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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변했다고요 진짜 본색이 드러난 겁니다|인간관계의 진실을 말하는 이병철의 가르침 | 이병철의 조언 | 이병철 | 인생조언 | 삶의지혜 | 오디오북

옛사람들의 지혜53:08

Transcription

사람의 얼굴은 그 사람의 내면을 비추는 거울과 같다. 나는 장사를 하면서 숫자를 계산하기 전에 먼저 사람의 얼굴과 태도를 주의 깊게 살펴보았다. 20살의 풋풋한 사진과 40대 이후에 깊어진 얼굴을 나란히 놓고 비교해 보면 그 시간 동안 쌓인 성품과 습관이 고스란이 드러나는 것을 볼 수 있다. 화장품으로 감출 수 있는 것은 피부의 결점일 뿐, 됨됨이는 표정과 눈빛 속에 고스란이 흔적을 남긴다.

사람을 알아볼 때 나는 세 가지 요소를 주의 깊게 관찰하고 서로 맞춰본다. 그것은 바로 말, 표정, 그리고 태도이다. 이 세 가지가 한 방향을 가르키고 일치한다면 마음속에 믿음의 씨앗이 싹 트지만, 재각 흩어진다면 거래를 신중하게 고려하거나 보류한다. 위선은 결코 오래 숨겨지지 않는다.

대화를 통해 그 사람의 진심을 꿰뚫어 볼 수 없을 때가 많다. 그럴 때는 오히려 어떤 목적도 없이 그 사람을 조용히 지켜본다. 벤치에 앉아 지나가는 사람들을 바라보듯이 선입견을 내려놓고 차분하게 관찰하면 그 사람의 진짜 본성과 내면의 결이 비로소 드러난다.

사업을 하다 보면 거짓말보다 더 까다로운 적을 만나게 된다. 그것은 바로 진심으로 하는 헛소리이다. 능숙한 거짓말쟁이는 명백한 사실로 논박하여 이길 수 있지만, 헛소리꾼은 진실에는 애초에 관심이 없다. 이런 사람과의 소모적인 논쟁으로는 결코 이길 수 없다.

내가 선택한 길은 단순하고 명료했다. 내 스스로 정의를 분명하게 세우는 것. 나는 어떤 사회를 만들고 싶은가? 어떤 모습의 상인으로 기억되고 싶은가? 이 확고한 정의가 마음속에 자리잡고 있을 때 비로소 주변의 선동에 흔들리지 않고 중심을 잡을 수 있다.

조직을 경영하면서 특히 경계해야 할 부류가 있다. 바로 나르시시스트, 자기에 빠진 사람들이다. 이들은 자신이 뛰어나다는 것을 증명하기보다는 남들이 못나야만 만족감을 느낀다. 이런 유형의 사람은 늘 은밀한 자리에서 남의 험담을 하고 깎아내리기에 연이 없다. 처방은 명료하다. 첫째, 그런 사람과는 단둘이 만나는 것을 최대한 피한다. 둘째, 공은 반드시 공개적으로 돌린다. 상은 회장이 개인적으로 주는 상이 아니라 조직 전체가 주는 상이어야 한다. 그래야 누구의 공도 도둑 맞지 않고 질투심이 파고들 틈을 주지 않는다.

인간관계에서는 적절한 경계가 소중한 자산이 된다. 남의 하소연을 끝없이 받아주다 보면 어느 순간 나는 감정 쓰레기통이 되어 버린다. 나는 이렇게 응대한다. "그러니까 내 말은 당신의 이야기는 결국 이렇다는 뜻이지요." 하고요 점을 명확하게 요약하여 되돌려 준다. 상대방은 스스로의 말을 거울처럼 되돌아보게 되고 관계는 건강한 질서를 찾아간다. 적당한 거리를 둔다는 것은 결코 관계를 끊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단지 서로의 공유 면적을 슬기롭게 줄이는 기술이다.

가정에서도 그 원리는 똑같이 적용된다. 자신의 분노를 제대로 다스리지 못하는 어른은 어릴 적 감정 표현의 주체, 즉 자신의 감정을 온전히 드러내고 해소할 기회를 갖지 못했던 경우가 많다. 아이가 겉잡을 수 없이 화를 낼 때는 화를 낼 수는 있지만, "지금 네가 보이는 감정의 강도는 지나치다라고" 차분하게 알려주면 된다. 회사에서도 마찬가지다. 격렬한 감정 앞에서는 한걸음 물러나 천천히 말하고 상대방의 말을 한번 되돌아물어 주어라. 그러면 뜨겁게 타오르든 감정의 열기는 서서히 내려간다.

실패를 대하는 태도 또한 성장을 가르는 중요한 기준이 된다. 나는 부하 직원들에게 "내 그럴 줄 알았어"라는 말을 절대 금지했다. 그 무심한 한 마디가 소중한 학습의 기회를 멈추게 만들기 때문이다. 대신 가벼운 인정, 명확한 교정, 그리고 다음 실험에 대한 약속을 제시한다. 회사의 긍정적인 속도는 바로 그러한 습관에서 비롯된다.

많은 이들이 자신을 게으르다고 탓한다. 하지만 나는 그렇게 보지 않았다. 그것은 게으름이 아니라 행동을 유발하는 트리거의 부재이다. 책을 읽고 공부하려면 먼저 공부가 아니라 표지를 펼친다는 아주 작은 첫 움직임을 설계하라. 일어나기 힘든 아침에는 왼발을 이불 밖으로 내민다부터 시작하라. 아주 작은 문턱을 넘는 순간 몰입은 자연스럽게 따라온다.

사업도 마찬가지다. 거창한 전략은 회의실에서 무너지고 작은 실행은 현장에서 차곡차곡 쌓인다. 하루의 시간을 사용하는 방법도 분명하게 정해야 한다. 아침에는 중요한 결정과 설계, 오후에는 정해진 루틴과 반복적인 업무를 처리한다. 내가 가장 정신이 맑을 때 중요한 결정을 하고 필요할 때 자동화된 일을 배치한다.

계획은 단순한 목표가 아니다. "이번 주에 끝낸다"는 말은 그저 추상적인 외침일 뿐이다. 나는 계획을 시간 단위로 세분화한다. 예를 들어 9시부터 9시 30분까지 300 보페이지를 읽고 9시 30분부터 10시 6분까지 60페이지를 읽는다처럼 진척 상황이 눈에 보이면 마치 게임처럼 몰입하게 된다.

긴 꿈은 명사가 아닌 동사로 표현해야 한다. 나는 40대에 이직을 하겠다가 아니라 "어디서든 중심을 세우는 사람으로 행동하겠다"처럼 능동적인 동사를 사용하라. 명사는 좌절을 만들지만 동사는 대안을 낳는다. 길이 막히면 부서 이동부터 시도하라. 회사를 나가기 전에 회사 안에서 역할을 바꿔 보라. 안전한 상태에서 새로운 성장감을 되찾는 현명한 방법이다.

평생 나는 이렇게 믿으며 살아왔다. 성품은 얼굴에 남고, 정의는 선택을 지키며, 습관은 회사를 키운다. 사람을 잊는 법, 시간을 쓰는 법, 공을 나누는 법. 이 세 가지만 제대로 익히면 사업은 쉽게 흔들리지 않는다. 오늘 당신의 얼굴에 무엇을 남길 것인가? 오늘의 단 한 번의 표정, 단 한 번의 결정, 단 한 번의 경계가 곧 내일의 회사를 만들어 나간다.

젊은 시절 나는 사람의 이력서를 맹목적으로 믿지 않았다. 서류에는 학력과 경력이 자세히 적혀 있었지만, 그보다 더 많은 것을 말해 주는 것은 바로 얼굴의 결이었다. 장사를 막 시작했을 때 돈이 아닌 사람을 고르는 법을 어머니께 배웠다. 어머니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예야, 사람의 눈빛이 탁하면 돈은 잠깐 모여도 오래 가지 못한다." 그 말은 내 인생 전체를 이끌어가는 하나의 중요한 철학이 되었다.

사람은 나이를 먹을수록 마음이 얼굴을 뚫고 나온다. 맑고 깨끗한 얼굴은 누구나 가질 수 있다. 하지만 40대가 넘으면 그 얼굴에는 살아온 선택들이 고스란이 새겨진다. 욕심이 많은 사람은 입꼬리가 아래로 쳐지고, 불평이 많은 사람은 이마가 굳어진다. 반대로 마음이 고운 사람은 아무리 고생을 해도 얼굴이 굳세고 단단하다. 나는 사업장에서 그런 사람을 보면 무조건 가까이 하려고 노력했다. 당장에는 손해를 보더라도 결국에는 신뢰를 남기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요즘 세상은 얼굴조차 가짜로 꾸밀 수 있다. SNS에서는 모두가 밝게 웃고 있지만, 나는 그 웃음의 각도를 주의 깊게 살펴본다. 진심이 담긴 사람의 미소는 미세하게 비대칭이다. 한쪽 입술이 먼저 올라가고 눈가에 잔주름이 먼저 피어난다. 그것은 돈으로 계산할 수 없는 인간의 진심이 남긴 흔적이다. 그래서 나는 면접에서도 외모를 보되, 외모에 정렬된 모습은 보지 않았다. 오히려 허트러짐, 불안함, 긴장감 속에서 인간의 본 모습이 더욱 잘 드러난다.

나에게 사업이란 결국 사람을 읽고 사람을 얻는 일이었다. 상품은 끊임없이 바뀌어도 사람의 본질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 누가 표정을 감추려고 애쓰는가? 누가 말보다 눈으로 신용을 전달하는가? 그 작은 차이가 거래의 성패를 갈랐다. 나는 부하들에게 늘 이렇게 말했다. "거래처의 말보다 그 사람이 웃는 순간에 눈빛을 봐라. 그 눈빛 속에는 신용, 두려움, 욕심이 함께 들어 있다. 그걸 읽을 줄 알면 절대 속지 않는다."

성품은 하루 아침에 만들어지지 않는다. 그것은 수백 번의 선택, 수천 번의 인내 속에서 서서히 쌓인다. 나는 사장의 얼굴이 회사의 얼굴이라고 믿었다. 그래서 매일 아침 거울 앞에 서면 이렇게 스스로에게 물었다. "오늘 내 얼굴에는 어떤 생각이 묻어 있는가?" 욕심이 묻었다면 내려놓고, 감사가 묻었다면 더욱 지켜라. 그 단순한 습관 하나가 내 평생의 신용을 지켜주었다.

나는 평생 사람을 곁에 두는 일에 신중을 기했다. 사업이 커질수록 사람은 숫자로 모이지만, 그중 단 한 사람의 잘못된 욕심이 회사를 병들게 할 수 있다. 삼성화재를 막 일으킬 무렵 나는 이런 말을 자주 했다. "회사는 실력으로 무너지는 게 아니다. 사람의 독으로 무너진다." 그때 말한 독이란 단 한 가지였다. 바로 나르시스트, 자기에 빠진 사람들이다. 그들은 자신이 잘난 것보다 남이 못나야만 만족한다. 겉으로는 충성스러워 보여도 속으로는 끊임없이 비교하며 타인의 성공을 깎아내린다. 이런 사람은 늘 은밀한 자리를 좋아한다. 공개된 회의에서는 침묵하고 폐쇄된 방안에서는 동료의 허물을 떠든다.

나는 그런 사람을 보며 이렇게 판단했다. "이 사람은 회사를 위해 일하지 않는다. 자기 우월감을 위해 일한다." 그래서 나는 원칙을 세웠다. 공은 반드시 공개적으로 나누고 독대는 금지한다. 칭찬할 일은 회의장에서 모두가 보는 앞에서 칭찬했다. 그때는 작은 공이라도 빛을 바랬다. 하지만 누군가의 잘못을 지적해야 할 때는 내가 아닌 시스템이 하도록 했다. 리더가 감정적으로 꾸짖으면 조직은 한 사람의 표정에 휘둘린다. 그러나 시스템이 지적하면 공정함이 남는다.

나는 상의 이름에서도 내 이름을 뺐다. 회장상, 사장상이 아니라 삼성화재 공로상, 삼성화재 혁신상이라 했다. 그것은 단순한 명칭이 아니라 회사에 공을 한 개인이 독점하지 못하게 만드는 장치였다. 상은 사람이 주는 것이 아니라 조직이 주는 것이다. 이 철칙 하나가 내부의 질투심을 크게 줄였다. 나르시시스트는 권력과 칭찬을 먹고 자란다. 칭찬이 사라지면 그들은 스스로 독을 만든다. 그래서 나는 오히려 그런 사람에게 "당신의 공로를 조직 전체가 자랑스러워한다"라고 말했다. 그 말에는 "당신 혼자가 아니다"라는 경고가 담겨 있었다.

사람은 누구나 인정을 원한다. 하지만 진짜 리더는 그 인정이 공정한 무게로 전달되도록 조율해야 한다. 나는 그것을 인정의 배분이라 불렀다. 그 배분이 틀어지면 유능한 사람도 독이 된다. 회사를 경영하는 것은 결국 감정의 균형을 잡는 일이다. 이익의 숫자는 계산기로 맞출 수 있지만, 인정의 온도는 사람의 눈으로만 조율된다. 나는 늘 이렇게 말했다. "조직의 평화는 돈이 아니라 마음의 분배에서 온다."

사업을 오래 하다 보면 진심으로 도와야 할 사람과 정중하게 거리를 두어야 할 사람이 분명히 보인다. 그러나 대부분은 그 구분을 하지 못해 자신을 소모한다. 나는 평생 사람을 근치 않았다. 하지만 대신 공유 면적을 줄였다. 거리를 둔다는 것은 관계를 끊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의 영향이 나를 흔들지 않게 선을 긋는 일이었다.

삼성화재 초창기. 나는 하루에도 수십 명의 하소연을 들었다. "회장님, 저 사람은 늘 제 말을 무시합니다." "회장님, 억울합니다. 제 공이 가려졌어요." 그럴 때마다 나는 말하지 않고 요약했다. "그러니까 당신 말은 그가 당신 공을 가로챘다는 뜻인가?" 그 한마디로 상대는 스스로의 말을 되돌아본다. 사람은 거울에 비친 자신의 표정을 볼 때만 진심을 깨닫는다. 경청은 미덕이지만 끝없는 하소연을 듣는 것은 미련한 지시다. 누군가 내 앞에서 불평을 쏟아낼 때 그 불평의 목적이 나의 공감을 구하려는 것인지 아니면 나를 감정의 쓰레기통으로 쓰려는 것인지 구분해야 한다. 나는 그런 경계선을 이렇게 세웠다. 상대의 이야기가 나를 가볍게 만드는가? 무겁게 만드는가? 무겁게 만든다면 반드시 거리를 조정했다.

한 번은 올해 일한 간부가 내게 찾아와 말했다. "회장님, 직원들이 제 진심을 몰라줍니다." 나는 조용히 물었다. "그 진심을 말로만 보여주었는가? 행동으로 남겼는가?" 그는 대답하지 못했다. 진심이란 단어는 입으로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시간으로 증명하는 것이다. 나는 인간관계를 하나의 투자처럼 봤다. 좋은 관계는 이익이 아니라 신뢰를 남기고, 나쁜 관계는 감정의 부채를 만든다. 그래서 나는 이렇게 정리했다. "의리를 지키되 감정에 비치지 마라." 그 선을 넘어가면 사람은 결국 스스로를 잃는다.

사업뿐 아니라 가정에서도 원리는 같다. 감정은 표현해야 하지만 상대 감정 속으로 침수되면 안 된다. 가족의 슬픔을 함께 느끼되 대신 울어주지 않는다. 직원의 분노를 이해하되 대신 싸워 주지 않는다. 나는 늘 말했다. "온정은 따뜻해야 하지만 끌어서는 안 된다." 그 말의 뜻은 인간관계 열을 적당히 시키는 법을 배우라는 것이다. 거리두기는 냉정함이 아니다. 그것은 서로를 오래 지키기 위한 예의이다. 모든 관계는 온도가 맞아야 오래 간다. 나는 그 온도를 조절하는 기술을 경영보다 먼저 배웠다. 사람의 마음이야말로 가장 위험한 불이기 때문이다.

사람은 누구나 실수를 한다. 그러나 실패를 대하는 태도는 사람마다 다르다. 나는 수많은 직원이 넘어지는 모습을 보며 두 부류로 나눴다. 넘어지고 다시 일어서는 사람. 넘어지고 주저앉아 스스로를 탓하는 사람. 이 둘의 차이는 단 한 문장으로 갈린다. "내 그럴 줄 알았어." 나는 이 말을 회사에서 금지시켰다. 그 말이 나오는 순간 학습의 기회는 사라지고 성장의 동력은 멈춘다. 멈추기 때문이다. 사람은 문제를 마주하지 않고 이미 예견된 일로 치부해 버립니다. 예측은 있었지만 대책이 없었던 것이 문제인데, 그 말은 책임을 회피하는 것입니다. 저는 실수를 한 직원에게 늘 이렇게 물었습니다. "이번 실패에서 무엇을 배웠나?" 대부분은 대답하지 못합니다. 배운보다 변명부터 떠올리기 때문입니다. 그럴 때 저는 종이에 이렇게 적게 했습니다. "잘못의 원인 한 가지, 개선 방법 세 가지." 잘못은 하나로 좁히고 대책은 넓혀야 합니다. 그것이 성장의 시작입니다.

제가 젊었을 때도 그랬습니다. 처음 무역을 시작했을 때 일본 거래처에 돈이 사라진 적이 있습니다. 주변에서는 "이병철이 그럴 줄 알았다"라며 손가락질했습니다. 그 말이 가장 아팠습니다. 돈을 잃은 것이 아니라 신용을 잃을까 두려웠기 때문입니다. 그날 밤 저는 거래 장부를 다시 쓰며 스스로에게 다짐했습니다. "나는 같은 실수를 두 번 하지 않는다." 그 다짐 하나가 오늘의 삼성을 만들었습니다. 실패는 결과가 아닙니다. 그것은 교정의 기회입니다. 실패를 감추면 수치가 되지만 인정하면 자산이 됩니다. 저는 임원 회의에서 늘 솔직하게 말했습니다. "이번 분기 저는 판단을 잘못했습니다." 그 말 한마디로 조직의 분위기가 바뀌었습니다. 리더가 실수를 인정하면 부하 직원은 실수를 고백할 수 있게 됩니다. 그때부터 회사는 성장합니다. 실패를 두려워하는 조직은 도전을 피합니다. 그러면 머지 하나 정체됩니다. 저는 실패한 사람을 벌하지 않았습니다. 대신 같은 이유로 두 번 실패한 사람을 음악하게 다뤘습니다. 실패를 반복한다는 것은 생각하지 않고 일한다는 증거이기 때문입니다. 기업의 생명은 완벽함이 아니라 수정력에 있습니다. 완벽하려는 자는 자만에 빠지고 수정하려는 자는 진화합니다. 저는 부하들에게 말했습니다. "실패한 날은 부끄러운 날이 아니라 회사에 새 장을 여는 날이다." 성공의 밑바탕에는 언제나 수많은 실패의 잔재가 깔려 있습니다. 다만 그 실패 위에 흙을 덮고 다시 씨를 뿌릴 줄 아는 사람만이 결국 나무를 키웁니다. 저는 그 나무를 삼성이라 불렀습니다.

사람들은 저를 두고 이병철은 부지런하다고 말했지만 저는 그 말을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게으른 사람이었습니다. 다만 시작의 법칙을 아는 게으른뱅이었습니다. 게으른 사람은 의지가 부족한 것이 아닙니다. 그저 트리거 즉 시작의 불씨를 찾지 못한 것입니다. 책상 앞에 앉는 일이 어렵지 한번 앉으면 누구나 일어납니다. 출근 길이 힘들지 막상 사무실에 들어오면 사람은 움직이기 시작합니다. 저는이 단순한 이치를 일찍 깨달았습니다. 삼성 상해를 처음 열던 날 저는 스스로에게 작은 약속을 했습니다. "오늘 단 한 가지라도 시작을 하자." 거래를 못 맺어도 좋고 손해를 봐도 좋습니다. 하지만 손을 한 번이라도 뻗는 시도는 반드시 하자. 그것이 제 인생의 습관이 되었습니다.

사람들은 결심을 너무 크게 세웁니다. "이번 주에는 계획서를 완성하자." 그것은 목표이지 계획이 아닙니다. 저는 계획을 쪼개는 사람이었습니다. "아침 8시 팬을 든다. 8시 10분 첫 문장을 쓴다. 8시 20분 잘못된 문장을 지운다." 이렇게 시간을 세분화하면 마음이 움직입니다. 왜냐하면 성취감은 결과가 아니라 움직였다는 사실 자체에서 생기기 때문입니다. 저는 회사에서도 이 방식을 똑같이 적용했습니다. 직원들에게 큰 보고서보다 첫줄을 쓰라고 했습니다. 그 첫 줄을 쓰는 순간 생각이 깨어납니다. 일은 그 뒤부터 굴러가기 시작합니다.

어떤 이들은 저에게 물었습니다. "회장님, 어떻게 그렇게 몰입하십니까?" 저는 대답했습니다. "몰입은 타고하는 것이 아니다. 설계하는 것이다." 사람의 뇌는 몰입을 사랑합니다. 하지만 그 문턱을 넘지 못해 늘 시작도 못한 채 후회합니다. 그래서 저는 문턱을 낮췄습니다. "공부하자"가 아니라 "책을 펴자". "일어나자"가 아니라 "이불을 걷자". 그 한 걸음이 모든 몰입의 시작입니다. 몰입이란 결국 의식이 아닌 구조입니다. 저는 제 하루를 구조로 만들었습니다. 아침에는 사고와 결정, 오후에는 루틴과 반복, 밤에는 성찰과 기록. 이 틀이 있으면 마음이 흔들려도 하루는 흔들리지 않습니다. 사람은 하루의 구조 안에서 자유를 느낍니다. 아무 틀이 없는 자유는 방종이고 규칙 안에 자유는 창조입니다. 저는이 차이를 아는 사람만이 끝내 자신을 다스린다고 믿었습니다. 게으음은 죄가 아닙니다. 그것은 아직 자신의 시작을 설계하지 못한 사람의 이름일 뿐입니다. 트리거를 찾는 사람은 몰입을 얻고 몰입을 얻은 사람은 결국 불을 만듭니다. 불은 노력에서 오지 않습니다. 그것은 몰입의 부산물입니다.

저는 하루를 전쟁처럼 살았습니다. 그렇다고 무작정 것은 아닙니다. 저는 언제 싸워야 하고 언제 물러서야 하는지를 정확히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그 기준은 단 하나였습니다. 시간의 리듬. 사람의 하루에는 두 개의 시간대가 있습니다. 결정의 시간과 반복의 시간. 아침은 판단과 선택의 시간이고 오후는 익숙함으로 채워야 하는 시간입니다. 저는이 순서를 뒤집지 않았습니다. 그것이 하루를 낭비하지 않는 가장 단순한 철학이었습니다.

젊은 시절 저는 아침마다 서류를 펼쳐 그날에 큰 결정을 내렸습니다. 어떤 거래를 성사시킬지, 어떤 파트너를 선택할지, 어떤 손해를 감수할지를 미리 정했습니다. 결정은 체력이 아니라 맑은 정신의 일이기 때문입니다. 제가 가장 날카로운 시간 그때 내린 선택이 하루 전체의 흐름을 결정했습니다. 반면 오는 머리를 쓰기보다 몸이 기억하는 일을 시켰습니다. 문서 정리, 재고 확인, 고객 응대 같은 루틴한 업무들. 사람은 익숙할수록 자동화된 일을 더 잘 해냅니다. 그래서 저는 늘 말했습니다. "오전에 고민하고 오후에는 반복하라." 고민을까지 끌면 실수가 따라온다.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이다. 이 단순한 원칙 하나로 삼성의 생산성과 품질은 달라졌습니다. 직원들이 아침마다 결정을 미루지 않자 오후에는 일이 술 흘러갔습니다. 흘러야 합니다. 노력하는 조직보다 흐르는 조직이 오래 갑니다. 저는 회의도 오전에만 열었습니다. 회의는 판단의 집합이기 때문입니다. 오후 회의는 필요한 사람들의 불평장으로 변합니다. 그래서 삼성상해 시절부터 오후 회의 금지는 제 철칙이었습니다. 대신 오후에는 각자 자신의 루틴을 채우게 했습니다. 결정과 루틴이 분리되면 회사는 살아 숨십니다.

이 원리는 인생에도 그대로 적용됩니다. 젊은 날의 아침은 인생의 결정기입니다. 무엇을 할지, 누구와 갈지, 어떤 길을 택할지를 정해야 합니다. 반면 중년 이후의 삶은 루틴을 세우는 오후입니다. 그때는 더 이상 선택하지 말고 선택한 길을 반복하며 단단히 다듬어야 합니다. 저는 아침에 결정으로 회사를 세웠고 오후의 반복으로 신용을 쌓았습니다. 사람은 생각보다 단순합니다. 결정을 잘하는 사람보다 결정한 일을 꾸준히 반복하는 사람이 결국 승리합니다. 제 인생의 결론은 명확했습니다. 결정은 지혜로, 반복은 인내로. 지혜가 없는 반복은 낭비이고 인내가 없는 결정은 공허합니다. 저는 그 두 가지를 하루의 리듬 속에 녹였습니다. 그 리듬이 흐를 때 회사는 살아 움직였고 저 역시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저는 평생 목표를 세우는 사람들을 많이 봤습니다. "회장님, 올해는 임원이 되겠습니다." "회장님, 5년 안에 집을 사고 싶습니다." 그들의 말은 모두 명사였습니다. 임, 집, 성공. 하지만 저는 그런 목표를 믿지 않았습니다. 명사는 사람을 멈추게 만듭니다. 명사는 도착지지만 인생은 여정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젊은 직원들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목표를 세울 때는 명사 대신 동사로 세워라." "나는 사장이 되겠다가 아니라 나는 사람을 움직이는 사람이 되겠다." "나는 부자가 되겠다가 아니라 나는 돈을 잘 쓰는 사람이 되겠다." 이렇게 말하는 순간 길이 열립니다. 동사는 방향을 만들고 명사는 벽을 만듭니다.

삼성상회가 처음 성장하던 시절 저는 재벌이 되겠다는 꿈을 꾼 적이 없습니다. 그 대신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나는 거래하는 사람의 신뢰를 얻는 사람이 되겠다." 그 한 문장이 회사를 키웠습니다. 명사는 나를 조급하게 하지만 동사는 나를 꾸준하게 만듭니다. 조급한 사람은 결과를 서두르다 무너지고 꾸준한 사람은 결과를 기다리다 성장합니다. 목표를 세울 때 또 하나의 원칙이 있습니다. 가까운 것은 구체적으로 먼 것은 추상적으로. 사람들은 반대로 합니다. "35세의 10억을 모으겠다." 이건 너무 구체적인 미래입니다. 시간이 조금만 어긋나도 전부 실패처럼 느껴집니다. 반대로 이렇게 말해 보십시오. "나는 35세에 돈이 나를 지배하지 않는 사람이 되겠다." 이건 추상적이지만 길을 여러 개 열어 줍니다. 공교육 교사가 되지 못해도 누군가를 가르치는 사람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목표를 동사로 세운 사람은 환경이 바뀌어도 흔들리지 않습니다. 직업이 달라져도 가치가 이어집니다. 그것이 바로 지속 가능한 성장의 구조입니다. 저는 회사의 모든 비전을 그렇게 바꿨습니다. "매출 1조 원 달성이 아니라 세계 시장에서 신뢰받는 제품을 만든다." 그 순간 회사의 방향이 숫자에서 철학으로 옮겨갔습니다. 그 철학이 회사를 살렸습니다. 명사는 인생을 좁히지만 동사는 인생을 확장합니다. 저는 지금도 묻습니다. "너희 목표는 무엇이냐?" 그때 대답이 동사라면 그 사람은 이미 성장하고 있습니다. 그때 대답이 명사라면 그는 아직 꿈을 멈춘 사람입니다. 저는 평생 명사보다 동사를 사랑했습니다. 지식보다 행동, 자산보다 태도, 결과보다 과정. 결국 사람의 인생은 한 문장으로 요약됩니다. "그는 어떤 일을 해낸 사람이었다." 명사가 아니라 동사로 남는 사람. 그게 제가 되고 싶었던 인간이었습니다.

사업이 커질수록 저는 깨달았습니다. 사람을이기는 사람은 없습니다. 돈으로, 권력으로, 지식으로도 결국 인간 관계를 넘어설 수는 없었습니다. 회사를 키우는 일보다 어려운 건 사람과 오래 가는 일이었습니다. 나르시시스트는 언제나 조직의 중심을 노립니다. 겉으로는 충성하지만 속으로는 경쟁자를 깎아내립니다. 이들은 타인의 성공을 두려워합니다. 왜냐하면 자신의 빛이 줄어든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저는 이런 사람을 멀리하지 않았습니다. 대신 조직의 구조 속에 가두었습니다. 그들의 에너지를 개인의 욕심이 아닌 공동의 목표로 흘러가게 만드는 것이 제 역할이었습니다. 저는 그들에게 직접 말했습니다. "너희 재능은 인정한다. 하지만 이 조직에서 그 재능은 팀의 몫이다." 그 말에 표정이 굳는 걸 자주 봤습니다. 그러나 진짜 리더는 사람의 감정을 달래는이가 아니라 그 감정이 회사를 해치지 않게 막는 사람입니다.

저는 공존의 심리학을 믿었습니다. 공존이란 서로를 희생시키지 않고 오래 함께 가는 기술입니다. 리더가 이기면 부하는 의욕을 잃고, 부하가 이기면 리더는 통제력을 잃습니다. 그래서 저는 항상 이익을 분배하되 권한은 분리했습니다. 돈의 흐름과 권력의 흐름이 같은 방향으로 가면 언제나 조직이 부패했습니다. 한 번은 어느 직원이 제게 말했습니다. "회장님, 저는 조직을 위해 싸웠습니다." 저는 조용히 물었습니다. "그 싸움이 회사를 위한 것이었나? 당신의 자리를 지키기 위한 것이었나?" 그는 대답하지 못했습니다. 그날 저는 그에게 새로운 부서를 맡혔습니다. 그가 원한 자리보다 한 단계 낮은 곳이었습니다. 그리고 말했습니다. "이곳에서 진짜 싸움을 배워라. 사람을이기는게 아니라 사람과 버티는 싸움을." 공존의 심리학은 냉정한 전략이 아닙니다. 그것은 따뜻한 거리감입니다. 서로 너무 가깝지도 너무 멀지도 않은 적정한 온도의 관계를 유지하는 것. 저는 그것을 경영의 비밀이라고 믿었습니다.

삼성상해 시절. 저는 매일 직원들과 점심을 함께 했습니다. 그 자리는 회의가 아니라 인간을 이해하는 자리였습니다. 사람들은 흔히 문제에 직면했을 때 그것을 해결하려 애쓰기보다 이미 예견된 일로 치부해 버리는 경향이 있습니다. 예측은 했지만 실질적인 대책을 마련하지 못했던 것이 문제임에도 불구하고, 그저 예상했던 일이라고 말하며 책임을 회피하려는 태도를 보이는 것입니다. 이러한 상황을 마주할 때마다 저는 실수를 저지른 직원들에게 늘 같은 질문을 던졌습니다. "이번 실패를 통해 무엇을 배웠습니까?" 하지만 대부분은 명확한 대답을 내놓지 못했습니다. 배움을 얻기보다는 자신의 잘못을 변명하기에 급급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저는 종종 직원들에게 종이와 팬을 건네며 다음과 같이 적도록 지시했습니다. "자신의 잘못에 대한 원인 한 가지 그리고 그에 대한 개선 방법 세 가지." 잘못의 원인은 가능한 한 좁혀서 명확히 규정하고, 그에 대한 대책은 폭넓게 고민하여 다양한 해결 방안을 모색하도록 유도한 것입니다. 저는 이러한 과정을 통해 비로소 진정한 성장이 시작된다고 믿었습니다.

돌이켜 보면 저 역시 젊은 시절에 비슷한 경험을 했습니다. 처음 무역 사업을 시작했을 무렵 거래처에서 상당한 금액의 돈이 사라지는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이 소식을 접한 주변 사람들은 "역시 이병철이 그럴 줄 알았다"라며 손가락질했습니다. 그들의 비난은 돈을 잃은 사실보다 저의 신용을 잃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안겨 주었기에 더욱 아프게 다가왔습니다. 그날 밤 저는 사라진 돈에 대한 거래 장부를 다시 꼼꼼히 작성하며 스스로에게 굳게 다짐했습니다. "나는 절대로 같은 실수를 두 번 반복하지 않겠다." 바로 그 다짐 하나가 오늘날의 삼성을 만들어낸 근본적인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저는 실패를 단순히 부정적인 결과로 치부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실패는 자신을 되돌아보고 개선할 수 있는 소중한 기회라고 생각합니다. 자신의 실패를 숨기려 한다면 그것은 평생 씻을 수 없는 수치로 남게 될 것입니다. 하지만 솔직하게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반성한다면 실패는 미래를 위한 갑진 자산으로 변모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믿음을 바탕으로 저는 임원 회의와 같은 중요한 자리에서 늘 자신의 과오를 솔직하게 인정했습니다. "이번 분기에는 제가 판단을 잘못했습니다." 때로는 뼈 아픈 자기반성 한 마디가 조직 전체의 분위기를 쇠신하는 놀라운 효과를 가져오기도 했습니다. 리더가 먼저 자신의 실수를 인정하고 공개적으로 이야기할 때 비로소 조직 구성원들은 자신의 실패를 솔직하게 고백하고 함께 해결책을 모색할 수 있게 됩니다. 그리고 바로 그 순간부터 회사는 건강하게 성장하고 발전할 수 있습니다. 반대로 실패를 지나치게 두려워하는 조직은 새로운 도전을 회피하게 되고 결국에는 정체될 수밖에 없습니다.

저는 실패를 경험한 사람에게 책임을 묻거나 벌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같은 이유로 두 번 이상 실패를 반복하는 사람에게는 엄중한 책임을 물었습니다. 실패를 반복한다는 것은 문제의 근본적인 원인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깊이 생각하지 않은 채 이를 처리한다는 명백한 증거이기 때문입니다. 기업의 생명은 완벽함에 있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자신의 잘못을 수정하고 개선해 나가는 능력에 달려 있습니다. 완벽을 추구하는 사람은 자만심에 빠져 현실에 안주하게 되지만, 끊임없이 수정하고 개선하려는 사람은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처하며 꾸준히 진화할 수 있습니다.

저는 늘 부하 직원들에게 다음과 같이 강조했습니다. "실패하는 날은 부끄러워 해야 할 날이 아니라 회사에 새로운 장을 열 수 있는 기회의 날이다." 성공의 이면에는 수없이 많은 실패의 잔재들이 숨겨져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 실패를 단순히 덮어 두는 것이 아니라 실패를 통해 얻은 교훈을 바탕으로 다시 흙을 덮고 씨를 뿌려 새로운 성장을 만들어내는 것입니다. 저는 그 씨앗을 심어 키워낸 나무를 삼성이라고 불렀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저를 이병철 회장은 정말 부지런한 사람이라고 평가하지만, 저는 그러한 평가에 동의하지 않았습니다. 사실 저는 지극히 게으른 사람이었습니다. 다만 저는 시작의 법칙을 꿰뚫고 있는 영리한 게으른뱅이였습니다. 게으른 사람은 단순히 의지력이 부족한 것이 아닙니다. 그들은 그저 자신의 내면에 잠재된 트리거, 즉 행동을 유발하는 시작의 불씨를 찾지 못했을 뿐입니다. 책상 앞에 앉는 것이 어렵지. 일단 자리에 안고 나면 누구든 쉽게 일어설 수 없습니다. 아침에 출근하는 길이 힘들지 막상 사무실 문을 열고 들어서면 자연스럽게 몸이 움직이기 시작합니다. 저는 이러한 단순한 이치를 일찍부터 깨달았습니다.

삼성상해를 처음 설립하던 날 저는 스스로에게 작지만 의미 있는 약속을 했습니다. "오늘 하루 단 한 가지라도 반드시 시작하자." 당장 눈에 보이는 거래를 성사시키지 못해도 괜찮고 손해를 보는 일이 발생하더라도 괜찮습니다. 하지만 적어도 한 번이라도 자신의 손을 뻗어 무언가를 시도하는 것만큼은 반드시 실천하자는 다짐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작은 약속은 제 인생을 완전히 바꿔 놓는 놀라운 습관으로 자리잡았습니다.

사람들은 종종 너무 거창한 목표를 세우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번 주에는 반드시 기획서를 완성해야 한다." 물론 훌륭한 목표이지만, 그것은 계획이라기보다는 단순히 도달해야 할 최종 목적지에 가깝습니다. 저는 계획을 잘게 쪼개고 세분화하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했습니다. "아침 8시 펜을 잡는다. 8시 10분 기획서에 첫 문장을 쓴다. 8시 20분 잘못된 문장을 발견하고 지운다." 이처럼 시간을 세분화하여 계획을 수립하면 우리의 마음은 저절로 움직이기 시작합니다. 왜냐하면 진정한 성취감은 눈에 보이는 결과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무언가를 시작했고 실제로 행동했다는 사실 자체에서 비롯되기 때문입니다.

저는 회사 경영에서도 이와 똑같은 방식을 적용했습니다. 직원들에게 거창하고 완벽한 보고서를 작성하라고 지시하는 대신, 우선 보고서의 첫 줄이라도 써 보라고 동료했습니다. 놀랍게도 그 첫 줄을 쓰는 순간 직원들의 잠자고 있던 생각들이 깨어나기 시작했고, 모든 일들이 막힘없이 술술 풀려 나갔습니다. 가끔씩 몇몇 사람들이 저에게 묻곤 했습니다. "회장님께서는 어떻게 그토록 엄청난 몰입을 보여 주실 수 있으신가요?" 저는 그들의 질문에 다음과 같이 대답했습니다. "몰입은 결코 선천적으로 타고나는 재능이 아닙니다. 오히려 스스로 설계하고 만들어 가는 과정에 더 가깝습니다." 인간의 뇌는 본능적으로 몰입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몰입이라는 달콤한 열매를 맛보기도 전에 그 문턱을 넘지 못하고 포기한 채 후회하며 살아갑니다. 그래서 저는 가능한 한 문턱을 낮추려고 노력했습니다. "지금부터 열심히 공부하자"가 아니라 "일단 책을 펼쳐서 눈으로 훑어보자". "지금 당장 운동하러 나가자"가 아니라 "일단 이불부터 걷고 가볍게 스트레칭이라도 해 보자". 이처럼 아주 작은 행동 하나하나가 놀라운 몰입으로 이어지는 마법의 시작점이 될 수 있습니다. 결국 진정한 몰입이란 우리의 의지나 노력이 아닌 우리 스스로 만들어 가는 일종의 구조인 셈입니다.

저는 제 하루를 규칙적인 구조 속에 가두어 두었습니다. 아침 시간에는 주로 중요한 의사 결정을 내리고 새로운 아이디어를 구상하는데 집중했고, 오후 시간에는 반복적인 일상 업무를 처리하며 루틴을 유지하는데 힘썼습니다. 그리고 밤 시간에는 하루를 되돌아보며 반성하고 새롭게 깨달은 점들을 기록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이처럼 튼튼한 틀이 존재한다면 아무리 마음이 흔들리고 불안하더라도 하루 전체가 완전히 망가지는 것을 막을 수 있습니다. 인간은 완벽하게 짜여진 구조 속에서 오히려 진정한 자유를 느낄 수 있습니다. 아무런 제약이나 규칙이 없는 무한한 자유는 방종으로 이어지기 쉽지만, 적절한 규칙과 틀 안에서 누리는 자유는 창의적인 활동과 혁신적인 아이디어를 샘솟게 하는 원동력이 될 수 있습니다. 저는 이러한 차이를 명확히 이해하는 사람만이 궁극적으로 자신을 다스리고 성공적인 삶을 살아갈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게으음은 결코 죄가 아닙니다. 게으음은 단지 자신만의 시작을 설계하는 방법을 아직 깨닫지 못한 사람에게 붙여진 이름일 뿐입니다. 자신의 내면에 숨겨진 트리거를 찾아내는 사람은 몰입이라는 놀라운 경험을 얻게 될 것이고, 몰입을 통해 끊임없이 성장하는 사람은 마침내 세상을 환하게 밝히는 불꽃을 만들어 낼 수 있습니다. 하지만 불꽃은 억지로 노력한다고 해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불꽃은 오직 뜨거운 몰입의 과정 속에서 자연스럽게 발생하는 부산물일 뿐입니다.

저는 마치 전쟁터에서 싸우는 군인처럼 매일 치열하게 살아왔습니다. 하지만 무모하게 앞만 보고 달린 것은 결코 아닙니다. 저는 언제 싸워야 하고 언제 물러서야 하는지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는 현명한 전략가였습니다. 그리고 저에게는 그 모든 것을 판단하는 단 하나의 명확한 기준이 있었습니다. 바로 시간의 리듬이었습니다. 인간의 하루에는 크게 두 가지 시간대가 존재합니다. 중요한 결정을 내리는 결정의 시간과 익숙한 일들을 반복하는 반복의 시간입니다. 아침 시간은 정신이 맑고 집중력이 높은 시간대이므로 판단력과 결단력을 요구하는 일들을 처리하는데 적합합니다. 반면 오후 시간은 비교적 집중력이 떨어지는 시간대이므로 익숙하고 반복적인 일들을 처리하며 하루를 마무리하는 것이 좋습니다. 저는 이러한 시간의 순서를 절대로 뒤바꾸지 않았습니다. 이것이 바로 제가 하루를 효율적으로 사용하고 낭비하지 않는 가장 단순하면서도 강력한 철학이었습니다.

젊은 시절 저는 매일 아침 일찍 일어나 그날 처리해야 할 중요한 서류들을 펼쳐놓고 깊이 생각하며 결정을 내렸습니다. 어떤 거래를 성사시킬지, 어떤 파트너와 손을 잡을지, 어떤 손해를 감수해야 할지 등을 미리 꼼꼼하게 결정했습니다. 왜냐하면 올바른 결정을 내리는 것은 육체적인 힘이 아니라 맑고 깨끗한 정신을 요구하는 고도의 지적 활동이기 때문입니다. 하루 중에서 제가 가장 정신이 맑고 예리한 시간, 바로 그때 내린 현명한 선택들이 하루 전체 흐름을 결정했습니다. 반면에 5시간에는 머리를 쓰는 일보다는 몸이 기억하는 단순 작업들을 주로 처리했습니다. 문서 정리, 재고 확인, 고객 응대와 같은 일상적인 업무들을 반복하면서 하루를 마무리했습니다. 인간은 익숙해질수록 자동화된 일들을 더욱 효율적으로 처리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늘 직원들에게 다음과 같이 강조했습니다. "중요한 고민은 오전에 집중해서 끝내고 오후에는 익숙한 일들을 반복하면서 숙달하라." 고민을 질질 끌면서 오후까지 미루면 반드시 실수가 발생한다.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이다. 이 단순한 원칙 하나만으로도 삼성의 생산성과 풍질은 눈에 띄게 달라졌습니다. 직원들이 아침마다 해야 할 일들을 미루지 않고 신속하게 결정하자 오후에는 모든 일들이 물 흐르듯이 자연스럽게 진행되었습니다. 저는 회사가 마치 살아 있는 생명체처럼 끊임없이 흐르고 움직여야 한다고 믿었습니다. 멈춰 있는 조직은 썩기 마련이지만, 흐르는 조직은 오랜 시간 동안 생존할 수 있습니다. 저는 회의 역시 오전에만 진행했습니다. 회의는 다양한 의견을 종합하고 판단을 내리는 과정이므로 맑은 정신과 집중력이 요구됩니다. 오후에 진행되는 회의는 건설적인 토론보다는 불필요한 불평불만 쏟아내는 시간으로 변질되기 쉽습니다. 그래서 저는 삼성상해 시절부터 오후 회의를 금지하는 것을 철칙으로 삼았습니다. 대신 오후 시간에는 각자 자신의 루틴 업무를 처리하며 시간을 보내도록 했습니다. 중요한 결정을 내리는 시간과 반복적인 루틴 업무를 처리하는 시간을 명확하게 분리하면 회사는 더욱 활기차게 움직이고 성장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원리는 회사 경영뿐만 아니라 개인의 인생에도 똑같이 적용됩니다. 인생의 젊은 시절은 앞으로 나아갈 방향을 결정하는 중요한 시기입니다. 무엇을 할지, 누구와 함께 할지, 어떤 길을 선택할지를 신중하게 결정해야 합니다. 반면에 중년 이후의 삶은 자신만의 루틴을 만들고 꾸준히 실천하는 시기입니다. 더 이상 새로운 길을 탐색하기보다는 이미 선택한 길을 묵묵히 걸어가면서 자신의 영향을 더욱 발전시켜야 합니다. 저는 아침에 결정을 통해 회사의 기틀을 다졌고, 오후에 꾸준한 반복을 통해 고객과의 신뢰를 쌓았습니다. 사람은 생각보다 훨씬 단순합니다. 뛰어난 결정을 내리는 사람보다 자신이 내린 결정을 꾸준히 반복하고 실천하는 사람이 결국 승리합니다. 제 인생의 결론은 매우 명확합니다. 올바른 결정을 내리는데 필요한 것은 지혜이고, 그 결정을 꾸준히 실천하는데 필요한 것은 인내입니다. 지혜가 없는 반복은 시간 낭비일 뿐이고, 인내가 없는 결정은 공허한 외침에 불과합니다. 저는 지혜와 인내라는 두 가지 중요한 요소를 하루의 리듬 속에 조화롭게 녹여냈습니다. 그리고 그 리듬이 끊임없이 흐를 때 저와 회사는 흔들림 없이 앞으로 나아갈 수 있었습니다.

저는 평생 동안 수많은 사람들이 거창한 목표를 세우는 것을 지켜봤습니다. "회장님, 올해에는 반드시 임원이 되겠습니다." "회장님, 5년 안에 꼭 집을 사고 싶습니다." 그들의 입에서 나오는 말들은 모두 명사였습니다. 임원, 집, 성공과 같이 눈에 보이는 결과만을 쫓는 목표는 결코 성공으로 이어질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명사는 사람을 멈추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명사는 최종 목적지를 의미하지만, 인생은 끊임없이 이어지는 여정입니다. 저는 젊은 직원들에게 늘 이렇게 조언했습니다. "목표를 세울 때는 명사 대신 동사로 표현하라." "나는 사장이 되겠다가 아니라 나는 사람들을 감동시키고 움직이는 사람이 되겠다"라고 말하십시오. "나는 부자가 되겠다가 아니라 나는 돈을 가치 있게 사용할 줄 아는 사람이 되겠다"라고 말하십시오. 이처럼 목표를 동사로 표현하는 순간 놀랍게도 새로운 길이 열립니다. 동사는 우리에게 나아갈 방향을 제시하지만, 명사는 눈앞에 보이지 않는 벽을 세웁니다.

삼성상회가 처음 성장하기 시작했을 무렵 저는 대한민국 최고의 재벌이 되겠다는 허황된 꿈을 꾼 적이 단 한 번도 없습니다. 그 대신 저는 "나는 거래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신뢰를 얻는 사람이 되겠다"라고 마음속으로 다짐했습니다. 그리고 바로 그 소박한 다짐 하나가 삼성 상회를 세계적인 기업으로 성장시키는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명사는 우리를 조급하게 만들지만, 동사는 우리를 꾸준하게 만듭니다. 조급한 사람은 결과를 지나치게 서두르다가 쉽게 무너지고, 꾸준한 사람은 묵묵히 결과를 기다리면서 서서히 성장합니다. 목표를 세울 때 또 한 가지 중요한 원칙이 있습니다. 가까운 미래에 대한 목표는 구체적으로 세우고, 먼 미래에 대한 목표는 추상적으로 세우라는 것입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와 반대로 행동합니다. "나는 35세까지 10억 원을 모으겠다." 이것은 지나치게 구체적인 미래에 대한 목표입니다. 만약 계획이 조금이라도 틀어지면 모든 것이 실패한 것처럼 느껴질 것입니다. 반대로 이렇게 말해 보십시오. "나는 35세가 되었을 때 돈에 휘둘리지 않고 돈을 자유롭게 사용하는 사람이 되겠다." 이것은 다소 추상적인 목표이지만,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다양한 가능성을 열어 줍니다. 만약 공교육 교사가 되지 못하더라도 다른 사람들을 가르치고 교육하는 사람이 될 수도 있는 것입니다. 목표를 동사로 세운 사람은 주변 환경이 끊임없이 변화하더라도 쉽게 흔들리지 않습니다. 설령 직업이 바뀐다 하더라도 자신의 핵심 가치를 굳건히 지켜 나갈 수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지속 가능한 성장을 가능하게 만드는 핵심 구조입니다.

저는 회사의 모든 비전을 이러한 방식으로 바꾸도록 지시했습니다. "매출 1조원을 달성한다"가 아니라 "세계 시장에서 인정받고 신뢰받는 제품을 만든다"라는 비전을 제시했습니다. 그 순간 회사의 방향은 숫자에 매몰된 성장에서 벗어나 인간의 가치를 중시하는 철학으로 전환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철학이 회사를 위기에서 구하고 지속적인 성장을 가능하게 만들었습니다. 명사는 인생을 좁고 답답하게 만들지만, 동사는 인생을 넓고 풍요롭게 만들어 줍니다. 저는 지금도 여전히 사람들에게 묻습니다. "당신의 목표는 무엇입니까?" 그때 그들의 대답이 동사로 시작된다면 그 사람은 이미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들의 대답이 명사로 시작된다면 그는 아직 꿈을 멈춘 사람일지도 모릅니다. 저는 평생 동안 명사보다 동사를 사랑했습니다. 지식보다 행동을, 자산보다 태도를, 결과보다 과정을 더욱 중요하게 생각했습니다. 결국 한 사람의 인생은 하나의 문장으로 요약될 수 있습니다. "그는 어떠한 일을 해낸 사람이었다." 명사가 아니라 동사로 남는 사람. 그게 제가 되고 싶었던 인간이었습니다.

사업이 커질수록 저는 깨달았습니다. 사람을 이기는 사람은 없습니다. 돈으로, 권력으로, 지식으로도 결국 인간 관계를 넘어설 수는 없었습니다. 회사를 키우는 일보다 어려운 건 사람과 오래 가는 일이었습니다. 나르시시스트는 언제나 조직의 중심을 노립니다. 겉으로는 충성하지만 속으로는 경쟁자를 깎아내립니다. 이들은 타인의 성공을 두려워합니다. 왜냐하면 자신의 빛이 줄어든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저는 이런 사람을 멀리하지 않았습니다. 대신 조직의 구조 속에 가두었습니다. 그들의 에너지를 개인의 욕심이 아닌 공동의 목표로 흘러가게 만드는 것이 제 역할이었습니다. 저는 그들에게 직접 말했습니다. "너희 재능은 인정한다. 하지만 이 조직에서 그 재능은 팀의 몫이다." 그 말에 표정이 굳는 걸 자주 봤습니다. 그러나 진짜 리더는 사람의 감정을 달래는이가 아니라 그 감정이 회사를 해치지 않게 막는 사람입니다.

저는 공존의 심리학을 믿었습니다. 공존이란 서로를 희생시키지 않고 오래 함께 가는 기술입니다. 리더가 이기면 부하는 의욕을 잃고, 부하가 이기면 리더는 통제력을 잃습니다. 그래서 저는 항상 이익을 분배하되 권한은 분리했습니다. 돈의 흐름과 권력의 흐름이 같은 방향으로 가면 언제나 조직이 부패했습니다. 한 번은 어느 직원이 제게 말했습니다. "회장님, 저는 조직을 위해 싸웠습니다." 저는 조용히 물었습니다. "그 싸움이 회사를 위한 것이었나? 당신의 자리를 지키기 위한 것이었나?" 그는 대답하지 못했습니다. 그날 저는 그에게 새로운 부서를 맡혔습니다. 그가 원한 자리보다 한 단계 낮은 곳이었습니다. 그리고 말했습니다. "이곳에서 진짜 싸움을 배워라. 사람을 이기는 게 아니라 사람과 버티는 싸움을." 공존의 심리학은 냉정한 전략이 아닙니다. 그것은 따뜻한 거리감입니다. 서로 너무 가깝지도 너무 멀지도 않은 적정한 온도의 관계를 유지하는 것. 저는 그것을 경영의 비밀이라고 믿었습니다.

삼성상해 시절. 저는 매일 직원들과 점심을 함께 했습니다. 그 자리는 회의가 아니라 인간을 이해하는 자리였습니다.

일을 해낸 사람이었다. 명사가 아닌 동사로 기억되는 사람. 그것이 바로 제가 되고 싶었던 인간의 모습이었습니다.

사업의 규모가 커질수록 저는 한 가지 사실을 더욱 분명하게 깨달았습니다. 돈이나 권력, 지식과 같은 수단으로는 결코 사람을 이길 수 없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뛰어난 재능과 능력을 가지고 있더라도 인간관계를 소홀히 한다면 결국 성공적인 삶을 살아갈 수 없습니다. 회사를 키우는 것보다 훨씬 더 어려운 것은 사람들과 오랫동안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것입니다.

자기에 빠진 나르시스트들은 언제나 조직의 중심을 차지하려고 합니다. 겉으로는 조직에 충성하는 척하지만 속으로는 끊임없이 경쟁자들을 깎아내리며 자신의 이익만을 추구합니다. 그들은 다른 사람의 성공을 두려워합니다. 왜냐하면 다른 사람이 성공할수록 자신의 빛이 바해진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저는 이러한 사람들을 일부러 멀리하지 않았습니다. 대신 그들을 조직의 구조 속에 가두어 두었습니다. 그들의 부정적인 에너지를 개인적인 욕심을 채우는데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조직 전체의 공동 목표를 달성하는데 쏟도록 유도하는 것이 저의 역할이었습니다. 저는 그들에게 직접적으로 말했습니다. 당신의 재능은 충분히 인정합니다. 하지만 이 조직에서 당신의 재능은 오직 팀을 위해서만 사용돼야 합니다.

물론 저의 이러한 말에 얼굴을 굳히는 사람들도 많았습니다. 하지만 진정한 리더는 단순히 사람들의 감정을 달래 주는 사람이 아니라 그들의 감정이 회사의 발전을 저해하지 않도록 통제하는 사람입니다. 저는 구성원들이 서로를 존중하고 협력하는 공존의 심리학을 굳게 믿었습니다. 공존이란 서로를 희생시키지 않고 오랫동안 함께 살아가는 기술입니다.

리더가 지나치게 강압적인 태도를 보이면 부하 직원들은 의욕을 잃게 되고 반대로 부하 직원들이 리더의 통제를 벗어나 제멋대로 행동하면 조직 전체가 혼란에 빠지게 됩니다. 그래서 저는 항상 이익은 공정하게 분배하되 권한은 명확하게 분리했습니다. 돈의 흐름과 권력의 흐름이 같은 방향으로 흘러가면 언제나 조직이 부패할 위험이 높습니다.

과거에 한 직원이 저에게 찾아와 이렇게 말했습니다. 회장님, 저는 조직을 위해서 싸웠습니다. 저는 그의 말을 듣고 조용히 되물었습니다. 당신이 싸운 것이 정말 회사를 위한 일이었습니까? 아니면 당신 자신의 자리를 지키기 위한 일이었습니까? 그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했습니다. 그날 저는 그에게 새로운 부서를 맡겼습니다. 그가 그토록 원했던 자리보다 한 단계 낮은 자리였습니다. 그리고 그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이곳에서 진정한 싸움을 배우십시오. 다른 사람을 이기려고 싸우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과 함께 어려움을 헤쳐 나가며 버티는 싸움을 배우십시오.

공존의 심리학은 결코 냉정하고 계산적인 전략이 아닙니다. 그것은 오히려 서로에게 적절한 거리를 유지하며 따뜻한 관계를 맺는 기술입니다. 서로 너무 가깝지도 않고 너무 멀지도 않은 적정한 온도의 관계를 유지하는 것. 저는 그것을 경영의 핵심 비결이라고 믿었습니다.

삼성상회 시절 저는 매일 직원들과 함께 점심을 먹었습니다. 그 자리는 딱딱한 회의 시간이 아니라 서로를 이해하고 인간적인 교감을 나누는 소중한 시간이었습니다. 말투와 표정을 통해 누가 말을 많이 하고 누가 시선을 회피하며 누가 조용히 배려하는지 그 자리에서 나는 사람의 속마음을 읽어낼 수 있었습니다. 회사는 결국 그러한 마음들이 모여 이루어진 집합체와 같기 때문입니다.

나는 굳게 믿었습니다. 진정한 리더는 단순히 사람을 관리하는 존재가 아니라 사람들이 서로를 깊이 이해하고 소통할 수 있도록 돕는 다리와 같은 존재여야 한다고. 그러한 연결 다리가 끊어지는 순간 회사는 마치 모래성처럼 순식간에 무너져 내릴 수 있습니다.

그렇게 나는 매일같이 똑같은 말을 되풀이했습니다. 사람을 억지로 이기려 들지 마라. 대신 서로 협력하며 오랜 시간 함께 버텨내는데 집중하라. 그것이 바로 내가 추구하는 관계에 대한 철학이자 험란한 세상 속에서 내 인생을 굳건히 지탱해 준 가장 강력한 무기였습니다.

나는 평생 동안 뜨겁게 타오르는 불꽃을 쫓았지만 단 한 번도 돈을 인생의 궁극적인 목표로 삼았던 적은 없었습니다. 돈은 나에게 있어서 목표 달성을 위한 수단이 아니라 열정적인 몰입의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따라오는 부산물과 같은 것이었습니다. 그 몰입은 곧 새로운 창조적인 혁신을 이끌어냈고 굳건한 신념을 통해 더욱 견고해졌습니다. 이 세 가지 요소가 조화롭게 어우러질 때 부는 저절로 따라오는 결과였습니다.

사람들은 늘 나에게 똑같은 질문을 던졌습니다. 회장님, 어떻게 하면 부자가 될 수 있습니까? 나는 그때마다 망설임 없이 단호하게 대답했습니다. 단순히 부자가 되려고 애쓰지 말고 자신이 하는 일을 진심으로 깊이 사랑하십시오. 진정한 부자는 돈을 쫓아다니는 사람이 아니라 자신이 하는 일에 온전히 몰입하여 자신을 녹여내는 사람입니다. 돈은 결국 그러한 사람을 찾아가게 되어 있습니다.

내가 젊었을 시절 새벽마다 직접 트럭을 몰고 전국 방방곡곡을 누볐습니다. 하루에 고작 3시간밖에 잠을 자지 못하는 강행군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때 나는 돈을 벌겠다는 생각보다는 오직 오늘 하루의 거래를 완벽하게 마무리하겠다는 마음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그 강렬한 집중력이 하루, 한 달, 그리고 10년이라는 시간을 거쳐 마침내 삼성이라는 위대한 이름을 세상에 알리게 되었습니다. 불안감은 결국 몰입이 부족한 시간들이 쌓여 만들어낸 결과이며 게으름이 아닌 몰입하지 못한 시간들이 가난을 초래한다는 사실을 나는 누구보다 뼈저리게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나는 직원들에게 늘 이렇게 강조했습니다. 네가 하는 일에 미쳐야 일도 너를 기억하고 인정해 줄 것이다. 단순한 노력만으로는 부족합니다. 방향성을 잃은 노력은 쉽게 흩어지기 마련이지만 몰입은 오직 한 점에 모든 에너지를 집중시킵니다. 그 집중이 곧 신용을 창조하고 그 신용이 자본을 불러오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돈이 따라오는 올바른 순서입니다.

나는 치열하게 불꽃과 싸우면서도 늘 스스로에게 이러한 질문을 던졌습니다. 이 돈이 나를 진정으로 살리는가 아니면 나를 올가매는가? 돈이 나를 올가매는 순간 나는 미련 없이 그 돈을 버렸습니다. 진정한 부자는 단순히 돈을 많이 가지고 있는 사람이 아니라 돈에 휘둘리지 않고 돈을 지배할 수 있는 사람입니다.

나는 돈을 인간의 무한한 에너지라고 생각했습니다. 에너지는 끊임없이 흘러야 합니다. 멈추는 순간 썩어 버리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나는 돈을 다시 사람에게, 산업에, 그리고 교육에 아낌없이 투자하고 흘려보냈습니다. 그것은 단순한 자선 활동이 아니라 돈이라는 에너지를 사회 전체에 순환시키는 합리적인 이성의 계산이었습니다.

많은 젊은이들이 성공을 꿈꾸며 나에게 조언을 구했습니다. 나는 그때마다 단 한 문장으로 명쾌하게 대답했습니다. 성공은 단순한 노력의 결과가 아니라 열정적인 몰입의 부산물입니다. 노력은 단지 마음이 시키는 것이지만 몰입은 영혼이 이끄는 것입니다. 마음이 흔들리면 손이 멈추지만 영혼이 움직이면 몸은 저절로 따라오게 되어 있습니다.

나는 평생 그렇게 살아왔습니다. 누군가는 나를 성공한 사업가라고 부르지만 나는 지금도 그저 열정적인 몰입을 잃지 않으려고 끊임없이 노력하는 한 인간일 뿐입니다. 부는 언젠가 사라질 수 있지만 몰입은 영원히 남습니다. 그 몰입이야말로 내 인생의 가장 값진 자산이었습니다.

사람들은 죽음을 눈앞에 두고 유산을 정리하지만 나는 재산보다 먼저 마음을 정리했습니다. 돈은 남기면 싸움의 씨앗이 되지만 마음은 남기면 영원히 이어지는 길이 됩니다. 나는 내 자식들에게 늘 이렇게 말했습니다. 돈은 나누어 가질 수 있지만 신용은 결코 나눌 수 없습니다. 그러니 내 이름보다 먼저 사람들의 마음을 얻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나는 평생 동안 돈을 모았지만 그 돈을 자식들에게 전부 물려주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그들이 나처럼 다시 스스로의 힘으로 돈을 벌어야 한다고 믿었습니다. 돈은 단순히 노력의 결과가 아니라 더 큰 의미를 실현하기 위한 도구이기 때문입니다. 돈을 모으는 것보다 그 돈으로 무엇을 지켜야 하는가가 훨씬 더 중요합니다.

삼성상회가 작은 상회에서 거대한 기업으로 성장했을 때 많은 사람들이 나에게 질문했습니다. 회장님, 이제 인생의 목표를 모두 이루셨습니까? 나는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습니다. 삼성은 내 인생의 단순한 결과가 아니라 내가 추구해 온 철학의 증거입니다. 나는 회사를 통해 돈을 벌었지만 진정으로 세상에 남기고 싶었던 것은 가치의 전염이었습니다. 신용, 근면, 절제, 그리고 사람을 존중하는 마음. 이 네 가지 가치가 바로 내가 세상에 남기고 싶은 유산입니다.

나는 늘 두려워했습니다. 내가 세상을 떠난 뒤 사람들이 돈만 기억할까 봐. 그래서 평생 동안 가치의 언어로만 말하려고 노력했습니다. 돈은 단순히 샘솟는 것이지만 마음은 세상을 이어주는 언어와 같습니다. 그 언어가 세대와 시대를 초월하여 영원히 이어질 수 있도록 나는 내 후계자들에게 이러한 말을 남겼습니다. 돈은 1대가 모으고 명예는 2대가 지키며 철학은 3대가 반드시 잃지 않아야 합니다. 철학이 끊어지는 순간 가문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집니다. 나는 그 사실을 너무나 많이 목격해 왔습니다. 기업이 무너진 이유는 언제나 돈의 부족이 아니라 철학의 결핍 때문이었습니다.

나는 세상을 떠나기 전날까지도 이 말을 되풀이했습니다. 삼성의 진정한 자산은 거대한 공장도, 유명한 브랜드도 아닙니다. 바로 사람들의 신용입니다. 그 신용이 남아 있는 한 삼성은 내 이름이 없어도 영원히 살아 있을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내가 남긴 가장 위대한 유산이었습니다.

나는 오랜 세월 기업가로 살아왔지만 마지막 순간에 내 곁에 남은 것은 숫자가 아니었습니다. 내 삶의 결론은 단 하나였습니다. 인간은 결국 마음으로 완성된다. 처음에는 돈이 전부라고 생각했습니다. 돈이 있어야 가정을 지키고 회사를 세우고 세상에 긍정적인 영향력을 미칠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하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깨달았습니다. 돈은 단지 도구일 뿐이며 그 도구를 쥐고 있는 손에 따뜻한 온도가 그 사람의 진정한 가치를 결정한다는 것을. 나는 냉철한 계산과 따뜻한 마음을 동시에 품으려고 노력했습니다. 냉철함이 없으면 사업은 무너지고 따뜻함이 없으면 인생이 무너집니다. 이 두 가지를 조화롭게 지켜내는 균형이야말로 한 인간의 진정한 품격이자 완성입니다.

파란만장했던 인생의 끝자락에 다다라 나는 이렇게 정리했습니다. 성공은 굳건한 신념으로 시작하여 꾸준한 습관으로 완성되고 따뜻한 마음으로 영원히 남는다. 그 세 단계를 모두 거친 사람만이 진정한 부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나는 내 삶을 되돌아보며 후회보다는 감사함이 더 컸습니다. 가난했던 시절이 있었기에 신용의 진정한 가치를 알았고 외로웠던 시간 덕분에 사람의 따뜻한 온기를 더욱 소중하게 느낄 수 있었습니다. 내 삶의 모든 고난은 결국 나를 더욱 단단하게 만드는 귀한 돌멩이와 같았습니다. 이제 나는 분명히 알고 있습니다. 인생의 성공은 얼마나 많이 벌었는가가 아니라 얼마나 많이 나눌 수 있었는가로 결정된다는 것을. 재산은 숫자로 기록되지만 신뢰는 사람들의 마음에 깊이 새겨집니다. 그 따뜻한 마음 하나만 남는다면 내 인생은 충분히 성공적이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나는 마지막까지 내가 쓴 장부를 조용히 들여다보며 이렇게 나지막이 말했다. 이병철의 진정한 재산은 바로 신용이다. 그 신용이 남아 있는 한 나는 아직 살아 있다. 그리고 조용히 눈을 감았다. 내가 남긴 것은 돈이 아니라 사람들의 마음속에 영원히 살아 숨 쉬는 따뜻한 마음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