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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이 들려주는 반야심경 이야기 | 부처님말씀 | 불교명언 | 법정스님 | 법문 | 좋은말씀 | 석가모니 가르침

마음쉼터 '부처님 말씀과 불교음악'26:37

Transcription

[음악] [박수] [음악]

깊은 산속 고요한 사찰에서 부처님과 제자들이 대화를 나누고 있습니다. 제자는 인생이란 무엇이고 무명이란 무엇이며 깨달음이란 무엇인지 깊은 질문을 하였습니다. 오늘은 이 대화를 통해 반야심경의 심오한 가르침을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반야심경은 불교 경전 중에서 가장 짧지만 가장 깊은 경전입니다. 겨우 260자 남짓한 짧은 경전이지만 그 안에는 부처님 가르침의 핵심이 모두 담겨 있습니다. 600권에 달하는 방대한 반야경을 한 방울에 담은 것과 같습니다. 이 시간이 끝나면 반야심경의 핵심 메시지를 이해하시고 일상에서 마주하는 고통과 괴로움을 다르게 바라보실 수 있을 것입니다. 집착을 내려놓고 자유로운 마음을 얻는 길을 발견하게 되실 겁니다.

먼저 반야심경의 첫 구절부터 살펴보겠습니다. "관자재보살 행심반야바라밀다 조견오온개공 도일체고액." 관자재보살이 깊은 반야바라밀다를 행할 때 다섯 무더기가 모두 공함을 비추어 보고 온갖 괴로움과 재앙을 건넜다. 여기서 관자재보살은 관세음보살을 말합니다. 관세음보살님이 깊은 지혜의 수행을 하실 때 무엇을 깨달으셨을까요? 오온이 모두 공하다는 것을 보셨습니다.

오온은 다섯 가지 무더기라는 뜻입니다. 색, 수상행식, 즉 물질, 느낌, 생각, 의지, 의식을 말합니다. 우리가 나라고 생각하는 모든 것이 바로 이 오온입니다. 내 몸, 내 감정, 내 생각, 내 의지, 내 의식이 모두 오온이죠. 그런데 이 오온이 모두 공하다는 것입니다. 공하다는 것은 없다는 뜻이 아닙니다. 고정된 실체가 없다는 뜻입니다. 모든 것이 끊임없이 변하고 있다는 뜻이죠.

비유를 들어 설명하겠습니다. 강물을 생각해 보세요. 우리는 한강이다, 금강이다 이름을 붙이지만 강물은 한 순간도 같은 모습으로 있지 않습니다. 지금 보는 물은 1초면 이미 다른 물입니다. 그리고 흐르며 끊임없이 변합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그것을 한강이라고 부릅니다. 이것이 바로 공의 의미입니다. 우리 자신도 마찬가지입니다. 10년 전에 나와 지금의 나는 완전히 다릅니다. 세포는 모두 바뀌었고 생각도 달라졌고 감정도 달라졌습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나라고 부릅니다.

부처님께서는 제자에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대들의 몸은 잠시 인연이 모여 이루어진 형상에 지나지 않는다. 영원히 머무는 것이 아니며 때가 되면 흙으로 물로 불로 바람으로 흩어지게 마련이다. 마음 또한 고정되어 변치 않는 실체라 여길지 모르나 마음 역시 한 순간도 같은 상태로 머물지 않고 끊임없이 변화하는 흐름과 같다. 너희는 좋아하는 것을 곁에 두고자 애쓰고 싫어하는 것은 멀리하고자 번뇌하니 이러한 마음의 작용에서 괴로움이 생겨나는 것이다." 이것을 깨달으면 온갖 괴로움과 재앙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괴로움의 원인이 바로 집착이기 때문입니다. 변하는 것을 변하지 않는다고 집착하니 괴로운 것입니다. 떠나가는 것을 붙잡으려 하니 아픈 것입니다. 사라지는 것을 영원하다고 믿으니 슬픈 것입니다.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관세음보살님은 오온이 모두 공함을 깨달으셨습니다. 모든 것이 변한다는 것을 아셨기에 집착에서 벗어나셨고 그래서 모든 고통에서 자유로워지셨습니다.

이제 반야심경의 가장 유명한 구절을 살펴보겠습니다. "색즉시공, 공즉시색." 물질은 공과 다르지 않고 공은 물질과 다르지 않으니 물질이 곧 공이요 공이 곧 물질이다. 이 구절은 반야심경의 핵심 중의 핵심입니다. 색즉시공, 공즉시색. 이 여덟 글자에 모든 진리가 담겨 있습니다. 하나하나 풀어서 살펴보겠습니다.

색은 물질을 뜻합니다. 우리 눈에 보이고 손에 잡히는 모든 것을 말합니다. 우리 몸도 색이고 이 세상의 모든 사물도 색입니다. 공은 비어 있다는 뜻이 아닙니다. 고정된 실체가 없다는 뜻입니다. 끊임없이 변하고 있다는 뜻이죠. 색즉시공. 물질은 공과 다르지 않다는 것은 모든 물질은 고정되어 있지 않고 끊임없이 변한다는 뜻입니다. 공부리색. 공은 물질과 다르지 않다는 것은 그 변화 속에서도 물질은 존재한다는 뜻입니다. 색즉시공. 물질이 곧 공이라는 것은 물질의 본질이 변화 그 자체라는 뜻입니다. 공즉시색. 공이 곧 물질이라는 것은 변화 그 자체가 물질로 나타난다는 뜻입니다.

현대 과학의 언어로 설명해 보겠습니다. 물리학에서는 물질이 원자로 이루어져 있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원자를 더 들여다보면 전자, 양성자, 중성자로 이루어져 있고 이것들을 더여다 보면 쿼크라는 입자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이 쿼크조차 고정된 입자가 아니라 에너지의 진동이라는 것입니다. 즉 우리가 단단하다고 생각하는 물질도 결국은 에너지의 흐름이고 변화의 과정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색즉시공의 의미입니다. 단단해 보이는 물질도 사실은 끊임없이 변하고 있습니다. 고정된 실체가 없습니다.

부처님께서는 다시 말씀하십니다. "텅빈 허공과 같다고 해서 아무것도 없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비어 있음으로 인해 무한한 에너지와 가능성으로 가득차 있음을 알아야 한다. 세상의 모든 존재는 이처럼 형상과 공함이 둘이 아니니 형상이 있기에 공함을 알 수 있고 공하기에 능히 만물의 형상을 드러낼 수 있는 것이다. 너희가 보는 산과 강, 사람과 사물이 모든 것은 인연 따라 잠시 그러한 모습으로 머무는 것이지 영원 불변하는 고유한 실체란 본래부터 없느니라."

그렇다면 일상에서 이것을 어떻게 적용할 수 있을까요? 예를 들어 볼게요.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졌을 때 우리는 깊은 슬픔에 빠집니다. 그 사람이 나의 행복의 전부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색즉시공을 깨달으면 다르게 볼 수 있습니다. 그 사랑도 변하는 것이 없고 헤어짐도 변하는 과정의 하나입니다. 지금의 슬픔도 영원하지 않고 반드시 지나갑니다. 이것은 슬픔을 느끼지 말라는 뜻이 아닙니다. 슬픔에 집착하지 말라는 뜻입니다. 슬픔을 느끼되 그것이 영원하지 않음을 아는 것입니다.

직장을 잃었을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그 직장이 나의 정체성의 전부라고 생각하면 절망에 빠집니다. 하지만 색즉시공을 깨달으면 그것도 변하는 과정의 하나임을 압니다. 새로운 시작의 기회일 수 있습니다. 병에 걸렸을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건강한 몸이 영원하다고 생각했기에 병이 두렵습니다. 하지만 모든 것은 변합니다. 병든 몸도 변하고 다시 건강해질 수 있습니다. 이것이 색즉시공, 공즉시색이 주는 위로입니다. 지금 당신을 괴롭히는 그 문제도 당신을 아프게 하는 그 감정도 모두 영원하지 않습니다. 구름이 지나가듯 모든 것은 변해 갑니다.

정리합니다. 색즉시공, 공즉시색은 모든 것이 변한다는 진리입니다. 이것을 깨달으면 집착에서 벗어날 수 있고 집착에서 벗어나면 고통에서 자유로워집니다.

반야심경은 계속해서 말합니다. "수상행식 역부여시." 느낌, 생각, 의지, 의식도 역시 이와 같다. 물질뿐만 아니라 우리의 모든 정신 활동도 마찬가지라는 것입니다. 내 느낌도 변하고 내 생각도 변하고 내 의지도 변하고 내 의식도 변합니다. 고정된 나라는 것은 없습니다.

부처님께서는 제자에게 물으셨습니다. "그대들의 몸과 감정 그리고 생각들은 시시각각 변하여 종잡을 수가 없습니다. 이렇게 변하는 것들에 의지하려 하니 괴로움이 따르는 것은 아닌지요?" "그러하니라. 너희의 몸뚱이도 일어나는 감정도 스쳐 지나가는 생각도 모두 한 순간도 같은 모습으로 머무르지 않고 끊임없이 변해 간다. 마치 흐르는 물이나 바람과 같으니라. 이처럼 시시 각각 변하는 것을 붙잡으려 하고 그것에 의지하려 하니 괴로움이 따르는 것은 당연한 이치이다. 그러므로 너희는 일어나는 감정을 너 자신과 동일시하지 말아야 한다. 감정은 너와는 별개의 것이며 마치 하늘의 구름이 잠시 나타났다가 사라지듯 그저 지나가는 하나의 현상으로 인식해야 한다. 기쁨이든 슬픔이든 분노 평온함이든 그저 알아차리고 흘려 보내야 하느니라."

아침에 행복했다가 저녁에 슬퍼지고 어제는 화가 났다가 오늘은 평온해집니다. 지금 좋아하는 것을 내일은 싫어할 수 있고 지금 싫어하는 것을 내일은 좋아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우리 마음의 본질입니다. 끊임없이 변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깨달으면 내 감정에 휘둘리지 않게 됩니다. 화가 나도 이것도 지나간다고 알 수 있고 슬퍼도 이것도 변한다고 알 수 있습니다. 기쁨에 들떠서 교만해지지도 않고 고통에 빠져서 절망하지도 않습니다. 나는 지금 무엇에 집착하고 있는가?

이제 반야심경에 또 다른 중요한 구절을 살펴보겠습니다. "사리자 시제법 공상 불생불멸 불구부정 불증불감." 사리자여, 이 모든 법의 공한 모습은 나지도 않고 멸하지도 않으며 더럽지도 않고 깨끗하지도 않으며 늙지도 않고 줄지도 않느니라. 사리자는 부처님의 10대 제자 중 한 분인 사리불을 말합니다. 지혜의 제일이라고 불리던 분이죠. 그런 사리불에게도 이 가르침은 놀라운 것이었습니다.

불생불멸. 나지도 않고 멸하지도 않는다는 것은 무슨 뜻일까요? 우리는 보통 생각합니다. 태어났다가 죽는다. 생겨났다가 없어진다고 말이죠. 하지만 진리의 관점에서 보면 새로 생기는 것도 없고 완전히 없어지는 것도 없습니다. 단지 형태가 바뀔 뿐입니다. 비유를 들어 설명하겠습니다. 얼음을 생각해 보세요. 얼음이 녹으면 물이 됩니다. 얼음이 죽고 물이 태어난 걸까요? 아닙니다. 형태만 바뀐 것입니다. 물이 증발하면 수증기가 됩니다. 물이 죽고 수증기가 태어난 걸까요? 아닙니다. 형태만 바뀐 것입니다. 본질인 H2O는 변하지 않습니다. 우리 인생도 마찬가지입니다. 태어남이라고 부르는 것은 새로운 형태로 나타난 것이고 죽음이라고 부르는 것은 다른 형태로 바뀌는 것입니다. 에너지는 사라지지 않고 단지 변환될 뿐입니다.

불구부정. 더럽지도 않고 깨끗하지도 않다는 것은 절대적인 선악이 없다는 뜻이 아닙니다. 우리가 더럽다, 깨끗하다고 구분하는 것이 상대적이라는 뜻입니다. 비가 내리면 농부는 기뻐하고 소풍 가는 사람은 슬퍼합니다. 비 자체는 좋은 것도 나쁜 것도 아닙니다. 우리의 관점에 따라 좋고 나쁨이 달라지는 것이죠. 불증불감. 늙지도 않고 줄지도 않는다는 것은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형태는 변해도 본질은 그대로입니다. 나무가 자라서 커지는 것처럼 보이지만 우주 전체의 물질의 양은 변하지 않습니다. 단지 다른 곳에 있던 물질이 나무로 형태를 바꾼 것입니다.

이제 반야심경의 핵심 구절로 들어갑니다. "시고 공중 무색, 무수상행식, 무안이비설신의, 무색성향미촉법, 무안계 내지 무의식계, 무무명, 영무명진, 내지 무노사, 영무노사진." 그러므로 공 가운데는 물질도 없고 느낌, 생각, 의지, 의식도 없으며 눈, 귀, 코, 혀, 몸, 뜻도 없고 형상, 소리, 냄새, 맛, 감촉, 법도 없으며 눈의 경계도 없고 의식의 경계까지도 없으며 무명도 없고 무명이 다함도 없으며 늙고 죽음도 없고 늙고 죽음이 다함도 없으며.

여기서 반야심경은 놀라운 선언을 합니다. 공의 관점에서 보면 모든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오온도 없고 12처도 없고 18계도 없고 12연기도 없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무슨 뜻일까요? 절대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없다는 뜻입니다. 모든 것은 조건에 따라 나타났다 사라지는 것이지 그 자체로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것은 없다는 뜻입니다. 부처님께서는 이것을 연기법이라고 하셨습니다. "이것이 있으므로 저것이 있고, 이것이 생함으로 저것이 생하며, 이것이 없으므로 저것이 없고, 이것이 멸함으로 저것이 멸한다. 모든 것은 연기의 법칙으로 이루어진다." 어떠한 현상이든 반드시 그것을 일으키게 한 원인과 조건이 있으며 그 결과 또한 다른 현상의 원인과 조건이 된다는 것이다. 마치 무지개처럼 말입니다. 무지개는 햇빛과 물방울의 조건이 맞으면 나타납니다. 하지만 가까이 가서 만질 수는 없습니다. 실체가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집착하는 모든 것이 이와 같습니다. 조건에 따라 나타났다 사라지는 것일 뿐 영원히 붙잡을 수 있는 실체는 없습니다.

이제 반야심경에 가장 중요한 구절이 나옵니다. "무고집멸도, 무지역무득." 고통도 없고 괴로움의 원인도 없고 괴로움의 소멸도 없고 괴로움을 소멸하는 길도 없으며 지혜도 없고 어둠도 없다. 이 구절은 많은 사람들을 당황하게 합니다. 부처님께서 평생 가르치신 사성제 고집멸도가 없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이럴 수 있을까요? 이것은 사성제를 부정하는 것이 아닙니다. 사성제조차 집착하지 말라는 가르침입니다. 마치 강을 건너기 위해 땜목을 사용하지만 강을 건넌 후에는 땜목을 버려야 하는 것과 같습니다. 초기 수행에서는 고집멸도를 열심히 닦아야 합니다. 하지만 높은 경지에 이르면 그것조차 내려놓아야 합니다. 땜목을 등에 지고 다니면 오히려 무거울 뿐입니다.

이제 반야심경의 실천 부분이 나옵니다. "이고 보리살타 의반야바라밀다 고 신무가애. 신무가애고 무유공포 원리전도몽상 구경열반." 얻을 것이 없기 때문에 보살은 반야바라밀다를 의지함으로로 마음에 걸림이 없다. 마음에 걸림이 없기 때문에 두려움이 없어 뒤바뀐 꿈과 생각을 멀리 떠나 궁극의 열반을 얻는다. 이 구절이 반야심경의 핵심 메시지입니다. 마음에 걸림이 없으면 두려움도 없다는 것입니다. 신무가애, 무가애고. 이 여덟 글자가 핵심입니다.

걸림이 없는 마음이란 무엇일까요? 집착하지 않는 마음입니다. 붙잡지 않는 마음입니다. 자유로운 마음입니다. 우리의 두려움은 모두 집착해서 나옵니다. 이를까 봐 두렵고 얻지 못할까 봐 두렵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이 떠날까 봐 두렵고 가진 것을 빼앗길까 봐 두렵습니다. 하지만 집착하지 않을 때, 놓아 버릴 때 마음이 자유로워집니다. 두려움에서 벗어납니다. 이것이 반야심경이 우리에게 주는 가장 큰 선물입니다.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이것을 어떻게 적용할 수 있을까요? 구체적인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직장에서 승진을 못 했을 때 우리는 좌절합니다. 승진이 나의 가치를 증명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신무가의 관점에서 보면 승진도 집착할 것이 아닙니다. 자녀가 원하는 대학에 떨어졌을 때 부모는 절망합니다. 좋은 대학이 성공의 전부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신무가의 관점에서 보면 그것도 집착뿐입니다. 건강 검진에서 이상 소견이 나왔을 때 우리는 공포에 빠집니다. 건강한 몸을 영원히 유지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신무가의 관점에서 보면 건강도 집착할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노력하지 말라는 뜻이 아닙니다. 최선을 다하되 결과에 집착하지 말라는 뜻입니다. 원하는 것을 추구하되 얻지 못해도 괜찮다는 마음을 가지라는 것입니다.

정리합니다. 신무가애, 걸림 없는 마음은 집착 없는 마음입니다. 집착이 없으면 두려움도 없고 두려움이 없으면 자유롭습니다.

이제 반야심경의 마지막 부분을 살펴보겠습니다. "이고 반야바라밀다 시대신주 시대명주 시무상주 시무등등주 능제일체고 진실불허." 그러므로 반야바라밀다는 큰 신비한 주문이며 큰 밝은 주문이며 위없는 주문이며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주문이다. 모든 괴로움을 없앨 수 있으니 진실하여 헛되지 않다. 반야심경은 반야바라밀다를 큰 주문이라고 말합니다. 주문은 진리를 응축한 소리입니다. 반야의 지혜 자체가 모든 고통을 해결하는 주문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마침내 반야심경의 유명한 진언이 나옵니다. "아제아제 바라아제 바라승아제 모지사바하." 그러므로 바냐바라밀다 주문을 설하니 곧 주문을 설하여 말하길 가자 가자 피안으로 가자 함께 피안으로 가자 깨달음을 이루었네. 이 진언이 반야심경의 대미를 장식합니다. 아제아제 바라아제 바라승아제 모지사바하. 이 짧은 구절 속에 모든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아제는 가자, 는 뜻입니다. 바라아제는 피안 즉 깨달음의 세계를 뜻합니다. 바라승아제는 함께 라는 뜻입니다. 모지사바하는 빨리 이루어지기를 또는 성취했네 라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전체 의미는 이렇습니다. 가자 가자 피안으로 가자 함께 피안으로 가자 깨달음을 이루었네.

이 진언은 우리에게 용기를 줍니다. 당신도 고통의 강을 건너 평안의 피안으로 갈 수 있습니다. 혼자가 아닙니다. 함께 갑니다. 이미 많은 이들이 그 길을 걸었고 당신도 갈 수 있습니다.

이제 오늘 배운 내용을 다섯 가지로 정리하겠습니다.

첫째, 오온개공은 우리를 구성하는 다섯 가지가 모두 변한다는 진리로 이것을 깨달으면 집착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둘째, 색즉시공 공즉시색은 물질과 공이 다르지 않다는 것으로 모든 것은 고정된 실체 없이 끊임없이 변합니다.

셋째, 불생불멸, 불구부정, 불증불감은 절대적 기준이 없다는 것으로 모든 것은 상대적이며 연기법에 따라 작용합니다.

넷째, 신무가애, 무가애고는 걸림 없는 마음에는 두려움도 없다는 것으로 집착을 놓으면 자유와 평안을 얻습니다.

다섯째, 아제아제 바라아제는 함께 피안으로 가자는 초대로 우리 모두 깨달음의 길을 걸을 수 있습니다.

구체적인 실천 방법을 다섯 단계로 말씀드리겠습니다.

첫째 단계: 매일 반야심경을 읽으세요. 소리내어 읽거나 마음속으로 읽으며 그 의미를 되새깁니다.

둘째 단계: 하루에 한 번 색즉시공을 떠올리세요. 지금 집착하는 것이 무엇인지 관찰하고 그것도 변한다는 것을 기억합니다.

셋째 단계: 감정이 일어날 때 알아차리세요. 화나 슬픔이 일어나면 이것도 공하다. 이것도 지나간다고 생각합니다.

넷째 단계: 하루를 마무리할 때 신무가애를 실천하세요. 오늘 있었던 일들을 놓아버리고 내일에 대한 걱정도 놓아버립니다.

다섯째 단계: 어려운 순간에 진언을 외우세요. 아제아제 바라아제 바라승아제 모지사바하를 반복하며 마음의 평안을 찾습니다.

지금 이 순간 마음을 비우고 반야의 지혜와 함께 하세요. 오늘의 괴로움도 잠시 머물다 사라질 것입니다. 그 자리에 다시 평안이 찾아옵니다. 구름이 지나가듯 모든 것은 변합니다. 집착을 내려 놓으면 자유가 찾아옵니다. 두려움을 놓으면 평안이 찾아옵니다. 당신도 고통의 강을 건너 평안의 피안으로 갈 수 있습니다. 반야심경이 그 길을 밝혀줍니다. 함께 그 길을 걸어갑시다. 나는 오늘 무엇을 내려놓을 수 있는가?

반야의 지혜가 우리를 비추시고 그 자비가 모든 중생과 함께 하시기를 기원합니다. 아제아제 바라아제 바라승아제 모지사바하.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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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 오늘도 평안을 주소서.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오늘도 부처님의 자비가 함께하시기를. [음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