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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렐루야. 네. 오늘 말씀에 진정한 경영은 내가 악을 갚으려고 하지 않고 여호와를 기다리는 것이라고 하십니다.
여러분, 우리가 사내립의 그 사로잡힘의 환경에서도 오늘 정말 잘 기다리기를 소망합니다. 하나님의 나팔 소리가 들릴 때까지, 주님 구원하실 때까지 우리가 잘 기다리기를 소망합니다. 오늘은 우리 시작하면서 한번 다 같이 자리 일어나셔서 힘차게 우리 한번 찬양하면서 시작했으면 좋겠습니다. 우리 크게 박수 치시면서 함께 하나님의 나팔 소리가 들 때까지, 구원에 이를 때까지 우리가 잘 기다리게 하여 주시옵소서. 함께 고백하며 찬양합시다.
하나님의 나팔소리 하나님의 나팔소리 천지 진동할 때에 예수 영광 중에 구름타시고 천사들을 세계 만군 모든 곳에 보내 구원받는 성도들을 모으니 나팔 때 나팔 때 나의 이름 나팔 발불 내 나의 이름 나팔 내 나의 이름 부를 내일 잔치 찬여하게 구경 속에 잠자던 자 그때 다시 일어나 영화로운 부활 승리 얻들리 주가 택한 모든 성도 올라가 주의 얼굴이 아멘팔 나의 이름 나팔 내 나의 이름 나팔 내 나의 이름을 부르게 잠치 찬여하는 주님 다시 오실 나를 주님 다시 오실 나를 우리 알 수 없으니 항상 기도하고 깨어 있어서 기쁨으로 보좌 앞에 우리 나가서도록 그때까지 참고 기다리 주님 우리가 잘 기다리겠습니다. 나팔 불 내 나의 이름 나팔 불 내 나의 이름 나팔 불 때 나의 이름 부를 때에 우리 3절로 다시 한번 고백할까요? 주님 다시 오실 날 주님 다시 오실 날을 우린 날 수 없으니 항상 기도하고 깨어 있어서 기쁨으로 들어보자 앞에 우리서 그때까지 그때까지 인내하고 기다리겠네 부 나의 일팔 부 나의 의 나팔 내 나의 이름을 부를 때에 잠시 한번더 나팔 때 나팔 때 나의 힘팔 때 나의 힘의 힘을 내 창여하겠네.
내가 매일 기쁘게 내가 매일 기쁘게 순례에게 아은 주의 팔이 나를 함고하니요. 내가 주의 극복된 상된 주의 영이 함께합니다. 성령이 계시네. 성령이 계시네. 할렐루야 함께하시네. 좋은 일을 얻으며 기뻐하는 것 주의 영이 함께하리 전에 죄에 빠져 저의 죄에 빠져서 평안함이 없을 때 예수 십자가의 온동이 그 발 아래 엎드려 참된 평화 얻음은 주의 영이 함께하리라 성령이 함께하시네. 성령이 되시네. 할렐루야 함께 하시네. 기뻐하는 것 주의 영이하니 주님 나와 동행하시고 나와 동행하시고 모든 염려하시니 나는 수태새와 같이 이쁘다 내가 기쁜 마음으로 주의 뜻을 행함은 주의 영이합니다성이 계시네. 계시네. 할렐루야 할렐루야. 함께하시네. 좋은 길로 길을 얻으며 밤낮 기뻐하는 것 주의 영이 함께하 성령이 계시네. 성령이 계시네. 할렐루야 함께하신 우리 한도 성령이 계시네 성령이 계시네 할렐루야 함께하시네 길을 걸으며 길을 거르며 기뻐한 것 주의 영이 함께하 조금은 길을 걸으며 조금 길을 걸으며 기뻐하 한 것 주의 영이 함께합니다. 예. 주님 믿습니다. 우리에 가는 길을 오직 주님만이 아십니다. 주가 보이신 생명의 길 나 주님과 함께 상한 마음을 드리며 주님 앞에 나가리 나의 의로움이 되신 주 그 이름 예수 나의 길이 되신 이름 예수 나의 길 오직 그가 하시나니 나를 단련하신 후에 내가 정근 같이 나옵이라. 주가 보이신 생명에게 주가 보이신 생명에게 나 주님과 함께 사함을 드리며 주님 앞에 나가리 나는 의로움이 되신 주 그 이름 예수 길이 시 예수 나의 그 길 오직 그가 하시니 나를 하신 후에 내가 천근 다시 나하 처음부터 한번 더 고백할 수 있죠. 주가 보이신 생명의 길로 주가 보이신 생명의 길 나 주님과 상한 마음을 드리며 주님 앞에 다니 주님 우리의 가는 걸음을 오직 주님만 하십니다. 우리가 주님만 따라가길 소망합니다. 예수 오직 그가 하시나니 나를 달려신 후에 내가든지 나이 나의 길 오직 그만하다 길 오직 그하시 주님 우리가 잘 기다릴 수 있도록 아멘 가 든지하오리 우리 목소리 높에 날 길 오직 그다 하시니 나하시 내 속 주님이 나라의 기 주님이 하십니다. 우리가 잘 기다릴게 하여 주시옵소서. 신실하신하신 하나님 신실하신 주 나의 주 하나님을 신실하 우리 신실하신 하나님 두 손 높이 들고 신실하신 실신하신 주님이 나라를 경영하여 주시옵소서. 주님 우리가 주님의 길을 따라가겠습니다. 주여 나의 하나님을 신실하신 우리 마지막 한 번 더 신실하신 주님 신실하신 하나님 신실하신 주하신 신실하신 주님. 그래서이 시간 한번 통성으로 기도하실 때에 주님이 나라의 길을 주님만이 아십니다. 주님이 나라를 경영하여 주시옵소서. 아멘.
우리는 오직 주님께서 인도하시는 대로 사로사로잡히라고 할 때 사로잡히고 주님 멸망하라고 할 때 멸망하고 주님 일어나라고 할 때 일어나는 주님의 길만 따라가게 하고 인내하며 기다리게 하여 주시옵소서. 시간 주여 한번 외치고 통성으로 기도합니다. 주여 하나님 주여 하나님이 나라를 경영하여 주시옵소서. 주여 하나님 저희가 잘 기다리게 하여 주시옵소서. 여호와 하나님 구원하실 때까지 주님 우리가 잘 격하게 하여 주시고 잘 사로잡하게 하여 주시고 아버지 하나님 하님의 악을 내가 해결하려고 하지 않고 주님께서 해결하실 때까지 기다리게 하여 주시옵소서.
하나님 아버지, 마지막 날에 예루살렘과 같이 세상의 끝없는 탐욕과 경쟁의 웅덩이에서 새벽예배 기도하는 이 시간이 영이 재건되는 포로의 바벨론 재건 기간임을 깨닫게 해주시니 감사합니다. 모든 때가 아름답다는 전도자의 고백처럼 후회가 있는 어제의 골짜기와 불안한 미래에서 참 평안을 주시옵소서. 영원의 하나님 사랑을 깨닫고 오늘의 바벨론 포로 생활을 아름다운 때로 해석하게 해 주시옵소서. 아멘. 평생 인생 끝에 율법 아매어 참 자유를 모르고 끝날 인생이었지만 말씀이 들리는 공동체에서 꿀과 같은 말씀 해석으로 내 기복에서 이타적 사명을 깨닫고 믿음의 공동체에서 잘 붙어 갈 수 있도록 도와주시옵소서. 아멘. 아버지는 베트남전 참전으로 인한 고통으로 의사이지만 마약으로 고통의 때를 보냈지만 그런 불화 가정이 싫어 집 떠나 공부로 세상을 향해 나간 잊혀진 기억을 양육으로 깨닫게 되었습니다. 자녀의 과잉 행동과 조증의 육신의 환경이 나를 죄에서 깨닫게 깨어나게 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임을 깨닫게 됩니다. 내 안에 육신을 죽이고 영을 따라 행하게 도와 주시옵소서. 아멘. 내 자녀와 사건을 통해 새 사명을 깨닫고 갈 곳이 있는 하나님 나라 시민의 정체성으로 살아가게 해 주시옵소서. 아멘. 청소년, 청년 자녀들이 부모가 만난 하나님을 한 믿음으로 믿고 믿음의 원칙 안에서 믿음 생활하게 해 주시옵소서. 아멘. 장차 올 환난이 복음이라 하셨는데 이 나라를 눈에 보이는 전쟁이 아닌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선한 계획을 믿음으로 바라볼 수 있도록 여자 방식으로 예배보는 환경에 기쁨으로 있을 수 있도록 해 주시옵소서. 아멘. 동성애와 낙태의 세상에 옳고 그름에서 돌이켜 생명에 이르는 경외를 말씀 따라 세워 나갈 수 있는 나라 되게 해 주시옵소서. 아멘. 청년들이 자기만의 방에서 나와 말씀으로 교재하고 믿음으로 결혼하고 자녀를 낳아 교회를 사랑하고 나라를 사랑토록 해 주시옵소서. 아멘. 나를 추구하는 세상에서 복음의 말씀만이 유일한 길임을 깨닫는 교회가 곳곳에 세워지는 그런 나라가 되게 해 주시옵소서. 아멘. 세상 곳곳에 인간의 악과 탐욕으로 자연히 불타고 전쟁으로 힘없는 이들이 이유를 모른 채 죽어가고 있습니다. 씨앗이 되어 복음 전하시는 선교사님의 강나라에 은혜 내려 주시옵소서. 오늘 말씀 전하시는 하늘비정교회 장충만 목사님을 통해 아침 이 시간이 진정한 경영으로 나를 나의 연약함을 깨닫고 하나님의 영으로 채워지는 시간 되게 은혜 베풀어 주시옵소서. 아멘. 예레미야처럼 사명 감당하고 계시는 김영제 담임 목사님 영적 육적으로 은혜 내려 주시고 늘 깨어 있을 수 있도록 강건함을 주시옵소서. 아멘. 말씀의 구속사가 강에서 바다로 흘러가도록 도와주시옵소서. 아멘. 이 모든 것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할렐루야.
예, 여러분. 예. 새벽 기도하니까 너무 좋죠? 예. 이렇게 아침에 기도할 수 있는 게 이렇게 너무 기쁨인지 몰랐어요. 힘들 때일수록. 아, 기도가 참 못 되는구나. 예. 우리가 오늘 이제 어 경영이라는 거 이렇게 이제 모여서 함께 이렇게 해야 되는데 아 이렇게 큐티 목회를 이제 강에서 바다로 나가는 그 현장을 여러분들이 이렇게 보고 계시잖아요. 그죠? 그죠? 네. 예. 그니까 여러분들의 이렇게 나눔과 이 모든 것들이 다른 또 이제 성도들을 살리고 한국 교회를 살리는 데에 그렇게 이제 어 여러분들이 그 눈물과 기도가 이렇게 지금 열매를 맺는 거 같아서 너무 감사해요. 아, 그러니까 우리는 이제 아, 이렇게 구속사로 이렇게 열왕기를 그냥 또 열기 상하 뭐 다 이렇게 사무엘 상하를에 또 선지서 예레미야, 에스겔을 진짜 토시안에 안 빠지고 읽어 왔잖아요. 읽어 오니까 지금이 시대를 우리가 해석할 수가 있는 거예요. 맞죠? 예. 그러니까 다 힘든 코로나 때 우리는 해석을 했기 때문에 예 우리가 줄 것만 있는 인생이 되었는데 그러니까 우리가 이렇게 붓고 떨어지고가 문제가 아니고 예 그 전까지 너무너무 애통절통하면서 기도하지만 예 시험 결과가 딱 나오면 그때부터는 해석을 잘해서 해결이 돼야 되는 거예요. 아셨죠? 예. 그래서 이때가 우리가 아주 진가가 나타나는 때가 구속사가 이런 때인 거예요. 시험 결과가 나왔거든요. 그 우리가 해석을 해서 모든 사람들에게 해결을 보여 줘야 되는 책임이 여러분들한테 있는 거예요. 예. 우리가 너무 이제 상실한 마음을 가지고 있는데 예. 왜냐하면 우리는 오직 그 차별금지법 오늘 그거밖에 관심이 없어. 차별금지법 그거는 생명이 끊어져 가는 거니까. 근데 여러분 보세요. 이 차별금지법에 중요한 이슈가 오직 성전한 동성애 그거밖에 없잖아. 차별금지법의 내용이 오직. 그러니까 이거를 온 국민에게 동성애를 찬성하냐 반대하냐 이렇게 물어봤으면 너무 쉽잖아요. 근데 이걸 차별금지법이라고 해 놓으니까 사단이 언어를 이렇게 갖다 쓰는 거예요. 예. 그러니까 정령 죽으리라 그러는데 죽을까 하노라 하니까 계속 하나님 의심하게 되잖아. 예. 차별이 왜 나쁜 거야? 다 평등한 건데. 여기서부터 지금 계속 다 의심을 하게 되는 이제 이걸 우리는 사단의 수법을 이제 알아야 되는 거예요. 그러니까 부부간에 싸울 때 이럴 때도 이렇게 머리가 좋고 이런 사람들은 한 얘기만 계속 하는 거예요. 뭐 다른 얘기 안 들어. 차별 차별하는 거야. 차별하 이러면 다 어 차별하는 거구나. 이렇게 이게 20년을 계속 이렇게 오다 보니까 여러분들도 다 세뇌가 돼 가지고 차별이 왜 나쁘냐 이렇게 되는 거예요. 그래서 애통이 이제 되니까 우리는 그래도 우리의 기도를 주님께서 멸시치 않으시기 때문에 정권의 문제가 아니고 아 우리 동성애를 왜 막아야 되냐? 생명이 단절이 되니까 이날의 인구 절벽이니까 나라가 없어지게 생겼으니까 이거 계속 얘기해 왔죠. 얘기해 왔죠. 네. 그러니까 우리 제 우리 구속사 설교를 듣고도 예. 우리들 교회에서 이게 이해가 되지 않으면 그건 아닌 거예요. 예. 그러니까 우리는 이제 모든 때는 아름다운 거예요. 이거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그 정말 북 이스라엘은 계속해서 승승장구해요. 금성아지 섬기니까. 남유다는 질이 면렬해요. 질이 면렬해요. 그래도 남유다에서 개혁이 일어나요. 알았어요? 예. 그러니까 예. 우리가 지금은 이제 구속사로 우린 전쟁이 나고 안 나고 이런 게 문제인가? 문제가 아니고 구원을 받아야 되냐 안 받아야 돼? 구원을 받아야 된다. 이 생각을 여러분들이 가지고 어디서 회개를 해야 될 것인가? 왜 하나님께서 이 사건을 이때 이렇게 허락하셨을까? 그리고 다 회개. 회개 언제나 언제나 문제는 나에게 있는 거죠. 그죠? 예. 그래서 우리는 회개를 해야 되는 거예요. 아유, 이사 부르짖었습니다. 그러면 이제 너무 또 이제 해석 잘하라고. 우리도 교회 파이팅이죠. 해석 잘해서 예, 목장에서 예. 그냥 나누어 줄 것만 있는 인생 되시기를 바라고요.
아유, 오늘은 또 이제 에, 오늘부터는 이제 바다를 건너온 가방 끈이 긴 목사님들의 이제 그 목세 얘기를 이렇게 들을 건데 예, 우리 장충만 목사님은 이제 아, 아시다시피 보기만 해도 에너지가 이렇게 이제 나오는데 세종 그 중문에서 그 아, 한 30명에서 5년 동안에 한 500명으로 부흥을 시켰는데 그것이 이렇게 큐틴으로 목세로 예 그래 가지고 하늘비전 교회로 아이 담임 목사님으로 청비궁 받아서 10월 달에 오셨어요. 큰 교회예요. 옛날에 이렇게 오관성 목사님이라고 유명하신 예 그 교회에 후임으로 가셨는데 10월 달부터 부임하자마자 큐티인을 쓰셔 가지고 예월 달에는 30명의 사역자와 리더십들이 다 와서 목세를 참석을 하시고 그리고 여기 아주에 이렇게 이렇게 큰 교회인데도 이렇게 진심이 있으시니까 이렇게 오셔 서 저는 이제 한국 교회에 아이 큐티 목회가 얼마나 진심인지 사실은 대선 때문에 갑자기 이렇게 목사님들 섭외했는데 아 이거는 또 탱크 목회를 하나님께서 이렇게 보이시는 기회가 됐구나. 그리고 또 제가 이번에 특별히 이렇게 목회를 잘할 수 있는 비결에는 사모님들이 먼저 진심이 너무 있었어요. 오신 분들이 한결같이 사모님들이 너무 눈물 뿌려 기도하면 그다음에 목사님들이 그래고 이제 하시기 시작하셔 가지고 아 그래서 이 정말이 사모님이 너무 중요한데 오늘도 장 목사님의 사모님 어떤 간증을 하시는지 우리가 들어보고 장 목사님의 말씀을 듣겠습니다. 박수 안녕하세요. 하늘비전 교회를 섬기고 있는 이영 사모입니다. 저는 가정인 불화 속에서 낮은 자존감에 애정 결핍으로 늘 비교하고 남을 시기하며 살았습니다. 그래서 못태 신앙이었지만 인정받기 위해 세상적인 성공을 쫓았습니다. 대학이 들어갈 때쯤엔 국정원이나 FBI에 들어가 권력을 갖쳐 돈과 명예까지 어쩌고 만먹고 그 교만으로 미국 유학까지 갔습니다. 그러나 이생의 자랑과 세상 정욕을 쫓은 결과는 혈개와식이 음란에 물든 방탕한 삶이었습니다. 미국에서 유학할 때 방탕하게 음주가물을 즐기며 저는 제 인생의 주인공이 저인 줄 알고 마음대로 살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런 저를 너무 사랑하셔서 제 악을 제거하시려고 여러 번 상하게 때리셨습니다. 술을 좋아하다 보니 주사가 폭력인 남자 친구에게 자주 얻어맞고 한 번은 그가 제 목을 조르는 바람에 입에 거품을 물고 오줌까지 지르며 천국 문턱까지 다녀왔습니다. 그 사건으로도 정신을 못 차리고 술을 못 끊자 주님은 저를 음주운전으로 걸리게 하시어 유치장에서 하룻밤을 보내기도 하셨습니다. 그 모든 게 하나님의 징계와 사랑의 간섭이었는데도 저는 깨닫지 못하고 교회 생활을 하면서도 이중적인 삶을 살았습니다. 겉으로론 선교사 하겠다고 청년부 회장까지 맡고 차량 봉사도 했지만 저의 죄중독은 끊지 못했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런 벌레 같은 저에게도 여전히 은혜를 베풀어 주셔서 귀한 남편을 만나게 하셨습니다. 사실 외모 지상주에 사자만 만나겠다는 교만으로 제 마음대로 결혼을 하려고 했는데 하나님은 저를 사랑하셔서 목사를 만나게 하셨습니다. 그 당시 제 외모와 스펙 기준에는 많이 부족했던 남편이었지만 유명한 아버지를 제가 너무 좋아했기에 후한 점수를 주어 결혼했습니다. 그런데 앞불사 아버지가 연예인데 아들에게도 연예인병이 있어서 저는 신혼 생활이 쉽지 않았습니다. 자아가 강하고 인정 욕구가 심한 두 사람이었기에 맨날 싸우고 부딪혔습니다. 더군다나 저는 친정 아버지의 오랜 외도로 자존감이 낮고 의부증이 심해서 모두에게 친절하지만 집에서는 자기밖에 모르는 일중독 남편이 너무나도 미었습니다. 저 때문에 고생하는 남편이 아니라 남편 때문에 손해 보고 고생한다는 피해 의식에 사로잡혀 신혼 생활부터 불행했습니다. 시어머님의 뇌출혈로 진행되던 영주권을 접고 갑자기 한국에 들어오게 되었고 저는 돌아와 한국 사모라는 광야를 맞닥뜨리게 되었습니다. 정말 그때부터 심각하게 제 마음대로 되는 것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미국물을 오래 먹은 저에게 한국 사모로 사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예의 없는 몇몇 성도들이 진상들로 보였고 그들의 민폐가 갑질로 느껴지며 억울함이 끝도 없이 몰려왔습니다. 미국에선 전문직으로 인정받던 제가 이제는 집에서 아이만 보는 아무것도 아닌 존재가 된 것 같았고 교회에선 승지를 참느라 은혜가 아닌 분노로 눈물을 흘리기도 했습니다. 남편은 착한 아이 증후군에 연예인병이 심해서 제 편은 안 들고 맨날 성도 편만 들어서 저는 우울과 분노만 커져 갔습니다. 저는 시도 때도 없이 미국으로 돌아가자고 졸랐고 그게 안 된다면 팔에다가 문신을 새기겠다고 그래서 예배 안내할 때마다 무시무시한 문신을 들이며 저를 괴롭히는 성도들을 겁주고 싶다고 협박했습니다. 말이 통할 리가 없던 남편에게 질려서 셋째를 가졌을 땐 낙태와 이혼을 하고 미국으로 도망가려고 제 마음대로 또 계획을 세웠는데 주님은 미국을 내 집처럼 들락날락한 저에게 갑자기 이유 없는 미국 비자 거절을 선물로 주셨습니다. 미국의 길까지 막히자 저는 마지막 희망인 한국 의사 면허를 저의 구원의 통로로 바라보았습니다. 그러나 저를 너무나 사랑하시는 주님께서는 너무나도 감사하게 저를 9년 동안 매년 어김없이 불합격시켜 주셨습니다. 직하 시험은 매년 정기적으로 보는 거냐며 수치와 조롱도 받았지만 그 시간 동안 저는 실패와 좌절과 저의 무능을 철저히 경험했습니다. 제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주님 없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존재라는 걸 처음 깨달았습니다. 저는 그 무능력하고 우울했던 10년이라는 광야 시간이 제게 주시는 가장 큰 선물이었다는 것을 큐티를 하면서 깨닫게 되었습니다. 제가 가는 길을 제 마음대로 계획하며 안 될 때에는 부모님 탓, 남편 탓, 환경 탓을 하며 원인을 다른 곳에서 찾았지만 정작 죄의 뿌리는 제 안에 있었는데 그걸 전혀 몰랐습니다. 큐티로 조금씩 마음이 말씀이 들리기 시작하자 제 주변에 사람들이 저 때문에 고생하고 있다는 말씀이 이해가 되기 시작했습니다. 아무것도 모르면서 상처를 핑계 삼아 죄를 짓고 살던 제게 주님처럼 남편도 가족들도 모두 저를 기다려 주었습니다. 말씀으로 제 곁에 계신 주님을 다시 만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아직도 교만하고 무지하고 갈 길이 멀지만은 상처와 교만으로 뾰족했던 저를 물렁물렁한 아메바로 만들어 가시는 주님만 바라보며 오늘도 주님만 붙들고 살고 싶습니다. 감사합니다. 할렐루야.
하늘비전교회 장충만 목사입니다. 어, 저는 유명한 아버지의 그늘 아래 의로운 척, 착한 척, 거룩한 척, 모든 가식의 가면을 척척 쓰면서 자라오다가 어 26살 때 두꺼워질 대로 두꺼워진 제 가면을 하나님께서 벗겨 주셨고 어, 그간 숨겨왔던 저의 모든 죄의 책임을 저에게 물으시어 몇 차례 사고로 인해서 큰 부상을 입게 됩니다. 어, 갈비뼈도 두 개 부러지고 척추도 세 개 부러지고 뇌진탕의 기억 상실까지 겪으면서 어, 힘든 시간을 보냈지만 저의 가면에 가식의 가면, 그 죄악의 가면을 벗은 그날 비로소 저는 자유함을 선물 받았습니다. 그래서 지금까지 저는 어, 최선을 다해서 보너스 인생을 살고 있습니다. 죽음의 문턱에서 얻은 자유함으로 저는 앞으로의 남은 남겨진 모든 인생이 죄 없이 의롭게 살아가게 될 줄 알았지만 성공과 인정에 눈이 멀어 예 연예인병 중에 걸려서 나의 몸을 혹사시키고 그리고 또 가족들을 혹사시키고 나만 믿고 따라온 아내 인생까지 혹사시켜 가면서 하나님의 일이라는 괜찮게 보이는 핑계로 물불 가리지 않고 앞만 보며 달리고 있습니다. 21년 예목원 수업을 들을 때에 어 저 자신을 혹사시키는 그런 괄호에 그게 달했습니다. 급기야 저의 뇌 기능의 정상적인 작 뇌 기능이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않는 그러한 상태까지 다다르게 되었습니다. 수면 부족과 그릇 과도한 에너지 소비로 교회 개척 4년 만에 내 몸에 있는 모든 에너지를 다 소진하였고 제가 뇌 기능에 이상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제가 이렇게 말을 하면 어 지금 이렇게 말을 하고 있으면 다음 할 말이 머릿속에서는 자동으로 이렇게 어 프로세싱이 돼야 되는데 제가 말을 하는 과정 속에 제 뇌의 그 필름이 뚝 가다가 뚝 끊김을 느꼈습니다. 그러니까 제가 했던 말을 또 하고 또 하고 하는 그러한 신기한 경험을 하게 되었지요. 어, 극심한 괄호로 인한 뇌 기능 장애라는 그러한 이야기를 듣고 2주 동안 저는 아무 일도 할 수 없이 매일 수액을 맞으면서 체력 보충을 하려 했었지만 그 쉽게 체력이 잘 올라오지 않았습니다. 어떤 분이 그러시더라고요. 그거 굉장히 위험한 상태였다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정신 못 차리고 무슨 영광을 위해서인지 성공과 인정의 눈이 멀어 저 자신을 혹사시키는 죄인입니다. 지난달 28일 시편 38편 말씀을 통해서 다윗이 자신의 죄를 고백하는 모습을 묵상하였습니다. 시편 38편 3절 나의 죄로 말미암아 내 뼈에 평안함이 없고 4절 내 죄악이 내 머리에 넘쳐서 무거운 짐 같으니 내가 감당할 수 없고 5절 내 상처가 썩어서 악취가 나는 이유는 내가 우매한 까닭이고 13절 내가 못 듣는 자같이 듣지 아니하고 말 못하는 자같이 입을 열지 아니하고 18절 내 죄악을 아뢰고 내 죄를 슬퍼함이다의 모든 고백들이 온통 저의 의 고백이 되었습니다. 말씀을 묵상하면서 나와 가족을 죽여가는 그 열심이 과연 무엇을 위한 것인가? 저는 저를 살리고 우리 가족을 그리고 제가 맡은 사람들을 다 살리는 길이라고 생각을 하였었는데 그날 다시 한번 나와 내 가족을 죽여가는 열심이 과연 무엇을 위한 것인가라는 질문에 답을 얻게 되었습니다. 여전히 나의 성공과 나의 인정에 있음을 발견하였습니다. 만 40세에 큰 교회 담임 목사 청빙을 받았음에도 여전히 온몸을 혹사시켜 가면서 몸이 망가져감을 보면서 열심히 잘하고 있다고 생각하며 터진 입술을 자랑으로 여겨온 사람입니다. 오늘 말씀을 준비하면서 많은 것들을 이렇게 되돌아볼 수 있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만약 제가 큐티 목회의 길을 만나지 못했더라면 여전히 뜻없는 열정이 나를 나의 의로움이 되었을 것이고 나의 자랑이 되었을 것이고 죽어가는 가족들을 바라보며 목회자의 마땅한 희생이라고 큰 소리를 치는 사람이 되었을 것이 분명했기 때문입니다. 어 저는 그 목회 세미나를 통해서 그리고 우리 그 큐티 목회를 통해서 어 많은 간증들이 이렇게 저에게 선물로 주어 주셨는데 그중에 아주 따끈따끈한 간증을 하나 나누려고 합니다. 어 근본 제가 이제 목사님 소개해 주신 대로 작년 10월 달에 제가 이제 하늘비전 교회 부임을 하고 저희는 이제 59주년이 되고 60주년을 향해 바라보는 교회입니다. 우리 교단 내에서 아주 건강하고 이렇게 튼튼한 그러한 이제 장자 교회인데 어 저희 교회 들어가서 보니까 그니까 그 큐티 큐티 목회를 쭉 해 왔던 저의 마음속에 그들의 얼 눈으로 보이는 그런 포장지보다 안에 보이는 그런 상처들이 너무 많이 보이더라고요. 그래서 우리 교회도 이제 이렇게 큐티 목회로 우리가 좀 전향했으면 좋겠다 하여금 근본 이제 지난 달이죠. 5월 달 띵크 목회 세미나에 저희 부교육자 전원 참석을 동료하였고 어 그분들이 이제 목 목세에 참석하고 그리고 지난 월요일이죠 엊그제 교회 월요일 날 어 띵크 양육을 받으시고 그리고 수요일 날 설교하시는데 목사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더라고요. 저는 양아칩니다. 큐티 목회는요. 내가 보지 못했던 나의 죄를 보게 하고 남들은 알지 못하고 깨닫지 못하는 죄를 깨닫게 하는 힘이 있습니다. 저 역시 큐티 목회를 만나면서 제가 죽기 전에 먼저 나의 죄를 돌아보게 되고 잘 고쳐지지는 않지만 오늘도 말씀의 거울에 비추어 하나님과 성도님들 앞에서 하나님과 성도들 앞에서 나의 죄를 고백하고 있습니다. 저는 요즘 다윗을 참 많이 묵상하고 있습니다. 바세바 간통 사건이 언제 일어나게 되었는지 그가 힘없고 연약할 때가 아니라 그가 쫓기고 도망다닐 때가 아니라 그의 모든 상처들이 별이 되었을 때 그의 모든 눈물들이 열매가 되었을 때라는 사실을 바라보게 됩니다. 최근에 이렇게 김영제 목사님을 제가 한 번씩 이렇게 뵐 때마다 이런 말씀을 이렇게 스쳐 지나가면서 이런 말씀을 하세요. 어유, 우리 장, 우리 장 목사님 이렇게 하는 일마다 다 잘돼서 어떻해 하시더라고요. 이런 거 좋아하시는군요. 이렇게 웃으시면서 하시는 말씀이 제게는 얼마나 무섭고 무겁게 다가오는지 모르겠습니다. 제 마음에는 이미 주황색 불이 켜졌습니다. 지금 이 자리까지 높여 주신 하나님 앞에 다시 한번 그 목적을 잃어버린 열정이 열정의 죄악을 오늘도 다시 한번 고백합니다. 허북 교회를 위해서 여러분들 기도하실 때에 정말 잠깐이라도 저를 위해서 그리고 허북 교회 목회하시는 목사님들을 위해서 기도를 부탁드립니다. 뜻없는 열정이 아닌 한 영혼을 위한 열정으로 나의 성공과 인정을 위함이 아닌 잃
소망합니다. 아멘. 하나님의 말씀과 질서를 굳게 붙잡고 기준을 외칠 수 있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아멘.
하나님께서 급하게 근본 특세를 일으키신 목적이 무엇이겠습니까? 우리가 여전히 타인이 되고 외인이 되어서 세상에 흘러가는 대로, 그 흐름에, 그 흐름에 맞게 따라가는 인생이 되는 것이 아니라, 혼돈의 시기에 대한민국의 한 사람으로서 나라와 민족을 향한 하나님의 마음을 바로 아는 한 사람으로서,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의 은혜로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으로서, 다시 한번 이 나라와 민족, 민족 정신을 바로 세워가는 우리들이 되는 것, 그것이 목적 아니겠습니까? 가만히 보고만 있는 것이 아니라, 염려만 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마음을 모아 부흥과 회복을 위해 함께 기도하기 위해서 우리가 이 자리에 모여 있는 것 아닙니까?
우리 믿음의 선배님들의 기도는 항상 나라와 민족을 위해 짊어지는 기도였습니다. 모세 아시죠? 하나님의 심판 앞에서 나의 이름을 생명책에 지워 달라고. 민족이 없는 나는 존재의 이유가 없다고. 다니엘 아시죠? 기도를 하면 죽는다는 것 뻔히 알면서도 목숨을 걸고 황폐해져 버린 그 나라와 민족을 향해 회복을 위해 기도하였고, 에스더 아시죠? ‘내가 죽으면 죽으리다’의 결단으로 나아가 기도하였고, 느헤미야 무너진 성을 바라보며 탄식하였고, 예레미야 회개하지 않는 백성을 보며 눈물로 중보하였습니다. 모두들 하나님 나라의 주인이 되어서 나라와 민족을 위해 중보하였습니다. 여러분, 이제는 우리가 나의 대한민국을 위해, 우리의 대한민국을 위해 함께 마음을 모아 기도하길 소망합니다. 이 시간 함께 기도하며 나아가길 원합니다.
나는 하나님의 말씀을 사수하는 것의 타인입니까? 주인입니까? 대한민국이 직면하고 있는 어려움에 대하여 외국인입니까? 대한민국 국민입니까? 하나님, 하나님의 말씀을 기준이, 나라를 세워가는 한국 교회가 다시 주인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우리들에게 맡겨진 사명 감당을 위해 다시 하나 되게 하여 주옵소서. 나의 조국 대한민국을 더욱더 사랑하는 한 사람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다 같이 주님의 이름 한번 외치고 합심하여 기도하며 나아가겠습니다. 주여, 아버지 하나님 감사합니다. 오늘 새벽에도 내가 이 나라의 쪽에 타인이나 외인이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세워 주시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보내주신 아버지, 나라 민족의 주인으로서 우리를 삼아, 우리를 세워 이 나라의 민족의 회복과 부흥과 그 거룩을 위해 우리를 세워주신 주님의 은혜 감사드립니다. 아버지 하나님, 우리가 믿음으로 바로 서고 온전히 주님의 뜻을 우리가 간절히 구하며 나아가길 소망합니다. 믿음으로 바로 서고, 아버지 하나님, 내가 그 마음과 생각을 아버지, 온전히 주님의 뜻 가운데 부르짖죠. 아버지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고 우리가 기준을 잡고 외칠 수 있는 우리 모두가 될 수 있도록 주님께서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하나님, 우리가 주인이 되길 원합니다. 진정한 경영 첫 번째, 타인이 되지 말고 주인이 되어야 합니다. 적용 질문을 드립니다. 나는 대한민국의 타인입니까? 주인입니까? 나는 하나님 나라의 타인입니까? 주인입니까? 나라와 민족을 위해 끝까지 기도하는 우리들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소망합니다.
진정한 경영. 둘째, 거짓을 버려야 됩니다. 17절 말씀이죠. “속이고 취한 음식물은 사람에게 맛이 좋은 듯하나 후에는 그의 입에 모래가 가득하게 되니라.” 속임의 열매가 무엇입니까? 취함입니다. 인간의 본성은 취하기 위해서라면 거짓을 일삼는 존재입니다. 내가 더욱더 많은 것을 취하기 위하여 우리는 더욱더 많은 거짓을 선택합니다. 이 나라에 오늘 이렇게 폐역한 모습이 어디서부터 시작되었겠습니까? 바로 거짓입니다. 어쩌면 오늘날 이 사회의 모습은 입에 모래를 가득 물고도 더욱더 많은 것을 취하기 위해서 더욱더 큰 거짓을 일삼는 상태가 아닌지 모릅니다. 거짓이 잘못되었다는 걸 알면서도, 거짓의 열매는 사망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여전히 육신의 욕심에 눈이 멀어 속여서 취하고 있는 현실이 오늘 우리의 현실입니다. 그러면 회복의 열쇠는 어디겠습니까? 거짓을 버리는 것에 있습니다.
1907년 1월 평양 장대현 교회에서 사경회가 있었습니다. 그때 평양신학교 1회 졸업생이며 한국 최초의 장로교 목사님으로 안수받을 예정이었던 길선주 장로님께서 많은 사람들이 모인 그 자리에서 공개적으로 자신의 죄를 고백합니다. “나는 한 사람의 돈을 훔쳤습니다. 그가 죽은 뒤에도 돌려주지 않았습니다. 나는 도둑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어떠한 민족입니까? 체면의 민족 아닙니까? 우리는 고기가 한 덩어리도 없는 그 맑은 떡국을 마시고도 우리는 있으면서 나오잖아요. 체면이 무엇보다도 중요했던 이 한국 사회에 공개적인 그의 죄 고백은 부메랑이 되어서 수많은 질타와 손가락질과 책망으로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성령께서 그의 입술을 통하여 회개의 영을 허락하시니까 그 순간 공적인 죄의 고백, 통회 자복, 눈물의 기도가 불길처럼 일어났습니다. 1907년, 마음을 모아 기도하는 그 한 곳에서부터 회개의 불신은 확산되었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대부흥의 시작점이 됩니다. 집회에 모인 사람들은요. 성령 충만하여 회개를 위한 몸부림을 쳤습니다. “목사님, 나 같은 놈도 소망이 있나요? 나 같은 죄인도 용서를 받을 수 있나요?” 하며 철저하게 마룻바닥에 쓰러져서 통곡하며 뒹굴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모인 그들은 인간이 범할 수 있는 모든 죄들을 거의 다 그곳에서 고백하였고, 사람의 체면은 다 없고, “주여, 나를 버리지 마옵소서”라고 울부짖었을 뿐입니다. 이후로 죄악이 가득했던 대한민국이 정화되기 시작합니다. 거스름돈을 일부러 적게 준 일부터 시작해서 가족의 땅을 속여서 빼앗은 일, 아무도 뭐라고 하지 않았지만 하나님 앞에 죄인이 나의 죄를 고백하며 내가 속이고 취한 것들에 대한 배상 운동이 그리스도인에서부터 시작이 됩니다. 여러분, 이를 통해서 한국 사회에 기독교인들은 정직하다는 이미지가 누구도 말하거나 강조하지 않아도 대한민국 사회에 심겨져 들어가게 됩니다. 술, 담배를 끊었고, 앞장이나 도박이 끊어졌고, 미움이나 다툼도, 혼외의 관계도 다 고백이 되어졌고, 모두가 함께 눈물로 기도하며 회복을 도왔습니다. 이렇게 하나의 기도 모임으로부터 시작된 그 회개의 불신은 신자 개인의 변화를 넘어서 사회적 양심 운동으로 확장되어져 갔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이 새벽에 깨어서 모인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다시 한번 이 나라, 이 민족 가운데 회개 운동의 불씨가 되기 위함 아니겠습니까? 아멘. 아멘.
내 죄를 탓하는 것이 아니라, 내 죄를 고백하면서 하나님의 말씀 앞에 엎드리는 우리들이 다시 모여서, 다시 한번 이 나라, 이 민족의 모든 거짓이 지워지고 없어지기를, 이 민족이 죄를 지었다고, 우리가 잘못됐다고 탄식하며, 이 민족의 회개 운동이 일어나기를 우리가 외치고 꿈꾸며, 꿈꾸며 이 자리에 나온 것 아니겠습니까? 여러분, 항상 다른 사람을 의식하며 살아왔던 저는 부끄러운 과거라 생각했던 나의 죄악들을 나누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었습니다. 특별히 저의 어머니는요. 모든 점도, 어떠한 티도 큰 인내로 삼키셨던 그러한 모습을 저는 평생 봤었기 때문에, 나의 수치와 치부는 무덤까지 묻고 가야 된다고 저는 생각했습니다. 그러다가 우리들 공동체에 제가 와 보니까요. 죄를 고백하는 것이 거룩을 지켜낼 수 있는 거룩의 길임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죄는 고백할 때에 힘을 잃는다’라는 말에 반신반의했습니다. 왜냐면 저로부터 인한 잘못된 소문들이 한 바퀴만 돌고 오면 저에게 훨씬 더 크게 돌아왔기 때문이죠. 내가 지금까지 어떻게 묻어두었는데? 내가 어떻게 감추고 속이면서 살아왔는데? 내가 평생 묻어왔던 죄악들을 용기 내어 고백하는 순간 제가 두 가지를 깨닫게 됩니다. 첫 번째, 죄를 함께 나누니까요. 내 죄는 별거 아니구나. 제가 죄를 숨기면서 살아왔을 때는 내 죄가 세상에서 가장 수치스럽고 가장 큰 죄인 줄 알았는데, 죄를 함께 나누는 공동체에 가 보니까, 어, 내 죄는 죄라고 생각되지 않더라고요. 그래서 평생 저를 괴롭혔던 그 수치가, 어, 죄를 더 짓고 와야 되나? 그 용기가 솟구쳐 올라가지고, 그래서 한 번도 나누지 못했던 그 죄를 막 그곳에서 고백하기 시작합니다. 마치 자랑처럼, “저는 오토바이밖에 안 훔쳐 탔어요.” 그리고 그때에 제가 두 번째 깨달음을 발견했습니다. 제가 고백, 죄를 고백하는 순간 알았습니다. 아, 남들은 내 죄에 대해서 별로 관심이 없구나. 내 인생이니까 나한테 관심이 많지. 남들도 다 그들의 인생이기 때문에 남에게는 관심이 없다는 것. 어, 내 죄랑 씨름하는 사람은요. 내 죄에 관심이 없다는 걸 알았어요. 왜냐면 내 죄가 내 삶의 실제가 되어 내가 지금 죽느냐 사느냐를 위해서 고민하고 있는데 내 죄까지 신경 쓸 겨를이 없다는 걸 알았습니다.
저에게는 세 명의 자녀가 있습니다. 아들, 딸, 그리고 딸. 그래서 저는 늘 알딸딸한데요. 아이들이 어리기에 아직까지 이제 채벌, 그 분노의 매가 이제 효과가 있습니다. 어, 아이들을 채벌할 때 어떠한 기준을 명확히 정해 놓고 채벌을 합니다. 경고하고, 경고하고, 그리고 또 약속합니다. “너 이 일을 반복하면 이렇게 매를 몇 대 맞을 거야”라고 약속하고, 그 일이 또 반복되어지면 그 약속했던 숫자만큼의 매를 둡니다. 근데 저희 애들 세 명 모두가 함께 채벌을 받을 때와 그중에 한 명만 채벌을 받을 때, 똑같은 아이들이지만 아이들의 모습이 매우 다릅니다. 세 명 모두가 채벌을 받을 때는요. 항상 첫째부터 채벌을 받지요. “첫째, 이리 와.” 그러면서 이제 그의 이제 잘못을 막 뉘우치고 깨닫게 해요. “너의 죄를 네가 봐라” 하면서 계속 깨닫게 해요. 그러면 옆에 대기하고 있는 둘째와 셋째는 긴장감이 더 극도로 다해집니다. 그래서 이제 약속된 매를 빡 다음 하는 순간 둘째는 울기 시작합니다. “아, 아빠, 제발요. 제발요.” 그때 셋째는 더 긴장을 합니다. 그리고 분노의 몇 대의 매가 끝난 다음에 빡 다음 순간부터 셋째가 내가 얼마나 잘못했고 몇 대를 맞았느냐에는 전혀 관심이 없습니다. 왜냐? 한 대라도 곧 내게 임하게 될 진노와 심판이 너무 두렵기 때문이죠. 하지만 세 명 중에 한 명만 채벌을 받을 때는 상황이 다릅니다. 곧 임하게 될 진노와 심판 앞에 두려워 떨고 있는 아이들을 두고, 그 아이를, 한 명의 아이를 두고 옆에서 훈수 둡니다. “그러게 내가 봐도 잘못했네. 그거 너무 했네.” 옆에서 깐족거려요. 진짜 얘 말고 개를 혼내고 싶을 정도로. 그래서 제가 알았습니다. 아, 우리 모두에게는 죄를 인식하는 어떠한 공간이 있는 것 같습니다. 이 죄를 인식하는 공간 안에 내 죄가 가득 채워지면 채워질수록 내 죄가 채워질 공간이 없습니다. 하지만 내 죄가 비워지면 비워지는 만큼 내 죄가 채워지게 된다는 것이죠. 그래서 내 죄를 고백하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죄는 고백되어질 때 힘을 잃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오늘도 하나님의 말씀을 보며 내 죄를 채워야 합니다. 우리는 모여서 우리의 죄를 채워야 합니다. 하나님, 다시 한번 이 나라, 민족 가운데 회개의 불씨가 타오르게 하여 주옵소서. 이 시간 우리 다시 한번 마음을 모아 기도할까요?
하나님, 무지한 백성들은 장차 임하게 될 심판을 볼 수 없습니다. 탐욕과 육신의 욕심에 눈이 멀어 속여서 취한 음식물이 달다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벌써 거짓의 열매는 내 입에 모래가 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더 많이 속여서, 여전히 더 많이 취하려고 하는 그 거짓이 충만한 세대가 되어 버렸습니다. 하나님, 대한민국을 불쌍히 여겨 주옵소서. 거룩한 하나님 나라의 회복은 바로 나의 회개로부터 시작됩니다. 바로 우리들의 회개로부터 시작됩니다. 주여, 이 시간 우리를 회복시켜 주옵소서. 우리 주님의 이름 한번 부르시며 기도하겠습니다. 주여,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아버지 하나님, 우리가 이 새벽에 나와 우리가 예배하고 기도하는 것은 아버지 하나님, 내 삶 속에 나의 죄가 채워지기 위함입니다. 죄가 보여지지 않으면 그만큼 상대방의 죄를 우리는 그곳에 채워 남을 향해 손가락질하고, 남을 원망하고, 남을 시기하고, 더욱더 많은 거짓으로 나의 빈 곳을 채우는 것이 우리의 마음이고 우리의 삶임을 고백합니다. 아버지 하나님, 주님께서 우리를 붙잡아 주시고, 아버지, 우리가 이 새벽에 깨어 함께 기도하고 예배하는 이유는 아버지 하나님, 다시 한번 대한민국, 이 민족 가운데 아버지 하나님, 회개의 그런 운동이, 회개의 불씨가 다시 한번 불타오르기를 원합니다. 주님께서 우리와 함께하여 주시고, 주님의 크신 능력이 우리의 삶 가운데 충만히 임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적용 질문을 드립니다. 여러분, 속여서 취한 것, 무엇 있습니까? 혹시 아직도 고백하지 못했던 나의 죄는 무엇입니까? 오늘도 하나님의 말씀 앞에 서서 죄를 고백하며 나아갈 수 있는 복된 하루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진정한 경영 세 번째는 여호와를 기다려야 됩니다. 오늘 본문 말씀 22절입니다. “너는 악을 갚겠다 말하지 말고 여호와를 기다리라. 그가 너를 구원하시리라.” 악한 상황 앞에서는 말보다는 기다림이라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새벽에 하나 되어 기도하는 이유는 여호와를 기다리기 위함입니다. 기다릴 줄 아는 것이 믿음이고, 기다릴 수 있는 사람이 믿음의 사람입니다. 그래서 기도의 열매는 응답이 아니라 기다림입니다. 우리는 다윗을 잘 알고 있습니다. 다윗은 사울에게 쫓기면서 그 아버지의 때를 기다리고 기다렸습니다. 그리고 그 기다림 끝에 사울을 죽일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맞았습니다. 그것도 두 번이나요. 하지만 그는 그 순간에도 악을 갚지 않고 하나님을 기다립니다. 이를 통해서 우리가 알 수 있는 사실은 무엇입니까? 다윗이 쫓겨 다니면서 그렇게 힘들고 어려운 시간을 보내면서 그가 기도했던 그 기도의 제목은 사울의 죽음이 아니라, 사울로 인해서 하나님과 멀어지지 않는 관계를 위해서 기도했다는 사실을요. 사울이라는 원망과 미움의, 아, 사울이라는 원망과 미움의 눈을 뺏겨서 내가 기다리지 못한 채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내가 묻지 않고 그냥 내 손에 들려 있는 이 복수의 칼로 그를 잡아 죽였던 것이 아닙니다. 나의 원수 사울이 눈 앞에 있을 때에도 다윗은 하나님께 뜻을 묻고 그 뜻을 기다렸습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그 사울이 내 눈 앞에 딱 있었을 때, 그 나의 원수 앞에서 그의 심장은 미친 듯이 뛰었을 것이고요. 그의 눈은 이글거렸을 것이고, 아마 양손은 부들부들 떨렸을 겁니다. “지금 내 인생이 왜 이렇게 꼬이게 되었는가? 내가 도대체 무슨 잘못을 했길래 지난 10년 동안 매일 이렇게 지옥에서 나는 살아가고 있는가?” 지금 그의 원수가 내 눈 앞에서 똥을 싸고 있는 거예요. 아씨, 냄새. 여러분, 기다리실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우리는 기도하는 겁니다. 기다리기 위해서.
지난주, 지난주에 묵상했던 시편 40편 1절 말씀입니다. 다윗의 고백이지요. “내가 여호와를 기다리고 기다렸더니 귀를 기울이사 나의 부르짖음을 들으셨도다.” 그는 기다렸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음성에 귀 기울였습니다. 기도를 하는 나의 입장에서의 기도 응답은, 아, 기도의 열매는 응답이지만, 나의 기도를 받으시는 하나님의 입장에서 기도의 열매는 친밀함입니다. 어떠한 상황 속에서도 그 친밀함이 끊어지지 않기 위해서 우리에게 기다리라 하십니다. 원수 갚음이 아버지의 뜻대로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반드시 그 기다림을 통과하여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의 기도는 목적이 응, 기도의 목적은 응답이 아니라 친밀함의 회복입니다. 여러분, 지금 기다리고 있는 응답이 벌써 나에게 주어졌다면 여러분, 오늘 이 새벽에 알람을 맞추셨겠습니까? 여전히 그 인간이 사람이 되지 않았기 때문에 우리가 이 자리에 나온 거 아닙니까? 도대체 이 놈은 마늘을 몇 개를 더 쳐 먹어야 사람이 될 수 있는가 하면서 오늘도 마늘을 다지고 있잖아요. 여전히 우리 시어머니의 전투력은 상승하고 있고, 날이 가면 갈수록 더욱더 건강을 되찾아 가시는 거 아닙니까? 여전히 물질은 나만 피해 가요. 팔면 오르고 사면 떨어져요. 놀라운 법칙. 여전히 자식은 계속해서 속을 썩이고 있기 때문에 우리가 이 새벽에 여기에 모인 거 아닙니까? 믿음은 기다림입니다. 아멘. 여호와를 기다리는 것. 하나님의 일하심과 그 때를 기다리는 것. 그래서 우리는 모여서 기도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 “너는 악을 갚겠다 말하지 말고 여호와를 기다리라. 그가 너를 구원하시리라.” 아멘.
목회를 하면서 가장 힘든 것 중에 하나는 바로 기다림입니다. 분명히 이 타이밍에 변화가 일어나야 되는데, 아무리 기다려도 변화가 없는 거예요. 한 성도님 계십니다. 참으로 어려운 환경 속에서 자라나셨어요. 그래서 그 환경 속에서 내가 살아남기 위해서 내 안에 많은 가시들이 자라났던 거예요. 그리고 그 사람과 가까워지면 가까워질수록 항상 그 가시는 어 나를 찌를뿐만 아니라 남도 찌르게 되었지요. 어, 이 상처를 녹여내기 위해서 제가 목회자로서 진짜 안 해 본 것이 없는 거 같습니다. 몇 날 며칠 상담도 해보고, 새벽 2시, 3시까지 이야기도 나눠보고, 기도도 해보고, 작정기도도 해보고, 장문의 문자와 편지를 수도 없이 주고받고, 싸우기도 하고, 달래기도 하고, 위로도 하고, 정말 목회자로서 할 수 있는 것들은 다 했던 거 같습니다. 근데 그의 상처는 그냥 잠시 덮어 둘 뿐이지, 어, 여전히 그 자리에 있다는 걸 봤어요. 이걸 해도 안 되고, 저걸 해도 안 돼서 제가 금식을 결단했습니다. 그전까지는 항상 나를 위해서는 금식을 해 봤지만, 남을 위한 금식은 제가 처음 해 봤습니다. 40일 저녁 금식을 결단하고 금식을 시작하는 날부터 제가 깨달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나를 깨뜨리기 위해서 금식을 시작하게 하셨다는 걸요. 저의 입장에서는 분명 그가 깨지기를 위해서 결단하였는데, 하나님께서는 그날부터 매일매일 저를 깨, 저를 깨뜨리셨습니다. 그리고 기다리라 하십니다. 내 삶의 기다림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하나님과의 관계는 더욱더 가까워집니다. 여러분, 혹시 이런 생각해 보신 적 있으신가요? 내가 초신자 때는 응답이 빨리빨리 왔는데,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면 할수록 점점 그 기다림의 시간이 길어진다고, 길어진다는 생각을 하지 않습니까? 분명히 나는 이전보다 더 열심히 봉사하고, 큐티도 더 잘하고, 기도도 더 많이 하고 있는데, 왜 이렇게 하나님의 응답은 전처럼 나에게 빨리 오지 않는 것일까? 여러분, 응답이 늦어지는 이유는요. 하나님과의 관계가 그만큼 깊어졌기 때문입니다. 물론 잘못된 것을 구하면 응답이 더디 오겠지만, 내가 옳은 것을 구했는데도 응답이 늦어진다면, 그 문제에 대해서 하나님께서는 더 깊은 교제를 원하시는 겁니다. 문제 해결의 목적을 두지 마시고, 하나님과의 교제의 목적을 두시기 바랍니다. 이 시간 우리가 다시 한번 기도의 자리에 나아가길 소망합니다. 여러분, 혹시 기다림 중에 계십니까? 내가 이토록 간절히 기도하고 있는데, 조금도 상황이 나아지지 않고 있습니까? 그러면 기도의 목적을 달리해 보십시오. 응답이 아니라 친밀함으로요. 문제와 상황에 눈이 가려서 내가 여호와를 기다리지 못하고, 나의 뜻대로 나의 원수를 갚겠다고 말하지 말고, 여호와를 기다리기 위해 기도하길 원합니다. 길을 잃은 대한민국을 바라보며, 이미 무너져 버린 모습들을 바라보며, 하나님을 기다리기 위해서 우리가 함께 기도하며 나아가기를 원합니다. 하나님, 내게 기다릴 수 있는 힘을 주시옵소서. 하나님, 내게 버틸 수 있는 용기를 주시옵소서. 하나님, 하나님의 뜻을 기다릴 수 있는 믿음을 더하여 주옵소서. 다 같이 ‘주여’ 한번 외치고 합심하여 기도하며 나아가겠습니다. 주여, 아버지, 아버지 하나님, 오늘 이 새벽에 우리가 나와 기도하는 것은 하나님, 내가 원하고 내가 바라는 그 간구의 응답을 원하 위함이 아니라, 하나님, 하나님 앞에서 우리가 그 하나님의 뜻, 하나님의 계획을 기다릴 수 있는 사람이 되기 위함입니다. 아버지 하나님, 주님께서 우리를 붙잡아 주시고, 주님께서 우리를 인도하여 주시어, 아버지 하나님, 크고 놀랍고 위대한 사명을 우리가 감당하며 나아가게 하여 주옵소서. 하나님, 나에게 기다릴 수 있는 믿음이 없습니다. 나는 너무 조급하고 너무너무 연약하여 지금 이 자리에 설 수 없음을 고백합니다. 그래서 나는 기도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기도합니다. 내가 혼자 기도로 버틸 수 없으니, 내가 혼자 기다릴 수 없으니, 이제 우리들의 공동체 안에서 우리가 함께 기도하며, 기다리며 나아갑니다. 아버지, 주님께서 우리를 도와주시고, 오늘 이 새벽에 깨어 있는 수많은 심령들이 함께 마음과 뜻과 힘과 정성을 모아 아버지 하나님을 바라보기를 원합니다. 하나님, 버틸 수 있는 힘을 주시고, 기다릴 수 있는 용기를 더하여 주옵소서. 주님께서 하시고 기뻐하시는 온전하신 뜻에 우리가 이르면서 나아갈 수 있는 믿음의 복된 자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적용 질문을 드립니다. 여러분, 기다리시기 바랍니다. 기다리시기 바랍니다. 내 기도의 목적은 응답이 아니라 기다림입니다. 기다림을 통해서 하나님과 더욱더 친밀함을 회복해 가기를 소망합니다. 이 시간 우리가 함께 기도하며 나아갔으면 좋겠는데요. 어, 우리가 왜 기도를 해야 될까요? 우리가 기도하면 뭐가 달라질까요? 우리, 우리가 이렇게 새벽에 깨어서 기도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기도에는 능력이 있기 때문입니다. 제가 짧은 간증 한 가지만 나누고 싶어요. 가장 따끈따끈한 간증인데, 어, 2주 전 토요일입니다. 2주 전 토요일 날 어 저희 교회 그 한 어머니가 계세요. 근데 그 온 가족이, 자녀들이 어려서부터 신앙생활을 잘했는데, 이제 대학에 다니면서 이제 여러 가지 상처로 인해서 교회를 떠났어요. 그 가정에, 그 기도의 씨앗, 그 기도의 씨앗을 심는 분은 딱 그 어머니 한 분이에요. 평생을 남편과 자녀들이 다시금 주님께 돌아오기를, 이 하나님의 말씀이 귀에 들려지기를 위해 평생 기도하셨어요. 그러던 중 지난 2주 전 토요일 날, 38살 된 어 그 집사님의 사위가 토요일 날 출근길 버스에서 심정지가 온 거예요. 근데 거기 사람들이 있었는데, 누구도 심폐소생을 하지 못해서 18분 동안 뇌에 산소의 공급이 되지 않았어요. 그래서 너무너무 피곤하다고, 오늘 좀 쉬고 싶다고 하니까, 무슨 소리냐고, 가서 빨리 돈 벌어 오라고, 그렇게 마지막 인사를, 인사를 하고, 중환자실에서 뇌사 상태로 누워 있는 남편의 모습을 대면한 거예요. 찾아갔죠. 하루에 10분밖에 되지 않는 그 면회 시간에 찾아갔어요. 그 모든 신경이 다 그러니까 계속 한탄하는 거예요. “여보, 여보, 내가 미안해. 내가 잘못했어. 여보, 여기 목사님 오셨어. 우리 교회 가기로 했었잖아. 우리 이거 끝나면 교회 신앙생활 다시 하기로 했었잖아.” 그렇게 한탄하면서 자신의 마음을, 가슴을 두드리더라고요. 의사 선생님이 하는 말이에요. “우리가 의료적으로, 의학적으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기도밖에 할 것이 없습니다. 기적을 기다리십시오.” 그때 제가 해 줄 수 있는 게 뭐가 있겠습니까? 준비된 큐티 책. 예, 큐티 책 들고 갔죠. 가서, “사건보다 중요한 건 해석입니다. 지금 눈앞에 펼쳐진 그 참담한 사건을 우리가 한번 잘 해석해야 된다고. 말씀이 눈에 보여지지 않는다면, 그 뒤에 있는 간증이라도 한번 읽어 보시라고.” 그리고 지난 한 주 동안 계속 우리가 새벽, 저녁으로 그 성도님을 위해서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지난주 금요 철야기도회를 마치고 토요일 날 새벽에 저한테 전화가 온 겁니다. “목사님, 제 남편의 의식이 돌아왔어요.” 얼마나 신기하고 감사한 일입니까? 의사 선생님이 ‘기적’이라는 단어를 썼다는 거예요. “이것은 진짜 기적입니다. 18분 동안 죽어 있던, 산소 공급이 전혀 되지 않은 사람의 의식이 돌아온 건 기적입니다.” 그리고 이제 그게 토요일 아침이었어요. 그리고 제가 주일 설교를 마치고 아래로 내려오는데 그 성도님이 다시 온 거예요. 근데 전화를 붙잡고 막 울고 계시는 거예요. 왜 그런가 봤더니, 그 남편이 의식이 돌아와서 전화 통화를 하고 있는 거예요. 어, 그리고 한 주가 지났죠. 그리고 어제입니다. 어제 저에게 장문의 문자가 왔어요. 내용인즉, 남편이 MRI를 찍었는데 모든 것이 정상이라고. 예. 그래서 잘하면 오늘 퇴원한다고. 그래서 잘하면 이번 주일날 예배를 드리러 가겠다고. 아, 여러분, 무엇이 가정에 복음이 들리게 하였습니까? 환난입니다. 역시 축복의 포장지는 환난이 틀림없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왜 기도해야 되냐고요? 우리의 기도에는 능력이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 이 시간, 우리가 가정을 위해, 교회를 위해, 그리고 나라를 위해 우리가 마음을 아파하며 기도할 때에 하나님께서 다시 한번 이 땅 가운데 기적이라는 단어로밖에 설명되지 않는 놀라운 부흥과 회복과 회개의 역사가 일어나게 하여 주시옵소서. 우리가 함께 기도하며 나아가길 원
떠나갈지어다. 주여, 다시 한번 과목의 거룩한 역사가 있게 하여 주시고,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고, 말씀으로 지켜고, 말씀으로 살아갈 수 있는 우리 모두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이번 축제를 통하여 아버지, 우리들이 다시 한번 기회를 얻기를 원합니다. 우리들이 주님 앞에 떠나게 하지 말아 주옵소서. 이제는 더욱더 큰 헌신으로 이 나라와 민족을 위해 우리가 기도하고 탄식하며, 아버지 하나님, 우리가 나아갈 수 있도록 주님께서 역사하여 주옵소서. 아버지 하나님, 주님께서 아버지, 오늘 우리를 주신 주님의 뜻대로 우리가 변화되고 세워질 수 있도록 주님께서 역사하여 주시옵소서.
주 아버지 하나님, 사람들은 여전히 내가 더욱더 많은 것을 얻기 위하여, 내가 더욱더 높이 오르기 위하여 수많은 거짓을 하며, 그것이 달다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 거짓이 잘못됐다는 걸 우리가 압니다. 이미 내 입에서는 그것이 모래가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입을 더 크게 벌리면 된다고, 우리는 더욱더 큰 거짓을 자랑처럼 여기고 있는 세상이 되어 버렸습니다. 하나님, 이 나라의 민족을 불쌍히 여겨 주옵소서. 다시 한번 우리가 외인과 타인이 되어서 불구경하듯 대한민국이 무너지고 쓰러져 가고, 잘못된 방향으로 가고 있는 것을 구경만 하는 것이 아니라, 이 시대의 예레미야가 되고, 이 시대의 느헤미야가 되어, 우리가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나라와 민족의 부흥과 회복과 구원을 위해 함께 기도할 수 있는 우리들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하나님, 1907년 이 나라의 그 정결, 그 정화 사건이 한 교회, 한 모임, 한 기도로부터 시작됩니다. 하나님, 이제 우리들의 외침이 더욱더 큰 우리들에게 번져, 전국에 있는 그 믿음의 허브 교회들이 다시 한번 부흥과 회복을 함께 외치기를 원합니다. 우리의 죄를 고백하고, 우리들의 죄를 고백하여, 아버지 하나님, 주님 앞에 우리가 엎드림으로 나아갈 때에, 아버지, 우리가 잃어버렸던 그 하나님의 거룩한 영광을 다시금 회복시켜, 아버지 하나님의 영광 속에 다시금 그 주님의 놀라우신 일하심을 바라볼 수 있는 우리 모두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아멘. 이 아멘. 이 시간 다 같이 두 손을 번쩍 들고, 우리가 예수 주님을 세 번 힘차게 찬양하며 기도할 때, 오늘 휴일이잖아요. 주님께서 내게 감동 주시는 대로, 우리가 하나님의 응답을 기다림으로 우리가 받아갈 수 있는 시간이 되기를 원합니다. 다 같이 주여 삼창 외치고 합심하여 기도하시다가 자유롭게 돌아가시겠습니다. 주여, 주여, 주여. 아버지, 아버지, 아버지. Yea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