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Get Our Mobile App

Take your business learning on the go!

Download on the App StoreGet it on Google Play

【김형석 교수】 너무 애쓰지 마라, 집착을 놓는 순간 마음이 편안해집니다 | 무소유 | 행복한 노후

부의 설계도50:44

Transcription

저는 오래 살면서 한 가지를 점점 더 확실하게 배우게 되었습니다. 인생을 가장 지치게 만드는 것은 큰 불행이 아니라 스스로를 몰아붙이는 조급함이라는 사실입니다.

우리는 늘 무언가에 쫓기듯 살아왔습니다. 남들보다 늦으면 큰 일 나는 줄 알았고 지금 당장 결론을 내지 않으면 인생이 무너질 것처럼 불안해했습니다. 그래서 해야 할 일은 끝없이 늘어났고 마음은 쉬지 못했고 어깨는 늘 굳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참 이상하지요. 죽자 사자 매달릴 때는 손끝 하나 닿지 않던 것이 마음을 내려놓고 있으면 어느새 제 발로 다가오는 일도 있습니다. 저는 그 장면을 여러 번 보았습니다. 사람은 노력해야 합니다. 하지만 노력이라는 이름으로 집착을 붙들고 있으면 그 노력은 어느 순간부터 나를 살리는 힘이 아니라 나를 태우는 불이 됩니다.

그래서 저는 요즘 어떤 일이 잘 풀리지 않을 때 더 세게 밀어붙이기보다 먼저 한번 숨을 고릅니다. 그리고 스스로에게 묻습니다. 지금 내가 애쓰는 것이 정말 필요한 노력인가? 아니면 불안이 만든 집착인가?

자연을 보면 답이 분명해집니다. 고개를 들어 산을 보십시오. 꽃이 피고 싶다고 한겨울에 고개를 내미는 법이 있습니까? 나무가 빨리 자라고 싶다고 제 몸을 억지로 잡아당기는 걸 본 적이 있습니까? 모든 생명에는 저마다의 철이 있고 인생에도 다 때가 있습니다. 때가 오기 전에는 아무리 힘을 줘도 문이 열리지 않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 문을 억지로 열려고 손잡이를 불어뜨릴 때까지 돌립니다. 그러고는 왜 나는 운이 없지? 왜 나만 이렇게 막히지 하며 자신을 탓타하거나 세상을 원망합니다.

특히 인생의 후반전으로 들어설수록 이런 조급함이 더 커지기도 합니다. 젊을 때는 시간이 많다고 믿으니 실패해도 다시 일어설 여유가 있습니다. 하지만 나이가 들면 남은 시간이 줄어든다는 생각이 마음을 조급하게 만듭니다. 자식이 내 뜻대로 움직이지 않으면 더 불안해지고 가족이 예전 갖지 않으면 더 허전해집니다. 집안이 조용해지고 명절이 다가오면 반가운보다 걱정이 앞서기도 합니다. 올까 안 올까? 왔다가 금세가 버리면 어쩌나 이런 마음이 생길 때 우리는 무언가를 더 붙잡으려 합니다. 더 간섭하고 더 확인하고 더 조정하려 합니다. 그런데 그렇게 할수록 마음은 더 지칩니다.

저는 여기서 한번 시선을 바꿔 보자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지금의 고요함이 정말 실패의 증거일까요? 어쩌면 삶이 우리에게 이제는 조금 비우고 조금 쉬워도 된다라고 말하는 신호일 수 있습니다. 겨울은 죽어 있는 시간이 아닙니다. 겨울은 뿌리가 자라는 시간입니다. 겉으로는 잎이 떨어져 초라해 보여도 땅 아래에서는 다음 계절을 준비하는 힘이 모입니다. 사람의 인생도 그렇습니다. 겉으로 드러나는 성취가 줄어드는 시기에 내면은 더 깊어질 수 있습니다. 다만 우리는 그 시간을 공백으로만 해석해서 불안해하는 것이지요.

그러니 오늘만큼은 너무 애쓰지 말아 보십시오. 어깨의 힘을 조금 빼고 삶이 흘러가는 순리를 잠시 지켜보는 연습을 해보면 좋겠습니다. 저는 그 연습이 결코 게으음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오히려 인생을 오래 살아온 사람이 가질 수 있는 가장 성숙한 태도일 수 있습니다. 때가 오면 꽃은 피고 서두르지 않아도 길은 열립니다. 문제는 우리가 그때까지 자기 자신을 얼마나 건강하게 지켜내느냐입니다. 오늘은 그 첫걸음을 함께 내디어 보았으면 합니다.

저는 사람을 오래 보아오면서 특히 인생의 후반전에 들어선 분들이 가장 자주 흔들리는 지점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돈이 많고 적음도 력이 높고 낮음도 아닙니다. 결국 우리를 흔드는 것은 내가 살아온 시간이 인정받지 못했다는 느낌입니다. 공려 키운 자식이 내 수고를 알아주지 않을 때 우리는 단순히 섭섭한 정도를 넘어 삶 전체가 부정당하는 것 같은 깊은 상실감을 느낍니다. 내가 어떻게 살았는데 너희를 위해 무엇을 했는데이 말이 목끝까지 차오르지요. 하지만 말해도 돌아오는 것은 되게 차가운 침묵이거나 무심한 대답뿐입니다.

그럴 때 사람은 자연스럽게 비교를 시작합니다. 남의 집은 벌써 봄을 맞아 꽃이 피는 것 같고 자식들이 효도한다는 이야기가 들려옵니다. 그런데 내 뜰에는 왜 이렇게 서리발만 남아 있는지 세상이 야속해지고 마음이 좁아지기도 합니다. 저는 그 마음을 탓타지 않습니다. 그만큼 우리는 가족 안에서 인정으로 버텨 왔기 때문입니다. 다만 중요한 것은 그 순간에 우리가 하나를 분명히 구분해야 한다는 점입니다. 지금 내가 느끼는 외로움이 실패의 증거인지 아니면 새로운 성숙의 시작인지 말입니다.

저는 종종 이렇게 말씀드립니다. 겨울이 길다고 해서 봄이 안 오는 법은 없습니다.이 이 말이 단순한 위로로 들릴 수 있지만 사실은 현실을 보는 가장 정확한 태도입니다. 자연에서 겨울은 멈춤이 아니라 준비입니다. 나무는 추위가 오면 잎을 떨그고 에너지를 뿌리로 모읍니다. 겉으로는 죽은 듯 고요해 보여도 땅 아래에서는 내년 봄을 지탱할 힘이 쉬없이 쌓이고 있습니다.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겉으로 드러나는 활동이 줄어드는 시기에 마음의 뿌리를 깊게 내릴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 시간을 정체로만 해석하고 억지로 여름 햇살을 구걸하려 합니다. 그때 마음이 지옥이 됩니다.

우리가 겪는 괴로움의 대부분은 현재의 상황을 부정하고 억지로 바꾸려 할 때 생깁니다. 자식이 내 뜻대로 움직이지 않는다는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비교의 눈으로만 바라보면 마음은 날마다 사아갑니다. 그리고 그 마음은 결국 말투로 표정으로 행동으로 흘러나가 관계를 더 멀게 만들 수 있습니다. 저는이 지점에서 노아라라고 쉽게 말하고 싶지 않습니다. 대신 이렇게 제안합니다. 놓는다는 것은 포기가 아니라 관계의 방식과 나의 중심을 바꾸는 일이라고요. 자식에 대한 집착을 내려놓는다는 것은 자식을 버린다는 뜻이 아닙니다. 자식이 스스로의 길을 찾을 수 있도록 내가 불안으로 흔들며 끈을 당기는 대신 조용히 믿어주는 방향으로 바꾸는 것입니다. 그리고 비교를 멈춘다는 것은 남의 정원에 핀 꽃을 보지 말라는 뜻이 아니라 내 뜰 계절이 다르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용기입니다. 꽃은 다 같은 날 피지 않습니다. 어떤 꽃은 이른 봄에 피고 어떤 꽃은 늦봄에 피며 어떤 꽃은 여름의 열기 속에서 비로소 향기를 품습니다. 중요한 것은 지금 안 피었으니 끝났다가 아니라 지금은 준비의 시간일 수 있다는 관점입니다.

저는 노년의 고독을 무조건 나쁜 것으로만 보지 않습니다. 고독은 사람을 무너뜨리기도 하지만 동시에 사람을 깊게 만들기도 합니다. 외로움이 찾아올 때 우리는 그동안 바깥에 인정으로 채우려 했던 마음의 빈공간을 마주하게 됩니다. 그 빈 공간을 탓타거나 두려워하기보다 내 영혼을 돌보는 시간으로 바꿔 보십시오. 오늘 먹은 따뜻한 밥판끼. 내 숨이 아직 편안하다는 사실. 창문 넘어로 들어오는 햇빛 한줄기 같은 작은 것들이 사실은 내 삶을 지탱해 온 가장 단단한 기둥입니다. 그 기둥을 다시 바라볼 때 마음은 조금씩 가라앉기 시작합니다. 그러니 지금의 겨울을 서둘러 끝내려 하지 마십시오. 억지로 땅을 파헤쳐 싹을 확인하려 하면 오히려 아직 준비되지 않은 생명을 다치게 할 수 있습니다. 지금의 고통이 재앙이 아니라 내면을 단단하게 빚기 위해 찾아온 과정일 수도 있습니다. 저는 그렇게 믿습니다. 그리고 그 믿음이야말로 인생의 후반전에서 우리가 가져야 할 가장 현실적인 지혜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사람의 마음이 가장 힘들어지는 순간을 이렇게 정의합니다. 기다려야 한다는 걸 알면서도 기다리지 못할 때입니다. 특히 자식 문제는 그렇습니다. 자식이 늦어지면 부모의 마음은 하루에도 몇 번씩 흔들립니다. 내가 뭔가를 더 해줘야 하나. 지금 개입하지 않으면 더 늦어질까? 남들처럼만 해주면 되는 건데 왜 우리 집만 이럴까? 이런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습니다.

그런데 저는 인생을 오래 살면서 깨달았습니다.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는 마음과 자식을 통제하려는 마음은 아주 비슷하게 생겼다는 것을요. 겉으로는 둘 다 걱정이라는 옷을 입고 나오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결과는 정반대입니다. 랑은 아이를 살리고 통제는 아이를 숨막히게 합니다. 그리고 그 통제는 결 부모 자신도 망뜨립니다. 우리가 자식에게 집착할수록 자식은 더 멀어지거나 더 무기력해질 가능성이 커집니다. 왜냐하면 사람은 누구나 내 인생은 내가 책임지고 싶다는 본능이 있기 때문입니다. 부모가 너무 강하게 끈을 당기면 자식은 그 끈을 잡고 올라오는 대신 끈을 끊어 버리려 할 수도 있습니다. 그게 냉정한 인간의 심리입니다.

그래서 저는 자식 문제에서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이 조언이 아니라 거리 조절이라고 말합니다. 연락을 끊으라는 뜻이 아닙니다. 다만 내가 불안해서 전화하고 내가 불안해서 간섭하고 내가 불안해서 비교하는 그 패턴을 멈추자는 것입니다. 불안은 전염됩니다. 부모가 불안해하면 자식은 더 초조해지고 더 지칩니다. 그리고 그 지침은 다시 부모의 불안을 키우지요.이 악순환이 반복되면 가족은 사랑을 나누는 관계가 아니라 서로를 소모시키는 관계가 됩니다.

이때 떠올려야 할 것이 자연의 질서입니다. 나무가 겨울에 잎을 떨구는 이유는 포기해가 아닙니다. 살기 위해서입니다. 잎을 붙들고 있으면 바람과 눈 때문에 더 큰 손실을 입습니다. 그래서 스스로 내려놓고 뿌리에 힘을 모읍니다. 저는 부모의 마음도 이와 같다고 봅니다. 지금은 바깥으로 뻗는 힘보다 뿌리로 돌아가는 힘이 필요할 때가 있습니다. 자식을 더 붙잡는 대신 내 마음의 뿌리를 단단하게 하는 시간 말입니다. 그 뿌리는 무엇으로 단단해집니까? 저는 세 가지를 강조하고 싶습니다.

첫째, 비교를 끊는 일입니다. 남의 집, 자식이 잘되는 이야기는 언제나 과장되어 들립니다. 겉으로는 꽃이 만개한 듯 보이지만 그 정원에도 늘 보이지 않는 겨울이 있습니다. 비교는 사실을 보는 것이 아니라 마음을 찢는 것입니다.

둘째, 기대의 방향을 바꾸는 일입니다. 내가 원하는 모습으로 빨리 성공해라가 아니라 너의 속도로네 삶을 세워라로 바뀌어야 합니다. 이것이 말로는 쉬워도 마음으로는 어렵지요. 그러나 그 어려움을 견디는 것이 노년의 성숙입니다.

셋째, 나 자신의 하루를 다시 세우는 일입니다. 자식의 시간표로 내 마음이 움직이면 나는 삶의 주인이 아닙니다. 내 하루에 작은 질서를 만들고 내 몸과 마음을 돌보는 루틴을 갖추는 것이 필요합니다.

우리는 흔히 자식이 잘돼야 내 인생이 보상받는다는 생각을 품고 살아왔습니다. 그러나 그 생각은 위험합니다. 자식은 내 소유가 아닙니다. 그리고 내 인생의 의미는 자식의 성취로만 완성되지 않습니다. 인생의 후반전은 오히려 그 반대입니다. 남에게 기대어 의미를 얻는 시간이 아니라 내 안에서 의미를 찾아가는 시간입니다. 내가 가진 작은 것들에 감사하고 내가 할 수 있는 작은 일을 성실히 하며 내 관계를 조용히 정돈하는 시기입니다.

저는 여기서 한 문장을 드리고 싶습니다. 부모가 조급하면 자식의 길이 좁아지고 부모가 태해지면 자식의 길이 넓어진다. 부모의 평온은 자식에게 가장 큰 공간을 줍니다.

자식이 넘어질 때 부모가 뛰어들어 모든 돌을 치우려 하면 오히려 아이는 자신의 다리로 걷는 법을 배우지 못합니다. 하지만 부모가 곁에서 흔들리지 않는 마음으로 지켜봐 주면 아이는 넘어져도 다시 일어설 힘을 얻습니다. 그 힘은 부모가 준 돈이나 조언보다 더 오래 갑니다. 그러니 오늘은 한 가지를 해 보십시오. 자식 생각이 올라올 때 바로 연락하고 싶어는 그 순간에 10초만 멈춰 보십시오. 그리고 스스로에게 말해 보세요. 지금은 때를 기다리는 시간이다. 내가 할 일은 불안을 키우는 것이 아니라 내 마음의 뿌리를 지키는 것이다. 그 10초가 쌓이면 마음에 근육이 생깁니다. 기다림은 가만이 아니라 내면을 달련하는 일입니다.

저는 인생에서 억지라는 단어가 붙는 순간 대게 결과가 오래 가지 못한다는 것을 많이 보았습니다. 억지로 웃는 것, 억지로 관계를 이어가는 것, 억지로 성취를 만들어내는 것, 겉으로는 그럴 듯해 보여도 속은 금방 텅비어버립니다. 왜 그럴까요? 사람은 자연스러운 흐름에서 벗어나면 그 대가를 반드시 치르게 되기 때문입니다. 특히 인생의 후반전에는 그 대가가 더 크게 느껴집니다. 젊을 때는 몸도 마음도 버틸 힘이 있어 억지로도 어느 정도 밀어붙일 수 있지만 나이가 들수록 억지는 피로가 되고 피로는 불안이 되고 불안은 결국 관계까지 흔들어놓습니다.

제가 오늘 드리고 싶은 이야기는 아주 단순합니다. 억지로 피운 꽃은 향기가 약하다.이 말은 단지 시적인 표현이 아닙니다. 삶의 원리를 말합니다. 우리는 종종 결과를 서두릅니다. 내가 원하는 시기에 내가 원하는 모양으로 일이 눈앞에 나타나야 한다고 믿습니다. 특히 자녀의 문제, 돈 문제, 인간관계 문제는 더 그렇습니다. 자녀의 결혼이 늦어지면 부모는 마음이 타 들어갑니다. 좋은 조건이면 되는 거 아니냐 하고 밀어붙이기도 합니다. 내 건강이 예전 같지 않다고 느끼면 사람들은 갑자기 무리한 운동이나 과도한 보약에 의지하기도 합니다. 또 어떤 분들은 내가 아직 괜찮다는 걸 보여주고 싶어서 가진 것 이상의 화려함으로 자신을 꾸미기도 합니다.

그런데 저는 그때마다 조심스럽게 묻습니다. 지금 하시는 그 행동이 정말 당신을 살리기 위한 것입니까? 아니면 불안을 추기 위한 것입니까? 불안을 감추기 위한 노력은 잠깐는 효과가 있는 것처럼 보여도 결국 더 큰 공허를 남깁니다. 심리학에서는 이런 상태를 가짜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다인의 시선에 맞추어 세상의 기준에 맞추어 억지로 만들어낸 삶은 시간이 흐를수록 나 자신을 더 지치게 합니다. 왜냐하면은 그 삶은 내 마음에서 나오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옛날에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한 부유한 상인이 있었는데 자신의 정원에 있는 매화가 한 겨울 추위 속에서도 가장 먼저 꽃을 피우기를 바랐습니다. 그래서 하인들을 시켜 화로를 갖다 놓고 따뜻한 물을 뿌려 땅을 데웠습니다. 욕심대로 매화는 다른 나무보다 훨씬 일찍 꽃을 피웠지요.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꽃에는 매와 특유에 고고한 향기가 없었습니다. 게다가 비정상적인 열기에 취한 꽃잎은 금세 시들어 떨어졌고 그 나무는 이듬해에는 다시 꽃을 피우지 못했다고 합니다. 저는이 이야기를들을 때마다 우리 삶의 언어 장면이 겹쳐 보입니다. 인생이란 결국 향기로 남습니다. 그런데 그 향기는 속도를 올린다고 생기지 않습니다. 오히려 추위를 견디고 시간을 통과하고 마음이 단단해지는 과정을 지나야 비로소 생깁니다.

자식도 그렇습니다. 부모가 조급한 마음으로 열기를 더하면 겉으로는 빨리 움직이는 듯 보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선택이 아이의 마음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면 그 결론은 오래가지 못할 가능성이 큽니다. 관계도 마찬가지입니다. 억지로 친절을 짜내고 억지로 웃음을 붙이고 억지로 좋은 사람 역할을 해내면 어느 순간부터는 나 자신이 그 연기에 지쳐버립니다.

저는 인생의 후반전에서 가장 필요한 기술이 더 하는 것이 아니라 덜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덜 간섭하고 덜 비교하고 덜 조급해하고 덜 꾸미는 것 그 덜함이 비어 있는 자리를 만들면 그 자리에 진짜가 들어옵니다. 진짜 대화, 진짜 관계, 진짜 평온이 들어옵니다. 그리고 신기하게도 사람은 진짜가 생길 때부터 달라집니다. 표정이 달라지고 말투가 달라지고 주변 사람들이 나를 대하는 방식도 달라집니다. 억지로 얻어낸 결과는 사람을 피곤하게 하지만 자연스럽게 익어간 결과는 사람을 편안하게 합니다.

이때 중요한 태도가 하나 있습니다. 묵묵함입니다. 묵묵함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게 아닙니다. 때가 올 때까지 내가 해야 할 기본을 지키며 흔들리지 않는 것입니다. 자녀가 스스로의 길을 찾을 수 있도록 믿고 기다려 주는 것. 내 몸을 돌보되 과시하지 않는 것. 내 생활을 정돈하되 남에게 보여주기 위해 꾸미지 않는 것. 이런 묵함은 소리가 작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큰 힘이 됩니다. 저는 오늘 이렇게 정리하고 싶습니다. 서두름은 결과를 앞당기는 것 같지만 사실은 향기를 잃게 한다. 그러니 지금 무엇인가를 억지로 피우려 하고 있다면 한 걸음만 물러놔 보십시오. 꽃은 때가 되면 피고 향기는 겨울을 견딘 뒤에 생깁니다. 그리고 그 향기는 반드시 당신의 삶에도 돌아옵니다.

저는 인생에서 가장 큰 착각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망설이지 않고 이렇게 답하겠습니다. 내가 세상을 통제할 수 있다는 생각입니다. 젊을 때는 그 착각이 어느 정도 우리를 움직이게 합니다. 열심히 노력하면 결과가 온다고 믿고 계획을 세우면 인생이 계획대로 흘러갈 것 같지요. 그런데 인생의 후반전에 들어서면 우리는 점점 더 분명히 보게 됩니다. 세상은 내 의지대로 움직이지 않는다는 사실을요.

그럼에도 사람은 쉽게 내려놓지 못합니다. 내려놓는 순간 불안이 밀려오기 때문입니다. 삶을 바다에 비유해 봅시다. 우리는 바다 위에 떠 있는 작은 배 한척과 같습니다. 그런데도 어느 순간부터 우리는 착각합니다. 내가 파도를 만들고 내가 파도를 멈출 수 있다고요. 그래서 파도가 오면 그 파도와 싸우려 듭니다. 자식의 일이 꼬이면 밤을 세워 해결책을 만들고 사람에게 상처를 받으면 상대를 바꾸려 애쓰고 돈이 불안하면 어떻게든 수단을 찾아 억지로 흐름을 뒤집으려 합니다.

하지만 경험이 말해 줍니다. 파도는 내가 만드는 것이 아닙니다. 파도는 바람이 만들고 조수의 흐름이 만들고 우리가 통제할 수 없는 자연의 섭리가 만듭니다. 노련한 어부를 떠올려 보십시오. 폭풍우가 몰아칠 때 그들은 바다를 향해 소리를 지르지 않습니다. 파도를 멈춰 달라고 빌지 않습니다. 그저 묵묵히 도을 내리고 배머리를 흐름에 맞추며 폭풍이 지나갈 때까지 버팁니다. 바다에서 중요한 것은 파도를 없애는 힘이 아니라 파도를 타고 넘는 지혜입니다. 파도와 싸우는 배는 부서지지만 파도의 흐름을 잃고 몸을 맡기는 배는 수면 위로 다시 떠오릅니다.

저는 자식 문제에서 특히이 원리가 뚜렷하다고 봅니다. 자식이 겪는 고통의 파도는 부모가 대신 없애 줄 수 없습니다. 부모로서 마음이 아프지요. 내가 대신 맞아주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게 정상입니다. 하지만 부모가 조급하게 뛰어들어 아이의 파도를 없애려 하면 오히려 물결은 더 거칠러지고 배는 뒤집힐 위험이 커집니다. 이때 부모가 할 수 있는 가장 큰 역할은 해결사가 아니라 등대입니다. 비바람이 쳐도 그 자리에서 흔들리지 않는 등대. 그 존재만으로 자식은 다시 방향을 잡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질문이 하나 있습니다. 그럼 나는 아무것도 하지 말아야 하나요? 아닙니다. 맡긴다는 말은 무책임이 아닙니다. 맡긴다는 것은 내가 통제할 수 없는 것과 통제할 수 있는 것을 분명히 구분하는 일입니다. 파도를 멈추는 건 내 몫이 아니지만 내 마음의 중심을 지키는 것은 내 몫입니다. 내가 조급함에 휘둘리지 않는 것, 불안을 키우는 말을 줄이는 것, 상대를 흔드는 행동을 멈추는 것, 그리고 지금 할 수 있는 최소한의 도움만 조용히 제공하는 것. 이게 성숙한 태도입니다. 인생의 후반전은 파도를 없애는 시기가 아니라 파도를 대하는 태도를 바꾸는 시기입니다. 파도가 높으면 높은 대로 낮으면 낮은 대로 그 흐름에 내 삶을 맡겨보는 연습을 할 때 우리는 비로소 파도 너머의 수평선을 봅니다. 그리고 놀랍게도 그때부터 마음이 편해집니다. 세상이 달라져서가 아니라 내가 싸움을 멈추고 항해를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저는 인생의 후반전에 가장 필요한 능력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행동력보다 먼저 멈출 줄 아는 힘이라고 말합니다. 우리는 평생 달려왔습니다. 남들보다 한 걸음이라도 빨라야 한다는 강박 속에서 쉬는 시간을 죄책감으로 바꾸며 살아왔지요.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렇게 서둘러 얻은 것들이 우리 영혼을 채워 주었느냐고 묻는다면 대답이 쉽지 않습니다. 오히려 서두르느라 놓친 장면들이 가슴속에 공허로 남는 경우가 많습니다. 자식이 어릴적 내밀던 작은 손을 바쁘다는 이유로 뿌리친 기억, 배우자가 건낸 짧은 한 마디를 피곤하다는 이유로 흘려보낸 순간들. 그때는 몰랐는데 나이가 들수록 그런 장면이 마음을 더 아프게 합니다.

그래서 저는 멈춤을 단순한 휴식으로 보지 않습니다. 멈춤은 나약함이 아니라 보이지 않던 진실을 마주하는 용기입니다. 흙탕물이 담긴 그릇을 생각해 보십시오. 물을 맑게 만들겠다고 계속 흔들면 어떻게 됩니까? 더 탁해질 뿐입니다. 하지만 그릇을 조용히 내려놓고 시간이 흐르게 하면 앙금은 바닥으로 가라앉고 맑은 물이 위로 떠오릅니다. 마음도 같습니다.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여기저기 뛰어다니며 애를 쓸수록 오해의 먼지는 더 자욱해지고 진실은 더 흐려집니다. 반대로 잠깐 멈추면 그동안 보이지 않던 것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감정이 어디에서 시작됐는지 내가 무엇을 두려워하는지 내가 정말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말입니다.

옛날에 길을 잃은 나그네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는 해가지기 전에 숲을 빠져나가야 한다는 조급함에 이리저리 뛰었습니다. 하지만 뛰면 뛸수록 더 깊은 숲으로 들어갔고 결국 지쳐 쓰러졌지요. 절망 속에 가만히 누워 하늘을 보았을 때 그제야 나뭇잎 사이로 비치는 별을 발견하고 방향을 알게 되었다고 합니다. 저는이 이야기가 삶의 본질을 정확히 보여 준다고 생각합니다. 멈춰야 보입니다. 뛰고 있을 때는 오로지 불안만 보이고 숨이 가빠지면 시야가 좁아지기 때문입니다.

인생의 후반전에서 멈춤이 중요한 이유는 또 있습니다. 멈춤은 관계를 살리는 힘이 되기도 합니다. 자식과의 사이가 어긋났을 때 우리는 말로 해결하려고 합니다. 설명하고 설득하고 때로는 훈계합니다. 그런데 많은 경우 자식이 필요한 것은 말이 아니라 부모의 안정감입니다. 부모가 흥분하면 자식도 더 다치고 부모가 조급하면 자식도 더 도망칩니다. 반대로 부모가 한 발 물러서서 숨을 고르고 말보다 태도로 나는 너를 믿는다는 메시지를 주면 자식의 마음이 다시 열릴 여지가 생깁니다.

그러니 오늘 제가 드리고 싶은 실천은 이겁니다. 마음이 복잡해질 때 무언가를 당장 해결하고 싶어질 때 먼저 3분만 멈춰보십시오. 휴대폰을 내려놓고 어깨를 풀고 숨을 깊게 세 번 쉬는 겁니다. 그리고 스스로에게 이렇게 말해 보세요. 지금은 흔들어서 맑아질 문제가 아니다. 내려놓아야 맑아진다. 이분이 반복되면 마음은 점점 더 단단해집니다. 멈춤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이 아니라 다음을 위해 힘을 모으는 시간입니다. 그리고 그 멈춤 속에서 당신은 생각보다 훨씬 더 깊은 평온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저는 운이란 무엇인가를 오래 생각해 왔습니다. 많은 분들이 나는 왜 이렇게 운이 없을까요라고 말씀하시지요. 남들은 기회가 쉽게 오는 것 같은데 나는 늘 놓치는 것 같고 남의 집은 술 풀리는데 우리 집은 왜 더디기만 한지 하늘을 원망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제가 살아보니 운은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우연이라기보다 담길 준비가 된 그릇에 머무는 손님에 가깝습니다. 그릇이 흔들리면 운은 머물지 못하고 그릇에 구멍이나 있으면 아무리 복이 쏟아져도 다 세어 나갑니다.

우리가 인생의 후반전에서 자주 겪는 갈등도 사실은이 그릇 문제에서 시작됩니다. 마음의 그릇은 종이컵처럼 작고 위태로운데 그 안에 바다 같은 큰 복을 담으려 하니 넘치고 뒤집히는 겁니다. 자식에게 과도한 기대를 거는 것, 재물이나 성과에 지나치게 집착하는 것, 타인의 인정에 매달리는 것 이것들은 겉으로는 욕심처럼 보이지만 더 깊이 들어가면 불안의 증거인 경우가 많습니다. 마음이 비어 있으니 무가로 채우지 않으면 견딜 수 없는 상태가 되는 것이지요.

옛날에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평생 가난하게 산 사람이 매일 산에 올라가 큰 복을 내려 달라고 빌었습니다. 어느날 산실령이 나타나 황금비를 내려주겠다 받아보아라고 했지요. 그는 신이 나서 집에서 가장 큰 항아리를 들고 나왔습니다. 그런데 그 항아리는 곳곳에 금이가 있었고 바닥에는 구멍까지 뚫려 있었습니다. 하늘에서 황금비가 쏟아졌지만 항아리에 남는 것은 없었습니다. 그는 세워나가는 황금을 붙잡으려다 몸만 다치고 말았지요. 저는이 이야기가 단순한 교훈담이 아니라 삶의 구조를 보여 준다고 생각합니다. 복을 구하기 전에 내 그릇이 온전한지 먼저 살펴야 합니다.

그릇에 생기는 구멍은 무엇일까요? 저는 대표적으로네 가지를 봅니다. 첫째는 원망입니다. 왜 나만 이래라는 마음이 깊어지면 그 순간 그릇의 바닥이 스스로 약해집니다. 둘째는 미움입니다. 미움은 상대를 벌주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내 마음을 먼저 썩게 합니다. 셋째는 질투와 비교입니다. 남의 꽃을 보며 내 꽃이 늦다고 불안해지는 순간 그릇은 더 얕아집니다. 넷째는 집착입니다. 반드시 이렇게 되어야 한다는 고집이 강할수록 그릇은 딱딱해지고 유연함을 잃습니다. 운은 유연한 그릇에 머물지 굳어버린 그릇에 오래 머물지 못합니다.

그렇다면 그릇을 단단하게 메우는 가장 빠른 방법은 무엇일까요? 저는 의외로 거창한 방법이 아니라고 봅니다. 감사입니다. 오늘 먹은 따뜻한 밥기, 손주의 웃음, 내 몸이 아직 숨쉬고 있다는 사실 창문 너머로 들어오는 햇빛 같은 작은 것들. 이런 것에 진심으로 감사할 때 마음의 바닥은 조금씩 두꺼워집니다. 감사는 단순한 기분이 아니라 마음의 구조를 바꾸는 힘입니다. 감사할 수 있는 사람은 쉽게 무너지지 않습니다. 그리고 이런 사람에게는 이상하게도 필요한 인연과 기회가 더 자주 붙습니다. 왜냐하면 그 사람의 마음이 넉넉해져서 들어오는 것을 받아 준비가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또 하나를 강조하고 싶습니다. 남이 잘되는 것을 축복할 수 있을 때 그릇은 이미 커져 있습니다. 그 순간부터 운은 찾아다니는 것이 아니라 머무르는 것이 됩니다. 꽃이 향기를 품으면 나비가 모여들듯 마음이 맑고 넉넉해지면 복은 부르지 않아도 찾아옵니다. 오늘은 욕심을 더 채우기보다 그릇의 구멍을 먼저 살펴보는 날이었으면 합니다. 원망을 줄이고 비교를 끊고 집착을 내려놓고 작은 감사로 바을 보십시오. 그때부터 당신의 삶은 겉으로 드라마틱하게 바뀌지 않아도 내부에서 조용히 달라지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그 조용한 변화가 결국 가장 단단한 행운의 길이 됩니다.

저는 사람을 오래 관찰하면서 결국 인생을 가르는 능력은 지식이나 재능보다 불확실함을 견디는 힘이라고 느끼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불확실한 상태를 참기 어려워합니다. 자식의 미래가 불안할 때, 돈의 흐름이 막힐 때, 관계가 애매해질 때, 마음은 견딜 수 없는 공백을 느낍니다. 그래서 무엇이든 빨리 확정하고 싶어하지요. 결론을 내리고 싶고 답을 듣고 싶고 움직이고 싶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 순간이 위험합니다. 불안을 달리기 위해 서두은 결정은 되게 더 큰 불안을 낳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종종 착각합니다. 무언가를 하고 있으면 안전하다고요. 하지만 인생에서 정말 중요한 순간에는 오히려 함부로 움직이지 않는 것이 실력입니다. 저는 이것을 비우고 기다리는 능력이라고 부르고 싶습니다. 기다림은 멈춰 있는 것이 아닙니다. 가장 완벽한 한 번을 위해 에너지를 응축하는 과정입니다. 활소를 배우는 제자 이야기를 떠올려 보십시오. 제자는 관역을 향해 빨리 쏘고 싶어 하지만 스승은 활을 당긴 채 그대로서 있게 합니다. 팔이 절이고 땀이 쏟아져도 아직 때가 아니다라고 말하지요. 바람이 잦아들고 마음이 흔들리지 않는 순간이 왔을 때 스승이 화살을 놓게 하면 그때 비로소발백중입니다.

저는이 이야기를 인생의 기술로 옮겨보고 싶습니다. 기다림은 무능이 아니라 고도의 집중입니다. 특히 인생의 후반전에서는이 능력이 더 중요해집니다. 왜냐하면 조급함이 만들어내는 실수가 젊을 때보다 더 크게 돌아오기 때문입니다. 자식이 내 뜻대로 움직이지 않을 때 당장 전화를 걸어 호통치고 싶은 마음을 누르는 것. 사업이 뜻대로 풀리지 않을 때 사람을 찾아다니며 구걸하지 않는 것. 관계가 틀어졌을 때 즉각 결론을 내리지 않고 한 템포 쉬는 것. 이것이 바로 성숙한 사람이 발휘하는 힘입니다. 심리학에서는 이런 능력을 좌절를 견디는 힘, 불확실성에 대한 인내라고도 부릅니다. 결과가 불확실해도 초조해 하지 않고 마음의 평온을 유지하는 능력. 저는 이것이 노년의 가장 강력한 무기라고 봅니다.

그런데 왜 우리는 기다리지 못할까요? 이유는 간단합니다.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내 마음속 불안을 견디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무엇이라도 해야 마음이 편할 것 같아서 움직입니다. 하지만 그 움직임이 때로는 설이 덜 녹은 땅에 씨앗을 억지로 심는 행위가 되기도 합니다. 결국 씨앗은 상하고 땅도 상하고 마음도 더 지치게 합니다. 그러니 움직이고 싶은 충동이 올라올 때 저는 먼저 이렇게 묻기를 권합니다.이 행동은 문제를 해결하는가 아니면 내 불안을 달내는가

비움은 같은 원리입니다. 내 마음속 반드시 이렇게 되어야 한다는 고집. 예전에는 내가 이랬는데 하는 과거의 영광. 남들이 나를 어떻게 볼까 하는 시선의 집착을 비워내지 않으면 새로운 지혜가 들어올 공간이 없습니다. 꽉찬 컵에 아무리 좋은 차를 부어도 넘쳐 흐르듯 마음이 고집으로 꽉 차 있으면 어떤 기회도 담기 어렵습니다. 비움은 손해가 아니라 수용의 능력입니다. 그리고 수용은 인생의 흐름을 이해하는 사람에게만 가능합니다.

저는 기다림을 강태공의 마음에 비유하고 싶습니다. 억지로 낚싯대를 휘두른다고 고기가 잡히지 않습니다. 고요한찌를 바라보며 물결의 변화를 읽고 때가 왔을 때만 움직일 줄 아는 사람이 결국 대어를 낚습니다. 인생도 그렇습니다. 일이 막힐 때는 더 많이 뛰기보다 흐름을 다시 읽어야 합니다. 사람의 마음이 다쳤다면 더 설득하기보다 내 태도의 온도를 낮춰야 합니다. 돈의 길이 막혔다면 무리하게 벌기보다 세는 구멍부터 막아야 합니다.

오늘은 한 가지 실천을 제안하겠습니다. 하루에 단 한 번 불안이 올라오는 순간에 지금은 기다림이 실력이다라고 속으로 말해 보십시오. 그리고 10초만 멈추십시오. 그 10초가 쌓이면 당신은 예전보다 훨씬 덜 흔들리는 사람이 됩니다. 인생의 후반전은 빨리 달리는 사람이이기는 경주가 아닙니다. 흐름을 읽고 비우고 기다릴 줄 아는 사람이 결국 가장 편안하게 목적지에 닿습니다.

저는 인생을 오래 살수록 만사는 저절로 된다는 말을 더 현실적으로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젊을 때는 그 말을 들으면 어딘가 무책임하게 들리기도 했습니다. 노력하지 말라는 말인가? 그럼 인생은 운에 맡기라는 건가? 하지만 지금은 다르게 봅니다. 만사가 저절로 된다는 말은 아무것도 하지 말라는 뜻이 아니라 내 몫을 다한 뒤에는 흐름을 믿을 줄 알아야 한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그 믿음이야말로 인생의 후반전에서 가장 큰 지혜입니다.

우리는 평생 내가 움직여야 세상이 돌아간다는 책임감 속에 살았습니다. 자식이 잘못될까 봐, 노우가 불안할까 봐, 관계에서 소해될까 봐, 마음의 밧줄을 팽팽하게 당기며 버텼습니다. 그런데 한번 생각해 봅시다. 밤이 지나면 누가 시키지 않아도 해가 뜹니다. 계절이 바뀌면 누가 제척하지 않아도 꽃이 피고 열매가 맺지요.이 이 거대한 생명의 흐름 속에서 내가 모든 것을 조절해야 한다는 생각은 사실 오만에 가까운 착각일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그 착각을 놓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놓는 순간 내가 무너지면 어떡하지라는 두려움이 밀려오기 때문입니다. 저는 이런 두려움이 깊어질수록 사람은 더 조급해지고 더 무리한 결정을 내린다고 봅니다. 불안하니 뭐라도 해야 마음이 편할 것 같아서 서둘러 사람을 찾고 서둘러 말을 하고 서둘러 결론을 내립니다. 하지만 삶에서 많은 일은 힘을 준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 물이 들어와야 배가 뜨는 것처럼 때가 맞아야 움직입니다. 물이 들어오지 않았는데 억지로 배를 밀어내면 배 밑바닥만 상하고 사람의 기력만 소진됩니다. 반대로 물대를 기다리면 배는 어느 순간 가볍게 떠올라 자연스럽게 흘러갑니다.

저는이 원리가 자식의 마음에도 인간관계에도 돈의 흐름에도 그대로 적용된다고 생각합니다. 자식의 마음이 열리는 때가 있고 막혔던 길이 트이는 때가 있고 병든 몸과 마음이 스스로 회복되는 때가 있습니다. 그 시기는 인간의 짧은 계산으로 완전히 예측할 수 없는 영역입니다. 그래서 때가 되지 않았는데 억지로 이루려 하면 결과는 모래성처럼 허망하게 무너질 때가 많습니다.

저는 우리가 겪어온 수많은 시련이 사실은 더 세게 밀어붙이라는 신호가 아니라 힘을 빼고 방향을 다시 보라는 신호였을 가능성이 크다고 봅니다. 그렇다면 내 목은 무엇일까요? 저는 세 가지로 정리하고 싶습니다.

첫째, 오늘 할 수 있는 작은 일에 성실한 것입니다. 큰 성취를 조급하게 만들기보다 내 자리에서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책임을 다하는 것.

둘째, 관계를 억지로 끌어당기지 않는 것입니다. 설과 통제가 아니라 태도와 일관성으로 신뢰를 만드는 것.

셋째, 마음의 중심을 지키는 것입니다. 불안이 올라올 때마다 바깥을 흔들기보다 내 안에서 불안을 다루는 연습을 하는 것.이 이 세 가지가 갖춰지면 나머지는 자연스러운 흐름 속에서 오기도 합니다.

저는 노년의 삶을 채우는 시간이 아니라 비워냄으로써 완성되는 시간이라고 봅니다. 비우면 약해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강해집니다. 집착을 비우면 마음이 가벼워지고 비교를 비우면 자존이 생기고 원망을 비우면 에너지가 돌아옵니다. 그 에너지가 다시 삶의 온기를 만들고 그 온기가 사람을 부릅니다. 우리가 애어서 인연을 끌어 모으는 것이 아니라 내 삶에서 은은한 향기가 나기 시작하면 인연은 스스로 다가옵니다. 그러니 오늘은 이렇게 정리해도 좋겠습니다. 내가 해야 할 것은 세상을 붙드는 일이 아니라 나를 지키는 일이다. 손을 놓는다고 세상이 무너지지 않습니다. 오히려 손을 넣을 때 그동안 보지 못했던 큰 흐름이 나를 받쳐 주기 시작합니다. 힘을 빼고도 흔들리지 않는 사람이 되면 인생은 생각보다 덜 불안하고 훨씬 더 단단해집니다. 그리고 그 단단함 속에서 만사는 정말로 저절로 이루어지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옵니다.

저는 인생의 마지막 구간에 가까워질수록 오히려 삶의 진짜 목적을 더 또렷하게 보게 된다고 생각합니다. 젊을 때는 목표가 분명했습니다. 성공해야 하고 돈을 벌어야 하고 남들처럼 살아야 하고 뒤쳐지면 안 된다는 압박 속에서 달려왔지요.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우리는 깨닫습니다. 그렇게 달리기만 해서 얻은 것들 가운데 내 마음을 진짜로 따뜻하게 채워 준 것은 많지 않았다는 사실을요. 오히려 가장 깊은 평온은 성취의 순간보다도 힘을 뺀 순간에 찾아오곤 했습니다.

저는 이것을 비움의 지혜라고 부르고 싶습니다. 비움은 포기가 아닙니다. 비움은 절망이 아닙니다. 비움은 오히려 인생의 후반전이 허락하는 가장 높은 완성입니다. 왜냐하면 비우는 순간 우리는 처음으로 삶의 흐름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기 시작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인정이 생기면 마음이 싸움을 멈춥니다. 싸움이 멈추면 비로소 평온이 들어옵니다.

우리는 많이 착각합니다. 내가 애써야만 내 인생이 유지된다고요. 서 자식이 흔들리면 내가 더 개입해야 한다고 믿고 돈이 불안하면 내가 더 움켜지어야 한다고 믿고 관계가 멀어지면 내가 더 붙잡아야 한다고 믿습니다. 그런데 삶은 종종 정반대로 움직입니다. 더 붙잡을수록 더 멀어지고 더 움켜수록 더 세어나가며 더 애쓸수록 더 고단해집니다. 그러니 인생의 후반전에서 우리가 배워야 할 것은 더 하는 법이 아니라 덜 하는 법입니다. 덜 간섭하고 덜 비교하고 덜 조급해하고 덜 꾸미는 법 말입니다.

저는 특히 자식 문제에서이 사실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부모의 사랑은 귀합니다. 하지만 사랑이 불안과 결합하면 사랑은 통제가 됩니다. 자식의 인생을 대신 설계해 주려는 마음, 자식이 내 기대에 맞춰 살아주어야 한다는 생각, 남들보다 늦으면 안 된다는 조급함. 이런 것들은 모두 걱정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되지만 실제로는 자식의 호흡을 좁게 만들 수 있습니다. 부모가 해야 할 일은 자식의 파도를 없애 주는 것이 아니라 그 파도 속에서도 다시 방향을 잡을 수 있도록 흔들리지 않는 등대가 되는 것입니다. 등대는 바다를 통제하지 않습니다. 다만 길을 잃지 않도록 빛을 비춥니다. 저는 그 태도가 노년의 가장 아름다운 사랑이라고 봅니다.

그리고 자기 자신에게도 같은 원리가 적용됩니다. 과거의 영광을 되찾으려 무리하게 애쓰기보다 지금의 나를 있는 그대로 수용하고 현재의 위치에서 할 수 있는 작은 일에 정성을 다하는 것. 이것이 진짜 성숙입니다. 우리는 나답게 산다는 말을 많이 하지만 사실 나답게 산다는 것은 화려하게 사는 것이 아니라 내 속도와 내 계절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꽃은 다 같은 날 피지 않습니다. 어떤 꽃은 늦게 피지만 늦게 피는 꽃이 더 깊은 향기를 품을 때도 많습니다. 그러니 남의 정원만 보며 내 삶을 재단하지 마십시오. 내 꽃은 내 계절에 피어야 가장 아름답습니다.

이제 마지막으로 제가 실천으로 정리해 드리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아주 어렵지 않습니다. 하지만 꾸준히 하면 삶의 질서를 바꿉니다.

첫째, 하루에 한 번은 멈춤의 시간을 가지십시오. 3분이면 충분합니다. 아무것도 해결하려 하지 말고 숨을 깊게 쉬며 마음을 내려놓는 연습을 하십시오. 흙탕물은 흔들수록 탁해지고 내려놓을수록 맑아집니다.

둘째, 비교를 줄이고 감사를 늘리십시오. 감사는 단순한 기분이 아니라 마음의 그릇을 단단하게 만드는 기술입니다. 오늘의 밥 한끼, 내 몸이 아직 움직인다는 사실 누군가의 작은 인사, 창문 넘어햇빛, 작은 감사가 쌓이면 원망과 불안이 줄고 그릇이 넓어집니다. 그릇이 넓어지면 운과 인연이 머무를 공간이 생깁니다.

셋째, 자식과 관계에서 말을 줄이고 태도를 지키십시오. 조언은 필요할 때만 짧게 대신 부모의 안정감, 일관된 따뜻함, 흔들리지 않는 믿음을 보여주십시오. 사람은 말로 설득되기보다 분위기와 태도에 의해 마음이 열립니다.

넷째, 지금 당장이라는 단어를 경계하십시오. 급할수록 한 템포 늦추어야 합니다. 불안이 결정을 낳으면 그 결정은 다시 불안을 기웁니다. 반대로 기다림이 결정을 낳으면 그 결정은 오래 갑니다. 기다림은 무능이 아니라 실력입니다.

이렇게 살다 보면은 어느 순간 삶이 우리에게 조용히 말해 주는 것을 듣게 됩니다. 너는 이미 충분히 잘 살아왔다. 지금은 채우는 시간이 아니라 비워서 완성하는 시간이다. 저는 노년을 노울에 비유하고 싶습니다. 노지는 것을 슬퍼하지 마십시오. 놀진 하늘에는 별이 뒀고 돼지는 고요한 안식을 얻습니다. 당신의 남은 여정도 그렇게 평온하고 은은하게 빛날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저는이 문장으로 끝맺고 싶습니다. 너무 애쓰지 마십시오. 모든 것은 때가 되면 저절로 이루어집니다. 당신이 손을 놓는다고 세상이 무너지지 않습니다. 오히려 당신이 손을 놓을 때 세상에 큰 흐름이 당신을 바치기 시작합니다. 그 흐름 속에서 당신의 마음은 점점 편안해질 것입니다. 그리고 그 편안함이야말로 인생이 우리에게 남기는 가장 값진 선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