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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 안녕하십니까? 김석입니다.
오늘도 산책을 하며 가만히 세상을 바라보다가 문득 제 나이 세를 넘기며 깨달은 한 가지 진실을 전하고 싶어 이 자리에 섰습니다. 사람들은 나이가 들수록 외로워진다고들 하지요. 그래서 자꾸 누군가를 만나고 싶어 하고, 만나면은 내 존재를 확인받고 싶어 긴 말을 내뱉게 됩니다. 하지만 기억하십시오. 환갑을 넘긴 나이에 친구를 만나는 대화는 청년 시절의 폐기와는 달라야 합니다. 50년, 60년을 살아오며 우리가 배운 것은 말하는 법이 아니라 입을 닫는 법이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중에서도 제가 오늘 가장 먼저 당부드리고 싶은 것은 바로 여러분의 재산과 경제력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흔히들 친구 사이에 무슨 비밀이 있느냐고 묻습니다. 우리가 수십년 지기인데 내 형편 좀 알면 어때라고 생각하시겠지요. 하지만 그것은 인간의 본성을 너무나 순진하게 믿는 것입니다. 동양에 오랜 지혜에서도 부모 자식간에도 돈 문제는 썩지 말라고 했습니다. 하물며 친구 사이는 어떻습니까?
여러분이 친구보다 조금 더 넉넉하게 산다고 가정해 봅시다. 오랜만에 만난 자리에서 "요즘 연금이 이만큼 나온다. 우리 집값이 이만큼 올랐다. 남은 재산을 어떻게 굴리고 있다."는 말을 은연 중에 내비친다면 과연 친구가 진심으로 기뻐해 줄까요? 겉으로는 "아허, 자네 성공했네."라며 박수를 쳐줄지 모릅니다. 하지만 돌아서는 그 친구의 뒷모습에는 쓸쓸함과 자괴감, 그리고 알 수 없는 미묘한 질투심이 서리게 마련입니다. 그것은 그 친구가 나쁜 사람이라서가 아니라, 인간이라면 누구나 가진 본능적인 비교의 감정 때문입니다.
반대로 여러분의 형편이 어려워 그것을 친구에게 털어 놓는다면 어떻게 될까요? 처음 한두 번은 위로를 받겠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당신은 그 모임에서 부담스러운 존재가 되고 맙니다. 사람의 마음이라는 것이 참으로 간사해서 나보다 잘난 친구 앞에서는 작아지고, 나보다 못한 친구 앞에서는 자신도 모르게 우월감을 느끼거나 혹은 귀찮아하게 됩니다. 저는 100년을 살며 수많은 우정이 깨지는 현장을 목격했습니다. 그 결정적인 계기는 대단한 배신이 아니었습니다. 바로 경제적 격차를 확인하는 그 짧은 대화 한마디에서 시작되더군요.
60세가 넘으면은 친구는 그저 마음을 나누는 벗이어야지, 내 삶의 성적표를 비교하는 대상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여러분이 가진 돈은 여러분의 노후를 지키는 든든한 방패입니다. 하지만 그 방패를 남에게 보여주며 자랑하는 순간, 그것은 당신과 친구 사이를 가로막는 단벼락이 되고 맙니다.
김 교수, 그럼 친구를 만나서 무슨 재미로 이야기를 하냐고 물으실 수도 있겠지요. 여러분, 돈 이야기 말고도 우리가 나눌 것은 참 많습니다. 오늘 본 이름 모를 들꽃의 아름다움, 최근에 감명 깊게 읽은 책 한 구절, 혹은 우리가 젊은 시절 함께 누렸던 그 언덕바지의 추억들. 이런 것들이야말로 우리의 영혼을 살찌우는 대화입니다. 부디 명심하십시오. 내 지갑의 두께를 아는 사람은 오직 나 자신과 하늘뿐이어야 합니다. 친구에게 내 재산의 규모를 밝히는 것은 내 노후의 평안을 타인의 자비심에 맡기는 것과 다름 없습니다. 진정한 고수는 자신을 드러내지 않음으로써 품격을 지키고, 상대를 배려함으로써 관계를 지킵니다.
오늘부터 친구를 만나면 그저 따뜻한 차값 한번 기분 좋게 내는 것으로 족하십시오. 그 이상 내 주머니 사정을 설명하려 들지 마십시오. 그것이 당신의 노후를 지키고 그 소중한 인연을 무덤까지 가져갈 수 있는 가장 현명한 첫 번째 길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흔히 하는 말 중에 "자식 농사가 제일"이라는 말이 있지요. 지나고 칠순을 바라보는 나이가 되면 내 인생의 성과보다 자식의 삶에 더 마음을 쓰게 되는 것이 부모의 본성입니다. 하지만 제가 100년의 세월을 건너오며 얻은 아주 뼈 아픈 교훈 하나가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친구 앞에서 내 자식 자랑을 하는 것은 내 노후의 고독을 예약하는 것과 같다는 사실입니다.
나이가 들면 친구들 사이의 화제는 자연스럽게 자식 이야기로 흐릅니다. "어느 대학에 갔다더라. 대기업에 취직했다더라. 이번에 승진해서 큰 평수 아파트로 이사했다더라."는 이야기들 말입니다. 내 자식이 잘된 것이 대견하고 기뻐서 그저 흐뭇한 마음에 한마디 보태고 싶은 그 심정을 저라고 왜 모르겠습니까? 하지만 그때가 바로 여러분의 지혜가 가장 필요한 순간입니다.
자식은 나의 소유물이 아닙니다. 자식의 성공은 그 아이의 노력과 하늘의 운이 다 만들어진 것이지, 부모가 뽐낼 전리품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종종 자식의 성취를 마치 나의 훈장처럼 가슴에 달고 친구들 앞에 나섭니다. 내가 말하지 않아도 주변에서 먼저 알아봐 주고 축하해 줄 때까지 기다리는 인내심. 그것이 바로 어른의 품격입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그 자리에 모인 친구들 중에는 자식이 사업에 실패해 속을 끓이는 이도 있을 것이고, 아직 장가를 못 가 부모 마음을 타게 하는 이도 있을 것입니다. 혹은 건강이 좋지 않아 병원 신세를 지는 자식을 둔 이도 있겠지요. 그런 친구 앞에서 내 자식의 승진이나 효도를 늘어놓는 것은 상대방의 상처에 소금을 뿌리는 것과 다름 없습니다. 겉으로는 "허허, 자네 자식 참 잘 키웠네."라고 말하겠지만, 그 친구의 마음속에는 지울 수 없는 그림자가 드리워집니다.
한국 사회에서 자식은 곧 부모의 얼굴이라고들 하지만, 역설적으로 자식 자랑을 늘어놓을수록 부모의 얼굴은 초라해집니다. 내세울 것이 자식의 배경밖에 없는 사람처럼 보이기 때문입니다. 진정으로 존경받는 노인은 자식의 지위가 아니라 자신의 말 한마디에서 뿜어져 나오는 인품과 지혜로 빛나는 법입니다.
저는 살아오며 이런 광경을 참 많이 보았습니다. 자식 자랑을 일삼던 친구가 어느 날 자식에게 실망스러운 일이 생기자, 부끄러움에 모임에도 나오지 못하고 스스로 고립되는 경우 말입니다. 내 행복의 기준을 자식에게 두면, 자식의 흔들림에 내 인생 전체가 휘청거리게 됩니다. 그러니 여러분, 자식 이야기는 그저 묻는 말에 짧게 답하는 정도로만 그치십시오. 대신 친구의 아픈 자식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 주십시오. "많이 힘들겠네. 다 지나갈 걸세."라며 어깨를 다독여주는 그 따뜻한 침묵이 백날 자식 자랑보다 당신을 훨씬 더 돋보이게 할 것입니다.
진정한 행복은 내 자식이 남보다 잘난 것에 있지 않습니다. 비록 화려하지 않아도 각자의 자리에서 제 몫을 다하며 살아가는 자식들을 묵묵히 지켜봐 주는 것. 그리고 친구의 자식 또한 내 자식처럼 귀하게 여기는 마음. 그것이 우리가 이 나이에 가져야 할 여유입니다. 자식의 영광을 내 입으로 떠벌리지 마십시오. 그것은 자식의 복을 깎아 먹는 일이요, 소중한 친구를 잃는 지름길입니다. 내 자식이 진정으로 빛나길 바란다면, 부모인 당신이 먼저 겸손의 옷을 입으십시오. 비어 있는 수레가 요란한 법이지, 속이 꽉 찬 이삭은 고개를 숙이는 법입니다.
자식은 자식의 길을 가게 두고, 우리는 우리의 길을 갑시다. 친구를 만나는 시간만큼은 누구의 아버지, 누구의 어머니가 아닌 오롯이 나 자신으로 마주 앉읍시다. 그것이 서로의 우정을 지키고 남은 생을 향기롭게 만드는 비결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흔히 하는 말 중에 "가화만사성(家和萬事成)", 그 만지시청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집안이 화목해야 모든 일이 잘 풀린다는 뜻이지요. 하지만 인생을 살다 보면 어찌 화목하기만 하겠습니까? 부부 사이에도 칼로 물 베기라는 싸움이 있고, 고부간의 갈등, 자식과의 불안은 어느 집이나 담장 너머에 숨겨진 숙제와도 같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명심해야 할 세 번째 금기가 있습니다. 바로 내 집안의 허물, 즉 치부를 친구나 지인에게 털어 놓지 않는 것입니다.
나이가 들면 마음이 약해지고 몸이 고달파집니다. 그러면 자연스럽게 누군가에게 기대고 싶어지죠. "내 남편이 이 나이 먹도록 철이 없다. 며느리가 내 마음을 너무 몰라준다. 사위가 무능해서 딸 고생만 시킨다."는 식의 하소연 말입니다. 당장 입밖으로 내뱉는 속이 시원할지도 모릅니다. 친구가 내 편을 들어주며 같이 욕해 주면 세상에 나를 이해해 주는 사람은 이 친구뿐이라는 착각에 빠지기도 합니다. 하지만 여러분, 명심하십시오. 내가 내뱉은 집안의 흉은 반드시 부메랑이 되어 내 가슴에 꽂히게 됩니다. 말은 옮길수록 커지고 상처는 보일수록 깊어진다는 옛말이 하나 틀린 게 없습니다.
오늘 나를 위로해 주던 친구가 내일도 내 편일 거라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인간 관계란 바람과 같아서 언제든 방향이 바뀔 수 있기 때문입니다. 내가 무심코 던진 집안 이야기는 시간이 흐른 뒤 다른 사람들의 입을 거치며 살이 붙고 왜곡되어 비수가 되어 돌아옵니다. "그 집 아들이 사실은 이렇다더라. 그 집 부부 사이가 껍데기뿐이라더라."는 식의 소문은 여러분의 인품을 갉아먹고, 결국엔 소중한 가족들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입힙니다. 가족의 허물을 말하는 것은 결국 자기 얼굴에 침을 뱉는 것과 다를 바 없습니다.
또한 나이가 들어 친구를 만나는 자리는 서로의 남은 생을 축복하고 긍정적인 에너지를 나누는 자리여야 합니다. 만날 때마다 집안에 어두운 이야기, 갈등 이야기만 늘어놓는 사람을 진심으로 반길 사람은 없습니다. 처음에는 동정심으로 들어주던 친구들도 반복되는 불평과 한숨에 지쳐 하나 둘 당신을 멀리하게 될 것입니다. 부정적인 기운은 전염성이 강해서 당신의 하소연이 깊어질수록 당신 주변의 인맥은 썰물처럼 빠져나가고, 결국 고독만 남게 됩니다.
가족간의 문제는 가족 안에서 해결해야 합니다. 밖에서 해결책을 찾으려 하지 마십시오. 타인은 당신의 아픔을 진심으로 해결해 줄 힘도 없고, 그럴 의무도 없습니다. 오히려 당신의 약점을 확인하고 뒤에서 수근거리는 안줏거리로 삼을 뿐입니다. 만약 마음이 너무 괴로워 견딜 수 없다면, 차라리 산책을 하며 나무에게 말하십시오. 아니면 일기장에 쏟아내십시오. 침묵은 때로 가장 강력한 치유의 힘을 가집니다. 내 가족의 갈등을 밖으로 발설하지 않고 스스로 감내할 때 비로소 어른으로서의 내면의 근육이 생기는 법입니다. 집안에 비밀을 지키는 것은 가족에 대한 마지막 예의이자 나 자신의 품위를 지키는 방어선입니다.
내 집안에 어두운 면을 덮어두고 친구 앞에서는 그저 허허 웃으며 좋은 이야기, 덕이 되는 이야기만 나누십시오. 그것이 가정을 보호하고 우정을 건강하게 유지하는 지혜로운 자세입니다. 남의 입에 오르내리는 집안치고 잘되는 집 본 적 없습니다. 입을 무겁게 하는 것이야말로 노년의 평화를 지키는 가장 견고한 성벽임을 잊지 마십시오.
여러분, 나이가 된다는 것은 마치 오래된 서가의 책이 쌓이는 것과 같습니다. 그 책들 중에는 화려한 성공의 기록도 있겠지만, 차마 남에게 보여주고 싶지 않은 부끄러운 얼룩이나 깊은 후회의 문장들도 적혀 있겠지요. 황갑을 넘기고 인생의 황혼기에 접어들면 사람은 누군가에게 자신의 진심을 다 보여주고 싶어 하는 고백의 욕구가 생기곤 합니다. "사실 내가 젊었을 때 이런 잘못을 했었네. 그때 그 사람에게 이런 상처를 주었지." 하며 과거의 비밀을 털어 놓음으로써 마음의 짐을 덜고자 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제가 100년을 살며 느낀 바에 의하면, 인간의 청렴과 도덕적 결백에 대한 환상은 아주 깨지기 쉽습니다. 아무리 가까운 친구 사이라 할지라도 여러분의 과거의 실수나 도덕적 흠결을 굳이 꺼내어 보이지 마십시오. 그것은 결코 솔직함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것은 상대방에게 나를 판단할 수 있는 채찍을 지어 주는 것과 같습니다. 사람의 마음은 참으로 묘합니다. 겉으로는 위로하는 척하지만 속으로는 "저 사람도 별수 없구나라며" 당신을 낮추어 보기 시작합니다. 한번 땅에 떨어진 권위와 신뢰는 다시 회복하기가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우리가 지켜온 지난 수십 년의 세월이 그 한마디 고백으로 인해 위선으로 치부될 수도 있다는 말입니다.
특히나 과거의 원한이나 누구를 미워했던 마음, 혹은 부정한 방법으로 이득을 취했던 일들과 같은 이야기들은 무덤까지 가져가야 할 비밀입니다. 그런 이야기를 듣는 친구는 당신을 신뢰하기보다 언젠가 나에게도 저지를 수 있겠구나라는 무의식적인 경계심을 갖게 됩니다. 우정이라는 것은 서로의 좋은 면을 비추어 주며 함께 걸어가는 것이지, 서로의 어두운 구덩이를 파헤치며 확인하는 것이 아닙니다.
또한 여러분의 깊은 심리적 상처나 트라우마를 너무 쉽게 드러내지 마십시오. "나는 어릴 때 이런 학대를 받아서. 나는 이런 배신을 당해서 사람을 못 믿어."라는 말은 잠시의 동정을 불러일으킬 수는 있으나, 장기적으로는 당신을 약한 사람 혹은 문제가 있는 사람으로 낙인 찍게 만듭니다. 나이가 들수록 우리는 타인에게 기댈 것이 되어 주어야지, 타인의 에너지를 뺏는 감정의 쓰레기통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만약 과거의 잘못이 발목을 잡고 마음이 무겁다면, 그것은 하늘과 대화하며 스스로 해결하십시오. 진정한 참회는 사람들 앞에서 떠드는 것이 아니라, 홀로 조용히 고개를 숙이고 남은 생을 더 바르게 살아가는 것으로 증명하는 것입니다. 내면의 어둠을 밖으로 끄집어내어 동네 방네에 알리는 것은 용기가 아니라 만용입니다. 친구를 만날 때는 그저 오늘의 햇살과 내일의 희망을 이야기하십시오. 과거의 유령을 소환하여 현재의 평화를 깨뜨리지 마십시오. 우리의 과거는 이미 지나간 강물입니다. 그 강물 속에 가라앉은 앙금을 굳이 휘저어 맑은 물을 흐릴 필요가 무엇이겠습니까?
비밀을 간직할 줄 아는 사람은 입술에 힘이 있고, 내면의 깊이가 있습니다. 남에게 다 보여주지 않는 빈 공간이 있을 때 오히려 사람들은 당신을 더 존경하고 궁금해합니다. 모든 것을 다 보여준 방에는 더 이상 머물 이유가 없듯이, 모든 것을 다 말해 버린 사람에게는 더 이상의 매력이 남지 않습니다. 과거의 허물을 덮어두고 묵묵히 현재를 사십시오. 그것이 당신의 품위를 지키고 주변 사람들에게 편안함을 주는 길입니다. 내면의 평화는 누군가의 공감이 아니라 자신의 입을 다스리는 절제에서 시작된다는 사실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의 침묵은 결코 비겁함이 아닙니다. 그것은 자신과 타인을 보호하는 가장 성숙한 사랑의 방식입니다.
여러분, 이제 마지막으로 제가 꼭 당부드리고 싶은 이야기가 있습니다. 인생의 저녁 노을이 붉게 물드는 이 시기에 우리는 종종 마음이 급해지곤 합니다. 그래서 내가 죽으면 재산을 어떻게 나눌 것인지, 노후에 어느 실버타운에 들어갈 것인지, 혹은 어떤 식으로 마지막을 준비할 것인지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을 주변에 미리 발설하곤 하지요. 하지만 이것이 바로 당신의 노후를 불안하게 만드는 마지막 화근이 될 수 있음을 아셔야 합니다.
나이가 들면은 힘은 빠지고 의지할 곳은 적어집니다. 이때 나의 구체적인 경제적 계획이나 사후의 유산 분배 계획을 미리 공개하는 것은 주변 사람들의 탐욕이나 시기심을 자극하는 것과 같습니다. 자식들에게 "내가 죽으면 이 집은 네 것이다."라고 미리 언하거나, 친구들에게 "내 노후 자금은 이 정도로 충분하니 걱정 없다."고 호언장담하는 순간, 당신을 향한 순수했던 마음들은 조금씩 변질되기 시작합니다. 돈은 사람을 모으기도 하지만, 사람의 눈을 멀게 하기도 합니다.
여러분의 계획을 미리 아는 사람들은 당신의 안부보다 당신의 계획에 더 관심을 두게 됩니다. 자식들은 이미 받은 줄로 착각하고 게을러지거나 더 많이 받기 위해 형제간에 반목하게 됩니다. 친구들은 은연 중에 당신에게 의존하려 하거나, 반대로 당신의 여유를 시기하며 멀어집니다. 진정으로 지혜로운 이는 자신의 마지막 패를 미리 보여 주지 않습니다. 계획은 끝까지 자신의 가슴속에 품고 있다가, 가장 적절한 때에 법과 원칙에 따라 조용히 실행에 옮기면 됩니다. 말로 내뱉는 계획은 약속이 되어 나를 더 구속하지만, 침묵 속에 간직한 계획은 나를 지켜주는 자유가 됩니다.
또한 남에게 앞으로 내가 어떻게 살겠다는 장황한 다짐도 늘어놓지 마십시오. "나는 이제부터 욕심을 버리고 산속에 들어가 살 거다. 나는 매달 이만큼 기부하며 살 거다."와 같은 선언적인 말들은 지키지 못했을 때 당신의 명예를 깎아내리고, 지켰을 때는 당신을 교만하게 만듭니다. 노년의 삶은 말로 증명하는 것이 아니라, 하루하루 살아가는 뒷모습으로 보여주는 것입니다.
여러분, 100년을 넘게 살아보니 인생에서 가장 아름다운 마무리는 고요함이더군요. 호수에 돌을 던지면 파문이 일어 바닥에 진흙이 올라오듯, 내 삶의 계획을 세상에 던지면 평온했던 주변이 소란스러워집니다. 그저 오늘 하루를 정성껏 살고, 내일의 준비는 소리 없이 하십시오. 누군가 당신의 노후 대책을 묻거든, "그저 하루하루 감사하며 살 뿐이지요."라고 웃으며 답하십시오. 그것이 가장 완벽한 대답입니다. 구체적인 숫자와 장소, 방법은 오직 당신의 일기장과 신뢰할 수 있는 법적 조언자만이 알게 하십시오.
이 다섯 가지 침묵을 지키는 일은 결코 쉽지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 침묵은 결코 외로움이 아닙니다. 오히려 나 자신을 존중하고 타인과의 관계를 정화하는 거룩한 수행입니다. 입을 닫음으로써 지혜가 열리고, 지혜가 열림으로써 비로소 타인의 아픔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만갑 이후의 삶은 말하는 기쁨보다 지켜보는 평온이 더 큰 법입니다.
제가 전해드린 이 다섯 가지 가르침을 마음에 새기고 실천하신다면, 여러분의 노후는 추하지 않고 깊이가 있으며, 외롭지 않고 평화로울 것입니다. 저의 이 긴 이야기가 여러분의 남은 여정에 작은 등불이 되었기를 바랍니다. 건강하십시오. 그리고 부디 침묵 속에서 더 깊은 행복을 발견하시길 진심으로 기도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