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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괴로움은 '사실'이 아니라 '반응'이다 | 고통을 선택하지 않는 마음의 기술 | 부처님 말씀

부처의말51:06

Transcription

[음악] 당신은 지금이 순간에도 괴로워하고 계신가요? 어쩌면 그 괴로움은 당신이 만든 것일지도 모릅니다.

부처님께서는 600년 전 한 제자에게 이런 질문을 하셨습니다. 만약 사람이 화살 하나에 맞았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아프지 않겠는가? 제자는 대답했습니다. 예. 세존이시여. 그것만으로도 매우 고통스러울 것입니다.

부처님께서는 다시 물으셨습니다. 그렇다면 그 사람이 첫 번째 화살에 맞은 직후 또다시 두 번째 화살에 맞는다면 어떻겠는가? 그것은 훨씬 더 고통스러울 것입니다. [음악] 세존이시여.

부처님께서는 미소 지으시며 말씀하셨습니다. 어리석은 범부는 괴로운 느낌을 받으면 슬퍼하고 비탄하며 [음악] 가슴을 치고 울부짖어 미혹에 빠진다. 그는 두 가지 느낌을 받는 것이니 육체적인 것과 정신적인 것이다. 마치 사람이 화살 하나에 맞고 곧이어 두 번째 화살에 또 맞는 것과 같다.

이것은 살라야다나 상유따 우리말로 화살의 경전에 나오는 부처님의 가르침입니다. 첫 번째 화살은 우리가 피할 수 없는 삶의 고통입니다. [음악] 병들 늙음 죽음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 미워하는 사람과의 만남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함 이것들은 삶을 사는 모든 존재가 겪어야 하는 괴로움입니다.

하지만 두 번째 화살은 다릅니다. 두 번째 화살은 우리 스스로가 쏘는 화살입니다. 왜 하필 나한테 이런 일이 생기는 거지? 내가 뭘 잘못했길래 이렇게 고통받아야 하지. 이 상황은 [음악] 절대 받아들릴 수 없어. 나는 정말 불행한 사람이야.

첫 번째 화살이 우리 몸에 박히는 순간 [음악] 우리는 즉시 두 번째 화살을 스스로에게 쏘아댑니다. 그리고 그 두 번째 화살의 고통이 첫 번째 화살보다 훨씬 더 깊고 오래 갑니다.

어느 날 한 상인이 부처님을 찾아왔습니다. 그는 사업에서 큰 손실을 입었고 그 충격으로 밤마다 잠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세존이시여 저는 모든 것을 잃었습니다. 제 인생은 끝났습니다.

부처님께서는 조용히 물으셨습니다. 그대가 이은 것은 무엇인가? 제 재산입니다. 세존이시여. 그렇다면 그대는 재산을 잃었을 뿐이네. 그런데 왜 그대는 인생까지 잃었다고 말하는가? [음악]

상인은 잠시 말이 막혔습니다. 부처님께서는 계속 말씀하셨습니다. 재산을 잃은 것은 첫 번째 화살이네. 그것은 일어난 사실이고 그대가 느끼는 상실감은 자연스러운 것이네. 하지만 그대는 거기에 더해 내 인생은 >> [음악] >> 끝났다. 나는 실패자다. 다시는 일어설 수 없다는 생각으로 스스로에게 두 번째, 세 번째, 네 번째 화살을 쏘고 있네.

상인은 그제야 자신이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 [음악] 깨달았습니다. 그는 재산을 잃은 사실 자체보다 그 사실에 대한 자신의 해석과 판단으로 더 큰 고통을 만들어내고 있었던 것입니다. [음악]

우리는 매일 이런 일을 겪습니다. 누군가의 말 한마디에 상처받았을 때 그 말 자체보다 저 사람은 나를 싫어하는구나. 나는 사랑받지 못하는 사람이야라는 생각이 더 오래 우리를 괴롭힙니다. [음악] 시험에 떨어졌을 때 떨어진 사실보다 나는 능력 없는 사람이야. 앞으로도 계속 실패할 거야라는 생각이 더 깊은 절망을 만듭니다. 관계가 끝났을 때 이별 그 자체보다 나는 사랑받을 자격이 없어 나는 평생 외로울 거야라는 믿음이 더 큰 고통을 낳습니다.

부처님께서는 법구경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모든 것은 마음이 근본이고 마음이 주인이며 마음으로부터 만들어진다. 만약 더러운 마음으로 말하거나 행동하면 괴로움이 그를 따르니 마치 술레바퀴가 소의 발자국을 따르는 것과 같다. 여기서 더러운 마음이란 탐욕, 분노, 어리석음으로 가득찬 마음을 의미합니다.

하지만 [음악] 더 깊이 들어가 보면 일어난 사실에 대해 즉각적으로 판단하고 의미를 부여하고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마음의 습관을 말합니다. 우리는 사실과 반응을 구분하지 못합니다. 비가 내리는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오늘 약속이 있는데 비가 와서 짜증나는 반응입니다. 상사가 회의에서 내 의견을 받아들이지 않은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상사가 나를 무시한다는 반응입니다. 건강 검진에서 이상 수치가 나온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나는 [음악] 이제 끝이 하는 반응입니다.

사실은 일어났다가 사라집니다. 비는 그치고 회의는 끝나고 [음악] 검진 결과는 종이 위에 숫자일 뿐입니다. 하지만 우리의 반응은 계속됩니다. 반응은 이야기를 만들고 이야기는 정체성이 되고 정체성은 운명이 됩니다.

어느 선승이 제자에게 물었습니다. 저 나무를 보거라. 나무는 [음악] 바람에 흔들리고 있다. 무엇이 움직이는가? 바람인가? 나무인가? 제자는 대답했습니다. 바람이 움직입니다. 스승님. 다른 제자가 말했습니다. 아닙니다. 나무가 움직입니다. 선승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습니다. 바람도 움직이지 않고 나무도 움직이지 않는다. 움직이는 것은 너희들의 마음이다.

이 이야기는 우리에게 깊은 진리를 전합니다. 세상의 사건들은 그저 일어날 뿐입니다. 움직이는 것은 언제나 우리의 마음입니다. 그렇다면 부처님께서는 왜 이렇게 가르치셨을까요? 우리에게 고통을 느끼지 말라고 하신 것일까요? >> [음악] >> 아닙니다. 부처님께서는 첫 번째 화살의 고통을 부정하지 않으셨습니다. 병들면 아프고 사랑하는 사람을 이르면 슬픈 것이 당연합니다. [음악] 이것은 인간이기에 느끼는 자연스러운 감정입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것은 그 자연스러운 고통 위에 우리가 얼마나 많은 불필요한 괴로움을 더하고 있는가 하는 점입니다. 어떤 수행자가 부처님께 물었습니다. 세존이시여 깨달은 이도 고통을 느낍니까? 부처님께서 대답하셨습니다. 깨달은 [음악] 이도 육체적 고통은 느낀다. 하지만 그는 그 고통에 대해 왜 나한테 이런 일이 [음악] 이것은 불공평해. 나는 불행해라는 생각을 더하지 않는다. 그는 단지 이것은 고통이다라고 알아차릴 [음악] 뿐이다.

이것이 핵심입니다. 사실을 잊는 그대로 보는 것과 사실의 이야기를 덧붙이는 것의 차이입니다. 비가 내리는 것을 보고 비가 내리내라고 아는 것과 비 때문에 내 하루가 망쳤어라고 생각하는 것의 차이입니다. 누군가 나를 비판했을 [음악] 때 저 사람이 비판적인 말을 했구나라고 아는 것과 저 사람은 나를 싫어해 나는 부족한 사람이야라고 생각하는 것의 차이입니다.

이 이 차이가 천국과 지옥을 나눕니다. 부처님께서는 우리에게 두 번째 화살을 스스로 뽑는 법을 가르치셨습니다. 그것은 알아차림입니다. 지금이 순간 내 마음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를 분명히 아는 것입니다. 아, 나는 지금 화가 났구나. 아, 나는 지금 두 번째 화살을 쏘고 있구나. 아, 이것은 사실이고 저것은 내 반응이구나. 이렇게 구분하는 순간 우리는 자유로워지기 시작합니다.

어느 노스님께서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고통은 피할 수 없지만 괴로움은 선택할 수 있다. 고통은 삶의 일부입니다. 하지만 괴로움은 고통에 대한 우리의 태도입니다. 그리고 태도는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것입니다. 당신이 지금 겪고 있는 어려움을 생각해 보십시오. 그 상황 자체, 즉 [음악] 첫 번째 화살은 무엇입니까? 그리고 당신이 그 상황에 대해 만들어낸 이야기, 즉 두 번째 화살은 무엇입니까?

이 이 둘을 구분할 수 있다면 당신은 이미 치유의 길에 들어선 것입니다.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지혜로운이는 괴로운 느낌을 받아도 슬퍼하지 않고 비탄하지 않으며 가슴을 치며 울부짖지 않는다. 그는 하나의 느낌만을 받을 뿐이니 육체적인 것뿐이요 정신적인 것은 받지 않는다. 마치 사람이 화살 하나에만 맞고 두 번째 화살에는 맞지 [음악] 않는 것과 같다.

지혜로운 사람은 고통이 없는 사람이 아닙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고통 위에 괴로움을 더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첫 번째 화살은 삶이 주는 것입니다. 하지만 두 번째 화살은 우리가 스스로에게 쏘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에게는 그 화살을 쏘지 않을 자유가 있습니다. 오늘 하루 당신에게 일어나는 일들을 관찰해 보십시오. 무엇이 사실이고 무엇이 당신의 반응인지 구분해 보십시오. 그 작은 알아차림이 당신을 괴로움으로부터 자유롭게 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진짜 괴로움은 일어난 사실이 아니라 그 사실에 대한 우리의 반응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같은 세상에 살지만 각자 다른 세계를 경험합니다. [음악] 어떤 사람에게 비 오는 날은 우울함이지만 다른 사람에게는 평온함입니다. 어떤 사람에게 칭찬은 기쁨이지만 다른 사람에게는 부담입니다. 어떤 사람에게 고독은 괴로움이지만 다른 사람에게는 자유입니다. 같은 사건, 다른 경험. 무엇이 이 차이를 만드는 걸까요?

부처님께서는 법구경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모든 것은 마음이 근본이고 마음이 주인이며 마음으로부터 만들어진다. 만약 더러운 마음으로 말하거나 행동하면 괴로움이 그를 따르니 마치 술레바퀴가 소의 발자국을 따르는 것과 같다. 이것은 단순한 비유가 아닙니다. 우리가 경험하는 세계는 마음이 만들어낸 세계라는 깊은 진리입니다.

왕사성에 두 형제가 살았습니다. 형은 성공한 상인이었고 동생은 [음악] 가난한 농부였습니다. 어느 날 두 형제는 같은 길을 걷다가 길가에 쓰러진 거지를 보았습니다. 형은 고개를 돌리며 생각했습니다. 저렇게 게으른 사람들 때문에 우리 사회가 발전하지 못하는 거야. 나는 열심히 일해서 성공했는데 저 사람은 [음악] 왜 노력하지 않는 거지? 형의 마음속에는 [음악] 경멸과 분노가 이었습니다.

동생은 거지 앞에 멈춰서 생각했습니다. 저 사람도 누군가의 아들이고 누군가의 아버지일지 모르는데 어떤 인연으로 저렇게 되었을까? [음악] 내가 도울 수 있는 일이 있을까? 동생의 마음속에는 연민과 자비가 이렇습니다. 같은 거지를 보았지만 형은 괴로움을 만들었고 동생은 자비를 만들었습니다. 무엇이 달랐을까요? 거지가 달랐을까요? 아닙니다. 거지는 그저 거기에 쓰러져 있었을 뿐입니다. 달랐던 것은 두 형제의 마음이었습니다. 형의 마음에는 세상은 공정해야 한다. 노력하지 않는 사람은 가치가 없다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동생의 마음에는 모든 존재는 고통받는다. 우리는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이해가 있었습니다.

이 믿음과 이해의 차이가 완전히 다른 세계를 만들어 냈습니다. 부처님께서는 이것을 일체유심조 즉 모든 것은 오직 마음이 만든다고 가르치셨습니다. 이것은 현실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거지는 실제로 거기에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 거지가 형에게는 [음악] 분노의 대상이 되었고 동생에게는 자비의 대상이 된 것은 순전히 그들의 마음이 만든 것입니다. 우리가 보는 것은 세계 그 자체가 아니라 우리 마음의 렌즈를 통과한 세계입니다. 그리고 그 렌즈는 우리의 과거 경험, 믿음, 두려움, 욕망으로 만들어져 있습니다.

어느 날 한 여인이 부처님을 찾아왔습니다. 그녀는 남편의 외도를 발견하고 깊은 고통에 빠져 있었습니다. 세존이시여, 제 남편이 저를 배신했습니다. 저는 너무 괴롭습니다. 부처님께서 물으셨습니다. 그대의 남편이 다른 여인을 만난 것이 사실인가? 예, 그렇습니다. 그래서 그대는 무엇이 괴로운가? 여인은 이상하다는 듯 대답했습니다. 남편이 저를 사랑하지 않는다는 것이 괴롭습니다.

부처님께서 다시 물으셨습니다. 그대의 남편이 나는 당신을 사랑하지 않는다고 말했는가? 아니요. [음악] 하지만 다른 여인을 만난다는 것은 저를 사랑하지 않는다는 뜻 아닙니까? [음악]

부처님께서는 천천히 말씀하셨습니다. 그대의 남편이 다른 여인을 만난 것은 사실이네. 하지만 그것이 그대를 사랑하지 않는다는 의미인지, 그가 혼란스러워하는 것인지, 또 다른 이유가 있는 것인지는 그대가 만든 이야기일 뿐이네. 그대는 사실 위에 의미를 더 씌웠고 그 의미 때문에 괴로워하고 있네. 여인은 깊은 침묵에 빠졌습니다. 그녀는 남편의 행동이라는 사실과 그 행동에 대한 자신의 해석을 구분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끊임없이 의미를 만들어냅니다. 상사가 회의 중에 나를 한 번도 쳐다보지 않으면 나를 무시하는구나라고 해석합니다. 친구가 문자의 답장을 늦게 하면 나한테 관심이 없구나라고 생각합니다. 배우자가 피곤해 보이면 [음악] 나 때문에 스트레스 받는구나라고 판단합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은 우리가 만든 이야기입니다. 상사는 그저 다른 생각에 빠져 있었을 수도 있습니다. 친구는 바빴을 수도 있습니다. 배우자는 단순히 피곤했을 수도 있습니다. 사실은 하나지만 의미는 무수히 많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대부분 가장 고통스러운 의미를 선택합니다. 왜 그럴까요?

부처님께서는 이것을 무명 즉 무지라고 부르셨습니다. 우리는 마음이 세계를 만든다는 것을 모릅니다. 우리는 우리가 본 것이 진실이라고 믿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해석이 유일한 해석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무지가 모든 괴로움의 뿌리입니다.

어느 선사가 제자들에게 물었습니다. 너희는 발을 보느냐? 손가락을 보느냐? 제자들은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선사가 설명했습니다. 내가 손가락으로 달을 가리키면 어리석은 자는 손가락을 보고 지혜로운 [음악] 자는 달을 보느나. 세상의 모든 일도 마찬가지다. 어리석은 자는 사건 자체를 보지 못하고 자신의 생각만 보며 지혜로운 자는 사건을 잊는 그대로 본다. 우리는 대부분 손가락만 보고 있습니다. 사건 그 자체가 아니라 사건에 대한 우리의 생각, 우리의 [음악] 해석, 우리의 판단만 보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현실이라고 착각합니다.

부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이렇게 가르치셨습니다. 비구들이여, 눈으로 형상을 볼 때 그것을 아름답다 또는 추하다고 인식하지 말라. 다만 형상이 보인다고만 알아차려라. 귀로 소리를들을 때 그것을 좋은 소리 또는 나쁜 소리라고 판단하지 말라. 다만 소리가 들린다고만 알아차려라. 이것은 매우 어려운 가르침입니다. 우리의 마음은 본 순간, 들은 순간, 즉시 판단하고 해석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마치 숨을 쉬는 것처럼 자동적입니다. 그러나 이 자동적 과정이 [음악] 바로 괴로움을 만드는 과정입니다.

왕궁에 살던 한 왕자가 있었습니다. 그는 모든 것을 가졌지만 [음악] 행복하지 않았습니다. 어느 날 그는 왕궁을 벗어나 마을을 걷다가 한 나무꾼을 만났습니다. [음악] 나무꾼은 땀을 흘리며 나무를 베고 있었지만 그의 얼굴에는 평온함이 있었습니다. 왕자가 물었습니다. 당신은 [음악] 이렇게 힘든 일을 하면서도 어떻게 그렇게 평온해 보이십니까? 저는 [음악] 모든 것을 가졌지만 괴롭습니다.

나무꾼이 대답했습니다. 왕자님, 저는 나무를 벨 때 이 [음악] 일은 힘들다. 나는 가난하다. 나는 불행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저는 그저 도끼를 들고 도끼를 내리치고 나무가 쪼개지는 것을 봅니다. 그뿐입니다. 왕자가 다시 물었습니다. 그렇다면 저는 왜 괴로운 걸까요?

나무꾼이 말했습니다. 왕자님께서는 [음악] 왕궁에 계시면서 나는 왕자다. 나는 일해야 한다. 사람들은 나를 존경해야 한다. 나는 더 많은 것을 이뤄야 한다고 생각하시기 때문입니다. 왕자님께서는 현실을 사시는 것이 아니라 왕자님의 생각 속에서 사시는 것입니다.

이 이 이야기는 우리에게 중요한 진리를 전합니다. 괴로움은 상황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상황에 대한 우리의 생각에서 옵니다. 나무꾼은 힘든 노동을 하지만 평온하고 왕자는 풍요 속에 살지만 괴롭습니다. 차이는 외부 환경이 아니라 내면의 마음입니다. 부처님께서는 이것을 이렇게 설명하셨습니다. 세상은 괴로움으로 가득차 있지 않다. 세상에 대한 집착이 괴로움으로 가득차 있을 뿐이다. 우리는 사건에 집착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사건에 대한 우리의 해석에 집착합니다. 이것은 나쁜 일이야. 이것은 불공평해. 이것은 있어서는 안 돼. 나는 이것을 받아들릴 수 없어. 이런 생각들이 고착되면 그것이 우리의 세계가 됩니다.

어느 노스님이 젊은 수행자에게 물었습니다. 내가 화가 났을 때 무엇이 나를 화나게 하느냐? 수행자가 대답했습니다. 다른 사람의 말이나 행동이 저를 화나게 합니다. 노스님이 다시 물었습니다. 그렇다면 같은 말을 듣고도 화내지 않는 사람은 어떻게 된 것이냐? 수행자는 말문이 막혔습니다. 노스님이 말했습니다. 다른 사람의 말이나 행동이 너를 화나게 하는 것이 아니다. 그 말과 행동에 대한 내 마음의 반응이 너를 화나게 하는 것이다. 마음이 바뀌면 세상이 바뀐다. 이것이 핵심입니다. 세상을 바꿀 수는 없지만 세상을 보는 마음은 바꿀 수 있습니다. 그리고 마음이 바뀌면 세상이 바뀐 것과 같습니다.

비가 내리는 날 당신은 비 때문에 짜증나라고 생각할 수도 있고 비소리가 평온하네라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비는 같지만 경험은 완전히 다릅니다. 누군가 당신을 비판했을 때 당신은 [음악] 저 사람이 나를 공격했어라고 생각할 수도 있고 저 사람도 자기 고통 때문에 힘들구나라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비판은 같지만 경험은 완전히 다릅니다. 계획이 틀어졌을 때 당신은 모든게 엉망이야라고 생각할 수도 있고 새로운 가능성이 열렸네라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상황은 같지만 경험은 완전히 다릅니다.

부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마음이 청정하면 세계가 청정하다. 마음이 오염되면 세계가 오염된다. 이것은 세상에 고통이 [음악] 없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이것은 우리가 세상을 경험하는 방식이 우리 마음의 상태에 달려 있다는 의미입니다. 당신의 삶에서 지금 가장 괴로운 상황을 떠올려 보십시오. 그 상황 자체는 무엇입니까? 그리고 그 상황에 대해 당신이 만들어낸 이야기는 무엇입니까? 이것은 끔찍한 일이야. 이것 때문에 내 인생이 망했어. 나는 이것을 견딜 수 없어. 이것은 절대 일어나서는 안 됐어. 이런 생각들을 잠시 내려놓고 [음악] 있는 그대로의 사실만 보십시오. 무엇이 실제로 일어났습니까? 의미, 판단, [음악] 해석을 모두 제거하면 무엇이 남습니까? 그것이 첫 번째 화살입니다. 나머지는 모두 당신의 마음이 만든 것입니다.

부처님께서는 우리에게 마음의 주인이 되라고 가르치셨습니다. 마음이 자동으로 만들어내는 이야기를 그대로 믿지 말고 그것을 알아차리고 선택하라고 하셨습니다. 이것은 사실인가 아니면 내 생각인가? 이것은 일어난 일인가 아니면 내가 만든 의미인가? 이것은 현실인가 아니면 [음악] 내 마음이 만든 세계인가? 이렇게 물을 때 우리는 마음의 주인이 됩니다. 그리고 마음의 주인이 될 때 우리는 괴로움으로부터 자유로워집니다. 왜냐하면 진짜 괴로움은 일어난 사실이 아니라 우리 마음이 만들어낸 세계이기 때문입니다.

어느 날 한 수행자가 깊은 산속 암자에서 10년간 수행을 마치고 마을로 내려왔습니다. 그는 자신이 완전히 변했다고 확신했습니다. 나는 이제 어떤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을 것이다. 마을 입구에서 한 남자가 그를 밀치며 지나갔습니다. 수행자의 마음속에 즉시 분노가 일어났습니다. 10년을 수행했지만 여전히 화가 나는구나. 그는 좌절하여 다시 산으로 돌아가려 했습니다. 그때 한 노스님이 그를 불러세웠습니다. 그대는 무엇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하는가? 저는 10년을 수행했지만 여전히 화가 납니다.

노스님이 미소 지으며 말했습니다. 화가 나는 것이 문제가 아니다. 화가 난 것을 알아차리지 못하고 그 화에 휩쓸려 행동하는 것이 문제다. 그대는 화가 났지만 그 화를 알아차렸다. 그것이 바로 수행이다. 이것이 부처님께서 가르치신 알아차림, 사띠의 핵심입니다. 감정이 일어나지 않게 하는 것이 아니라 감정이 일어날 때 그것을 [음악] 분명히 아는 것입니다.

부처님께서는 염처경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수행자가 느낌을 느낄 때 나는 느낌을 [음악] 느낀다고 분명히 안다. 그는 느낌에 집착하지 않고 느낌을 거부하지도 않으며 다만 있는 그대로 본다. 이것이 괴로움의 소멸 가는 길이다. 많은 사람들이 수행을 오해합니다. 수행은 감정을 없애는 것이 아닙니다. 수행은 감정을 억누르는 것이 아닙니다. 수행은 감정에 반응하지 않는 것입니다. 화가 날 수 있습니다. 슬플 수 있습니다. 두려울 수 있습니다. 이것들은 모두 자연스러운 감정입니다. 문제는 이 감정들이 일어날 때 우리가 자동으로 반응한다는 것입니다. 화가 나면 소리를 지르고 슬프면 자책하고 두려우면 도망칩니다. 감정과 반응 사이에 공간이 없습니다.

부처님께서는 우리에게 그 공간을 만드는 법을 가르치셨습니다. [음악] 왕사성에 안굴리 말라는 살인자가 있었습니다. 그는 천명을 죽여 손가락으로 목걸이를 만들겠다는 무시무시한 맹세를 하고 이미 999명을 죽인 상태였습니다. 그는 부처님을 마지막 희생자로 정했습니다. 부처님께서 숙기를 걷고 계실 때 안굴리 말라가 칼을 들고 뒤쫓아왔습니다. 멈춰라. 부처님께서는 천천히 걸음을 멈추시고 돌아서셨습니다. 안굴리 말라가 소리쳤습니다. 멈추라니까.

부처님께서 고요히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이미 멈췄다. 멈추지 못한 것은 바로 너다. 안 굴리 말라는 혼란스러워했습니다. 무슨 소리냐? 내가 멈추지 못했다고 부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모든 존재를 해치는 것을 멈췄다. 하지만 너는 아직도 살생을 멈추지 못했구나. 나는 화, 증오, [음악] 복수의 마음을 멈췄다. 하지만 너는 그것들에 휩쓸려 움직이고 있구나. 그러니 멈추지 못한 것은 너다. 그 순간 안 굴리 말라는 자신을 보았습니다. 자신이 화와 증오에 조종당하는 꼭두각씨였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는 칼을 떨어뜨리고 부처님 앞에 무릎을 꿇었습니다. 멈춤. >> [음악] >> 이것이 모든 수행의 시작입니다. 자동 반응을 멈추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루에도 수십번, 수백번 자동으로 반응합니다. 누군가 나를 비판하면 즉시 방어합니다. 계획이 틀어지면 즉시 불안해합니다.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하면 즉시 좌절합니다. 이 이 모든 반응은 생각할 결도 없이 일어납니다. 부처님께서는 우리에게 그 자동 반응과 행동 사이에 한 호흡의 공간을 두라고 가르치셨습니다. 화가 날 때 즉시 화내지 말고 [음악] 한번 숨을 쉬십시오. 아, 지금 화가 나는구나. 두려울 때 [음악] 즉시 도망치지 말고 한 숨을 쉬십시오. 아, 지금 두렵구나. 슬플 때 즉시 무너지지 말고 한번 숨을 쉬십시오. 아, 지금 슬프구나.

이 이 한 호흡의 공간이 모든 것을 바꿉니다. 어느 선승이 제자에게 물었습니다. 파도가 일어날 때 바다는 제자가 대답했습니다. 바다는 파도를 만듭니다. 선승이 말했습니다. 아니다. 바다는 파도가 일어나게 내버려두고 파도가 사라지게 내버려 둔다. 바다는 파도와 싸우지 않는다. 우리의 마음도 바다와 같습니다. 감정이라는 파도가 일어납니다. 화의 파도, 슬픔의 [음악] 파도, 두려움의 파도. 이 이 파도들은 자연스러운 것입니다. 문제는 [음악] 우리가 파도와 싸우거나 파도에 휩쓸리는 것입니다.

부처님께서 가르치신 수행은 파도를 없애는 것이 아니라 파도를 바라보는 것입니다. 아, 화의 파도가 일어나는구나. 아, 슬픔의 파도가 일어나는구나. 아, 두려움의 파도가 일어나는구나. 이렇게 바라볼 때 우리는 파도가 아니라 바다가 됩니다. 라홀라는 부처님의 아들이었습니다. 어느 날 그는 부처님께 수행법을 여주었습니다. 세존이시여, 어떻게 하면 마음을 다스릴 수 있습니까? 부처님께서는 땅을 가르키시며 말씀하셨습니다. 라홀라여, 땅처럼 수행하라. 사람들이 땅에 좋은 것을 뿌려도 나쁜 것을 뿌려도 땅은 흔들리지 않는다. 땅은 좋아하지도 싫어하지도 않는다. 그리고 물을 가르키시며 말씀하셨습니다. 물처럼 수행하라. 사람들이 물로 깨끗한 것을 씻어도 더러운 것을 씻어도 물은 흔들리지 않는다. 그리고 불을 가르키시며 말씀하셨습니다. 불처럼 수행하라. 불은 좋은 것을 태워도 나쁜 것을 태워도 불은 흔들리지 않는다. 그리고 바람을 가리키시며 말씀하셨습니다. 바람처럼 수행하라. 바람은 좋은 냄새를 운반해도 나쁜 냄새를 운반해도 바람은 흔들리지 않는다.

땅, 물, 불, 바람처럼 되라는 것은 감정이 없어지라는 의미가 아닙니다. 좋은 일과 나쁜 일, 기쁜 감정과 슬픈 감정이 모두 지나가게 하되 그것에 집착하지도 [음악] 말고 거부하지도 말라는 의미입니다. 이것이 바로 평등심 우백카입니다. [음악] 평등심은 무관심이 아닙니다. 평등심은 균형입니다. 좋은 일이 생겨도 너무 들지 않고 나쁜 [음악] 일이 생겨도 너무 무너지지 않는 것입니다.

어느 마을에 두 농부가 살았습니다. 어느 큰 가뭄이 들었습니다. 첫 번째 농부는 매일 하늘을 보며 절망했습니다. 비가 오지 않으면 우리는 모두 굶어 죽을 거야. 이건 끔찍한 일이야. 두 번째 농부는 할 수 있는 일을 했습니다. 물을 아껴 [음악] 쓰고 가뭄에 강한 장물을 심고 이웃과 함께 우물을 팠습니다. 그는 걱정하지 않은 것이 아닙니다. 하지만 걱정에 휩쓸리지 않았습니다. 가뭄이 들었구나. [음악] 할 수 있는 일을 하자.

다음에 비가 내렸습니다. 첫 번째 농부는 환호하며 말했습니다. 드디어 비가 왔어. 이제 모든게 완벽해. 두 번째 농부는 조용히 말했습니다. 비가 오는구나. 감사하다. 그다음에 홍수가 났습니다. 첫 번째 농부는 또다시 절망했습니다. 이제 우리는 끝이야. 모든게 망했어. 두 번째 농부는 침착하게 말했습니다. 홍수가 났구나. 할 수 있는 일을 하자.

두 농부는 같은, 같은 비, 같은 홍수를 겪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의 경험은 완전히 달랐습니다. 첫 번째 농부는 상황에 따라 천국과 지옥을 오았습니다. 두 번째 농부는 상황이 어떻든 평정심을 유지했습니다. 차이는 무엇이었을까요? 두 번째 농부는 일어나는 일을 있는 그대로 보았습니다. 그는 [음악] 가뭄에 끔찍한이라는 의미를 더하지 않았고 비에 완벽한이라는 의미를 더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단지 감뭄이다, [음악] 비나, 홍수다라고 보았을 뿐입니다.

부처님께서는 이것을 이렇게 표현하셨습니다. 수행자는 즐거운 느낌을 느낄 때 나는 즐거운 느낌을 느낀다고 알고 괴로운 [음악] 느낌을 느낄 때 나는 괴로운 느낌을 느낀다고 한다. 그는 느낌을 느끼되 느낌에 사로잡히지 않는다. 느끼되 사로잡히지 않는다. 이것이 자유입니다.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어떻게 수행해야 할까요? 부처님께서는 사념처을 가르치셨습니다. 첫째, [음악] 몸을 관찰하는 것입니다. 숨이 들어오고 나가는 것을 관찰하십시오. 숨이 들어온다. 숨이 나간다. 이것이 가장 기본적이면서도 가장 강력한 수행입니다. 화가 날 때 숨을 관찰하십시오. 숨이 빨라지고 얕아지는 것을 느낄 것입니다. 아, 화가 나니 숨이 빨라지는구나. 이렇게 알아차리는 순간 당신은 화가 아니라 화를 관찰하는 자가 됩니다.

둘째, 느낌을 관찰하는 것입니다. 즐거운 느낌, [음악] 괴로운 느낌, 중립적인 느낌. 이 이 세 가지 느낌이 끊임없이 일어나고 사라집니다. 지금 즐거운 느낌이 일어나는구나. 지금 괴로운 느낌이 일어나는구나. 느낌을 관찰하되 느낌에 집착하지 마십시오. 즐거운 느낌이 사라진다고 붙잡으려 하지 마십시오. 괴로운 느낌이 일어난다고 밀어내려 하지 마십시오. 모든 느낌은 일어났다가 사라집니다. 구름이 지나가듯이.

셋째, [음악] 마음을 관찰하는 것입니다. 탐욕스러운 마음, 화내는 마음, 미혹된 마음, 평온한 마음, 마음의 상태를 있는 그대로 알아차리십시오. 지금 탐욕이 일어나는구나. 지금 화가 일어나는구나. 지금 미혹이 일어나는구나. 이렇게 알아차릴 때 당신은 그 마음이 아니라 마음을 보는 자가 됩니다.

넷째, 법을 관찰하는 것입니다. 모든 것은 일어났다가 사라집니다. 모든 것은 변합니다. 모든 것은 서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이 진리를 관찰하십시오. 화가 일어날 때 화도 일어났다가 사라진다는 것을 보십시오. 슬픔이 올 때 슬픔도 영원하지 않다는 것을 보십시오. 기쁨이 올 때 기쁨도 머물지 않는다는 것을 보십시오.

어느 수행자가 부처님께 여쭈었습니다. 세존이시여 수행해야 자유로워질 수 있습니까? 부처님께서 대답하셨습니다. 내가 일어나는 것을 일어나는 것으로 보고 사라지는 것을 사라지는 것으로 볼 때 너는 자유롭다. 자유는 미래에 있지 않습니다. 자유는 지금이 순간에 있습니다. 지금이 순간 일어나는 것을 있는 그대로 볼 때 우리는 자유롭습니다. 당신이 지금 호흡하고 있다는 것을 아십시오. 당신이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다는 것을 아십시오. 당신의 몸에 어떤 감각이 있는지 아십시오. 당신의 마음에 어떤 생각이 일어나고 있는지 아십시오. 이것이 수행입니다. 특별한 것이 아닙니다. 지금 여기에서 깨어 있는 것입니다.

부처님께서는 열반에 드시기 직전 제자들에게 마지막 가르침을 주셨습니다. 모든 것은 변한다. 게으르지 말고 정진하라. 무엇을 정진하라는 것일까요? 특별한 경지를 얻으라는 것이 아닙니다. 매순간 깨어 있으라는 것입니다. 걸을 때는 걷는 줄 알고 앉을 때는 앉는 줄 알고 화날 때는 화나는 줄 알고 기쁠 [음악] 때는 기쁜 줄 아십시오. 이것이 전부입니다. 하지만 이것이 가장 어렵습니다. 우리는 걸으면서 과거를 생각하고 앉아서 미래를 걱정하고 화나면서 [음악] 화난 줄도 모르고 기쁘면서 기쁨을 놓칩니다. 우리는 지금 여기에 없습니다. 우리는 항상 다른 곳에 있습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은 우리를 [음악] 지금 여기로 데려옵니다. 과거는 이미 갔고 [음악] 미래는 아직 오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살 수 있는 것은 오직 지금뿐입니다. 그리고 지금이 순간에 깨어 있을 때 괴로움은 힘을 잃습니다. 왜냐하면 괴로움은 과거의 후회와 미래의 걱정에서 오기 때문입니다. 지금이 순간에는 괴로움이 없습니다. 지금이 순간에는 단지 호흡이 있고 몸이 있고 [음악] 마음이 있을 뿐입니다.

어느 스님이 제자에게 물었습니다. 내가 깨달음을 얻기 전에는 무엇을 했느냐? 물을 깃고 나무를 패을 얻은 후에는 무엇을 하느냐? 물을 깃고 나무를 뺍니다. 그렇다면 무엇이 달라졌느냐? 제자가 대답했습니다. 물을 깃에는 온갖 생각에 빠져 있었습니다. 물을 깃는 동안에도 다른 생각을 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물을 기을 때 물을 깃고 나무를 >> [음악] >> 때 나무를 뺍니다. 이것이 깨달음입니다. 거창한 것이 아닙니다. 지금 하고 있는 일을 온전히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할 때 괴로움은 사라집니다. 왜냐하면 괴로움은 지금 여기에 없고 우리 마음이 만든 이야기 속에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부터 시작해 보십시오. 아침에 눈을 뜰 때 나는 지금 깨어났다고 알아차리십시오. 물을 마실 [음악] 때 물이 목으로 넘어가는 것을 느끼십시오. 걸을 때 발이 땅에 닿는 것을 느끼십시오. 화가 날 [음악] 때 화가 난다고 알아차리십시오. 기쁠 [음악] 때 기쁘다고 알아차리십시오. 이것이 전부입니다. 특별한 장소가 필요하지 않습니다. 특별한 시간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특별한 자세가 필요하지 않습니다. 지금 여기에서 깨어 있으면 됩니다.

부처님께서는 마지막으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 자신을 등불로 삼고 너 자신을 의지처로 삼아라. 법을 등불로 삼고 법을 의지처로 삼아라. 다른 누구도 당신을 구원할 수 없습니다. 당신만이 당신을 자유롭게 할 수 있습니다. 그 방법은 깨어 있는 것입니다. 매순간 일어나는 것을 있는 그대로 보는 것입니다. 반응하지 않는 것입니다. 판단하지 않는 것입니다. 이야기를 만들지 않는 것입니다. 그저 보는 것입니다. 숨이 들어오고 나가는 것을 보십시오. 생각이 일어나고 사라지는 것을 보십시오. 감정이 파도처럼 왔다가 가는 것을 보십시오. 당신은 숨이 아닙니다. 당신은 생각이 아닙니다. 당신은 감정이 아닙니다. 당신은 이 모든 것을 보는 자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깨달을 때 당신은 자유롭습니다. 괴로움은 일어난 사실이 아니라 사실에 대한 반응입니다. 그리고 우리에게는 반응하지 않을 자유가 있습니다. 지금이 순간 그 자유를 실천해 보십시오. 한 번에 깨어 있는 호흡이 당신의 삶을 바꿀 것입니다. 나무 아미타불 관세음보살 함께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나무 아미타불 관세음보살은 지혜의 아미타불과 자비의 관세음보살께 귀한다는 뜻입니다. 이 염송 한마디가 마음을 맑히고 삶을 부드럽게 합니다. 댓글에 나무암아미타불 관세음보살을 한번 남겨 보세요. 당신의 그 한마디가 복덕의 씨앗이 되어 바라던 일이 이루어지기를 기도드립니다.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