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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91회 마음의 정체

법륜스님의 즉문즉설22:21

Transcription

[음악] 심자를 선놨어요. 심의 정체가 무엇입니까? 심리학이나 정신리예약 등 학문에서 말하는 심과 불교등 종교에서 말하는 심은 어떻게 차이가 납니까? 정신 생각이라는 개념과는 어떻게 다른지 공허합니다.

이건 나도 대답할 수가 없는 거야. 그때 용을 때마다 이게 다 어떤 때는 이렇게 쓰여지고 어떤 때는 저렇게 쓰여지고 하기 때문에 심이라고 하는 것은 이런 뜻이다. 이런 정의가 없어요. 어떤 때는 느낌을 말했다가 어떤 때는 의지를 말했다가 어떤 때는 생각을 말했다가 어떤 때는 어 아르마리를 말했다가 이렇게 이게 바뀌는 거예요.

다만 불교에서는 우리들의 육신과 육신과 몸과 마음 보통 이렇게 나누죠. 정신과 육체 이렇게 나누는데 다른 철학이나 다른 종교에서는 육신을 따는 정신, 육체와 분례된 정신 이런 개념으로 많이 씁니다. 근데 불교에서는 원래 불교는 그런 개념을 안 씁니다. 마치 N극과 S극이 그 작용의 면에서 보면 어때요? 한쪽은 한쪽은 s지만은 그건 분리할 수가 없다. 그것처럼 우리들의에 육신이라는 것과 또는 정신 마음과 몸이라고 하는 것은 하나의 결합되어진 상태.

근데 이것을 불교에서는 마음과 몸 이렇게 둘로 나누지 않습니다. 이것을 다섯으로 봅니다. 그래서 이것을 색 수상 행식 이렇게 말해.이 온이라 그러죠. 다섯 가지 모임이다. 다섯 가지 모임이다. 그러니까이 다섯 가지가 모여서 작용하고 있는 상태가 오늘 우리들의 삶이고이 다섯 가지 작용이 흩어져 버리면 어떠냐?이 이 삶이라고 하는 것이 사라지는 거예요.

그러니까 우리가 말하는이 빌링이라고 하는 것은 몸에서는 감각이죠. 이게서 몸을 기초로 하고 있어요. 우리들의 생각이라 하는 것도 그 정보가 내기 저장이 돼 있다 나오는 거죠. 그게 또 몸을 기초라고 있어요. 그리고 우리가 어떤 의지를 불러일으키면 그 의지는 그 결과가 몸에 저축이 돼요. 축적이 된다이 말이야. 그러니까 이것을 분리해서 보지 않는다이 말이야.

그러면 이것을 어떻게 보는게 진실하게 보는 거냐? 하나의 쌓임으로 보고 하나의 흐름으로 보는 거예요. 마치 우리가 강을 보면 강물의 흐름 오늘도 가서 그 강이 있고 내일 가봐도 그 강이 있지만 그 물은 같은 물은 아니에요. 흘러가는 그처럼 우리의 몸도 있는 그대로 여신이 관찰하면 몸은 흐르는 강물처럼 계속 흘러갑니다. 모양은 어제거나 오늘거나 똑같은 거 같은데 그 안에 있는 원소의 구조는 어때요? 어 세포가 때나 소변으로 나가고 새로 먹은게 사이고 계속 흘러가는 거. 마찬가지로 우리의 의식도 계속 흘러가는 거예요. 우리의 감각도 일어났다가 사라지는 거예요. 우리의 생각도 계속 바뀌는 거예요. 이렇게 흐름으로 가는 거.

흘러가는 건데 그것이 항상 하는 것처럼 흐르지 않고 항상 있는 것처럼 착각하기 때문에 집착을 하게 됩니다. 이렇게 감각은 일어났다가 사라지는 건데 그것이 항상 있는 것으로 착각하고 집착하고 있기 때문에 현 실제는 그러지 않는데 잘못 알고 있으니까 뭐가 생긴다? 고가 생기는 거 이렇게 흘러가는데 흐르게 하는 어떤 주체가 있다고 우리가 지금 착각하고 있어. 강물을 흐르게 하는 어떤 주체가 있다. 누가 있어서 강물을 흐르게 한다. 이렇게 생각하는게 있는데 그런 거 없다는 얘기. 그냥 강물은 이렇게 온의 삶에 의해서 모든 것이 다 이렇게 흘러가는 거예요. 그 흘러가는 것에 비안길의 별도의 주체를가 있지 않다. 있다고 보는게 안타만 사상이고 작용만 있지 작용 뒤에 어떤 것이 별도록 있지 않다.

이게 무엇이에요?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오늘날 불교인들은 99%가 힌두이적 불교를 하고 있어요. 즉 아설이 기초를 두고 있다. 이렇게 말할 수 있어요. 그래서 해탈력을 없어. 그러니까 이렇게 흘러가는 그러니까 헐러가는 줄 알아야 돼.이 이 무상한 줄을 알고 고인 줄 알고 무한인 줄 알게 깨달음 그 무상인 줄 알고 무한인 줄 알고를 이렇게 듣고 지식으로 아는게 아니라 자기 몸을 마음을 관찰해서 실제로 그런 것을 체험을 해야 된다이 말이야. 그래서 정득을 해야 됩니다. 그러면 집착할래 집착할 것이 없어집니다. 그 우리가 어느 순간에 딱 집착할 때는 착각을 하기 때문에 집착을 하는 거예요. 저도 마찬가지고 여러분도 마찬가지고 그냥 하나의 흐름만 있어.

그래서 산법일이 뭐예요? 재행무상 재법무와 일체 개자. 그걸 쉽게 말하면 무상고 무화 무상과고 이렇게 말 이게 근본 교실의 가장 핵심이에요. 그걸 그냥 이론 이론으로가 아니라 그걸 바로 자기가 몸과 마음을 관찰해서 그런 상태 있는 걸 자기가 여실히 몸과 마음에서 그걸 체험을 하는 그러면 집착이 집착할려야 집착할게 없어지는 거 흐르는 물을 아무도 잡으려고 하지 않는 것과 같다.

그럼이 흐름이 멈추느냐 그런 뜻이 아니에요? 흐르는 거예요. 흐름을 흐름으로 보는 거예요. 그러니까 여러분들이 아까 일어나는 생각의 흐름도 잡잖아요. 과거의 기억을 빠진다는 건 과거의 기억을 잡는 거고 미래의 생각을 잡거나이 육신에 집착을 하거나이 몸에서 일어나는 감각에 좋고 나쁨에 집착을 하거나 이런 것도 다 흐름을 잡는 거거든요. 그냥 일어났다가 사라지는 거 일어났다 사라지는 줄 알고 있으면 그냥 흐른 말이 있다. 흐름만. 그럴 때 어디 집착이 붙을 건가 있겠어요? 근데도 우리는 일년 순간 그런 걸 놓치죠.

그래서 여기 질문에 뭐가 마음이냐? 마음의 실체가 뭐냐? 이런 것은 아트만적 사고 방식이 이러한 가뒤에 진화라는 것이 따로 있다. 우리가 그걸 찾거나 그것만 발견하면 영원해진다. 이런 영혼 불멸 기초하고 있기 때문에 이런 생각이 나옵니다. 다만 작용 있는 거예요. 이게 과학적인 대도죠. 이게 어떻게 작용하고 있느냐? 이게 바깥에서 경계가 부딪히면 무엇이 먼저 일어나고 그다음에 그것이 어떻게 다음으로 연결되고 그게 어떻게 연결이 돼서 어떤 작용이 일어나느냐 이게 바로 무명 행식 냉생육입 척수 에취유생라고 하는 연기란 말이 이게 어떻게 구성이 돼 있느냐 이게 색수상행식호이란 말이야 이게 어떻게 이게 이게 형성되는 작용이 일어나냐? 눈이 있고 빛이 있고 보는 작용 일어난다. 귀가 있고 소리가 있고 듣는 작용이 일어난다. 코가 있고 냄새가 있고 맞는 작용이라 혀가 있고 맛이 있고 응빠는 작용이 일어난다. 몸이 있고 대상이 있고 감정의 작용이 일어난다. 이게 12처설 18개설이 쉽게 해가면 어떤 물질을 분석한다면 물질이 이건 어떻게 구성이 되 있냐? 물은 어떻게 구성이 되어 있느냐? 이건 구성의 문제가 산소하고 수소가 계란이가 돼 있다. 그럼 이게 물은 어떤 작용을 일으키느냐? 아, 이건 높은 데서 많은 흐르는 작용이다. 이렇게 물질에 대한 구성을 분석해서 구성에 대해서나 그것의 작용에 대해서 온전하게 이해함으로 해서 물을 우리가 필요한 대로 유용하게 쓸 수 있는 것처럼이 뭔가 마음을 온전하게 이해하는 거예요. 구성은 어떻게 돼 있고 작용은 어떻게 하고 어떻게 일어나고 어떻게 되느냐 이걸 온전하게 이해하는 거예요.

그래서 이렇게 형성되어진시기 바로 여섯 가지 식 이게 표면의 식이고 그것이 정보가 사라지지 않고 사에서 저 창호에 하나도 빠짐없이 모여 있다. 그게 아레아식이에. 그 아레아식이 요즘 말하면 잠재식이다. 무식이라고 할 수 있겠죠. 그럼 바깥에 경계가 우리가 올 때이 필링이 왜 일어나느냐? 바로 무의식이 바깥 경계 반응을 일으켜. 그러니까 업식이 경계 부다치면서 업식에서 일어나는 반응이 딜링이에 쾌불쾌이 행위 그게 다시 반응을 하는 거예요. 쾌는 좋다. 불쾌는 싫다. 그럼이 좋다 싫다면 다시 또 의지가 거기 반응을 일으키는 거예. 좋은 건 갖고 싶고 싫은 건 버리고 싶어. 그래서 말과 행위가 일어나는 일어나면 그다음에 또 그 종자가 그 그 열매가 맺쳐서 또 사여서 또이 참고의 사역이 그러니까 또 반응을 하니까 엄격하게 말하면 우리의 삶이라는 건 뭐다? 업의 흐름에 불하는 거. 여기에 자유는 없어요.

어떻게 하면이 흐름의이이 속박대이 윤의 흐름으로부터 내가 자유로워질 수가 있냐? 이걸 잘 알아야 아 이게 좋다 싫다가 일어나도 그 결과가 나쁘면 행하지 않는 여기서 내가 행하지 않는 거예요. 담배가 피우고 싶지만은 건강이 나쁘다고 알아서 끊어버리는 거야. 안 피우는이 계율이에요. 그리고 그러한 반응이 일어날 때 그러면 이렇게 피고 쉽다 하기 쉽다 하는 것은 그 담배의 냄새에 쾌반응이 몸에서 일어난 거예요. 그걸 알아차려서이 쾌반응이 일어날 때 내가 그것을 피우고 싶다로 감정 개입을 안 시키는 거 그게 비싸잖아요. 그게 바로 소위 말하면 선정을 닦는 거다. 산매단 말이야. 그 알아차려.

그렇게 해서 그러면 그러한 감각들은 일어났다가 사라지는 거. 다만 일어났다 사라져. 그걸 우리가한테 피워야 피고 싶은 욕구가 어떻게 됩니까? 사라지죠. 그죠? 또 있으면 또 욕구가 일어나고 그걸 해 버리면 다시 사라지는데 이것을 안 펴도 나아 놓으면 어때요? 한마디로 말하면 지랄을 하다가 상관을 안 해 버리면 어때? 사라지. 애가 막 장난감 사다라고 아우성을 칠 때 사 주면 얼음을 두 꺼쳐. 근데 안 사 주면 막 한마디로 생강자를 다 피근데서 계속 나 아프면 어떠냐? 멈춰 사 줘서 해결하는 것도 있지만 내버려도 버리면 돼. 그래서 서양에서는 애들 9시 딱 되면 딱 잡아가대요. 자기 방에 침대 딱 넣어 버리지. 울든지 말든지 장면 떨어져 닫아 버립니다. 우리는 거기에 개입하지만 일체 개입을 안 하지 않다. 그럼지가 실컷 울다가 온갖지다. 그러니까 누가 봐야 우는 것도 효과가 있지. 아무도 안 보면 효과가 없다는 걸 애가 아나 모르나 알아.

그래서 엄마 같이 가다가 넘어져서 애가 무릎을 다치면 그건 뭐 죽는다고 날리지만은 자기 혼자 가서 너무 제가 무릎을 다치는데 주에 아무도 없다면 조금 울다가 어때 피가 절절 흘러도 그냥 옵니다. 낮 어릴 때 낚고 요렇게 요렇게 렇게 다니다요 뭐야요 무릎을 탁 나 갖고 초대벽위를 탁 꽂아버렸어 아야 당겨버더니만큼 팍져 버렸어 피가 줄줄 아무도 없어 사에 그 울고 있어야 돼 아니지 그러니까 술을 뜯어 가지고 돌로 찍고 뭐 살리를 나스러 껍데기를 벗겨 가지고 어때요 잠에 가지고 내려놓을 수밖에 없단 말이야 어떡할 거야 그러니까 그리 냉정이 있단 말이에요. 그러니까 그 알아차리 즉 선정을 닦는 이유가 거기에 있는 거 그 마음이 그 뺏기지를 않아야 돼.

그러면 이게 꼭 치성했다가 사라지는 거예요. 그럼이 치성했다가 사라지는 거를 한두 번 경험하면 어때요? 이건 꼭 먹이를 좋아해야 사라지는게 아니고 어떤다? 일어났다. 그냥 사라지는 거야. 나면 그러니까다면 지켜보는 거예. 이제 전에는 그 끌려가서 먹이를 줘야 이게 해결이 되는데 이제는 안 주는 거예요. 그럼 가만 보는 거예요.났다 사라지고 이놈 사라지고이다 사라지는 그러니까 여기에 이 한번 이걸 체험하게 되면 안 걸려들지요. 설령 끌려더라도 금방 어 하고 다시 돌아오죠. 그러면 이게 자꾸 자꾸 세력이 약해지는 그려 업정 소멸사했어.

그럴 때 중요한 건 이렇게 소멸하는 건 선전이고 이거 이걸이 냉정을 유지하고 이걸 알아차는 산매고 바로 깨달음이라 뭐냐면 그것의 감각이 결국 원리가 있어. 그건 뭐다? 일어난 건 다 뭐 한다? 사라지는 거다. 그 이치를 알아차리는게 무상이에요. 그 그 감각이라는 것은 쾌든 불쾌든 결국 다 뭐다? 고의 뿌리에요. 그러니까 고다. 그 그것에 일어나고 사라짐의 그 업의 흐름의 기안에 별도의 주체는 없다. 그냥 자격만 있다. 이게 무화예요. 그거를 체험을 한다고.

그래서 부처님의 가르침은 굉장히 논리적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논리에 사로잡히지 않고 논리를 뛰어넘는다고 말할 수 있지 비논리적인 건 아니에요. 굉장히 분석적입니다. 그러나 분석을 뛰어넘는 통찰력을 갖고 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렇게 애매모한 식으로 설명한 건 사실은 없어요. 하면 여러분들이 그런 마치이 과학을 연구하듯이 사물을 분석하고 원리를 찾고 그에 맞게 살아가 하고 이런 태도들이 대부분 없잖아. 그죠? 막히 살지 않습니까? 되는데. 그러니까 그런 사람은 그냥이 문제 해결이 잘 안 돼요. 그래서 우리가 조금만 정신을 차려서 보면 불법에 감동을 하는 기분은 거기에 있는 거. 그리고 그건 다 이렇게 체험할 수가 있는 거예요. 한꺼번에 안 돼서 그러지. 막연한게 아니라는 얘기예요. 근데 오늘 우리는 막연하잖아요.

그래서 여기 질문이 그냥 마음의 정체가 뭐냐? 아, 이렇게 접근하지 말고 마음을 분석하고 연구를 하세요. 자기 마음에 일어나면 자기 가만 이렇게 연구를 하고 분석을 하고 작용을 살펴보세요. 어떻게 이게 작용한 건지. 그리고 부처님 교리를 또 가져와서 보면 아, 나는 두 개가 붙은 걸 하나로 봤는데 딱 그 12연 계습을 분리해 놨어. 감정으로만 봤어는 걸로 봤는데 그것이 느낌이 먼저 일어나고 감정이 거기에 연계되는 두 개의 부식돌이 탁 부딪혀서 불이 일어나고 거기 숙이 가서 딱 불을 붙여 온다이 말이에요. 그렇게 분석이 되 있을 때 자기를 다시 다 깊이 이걸 관찰을 하면 아 이게 그게 한꺼번에 이렇게 웅덩부려서 있던게 이게 분석이 된다고요.

음식을 먹는다. 그러지만은 이걸 분석을 해 보면 입에 들어가서 씻고 뭐 넘기고 어 위에 가서 소화가 되고 다시 자에 가서 소화가 되고 흡수가 되는 이런 것들 한마디로 묶덩거려서 먹는다고 하지만 그 하늘 그 용어를 내부를 분석하면 이렇게 맨 단계로 나누어진다는 거예. 그것처럼 우리들의 마음의 작용이 이렇게 분석해 보면 성격도 잘하고 작용이 순서가 있다는 거예. 그러니까 거기에서 어디에서 내가 그것을 멈추느냐 이렇게 우리가 알아서 처음에는 격정이 일어나더라도 거기 빠지지 않는다. 두 번째는 격증이 일어나지 않도록 한다. 그다음에 격증이 일어나지 않는게 바로 다음에는 감정이 일어나지 않도록 근데 필링이 일어나지 않도록 이건 안 돼요. 필링은 업식에 있어서 일어나는 거니까. 그럼 여기에 감정이 개입 안 되면이이 업식은 점점 소멸하기 때문에 이제에 멸술 수가 멸한 상태이 수가 일어나지 않는다이 말이에요. 그게 이제 아라에요.

그러니까 나머지 작용은 이런 노력해서 관찰해서 일어나는 지어야 되는게 아니라 저절로 안 일어나죠. 근데 그것들을 우리가 하나를 놓치면 다음 땅에서 알아차리고 그걸 놓쳐도 그다음 땅에서 알아차릴 수 있는 거예요. 그래 이제 이렇게 공부하는 데서 대성은 어때요? 또는 직관은 어때요? 그거 통찰로 그 전체라 해서 어디서 알아차리냐 이게 중요하지 않고 그냥 놔아 버리는 거예. 알아차린 데로 놓아 버린다. 뒤에 알아차리면 잘못되고 앞에 알아차리면 좋고 이런 생각도 넣아 버리고 바로 오는 대로 받아들이는 이래서 이제 그 공부법이 조금씩 차이가 있지만은 다 그걸 기초라고 다음 공부가 나온 거지이 기초가 없이 일어난 거는 아니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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