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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장성철은 30년 넘게 청와대와 정치권을 취재해 왔다. 대통령 다섯 명의 직권기를 지켜봤고 온갖 스캔들과 권력의 민낯을 봐왔다고 자부했다. 하지만 2023년 5월 3일 그날 오후 5시에 일어난 일은 내가 알던 모든 상식을 뒤엎었다.
김건희 여사가 경복궁 명성왕후 침전에 들어갔다는 제보를 받은 건 그로부터 일주일 후였다. 처음엔 믿지 않았다. 아니, 믿고 싶지 않았다. "장기자님, 이거 진짜예요? 침전문이 열렸어요. 윤 대통령이 직접 지시했다고요?" 제보자의 목소리는 떨리고 있었다. 문화재청 소속 직원이라고만 밝힌 그는 녹음 파일 하나를 내게 건넸다. 나는 그날 밤 사무실에 홀로 남아 그 파일을 20번도 넘게 반복해서 들었다. "윤 대통령이 직접 말했어요. '문 좀 열어 봐요. 같이 볼게요.' 그래서 열었어요. 그때 아무도 못 들어갔어요. 딱 두 사람만."
헤드폰을 벗고 창밖을 내다봤다. 서울의 야경이 반짝이고 있었지만 내 머릿속은 캄캄했다. 명성 황우 침전은 폐쇄 구역이다. 국가 의전 행사에도 함부로 열지 않는 곳이다. 어 조선 왕조의 마지막 비극이 서린 그곳을 대통령이 같이 보자는 이유만으로 열었다고.
나는 즉시 경복궁 관계자들에게 연락을 취했다. 대부분은 말을 아꼈지만 한 명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장기자님, 이건 기록에도 안 남아요. CCTV도 꺼졌고요. 하지만 그날 있었던 사람들은 다 알아요. 전동차 타고 가서 침전 앞에서 내렸다고. 그리고 10분 동안 아무도 안 나왔어요." 10분. 겨우 10분이다. 하지만 그 10분이 내게는 영혼처럼 느껴졌다. 폐쇄된 역사적 공간에서 단둘이 있었다는 것. 그들은 그 안에서 무엇을 했을까? 단순히 구경을 한 것일까?
나는 명성 황우의 역사를 다시 들춰봤다. 어 1895년 어 을미사변. 어, 일본 낭인들에게 시해당한 조선의 마지막 국모. 그 비극의 현장이 바로 저 침전이었다. 100년이 넘는 시간이 흘렀지만 그곳은 여전히 한국인의 집단적 트라우마가 서린 공간이다. 그리고 그곳에 대통령 부부가 들어갔다. 공식 기록도 없이, 목격자도 없이 오직 둘만의 시간을 가졌다. "이건 참배가 아니야." 나는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참배라면은 공개적으로 했을 것이다. 언론을 부르고 헌화하고 묵념을 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몰래 들어갔는 안 되는 무언가를 하러 간 것처럼.
며칠 뒤 나는 무속인을 취재한 적 있는 동료 기자를 만났다. "성철아, 혹시 명성황우하고 무속 신앙이 연결되는 거 알아?" 그가 묻자 나는 고개를 저었다. "명성황우는 무속 신앙의 아이콘이야. 특히 권력을 잃은 여자들, 시댁 문제로 고통받는 여자들이 많이 찾아. 침전은 일종의 성지 같은 거지. 근데 거기를 일반인이 못 들어가잖아. 그래서 몰래 무당 데리고 가는 경우도 있었대." 옛날에 내 등골이 서늘해졌다. 어, 설마 대통령 부부가 모르지. 근데 있을 수 없는 일은 아니야. 한국 정치에서 무속은 생각보다 깊숙이 들어와 있거든.
나는 그날부터 김건희 여사의 경복공 방문 기록을 추적하기 시작했다. 문화재청에 정보 공개 청구를 넣었고 경복공 직원들을 수소문했다. 그리고 충격적인 사실을 알아냈다. 어 11번. 김건희 여사는 1년 동안 경복궁을 11번이나 방문했다. 보통 영부인이 1년에 한두 번 가는 곳을 11번이나 간 것이다. 그것도 대부분 비공개로. 11번. 이건 우연이 아니야.
나는 숫자의 의미를 찾기 시작했다. 무속에서 숫자는 중요한 상징이다. 특히 홀수는 양의 기운을 상징하고 11은 완성을 의미하는 숫자라고 한다. 그날 밤 나는 오랜 시간 동안 컴퓨터 앞에 앉아 있었다. 화면에는 경복궁의 야경 사진이 떠 있었다. 고요하고 아름다운 궁궐. 하지만 이제 그 아름다움 뒤에 무엇이 숨어 있는지 알게 되었다. 권력은 때로 이성을 초월한다. 과학과 법치를 믿는 현대 국가에서도 최고 권력자가 보이지 않는 힘에 의지할 때가 있다. 그리고 그 순간 나라는 더 이상 공화국이 아니게 된다.
나는 기사를 쓰기 시작했다. 어 손가락이 키보드 위에서 떨렸다. 이 기사가 나가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기자로서 나는 이 진실을 덮어둘 수 없었다. "그 문은 왜 열렸는가?" 제목을 정하고 나는 깊은 숨을 내쉬었다.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는 여정이 이제 시작되는 것이다.
나는 경복궁을 20번도 넘게 가봤다. 취재차 갔고 개인적으로도 갔다. 봄에는 벚꽃을 보러, 가을에는 단풍을 보러. 하지만 나는 단 한 번도 명성후 침전 안으로 들어가 본 적이 없다. 들어갈 수 없었다. 아니, 들어가서는 안 되는 곳이었다. "침전은 폐쇄 구역입니다. 왕비의 마지막 공간이죠. 보존을 위해서도 역사적 의미를 위해서도 함부로 열 수 없습니다." 10년 전 경복궁 해설사가 내게 했던 말이다. 그때 나는 특별 취재 허가를 받으려 했지만 거절당했다. 문화재청 고위 관계자도 안 된다고 했다. 그 정도로 엄격한 곳이었다. 그런데 윤성열과 김건희는 그곳에 들어갔다.
"대통령 특권이니까요." 어느 청와대 관계자가 내게 던진 말이다. 나는 그 말을 듣고 웃음이 나왔다. 쓴웃음이었다. 특권이라. 권력이 역사마저 마음대로 할 수 있다는 건가요? "장기자님도 아시잖아요. 대통령은 뭐든 할 수 있어요." 법적으로 문제만 안 되면. 법적으로 문제가 없다. 맞는 말이다. 대통령이 문화재청에 요청하면 문화재청이 거절할 수 없다. 하지만 법과 윤리는 다르다. 할 수 있는 것과 해야 하는 것도 다르다.
나는 그날 이후 침전에 대해 모든 자료를 찾아봤다. 고증을 구했고 옛 사진들을 수집했고 복원 작업에 참여했던 장인들을 인터뷰했다. "침전은 특별해요. 거기 들어가면 공기가 달라요. 무겁고 차갑고 뭔가 서려 있는 느낌이에요." 한 목수가 내게 말했다. 그는 20년 전 침전 복원 작업에 참여했던 사람이다. "처음엔 미신이라고 생각했어요. 근데 작업하다 보니까 알겠더라고요. 저 안에는 역사가 살아 있어요. 명성 황우의 한이 분노가 슬픔이 전부 저 나무와 돌에 스며 있어요." 나는 그의 말을 듣고 다시 침전 사진을 들여다봤다. 낡은 목조 건물. 붉은 단청이 벗겨진 기둥. 굳게 닫힌 문. 그 문이 열렸다. 윤성열의 지시로 김건희를 위해 그 문이 열렸다.
제보자가 보내준 두 번째 녹음 파일에는 더 충격적인 내용이 담겨 있었다. "전동차로 갔어요. 어, 관람객들 눈에 안 띄게 침전 바로 앞까지 갔다고요. 그리고 내렸어요. 경호원들도 다 물러나라고 했대요. 사진도 찍지 말라고." 그럼 안에서 뭘 했는데요? "아무도 몰라요. 10분 동안 문이 닫혀 있었어요. 나올 때 김건희 여사 표정이 좀 이상했대요. 너무 진지하고 엄숙한 표정이었다고." 10분. 고작 10분이다. 하지만 그 10분 동안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아무도 모른다.
나는 무속 전문가를 찾아갔다. 아, 서울대에서 어, 민속학을 가르치는 교수였다. "교수님, 만약 누군가 명성황우 침전에서 개인적인 의식을 치른다면 그게 무슨 의미일까요?" 교수는 안경을 벗고 한참을 생각하더니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어, 명성 황우는 무속 신앙에서 매우 특별한 존재예요. 어, 억울하게 죽은 왕비이자 권력을 지키려다 죽은 여인이죠. 그래서 권력을 원하는 사람들이 그분의 영혼에게 기원하는 경우가 있어요." 기원이요? "근데 권력을 지켜 달라고 적들을 물리쳐 달라고 어 자신의 위치를 굳건히 해 달라고. 물론 공개적으로는 할 수 없죠. 그래서 몰래 아무도 모르게 하는 거예요."
내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대한민국 대통령과 그 부인이 21세기 대한민국에서 죽은 왕비의 영혼에게 기원했다고. 이게 말이 되나? 하지만 말이 안 되는 일들이 실제로 일어나고 있었다. 나는 다시 경복궁으로 갔다. 이번에는 취재가 아니라 개인적으로. 침전이 있는 곳까지는 갈 수 없었지만 최대한 가까이 가봤다. 저 멀리 침전의 지붕이 보였다. 고요하고 외로워 보였다. 100년 넘게 그 자리에서 그날의 비극을 간직한 채 홀로 서 있는 건물. 왜 하필 저곳이었을까? 나는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경복궁에는 수많은 정각이 있다. 근정전도 있고 경회루도 있다. 왜 하필 가장 깊숙한 곳에 있는 가장 비극적인 역사가 어 서린 가장 폐쇄적인 공간을 택했을까? 그 답은 명확했다. 바로 그런 곳이었기 때문이다. 비극이 서려 있고 억울함이 남아 있고 원한이 잠들어 있는 곳. 그런 곳에서만 할 수 있는 무언가가 있었던 것이다.
나는 취재 수첩을 꺼내 적었다. "침묵은 때로 가장 큰 증언이다. 그 10분의 침묵이 그들이 무엇을 했는지 말해주고 있다." 해가 지고 있었다. 어, 경복궁이 점점 어두워졌다. 하지만 내 마음속에서는 진실의 불빛이 켜지기 시작했다. 이건 단순한 방문이 아니었다. 관광도 아니었다. 이건 의식이었다. 권력을 향한 기도였다. 그리고 그 기도는 어 살아 있는 사람이 아닌 죽은 영혼을 향하고 있었다. 나는 경복궁을 나서며 뒤를 돌아봤다. 어둠 속에 잠긴 궁궐이 마치 무언가를 숨기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진실은 언젠가 드러난다. 나는 다짐했다. 그 침전의 침묵을 그 10분의 비밀을 반드시 세상에 알리겠다고.
11번. 아, 나는 이 숫자를 수첩에 적고 또 적었다. 펜으로 연필로. 심지어 형광펜으로도. 마치 이 숫자를 계속 쓰다 보면 그 의미가 저절로 드러날 것 같았다. 김건희 여사가 1년 동안 경복궁을 11번 방문했다. 공식 방문 세 번, 비공개 방문 여덟 번. 대통령 부인이 한 곳을 11번이나 간다는 게 정상일까? "성철아, 너 요즘 숫자에 집착하는 거 아니야?" 방송국 동료가 내게 물었다. 우리는 라디오 프로그램 녹음을 앞두고 있었다. "집착이 아니라 취재야. 이 숫자에는 분명 의미가 있어." "그냥 우연일 수도 있잖아. 경복궁 좋아하는 거 아니겠어?" 나는 고개를 저었다. "불국사도 평생 두 번 가면 많이 가는 거야. 근데 경복궁을 11번. 그것도 1년 안에. 이건 우연이 아니야."
그날 밤 방송이 나간 후 제보 전화가 쏟아졌다. 예. 그중 한 통이 내 인생을 바꿨다. "기자님 저 무속인이에요. 11이라는 숫자 그거 범상치 않아요." 목소리는 중년 여성이었다. 차분하면서도 단호한 어조였다. "어떤 의미인가요?" "11은 완성의 숫자예요. 열은 끝이고 하나는 시작이죠. 그러니까 10일은 끝과 시작이 만나는 지점이에요. 새로운 시작을 위해 과거를 완성시키는 숫자예요." 나는 숨을 죽이고 들었다. "특히 권력을 원하는 사람들이 쓰는 숫자예요. 11번의 기도, 11번의 절의 방문. 모두 큰 소원을 이루기 위한 의식이에요."
전화를 끊고 나는 한동안 멍하니 앉아 있었다. 아, 11번의 방문. 그게 단순한 관광이 아니라 의식이었다면. 나는 김건희 여사의 방문 날짜를 다시 들여다봤다. 그리고 놀라운 패턴을 발견했다. 5월 3일 오후 5시, 7월 5일 오후 5시, 9월 15일 오후 5시. 모든 방문이 5라는 숫자와 연결되어 있었다. 5월 5일 5시. 숫자 5가 반복적으로 나타났다. 이게 우연일리 없어.
나는 즉시 숫자학 전문가에게 연락했다. 민속학과 무속을 연구하는 학자였다. "교수님 숫자 5와 11의 조합. 이게 무속에서 특별한 의미가 있나요?" "있죠. 오는 음양 오행에서 중심을 의미해요. 어, 그리고 11은 완성과 성취를 뜻하죠. 이 이 두 숫자를 함께 쓴다는 건 매우 의도적인 행위예요." 내 손이 떨렸다. 이건 우연이 아니었다. 계획이었다. 철저히 계산된 의식이었다.
나는 다시 문화재청 관계자들을 수소문했다. 그리고 한 명이 익명을 조건으로 증언해 줬다. "김 여사가 올 때마다 특정 시간을 고집했어요. 반드시 오후 5시. 한 번은 행사 일정 때문에 4시로 조정하려 했는데 절대 안 된다고 했어요. 꼭 5시여야 한다고." 왜요? "모르죠. 근데 그분 옆에 항상 한 분이 계셨어요. 나이 지긋한 여자분. 공식 수행원은 아닌 거 같았어요. 근데 김여사가 그분 말을 엄청 잘 들었어요." 어떤 분이었는데요? "잘은 모르겠는데 점쟁이나 무당 같았어요. 분위기가 그랬어요."
나는 녹음 파일을 다시 들었다. 이번에는 배경까지 집중해서 들었다. 그리고 들렸다. 작은 방울 소리가. 방울 소리. 무속 의식에서 쓰는 바로 그 방울 소리가 녹음 파일 뒤편에 희미하게 들렸다. 이건 진짜 의식이었어. 나는 사무실에서 혼자 중얼거렸다. 밤은 깊었지만 잠이 오지 않았다. 어 11번의 방문. 5라는 숫자에 대한 집착. 특정 시간 고집. 의문의 동행인. 그리고 방울소리. 모든 증거가 한 가지를 가리키고 있었다. 김건희 여사는 경복궁에서 무속 의식을 치렀다. 어 11번이나 1년 동안. 대체 무엇을 원했던 걸까?
나는 창밖을 내다봤다. 서울의 야경이 반짝이었다. 저 불빛 아래 수많은 사람들이 살아가고 있다. 대통령을 믿고 정부를 믿고 법과 이성을 믿으며 살아가는 사람들. 하지만 그들이 뽑은 대통령의 부인은 숫자와 의식에 의존하고 있었다. 다음날 나는 경복궁을 다시 방문했다. 이번에는 오후 5시에 맞춰서. 어 김건희 여사가 왔던 바로 그 시간에. 궁궐은 고요했다. 관광객들이 삼삼오오 오고 있었다. 하지만 오후 5시. 해가 기울기 시작하는 그 시간. 궁궐의 분위기가 묘하게 바뀌었다. 빛이 달라졌다. 그림자가 길어졌다. 그리고 궁궐 전체가 마치 다른 세계로 들어서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이 시간이구나." 나는 깨달았다. 이 시간, 이 빛, 이 분위기. 바로 이것을 원했던 거다. 낮도 아니고 밤도 아닌 경계의 시간. 어, 음과 양이 교차하는 시간. 나는 취재 수첩을 꺼내 적었다. "숫자는 거짓말하지 않는다. 11번의 방문은 우연이 아니다. 이것은 의식이었고 기도였고 권력을 향한 주술이었다."
그날 밤 나는 기사 초안을 완성했다. 제목은 '숫자의 그림자'였다. 대한민국은 이성의 나라라고 믿었다. 하지만 최고 권력자 옆에서 숫자가 운명을 좌우하고 의식이 정책을 결정하고 있었다면. 나는 키보드 위에 손을 얹고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이 진실을 마주한 국민들은 어떤 반응을 보일까? 분노할까? 비웃을까? 아니면 두려워할까? 하지만 나는 기자다. 진실을 전하는 게 내 일이다. 어, 숫자 뒤에 숨은 그림자를 세상에 드러내야 한다.
침전 사건을 취재하던 중 나는 또 다른 제보를 받았다. 이번에는 대통령 집무실이 있는 새 청사에 관한 것이었다. "장기자님, 용산 청사 안에 다다미가 깔려 있었던 거 아세요?" 어, 전화를 건 사람은 청사 건설에 참여했던 인테리어 업체의 직원이었다. 목소리가 떨리고 있었다. "다다미요? 일본식 다다미 말인가요?" "네. 특정 방에 깔려 있었어요. 그것도 한두 장이 아니라 방 전체요."
나는 즉시 만남을 제안했다. 이틀 후 서울 외곽의 한 카페에서 그를 만났다. "처음에는 별 생각 없었어요. 건축주가 원하면 다다미도 깔 수 있죠. 근데 이상한 건 그 방이 특별한 방이었다는 거예요." 어떤 방이었는데요? "공식 명칭은 없었어요. 근데 설계도에는 특별실이라고만 적혀 있었어요. 출입도 제한되어 있었고요." 그는 가방에서 사진 한 장을 꺼냈다. 흐릿한 사진이었지만 확실히 다다미가 보였다. 연한 노란색 짚으로 짠 일본식 바닥재. "그리고 욕실에 일본식 흰색 욕조가 있었어요. 어, 한국에서는 보기 드문 스타일이에요. 어, 특별히 일본에서 수입한 거 같았어요."
내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한국 대통령 집무실에 일본식 인테리어라니. "혹시 다른 이상한 점은 없었나요?" "있었죠. 그 방 천장에 작은 종이 달려 있었어요. 풍경 같은 거예요. 바람 불면 소리 나는. 그리고 벽 한쪽에는 작은 선반이 있었는데 거기에 뭔가를 올려놓게 되어 있었어. 신을 모시는 선반처럼요." 그가 놀란 표정으로 나를 봤다. "맞아요. 정확히 그런 느낌이었어요. 어, 일본 신사에서 보던 그런."
나는 즉시 일본 종교 문화 전문가에게 연락했다. 한일 관계사를 연구하는 교수였다. "교수님, 다다미와 흰 욕조 그리고 풍경이 있는 방이라면 어떤 의미인가요?" "그건 신도 의식을 위한 공간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다다미는 정결함을 상징하고 흰 욕조는 정화 의식에 쓰이고 풍경은 신을 부르는 도구죠." 한국 대통령 집무실에 그런 공간이 있었다면요. 교수는 한참 침묵하다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그건 매우 심각한 문제입니다. 특히 명성 황우가 어 일본인들에게 시해당한 역사를 생각하면."
나는 더 깊이 파고들기로 했다. 청사 공사에 참여했던 사람들을 수소문했다. 어, 대부분 함구했지만 한 명이 익명으로 증언해 줬다. "그 방은 김건희 여사 전용 공간이었어요. 대통령도 함부로 들어가지 못했대요. 열쇠도 김여사만 가지고 있었고요." 안에서 뭘 했는지 아세요? "청소 직원들 말로는 가끔 향 냄새가 났대요. 그리고 작은 방울 소리도 들렸다고. 근데 문이 항상 잠겨 있어서 확인할 수가 없었어요."
나는 건축 도면을 구하려고 했었다. 정보 공개 청구를 했지만 거부당했다. 국가 안보를 이유로. 하지만 나는 포기하지 않았다. 시공사 직원, 전기 기술자, 배관공들을 찾아다녔다. 그리고 마침내 그 방의 설계도 일부를 입수했다. 도면을 보는 순간 나는 숨이 멎었다. 방 구조가 일본 신사의 내부 구조와 거의 동일했다. 신을 모시는 선반. 정화 의식을 위한 욕실. 의식을 치르는 다다미 공간. "이건 청사가 아니라 신사야." 나는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더 충격적인 건 그 방이 경복궁을 향해 있었다는 것이다. 이제 창문이 정확히 경복궁 방향으로 나 있었다. 침전이 있는 방향으로. "의도적이야. 전부 계획된 거야."
나는 다시 무속 전문가를 찾아갔다. 어, 선생님. 만약 누군가 일본식 신사 구조의 방에서 조선 왕실을 향해 의식을 치른다면 그게 무슨 의미일까요? 무속인은 얼굴이 굳어졌다. "그건 매우 위험한 주술이에요. 일본 신도와 조선 왕실의 기운을 섞는 거죠. 어, 침략과 지배의 에너지를 끌어오는 거예요." 침략이요. "명성 황우를 죽인 게 누구예요? 일본이잖아요. 그 에너지를 그 힘을 빌려오려는 거예요. 권력을 지키기 위해서." 나는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어 윤성열 정권이 끝나고 새 정권이 들어서자마자 한 일이 있었다. 용산 청사의 특별실 개조였다. 모든 다다미가 찢겨 나갔다. 일본식 욕조는 철거됐다. 풍경도 선반도 모두 사라졌다. 그리고 그 방은 완전히 새로 단장됐다. "왜 이렇게 급하게 철거했냐고." 내가 새 정권 관계자에게 묻자 그는 난처한 표정으로 말했다. "들어가 보니까 분위기가 너무 이상했어요. 뭔가 잘못된 느낌이었어요. 그래서 전부 없애라고 했죠." 구체적으로 뭐가 이상했는데요? "향 냄새가 벽에 뱄고요. 그리고 바닥에 이상한 표시들이 있었어요. 뭐라고 말하긴 어렵지만 주술적인 느낌이었어요."
나는 그날 밤 기사를 썼다. '다다미의 나라'라는 제목으로. 한국 대통령 집무실에 일본 신사가 있었다. 그리고 그곳에서 조선 왕실을 향한 의식이 치러졌다. 침략자의 힘을 빌려 권력을 지키려 했던 주술이. 키보드를 두드리는 내 손이 떨렸다. 이건 단순한 미신이 아니었다. 이건 역사의 배신이었다. 민족의 배신이었다. 다다미는 철거됐지만 그 위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는 영원히 남을 것이다. 나는 기사를 저장하고 창밖을 내다봤다. 멀리 용산 청사의 불빛이 보였다. 그 안에서 어 권력은 무엇을 보았을까? 역사를? 영혼을? 아니면 자신의 욕망을?
이 모든 취재를 하면서 나는 하나의 질문에 사로잡혔다. 대한민국은 언제부터 이렇게 되었을까? 나는 30년 넘게 정치부 기자로 살아왔다. 다섯 명의 대통령을 취재했다. 그들 모두 나름의 문제가 있었다. 부패도 권력 남용도 무능도 봤다. 하지만 이건 달랐다. 이건 이성의 폭이었다.
사무실에서 혼자 자료를 정리하던 중 한 통의 제보 전화를 받았다. "당기자님 윤 대통령이 점쟁이한테 물어봤대요. 내가 감옥에 갈까요라고." 목소리는 청와대 근처에서 일하는 사람이라고만 밝혔다. 언제요? 어디서요? "작년 말이요. 탄핵 얘기 나오기 시작할 때. 김여사가 데려온 사람한테 물어봤대요." 나는 숨을 죽였다. 대한민국 대통령이 법과 헌법의 수호자가 자신의 운명을 점쟁이에게 물어봤다고. 그래서 뭐래요? "그 점쟁이가 간다고 했대요. 막을 수 없다고. 그래서 윤 대통령이 화를 엄청 냈다고 하더라고요."
전화를 끊고 나는 한참을 멍하니 앉아 있었다. 어, 한 나라의 대통령이 감옥에 갈까요라고 묻는다. 그것도 법률 자문이 아니라 점쟁이에게. 이게 21세기 대한민국의 현실이었다. 나는 과거 자료를 뒤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놀라운 사실을 발견했다. 주요 인사 발표 날짜들이 모두 길일이었다. 중요한 회견은 항상 특정 시간대에 잡혔다. 해외 순방 일정도 묘하게 특정 숫자와 연결되어 있었다. 우연일 수 없어.
나는 역술인 협회 회장을 찾아갔다. 70평생 사주와 운명을 봐온 노인이었다. "회장님, 만약 국가지도자가 중요한 결정을 할 때마다 역술인과 상담한다면 그게 어떤 의미일까요?" 노인은 한숨을 쉬었다. "그건 지도자가 아니에요. 어, 허수아비죠. 보이지 않는 힘에 끌려다니는 인형이에요." 그렇게까지 심각한가요? "심각하죠. 옛날 조선 시대에도 왕이 무당에게 의지하면 나라가 망했어요. 인조 때도 철종 때도 역사가 증명해요."
나는 다시 사무실로 돌아와 연표를 만들었다. 윤성열 정권의 주요 사건들과 김건희 여사의 경복궁 방문 시기를 대조했다. 그리고 발견했다. 패턴이 있었다. 중요한 인사 발표 전에는 반드시 경복궁 방문이 있었다. 큰 정책 발표 전에도 방문이 있었다. 심지어 대통령의 해외 순방 전에도. 이건 의전이 아니라 의식이야. 나는 중얼거렸다. 국가 운영이 무속 의식에 따라 이루어지고 있었다. 장관 임명도, 정책 결정도, 외교 일정도, 모든 게 보이지 않는 힘의 지침을 받고 있었다.
한 전직 청와대 관계자가 내게 말했다. "어, 성철이 형, 우리가 아무리 정책 보고를 해도 소용 없었어요. 마지막 결정은 항상 그쪽에서 내려왔거든요." 그쪽이요? 김여사 라인이요? "거기서 '이 날짜는 안 좋다. 이 사람은 기운이 나쁘다.' 이러면 전부 뒤집혔어요." 어, 나는 정부의 주요 정책 실패들을 다시 분석했다. 부동산 정책, 외교 참사, 인사 실패들. 모두 한 가지 공통점이 있었다. 전문가들의 반대를 무시하고 강행됐다는 것. 그리고 그 결정들이 이상한 날짜와 시간에 발표됐다는 건. "전문가보다 무당을 믿었구나." 나는 씁쓸웃음을 지었다. 과학의 시대, 정보의 시대, 인공지능의 시대에 살면서도 권력은 여전히 중세의 논리로 작동하고 있었다.
내 취재 수첩에 나는 이렇게 적었다. "대한민국은 더 이상 공화국이 아니다. 법과 이성이 아니라 점괘와 금기가 지배하는 나라. 대통령은 헌법이 아니라 점쟁이에게 책임을 묻는 나라."
그날 밤 나는 오랜 선배 기자를 만났다. 그는 박정희 시대부터 취재해 온 원로였다. "선배님, 한국 정치에서 무속이 이렇게까지 깊이 들어온 적 있었나요?" 아, 선배는 소주잔을 들이키고 한참을 생각했다. "박근혜 때가 심했지. 최순실이 국정을 농단했잖아. 근데 그건 드러났으니까 끝났어. 이번엔 더 교묘해. 더 은밀하고 더 조직적이야." 왜 아무도 막지 못했을까요? "무서우니까. 권력 핵심에 무속이 있다는 걸 알면서도 누가 감히 건드리겠어? 귀신 얘기한다고 미친놈 취급받기 싫은 거지."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 말이 맞았다. 나조차도 처음엔 믿지 않았다. 음모론이라고 치부하려 했다. 하지만 증거가 쌓였다. 제보가 쌓였다. 패턴이 명확해졌다. 11번의 방문. 다다미방. 숫자에 대한 집착. 점쟁이와의 상담. 어 그리고 감옥에 갈까요라는 질문. 모든 조각이 맞춰졌다. 이건 기사로 끝날 문제가 아니야. 나는 혼잣말을 했다. 이건 한 정권의 문제가 아니었다. 이건 대한민국이라는 국가 정체성의 문제였다. 우리는 과학을 믿는 나라인가, 무속을 믿는 나라인가? 우리는 법치 국가인가, 신탁 국가인가? 우리는 이성의 시대를 사는가? 무속의 시대를 사는가?
나는 창밖을 내다봤다. 어, 서울의 불빛들이 반짝이고 있었다. 저 불빛 아래 수백만 명이 살아간다. 그들은 이 진실을 알고 있을까? 아니면 알고 싶어 하지 않을까? 내 손가락이 키보드 위에 멈춰섰다. 어, 이 기사를 쓰면 나는 많은 것을 이룰 것이다. 권력의 보복을 받을 것이다. 미친놈 취급을 받을 수도 있다. 하지만 쓰지 않으면 나는 기자로서의 양심을 잃는다. 나는 깊게 숨을 들이쉬고 타이핑을 시작했다. "11개의 문이 열렸다. 경복궁에서, 권력의 중심에서, 그리고 우리의 이성 안에서. 이제 우리는 선택해야 한다. 그 문을 닫을 것인가? 아니면 더 많은 문이 열리는 것을 지켜볼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