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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지, 그러니까 뭘 모른다는 것만큼 세상에 슬픈 일이 없습니다. 내가 왜 이렇게 열심히 사는지, 그래서 살아서 뭘 어떻게, 내가 어떤 가치를 구현해야 될지 모르겠다. 너무 슬픈 일이죠. 관계를 어떻게 맺어야 될지 모르겠다도 너무 큰 괴로움입니다.
이것을 회복해야 돼요. 이거를 회복하는 가장 좋은 길이 고전 읽기입니다. 고전은 몇 천 년을 살아남은 책이잖아요. 그 이유가 있는 거예요. 불멸의 지혜가 그 안에 있다. 근데 왜 정신의 이 불멸의 지혜는 쓰지를 않지? 이게 이제 제가 현대인에게 던지고 싶은 질문입니다.
왜 고전을 읽어야 하는가? 그리고 이제 고전 학자였지만 대학원에서 배운 고전을 세상에 나와서 쓰진 않았어요. 그러니까 제가 백수가 돼서 고전 평론가가 되는 순간부터는 대학원에서 한 번도 배우지 않은 새로운 고전과 만나서 이제 리라이팅을 하기 시작을 했죠. 어, 그러니까 박사 학위 받을 때까지 제가 습득한 고전 읽기는 아주 어떻게 보면 학습의 기초, 기초를 아주 너무 좋은 선생님들과 선배들한테 잘 받은 것 같고, 그 고전을 문원학적으로 연구하는 게 아니라 그 현대인의 삶 인식 있게 바로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
그러니까 고전은 몇 천 년을 살아남은 책이잖아요. 그러면 이것은 그 이유가 있는 거예요. 불멸의 지혜가 그 안에 있다. 그게 삶의 기술이거든요. 그러면 가장 적극적으로 활용을 해야 되고, 기술 문명은 지금 이제 구석기 시대 이래 고도화돼서 우리가 막 지금 일상에서 자유롭게 쓰고 있잖아요. 근데 왜 정신의 이 불멸의 지혜는 쓰지를 않지? 이게 이제 제가 현대인에게 던지고 싶은 질문입니다.
그러면서 잘 살고 있다면 안 써도 돼요. 어, 우리가 굳이 돌도끼 쓰지 않듯이 안 써도 됩니다. 근데 지금 현대인들은 마음이 너무 외롭고 괴로워요. 그렇지 않나요? 저는 또 제가 감의당에서 오랫동안 생활에서 나온 데이터인데, 뭐 남녀 노소, 그다음에 직업, 뭐 그 지역, 뭐 상관없이 현대인들의 마음은 다 어둡습니다. 나는 지금 너무 명랑하고 살아 있는 것 자체로 만족해, 이런 분을 저 못 봤어요.
그러니까 이게 모순이죠. 기술 문명이 이렇게 고도화됐는데 왜 마음은 이렇게 어둡고 답답할까? 그래서 이제 그 이야기를 이렇게 들어보면 내가 어떻게 살아야 될지, 내가 누군지를 모르겠다가 첫 번째입니다. 무지. 그러니까 뭘 모른다는 것만큼 세상에 슬픈 일이 없습니다. 저는 매일 그걸 느껴요. 야, 모른다는 건 너무 슬프고 괴로운 일이야. 근데 내가 누군지, 내가 왜 이렇게 열심히 사는지, 그래서 살아서 뭘 어떻게, 내가 뭔 어떤 가치를 구현해야 될지 모르겠다. 너무 슬픈 일이죠.
그게 저는 많은 병들과 연결되어 있다고 어 생각을 하고, 그다음에 관계를 어떻게 맺어야 될지 모르겠다도 너무 큰 괴로움입니다. 예. 이것도 연습을 해야 돼요. 그러면 나 자신과 대화하고 타인과 연결이 되고, 더 나와서 아, 우리가 지금 이제 명색이 화성 탐사해서 화성 이주를 꿈꾸는 시대 아닙니까? 그런데 이 우주가 도대체 우주와 나는 어떤 관계인지를 모르는데 어떻게 그게 편안할 수가 있겠어요?
그래서 이게 이제 연결망이거든요. 나 자신의 심층과의 연결망. 그다음에 이 세계의 공간적 연결망. 그리고 시간적으로 내가 어디서부터 어 와서 어디까지 여기에 왔지? 하는 이 시간적 연결망. 이것을 회복해야 돼요. 이거를 회복하는 가장 좋은 길이 고전 읽기입니다.
왜냐면 고전 자체는 어떤 것이든 고전으로 인정이 됐다. 그게 현대에 나온거든 뭐 어 시간이 언제든간에 인정됐다는 건 무슨 뜻이냐면 딱 두 가지 키워드가 있어요. 어 요렇게 정리하면 아주 쉽게 이해를 하실 텐데, 하나는 통찰력이에요. 그러니까 이 통찰이 뭐냐면 제가 말한 시공간적 연결망, 그리고 자신과 타인과의 연결망, 이것에 대해서 그 관찰에서 그거를 통달하는 거. 나와 세계를 인식하는 거, 그걸 통찰이라고 합니다. 예.
그니까 나에 대해서 알면 알수록 나는 내 삶을 긍정하게 되고, 이 세계와 타자 사회에 대해서 이해하면 할수록 그이 세계에 대해서 공감력이 커져요. 어 그래서 통찰과 공감, 이해하는 거, 그다음에 그 무언가를 터득하는 거랑 교감하는 것이 함께 갑니다. 어 근데 요것을 담고 있으면 고전이 돼요. 그게 이제에 시공간적 제약을 넘어가면 고전이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뭐 셰익스피어가 영국인들한테만 통하는 거야. 그러면 이제 영국 고전이지, 전 세계 고전은 안 되겠죠. 근데 다른 한국인이 봐도 거기서 굉장한 어 인생에 대한 깊은 이해와 그리고 인간을 굉장히 깊이 공감하면서 내가 이제 그런 사람을 이해하게 됐어. 이렇게 되면 고전이 됩니다. 그래서 이제 우리나라 춘향전도 그렇게 될 수 있고, 전 세계 고전들이 이렇게 하나로 모아서 이제 세계 고전 전집 뭐 이렇게 나오는 거예요. 예.
어디서부터 그걸 읽어야 되냐? 그 감당은 이제 어떻게 하냐면 나에 대해서 알고 싶어. 그럼 나의 무엇을 알고 싶으냐? 철저히 몸에 대해서 알아야 돼요. 그래서 동의보감을 먼저 공부를 합니다. 그다음에 내가 지금까지 왜 이렇게 살았는지를 내가 이해를 못 하겠어. 그래서 저희는 사주 명리학을 입문학적으로 활용해서 그거를 스스로 배우게 해요. 스스로 배워서 글을 쓰게 합니다. 그러면 자기가 자기를 엄청나게 이해를 하게 됩니다. 그리고 내가 어떤 그 어떤 갈망이나 이런데 매여서 그런 판단을 했는지를 이해하게 돼요. 그러면 이제 자기를 이해하는데 또 다른 사람도 이해를 할 수 있게 되잖아. 이해할 수 있는 폭이 넓어집니다.
이제 그다음엔 이 세상 삶의 이치랑 이 천지의 이치가 동시에 막라 있는 동양 고전, 그러면 주역이에요. 근데 이 주역의 효과가 저는 너무 놀라서 진짜 이거는 심리학 테스트를 해 보고 싶은데, 어 주역은 저 같은 이제 고전 학자는 동양 고전을 하다 보면 당연히 주역을 배우고, 그다음에 불경을 배워요. 거기까지 당연히 가게 돼 있어요. 그런데 청년들이 와서 이제 동의보감 배우다가 이렇게 얘기를 해 주면 주역을 배웁니다. 이게 말이 안 되는 거예요. 왜냐면 한문을 배운 적이 없잖아요, 지금 청년은. 어 그런데 한문 문화에 대해서 또 아무것도 그게 없어요. 정보가 관심도 없고.
근데 주역은 한자로 된 문화의 최정점이거든요. 그리고 일반적인 논어 같은 한자도 아니에요. 되게 되게 특이한 한자예요. 어렵다는 게 아니라 되게 이제 보면 다 놀랄 건데, 그런 한자로 된 것을 그걸 배워서 64개 384 효를 다 외워요. 이거는 다 외우는데 8시간 걸립니다. 근데 이 이런 어마어마한 걸 한다는 게 이해가 되세요? 그걸 자발적으로. 아, 자발적이 아니면 하게 할 방법도 없죠, 사실. 어 근데 그렇게 뭔가 불편한 거를 꺼리고 조금만 낯설고 이러면 어 외면하는데 익숙한 세대가 그거를 하는 걸 보고 저는 깜짝 놀랬어요. 중년 이후에는 다 아 살아서 주역은 좀 배워야지. 주역을 배우려면 3대가 복을 지어. 이런 말을 들어봐서 하는 게 뭐 자연스러운데, 저는 청년 세대가 그렇게에 매료되는 걸 보고 정말 깜짝 놀랬어요.
그리고 그 이후에 어떤 게 있냐면 굉장히 뭐라고 정신적으로 든든한 백이 생겼다는 느낌. 그러니까 자기가 인생을 살아가는데 그 온갖 종류의 컴플렉스나 뭐 혼란, 뭐 이런 불안정을 어 스스로 그걸 극복하는 걸 이제 봤거든요. 그래서 이 이 부분은 정말 이제 저도 너무 특이해서 좀 이게 시대적으로 어떻게 이렇게 됐을까 이제 그랬는데, 그다음에 이제 불경을 배우면 불경은 저는 생각을 하면 인간이 뭐 도달할 수 있는 사유의 궁극의 지경이라고 생각을 하거든요. 어 그러니까 이게 왜 그러냐면 통찰과 교감에서 불교는 무한하기 때문에 어디에도 그 한계 상황이 없어요. 예.
그러니까 통찰과 교감, 그걸 이제 불교 용어로 하면 지혜와 자비 이렇게 말하는 거거든요. 이 두 가지가에 무한대로 뻗어 있는 게 이제 불경인데, 그 불경도 사실 굉장히 이제 처음 접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런데 이것도 그 MG 세대가 굉장히 빨리, 굉장히 강렬하게 접속을 해요. 그리고 굉장히 뭐라 할까? 자기 마음을 바로 이렇게 컨트롤을 해요. 그걸 가지고. 그니까 그 거울에 자기를 비춰보는 행위를 한다는 게 되게 놀라운 거예요. 다른 공부는 그렇게 직접적으로 그런 걸 주지 않습니다. 아, 재미있는 공부, 어려운 공부를 해냈어. 이렇게 하지. 내가 저 거울에 비춰서 어떻게 살고 있지라는 질문을 잘 끌어내기는 어렵거든요. 불경은 뭐 뭐 텍스트가 많아서 죽을 때까지 읽어도 다 못 들 못 읽을 정도지만 아주 작은 걸 읽었을 때도 그래서 이제 이 공부를 점점 더 많이 이제 하게 됐죠. 자연스럽게 2080이 이 공부는 같이하게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제 저는 아 지금이 시대는 어지간한 뭐 정보나 어지간한 지식으로는에 청년들을 감동시킬 수가 없고 어떤 강한 울림을 주려면 최고의 이제 인류 최고의 스승들이 와야 되는구나. 예. 그 정도 되면 진짜 어 자기를 그 에고라 그럴까 뭐 이런 자기를 이렇게 묶어 놨던 거를 이렇게에 좀 풀고 마음을 여는 이제 그런 과정을 많이 목격을 했습니다. 그래서 이제 이 고전을 바탕으로 해서 다른 뭐 근대성 아니면 니체, 스피자 뭐 이런 이제 서양 철학의 아주 그 어떤 어 최고봉들, 이런 이제에 현자들을 또 만나고 제가 최근에 또 놀란 거는 이제 간디 자서전이었는데 간디의 책이 그렇게 많이 번역돼 있는 것도 저는 놀라웠어요. 간디에 대해서 별로 사람들이 생각을 안 하는 거 같았는데, 정말 우리나라 출판 문화에 제가 경의를 표했습니다. 이 책을 누가 읽으라고 이렇게 두꺼운 한 권이 거의 1000 페이지인 전집을 세 권씩이나 번역을 해 두셨더라고요. 그런 거가 정말 와, 이거는 어 우리를 위한 어떤 천지의 정말 복인가 축복인가 이런 느낌이 들 정도로.
근데 간디를 읽고 청년들이 정말 놀랍게 반응을 해요. 어, 그 정치인 이런 게 아니야. 인도 독립에 뭐 관심이 있는 것도 아니고, 뭐 어떤 뭐 비폭력 저항 운동에 관심이 있는 게 아니라 간디의 그 멘탈과 생활, 그거를 보고 바로 자기 자신을 이렇게 예, 일상의 패턴을 바꾸려고 하고 어, 담배를 끊으려고 하고 막 또 단식을 해 보려고 막 하고. 이런 또 이제 놀라운 어, 경험을 했습니다. 예.
그래서 뭐 요런 걸 바탕으로 해서 이제 정말 인류의 그 위대한 현자들, 그러면 이제 붓다, 장자, 어 소크라테스 뭐 이런 정말 3000년 동안의 이제 인류의 그 인식을 정복과 약탈에서 지혜와 평화로 바꾼 그 현자들의에 이야기, 고전이고 하나 이제 덧붙이면 어 이제 서양 고전은 사실이 물리학적으로 너무너무 이제 고도화돼서 지금 서양에서 고전을 찾는다 그러면 저는 양자 역학과 상대성 원리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아인슈타인이나 그다음에 양자 역학의 이제 대가들의에 그 이야기나 그거를 정리한 책들을 보면 굉장히 놀랍습니다. 어 그 근데 그 책 안에 동양의 지혜가 다 크로스돼 있어요. 어 그래서 어 정리를 하면 무엇이 고전인가면 통찰력을 주고 세상과 교감할 수 있게 해 주는 거, 그런 길을 열어 주는 것이에 고전인데, 동양은 3000년 전에 이런 이제 지혜에 도달을 했고, 어 이제 서양은 지금 양자 역학과 상대성 원리로 이제 그 이제 물질적 세계에서 그 길을 열고 있다. 어, 그러니까 어, 이 고전을 이렇게 보면 아, 인간은에 연결, 통찰, 교감을 통한 연결을 통해서만이 자유를 얻을 수 있어요. 인간의 궁극의 비전은 자유거든요. 그 자유를 향해 가는 길은 그거밖에 없어요. 뭐 슈퍼맨이 되고 신 같은 능력을 갖고 이 세상의 모든 재산을 가지고 있어서는 절대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러면 이제 통찰과 교감이 담긴에 텍스트가에 고전인데, 그 고전이 동양의 지혜와 서양 물리학의 어 그 아주 놀라운 발견들, 법칙들, 이것이 이렇게 예 크로스되고 있다. 그러니까 이렇게 이제 좋은 시절에 왜 고립될까? 어 연결될 수 있는 최고의 기회. 그러니까 그 차원에서 한번 보면 어 모든 인간이 정말 자기 안에 있는 연결 본능을 일깨워서 어 이 세계와 어 무한히 무한한 어 교감을 나눌 수 있는 그런 시대라고 저는 생각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