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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대국 영국은 왜 빈곤이 폭증하고 있을까?

지식한잔1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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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하면 무엇이 떠오르시나요? 세계 금융의 중심지 런던, G7 회원국, 강력한 소프트파워를 지닌 문화강국. 우리는 영국을 세계에서 가장 부유하고 안정된 선진국 중 하나로 인식하곤 합니다.

그러나 만약 이 화려한 모습 뒤에 매우 높은 수준의 빈곤과 영양실조가 숨겨져 있다면 어떨까요? 현재 영국에서는 다섯 명 중 한 명에 해당하는 1440만 명이 빈곤 속에 살고 있습니다. 게다가 이 중 380만 명의 어린이가 경제적인 문제로 식사를 줄이거나 굶고 있는 식량 위기 상태에 놓여 있죠. 오늘날 영국의 빈곤 과정은 날로 갈수록 증가해 가고 있는데요. 대체 세계에서 가장 잘 나가는 선진국 중 하나인 영국에서 어째서 이러한 빈곤이 팽배해지고 있는 것일까요?

때는 1970년대, 무려. 이 시기 영국은 전후 복지라는 거대한 사회적 계약 위에서 굴러가고 있었습니다. 이는 보수당과 노동당을 구분하지 않는 거대 정책으로서 케인지주의 경제 운용, 핵심 산업의 국교화, 국민 보건 서비스 등 말 그대로 요람에서 무덤까지 국가가 개인을 책임져 준다는 막대한 복지의 연속이었죠.

그러나 이렇게 영원토록 전국민을 책임져 줄 것만 같았던 복지국가 영국의 환상은 빠르게 무너져 내리게 되는데, 1973년 석유파동 속에 에너지 가격이 네 배나 폭등한 것을 계기로 높은 인플레이션과 높은 실업률이 동시에 나타나는 스태그플레이션이 영국 경제를 마비시키기 시작한 것이었죠. 자본과 노동의 이념적 대립은 극심했으며, 이 위기는 1976년 노동당 정부가 국제통화기금(IMF)으로부터 39억 달러의 구조 금융을 받아들이는 것으로 최악의 정점을 찍었습니다.

이 경제적 실패는 정치적, 사회적으로 깊은 균열을 야기했고, 1978년에서 1979년으로 넘어가는 겨울, '불만의 겨울'이라고 불리는 최악의 시기가 찾아옵니다. 당시 치솟는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한 마지막 수단으로 노동당 정부는 강력한 임금 인상 억제책을 시도했고, 이에 반발한 공공 부문과 민간 부문의 노동 조합은 일제히 봉기를 일으켰습니다. 런던의 명물 레스터 스퀘어에 산더미처럼 쌓인 채 방치된 쓰레기 더미, 공장 인부들의 대규모 파업, 응급 환자 외에는 모두 돌려보내야 했던 병원까지. 언론을 통해 매일같이 송출된 이 참담한 모습들은 영국 사회가 완전히 붕괴하고 있다는 공포를 심어주기에 충분했습니다.

대중들은 매스컴 속에 비춰진 노동자들이 나라를 혼란에 빠트리고 있다는 두려움에 빠져들었고, 지난 30년간 이어져 온 복지 모델이 더 이상 사회 발전을 이끌지 못하고 영국을 병들게 하고 있다는 인식이 확산되었죠. 불만의 겨울 동안 영국 전역에는 복지와 노동자들이 나라를 망쳤다는 관념 속에 완전히 새로운 이데올로기가 스며들고 있었고, 그것이 바로 신자유주의였습니다.

1979년 불만의 겨울 이후 치러진 총선에서 마거릿 대처가 이끄는 보수당은 노동당을 상대로 압승을 거두었습니다. 이후 대처리즘이라 불리게 된 새로운 이데올로기는 "정부는 문제 해결책이 아니다. 정부야말로 문제 그 자체다"라는 신념 하에 영국 경제를 근본적으로 재편해 나가기 시작했죠. 완전 고용, 물가 안정, 경제 성장이라는 세 마리 토끼를 잡으려 했던 전후 시대의 희망은 끝났으며, 새로운 정부의 유일하고 가장 중요한 적은 실업이 아닌 살인적인 인플레이션이었습니다.

이를 위해 정부는 고금리를 통한 급격한 통화 공급 긴축을 시행했고, 동시에 고소득층을 위한 감세와 공공 지출 삭감을 단행하며 민간 기업들을 최대한 활성화시키고자 하였습니다. 당시 대처 정부의 극단적인 조치 속에 1970년대의 높은 인플레이션 문제는 효과적으로 해결될 수 있었고, 이후 정부의 긴축 기조는 지속적으로 이어졌습니다.

정부가 인플레이션에만 집중하는 동안, 높은 이자율과 이로 인한 파운드화 환율의 급등은 영국 제조업의 즉각적인 붕괴로 이어졌습니다. 사우스 웨일스에서 웨스트 미들랜드를 거쳐 잉글랜드 북동부에 이르기까지 수 세대 동안 지역 공동체를 먹여 살렸던 탄광과 공장들이 문을 닫았고, 1979년에서 1983년 단 4년 만에 170만 개 이상의 제조업 일자리가 사라졌죠.

그렇게 제조업 기반의 경제가 해체되는 동안, 민간 부문과 금융 영역이 그 자리를 빠르게 메워 나갔습니다. 브리티시 텔레콤을 시작으로 브리티시 가스, 브리티시 항공, 브리티시 스틸, 그리고 전국의 수도 및 전기 시설에 이르기까지 국가의 방대한 자산이 민간의 손에 넘어갔으며, 1986년 런던 증권거래소의 대대적인 규제 철폐는 런던을 세계적인 금융 허브로 만들었습니다.

이를 통해 1980년대 영국은 스스로를 '유럽의 병자'로 만들어 버린 영국병을 회수할 수 있었지만, 대처리즘의 극약 처방은 새로운 부작용을 야기하기 시작했고, 그것이 바로 현대사에서 가장 빠르고 급격했던 경제적 불평등이었습니다. 소득 불평등을 측정하는 지니 계수는 1979년 0.25에서 1990년 0.34로 30% 이상 폭등했고, 그 여파는 고스란히 영국의 아이들에게 돌아가 아동 빈곤율은 1980년대와 1990년대 초를 거치며 세 배나 급증했으며, 1997년 보수당 정부가 물러날 무렵 영국의 아동 빈곤율은 유럽에서 가장 높은 수준을 기록하고 있었습니다.

이후 대처의 시대가 끝나고, 1997년 압도적인 승리로 집권한 토니 블레어의 노동당 정부는 대처 시대가 남긴 부작용을 마주하고 있었습니다. 토니 블레어 총리는 "우리의 목표는 우리 세대를 아동 빈곤을 끝내는 첫 번째 세대로 만드는 것이다"라고 천명하며 빈곤 완화를 국가의 최우선 과제로 격상시켰습니다.

당시 블레어 내각은 이전에 대처 내각이 기록한 민영화된 시장 기반 금융 중심 경제를 그대로 수용하기로 결정했고, 그 대신 호황 중인 금융 부문에서 나오는 막대한 세수를 통해 복지를 실현한다는 전략을 수립했죠. 그렇게 두 개의 강력한 정책이 시행되었고, 첫 번째가 바로 1999년 최저임금 제도의 도입이었습니다. 도입 전에는 수백만 개의 일자리가 사라질 것이라는 격렬한 반대가 있었지만, 이러한 우려는 현실이 되지 않았고 오히려 최저임금 제도는 영국에 성공적으로 안착해 이후 보수당조차 지지하는 국민적 합의에 이를 수 있었습니다.

둘째는 근로세액 공제라는 새로운 시스템의 창설이었죠. 이는 일하는 것이 이득이 되도록 설계된 정책으로, 국가가 저임금 노동자, 특히 아이가 있는 가정의 소득을 직접적인 현금 지원으로 보충해 주는 방식이었습니다. 이는 1980년대 탈산업화가 남긴 저임금 구조를 근본적으로 바꾼 것은 아니었지만, 그 대신 금융 경제를 통해 벌어들인 막대한 국가 재정으로 빈곤을 줄여 나가는 것을 목표로 했죠.

그 결과 1999년에서 2007년 사이 수십만 명의 어린이와 수백만 명의 연금 수급자가 빈곤선 위로 다시금 올라설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 시기 영국의 주택 가격은 당시 기준으로 역사적인 상승을 거듭하고 있었고, 1997년 무려 58,000파운드였던 평균 주택 가격은 2007년에 이르러 18만 파운드까지 폭등했죠. 정부는 국가 재정으로 저소득층의 임대료를 커버쳐 주는 방식으로 이 문제를 해결해 오고 있었으나, 임대 시장에 현금을 뿌려서 위기를 가리는 이러한 방식은 언제까지고 이어질 수는 없는 노릇이었습니다.

그러던 2008년, 영국 경제를 나락으로 떨어뜨린 세계 금융 위기가 발생합니다. 금융 부문에서의 막대한 세수를 기반으로 복지를 때려 박으며 빈곤을 줄여 나갔던 정부의 방식은 금융 위기의 파도 속에 빠르게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고, 은행들이 대출을 대거 중단하자 주택 매입이 불가능해진 중산층 또한 임대 시장에 그대로 남게 되었으며, 이 위기 속에 일자리를 잃은 가계들 또한 임대 시장으로 유입되어 주택 가격의 하락에도 불구하고 임대료는 잠시 간의 하락 이후 다시금 지속적인 상승세를 이루기 시작했습니다.

결국 2010년 데이비드 캐머런과 조지 오스본이 이끄는 보수당-자유민주당 연립 정부는 긴축의 시대를 선포하며 노동당의 복지 기반 성장 모델에 종지부를 찍었습니다. 2012년 복지 개혁법을 필두로 한 긴축 정책 속에 주거 보조금, 장애 수당, 아동 수당 등 저소득 노동 계층의 복지가 집중적인 삭감 대상으로 지목되었고, 특히 지방 정부에 대한 중앙 정부의 교부금이 절반 가까이 삭감되자 잉글랜드 북부와 런던의 가난한 지역들이 가장 큰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빈곤의 예방을 담당하던 복지 지출이 대폭 삭감됨에 따라, 역설적으로 발생하는 위기에 대응해야 하는 비용이 폭발적으로 증가하기 시작했습니다. 아동을 기아, 빈곤 등의 위험으로부터 보호하는 예방 서비스의 예산이 70% 이상 삭감되는 동안, 오히려 위험에 빠진 아동을 관리하는 사회복지 비용과 노숙자의 지원 비용은 두 배 이상 급등했고, 결과적으로 긴축은 예방했을 돈을 더 비싼 사후 처리 비용에 매몰시키는 상황을 야기하고 말았습니다. 이른바 '긴축의 역설'이었죠.

나아가 노동 시장은 더욱 악화되었습니다. 고용주가 노동자에게 단 한 시간의 노동도 보장하지 않아도 되는 '제로 아워 계약'이 폭증했고, 말 그대로 노동 시간 0시간이 가능한 이 계약으로 영국 사회에는 어떠한 경제적, 소득적 안정도 보장받지 못하는 불안정 노동 계급이 두텁게 형성되었습니다. 불안정한 저임금 노동, 치솟는 주거 비용, 감당 불가능한 보육비, 긴축으로 인한 복지 축소, 그리고 사회 안전망의 붕괴는 현대 영국 빈곤의 핵심 모순인 '일하는 빈곤'을 만들어 냈습니다. 빈곤선 이하 가구가 일을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결코 빈곤에서 벗어날 수 없는 상황에 처하게 된 것이었죠.

이러한 구조적 모순과 분노가 응축되어 폭발한 사건이 바로 2016년 브렉시트였습니다. 당시 국민 투표의 분석 결과는 영국의 현실을 명확히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1980년대 경제 구조의 변혁에서 소외되고, 긴축으로 인해 지역 서비스가 황폐되었으며, 런던 중심의 금융 경제에서 어떤 혜택도 받지 못했다고 느낀 지역일수록 브렉시트의 지지율이 압도적으로 높았죠. 이러한 투표 직후 파운드화 가치는 폭락했고, 이는 곧 수입 식료품 가격의 급등으로 이어졌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브렉시트에 투표한 저소득층이 가장 큰 피해를 입는 역설적인 상황이 벌어진 것이었죠.

그렇게 2020년 1월이 되어 유럽 연합을 완전히 떠난 영국은 10년간의 긴축으로 이미 속이 비어버리고, 불안정한 노동이 만연했으며, 지역과 세대, 계급으로 깊이 분열된 상황에 빠져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 취약한 국가는 코로나19와 같은 연쇄적인 충격에 무방비로 노출된 상태였습니다.

2020년 코로나19 팬데믹은 영국 사회의 깊은 균열을 여실히 드러내고 있었습니다. 전문직, 고소득층은 재택 근무로 전환하고 외식이나 통근용을 절약하며 저축을 늘릴 수 있었지만, 반면 이미 불안정한 제로 아워 노동과 서비스업에 종사하던 저소득층에게 팬데믹은 재앙 그 자체였습니다. 이에 정부가 수백만 명의 임금을 지불하는 '휴직자 지원 제도' 등을 도입하며 빈곤 과정의 충격을 막아보고자 했었지만, 이는 임시방편에 불과했죠. 팬데믹 기간 동안 수많은 노동 계층이 대규모 실직과 노동 시간 단축, 그리고 부채의 급증에 직면했으며, 저축도 유급 병가도 고용 보장도 없는 상황 속에서 충격을 흡수할 완충제는 전무했습니다.

또한 설상가상으로 팬데믹의 충격이 채 가시기도 전, 2022년부터 시작된 생활비 위기가 영국을 덮치며 빈곤을 가속화시켜 나갔죠. 브렉시트 이후의 새로운 무역 장벽, 그리고 우크라이나 전쟁이 불러일으킨 에너지 및 식품 가격 폭등은 2022년 10월 무렵 영국의 물가 상승률을 41년 만에 최고치인 11.1%까지 밀어 올렸습니다. 생활비 위기로 인해 에너지 비용과 식료품 비용이 폭등하자, 간신히 빈곤을 버텨왔던 가정들은 난방이냐 식사냐의 끔찍한 양자택일에 내몰렸습니다. 이들은 난방비를 아끼기 위해서 영양가 있는 음식을 포기하고 열량이 높고 값싼 정크푸드로 연명할 수밖에 없었죠.

이러한 빈곤과 식량 위기는 영국 사회에 새로운 풍경을 만들어 냈는데, 그것이 바로 푸드뱅크의 일상화였습니다. 영국의 대표적인 푸드뱅크 네트워크인 트러셀 트러스트는 한때 소규모 긴급 조치에 불과했지만, 오늘날에는 국가의 사회 보장 시스템을 대신할 정도로 복지에 큰 축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이들이 배분한 긴급 식량 꾸러미의 수는 지난 5년간 51%나 급증하여 2025년엔 연간 290만 개에 육박했고, 21세기 G7 선진국 영국에 괴혈병, 비타민 D 결핍증과 같은 빅토리아 시대의 질병과 영양실조마저 돌아와 사회 문제로 떠올랐습니다. 지난 반세기 기간 이어져 온 정책들의 부작용이 영국의 어린 아이들의 몸에 직접 새겨지기 시작한 것이었죠.

그렇게 오늘날 영국에는 전체 인구의 22%인 1440만 명이 빈곤 속에 살고 있으며, 380만 명의 어린이가 다음 끼니를 걱정해야 하는 식량 위기 상태에 놓여 있습니다. 이처럼 세계 금융의 중심지라는 화려한 외피 속에는 뿌리 깊은 불평등과 구조적 빈곤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한쪽에서는 금융 기반 경제로 막대한 부가 창출되는 동안, 다른 한쪽에는 아무리 일해도 가난에서 벗어날 수 없는 '일하는 빈곤'이 고착화되고, 이러한 상황이 오늘날 수백만 명의 영국 아동의 굶주림이라는 결과로 이어지게 된 것이었죠.

이것으로 영상을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지식한 자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