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anscription
신약성경 골로새서 4장 7절부터 마지막 절까지의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오늘이 골로새서 마지막 날입니다. 4장 7절부터 마지막 절까지를 제가 읽겠습니다.
내 모든 사정은 두기고가 여러분에게 알려드릴 것입니다. 그는 주님 안에서 사랑하는 형제요, 신실한 일꾼이요, 함께 종 된 사람입니다. 내가 그를 여러분에게 보내는 것은 여러분이 우리의 사정을 알고 마음의 위로를 받게 하려는 것입니다.
그리고 사랑받는 신실한 형제인 오네시모도 같이 보냅니다. 그는 여러분의 동족입니다. 그들이 이 모든 사정을 여러분에게 알려드릴 것입니다.
나와 함께 갇혀 있는 아리스다고와 바나바의 사촌 마가도 여러분에게 문안합니다. 마가가 여러분에게 가거든 잘 영접하라고 하는 지시를 여러분이 이미 받았을 줄 압니다. 이수도라 하는 예수도 무난합니다. 할례받은 사람들로서는 이들만이 하나님 나라를 위하여 일하는 나의 동역자들이요, 나에게 위로가 되어준 사람들입니다.
여러분의 동족이요 그리스도 예수의 종인 에바브라가 여러분에게 문안합니다. 그는 여러분이 완전하게 되고 하나님의 모든 뜻의 확신을 가지고 서기를 기도하면서 늘 여러분을 위하여 애쓰고 있습니다. 나는 그가 여러분을 위하여 그리고 라오디게아와 히에라볼리에 있는 사람들을 위하여 수고 많이 한 것을 증언합니다.
사랑하는 의사 누가와 데마도 여러분에게 문안합니다. 라오디게아에 있는 형제들과 누바와 그 부인의 집에서 모이는 교회에도 문안해 주십시오. 여러분이 편지를 다 읽은 다음에는 라오디게아 교회의 서도 읽을 수 있게 하고, 라오디게아 교회에서 오는 편지도 읽으십시오. 그리고 아킵보에게 주님 안에서 받은 직분을 유의하여 완수하라고 일러 주십시오.
나 바울이 친필로 문안합니다. 내가 갇혀 있음을 기억하십시오. 은혜가 여러분에게 있기를 빕니다. 아멘.
아, 기도하겠습니다. 지금 저희들이 골로새서를 지난 며칠 간에 걸쳐서 함께 공부하고 또 저희 말씀을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가졌고, 아, 오늘은 이제 마지막 시간이 되었습니다. 주님이 마지막 본문 통해서 하나님이 교회를 향해서 또 우리 각 사람을 향해서 품고 계신 뜻을 분명하게 알게 해 주시기를 소원합니다. 아, 우리 마음 가운데 깨우칠 수 있도록 인도해 주시고, 또 깨우쳐진 대로 하나님 앞에 응답할 수 있도록 순종하는 마음도 함께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유명한 항공 회사에 다니는 한 분을 제가 몇 년 전에 알게 되었습니다. 아, 그 집사님이 그 회사를 다니면서 꽤 그래도 어 오래 되었는데, 그 회사 한국 회사의 CEO에 대해서 상당히 좀 불편한 감정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CEO가 자기 바로 위에 있는 보스가 아닌 그 회사 전체의 CEO가 사원들에게 회삿돈 아끼라고 매번 그렇게 이메일을 보내기도 하고 또 최근 하기도 한다는 것입니다. 사무실 불도 끄라고 이러고, 또 프린터 용지 아껴 쓰라고 그렇게 얘기하고, 출장비 제발 좀 아껴 쓰라고 CEO가 그런 얘기를 한대요. 그래서 이 사람이 왜 이렇게 마이크로 매니징을 하나 해서 굉장히 힘들었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꼭 자기, 자기가 이 한국 회사에서 일하고 있는데, 이 회사가 무슨 생존을 위해서 지금 발버둥치고 있는 것 같다. 그런 생각이 들었다는 것입니다. 뭘 위해서 이 회사에서 일하고 있는지, 돈 아끼려고 내가 회사에서 일하나. 그런 생각이 들었다는 것이죠.
여러분이 잘 아는 아마존이라는 회사가 있습니다. 1994년에 설립된 회사이죠. 아, 미국에서 큰 그 버블이 깨질 때 사람들이 아마존이라는 회사도 아마 문 닫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했답니다. 그 텍스트북 온라인으로 뭐 파는 그런 회사였기 때문에 금방 망할 것이다. 이렇게 생각했 때. 그러나 살아남았습니다. 살아남은 이유가 나중에 뭐 사람들이 분석하기로는 그 회사의 비전 때문에 살아남았다고 그렇게 얘기합니다. 아마존의 회사 비전은 이렇습니다. 지구상 가장 고객 중심의 회사를 만들겠다. 그것입니다. 영어로 "Our vision is to be Earth's most customer-centric company." 그게 아마존의 비전이었답니다. 이윤을 위해서 일하지 않았습니다. 이 기업이 어떻게 생존할까 그걸 갖고 생각하지도 않았어요. 훨씬 높은 목적에 헌신했습니다. 그럼 단순히 돈 버는 데 그치지 않고, 또는 단순히 아, 지금 경기가 어려운데 살아남자는 그런 목표로 일하지 않았다는 것이죠. 고객들에게 가장 최상의 서비스하는 회사가 되겠다는 그 목표를 잃었다는 거예요. 그래서 생각해보니까 아마존에서 저희들이 아마존을 많이 이용하는 이유 중의 하나가 반품이 너무 잘 돼요. 반품하는데 뭐 꼬치꼬치 이거 왜 이렇게 반품하냐, 뭐 서비스랑 실갱이 버린 적이 전혀 없죠. 왜냐하면 그 회사의 비전 때문입니다. 가장 최상의 서비스를 하겠다. 그러니까 아마존을 사용할 수밖에 없는 것이죠. 그래서 그 닷컴 버블이 깨질 때 그때 살아남았다는 얘기입니다.
직원들이 생계를 유지하는 것 이상으로 높은 가치를 위해서 일하고 있을 때, 그 회사는 그 회사는 그냥 생존을 위해서 사는 회사가 아닌 것이죠. 아, 우리는 보다 고상한 가치를 위해서 살고 있다, 또 일하고 있다는 그 보람이 아, 그 직원들에게 있는 것입니다. 우리 인생도 마찬가지 아니겠습니까? 여러분 인생의 목적이 없다면 내가 도대체 뭐 때문에 살고 있나 하는 그런 질문이 당연히 들죠. 내가 혹시 그냥 좋은 직장 들어가려고 이 대학에서 이렇게 공부하는 건가. 그런 생각들을 하실 것입니다. 또는 내가 그냥 돈이나 벌려고 이 회사 다니나. 그런 직장생활 하시는 분들은 그런 생각하실 거예요. 또는 주부들은 그냥 애 키우려고, 애 낳아 키우려고 지금 이러고 있나. 그런 생각들 하실 것이고. 아, 또는 나이가 좀 많이 드신 분들은 이제 내가 이렇게 늙어가는 건가. 뭐 이런 생각들을 하실 것입니다. 인생의 목적을 모르게 되면 그냥 서바이벌 모드로 살게 되죠. 그냥 하루하루 그냥 끼니를 떼어 먹듯이 살자. 그리고 두려운 일을 피하는 것이 최상의 방책이 아니겠습니까? 여러분, 아, 나중에 늙어서 건강하지 못하면 큰일 나니까 지금 운동을 열심히 하자. 뭐 스쿼트 증가하고 뭐 또 달리기도 하고 그러자. 또 나중에 나이 들어서 돈이 없으면 안 되니까 어떻게 해서든 끝까지 일하자. 뭐 그런 생각을 당연히 하게 돼요. 그 두려움이 아니니까 우리 인생의 목적이 다만 아, 그냥 두려운 일을 피하는 데 있다. 는 그냥 사는 데 급급하다면 그럴 수밖에 없을 사실은.
그런데 잘 생각해보면 아, 목적이 내 삶의 의미를 주는구나 하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냥 사는 것이 아니라 어떤 목적이 내 삶의 의미를 준다는 것을 알게 돼요. 사실 목적 없는 인생은 없죠. 목적 없는 인생은 없습니다. 하나님이 사람을 지으실 때 아주 분명한 목적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거듭났건 안 거듭났건 상관없어요. 하나님께서 사람을 지으실 때 창세기 1장 2장을 보면 하나님이 사람 창조하시면서 그 세상을 돌보고 내 형상처럼 그렇게 세상을 다스려 가라고 그렇게 말씀하십니다. 이 세상을 아름답게 만드시고 이 세상이 참 좋다 이렇게 말씀하시고 나서 그 좋은 세상에다 사람을 딱 띄어 놓고서는 이 세상을 나의 형상처럼 돌보고 다스리라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그게 목적이에요. 아, 주님께서는 하나님은 이 세상을 돌보라고 그냥 우리 맘대로 돌보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돌보시듯이 돌보라고 우리를 지으셨구나 하면 그런 목적이 저희들 가운데 있어요. 아, 그래서 사실은 예수를 안 믿는 사람, 또는 하나님을 믿지 않는 불신자도 그 목적을 무의식 중에 찾아가요. 불신자 의사들 빈민촌에서 무상으로 의료 시술하는 분들 꽤 많이 있습니다. 예수 믿지 않는다고 해서 그냥 자기만 위해서 사는 거 아니에요. 아, 그거 그 어려운 데 가서 의료 봉사하면서 아, 내가 의대 공부한 것이 돈 벌려고 공부했나. 진짜 선을 행하려고 공부했지만은 그런 마음, 그런 자부심, 삶의 의미, 그런 것들을 가지게 됩니다.
또 예수 믿지 않는, 또는 하나님 믿지 않는 정치가가 있다고 생각해보세요. 그 정치도 진흙탕 같은 그 정치판에서 치열하게 싸우면서 내가 진짜 때려치우고 싶은 그런 마음이 막 불쑥 올라오지만 그래도 내가 젊었을 때 생각한 가난하고 어려운 사람들 그들을 위해서 내가 이 정치 시작했는데 반대가 거세고 또 표를 얻지 못하는 때도 있지만 그 위해서 헌신하잖아요. 이 세상의 의를 위해서 이 세상의 평화를 위해서 내가 일해야지. 아, 그거 정치 단순히 그냥 무슨 큰 명예를 얻기 위해서 또는 어떤 정치적인 세력을 갖기 위해서만 하는 것은 아닙니다. 예수 믿지 않는다고 해서 그렇게 살지는 않아요. 사실은. 누구나 자기 인생에 어떤 목적을 가지고 그 목적을 추구하면서 살게 되어 있어요. 사실은. 그래서 아, 생존을 위해서 사는 것보다 내 인생의 목적이 무엇인가 그것을 알고 그 추구에 갈 때 훨씬 더 오래 그리고 훨씬 더 강하게 끝까지 나아갈 수 있는 것이죠.
여러분 인생의 목적은 무엇입니까? 여러분은 무엇을 위해서 살고 계십니까? 여러분은 하나님이 여러분을 존귀하게 만드셨다는 것을 알고 계십니까? 여러분 진짜 존귀한 사람들입니다. 한 사람도 여기서 무시할 수 있는 사람이 아무도 없어요. 사실은. 옆에 분한테 아까는 참 아름다우십니다. 이렇게 인사했지만 지금은 참으로 존귀하십니다. 이렇게 한번 인사해 주세요. 참으로 존귀하십니다. 목적 없이 세상에 나올 사람들이 하나도 없어요. 다 하나님께서 어떤 목적을 가지고 우리를 이 세상에 보내셨습니다. 그 목적을 발견하고 그 목적을 추구하기 위해서 살아야지. 그럴 때 우리 인생 가운데 어떤 의미, 어떤 보람들이 생기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이 서신에 등장하는 사람들, 여러분들 아마 골로새서 4장에 긴 리스트를 있다 보시면은 또 이런 걸 가지고 설교를 하나. 오늘 아마 그런 생각이 드실 거예요. 뭐 여기 무슨 도덕적인 교훈이 있는 것도 아니고, 여기 무슨 특별한 복음이 있는 것 같지도 않은데 뭐 사람들한테 인사하는 내용을 가지고 설교를 하나. 뭐 그런 생각이 드실 것입니다. 사실 이 리스트를 보면 이 사람들 굉장히 이상한 사람들입니다. 굉장히 이상한 사람들이에요. 예를 들어 10절, 바울은 이렇게 얘기하면 나와 함께 갇혀 있는 아리스다고와 바나바의 사촌 마가. 돈도 되지 않는 복음 전하다가 갇혔어요. 돈도 안 되는 일을 하다가 왜 갇히지? 이상한 일이죠. 8절과 9절에 보면 두기고라는 사람, 또 오네시모라는 사람이 나오는데 이 사람들은 골로새 교회의 바울의 사정을 말해주러 가는 사람들입니다. 아니 그거 뭐도록 그냥 편지 써도 되는데 뭐 하러 직접 가서 바울이 이런 일을 지금 다녔습니다. 바울의 사정은 이렇습니다. 이런 말을 하려고 거기까지 갈 이유가 사실은 별로 없어요. 또는 14절을 보시면은 여기에 우리 사도 나오네. 이런 14절에 보면 사랑하는 의사인 누가 이렇게 나옵니다. 아니 의사는 왜 바울을 따라다니는? 그냥 의료 행위나 하지. 의사인데. 물론 고대 의사들은 지금 하고는 신분이 조금 다르긴 하지만 의사로 그냥 환자들을 보면서 그렇게 살 수도 있을 텐데 왜 선교팀을 따라다니지? 이상한 일이죠.
또 12절 에바브라라는 사람은 대체 무슨 기도에 힘이 있다고? 하나님을 향해서 기도하는 게 무슨 그렇게 대단한 능력이 있다고 골로새 교회의 성도들을 위해서 힘써 기도한다고 한 말인가. 15절에 눈바라는 여성도가 나오는데 이 여자는 뭐 하러 자기 집에다가 교회를 나오라고 해서는 예배드리는 공간으로 자기 집을 내어주고 있는가. 다 이상한 사람들이여. 사실은 무슨 이게 된다고? 그게 무슨 자기한테 경제적인 또 유익이 없잖아요. 그런데도 이 일을 하고 있는 것이죠. 그래서 이 우리가 읽은 이 본문은 사실 이상한 사람들 투성이예요. 이 사람들한테는 두 가지의 공통점이 있습니다. 첫 번째는 7절, 11절, 그리고 12절에 나타난 대로 이 사람들은 다 자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라고 생각해요. 그리스도 안의 주인이시다. 그리고 나는 그분의 종이다. 이렇게 생각해요. 두 번째로는 그 사람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서 일하고 있어요. 11절 말씀을 보십시오. "디도는 예수도 무난합니다. 할례받은 사람들로서는 이들만 하나님 나라를 위하여 일하는 나의 동역자들입니다." 이 무슨 말입니까? 할례받은 사람들로서 유대인으로서 는 이들만 나와 함께 일한 동역자들이 다. 유대인들은 이방인들과 같이 상종하지 않죠. 그 문화적으로 인종적으로 분리되어 있단 말이에요. 그런데 이 사람들은 예수의 복음을 위해서 그 경계를 넘어 온 사람들입니다. 그 얘기예요. 유대인들은 다 나쁘다 이런 얘기가 아니에요. 유대인들도 예수께 열심인 사람들이 있지만 그들 중에 어떤 사람들은 그 문화와 언어와 인종의 경계를 넘어서까지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서 일하고 있습니다. 하나님 나라의 일이란 것은 때로는 그 문화를 넘어 가는 것입니다. 복음을 위해서 어떤 때는 언어를 넘어가야 될 때가 있어요. 내가 잘 언어적으로 준비가 안 됐지만 최 복음을 위해서 내가 서툰 언어로 복음 전해야지. 어떤 때는 인정을 넘어가기도 합니다. 우리는 사실은 한국 사람들 다 단일 민족이기 때문에 다른 민족에 대해서 좀 경계심이 있잖아요. 우리끼리 모이면 편한데 다른 민족하고 보면 좀 힘든 것들이 있지 않습니까. 그러나 다 그러지는 못하더라도 어떤 사람들은 아, 내가 다 하나님의 자녀들인데 다 하나님의 존귀한 피조물인데 내가 이 인종적인 것들도 넘어가서 섬겨야지 하는 사람들이 나온단 말이에요. 그 사람들은 하나님의 나라의 일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에요.
아, 또 12절과 13절 말씀. 이 골로새 교회를 세운 사람은 12절에 나오는 에바브라라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이 사람에 대해서 바울이 이렇게 얘기하죠. "하나님의 모든 여러분이 하나님의 모든 뜻의 확신을 가지고 서기를 기도하면서 여러분을 위하여 애쓰고 있습니다." 누군가는 기도해야 되는 거예요. 그냥 서지 않아요. 사실 좀 누군가 기도했기 때문인 거예요. 여러분이 집에서 앉아서 예배하는 이 자리, 누군가는 자기 집에서 골방에 들어가서 기도하면서 그 자리에 앉아 있던 그 형제를 위해서 제가 기도합니다 하고 누군가는 기도한단 말이에요. 그 형제가 아프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하나님 고쳐 주십시오 하고 누군가는 기도해요. 그 형제가 아직 믿음의 이르지 못했는데 하나님 믿음을 주십시오 하고 아 기도한단 말이야. 우리가 아까 광고 시간에 얘기했지만 사실 캐슬라 이 교회 어 오래 나오지는 못했습니다. 그러나 저한테 어깨 메시지로 소식을 전해 줬는데 제가 얼마나 감사한지 몰라요. 왜냐하면 그 형제한테는 지금 자기 어머니가 돌아가셨다는 말을 할 사람이 저밖에 는 없어요. 목사들 중에서는. 그래서 기도하는 거예요. 사실 좀 나한테까지 또 우리 교회들한테 알려달라고 이렇게 연락해 주는구나. 그래서 기도하는 거예요. 찾아가고 위로하고 그래서 어떻게 도와줄까 하고 보듬어 주고. 그거 하나님의 나라의 일이죠.
또 14절에 보시면 아까 잠깐 얘기했지만 사랑하는 의사의 누가. 아니 선교사, 선교팀에 의사 한 사람 깨어 있나? 이렇게 생각하실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자기의 생업이 의사인데도 불구하고 선교팀에 합류하는 거예요. 전설의 전통에 의하면 바울이 상당히 육체적으로 힘든 가시들을 갖고 있었다고 그렇게 얘기하죠. 그것이 뭐 간질인지, 그것이 무슨 안질인지 우리는 알 수 없지만 어쨌거나 바울은 상당 임 이 몸으로 이 건강이 굉장히 안 좋았던 사람임에는 틀림 없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교회 전통에서는 아마도 누가가 바울을 계속 따라다니면서 성경한 이유는 그가 실제로 무슨 선교를 한 게 아니고 그 팀의 리더인 바울을 그가 아플 때마다 치료해 주기 위해서 헌신하지 않았을까 하는 그런 마음, 그런 얘기도 있습니다. 자기가 혼자서 선교하지만 못하지만 그 선교를 담당하고 있는 사람을 위해서 내가 가진 것으로 너를 섬겨 주나. 그것 하나님의 일이죠.
또 15절에 보는 것처럼 눈바라는 이. 사실은 이 눈바가 여자인지 남자인지는 신약 학자들 사이에서 좀 논란이 있긴 합니다. 근데 저는 여자라고 생각해요. 그걸 눈바라는 여인이 집을 오픈해서 우리 집을 그냥 예배 처소로 썼으면 좋겠습니다. 그러고서는 기도에도 그냥 호스트 하고 예배할 때도 호스트 했단 말이에요. 그 별거 아닌 것 같지만 집이 커서 그런가 보지. 집이 크다고 다 그렇습니까? 여러분 아시잖아요. 돈, 돈 많이 있다고 다른 사람들 맨날 사줘요. 그렇지 않습니다. 마음이 있어야 할 수 있는 거예요. 그 마음은 어디서 왔냐 하면은 하나님 나라를 위하는 마음에서 온 것이죠. 그러니까 하나님의 나라를 위한 일이야. 아마 여러분들 가운데는 차를 갖고 있는 우리 대학원생이나 또 대학생들도 있을 것입니다. 교회에 나오기 위해서 우리 후배들 또는 친구들 라이드 해 주잖아요. 봉사하는 일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알고 계십니까? 그 일은 하나님의 나라의 일입니다. 그 일은 하나님 나라 일이에요. 여러분이 그걸 알고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래서 그렇게 하고 계시는 여러분은 귀한 사람들입니다.
오늘 고린도전서 10장 31절 말씀 우리가 이 말씀과 함께 같이 읽어보겠습니다.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 먹고 마시는 것도 서도 그렇게 작은 일조차도 당연히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할 수 있죠. 힘들어하는 형제하고 차 한잔 하자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하는 일입니다. 또 어려워 보이는 형제 밥 한 끼 사줘야지 않고 밥 한 끼 사줄 때 하나님의 나라를 위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일인 것이죠. 그래서 사실은 제가 여러분한테 하고 싶은 한 가지가 있습니다. 여러분 아무리 하찮은 일이라도요. 하시기 전에 주님께 이렇게 말씀해보세요. "주님, 이거 주님 때문에 하는 일입니다." 크게 뭐 거창한가요? 여러분이 그 마음 가운데 이거 하나님 위해서 내가 해야지 하는 마음이 있으면 그냥 하지 마시고 잠깐 하나님께 예수님께 말씀하세요. "주님, 이거 제가 주님 보고 하는 일입니다. 주님 위에서 하는 일입니다." 주군께서 기쁘게 받으실 것입니다.
우리 교회가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서 산다는 것, 아, 그걸 추상적인 얘기가 아닙니다. 우리가 이 교회의 존재하는 목적이 제가 두 가지로 말씀드릴 수 있겠습니다. 첫 번째는 아까 12절에서 우리가 본 것과 같이 사람들을 하나님의 뜻 안에서 굳건하게 세우는 것. 그것이 이 교회의 첫 번째 목적입니다. 여기에 있는 사람들이 어떤 사람이건 상관없이 주의 뜻 가운데서 굳건하게 세우겠다. 그것이 이 교회의 첫 번째 목적이에요. 두 번째 목적은 뭐냐 하면은 우리의 일터와 삶의 자리에서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선과 평화를 도모하는 것입니다. 그냥 다만 이 교회 모이는 것이 아니라 사실 여러분의 이 여러분 삶은 6일 동안은 일터에 있습니다. 하루 교회에 나오는 거예요. 물론 그저 뭐 중간에 만나기도 하지만 하루 교회에서 함께 예배드리고 믿음 가운데서 하나님의 뜻 가운데서 서고 6일 동안은 그 뜻을 여러분의 일터에서 여러분의 이웃 사이에서 여러분의 친구들 안에서 그 뜻을 펼쳐 가는 것이죠. 그것이 무엇입니까? 그 사람들의 선과 평화를 위해서 일하는 것입니다. 나 자신을 위해서 일하는 것이 아니고 당신의 선을 위해서 이 사람들의 평화를 위해서 내가 내 자신을 드리는 것. 그것이 우리 교회의 두 번째 목적이에요.
여러분이 만약에 자기가 목적이 되면 그러면은 높은 것만 눈에 보이실 거예요. 내가 목적이 되면 하나가 조금 좀 좀 차를 좀 업그레이드 됐으면 좋겠다. 또 좀 좀 더 큰 집에 살았으면 좋겠다. 또는 좀 연봉이 좀 더 높았으면 좋겠다. 그런 것만 보여요. 좀 더 좀 다른 사람들이 알아주는 좀 자료로 올라갔으면 좋겠다. 그런 것들만 보여요. 그게 나쁜 것은 아니지만 내가 목적이 되면 그것만 보인다고요. 그러나 예수의 사람으로 살기 시작하면 아, 우리 마음 가운데는 낮은 것을 자꾸만 보게 되는 이상한 습성이 생겨요. 큰 이 가난한 사람들의 마음에 계속해서 생각되고 현인의 교회의 그 형제가 마음에 어두운 걸어서 어떻게 도와줄 수 없을까 하는 그런 생각이 들고 심지어는 이 도시 있는 여러 사람들을 생각하면서 비고 우리는 어떻게 해야 되는 그런 마음이 자연스럽게 우리 안에 들어와요. 사실이잖아요. 어떻게 도와줄 수 있을까? 그 마음에 사실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시는 방법이에요. 그 마음이 아무한테나 들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마음이죠.
그래서 저는 사실 여러분한테 낮은 곳으로 한번 가보시라고 권해요. 그 사람들이 무엇이 필요하고 무엇 때문에 고통스러워하는지. 여러분도 고난 가운데 있을 수 있지만 더 낮은 곳에 한번 가보세요. 거기서 살라는 얘기가 아닙니다. 아마 이 그 그렇게 살 수 있는 사람 별로 없어요. 하지만 가서 아, 나는 지금까지 다 개 얼려서 이렇게 산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구나. 나는 지금까지 이 사람들이 그냥 모를 샌더 아까 너무 낮아서 이렇게 산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구나. 알게 돼요. 그래서 정죄하지 않고 판단하지 않고 도울 수 있는 방법을 찾게 됩니다. 저희 교회도 아니었던 한 청년이 나중에 뭐할래? 그렇게 물어봤더니 자기는 이 청력 청력을 증진시키는 그런 일을 하고 싶대요. 그래서 무슨 메디컬 이큅먼트나 뭐 이런 쪽으로 가고 싶다는 거에요. 그래서 오, 특이하다. 그렇게 자세하게 얘기하는 제가 처음 봤거든요. 그래서 왜 왜 그런 생각을 하게 됐냐고 물어봤습니다. 사회가 굉장히 사랑하는 할아버지가 나이가 80이 넘어 가기 시작하면서 귀가 잘 들리지 않게 됐는데 그 할아버지는 평생의 기쁨이 뭐였냐면 클래시컬 뮤직 듣는 거였어요. 근데 하루는 그 손자를 앉혀놓고 그렇게 얘기했대요. 귀가 나빠지니까 음악 소리도 별로 이렇게 아름답게 들리지가 않는다. 근데 이 손자 마음에 우리 할아버지 그만 그렇게 좋아했는데 그 찾아주고 싶다는 마음에 확 드는 거예요. 자기 자기만 그렇게 보이는 것이 아니고 나이든 사람들이 보통 깊이 고통 아니면 그 다 보이기 시작하는 거예요. 자기 자기 가족들의 목소리도 다르게 들리겠구나. 그 마음이 생기는 거예요. 그 막에 기쁨을 되찾게 해주고 싶다. 만약에 그 마음으로 공부한다면 그냥 의사 돼서 돈 많이 벌어야 하는 그런 마음으로 공부하는 것과는 다르겠죠. 이렇게 열심히 해서 진짜 고쳐줘야지.
또 어떤 청년은 선교지에서 의료 혜택 못 받고 죽는 사람들 보고서는 충격받아서 자기는 수술 전문 간호사로 헌신하겠다고 그리고서는 간호 대학에 간 청년도 있었습니다. 여러분, 그런 결정도 할 때에 사람들의 눈을 의식하지 마세요. 나중에 여러분의 인생을 판단하실 분은 사람들이 아니라 하나님이시죠. 그분이 여러분한테 "내가 그 마음 너한테 심어줬어. 그때 그리고 네가 그 마음에 따라서 응답했어." 그렇게 말씀하실 거예요.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서 사는 것 우리 힘으로 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우리 마음 가운데에 마음 주실 때 긍휼한 마음 주실 때 거기에 여러분 응답해 보세요. 그러면 주님께서 이 인생의 목적이 무엇인지 내가 알려주마 하면서 그것을 통해서 여러분의 인생을 불러 주실 거예요.
오늘 본문 17절에 바울은 마지막으로 아킵보라는 사람한테 이렇게 얘기했습니다. "주님 안에서 받은 직분을 유의해서 완수하십시오." 그렇게 권면했습니다. 주 안에서 받은 직분, 그리스 원어로는 디아코니아라는 말입니다. 직분 디아코니아 하는데 영어로는 사실은 서비스라는 말입니다. 주 안에서 아킵보가 받은 그 섬기는 그 일을 완수해라. 그렇게 얘기했어요. 아킵보가 왜 그 직분 나서 물러서게 됐는지는 사실 여기에 나와 있지 않습니다. 어쩌면 실패로 인해서 낙심했을 수도 있습니다. 아, 주님 제가 열심히 해봤는데 잘 되지 않고 사람들도 별로 알아주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낙심했을 수도 있어요. 혹은 내가 뭐라고 하나님께 수임을 받아야 하는 그런 낮은 자존감 때문에 그 섬김의 직분에서 내려왔을 수도 있습니다. 혹은 교회 일 하다가 시험에 들어서 그럴 수도 있죠. 진짜 이 인간들을 같이 일 못하겠다 그래서 그냥 빠져 나왔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바울을 통해서 이 아킵보를 다시 부르시는 거예요. 또 그 주 안에서 니가 받은 그 직분, 그거 포기하지 말고 다시 돌아와라. 너의 부르심과 인생의 목적을 회복하라 는 말씀으로 전환 받습니다. 이 말씀 통해서 주님께서는 우리도 똑같이 부르고 계시지 않은가 하는 그런 생각합니다.
주 안에서 받은 직분을 니 무엇이건 간에 그 작은 것일 수도 있고 큰 것일 수도 있고 그게 교회 안에서의 직분일 수도 있고 또는 여러분 일터에서 직분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무엇이건 간에 여러분이 그 직분을 주 안에서 받았다고 확신하신다면 그것을 완수하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모두 깨어지고 부서진 인생들이죠. 그 직분을 완수할 만한 그런 능력과 그런 지혜가 제가 우리에게는 사실 없습니다. 아, 그러나 주님께서는 그 직분을 신실하게 완수하려고 하는 신자들의 믿음을 보시고 우리를 그 자리에 계속해서 세워 주실 거예요. 그리고 그 일들을 살아갈 수 있도록 도우실 줄로 저는 믿습니다. 여러분의 부족함 또는 여러분의 능력 없음 을 보지 마시고 여러분을 충성되이 여겨서 그 직분을 맡겨주신 그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시기를 바랍니다. 그가 여러분과 또한 그 형제 자매들이 이루고 있는 주의 교회를 통해서 이 세상을 보듬어 주고 또 이 세상에 선과 의를 이루어 주실 것입니다. 그리고 마지막 날에 우리가 예수 앞에 다 함께 다시 섰을 때의 그 때 우리 주님께서는 "잘했다, 충성된 종아, 내 기쁨에 참여하여라" 그렇게 불러 주시지 않겠습니까?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저희들 하나님의 나라는 생각하면 너무나도 막막하고 너무나도 큰 것 같고 엄두가 나지 않지만 오늘 이 말씀에서 본 여러분들을 보면서 저희들 가운데에도 그 나라를 위해서 살고자 하는 그런 마음이 생기는 것을 감사드립니다. 작은 일도 예수를 생각하고 주께 영광을 돌리면서 충성스럽게 할 수 있는 그런 믿음을 저희들에게 허락하여 주십시오. 그리고 주 안에서 우리가 받은 직분들 성령이 주시는 지혜와 능력으로 잘 감당할 수 있도록 도와주셔서 이 교회가 다만 우리를 목적으로 하는 교회가 아니라 우리를 넘어서고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서 함께 애쓰는 교회 되도록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