않았다는 뜻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성경에 대해 알아야 할 또 성경을 읽을 때마다 마주해야 할 분명한 진리가 있습니다. 우리 손에 들려진 이 성경은 정말 말로 표현할 수 없이 풍성하고 놀라운 하나님의 거대한 큰 구원의 이야기를, 그 하나님의 역사를 우리에게 소개하고 선포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그리고 이 역사 가운데 인간의 역사 가운데 그 하나님의 선하신 성품을 따라 어떤 일을 이루셨는지 또한 앞으로는 어떤 일을 이루실지를 바로 우리 손에 전해 주신 이 성경을 통해 우리가 알 수 있는 충분한 정보를 이 말씀을 통해 주셨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기억하셔야 됩니다. 자, 이 진리를, 중요한 것은 이 진리를 우리에게 성경을 통해 이렇게 쏟아내듯이 선포하신 이후에 하나님은 이 말씀 앞에 대한, 이 말씀 앞에 우리를 세우시고 이 말씀에 대한 우리의 반응, 이 진리에 대한 우리의 반응을 반드시 물으신다는 것입니다. 충분한 정보를 주시고 이것에 대한 우리의 인격적인 반응을 요구하신다는 것이죠.

자, 그래서 중요한 어, 인간의 모든 인간의 변함없는 인생의 과제, 숙제가 있죠. 첫 번째 자신의 인생에 대해서, 자신의 허무한 삶에 대해서, 그 무엇보다 자신의 하나님을 떠난 영적 상태에 대해서 이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비춰보고 그니까 이제 우리 어두운 곳에 플래시를 비추듯이 이 말씀이란 빛 안에서 우리의 영적 상태를 세밀하게 밝게 비춰보고 두 번째는 그렇게 비춰 보니까 내가 정말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가 필요하다. 이것을 인정하면서 세 번째 그 말씀의 진리 앞에 인격적으로 반응하는 그 한 사람에게 성령님을 통해 신비로운 방법으로 믿음이라는 놀라운 선물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게 우리 모두에게 주어진 정말 변함없는 우리 인생의 과제라고 할 수 있죠. 이 이 경험을 반드시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것이 기독교 신앙에서 말하는 믿음의 반응입니다. 그냥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믿습니다를 어, 외치는 것, 이것을 참된 믿음이라고 하나님은 말씀하신 적이 없습니다.

이런 점에서 여러분, 우리는 우리가 무엇을 과연 믿어야 할지 아니 좀 더 정확히 우리가 머리로 또한 가슴으로 또 삶으로, 삶으로 받아들여야 할 그 성경의 진리가 과연 무엇인지를 항상 정확하게 알고 배워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는 참된 믿음의 반응을 할 수 있게 되고 또한 올바른 신앙의 성장, 균형 잡히고 또 풍성한 신앙의 성장을 비로소 경험할 수 있게 되는 것이죠.

자, 그래서 우리는 사도신경을 시작으로 이 성경 전체에 탁월하게 정리되어 있는 진리, 우리 믿음의 대상이 뭐 누구고 어, 그 우리가 믿어야 할 그 주제가 무엇인지에 대해서 하나하나 잘 살펴보고 정리해야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이 지금 현재 갖고 있는 믿음은 어떤 믿음입니까? 여러분은 과연 무엇을 지금 믿고 계시고 어떤 진리의 삶을 들여서, 시간을 들여서 우리의 삶을 들여서 헌신하고 계십니까? 혹시라도 우리 가운데 아, 그냥 나는 예수님은 믿습니다. 예수님 믿으니까 예수님 믿으면 천국 간다고 했죠. 나는 예수님 믿고 천국 갈 거예요. 그런데 그 외의 것들은 아, 이게 별로 이렇게 머리 이렇게 복잡한 세상에 더 알고 싶은 생각이 별로 없습니다. 그냥 거기까지 얘기하지 마시고 그냥 난 예수님 믿고 천국 갈게요. 이 정도의 고백에 머무는 믿음을 갖고 계시다면 정말 죄송하지만 더 본질적으로 자신의 그 믿음에 대해서, 그 신앙에 대해서 의심하시고 고민하시고 주님 앞에 나아가셔야 합니다. 그런 정도의 믿음은 참된 구원으로 이끄는 믿음과는 사실 거리가 있을 가능성이 굉장히 높기 때문입니다.

자, 오늘 본문에서 말하는 참되고 온전한 믿음은 훨씬 진지하고 깊고 넓은 믿음의 반응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그 우리의 믿음의 반응이 향하고 있어야 할 내용들은 바로 우리 손에 들려 주신 성경의 모든 내용입니다. 우리가 이 성경의 진리 앞에, 진리들 앞에 머리와 가슴과 행동으로 철저하게 진지하게 반응하는 일이 없다면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참되고 온전한 믿음과 아주 멀리 떨어져 있는 상태일 수 있습니다. 여러분, 다시 한번 질문하겠습니다. 여러분이 현재 갖고 있는 믿음은 어떤 종류의 믿음이고 과연 무엇을 믿고 계십니까? 우리는 이번 기회를 통해 다시 한번 우리의 믿음을 기초부터 잘 세워가는 작업을 해야 할 것입니다.

어, 지난 몇 달 사이에도 제가 이제 몇 번 반복했던 접근인데요. 저는 오늘 설교를 포함해서 이후에 이 사도신경의 내용들을 하나하나 살펴볼 때 우리 안에 있을 수 있는 두 그룹을 염두에 두고 설교를 진행하려고 합니다. 먼저 우리 가운데 지금 여기 계신 분들 가운데 만약 나는 아직 믿음이 없습니다라고 자신을 소개할 분들이 있을 수 있습니다. 어, 잘못된 건 아닙니다. 믿음이 없이도 이 자리에 나오실 수 있다는 것 굉장한 큰 은혜의 사인이라고 할 수 있죠. 자, 그런 분들은 이번 기회를 통해 기독교에서 말하는, 성경에서 말하는, 성경이 요구하는 가장 기본적인 진리, 우리가 마주해야 할 그 영원한 진리가 무엇인지를 잘 배우고 정리하시기를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여러분이 진짜 그리스도인이 되길 원하면 앞으로 나눌 그 내용들을 믿을 것인지 거부할 것인지 고민하고 어느 순간 인생의 어느 지점에서는 여러분 스스로 진지하게 결정해야 할 때가 있어야 한다는, 그때가 올 거라는 뜻이기도 합니다. 그런 분들에게 이 사도신경의 내용들은 참되고 온전한 또 풍성한 기독교 신앙의 세계로 들어갈 수 있는 새로운 문을 여는 기회가 될 거라고 저는 확신합니다.

자, 또 다른 그룹도 우리 가운데 있습니다. 더 많은 어, 그룹, 더 많은 분들이 속한 그룹이겠죠. 만약 자신을 그리스도인, 즉 나는 믿음이 있습니다. 나는 믿음이 있는 사람입니다라고 소개할 수 있는 분들은 이번 기회를 통해 그동안 혹시라도 막연하게 또 생각했던 그 기독교 신앙 혹은 여기저기 흩어져 있던 그 머릿속에 흩어져 있었던 기독교 진리들에 대한 이해를 잘 정리하고 큰 틀에서 이해할 수 있는 그런 기회로 삼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여러분, 내가 무엇을 믿고 있는지 올바르게 확인하게 될 때 그때 우리 마음에는 정말 큰 감격과 감동이 있습니다. 어, 이렇게 한번 비유해 볼 수 있겠는데요. 우리가 그냥 막연히 그냥 막 그냥 그냥 길을 모른 상태에서 막 갈 때는 몰랐지만 내가 있는 위치, 특별히 이제 모르는 길을 갈 때 내가 있는 위치가 어디지를 지도를, 지도 위에서 확인할 수 있게 될 때 그때 우리는 우리가 이제까지 어떤 길을 걸었거, 막연하게 걸어왔을지라도 우리가 어떤 길을 걸어왔고 이제 어디로 가야 할지를 분명하게 이 지도에 의해서 볼 수 있게 됩니다. 그렇죠? 그때 어떤 마음이 듭니까? 안정감이 드는 것이죠. 이 이 과정을 거치면 비슷하게 우리 믿음의 길에도 한번 적용해 보면 이런 어떤 경험을 하게 되면 우리는 때로 정말 힘들고 지치고 어려운 믿음의 길을 걸어왔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가야 할 목표가 눈앞에 보이기 때문에 기대감과 어떤 소망 가운데 또 담대함과 안정감 가운데 다시 한번 힘을 내어서 길을 걸어갈 수 있게 되는 원리하고 비슷합니다. 감격이 있고 감동이 있는 것이죠. 여러분, 이것이 세상이 알 수 없는 힘의 근원, 믿음이 주는 강력한 위로와 격려가 되는 것입니다.

기대하기는 믿음이 있는 분들에게는 이 사도신경의 모든 내용이 그 풍성하고 강력한 이 하나님의 위로를 매주일마다 체험하고 경험하는 그런 풍성한 기회가 될 것을 저는 믿고 간절히 바라며 기도하고 또 설교를 준비하겠습니다. 말씀을 맺겠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참된 진리를 알고 믿게 될 때 그때 우리에게는 참된 자유와 감격이 있습니다. 우리에게 허락된 이 진리의 말씀을 통해 우리는 우리가 걸어가는 이 믿음의 길을 때론 어렵고 힘들지만 훨씬 더 강력하고 풍성하게 누릴 수 있게 되는 것이죠. 여러분이 모든 것의 시작이 되는 이 신앙의 기초를 잘 다질 때 그때 우리는 우리 신앙이 한 단계 한 단계에 계속해서 자라는 기쁨을 생생하게 누릴 수 있게 될 것입니다. 기대하기는 이 풍성한 경험을 우리가 함께 기대하면서 우리 모두 함께 마음을 모으고 믿음으로 나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길 간절히 소원합니다. 그래서 이 성경의 그 풍성한 진리가 생생하게 살아 있는 모습으로 우리 삶에 다가오고 그렇게 열매 맺고 우리 모두 정말 굳건한 믿음의 사람들로 다시 한번 세워지는 그 은혜가 있기를 간절히 바라고 소원합니다. 함께 말씀을 마음에 새기면서 이 시간 찬송하고 어, 또 기도하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