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anscription
안녕하세요. 새롭게 하소서 주영훈입니다.
안녕하세요. 송진입니다.
안녕하세요. 바원입니다.
오늘 초대님은요. 우리가 자주 쓰는 표현처럼 세월의 모진 풍파와 싸워가며 이겨내신 분입니다.
네. 도망가고 싶었던 순간들이 많으셨을 것 같은데 그때마다 하나님께서 보내 주신 사람들 덕분에 다시 회복되셨다고 고백하시는 분이십니다.
네. 또 제 개인적으로도 오늘 이분 만나면 너무 잘 사라졌고 또 고맙다는 이야기를 또 전해 드리고 싶습니다. 바로 모셔 볼까요? 모유진 자매님이십니다.
어서 오세요.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상큼해졌어요.
네.
아 우리 보조개가 아주 매력적이신 자매님.
네.
감사합니다. 너무 뵙고 싶었습니다.
아 그래요? 잘 나오셨습니다. 보니까 하시는 일이 많으시더라고요.
아, 네. 맞습니다.
네. 지금 뭐 자립 준비 청년들도 듣고 계시고 또 어떤 어떤 일을 하고 계시죠?
네. 어, 본업은 제가 생각할 때 본업은 음악을 하고 있고요. 그래서 전공은 성악인데 어, 그 음악을 통해서 좀 작사 작곡을 해서 좀 자릿 준비 청년의 이야기를 어, 소개하고 있고 그리고 좀 글로 써서 에세이나 칼럼을 좀 하고 있고요. 그리고 이전에는 카페를 또 창업을 했었다가 지금은 좀 정리하고 한 사람 재단이라는 곳에서 자리 준비 청년대를 위한 사업 기획을 하고 있습니다.
예. 또 강연도 자주 하시고
아, 네. 맞습니다.
정말 뭐 아주 자재다능하시네요. 감사합니다.
찬양도 하시고.
네. 왔습니다.
또 이게 음원도 노래도 발표하고 계시고
아, 네. 지금까지는 주로 어 대중 음악에 좀 가까운 곡들을 했었는데 처음으로 이제 히엘이라는 찬양팀에서 찬양도 음원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아 그러시군요. 하나님께서 많은 달란트를 주신 거 같아요.
감사합니다.
제가 인터뷰를 살짝 보니까 어린 시절에 참
많은 일들이 있었더라고요. 그래서 한번 이야기를 나눠 볼 텐데
세 살 때 굉장히 어린 나이 때
네
이렇게 어른들이 이제 생활하는 술집에서 잘하셨나 봐요.
아, 네. 맞아요. 제가 가장 어릴 때 처음 기억하는 장면은 기저기를 차고 있었고 아빠 손을 잡엔 아빠였는데 손을 잡고 이렇게 술집에 이제 아장아장 들어갔어요. 그 당시에 술집에 여사장님이 계셨는데 그 사장님이 저를 되게 예뻐하셨어요. 그래서 막
어, 이름이 뭐니? 이렇게 하면서 말 걸고 그렇게 하하셨던 그 사장님이 어 이제 아무래도 아빠가 저를 뭐 그 그 당시 말로 하우스라는 그 도박장이라든지 이런 곳에 저를 데리고 다니니까
어 이게 좀 안 좋을 거 같아서 그냥 여기 안에 쪽방이 있으니까 이쪽에다 좀 재워라. 그쪽에서 생활을 했어요. 그래서 그때 그린비라는 곳에서 어 이게 아빠가 좀 과목하시고이 말씀이 많이 없고 워낙 바쁘신 분이었다 보니까
그 거기서 이모들이나 이제 사장님이나 또 이제 손님들한테 가서 좀 투다도 떨고 이렇게 하면서 어릴 때는 그렇게 성장을 했던 거 같습니다.
어머니는 그러면 어떻게
어머니가 어 아버지랑은 한 살 때 이혼을 하셨어요. 네. 어 나중에 이제 어 알게 됐는데 좀 스스로 목숨을 끊으셨고네
사진이나 이런 거를 다 좀 남기지 않고
이제 삶을 마감하셔서
그래서 아버지 어 어머니는 이름만 알고 있고 아버지가 저를 키우셨었습니다.
그럼 술 아까 얘기한 사장님은 이렇게 좀 어 엄마처럼 돌봐 주신 거예요?
네 네. 그때 오히려 좀 친 손주 손자분들보다 딱 저를 처음 만났을 때 그냥
저한테 이제 빠졌다 이렇게 말씀을 하셨어요. 그래서 막 그때
막 어릴 때 제가 되게 개구졌거든요. 그래서 동네 친구들이랑 냉장고도 털어 먹고 수박 먹고 이렇게 막 장난도 치고 그랬는데 그런 것도 다 받아 주시고
그리고
사실 어 엄마 없이 이렇게 엄마의 품을 모르고 자랐다라는 거를 아시니까 일부러 저를 좀 이렇게 안아 주셨대요. 이렇게 앞에이 경찰서부터 술집밥까지 이렇게 왔다 갔다 해주시고 그래서 그렇게 좀 어머니의 품을 좀 느끼게 해 주셨고 사실은 오늘 같이 왔어요.
아 그래서 어머니 어를 해 주셨군요.
그니까 어머니의 부제를 못 느끼게끔 사랑으로 쉽게 아빠의 단골집 사장님이신데
네
맞아요. 맞아요. 그니까 저 어머니께서 그냥 우리 집 단골 손님의 딸을 내 딸처럼 이렇게 평생을 지금까지 이렇게 진짜 엄마 노릇해 주셨네요.
맞아요. 좀 어릴 때 이제 제가 천식이 있어서
네.
어
어느 날 병원에 갔는데 병원에서
안 될 거 같다. 기도가 너무 좁아졌고
우리가 해 줄 수 있는게 없다. 데리고 돌아가세요. 했는데 그래서 아빠가 그냥 되게 망연 자실 하고 있었대요. 네. 이제 오상 큰 엄마하고이 친구분께서 그 민간요법 책을 사다가 저의 그 체질과 이런 거에 맞춰서 유진이 체질에는 아카시아꿀과 팥뿌리가 필요하다. 그래서 그걸 매일 다려 가지고
그 당시에 이제 막 요구르투병이나 바카스 이런데 담아서 유치원 갈 때도 이렇게 챙겨 주시고 했어요. 그래서
그래서 사실 그때 덕분에 이렇게 목숨을 건져서
살아 있게 됐습니다.
은인이네요. 그러니까 지금 아까 그 그림비 사장님이 오산 큰 엄마 다음
지금 오산 큰 엄마라고 부르세요?
네. 오산에 살고 계셔서 우상 큰 엄마 이렇게
아 그렇게 부르셨고요. 아 오늘 나오셔서 감사해요.
네. 기는 모습이 되잖아요. 우리 유진을 내 딸처럼 뭐 손주겸 딸처럼 이렇게 키워주신 상상이 되니까
오늘또 여기까지 같이 오신 거 보니까 정말 엄마 이상이네요.
그럼요. 사실 자기 자녀를 위해서도 막 뭐 팥뿌리 아카시아 골 달아서 주 그건 쉽지 않거든요. 우리 유진 자매를 위해서 우리 그 오산 크럼마께서 그런 사랑을 베풀어 주셨고
근데 이제 궁금한 게
아무리 그래도 주말 같은데 되게 바쁘거든요.
손님 많을 때 그럴 때는 그 어떻게 지냈어요?
저희 아버지가 되게 지혜로우셨던게 이제 영업장이 이제 평일에는 좀 한가하더라도 주말엔 바쁘니까
그때 이제 저를 교회로 데려가셨어요. 아버지가 그 당시 신생을 하 않으셨는데 왠지 이제 교회는 그래도 아이를 좀 잘을 수 있는 그래서 평일에는 좀 그런 술직과 다방과 이런 곳에서 좀
사회생활을 문화 생활을 배우고 주일에는 좀 건전하게 신앙생활을 배우고 그래서 어릴 때 그렇게네
자랐던 거 같습니다.
참 다양한 곳에서
아버지께서는 그러면 교회를 다니신 건 아니셨고 그냥 그렇게
약간 맡기기 위해서 잠깐 그렇게 좀
네종에
맞아요. 어 저 저라도 보내 주신 걸 지금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는데 아버지가 그 당시에는 사실 어 제가 태어나기 전에 조직 생활을 하셨었어요. 그러다 보니까 그런 유흥과 그런 놀이에 익숙하셨던 분이셨고
그 어 교회를 그렇게 좋아하진 않으셨는데 어
알고 보니까 아빠의 형제 중에 목사님이 계셨다고 해요.
그래서 어 아버지가 신앙생활 안 하시다가
어 아버지가 하루는 좀 병원에 항상 가시 가셔야 됐었는데 간경화를 한 12년 정도 알아오셨었거든요. 근데 그러다 보니까 주기적으로 병원에 가서 그걸 체크를 받는데 어떤 날은 갑자기 병원에서 시안부 이제 얼마 안 남았다. 가난 말기입니다. 이제 삶의 끝을 준비하라고 이렇게 하셨대요. 근데 그 당시에 아버지는 그런 이야기를 저한테 하는 스타일은 아니셨고
그냥 어느 날 아버지가 기도원을 간다고 하시는 거예요.
아 그런가했
아버지가 거기서 기도를 하다가 어 아빠의 그 형이 막 달려와서 철명아 내가 꿈에서 봤는데 하나님이 너 다 고쳐 주셨대. 너 다 나왔대. 이렇게 하셨대요. 그래서 거기서 하나님을 이제 만나게 되셨는데
그리고 정말 이제 그 40일을 다 채우고 태어나고 병원을 갔더니 암세포가 이제 다 싹 사라졌다고. 네. 네.
그래서 아버지가 그 일을 계기로 모든 그런 생활을 청산하시고
정말 새 사람이 되셔서
군부대라든지 교회라든지 간증도 하시고 그렇게 좀 어 전도사님이 되셨어요. 전도사님 되셨어요.
어때 기억에
어 제 기억에 아빠는 저희 아빠 정말 잘생겼거든요. 그래서 인기도 많으시고 여자도 많으시고 이렇게 했는데
많 좀 많으셨네요.가
많 여자가 많다는 뜻 아니예. 그런 분이셨는데 그리 근데 저한테는 항상 좀 이렇게 과목하고 유진이 알아서 해가 이런 느낌이었는데
그런 아빠가 금요 철에서 이렇게 무릎을 꿇고
이렇게 뚝뚝 우는 거예요.
그걸 보는데
어린 저도 이렇게 같이 따라오르면서
우리 아빠를 이렇게 울게 하는 존재는 어떤 존재지? 음. 그 당시에 좀 느꼈던 거 같아요.
아, 그러면 극적으로 하나님 만나셔서 그로 계속 전도사님 생활 하신 거예요?
네. 전도사님으로 어 주변에 아버지가 그렇게 많은 분들을 좀 전도를 하셨어요. 그래서 그때를 계기로 저희 오상큰 엄마도 하나님을 믿게 되셔요. 또 전도했어요.
네. 저 영상 아 오상머이 정말 산 증인이시네요. 진짜 제가 어릴 때 그런 기억들 뭐 우리 아빠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그런 것들을 제 비어 있는 기억들을 항상 들려 주시고
그죠? 그런 마을 다시겠네요. 외상이 얼마 있었는지까지 다시겠네요. 진짜
돈 빌리고 안 갚았던 제가 볼 때에는 주님을 영접하고 다 청산하시지 않았어. 예. 그런 생각을 어
그리고 아버님 건강은 어떠셨을까?
그러고 나서 2년 뒤에 다시 어, 제발을 하셨어요. 그때는 어느 날부터 좀 아버지가 항상 정장을 입고 간증을 하고 다니시다가
어, 이렇게 내복을 입고 누워 계신 날이 더 많아지게 됐고
그러다 보 감시 병원에 입원을 하셨는데
그때
어,
아버지는 저에게 그런 상태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신 적이 없었지만 네. 이렇게 친척분들이나 오고 가실 때 어 이번에는 어려울 것 같다.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서
아버지가 이번에는 정말 돌아가실 수도 있겠구나. 삶이
끝날 때가 왔구나. 좀 이런 거를 그때 좀 느꼈던 거 같아요.
아, 그래서 본인들의 사연이 방송을 탄 적도 있었어요.
아, 네. 사실 아버지가 제대로 된 직업이 있으셨던 적이 없었거든요. 그리고 저한테 물려 줄 수 있는게 마땅치 않다라는 생각을 하셨던 거 같아요.
그래서 돌아가시기 직전에 그런 사랑의 리퀘스트라는 프로그램에 출연을 예. 하셔서
그 당시에
사실 아빠가 이게 굉장히 그
그 을이 약간 이렇게 사시던 분이셨는데네
그렇게 다 병 걸리고 아프고 이런 누추한 그런 모습을 보인다라는게 쉬운 결정이 아니잖아요. 그냥 저한테 뭐라도 남겨 주고 싶은 마음이 있으셨던 거 같아요. 그래서 그때 그렇게 방송이 마지막에 나가셔서 어 근데 아버지는 방송에 나가시는 건 못 봤고 어 아버지가 이제 돌아가시고 그리고 나서 이제 그 방송이 나가게 되면서
아버지 돌아가시고 방송이 나갔어요. 그때 몇 살 때였어요?
그때 제가 10살 11살 그 정도 됐습니다.
아버님이 직접 본인이 사연을 이렇게 보내셔서 진행을 하신 거잖아요. 그죠? 그때 어주에서도 그렇고 아버지도 이렇게 상의하에 그렇게 하셨던 거 같습니다.
아 그래서 그날 모금이 좀 됐어요. 그때네 그 당시에 한 거의 20년 전이니까 그때 당시로 어 2천만 원 정도가
들어왔고 그런 네
그렇게 들어왔는데 사실은 그 후원금이 있어서 오히려 어 저한테는 그 이후에
제가 원래는 오상 큰 엄마에게 입양이 될 예정이었어요. 네. 오상머니도 어 어릴 때부터 저를 봐오셨고 아버지도 어 형수님 유진이를 부탁해요. 이렇게 말씀을 하시고 돌아가셨다고 해요. 그런데 아버지가 어 그렇게 남긴 그 유산 예 저 그게 이제 저희 친척이 굉장히 가난한 집들이 좀 있었고 그러다 보니까
어 큰 엄마와 저는 혈영 관계가 아니기 때문에 그 우선권이네 같습니다. 그래서 친인척에게 가서 그렇게 해서 저는 위탁 과정에서 생활을 하게 됐습니다.
어떻게 보면 하나님께서 2년이란 시간 동안 하나님 만나서
하나님 전화하고 2년의 시간을 더 보너스로 주셨던 거네요.
원래 가나이셨는데요.
2년에 보너스를 주셔서 하나님 사역 좀 하시고
하나님 뜨겁게 만나 수 있는 시간을 주시고 하나님 곁으로 떠나서 그나마 좀 다행이네요.
음. 맞아.
아버지 돌아가시던 날 기억이 나세요?
어, 아버지가 계속 의식이 없으셨어요. 근데
아버지가 되게 늘 절제된 삶을 사셨고 항상 배부르기 전에 숟가락을 놓는 그런 분이셨는데
근데 이제
병원에 입어했는데 이런 팔이나 이런 데는 다 말라가는데 이제 배 복수가 차니까 이렇게
하고 눈동자도 이렇게 낙엽처럼 노랗게 물 들어가고
그런 걸 보는데 사실 되게 도망가고 싶더라고요. 어린이 무섭죠. 예. 음.
그러다가 아버지가 점점 의식을 잃게 되셨고 아버지가 중간에 잠깐 일어나셨을 때 어 집에 가고 싶다라고 하셨대요. 그니까 의사 선생님도 이렇게 마지막인 걸 알아서 아버지를 집으로 침대째로 이제 옮기기를 결정을 했고
근데
저희가 주공 아파트였는데 엘리베이터가 되게 작아요. 그러니까
아버지가 엘리베이터를 타려면 이걸 접어야 됐던 거예요. 근데 그 저는 이제 좁아서 같이 못 하는데 그때 아버지가 아파요라고 이렇게 마지막으로 이야기를 하셨대요. 네. 근데 그 모습을 저는 그래도 못 봐서 참 다행이다. 이게 말로 들어도 이게 참 오랫동안 남는데
그렇게 해서
방에 올라가셔서 거실에 누워 계시고 주의 목사님과 친척들이 이렇게 둘러싸고
그 당시에 같이 이제 찬양을 했어요. 아버지가 생전 좋아하시던 찬양을 좀 불러 드리고
어 그리고 찬양이 끝났는데 그 정적이 이상하게 너무 다른 거예요. 너무 소름이 끼치는 거예요. 그래서 제가 막 아빠 아빠하고 막 이렇게 흔들었는데 이제 뒤에서 이렇게 제 막 눈도 떠보고 아빠 이렇게 눈도 뛰어보고 하니가지나 아버지 돌아가셨어라고 얘기하니까 이제 막 사방에서도 이렇게 다 이렇게 눈물 터지고 의사분이 이제 이렇게 사망 시간 이렇게 말씀해 주시고 그랬던 그게 아버지의 마지막이셨어.
어.
그럼 이제 나중에 이제 친척들 집에 유탁이 된 거예요? 아니면 모르는 집에 유탁이 된 거예요?
어, 친척집에 위탁이 됐는데
네.
어, 그 가정은 사실 기초 생활 수급 가정에 좀 정서적으로도
이렇게 아픈 곳이었고
음, 정말 이렇게 싸움이 나면 경찰이 와야 될 정도로 정말 그런 곳이었어요. 음 그곳에 가는 거를
어 가족끼리 동의가 안 된 상황이었다 보니까 그 좁은 집에 첫까지 7식구가
사니까 그런게 어
언니들한테는 좀 한참 사춘기 공부해야 될 시기에 제가 찾아오게 된 거고 그래서 그 집에서 사실은 적응하기가 쉽지 않았어요. 어릴 땐 제가 워낙 그 당찬 성격이었다 보니까 그냥 이렇게 처음엔 눈치도 안 보고 그냥 그렇게 어울려서 지내려고 했는데 점점 아
여기에 내가 어울릴 수가 없구나.
그리고 나는 서류상 동거인이고 나는 여기 잠시 머물다가 가야 되는 사람이구나. 가족이 아니구나. 음.
그렇게 느꼈던 거 같아요. 그리고음
제가 아르바이트를 13살부터 시작을 했는데
아무래도 저에게 나오는 그런 뭐 보조금이라든지 후원금이라든지 그런 부분들이 저에게 온전히 쓰여지지가 않았었어요.
그래서 뭐 속옷이라든지 생리대도 제가 사야 됐던 상황이다 보니까 네. 우상 큰 엄마를 만나서 이제 만 원, 2만 원 용돈 주시면 그걸로 사기도 하고 이게 모자라면
어, 처음에는 달라고도 해 봤던 거 같아요. 그래서 처음에 이제
그 생리가 막 그 월경이 시작할 때 그때 학교에서는 그
부모님한테 말해라라고 가르치거든요. 그래서 제가
가서 어, 큰 엄마 저 어 그 생일 시작하게 됐어요. 이렇게 얘기를 했는데 이렇게 탁 보고 어떡하라고 돈 달라고 이렇게 하신 거예요. 그리고 지갑에서 이렇게 천짜리 내장을 꺼내서 저한테 이렇게 던지셨는데 그게 저한테 오 약간 그 자존심이 당연하죠. 그럼요.
그때 생각이 나죠. 그러요. 그러
그래서 아 나는 다시는 여기에서 돈 달라고 하지 말아야겠다. 왜냐면
그거
차라리 내가 몸이 좀 고생하더라도 내 뭔가 그 마음을 지키는게 우선이다 이런 생각이 들어서
그때부터 이제 아르바이트를 했어요.
음. 그래서 네. 제가 사실 초등학교 때부터이 얼굴이었거든요. 그래서 나중에 자료 화면 보시면은 똑같아요.
그러다 보니까 어 전화로 아르바이트를 구하면은 당연히 나이가 안 되잖아요. 그니까 일부러 가게를 이렇게
문 열고 들어가서 그래서 혹시 일거리 좀 있으면 저 좀 시켜 달라고. 근데 그러면 막 뭐라고 하시는 분도 있고 내 쫓는 분도 있는데
어떤 이렇게 막 찾아다니다가 한 중국집에서 아주머니가 저 약간 되게 흥미로운 눈으로 이렇게 보시는 거예요. 그래서 들어와 봐라. 그래서 우리 전단지 안 그래도 돌려야 되는데 장당 35원이야. 돌려볼래? 이렇게 하시는 거예요. 그래서 할 수 있다고. 이렇게 막 테이프를 붙여서이 아파트에 이렇게 붙이는 그 일이었는데 그걸 붙이고 있으면
또 이렇게 배달 오신 사장님이 어 우리 집에도 좀 붙여 달라고 그러면 이제
그럼 두 배잖아요. 한 번에 두 개씩 붙이면 그러면은
원래 그 장당 30원씩 해서
하루에 많아야 한 500장 이렇게 돌리면 한 어 2만 원이 좀 안 되는데
네.
네. 한 3만 원 이렇게 벌게 되면 그걸로 또 일주일에 살고
그러고 그렇게 그걸로 또 생리대도 사고 음.
네. 그거를 사실 큰 집에서 이게 그런 걸 저와 그런 용품들을 공유하고 싶어하지 않는다는 거를 느꼈기 때문에 그래서 그렇게 하기도 하고 정말 없을 때는
정말 친구한테 빌리거나 아니면은 훔치기도 했었어요. 사실 마트나 이런 데서.
그래서 아 그 부분은 나중에 제가 다 태가지부를 이렇게 톡톡해 한 거 같은데.
네. 그렇게 지냈던 거 같습니다.
근데 그렇게 어려운 집인데 방도 없었을 거 아니에요.
근데 그 어려운 집에서 그러면 우리 유진 자매를 본인들이 막겠다고 한 이유는 그러니까 유진양으로 인해서 들어올 그런 경제적인
혜택 때문에 본인들이
받 형편도 안 되는데 받은 거예요.
어 저는 막 100% 나쁜 마음이었을 거다라고 생각은 안 해요. 그 아내는 그래도
음
동생의 딸인데 혼자 남았으니
우리가 데려와야 되지 않겠나 이런 것도 물론 있었겠지만
사실 저희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병원비도 오상큰 엄마가 내 주셨고
장내 치르고 남은 돈도
사실 친척분들이 나눠가져
가셨어요. 그래서 이제 오상권 어머니도 어 유진이 아버지 3일장하고 일당 벌어 가셨냐 이렇게 할 정도로 경제적으로 워낙 열악하시는
다들 어려워서 예
분들이었기 때문에 그런게 그분들한테 아무래도 필요해서 그렇게 됐던 거 같습니다.
밥은 잘 챙겨 먹었어요. 어린 나이에.
어, 사실 이렇게 요리를 하거나 이렇게 청소가 잘되거나 그런 집이 아니었고
그리고 이렇게 밥 먹을 때도 이게 뭐 누구야, 누구야, 누구야, 누구야, 밥 먹어 하는데 이제 뭐 제 이름만 빼고 부른다던가 그러면 이제 그냥 이렇게
그냥 철판 깔고 가서 먹기도 하고 이제 어떨 때는 좀 어, 이렇게 가만히 있으면 언니가 너도 와서 빨리 먹어 이렇게 해서 먹기도 하고.
그 집도 애가 넷이에요.
네. 애가
딸셋 아들 하나. 네, 맞습니다.
네. 근데 거기 또 이제 유진양까지 와서 본인들도 기초수 생활 수급자라서 어려운데
그죠?
맞아요.
그래서 사실 그 가정에서 지내는 동안은
음
어 제가 저를 지키기 좀 급했던 거 같아요. 왜 왜 내가 이런 상황에 처했을까?
어 우리 아빠를 살렸던 그 하나님은 어디 갔을까? 그러니까 그런 생각들을 이렇게
어이고 야 안 올 줄 알았는데 크네. 아유 너무 어린 나이였잖아. 너무
어린 나이
감사합니다.
너무 힘드셨어? 아, 그 뭐 굉장히 좁은 집이었으니 뭐 본인이 잠 잘 자 잘리나 있었어요.
어, 그래서 기억에 어, 또 이렇게 눈치가 늘 보였거든요. 사실 아빠랑 있을 때는 제가 책 읽는 것도 되게 좋아하고
그니까 공부도 곧잘했었어요. 음버가
알아서 해 믿는다 이렇게 말을 하면 저는 이렇게 막 약간
긴장 바짝하고 공부하고 이런 스타일이었는데 거기 집은 자녀분들이 공부 습관이 되어 있는 집이 아니었고 저는 원래 아침에 7시에 일어나서 7시 반에 가서
항상 먼저 문을 따는 그런 학생이었는데 근데 여기서는 일찍 일어나면
애가 야다 영악하다 애답지 않다 이렇게
얘기를 하니까 어, 내가 이게 뭔가 잘못됐구나. 그러니까 일부러 아침에 눈을 떠도 이제 언니들이랑 이렇게 같이 자는 척을 한다든지
그러니까 이렇게 같이 있으면 뭔가 이렇게 뭔가 숨쉬기가 좀 힘든 거예요. 그래서
어 그냥 이렇게 빌라다 보니까 밖에서 보면은 불이 꺼지고 켜지는게 보이거든요. 그러면은 그냥
바깥에서 이제 공원이나 이런 데서 좀 있다가 불이 꺼지면 들어가서 자고 그렇게 생활을 했었습니다.
방도 없고.
네. 그래서 방은 그 당시에 어 방이 세 개인데 뭐 안방은 당연히 재간이 아니고
공부방 그리고 잠자는 방 이렇게 있었어요. 근데
음
보통 뭐 잠자는 방에 첫째 둘째 언니가 있고 뭐 그 공부하는 방에 뭐 셋째 언니가 있고 거실에는 뭐 이렇게
남동생과 이렇게 있고 하면은 제가 포지션을 어디로 될지 모르겠더라고요. 그래서
예 그래서 뭐 있으면 이렇게 뭔가 그 소외된 그니까 나를 이렇게 제외하고 이야기하는 그런 분위기들이 싫으니까 그냥 방에서 이렇게 혼자 책 읽 때 책 읽고 있으면 제가 또 귀가 밝아요. 근데 쟤는 어 할 줄 아는게 저런 거밖에 없어. 그니까 이런 식으로 뭔가 저 제가 좋은 습관이 있는 부분들을 그렇게 안 좋아하셨던 거 같아요. 그런데 또 제가 공부하고 있으면 언니들이나 동생들이 혼나는 거예요. 그 언니들이랑 동생들이랑도 사이도 안 좋고
그러니까 이제
그래서 아 그때 내가 가지고 있던 좋은 습관들을 어 지키기가 좀 어려웠었던 거 같아요. 그 공간에서.
아이고. 아니 근데 보면은 우리 유준자민 님이
음
그 너무 빨리 그 세상을 알아버린 거 같아. 그러니까 이제 내가 이
겉에서 볼 때는 가족이라는 울타리처럼 보이지만 나한테 아무것도 해 줄 수가 없는 곳이구나. 그래서
혼자 뭐 아까 말한 것처럼 알바도 일찍하고 그래도 좀 의지를 가지고 내가 어쨌든 벌어야 돼.
그런데 그런 의지마저도 뭔가 꺾게 된 사건이 있었어요.
어떨어.
아. 예.
음. 음, 그때 제가 아르바이트를 전단지 이후에 뭐 주유소에서도 하고 뭐 PC방이나 치킨집 되게 여러 곳에서 했었어요. 네. 그때 당시에는 어 중학교 2학년이었는데음 사실 동네도 동네가 그렇게 큰 동네는 아니었기 때문에 소문이 났었거든요. 그러니까
어 제가 부모님이 없다는 것과
그래서음
저를 건드려도 그렇게 큰 법적인 어 문제가 일어나지 않을 거다라는게 그 당시에는 좀 이렇게 소문이 있었던 거 같아요. 네. 네. 그때 제 아르바이트를 이렇게 마치고 나올 때 어 그 동네에 한참 좀 나이가 많은 선배가 좀 저에게 좀 그런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 기억을 남겼고
음
근데 그 그게음 그러고 제가 그러고 나서 어 내가 나를 어떻게 설정을 해야 될지 모르겠는 거예요. 어떻게 내가
내 어떻게 살아야 되지. 음느낌이
나라는 그릇이 있는데
누가 그렇게 깨버린 느낌이었어요. 그러니까
어딘가에 쓰여지겠지라고 생각하고 살던 그
이렇게 뭔가
조각조각 났는데
근데 일단
학교도 가야 되고 친구들이랑도 만나야 되고 하니까
다음날 정말 아무렇지 않게 학교를가 갔어요.
근데
어 이미 소문이 다 나 버린 거예요. 그래서 저한테 뭐 이렇게 어떤 언니가 내려와서 너 되게 큰 일 쳤더라 이러면서 그래서 막 심장이 막 뛰는데 다 알아버렸어. 어떻해? 다 알아버렸어. 근데 정말로음 그 소문이 나고 그러면서 그 당시에는 제가 사이월드 세대였거든요.
근데 박명록에
욕으로 도배가 되는 거예요.
네. 아이들이. 근데 그때는 이렇게 어 뭔가 피해자 이런 인식이 아니었고 그냥 그러면
물란하네 이렇게 인식이 됐던 시기였어요. 그러다 보니까 또
그래서 그때 어
아 학교를 못 가겠구나라고 이렇게 판단이 돼서
어 근데 집에서도 좀 이게 학교를 안 가고 있는데음 위탁 부모님이 그걸 아셨던 거예요. 그게 어떻게 들으셨는지는 모르겠는데 그걸 아시고 나서
저를 어 좀 엄청 좀 많이 비난하셨어요.
그러니까
당연히 저의 잘못이라고 이야기를 하시고 그리고 제가 아르바이트를 하면 좀 늦게 오는 날도 있고 했는데 근데 그런 거를 이렇게 약간 유원비어를 직접 만드셨어요.
그러니까 네가 행실을 잘못해서 뭐 이런 식으로 몰라가는 거 네가 어떻게 하고 다녔길래?
아휴. 그러니까 저는 제가 저를 지키 어떻게 설정을 해야 될지 모르겠는데
그렇게 얘기를 하니까
제가 저 어떻게 용서해야 될지 모르겠는 거야.
음. 어떻게 지켜야 될지도 모르겠고 그래서 그때는 옷장에 그 붙박이 장애 안에 들어가서 일단은 아침에 학교 가는 척 막 준비한 척 하다가 지금 그냥 쓱 들어가서 이제 이불처럼 이렇게 누워 있는 거예요. 그러면은 그렇게 좀 있었는데 그러고 가족이 다 나가게 되면 그때 밖에 나와서 밥도 먹고 대화도 하고 이렇게 아 대화 밥 먹고 이제 씻고 이렇게 했었는데 그러다가 큰 아빠한테 걸렸어요. 안에 있는데 밖에서
학교 안 가냐 뭐 하는 거냐 하면서 막 화를 화를 내셨어요. 그래서 그러고 나서 아네이 어기 있을 수가 없구나. 음.
그래서 그다음에 일단 교모 있고 밖에 나왔는데 사실 그런 미성년 여학생이
뭔가 돈 없이
음
이게 낮에 있을 수 있는 데가 생각보다 없어요. 밤이면 사실 더 없는데
그니까 누가 봐도 이상한 거예요. 입었으니까
그래서 아 계속 이게 뭐 벤치나 이런데 앉아 있기도 좀 이상하고 하니까 방법을 찾은게 이렇게 버스를 탔어요. 버스를 타면 네번이 환승이 되거든요. 그러면은
또 제가 그때는 뭔가
회피하고 싶은 마음이 많이 들었는지 계속 잠이 쏟아지더라고요.
그래서 그때 네
제가 생각할 때 버스처럼 안전하게 잘 수 있는 데가 없었어요. 그 사람들이 왔다 갔다 하고 하니까 그래서 버스에 타서 자면 종점에서 깨우면
또 다른 버스 타고 해서 그러다 보면 이제 학교 끝날 시간이 돼요. 그러면 어 학교 갔다 온 척 하면서 그 당시에 학원을 다녔었거든요. 성학 학원을 가서
이제 학교 갔다 온 척하고 이제 연습하고 그렇게 생활을 했었어요.
아 너무 스럽다.
아 그때 교회 다닐 때였어요?
네
아 그죠? 어떤 기도를 했어요?
음
그때 제가 사실 그 일이 있고 나서
정말 좀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게 됐어요.
음. 그까 사실 그 사건들을 이해할 순 없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경에는 요셉과 다윗과 같은 그런 수많은 인물들이 나오잖아요. 그까
정말 어릴 때 양치고 외롭게 컸던 그런 일화들을 보면서 전전도사님이 저한테 목사님도 이렇게 얘기를 해 주셨어요. 그러니까 하나님이 너를 향한 계획이 있다. 네가 지금 겪고 있는 일들 하나님 다 아시고 근데 이거를 아무 의미 없이 주신 고통이 아니라 너를 통해 분명히 하고자 하는 계획이 있다. 이렇게 얘기를 하니까 어 그게 너무 믿고 싶었어요.
그랬는데
어 그러다 보니까 점점 이제 교회 안에서 적극적으로 이제 말씀 듣고
그 당시에 막 매일매일 말씀 읽고 필기했던 노트들이 집에 수십권이 있어요. 막 아침에 일어나면 어 내 마음을 말씀으로 계속 붙들고 그렇게 하다 보니까
어느 날 이제 동네 친구들을 만났는데
네
어 이렇게이 친구도 힘들어요. 왜 물론 저만큼 삶이 드라마틱하진 않은데이 친구도 힘든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은 어 근데 나 너가 내 삶 어떤지 알잖아. 근데
내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갈 수 있는 희망이 있어. 내 소망이 있어. 들어볼래? 이러면서 얘기하다 보면 확 자리에서 이제 막 하나님을 믿게 되고 이러면서
진짜로 친구들이 막 전도가 되는 거예요. 그래서 주일 아침에 막
이렇게 집에 다 들러서 깨워서 막 이렇게 다 데리고 교회 가면서
진짜 하나님이 날 쓰시네, 날 사용하시네.
나 정말 필요한 사람인가 봐. 음런꼈습니다.
그래도 이제 내 마음속에는이 상처들이 이게 회복이 안 되잖아요. 시간이 지나도
정말 그런 사건으로 인해서 생활을 포기하는 분들도 얼마나 많았습니까? 근데 어떻게 회복을 좀 어떻게 견뎌내셨어요?
그때 어 제가 붙을 수 있는 거는 정말 하나님밖에 없었던 거 같아요.
음. 왜냐면이 세상은 양육강식 어 창조론이 아니라 진화론이다. 그러니 강한 자만 살아남고 나처럼 가진 배경이 없고 약하면 그 도퇴되는게 당연한데 하나님은 저를 그렇게 보시지 않는 거예요. 하나님은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고
음
내가 너를 이미 계획하였고 태중에서부터 너를 안다. 너를 너를 사랑하고
너를 향한 수많은 뜻이 있다. 이렇게 해 주는 그게 저의 유일한 이렇게 아 내가 살아갈 수 있게끔 해 주는 이야기였던 거 같아요. 그래서 제 친구들한테도 이런 얘기를 해요. 자리 좀비 청년 동생들을 만나면 어 모든 동화, 소설 영화 이런 스토리에는 고난이 등장하는데 그 고난이 그 사람에게 몰입을 하게 하고 그 주인공 편에 서게 한다. 그러니까 너희는 이미 이야기가 될 자지를 먼저 갖춘 친구들이다. 그러니 하나님이 그 이야기를 사용하실 거다. 약한 자를 들어 쓰실 거다. 그런 이야기를 해요. 어릴 때 이런 이야기를 저에게 심겨 주셨던 분들이 계셨어요. 목사님, 전도사님 하고 제가 막 집에서 너무 말도 안 되는 일을 당해서 교회 가면 그냥 이렇게 막
뭐라고 이렇게 말을 하지 못하고 그냥 울고 있으면
이제 이렇게 해 주시면서
유진아 하나님 다 하신다 이러고
음
어이구야
아니 괜찮아요
응이
얘기가 어떻게 눈물 없이 할 수 있겠어요이
지난 얘기가 어떻게 그냥 할 수 있어요이 아픔들을 어떻게 견디고 참아 왔는데 그죠 괜찮아요. 예.
어떻게 견졌을까?
예. 어떻게 견겠어요?
너무 잘 견뎌 줘서 감사하다.
진짜
본인도 사실 지났으니까 이렇게 편하게 얘기하지만 당시 하루하루가 얼마나
성곡 같은 칼날로 내 심장을 돌려내는 고통을 얼마나 매일매일 느꼈겠어요? 그래도 현대해줘서 고맙고 감사합니다. 그때 정말 감사합니다
막 세상 떠나고 싶다는 생각 많이 그런 충동 많이 느꼈었죠. 오히려 그 어 물론 어릴 때부터 살 삶을 포기하고 싶다 그런 생각은 들었는데 근데 그때는 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일매일 뭐 주어지는 과제들
예
그까 제 삶을 증명하고 싶었던 거 같아요. 그 내 삶이 틀려 먹은게 아니다. 어, 그러고 음전에는 제가 막 이렇게 담대함이 있었기 때문에 뭔가 큰 집에서 이렇게 저를 압박하거나 하면은 그대로 눌리는 사람이 아니었던 거 같아요. 그래서 내가 모든 보여 줘야겠다. 왕따 당하고 이러면
두고 봐. 나는 나중에 어, 정말로 음,
누군가를 살리는 사람이 될 거야. 이런 어릴 때는 그런 소망을
붙들고 그렇게 해서
오히려 어릴 때는 잘 버텼던 거 같아요.
네. 그때 이제 하나님을 막 전하고 다니셨잖아요. 고등학생 나이에.
그때 그 전도하던 때로 노래를 또 만드셨다고 들었는데 어떤 노래예요?
그 아 이렇게 전도를 하면 저는 어 성령님이 하시는 일이잖아요. 그니까 막 하다 보면 계속 기도해요. 하나님 지금인 거 같은데요. 막 하나님 어 지금 할까요? 교회 얘기해요. 말 이렇게 기도하면서 하다가이
친구가이 친구한테
하나님이 정말 살아 계시다. 그리고 너를 정말 기다리고 계신다. 이렇게 얘기하다가
그래 이게 이상하게 들릴 수 있는데 이상한 거 아니고 그냥
어
하나님을 처음 만나는 인사 과정이 있어. 영적 기도문을 이제 하려고 하는데
생각이 안 나는 거예요. 그래서 막 막 지연해 가지고 그래서 아멘. 그래서 예수님이 이제 너의 안에 계신다 이랬는데
아 이게 영적 기도문을 어 외우기가 어렵구나 그리고 급하면 생각이 안 나는구나
그리고 자칫 잘못하면 이게 약간 형식처럼 돼 있어 가지고 다짜고짜 절 따라하세요. 나는 죄인입니다.
이게 히 거부감이 들거든맞
왜 갑자기 나한테 죄인이라 그러 전 죽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런 거
맞아되고 되죠. 그네
그래서 아 내가 나중에는 영적 기도문으로 찬양을 만들어 봐야지
그래서
어이 노래를 알고 있으면 이렇게 금방 생각이 나잖아요. 그래서 아 그렇게 해서 찬양을 좀 만든게 있어요. 아
지금 상황은 약간 뮤지컬리 한 장면 같아요. 그러니까 내가 어려운 내 마음속에 힘든 얘기를 노래로 만들어야지 하면서 딱 장면에
유진양이 탁다
그러다 갑자기 이제 장면이 남면서 음악이 남면서는 거지.
갑자기 노래를 하는 거죠.
그 노래 지금 들어볼 수 있어요?
네. 노래 영접기도
영접기도
본인이 만든 거예요.
그 나이 때
그때는 이제 작사만 작이 듣겠습니다. [박수]
나를 찾아오신 하나님 갑없는 주 사랑을 믿으며 나갑니다. 주를 알지 못하고 [음악] 세상 의지한 나를 회개하고 돌이킵니다. 나의 죄대속하신 주님. 주님을 내 마음 가운데 모십니다. 나의 주인 되시고 자녀로 삼아 주신 예수님 따라 살기 원합니다. 내 삶을 인도하소서. 주의 뜻을 가르치소서. 주 사랑을 입술로 고백하며 말씀을 따라 살게 하소서.
아
와 진짜
아휴이 어디 다 들으려면 어디 있어들을 수 있어요?
아, 지금 사실 응원 작업을 하고 있는데요. 어, 히엘이라는 찬양 팀이고 하나님을 알아가는 청년들이라고 해서
저희 교회 청년들끼리 이제 찬양을 하고 있어요. 그래서 이제 나올 예정이에요?
네. 아, 한달 한 말쯤 되면은 이제 영적 기도 하면은 나올 것 같습니다.
방송 나갈 때쯤 되면 이제 나오겠네요.
어, 그러게요.
아, 전 지금 특히 무반줄에서 그런지 몰라도 이렇게 약간 에코로 올리는데
정말 뮤지컬 한 장면에 어두운 골목에
이렇게 가로등 밑에맞죠.
소녀 하나가 이렇게
예. 지금. 예. 스토리운데서 오갈데 없는 소녀가 이렇게 가로 밑에서 노래 부르고 있는 모습이 탁 떠올라요.
그렇게 들렸어요.
예. 그래서 지금 찬양 내용은 뭐 하나님에 대한 기도지만
본인의 외로움과
내가 지금이 찬양을 다 부르고도
갈 곳 없는 어떤 외로움에 그런 찬양으로 굉장히 들려서 어 너무 확 다가오네요. 그러니까요.
근데 이런 이미지를 그리시는 은사가 있으신 거 같아요.
그죠? 정확히 그렸어요. 그가 있는
아니 그렇게 느껴 주지 않았어요. 맞아요.
그리고 뭐 말씀하시는 목소리도 이쁘지만 참 찬양을 너무 곱게 너무 잘 꼬리처럼 정말 이렇게 우리 왜 만화로 따지면 캔디 같은 어떤 어린 소녀가 이렇게 너무나 하늘을 보면서 하나님께 내가 비록 갈 곳이 없고
보갈 곳이 없고 이런 환경에 있지만 하나님을 찬양하고 있는 그런 아 그런 찬양으로 들려서 되게
너무나로 확 뜨겁게 다가오네요.
아유 목소리도 너무 좋고
너무 잘 들었습니다. 이렇게 정말 20 90년대 최고의
아 여세요
그런 말 할 거면 여주세요
칭찬을 잘못 받으셔 가지고
저 혼내 주세요.
이제 저희가 대신 받아야겠어요. 제 이렇게 받아서 드릴게요.
아 정말
너무 그 장면이 그려져서 그 얼마나
외로운 하루하루였을까?
그 감동은 다 똑같이 동일하게 전해지는 거 같아. 그러니깐요.
그럼 이제 성 점점 커 가는데 계속 그 환경 속에 있었어요. 원래는 이제 어 한 15, 16대부터 이게 아 나는 고등학생이 되면 혼자 나가 살아야겠다. 어, 왜냐면 제가 생각해도 중학생은 너무 어리고 고등학생이면 그래도 오히려 국가에서 나오는 그 돈을 제가 받아서 쓰면 아르바이트를 안 하고도 먹고 살 수 있을 것 같은 거예요. 그래서 막 제도 찾아보니까 그 당시까지만 해도 소년 소녀 가장 제도가 있었어요. 그래서 그런 국가에서 지원하는 아파트에서 지내면 얼마나 좋을까?
왜냐면 나의 공간이 없다는 생각이 있으니까. 그래서 그렇게 생각하고 딱 고일이 되고 이제 갔어요. 이제 저 독립시켜 주세요. 이렇게 얘기를 했더니 네. 음. 안 돼. 지금 네가 나가면 사람들이 나를 뭐라고 생각하겠니? 이렇게 얘기를 하시는 거예요.
그래서 궁금했던 걸 물어봤어요. 혹시 저 그까 아버지 사랑이 리퀘스트 나가서 나왔던 후원금 그거 다 어떻게 하셨어요? 그랬더니 그거 다 썼어. 이렇게 얘기를 하셔서 어 얘기를 하시고 대신에 너 나갈 때 내가 방 얻어 주면 되는 거 아니냐 이렇게 이야기를 하셨어요. 물론 그 약속이 지켜지진 않았지만.
그때 아 나갈 수 없구나. 근데 어 아르바이트를 못 하게 하고 아 이제 아르바이트를 한다고 하면은 하지 마라고 하시는 거예요. 그니까 내가 교통비 줄게 해서 진짜로 안 하면 이렇게 아침에 이렇게 학교 가게 돈 달라고 하면은 이렇게 봄에서 이렇게 째려보고 돈 없어 이렇게 하면은 그까 저를 약간 통제하고 싶어 하신 느낌이었어요. 그러니까 그걸로 저를 피 어떻게 보면은 그 주도권 안에 제가 있기를 원했던 거 같은데.
주도권. 제가. 그게 안 됐던 성질이었던 거 같아요. 그러니까 그냥 어 차라리 막 아르바이트 하다가 그냥 사우너에서 자고 할지 언정 그니까 이렇게 원하는 대로 이렇게 제가 이렇게 이렇게 숨 죽여서 살지 않고 싶었던 거 같아요.
그래서 그렇게 살다가 어 딱 20살이 되고 나서 나가려고 이제 LH 신청도 되겠다. 어 만 18세 이제 보호 종료도 되겠다. 나가야지 했는데 딱 큰아버지가 파산하시고 큰어머니가 그때 뇌종향인가 뇌졸증인가 이제 입원을 하신 거예요. 근데 그 상황에서 막 전세금도 없어서 집에서 쫓겨나게 되시고 막 이런 상황이었어요. 근데 언니들이 세명이 물론 나보다 성인이 세 명이 있지만 다들 대책이 없는 거예요.
근데 여기서 내가 혼자 나가면 분명히 아 키워줬더니 은혜도 모르고 아프니까 이렇게 떠났다. 이런 말들을 제가 듣고 싶지 않았어요. 에 방어를 지키고 싶었고 안 그래도 이제 소문과 그런 사람들의 비난에 제가 엄청 취약한데 그런 말들까지 들리면 제가 정말 무너져 버릴까 봐.
제가 이제 확 쥐고 있었던 그 LH로 그 가족들의 집을 구해주고 그리고 저 이제 따로 월세 제 200만 원을 모았거든요 학교 다닐 때. 그래서 입시하고 이렇게 하니까 딱 200만 원 남았는데 그걸로 월세빵 100만 원짜리 보증금 넣고 50만 원 선불 내고 딱 그 50만 원 가지고 처음 그렇게 자체를 시작했어요.
아 진짜 아니 그 입시 준비해도 돈도 사실 많이 들어가 그랬던데 그 다 혼자 준비한 거네요. 그죠? 그 정도. 사실 너무 감사한게 제가 그 음악하고 원장님을 너무 좋은 분을 만나 만났어요. 그분도 크리스천이셨는데 제 큰 집에서 저 못 보낸다. 너 보낼 돈 없다 했는데 원장님이 유진이만 보내면 돈 안 주셔도 제가 가르치겠다 이렇게 하셔서 그분 덕분에 심지어 그분은 피아노 전공이셨어요. 음성 전공이 아니시다 보니까 외부에서 강사를 초빙해서 직접 삽를 주시면서까지 저를 가르쳐 주셨어요. 근데 이제 대학교를 가려면 좀 더 그런 입시를 교수님한테도 받고 해야 되다 보니까 그런 것만 이제 제가 조금 내야 되는 상황이었고.
그래서 정말 감사하게 성악을 전공한다는게 정말 쉽지 않은 금액에 돈이 들어가는 일인데 원장님 덕분에 제가 막 노래하기 싫어요. 이럴 때도 왜냐면 어릴 때 꿈이 사실은 가수였는데 그 일을 중학교 때 겪고 나서 아 나는 알려지면 알려질수록 난 욕을 먹겠다. 나는 어 이렇게 음악을 한다는 건 사실 곡도 알려지고 그 사람 자체가 브랜드가 되는 일이잖아요. 근데 그 당시에 막 휴스케 이런 거 한참 할 때 아 나는 저런데 못 나가겠다 이러면서 노래가 싫어졌어요.
근데 선 그래서 선생님한테 안 한다고 막 하다가 저 그 가출할 거예요. 이러고 막 배낭에 쏴 가지고 이게 기차를 탔어요. 무작정남. 부산을 한 번도 안 가 봤으니까 부산을 한번가 봐야겠다 갔다가 한 동네쯤에 꺼진 핸드폰을 켰는데 이제 바로 원전 선님이 전화가 오는 거예요. 그래서 어디야? 그래서 저 지금 부산 가는 길이에요. 그랬더니 유진아 돌아와라. 네가 세상에 나갈 때 네가 세상에 맞설 도구 하나는 너한테 있어야 되지 않겠니? 나는 그런 마음으로 너를 가르치고 있으니까 돌아와라. 참 어른이시네요, 정말.
그래서 이제 다시 동네구에 내려서 수원행 기차를 타고 가서 감사하게도 이렇게 배웠어요. 제 삶에 정말 보면은 하나님이 가야 하는 길에 수많은 사람을 배열하셔서 음 제가 삶을 포기하지 않을 수 있도록 그 이유를 계속 만들어 주셨고 음 어 그 덕분에 제가 이렇게 계속 매일매일 걸음을 뗐던 거 같아요. 음.
아 그래도 참 레슨비 많이 비쌌을 텐데. 맞아. 그럼 많은 일을 하셨겠네요. 돈 벌기 위해서 어떤 일 하셨어요? 그 이유음 학생 때 정말 뭐 처음에 그 전단지를 시작으로 주유소는 처음에 그게 숙식이 됐었어요. 거기서 먹고 하면서네 그렇게 좀 생활하기도 했고 그다음에 카페네 키즈 카페 뭐 이런 분식점 음식 파는 곳 뭐 이렇게 피자집 이렇게 굉장히 많은 곳에서 일을 했고 아파트 분양 사무소 이런 데서도 또 이렇게 아파트가 팔릴 수 있도록 좀 보조하는 그런 역할도 해보고 그 그렇게 이제 어 13살부터 23살까지는 쉬지 않고 일을 했었어요.
근데 어 근데 제가 딱 20살이 됐는데 어 이게 대학교를 처음에 일단 들어갔어요. 그리고 방을 구하고 나니까 한 달에 숨만 쉬어도 나간 돈이 120만 원인 거예요. 그죠? 맞아. 어, 낮에 학교 다니고 근데 또 그 당시에 반수 준비하고 하니까 월에 최소 레슨비도 한 40만 원 들어가고 그러면은 160에서 180만 원을 제가 일하면서 벌어야 되는데 그때 뭐 시급이 한 6, 7,000원 하니까 그거를 하기가 너무 쉽지가 않은 거예요.
네. 어느 날 교수님이 저를 딱 앉혀 놓고 유진아 내가 우리 학생들 가르쳐 보니까 이렇게 좋은 명문대학교 나와도 집 뭐 하는지 물어보면 다 카페에서 일하고 있다. 근데 그 친구들은 배경이라도 있으니까 그렇게 살아도 돼. 넌 아니지 않냐? 너 정말 가난해져도 노래 할 수 있어라고 물어보셨어요. 거기서 어 저 할 수 있어요라고 대답을 했는데 사실 그때부터 그 질문이 제한테 피어나는 거예요.
음 여기서 더 가난해져야 된다고. 이거보다 더 아파야 된다고. 그래서 아 나는 노래를 좀 그만둬야겠다. 그래서 사실 그때 노래를 좀 그만뒀었어요. 대학교도 한 학기만에 중퇴를 하고 그쯤에 막 여러 사건 사고들이 제 안에 일어나면서 하나님 뭐예요? 나 하나님 믿고 이렇게 살아왔는데 풀리는게 아무것도 없고 오히려 갈수록 더 비참해지잖아요.
그러다가 일을 했던 곳이 마지막에 스웨디 씨라는 그런 마사지를 하는 데서 일을 했어요. 그게 이제 유일하게 제가 여성인데 유흥업소 아닌데 그래도 큰 돈을 벌 수 있는 일이었었거든요. 그래서 일을 하는데 근데 아무리 건전하다고 해도 이렇게 추행을 하거나 그런 사람들도 있고.
그래서 어 거기서도 안 되겠다고 그만두고 나왔어요. 근데 그쯤에 막 집에 키우던 고양이가 이렇게 막 창 밖으로 떨어져서 외제차가 찌그러졌거든요. 그래가지고 그 외제차 수리비가 딱 저희 집 보증금인 거예요. 이제 딱 그거 해서 메꾸고 나니까 집이 없네. 그래서 어떡하지고 하다가 숙식이 가능한 근데 고양이도 있잖아요. 네. 고기도 많이 다쳤겠네요. 감사하게도 6층에서 떨어졌는데 멀쩡 착지를 또 했구나. 고양이 본능적으로. 맞아. 맞아. 다행히 차가 찌그러지. 차가 찌그러져서 얘는 괜찮았. 지금도 같이 잘 살고 있거든요. 그 비싼 고양이네요. 그 친구. 아, 큰 사고 쳤죠. 맞아. 그 친구 6만 원 주고 데고 하는데 수백만 원짜리 사고.
그래서 네. 그거를 이제 보증금 빼서 메꾸고 하니까 아 근데 당연히 그때 올바른 정상적인 사고라면 얘를 어디다 맡기든가 하고 이렇게 하는게 맞는데 얘가 저 같은 거예요. 그 얘를 어디다 보낼 수가 없어서 고양이를 데리고 숙식을 할 수 있는 데를 막 찾아보다가 그 당시에 지리산 쪽에 그 돌담 쌓는 회사가 제주에서 한 팀이 파견을 왔었어요. 그 팀 밥 할 수 있어. 그래가지고 대신에 숙소 구해 줄게. 그래서 거기서 이제 삼시 새끼와 야식을 와 이렇게 아저씨들 이렇게 일곱분 이렇게 밥을 차려 드린 거죠. 네.
그러면서 요리도 많이 배우고 뭐 얼마나 그 현장일 하면은 든든하게 드셔야 되잖아요. 그러니까 아침에 생선이 나오면 점심엔 고기가 올라와야 되고 이게 찌개도 바뀌어야 되고 그러니까 그때 막 욕 먹으면서 이렇게 일을 했는데 근데 그때도 막 그 저한테 막 무릎에 와서 앉아 봐라 막 이런 이런 걸 하니까. 왜 그러는 거 막 그러니까 거기서 이제 제가 하나님한테 약간 백기를 드는 거죠. 하나님 제가 어 정말 그냥 돈만 벌어보자 하고 살아봤더니 제가 할 수 있는게 별로 없네요. 생각보다 별로 가치가 없는 사람이네요. 그냥 그러니까 하나님 저 잘못했어요. 그니까 저 다시 하나님한테 돌아갈테니까 하나님 믿고 사는 삶이 어떤 삶인지 하나님이 좀 알려 주세요. 이제 그렇게 기도를 하고 거기 이제 정리하고 다시 올라와서 그때부터 다시 하나님과 교재를 시작하면서 처음으로 이제 내적 치유 이런 걸 하면서 제 마음에 있는 쓰레기들도 좀 꺼내보고 이런 시간을 가졌던 거 같아요.
아, 전 유준양이 살아온 이야기를 들었지만 지금이 이야기가 비단 우리 유진 자매뿐만 아니라 자립 준비를 하는 청년들에게 얼마나 비비지할까? 맞아요.이 험한 땅 위에 나홀로 오뚝 서서 어떻게 살아보겠다고 바둥바둥 치는 희탕의 젊은이들의 그 뭘 해야 될지 뭐를 그 막막함. 전 사실 그 밖에 고양이 때문에 차고가 나서 얼마나 달라고 딱 청구가 날아와서 집 보증금을 빼줬다고 그냥 쑥 얘기하고 말았지만 그 청구를 들었을 때 집을 빼야 할 때 이 마음이 하늘이 무너지어 어떻게 하라는 얘긴가 진짜 얼마나 막막했을까 아 그죠 그리고 지리산에 그 음식을 하러 내려갈 때도 또 그 음식을 매일 하면서도 매일매일의 삶이 얼마나 지옥 같고이 뭐 어떡하라는 얘긴가 싶었을 것 같아요.
지금이 땅에 자립 준비 청년들이 다 겪고 있는 일들이죠. 요즘은 그래도 자립 지원 제도가 많이 좋아졌어요. 그래서 아마 이렇게 자리 준비 청년들도 만나시는 걸로 알고 있는데 그러다 보니까 그래도 요즘은 친구들이 건강하게 자산을 관리하는 법을 배우면 네 나올 때 그래도 목돈을 받아서 나올 수가 있어요. 근데 사실이 자립지 제도가 2017년 이때 이후에 나온 친구들한테만 해당이 되기 때문에 그 이전에 종결한 친구들은 사실 거의 지원제도 없이 뭐 한 50만 원 들고 이렇게 나오고 그렇게 했던 친구들이 많아요.
그러다 보니까 사실 그 친구들한테 어 이렇게 시설에 있는 동안 아니면 뭐 위탁 과정에 있는 동안 뭔가 배웠다면 그래도 많이 그 시설에서 맞아요. 그래서 좀 지원을 해 줬다면 그 친구들은 그걸 가지고 살아갈 텐데 만약에 그런 정서적이나 그런 경제적이나 이런 거를 할 수 있는 자원을 아무것도 준비 안 된 상태에서 나왔다면 사실은 선택할 수 있는게 많지 않았을 것 같아요. 네. 네.
그래도 또 우리 자매님 도와주신 분들이 많이 있었죠. 그 당시에 어떤 분 떠올라요. 어 우선 여기 계신 오상한 엄마 지금 좋 주무시는 거 아니죠? 네 집중해주고 계서 제가 싹쓱 보고 있거든요. 큰 엄마가 항상 저한테 유진아 우리는 보통 인연이 아니다. 유진아 너 잘못된 선택하면 안 된다. 큰 엄마 못 산다. 너는 하나님이 너를 돌보신다. 이런 말을 계속 저한테 격려를 해 주셨고 사실 저는 그러다 말 줄 알았거든요. 이러다가 한 어 제가 좀 미운짓하거나 큰엄마 속새이거나 하면 이러다 서서히 연락 안 하겠지 솔직히 이렇게 생각을 했었어요.
근데 물론 저한테 실망하신 적도 있고 막 서로 막 언성을 높인 적도 있지만 그래도 절 계속 보고 싶어 하시는 거예요. 그리고 제가 이런 뭐 간증하거나 이러면 그걸 막 자랑을 하시는 거예요. 그걸 보면서 사실 이렇게 자릿 준비 청년이 정서적으로 사실 힘들 때가 어 함께 기뻐해 줄 수 있는 사람이 없을 때 왜냐면 오히려 아예 너무 독하다 하고 질투하거나 음 나의 일처럼 기뻐해 주는 부모가 없을 때 그게 참 고독하거든요.
근데 어 아 이런 존재가 있구나. 내가 잘되는 걸 누구보다 기뻐하는 이런 존재가 곁에 있었구나. 이런 역할을 해 주셨고 사실 그 버스 기사님의 존재를 나중에 알았는데 네. 어, 이렇게 큰 집에 있을 때 그 막내 동생이 어 편지를 하나 갖다 주더라고요. 그래서 어 그 너한테 온 거더라. 그래서 봤더니 어 나는 수원에서 일하고 있는 버스 기사야. 유진아, 난 널 이름밖에 모르지만 너를 위해 한 달에 7만 원씩 후원하고 있어. 그런 분이 저한테 다섯 분이 계셨던 거예요.
네. 그거를 그 일부러 숨기신 거죠. 아. 네. 그래서 제가 그걸 들고 그 당시에 가정위탁 지원 센터에 가서 어 저 이분 연락 좀 알려 달라고 어 제가 물론 그 혜택을 받지 못했지만 감사 인사를 드리고 싶다 그랬더니 그 개인 정보 보호 기간이 끝나서 어 더 이상 알려 줄 수가 없대요. 그 어때를 통해서 후원을 해 주는 거예요? 그 당시에 이제 초로고산 어린이 재단이라고 네서 거기서 이제 가정 위탁으로서 관리가 되고 있었나 봐요. 그래서 그런 매칭 결현이 있었던 모양이에요.
근데 그런 거를 이제 저에게 알려주지 않으시고 음 그냥 편지라도 쓰게 해 주지 답장이라도. 근데 그 그냥 그 자체를 저한테 안 알려 주고 싶으셨으니까 숨기셨던 건데. 음. 그래서 이제 그때 막 아 내가 너무 파렴치한이 이분이 그럼 어렵게 일하시는 거 맞아요. 그런데 이제 왜 한참 그때 막 뉴스 나오고 기사분들 괄호하시고 이런 거 나오는데 그래서 그때에서 아 그때부터 이제 버스를 탈 때 조금맣게 뭐 과자라든지 간식이라든지 이런 편지 같은 거 조금 써서 이제 그냥 이렇게 감 어 안전운전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드 비상님 성금도 모르죠. 예. 몰라요. 어, 이거 보셨으면 좋겠다. 그래요.
사실 월 7만 원이라는 금액이 크거든요. 그럼요. 그 버스 운전하시면서 본인도 가정 돌보시기 힘든 생활에서 월 7만 원씩 후원해 줬다는게 얼마나 큰 금액고. 아, 맞아요. 정말 오늘의 나뎀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사실 기도와 그런 사랑을 통해서 정말 마을 하나가 다맞 함께해서 우리 유진양을 키우셨네요.
아유, 또 침대 기사님도 있었어요. 어. 아, 예. 엄청 많네. 도움 주신 분들이 하나님이 다양하게 붙여주셨어. 에이스예요. 시몬스 어디예요? 브랜드는 기억이 안 나는데 그 침대를 이제 그 사실 사던 그 시기가 어 처음으로 이제 전세집을 LH로 이제 구한 거예요. 그니까 그 집에서 이제 저도 막 꾸미고 그러고 싶으니까 이제 침대도 샀어요.
근데 샀는데 갑 집주인이 어 미안한데 학생 추워지기 전에 나가줬으면 좋겠어 이러는 거예요. 그래서 어 왜요? 했더니 어 여기가 불법 건축물이 있는데 그게 그 시정 그걸 해야 돼서 공사를 해야 된대요. 시정 명령이 와서네. 근데 어 제가 세입자니까 그 2년 요게 우선이 아닌가 해가지고 찾아봤더니 불법 건축물 때문에 나가야 되는 거면 제가 나가야 된다고 하더라고요.
그니까 버틸 수는 있는데 근데 그렇게 해서 살면 어차피 불안하잖아요. 근데 그러니까 이제 하나님한테 막 따졌죠. 하나님 내 집이 얼마나 중요한 사람인지 알면서 또 이렇게 나를 힘들게 하시냐 그래서 그때 막 와장창 무너지고 학교도 그때 막 겨우간 대학교 막 애프 맞고 막 이러고 이제 그냥 있는데 이게 침대가 침대를 어 옮겨 주는게 6만 원이라고 제가 알고 있었거든. 배송비가. 네와 엘리베이터가 없어 5만 원 더주셔야 돼서 11만 원이에요. 이렇게 하는 거예요.
근데 막 어 해가지고 그냥 1층에 두시면 제가 갖고 올라올게요. 이러면 끊었어요. 네. 그래서 그냥 이렇게 막 막 열받아 가지고 울면서 있는데 막 하나님이 마음에 어 또 침대 기사님들 막 이렇게 막 막 그런 배송 기사분들 괄호하시는 막 그런 생각을 막 알려 주시어 그래 가지고 아 그래 내가이 돈 없는다고 죽나? 아, 하나님이 이거 없다고 나 죽이시는 분 아닌데. 그래, 그냥 드리고 옮기자. 음. 그고 전화가 와서음 내려오세요 해가지고 이제 내려갔는데 저 멀리서 이제 트럭이 오는데 찬양을 틀고 오는 거예요.
어 들려요. 근데 그때 제가 어 약간 지쳐 있을 때라 그냥 이렇게 그냥 이렇게 있었어요. 근데 그분이 침대를 막 뻘뻘하면서 옮기시는데 아 이거는 그만큼의 값이 당연히 들어간 노동이구나. 네. 이거는 그 대각 지불이 당연한 거구나 이런 걸 그냥 느끼고 있었어요. 그래서 들여야 되겠다. 그래서 뭐 옮겨 드려요 해가지고 옮겨 주세요. 해서 이제 올 올라갔는데 막 이렇게 조립하시면서 저희 이제 집을 이렇게 보신 거예요. 그러면서 어 뭐 교회 다녀요. 이러서 아 교회 다닌다고 진짜가 있고 그러니까 그랬더니 뭐 본가는 이래 가지고 아 저는 여기가 제 자칫방인데 본가예요. 이렇게 얘기를 했어요.
그리고 그냥 이따가 원래라면 저도 막 이렇게 막 이렇게 할 텐데 기운이 없어서 그냥 이러고 있다가 귤 드실래요? 이러냥 귤드리고 있는데 다 조립하시고 나갈 때 어 그 계좌번호 문자로 주시면 보내 드릴게요. 했더니 어 하나님이 받지 말라고 하시네. 유진 씨 열심히 살아요. 이렇게 하고 가시는 거예요. 그래서 그때 근데 저는 솔직히 하나도 안 감사했어요. 그냥 하나님한테 내가 언제 저렇게 열심히 사는 사람 삥 뜯어 가지고 나 먹여 살리라고 했어요. 그니까 차라리 침대 회사에서 나한테 이렇게 준다고 하면은 어 거긴 대기업이니까. 근데 이분은 가장일 거 아니에요. 한 아버지잖아요.
그러니까 화 원망이 생기는 거예 막 그랬는데 이분도 참 배려가 상당하시네 진짜. 어 참. 음. 그랬는데 하나님이 이제 마음 가운데 유신아 원래 자식을 그렇게 키워서. 음. 참 정말 사소한 일인데도 하나님이 간섭하셔서 적세적 필요한 분들을 보내셔서 넘어질 만하면 또 나타나고 포기할 만하면 나타나고 제 정말 약한 사람이거든요. 네. 지금도 이제 그냥 툭하면 올고 툭하면 이제 아 저 진짜 안 될 거 같은데요. 이런 스타일인데네 참 신기해요. 어떻게 이런 나를 자꾸 붙드실까? 음. 참 이렇게 기적이 나 정말 열심히 사는 사람 많은데 무슨 나처럼 이렇게 다 깨져 가지고 너덜너덜한 사람을 이렇게 자꾸 사용하실까 이런 게 아 예전에는 제가 열심히 사니까 뭐라도 해 보려고 막 이렇게 하니까 그러니까 하나님이 나를 키워 주시지 음 내가 아무것도 안 하고 누워 있으면 어 하나님 나 버리실 거야 이렇게 생각을 했는데 그때 이제 그 침대 기사님이 이제 해 주시고 이런 걸 보면서 아 하나님이 나를 이렇게 막 이렇게 사장님처럼 나를 이렇게 부려먹으려 그니까 그러려고 한 거 아니었고 그냥 내가 막 열심히 사니까 그런 거 아니었고 나를 사랑하시는 분이구나 이런 거를 그 이후에 늦기 시작했던 거 같아요.
네. 음. 그리고 하나님께서 다 이렇게 기사님 보내 주셔서 그냥 가시고 또 이렇게 버스 기사님께서 보내주신 월 큰 소중한 금액들이 사실 다 빚을 진 거예요. 내가 누군가에게 흘려보내야 될 또 제2, 제3에 외로운 광야에 홀로 고아처럼서 있는 청년들에게 또 우리가 흘려보내야 돼. 소중한 유산이고 빚인 거거든요. 네. 그래서 이제 그 빛을 또 누군가에게 갚아 줘야 되는 거 아니겠어요? 네. 맞습니다. 뭐노래를 통해서든 또 물질이든 다 또 흘려보내야 되는 거 같아요. 그렇죠.
아, 지금 이제 한 사람 재단을 통해서 또 많은 자립 청년들을 돕고 계신가 봐요. 네. 언제부터 인연이 됐어요? 어 제가 이제 카페를 운영을 했었어요. 그래서 그 자릿 준비 청년 공방 카페를 해서 친구들이 어 이렇게 재능이 좀 있는 친구들이 많거든요. 근데 제가 사실 이렇게 좀 그림도 그리고 굿즈도 만들어서 팔아보고 하니까 이거를 디자인하고 제작하고 막 업체 선정해서 포장하고 쇼핑몰 만들고 이런 CS하고 이런게 혼자서 하 할 수 있는 하기엔 너무 벅찬 일이구나. 음 들어보다라는 그런 그게 약간 브랜드처럼 만들어서 알아보다네 따님이 알아죠 그 아 왜냐면 제 정체성으로 지은 이름이 아라거든요. 그게 저는 이테리어 아라레라는 단어에서 왔는데 이제 경작하다 항해하다라는 의미가 있어요. 그래서 그런 자릿 준비 청년이 살아갈 수 있도록 땅을 고르고 새로운 목표를 정해서 항해하는 나아가는 그런 의미로 알아보다라고 지었는데 음 카페를 이렇게 운영을 해 보면서 아 내가 이걸로 그 돈을 벌려고 이거를 운영을 하려고 했던게 아니었구나. 음 사실 그냥 사랑방 청년들이 와서 이렇게 같이 나누고 교재하고 만남들이 일어나고 이런 공간을 원했던 건데 여기 그 친구들한테 뭘 팔 수가 없잖아요. 이생를 운영이 돼야 되는데 그래서 아 내가 정말 갑진 경험하고 배웠지만 이건 나중에 내가 정말로 그 나눌 수 있을 때 하는게 맞겠다. 그런 생각이 들어서 카페를 좀음 정리를 할 때쯤에 또 그때 되게 많이 어 이렇게 정 원래 창업보다 폐업이 어렵거든요. 음 그러서 이제 고생을 하고 있을 여기 나오셨었던 최상규 장로님이라고 그분 그분이 또 저희 카페에 또 종종 오셨었거든요. 어 이렇게 얘기하다가 딱 마침 생각나는 곳이 있다. 그래서 같이 저를 이제 데리고 면접을 보러 간 거죠. 그래서이 청년이 말이죠. 서서 이렇게 얘기를 했는데 마침 또 이사장님이 제 책을 이미 읽은 분이신 거예요. 그래서 그렇게 시작이 돼서 그 재단에 막 제일 처음에 홈페이지 만들고 이렇게 막 디자인하고 청년들을 위한 사업 만들고 하면서 감사하게도 1년 만에 180명의 청년들이 그곳에서 함께하게 됐어요. 네. 그리고 정말 와우. 아. 어. 이곳을 중심으로 그런 뜻이 있는데 어디서 어떻게 도와야 할지 모르겠는 그런 분들이 막 연락 오셔서 청년들과 연락이 되고 연결이 되고 이렇게 살아나고 변화되는 그런 모습들을 보면서 정말 하나님이 그런 고화와 과부를 사랑하시는구나 무언가 하나님이 일을 하기 위해서 준비하고 계시는구나 이런 생각을 많이 들었던 거 같아요. 예.
음. 이렇게 뭐 혼자 살아가면서 또 부모님 생각날 때도 많이 있을 것이고 또 우울할 때도 많이 있을 텐데 그럴 때마다 부르는 찬양이 있어요. 예수는 나의 힘이요는 사실 저희 아버지가 되게 즐길 그래서 저희 아버지가 사실 묘지가 따로 없고 그냥 산에다가 이제 이렇게 뿌렸거든요. 그 아빠 나무가 이제 조선 소나무 아래다 뿌렸는데 이제 20살 지나고 처음으로 이제 이렇게 편말도 좀 모철명 해가지고 이제 만들어 주고 했는데 진짜 무너질 것 같을 때 어 그때 이제 거기 가서 이렇게 성경책 하나 들고 가서 이렇게 아빠가 불렀던 찬양을 이제 같이 불렀었어요.
예. 한번 들어볼 수 있어요? 아, 네. 예수는 나의 힘이여 내 친구 되시니 [음악] 구주 예수 떠나 살면 죄중에 빠지리눈 눈물이 앞을 가리고 내 마음에 큰 심사일 때 위로하고 힘 주시리 주 예수 [음악]
감사합니다. 어. 어. 예수는 나의 힘인 걸 알겠는데 왜 이렇게 슬픈지 마음이. 아이 참. 아유. 반주 없이 부니까 더 슬프죠. 그러니까요. 아휴. 그리고이 스토리를 우리가 듣고 들어서 더 그런 거 같아요. 맞아. 맞아. 사실 이런 이야기를 터 놓는 것이 쉽지 않았을 것 같은데 오늘 나오면서 어떤 생각을 가지고 나오셨어요? 음. 음. 사실 뭔가 제가 막 에너지 넘치고 하나님 나 이렇게 사용하신다 막 이럴 때가 아니라 오히려 하나님 제가 얼마나 연약한지 아시잖아요. 근데 이런 저를 왜 이럴 때 이런 간증의 기회를 저한테 주세요? 이게 너무 신기하더라고요.
근데 오히려 아 정말 하나님이 하셨다. 하나님이 아니면 내 삶이 살아올 수 없었다라는 거를 말할 수밖에 없는 상황까지 하나님 기다리신 거 같아요. 제가 다 힘 빠지고 어 그 안에서 또 울며 불며 원망도 해보고 그렇게 제 마음이 다시 하나씩 하나씩 그 준비가 되어지기를 기다리시지 않았나? 그래서 제가 표현하자면 저의 10대는 그니까 원하지 않는 않는데 제 그릇 제 깨진 그릇에 막 쓰레기가 왔차는 시간이었다면 20대 동안은 그걸 열심히 치웠거든요. 네. 사냥하고 묵상하고 신앙생활하고 섬기고 하면서 그릇을 좀 많이 비웠던 거 같아요. 그래서 이제야 나라는 사람이 이제 그릇이 되지 않았나? 이제야 좀 이렇게 투명해서 이렇게 좀 톡띵하면은 맑은 소리도 나고 뭔가를 담아볼 수 있는 사람이 되지 않았나? 하나님이 이런 나의 삶을 통해서 하나님이 어떻게 한 생명을 계획하고 이끄시고 인도하시는지를 보여 주시려고 지금이 시기에 부르셨구나. 그런 생각이 들어서 어 하나님께 감사한 마음으로 왔습니다.
네. 네. 자, 지금 어떻게 들으셨어요? 아, 저는 얘기 듣는데 마음이 너무 아렸어요. 음. 진짜 너무 왜 또 모르겠어요. 너무 속상해 가지고. 예. 그래요. 그죠? 아이고. 예. 너무너무 고생하셨다고 말씀드리고 싶고. 네. 아, 이게 참 그래요. 우리가 영화 드라마 보면요. 주인공은 항상 캔디잖아요. 그럼 본인 삶은 어떻게 될지 주인공은 항상 모르더라고요. 아, 내 인생 왜 이래? 왜 이렇게 힘들까? 근데 오히려 그 힘을 주는 건 조연들이 너 진짜 빛나고 있어. 넌 진짜 잘할 거야. 너는 하나님이 가진 그 계획 속에 있는 사람이야라고 힘을 보태잖아요. 근데 따지면 멀리 놓고 보면 우리 모두는 어떤 사람의 인생의 조연이잖아요. 아, 우리가 그 훌륭한 조연의 역할을 진짜 잘 감당해 내야겠다라는 생각이 너무너무 들었고 어, 그리고 이제 유지 님 인생이 그 쓰레기가 담겼던 그릇, 또 그걸 비워했던 과정 지금 인생 삼막이 드라마의 삼막이, 뮤지컬의 삼막이 시작된 거 같아요. 그래서 정말 하나님이 유신님을 쓰실 그 일들이 너무 기대되고요. 정말 기도로 또 때로 언니처럼 응원하는 그 마음으로 또 돕고 싶다라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아. 너무 감사해요.
감사합니다. 박현 목사님 아, 우리 자매님 이렇게 보면서 그니까 저도 연락하고 만나고 있는 자리 주민이 청년들이 있는데 그까 그 친구들을 볼 때 드는 딱 하나의 생각이 아이 친구들한테는 자기가 계속 믿고 의지하고 그리고 힘을 얻을 수 있는 어떤 그런 좋은 모델이 필요한 거잖아요. 네. 그런데 대부분의 수많은 사실 그렇게 우리가 연락을 하고 만나는 친구들은 본인이 진짜 의지가 있고 예, 자리 팔려는 막 이런 마음이 있어서 또 우리가 만나게 되는 거고 그에 너무 많은 친구들이 지금 다 곳곳에 사각지대에 살아가고 있다는 것이죠. 근데 그 친구들이 결국 연결되 있는 사람들은 그니까 본인과 같은 정체성을 가진 그니까 계속 어떻게 보면 어둠의 일들에 그런 영향을 받고 이제 악순환이 계속 되는 거예요. 네. 맞습니다.
그래서 제가 느낀게 아 우리 자매님의 역할이 너무 중요하구나. 그 친구들한테는 그냥 자매님이 갖고 있는 삶 자체가 어 나도 저렇게 밝게 또 다시 긍정적으로 살아갈 수 있구나. 음. 그니까 그 자체가 너무 큰 힘이 된다라는 것이죠. 맞아요. 사실 친구들을 만나면 이런 얘기를 해요. 강의가 끝나면 언니 저도 사실 그런 일을 겪었어요. 이게 말을 못 하는 거예요. 그 다 이렇게 안고 살아가고 있는데 그 안에서 사실 해석하는 힘이 중요하잖아요. 네. 내가 왜 이런 일을 겪었고 일은 어떻게 쓰임받을 거다? 뭐 그거를 틀어주는 계속 선포해 주는 왜냐면 세상에서는 너는 안 돼. 음, >> 이미 망했어. 너는 흑수조도 아니고 모래수저도 아니고 먼지수저야. 막 이렇게 말을 하는데 그 속에서 아니야. 나는 하나님이 유일하게 지은 피조물이고 하나님 하나님이 딱 하나 만든 보석이야. 속선포해주고이 친구의 그라는 그 물음을 긍정적으로 이렇게 길을 틀어 줄 사람이 진짜 필요한 거 같아요. 맞아요. 맞아요.
그래서 저는 오히려 아까 말씀하신 것처럼 우리한테 준 그때 그 너무 고통스러웠던 아픔이 이제는 그 친구들 만날 수 있는 무기가 된 거 같아요. 네. 그 이야기를 통해서 이제이 아이들이 다시 빛으로 나올 수 있도록 그럼 그 친구가 변화되면 또 다른 이제 후배들을 이렇게 빛으로 이끌 수 있으니까 그 역할을 우리 예매님이 아 예 유진 자매님 예 유진 자매님이 잘 감당해 주시기를 같이 기도하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우리가 이렇게 자립 준비 청년 또 혼자 된 청년에 대해서 이야기를 많이 했는데 그는 부모가 살아 계셔도 혼자인 또 부모와 인연을 끄는 청년들도 많고요. 부모와 연락을 매일 하지만 내가 부모를 먹여 살려야 되는 청년들도 많습니다. 부모가 안 계셔서 외로운 측면들도 있지만 부모가 계셔서 더 내 어깨가 무거운 청년들도 하고 저 역시도 그렇게 청년의 시간을 보내봤고 아무도 없는 광야에 나올러 버려진 채서 있는 거 같은 감정을 가지고 현대를 살고 있는 청년들이 좀 대다수를 거라고 생각을 해요. 몇 명이나 부모의 도움을 받고 잘 사는 청년들도 있겠으나 부모가 있지만 내 오히려 부모가 있는 것이 더 나를 힘들게 하는 경우에 전 지금 오늘 그 모유진이라는 뮤지컬 속에 많은 등장했던 인물들이 악격도 있었었고 또 우리 유진자를 도와줬던 선한 역할도 있었잖아요. 하나님께서 왜 우리에게 고아와 과부를 돌보라고 했냐? 저는 마치 그것이 혼자된 사람들을 도어라. 외로운 사람들을 돕고 또 그들을 살려라라는 우리 하나님께서 주신 지상 명령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나도 모르게 나타났던 침대 날라줬던 기사님께서 그냥 예수님께서 주신 마음입니다 하고 가셨듯 또 누군지도 모르는 이름도 모를 기사님께서 나를 후원해 주셨던 어떻게 보면 그 등장했던 선한 역할을 하셨던 분들에게 저희에게도 하나님께서 어느 날 갑자기 지나가다 문뚝 내 눈에 보이게 된 어떤 청년이 눈에 들어올 수도 있고 나에게 갑자기 하나님께서 저 친구에게 커피 한 잔을 사 주라라고 음성을 주실 수 있고 저 친구에게 맛있는 국밥 한글릇을 사주라고 마음을 주실 수도 있어요. 내가 바로 그 누군가의 소설 속에 등장하는 역할일 수도 있기 때문에 하나님이 어느 날 문득 내 눈에 어떤 청년거든 어떤 외로운 자도맞은 자가 내 눈에 들어온다면 서슴없이 다가가서 그들의 손을 잡아주고 내가 베풀 수 있는 모든 선한 것을 베풀 때 그것이 하나님이 나를 사용하시는이 세상을 돌리는 역할들을 계속 돌리시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앞으로 우리가 받은 사랑, 거져받은 사랑이고 거져 주신 은혜기 때문에이 거져 주신 은혜를 또 누군가에게 우리가 계속 전하면서 살아가는 인생이 돼야 하나님이 만드신 좋은 작품이 되지 않을까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맡겨 주신 그 같은 역할을 충분히 감당하시면서 많은 청년들 유래해 주시는 역할 또 감당하시기를 저희도 열심히 응원하겠습니다. 오늘 어려운 귀한 간증 나눠주셔서 대단히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 [박수] [음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