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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 오늘 제가 들려 드릴 이야기는 조금 무섭습니다. 아니, 솔직히 말씀드리면 등골이 선늘해지실 수도 있어요. 왜냐면 이 이야기의 주인공이 바로 여러분 자신일 수도 있기 때문이거든요. 지금 이 순간에도 여러분이 무신고 내뱉은 말 한마디가 30년지기 친구를 적으로 만들지 모릅니다. 믿기 어려우시죠? 하지만 이건 실제로 일어난 일이에요.
서울 외곽에서 30년간 작은 식당을 운영해 온 예순두 살 어르신이 계셨습니다. 이분이 딱 한 번 기쁜 소식을 이웃들에게 전했다가 30년지기 이웃이 하루아침에 등을 돌렸어요. 심지어 돌아가신 남편이 마지막으로 사 준 화분까지 누군가의 손에 산산조각이 났습니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요? 오늘 이 이야기를 끝까지 들으시면 여러분은 더 이상 함부로 입을 열지 못하실 겁니다.
여러분 혹시 오늘 하루 중에 정말 기쁜 일이 생기지는 않으셨나요? 예를 들어 손주가 좋은 대학에 합격했다는 소식을 들었거나, 건강 검진 결과가 아주 깨끗하게 나왔거나, 자식이 승진했다는 전화를 받았을 때처럼 말이에요. 그럴 때 여러분은 가장 먼저 무엇을 하고 싶으신가요? 아마도 가장 가까운 친구에게 전화를 걸거나 동네 이웃들에게 이 기쁜 소식을 알리고 싶어 입이 근질거리셨을 거예요. 누군가에게 나의 좋은 소식을 전하고 함께 기뻐하고 싶은 마음은 인간이라면 누구나 가지는 본능적인 욕구니까요.
그런데 여러분, 그 기쁨을 입 밖으로 내뱉는 순간 그것이 여러분의 목을 겨누는 칼날이 되어 돌아올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알고 계셨나요? 1954년 미국의 사회 심리학자 레온 페스팅거라는 분이 아주 흥미로운 연구 결과를 발표했어요. 그분이 밝힌 바에 따르면 인간은 자신의 가치를 판단할 때 절대적인 기준이 아니라 바로 옆 사람과 비교해서 판단한다고 하더군요. 이것을 학자들은 사회 비교 이론이라고 부릅니다. 쉽게 말씀드리면 이런 거예요. 모르는 연예인이 복권에 당첨되면 그냥 뉴스 속 이야기로 넘어가지만, 같은 동네 이웃이 당첨되면 밤잠을 설치게 된다는 것이지요. 멀리 있는 사람의 성공은 그저 남의 일이지만, 가까운 사람의 성공은 곧 나의 뒤처짐으로 느껴지기 때문이에요.
독일에는 이런 복잡한 감정을 표현하는 단어가 따로 있더라고요. 바로 '샤덴프로이데'라는 말인데, '손해'를 뜻하는 '샤덴'과 '기쁨'을 뜻하는 '프로이데'가 합쳐진 단어예요. 타인의 불행을 보면서 느끼는 기쁨이라는 뜻이지요. 영어에도 한국어에도 이 감정을 정확히 표현하는 단일 단어가 없어서 전 세계에서 독일어 그대로 사용한다고 해요. 우리 속담으로 하면은 '사촌이 땅을 사면은 배가 아프다'와 비슷한 심리라고 할 수 있겠지요. 연구에 따르면 자존감이 낮은 사람일수록 이 샤덴프로이데를 더 강하게 느낀다고 합니다. 자기보다 잘나가던 사람이 무너지면은 상대적으로 자신의 위치가 올라간다고 느끼기 때문이래요.
400여 년 전 명나라 말기에 홍자성이라는 문인이 있었습니다. 그분은 혼란한 시대를 살면서 인간 관계의 냉정한 진실을 깨달았어요. 그분이 남긴 책이 바로 동양 최고의 철서로 불리는 '채근담'입니다. '채근'이란 나물이라는 뜻인데, 쓰고 맛없는 것을 씹어야 비로소 인생의 참맛을 알 수 있다는 의미를 담고 있지요. 이 책은 전집 225조와 후집 135조로 이루어져 있는데, 유교와 불교와 도교의 사상을 융합해서 인생의 처세를 다루고 있어요. 홍자성은 이 책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입은 화를 부르는 문이요, 혀는 몸을 베는 칼이다. 입을 닫고 혀를 깊이 간직하면 몸이 편안하고 어디를 가든 튼튼하다." 400년 전에 이미 말 조심의 중요성을 이토록 날카롭게 꿰뚫어 본 것이지요.
또 한 분을 소개해 드려야겠어요. 조선 500년 역사상 가장 오래 영의정을 지낸 분, 바로 황희 정승입니다. 이분은 무려 18년간 영의정으로 계셨고, 정승의 자리를 총 24년간 지켰어요. 이건 조선 역사상 전무후무한 기록이에요. 태종과 세종 두 임금의 신임을 한 몸에 받았지만, 황희 정승은 결코 자신의 공을 드러내지 않았습니다. 공을 세워도 항상 "아랫사람들이 잘한 것입니다"라며 돌렸거든요. 언제나 다른 사람에게 웃는 모습으로 대했기 때문에 '호야'라는 별명까지 붙었다고 합니다. 무엇이든 좋다 좋다 하는 사람이라는 뜻이지요.
황희 정승에게는 유명한 일화가 하나 있어요. 어느 날 시골길을 가시는데 한 농부가 누렁소와 검은소 두 마리를 데리고 밭을 갈고 있었습니다. 황희 정승이 물었어요. "어느 소가 일을 더 잘합니까?" 그러자 농부는 잠시 뜸을 들이더니 황희 정승의 귀에 대고 속삭였습니다. "누렁 놈은 일도 잘하고 말도 잘 듣는데, 검은 놈은 꾀가 많아서 다루기가 힘듭니다." 황희 정승이 의아해서 물었지요. "아니, 그게 무슨 비밀이라고 귀속말로 하시오." 농부가 답했습니다. "아무리 미물이라 해도 자기를 좋아하고 미워하는 것을 압니다. 저놈들 앞에서 이 얘기를 했다면 검은소가 얼마나 섭섭하겠습니까?" 황희 정승은 이 농부에게서 큰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짐승 앞에서도 듣기 싫은 소리를 삼가는데, 하물며 사람 앞에서야 오죽하겠느냐는 것이지요.
자, 이제 우리 주변에서 실제로 있었던 김순자 씨의 이야기를 해 볼까 합니다. 김순자 씨는 서울 외곽 주택가에서 30년째 '순자의 김치찌개'라는 작은 식당을 운영하고 계신 예순두 살 어르신이에요. 남편과 사별하신 후 홀로 식당을 지켜오셨는데, 성격이 워낙 밝고 솔직해서 동네 이웃들과도 스스럼없이 지내셨지요. 같은 골목에 분식집을 하는 언니, 반찬가게를 하는 언니, 세탁소를 하는 아주머니까지 30년을 함께 해온 이웃들이었어요.
그러던 어느 날 김순자 씨에게 아주 기쁜 일이 생겼습니다. 코로나가 끝나고 배달 앱에 입점했는데, 갑자기 주문이 폭주한 거예요. 월 매출이 세 배로 뛰었고, 10년 넘게 갚던 대출금을 한꺼번에 상환할 수 있게 되었어요. 김순자 씨는 구름 위를 걷는 기분이었습니다. 그날 밤 잠이 오지 않았어요. 내일 당장 이웃들에게 이 기쁜 소식을 전해야겠다라고 생각했지요.
다음 날 아침이 밝아오자 김순자 씨는 30년지기 이웃들을 불러 모았습니다. 분식집 사장 언니, 반찬가게 주인 언니, 세탁소 아주머니가 한 자리에 모였어요. 김순자 씨가 활짝 웃으며 말했습니다. "언니들, 나 요즘 배달이 너무 잘돼서 허리 펼 날이 없어. 이번에 대출금 다 갚았어." 이웃들은 겉으로 축하한다고 말했습니다. "와, 순자야, 대단하다. 한턱 써야겠네." 김순자 씨는 기쁜 마음에 그날 저녁 비싼 한우를 사서 대접했어요. 30년 우정이니까 함께 기뻐해 주리라 믿었거든요.
그로부터 며칠이 지났습니다. 이상하게도 동네 분위기가 달라지기 시작했어요. 분식집 사장 언니는 마주쳐도 눈을 피했고, 반찬가게 주인 언니는 "요즘 우리 가게는 죽을 맛이라며" 한숨만 내쉬었습니다. 세탁소 아주머니는 대놓고 말하더군요. "배달 잘되니까 좋겠네. 우리 같은 사람들은 그런 거 할 줄도 모르는데." 김순자 씨는 어리둥절했어요. 내가 뭘 잘못했나 싶었지요.
그로부터 보름이 지나자 일이 점점 커지기 시작했습니다. 배달 앱의 악성 리뷰가 하나 둘 올라오기 시작했어요. "위생이 불량하다." "불친절하다." "예전 맛이 아니다." 김순자 씨는 억울했습니다. 30년간 한결같이 장사해 왔는데, 갑자기 왜 이러는 걸까요? 건물주도 갑자기 임대료 인상을 통보해 왔어요. 동네 모임에서는 김순자 씨만 은근히 빠지기 시작했고요. 30년 동안 가족처럼 지내던 이웃들이 하나 둘 등을 돌리기 시작한 거예요.
모두가 잠든 깊은 밤, 김순자 씨는 식당 불을 끄고 한참을 앉아 있었습니다. 도대체 뭐가 잘못된 걸까? 내가 무슨 죄를 지었다고. 기쁜 일을 나누고 싶었을 뿐인데. 김순자 씨는 밤새 뒤척이며 잠을 이루지 못했어요. 그리고 일주일 후 새벽, 김순자 씨가 여느 때처럼 식당문을 열려고 나왔습니다. 그 앞에 발걸음이 멈췄어요. 30년간 정성껏 키운 화분이 산산조각 나 있었거든요. 그 화분은 보통 화분이 아니었어요. 돌아가신 남편이 암 투병 중에 마지막으로 사 준 것이었습니다. "당신이 힘들 때 이거 보면서 힘내." 남편의 목소리가 아직도 귀에 맴돌았는데, 그 화분이 누군가의 손에 짓밟혀 있었습니다. 김순자 씨는 깨진 화분 조각을 쥐고 그 자리에 주저앉아 한참을 울었어요. "여보, 내가 뭘 잘못한 거야?"
그날 오후, 맞은편 어르신 한 분이 찾아왔습니다. 일흔다섯 살, 은퇴한 전직 교장 선생님이셨어요. 김순자 씨의 눈이 퉁퉁 부어 있는 것을 보시더니 조용히 맞은편에 앉으셨지요. 그리고 낮은 목소리로 말씀하셨습니다. "순자야, 내가 너보다 13년을 더 살았어. 그래서 하나 알려 줄게. 잘되는 건 속으로 삼키고, 어려운 건 나누는 거예요. 세상이 원래 그래. 사람들은 내 불행에는 쉽게 눈물 흘리지만, 내 성공에는 마음 깊은 곳에서 쓴물이 올라와. 그게 인간이야." 김순자 씨는 그제야 깨달았습니다. 자신이 무엇을 잘못했는지를요.
여러분, 왜 이런 일이 일어나는 걸까요? 왜 우리는 사소한 성공조차 숨겨야 하는 걸까요? 오늘 저는 세 가지 이유를 말씀드리려 합니다. 이 세 가지를 기억하시면 여러분의 인간관계가 훨씬 편안해지실 거예요.
첫 번째 이유는 인간의 뇌가 비교하도록 설계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아까 말씀드린 레온 페스팅거의 연구를 다시 떠올려 보시지요. 인간은 자신의 가치를 판단할 때 절대적인 기준이 아니라 옆사람과 비교한다고 했잖아요. 특히 나와 비슷하거나 조금 나은 사람과 자신을 비교하는 경향이 강하다고 합니다. 그래서 멀리 있는 유명인의 성공은 그냥 뉴스로 넘어가지만, 같은 골목에서 장사하는 이웃의 성공은 내 실패처럼 느껴지는 거예요. 가까운 사람이 잘되면 "나는 왜 안 되지?"라는 상대적 박탈감이 밀려오거든요. '채근담'에도 이런 구절이 있어요. "가까이 있는 자가 멀리 있는 자보다 더 큰 적이 된다." 400년 전에 이미 이 심리를 꿰뚫어 본 것이지요. 김순자 씨의 이웃들도 마찬가지였어요. 같은 골목에서 똑같이 힘들게 장사하던 사람이 갑자기 잘되니까 자신들만 뒤처진 거 같은 기분이든 거예요. 그 기분이 질투로 변하고, 그 질투가 악성 리뷰와 뒷담화로 표출된 것이지요.
두 번째 이유는 성공을 말하면 기쁨의 불씨가 작아져 흩어지기 때문입니다. 심리학에서는 이것을 '목표 공개 효과의 역설'이라고 부른다고 해요. 무슨 말이냐면, 성취를 남에게 말하면 우리 뇌가 이미 보상받았다고 착각한다는 거예요. 기쁨을 느끼게 하는 도파민이라는 물질이 조기에 분비되어 버리거든요. 그러면 더 큰 목표를 향한 추진력이 약해집니다. 연구에 따르면 작은 성취를 인정받으면 도파민이 분비되어 일시적인 쾌감을 느끼지만, 이 쾌감에 중독되면 진짜 성공보다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가짜 성취에 매달리게 된다고 해요. 칭찬의 달콤함에 취하면 정작 중요한 일에 집중하지 못하게 되는 것이지요. 황희 정승이 늘 공을 아랫사람에게 돌린 것도 이런 이유에서였을 거예요. 말을 아끼는 것이 곧 힘을 기르는 것임을 알았던 것이죠.
세 번째 이유는 입이 화를 부르는 문이기 때문입니다. 아까 말씀드린 샤덴프로이드를 기억하시지요? 타인의 불행을 보며 기쁨을 느끼는 심리 말이에요. 그런데 이 심리의 반대편에는 또 다른 어두운 감정이 있습니다. 바로 타인의 성공을 보며 느끼는 쓰라림이에요. 여러분이 무심코 던진 자랑 한마디가 상대방의 이 어두운 감정을 자극하는 씨앗이 됩니다. '채근담'에서 홍자성은 이렇게 말했어요. "남의 나쁜 이야기를 들었을지라도 곧 미워하지 말지니, 중상하는 자의 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내가 한 말은 통제할 수 없이 퍼져나갑니다. 본래 의도와 상관없이 과장되고 왜곡되어 돌아오지요. 김순자 씨가 이웃들에게 한 말도 마찬가지였을 거예요. "대출금 다 갚았어"라는 말이 이웃들 사이에서 "저 집 이번에 큰 돈 벌었다더라"로 과장되고, "우리 다 죽겠는데 저 혼자 잘됐다고 난리다"로 왜곡되었을 수 있어요. 부설수는 한 번 나면 걷어들일 수가 없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기쁜 일이 생겼을 때 어떻게 처신해야 할까요? 오늘 저는 세 가지 실천 방법을 말씀드리려 합니다. '채근담'과 황희 정승의 지혜에서 배운 것들이에요.
첫 번째 방법은 기쁨을 감사 노트에 먼저 적는 것입니다. 말하고 싶은 충동을 글로 회수하시라는 거예요. 나만의 작은 노트를 하나 마련하시고 오늘의 좋은 일을 적어 보세요. "오늘 이런 기쁜 일이 있었다. 나는 참 대단하다." 이렇게 적는 것만으로도 인정받고 싶은 마음에 상당 부분이 해소됩니다. 시간이 지난 후 그 노트를 다시 펼쳐 보세요. 그것이 여러분 내면의 소중한 자산이 됩니다. 타인의 박수보다 내 스스로의 인정이 훨씬 오래 가거든요.
두 번째 방법은 누가 물어오면 "운이 좋았습니다"라고 낮추는 것입니다. 혹시라도 주변에서 여러분의 성공을 눈치채고 물어온다면 절대로 나의 노력이나 실력을 강조하지 마세요. "운이 좋았어요. 주변 분들 덕분이지요."라고 공을 돌리세요. 이것이 상대방의 경계심을 녹이는 가장 강력한 무기입니다. '채근담'에서는 이것을 "유능함을 감추고 어리석음을 가장하는 지혜"라고 표현했습니다. 내가 강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보다 내가 위협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 세상을 살아가는데 훨씬 유리합니다. 황희 정승도 늘 이렇게 처신하셨어요. 양쪽이 서로 다투며 찾아와도 "내 말이 옳고, 내 말도 옳다"라고 하셨거든요. 젊은 선비가 길에서 면박을 줘도 도리어 기뻐하셨고요. 자신을 낮추는 것이 결국 자신을 지키는 길임을 아셨던 거지요. 그래서 90세까지 장수하시며 조선 역사상 가장 존경받는 재상으로 남으신 거예요.
세 번째 방법은 나누고 싶으면 말 대신 행동으로 하는 것입니다. 성공으로 얻은 기쁨이 있다면 그것을 조용히 주변에 베푸세요. 하지만 이때 주의하실 점이 있어요. 내가 잘돼서 쏘는 것이라는 생색을 내지 마세요. "그냥 맛있는 게 있어서 생각났어요." "그냥 기분이 좋아요."라고 가볍게 건네세요. 말없는 베풂은 덕이 되지만, 생색내는 베풂은 원망의 씨앗이 됩니다. '채근담'에 이런 말이 있어요. "착한 일을 하고도 이익을 보지 않음은 불 속에 난 난초와 같으니, 모르는 가운데 절로 자란다." 드러내지 않는 선행에 결국 가장 큰 복이 되어 돌아온다는 뜻이지요. 김순자 씨가 처음부터 이웃들에게 "내가 잘돼서 한턱 쏜다"가 아니라, "그냥 오늘 기분이 좋아서 같이 고기 먹고 싶었어"라고 했다면 어땠을까요? 결과가 많이 달라졌을 거예요.
여러분, 우리가 사는 현대 사회는 끊임없이 자신을 드러내라고 강요합니다. 젊은 사람들이 쓰는 거 있잖아요. 그 손 안에 들어오는 작은 전화기 말이에요. 거기서는 무엇을 먹었는지, 어디를 여행했는지, 어떤 성취를 거뒀는지 실시간으로 알리지 않으면 뒤처지는 것처럼 느껴진다고 하더군요. 연구에 따르면 그런 것을 많이 하는 사람일수록 우울감과 불안감이 높아진다고 합니다. 남의 화려한 모습을 보며 "나는 왜 저렇게 못 사나" 자책하면서, 정작 자신의 작은 성공은 자랑하고 싶어 안달이라니깐요. 이 모순된 심리가 현대인을 점점 더 피폐하게 만들고 있어요.
하지만 '채근담'의 지혜는 그 흐름의 정면으로 거슬러라고 조언합니다. "옷에 걸리는 것은 튀어나온 부분이다. 폭풍에 가장 먼저 꺾이는 것은 높이 솟은 나무예요. 낮게 엎드린 풀은 폭풍이 지나간 뒤에도 여전히 살아남아 다시 햇살을 맞이하지요." 황희 정승이 24년간 정승의 자리를 지킬 수 있었던 것도 바로 이 지혜 덕분이었어요. 치솟지 않고 드러내지 않고 묵묵히 자신의 길을 걸었기 때문이지요.
그로부터 여섯 달이 지났습니다. 김순자 씨의 이야기 그 후가 궁금하시지요? 김순자 씨는 더 이상 잘되는 이야기를 하지 않습니다. 대신 이웃들에게 이렇게 말해요. "요즘 허리가 아파서 힘들어." "손님이 줄어서 걱정이야." 신기하게도 이웃들이 다시 찾아오기 시작했어요. "순자야, 힘들지? 내가 우리 가게 손님들한테 내 식당 소개해 줄게." 관계가 회복되었습니다. 화분을 깨뜨린 사람이 누구인지는 끝내 밝혀지지 않았지만, 김순자 씨는 더 이상 그것을 추궁하지 않아요. 대신 새 화분에 새 꽃을 심었습니다. 그리고 혼잣말로 중얼거렸지요. "여보, 이제 알겠어. 사람들은 내가 잘될 때보다 내가 힘들 때 더 따뜻하더라고. 그게 인간인 것 같아."
여러분, 성공은 말할 때 줄어들고, 침묵할 때 자랍니다. 입을 닫는 것이 근고를 잠그는 것이에요. 사소한 성공을 숨길 수 있는 사람만이 큰 성공을 담을 그릇이 됩니다. 침묵은 금이 아니라 다이아몬드예요. 특히 잘될 때는 말이죠. 내일 기쁜 일이 생기시면 5초만 멈추세요. 그리고 스스로에게 물어보세요. "이 말을 왜 하려는가? 진심으로 기쁨을 나누려는 것인가? 아니면 은근히 나를 과시하고 싶은 것인가?" 만약 후자라면 그 말을 삼키세요. 삼킨 말은 여러분의 뱃속에서 큰 열매를 맺게 해 줄 거예요.
여러분 이룬 모든 성취는 소중합니다. 밤잠 설쳐가며 고민하고 애쓴 결과물이라는 것을 저도 잘 알아요. 하지만 그 소중한 결과물을 질투하는 불길 속에 던지지 마세요. 겸손이라는 보막으로 여러분의 행복을 지키시기 바랍니다. 홍자성은 '채근담'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를 지키면서 사는 사람은 한때 정막하지만, 권세에 의지하여 아첨하는 자는 영원토록 비굴하다. 깨달은 사람은 차라리 한때의 정막함을 겪을지언정 영원히 비굴함을 당하지 않는다." 다소한 성공을 숨길 수 있는 용기가 있을 때 비로소 여러분은 큰 성공을 담을 수 있는 그릇이 됩니다. 여러분의 내면이 깊어질수록 여러분의 삶은 더욱 풍격 있게 빛날 거예요.
말을 아끼는 것은 비겁함이 아닙니다. 세상의 모진 바람으로부터 나를 지키는 가장 강력한 무기예요. 오늘 밤 조용히 자리에 누워 하루를 되돌아보세요. 혹시 무심코 내뱉은 자랑은 없었는지, 나의 기쁨이 누군가에게 상처가 되지는 않았는지 말이에요. 그리고 내일은 오늘보다 조금 더 무거운 입술을 가져보겠다고 다짐해 보세요. 그 고요함 속에서 여러분은 이전에 느끼지 못했던 깊은 평화를 맛보시게 될 겁니다. 성공은 드러낼 때보다 감출 때 더 빛나는 법이에요. 그 빛은 밖으로 퍼져나가는 화려한 불꽃이 아니라, 여러분의 내면을 은은하게 비추는 따뜻한 등불이 되어 줄 거예요.
'채근담'의 지혜는 400년의 세월을 뛰어넘어 오늘날 우리에게 말합니다. 사람의 마음을 얻고 싶다면 성공을 말하지 말고, 나를 지키고 싶다면 그 성공을 숨기라고요. 이 따뜻한 조언을 가슴에 새기시길 바랍니다. 여러분의 삶이 타인의 시기와 질투에서 벗어나 오직 여러분만의 진정한 성취로 가득 차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침묵하세요. 그리고 겸손하세요. 그것이 여러분이 얻은 소중한 것들을 영원히 간직하는 유일한 길입니다. 사소한 성공조차 숨길 수 있는 용기가 있을 때 비로소 여러분은 큰 성공을 담을 수 있는 그릇이 될 것입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