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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용은 사람을 이해하는 데서 시작된다.
기자 회견장, 1960년대 초 갑다. 기자 한 명이 손을 들었다. "회장님, 정규 교육도 제대로 받지 않으셨다면서요. 그런 분이 정말 대기업을 이끌 수 있습니까?" 순간 방안이 얼어붙었다. 그때 이병철 회장은 잠시 눈을 감았다. 그리고 천천히 대답했다. "그래서 할 수 있습니다. 나는 사람의 마음을 압니다." 그 짧은 대답이 기자실을 다시 술렁이게 했다.
그날 밤 그는 어머니가 해주던 말을 떠올렸다고 한다. "공부는 부족해도 사람 마음은 알아야 한다. 그게 신용의 시작이다." 그는 손때에 묻은 장부를 펴고 장사를 배웠다. 물건값보다 더 어렵던 건 사람값이었다. 돈은 계산으로 맞출 수 있지만 마음은 계산이 안 된다. 그래서 그는 숫자보다 얼굴을 먼저 봤다. 손님이 왜 웃는지, 왜 망설이는지 그 이유를 읽는 데서 장사는 시작된다고 믿었다. 그 믿음이 훗날 삼성의 뿌리가 되었다. 신용이란 결국 사람을 이해하는 능력이었으니까.
그 시절 삼성은 전국의 협력 업체와 운송팀이 얽힌 큰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었다. 공장마다 보고서가 산더미처럼 쌓였고 문제는 늘 사람에게서 시작됐다. 이병철 회장은 매일 새벽 6시 출근해 장부를 확인하고 세근 전에는 현장을 돌며 직원들의 얼굴을 살폈다. 그는 숫자보다 눈빛을 먼저 보는 경영자였다.
그때 두 관리자가 눈에 들어왔다. 힘 과장 그리고 박 과장. 힘 과장은 늘 밝았다. "네, 알겠습니다. 걱정 마십시오." 늘 미소, 늘 "예스". 누가 부탁을 해도 일이 얼마나 쌓여도 그는 거절을 못했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를 좋은 사람이라 불렀다. 반면 박 과장은 달랐다. "이건 이번 주 우선순위가 아닙니다. 그건 우리 담당이 아닙니다." 말투는 단호했고 표정은 무심했다. 주변에서는 수군거렸다. "저 사람은 윗사람한테도 저렇게 말해? 무섭다."
하지만 회장은 두 사람의 행동을 조용히 지켜봤다. 그는 하루하루 기록을 남겼다. 누가 회사의 신뢰를 지키는 사람인지, 누가 사람 좋은 척만 하는지. 납기일은 12월 1일, 지연은 곧 손실이었다. 회장은 김 과장에게 맡겼다. "김 과장, 이건 회사의 신용이 달린 일이네. 반드시 지켜야 하네." 그는 당당히 말했다. "예, 회장님. 반드시 해내겠습니다." 하지만 하루 전 김 과장은 초췌한 얼굴로 회장실을 찾았다. "회장님, 아직 절반도 못 끝냈습니다." 다이어리를 보니 일정이 빽빽했다. 다른 부서 도와주고, 품질팀 회의 참석하고, 현장 지원까지. 모두 남의 일이었다. 결국 납기는 지켜지지 않았다. 신문에는 이렇게 실렸다. "삼성 연말 납기 차질."
그날 밤 회장은 조용히 말했다. "김 과장, 성실은 좋은데 방향이 틀리면 재앙이 된다네. 성실은 신뢰를 보장하지 않아." 한편 박 과장은 품질 기준 개정안을 맡았다. 그 역시 요청이 쏟아졌지만 단호히 말했다. "이달 15일까지는 이 안건에만 집중하겠습니다." 불만이 터졌다. "협조도 없고 융통성도 없네." 하지만 그는 흔들리지 않았다. 결과는 놀라웠다. 3일 일찍 완성된 보고서 한 장이 회사의 품질 체계를 바꾸었다. 분량이 12%에서 4%로 떨어졌다.
회의석상에서 이병철 회장이 말했다. "모든 일을 다 받아주는 사람은 결국 아무 일도 끝내지 못한다. 거절할 줄 모르는 사람은 책임질 줄도 모른다." 그 한마디가 조직 전체를 바꿨다. 사람들은 묻는다. "그럼 좋은 사람은 나쁜 겁니까?" 아니다. 좋은 사람은 필요하다. 하지만 좋은 사람만으로는 세상을 이끌 수 없다. 회장은 이렇게 말했다. "좋은 사람은 호감을 얻고, 신뢰받는 사람은 미래를 만든다." 그때 회장실 벽시계가 천천히 울렸다. 그는 미소를 지으며 일어섰다. "오늘도 사람을 이해하는 하루였으면 좋겠군."
그날 이후 그는 신용을 사람의 마음으로 봤다. 그리고 스스로에게 물었다. "사람을 이해한다는 건 내 중심을 세운다는 뜻일까?"
이제 다음 이야기로 넘어간다. 그가 평생 지켜온 중심, 흔들리지 않는 세 가지 축에 대한 이야기다.
2. 이 중심축을 세워라. 남의 눈치를 보지 마라.
전쟁이 끝난 뒤 한국은 말 그대로 모든 것이 뒤섞여 있었다. 길가엔 먼지, 시장엔 소문, 회사엔 불안. 그때 삼성도 예외가 아니었다. 임원 회의가 열렸다. "이제 어디로 가야 합니까?" 누군가는 말했다. "금융 쪽으로 가야 합니다. 돈이 돌아야 기업이 삽니다." 다른 사람은 손을 들었다. "아닙니다. 수출로 방향을 들어야 합니다." 또 한 사람은 말했다. "전자 산업은 시기상조입니다."
그때 회의실 공기는 이상했다. 모두 말은 하는데 말에 힘이 없었다. 누구도 자기 생각으로 말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서로의 표정을 보며 눈치를 보며 마치 누가 먼저 고개를 끄덕이는지 기다리는 것 같았다. 그 모습을 보던 이병철 회장은 천천히 일어섰다. "나는 너희의 눈빛에서 확신을 보지 못했다." 그의 목소리는 낮았지만 방안을 울렸다. "어지를 을고려는 사람에게 미래를 맡 수는 없다."
그날 이후 그는 임원들에게 단 한 가지를 요구했다. "자기 생각을 말하라." 그가 말한 축이란 단순한 고집이 아니었다. 축이란 어떤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을 세 가지다. 그 세 가지는 분명했다. 품질, 신용, 인재. 이 세 가지가 무너지면 기업도 함께 무너진다고 믿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시험이 찾아왔다. 수원 공장의 한 임원이 제안서를 들고 왔다. "회장님, 원단 품질을 조금만 낮추면 원가를 15% 절감할 수 있습니다. 이익이 두 배로 늘어날 겁니다." 당시 자금난이 심각했다. 누구라도 그 제안을 반가워했을 것이다. 하지만 회장은 단호히 말했다. "품질을 낮춰 얻던 이익은 결국 신용을 잃는 비용이 된다." 그 한마디에 회의실이 조용해졌다.
몇 년 뒤의 결과가 드러났다. 삼성 제품은 일본보다 비쌌지만 거래처의 말은 달랐다. "삼성 것은 믿을 수 있다." 그 한마디가 회사를 살렸다. 그때부터 사람들은 말했다. "회장은 고집이 세다." 하지만 그는 고집이 아니라 중심이 있었다.
한국 사회는 원래 눈치의 나라다. 윗사람이 고개를 끄덕이면 다 따라가고, 상대 기분이 나빠질까 조심하고, 회의에서 "그것도 좋습니다"라는 말이 기본 인사처럼 쓰인다. 그런데 문제는 그렇게 하다 보면 결국 자기 생각이 사라진다는 것이다. 회장은 늘 경고했다. "남의 생각을 따라가는 사람은 결국 자기 인생도 남에게 맡긴다." 그 말은 회사뿐 아니라 인생에도 그대로 통했다. 그래서 그는 임원들에게 자주 물었다. "너의 기준은 무엇인가? 삼성의 기준이 아니라 너 자신의 기준은 무엇이냐?" 한 사람에게는 이렇게 말했다. "눈치를 본다는 건 네가 이미 축을 잃었다는 뜻이다." 그의 말에는 무게가 있었다. 그는 고집했지만 그 완고함 덕에 삼성은 무너지지 않았다. 바람이 아무리 거세도 중심이 있는 나무는 쓰러지지 않는다. 기업도 사람도 마찬가지다.
그의 일기장에는 이런 문장이 남아 있다. "모두에게 좋은 사람이 될 수는 있다. 하지만 모두에게 존경받을 수는 없다. 축이 없는 사람은 바람 따라 흔들릴 뿐이다." 어쩌면 차이는 여기서 생긴다. 좋은 말에 흔들리지 않고 옳은 일에 집중하는 것. 한 조직이든 한 사람의 인생이든 자기 축이 분명하면 폭풍 속에서도 방향을 잃지 않는다. 그리고 이병철 회장은 다음과 같이 덧붙였다. "중심이 있는 사람만이 신용을 지킬 수 있다." 그의 말처럼 신용은 눈치로 쌓는 게 아니다. 자기 축 위에 세워야 비로소 진짜가 된다.
이제 다음 이야기는 그 축 위에서 내려진 결단의 순간이다. 감정이 아니라 숫자로, 말이 아니라 증거로, 사람을 판단했던 그 냉철한 판단의 철학으로 넘어가 보자.
3. 감정은 데이터를 대신할 수 없다. 숫자로 판단하라.
전쟁이 끝난 직후 세상은 온통 눈물의 이야기로 가득했다. 길을 걸어도, 시장을 봐도 다들 같은 말을 했다. "회장님, 저도 조국 재건을 위해 일하고 싶습니다." 그 말만 들으면 안 도와줄 수가 없었다. 어느 날 한 신생 건설업체 사장이 찾아왔다. 양복은 깨끗했고 말투는 공손했다. 그는 눈시울이 붉어져 있었다. "회장님, 저는 이익보다 나라를 먼저 생각합니다. 삼성과 함께 조국을 다시 세우고 싶습니다." 그 말에 이병철 회장은 깊은 감동을 받았다. 이런 사람이라면 믿을 수 있겠다. 그는 바로 계약을 승인했다. 공사비 12억 원. 다른 회사보다 3개월 빠른 완공 약속까지.
하지만 한 달 뒤 보고서에 이상한 숫자가 올라왔다. 작업 인원 120명 중 실제 근무자는 35명. 시멘트 품질은 기준 미달. 이상하다 싶어 현장으로 직접 내려갔다. 현장은 텅 비어 있었다. 바람만 돌고 사람은 없었다. 회장이 물었다. "이게 무슨 일인가?" 사장은 고개를 숙였다. "일시적으로 인원을 이동시켰습니다. 곧 돌아옵니다." 하지만 그로부터 한 달 뒤 회사는 부도가 났다. 이미 지급한 돈은 돌아오지 않았다.
그날 밤 회장은 장부를 덮으며 이렇게 중얼거렸다. "눈물과 말에 속았다. 숫자와 사실을 보지 못했다." 그날 이후 그는 철저히 달라졌다. 사람은 감정으로 판단하면 속고, 숫자로 판단하면 배운다. 그는 바로 시스템을 만들었다. 협력 업체의 거래 실적, 재무 제표, 신용 평가를 3년치로 확인. 제안서의 단가와 인력이 맞지 않으면 즉시 보류.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원칙 하나. 사무실 회의보다 현장 방문이 우선이다.
누군가 묻는다. "그건 너무 냉정하지 않습니까?" 그는 웃으며 대답했다. "아니다. 냉정한 게 아니라 정확한 것이다." 그 후 삼성의 협력 기준은 세상에서 가장 까다로워졌다. 사람들은 투덜댔다. "회장님, 이렇게까지 해야 합니까?" 그는 말했다. "감동은 순간이지만 신용은 평생이다."
몇 년 뒤 또 비슷한 제안이 들어왔다. "회장님, 이번엔 믿을 만합니다. 일본 최신 설비를 싸게 들여올 수 있습니다. 이익률이 40%나 됩니다. 위험은 없습니다." 회장은 단 한 문장만 물었다. "지난 3년간 실적이 있나?" 그들이 머뭇거리자 그는 미소 지으며 말했다. "그럼 끝이야." 그 한마디로 회의는 종료됐다. 그 후 삼성은 검증된 파트너만 남겼다. 감정보다 데이터, 손익보다 신용.
전통적인 리더는 흔히 진심을 믿는다. "사람은 마음이야." 하지만 이병철 회장은 달랐다. "확인은 불신이 아니라 신뢰의 출발이다." 그 말에는 깊은 뜻이 있다. 사람의 진심은 말로 증명되는 게 아니다. 행동, 기록, 숫자. 그게 진짜 마음이다. 많은 조직이 착각한다. "그 사람은 성실하니까 괜찮아. 말이 따뜻하니까 믿을 수 있어." 하지만 그건 착한 착각이다. 감동은 책임이 아니고 눈물은 증거가 아니다. 이병철 회장은 이렇게 정리했다. "확인하지 않은 신뢰는 책임 없는 믿음이다."
어쩌면 차이는 여기서 생긴다. 감정은 위로를 주지만 숫자는 방향을 준다. 좋은 마음만으로는 회사를 지킬 수 없다. 사실을 보는 눈. 그것이 신뢰의 첫걸음이다.
이제 다음 이야기로 넘어가 보자. 그가 데이터를 넘어 한마디 말로 세상을 움직였던 순간, 말 한 줄이 신용이 되고 결단이 책임이 되었던 그 냉철한 리더십의 이야기다.
4. 명확히 결정하라. 모호함은 책임의 적이다.
그해 여름 수원의 하늘은 맑았지만 공장은 그렇지 않았다. 공장 근처 하천에서 물고기가 떠올랐다. 농민들은 분노했고 언론은 달려왔다. "삼성이 하천을 오염시켰다." 신문 첫 면엔 굵은 제목이 지켰다. 그날 밤 회장실의 불은 꺼지지 않았다.
이튿날 아침 임원들이 모였다. "회장님, 일단 시간을 좀 벌죠. 조사 결과가 나올 때까지 잠시 조용히 있는 게 좋겠습니다." 이병철 회장은 조용히 고개를 저었다. "시간은 문제를 해결하지 않는다. 결단이 해결한다." 그는 그날 오후 바로 기자 회견을 열었다. 기자들이 카메라를 들이댔다. "회장님, 이번 사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그는 마이크를 잡고 말했다. "삼성은 품질만이 아니라 사람과 자연에 대한 책임도 품질의 일부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어서 발표했다. "우리는 오염 방지 설비를 전면 교체하겠습니다. 3년 안에 공해 제로를 달성하겠습니다."
순간 기자들이 잦아들었다. "그 설비 교체비만 300억 원이 넘는다는데요. 그 정도면 회사의 큰 손해 아닙니까?" 회장은 단호하게 대답했다. "삼성의 신용은 그보다 비싸다." 그 한마디가 모든 논란을 잠재웠다. 회사는 막대한 손해를 봤지만 시민들은 감동했다. 며칠 뒤 수원 주민들이 보낸 감사 편지가 본사로 쏟아졌다. 편지 봉투마다 이런 문장이 적혀 있었다. "당신의 결단 덕분에 다시 믿게 되었습니다."
그 편지들을 회장은 한데 묶어 책상 위에 두었다. 그리고 말했다. "사람의 신뢰는 광고가 아니라 결단으로 얻는다." 그는 그 사건 이후 조직 내에서도 늘 강조했다. "애매한 보고서는 시간 낭비다. 할 건지 안 할 건지, 가능한지 불가능한지 결론부터 말해라." 한국 사회엔 이런 말이 있다. "검토하겠습니다." 가장 부드럽고 가장 책임없는 말이다. 윗사람도 듣기 좋고 아랫 사람도 빠져나가기 좋은 말. 하지만 회장은 단호했다. "한다 혹은 안 한다. 그게 책임이다."
그 말을 들은 임원들은 처음엔 불편해했다. "그래도 좀 유연하게 말해야 하지 않습니까?" 그는 고개를 저었다. "유연함은 책임을 대신하지 못한다." 많은 회사가 위기를 맞을 때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검토 중입니다. 조만간 논의하겠습니다." 하지만 그 말이 길어질수록 신뢰는 줄어든다. 결정을 미루는 건 신중함이 아니라 회피다. 이병철 회장은 알고 있었다. 사람들은 명확함을 무서워하지만 결국 명확한 사람만이 신뢰를 얻는다는 것을. 그는 말한다. 결단은 손해처럼 보이지만 결국 신용과 실력을 남긴다. 그 말이 단순한 경영 철학이 아니라 삶의 태도였다.
오늘날도 회의 자리에서 "조금 더 검토해 보겠습니다"라는 말이 자연스럽게 나온다. 하지만 그 말 뒤에 늘 책임이 빠져 있다. 말이 부드러울수록 마음은 비겁해진다. 그래서 회장은 후배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명확하게 말하라. 그래야 네가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있다."
어쩌면 차이는 여기서 생긴다. 좋은 사람은 듣기 좋은 말을 하고, 신뢰받는 사람은 분명한 말을 한다. 그 차이가 결국 리더의 무게를 만든다.
이제 다음 이야기로 넘어가 보자. 결단 이후에도 흔들리지 않았던 그의 냉정한 따뜻함. 사람을 돕되 절대 약하게 만들지 않았던 그 강한 온정의 철학으로 들어가 보자.
5. 돕되 약하게 만들지 마라. 강한 온정의 힘.
그해 여름 수원의 하늘은 맑았지만 공장은 그렇지 않았다. 공장 근처 하천에서 물고기가 떠올랐다. 농민들은 분노했고 언론은 달려왔다. "삼성이 하천을 오염시켰다." 신문 첫 면엔 굵은 제목이 지켰다. 그날 밤 회장실의 불은 꺼지지 않았다.
이튿날 아침 임원들이 모였다. "회장님, 일단 시간을 좀 벌죠. 조사 결과가 나올 때까지 잠시 조용히 있는 게 좋겠습니다." 이병철 회장은 조용히 고개를 저었다. "시간은 문제를 해결하지 않는다. 결단이 해결한다." 그는 그날 오후 바로 기자 회견을 열었다. 기자들이 카메라를 들이댔다. "회장님, 이번 사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그는 마이크를 잡고 말했다. "삼성은 품질만이 아니라 사람과 자연에 대한 책임도 품질의 일부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어서 발표했다. "우리는 오염 방지 설비를 전면 교체하겠습니다. 3년 안에 공해 제로를 달성하겠습니다."
순간 기자들이 잦아들었다. "그 설비 교체비만 300억 원이 넘는다는데요. 그 정도면 회사의 큰 손해 아닙니까?" 회장은 단호하게 대답했다. "삼성의 신용은 그보다 비싸다." 그 한마디가 모든 논란을 잠재웠다. 회사는 막대한 손해를 봤지만 시민들은 감동했다. 며칠 뒤 수원 주민들이 보낸 감사 편지가 본사로 쏟아졌다. 편지 봉투마다 이런 문장이 적혀 있었다. "당신의 결단 덕분에 다시 믿게 되었습니다."
그 편지들을 회장은 한데 묶어 책상 위에 두었다. 그리고 말했다. "사람의 신뢰는 광고가 아니라 결단으로 얻는다." 그는 그 사건 이후 조직 내에서도 늘 강조했다. "애매한 보고서는 시간 낭비다. 할 건지 안 할 건지, 가능한지 불가능한지 결론부터 말해라." 한국 사회엔 이런 말이 있다. "검토하겠습니다." 가장 부드럽고 가장 책임없는 말이다. 윗사람도 듣기 좋고 아랫 사람도 빠져나가기 좋은 말. 하지만 회장은 단호했다. "한다 혹은 안 한다. 그게 책임이다."
그 말을 들은 임원들은 처음엔 불편해했다. "그래도 좀 유연하게 말해야 하지 않습니까?" 그는 고개를 저었다. "유연함은 책임을 대신하지 못한다." 많은 회사가 위기를 맞을 때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검토 중입니다. 조만간 논의하겠습니다." 하지만 그 말이 길어질수록 신뢰는 줄어든다. 결정을 미루는 건 신중함이 아니라 회피다. 이병철 회장은 알고 있었다. 사람들은 명확함을 무서워하지만 결국 명확한 사람만이 신뢰를 얻는다는 것을. 그는 말한다. 결단은 손해처럼 보이지만 결국 신용과 실력을 남긴다. 그 말이 단순한 경영 철학이 아니라 삶의 태도였다.
오늘날도 회의 자리에서 "조금 더 검토해 보겠습니다"라는 말이 자연스럽게 나온다. 하지만 그 말 뒤에 늘 책임이 빠져 있다. 말이 부드러울수록 마음은 비겁해진다. 그래서 회장은 후배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명확하게 말하라. 그래야 네가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있다."
어쩌면 차이는 여기서 생긴다. 좋은 사람은 듣기 좋은 말을 하고, 신뢰받는 사람은 분명한 말을 한다. 그 차이가 결국 리더의 무게를 만든다.
이제 다음 이야기로 넘어가 보자. 결단 이후에도 흔들리지 않았던 그의 냉정한 따뜻함. 사람을 돕되 절대 약하게 만들지 않았던 그 강한 온정의 철학으로 들어가 보자.
6. 진짜 권력은 살아 있는 책임이다.
1980년대 초 삼성은 새로운 길 앞에서 있었다. 전자, 반도체. 아직은 아무도 성공하지 못한 분야. 임원들은 고개를 저었다. "회장님, 일본도 아직 손해 보고 있습니다. 미국 기업들도 철수했습니다. 우리까지 하면 망합니다." 회의실 공기가 무거워졌다. 그때 이병철 회장은 조용히 물었다. "해봤어?" 그 한마디가 모든 말을 멈추게 했다. "망한다고 말하기 전에 해본 적 있나?" 임원들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는 천천히 말을 이었다. "나는 인생을 걸어본 적이 있다. 망할 수도 있다는 걸 알면서도 나라를 위해, 사람을 위해 한번은 해야겠다고 생각한 적이 있다. 그게 내가 살아온 방식이다."
그날 그는 서류 한 장을 건넸다. 거기엔 단 한 줄이 적혀 있었다. "사업보국, 산업으로 나라를 살린다." 그 한 줄이 삼성의 DNA가 되었다. 그 후 삼성은 반도체 사업에 뛰어들었고, 모두가 불가능하다고 했던 일을 해냈다. 결국 세상은 달라졌다. 그리고 그때 그의 말도 남았다. "부자가 되는 건 쉽다. 하지만 사람을 살리는 기업이 되는 건 어렵다." 그 말은 지금도 한국 사회의 리더십을 대표하는 문장이다.
리더는 감정이 아니라 냉철한 책임에서 표현한다. 감정은 사람을 따뜻하게 하지만 책임은 사람을 살린다. 그는 끝까지 그렇게 살았다. 한 임원이 회장에게 물었다. "회장님, 그렇게까지 무거운 책임을 지는 이유가 뭡니까?" 그는 하늘을 잠시 바라보다가 말했다. "책임이 없는 권력은 허상이다. 진짜 권력은 책임을 끝까지 지는 용기다."
이병철 회장의 여섯 가지 철학은 결국 하나의 원으로 이어진다. 사람을 이해하는 신용, 흔들리지 않는 중심, 감정보다 데이터, 명확한 결단, 강한 온정, 그리고 마지막으로 살아 있는 책임. 이 여섯 가지는 따로 존재하지 않는다. 그는 말했다. "신뢰는 사람에게서, 사람은 품질에서, 품질은 책임에서 시작된다." 모두 연결된 하나의 생명줄이었다.
그의 생애 마지막 일기장에는 이런 글이 남아 있었다. "착한 사람은 남을 도와 기쁘지만, 강한 사람은 남을 키워 기쁘다. 내 인생은 후자였다." 오늘날도 삼성가의 식당에는 이런 전설이 전해진다. 젊은 시절 그는 직원들과 같은 밥을 먹었다. 반찬은 달라도 밥그릇은 같았다. 그는 말하곤 했다. "이 밥 한 그릇이 우리가 함께 나누는 약속이다." 그 약속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한 그릇의 밥, 한 마음의 신용. 그것이 곧 사람과 사람, 기업과 사회를 잇는 끈이었다.
이제 묻고 싶다. 당신이라면 신용을 지키기 위해 누군가의 부탁을 거절할 수 있겠는가? 모두가 편하자고 미루는 순간 당신은 "한다" 혹은 "안 한다"를 말할 수 있겠는가? 이병철 회장은 평생 그 답을 행동으로 보여줬다. 그의 말은 여전히 남아 있다. "위기는 늘 오지만 품질과 신용을 지키는 자는 결코 무너지지 않는다." 그리고 그 한 문장이 지금도 수많은 사람에게 묵직한 책임의 시작이 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