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anscription
등 따시고 배부를 때는 다 사람 좋아요. 그 사람의 진정한 모습을 언제 알 수 있는지 아세요? 달고 짜고 기름진 음식은 훈련받지 않아도 다 맛있어요. 그런데 담백한 음식은 훈련해야만 먹을 수가 있습니다. 오늘 제 얘기를 듣고 동료라든지 가족의 식단을 한번 보세요. 식단에 단장기가 많은 사람하고 건강한 식단을 먹는 분하고는 확실히 삶의 결이 다릅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안광복이라고 합니다. 소크라테스 대화법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았고요. 현직 고등학교 선생님으로 철학을 30년째 가르치고 있습니다. 이번에 '50, 철학을 마주할 때'라는 책을 썼는데요. 여러 독자님들을 만나기 위해서 반갑습니다.
학교에서 이제 학부모 상담을 할 때 10대 아이하고 40대 후반에서 50대 초반이 된 부모님이 손을 잡고 오는 경우를 이렇게 목격을 합니다. 어떤 느낌을 받냐면요. 아이가 아이를 손잡고 오는 느낌이에요. 부모하고 아이의 고민이 똑같습니다. 미래가 불안하고요. 호르몬 변화가 심해요. 그리고 자기가 어떻게 살아야 될지를 모르겠습니다. 아이는 사춘기를 앓고요. 부모는 사추기를 앓거든요. 50이 바로 그런 시기예요. 인생이 한 시기에서 다른 시기로 넘어가는 전환기. 전환기는 항상 불안할 수밖에 없습니다. 통했던 삶의 공식이 미래에 통할 일이라는 법이었거든요.
그런데 한 가지 50이 더 힘든 이유는 뭐냐면 인생의 전반기에는 어떻게 살아야 될지를 충고하는 사람들이 참 많아요. 그런데 50대에 들어서 어떻게 살아야 될지하고 지혜를 물었을 때 여기에 대해서 현명한 답변을 주는 현자를 만나기가 참 어렵습니다. 그래서 50이 참 힘든 시기인 거예요.
제 나이 마흔이 되면서 굉장히 삶이 흔들렸던 거 같아요. 왜냐하면 제가 30대 때는 불혹에 대한 환상이 있었습니다. 40년 되면은 삶이 안정돼서 더 이상 불안이 없을 줄 알았는데 제가 실제로 40을 겪어 보니까 마흔은 흔들리지 않는 나이가 아니라 흔들릴 수 없는 나이입니다. 책임져야 될 것들이 너무 많아요. 직장에서는 저의 역할을 충실해야 되고요. 사회적으로도 제가 감당해야 될 몫이 있습니다. 저도 20권 이상을 쓰고 그래도 나름대로 스테디셀러 작가인데요. 어느 정도 삶의 어떤 수준에 이름에서도 불구하고 내 마음에는 기쁨이 없었습니다. 이게 전부야. 왜 이렇게 막막하지?
제가 40대 중반 50대 초를 넘어가면서 비로소 깨달은 게 있어요. 칼 구스타프 융의 말. 인생의 전반기에는 빛을 쫓았다면 후반기에는 내 안의 그림자를 보듬어라. 성장 과업이 달랐던 겁니다. 40대 초반까지는 성공을 위해서 달려갔다만 50대 이후에는 내 마음속에 들여진 그림자를 보듬기 위해서 노력을 했어야 되는데 제가 철학을 좀 더 집중적으로 탐색하지 않았다면 그러한 깨달음을 어쩌 안았을 거예요. 그래서 50대에 힘들었던 건 뭐냐면 성장 과업의 전환기를 깨닫지 못했다는 거. 성공이 아니라 온전함을 상해서 나아가야 되는 인생의 목표를 제대로 잡지 못했던 게 저의 힘듦의 원인이었던 거 같아요.
가장 중요한 거는요. 나아갈 시기를 준비하는 거예요. 청소년기에는 청년기를 준비하잖아요. 50대에는 좋은 노년을 맞기 위해서 노력해야 되는 겁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될까요? 많이 이루는 것도 중요하지만 내려놓는 것도 중요합니다. 월리엄 제임스가 유명한 행복 공식을 얘기했어요. 행복은 이룬 것 빼기 바란 것이다. 많이 이루어서 행복한 것도 있지만은 내려놓을수록 없어도 되는 게 많아질수록 인생이 안해지거든요. 이기려 하지 않기, 편안해지기. 이게 하루아침에 되지 않거든요. 매일매일 철학함을 통해서 마음을 다듬는 훈련이 있어야 내려놓는 그 마음의 자세가 이루어지는데요. 50 이후의 삶은 내려놓음이 일상화되는 내 삶의 습으로 매는 그런 삶을 이루어야 될 것 같아요. 그래야 인생이 온전해질 수가 있습니다.
나이 50이 되면 속이 벤댕이가 됩니다. 매일매일 섭섭한 게 밀려와요. 심지어 후배 선생님들이 반 모임으로 자기들끼리만 가도요. 하루 종일 서운합니다. 저도 생각을 하는 거예요. 제가 이렇게 속 좁은 사람이 아니었는데 왜 이렇게 바뀌었을까? 인생에서 밀려나는 시기거든요. 둘째 동생이 생긴 장남의 마음이랑 똑같습니다. 내가 인생의 중심이 아닌 거예요. 이제 스포트라이트는 바뀌고 있는 거예요. 그러니까 자꾸만 내가 동생한테 뺏기는 관심을 다시 찾아오고 싶죠. 이럴 때 심리학의 대상관계 이론에서 장남들이 하는 게 뭘까? 인정받기 위해서 잘라지는 거예요. 좋은 성적을 받고 뛰어나고 칭찬받고 끊임없이 달려가죠. 근데 이게 청년기에는 먹힐 수가 있어요. 왜? 내 능력치가 자라나고 있으니까. 하지만 중년기에는 내려가고 있는 시기입니다. 내리막길을 오르막길 오르듯이 갈 수는 없어요. 인생의 내리막길은 내리막길대로 받아들여야 됩니다. 그러니까 중년기에 내려 놓아야 될 것 두 가지는 뭐냐면 더 많이 갖는 것, 더 높이 오르는 것. 이게 중년기에서 삶의 행복을 가져오지 않는다는 겁니다.
거듭 말씀드리지만 완전함을 쫓는 게 아니라 온전함을 잡는 것. 내 안에 부족함도 있고 단점도 있겠지만 그것 때문에 내 삶이 쓰러지거나 부족해지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는 담담함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천대 이론으로 설명하면 에피크테토스가 뭘 얘기하냐면 초점 오류라는 걸 얘기하는 거예요. 내가 많이 가졌다. 그래서 너보다 잘났다. 이렇게 얘기하는 것은 옳지 않다. 내가 많이 가졌기에 너보다 더 재산이 많다. 그건 맞다. 내가 너보다 지위가 높기 때문에 너보다 잘 났다. 그건 틀린 얘기다. 내가 지위가 높기 때문에 너보다 높은 자리에 있다. 그건 맞다. 가만히 생각하면 맞는 얘기예요. 돈이 많고 높은 지위에 올라갔다. 그래서 사람들이 나를 우러러 보고 존경하고 반드시 그러냐? 안 그럴 수 있습니다. 질투와 시기 뒷말에 시달릴 수도 있어요. 하지만 내가 좋은 사람으로 거듭나고 있을 때는 내가 지위가 낮거나 가진 게 없어도 주변 사람들이 나를 좋아하고 존경해 줄 수 있거든요. 그래서 초점 오류라는 건 뭐냐면 내가 인생에서 존경과 사랑과 편안함을 누리고 싶으면 돈과 지위를 쫓지 말고 내 안의 온전함, 내 안의 좋은 인격을 쫓으라는 얘기예요.
돈과 명예 이건 굉장히 중요해요. 이 무슨 얘기냐면 내가 그것을 얻기 위해서 노력해야 주변 사람들이 내 노력에 힘입어 삶을 버틸 수가 있어요. 그런데 중요한 건 뭐냐면 내가 그 역할을 한다. 그래서 그 역할이 나는 아닌 거예요. 칼 구스타프 융의 페르소나 개념이라는 게 있습니다. 페르소나 개념이라는 건 뭐냐면 예를 든다면 저는 직업이 교사거든요. 교사로서 역할을 할 때는 마땅한 때, 마땅한 방식으로 마땅히 해야 될 역할을 해야 됩니다. 내가 어떻게 느끼는지는 중요하지 않아요. 이건 저의 사회적인 역할입니다. 이게 바로 페르소나거든요. 그런데 페르소나가 곧 나는 아니에요. 퇴근 이후에 제대로 삶을 꾸리려면 교사라는 페르소나를 내려놔야 돼요. 그리고 오롯이 나로 돌아와야 됩니다. 이게 제대로 된 삶이거든요. 그런데 중년에 이르러 삶의 베테랑이 되고 자기 일에서 인정을 받으면 자기 페르소나하고 자기가 구별되지가 않습니다. 퇴근 이후에도 난 교사인 거고 예를 들어서 지위가 더 높아진다 그러면 내가 조직의 장이면 퇴근 이후에도 장은 장이라고 생각을 해요. 그리고 수장이라는 역할을 이루면 내가 아니라라고 생각을 합니다. 아니거든요. 삶에서 여러 개 쓰는 삶의 가면 역할일 뿐인 거예요. 페르소나거든요. 그래서 중요한 게 중요한 건 뭐냐면 마땅한 때, 마땅한 방식으로 마땅히 해야 될 일을 하되 그게 페르소나라는 것을 인정하고 구분을 하는 겁니다. 언제든지 버릴 수 있는 용기, 내 삶으로 돌아갈 수 있는 지혜. 이게 중년기 이후의 삶에서 굉장히 중요한 거 같아요.
등 따시고 배부를 때는 다 사람 좋아요. 그 사람의 진정한 모습을 언제 알 수 있는지 아세요? 같이 일해 보면 알아요. 야근을 늦게까지 해 보면 합니다. 그것도 야근을 일주일 이상 해 보면 그 사람이 밑바닥이 보여요. 야, 이 사람 일했네라고 드러나는 거예요. 그런데 밑바닥의 경험을 충실하게 정말 엄청나게 많이 하면서도 괜찮은 사람들이 있어요. 이분들이 정말 진국이거든요. 이건 뭐냐면요. 상처를 성장통으로 바꿀 수 있는 사람들이에요. 보통 사람들은 일이 고되면은 점점 점점 사람이 상처받으면서 망가지는데 상처를 성장통으로 바꾸시는 분들은 다릅니다. 매번 상처를 부으면서 의미를 찾아요. 이게 내 삶에 어떤 의미가 있을까? 이번 고통을 이겨내면서 나는 얼마나 좋은 사람으로 거듭날까? 이걸 생각하니까는 가면 갈수록, 고난을 겪을수록 사람이 좋아지는 거예요.
철학자 세네카가 이런 얘기를 합니다. 운명과 말다툼하지 마라. 아, 운명은 제가 원하는 대로 절대 풀려갈 리가 없어요. 고난은 우주가 나한테 주는 선물이라는 멋진 표현도 있어요. 고난이 있으니까 제가 그걸 이겨내면서 내가 이런 능력도 있었구나. 아, 나한테 이런 위대한 면모도 있었구나 하고 깨닫는 거지. 금수저로 태어나서 아무런 고통도 없었다. 그게 오히려 최악의 인생일 수도 있습니다. 자기가 어떤 사람인지 모르거든요. 그래서 자신의 진면목을 알고 싶으면 50이 넘어서도 도전하시라는 거. 끊임없이 자기를 한계까지 몰아붙이면서 내가 어디까지 성장할 수 있는지 느끼고 실패를 통해서 의미를 찾는 사람. 이런 자세가 있으면 아무리 나이가 먹어도 사람은 늙지 않습니다.
두 가지가 있어요. 하나는 뭐냐면 보세요. 달고 짜고 기름진 음식은 훈련받지 않아도 다 맛있어요. 강아지들도 단짠기는 좋아요. 그런데 담백한 음식은 훈련해야만 먹을 수가 있습니다. 건강한 음식은 태어났을 때부터 좋아하는 게 아니라 상당히 건강하게 먹는 것을 우리가 연습했을 때 거기에 맛을 들릴 수가 있어요. 인생도 그런 거예요. 에피쿠로스가 욕구를 세 가지로 나누는데요. 첫 번째는 자연적이고 필수적인 욕망이에요. 이건 뭐냐면은 식욕, 수면욕, 성욕 같은 겁니다. 배고프면 먹어야 되고요. 졸리면 자야 되고 사랑하는 사람이 있으면 같이 입고 싶어요. 이게 정상적인 성적 욕구입니다. 식욕, 성욕, 수면에 만족하는 사람은 삶이 흔들리지가 않습니다. 적은 것으로도 삶이 행복해질 수가 있거든요. 그러면 우리가 왜 불행해지냐? 자연적이지만 필수적이지 않은 욕망에 휘둘리기 때문에 그래요. 더 맛있는 걸 먹고 싶고 더 좋은 데서 자고 싶고 더 멋진 파트너를 만나고 싶습니다. 욕구는 채울 수 있어도 탐욕은 채울 수가 없다. 이게 에피쿠로스 얘기예요. 욕구는 그 이상을 바라고 그 이상을 바라기 때문에 항상 마음이 비어 있어요. 우리가 탐욕에 휘둘려서 절대 행복해질 수가 없습니다. 그럼 마지막으로 공허하고 자연적이지도 않은 욕망이 있어요. 그게 허영심입니다. 명예였고 인정받고 싶은 욕구. 사람들한테 인정받는다. 그래서 내 삶에 빈 구멍이 채워지냐? 아니거든요. 내가 오롯이 서 있지 않으면은 마음이 비어 있는 거예요. 그런데 필수적이고 자연적인 욕망에만 충실한 삶을 살려면 이것도 건강 노화 음식에 침숙해지는 것처럼 끊임없는 훈련이 필요한 거예요. 그래서 먹는 음식을 보면 그다음에 먹을 때 보면 그 사람의 성격을 알 수 있다. 본질을 알 수 있다는 게 바로 그 얘기예요. 오늘 제 얘기를 듣고 동료라든지 가족의 식단을 한번 보세요. 식단에 단장기가 많은 사람하고 건강한 식단을 먹는 분하고는 확실히 삶의 결이 다릅니다. 그 얘기예요. 삶은 항상 일상의 실천 속에서 나오는 거니까요.
친구가 사귀기 힘들어지는 것도 있지만은 친구를 사귀고 싶다는 생각조차 들지 않습니다. 왜까요? 젊은 시절에는 삶이 의존적일 수밖에 없어요. 자기가 갖추어진 게 많지 않거든요. 그래서 다른 사람들한테 끊임없이 부탁을 하고 내 안에 있는 빈 구멍을 채워 달라고 요청을 하지만 삶의 성숙한 단계에 이르면 상당수 문제가 자기의 문제가 그 감당할 수 있기 때문에 사람이 그렇게 필요하지 않는 거예요. 반 자세가 그냥 나이가 먹는다고 채워지는 게 아니라 부단히 혼자 있는 연습, 고독에 익숙해지는 연습, 주변에 흔들리지 않는 자기 안의 올참을 갖춰줬을 때 외로움을 타지 않는 그런 삶을 갖출 수가 있는 거예요.
케이스 바이 케이스인데요. 가족들하고 사이가 좋아지는 사람도 있고 가까운 사람들하고 멀어지는 경우도 있어요. 왜 그럴까? 제가 강의 때 늘 강조하는 말이 있습니다. 아동 학대보다 잔인한 건 자기 방치다. 삶이 한 순간에 무너지지 않아요. 한 순간에 오래된 관계가 사건 하나로 와장창 박살나는 경우는 없습니다. 꾸준히 쌓여서 무너지는 거거든요. 이럴 때 관계가 망가지지 않기 위해서는 부단히 자기 수양을 통해서 관계를 잘 가꿀 수 있는 훈련을 해야 되는 거예요. 우리가 청년기에 공부를 열심히 해야 된다고 배웠지만 관계를 가꾸는 기술에 대해서도 꾸준히 우리가 훈련을 해야 됩니다. 여기에 대해서 그 관계는 우정과 관계, 사랑은 평생에 걸친 과제인데요. 여기에 대해서 지혜를 주는 책들이 참 많아요. 논어 도 그렇고요. 서양에는 니코마코스 윤리학 이런 책들이 참 좋습니다. 물론 이것보다 더 좋은 건 제가 쓴 책입니다.
그 서양 철학에서는 솔리튜드 고독과 론리니스 외로움을 나눠요. 고독은 자기 안에 충만함이 있기 때문에 다른 사람이 필요 없는 상태고요. 외로움은 사람이 절실함에도 불구하고 자기 마음을 충족시킬 수 있는 누군가도 만날 수 없는 상태예요. 요새 쇼펜하우어가 유행인데요. 쇼펜하우어는 평생 혼자 있었던 사람입니다. 그러면서 사람들한테 뭐라고 가르치냐면은 정신적 비옥이 되라고 얘기를 해요. 근데 쇼펜하우어 얘기가 그 사람의 독창적인 주장이 아니라 철학의 역사에 줄기차게 나왔던 얘기입니다. 이런 얘기를 합니다. 세네카는 배가 흔들리고 있다. 그래서 항해를 잘하고 있는 게 아니다. 항해를 잘했다는 거는 한국에 와서 다 해야 되는 거예요. 그런데 한번 보십시오. 고독하지 못한 사람들은 사람들이 내놓는 그 소음에 끊임없이 휘둘려요. 남들이 이렇게 보면 어떡하지? 이렇게 하면 나에 대해서 좋게 생각할까? 나쁘게 생각할까? 그걸 생각하면서 흔들리고만 있는 거예요. 그런데 고독할 수 있는 주체에 있는 사람은 자기가 되어야 할 사람을 향해서 묵묵하게 나아갑니다. 이런 인생을 사는 사람들은 고독할 수 있는 능력 있는 사람들은 주변 사람들이 뭐라 그러고 말고 인생이 흔들리진 않죠. 그래서 나이 들수록 혼자 있는 연습을 하라는 겁니다.
초등학교 다닐 때는 너무 재밌었던 게임이에요. 20살 넘어서 그게 재밌던가요? 저거 초딩들 노는 건데 유치하잖아요. 50이 넘어서 20살 놀이를 보면서 어 나도 저렇게 한번 해 보고 싶어. 나도 한번 젊게 한번 꾸며 볼까? 그 유치한 거예요. 초등학생이 되려고 노력하는 청년만큼이나 이상한 거거든요. 50은 50에 아름다움이 있는 겁니다. 봄도 아름답고 여름도 아름답고 가을도 아름답고 겨울도 아름다운데 왜 가을에 굳이 여름이 되려고 하세요? 이제 겨울을 향해서 잘 나가시면 되는데요. 겨울이 가진 미덕은 씨를 뿌리는 게 아닙니다. 가을에 씨를 뿌리면 안 되잖아요. 뭘 해야 될까요? 이미 산 인생에서 의미를 찾는 거예요. 내 인생에서 이런 고난들이 이런 성과가 어떤 가치가 있었나? 어떤 의미인가 생각을 하시면서 후반기에 내 인생이 좀 더 오롯해진다면 세상의 눈에 휘둘리지 않고 내 안에 있는 온전함을 회복하려면 무엇을 해야 되는지 거기에 대해서 고민하시는 게 맞습니다. 그리고 저도 이제 작가다 보니까 SNS를 많이 하는데요. 제 학생들이 항상 저를 놀려요. 선생님 인스타에는 왜 꽃 사진밖에 없어요? 저도 화들짝 놀랐는데 맞아요. 왜 그러냐면 50이 넘어가면 자연이 좋습니다. 왜냐? 자연을 닮아서 살아가는 게 50 이후의 인생인 거예요. 화려함이 아니라 소박함, 쓰러지는 것에 대한 담담함 이러한 자세를 갖추는 게 좋다고 생각하는데요. 잘 생각해 보시면 50 이후에 다가오는 어떤 취미 생활을 생각해 보시면은 거의 삶이 나아가야 될 방향하고 일치를 해요. 물론 철학 공부도 50 이후에 참 좋은 그 습관 중에 하나입니다.
50 이후에 어떤 사람이 좋냐? 20살 때 어떤 어른이 다가왔는지 생각해 보면은 딱 답이 나와요. 이기려 하지 않는 사람. 중심에 서서 주연 배우로 사는 게 아니라 백석에서 박수 쳐 주는 사람. 인정해 주고 따뜻한 눈길로 바라봐 줄 수 있는 사람. 당신은 정말 뛰어난 사람이에요. 그에 비해서 저는 아주 부족하죠. 당신의 능력을 충분히 펼치도록 제가 옆에서 힘써 돕겠습니다. 50 이후에 지혜로운 사람은 이런 자세를 몸에 익히고 있어요. 대표적인 사람이 공자, 맹자 같은 유학자들이고요. 서양에 있어서의 좋은 습을 갖은 생활 습관을 갖자들도 항상 상대방한테 존칭을 쓰지 말을 함부로 하지 않았습니다. 이기려 하지 않는 것, 상대가 잘될 수 있도록 최대한 돕는 것. 이게 지혜로운 50대의 모습이라고 할 수 있어요.
쌓는 거만큼이나 내려놓는 작업도 정말 어려운 거예요. 멱살 잡혀서 끌려 내려오기 전에 스스로 담담하게 내려올 수 있는 용기. 그게 50에 멋있는 거예요. 그런데 페르소나하고 자기를 착각하면 안 됩니다. 페르소나라는 거는 사회적으로 내가 했던 역할일 뿐이지 나는 아닌 거예요. 칼 구스타프 융이 이런 멋진 얘기를 했습니다. 성공이라는 것은 성품. 나 자신을 잃으면서 얻은 것이다. 맞아요. 우리가 사회적 역할을 잘하기 위해서 내 안에 억누르고 짓눌렸던 부분들이 너무 많습니다. 그러면 50 이후에 버려야 될 건 뭐냐면요. 사회적으로 내가 쌓은 성취가 그게 삶의 한 단계에서 필요했던 거지. 삶 전체 내가 아니라는 생각. 그동안 성공을 위해서 버렸던 나의 성품, 나다움을 회복하는 게 굉장히 중요한 거 같아요.
진정한 행복을 찾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거는 시기에 맞는 삶입니다. 제 책의 테마가 봄, 여름, 가을, 겨울이잖아요. 그 시기에 맞는 삶을 찾는 게 중요해요. 키케로가 노년에 대해서 이런 얘기를 했어요. 그 굉장히 멋진 비유인데 어떤 노년에 이른 유명한 사람한테 어떤 젊은이가 묻는 거예요. 아, 선생님, 선생님한테는 이제 강렬한 열정이 없어서 정확하게 하면 강렬한 성욕입니다. 삶이 참 심심하시겠어요? 그런 거예요. 그 지혜로운 노인이 뭐라고 답하냐면 허허 웃어요. 청년이요. 그런 어리석은 얘기 하지 마시게. 나는 비로소 욕망이라는 엄청나게 잔혹한 주인으로부터 이제 노연한 거야. 나는 이제 삶을 괴롭히는 엄청난 욕망이 없어. 왜 중년에 비아그라를 드세요? 그런 욕구는 청년기에서 끝나야 되는 겁니다. 이게 더 멋진 표현도 있어요. 나는 시력을 잃어가면서 지혜의 눈이 열렸다. 육체가 약해진다는 거는 지혜로워지려야 된다는 신호입니다. 청년기에는 강렬한 열망이 나한테 그 쾌락이 행복을 줬겠죠. 중년 이후에는 담담함, 내려놓음. 이제 없어도 됨. 내 인생의 완성을 향해 나아가는 퇴약해짐을 오히려 행복으로 받아들이는 지혜도 굉장히 중요한 거 같아요. 그 시기에 맞는 행복을 쫓아라. 이게 모든 철학자들이 말하는 행복론인 거 같습니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명상록이라는 책이 있어요. 명상은 20대에 보면은 지적 수면제입니다. 그걸 보고 자지 않는 사람은 젊은이가 아닙니다. 그런데 50이 넘어서 명상을 보면요. 몇 페이지마다 눈물이 터져요. 정말 가슴에 다가오거든요. 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명상록은 타인을 위해서 쓴 게 아닙니다. 50대인 자기 마음을 위로하기 위해서 쓰는 글이에요. 그게 명상이거든요. 제가 왜 이런 말씀을 드리냐면 50 이후에 흔들리지 않으려면 제일 먼저 해야 되는 게 자주 철학으로 돌아가 휴식을 취하셔야 됩니다. 상처받을 수 있어요. 내 삶이 흔들릴 수 있습니다. 이럴 때 중요한 건요. 흔들리는 대로 자기를 내버려 두는 게 아니라 조용한 데 들어가서 내 마음을 튜닝하는 겁니다. 우주적 관점에서 나의 인생을 한번 다시 바라보는 거예요. 그게 정말 중요한 문제였나? 인생의 진도표는 거의 비슷해요. 우리가 비슷한 시기에 학교를 가고서 비슷한 시기에 졸업을 하잖아요. 그리고 비슷한 시기에 직장을 다니잖아요. 마찬가지로 40, 50, 60의 과정을 가면서 느끼는 어려움도 비슷합니다. 우주적 관점에서 보면은 나한테 이렇게 절절한 문제가 그냥 지나가는 삶의 진도표인 거예요. 이럴 때 중요한 건 아동 학대보다 잔인한 것 자기 방치라는 것. 흔들리는 자기 자신을 내버려 두지 않고 뭐라도 해야 되는 겁니다. 첫 번째는 저는 철학자기 때문에 그런 작업을 했는데 저는 주말마다 남산 도서관에 가서 내 마음의 상처를 치유할 수 있는 책을 찾아서 읽었어요. 그리고 나한테 들려 주는 이야기를 썼습니다. 그 책이 '50, 철학을 마주할 때'라는 요번에 나온 책이에요. 여러 독자님들도 하실 수가 있습니다. 자기를 방치하지 말고 힘든 상황이 있으면 이 상황에서 나한테 어떤 지혜가 필요할까를 구하시면서 나름의 연구를 하시고 자기를 방치하지 말고 자기를 추수리십시오. 필요한 지혜를 찾아서 보시면서 가장 중요한 거는 50 이후에는 억지로 할 필요가 없어요. 세상의 관점에 나를 맞출 필요가 없기 때문에 많은 지혜를 보시면서 여러분들한테 필요한 지혜를 찾아서 그것을 섭취하시면 됩니다.
중년의 위기는 대한민국의 위기이기도 해요. 2025년 현재 기준으로 대한민국의 평균 연령은 45.5세입니다. 45.5세입니다. 플라톤이 국가는 큰 글자로 쓰여진 인간이라는 표현을 썼습니다. 이건 무슨 얘기냐면요. 나라 전체의 특징은 국민들의 특징들이 하나하나 모여서 만들어진다는 거예요. 대한민국의 평균 연령이 45.5세라는 건 뭐냐면요. 대한민국 전체가 45.5세의 특징을 갖고 있다는 뜻입니다. 20살 대한민국은 20살 같았어요. 우리의 70년대, 80년대 생각 같으면 됩니다. 하려고 했고 하면 된다고 믿었고 실제로 해냈습니다. 40대 대한민국은 정리 해고를 앞둔 40대 가장하고 똑같아요. 가늘고 모질게 버티는 게 일순입니다. 그리고 항상 분노와 무기력에 가득해 있죠. 이럴 때 중년의 위기를 넘는 방법은 더 많이 벌고 더 높게 올라간 것뿐만은 아닙니다. 이건 20살 대한민국의 방법이에요. 40대 대한민국에 필요한 건 지혜입니다. 온전해지는 것. 그동안 생겼던 내 안의 어두움을 보듬는 것. 인생의 전반기에 빛을 쫓았다면 후반기에는 그림자를 보듬어라. 칼 구스타프 융의 말인데요. 우리 사회에 생긴 그림자를 보듬는 과업이 지금 이 시점에서 필요한데요. 제 책 '50, 철학을 마주할 때'는 이와 같이 개인의 문제를 다루고 있지만은 사회 현상에 대해서 새로운 해안을 찾는 키로서 열쇠로서 작용할 수 있는 측면도 있어요.
'50, 철학을 마주할 때'는 지적 비타민이라고 생각하시면 돼요. 비타민 중에서는 내 몸에 필요한 것도 있고 필요 없는 것도 있잖아요. 이 책에 22가지가 갖고 있는데 순서대로 다 보실 필요는 없습니다. 그때그때 책을 펼쳐 보시면서 아, 난 관계가 고민이야. 관계 파트를 읽어 보시고요. 욕망에 휘둘려서 이런 말씀드려서 죄송하시지만 50의 큰 문제 중에 하나가 일탈의 욕구거든요. 내 마음이 왜 이렇게 흔들린다 그러면 제 책에 나오는 쇼펜하우어 나 이런 철학자들의 얘기를 한번 읽어 보십시오. 이 책은 그래서 제가 50의 중년의 위기를 똑같이 겪어 나가기 때문에 저와 같이 50대를 겪고 계시다면은 이 시기에 맞는 문제를 찾아보시고요. 저는 50대가 아닌데요라고 생각한다면 다가올 50대에 어떤 준비를 해야 될지를 생각하시면서 이 책을 한번 살펴보십시오. 50대는 이 책을 지적 비타민으로 보시고 드문드문 보셔야 되지만 30, 40대 분들은 밑줄을 치면서 정독을 하셔야 됩니다. 앞으로 다가올 미래거든요.
50은 굉장히 힘든 시기예요. 저도 중년의 위기를 굉장히 심하게 겪었고요. 여기서 처음 하는 얘긴데 제가 재작년에 굉장히 좀 힘들었어요. 사람들의 사소한 친절에도 쉽게 무너졌고 별 얘기 아닌데도 굉장히 날이 서서 며칠 동안 끙끙 알았습니다. 그래서 사실 제가 이 책을 쓴 게 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쓴 이유도 있어요. 그런데 제가 이 책을 쓰면서 나아진 것도 있지만 또 한 가지는 다 지나간다는 겁니다. 인생의 그 어떤 어려움도 그 시기에 걷어야 될 마땅한 통장 통이었던 것뿐인 거예요. 우리가 사춘기 때 심각했던 사랑의 열병 성적 고민이 지나보면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50의 고민도 마찬가지일 거라고 생각을 돼요. 그래서 저와 같은 중년의 위기를 겪고 있는 모든 50대들한테 응원을 드리고 싶습니다. 다 지나가고 다 잘될 겁니다. 고맙습니다.
[음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