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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말씀 창세기 42장 13절로 17절 말씀입니다. 성령께서 기록하신 거룩하신 말씀입니다.
그들이 이르되 당신의 종 우리들은 형제로서 가나안 땅 한 사람의 아들들이라. 막내 아들은 오늘 아버지와 함께 있고 또 하나는 없어졌나이다.
요셉이 그들에게 이르되 내가 너희에게 이르기를 너희는 정탐꾼들이라 한 말이 이것이니라. 너희는 이같이하여 너희 진실함을 증명할 것이라.
바로의 생명으로 맹세하노니 너희 막내 아우가 여기 오지 아니하면 너희가 여기서 나가지 못하리라. 너희 중 하나를 보내어 너희 아우를 데려오게 하고 너희는 갇히어 있으라. 내가 너희의 말을 시험하여 너희 중에 진실이 있는지 보리라. 바로의 생명으로 맹세하노니 그리하지 아니하면 너희는 과연 정탐꾼이니라 하고 그들을 다 함께 사흘 동안 가두었더라.
아, 정탐꾼으로 몰린 형제들이 변명을 합니다. 그리고 그 결백함을 증명하죠. 그 내용이 13절입니다. 아, 그들이 이르되 당신의 종 우리들은 12 형제로서 어, 가나안 땅 한 사람의 아들들입니다. 막내 아들은 오늘 아버지와 함께 있고 또 하나는 없어졌습니다. 12 형제인데, 예. 막내 아들은 오늘 아버지와 함께 있고 어, 또 한 명은 그 한 사람은 없어졌습니다. 이게 그 정탐꾼으로 몰린 그 형제들에 대한 "우리는 결백합니다"라는 것에 대한 변명이고 증명이었습니다.
그러자 14절에 보니까요. 요셉이 뭐라고 말하냐면, 요셉이 그들에게 이르되 내가 너희에게 이르기를 너희는 정탐꾼들이라 한 말이 이것이니라. 오히려 어이 결백을 주장하는 이 말을 오히려 요셉은 정탐꾼인 것이 너희가 한 이 말이 확증한다라고 어 오히려 더 몰아세우죠. 왜 그럴까요? 어, 지금 음, 자신들이 그 12 형제라고 말을 해요. 12 형제이고 그리고 하나는 막내 아들인데 지금 아버지와 같이 있고 하나는 없어졌다. 아, 그러니까 지금 몇 명인 거예요? 애굽에 내려온 숫자는 10명입니다. 지금 이 애굽 세상이라는 곳에 내려온 자들이 그 열 명이기 때문에 정탐꾼들이라 이렇게 얘기하는 거예요. 성경에서 어 그 열이 말하는 그 숫자의 의미는 우리가 10계명에서 열이 말해 주는 것처럼 율법의 숫자입니다. 10은 율법의 숫자예요. 그러니까 어 지금 우리가 12 형제인데에 막내 아들은 아버지와 있고 하나는 없어져서 우리가 지금 열 명이 지금 내려왔습니다. 이렇게 말한 것이 요셉이 그러니까 너희가 정탐꾼이라는 거다. 하나님 나라를 엿보고 있는 자들이고 땅의 나라에 여전히 속해 있는 너희는 정탐꾼이다. 그 말이 예, 그렇게 얘기하는 거죠. 그러니까 어, 예. 여전히 그 율법이라는 것을 통하여서 어 양식을 얻고자 하는 그런 모습으로 지금 비춰지는 거예요.
그 결국은 어떠하냐? 어 17절이죠. 그 결국은에 그들을 다 함께 사흘 동안 가두어 버립니다. 율법 아래 있는 자, 그리고 결국은 자신의 그 신앙 행위로 구원을 얻고자 하는 자들은 이렇게 철저하게 심판의 감옥에 갇힙니다. 어, 이 모습을 설명하는 거예요. 여기 3일이라는 동안 갇혀 있죠. 이 3일이 뜻하는 것은 그 그 율법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그 절망, 그것을 뼈저리게 그 죽음을 경험하는 시간입니다. 3일.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왜 3일 동안 어 무덤에 갇히실까? 예수 그리스도는 율법의 완성이고 마침이십니다. 그 율법의 저주를 받아 죽으시는 죽음이었어요. 그러니까 그 3일이 뜻하고 있는 바가 그런 거죠. 율법과 관련된 3일입니다.
그러니까요. 저와 여러분의 구원의 출발점에 대한 인식은 이것이어야 돼요. 예. 많은 사람들이 나는 구원받았다라는 것에 대한 구원의 확신, 내지는 구원의 점검을 어디로부터 시작해야 되냐면 어 난 감옥에 갇혔다로부터 인식이 돼야 돼요. 하나님이 율법을 통해서 우리를 감옥에 가두었습니다. 율법을 주신 이유는 이 3일이라는 우리 안에 그 하나님의 심판 아래 우리는 갇힌 자다. 하나님의 심판 아래 있다라는 것을 보여 준 거예요. 그러니까 구원의 출발점은 여기서부터예요. 나는 감옥에 갇혔다. 그걸 어떻게 알게 돼요? 도덕과 세상의 윤리로 하나님의 심판 아래 있었다. 이런 식 안 돼요. 그런 거 아니고요. 하나님의 말씀이 율법이라는 것을 통하여서 내가 하나님 앞에 영원히 저주받아 심판받을 존재다라는 것을 인식함입니다. 내 힘, 힘으로는 결코 이 감옥에서 빠져나올 수 없는 영적 파산자다. 이게 구원의 출발이에요. 나는 내 영적 실상을 보고 내 영적 자각을 했나? 여러분, 이것이 되어 있지 않고 어 복음을 안다거나 나는 구원받았습니다라는 말은 성립되지 않아요.
로이드 존스 목사님이 말씀한 것처럼 복음은 기쁜 소식인데 이 기쁜 소식을 알기 전에 슬픈 소식부터예요. 슬픈 소식이 뭐예요? 나는 감옥에 갇혔다. 그리고 이 감옥에 갇히게 된 사실을 율법으로부터 인식해야 돼요. 하나님이 그래서 우리를 세상에 내신 것이고 그리고 성경을 준 이유입니다. 로마서 3장을 보세요. 우리가 알거니와 무릇 율법이 말하는 바는 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에게 말하는 것이니 이는 모든 입을 막고 그러니까 모든 입을 막았다. 그리고 세상으로 알려 준 것은 이 이 세상에서 태어나는 아담의 허리에서 나오는 모든 인류들은 다 율법 아래 있다는 소리예요. 이들에게 말하는 것이니 이는 모든 입을 막고 온 세상으로 하나님의 심판 아래 있게 하려 함이라. 그러니까 저와 여러분이 이 세상에 태어난 이유와 목적은 하나님의 심판 아래 있음을 우리로 하여금 알려 주고자 함입니다. 그 역할을 한 게 율법이죠. 그래서 20절 보세요.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라. 율법을 통해서 어 우리가 하나님의 심판 아래 감옥에 갇혔다라는 것을 인식해 하는 겁니다.
이 이 절망스러움을 빠져나올 수 없다라는 이 절망감을 뼈저리게 느끼도록 이것을 알지 못하고 어 구원이 출발되는 것은 가짜예요. 내가 나올 수 없다라는 절망감을 맛보지 않고 이미 나와 있는 상태가 돼 버리는 것은 성경이 우리에게 주는 구원이 아닙니다. 그래서 그래서 오늘 우리가 흘려 버리기 쉬운 이 본문 속에서 왜 열과 막내 아우가 이렇게 자꾸만 연결이 되는가 이 설명입니다. 이 이 감옥문이 열리는 단 하나의 절대적인 조건이 막내 아우예요.
어, 그래서 15절을 보세요. 자, 보세요. 어, 요셉이 하는 말이죠. 너희는 이같이 하여 너희 진실함을 증명할 것이라. 그러니까 너희가 정탐꾼이 아니고 다시 말하면 구원받은 자임을 입증하라. 이렇게 하면 증명이 될 거다라고 말하는 겁니다. 그게 내용이 뭔지 보세요. 바로의 생명으로 맹세하노니 너희 막내 아우가 여기 오지 아니하면 너희가 여기서 나가지 못하리라. 그러니까 감옥에서 나갈 수 있는 한 가지 절대적인 조건은 뭐냐? 막내 아우가 와야 된다는 거예요. 그 전에는 너희는 빠져나가지 못한다. 애굽의 총리로서 감옥에 가둬놨습니다. 이들이 무슨 힘으로 빠져나갈 수 있겠어요? 그런데 단 하나 바로의 생명으로 내가 맹세하노니 막내 아우가 오면 너희는 나갈 수 있다는 겁니다.
왜 하필 막내 아우 베냐민이죠. 왜 베냐민일까요? 베냐민이 와야 되는 겁니다. 그래서 어 요셉이 형이니까 뭐 그 동생 아우를 보고 싶으니까 이렇게 간절하게 오라고 하는 거겠지. 아니에요. 인간적인 내용을 지금 성경이 말하고 있는 게 아니에요. 물론 동생이니까 보고도 싶었겠죠. 그러나 이 동생을 베냐민이 동생을 반드시 내려와야만 너희가 나갈 수 있다라는 것을 성경이 그림으로 그려내는 이유는 다른 데 있어요. 베냐민이라는 뜻은 베냐민 오른손의 아들이라는 뜻입니다. 오른손의 아들 베냐민. 하나 오른 오른쪽이라는 것은 하나님의 권능과 의를 말하잖아요. 그래서 어 오른손의 아들 그리고 의의 아들. 그러니까 이 베냐민이 뜻하고 있는 바는 틀림없이에 참 베냐민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정확하게 예표하고 있는 거예요.
요셉의 메시지는 뚜렷합니다. 어, 너희는 음, 율법적 행위, 이 열 명, 열로는 이 감옥에 갇혀서 너희는 나갈 수 없다. 오직 하나님의 공의가 만족되는 절대적인 유일한 대속물, 의의 아들, 오른손의 아들, 권능의 아들이죠. 하나님의 공의가 만족되어지는 그 권능과 의의 아들 베냐민이 오면 너희는 풀려나서 생명 가운데에 살 수 있다. 그 얘기예요. 이게 하나님의 복음이에요. 내가 생각하는 내가 복음은 나는 하나님이 은혜 주시고 사랑 주셔서 나는 아무것도 몰라가 아무것도 아니었는데 어떤 상태인지도 인식도 안 했는데 하나님이 예수님으로 나를 구원했다. 그건 내가 복음이죠. 내가 만든 복음이고 내가 좋아하는 복음이고 내 생각의 복음이에요. 성경이 말하는 하나님의 복음은 우리를 이 땅에서 열이라는 율법이라는 숫자죠. 다시 말하면 다른 게 아니에요. 율법이 뜻하는 바는 내가 내 자신을 위한 신앙이에요. 나 자신을 위한 종교적 열심, 나 자신을 위하여 구원받기 위한 내 노력. 그게 다 율법이 말하고 있는 내용들입니다. 우리 안에 하나님의 말씀이 잘못된 게 아니라이 말씀에 대한 우리들의 잘못된 거예요. 우리는 선악을 알게 하는 그 지식의 나무로 인하여서 내가 하나님이 되어 있는 존재로 이 땅에 왔단 말이에요. 그래서 하나님 말씀을 가지고도 나를 위하여 내 유익을 위하여 내가 나를 만족시키고자 하는 겁니다. 이게 율법이에요. 이것으로는 우리가 하나님과 함께 할 수 없다라는 것을 알려 주기 위하여 이 세상에 우리가 열을 갖고 온 것이고 열적 존재입니다. 열 명이에요. 여기에 하나님의 공의, 하나님의 의가 만족될 수 있는 그 일은 오직 유일한 절대적 대속물이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가 오셔서 우리 안에 들어오셔야만 비로소 우리가 이 감옥에서 풀려나서 영원한 생명을 누리는 겁니다. 이게 하나님의 복음이에요.
왜 반드시 베냐민 예수 그리스도죠. 와야만 감옥에서 풀려날까? 왜 예수 그리스도일까? 우리 마태복음 5장을 통해서 말씀을 살펴보겠습니다. 하나님 말씀 마태복음 5장 보세요. 예수님께서 이 산상수훈 가운데 연이어서 하신 말씀이죠. 어 간음하지 말라. 그리고 살인하지 말라. 형제에 대해서 나가라. 바보라. 그러는 자들에 대해서는 너희가 죽이는 거다. 이런 말씀을 하시는 내용입니다. 어 23절을 보세요. 그러므로 예물을 제단에 드리려다가 거기서 내 형제에게 원망 들을 만한 일이 있는 것이 생각나거든 예물을 제단 앞에 두고 먼저 가서 형제와 화목하고 그에 와서 예물을 드리라. 많은 사람들이요. 음. 이런 의문을 가져요. 아니, 형제에 대해서 어, 바보라 나가라 하면 지옥 간다고. 아니, 나는 그럼 지옥 가도 수천 번, 수만 번 갔겠네. 그러면서 그 말씀을 지워 버립니다. 아예 그냥 생각을 안 해요. 그리고 23절, 24절에 읽을 때도 이렇게 읽어요. 내가 하나님 앞에 예배하러 가다가 형제에게 내가 심한 말을 했고 형제가 원망 들을 만한 일이 생각나면 예배하기 전에 먼저 그 형제한테 가서 아 내 잘못했다. 용서해 다오. 왜? 누구를 위해서? 내가 하나님 앞에 예배를 좀 잘하고 잘하고 싶은 마음에 그렇게 본문을 이해합니다. 그럼 문맥이 그러냐고요. 25절 문맥을 연결해서 보세요. 너를 고발하는 자와 함께 길에 있을 때 급히 사화하라. 그 고발하는 자가 너를 재판관에게 내어주고 재판관이 옥에게 내어주어 옥에 가둘까 염려하라. 진실로 내게 이르노니 네가 한 푼이라도 남김이 없이 다 갚기 전에는 결코 거기서 나오지 못하리라. 연결돼요.
여러분, 이 본문에서 말하는 그 형제는요 브라덜스가 아니에요. 단수예요. 이 형제는 유일하신 형제 예수 그리스도를 말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와 화목하는 겁니다. 그리고 이 예수 그리스도가 보세요. 여기 보시면 26절에 보면 예수 그리스도와 사화 화목이 되지 않으면 옥에 갇힙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없으면 옥에 갇혀요. 그리고서 26절 보세요. 진실로 내게 이르노니 네가 한 푼이라도 남김이 없이 다 갚기 전에는 결코 나오지 못하리라. 이게 남김이 없이에 한 푼이라도 여기 남김이 없이라는 게 이제 에스카토스인데요. 이 말은 그 마지막 지불금이라는 뜻입니다. 그 남김없이에 죄값을 치르는 속전이 되지 않고서는 더 못 간다는 거야. 그러니까 여기 그 누가 누구와 함께 사화 화목되지 않으면 이 홀이라도 그러니까 감옥에서 이 한 푼이라도 해결하지 못하면 못 나온다는 거예요. 누가 없으면? 형제인 누가 없으면? 예수 그리스도가 없으면 못 나온다는 겁니다. 어, 그 원문 그대로 보면요. 내가 한 푼이라도 남김이 없이 이게 에스카토스 고드란테스인데요. 고드란트라는 것은 그 화폐 단위에요.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렙, 그 과부의 두 렙돈 할 때 렙돈. 고드란트 같은 거의 가격입니다. 뭐 우리 미국 화폐로 보면 팬이죠. 거의 거의 그 가치도 없는 그 보면 쥐똥만한 돈이에요. 쥐똥만한 돈. 그런데 이 쥐똥만한 이 돈도요 마지막 지불금으로 치루워지지 않으면 너 감옥에서 못 나와 이거예요. 그니까 마지막 지불금 그 쥐똥만한 고드란테스가 주어지지 않으면 너는 결코 감옥에서 못 나온다. 이게 무슨 말씀입니까? 유일한 형제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네 안에 와서 마지막 지불금이 되신 되면 그리스도의 속전이 되어야 되는데 그것 안 되면 너 못 나와 이 소리예요. 그래서 베냐민이 와야만 이들이 풀려나도록 구약이 그림을 그렇게 그려 주는 거예요. 신약은 이 부분을 분명하게 우리한테 맥쇼를 해 주는 거고요. 이걸 베냐민으로 지금 설명하는 겁니다.
여러분 죄값 다 치르셨나요? 여러분이 죄값을 한 개라도 갚을 수 있어요. 그리스도의 속전으로만 가능한 게 구원입니다. 베냐민에 대한 그 요셉의 거센 압박과 그리고 집착은요. 이 이 열 형제, 열로 온에게 십자가의 속전의 복음, 하나님의 복음을 성경은 설명하고자 해요. 골로새서 2장 14절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우리를 거스르고 분리하게 하는 법조문으로 쓴 증서를 지우시고 제하여 버리사 십자가에 못 박으시고. 그러니까 십계명과 그리고 만들어진 그 613가지의 그 율법의 모든 법조문들의 증서를 다 지우고 제하여 버린 것이 마지막 지불금으로 속전이 되신 그리스도의 십자가라고 설명하는 겁니다. 베냐민이 오면 법조문이 지워져요. 베냐민이 오면 우리 안에 있는 빈 문서가 해결됩니다. 마지막 지불금인 예수 그리스도가 오기 전까지는 그 어떤 인간의 종교적인 열심과 행위로도 못 나옵니다. 에스카토스 고드란테스입니다. 그 홀이라도 그 한 푼 지독만한 돈 그것 가지고도 요구하는 거예요. 못 나온다. 팬이 그거 하나 때문에 너는 영원히 못 나온다. 이게 성경이 하는 말이에요. 내가 어떠한 종교적인 공로를 쌓았고 내가 어떤 신앙으로 어떤 모습을 했더라도 그리스도가 없으면 우리는 이 땅의 감옥에서 3일의 이 감옥에서 못 벗어납니다. 가장 중요한 질문은 그거예요. 저와 여러분 안에는 베냐민이 마지막 지불금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들어오셨냐는 거예요. 오셨냐는 거예요. 그래서 나왔냐는 거예요. 그냥 나왔다고 생각하는 것은 내가 만들어낸 내 복음입니다. 베냐민 마지막 지불금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오심으로 인하여 나는 풀려나게 되었는가? 오늘 성경이 우리에게 하시는 말씀이죠.
오늘 본문 16절을 보세요. 성경이 무엇을 더 명확하게 증명하고 있는지 보십시오. 너희 중 하나를 보내어 너희 아우를 데려오게 하고 너희는 갇히어 있으라. 내가 너희의 말을 시험하여 너희 중에 진실이 있는지 보리라. 바로의 생명으로 맹세하노니 그리하지 아니하면 너희는 과연 정탐꾼이니라. 여기 16절에 그 내가 너희의 말을 시험하여라는 이 시험하여라는 이 시험하다라는 게요. 이제 이게 페리아조라는 의미인데요. 그 실패할 그 가능성이 여전히 있는 그런 테스트입니다. 근데 이게 페리아조예요. 그런데 보세요. 그러나 베냐민이 와서 그들이 진실하다라는 것이 입증이 되면 그 합격하여 인정받는 상태가 되면 그게 뭐라고 말하냐면 내가 너희의 말을 시험하여 너희 중에 진실이 있는지 보리라. 이 진실이 드러나는데 이게 도끼마조예요. 이것은 확증이죠. 확증. 그러니까 구원이 틀림없이 되는 거예요. 확 구원의 완성이 이루어지는 건데 이것이 바로 어 베냐민이 오면 막내 아들이 오면 너희 말이 진실이다. 너희는 구원받았다라는 거예요. 그 전까지는 시험하는 거죠. 그전까지는 내가 내 구원이 틀림없는 진짜 구원인가? 예. 시험이죠. 그런데 이 시험이 확증으로 드러나는 단 하나는 뭐예요? 단 하나. 딱 하나. 도끼마조로 드러나는 단 하나는 베냐민이 오는 것입니다. 그래서 내 바깥에서 벌어지는 거예요. 어. 내 안에서 네가 진실하다는 그러면 반성물을 써라. 아니면 너희가 그것에 대해서 너희가 정탐꾼이 아니라는 사실에 대해서 그러면 피를 흘려라. 뭐 어떤 것도 요구하지 않고요. 단 하나 막내 아우 베냐민이 오면 너희의 구원은 틀림 없어지는 거다. 완성이다. 도끼마조다. 그런 겁니다.
그래서 고린도후서 13장을 가 보세요. 13장 5절에 보면요. 하나님 말씀이 이러합니다. 너희는 믿음 안에 있는가? 너희 자신을 폐리하죠. 시험하라는 겁니다. 시험하고 보세요. 이 시험이 어떻게 되냐면 너희 자신을 확증하라. 도끼마저 하라. 그런데 그 확증이 뭐예요? 단 하나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신 줄을 너희가 스스로 알지 못하느냐? 그렇지 않으면 너희는 버림받은 자니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계시다. 도끼하죠. 이게 확증이에요. 내가 내가 어 시험하는 것에서 내가 어떻게 하나님 말씀을 잘 지켰고 내가 하나님 말씀대로 어떻게 살아내고 있고 이것이 시험이에요. 페리아조에. 근데 이 페리아조가 도끼마조가 되는 구원의 확신이 증거가 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들어오실 때입니다. 내 믿음이 가짜가 아니라 진짜로 확증받는 유일한 길. 예. 내 안에 참된 베냐민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들어오시는 거죠.
여러분, 이것이 이것이 성경이 일관되게 우리에게 주는 자유예요.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에서 율법에서 그것을 지켜내야만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통하여서 감옥에 갇힌 내 실상을 고발시켜 주시고 바깥에서 막내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오심으로 인하여 아 나를 풀어냈구나. 그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이제 하나님의 거룩한 자로 지어져 가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그 말씀을 맛보는 그런 구원이에요. 이미 나온 다음에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는 거지 나오기 위하여 하나님 말씀대로 살아낼 수 없습니다. 그리고 나오기 전에 하나님 말씀대로 산 것은 다 자기 공로고 자기 의고 그것으로 인하여 스스로 자기밖에 증명을 못 해내요. 그러니까요. 감옥에서 막내 아우인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고 나오지 않은 자들이 하는 뻘짓이 뭐냐면 여전히 하나님 말씀을 가지고 자기 공로를 세워요. 무화과나무 잎을 엮어서 자기 수치를 덮습니다. 그러면서 스스로를 구원의 착각 속에 살아가고 있죠. 그리고 배나 더 많은 사람들을 지옥 자식으로 이끌고 있고요. 아닙니다. 성경은 시작부터 끝까지 분명합니다.
마지막 말씀인 계시록 20장도 보세요. 11절 보세요. 백보좌 심판 앞에서 우리의 마지막 때 벌어질 틀림없는 일입니다. 착각하지 마세요. 백보좌 심판은 불신자들만 받고 그 성도에게는 이 심판이 없다. 아닙니다. 신자나 불신자 모두에게 있어는 심판입니다. 그 이 심판은 불신자에게는 영원한 슬픔이고 죽음이지만 신자에게는 너무나 기쁘고 영광스럽고 너무나 복된 시간이에요. 이 시간이 반드시 찾아옵니다. 보세요. 11절. 또 내가 크고 흰 보좌와 이게 그래서 백보자인 거예요. 흰 보좌와 그 위에 앉으신 이를 보니 땅과 하늘이 그 앞에서 피하여 간데 없더라. 또 내가 보니 죽은 자들이 큰 자나 작은 자나 그 보좌 앞에서 있는데 책들이 펴 있고 이 책들 펴 있는 책들은 행위 책이에요. 책들이 펴 있고 또 다른 책이 펴 있습니다. 이건 단수예요. 한쪽은 복수인 행위 책들이 펴져 있고요. 그리고 또 한쪽에는 단 한 권의 책인 다른 책이 펴졌는데 그게 생명책이에요. 죽은 자들이 자기 행위를 따라 책들에 기록된 대로 심판을 받습니다. 그러니까요. 어 행위 책들에 그 있는 내용대로 심판을 받는 이들은 누구냐면 생명책에 이름이 없는 자들이에요. 그들은 행위 책들에 있는 대로 심판을 받습니다. 바다가 그 가운데서 죽은 자들을 내주고 또 사망과 음부도 그 가운데서 죽은 자들을 내주매 각 사람이 자기의 행위대로 심판을 받고 어 각 사람의 행위대로 받는 심판은 생명책에 있지 않은 자들 행위를 따라서 받는 겁니다. 아, 사망과 음부도 불에 던져지니 이것은 둘째 사망 곧 불이라. 누구든지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는 예. 이 행위 책들의 그 내용을 그대로 다 하나하나 묻는 거예요. 율법으로 물음을 받는 거예요.
생명책에 있는 자는요. 하나님의 심판 아래 갇힌 존재라는 것을 율법을 통해서 만나고 예수 그리스도로 인하여서 탈출되어진 그래서 그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생명을 갖게 된 자들입니다. 이들에게는 행위로 묻지 않아요. 왜요? 예수 그리스도가 행위가 되셨기 때문에. 그래서 두 종류의 책은요. 한 거는 행위의 책들인 율법을 말하고요. 이것은 열 명의 형제입니다. 그리고 아직 예수 그리스도가 오지 않은 그 행위의 빈 문서를 여전히 떠안고 있는 존재들이에요. 또 한쪽은 생명책이죠. 단수죠. 그리고 마지막 지불금이 지불된 완불된 존재들 테레스타이 다 이루었다 하신 그 예수 그리스도가 마지막 갑지불로 내 안에 오신 거예요. 그래서 나는 모든 나의 필요한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하나님의 거룩과 공의가 다 지불된 완불된 존재로서의 생명책입니다. 그래서 생명책 신앙이라는 것은 이렇게 하는 겁니다.
갈라디아서 2장을 보세요.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말은 갈라디아서 2장 20절이에요.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다. 이거 이 말씀을 잘 알아요. 그런데 이 말씀이 어떤 말씀과 연결하여서 이 말씀이 내 안에는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다는 게 뭐야? 어떻게 사는 거야? 말씀이 얘기해 줘요. 문맥을 보십시오. 16절 보세요. 무엇이 내 안에서 그리스도가 사시는 것인지 여러분이 스스로 한번 말씀의 조명을 받아보십시오. 보세요.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은 율법의 행위로 말미암음이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 줄 알므로 우리도 그리스도 예수를 믿나니 이는 우리가 율법의 행위로서는가 아니고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서 의롭다함을 얻으려 함이라. 율법의 행위로서는 의롭다함을 얻을 육체가 없느니라. 만일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의롭게 되려 하다가 죄인으로 드러나면 그리스도께서 죄를 짓게 하는 자냐? 결코 그럴 수 없느니라. 만일 내가 헐었던 것을 다시 세우면 율법을 다시 세운다는 거죠. 내가 나를 범법한 자로 만드는 것이라. 내가 율법으로 말미암아 율법에 대하여 죽었나니 이는 하나님에 대하여 살려함이라. 이 내용으로 연결하는 겁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노니 어떻게 죽었다는 거예요? 예. 율법으로 내가 죽었다는 겁니다. 어,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내가 죽은 것은 내가 스스로가 나를 스스로가 시험 속에서 나를 입증해 내려고 했던 자기 행위 신앙 그곳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못 박혀 죽었다.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여전히 내가 내 힘으로 하나님을 만족시켜 드리고 하나님 앞에 의를 펼쳐 보이려고 하는 이 거짓된 것 그런 게 아니요.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마지막 지불금 되신 예수 그리스도가 내 안에 계신 거죠.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여전히 내가 육체 가운데 산다는 것은 여전히 이 땅에서 율법이 다 해결된 자이지만 여전히 율법 아래 구원받은 존재로서 여전히 하나님의 말씀 가운데 있는 것이죠. 육체 가운데 삽니다. 그러나 그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내가 하나님 말씀을 지켜내지 못했을 때 무력감에 빠지고 넘어지고 죄의식에 사로잡히고 예 이때 우리 안에 나를 사랑하사 나를 찾아오셔서 십자가에 자기 생명을 못 박으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사는 겁니다. 아멘.
내 안량한 율법의 행위를 아무리 긁어 모아도 백보좌 심판 때에 그 뒤똥만한 마지막 빛조차 갚을 수 없습니다. 아니 그거 가지고 그거 그거를 그거 가지고 내 형제에게 나가라 바보다라는 것을 한 말은 지옥 간다. 우리를 철저하게 예수 그리스도 아니면 나올 수 없다라는 것을 성경은 몰아붙이는 거예요. 아니 그것 가지고 째찌찌하게. 아니요. 우리가 철저하게 감옥에 갇힌 자요. 스스로는 나을 수 없다라는 사실을 절감하고 뼈저리게 깨닫고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를 모시기 전까지는 영접하기 전까지는 못 나온다는 겁니다. 이게 하나님의 구원 방식이에요. 이거 받아들이셔야 돼요. 율법의 감옥에서 내 모든 의가 완벽하게 파산했음을 인정부터 하셔야 됩니다. 이거 인정하지 않으니까 신앙생활을 자기 멋대로 하는 거예요. 하나님을 두려워하지도 않을뿐만 아니라 하나님께 정말 감사하고 감격하지도 않은 거예요.
이 이제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율법적 행위로 여전히 하나님과 이렇게 거래하는 그 교만한 그 옛자의 거짓됨을 십자가에 못 박으십시오. 내 안에 들어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모신 자로서 이제 우리의 신앙은 이렇게 하셔야 합니다. 죄책감, 정죄 의식 이런 것에서 우리는 자유를 얻은 자이고 해방을 받은 자입니다. 사망의 감옥에서 우리는 나온 자들이에요. 그래서 우리 안에 찾아오는 하나님의 말씀, 율법이 우리에게 정죄를 심는 것은 마귀가 하는 짓이에요. 나는 이제 예수 그리스도로 인하여서 그 마지막 뒤똥만한 것조차도 다 지불이 됐다. 나는 정말 하나님 앞에 온전하게 받아들임을 받았다. 막내 아우가 오면 나오는 겁니다. 그 예수 그리스도가 오심으로 나는 나온 존재다. 그래서 우리 안에 파고 들어오는 정죄 의식. 네가 그렇게밖에 신앙을 안 하니까 네 자식이 그런 거야. 네가 그렇게 하나님 앞에 기도하지 않고 하나님 앞에 봉사하지 않으니까 네 비즈니스가 안 풀리는 거야. 마귀가 하는 말이라고. 지금 제가 했지만 그 마귀가 하는 말이에요. 우리는 이제는 예수 그리스도로 인하여서 완전히 자유함을 얻은 자요 해방된 자요. 어 지불된 자요. 하나님 앞에 거룩하고 공의로운 자들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예, 이런 것에서 벗어나서 하나님의 구원의 백성으로서 정말 하나님을 사랑하고 말씀을 즐거이 따라가는 그런 복된 존재로서 있는 겁니다. 말씀대로 살아내지 못해도 이미 우리는 하나님 앞에 그 말씀을 다 살아낸 자요. 지킨 자요. 말씀이 더 이상 백보자 심판 앞에서 우리에게 행위로 물을 수 없는 존재들이에요. 어떻게 살아야겠습니까? 하나님 말씀을 즐거워하시고 따르시고 그 말씀을 통하여 그리스도를 더욱 풍성하고 영광스럽게 누리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복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