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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을 숨기지 못해 오는 불이익

법륜스님의 즉문즉설27:29

Transcription

어, 본유수님 법문을 거의 10년 넘게 듣다가 이렇게 대면하게 돼서 너무 저한테 뜻깊은 날인 거 같습니다. 저는 청소년기 우울증을 겪어서 그때는 이제 몸이 많이 아팠고 20대에도 좀 쉽지 않은 삶을 산 거 같고 30대에는 이제 취직을 했는데도 좀 강박적인 그런 증상이 있어서 어, 치료를 쭉 해 왔습니다.

그래서 지금은 좀 많이 좋아졌는데 결국에는 이제 어 어느 순간 치료가 되다가음 언젠가부터 좀 고착화된 거 같은 느낌이 있어서 현재 어 결혼 생활도 하고 있고 아이도 있고 직장 생활도 하고 있는데 그 배우자와고도 이제 좀 다툼이 있거나 하면 이제 버럭버럭 화를 낸다거나 아니면 좀 짜증이 많다거나 그렇고 지금 일곱살 아이가 한 명 있는데 그 아이도 이제 좀 아빠 눈치를 보는 거 같고 그래서 나름 수행을 해 가면서 이제 화를 알아차리곤 있지만 그런데도 아이는 귀신 같이 아빠가 화났는지를 다 알고 아빠 화났다고 왜 화난이냐고 이렇게 말 하면 이제 말이 막히고 또 좀 후회하고 이런 것도 있습니다. 그리고 상관하고도 이제 그런 감정 같은 그 저의 감정을 좀 숨기지 못해서 아래채 불이익을 당한 적도 좀 있고요.

그래서 현재 이렇게 어 그런 생활을 하고 있는데 좀 그게 좀 답답하고 좀 어떻게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이 있는지 좀 여쭤 나왔습니다.

어, 본인이이 어떤 것이 정상이다 하는 기준을 이미 설정해 놓고 있고 내가 그 기준에 그동안에 좀 못 미쳤다. 그래서 치료를 해 왔다. 그래서 거의 기준에 근접해 왔는데 더 이상 좀 진척이 안 된다.이 얘기는 약간 마음이 조급하다는 것을 의미하고 있다. 이런 얘기예요. 그래서 여기 두 가지 문제가 있는데 하나는 기준이 설정되 있다는 거예요. 어떤게 정상이다. 어떤게 치료가 된 상태라는 기준을 정해 놓고 하나가 있다는 거고. 두 번째는 자기가 그 기준점에 목표 지점에 도달해야 되는데 쭉 가까이 다가오다가 어느 선에서 머물러서 어 세월은 흐르는데 나이는 드는데 여기서부터는 건접이 잘 안 되고 있다. 자 이런 지금 두 가지인데 첫 번째 기준이 없는 거예요. 원래 자기가 기준이 없는데 기준을 지금 설정해 놓고 있다는 거예요. 두 번째는 그 기준 설정 때문에 자기는 그 기준점에 도달하려고 지금 계속 노력하는데 그게 가까이 안 가지니까 전정 마음이 조급해진다. 조급해지니까 지금 기준점으로 다가가기보다는 실제로는 후퇴하고 있다. 이렇게 말할 수 있어요. 조급하기 때문에 후퇴하고 있는 거예요.

우리가 여기서 말을 잘하려고 하기 때문에 더듬거리고 잊어버리고 올해 결과가 다 나쁜 거하고 똑같다. 그냥 내가 더듬거리면 더거린 대로, 긴장하면 긴장하는 대로 이것이 현재 내 있는 모습이니까 현재 있는 대로 그냥 보이면 되는데 그러면 오히려 결과가 더 잘 되는데 잘하려고 하는 거기에에 집착돼 있기 때문에 마음이 조급해지고 그러다 보니 더거리게 되고 자꾸 잊어버리게 되고 지나놓고 보면 아 그 말을 해야 되는데 그걸 못 했다. 이런 결과가 나는 거하고 똑같다 이거야. 그래서 자기가 그 기준이 본래 없다는 걸 알아야 돼요. 기준이라는게 예를 들면 내가 어 태어날 때부터 한쪽 팔을 못 썼던 팔을 다쳤다. 그러면 다른 사람을 기준으로 하는 거예요. 두 팔을 다 쓰는 사람을 기준으로 해서 내 팔을 그렇게 될 때까지에는 항상 부족한 상태로 자기가 인식을 하는 거예요. 근데 현재 나의 상태에서는 한쪽 발을 못 쓰는게 출발점이에요. 이게 기준점이에요. 모는 상태로 다른 사람이 두 팔을 써서 이을 100을 한다면 나는 한쪽 팔을 못 써서 80을 기준으로 잡아야 돼. 그래서 나는 한쪽 팔을 못 쓰지만은 80을 하는 데는 이상이 없다. 사는데 별 이상이 없다. 때로 한 10 정도 더해가 90이 되면 참 잘했다. 이렇게 감사하는 마음을 가져야 된다 이거야. 근데 늘 백을 기준으로 하니까 항상 못한 것만 체크되지 잘한 건 체크가 될 수가 없어요. 근데 이미 발을 못 쓰는데 그걸 가지고 자꾸 남을 기준으로 해서 자기를 볼 필요는 없다는 거예요. 다른 사람이 100을 기준했다고 나도 100을 기준을 할 필요가 없다는 거죠. 우리 모두가 다 왜 이래 지금 열등의식을 갖고 있느냐? 바로이 기준점을 남을 기준으로 해서 잡아놨으는 늘 못 미치는 거예요.

자기가 약간의 울증이 있다. 그러면 어느 정도 치유를 해 보면 이게 완체가 될 수 있는 일시적 현상인지 이미 우울증이라는 것이 만성화돼서 일정한 선상으로 내가 넘어갈 수 없는지를 어느 정도 체크가 된다는 거예요. 이게 일시적인 거는 짧은 시간에 끝이 나지 그게 무슨 뭐 10년 걸려가 치료된다 이런 건 없습니다. 그러면 자기가 우울증이 있지만은 자기는 결혼 생활을 못 할 정도는 아니다. 회사 생활을 못 할 정도도 아니다. 어, 그러나 다른 사람하고 비교할 때는 뭐 이러한 것으로 인해서 인간관계에서도 조금 어려움이 있고 어 가족 관계에서 조금 어려움이 있다. 그걸 자기가 감안하고 자기를 설정을 해야 되는 거. 그렇지만은 뭐 완전히 못할 정도는 아니다. 그럼 못하는 사람하고 비교하면 어때요? 나는 양한 편이다. 그래서 감사하는 마음을 가져야 된다. 그래서 항상 사람들하고 얘기할 때 어떤 열등의 어떤 부족함 위해서 위축될게 아니라 다른 사람은 내 외형만 보고 기준을 100으로 나한테 적용한다이 말이야. 근데 나는 내 핸디캡을 고려해서 기준이 90이다.이 말이야. 그럼 다른 사람이 뭘 못한다고 지적해도 위축될 필요가 없다이 말이야. 저 사람 나를 몰라서 그러니까 그러니까 지적을 하면 어 죄송합니다. 이렇게 받아들이면 된다 이거예요. 내가 잘못해가 죄송하다고 하는게 아니라 그 사람의 기준점에는 내가 못 미치기 때문에 그 사람 기준점을 내 기준점으로 잡으면 내가 열등의식을 갖게 되는 거예. 내 기준점만 고집하게 되면 어때요? 갈등이 생기게 된다. 그래서 그 사람의 입장에서는 그렇게 말할 수도 있겠다. 그럼 내가 아이고 죄송합니다. 이렇게 말해 주면 되는 거예요.

그러니까 자기가 지금 자기의 어릴 때부터 여러 감안을 해 보면 약간의 정신적인 어떤 핸디캡이 좀 있다. 요걸 고로해서 그렇지만은 사회생활하는데만 큰 문제는 없다. 그래서 이런 나를 함께 살아주는 부인도 고맙고 아이도 고맙고 이런 나를 직장에 일할 수 있도록 배정해 준 상사들도 고맙다. 이렇게 마음을 가지고 항상 자기가 이렇게 어떤 문제를 제기하면 아이고 죄송합니다. 안 그러면 또 감사합니다. 이렇게 하면 훨씬 상태가 양호해진다이 말이야. 그러면 남이 볼 때는 별로 문제가 없는 사람처럼 보인다이 말이야. 근데 자기가 기준점을 높여서 속으로 열등 의식을 갖고 있고 또 그걸 빨리 극복하려고 조급해지면 늘 이렇게 화를 내거나 예민하게 반응하기 때문에 다른 사람이 볼 때 좀 이상한 사람, 문제가 있는 사람처럼 비치게 된다. 그래서 정상이란 기준이 없습니다. 정상이란 쓸 때는 팔이 탁 부러졌는데 기부해 가지고 이렇게 아 한 3개월 더 풀고 좀 약간 연습을 한 1년 있으니까 막 보통 전이 팔처럼 됐다 이럴 때 정상인 거예요. 근데 팔이 부러졌는데 뭐 수술을 해 가지고 팔을 자를 수밖에 없었다. 그러면이 잘라진 팔이 정상이라는 거예요. 기준점이 바뀌어 버리는 거예요. 근데 기준점을 내 죽을 때까지 두 팔을 다 쓸 수 있는 걸 기준점으로 잡으면 이제 자기는 열등식 속에 살아야 되는 거예. 토끼는 토끼에다 기준을 잡아야 되고 노루는 노루에다 기준을 잡아야지 토끼나 노루가 호랑에다 기준을 잡으면 안 된다는 거예요. 그것이 지금이 병의 원인이에요. 그래서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자기가 그러한 것을 감안해서 거기에 맞게끔 자기 정상을 정해야 돼요. 지금 약 먹고 뭐 한다고? 지금 20년 된 병이, 30년 병이 갑자기 나아진다. 이건 불가능합니다. 자기는요 정도만 된 것도 다행이다. 이렇게 이걸 이제 감안하고 받아들이고 여기서부터 이제 그래도 이걸 받아들이면 어떠냐? 부부 생활에도 큰 문제 없고 직장 생활에도 큰 문제가 없어지는 거예요.

아까 한지만 또 여면 지금 아이가 계속해서 이제 뭔가 아빠가 화날 때마다 어 나쁜 마음실을 갖다 버리라고 이렇게 마음을 말을 하시 하는데 그런 관계에서 좀 어떻게 할 수 있을까라는 고민이 되거든요. 그냥 >> 지금 앞으로 지금 이렇게 관점을 바꾸면 화날 일이 없죠, 뭐. >> 네. >> 화날 일 없으면 그런 얘기가 지금 거는 화를내는 상태에서 아이가 그런 얘기를 하는 거고 자기가이 관점을 바꾸면 그런 일은 앞으로 안 일어날 거니까 더 이상 그걸 우려할 필요는 없지. 근데 자기가 놓쳤어. 그런 일이 일어나면 어 미안하다. 아빠가 지금 어 관점을 놓쳐서 너한테 화를 냈구나. 미안해. 이게 무슨 죄지었다는게 아니라 어 그러니까 아파가 팔이 하나 없으면 뭘 달라 그러는데 그러면 이렇게 얘기하면 되죠. 아이고 미안하다. 아빠가 팔이 하나 없다 보니까이 선반이 물건 내리기가 조금 어렵구나. 엄마한테 내가 부탁해서 내려주게 할게. 이게 이때 아이하고 말할 때 위축될 필요가 전혀 없다는 거예요. 이걸 당당하게 표현해야 된다는 거예요. 어 그러니까 팔만 있으면 좋을 텐데 애가 내 팔 없는 걸 뭐라고 생각할까 이런게 잘못된 생각이라는 거예요. 그러면은 이제 자꾸 두 팔이 있는 사람처럼 행동하려니까 자꾸 자기 열등의 시이 빠지게 된다. 그러니까 현 상태를 자기가 먼저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 그런 가운데서도 결혼도 하고 직장도 다니고 애 아빠 역할 하는 거를 항상 절에 다니면 부처님께 감사하고 교회 다니면 하느님께 감사하는 마음을 내야 된다. 그러면 아무데도 안 다니면 그냥 안 다니는 대로 자기 인생에 대해서 감사함. 이렇게 현재 내가 부족하지만은 살아가는 삶에 대해서 감사하는 마음을 내게 되면 아이가 나도 모르게 화를 내서 애가 아빠 어 나쁜 마음 갖다 버려 그러면 그렇게 아이고 나는 버린다고 버린는데이 좀 덜 버려졌네. 미안하다. 앞으로 잘 버릴게요. 아빠 화났다고 왜 화난이냐고 이렇게 말 하면 이제 말이 막히고 또 좀 후회하고 이런 것도 있습니다. 그리고 상관하고도 이제 그런 감정 같은 그 저의 감정을 좀 숨기지 못해서 아래채 불이익을 당한 적도 좀 있고요. [콧방귀] 그래서 현재 이렇게 어 그런 생활을 하고 있는데 좀 그게 좀 답답하고 좀 어떻게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이 있는지 좀 여쭤 나왔습니다. [콧방귀] 어, 본인이이 어떤 것이 정상이다 하는 기준을 이미 설정해 놓고 있고 내가 그 기준에 그동안에 좀 못 미쳤다. 그래서 치료를 해 왔다. 그래서 거의 기준에 근접해 왔는데 더 이상 좀 진척이 안 된다.이 얘기는 약간 마음이 조급하다는 것을 의미하고 있다. 이런 얘기예요. 그래서 여기 두 가지 문제가 있는데 하나는 기준이 설정되 있다는 거예요. 어떤게 정상이다. 어떤게 치료가 된 상태라는 기준을 정해 놓고 하나가 있다는 거고. 두 번째는 자기가 그 기준점에 목표 지점에 도달해야 되는데 쭉 가까이 다가오다가 어느 선에서 머물러서 어 세월은 흐르는데 나이는 드는데 여기서부터는 건접이 잘 안 되고 있다. 자 이런 지금 두 가지인데 첫 번째 기준이 없는 거예요. 원래 자기가 기준이 없는데 기준을 지금 설정해 놓고 있다는 거예요. 두 번째는 그 기준 설정 때문에 자기는 그 기준점에 도달하려고 지금 계속 노력하는데 그게 가까이 안 가지니까 전정 마음이 조급해진다. 조급해지니까 지금 기준점으로 다가가기보다는 실제로는 후퇴하고 있다. 이렇게 말할 수 있어요. 조급하기 때문에 후퇴하고 있는 거예요.

우리가 여기서 말을 잘하려고 하기 때문에 더듬거리고 잊어버리고 올해 결과가 다 나쁜 거하고 똑같다. 그냥 내가 더듬거리면 더거린 대로, 긴장하면 긴장하는 대로 이것이 현재 내 있는 모습이니까 현재 있는 대로 그냥 보이면 되는데 그러면 오히려 결과가 더 잘 되는데 잘하려고 하는 거기에에 집착돼 있기 때문에 마음이 조급해지고 그러다 보니 더거리게 되고 자꾸 잊어버리게 되고 지나놓고 보면 아 그 말을 해야 되는데 그걸 못 했다. 이런 결과가 나는 거하고 똑같다 이거야. 그래서 자기가 그 기준이 본래 없다는 걸 알아야 돼요. 기준이라는게 예를 들면 내가 어 태어날 때부터 한쪽 팔을 못 썼던 팔을 다쳤다. 그러면 다른 사람을 기준으로 하는 거예요. 두 팔을 다 쓰는 사람을 기준으로 해서 내 팔을 그렇게 될 때까지에는 항상 부족한 상태로 자기가 인식을 하는 거예요. 근데 현재 나의 상태에서는 한쪽 발을 못 쓰는게 출발점이에요. 이게 기준점이에요. 모는 상태로 다른 사람이 두 팔을 써서 이을 100을 한다면 나는 한쪽 팔을 못 써서 80을 기준으로 잡아야 돼. 그래서 나는 한쪽 팔을 못 쓰지만은 80을 하는 데는 이상이 없다. 사는데 별 이상이 없다. 때로 한 10 정도 더해가 90이 되면 참 잘했다. 이렇게 감사하는 마음을 가져야 된다 이거야. 근데 늘 백을 기준으로 하니까 항상 못한 것만 체크되지 잘한 건 체크가 될 수가 없어요. 근데 이미 발을 못 쓰는데 그걸 가지고 자꾸 남을 기준으로 해서 자기를 볼 필요는 없다는 거예요. 다른 사람이 100을 기준했다고 나도 100을 기준을 할 필요가 없다는 거죠. 우리 모두가 다 왜 이래 지금 열등의식을 갖고 있느냐? 바로이 기준점을 남을 기준으로 해서 잡아놨으는 늘 못 미치는 거예요.

자기가 약간의 울증이 있다. 그러면 어느 정도 치유를 해 보면 이게 완체가 될 수 있는 일시적 현상인지 이미 우울증이라는 것이 만성화돼서 일정한 선상으로 내가 넘어갈 수 없는지를 어느 정도 체크가 된다는 거예요. 이게 일시적인 거는 짧은 시간에 끝이 나지 그게 무슨 뭐 10년 걸려가 치료된다 이런 건 없습니다. 그러면 자기가 우울증이 있지만은 자기는 결혼 생활을 못 할 정도는 아니다. 회사 생활을 못 할 정도도 아니다. 어, 그러나 다른 사람하고 비교할 때는 뭐 이러한 것으로 인해서 인간관계에서도 조금 어려움이 있고 어 가족 관계에서 조금 어려움이 있다. 그걸 자기가 감안하고 자기를 설정을 해야 되는 거. 그렇지만은 뭐 완전히 못할 정도는 아니다. 그럼 못하는 사람하고 비교하면 어때요? 나는 양한 편이다. 그래서 감사하는 마음을 가져야 된다. 그래서 항상 사람들하고 얘기할 때 어떤 열등의 어떤 부족함 위해서 위축될게 아니라 다른 사람은 내 외형만 보고 기준을 100으로 나한테 적용한다이 말이야. 근데 나는 내 핸디캡을 고려해서 기준이 90이다.이 말이야. 그럼 다른 사람이 뭘 못한다고 지적해도 위축될 필요가 없다이 말이야. 저 사람 나를 몰라서 그러니까 그러니까 지적을 하면 어 죄송합니다. 이렇게 받아들이면 된다 이거예요. 내가 잘못해가 죄송하다고 하는게 아니라 그 사람의 기준점에는 내가 못 미치기 때문에 그 사람 기준점을 내 기준점으로 잡으면 내가 열등의식을 갖게 되는 거예. 내 기준점만 고집하게 되면 어때요? 갈등이 생기게 된다. 그래서 그 사람의 입장에서는 그렇게 말할 수도 있겠다. 그럼 내가 아이고 죄송합니다. 이렇게 말해 주면 되는 거예요.

그러니까 자기가 지금 자기의 어릴 때부터 여러 감안을 해 보면 약간의 정신적인 어떤 핸디캡이 좀 있다. 요걸 고로해서 그렇지만은 사회생활하는데만 큰 문제는 없다. 그래서 이런 나를 함께 살아주는 부인도 고맙고 아이도 고맙고 이런 나를 직장에 일할 수 있도록 배정해 준 상사들도 고맙다. 이렇게 마음을 가지고 항상 자기가 이렇게 어떤 문제를 제기하면 아이고 죄송합니다. 안 그러면 또 감사합니다. 이렇게 하면 훨씬 상태가 양호해진다이 말이야. 그러면 남이 볼 때는 별로 문제가 없는 사람처럼 보인다이 말이야. 근데 자기가 기준점을 높여서 속으로 열등 의식을 갖고 있고 또 그걸 빨리 극복하려고 조급해지면 늘 이렇게 화를 내거나 예민하게 반응하기 때문에 다른 사람이 볼 때 좀 이상한 사람, 문제가 있는 사람처럼 비치게 된다. 그래서 정상이란 기준이 없습니다. 정상이란 쓸 때는 팔이 탁 부러졌는데 기부해 가지고 이렇게 아 한 3개월 더 풀고 좀 약간 연습을 한 1년 있으니까 막 보통 전이 팔처럼 됐다 이럴 때 정상인 거예요. 근데 팔이 부러졌는데 뭐 수술을 해 가지고 팔을 자를 수밖에 없었다. 그러면이 잘라진 팔이 정상이라는 거예요. 기준점이 바뀌어 버리는 거예요. 근데 기준점을 내 죽을 때까지 두 팔을 다 쓸 수 있는 걸 기준점으로 잡으면 이제 자기는 열등식 속에 살아야 되는 거예. 토끼는 토끼에다 기준을 잡아야 되고 노루는 노루에다 기준을 잡아야지 토끼나 노루가 호랑에다 기준을 잡으면 안 된다는 거예요. 그것이 지금이 병의 원인이에요. 그래서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자기가 그러한 것을 감안해서 거기에 맞게끔 자기 정상을 정해야 돼요. 지금 약 먹고 뭐 한다고? 지금 20년 된 병이, 30년 병이 갑자기 나아진다. 이건 불가능합니다. 자기는요 정도만 된 것도 다행이다. 이렇게 이걸 이제 감안하고 받아들이고 여기서부터 이제 그래도 이걸 받아들이면 어떠냐? 부부 생활에도 큰 문제 없고 직장 생활에도 큰 문제가 없어지는 거예요.

아까 한지만 또 여면 지금 아이가 계속해서 이제 뭔가 아빠가 화날 때마다 어 나쁜 마음실을 갖다 버리라고 이렇게 마음을 말을 하시 하는데 그런 관계에서 좀 어떻게 할 수 있을까라는 고민이 되거든요. 그냥 >> 지금 앞으로 지금 이렇게 관점을 바꾸면 화날 일이 없죠, 뭐. >> 네. >> 화날 일 없으면 그런 얘기가 지금 거는 화를내는 상태에서 아이가 그런 얘기를 하는 거고 자기가이 관점을 바꾸면 그런 일은 앞으로 안 일어날 거니까 더 이상 그걸 우려할 필요는 없지. 근데 자기가 놓쳤어. 그런 일이 일어나면 어 미안하다. 아빠가 지금 어 관점을 놓쳐서 너한테 화를 냈구나. 미안해. 이게 무슨 죄지었다는게 아니라 어 그러니까 아파가 팔이 하나 없으면 뭘 달라 그러는데 그러면 이렇게 얘기하면 되죠. 아이고 미안하다. 아빠가 팔이 하나 없다 보니까이 선반이 물건 내리기가 조금 어렵구나. 엄마한테 내가 부탁해서 내려주게 할게. 이게 이때 아이하고 말할 때 위축될 필요가 전혀 없다는 거예요. 이걸 당당하게 표현해야 된다는 거예요. 어 그러니까 팔만 있으면 좋을 텐데 애가 내 팔 없는 걸 뭐라고 생각할까 이런게 잘못된 생각이라는 거예요. 그러면은 이제 자꾸 두 팔이 있는 사람처럼 행동하려니까 자꾸 자기 열등의 시이 빠지게 된다. 그러니까 현 상태를 자기가 먼저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 그런 가운데서도 결혼도 하고 직장도 다니고 애 아빠 역할 하는 거를 항상 절에 다니면 부처님께 감사하고 교회 다니면 하느님께 감사하는 마음을 내야 된다. 그러면 아무데도 안 다니면 그냥 안 다니는 대로 자기 인생에 대해서 감사함. 이렇게 현재 내가 부족하지만은 살아가는 삶에 대해서 감사하는 마음을 내게 되면 아이가 나도 모르게 화를 내서 애가 아빠 어 나쁜 마음 갖다 버려 그러면 그렇게 아이고 나는 버린다고 버린는데이 좀 덜 버려졌네. 미안하다. 앞으로 잘 버릴게요. 아빠 버렸다면서 또 그러네. 아이고 이게 찌꺼기가 깊네. 어 아빠가 딱 버린 줄 알았더니 아 좀 덜 버려졌다. 그럼 네가 조금 기다려 줄래? 아빠 버렸는데 시간이 좀 걸리니까 이렇게 대화를 해 나가면 된다.

좀 아까지만 마지막입니다. 예. 그 저는 사실 병원 다니면서 제가 이제 사람구시 하면서 살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보면은 굉장히 편견이 많은 거 같더라고요. 전문 즉서 봐도 그렇고 다들 스님께서 이제 병원 가라 그러면 어 전 그 정도까지는 아니에요라고 하는데 굉장히 편견이 많은 거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을 하고 설명드지 마지막으로 질문드리겠습니다. >> 그러니까음 자기가 얘기했잖아요. 우울증이라든지 약간 이런 거를 겪었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마음의 상처가 있다는 거예요. 예민하게 반응한다는 거예요. 그래 사람들이이 지나가다가 그냥 자리 있었나 하고 이렇게 툭 쳤는데 그 사람이 건강하면 어 잘 있었다 이러든지 야 학교 너 너무 세게 친다든지 이렇고 지나가는데 어깨 상처를 입은 사람은 어깨를 툭 치면 어때? 아야 이러잖아. 야 너 뭐 하는 거야 도대체? 눈이 있어 없어? 이렇게 반응한단 말이야. 그럼 상대는 나를 괴롭히려고 한게 아니라 그냥 보통 사람 쓰면 일상적으로 생각하고 그냥 톡톡 야 저리니 이렇게 얘기했는데 나는 거기 굉장히 민감하게 반응이 된다는 거야. 이거와 똑같다는 거예요. 어 그니까 자기가 지금 자기의 상처로 인해서 민감하게 반응하는데 본인은 아프니까 그렇게 반응할 수가 있는 거예요. 내가 남을 그렇게 했을 때 툭 쳤는데 상대가 민감하게 반응하면 나는 어떻게 해야 되냐? 아 미안하다 미안하다. 아 난도 어깨 다친 줄 몰랐다. 죄송해 죄송해. 아이고 다음에 조심할게 이렇게 얘기하면 되고 내가 만약에 그렇게 없기를 상대가 탁 쳤다면 나도 모르게 민감하게 어 아니 왜 사람을 이렇게 아프게 해 상대가 뭐 내 뭐 있던데 이렇게 나오면 바로 나를 알아봐야 된단 말이야 아이 얘는 그냥 장난으로 그냥 했구나 근데 내가 상처가 있다면 민감하게 반응하나 어 그래 그래 알았다 알았다 아이고 내가 약간 그 어깨가 아파 가지고 좀 민감하게 반응했나 보다 이렇게 대응을 을하면 관계가 잘 해결이 된다 이거예요. 그 자기는 항상 자기가 조금 민감하게 반응한다.이 민감하게 반응하기 때문에 죄스럽다든지 민감하게 반응하기 때문에 열등하든지가 아니라 이게 현재의 나의 존재라는 거예요. 현재의 나의 존재. 현재. 그러니까 만약에 아내라면 남편의 그런 상태를 이해하고 인정하고 이해해서 다루면 좋은데 근데 세상에서 그런 사람이 몇 명 안 된다는 거예요. 어 그러니까 아내한테 나를 좀 잘 알아가 돼 달라 이렇게 요구하면 그 될 수가 없어요. 아 나 그렇게 힘들게 사내니까 네하고 안 살래 이렇게 나오기가 쉽다. 좀 사람들은 어 그러나 내가 이제 아내가 다른 사람을 대할 때는 그런 걸 고려해서 대해야 된다. 또 반대로 내가 그렇게 민감하게 대응할 때는 상대에게 그런 요구를 해서는 안 된다는 거. 그니까 내가 민감하게 반응이 나도 모르게 되면 오히려 사과를 해야 된다 이거. 아이고 별거 아닌데 내가 민감하게 반응했어. 미안해. 이렇게 얘기를 하면 된다. 그니까 화가 이치를 알면 화가 안 나는데 나도 모르게 화를 냈다면 아이고 미안해. 요즘 내가 좀 민감하지. 네가 힘들겠다. 이렇게 반응을 하면 큰 문제가 없다는 거. >> 네. 감사합니다. 선생님. >> 네. [박수]

부처님의 가르침은 항상 나를 향해서 가르친 가르침 모든 법륜 스님의 직문즉설은 나를 향해서 한 얘기야. 부처님의 가르침은 남에게 적용하면 안 돼요. 부처님께서 알아차림을 유지하면화할 일이 없다. 그러면 내가 나에게 이걸 적용해야 된다 이거야. 그럼 내가 화가 나면 어 내가 알아차림을 놓쳤구나. 그러면 놓친 거에 대한 참이 세상에서 말하면 잘못했다. 죄를 지었다. 이런 개념이 아니라 깜빡 놓쳤구나. 그렇게 하고 알아차림으로 돌아오는 거란 말이야. 이것이 부처님의 가르침을 받아들이는 자세지. 남편이나 아내가 화를 벌컥내는데 야 너 놓쳤다. 아 너 수행전데 그 화를 내서 되니 이거는 이렇게 하면 안 된다는 거예요. 그러면이 부처님의 가르침이 비수가 되는 거예요. 요리를 하거나 어떤 뭐 공제이 작품을 만드는 칼이 사람을 찌르는 피수가 된다는 거. 근데 지금 수행의 부작용은 전부 이걸 남에게 적용하고 있는 거예요. >> [한숨] >> 정토회는 여러분들이 다른 사람에 비해서 여기는 수행적 관점도 어느 정도 이해하고 또 그래도 괜찮은 편이에요. 그런데 실제로 와서 같이 살아보면 다른 데는 아무 차이가 없습니다. 오히려 더 민감하게 대응하고 더 사랑 관계가 날카롭게 부딪칠 때도 있습니다. 왜 그럴까? 한 사람 한 사람 보면 수행을 잘해 보이는데 왜 이럴까? 이게 바로 수행을 남에게 계속 적용하고 있는 거예요. 그러니까 화화가 나지 않는 사람이 된다는 건 내 목표지. 다른 사람 보고 너 왜 화를 내니? 수행적으로 왜 화를 내? 이렇게 얘기하면 안 된다이 말이야. 이렇게 적용하면이 얘기는 수행하고는 아무 관계 없는 얘기야. 음. 어떤 보시를 행했는데 내가 누군가를 도와줬는데이 사람이 고마운 줄을 잘 몰라. 그럼 내 마음에 섭섭하다. 그러면 아이 섭섭함이 제가 인사를 안 해서 그런게 아니다. 내가 기대했기 때문에 그렇다. 이걸 알아차려서 내가 그가 어떻게 하든 내가 여기로부터 자유로워야 되는게 수행이다. 이거야. 근데 내가 뭔가를 도와줬는데 상대가 인사를 안 한다고 야 너무 수행적고 고마운 줄도 모르니? 이렇게 얘기하면 안 되고 또 반대로 내가 도움을 받고 내가 감사 인사를 못 했어. 상대가 야, 너 도움을 받아 놓고 인사도 안 해. 이렇게 얘기하면 아니, 수행자가 뭐 바라는 마음으로 그 가지고 수행을 하는 거야.이 이렇게 말하면 안 된다는 거예요. 아 죄송하다. 내가 놓쳤다. 아 정말 그때 좋았어. 내가 그걸 깜빡 놓쳤네. 이렇게 말을 해야 된다는 거예요. 오직 자기에게만 적용해야 된다는 거예요. 근데 여러분들은 늘 법륜님 말을 남편에게 적용하고 아내한테 적용하잖아. 범수님 뭐라 그랬어? 범생 그래 가르쳤어. 놀 이러잖아. 근데 우리 남편이 나한테 그렇게 얘기하면 그 이해가 되는 거예요. 왜? 남편은 수행자가 아니니까. 그런 말을 할 수 있어. 왜? 수행자였냐? 수행자 아니냐의 차이는 이걸 남에게 적용하면 수행자가 아닌 거예요. 자기한테 적용하면 수행자고 범수의 말을 따라 10반대고 수행자다. 이렇게 생각하시면 안 돼요.이 불교 교리에 대해서 잘 알고 이런 얘기 어떤 얘기를 하면 아 그건 이래서 생긴 거야. 저렇게 생겨야 범심 증문 직선을 많이 되니까 부부간에 무슨 문제가 생기면 이건 이래야 되고 저래야 되고 이걸 많이 한다고 수행자 이렇게 생각하면 안 되. 그거는 그런 사례를 지식을 많이 아는 거에 불과한 거예요. 만약 이걸 불교를 많이 한다 그러면 불교를 학문으로 해 가지고 동국대 불교학과 나왔거나 석사를 땄거나 박사를 땄으면 다 훌륭한 수행가 돼야지. 이거는 수행하고 아무 관계 없는 거야. 자동차 부속에 대해서 자동차 고치는 기술을 많이 하거나 자동차에 대한 지식을 많이 하나 기독교 철학에 대해서 많이 하나 불교 철학에 대해서 많이 하나 불교 경전에 대해서 많이 하나 이건 똑같은 거야. 그거에 따라는 지식을 많이 알거나 기술을 많이 하는 거에 불과하다는 거야. 명상 자세를 딱 바르게 취하고 오래 앉아 있다. 이거는 최조 선수가 거꾸로 선다. 어 몇 번 돈다. 평평해서 잘 선다. 이거와 똑같은 거예요. 그 자체는 수행이 아니에요. 최조 선수가 평행에서 뭐 잘한다고 그 사람 화 안 내거하고 이거하고 관계 없듯이 여러분들이 무슨 10천 180을 뭐 걷더니 했다든지 뭐 명상으로 앉아 있으면 뭐 꼼짝단하고 몇 시간 있었다든지 이거 하고 수행은 별개야. 그럼 그거 할 필요가 없느냐? 그 얘기가 아니에요. 그거하고 관계 없기 때문에 그건 할 필요가 있다, 없다고 말할 수가 없다는 거예요. 내가 경전을 얼마나 읽었다 그럼 경전 안 읽어도 됩니까? 경전 읽는 거하고 이거하고 관계가 없기 때문에 필요가 없다든지 필요가 있다든지이 말 자체가 해당이 안 된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자기에게 적용해야 된다는 그건 자꾸 타인에게 적용하잖아. 그래서 불교를 많이 알면 골치 아픈 거예요. 그러니까 12 분별을 더 일으킨다는 거예요. 아무것도 모르면 그냥 그런가 보다 하는데 알면 이게 문제고 저게 문제고 이게 문제고 저기 문제고 이렇게 해서 더 시끄럽게 만든다. 이게 뭐냐? 수행이라는 것에 관점이 안 잡혀서 그래. 수행은 부처님의 가르침을 오직 자기에게만 적용한다. 여러분들이 증문 즉서를들을 때도 그 질문자라고 자기가 생각하고 듣는 거예요. 근데 여러분들은 항상 이렇잖아. 뭐 저런 걸 질문하노? 아 저 사람은 저런 문제가 있었네. 이렇게 자기하고는 아무 관계 없는 그저 신내 가서 어디 쇼핑하는 것처럼 그렇게 불교를 공부한다는 거예요. 그래서 자기 변화가 안 일어나는 거예요. 이건 자기에게 적용하면 변화가 바로 일어나고 만 가지를 알아도 자기에게 적용하면 변화가 하나도 안 일어나는 거예요. 그래서 정토에 그래 오래 살았는데 법문 그래 오래 들었는데 왜 저 사람은 저럴까? 그 오래 있었던 거하고 아무 관계가 없고 많이들은 거하고는 아무 관계가 없다는 거예. 그래서 항상 법은 자기에게 적용해야 된다. 그러니까 그걸 자기에게 적용하면 법이 되고 자기에게 적용 안 하면 이미 그거는 법이 아니에요. 이게 정리가 안 되면 뭐 법률 스님 직문적 아무리 들어도 범수 스님 법문 듣고 아 요새 많이 좋아졌는데요. 그렇다면 그거는 자기도 모르 그걸 누구한테 적용했다. 자기한테 적용한 거야. 범수님 법문 그 뭐 3천000개 올 거 제가 다 읽었는데요. 다 들었는데 이래도 자기한테 적용 안 하면 그거는 수행하고는 아무 관계가 없다. 그냥 유튜브에 올라온 거 이것저것 본 거에 불과하다 이거야. 다른 사람거 본거나 우주에 대해서 본 거 뭐 어 약초에 대해서 본거나 범수 얘기 본 거 아무 차이가 없다는 거예요. 이것은 오직 부처님의 법은 마음에 대한 얘기. 마음은 내 마음이에요. 남의 마음은 이미 마음이 아니에요. 그거는 마음이란 이름을 가진 거지. 그냥 대상에 불과. 내 마음만이 마음이에요. 어제 일어나는 마음은 마음이 아니에요. 그건 기억이고 생각이지. 내일을 걱정하는 그거는 마음이 아니에요. 그건 이미 상상이지. 지금 일어나는 것만 나에게 일어나. 지금 나에게 일어나는 것만 뭐다? 내 마음이야. 그렇기 때문에 지금 여기 깨어 있기 말이야. 여기가 어디요? 여기가 지금 내 마음이에요. 지금 내 마음에 끼어 있기. 요것만이 수행이고 이외는 수행이 아니에요. 그냥 잡단한 지식이지. >> [음악] >> 이제 나는 인상 쓰지 않고 글을 씁니다. 지금 이대로 좋다. 나의 첫 [음악] 필사노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