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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철 어록】일을 해내는 사람의 ‘5가지 절대 조건’― 호암 이병철이 말하는 진짜 인간력 ―│ 성공철학 │ 인생교훈 │ 명언 │ 오디오북 │ 위인어록 │

성공 지혜21:57

Transcription

세상에는 머리는 좋은데 일을 못 하는 사람이 산더미처럼 많다. 반대로 학력도 없고 배경도 없는데 엄청난 성과를 내는 사람도 있다. 그 차이는 뭘까?

나는 대구의 가난한 상점에서 출발했다. 고등학교도 마치지 못했고 가진 것은 노트, 항공과 신용뿐이었다. 그래도 결국 나는 대한민국의 경제를 움직이는 기업을 세웠다. 학력도 재능도 운도 아니었다. 오직 한 가지, 정말로 일을 해내는 사람들에게 공통된 조건을 나는 몸으로 배워왔다. 그것은 기술이 아니다. 손재주도 아니다. 인간으로서의 태도, 마음의 자세. 오늘 나는 내 인생을 걸고 깨달은 진짜 일을 해내는 사람의 다섯 가지 절대 조건을 숨김없이 이야기하려 한다. 이건 책에서 배운 이론이 아니다. 대구 삼성상회 시절의 눈물, 수원 공장의 밤샘, 그리고 모두가 말렸던 반도체 도전 속에서 얻은 피와 땀의 교훈이다. 끝까지 본다면 당신은 단순한 성공 비결이 아니라 어떤 상황에서도 결과를 만들어내는 사람들의 본질을 얻게 될 것이다. 지금 이 이야기를 끝까지 들어봐라. 당신의 일, 그리고 인생의 방향이 달라질 것이다.

내 인생에서 가장 확실히 배운 진리는 하나다. 바른 정직이 마지막에 웃는다. 나는 그 말을 교과서에서 배운 게 아니다. 몸으로. 그리고 때로는 피로 배웠다.

1938년 대구 작은 골목에서 삼성상회를 세웠을 때였다. 그때 나는 28살의 청년이었고 가진 것이라고는 낡은 장부 한 권, 나쁜 거래처 몇 곳, 그리고 신용이라 부를 수 있을까 싶은 미약한 평판뿐이었다. 그 시절 상거래는 느리고 거칠었다. 현금 대신 어음이 오갔고 서류보다 말의 약속이 더 중요했다. 그래서 대부분의 상인은 거래를 성사시키기 위해 샛길을 택했다. 하지만 나는 그 길이 결국 자신을 갉아먹는다는 걸 알고 있었다.

어느 날 첫 대량 납품 계약을 따내기 위해 경성의 관청에 서류를 제출했을 때였다. 담당자가 슬쩍 내게 말했다. "이사장, 조금만 성의를 보이면 허가가 빨리 날 겁니다." 그 성의가 무엇을 뜻하는지는 누구나 알았다. 하지만 나는 웃으며 대답했다. "시간이 더 걸려도 정식 절차로 하겠습니다." 그 일로 허가를 받는데 무려 석 달이 걸렸다. 주변에서는 다들 혀를 찼다. "그렇게 고지식해서는 사업 못 해. 요령도 필요하지 않나?"

그러나 나는 알았다. 부정을 저질러 얻은 돈은 결국 사람의 신뢰를 깎고, 신뢰를 잃은 사람에게는 두 번의 기회가 오지 않는다는 걸. 내가 가장 싫어하는 말이 있었다. "이번 한 번쯤은 괜찮겠지." 그 한 번이 기업을 무너뜨린다. 그 석 달 동안 나는 매일 관청을 찾았고, 서류 한 장 한 장을 직접 고쳐가며 절차를 배웠다. 허가를 받은 날 담당자는 내 손을 잡고 말했다. "이 사장, 당신 같은 사람은 처음 봤습니다. 앞으로도 함께 일하고 싶습니다." 그 말 한마디가 내 인생의 자본이 되었다. 시간은 오래 걸렸지만 그 과정에서 나는 한 가지를 얻었다. 신용이라는 이름의 무형 자산. 그 자산은 돈으로는 살 수 없고, 한 번 잃으면 다시 되찾기 어렵다.

이후 삼성상회는 거래처와의 모든 계약을 서면으로 남겼고, 장부는 매일 밤 내가 직접 검토했다. 밤 11시가 넘어도 불 꺼지지 않는 사무실. 나는 그날의 입금, 출금, 재고를 직접 붓펜으로 적었다. 당시 직원들이 나를 기계보다 더 정확한 사장이라 불렀다. 하지만 나에게 그건 단순한 성격이 아니라 생존의 문제였다. 정직하지 않은 거래는 기업의 수명을 단축시킨다.

수원 방직 공장을 세웠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한번은 납품 원단에서 불량이 발견되었다. 일부 직원들은 "다른 거래처로 돌리면 모를 겁니다."라고 말했다. 나는 단호히 말했다. "불량품을 숨기면 삼성은 그날로 끝이다." 그날 밤 나는 공장 기숙사에서 숙직하며 불량 원인을 직접 찾아냈다. 품질은 정직의 또 다른 이름이다. 그때부터 나는 '품질 제일'이라는 원칙을 모든 사규의 첫 줄에 새겼다.

삼성이 빠르게 성장한 이유를 묻는 사람들이 많았다. 나는 대답한다. "빠른 길을 가지 않았기 때문이다." 신용은 하루 만에 쌓이지 않는다. 수십 년의 거래, 수백 번의 선택 속에서 정직을 지켜야 비로소 완성된다. 나는 직원들에게 늘 말했다. "불리한 사실일수록 먼저 보고하라. 숨기면 그것이 독이 된다. 실패를 감추면 문제는 썩는다. 그러나 정직하게 드러내면 그것은 약이 된다." 세상은 요령 있는 사람을 칭찬하지만, 끝까지 남는 사람은 정직한 사람이다. 거짓으로 얻은 이익은 바람 앞의 모래성이다. 그러나 신뢰로 쌓은 성은 폭풍이 와도 무너지지 않는다. 나는 그렇게 평생을 걸어 배웠다. 바른 정직이 마지막에 웃는다. 삼성의 역사는 곧 그 말 한마디로 요약된다.

나는 늘 이렇게 말했다. "밑바닥을 알아야 진짜 일을 한다." 사람들은 나를 재벌이라고 부르지만, 처음부터 그런 위치에 있던 건 아니다. 나는 한때 대구의 좁은 골목, 흙먼지가 자욱한 상점에서 새벽마다 포대를 짊어지고 시장으로 나르던 청년이었다. 그 시절 나는 배보다 손이 먼저 움직였고, 말보다 행동으로 버텼다. 몸으로 돈의 무게를 배웠고, 밑바닥의 냄새 속에서 사람을 알았다.

삼성상회를 세운 지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 전쟁이 터졌다. 물자는 끊기고 거래처는 하나 둘 무너졌다. 수입하던 생선과 곡물이 더 이상 들어오지 않았다. 직원들은 불안해했고, 거래처는 대금을 재촉했다. 그때 나는 직접 나섰다. 농촌을 돌며 곡물을 사들였고, 새벽 기차를 타고 납품처로 달려갔다. 손에 흙이 묻고 옷은 찢어졌지만 나는 한 가지를 배웠다. 사장은 책상에만 앉아 있어서는 안 된다.

수원 방직 공장을 세운 뒤에도 마찬가지였다. 한 겨울 섭씨 영하의 새벽에 공장을 돌면 기계의 냉기가 손끝까지 스며들었다. 그때 나는 노동자들의 손을 보았다. 거칠고 갈라진 손바닥. 그 손으로 삼성이 움직이고 있었다. 나는 그때 결심했다. 현장을 모르는 경영자는 절대 사람을 움직일 수 없다.

한번은 생산 라인에 큰 문제가 생겼다. 원사 공급이 끊겨 공장이 멈췄다. 모두가 손을 놓았을 때 나는 직원들과 함께 창고로 들어가 남은 원료를 일일이 확인했다. 밤을 세워 계산하고 재배치했다. 그날 밤 우리는 기계를 다시 돌릴 수 있었다. 그 순간 나는 확신했다. 진짜 리더는 위기 속에서 현장과 함께 호흡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내가 기업을 키우며 가장 중요하게 여긴 것은 사람의 사정을 이해하는 일이었다. 직원의 실수 뒤에는 이유가 있었다. 한번은 생산 직원이 납품을 놓쳤다. 보고를 받았을 때 나는 그를 꾸짖지 않았다. "왜 늦었는가?" 대신 "무슨 일이 있었는가?"를 물었다. 그는 어머니의 병간호로 며칠을 밤새며 일했다는 걸 알게 됐다. 나는 그를 책망하는 대신 휴가를 줬다. 며칠 뒤 그는 더 큰 책임감을 갖고 돌아왔다. 그때부터 나는 사람을 먼저 이해하는 경영을 시작했다. 그건 단순히 온정이 아니라 냉철한 효율이었다. 사람의 고통을 이해할 때만 그 사람은 자신의 한계를 넘어선다.

그래서 나는 늘 현장으로 돌아갔다. 새벽 4시 공장, 냄새나는 기계실, 땀 젖은 노동복. 그 속에 답이 있었다. 그들의 고생을 직접 느끼지 못하면 어떤 경영이든 탁상공론이 된다. 나는 부하들에게 자주 말했다. "사무실은 결과를 정리하는 곳이고, 현장은 답을 찾는 곳이다. 사람의 마음은 보고서에 담기지 않는다.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손으로 느껴야 한다. 그래야 진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지금도 누군가 내게 묻는다. "이 회장, 어떻게 그렇게 사람을 잘 보셨습니까?" 나는 대답한다. "밑바닥을 봤기 때문이다." 나는 가난을 알았고 배고픔을 견뎌봤다. 그래서 사람의 고통이 보였다. 그 눈이 오늘의 삼성을 만들었다. 결국 밑바닥을 알아야 진짜 일을 한다. 책상 위에서 세상을 배우면 종이 위에 결론만 남는다. 하지만 현장에서 세상을 배우면 사람의 숨결이 남는다. 그리고 그 숨결이 기업을 움직인다.

나는 평생 동안 한 가지 습관을 지켰다. 시간을 제어하는 사람이 삶을 제어한다.

많은 이들이 묻는다. "이 회장, 그렇게 큰 기업을 어떻게 관리하셨습니까?" 내 대답은 언제나 같다. "시간을 통제하는 것부터 시작하시오." 나는 새벽 4시에 일어났다. 이 습관은 30대 중반부터 단 한 번도 흐트러진 적이 없다. 아직 어둠이 남아 있는 시간. 세상은 고요했고 전화도 방문도 회의도 없었다. 그 두 시간은 내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시간이었고, 나는 그것을 '황금 시간'이라 불렀다.

4시 정각, 첫 번째 일은 신문이었다. 모든 기사를 읽지 않았다. 정치, 경제, 국제면의 핵심 제목만 10분 만에 훑었다. 그다음 20분 동안은 메모를 했다. 어제보다 나은 한 줄을 반드시 적어두었다. 그 한 줄이 내 하루를 움직이는 중심축이 되었다.

5시부터 6시까지는 집중의 시간이었다. 회의 안건 정리, 투자 검토, 중요 서류 확인. 머리가 가장 맑을 때 가장 어려운 결정을 내렸다. 그때의 판단이 하루의 80%를 좌우했다. 나는 늘 직원들에게 말했다. "생각이 가장 명확할 때 가장 중요한 일을 하라."

6시, 집에서 식사를 하며 가족과 짧은 대화를 나눴다. 사업이 아무리 커도 가정에 평온이 무너지면 마음의 균형이 흔들린다. 가족과의 10분 대화가 내 정신을 바로 세웠다.

7시에는 출근했다. 운전 기사에게 라디오를 끄게 하고 비서에게 말했다. "오늘 만날 사람의 이름과 관심사를 다 말해보게." 상대의 취미, 가족, 책, 고민까지. 그 모든 정보를 머리에 새기고 만남에 임했다. 사람은 논리보다 진심으로 움직인다.

8시 이전에는 사무실에 도착했다. 다른 이들이 출근하기 전에 책상 위를 정리하고 하루 일정을 확인했다. 비서와의 아침 미팅은 10분. 주요 안건만 점검했다. "오늘의 핵심이 뭐지?" "오전 회의 목표는?" 그 두 가지를 확인하면 충분했다. 나는 원칙이 있었다. 모든 면담은 15분 이내, 길어도 30분을 넘지 않았다. 누군가 조금만 더 시간을 일하고 말해도 나는 단호했다. "15분 안에 말 못 할 일은 3시간에도 못 합니다." 냉정하게 들릴지 몰라도 그 덕분에 내 하루는 헛된 시간이 없었다.

점심 시간도 예외는 아니었다. 식사는 20분, 남은 40분은 오전의 회의 내용을 정리하고 오후 전략을 다듬었다. "오늘의 문제점은 무엇이었는가?" "오후 회의에서 무엇을 물어야 하는가?" 그 생각을 글로 옮기면 오후의 일은 절반이 끝난 것이었다.

오후 일정은 항상 15분 단위로 짜였다. 업무 보고, 거래처 면담, 내부 회의. 모두 시간표 위에서 움직였다. 그러나 정말 중요한 일에는 한두 시간을 온전히 비워뒀다. 예를 들어 반도체 사업 초기, 나는 매주 금요일 오후 두 시간을 누구와도 약속하지 않았다. 그 시간은 오직 기술팀 보고와 문제 해결이었다. 중요한 일에는 밀도 있는 시간을 줘야 한다. 그래야 방향이 흔들리지 않는다.

퇴근은 밤 7시였다. 그러나 그 후엔 또 다른 하루가 시작됐다. 정부 인사, 협력사, 학계 인사와의 만남이 이어졌다. 그 자리에서도 나는 시간을 철저히 지켰다. 8시부터 9시까지는 A팀, 9시 반부터는 B팀. 시간을 넘기지 않았고 약속을 어기지 않았다. 그 습관 덕분에 나는 언제나 신뢰를 얻었다.

밤 11시. 하루가 끝나면 나는 책상에 앉았다. 약 15분 동안 하루 일기를 썼다. 그날의 문제, 느낀 점, 개선할 점을 간단히 적었다. 그 기록은 내 경영의 나침반이 되었다.

많은 이들이 나는 바쁘다고 말하지만, 바쁜 것과 충실한 것은 다르다. 바쁘기만 한 사람은 결국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 그러나 시간을 제어하는 사람은 같은 하루를 두 배로 산다. 나는 늘 되묻는다. "오늘 가장 중요한 일을 가장 좋은 시간에 했는가?" 그 질문 하나로 나는 매일을 바로 세웠다. 결국 시간을 제어하는 사람이 삶을 제어한다. 시간을 흘려보내는 사람은 인생도 흘려보낸다. 하지만 시간을 붙잡은 사람은 인생을 붙잡는다.

나는 평생 동안 수많은 결정을 내렸다. 그리고 그중 절반은 실패였다. 하지만 분명히 말할 수 있다.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자만이 크게 이긴다.

삼성이 전자 산업에 뛰어들던 1969년. 나는 이미 예순을 바라보는 나이였다. 주변에서는 모두 반대했다. "이 회장, 전자는 너무 위험합니다. 일본 기업들도 고전하는데 우리가 어떻게 합니까?" 그들의 말은 틀리지 않았다. 당시 한국에는 기술도, 설비도, 자본도 부족했다. 하지만 나는 생각했다. 이대로 머물면 삼성에 내일은 없다. 그때부터 나는 매일 고민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위험을 피하는 게 아니라 위험을 다스리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결심했다. 가전 제품에서 출발해 전자 산업의 기반을 닦자.

그리고 1980년대 초, 반도체 시장에 들어가겠다고 선언했을 때 임원들은 놀랐다. "회장님, 나라에서조차 포기한 분야입니다. 반도체는 돈 먹는 괴물입니다." 하지만 나는 흔들리지 않았다. "그 괴물을 키워야 우리가 세계와 싸울 수 있다."

처음부터 순탄하지 않았다. 처음 라인에서 수율은 2%였다. 100장을 찍으면 98장은 버려야 했다. 손실액은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언론은 비웃었다. "삼성의 무모한 도전. 이병철의 오만한 꿈." 그러나 나는 알고 있었다. 성공의 씨앗은 언제나 실패 속에서 자한다는 것을.

나는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았다. 대신 기록했다. 모든 실패의 원인을 분석해 문서로 남겼다. 그 보고서를 나는 '실패일지'라 불렀다. 직원들에게도 말했다. "실패는 감추면 죄가 된다. 하지만 기록하면 자산이 된다." 그 과정은 고통스러웠다. 수원 공장에 불이 꺼지지 않았다. 밤새 라인에서 수율을 높이기 위한 실험이 반복됐다. 그때 젊은 엔지니어 한 명이 포기 직전의 얼굴로 내게 말했다. "회장님, 더는 안 됩니다. 기술적으로 불가능합니다." 나는 그에게 이렇게 답했다. "불가능은 숫자가 아니라 마음의 문제다. 기술은 결국 사람의 의지로 움직인다." 그 말에 그는 고개를 숙였고 다시 라인으로 들어갔다. 며칠 뒤 우리는 첫 성공 칩을 생산했다. 수율은 2%에서 10%로, 다시 30%로 올라갔다.

그 순간 나는 깨달았다. 실패는 적이 아니라 성장의 교사다. 많은 사람들이 성공한 뒤에만 박수를 친다. 그러나 진짜 리더는 실패의 한가운데서도 박수를 칠 줄 알아야 한다. 나는 그때 모든 임직원을 모아 말했다. "이 손실은 실패가 아니다. 우리가 내일을 사기 위해 낸 수업료다." 삼성의 반도체 사업이 세계를 선도하게 된 지금도, 그때의 두려움과 손실을 떠올리면 가슴이 뜨거워진다. 성공의 그림자에는 언제나 수많은 실패가 숨어 있다. 그리고 그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은 사람만이 세상을 바꾼다.

그래서 나는 지금도 젊은이들에게 말한다. "작은 실패를 피하지 말고 빨리 경험하라. 그 실패들이 너를 단단하게 만든다. 실패를 피하는 인생은 안전할지 몰라도 결코 성장하지 않는다." 결국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자만이 크게 이긴다. 넘어지지 않으려 애쓰기보다 넘어진 뒤 다시 일어설 이유를 찾는 것. 그것이 진짜 용기다. 삼성이 그 길을 걸어왔듯, 당신의 인생도 그렇게 걸어가라.

나는 언제나 이렇게 말했다. "다음 세대 길을 남겨라." 내가 아무리 많은 회사를 세워도, 내가 살아 있는 동안만 움직인다면 그것은 진짜 성공이 아니다. 진짜 성공은 내가 사라진 후에도 누군가 그 길을 따라 걸을 수 있을 때 완성된다.

총수로서의 자리보다 더 무거운 것은 책임이었다. 기업은 사장의 것이 아니라 사회의 것이다. 나는 늘 그렇게 믿었다. 그래서 돈을 버는 것보다 그 돈이 어디로 흘러가야 하는지를 더 고민했다. 후반, 나는 경영 일선에서 한발짝 물러나며 후계자들과 젊은 임원들을 불러 말했다. "이제부터는 내가 만든 길 위에서 짓지 말고 너희의 길을 만들어라." 그때 많은 이들이 불안해했다. "회장님 없이 우리가 과연 할 수 있을까요?" 나는 웃으며 답했다. "내가 없을 때도 움직일 수 있도록 만드는 게 내가 평생 해온 경영이다."

내가 강조한 건 단 하나였다. 인재 제일. 사람을 남겨야 기업이 남는다. 나는 수많은 사업을 하면서 늘 사람에게 투자했다. 때로는 그들이 나보다 더 큰 권한을 가졌다. 하지만 나는 그게 두렵지 않았다. 리더는 자신보다 더 큰 인재를 키워야 진짜 리더가 된다.

어느 날 젊은 공장장이 나를 찾아왔다. "회장님, 이번 공정 문제는 너무 커서 제가 감당하기 어렵습니다." 나는 그를 바라보며 말했다. "내가 자네에게 맡긴 이유는 자네가 그 어려움을 이길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는 눈빛이 달라졌다. 그리고 그 문제를 결국 스스로 해결했다. 몇 년 후 그는 삼성의 핵심 임원이 되었다. 그를 볼 때마다 나는 스스로에게 말했다. 사람을 믿을 줄 알아야 길이 이어진다.

나는 후배들에게 이렇게 조언했다. "리더는 자신이 길을 가는 사람이 아니라 길을 깔아주는 사람이다. 내가 걷던 길은 언젠가 사라진다. 하지만 내가 깔아둔 길 위에서 더 멀리 나아가는 사람이 있다면, 그것이 내 인생의 보상이다." 그래서 나는 1982년 호암재단을 세웠다. 기업이 국가로부터 받은 사랑을 돌려주기 위해서였다. 장학 사업, 의료 지원, 문화 예술 후원. 이 모든 것은 나 개인의 이름을 남기기 위한 것이 아니었다. 대한민국이 더 나은 인재를 키우고 더 나은 삶을 만들기 위한 투자였다.

나는 젊은 경영자들을 만날 때마다 말했다. "너 혼자 성공해서는 아무 의미가 없다. 네가 만든 길 위로 더 많은 사람들이 걸어올 수 있어야 한다. 기업의 목적은 부의 축적이 아니라 사회적 책임의 완성이다." 마지막으로 내 자녀들에게 남긴 말이 있다. "삼성은 단순히 가족의 기업이 아니라 나라의 기업이다. 너희가 회사를 키우는 이유는 가문이 아니라 국가를 위한 것이다." 그 믿음이 있었기에 삼성은 세대를 넘어 살아남을 수 있었다.

나는 늘 젊은이들에게 말한다. "다음 세대 길을 남겨라. 너의 지식, 너의 경험, 너의 실패까지도 후배들에게 물려주어라. 그 길을 밟고 걷는 사람들이 많아질수록 너의 인생은 더 단단해진다." 결국 리더의 마지막 임무는 자신이 떠난 후에도 조직이 굴러가게 하는 것이다. 그것이 진짜 리더의 책임이며 세상에 남는 유일한 유산이다.

내가 평생을 바쳐 배운 것은 단 한 가지다. 진짜 자산은 신뢰다.

사람들은 종종 묻는다. "이 회장, 그렇게 많은 회사를 일으킨 비결이 무엇입니까?" 나는 언제나 대답했다. "신뢰를 얻으면 돈은 따라오지만, 돈을 쫓으면 신뢰는 떠난다." 내가 대구 삼성상회를 세웠던 그 시절, 자본도 기술도 없었다. 하지만 한 장의 어음, 한 사람의 약속이 기업의 생명줄이었다. 그 약속을 지키기 위해 나는 때로는 손해를 감수했다. 때로는 한밤중에 거래처를 찾아가 직접 사과하고, 다음날 새벽엔 은행 문이 열리기도 전에 기다렸다. 그렇게 지킨 한 번의 약속이 평생의 신뢰로 남았다.

사람은 기술로 움직이지 않는다. 신뢰로 움직인다. 그래서 나는 늘 임직원들에게 말했다. "거짓말하지 말고 숨기지 말라. 문제가 생기면 가장 먼저 이야기하라. 불편한 진실을 먼저 말할 줄 아는 사람. 그 사람이 결국 회사를 지킨다." 나는 정직하게 일하는 사람이 결국 성공한다고 믿었다. 그 믿음 하나로 시작한 길이 이제는 세계가 인정하는 삼성으로 이어졌다. 요즘 사람들은 효율, 속도, 기술을 말한다. 하지만 그것들은 도구일 뿐이다. 기본이 무너지면 아무리 빠르게 달려도 결국 제자리를 돈다.

내가 걸어온 길은 화려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 길에는 늘 사람의 믿음이 있었다. 나는 사업을 하며 수많은 위기를 겪었다. 그때마다 나를 지켜준 것은 신뢰였다. 은행이 도와준 것도, 협력사가 기다려 준 것도 다 나를 믿었기 때문이었다. 그 믿음이 있었기에 나는 다시 일어설 수 있었다.

이제 나는 말하고 싶다. 돈, 권력, 명예. 그것들은 다 사라진다. 하지만 신뢰는 남는다. 그것이 내가 자식들에게 남긴 가장 큰 유산이다. 진짜 자산은 신뢰다. 정직, 현장, 시간, 도전, 그리고 다음 세대. 이 다섯 가지를 지키면 신뢰는 자연히 따라온다. 그리고 그 신뢰가 당신의 인생을 끝까지 지탱해 줄 것이다.

오늘 내가 한 이야기가 누군가의 삶을 바꾸는 한 문장이 되길 바란다. 그것이 내 인생의 마지막 소망이다.

이 영상을 끝까지 들어준 당신에게 고맙다. 지금 이 순간 마음속에 하나의 다짐을 남겨라. 나는 오늘부터 신뢰를 쌓는 사람이 되겠다. 그리고 댓글에 당신의 다짐을 짧게 남겨보라. 예를 들어 노력, 도전, 신뢰, 성장. 이 네 글자 중 마음에 와닿는 하나를 적어보라. 그 한 단어가 당신의 내일을 바꿀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