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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바로 들어가 보죠. 넘버투스 사무실링한 5후시. 당신은 이미 5시에 일을 끝냈습니다. 엑셀 창은 다쳤고 이메일함은 비어 있죠. 근데 왜 아직 의자에 붙어 있나요?
아, 부장님이 아직 퇴근을 안 하셨군요. 그래서 당신은 지금 일하는 척, 일하는 고대 의식을 수행 중입니다. 마우스를 10분마다 한 번씩 미세하게 움직이죠. 스크린 세이버가 켜지는 걸 막기 위해서요. 모니터를 향한 당신의 시선은 너무나도 진지해서 마치 암호 해독이라도 하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사실 당신의내는 저녁 뭐 먹지와 이러다 나만 남는 거 아니난단 거 아냐 사이를 광속으로 오가고 있죠.
이게 바로 30대의 보여주기식 노동입니다. 심리학에서는 이걸 프레젠티즘이라고 부르기도 해요. 몸은 사무실에 있지만 영혼과 생산성은 이미 퇴근한 상태죠. 왜 이럴까요? 간단해요. 당신의 원시적인 뇌는 상사 부족장에게 내 충성심을 증명해야 해라고 소리치고 있거든요. 보십시오. 저는 제 개인의 삶과 메뉴을 희생하며이 자리를 지키고 있습니다. 이건 뭐 거의 생존 본능에 가까운 쇼입니다. 재밌는 건 부장님은 아마 6시에 몰래 나가서 친구들이랑 침맥하고 있을 확률이 90%라는 거죠. 당신은 그저 형광등 아래에서 조용히 광합성을 하며 사무실 화분과 무라일체가 되어 가고 있습니다. 당신의 소중한 30대 저녁이 베이지색 파티션 속으로 사라지는 중입니다.
넘버 인스타용 행복 제조이 자 묻겠습니다. 당신은 오늘 브런치를 먹었나요? 아니면 촬영했나요? 아마 10분은 포크와 나이프의 각도를 조절하고 5부는 아보카도가 가장 예쁘게 나오는 항공 샷을 위해 팔을 쥐가 나도록 뻗었을 겁니다. 총 50장의 사진을 찍었고 그중 49장을 지웠죠. 그리고 가장 자연스러워 보이는 한 장을 고르기 위해 20분을 덧었습니다. 한 주말 여유 탈렌 소학행 안햇살 맛집.이 이 세 개의 해시태그를 고르기 위해 당신의 뇌는 거의 논문 수준의 고뇌를 거쳤습니다.
이게 바로 인상 관리의 정점입니다. 당신은 더 이상 아무게 아닙니다. 당신은 내 완벽한 30대라는 브랜드를 운영하는 홍보 책임자죠. 문제는이 행복을 제조하는 과정이 전혀 행복하지 않다는 겁니다. 당신의 뇌는 좋아요라는 알이 뜰 때마다 아주 잠깐 찰라의 도파민을 분배합니다. 봤지? 사람들이 내 행복을 믿어주고 있어. 난 성공했어.이 신 중독되는 거죠. 이건 마치 스스로를 간지럽히고 억지로 웃는 것과 비슷합니다. 남들에게 보여주기 위한 가짜 행복에 당신의 진짜 감각은 마비되고 있습니다. 그 사이 당신 앞에 커피는 다 식었고 아보카도 토스트는 눅눅해졌으며 같이 간 친구는 당신과 똑같은 짓을 하느라 당신 얼굴을 보지도 않고 있죠. 완벽하게 연출된 거짓말의 비패에서 다들 똑같은 음식만 퍼가고 있는 겁니다.
넘버 7. 영혼 없는 끄덕임 로봇. 회식자리입니다. 방금 부장님이 20년 전에나 웃겼을 법한 끔찍한 아재 개그를 날렸습니다. 정적이 흐르죠. 그때 당신이 나섭니다. 와, 부장님 대박. 당신은 박수를 치며 거의 울부짖을듯이 웃고 있습니다. 당신의 뇌는 알고 있습니다. 이건 거짓말이라는 걸요. 하지만 당신의 사회적 생존 회로가 이미 몸을 장악했습니다.
이게 바로 동조 현상의 노예가 된 30대의 모습입니다. 특히 애쉬의 동조 실험을 생각해 보세요. 사람들은 명백히 틀린 답을 보고도 다른 사람들이 저게 맞아라고 우기면 그냥 따라갑니다. 왜냐고요? 싫으니까요. 30대가 되면이 실름이 거의 세포 수준에 각인됩니다. 저는 위험하지 않아요. 저는이 집단에 잘 융화됩니다.를 증명하기 위해 당신은 기꺼이 당신의 취향, 의견, 심지어 지능까지도 재물로 바칩니다. 친구들 사이에서도 마찬가지죠. 다들 별로라고 하는 영화를 굳이 난 재밌던데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그냥 아, 좀 그렇긴 하더라라며 영혼 없이 동조하죠. 그렇게 당신의 자는 둥글둥글 마모데다 못해 그냥 공이 되어 버립니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공이 아니라 누가 발로 차는 대로 굴러가는 아주 수동적인 공이요.
넘버 9. 명품택배 박스 수직가 월급이 통장을 스쳐 지나갔습니다. 근데 왜 당신은 지금 70만 원짜리 니트를 결제하고 있죠? 나를 위한 선물이야? 아, 그 편리한 마법의 주문. 하지만 정말 당신을 위한 선물일까요? 아니면 남들이 보는 당신을 위한 소품일까요? 당신은 그 니트의 재질이나 따뜻함 때문에 산게 아닙니다. 당신은 왼쪽 가슴에 붙은 그 2, 3차짜리 로고를 산 겁니다. 그 로고가 나는이 정도는 소비할 수 있는 30대다라고 대신 말해 주길 바라는 거죠.
이게 바로 과시적 소비입니다. 당신은 물건을 사는게 아니라 사회적 지위라는 보이지 않는 배지를 사는 중입니다. 30대는이 과시적 소비의 올림픽입니다. 친구가 새로 산 차, 동기가 올린 해외 여행 사진, 옆부서 대리가 맨 그 가방, 모든 것이 당신의 소비 수준을 측정하는 보이죠. 그래서 당신은 무리합니다.이 정도는 써 줘야 무시당하지 않을 것 같거든요. 당신의 뇌는 이성적으로 저축해야 해.라고 외치지만 편도체 불안을 담당하는가? 아니야. 쟤는 저걸 샀는데 여기서 밀리면 끝장이야라며 비상배를 울려댑니다. 결국 당신의 자존감은 텅빈 통장 장어와 현관에 쌓여가는 그럴산 브랜드의 택배 박스 더미와 맞바꿔집니다. 축하합니다. 당신은 방금 남의 시선이라는 아주 비싼 서비스를 연장하셨네요.
넘버 8사행 영의 대상 새벽 5시 알람이 울립니다. 당신의 몸은 천근 망이지만 억지로 일어나 책상 스탠드를 엽니다. 그리고 사진을 찍죠. 미라클 모닝 새벽 공부 하는 자기 개발 축하합니다. 당신은 갓을 사는게 아니라 갓생을 연기하고 있습니다. 30대가 되면서 얼마나 열심히 사는가는 새로운 훈장이 되었습니다. 주말에 퍼져서 넷플릭스를 보는 건 패배자나 하는짓처럼 여겨지죠. 그래서 당신은 당신의 스케줄을 마치 테트리스 블록처럼 1분 1초도 낭비 없이 꽉꽉 채워넣습니다. 아침엔 헬스, 점심엔 외국어 스터디, 저녁엔 독서 모임, 주말엔 원데이 클래스. 문제는 당신이 정말 그걸 원해서 하는게 아니라는 겁니다. 당신은 남들보다 뒤쳐지고 있다지는 공포의 멱사를 잡혀 끌려다니는 중입니다.
이걸 생산성 포르노라고도 하죠. 실제 생산적인 활동보다 나는 이렇게나 생산적이다라고 전시하는 행위 자체에서 만족을 얻는 겁니다. 당신은 사실 그 철학책이 너무 지루하고 원데이 클래스에서 만든 마크함의 따위엔 관심도 없습니다. 하지만 인스타그램 스토리에 올릴 증거 자료가 필요했을 뿐이죠. 보세요. 저는 이렇게나 갓생을 살고 있답니다. 하지만 카메라가 꺼진 뒤 당신은 조명 없는 무대 뒤에서 탈진한 채 주저 앉아 있습니다. 그 연극 도대체 누구를 위한 거죠?
넘버 7 감정 쓰레기통 자원 봉사자 친구에게서 전화가 옵니다. 야, 나 진짜 잠깐만 그 잠깐이 두 시간이 될 거라는 걸 당신은 본능적으로 알죠. 그녀는 또 남자 친구 욕, 회사 상사욕, 그리고 어제 산 신발이 마음에 안 든다는 이야기까지 온갖 부정적인 감정의 폐기물을 당신의 귀에 쏟아붓습니다. 당신은요 아 진짜 대박 힘들었겠다라는 세 개의 버튼만 누르는 AI 책 보시됩니다. 당신도 오늘 회사에서 억울한 일이 있었고 점심에 먹은게 채에서 속도 안 좋습니다. 하지만 당신은 입을 DM띠처럼 굳게 닿습니다. 왜냐고요? 당신은 30대의 착한 사람, 공감, 언제나 들어주는 친구라는 타이틀을 잃고 싶지 않거든요.
이게 바로 피플 플리징의 함정입니다. 타인의 인정과 호위를 얻기 위해 자신의 욕구나 감정을 만성적으로 억누르는 거죠. 당신의 뇌는 저 사람을 실망시키면 나는 버려질 거야라는 원시적 공포에 사로잡혀 있습니다. 그래서 당신은 기꺼이 감정 쓰레기통을 자처합니다. 남의 쓰레기는 열심히 치워주면서 정작 당신의 마음속에 쌓인 쓰레기는 방치하죠. 그렇게 당신의 내면은 악취가 진동하는 거대한 매립지가 되어 갑니다. 재밌는 건 그 친구는 두 시간 동안 자기 할 말만 하고 아, 너랑 얘기하니까 속 시원하다. 고마워라며 아주 가벼운 마음으로 전화를 끊는다는 겁니다. 그리고 당신은 그 모든 감정의 무게에 짓눌려 잠못 이루는 밤을 맞이하게 되죠.
넘버 6. 괜찮아 가면 증후군. 요즘 어때? 지인이 묻습니다. 당신의 대답은 0.1. 1초만에 튀어나옵니다. 어, 나야 뭐 괜찮지 뭐.이 이 괜찮지라는 세 단어 안에 당신은 어제 야근하다 터진 편두통, 이번 달 카드값에 대한 공포, 그리고 왠지 뭐를 공허함을 완벽하게 압축해서 숨겼습니다. 당신은 항상 괜찮은 사람입니다. 30대가 되면서 힘들다고 말하는 건 능력이 없다고 자백하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약점을 보이는 순간이 정글 같은 사회에서 잡아먹힐 것 같거든요.
이게 바로 완벽주의적 자기 제시입니다. 남들에게 나의 취악한 부분, 엉망인 구석을 절대로 들키지 않으려는 발버둥이죠. 당신의 SNS는 완벽합니다. 당신의 사무실 책상은 늘 정돈되어 있습니다. 당신의 표정은 언제나 온화한 미소를 유지하고 있죠. 하지만 퇴근하고 현관문을 닫는 순간 당신은 무대 의상을 벗어 던진 배우처럼 바닥에 주저앉습니다. 그 괜찮은 나를 연기하기 위해 당신의 진짜 감정은 에너지 드링크 캔처럼 찌그러지고 있습니다. 심리학적으로 이건 극심한 정서적 부조화를 유발합니다. 겉으로 표현하는 감정과 실제 느끼는 감정이 다를 때 뇌는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거든요. 당신은 남들에게 저 사람 참 안정적이야라는 말을 듣기 위해 스스로의 내면을 가장 불안정한 전쟁터로 만들고 있습니다. 그 가면 너무 무겁지 않나요?
넘버 겸손한 척 위장하는 자랑질 장인. 아, 나 이번에 승진하긴 했는데 일이 너무 많아져서 죽겠어. 주말에도 불려 나가고 이게 맞나 몰라. 친구들 모임에서 당신이 한 숨을 쉬며 말합니다. 얼핏 들으면 고충을 토로하는 것 같죠? 하지만이 문장의 진짜 속뜻은 이겁니다. 얘들아, 나 승진했다. 너네는 못했지. 나는 이렇게 인정받느라 바쁘다. 축하합니다. 당신은 험블 브레그 즉 겸손을 가장한 자랑의 달인이 되셨습니다.
30대쯤 되면 대놓고 자랑하는 건 교양 없는 짓이라는 걸 합니다. 그래서 당신은 당신의 성과를 불평이나 고민이라는 얇은 포장지로 감사합니다. 피곤해 죽겠다. 어제 와인 새병 마셨더니 나는 비싼 와인을 사병이나 마실 재력이 있다. 우리애가 하도 책을 읽어 달라고 해서 목이 쉬었어. 우리는 천재다. 왜 이럴까요? 우월감은 느끼고 싶지만 재수 없는 사람으로는 보이고 싶지 않기 때문입니다.이 모순된 욕망이 비전엔 아주 기계한 의사 소통 방식이죠. 남들의 시선을 의식하느라 당신은 축하받고 싶은 순간에도 솔직하게 기뻐하지 못합니다. 그저 칭찬과 부러움을 합법적으로 갈취하기 위해 불평하는 연기를 할 뿐이죠. 하지만 듣는 사람들은 바보가 아닙니다. 그들은 당신의 그 어설픈 연기 뒤에 숨은 의도를 정확히 꿰뚫어보고 속으로 생각하죠. 그래서 어쩌라고?
넘버 완벽한 커플 연출과 기념일입니다. 당신은 10만 원짜리 레스토랑을 예약했고 남자 친구에게 선물 인증샷들 찍을 각도를 코치하고 있습니다. 아니 그렇게 말고 이쪽 조명에서 상표가 보이게 찍어야지. 두 사람의 얼굴엔 피곤함이 영역하지만 인스타그램에 올라갈 사진 속에서는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커플처럼 화나게 웃고 있습니다. 랍스타그램 하렌 앤주년 하란 항상 고마워.
이게 바로 30대의 관계 과시입니다. 당신은 지금이 관계를 즐기고 있는게 아니라 전시하고 있습니다.이 관계가 얼마나 이상적이고 낭만적이며 남들 보기에 훌륭한지 증명해야만 직성이 풀립니다. 왜냐고요? 30대가 되면 안정적인 연애 자체가 또 하나의 거대한 스펙이 되거든요. 나는 이렇게 괜찮은 사람과 잘 만나고 있다는 것을 보여 주으로써 나는 정서적으로도 안정된 성숙한 어른이다라는 것을 어필하는 거죠. 문제는이 보여주기 위한 관계에 매몰될수록 두 사람 사이의 진짜 감정은 뒷전으로 밀려난다는 겁니다. 정작 둘만 있을 땐 대화도 없고 서로 핸드폰만 보고 있으면서도 남들 앞에서는 인꼬부 연기를 합니다. 당신의 좋아요는 늘어나겠지만 두 사람 사이의 친밀감은 그 숫자와 반비례하여 줄어들고 있습니다. 그 연극 언제까지 계속할 수 있을까요?
넘버 3. 진짜 나는 버려진 미개봉 박스. 금요일 저녁. 당신의 뇌는 오늘 밤에는 맥주 한 캔 따고 넷플릭스나 볼까라고 속삭입니다. 하지만 당신의 손은 어느새 붉음 댄스 클래스와 주말 새벽 등산 모임 신청 버튼을 누르고 있죠. 당신은 지금 타인의 기대라는 대형 할인 마트에서 진짜 나를 세일 품목으로 내놓고 있습니다. 축하합니다. 당신은 이상적인 30대 여성이라는 패키지에 갇혔습니다.
SNS 속에 그녀들은 늘 활동적이고 취미가 많고 자기 관리도 철저합니다. 그녀들은 주말에 브런치 먹고 필라테스 하고 그림을 그립니다. 절대 집에서 뒹굴거리지 않죠. 문제는 당신이 그녀들이 되기 위해 당신의 진짜 욕망과 취향을 철저히 외면하고 있다는 겁니다. 당신은 사실 새로운 사람과 어울리는 것보다 혼자 있는 걸 더 좋아하고 필라테스보다 맛집 탐방에 더 관심이 많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살면 루저 같아 보일 거야라는 내면의 목소리가 당신을 채찍질합니다.
이게 바로 자기 파괴적 완벽주입니다. 남들의 시선과 인정을 받기 위해 자신의 행복과 만족을 희생하는 행동이죠. 그렇게 당신의 삶은 화려하지만 공허한 전시용 쇼윈도가 되어 갑니다. 수많은 좋아요와 부럽다는 댓글이 달릴수록 당신의 내면에선 나는 지금 행복한가라는 작은 의문이 점점 커져 갑니다. 진짜 당신은 그 화려한 포장지 안에 갇힌 차에 미개봉 박스처럼 먼지만 쌓여가고 있습니다. 언젠가 그 박스를 열어볼 날이 올까요?
넘버 2. 어른스러운 취향 강박증. 20대 때는 깔깔거리며 보던 유치한 예능 프로그램. 이젠 남들 볼까 봐 이어폰을 꽂고 몰래 봅니다. 친구들과의 대화에서는 요즘은 그런 거 볼 시간이 없네. 다큐나보지라고 말하면서요. 30대가 되면 나이에 맞는 취향을 가져야 한다는 이상한 강박에 시달립니다. 시끄러운 록 음악 대신 재즈를 들어야 할 것 같고 달달한 소주보다는 싱글 몰트 위스키를 마셔야 격이 있어 보입니다.
이게 바로 취향의 사회화입니다. 당신은 더 이상 당신이 진짜 좋아하는 것을 기준으로 선택하지 않습니다. 대신이 나이 때에 성공한 어른이라면 마땅히 좋아해야 할 것을 기준으로 선택하죠. 당신은 사실 저녁에 치킨 뜯으면서 웹툰 보고 싶은데 남들이 보기에 그럴싸한 취미를 억지로 즐기려고 합니다. 이건 당신의 취향이 성숙해진게 아닙니다. 그냥 남의 시선이라는 감옥에 당신의 진짜 욕망을 가둬둔 거죠. 당신은 스스로를 어른스러운 사람이라고 포장하지만 사실은 그 누구보다 남의 눈치를 보는 미숙한 사람일 뿐입니다. 진짜 어른은 남들 눈치 안 보고 자기가 좋아하는 예능 보면서 떡볶이 먹을 줄 아는 사람 아닐까요?
넘버. 내내 병 말기 환자 김대리 이것 좀 부탁해. 당신은 이미 오늘 자전까지 해도 못 끝낼 일에 파묻혀 있습니다. 하지만 당신의 입은 뇌를 거치지 않고 자동 응답 기계처럼 말합니다. 아, 네네. 알겠습니다. 왜 거절을 못 하나요?
30대가 되면서 거절은 곧 능력 부족 혹은 팀워크와의 상징처럼 느껴집니다. 저 사람은 노라고 할 줄 모르는 언제나 예신, 든든한 일꾼이라는 평판을 유지하기 위해 당신은 기꺼이 당신의 시간, 체력, 그리고 정신 건강을 재물로 바칩니다. 이게 바로 거절에 대한 공포와 인정 욕구의 끔찍한 콜라보입니다. 당신의 뇌는 거절하면 저 사람이 나를 싫어할 거야. 내 평판이 깎일 거야라는 불안감에 지배당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당신은 모든 사람의 기대를 만족시키려 애습니다. 동료의 업무까지 떠맞고 주말에 잡힌 친구의 이사까지 도와주러 가죠. 정작 당신은 너덜너덜해치는데도 말입니다. 당신은 모두에게 좋은 사람이 되었을지 모르지만 정작 당신 자신에게는 최악의 가해자가 되고 있습니다. 당신의 그네 내네 한마디에 당신의 진짜 삶은 질식사하기 일보 직전입니다.
오늘은 여기까지. 앞으로도 이런 영상 많이 올릴테니까 구독하고 놓치지 마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