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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에서는 마음이라는 게 없다고 하던데…?

법륜스님의 즉문즉설11:41

Transcription

저는 책 같은 책을 보든지 여러분 영혼이라는 말이 짜리든지 하는데 영혼이 마음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근데 불교 재료한지를 본다든지 하면 마음이라는 게 없다고 말합니다. 그 제 생각이 어디가 틀렸는지 잘 몰랐으면 질문드립니다.

네. 어, 인간은 육체와 정신을 가지고 있다. 보통 이렇게 말합니다. 육체적 작용은 생명 현사이고, 그다음에 정신 작용을 가지고 있다. 정신 작용은 옛날에는 사람만 갖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오늘날은 사람만 있는 것이 아니고 모든 생명에도 다 정신 작용이 있습니다. 다만 정신 작용이 사람이 가장 발달되어 있다, 이렇게 볼 수가 있습니다. 어, 그래서 이제 육체와 정신 이렇게 말할 때는 어 모든 정신 작용이 다 포함이 되니까 어 구분이 확실히 되는데, 이제 또 순리말로 이것을 말할 때는 몸과 마음이라고 이렇게 표현합니다. 몸과 마음. 그까 몸이란 것은 육체를 말하고, 이럴 때 마음이라는 것은 모든 정신 작용을 뜻하는 마음입니다.

그런데 이 마음은 두 가지를 같이 포함합니다. 그러니까 정신 작용할 때는 정신 작용을 크게 둘로 나누면 마음 작용과 생각 작용이라고 둘로 나눌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마음이 아프다 이런 말은 쓰지만은 생각이 아프다 이런 말은 안 쓰잖아요. 그 생각이 많다 이런 말은 쓰지만은 마음이 많다 이런 말은 안 쓴다, 이런 얘기예요. 음. 어, 마음에 화가 났다, 마음이 괴롭다 이런 말은 쓰지만은 생각이 화가 났다, 생각이 괴롭다 이런 말은 안 쓰지 않습니까? 그래서 정신 작용은 크게 나누면 마음 작용과 생각 작용을 구분할 수 있다. 우리가 일상적인 쓰는 용어를 갖고 말한다면 그렇다 이 말이에요. 그런데 이 정신과 육체라고 할 때의 정신은 마음과 생각 나눌 수가 있는데, 이걸 말할 때 몸과 마음 이렇게 말할 때의 그 마음은 아까 생각과 마음으로 구별되는 그 마음이 아니고, 몸과 마음은 정신 작용 전부 다를 통칭해서 말하는 거다. 그래서 우리가 마음이란 용어를 쓸 때에 정신 작용을 통칭해서 쓰는 마음이라는 뜻이냐, 아니면 정신 작용 중에 어떤 감정적 작용을 말하는 것, 이것을 뜻하는 거냐? 그러니까 좁은 의미의 마음과 넓은 의미의 마음이 있다. 그래서 마음이란 용어가 이렇게 두 가지로 쓰인다는 거를 알아야 된다는 거. 우리가 쓰는 마음이라는 말 자체를 쓸 때, 어떨 때는 정신과 구분되는 마음을 뜻하기도 하고, 어떤 때는 정신 작용 전체를 뜻하기도 한다 이 말이야.

그러면 생각 작용과 구분되는 마음 작용 이럴 때 마음은 구체적으로 마음이 뭘까? 뭔가 구분되는 마음이라는 거는 정신 작용이다 이러면 되는데, 정신 작용 중에 생각과 구분되는 마음이란 게 도대체 뭘까? 이럴 때 조금 이제 어디까지를 규정할 거냐. 그럴 때는 이 마음이란 용어를 사용할 때 주로 감정을 얘기할 때 마음이라고 말을 한다, 이런 얘기요. 우리가 예를 들면 이성과 감성 이런 말을 쓰잖아요. 그럴 때 이성적 작용은 주로 생각에 가깝고, 감성적 작용은 주로 마음에 가깝다, 이렇게 말할 수 있어요. 그러면 불교에서는 어떻게 얘기하느냐? 불교에서는 이 정신 작용을 생각과 마음, 우리가 일상적인 용어로서는 생각과 마음 이렇게 두 가지로 안 하고, 다섯 가지로 표현합니다. 정신 작용을. 그 다섯 가지가 뭐다? 색수상 행식이에요. 마음이라고 하는 게 따로 없고, 이 다섯 가지가 결합되어 있는 거다. 이 다섯 가지의 결합이지, 이걸 떠나가 마음이라고 하는 것이 따로 없다, 이런 얘기예요.

그런 데서, 어, 우리는 일상적으로 지금까지는 사람이 죽으면 영혼이 있다, 영혼히 천국에 간다, 영혼히 다음생에 다시 태어난다, 지옥에 간다 이렇게 말할 때는, 나의 마음에는 나만의 나라고 할 만한 그런 어떤 특별한 실체가 있어서 그것이 윤회를 하든지, 태시 뭐 천국에 가든지 한다 이렇게 사람들은 생각해 왔다 이거예요. 특히 인도에서는 우리의 나라고 하는 그거는 하늘에는 브라만이라고 하는 신이 있는데, 그 신의 분신이 한 조각이 나한테 있다. 그래서 나한테 있는 이 한 조각 한 부분은 아트만이라 그러고, 신은 창조주 신은 브라만이라 그러고, 그런데 이 아타만이라고 하는 이걸 내가 발견을 해내면 신과 다름이 없다. 그래서 브라함만과 아트마는 사실은 같은 거다. 이거를 철학적으로는 범마이려라 그래요. 범은 브라만을 말하고, 아는 아트만을 말한다. 그러니까 신과 내가 일치한다, 이런 얘기. 그것을 해탈이라고 한다. 이게 오파니사드 철학이다. 근데 부처님께서는 나라는 게 없다. 이 말의 의미가 나라는 게 없다, 이런 우리가 보통스는 나라는 게 없다는 거 아니라, 그런 신의 분신이라고 할 만한, 나만의 나라고 할 만한 그런 실체, 변하지 않고 나만의 나인 그런 아트만이라는 거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게 모아썰리에요. 그러니까 마음이 없다든지 그냥 내가 없다든지 이렇게 이야기하면 오해를 산다, 이런 얘기. 그 당시에 신의 분신인 아트마라는 것이 나한테 있다 이렇게 했는데, 부처님은 그런 것은 없다 이 말이에요.

다시 말하면 앞으로 이제 자율주된 주행 자동차가 나온다. 뭐 인공 어로 그니까인 뭐 인공지능을 탑재한 로봇이 나온다고 하자. 그것이 가기도 하고 오기도 하고 말도 하고 알아서 다 처리를 해요. 그럴 때 그 로봇에게 그 죽으면 영혼이란 게 남아가 있다가 또 딴데 가고 그러겠느냐 이거예요? 의로신 말도 하고 소리도 내고 움직이도 하고 여러 가지 일도 하지만은, 그럼 그렇게 하는 근본은 뭐냐? 거기에는 하나의 프로그램 앱이다 이거예요. 어, 인공지능 앱이 거기에 깔려 있어서 그렇다, 이런 얘기. 그것처럼 우리에게는 그런 업식이 있지, 그런 작용은 있지만은 실체는 없다 이거야. 그 자율주등 자동차 안에 어떤 특정한 존재가 있는 게 아니다. 그렇게 작용은 한다. 온갖 작용을 하지만은 그 작용의 주체라고 할 만한 실체는 없다. 그걸 들어가 보면 그냥 앱일 뿐이다, 이런 얘기예요. 그래서 모아설은 지금도, 어, 지금 과학적으로도, 어, 거의 진실에 가깝다, 이렇게 말할 수가 있습니다. 어, 그러니까 우리가 죽음, 뭐 영혼이 뭐 어떻게 되고 어떻게 되고 이런 옛날의 생각은, 마치 앞으로 어 자동화된 로버트를 보고 그 죽으면 뭐 그거 어디 천국에 가고 지옥에 가고 뭐 죄를 받고 하는 이런 생각하는 거하고 같다 이렇게 이해하시면 돼요. 그래서 그것은 어리석을 때 모를 때는 그런 생각을 할 수가 있다 이 말이에요. 그러나 진실은 그렇지가 않다, 막 그런 얘기입니다.

스님 말씀 잘 들었습니다. 그리고 정신과 생각의 작용의 작용이라든지, 영혼이 영혼 영혼에 대한 그 어떤 그 거기 있는데, 아, 공부를 좀 더 해 가지고 보겠습니다.

지금 불교의 가르침은 뭐 그게 영혼이 있느냐 없느냐, 뭐 내성이 있느냐 없느냐 이게 불교의 가르침이 아니고요. 그거는 이제 이론적으로 굳이 말하면 그렇다는 거고, 가장 핵심은 내가 괴로움 없이, 두려움 없이, 어, 화남 없이 살아갈 수 있는가가 가장 중요하다, 이런 관점을 가지시면 좋겠습니다.

이제 나는 인상 쓰지 않고 글을 씁니다. 지금 이대로 좋다. 나의 첫 필사노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