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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로 살다 (창 Gen 32:1-21)

웨이코 한인 교회 Korean Church of Waco 47:51

Transcription

우리의 찬송과 기도와 예배를 듣기 합당하신 아버지, 사람인 오늘 거룩한 주일, 저희를 불러주셔서 주님을 찬송하고 예배하고 기도하며 높이는 아름다운 시간을 주셔서 참으로 감사합니다.

1주일의 삶을 돌아볼 때 참으로 부족한 부분들이 많았습니다. 하나님 말씀대로, 하나님 뜻대로 살지 못했던 모든 것을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주님의 보혈의 공로를 의지하고 이 자리에 나와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중에, 회복하게 하여 주옵시고 새로운 구원의 능력을 체험하게 하여 주옵시고, 어느 곳에서 누릴 수 없었던, 느낄 수 없었던, 경험할 수 없었던 주님이 주시는 평강을 오늘 이 시간 경험하는 복된 시간으로 축복하여 주시옵소서.

하나님, 우리 주변에 너무나 어려움을 당하고 있는 우리 형제자매들이 참으로 많이 있습니다. 이 모양 저 모양으로 고통하고 슬퍼하고 낙망할 때에 찾아가 위로하여 주옵시고, 능력의 성령의 능력을 부어 주심으로, 또 치료의 광선을 발아하여 주심으로, 저들이 회복되어지고 치유 받는 놀라운 은혜를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오늘 이 시간 귀한 목사님을 통하여 말씀을 증거케 주시니 감사합니다. 성령의 두루마리를 입혀 주셔서 능력이 있는 말씀이 우리 목사님을 통해서 선포되게 하여 주옵소서. 우리의 마음 밭을 주님께 소프트웨어에 마음 밭으로 만들어 주셔서 그 말씀을 받고 우리의 삶 속에 100배, 60배, 30배의 놀라운 열매가 맺혀질 수 있도록 은혜 베풀어 주시옵소서.

하나님, 또 예배를 돕는 많은 손길들 축복하여 주옵소서. 그 손길을 통하여 주의 영광이 더 깊이, 높이 드러나가시도록 은혜 베풀어 주시옵소서.

하나님, 원근 각처에 또 전 세계에 나가서 복음을 증거하는 선교사님들과 또 주의 종들을 주님께서 붙잡아 주셔서, 저희들의 헌신과 수고를 통하여 하나님의 왕국이, 하나님의 나라가 더 왕성하게, 굳건하게 세워져 갈 수 있도록 은혜에 은혜를 더하여 주시옵소서.

오늘 귀한 헌금 각 치에 또 전 세계에 나가서 복음을 증거하는 의 선교사님들과 또 주에 종들을 주님께서 붙잡아 주셔서, 저희들의 헌신과 수고를 통하여 하나님의 왕국이, 하나님의 나라가 더 왕성하게, 굳건하게 세워져 갈 수 있도록 은혜에 은혜를 더하여 주시옵소서.

오늘 귀한 빈손으로 나오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귀한 예물을 들고 주님 앞에 드렸습니다. 그 삶이 더 복되게 하여 주옵시고, 윤택하게 하여 주옵시고, 하나님 꾸어 주는 삶이 되게 하여 주옵시고, 나누는 삶이 되게 하여 주옵시고, 저희들이 물질의 축복을 통하여 더 많은 섬김과 일에 동참하는 우리 복된 교우들로 축복하여 주시옵소서.

예배 드린 처음 시간부터 마치는 그 시간까지 주님께서 홀로 영광 받아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감사하며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음악]

구약성경 창세기 32장 1절부터 21절까지의 말씀입니다. 구약성경 창세기 32장 1절부터 21절까지 한 말씀을 제가 읽겠습니다.

야곱이 길을 떠나서 가는데 하나님의 천사들이 야곱 앞에 나타났다. 야곱이 그들을 알아보고 이것은 하나님의 군대구나 하면서 그 곳 이름을 마하나임이라고 하였다.

야곱이 돌아오는 길에 사는 형 에서에게 자기보다 먼저 심부름꾼을 보내면서 지시하였다. 너희는 나의 형님에게 가서 이렇게 전하여라. 주인의 종 야곱이 이렇게 아룁니다. 저는 그동안 라반에게 몸 붙여 살며 최근까지도 거기에 머물러 있었습니다. 저에겐 암송아지, 양 때와 염소, 남종과 여종이 있습니다. 형님께 이렇게 소식을 전하여 드립니다. 주님께서 저를 너그럽게 보아 주십시오.

심부름꾼들이 에서에게 갔다가 야곱에게 돌아와서 말했다. 주인 어른의 형님이 아, 형님의 에서 어른께 다녀왔습니다. 그분은 지금 사백 명을 데리고 주인 어른을 치려고 이르러 오고 있습니다.

야곱은 너무나 두렵고 걱정이 되어서 자기 일행과 양 떼와 소 떼와 낙타 떼를 두 때로 나누었다. 에서가 와서 한 때를 치면 나머지 한 때라도 피하게 하겠다는 속셈이었다.

야곱은 기도를 들었다. 할아버지 아브라함을 보살펴 주신 하나님 아버지, 이삭을 보살펴 주신 하나님, 고향 친족의 대로 돌아가면 은혜를 베풀겠다고 저에게 약속하신 주님. 주님께서 주님의 종에게 베푸신 이 모든 은총과 온갖 진실을 이 종은 감히 받을 자격이 없습니다. 제가 이 요단강을 건널 때에 가진 것이라고는 지팡이 하나 뿐이었다 만 뿐이었습니다. 만 이제 저는 이처럼 두 때나 이루게 되었습니다. 부디 제 형님의 손에서, 에서의 손에서 저를 건져 주십시오. 형이 와서 저를 치고 아내들과 자식들까지 죽일까 두렵습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반드시 너에게 은혜를 베풀어서 너의 씨가 바다의 모래처럼 셀 수도 없이 많아지게 하겠다 하시지 않으셨습니까?

그날 밤에 야곱은 거기서 묵었다. 야곱은 자기가 가진 것 가운데서 자기의 형 에서에게 줄 선물을 따로 골라냈다. 양 염소 이백 마리와 수염소 이십 마리, 암양 이백 마리와 수양 이십 마리, 젖을 빨리는 낙타 삼십 마리와 거기에 딸린 새끼들, 암소 만 마리와 황소 십 마리, 암나귀 스무 마리와 새끼 나귀 십 마리였다. 야곱은 이것을 몇 때로 나누고 자기의 종들에게 맡겨서 자기 보다 앞서서 가게 하고, 때와 때 사이를 거리를 두게 하라고 하였다.

야곱은 맨 앞에서 선정한 종에게 지시하였다. 나의 형 에서가 너를 만나서 네가 뉘 집 사람이며 어디로 가는 길이며 네가 끌고 가는 이 짐승들이 누구의 것이냐고 묻거든 너는 그에게 이 모든 것은 모두 주인의 종 야곱이 그 형님의 수하에 드리는 선물입니다. 야곱은 우리 뒤에 옵니다 하고 말하여라.

야곱은 둘째 때를 몰고 떠나는 종과 셋째 때를 몰고 떠나는 종, 나머지 떼를 몰고 떠나는 종들에게도 똑같은 말로 지시하였다. 너희는 에서 형님을 만나거든 그에게 똑같이 말하여라. 그리고 주인의 종 야곱은 우리 뒤에 옵니다 하고 말하는 것을 잊지 않도록 하여라.

야곱이 이렇게 지시한 것은 자기가 이미 여러 차례 보낸 선물들이 그 형 에서의 분노를 서서히 풀어주고 마침내 서로 만날 때에는 형이 자기를 반가이 맞아 줄 것이라고 생각하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야곱은 선물을 실은 때를 앞세워서 보내고 자기는 그 날 밤에 장막에서 묵었다.

다음엔 기도하겠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 아버지, 저희들 야곱의 인생을 계속 돌아보는 가운데 하나님께서 행하신 일들과 또 하나님이 얼마나 신실하게 그에게 의지가 되셨는가를 지켜보고 또한 은혜를 받고 있습니다. 주님은 저희 삶 가운데에도 보호자가 되시고 또 목자가 되신 하나님이심을 우리가 기억하고 감사드리며 또한 찬송 올려드립니다. 오늘 이 말씀 짧은 말씀이오나 저희가 함께 상고할 때에 하나님의 행하신 일들이 야곱의 삶에서 뿐만 아니라 저희 삶 가운데에도 분명히 분별되게 해주시고 야곱이 나아간 것처럼 저희들도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면서 나아가는 거룩한 백성들 되도록 가르쳐 주시고 격려해 주시면 또한 소망을 일으켜 주시옵소서.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지금 우리가 읽은 이 말씀은 야곱의 인생에서 이제 한 챕터, 20년간 하란에서 보냈던 그 챕터가 끝나고 약속의 땅으로 돌아오는 그 시작점을 저희들이 방금 읽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서 고향으로 돌아오고 있는 것이죠.

뭐 저희들이 본 것처럼 라반이 야곱에게서 한 푼도 주지 않고 그냥 고향 땅으로 쫓아 보내려고 했던 것을 하나님께서는 도와주셔서 야곱이 그래도 약속의 땅에서 새 출발할 수 있는 그런 풍성하게 가지고 돌아올 수 있도록 인도해 주셨습니다. 지금 돌아오는 길입니다. 그런데 라반만큼이나 녹록치 않은 사람이 야곱을 기다리고 있는데, 그거 바로 자기의 형 에서죠. 이십 년 전의 일이라고는 하지만 에서의 성격을 생각해보면은 형이 잘못 건드렸다가는 큰일 날 것 같다는 그런 생각도 될 것이고, 또 내가 돌아온다는 것을 알면 나를 어떻게 할까, 들어온 것이 사실입니다. 그래서 야곱이 고향으로 돌아올 때 그 마음이 편치는 않았을 거예요. 이거 도대체 어떻게 해야 될지 알지 못한 상황 가운데서 돌아오고 있습니다.

우리가 창세기 32장을 읽을 때 사실은 1절, 2절을 그냥 지나치기 쉬운데, 야곱이 고향으로 돌아오는 길에서 하나님의 천사들을 만나게 됩니다. 1절에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그렇죠? 하나님의 천사들이 나타났다. 몇 명쯤 나타났을까요? 천사를 모형으로 말하는지 어떤지 모르겠지만 몇 명쯤 나타났겠습니까? 두 명 나타났을까요? 세 명 나타났을까요? 2절에 보면 이것은 하나님의 군대구나, 또는 개정으로 보면 하나님의 군대라고 되어 있습니다. 제가 오늘 아침에 노 집사님한테 물어봤어요. 그래서 캠프라고 돼 있으니까 영어 성경으로는 투 캠프가 있었다. 그렇게 폴트가 캠프, 폴트가 캠프. 그런데 거기 군이 몇 명이나 있습니까? 2만 2천 명이래요. 그럼 그런 식으로 생각해 보자면은 야곱이 본 천사, 군대는 2만 2천 명의 천사들로 구성된 한 캠프가. 그런데 두 캠프로 맞다고 그랬어요. 마하나임은 두 캠프라는 뜻입니다. 그렇게 엄청난 하나님의 군대를 보았습니다. 돌아오는 길에. 그 메시지는 아주 명확하지요. 하나님이 너를 천사들로 지켜줄 것이다 하는 그런 메시지입니다. 마음에 든 하지 않겠습니까, 여러분? 와, 천사가 그것도 볼트도 만한 군대가 두 군대나 나를 위해서 주둔하면서 나를 지켜주는구나. 마음이 든든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3절에 이제 에돔 땅에 이르러서 야곱이 심부름꾼으로 보내서 자기 형한테 제가 돌아오고 있습니다, 고 소식을 전했던 이 그 종이 돌아와서는 6절에 400명을 데리고 오고 있습니다. 이렇게 이겼어요. 그 400명. 자기 동생이 십 년 전에 떠난 동생을 보러 오는데 400명을 데리고 올 이유는 없죠. 그러니까 이거는 아, 이제 죽었다. 아직까지도 잊지 않고 있구나. 아직까지도 나한테 원한을 품고 나한테 진짜 크게 해를 입히려고 지금 군대를 몰고 오는구나 하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7절에 야곱은 너무나 두렵고 걱정이 되었다. 이렇게 얘기합니다. 이상하죠, 여러분? 하나님의 군대를 봤는데, 구약 400명이 온다는 얘기를 듣고 벌벌 떨고 있는 거잖아요. 하나님이 천군 천사로 도와주신다는 말은 들어서는 알고 있지만 크게 너무 걱정이 되고 너무 힘들고 너무 마음이 낙심되고 떨고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의 돌보심이 그렇게 현실적으로 느껴지지는 않기 때문입니다. 눈앞에 있는 어려움이 사실은 훨씬 더 커 보이는 것이 우리 대부분의 사람들이 겪고 있는 연약함이고 또한 어려움입니다.

야곱은 떨고 있어요. 그런데 야곱이 그 소식을 듣고서는 당장의 술을 씁니다. 7절에 보면 너무나 두렵고 걱정이 되어서 일행을 어, 또 자기의 가진 것 모두 소유를 두 때로 나누어서 만약에 한 때를 치면 한 편이라도 살려야 되지 않겠냐 하고 어, 말하자면 꾀를 했다는 것입니다. 굉장히 합리적이지 않습니까, 여러분? 우리가 뭐 그런 얘기 하잖아요. 계란을 한 바구니에 다 넣지 마라. 네 편의 들고 다니다가 그 바구니 하나 도착 거다 깨뜨릴 수 있으니까 바구니 여러 세다가 계란을 분산해서 나서 위험성을 줄이자. 뭐 그런 것이죠. 그게 이런 불확실성 가운데 살 수 있는 합리적인 행동이겠죠. 두 대로 나누어서 한 때라도 살려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근데 그러고 나서 9절부터 야곱의 기도가 나오죠. 그리고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이 기도를 오늘 저희들이 좀 자세히 살펴볼 텐데 기도가 끝나고 나서 야곱은 이상하게도 처음에 자기가 생각했던 계획을 포기한 것 같아요. 처음에는 두 대를 나누고 약 5, 그 에서가 한 때를 치면 남은 쪽을 살리겠다 이렇게 마음을 먹었는데 기도가 끝나고 나서는 때를 세 대로 나눕니다. 그래서 앞에 세대는 에서한테 주는 선물로 구성되어 있고 마지막 때는 나누지도 않고 세대를 선물로 보낸 다음에 마지막에 우리 같아 해설을 보겠다 그렇게 얘기해요. 그러면서 오늘 본문 20절에 보면 맨 마지막에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형이 자기를 반가이 맞아 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렇게 얘기해요. 그러니까 태도가 완전히 바뀐 거죠. 처음에는 나를 죽일 거야 하고서는 두 대로 나누려고 했는데 기도하고 나서는 형이 나를 맞아 줄 거야. 그러고서는 선물을 보내기로 작정을 한 것입니다.

우리의 질문은 그것이죠. 도대체 기도 가운데 무슨 일이 일어났기에 이 사람의 태도가 바뀌었는가? 어떻게 에서가 죽일 거라고 벌벌 떨던 사람이 에서가 나를 받아 줄 거야 라고 마음이 바뀌었는가? 그것이 우리의 질문입니다. 예물을 준비하고 정면 돌파하기로 마음먹은 그 용기와 확신이 기도해서부터 왔다는 것은 분명하게 보입니다. 도대체 이 기도 안에서 어떤 일들이 일어났는가? 그것이 오늘 저희들이 함께 살펴보고자 하는 내용입니다.

그런데 제가 저희가 이 기도를 본격적으로 살펴보기 전에 이 기도에 대해서 제가 몇 번, 몇 가지 말씀을 드려야 되는 부분이 있습니다. 야곱의 기도, 여기 기록된 야곱의 기도는 창세기에 기록된 기도 중에서 가장 긴 기도입니다. 여러분, 굉장히 짧아 보이시죠? 그렇죠? 뭐 9절에서부터 12절까지, 뭐 단지 네 절에 불과한 기도인데 사실은 창세기 전체에 나오는 기도 중에서 가장 긴 기도입니다. 그리고 야곱의 인생에서는 첫 번째이자 마지막으로 나온 기도입니다. 그러니까 창세기에서 이게 가장 긴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창세기 한복판에다가 야곱의 기도를 주신 것은 이 기도를 통해서 우리에게 무언가를 가르치고자 하셨다, 하시겠다는 그런 의도를 저희들이 간파할 수 있는 것이죠. 또 야곱의 인생 전체를 생각해보면 20년 동안 하나님께서 야곱을 객지에서 고생하게 하시면서 믿음의 사람으로 만드셨는데, 그 믿음의 사람이 된 결과가 무엇인지를 우리에게 보여주는 증거이기도 하다 이렇게 볼 수 있습니다. 말하자면 야곱을 다루신 하나님은 야곱을 기도의 사람으로 만드셨다 하는 것이죠.

사실 여러분, 영적인 삶을 참으로 영적으로 만드는 것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사실 기도입니다. 기도. 이외의 모든 종교적인 활동들, 신자가 아니라도 할 수 있습니다. 그렇죠? 어, 성경 가르치는 학자들 중에 불신자들을 많이 있습니다. 여러분, 심지어는 타 종교 사람도 있습니다. 예수를 믿지 않아도 성경을 가르칠 수가 있어요. 예수를 믿지 않아도 성경을 연구하고 공부할 수 있습니다. 예수를 믿지 않아도 예배에 참여할 수 있어요. 예수를 믿지 않아도 봉사활동 가자고 하면 아, 우리 청년들 중에 예수 안 믿는 애들도 따라옵니다. 그렇죠? 예수를 믿지 않아도 또 헌금도 할 수 있습니다. 예수 믿지 않지만 내가 이 교회에 나와서 좋은 말씀 듣기 때문에 아, 그래도 뭔가 컨트리뷰션 해야지 하고 헌금할 수 있어요. 그러나 예수 믿지 않는데 기도할 수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예수 안 믿는 사람들, 하나님의 실재를 알지 못하는 사람들한테는 기도야말로 이상한 일이거든요. 왜 앉아서 중얼거리냐? 왜 헛된 시간을 낭비하고 있냐? 터치 포스 한다고 무슨 일이 일어나냐? 전혀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기도할 수 없습니다.

영적인 삶, 영적인 일을 참으로 영적으로 만드는 것은 사실은 성동도 아니고 무슨 점도도 아니고 예배에 참석하는 것도 아니고 십일조를 내는 것도 아니고 사실은 기도입니다. 그래서 20년 후에 돌아온 야곱의 참모습을 하나님께서는 기도하는 사람으로 여기에다 딱 박아 놓으신 것이죠. 동시에 영적인 삶은 기도를 거치지 않고서는 불가능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읽을 때 기도하지 않으면 그 두 눈이 열리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되는 예배 자리에 나왔는데 기도하지 않는다면 그 예배가 자기에게 아무런 은혜가 되지 않습니다. 교회의 여러 가지 활동을 하지만 기도하지 않으면 그 기쁨으로 감당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영적인 삶이라는 것이 기도하지 않고서는 사실은 불가능한 것이다 저희들이 알 수 있죠.

지난 뭐 1년 조금 넘게 코로나 상황으로 인해서 많은 교회들의 참 어려운 그 시절을 거쳐 왔는데 저희 교회도 뭐 별 다르지는 않습니다. 우리가 믿음의 있어서도 뒷걸음치고 또 후퇴했다면 앞으로 언제 코로나도 끝나면서 우리 마음 새롭게 하고 또 다시금 어 믿음의 자리로 나와야 될 텐데 그 첫걸음이 어디가 되어야 되겠는가. 이렇게 믿음의 회복은 사실은 기도의 자리로 나아가는 데 있죠. 그래서 오늘 야곱의 이 기도를 보면서 이 안에서 일어난 세 가지를 저희들이 살펴보고자 하는데요. 그것은 하나님의 임재, 또 찬송, 그리고 내면화. 그 세 가지입니다. 이 아침에 영어로 설교할 때는 이게 좀 쉽습니다. 왜냐하면 Presence, Praise, Personalization 하고 피로 다 시작했거든요. 하나님의 임재를 구하고, 하나님의 이름을 찬송하고, 하나님의 약속을 내면화하는 것. 그게 이제 이 저희들이 야곱의 기도를 통해서 살펴보고자 하는 것입니다.

첫 번째로는 하나님 앞으로 나아가는 하나님의 임재를 구하는 것. 그것이 기도 안에서 가장 먼저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기도가 뭐냐, 여러 가지로 지금 저희들이 정의할 수 있겠지만 살아계신 하나님 앞으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살아계신 하나님 앞으로. 그 말이 중요합니다, 여러분. 우리 기도의 자기 기도를 잘 생각해 보시면 제가 이 말씀을 몇 주 전에도 들었는데 190% 정도는 달라는 기도입니다. 90%. 한번 여러분이 프레이어를 하시고 나서 내가 뭘 기도했지 하고서는 한번 적어보세요. 그러면요, 진짜 90%, 어떤 때는 100% 여러분의 그 이익을 위해서 하나님 앞에 간구하는데 그 때가 상당히 많이 있습니다. 그게 잘못된 것은 분명히 아닙니다. 네, 기도라는 것은 사실 구하는 것이 맞죠. 그런데 여러분, 구하기 이전에 기도는 살아계신 하나님 앞으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그냥 말하는 게 아니에요. 하나님께 말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기도할 때는 살아계신 하나님을 먼저 구해야 되는 것이죠.

야곱이 오늘 9절에서 기도를 이렇게 시작했습니다. 할아버지 아브라함을 보살펴 주신 하나님 아버지, 이삭을 보살펴 주신 하나님, 또 제게 고향 친족의 대로 돌아가면 은혜를 베풀겠다고 약속하신 하나님. 그렇게 얘기했어요. 야곱에게는 하나님이 살아계신 하나님일 뿐만 아니라 우리 할아버지도 지켜 주셨고 우리 아버지도 지켜 주셨고 나와도 동행하고 계시는 그 하나님. 이렇게 얘기했다는 말이야. 기도하기 기도할 때에 하나님 앞에서 하고 있지 않다면 그것은 기도가 아니라 독백입니다. 내가 혼잣말 하고 있는 거예요. 그래서 여러분, 기도를 하신 다음에 마음이 허하다 그럴 때가 있으시죠. 분명히 이게 도대체 내 혼잣말 하는 건지 아닌지 알 수 없는 그런 기도. 그건 안 여러분이 그 기도 가운데서 하나님의 얼굴을 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살아계신 하나님 앞으로 나아가면 기도가 허망하지 않아요. 그러면 하나님이 없이 기도하면 그 기도는 벽에다 때려낸 기도거나 아니면 자기 혼자 하는 혼잣말이 되기 때문에 기도를 하고 나면 늘 허무합니다. 내가 도대체 뭐 하는 거지? 그런 생각이 들어. 왜냐하면 아무런 소통이 거기에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실은 우리가 기도할 때 잠깐 멈춰야 돼요. 아무리 마음이 답답해서 지금 쏟아내야 되겠다는 마음이 들어도 내가 누구 앞에 서 기도하고 있는지, 그리고 내 기도를 듣고 계시는 그 분은 누구이신지를 여러분은 먼저 생각하시고 검색하셔야 됩니다. 그게 Presence, 하나님의 임재를 구하는 것. 기도와 주문이 뭐가 다릅니까, 여러분? 해리포터라는 뭐 그런 영화를 보면 주문을 외우잖아요. 그래서 어떤 신기한 일들을 해야 한단 말이죠. 주문은 그 주문을 정확하게 그리고 첫째 적소에 말할 수 있느냐가 관건입니다. 그래서 해리포터에는 뭐 마술사 학교에서 부추 문을 어떻게 잘 얘기할지를 막 연습을 하잖아요. 그게 주문이에요. 주문 자체를 어떻게 말하느냐에 그 능력에 달려 있는 것이죠. 그러나 기도는 주문과는 전혀 다릅니다. 기도는 어떻게 말해야 되는지 자체에 대한 거기에 기도의 능력이나 기도의 실제가 달려 있지 않습니다. 기도의 실제는 거기에 하나님의 계시느냐 거기에 달려 있어요.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가 중요한 것이 아니고 이 기도를 하나님께서 들으시는 응가, 내가 하나님 앞에서 기도하고 있는가, 거구 계시. 그게 중요한 거죠.

그래서 기도할 때 살아계신 하나님 앞으로 나아가셔야 합니다. 하나님의 얼굴을 찾으세요. 하나님, 하나님이 누구인지를 먼저 생각하시고 고백하세요. 그때 주님께서는 여러분의 마음 가운데 듣고 있다 그 은혜를 베풀어 주십니다. 어떻게 하나님께서 우리 가운데 거하시느냐? 에베소서 3장 17절에 보면 믿음으로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거하시고 이렇게 되어 있어요. 믿는 자, 믿는 자 안에 하나님께서 거하신다는 얘기죠. 히브리서 11장 6절에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그가 계신 것과 그가 자기의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이렇게 해줬습니다. 그럼 믿는 거예요. 하나님이 그냥 계시다가 그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내 기도를 듣고 계시고 도우시는 하나님으로 내 앞에 계신다, 나와 함께 계십니다. 그것을 믿고 또한 그렇게 기도하는 자를 기뻐하셨다 서 상 주실 거야. 그걸 믿으면 하나님이 여러분과 함께 계시다는 것이죠.

오늘 아침에 제가 아, 오늘 하루를 위해서 기도하고 또 예배를 위해서 기도하면서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기도하면서 그 잠깐 비가 왔잖아요. 아침 비가 참 감사하더라구요. 아, 텍사스 날씨가 완전히 변했는지 하나님께서 때때로 이렇게 비를 주셔서 늘 조물 값도 안 들이고 참 좋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 하나님 비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런데 비를 생각해보니까 잔디밭도 생각나고 또 앞마당, 집 마당에는 아무도 생각나고 또 비구름도 아름답고 하늘도 아름답지 않아요. 여러분 생각해 보면 우리는 하나님이 창조하신 것을 둘러싸여 있습니다. 그 둘러싸여 있는데 하나님이 친히 지으신 피조물들로 둘러싸여 있는데 하나님이 그것들을 지으셨다는 것을 믿지 않으면 그럼 그냥 당연한 것들이죠. 산이 원래 있는 것이고 물은 그냥 있는 것이고 산은 산이로다, 물은 물이로다. 뭐 이렇게 할 거예요. 그러나 하나님이 모든 것을 지으셨습니다. 믿는다면 사실은 그 모든 피조물들이 우리한테 증거하는 거잖아요. 하나님이 나를 지으셨다. 하나님이 이 모든 것들 지으셨다고. 하나님의 창조주 되심을 우리한테 증거하는 것이 되죠. 안 믿을 수가 없어요. 그 하나님을 기도 가운데 찾으십시오. 여러분의 기도가 독백이 아니라 살아계신 하나님 앞에 말하는 것으로 주님 앞으로 깊이 먼저 나아가세요. 여러분이 급한 사정을 쏟아 놓기 전에 그게 첫 번째입니다.

두 번째, Praise. 하나님의 성품을 또 일하심을 생각하고 높이는 것입니다. 오늘 야곱이 본문 10절에 이렇게 얘기합니다. 주님께서는 주님의 종에게 베푸신 이 모든 은총과 진실을 이 종은 감히 받을 자격이 없습니다. 그러면서 자기 인생을 회고해요. 제가 이 요단을 건널 때는 지팡이 하나 밖에 없었는데 지금은 시처럼 두 때나 이르게 되었습니다. 미국에 처음 올 때는 진짜 돈 없고 가난하고 어떻게 살지 막막하고 그랬는데 지금 십 년 지나고 20년이 지나고 30년 지나서 보니까 아, 그래도 하나님께서 어찌어찌 살게 해 주셨군요. 아, 그리고 지금 기억 볼 때 또 전부를 건너올 때보다 훨씬 나아졌구나. 그런 생각들 하시죠, 여러분? 그런데 야곱은 자기 인생 20년을 돌아보면서 그것을 그냥 그렇게 기술한 것이 아니고 두 개의 단어로 요약했습니다. 그것을 은총과 진실. 그렇게 요약했어요. 크게 중요합니다, 여러분. 나한테 일어난 일을 기억하고 거기서 하나님이 누구신지를 생각해 낸 거죠. 그 은총과 진실이라는 말. 히브리어는 헤세드 와 에메트입니다. 헤세드는 여러분이 아시는 분들도 계시겠지만 변함없는 은혜를 얘기하죠. 흔들림 같은 사랑을 헤세드라고 해요. 하나님이 한결같이 이십 년 동안 나를 다 주셨다. 그리고 에메트는 사실은 진리라고도 번역되는 말입니다. 하나님이 자기 말에, 자기 약속에 한 치도 어긋남 없이 행하셨다. 교육입니다. 이십 년 전에 벧엘에서 만난 그 하나님이 그 말씀대로 나를 지금껏 인도해 주셨다. 그것을 두 단어로 요약했어요. 하나님은 헤세드 와 에메트입니다. 그게 하나님을 높이는 방법이에요, 여러분.

여러분이 기도하실 때 아무리 급해도 지금 야곱은 급한 상황이죠. 뭐 자기 인생을 회고하고 하나님께 찬송을 드리고 그럴 시간이 없어요. 그러나 거기서 멈추는 거예요. 네 급한 사정을 얘기하기 전에 하나님이 나를 어떻게 인도하셨는지를 기억하고 하나님이 누구이신지를 거기서 고백하고 하나님은 은혜의 하나님, 하나님은 진실의 하나님. 그게 Praise, 하나님의 하나님을 높이는 것. 내가 만난 하나님을 그렇게 야곱이 고백한 것이죠. 이때 사람들이 이대 사람들의 그 격언에는 그런 얘기가 있다고 해요. 우리는 뒤를 보면서 앞으로 나간다. 우리가 대대로 이렇게 저는 거 보시면 배가 앞으로 나아갈 때 그 앞을 보고 배가 가는 게 아니잖아요. 길을 보면서 노를 젓자 나요. 유대인들이 앞으로 나아가는 것을 하나님이 우리에게 행하신 과거의 은총들을 보면서 앞으로 나아간다 고 생각했어요. 기도는 사실 그런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 삶에 행하신 일들을 기억하면서 그분의 행하신 그 은총을 높여 드리고 그렇게 함으로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거예요. 그게 없으면 앞으로 못 나가요. 그게 없으면 오늘 어떻게 이 위기를 모면할까? 그래서 두 때로 나눌까, 세 때로 나눌까? 이런 잘게 나버리고 있지 앞으로 나아가지를 못해요. 왜 기다리다 탕 하지. 그러나 하나님이 어떻게 행하셨는가를 기억하면 그래서 그 하나님은 은혜 다니며 진실의 하나님을 우리가 고백할 수 있다면 그 사람은 앞으로 나아갈 수 있어요.

그뿐이 아닙니다. 야곱이 오늘 10절 말씀에서 그 하나님을 찬송하면서 이 좋은 감히 받을 자격이 없습니다. 그렇게 얘기해요. 여러분, 사람이 겸손해지기. 기독교의 가장 중요한 덕목 중의 하나가 겸손이라고 하는데 스스로 겸손하려고 아무리 발버둥쳐도 겸손해지지 않습니까? 어떤 때 겸손해지는가? 하나님을 지극히 높은 사람만 겸손할 수 있어요. 자기 스스로 겸손하려고 아무리 발버둥쳐도 다른 사람들 다 알아요. 저거 하거다 누가 진짜 겸손한 사람입니까? 사람들은 스타일상 자기 성격 싸움했던 사람을 괄괄하다고 하고 어떤 사람은 괜히 자랑을 많이 하는 것 같기도 하고 그래서 교만하게 보이고 높이 보이지만 하나님 눈에 진짜 겸손한 사람은 그런 스타일과 상관없이 하나님을 얼마나 높이느냐 거기에 달려 있어요. 하나님을 높이면 높일수록 나는 작아지게 되어 있는 거예요. 하나님, 저같이 자격이 없는데 이렇게 은혜 베풀어 주십니까? 그 사람이 진짜 겸손한 사람이죠. 그래서 기도하는 사람만 진짜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는 사람, 하나님의 은총을 높이는 사람만 진짜 겸손할 수 있는 거예요. 기도하지 않고서 겸손할 수 있는 방법이 없죠. 하나님의 은혜가 크게 보이는 만큼 나는 작아 보이는 게 당연합니다. 그 사람은 하나님, 제 잔을 채우셨습니다 하고 함께 찬송하고 경배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 기도할 때 살아계신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고 하나님의 행하신 일들을 보면서 그분의 은총을 찬송하고 그게 두 번째요. 그때의 진짜 하나님을 알게 돼요. 공부한다고 하나님 아는 것이 아닙니다. 또 분석한다고 해서 하나님을 아는 것도 아니죠. 신자가 하나님을 아는 자리는 어디냐면 하나님을 높이는 자리입니다. 하나님을 찬송하는 자리에 거기서 진짜 알아요. 그래서 여러분 기도하실 때 그 목사님, 그 목사님이 날 수 있지. 저는 그렇게 하나님을 찬송 잘 못하겠어요. 그러잖아요. 아, 찬송가 끼세요. 찬송가 피지. 그 찬송을 부르세요. 왜냐하면 그 찬송의 가사들은 다 하나님을 높이는 것이기 때문에 기도가 막히시거든. 찬송가를 피고 그 찬송을 부르시면서 하나님이 이것이 주님께 드리는 제 찬송입니다 하고 고백하세요. 그러면 주께서 여러분과 같이 계시는 것을 아실 것입니다.

세 번째로 맨 마지막에서 11, 12절에서 야곱이 이렇게 기도합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반드시 너에게 은혜 베풀어서 너의 씨가 바다의 모래처럼 셀 수도 없이 많아지게 하겠다 하시지 않으셨습니까? 천군 천사를 보았는데 400명 때문에 두려워하였죠. 천지를 지으신 하나님이 내 아버지다 라고 믿고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사람이 오는 것 때문에 두려워하는 것이 우리의 연약함 아니겠습니까?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왜 그렇게 압도될까요? 왜 그렇게 상황에, 왜 그렇게 곤경에 우리 마음이 다운되고 무너질까? 믿음이 없기 때문입니다. 시름 믿음이 없기 때문이에요. 사실이오. 히브리서 4장 2절 말씀 제가 전에도 나눈 적이 있는데 이렇게 말씀합니다. 그들과 같이 우리도 복음 전함을 받은 자이나 들음 바 그 말씀이 그들에게 유익하지 못한 것은 듣는 자가 믿음과 결부시키지 아니하니라. 다 복음의 말씀을 들었고 다 하나님의 말씀을 읽습니다. 또 다 하나님의 말씀을 공부해요. 그런데 어떤 사람은 그 말씀으로 부터 유익을 받고 어떤 사람에게는 그 말씀이 전혀 유익이 되지 않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믿음으로 받아들이지 않았기 때문에. 아, 이게 무슨 얘긴지 알겠다고 그 친구 내는 거예요. 사실은 끌어당겨서 내 마음 가운데 심지 않고 앉게 릇 레일을 이렇게 할 수 있잖아요. 그런데 그 말씀이 진짜 우리에게 유익이 되기 위해서는 아이 계를 탈 것이 아니고 아이 빌리브. 그렇게 얘기해야 돼요. 제가 믿습니다. 그런데 믿는다는 게 뭡니까? 사실은 그 믿는 것은 기도 안에서 시작되는 것이죠.

오늘 야곱이 하나님 앞에 12절에서 에서의 손에서 저를 건져 주십시오. 저는 두렵습니다. 그렇게 얘기했어요. 그런데 그 사람 야곱이 한 가지 잊지 않고 얘기한 것이 하나님께서 이렇게 약속해 주셨잖아요. 그렇게 얘기했어요. 말하자면 80 말라 있었습니다. 이 말씀 주실 때 제 인생을 위해서 주셨잖아요. 그래서 클레임 했어요. 그 약속을. 여러분 기도할 때 조금 더 담대하셨으면 좋겠어요. 마치 거지가 한 푼 줍쇼 하듯이 하나님께 그렇게 구걸하지 마시고 그 하나님과 앉아 하세요. 왜냐하면 내가 너를 거지로 만든 적이 없는데 내가 너를 자유로 삼았는데 왜 거지 같이 구걸하냐. 클레임 하세요. 그런데 아무렇게나 클레임 할 것이 아니고 저희 거 패러. 그렇게 클레임 할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이렇게 약속하지 않았습니까? 하나님이 우리에게 이런 말씀으로 소망 주시지 않았습니까? 그렇게 클레임 하는 거예요. 그래서 그것을 가지고 담대하게 하나님 앞으로 나아갈 수가 있어요. 여러분은 그리스도의 보혈로 인해서 이미 씻겨진 사람들이고 하나님이 받아들이시기로 이미 작정하시고 받아주신 사람들이에요. 자녀로서 하나님 앞에 주님의 말씀을 들고 나갔어요. 그래서 저는 아, 아침에 성경 읽고 이 말씀이 우리 마음에 왔다면 그 말씀을 손가락으로 짚으면서 기도하셨으면 좋겠어요. 하나님이 이렇게 말씀 하셨네요. 이렇게 해주세요. 그 믿음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합니다. 그게 야도 너무 좀 많이 얘기하는 것 같다. 그렇게 말씀하시지 절대 않으세요.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고자 하신 말씀이고 우리를 복되게 하시고자 주신 것이기 때문에 그 말씀을 손으로 지프시고 클레임 하세요. 주님이 이렇게 말씀하셨잖아요. 아, 그게 내면화죠. Personalization. 기록된 말씀을 내게 주시는 말씀으로 믿는 것입니다. 딱 오븐 그 하나님의 약속을 부드럽게.

네, 여러분 이 기도가 모델 풀어야 하는데 그렇죠. 하나님이 야곱이 진짜 기도 잘했어. 자, 내가 이제 너한테 응답해 줄까? 뭐라고 말씀을 하셨나요?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다. 그렇죠? 하나님이 뭐라고 말씀하셨다? 응답할 수 있다. 이렇게 되어 있지 않습니다. 그 이유가 뭘까요? 이 정도 되면 하나님께서 다시 천사로 딱 나타나셔서 갖고 야곱아, 내가 다 해결해 줄게. 이렇게 말씀해 주시면 참 좋을 것 같은데 그렇지 않단 말이죠. 사실은 야곱이 기도하기도 전에 이미 응답하신 것입니다. 12절 말씀이 그래요. 하나님이 세세하게 그때마다 야곱아, 내가 해줄게. 어, 내가 해결해 줄게. 이렇게 대답하지 않으시고 12절 말씀과 같이 말하자면 백지수표를 저희들에게 주십니다. 그게 뭡니까? 내가 반드시 너에게 은혜를 베풀어서 너희 씨가 바다의 모래처럼 셀 수 없이 많아지게 할 것이다. 그 안에 이미 응답이 있어요. 그 안에 있다고요. 그래서 그 응답을 내가 기도하기도 전에 주신 응답을 내 것으로 Personalize 해서 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그냥 수표를 받고 쓰지 않는 거나 다름이 없게 되는 것이죠.

야곱이 깨달은 거예요. 하나님이 이미 이제 자손으로 하여금 바다의 모래처럼 셀 수 없이 많게 하시겠다고 약속하셨다면 에서가 나를 해야 할 수 있겠는가? 없죠. 그래서 깨달았어요. 아, 이거 정면 돌파할 수 있겠다. 에서가 나를 용서해 주겠다. 깨달았어요. 하나님이 구하기도 전에 이미 약속하셨다. 그렇게 해서 마음의 평화가 왔습니다. 그래서 두 때로 나누어서 확률 게임 하려던 것을 포기하고 선물을 보내고 정면 돌파하겠다고 그렇게 바꿉니다. 에서를 만났어요. 우리가 입증 안았지만 에서가 400명을 데리고 왔을 때는 에서도 이차 식 한데 내가 크게 한번 본때를 보여 줘 하지 않고 분명히 왔을 것입니다. 그런데 에서를 만났는데 에서가 목을 끌어안고 울어요. 어떡해 보면 야곱보다도 훨씬 더 나은 사람처럼 보이잖아요. 단순하고 큰 방 용서해주고. 근데 여러분 생각해 보십시오. 400명을 데리고 왔을 때는 마음속에 아기 가득했을 거예요. 어떻게 해서가 마음이 풀어져 있는가? 돈 때문이다. 이 선물 때문이라고 생각하신다면 그 하나님을 전혀 모르시는 분입니다. 하나님이 그 마음을 만지셨구나. 하나님이 야곱을 살리기 위해서 야곱에게 작정하신 것을 이루기 위해서 에서의 마음을 주님께서 부드럽게 해 주셨구나. 그것이 이 본문이 가르치는 것입니다.

오늘 여러분 주보에 보시면 시편 32편 6절에 말씀을 아 6절에 말씀이 거기에 있습니다. 한번 보시죠. 이로 말미암아 모든 경건한 자는 주를 만날 기회를 얻어서 주께 기도할지라. 진실로 홍수가 범람할지라도 그에게 미치지 못하리라. 모든 경건한 자, 하나님의 자녀들도 하나님의 백성들은 주를 만날 기회를 얻어서. 기회가 언제입니까? 이 이름을 부를 때는 언제나 그 기회가 있습니다. 주께 기도할지라. 어떻게 된다고요? 진실로 홍수가 범람할지라도 그에게 미치지 못할 것이다. 이 말씀을 믿으십시오. 이 말씀을 붙들고 기도하세요. 기도하라 고 하셨으니 기도하겠습니다. 홍수가 범람할지라도 내게 미치지 못할 줄을 믿습니다. 그것이 신자가 이 세상 가운데에서 세상이 알 수 없는 평화, 세상이 알 수 없는 담대함을 가지고 사는 비결이죠. 주님 앞으로 나아가십시오. 살아계신 하나님 앞으로 나아가세요. 그가 하신 일을 주님 앞에서 말씀하시고 찬송하십시오. 그리고 그가 하신 말씀을 클레임 하세요. 그때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계시고 참으로 홍수가 범람할지라도 여러분에게 미치지 않을 줄로 믿습니다. 기도하겠습니다.

주님, 우리의 창매와 미래는 다 주님 손에 달려 있습니다. 우리 걸음을 주장하시는 분도 하나님이시고 우리의 길을 내시는 분도 하나님이십니다. 우리 생각을 주장하시는 분도 주님이시고 우리 마음속에 어떤 일에 대한 디자이어를 주시는 분도 하나님이십니다. 그 하나님과 동행할 수 있도록 하나님 앞에 나아가도록 하나님 앞에 무릎 꿇도록 저희의 생각을 주장하여 주십시오. 저희들이 한 교회로 만나서 주님을 예배하고 섬기고 있고 또 주님 앞에 사회를 소원하는 그런 마음이 있습니다. 여러 가지 상황으로 뒷걸음질쳤다면 다시금 기도의 자리로 나아갈 수 있도록 인도해 주시고 그 하나님 얼굴을 배웠고 주님을 영화롭게 하는 하나님 나라의 귀한 일꾼 되도록 도와 주시옵소서.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이제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극진하신 사랑과 성령의 교통하심이 주 앞에 무릎 꿇고 제 얼굴을 구하는 백성들 가운데, 그 가족들과 일터 위에 이제와 영원토록 함께 하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아멘.

[음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