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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식 때문에 너무 애태우지 마라 | 법정스님

지혜봉우리26:58

Transcription

나이가 들수록 마음이 복잡해집니다. 젊을 때는 가진 것이 부족해서 괴로웠다면 노년에는 내려놓지 못하는 것들 때문에 괴로워집니다. 이제는 마음이 가벼워져야 할 때인데 오히려 더 많은 생각과 걱정이 우리를 무겁게 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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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정 스님은 말씀하셨습니다. "기움은 잃는 것이 아니라 자유의 시작이다." 그렇습니다. 나이가 들면 버릴 줄 알아야 합니다. 사람을 버리라는 것이 아닙니다. 기대와 불안, 그리고 내가 옳다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는 뜻이지요. 그 집착이 사라질 때 비로소 마음이 숨을 쉽니다.

많은 어르신들이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이제 와서 뭘 더 바라겠어요? 그저 자식이나 잘 살면 됐지." 하지만 그 말 속에도 여전히 바람이 숨어 있습니다. 잘 살면 좋겠지.라는 기대보다 왜 저렇게 사나?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면 그건 아직도 내려놓지 못한 부모의 마음입니다. 자식을 내 뜻대로 바꾸려 하지 않는 것. 그것이 바로 부모의 마지막 수행입니다.

자식은 내 마음속 그림처럼 살아주지 않습니다. 그들의 삶은 이미 부모의 품을 떠났고 이제는 그들만의 길을 걸어가고 있습니다. 그 길이 내 기준에서 이해되지 않아도 그 길 또한 그 사람의 인생입니다. 그걸 인정하는 순간 비로소 부모의 마음은 자유로워집니다.

자식이 연락이 뜸하다고 해서 정의 식은 것이 아닙니다. 그들은 단지 자신의 삶을 버티며 살아가고 있을 뿐입니다. 부모에게 연락하지 않는 건 무심함이 아니라 이제는 내가 알아서 할게요.라는 조용한 독립의 표현입니다. 그걸 외면이나 소홀함으로 받아들이면 관계는 상처로 남지만 그걸 성장의 증거로 받아들이면 관계는 오히려 한결 편안해집니다.

그래서 스님은 말합니다. "자식에게 먼저 연락하지 마라. 그들이 돌아볼 때까지 그냥 기다려라." 기다림은 사랑의 또 다른 형태입니다. 그들의 인생을 대신 살아줄 수는 없으니 그저 그 길을 믿음으로 바라보는 것이 부모의 역할이지요. 전화를 하지 않는 건 무심해서가 아니라 나는 내 인생을 믿는다는 조용한 신호입니다. 그 신호가 쌓이면 언젠가 자식이 먼저 마음을 엽니다.

나이가 들면 세상을 새롭게 바꾸기보다 내 마음을 단정히 다스리는 일이 더 중요해집니다. 젊을 땐 무엇을 더 얻을까를 고민했다면 이제는 무엇을 덜어낼까를 묻는 시기입니다. 그게 바로 자식과의 관계에서도 통하는 지혜입니다. 자식에게 먼저 연락하지 않는다는 건 관계를 끊겠다는게 아닙니다. 부담을 덜고 서로의 인생을 존중하겠다는 뜻입니다. 그 여백이 있을 때 비로소 마음이 편안해지고 사랑은 더 깊어집니다.

나이가 들면 마음속에서 가장 쉽게 피어나는 감정이 섭섭함입니다. "요즘은 연락도 없네. 문자 하나 보내면 대답이 없네." 이런 생각이 들 때마다 마음 한켠이 서운해지고 외로워집니다. 그러나 스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사랑은 붙잡는 것이 아니라 놓아주는 것이다." 자식은 내 손에서 태어났지만 내 삶 안에 머무를 존재는 아닙니다. 그들은 이미 자신의 세계에서 자기 길을 걸어가고 있습니다. 우리가 눈으로 보지 못한다고 해서 그들이 우리를 잊은 건 아닙니다. 그저 각자의 삶이 무겁고 하루가 빠르게 흘러갈 뿐이지요.

젊을 땐 부모의 그리움을 헤아릴 줄 몰랐지만 그들도 언젠가 부모가 되면 압니다. 그때서야 부모의 기다림이 어떤 마음이었는지 깨닫게 되지요. 그래서 지금의 침묵을 무정함으로 받아들이지 말아야 합니다. 그건 어쩌면 자식이 세상 속에서 단단히서 있으려는 수행의 시간일 수도 있습니다. 부모가 해야 할 일은 다 그치는 것이 아니라 믿는 일입니다. "잘 지내고 있겠지." 그 믿음 한 줄기가 자식에게는 든든한 기둥이 됩니다. 반대로 요즘은 왜 연락이 없냐는 말은 마음의 문을 닫게 만드는 작은 돌멩이지요.

스님은 또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은 제 그림자를 벗어나야 한다." 자식 또한 부모의 그림자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그 자유를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그건 부모가 잘 길렀다는 증거입니다. 어느 시점부터는 내가 지켜줘야 할 존재가 아니라 함께 세상을 살아가는 또 한 사람으로 바라보는 연습이 필요합니다. 그 눈빛의 변화 하나가 관계를 바꿉니다. 지켜보되 간섭하지 않고 기다리되 조급하지 않는 사랑. 그게 바로 부모의 수행이자 노년의 품격입니다.

비로소 자식을 내가 만든 사람이 아니라 내게 와준 인연으로 볼 수 있을 때 마음은 훨씬 가벼워집니다. 그 마음이 자리를 잡으면 다음으로 필요한 건 말의 수행입니다. 우리가 무심코 던지는 한마디가 자식의 마음을 닫을 수도 열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 사이의 거리를 가장 빨리 좁히는 것도 가장 쉽게 멀어지게 하는 것도 결국 말입니다.

스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말은 향기와도 같아서 한번 뿌려지면 그 냄새가 오래 남는다." 나이가 들수록 입보다 마음이 먼저 움직여야 합니다. 무엇을 말할지보다 왜 그 말을 하려는지를 먼저 살펴야 하지요. 우리는 종종 사랑을 표현하려다 상처를 남깁니다. "밥은 잘 먹고 다니냐? 돈은 괜찮니? 언제 얼굴 한번 보냐?" 그 말들은 겉으로론 다정하지만 듣는 이에게는 감시로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자식은 그 말 속에서 걱정보다는 불신을 느끼고 결국 대화의 문을 닫아버리게 되지요.

스님은 또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지혜로운이는 말로 세상을 움직이지 않고 침묵으로 마음을 움직인다." 말이 줄어드는 것이 늙음의 증거가 아니라 깊어짐의 증거가 되어야 합니다. 말의 양이 줄수록 그 한 마디의 무게는 커집니다. 그 한 마디에 자비가 실리면 듣는이는 위로를 받지만 그 속에 원망이 섞이면 오래도록 상처로 남습니다. 따뜻한 말이란 거창한 문장 속에 있지 않습니다. "그랬구나. 수고했다."이 두 마디면 충분할 때가 많습니다. 말의 힘은 길이에 있지 않고 마음의 결에 있습니다. 짧아도 따뜻한 말은 마음을 녹입니다. 긴 말이라도 이기심이 섞이면 차갑습니다.

노년의 언어는 부드러워야 합니다. 세상도 사람도 거칠게 살아왔으니 이제는 말로서라도 서로를 쉬게 해 줘야 합니다. 불필요한 충고 지나친 걱정 비교의 말은 결국 관계를 조금씩 밝게 만듭니다. 그 대신 자비로운 침묵을 택하십시오. 말하지 않아도 전해지는 온기가 있습니다. 그 온기가 관계를 지키는 힘이 됩니다.

많은 부모가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자식 말을 다 들어 준다." 하지만 스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듣는다는 것은 귀로 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하는 일이다." 듣는다는 것은 대답을 준비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상대가 다 말하기도 전에 "그래서 그건 이렇게 해야지."하고 끼어드는 순간 그건 더 이상 경청이 아니라 지도가 됩니다. 자식이 부모와 이야기하기를 망설이는 이유도 바로 거기에 있습니다. 그들은 조언보다 공감을 원하고 답보다 위로를 원합니다. 누군가의 말을 끝까지 들어 준다는 것은 그 사람의 삶을 잠시 대신 짊어져 주는 일입니다. 그 시간이 길지 않아도 진심으로 들어 주는 순간 마음의 무게는 조금 가벼워집니다. "그랬구나. 내 마음이 그랬구나." 그 한마디는 세상의 어떤 충고보다 큰 위로가 됩니다.

젊을 때는 말로 세상을 바꾸려 하지만 나이 들어서는 듣는 귀를 가진 사람이 세상을 따뜻하게 만듭니다. 듣는다는 건 상대의 말을 내 안에 담는 것이 아니라 그 말을 지나가게 해 주는 일입니다. 그의 마음이 내 마음을 통과에 흘러가도록 비워 주는 거지요. 그래야 내 마음도 그 마음도 상처받지 않습니다.

스님은 또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진정한 자비는 듣는 데서 피어난다." 듣는다는 것은 상대를 인정하는 일입니다. 그의 말이 옳든 그르든 먼저 들어 주는 것이 존중입니다. 부모가 자식의 말을 자주 끊으면 자식은 어느새 말보다 침묵을 선택합니다. 그 침묵 속엔 포기와 거리감이 깃들어 있지요. 자녀가 이야기할 때는 그 말에 옳고 그림보다 그 마음이 왜 그런가를 들어야 합니다. 불만의 말 뒤에는 외로움이 있고 투정의 말 뒤에는 인정받고 싶은 마음이 숨어 있습니다. 그 마음을 읽을 줄 아는 부모 그가 바로 지혜로운 부모입니다. 이제는 대답을 잘하는 부모보다 조용히 들어 줄 줄 아는 부모가 되어야 합니다. 듣는 사람은 세상을 잃지 않습니다. 오히려 더 넓게 품게 되지요. 그 품이 따뜻할수록 자식은 언젠가 다시 돌아옵니다. 그리고 그때 비로소 알게 됩니다. 듣는다는 것은 침묵이 아니라 가장 큰 형태의 사랑이었다는 것을.

사람 사이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선이 있습니다. 너무 가까이 다가가면 숨이 막히고 너무 멀어지면 마음이 식지요. 스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중돌란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는 지혜이다." 사람 사이에도 그 중도가 필요합니다. 나이가 들면 자꾸 마음이 앞서갑니다. 도와주고 싶고 챙겨주고 싶고 그래서 자식의 일에 한 발 더 들어서게 됩니다. 하지만 그 한 걸음이 때로는 자식에게 벽이 되기도 합니다.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내민 손이 상대의 자유를 막을 때가 있는 거지요. 진짜 사랑은 가까이 있으면서도 상대의 공간을 존중하는 것입니다. 그들을 향한 애정이 크더라도 그들의 삶을 대신 살아줄 수는 없습니다. 자녀가 스스로 넘어지고 일어서는 시간을 믿고 기다릴 줄 아는 것. 그게 부모의 품격이자 지혜입니다.

어떤 분은 이렇게 말합니다. "아무리 성인이라도 내 눈에는 아직야." 그 마음은 이해됩니다. 하지만 그 아직이라는 말 속엔 자녀의 성장을 인정하지 못하는 미련이 숨어 있습니다. 이제는 아이가 아니라 어른으로 지시의 대상이 아니라 대화의 동반자로 바라보아야 합니다.

스님은 또 말씀하셨습니다. "사랑은 소유가 아니라 향기처럼 머물다 가는 것이다." 자식은 붙잡을 대상이 아니라 멀리서도 향기로 느낄 인연입니다. 자주 만나지 않아도 연락이 뜸해도 괜찮습니다. 서로의 삶을 존중하는 그 거리가 오히려 관계를 더 단단하게 만듭니다. 가까움은 온기에서 비롯되고 집착은 불안에서 비롯됩니다. 불안이 줄어들면 관계는 저절로 편안해집니다. 함께 있어도 간섭하지 않고 멀리 있어도 마음이 닿는 관계. 그것이 노년이 도달해야 할 사랑의 형태입니다. 그리고 그 사랑의 완성은 기다림입니다. 자식이 먼저 다가오기를 강요하지 않고 그들의 리듬을 존중하며 묵묵히 기다릴 수 있는 흰말이지요.

사람들은 흔히 이렇게 말합니다. "가만히 있으면 멀어질까 봐 불안해요." 하지만 스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사랑은 조급할수록 흐려지고 기다릴수록 맑아진다." 기다림이란 아무것도 하지 않는게 아닙니다. 그건 신뢰의 다른 이름입니다. 내가 움직이지 않아도 상대가 자기 걸음으로 돌아올 것이라 믿는 마음이지요. 믿음이 깊을수록 기다림은 고요해집니다. 젊을 땐 기다림이 답답하게 느껴지지만 세월을 겪어 보면 압니다. 모든 일에는 때가 있고 사람의 마음도 꽃처럼 피어날 순간이 있다는 걸요. 억지로 피우려 하면 꽃잎이 상하지만 햇살과 바람이 맞아들면 자연슬의 꽃이 열립니다. 자식과의 관계도 그와 같습니다. 연락이 늦어도 반응이 없더라도 그건 사랑이 식은게 아니라 그들의 삶이 한창 무겁기 때문입니다.

노년의 기다림은 젊은 날의 기대와 다릅니다. 이젠 결과를 바라기보다 그저 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지요. 그 평온한 기다림 속에 진짜 사랑이 기듭니다. 스님은 또 말씀하셨습니다. "때를 아는 자는 슬픔이 적고 기다릴 줄 아는 자는 마음이 편하다." 기다림에는 인내가 필요합니다. 하지만 그 인내는 억지가 아니라 평정에서 나옵니다. "언젠가는 알게 되겠지." 그 한마디를 마음속에 새기면 조급함이 사라지고 관계가 부드러워집니다. 부모의 사랑이 깊을수록 자식이 멀리 가야 할 때가 있습니다. 그들의 세상은 부모의 품보다 넓고 그 길 위에서 넘어지고 깨지며 성장합니다. 그 시간을 기다려 주는 것이야말로 가장 큰 사랑의 형태입니다. 언젠가는 자식도 부모의 마음을 이해할 날이 옵니다. 그때 그 마음이 이거였구나 하고 고개를 끄덕이겠지요. 그러니 너무 서두르지 마십시오. 사랑은 말로 치기보다 시간으로 익어 가는 것입니다.

기다림의 끝에는 늘 배움이 있습니다. 그 배움은 자식에게서도 세상에서도 옵니다. 젊을 때는 배움이 책 속에 있다고 믿었습니다. 하지만 나이 들어 돌아보면 진짜 배움은 사람 사이에서 일어납니다. 스님은 말씀하셨습니다. "가르치려는 마음을 놓는 순간 세상은 스승이 된다." 부모는 자식을 가르치는 존재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인생을 오래 살아보면 압니다. 자식에게서도 배울 것이 많다는 사실을요. 그들의 생각은 다르고 세상을 바라보는 눈은 새롭습니다. 그 다름을 틀림으로 보지 않고 세상이 바뀌는 징표로 받아들이면 마음이 훨씬 넓어집니다. 과거의 기준으로 현재를 재단하려 하면 서로의 언어가 맞지 않습니다. 요즘 젊은 세대는 이유 없이 반항하는게 아니라 자신만의 방식으로 세상을 해석하고 있습니다. 그 다름을 인정할 때 비로소 대화가 시작됩니다. 부모의 권위은 나이를 근거로 세워지지 않습니다. 겸손한 태도 그리고 듣는 귀에서 생깁니다.

스님은 또 말씀하셨습니다. "배움은 살아 있음의 증거다." 나이를 먹어도 배움을 멈추면 마음은 이미 다쳐 버립니다. 반대로 젊은 세대에게서 배우려는 마음을 가지면 늙음조차 신선한 생기로 변합니다. 한 어르신이 이런 말을 하셨습니다. "요즘 애들 말은 잘 모르겠어도 그 속에 진심이 있더라." 그 말이 지혜입니다. 이해하지 못해도 들으려는 마음. 그게 바로 배움의 시작이니까요. 부모가 자식에게만 가르침을 주는 관계는 언젠가 벽에 부딪칩니다. 하지만 서로에게 배우려는 관계는 시간이 지나도 무너지지 않습니다. 세대가 달라도 마음의 방향이 같으면 그곳엔 존중이 생기고 존중이 있는 곳엔 평화가 깃듭니다. 나이 들수록 배우는 일이 줄어드는 것이 아니라 배움의 깊이가 달라지는 것입니다. 책이 아니라 사람에게서 말이 아니라 침묵 속에서 배웁니다. 그 배움은 우리를 겸손하게 만들고 겸손은 사랑을 단단하게 만듭니다.

살다 보면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 가장 깊은 상처를 주게 됩니다. 그 상처의 대부분은 말에서 비롯되지요. 스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칼은 상처를 낼 수 있지만 말은 영혼을 다칠 수 있다." 노년이 되면 말수가 줄어드는 건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하지만 문제는 줄어든 말 한마디가 때로는 더 무겁게 들린다는 겁니다. 감정이 섞인 짧은 한 마디가 긴 세월의 관계를 흔들어 놓을 수도 있지요. 감정이 올라올 때 그 자리에서 바로 말하지 마십시오. 말은 뜨거울수록 위험합니다. 잠시 멈추고 숨을 고르고 내가 지금 전하려는게 진심인지 아니면 섭섭함인지 스스로 물어야 합니다.이 한 호흡의 여유가 관계를 살립니다.

스님은 또 말씀하셨습니다. "분노는 바람과 같아서 잠시 불면 지나가지만 그때 뱉은 말은 평생 머문다." 화를내는 순간은 시원할 수 있지만 그 말이 남긴 흔적은 오래 갑니다. 그러니 이길 말보다 남길 말을 하십시오.이긴 이긴 대화는 마음을 남기지 못하고 남은 말이 따뜻해야 관계가 회복됩니다. 자녀에게 실망했을 때도 왜 그랬냐보다는 그 마음이 힘들었겠다는 말이 났습니다. 비판은 상대를 닿게 하지만 공감은 마음을 열게 하지요. 노년의 말은 훈계보다 이해의 언어가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때로는 침묵이 가장 큰 자비입니다. 아무 말도 하지 않음으로써 상대가 스스로 깨닫게 하는 것. 그것이 지혜로운 부모의 모습입니다. 말은 짧게, 표정은 부드럽게 그 두 가지만 지켜도 관계는 훨씬 평화로워집니다.

스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지혜로운 자는 말을 줄이고 어리석은 자는 말을 싸는다." 불필요한 말이 줄어드는만큼 마음의 고가 자리를 잡습니다. 그고 속에서 우리는 사람을 탓타기보다 이해하게 되고 다투기보다 기다리게 됩니다. 갈등을 풀기 위해 필요한 건 기술이 아니라 태도입니다. 이해하려는 마음, 그리고 먼저 웃는 용기, 먼저 미소를 지을 수 있다면 이미 절반은 화해한 것입니다.

사람의 사랑에는 흔적이 남습니다. 하지만 스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진정한 사랑은 머무는 곳이 없고 흐르며 세상을 적신다." 젊을 때의 사랑은 주고받음이었습니다. 하지만 세월이 흘러 깨닫습니다. 사랑은 거래가 아니라 존재의 증거라는 것을 내가 누군가를 사랑할 수 있다는 그 마음 하나로 삶은 이미 충만해집니다. 부모의 사랑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자식이 잘되면 기쁘고 그렇지 않으면 마음이 흔들립니다. 그러나 그것은 사랑이라기보다 결과에 대한 조건일지도 모릅니다. 참된 사랑은 자식이 어떤 모습이든 그저 살아 있다는 사실만으로 감사하는 마음에서 피어납니다.

스님은 또 말씀하셨습니다. "사랑은 소유가 아니라 향기처럼 흩어져야 한다." 그 향기는 보이지 않지만 그 향기를 맡은이는 평생 잊지 못합니다. 사람이 떠나도 그 향기는 남습니다. 그게 바로 부모의 사랑이 남기는 유산이지요. 물질은 시간이 지나면 낚습니다. 하지만 따뜻한 말, 믿어주던 눈빛, 끝까지 지켜봐 주던 마음은 사라지지 않습니다. 그 기억이 자식의 마음 속에서 평생의 등불이 됩니다. 우리가 남길 수 있는 최고의 유사는 집도 돈도 아닌 사랑의 기억입니다.

노년의 사랑은 조용합니다. 이제는 무엇을 해 주기보다 존재 자체로 위로가 되는 사랑이 되어야 합니다. 무엇을 더 줄까 계산하지 않아도 그저 곁에 있어 주는 마음만으로 충분합니다. 스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사랑하되 머무르지 말고 머무르지 않대 잊지 말라." 집착은 떠남을 두려워하지만 자비는 떠남 속에서도 온 길을 남깁니다. 우리가 남길 수 있는 것은 재산이 아니라 마음입니다. 그 마음이 평안하면 자식도 편안해집니다. 사랑은 눈에 보이지 않아도 세월을 건너 전해집니다. 그리고 그 사랑이 마지막에 도달하는 곳이 있습니다. 바로 감사입니다.

사랑이 깊어지면 바라지 않게 되고 바라지 않게 되면 모든 것이 고맙게 보입니다. 자식을 향한 사랑이 감사로 바뀌는 그 순간 부모의 마음은 비로소 자유로워집니다. 많은 부모가 말합니다. "이젠 자식 걱정 말아야지." 하지만 마음은 쉽게 멈추지 않습니다. 사랑이 깊을수록 걱정도 깊어지지요. 그럴 때 스님은 말씀하셨습니다. "걱정으로는 사랑을 지킬 수 없고 감사로만 사랑이 완성된다." 감사는 사랑의 또 다른 형태입니다. 자식이 완벽해서 고마운게 아니라 그들이 세상 속에서 꿋꿋이 살아가고 있음에 감사한 것입니다. 연락이 자주 오지 않아도 그들이 스스로서 있으니 이미 충분합니다. 예전에는 잘되길 바란다는 말에 마음을 쏟았다면 이제는 살아줘서 고맙다는 마음으로 바뀌어야 합니다.

부모의 삶은 결국 자식을 통해 완성됩니다. 자식이 성공해서가 아니라 그들을 통해 사랑하는 법을 배우기 때문입니다. 화가 나고 서운하고 외로웠던 순간들조차 돌이켜 보면 모두 나를 성숙하게 만든 인연이었습니다. 자식이 멀어진게 아니라 이제 그들이 자기 삶의 중심을 세우고 있는 것뿐입니다. 그걸 인정할 때 부모의 마음도 자유로워집니다.

스님은 또 말씀하셨습니다. "인연의 끝은 단절이 아니라 감사다." 자식이 부모 곁을 떠나는 건 슬픈 일이 아닙니다. 그건 잘 길러냈다는 증거이자 삶의 순환이 이어지는 자연스러운 흐름입니다. 그 흐름을 억지로 붙잡으려 하면 괴로움이 생기지만 감사로 바라보면 평화가 찾아옵니다. 이제는 이런 말 한마디면 충분합니다. "내가 내 자식으로 와 줘서 고맙다." 그 한 문장 속에 부모의 인생이 다 담겨 있습니다. 그 말을들은 자식은 평생을 두고 그 사랑을 기억할 것입니다.

사람은 결국 기억으로 살아갑니다. 그 기억이 따뜻하면 떠난 뒤에도 사랑은 계속 이어집니다. 감사로 닫은 사랑은 사라지지 않습니다. 그건 자식의 마음 속에서 보이지 않는 기둥이 되어 그들을 지탱합니다. 우리가 남길 수 있는 가장 큰 유사는 돈도 재산도 아닌 감사로 마무리된 사랑입니다.

스님은 마지막으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감사하는 마음은 더 이상 바랄 것이 없는 사람의 마음이다." 이제는 바라지 말고 그저 고맙다고 말하십시오. 그 한마디가 평생 쌓인 그리움을 녹이고 자식에게는 세상 어떤 말보다 큰 위로가 될 것입니다. 그리하여 부모의 사랑은 기다림에서 시작해 감사로 끝나는 길이 됩니다. 그 길의 끝에서 당신의 마음은 비로소 고요해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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