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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린도전서 1장 18절로 31절까지 말씀 가운데 18절로 24절까지를 한 절씩 교독하겠습니다. 제가 먼저 18절 말씀 봉독합니다.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받은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기록된바 내가 지혜 있는 자들의 지혜를 멸하고 총명한 자들의 총명을 폐하리라 하셨으니 지혜 있는 자가 어디 있느냐 선비가 어디 있느냐 이 세대의 변론가가 어디 있느냐 하나님께서 이 세상의 지혜를 미련하게 하신 것이 아니냐 하나님의 지혜에 있어서 이 세상이 자기의 지혜로 하나님을 알지 못함 하나님께서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셨도다 유대인은 표적을 구하고 헬라인은 지혜를 찾으나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전하니 유대인에게는 거리끼는 것이요 이방인에게는 미련한 것이로되 함께 읽습니다.
오직 부르심을 받은 자들에게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니라 아멘 아멘.
어, 시내에 나갔다가 저녁에 집으로 운전하고 들어올 때면 항상 기분이 참 좋습니다. 이유는 명제에 턱 들었으면 저 멀리에서 우리 호산학교의 십자가가 딱 보이기 때문에 정말 행복합니다. 뭐 우리 교회라고 해서 그러는 것이 아니라이 교회 위에 십자가가 있는 것 가운데 가장 멋있고 가장 감동적인 모습이 우리 호산나 교회가 아닌가라고 생각을 합니다. 너무 잘 어울리고요 너무나 은혜가 되고 감동이 있습니다. 이 지역 전체를 쫙 보고 있는 그 모습이 정말 은혜가 됩니다.
자, 그런데 어느 날 문득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교회는 왜 십자가를 붙일까? 교회는 왜 가장 높은 곳에 십자가를 붙일까? 그러면서 십자가와 교회, 또 십자가와 신앙 이것에 대해서 생각을 해 봤습니다.
자, 여러분, 교회는 왜 십자가를 붙인다고 생각하십니까? 우리의 신앙에 있어서 십자가는 무엇이고 어떤 역할을 하나요? 여러분이 너무 고민하실까 봐 제가 미리 답을 먼저 말씀드립니다. 예. 십자가는 우리 신앙의 핵심입니까? 십자가가 우리 신앙의 핵심입니까? 사람들이 잘 쓰는 말 그대로 십자가 없는 신앙은 안고 빠진 찐빵입니다. 아니, 그 정도가 아니죠. 예. 십자가 없는 신앙은 신앙이라고 할 수가 없다 하는 것이죠.
자, 그런데 이렇게 중요한 십자가 이것이 우리에게는 무엇이냐? 우리의 신앙에 있어서 십자가는 어떤 요소냐? 어떤 역할을 하느냐? 아주 많은 경우에 십자가를 그저 심볼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십자가를 심볼로 사용하고 있다. 우리가 기독교인이라고 하는 그 상징으로 십자가를 사용하고 있는 것이죠. 그래서 교회당마다 위에 십자가를 붙이는 것이고 그래서 모든 성구들과 장식들에 보면 십자가를 그려 놓고 있는 거예요. 이건 뭐 잘못된 것은 아니죠. 십자가가 우리 신앙의 핵심이니까. 그러니까 우리가 그리스도인이라는 것을 나타내려고 그 상징으로 십자가를 사용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만 그것뿐이라면 단지 그것뿐이라면 이것은 십자가에 대한 오용 정도가 아니라 십자가를 무의미하고 그리고 무력하게 만들어 버리는 아주 심각한 영적인 손실입니다. 심지어 영적인 타락이라고까지 말할 수가 있는 그런 것이다.
하지만 어떤 깊은 신앙의 사람들은 십자가를 심볼이 아니라 십자가를 영적 능력으로 사용합니다. 십자가를 영적 능력으로 사용합니다. 그 십자가가 악한 것들을 막아주고 죄악을 몰아내고 상한 것들을 회복시키는 그러한 영적인 능력이라고 그렇게 믿고 선포하고 그런 역사가 일어나게 하는 것. 바로 이것이 정말 신앙이 깊은 사람들의 이야기예요. 예, 맞아요. 십자가는 영적인 능력 맞습니다. 십자가를 선포할 때 예, 마귀가 떠나가고 죄를 이기고 상한 심령이 고침을 받는 줄로 믿습니다. 그게 십자가죠. 그런 역사가 일어나는 것이 바로 십자가입니다. 이것은 너무나 귀한 것이고 이건 너무나 아름다운 거예요. 예. 십자가를 영적인 능력으로 사용하는 것. 예. 그렇기 때문에 이게 바로 진짜 신앙이에요. 진짜 신앙은 어떤 게 진짜 신앙이냐? 십자가를 영적인 능력으로 사용하는 신앙이 진짜 신앙이고 이게 바로 살아 있는 신앙이다 하는 것이죠. 그러니까 우리 모두에게는 반드시 십자가가 이런 영적인 능력이 되어야 할 줄로 믿습니다. 아멘. 예. 이런 십자가의 역사가 우리 가운데 있어야 한다 하는 것이죠.
자, 그런데 여기에서 정말 우리가 조심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영적으로 진정한 고백이 없이 그냥 말로만 십자가를 영적인 능력으로 사용하는 것. 그 십자가로 죄는 떠나가라. 십자가로 이런 역사가 일어나라. 이렇게 그냥 진정한 고백도 없이 말로만 그렇게 십자가를 영적인 능력으로 사용하게 된다면 그것은 바로 십자가를 부적으로 사용하는 그러한 예 십자가를 그냥 부적으로 사용하는 그런 것이 불과하다. 우리가 더 심각한 영적인 손실이고 더 정말 심각한 영적인 타락이 되는 거예요.
아주 오래된 옛날에 유행했던 유치한 이야기를 하나 하겠습니다. 드라큘라가 드라큘라 아시죠? 예. 드라큘라가 어떤 가족을 찾아가서 차례대로 피를 빨게 됐습니다. 자, 그러다 보니까 결국은 다 죽고 새 자녀만 남게 됐어요. 그래서 이 남은 새 자녀가 이제 나름대로 대책을 준비한 거예요. 그래서 첫째는 드라큘라가 제일 싫어하는 게 뭐예요? 목에 때 낀 사람을 제일 싫어하잖아요. 그렇죠? 그래서 목에 때를 잔뜩 이렇게 묻혀 가지고 드라큘라가 왔을 때 딱 보여줬더니 드라큘라가 하는 얘기가 내가 그럴 줄 알고 빨대를 준비했다. 그리고 빨대를 꽂고 피를 빨았다는 것이죠. 둘째는 드라큘라가 햇빛을 무서워하는 걸 알고 솔라 램프를 준비했어요. 햇빛에 빛에 해당하는 솔라 램프를 준비해 가지고 드라큘라가 오자마자 딱 켰습니다. 그랬더니 드라큘라가 내가 그럴 줄 알고 선글라스를 준비했다. 그리고 선글라스를 끼고 피를 빨았다는 거예요. 셋째는 비장의 무기로 십자가를 준비했습니다. 그래 가지고 아 드라큘라가 오자마자 십자가를 들이대면서 물러가라라고 했더니 드라큘라가 하는 말이 나도 지난주부터 교회 나간다. 그리고는 피를 빨았다는 거죠.
진정한 신앙고백 없이 그냥 십자가를 영적인 능력이라고 그렇게 말로만 말하면서 사용하는 것은요. 이 이야기에 말도 안 되는 진짜 허무한 짓과 똑같은 거 아니냐 그 말이죠. 예. 그런데 안타깝게도 이 세상 수많은 신앙인들이 이렇게 십자가를 허접하고 무력한 부적처럼 사용하고 있다는 거예요. 예. 말은 세게 하는데 그러나 거기에 고백이 없으니까 그게 아무 일도 안 일어나는 너무 안타까운 그런 것이 정말 많아서 너무 속상합니다.
다시 말하지만 십자가는 영적인 능력입니다. 성도는 그 십자가를 죄를 이기는 영적인 능력으로 사용할 수 있어야 그게 성도예요. 그게 참 신앙인이에요. 이 부분이 정말 중요합니다.
자, 그런데 또 하나 성도가 십자가를 그 신앙의 핵심으로 사용하는 것이 있는데 그것이 바로 오늘 말씀에서 바울 사도가 고린도 교회 성도들에게 말한 그 십자가 이야기 바로 그것입니다. 또 하나 성도가 십자가를 그 신앙의 핵심으로 사용하는 아주 중요한 것이 있는데 그것이 바로 오늘 말씀에서 바울 사도가 고린도 교인들을 향해서 지금 말하고 있는 십자가 이야기 바로 그것이다. 우리 18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18절 같이 읽습니다.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받은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바로 뭐예요? 십자가의 도입니다. 예. 바울 사도는 여기서 그냥 십자가 하지 않고 뭐라 그랬어요? 십자가의 도 이렇게 말했습니다. 자, 그런데 여기서 이 도라는 것 이것은요 우리가 잘 아는 도를 아십니까? 그 도가 아니에요. 그런 도가 아니고요. 여기 십자가의 도라는 말에서 이 도라는 말은 헬라어로 하면 로고스입니다. 로고스. 로고스가 뭐예요? 말씀이잖아요. 그러니까 십자가의 도는 십자가의 말씀이에요. 즉 뭐예요? 십자가의 메시지라는 것이죠. 십자가의 메시지. 예. 실제 역사는 능력, 영적인 능력으로서의 십자가도 물론 중요하지만 그것만큼 우리에게 중요한 게 뭐냐? 바로 십자가의 메시지가 중요하다. 그 메시지를 우리 삶에 그대로 적용하고 그 메시지를 붙들고 살아가는 것. 이것이 우리 신앙의 핵심으로서 십자가를 실제적으로 영적으로 누리며 살아가는 또 하나의 너무 중요한 그런 것이다 하는 거죠.
여러분 신앙생활하면서 영적인 능력을 직접적으로 체험하면서 사는 거 정말 중요합니다. 예. 기도해서 응답받고 기도해서 병이 낫고 기도해서 기적이 일어나고 기도해서 영적인 혼돈이 다 깨끗해지고 기도해서 갈등과 싸움이 멈춰지고 예 기도한 가운데 심지어 귀신이 떠나가는 그런 영적 역사가 일어나는 거 정말 중요하죠. 그러나 만일 그것이 다 그것뿐이라고 한다면 예 그것만을 하는 것이 다 신앙생활 전체라고 한다면 예 신앙생활은 미신이 될 수밖에 없어요. 미신적인 것이 됩니다. 예. 우리 삶이 우리 신앙생활이 삶이 다 기도하고 그리고 그 기도 가운데 응답받는 그런 영적인 역사 어떤 기적 능력으로만 그렇게 살아가는 그런 것은 결코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이 아니다는 것이죠. 오히려 하나님이 주신 그 지각을 사용하면서 삶을 아름답게 살아가기 위해서 주의 말씀을 듣고 깨닫고 그걸 통해서 변화받는 바로 그게 진짜 또한 우리 하나님 원하시는 신앙생활이에요. 그냥 기도해서 기적이 일어나고 기도해서 영적 역사 일어나고 그것만이 아니라 예 하나님 주신 그 지각을 사용하면서 삶을 아름답게 살아가기 위해서 주의 말씀을 듣고 주의 말씀을 깨닫고 그것을 통해서 변화받는 바로 그런 것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죠. 물론 이 과정도 전적으로 우리의 지각과 이성만으로 되는 건 아니죠. 그걸 뛰어넘는 성령의 어떤 역사가 있어요. 깨닫게 하시고 감동하시고 역사하시고 맞습니다. 그러나 여튼 이런 어떤 영적인 역사, 영적인 어떤 그런 뭐 그런 능력의 어떤 그런 것 그것만이 아니라 우리의 내면과 생각의 변화로 삶이 변하는 이게 정말 신앙생활에서 중요한 것이다 하는 거죠. 어떤 면에서 영적으로 이것이 훨씬 더 중요하고 이것이 바로 바르고 건강한 그런 신앙생활이 아니냐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 사도는 로마서에서 결론처럼 이렇게 말한 것입니다. 로마서 12장 1절 2절 말씀 보니까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아멘. 영적 예배는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그런 삶을 사는 것. 이게 영적 예배라는 거예요. 영적 예배라고 그래서 무슨 뭐 신령하고 신비한 어떤 그런 것을 하는 것이 아니라 영적인 예배는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그런 삶을 사는 것이 바로 영적인 예배다 하는 거예요.
그러므로 십자가의 도 즉 십자가의 메시지는 어떤 면에서 십자가의 직접적인 영적인 능력과 역사보다 우리 삶에 훨씬 더 중요하다라고 말할 수가 있어요. 왜냐하면 우리 삶이 변하기 위해서 예. 우리 삶이 변하기 위해서는요. 십자가의 도가 중요한 예. 예. 십자가의 도가 중요한 거예요. 우리의 공동체가 아름답기 위해서요. 십자가의 도가 중요한 거예요. 훨씬 더 중요하다. 바로 그래서 바울 사도가 지금 분쟁이라고 하는 사단 마귀의 계에 넘어가 있는 고린도 교인들에게 바로 다른 것이 아니라 십자가의 도를 강조하는 거예요. 십자가의 도를.
자, 그런데 그때 바울 사도가 십자가의 도를 강조하면서 그 십자가의 메시지로 뭘 말하고 있느냐? 십자가는 하나님의 지혜다. 십자가는 하나님의 능력이다라고 이야기를 하고 있는 거예요. 우리 23절, 24절 말씀 같이 읽겠습니다. 함께 읽습니다.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전하니 유대인에게는 거리끼는 것이요 이방인에게는 미련한 것이로되 오직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니라.
여기서 보면 유대인에게는 거리끼는 것이고 이방인 즉 헬라인에게는 미련한 것이다. 그랬습니다. 그래요. 십자가는요 유대인의 전통적 신앙에서 볼 때는 정말 수치스럽게 저주받은 거예요. 예.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받았으니까. 그리고 헬라인들은 자기 나름대로 인본주의적 지혜를 볼 때는요. 이건 말도 안 되는 정말 웃기는 이야기다. 정말 우스운 이야기다. 이렇게 볼 수밖에 없지만 그러나 사실은 이 십자가가 하나님의 능력이 되고 하나님의 지혜가 된다는 것이죠. 어떻게 어떻게 그렇게 되느냐? 어떻게 그렇게 말할 수 있느냐? 왜냐하면 십자가는 죄의 허점을 가장 정확하게 집어낸 하나님의 승리의 전략이기 때문에 그럽니다. 십자가는 어떤 죄의 유일한 허점이라 할 수 있는 그 허점을 가장 정확하게 집어낸 하나님의 승리의 전략이기 때문에 그런 것이다.
제가 성경 탐구 40일 강의할 때 많이 하는 예화가 있습니다. 이것은 예전에 한국에서 방영된 미국 드라마 이야기예요. 이 미국 드라마 원래 제목은 나이트라이더라고 하는 나이트라이더라고 하는 그런 제목인데 그런데 한국에서는 어떻게 번역했느냐? 전격 Z 작전 이렇게 번역했어요. 여러분 중에서 이 전격 Z 작전을 아는 분들은 연식이 좀 되신 분들이에요. 예. 1980년대에 나온 드라마니까. 어 내용은 마이클이라고 하는 전직 형사 출신 주인공이 나이트 재단에서 만든 이 키트라고 하는 키트라는 것은 KIT 그래서 나이트 뭐 인더스트리 2000 이거의 줄인 말이에요. 그래서 키트라고 하는 특별한 자동차를 몰고 악당들을 물리치고 범죄를 소탕하는 뭐 그런 이야기입니다.
자, 그런데 이때 이 키트라는 자동차는 정말 특별해서 그야말로 절대 부서지 않는 무적이에요. 차인데 부서지 않아요. 우리 차는 살짝 부딪히기만 해도 다 깨지고 날리는데 얘는 안 부서집니다. 거기다가 또 뭐예요? 자율주행도 가능해요. 혼자 운전도 해요. 예. 그리고 마이클과 대화도 하는 그야말로 슈퍼카예요. 예. 1980년대 그때는 상상도 못 할 따라갈 수 없는 특별한 자동차를 그렇게 놨어요.
자, 그런데 제가 어느 날 그 시리즈 중에서 한 편을 보다가 너무 은혜를 받았어요. 저는 종종 그래요. 성경 말고 다른 데서 은혜 많이 받습니다. 영화 보다가도 은혜 받고 뭐 심지어 가요 듣다가 은혜 받고 예 정말 은혜를 많이 받았어요. 그때 내용은 뭐냐? 이 나이트 재단에서 키트와 동일한 또 하나의 슈퍼카를 만든 그런 이야기였어요. 그 이름을 갖다가 그 차 이름을 카라고 붙였습니다. 카. 자, 그런데 이 차가 다 완성됐어요. 마지막 단계에서 운전자 프로그램을 해야 되는데 곧 전 단계에서 그만 사고가 터진 거예요. 그 공장에 도둑이 들어갔어요. 이것들이 가서 도둑질을 하려고 들어갔다가 이 일을 치는 바람에 뭐가 막 이상하게 돼 가지고 이 카가 탈출을 해 버렸어요. 그래서 카가 탈출해 가지고 혼자 막 돌아다니면서 다 부수고 다니는 거예요. 무적이니까. 난리가 났어요. 그래서 결국 그 카를 잡기 위해서 마이클과 키트가 출동을 했는데 예, 이게 쉽지 않죠. 왜냐면 똑같은 성능이기 때문에 잡을 수가 없는 거예요. 아, 그러다가 마지막 장면에서 낭떨어지 외길에서 이 두 차가 서로 마주 달려오는 그런 상황이 되었습니다. 서로 정면 충돌하게 달려오고 있는데 그때에 키트가 마이클한테 말합니다. 마이클 다른 차는 몰라도 저 차는 나하고 똑같은 그런 차기 때문에 부딪히면 둘 다 죽는다. 둘 다 부서진다. 그러니까 마이클 어 내가 자율주행 할 수 있게 해 달라고. 예. 그 운전자 조종 말고 자율적으로 해 주면 내가 알아서 피하겠다. 그런데 마이클이 안 된다. 그리고 자유 운전자 딱 조정으로 잡고 계속 가게 하는 거예요. 그래 점점 가까이 오니까 막 키트가 난리가 났어요. 마이클 난다 이러다가 막 저는 자동차가 그렇게 당황하는 얘기를 참 [음악] 뭐 빨리 나를 자율로 바꾸라고 안 그러면 우리 다 죽는다. 막 그러면서 자기가 막 자율로 가요. 예. 그러면 또 마이클이 다시 운전자 조종으로 딱 바꿔 가지고 계속 주고 그래서 결국은 운전해서 두 차가 충돌한 거예요. 근데 딱 충돌을 했는데 그런데 어떻게 됐느냐? 결국 마지막 순간에 카가 딱 피하면서 키트는 그냥 가고 카가 딱 피하면서 낭떨어지 밑으로 떨어지고 말았어요.
자, 그런데 은혜는 그다음 그 마지막 부분에 엄청 밀려왔습니다. 이렇게 상황을 해결하고 살아남은 다음에 키트가 마이클한테 묻습니다. 어떻게 알았냐고. 카가 피할 것을 어떻게 알았느냐? 아, 그랬더니 마이클이 대답합니다. 부딪히면 둘 다 죽는다는 것은 너도 알고 카도 알아. 그런데 너는 키트 너는 어떤 경우에도 나에게 순종하도록 그렇게 프로그램이 되어 있지만 카는 아직 그렇게 돼 있지 않고 그 전 단계에서 이루어졌으니까 그냥 자기 자신만을 위하도록 되어 있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키트 너는 부서질 줄 알면서도 내가 가라고 하면 순종하고 가지만 카는 자기를 보호하기 위해서 옆으로 딱 떨어질 수밖에 없다. 그거를 알고 그렇게 한 것이다. 딱 그러는데 갑자기 정말 은혜가 저한테 아 저게 십자가의 비밀이구나. 저게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님의 십자가의 비밀이구나. 그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놀라운 비밀이 정말 가슴 벅찬 감동으로 저에게 밀려들면서 너무 은혜를 받았어요.
그래요. 죄는 자기 자신만을 위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래서 이기심과 욕심과 교만 가운데 있는 인간은 그 죄를 절대로 벗어날 수가 없는 거예요. 한번 잡히면 못 나옵니다. 그 죄 가운데 그냥 잡혀 있는 거예요. 그 죄를 이길 수가 없어요. 절대로. 그런데 우리를 위하여 이 땅에 육신을 입고 오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아버지의 뜻에 순종하면서 예. 할 수만 있으면 이 잔은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뜻대로 하지 마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옵소서. 예. 하나님 아버지의 뜻에 순종해서 자신의 생명을 기꺼이 대속물로 드리심으로 그 죄의 권세를 무너뜨리고 그 죄를 이기고 그 가운데 잡혀 있는 그 우리를 구원하신 것. 이게 바로 십자가 이야기죠. 이게 십자가의 이야기예요.
그렇습니다. 여러분, 십자가의 도는 바로 이게 십자가의 도입니다. 십자가의 도는 바로 이게 십자가의 도예요. 하나님께 순종함으로 죄를 이기는 것. 하나님께 순종함으로 죄를 이기는 것. 예. 자기 유익이나 자기 욕심 정말 힘들지만 다 버리고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면서 정말 죽을 것처럼 힘들어도 하나님 뜻에 순종하면서 그 죄의 권세를 이기는 것 이것이 바로 십자가의 도다. 그래서 십자가의 도 그 메시지를 가지고 살아가는 성도들의 공동체에는 절대로 분열이 있을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요. 십자가의 도 그 영성이 분열의 영이 작동하지 못하게 하거든요. 예. 분열의 영은 자아가 살아 있어야 작동하는 거 아니에요. 예. 정말 그 어떤 자존심이 살아 있어야 작동하는 거예요. 예. 분열의 영은 뚜껑이 열려야 작동하는 거 아니에요. 그런데 이 십자가의 도, 그 영성은 바로 그것을 작동하지 못하게 하니까 온전히 하나님께 하나님의 뜻에 순종해서 그것을 이루, 그것만을 이루기 때문에 분열은 있을 수가 없다. 저는 정말 그런 아름다운 이야기 많이 봅니다. 그런 십자가의 도가 가득한 이야기 많이 봅니다. 하나님께 순종해서 그 자존심 센 사람이 그 욕심 많은 사람이 그렇게 성격이 강한 그 사람이 먼저 용서를 구하는 이야기. 네. 찾아가서 내가 잘못했습니다. 먼저 용서를 구하는 이야기. 먼저 무릎을 꿇는 이야기. 또 정말 힘들어도 상대를 받아주고 품어주고 용서하고 그러는 그 놀라운 자기 것을 아낌없이 드리면서 섬겨주는 죄에게서는 절대 볼 수 없는 역사가 그렇게 아름답게 일어나는 이야기를 저는 봅니다. 이게 바로 십자가의 도. 그 십자가의 메시지가 가득한 공동체 이야기죠.
자, 이제 우리 마음의 한복판 내 마음의 갈보리에 십자가를 세우고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아멘. 예. 우리 마음, 우리 마음의 한복판, 우리의 이 마음의 갈보리에 십자가를 세우고 살아갑시다. 무엇보다 우리 부부 사이에 십자가를 세우고 삽시다. 예. 여러분 아닌 척하지만 다 알고 있습니다. 거기가 얼마나 치열한 자리인지 부부 사이에 십자가를 세우고 살아가세요. 내 자존심이 내 자아가 내 어떤 상처가 소리치지 못하도록 십자가를 세우고 우리 가정 가운데 십자가를 세우고 삽시다. 가정은요 정말 서로 사랑하고 행복하라고 세워 주신 거 아닙니까? 근데 뭐 그렇게 용서 못 할 게 많고 뭐 그렇게 기분 나쁠 게 많고 무슨 실망을 얼마나 했다 그래서 그렇게 정지하고 야단을 치겠습니까? 아니요. 그 가정 가운데 십자가를 세우고 살아가야 돼요. 우리의 공동체 다락방과 모든 모임 가운데 십자가를 세우고 신앙생활 할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여러분 교회는 그게 교회죠. 교회는 그게 교회죠. 여러분, 제가 늘 말씀드리지만 우리는요 사랑하려고 만난 사이입니다. 우리는 서로 행복하려고 모인 사이예요. 절대 미워하고 분노하고 정지하고 싸우려고 만난 거 아닌데 왜 그렇게 자기 돈 써가면서 이렇게 힘들게 살아가십니까? 그거는 정말 어리석은 거 아니에요? 아니요. 우리의 모든 모임마다 십자가를 세우고 그 십자가의 도에 따라서 정말 서로 사랑하고 섬기면서 살아가는 그런 신앙생활이 맞는 거죠. 그래서 우리 교회 한복판에 정말 십자가를 세우고 나아갈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건물 꼭대기에 붙이는 거 말고 이 교회 한가운데 정말 십자가를 세워서 그래서 세상이 충격을 받아야 돼요. 왜? 이것은 세상하고 다른 곳이니까. 세상에 없는 스토리를 만들어야지. 우리가 사람이 이기적인 사람들이 자기 중심적인 사람들이 어떻게 저렇게 정말 마음을 다해 서로 사랑하고 섬길 수 있는지 그 기가 막힌 이야기. 예. 교회 한복판에 십자가를 세우고 나가야 한다. 그리고 우리가 서 있는 이 사회, 이 세상 속에 온전히 십자가가 설 수 있도록 그 십자가의 도가 참된 진리로 역사할 수 있도록 우리는 십자가의 도를 가진 사람으로 우리 삶의 자리 가운데서 선한 영향력을 끼치며 살아가야 할 줄로 믿습니다. 아멘. 아멘. 이게 신앙생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