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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 설교] “하나님 나라를 엿보다" 창세기 42:6-12 강래성 목사 #개혁교회 #에덴개혁장로교회

에덴개혁장로교회49:51

Transcription

하나님의 말씀 창세기 42장 6절로 12절 말씀 대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귀기려 들으십시오.

때에 요셉이 나라의 총리로서 그 땅 모든 백성에게 곡식을 팔더니 요셉의 형들이 와서 그 앞에서 땅에 엎드려 절을 합니다. 요셉이 그들을 알아보지 못하는 엄한 소리로 그들에게 말하되 너희가 어디서 왔느냐? 그들이 이르되 곡물을 사려고 가나안에서 왔나이다. 요셉은 그의 형들을 알아보았으나 그들은 요셉을 알아보지 못하더라.

요셉이 그들에게 대하여 꿈을 생각하고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정탐꾼들이라이 나라의 틈을 엿보려고 왔느니라.

그들이 그에게 이르되 내 주여 아니니이다. 당신의 종들은 곡물을 사러 왔나이다. 우리는 다 한 사람의 아들들로서 확실한 자들이니 당신의 종들은 정탐꾼이 아니니이다.

그들에게 이르되 아니라 너희가 이 나라의 틈을 엿보러 왔느니라.

가나안 땅에 기근이 들어서 어 이제 요셉의 형제들은 애굽에 내려오게 됩니다. 어 그들이 내려온 목적은 생존의 수단으로서 양식을 구하려 함이었죠. 어, 이것이 언약을 받은 백성, 언약을 품은 자들이 그 언약 안으로 들어가지 못하여 있는 모습인이 땅의 나라에 속한 모습입니다.

요셉은 지금 애굽에 와 있습니다. 요셉은 애굽에 와서 찢기고 고난당하고 죽임을 겪었던 그 모습으로 지금 애굽에 있고 그리고 이 생존이 아닌 생명의 떡으로서 찢겨진 떡을 지금 준비한 예 요셉의 양식을 준비한 모습으로 지금 애굽에 있습니다. 바로 이게 하나님 나라를 소유하고 있는 모습이죠.

어 이제 형들은 정탐꾼으로 몰립니다. 간첩 또는 스파이죠. 하나님 나라를 정보만 훔치려고 하는 정보만 캐내려고 하는 자들. 이게 이제 정탐꾼이죠. 요셉은 이 형들을 정탐꾼으로 봅니다. 왜 그럴까요? 언약 안에 있는 백성이고 그리고 그 언약 안으로 들어와야 되는데 언약에는 관심 없고 틈만 엿보는 그런 모습에 대해서 하나님 나라의 언약 안으로 들어오도록 정탐꾼으로 모는 겁니다.

오늘 본문 6절을 보겠습니다. 때에 요셉이 나라의 총리로서 그 땅 모든 백성에게 곡식을 팔더니 요셉의 형들이 와서 그 앞에서 땅에 엎드려 절을 합니다. 요셉 앞에서 땅에 엎드려 절을 하는 이 그 형제들 이들은 생존의 양식을 위해서 그러는 겁니다. 자기들이 언약 백성인지를 인지하지 못하고 먹고 사는 생존의 양식을 위해서 요셉 앞에 엎드려 있습니다.

9절에 보면요. 이런 형제들을 본 요셉의 반응이죠. 요셉이 그들에게 대하여 꿈을 생각하고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정탐꾼들이라이 나라의 틈을 엿보려고 왔느니라. 요셉은 전혀 다른 차원의 세계를 지금 보고 있습니다. 그리고 설명하죠. 여기 9절에 요셉이 그들에게 대하여 꿈을 생각하고 이 생각이라는 말이 자칼인데요. 기억했다라는 뜻입니다.

어 이 말은 소위 그 그 사람들이 쉽게 생각하는 것처럼 요셉은 하나님이 주신 꿈을 기억하고 그 꿈을 향하여서 살아왔고 결국은 잘 견뎌서 총리가 됐다. 결코 그런 게 아니죠. 어, 요셉은 자신이 꾼 꿈을 지금 새카맣게 잊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생각지도 않게 자기 형제들이 와서 자기 앞에 엎드린 이 놀라운 현상, 사건을 보면서 비로소 자기가 이전에 꾸었던 꿈이 기억난 거예요. 어, 요셉은 잊었고요. 그러나 하나님은 그 요셉에게 꾸게 한 그 꿈을 지금 이루셨죠.

자, 그 꿈이 뭔지 한번 우리 살펴보죠. 창세기 37장입니다. 그 꿈의 내용은 이런 거였습니다. 요셉이 그들에게 이르되 청하건대 내가 꾼 꿈을 들으시오. 우리가 밭에서 곡식단을 묶더니 내 단은 일어서고 당신들의 단은 내 단을 둘러서 절하더이다. 그의 형들이 그에게 이르되 네가 참으로 우리의 왕이 되겠느냐? 참으로 우리를 다스리게 되겠느냐 하고 그의 꿈과 그의 말로 말미암아 그를 더욱 미워하더니 요셉이 다시 꿈을 꾸고 그의 형들에게 말하여 이르되 내가 또 꿈을 꾼즉 해와 달과 열한 별이 내게 절하더이다 하니라. 그가 그의 꿈을 아버지와 형들에게 말하매 아버지가 그를 꾸짖고 그에게 이르되 내가 꾼 꿈이 무엇이냐? 나와 내 어머니와 내 형들이 참으로 가서 땅에 엎드려 내게 절하겠느냐?

자, 이 꿈의 내용대로 야곱과 그의 형제는 반드시 애굽으로 내려오고요. 그리고 요셉 앞에 엎드립니다. 형들이 말한 것처럼 네가 참으로 왕이냐? 그리고 네가 우리를 다스리는 거냐? 예. 바로 이 문제를 하나님이 꿈으로 보여 주신 겁니다. 하나님 나라 속에 진정한 왕이신 그리스도 앞에 엎드리며 그의 통치를 받아내는 것 이게 하나님이 꾸게 하신 꿈이고요. 하나님의 꿈입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그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만나고 그 십자가의 통치 앞에 굴복되어지는 것 이게 하나님의 꿈입니다.

창세기 3장 15절이 바로 그 내용이에요. 창세기 3장 15절 우리 잘 알죠.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네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여기서 말하는 사탄의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라는 것은 그의 권세를 박살낼 것이고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라는 것은 십자가의 고난을 말합니다.

자, 여기서 말하는 십자가가 설명하는 것은 뭐냐면요. 십자가로 예수 그리스도가 자기 백성 교회를 다스린다라는 설명입니다. 사탄의 머리를 박살을 낸다라는 것은 그의 권세에 그의 자랑 그가 끝까지 붙잡고 있는 교회이 교회를 해방시키고 자유롭게 해서 어떻게 하겠다는 거예요? 십자가로 말미암아 예수 그리스도의 통치 아래 왕되심 그 다스림 안에 교회가 있게 하겠다는 것이죠. 예수 그리스도가 다스리는 교회 바로 이것이 하나님이 꾸게 하신 하나님의 꿈인 하나님 나라예요.

내 편안과 내 기쁨과 내 만족을 위한 하나님 나라가 아니라 십자가로 말미암아 예수 그리스도가 내 인생의 왕이 되어서 그 예수 그리스도가 나를 다스리는 것에 대하여 기꺼이 즐거이 자발적으로 복종하는 그 교회 이것이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그래서 7절을 다시 한번 보자고요. 7절부터 9절까지 요셉이 보고 형들인 줄을 압니다. 그러나 모르는 채하고 엄한 소리로 그들에게 말하여 이르되 너희가 어디서 왔느냐? 그들이 이르되 곡물을 사려고 가나안에서 왔나이다. 요셉은 그의 형들을 알아보았으나 그들은 요셉을 알아보지 못하더라. 요셉이 그들에게 대하여 꿈을 생각하고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정탐꾼들이라이 나라의 틈을 엿보려고 왔느니라.

골탕 먹입니다. 요셉이 왜요? 복수심 때문에 그 억울함을 풀려고 아니겠죠. 하나님 나라에 속하지 못한 이 형들의 영적 실상을 고발하고 폭로시킴이에요. 정탐꾼이라고. 그래서 내 나라의 틈만 지금 내 나라라는 것은 요셉이 있는 이 나라는요 영적으로 하나님 나라입니다. 양식을 준비하고 있는 찢겨진 떡이 있는 하나님 나라예요. 그래서 이렇게 이들을 정탐꾼으로 몰아가는 것은 이들로 하여금 생존의 떡만 찾았던 이들에게 생명의 떡이 되도록 요셉과 함께 요셉이 찢겨지고 죽음을 겪었던 것처럼 애굽에 이들도 지금 애굽에 내려왔을 때 으깨지도록 하는 겁니다. 그래서 십자가의 은혜에 들어가도록 하나님의 나라의 언약 안으로 그 언약이 십자가의 언약이었어요. 창세기 3장 15절 십자가는 예수 그리스도의 통치 안에 있게 하는 겁니다. 다스림 받게 하는 거예요. 이게 언약이에요. 이것을 깨닫도록 지금 정탐꾼으로 몰아가는 겁니다. 그래서 결국은 베냐민도 내려오고 야곱도 내려와서 온 가족이 내려와서 십자가의 은혜를 받고 십자가의 통치 아래 있게 되어지는 것 이게 하나님 나라의 언약으로 온전히 들어가는 거예요. 이 일을 하는 거죠.

10절을 보겠습니다. 그들이 형들이 지금 요셉에게 항변하는 거죠. 그들이 그에게 이르되 내 주여 아니니이다. 당신의 종들은 곡물을 사러 왔나이다. 우리는 다 한 사람의 아들들로서 확실한 자들이니 당신의 종들은 정탐꾼이 아니니이다.

음. 여기 형들은 이렇게 변명하고 항변합니다. 우리는 확실한 자들입니다. 이 뜻은 우리는 정직한 자들입니다. 신실한 자들입니다. 이런 뜻이에요. 정탐꾼이 아닙니다라는 말이죠. 여러분 정탐꾼이란 무엇인가요? 여기 정탐꾼이라는 히브리 단어가 라갈이거든요. 이 정탐꾼이라는 이 라갈은 서로 다른 나라에 속한 존재다라는 의미입니다. 그러니까 지금 요셉이 형들에게 당신들은 정탐꾼입니다. 내 나라의 틈만 엿보려고 왔습니다라는 말의 의미는 당신들은 이렇다는 거예요, 지금. 형제들의 영적 실상이 이렇다는 거예요. 이들은요 그 나라의 백성이 되거나 또는 그 나라의 통치에 복종하여서 살아갈 마음은 전혀 없습니다. 오직 자기 유익을 위해서 생존하기 위해서 그 겉모습만 그 나라의 겉모습만 정보만 얻고자 하는 거예요. 이건 이방인입니다.

문제는 오늘의 이 말씀이 이 복음 강설이 하나님께서 오늘 저와 여러분에게 뭘 말씀하시는 것인가? 문제는 이와 같은 정탐꾼들이 교회 안에 있다, 없다 많다는 거예요. 말은 십자가를 말합니다. 하나님 나라를 원합니다. 그런데요. 십자가를 말하지만 십자가에 굴복하여 살지 않습니다. 관심은 있어요. 십자가를 많이 들었고 십자가가 무엇인지를 또 의미도 알아요. 그러나 겉모습만 정보만 탐하는 거죠. 십자가를 정말 모르기에 십자가에 굴복할 수 없는 겁니다. 찢겨진 떡을 먹고자 하는 관심이 없기 때문에 십자가의 은혜를 정말 모르는 거예요. 십자가를 만나지 않은 거예요. 그래서 십자가에 당신은 굴복하여 살 수 없는 겁니다.

문제는 여기예요. 지금 형들의 문제는 이 정탐꾼이라고 요셉이 하는 이유는 당신들은 나와 함께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언약의 백성인데 지금 당신들의 관심은 무엇입니까? 당신들은 어디에 지금 속해 있습니까? 당신들은 지금 내 나라이 귀한 양식을 먹어야 할 생명의 양식을 먹어야 할 그런 존재들로 하나님이 이 땅에 내셨는데 지금 당신들의 관심은 무엇입니까? 먹고 사는 문제. 여전히 정탐꾼인 거예요.

이 정탐꾼의 특징은요. 하나님 나라의 틈만 봅니다.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그 하나님 나라가 무엇이에요? 십자가로 말미암아 예수 그리스도가 오로지 쓴 거예요. 그 예수 그리스도를 왕으로 다스림 받기를 거부하고 있는 겁니다. 이게 정탐꾼이에요. 십자가에 굴복하지 않습니다. 교회를 다니고 예배를 하고 신앙을 하지만 십자가를 수없이 듣지만 그러나 십자가에 굴복하여 산 적이 없습니다. 아니 살고픈 마음도 없습니다.

자, 본문 12절을 보세요. 요셉이 그들에게 이르되 분명합니다. 우리는 정탐꾼이 아니라고 말하는 그 형제들에게 아니라 당신들은 정탐꾼입니다. 내 나라의 틈을 엿보로 온 자들입니다. 요셉은 왜 형제들을 정탐꾼으로 이렇게 거세게 압박하며 몰아갈까요? 십자가의 은혜로 또 십자가로 그 사랑으로 이끌기 위한 은혜의 폭력입니다. 자비로우신 폭력이에요.

여러분 오늘의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에게 당신은 십자가를 모릅니다. 당신은 땅의 나라에 속하 있는 자요. 관심 있는 자요. 하나님 나라의 틈만 엿보고 있는 정탐꾼입니다. 이방인입니다. 이런 말씀을 하시는 이유는 하나님의 자비로우신 은혜의 폭력입니다. 우리가 꼭 들어야 될 얘기예요. 형제들과 같이 나의 영적인 현 주소는 어디인가? 요셉이 고발한 것처럼 당신들은 정탐꾼입니다. 확실한 자들 아닙니다. 하나님 나라의 언약 안으로 들어와서 그 하나님 나라로 살지도 않고 있으면서 못하면서 나는 정직한 자입니다. 이 말이 뭔 소리예요? 나는 구원받은 자입니다. 나는 신분이 뚜렷합니다. 나는 신분이 분명해요. 나는 하나님 나라를 예정받았어요. 나는 하나님 나라입니다. 노셉이 말해라. 당신은 정탐꾼입니다. 여전히 하나님 나라인 애굽이 이 양식을 먹을 자로 들어와 있으면서도 여기에 언약이 담겨져 있는 찢겨진 떡에는 관심 모르고 먹고 사는 거에만 예배하고 신앙하고 모든 것들이 어디에 있는 거예요? 이 이 땅에만 땅의 것으로만 여러분 이것이 분명히 다른 겁니다.

만약에 요셉이 형들을 정탐꾼으로 몰아가지 않았다면요. 분명합니다. 땅의 나라에서 하나님 나라의 언약 안으로 못 들어옵니다. 아니 뭐 예정됐으니까 선택됐으니까. 그러니까요. 우리가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영원한 작정 분명히 배웠어요. 두 가지를 하나님이 작정했다고. 첫째, 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결정하셨다. 둘째, 그 결정한 자기 백성을 하나님의 구원 속으로 들어오도록 작정하셨다. 여러분, 과정을이 십자가를 만나는 십자가에서 찢겨진 떡을 먹는 과정이 없는데 나는 구원받았습니다. 나는 십자가에 사랑을 입고 천국 들어갑니다. 이런 말을 할 수가 없는 거예요.

하나님이 자기 백성 지금 이스라엘이라는 이 자기 백성을 가나안에서 애굽으로 내려오게 하시는 이유가 뭐예요? 이들이 땅의 나라에 머물고 있지만 반드시 하나님 나라로 들어오도록 하시고자 하는 겁니다. 그렇게 하시고자 하기 위하여 하시는 일이 지금 뭐예요? 예. 하나님이 기근 주셨잖아요. 말도 안 되는 거 아닙니까? 기근을 주셨잖아요. 하나님이 기근 주신 이유가 뭐예요? 언약 안으로 드리는 하나님의 간섭이죠. 살려내시려는 거예요. 언약 백성이니까 그 언약 안에서 하나님 나라를 살도록 죽어서 나는 예수 믿는다고 했으니까 죽어서 나는 천국 갈 거고 교회 생활 했으니까 예배했으니까 눈 뜨면 천국일 거다. 착각하면 안 돼요. 반드시 이들을 야곱의 12 아들을 반드시 하나님께서는 이 십자가의 은혜를 만나고 그리고 반드시 그 십자가의 통치 아래 굴복하여 살도록 구원의 과정을 기근을 통하여 하시잖아요. 그거 하시잖아요.

여러분 성도는요. 성도는요. 이것 하나가 분명히 다른 겁니다. 성도가 죄 안 짓느냐? 죄졌니다. 그런데 성도에게만 다른게 있어요. 성도는요. 어떤 환경에서도 아니요 할 수가 없습니다. 왜요? 기근을 하나님께서 주신 것은 성도를 살려내시고자 함이에요. 언약 안으로. 언약이 있기 때문에 그 언약 안으로 드리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일하심 때문에 환경과 상황을 통해서 그래서 성도만이 말도 안 되고 이해도 안 가고 불합리하고 억울하고 답답하고 죽을 것과 같은데도 성도만이 예습니다. 하나님 내 인생에 이 모양 이 꼴이 예 내가 이렇게 턱 막힌 삶을 살도록 하신 나의 상황 하나님이 안 계실 거 같은 이 상황에 대해서 성도 많이 할 수 있는 예스입니다.

고린도후서 말씀을 가보자고요. 고린도후서 1장 18절입니다. 보세요. 하나님은 미쁘시니라. 우리가 너희에게만 한 말은 예하고 예습니다. 예하고 노 아니라함이 없노라. 우리 곧 나와 실로아노와 디모데로 말미암아 너희 가운데 전파된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는 예하고 아니라함이 되지 아니하셨으니 그에게는 예만 되었느니라. 하나님의 약속은 얼마든지 그리스도 안에서 예가 되니 그런즉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아멘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되느니라. 우리를 너희와 함께 그리스도 안에서 굳건하게 하시고 우리에게 기름을 부으신 이는 하나님이시니 그가 또한 우리에게 인치시고 보증으로 우리 마음에 성령을 주셨느니라.

예수님은 예만 되셨습니다. 예수님은 기가 막힌 삶의 환경에 처하신 분이십니다. 하나님이셨고요. 만유의 주제이시고요. 만왕의 왕이고 주이십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이 아들 하나님이신 예수 그리스도에게 정말 첫차마리만큼 말도 안 되는 정말 인간의 몸을 입게 하셨고요. 그리고 인간과 같은 죄인의 삶에 갇혀 사는 그런 한계적인 삶을 살게 하셨고요. 그리고 결국은 십자가에 내몰려서 외면당하고 거부당하고 오해받고 철저하게 버림받아 죽임을 받으셨습니다. 여러분, 이 환경보다 더 낮아지고 더 억울한 환경이 인생 가운데 있을 수 있습니까? 예수님보다도 더 가난한이가 있습니까? 여러분, 가난이라는 것은 상대적 가난이 아니에요. 보세요. 예수님은 하늘 영광 우주 만물을 다 가지신 부유자이십니다. 그런데 그가 벗은 자로 오셨어요. 말고요. 그 예수님이 이렇게 가난케 되심은 예수 그리스도에게 주신 하나님의 모든 뜻에 대하여 예가 되시고자 함이시에 다 예스하셨죠.

나는 예수님을 영접했습니다. 나는 예수님을 믿습니다라는 말은 다른 게 아닙니다. 나는 이 예수님의 예를 받았습니다. 나는 이 예수님의 예가 나의 것으로 되었습니다. 바로 이 일을 한 것이 누구냐? 성령 하나님이세요. 성령 하나님이 우리를 인치셨다. 그래서 우리로만 우리에게만 예가 되게 하신 겁니다. 성령을 받지 않은 상황에서는요. 성도가 아닌 사람은요. 내 인생에 있어서 해석되지 않는 상대적인 가난함 그리고 상대적인 곤핍함 어 이런 모든 것에 대하여 이해할 수 없습니다. 인생은 한 번뿐인데 왜 한 번뿐인 인생인데 누구는 저렇게 어려움 겪지 않고 아니 그냥 평범하게 가정도 이루고 저렇게 잘 사는데 나는 이게 뭔가 내 인생은 이게 뭔가 이런 인생 속에 성령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게 하시고 믿게 하시면 예수 그리스도의 인생을 통해서 내 인생에 대하여 이해를 합니다. 하나님 맞습니다. 예수님이 나의 구원을 위하여 예수님이 내 인생의 구원자가 되기 위하여 예수님이 처한 환경을 예수님이 예하고 받으셨습니다. 그 예수님을 받은게 성령으로 인침을 받는 거예요. 내가 성령을 받았다. 내가 성령의 사람이 되었다고 하면서 예수님의 그 낮아지심, 예수님의 버려지심에 대하여 예수님은 이해하셨는데 나는 내가 모자란 것처럼 대우받고 내가 사람들한테 아무것도 아닌 존재가 되는 그 순간을 아니요. 거부합니다. 여러분, 이게 예수님 믿는게 아니라고요. 이것은 예수님으로 인하여서 성령이 나를 인쳐 준 모습이 아니라고요. 성령을 받았다라는 말은 예수 그리스도가 가지신 그 하나님 나라를 받았다는 겁니다. 그 하나님 나라를 내 마음에 모신 거예요.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 나라를이 땅에서 그의 어떠한 상황에서도 예하고 받은 것처럼 그 하나님 나라를 받은 거예요. 그래서 지금 성도만이 어떤 환경에서도 아니요라고 하지 않습니다. 봤습니다. 하나님 나라를 지금 사는 겁니다. 십자가의 그리스도를 알기에 십자가의 그 통치를 자원하여 기쁨으로 받는 겁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의 기쁨이 되셨던 것처럼이 나라예요.이 하나님 나라예요.

지금 형들은 이 하나님 나라를 엿보고만 있습니다. 십자가를 통해 임하는 그리스도의 통치가 선 하나님 나라를 맛보고 들어가야 되는데 맛은 보지 않고 틈만 보는 거예요. 연만 보는 거죠. 우리는 분명히 정리를 해야 돼요. 정의를 내리셔야 됩니다. 성경이 말하는 하나님 나라. 창세기 3장 15절을 통하여서 예수 그리스도가 세우신 이 땅에 가져오신 하나님 나라는 십자가에 은혜받고 십자가에 굴복된 삶을 사는 나라입니다. 죽어서 가는 아주 좋은 편한 하나님 나라는 성경과 상관없는 불교에서도 말하는 극락이에요. 그런 극락을 성경은 말하고 있지 않아요.

이 땅에서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하나님의 자녀로서 살아가면서 주어진 환경에 따라 매번 울고 웃고 하는 이유가 어디에 있을까요? 그렇죠. 내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서 이루신 하나님이 내게 주신 그 하나님 나라를 내가 틈만 보고 있는 거예요. 연만 보고 있는 거예요. 겉모습만 보고 있는 거죠. 들어가질 않는 겁니다. 그러니까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를 향하여 너는 정탐꾼이다. 그러는 거.

여쭈겠습니다. 십자가의 은혜가 내 뻣뻣한 목을 꺾었습니까? 마음으로 속으로 깊이 한번 생각해 보세요. 십자가에 굴복되어 즐거이 나는 자발적으로 경배하고 있는가? 십자가를 수없이 말하지만 십자가 속에 있지 않는 자들은요. 오늘 말씀은 그들을 정탐꾼이라 말합니다. 영적 구경꾼이에요. 그리고 매튜드가 말한 것처럼 유사 그리스도인이에요. 문의 크리스천입니다. 겉으로 보면 어 믿음 있는 것처럼 보이고 구원받은 사람처럼 나 보여지고 본인 스스로도 나는 확실한 자들이다. 정직한 자다. 신실한 자다. 나는 신분이 예 나는 하나님 나라 백성이다. 그런데요. 그 십자가의 은혜를 진짜 만나서 그 십자가 때문에 내 인생에 주어지는 모든 환경과 상황에 대하여 예, 아멘 할 수 없다면 그는 유사 그리스도인이라고요. 크리스천. 올모스트 크리스천은요. 구원받은 게 아닌 거예요. 하나님 나라 근처를 서성되고 있지요. 결코 하나님 나라에 들어간 게 아니에요. 오늘날 현대 교회에 올모스트 크리스천 유사 그리스도인으로 가득찹니다. 나는 정말 진정한 그리스도인인가? 진짜 그리스도인인가? 가짜 그리스도인인가? 말씀 앞에 반드시 오늘 말씀 앞에 하나님 앞에 정직하게 답하십시오. 나는 사람 앞에서 난 정직한 자입니다. 그렇게 말씀하지 마시고 하나님 앞에서 나는 십자가로 말미암아 내 뻣뻣한 목이 꼬꾸라졌습니다. 나는 십자가의 그 통치 아래 내 이 쓰디이 환경을 끌어안고 하나님 앞에 즐거이 기꺼이 삶을 감당하며 하나님 앞에 내 손과 발을 다 엎드려 하나님 앞에 올려 드립니다. 이 자리로 가 있는게 성령으로 인침받은 진정한 예수를 영접한 그리스도인이라고요.

지금의 나의 모습은 어떠한지 십자가에 은혜받고 십자가에 굴복되었는지 여러분 신앙의 모든 행위들 목적들 기도하고 예배하고 성경 읽고 전도하고 좋습니다. 이 이 모든 것들이 은혜의 떡만 취하고 정말 주님의 통치에 복종되지 않은 채 하나님 나라를 그저 엿보기만 하는 하나님 나라에 들어갔다고 착각만 하고 있는 이 모습은 천국의 이방인입니다. 천국의 백성이 아니라 이방인이에요. 천국의 이방인.

누가복음 22장 54절에 가 보시죠. 여기 보시면요. 예수를 잡아 끌고 대제사장의 집으로 들어갈 세 베드로가 멀찍이 따라갑니다. 지금 베드로는요. 호언장담했던 인물입니다. 다 제자들이 부인하고 떠날지라도 나는 주가 가는 그곳 오기라도 나는 가겠습니다. 그랬죠. 근데 예수님이 네가 다굴기 전에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 천만에 주님 저는 절대 그런 일 없습니다. 했던 인물이 베드로입니다. 그런데 베드로가 왜 예수님을 결국은 세 번 부인하고 그리고 정말 닭기 세 번 울었을 때 부인했을 때 주님과 베드로의 눈이 마주쳤다라고 누가복음은 기록하죠. 왜 그랬을까요? 성경은 이 한 마디를 표현해 줘요. 멀찍이 바로 이 모습이에요. 베드로는 예수님을 사랑하지 않은 게 아닙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에 대하여 모든 게 진심이었어요. 그리고 그는 정직하게 정말로 주님을 따르려고 했던 사람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뭐예요? 그 주님의 죽음을 주께서 알려 주었고 그 십자가의 죽음 앞에서 베드로는 한 가지가 이거 베드로의 신앙의 태도가 한 가지가 멀찍이었어요. 쑥 그 안으로 들어가는 것에 대하여 베드로는 정말 결정하지 않았죠. 십자가를 멀찍이 따랐던 베드로의 실패 장면이고요. 정탐꾼의 역탁한 신앙이 가장 적하게 폭로됐던 사건이죠. 얄팍한 신앙, 얍삽한 신앙. 어 겉으로는 주를 사랑하고 주를 가장 위하는 것처럼 말을 하는데요. 근데 정작 그 죽음에는 함께할 의지가 없는 거예요. 얄팍한 거죠. 멀지 서서 떡물만 엿보는 자들은요. 십자가를 질 수 없습니다. 아니 십자가를 지고자 하지 않습니다. 더 정확하게는요. 십자가를 못 집니다.

정탐꾼이 하나님 나라 천국의 이방인이 천국의 백성이 되는 이 정탐꾼이 하나님 나라 백성이 되는 길은 딱 하나뿐밖에 없습니다. 정탐꾼으로서의 옛자가 완전히 죽어야 됩니다. 요셉의 이 거친 다름을 한번 되게 보세요. 요셉이 지금 거의 20여년 만에 만나는 거예요. 그런데 얼마나 반가워요. 나중에는 그 반갑게 맞이하죠. 그런데 그 요셉이 눈물을 보이기 전 단계에 요셉이 하고 있는 장면들을 보세요. 어떻게 해요? 철저하게 정탐꾼이라는 것을 자가 인식시켜 주면서 형들이 죄를 깨닫게 도와요. 그리고 회개케 하죠. 여러분이 장면을 요셉이 하는 겁니다. 그리고서는 총리 요셉이 이 형들 앞에서 눈물을 보여 주죠. 형들에 의해서 팔려졌던 요셉. 그리고 그 요셉이 앞서 와서 어떠한 것을 감당해 냈고 무엇을 준비했는지 이것이 바로 나와 나의 후손들을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 드리기 위한 요셉이 한 것들이라는 것을 깨닫고 나서 형들이 어떻게 돼요? 정탐꾼의 자아가 산산히 조각나죠. 부서지죠. 이것이 바로 우리 주님께서 우리를 만나 주시는 십자가의 압도적인 은혜인 겁니다.

여러분이 이 예수님의 이 압도적인 십자가의 은혜와 사랑을 만나기 전까지는요. 하나님 나라의 틈만 엿보는 이 땅의 나라에 속한 우리들의 이 정탐꾼의 옛자가 죽질 않아요. 그러나 이런 우리를 위해서 하늘을 버리고 이 땅에 오셔서 예수 그리스도가 그 말도 안 되는 이 환경을 받아내시고 이해하시고 감당하셔서 이런 나를 위하여 죽음을 겪으시고 나를 살려내셨다라는 것을 정말로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으로 그것이 이 한 가지 사실이 우리 속에 들어올 때 우리는요. 내 안에 주어져 있는 이 정탐꾼의 옛자 이 세상의 것에 욕심을 두고 세상 것에만 의존하여 살려고 하는 이것이 얼마나 거짓이며 억울한 것인지를 비로소 내 스스로가 내려놓게 된다고요. 내가 죽인 분이 나의 구원자이시구나. 나의 구원자께서 나를 살리기 위하여 내 손에 의하여 찌름을 겪으셨구나. 이 이 사실을 만나는 자만이 정탐꾼에서 정말로 하나님의 천국 백성으로 언약 안으로 하나님 나라의 언약 안으로 들어오는 겁니다. 이 일이 있어져야 됩니다.

고린도후서 7장을 보겠습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은 후회할 것이 없는 구원에 이르게 하는 회개를 이루는 것이요 세상 근심은 사망을 이루는 것이니라. 보라. 하나님의 뜻대로 하게 된 이 근심이 너희로 얼마나 간절하게 하며 얼마나 변증하게 하며 얼마나 분하게 하며 얼마나 두렵게 하며 얼마나 사모하게 하며 얼마나 열심히 있게 하며 얼마나 벌하게 하였는가? 너희가 이 일에 대하여 일체 너희 자신의 깨끗함을 나타내었느니라.

거룩한 근심을 말씀하는 겁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이 거룩한 근심이죠. 후회할 것이 없는 구원에 이르게 하는 회개를 이루는 거룩한 근심인데요. 그런데 이것과 반대 있는 것이 세상 근심이에요. 땅의 나라에 있으면서 여전히 주어진 기근 앞에 환경 앞에 근심하고 있는 거예요. 이게 세상 근심이에요. 이 이 세상 근심을 하고 있는 것은요. 십자가의 은혜를 정말로 깨닫고 십자가에 통치받고 있는 모습 아닙니다. 물론 저와 여러분의 말도 안 되는 이 상황에 대하여 당신이 내 상황 돼 봐. 내 형편 대봐. 그런 말 할 수 있나라고 말할 수 있어요. 그런데요. 예수님도 그렇게 말씀을 하셨으면 어떡하실래요? 네가 내가 내 상황을 얘기할 때 주님도 주님 상황을 얘기하면 어쩌실 거예요? 주님께서 우리 이 모든 상황을 받아내시고 그래서 나를 땅의 나라에 속해 있는 나를 하나님 나라의 언약 안으로 드리셨잖아요. 여러분, 이것보다 더 저와 여러분에게 있을 수 없는 일이 벌어진 것 이것보다 더 어마어마한 엄청난 일이 뭐가 있어요? 그래서 이 사람만이 십자가의 은혜를 알기에 내 모든 현실에 대하여 십자가로 통치받는 거예요. 아멘 하는 겁니다. 하나님 못 견디겠어요. 힘들겠 힘들어 죽겠어요. 하나님 정말 자폭하고 싶어요. 그런데 주께서 그 십자가로 말미암아 나를 다스릴 때 하나님 다 알 수 없지만 내가 주님처럼 이해합니다. 다 할 수 없지만 이 끝에 어떤 일이 벌어질지 나는 다 모르지만 그러나 선하고 오르신 하나님이 십자가로 예수를 죽여서 나를 살렸듯이 반드시 이 상황을 통하여 나를 살려내시고 내게 이루어지는 모든 것들을 구원자 하심인 것 믿습니다라고 가는 거예요.

그래서 11절 보세요. 이 거룩한 근심, 구원에 이르는 참된 회개를 한 자들의 이 터져나오는 외침을 보세요. 이게 십자가에 통치받는 모습입니다. 보라. 하나님의 뜻대로 하게 된 이 근심이 너희로 얼마나 간절하게 하며 간절하시죠. 하나님 맞습니다. 이것이면 됩니다. 간절하게 하면 얼마나 변증하게 하며 변증한다라는 것은요. 내 결백을 주장한다는게 아니라 하나님 그렇습니다. 인정합니다. 하나님 내 상황이 이렇게 넘어졌습니다. 나는 믿음이 연약합니다. 도와주소서. 변증합니다. 하나님 그렇게 주께서 죽으신 거 아닙니까? 살려주세요. 변증합니다. 얼마나 분하게 하며 나를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지 못하게 하는 것에 대하여 억울하고 분합니다. 얼마나 두렵게 하나님의 경외하며 하나님의 공의 앞에 있으며 얼마나 사모하게 하며 얼마나 열심히 있게 하며 얼마나 벌하게 벌하게 하였는가이 말은요. 교회 공동체 안에서 연약하여서 늘 넘어지는 죄에 끌려다니는 모습에 대하여 그것에 대하여 하나님 앞에 신혼을 하는 거예요. 하나님 이렇게 되어지는 건 아니지 않습니까? 어 하나님 앞에 갖는 이 마음입니다. 구원에 이르는 회개를 한 자들이 갖는 마음이에요. 십자가에 통치받는 모습이에요. 그렇게 살아가는 실제적인 모습이에요. 참된 하나님 나라 백성의 탄생의 모습이죠. 십자가를 바로 만나고 십자가의 삶에 굴복하여 살아가는 이 거룩한 근심을 갖고 살아가는 실제적인 모습이죠. 누가 하나님의 나라를 엿본게 아니라 들어간 자냐? 예. 십자가의 은혜를 받고 지금 십자가의 통치 아래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그 사람이 저와 여러분 하나님이 되게 하고자 오늘 이 말씀을 하나님께서 준비하셨고 여러분에게 선포하셨습니다. 이 은혜를 살아가십시오. 그래서 이 복된 이 땅에서의 정탐꾼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의 천국 백성으로서의 여러분의 실제적인 삶이 있어지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복드립니다.

성도는 예수님과 같은 인생을 살아가고 있고요. 예수님과 같은 반응을 내는 자가 성도입니다. 우리에게 말도 안 되는 상황을 허락하신 하나님이 최후 승리를 약속하고 계심을 믿으시고 십자가를 통하여 그 한 썩는 미랄이 모든 생명들을 살려내게 했듯이 나의 이 하나님 앞에서의 믿음의 감당이 반드시 생명으로 살려내실 것을 하나님을 믿으시고 여러분 여러분의 삶에 대하여 이해하시고 감당해 가시고 영광을 하나님의 영광을 맛보시기를 바랍니다.

기도하겠습니다. 오랫동안 교회라는 곳에 너무나 익숙한 예배하고 신앙하는 것이 너무나 내 몸에 일상이 되어 버린 삶 속에서 내가 하나님 나라의 그 언약의 십자가를 맛보며 찢겨진 떡을 경험하며 그 하나님 나라의 들어가는 문제를 외면하고 그렇게 적당하게 일상과 익숙한 삶 속에 결별하지 않고 살아가는 나의 모습 속에서 오늘 말씀을 통하여 정탐꾼으로 고발시켜 주시고 끊임없이 내 현실을 보게 하시며 예수 그리스도의 예가 되시는 이 나의 이 구원의 삶으로 주께서 초대하시고 불러주신 은혜를 감사합니다. 하나님, 내 힘으로는 도저히 이루어낼 수 없는 구원. 하나님께서 내 현실을 정탐꾼으로 보게 하셔서 이 은혜를 깨닫게 하셔서 참으로 십자가를 만나는 하나님의 귀한 자녀들, 이 백성들, 예배에 있는 모든 자녀들 다 되게 하여 주옵소서. 하나님 그리하여서 이 땅에서 잠시 잠깐 땅의 나라의 것에 있는 듯 보이지만 하나님 나라를 엿보는 자들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의 틈만 사귀는 자들이 아니라 그 하나님 나라의 안으로 들어가서 하나님 나라를 누리며 십자가의 은혜를 아는 자로서 십자가의 통치를 기뻐 굴복받으며 살아가는 그래서 영원한 하나님 나라를 소유하는 귀한 자녀들이 다 되게 하여 주옵소서. 주님 헤아릴 수 없는 환경과 아픔 속에 눈물을 이고 있는 당신의 성도님들 주께서 십자가로 눈물 닦아 주시고 넉넉히 이겨낼 수 있다는 것, 승리할 수 있다는 것 믿음으로 행진할 수 있도록 하나님 은혜 더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올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