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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모데후서 3장 16절 그리고 17절입니다. 함께 읽겠습니다.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케 하려 함이니라. 아멘.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자, 저희가 이제 주일날은 조금 지루하겠지만 우리 선문화 교회 교인들의 기초를 잡는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어떤 것을 우리가 과연 믿고 있는가를 배우는 그러 교리 설교 시간을 몇 주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첫 번째 시간에는 우 서모아 교회라는 제목으로 교회란 과연 무엇인가, 교회 하나님이 기뻐하는 교회는 과연 어떤 것인가에 대해서 우리가 살펴봤습니다.
그리고 지난주에는 우리는 니고데모의 이야기를 들어서 세례라는 게 뭐냐, 세례의 의미를 우리가 정확히 짚어봤습니다. 정말 세례라는 게 교회에 나온 지 한 6개월, 1년 되면 그냥 아무나 받을 수 있는 것이냐, 아니면 정확한 그 신앙 고백이 있을 때에 그 하나님의 참 교회의 일론이 되는 그러한 의식이라는 것을 우리가 명확히 짚어봤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우리가 성경은 과연 무엇이냐에 대해서 함께 살펴볼 거예요. 성경 여러분이 제목만 들어도 굉장히 좀 보링게 느끼시겠지만 조금만 좀 참아 주십시오. 그 성경의 그 익사이팅한 그 성경 이야기를 저는 왜 안 하고 싶겠어요. 빨리 이 기본을 잡은 다음에 그 성경 내용으로 들어가도록 할 겁니다. 왜 제가 이 기본에 대해서 이렇게 중요하게 이야기하냐면, 기본을 갖고 있지 않고 성경을 보다 보면 이 기본이 없이 여러분이 큐티하고 말씀 묵상하고 성경을 상고하다 보면 하나님의 의도하신 것과는 전혀 관계 없는 자기가 원하는 대로 이 성경을 보게 된단 말이에요.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들이 이 기본을 확실히 갖고 이 성경을 보아 버릇해야 이 성경이 이 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확실히 알 수 있는 거예요.
저는 개혁 신학을 지지하는 사람입니다. 리라고 하죠. 개혁 신학 사람들이 이 개혁이라는 말을 이 국어 사전의 개념을 갖고 들어와서 설명을 한다고요. 그래서 개혁 그러면 뭔가 지금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내고 새로운 것을 추구하는 것을 개혁이라고 사람들이 생각한다고요. 그래서 지금 있는 것에서 뭔가 돌출되어서 나와서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것을 개혁이다고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고요. 그렇지만 그 개혁 생사를 건 교회 개혁 뭐 이런 데 쓰이는 그 개혁이라는 말은 원래 있던 곳에서 변질되어 버린 그런 곳에서 다시 원래의 대로 바른 것으로 돌아가자는 것이 개혁이. 그래서 리드라는 것은 원래의 폼으로 돌아가자는 것이 바로 Reed 개혁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개혁 신학, 개혁 신학을 하는 장로 교인들은 무엇을 믿습니까? 오직 성경, 오직 예수, 오직 믿음, 오직 은혜, 오직 영광을 하나님께요. 다시 한번. 오직 성경, 오직 예수, 오직 믿음, 오직 은혜, 오직 영광을 하나님께. 이 다섯 가지를 목숨 걸고 믿는 사람들이 바로 개혁 신앙을 신앙하는 사람들입니다.
근데 많은 사람들이 당신 어떻게 구원받았습니까? 그러면 오직 은혜죠 뭐. 이렇게 이야기한다. 오직 은혜 only by 오직 은혜로 구원받. 뭐 하면서 이 은혜라는 말의 데피니션을 잘못 내리고 있기 때문에 그러면 당신 오늘 죽으면 천국 갈 수 있습니까? 라고 물어보면 찜찜한 거예요. 글쎄요. 내가 오늘 아침부터 일어나서 저지름 범죄를 생각하면 자신 없는 거예요. 그렇게 금방 대답할 수 없는 분들은 바로 이 은혜라는 것을 명확히 지금 파악하고 있지 못한 것입니다.
은혜라는 것은 받을 자격이 없는 자에게 거져 주어진 선물을 은혜라고 하는 거예요. 갚을 수 있는 능력이 있는 사람에게 주어진 것은 그건 이미 은혜가 아닙니다. 그 갚을 능력이 없는 자에게 그리고 받을 자격도 없는 자에게 값없이 주어진 것을 우리는 은혜라고 하고 선물이라고 한다고요. 그것을 그렇게 주어진 것을 우리가 믿음이라고 하고 그 믿음은 예수 그리스도가 죽고 다시 사심으로 해서 우리에게 주어지는 것이며 그것을 아는 우리는 그 하나님께 오로지 그 하나님께만 영광을 돌릴 수밖에 없는 것. 그것을 믿고 있는 거예요. 그 다섯 가지를.
그래서 우리가 믿고 있는 그 다섯 가지 그중에 아주 중요한 그 성경은 과연 무엇이냐에 관해서 우리가 살펴보려고 하는 거예요. 성경은 정말 하나님이 쓴 것이냐? 나는 과연 이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인식하고 있는 바른 그리스도인인가? 확인하고 돌아가시기 바랍니다.
혹자는 기독교를 체험의 종교다 이야기합니다. 기독교가 정말 체험의 종교입니까? 여러분, 내가 예수를 믿고 나서 하나하나 체험해 나가면서 그 예수를 확실히 예수로 인정하는 종교가 기독교입니다. 그것은 언어 도단이. 그거는 기독교가 뭔지 정말 모르는 사람들이 하는 망언입니다. 기독교는 체험의 종교가 아니라 계시의 종교입니다. 기독교 이외의 다른 모든 종교와 이 기독교가 다른 것이 바로 이거 한 가지예요.
자, 다른 종교는 내가 내가 필요한 것을 얻어내기 위해서 그리고 나의 필요에 의해서 우상을 만들고 신을 만들고 그 신을 나의 열심과 노력으로 참선과 고행으로 찾아가는 게 다른 종교예요. 그런데 죽어 있던 우리에게 하나님이 찾아오시는 게 기독교라 말해요. 이 둘은 너무나 다른 거예요. 그런데 예배당 안에서 기독교를 다른 이방 종교를 믿듯이 믿는 사람들이 있다 말이죠. 그러니까 체험의 종교니 무슨 종교니 이런 말이 나오는 거예요.
기독교가 이렇게 계시의 종교라면 하나님은 반드시 우리에게 자신을 계시하여 우리가 그분을 알 수 있잖아요. 그분이 우리를 찾아오시는 종교라면 그분이 자신에 대해서 우리에게 설명을 해 주셔야만 우리가 그분에 대해서 알 수 있다고요. 그렇게 하나님은 우리에게 두 가지 방법으로 계시해 주신다고요.
그 첫 번째가 인간과 이 우주 만물과 이 자연을 통해서 우리에게 하나님은 정말 계시구나 것을 알리는 일반 계시라는 게 있어요. 죠. 그러니까 하늘의 해와 달을 보면서 야, 어떻게 수천 년 동안 저 하늘의 해와 달은 저렇게 제자리에서 단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머물러 있으면서 우리를 이 지구를 보살피고 있는 것일까? 어떻게 저 바다는 수천 년 동안 그 금을 한 번도 넘어오지 않고 그 자리에 저렇게 머물러 있는 것일까? 한번 해일이 일어나면 그 바다가 한번 동하면 이 지구가 그냥 한 번에 다 물에 잠겨 버릴 수도 있는데 그 바다는 어떻게 그렇게 그 자리를 지키고 있을까? 뭐 이런 것들을 우리가 보면서 우주 만물과 자연 현상과 이 질서를 보면서 우리는 아, 창조주가 어떠한 이 우주를 하시는 어떤 창조주가 계시구나 추축을 할 수 있다는 거예요. 그것을 우리가 일반 계시라고 합니다.
성경에서는 시편 19편 1편에 하늘이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고 있고 궁창이 그 손으로 하신 일을 나타내고 있다라고 이야기합니다. 로마서 1장 20절에 창세로부터 보이는 것 그의 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게 되나니 그러므로 저희가 핑치 못할지니라. 왜 죄인들이 지옥 가서 핑치 못하냐면 분명히 이 우주 만물에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을 하나님은 알게 해 놓으셨다는 거예요. 그것이 바로 일반 계시라는 거.
두 번째 하나님이 자신을 시하는 방법이 시라는 것이 설명하는 방법이 특별 계시의 하나인 성경에 대해서 오늘 우리가 살펴볼 거예요. 여러분이 성경은 1500년간에 걸쳐서 쓰여진 거예요. 그러니까 BC 1500년경에 모세가 창세기, 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 이 모세 오경을 쓰는 것을 시작으로 해서 예수 그리스도가 죽고 살아나셔서 사도들이 그 이야기를 써놓은 그 신약 성경까지 거의 1500년에 걸쳐서 장구한 기간 동안 쓰여진 게 바로 성경입니다. 그리고 성경의 저자는 40여 명이에요. 성경은 이렇게 10000년간에 걸쳐서 40여 명의 저자에 의해서 적혀 있는 그러한 책입니다.
그리고 구약이 지금의 39건으로 이렇게 결정되어진 것은 많은 다른 외경이나 이런 것들을 다 쳐버리고 구약은 딱 39권입니다. 그래고 결정되어진 것은 BC 90년이 야모니 회의에서 비로소 그때 구약은 결정되어 있어요. 신약은 신약이 이렇게 27권으로 결정되 것은 AD 397년이에요. 그러니까 4세기 때예요. 성경은 어디에서 이렇게 만들어져서 우리에게 뚝 떨어진 것이 아니라 10000년간에 걸쳐서 40여명의 저자로 그리고 이것이 정경화 된 것도 4세기 경에서 완성된 그러한 책입니다.
그러니까 몰몬 교도들이 이야기하는 것처럼 야, 자기네들은 말이죠 어딜 가다 보니까 동굴에 딱 가서 경을 발견했는데 그것이 멀면 경이라 그래서 그 경이 굉장히 신비스럽고 초월적인 면이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 성경은 이렇게 인류의 역사 그 안에서 쓰여졌고 각기 다른 곳에 있었던 40여명의 그런 저자의에서 쓰여졌다고. 그러니까 신비함은 좀 줄어듭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확실히 믿고 있는 것이 이 성경은 하나님이 쓰셨고 주제는 한 가지만을 이야기하고 있다라는 것을 믿는다고. 그것이 바로 그리스도인이라는 말이에.
더더 본다나 이 성경의 장절이 구별된 것은 1551년이에요. 16세기 처음에 하나님이 하나님의 백성을 통해서 이 성경을 썼을 때는 성경의 장절의 구분이 없었다고요. 그래서 그냥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였어요.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 그런데 예배를 드리다 보니까 창세기 위로부터 1266번째 줄 뭐 이렇게 하려니까 이 사람들이 그거 한번 찾는데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리잖아요. 그러니까 장 과 저를 비전문가가 나눠 놓은 거예요. 그렇게 여러분들이 성경을 읽다가 계속 연결되어져야 할 이야기인데 장이 갈리면 혹시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나 이렇게 성경을 잘못 보시는 분들이 계시다 말이죠. 그니까 성경을 읽을 때 여러분은 장절 구별 없이 그냥 쭉 읽어가는 버릇을 드려야 하는 거예요.
거기다가 소 제목까지 붙여 놨어요 사람들이. 그러니까 이 이야기는 반드시 이 이야기겠지 하고 추측하고 들어가니까 성경이 말하는 진의를 우리가 파악하지 못하는 거. 여러분들이 소제목 같은 것들은 참고는 하시되 그것을 성경은 반드시 이 이야기만 하고 있구나라고 생각하시면 안 되는 거예요. 성경은 장절의 구별 없이 그냥 하나님이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영감을 주셔서 하나님에 관해서 써 놓은 이야기들입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개혁주의 신학을 하는 사람들은 축자 영감설 믿는 거예요. 한자 한자가 모두 하나님이 관여하시는 것이죠. 그 그 때문에 우리는 성경은 무하다. 단 한자도 하나님의 의도에서 벗어난 이야기는 없다라고 우리는 믿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이 시대는 말이죠. 이 시대의 유수의 신학교들이 것에 먹혀 버렸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예수를 하나님이라고 인정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예수가 태어난 그 탄생의 기적 동료에게 나신 그러한 기사를서 하나 신화 정도로 취급한다고. 그리고 예수님이 이렇게 신 수많은 기적 같은 것들을 믿지 않아요. 더더군다나 죽은 자가 살아난 그 부활은 믿지 않습니다.
저희 신학교 선배가 박사 하기 논문을 쓰면서 지도 교수님에게 그 논문을 가져가서 이제 검사를 받았어요. 검사를 받는데 그 교수님이 쭉 논문을 읽다가 이분이 그 논문에 그리스도의 부활하라 하는 것을 잠깐 언급하고 지나갔네요. 그런데 이 박사 하기 논문을 지도하는 이 신학교 교수가 말이죠. 껄껄 웃으면서 아직도 예수가 부활했다는 것을 믿는 사람이 있나? 그러더래요. 아직도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을 믿는 자들이 있나? 그는 그냥 한 명의 아주 훌륭한 선지자의 뿐이지 그는 하나님의 아들이 아니다라고 이야기 한다는 거예요. 그렇게 배운 사람들이 지금 정상적으로 안수받고 목사가 되어서 다 목회하고 있다고요. 그들에게는 성경이 단지 그냥 오류를 많이 갖고 있는 가치 없는 행동 지침서 정도로 밖에 여기지 않는다고요. 많은 지식인들이 그 자유주의 신학에 넘어가고 있다고요. 그래서 자유주의 신학하는 사람들은 돈도 많고요. 그 사람들은 더욱더 깔끔하고 깨끗해요. 그러니까 사람들이 자꾸 그쪽으로 시선을 돌리려고 한다고요.
성경은 하나님 한 분이 쓰신 하나의 주제를 가진 한 권의 책이란 말이에요. 그래서 창세기부터 계시록까지 이 성경은 일관성 있는 단한 한 가지 주제를 이야기하고 있어요. 무슨 이야기입니까? 예수 그리스도. 여러분이 성경을 통해서 여러분이 착하게 잘 사는 방법, 깨끗하게 사는 방법, 출세하는 방법, 돈 버는 방법 이런 것들 성경에서 찾으려고 하시면 여러분 성경 잘못 보고 계신 거예요. 그런 말씀은 성경에 한 절도 없습니다.
성경은 창세기부터 출애굽기, 계시록에 이르기까지 다 예수 그리스도요. 창세기의 그 벌거벗은 아담과 하와가 어떻게 이 새 하늘과 새 땅에서 의의 흰옷을 입게 되는가를 아주 친절하게 설명해 주고 있는 것이 성경이라고. 그래서 구약 성경도 전체가 다 예수 그리스도만 설명하고 있어요. 저희가 수요 성경 공부 시간에 아주 자세하게 우리가 살펴봤습니다.
창세기에서 아담과 하와가 범죄를 해서 타락을 하잖아요. 타락을 하고 이 아담과 하와가 이제 죽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언약을 하셨기 때문에 먹으면 죽는다. 그런데 3장 15절에서 하나님이 원시 복음이라는 복음을 주신다고요. 여자의 후손으로 말미암아 너희들이 살리라. 자, 그 언약을 신실하게 충실하게 계시록까지 이루어내고 계신 것이 바로 성경이란 말이죠.
그래서 이 타락한 인간이 계속 하나님의 그 열심으로 끌려가서 여호수아 때 이르러 가나안에 입성하게 되죠. 그렇게 인류의 구원의 역사를 한번 설명해 주시는 거예요. 거기까지. 그리고 가나안에 들어간 그 인간이 여호수아 다음에 뭐예요? 사사기에서 사사기에서 또 타락해 가지고 너무 하나님이 가슴이 아픈 거예요. 이놈들이 이렇게 또 타락하는. 그리고서는 사사들을 보내서 계속 건져 주시면서 어디까지 가는 거예요? 사무엘 하까지 가는 거예요. 거기에서 솔로몬이 성전을 짓죠. 성전이라는 것은 새 하늘과 새 땅을 의미하는 거예요. 참 성전이신 그 예수 그리스도. 그 성전을 지음으로 거기서 한번 또 끝나죠. 그리고 열왕기서 또 타락을 해요. 인간들이. 그래서 또 타락을 하고 나중에 에스라, 느헤미야, 에스더서 성전을 또 짓죠. 그리고 거기서 또 한번 끝나는 거예요. 이렇게 점진적인 계시의 방법을 쓰고 있다고요.
그리고 에스더서 잔치, 어린 양의 혼인 잔치, 천국의 그 잔치를 상징하는 그 잔치를 자세히 설명해 주죠. 그리고 나서 이렇게 우리를 잔치, 천국 잔치로 끌고 갈 수 있는 그분이 누구시냐? 그 참 지혜가 누구시냐? 그 설명해 주는 게 욥기, 시편, 잠언, 전도서, 아가서, 지혜서라고 하는 거. 그 시편, 잠언, 전도서는 모두 다 예수 그리스도를 그냥 설명하고 있는 거예요. 예수 그리스도는 누구이신가에 대해서. 그리고 아가서에서 그 솔로몬과 그 술람미 여인의 사랑 이야기가 아니라 하나님과 하나님의 백성들이 저 하늘나라에서 어떻게 사랑하면서 살 것인가를 설명해 준 것이 바로 아가소 말이에요.
그리고 이렇게 예수 그리스도 그 실체를 한번 설명해 주고 난 다음에 또다시 인류의 타락, 구원까진 또 설명해 준다고요. 이사야서에서 예레미야, 예레미야 애가, 에스겔, 다니엘, 호세에서 또 하나님이 말씀하시죠. 너희들 타락했다. 그러면 안 된다. 너희들 큰일 난다. 선지자를 통해서 계속 이야기하시면서 나중에 학계, 스가랴서 또 성전이 완성되죠. 성전은 새 하늘과 새 땅. 어떻게 이 타락한 인간들을 이 새 하늘과 새 땅으로 끌고 가는지를 또 설명해 주는 거예요.
그러면서 마지막 구약의 마지막인 말라기. 자, 보하라. 내가 너희들을 이렇게 벌거벗은 너희들을 이렇게 새하늘과 새 땅으로 끌고 가려고 너희들을 이렇게 가르치면서 하면서 끌고 가는데 결국은 너희들의 힘으로 안 되지. 그러면서 성전문을 누가 좀 닫아 다오. 그런다고. 너희들의 그 형식적인 예배, 그런 형식적인 섬김 나는 이제 싫다. 문 다다다. 그러시면서 하나님께서 직접 말씀하십니다. 이제 내가 하겠다라는 거예요. 내가 너의 삶에 뚫고 들어가서 그 일을 내가 이루겠다 하시면서 마태복음이 열리는 거예요.
그러면서 빛이 예수 그리스도가 오셔서 혼돈과 공허와 어둠 뿐이었던 우리의 이 죄인들의 삶에 뚫고 들어오셔서 그 어둠을 다 몰아내시고 우리를 새 사람으로 만들어 가는 것. 그것을 바로 복음서에서 설명해 주시죠. 그래서 창세기의 첫째 날, 둘째 날, 셋째 날, 넷째 날, 다섯째 날, 여섯째 날까지 그리고 일곱째 날 안식을 하셨던 그것을 요한복음에서 그대로 그 실체가 오셨다고 해 갖고 첫째 날 빛이 오시고, 두 번째 날 그 그 이튿날 예수님이 세례 받으시고, 그 이튿날 제자들과 함께 머무는 예수님과 함께 제자들이 머무는 그 새 하늘과 새 땅의 그 상징을 보여 주시고, 넷째 날, 다섯째 날, 여섯째 날 12제자, 하나님의 백성들인 그 12제자를 모으신다고.
창세기에서네, 다섯, 여섯째 날은 뭐가 있었어요? 이 틀을 채우는 사건이 있었잖아요. 그 이야기이 실체가 이제 오셔서 그 구원을 완성하고 있다라는 것을 보여 주는 거란 말이에요. 그리고는 요한복음에서 니고데모를 등장시켜서 야, 구원이라는 것이 어떤 것인 줄 아냐? 너희들이 갖고 있는 그런 배경이나 조건, 너희들이 공부하고 노력한다고 해 가지고 그 구원이 이루어지는 줄 아느냐? 그 구원이라는 것은 너희들의 갖고 있는 그 근거가 하나도, 단 1% 거기에 개입될 수 없다라는 것을 보여 주는 거예요. 니고데모를 통해서.
그리고 사마리아 여인을 등장시켜서 전혀 구원받을 근거가 없는 그 여인을 구원하심 해서 구원은 봐라. 이러한 자들이 구원받는 것이다라고 설명하신다. 그리고 38년 된 병자를 바로 연결시킨다. 그래서 38년 된 병자 누굽니까? 자기 힘으로는 연못이 천 번을 동해도 내려갈 수 없는 그러한 자. 그러한 자만 그 연못을 안 보고 하늘을 볼 수 있다라는 거예요. 그 연못을 안 보고 내 힘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한 자. 그런 자들만이 하늘을 보고 그런 자가 구원을 받을 수 있다라는 것을 설명하는 거죠.
그래서 구원이 그렇게 우리에게 오면 우리가 누릴 영원한 새 하늘과 새 땅의 그 풍성함이 무엇이냐? 오병 이어의 기적으로 보여 주시는 거예요. 봐라, 천국의 풍성함은 이렇게 먹고 12두 광주리가 남는 바로 그러한 풍성함이다 것을 보여 주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성경이 이야기하는 거예요.
이렇게 일관성 있게 예수 그리스도를 말미암아 우리에게 주어진 그 복음,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그 십자가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주어진 그 새 생명이 어떻게 성령의 의해서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적용되어져 가는가를 보여 주는 것이 사도행전이. 그 모든 것 을 교리적으로 딱 설명해 놓은 것이 로마서 그요. 그리고 고린도 전서부터 시작해서 유다서까지의 이 서신서 신약의 신의산 언약이라고 할 수 있는 그리스도인들의 행동 지침서라고. 너희들은 이제 어떻게 살아야 되느냐? 세상은 너희들을 어떻게 공격할 것인데 너희들은 이렇게 이렇게 이렇게 해서 이겨라. 그리고 그렇게 이긴 자들이 들어가서 영원히 살게 될 새 하늘과 새 땅, 그 천국을 설명해 놓은 것이 요한계시록이 것입니다.
여러분, 성경은 이렇게 일관성 있게 예수 그리스도에 관해서만 설명하고 있어요. 자, 누가복음 24장 25절 갑니다. 이에 모세와 및 모든 선지자의 글로 시작하여 모든 성경에 쓴 바 자기에 관한 것을 자세히 설명하시이라. 엠마오 마을로 내려가는 두 제자가 예수 그리스도를 알아보지 못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예수 그리스도가 성경 이야기를 해 주신다고요. 예수 그리스도가 이때 해주셨던 성경은 무슨 성경이? 구약 성경이잖아요. 구약 성경 이야기를 예수님이 그 제자들에게 설명해 주니까 이 제자들이 아이고, 예수님 이구나라고 알았어요. 그 이야기가 무슨 이야기냐? 모든 성경에 쓴 바 자기에 관한 것이라 그런다고. 그 구약 성경은 모두 다 예수에 관한 이야기다라고 성경이 이렇게 명확하게 우리에게 설명해 주고 있잖아요. 성경은 예수에 관해서만 쓰여 있습니다.
보세요. 요한복음 8장 56절. 너희 조상 아브라함은 나의 때 볼 것을 즐거워하다가 보고 기뻐하였다. 아브라함이 언제 적 사람이에요? 원전 2년 사람이에요. 지금부터 4천 년 전 사람인데 그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를 보았아요. 예수 그리스도의 때를 기다렸다가 보았다고 하지 않습니까?
요한복음 12장 41절 보세요. 이사야가 이렇게 말한 것은 주의 영광을 보고 주를 가리켜 말한 것이라. 이사야가 언제 적 사람인데 주의 영광을 보고 예수 그리스도를 보았다 그럽니까? 이사야가 예수 그리스도를 보았다 그래요.
히브리서 11장 24절 보면 믿음으로 모세는 장성하여 공주의 아들이라 함을 거절하고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능력을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 더 큰 재물로 여겼으니 이는 상주심을 바라봄이라. 모세가 기원전 1500년 전 사람인데 그가 받은 고난, 그가 받은 능력이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은 능력이라 그런다고. 아니, 그가 그리스도를 보기나 했습니까? 그런데도 어떻게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은 능력이라고 그러지 않습니까? 이렇게 구약은 가 예수 그리스도를 설명하고 있어요. 우리가 성경 공부 시간에 그것은 하나하나 짚으면서 다 설명해 드릴 거예요. 어떤 구조를 저에게 다 갖고 와 보세요. 그것을 예수 그리스도로 다 풀어드릴 수 있습니다.
창세기 1장 1절에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부터 시작해서 아멘, 주 예수여 어서 오시옵소서 는 요한계시록 22장의 그 마지막 절까지 성경은 일관성 있게 예수만 설명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제 그렇게 시대 고 예언되어 그 예수라는 그 실체가 오셨잖아요. 그러면 더 이상 그 예수에 대한 계시나 그 예수에 대한 그 예언이 이 땅에 이제 필요합니까? 필요 없습니까? 실체가 오셔서 그분이 어떤 일을 하실 것이고 그분은 어떤 분이며 그분이 우리에게 주신 선물은 어떤 것인가를 설명하는 것이 이 구약 성경 전체라. 그분이 이제 신약 때 오셨단 말이에요. 오셔서 그 일을 다 이루시고 가시고 그 일을 바로 이런 것이었다는 것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올라가셨다 말이에요. 그러면은 이제 성경을 통해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하시고자 하는 그 말이 다 완성이 된 거 아닙니까? 그러니까 이제 더 이상 우리에게 예언이나 계시가 필요하냐 말이에요. 이제 더 이상 필요 없단 말이에요. 성경은 이제 완성이 된 거예요.
히브리서 1장 1절에서 2절 보세요. 옛적에 선지자들로 여러 부분과 여러 모양으로 우리 조상들에게 말씀하신 하나님이 이 모든 날 마지막에 아들로 우리에게 말씀하셨으니. 옛적에는 선지자들로 여러 부분과 여러 모양으로 우리 조상들에게 말씀하신 그 하나님. 그렇게 말씀하셨다는 거예요. 실제로 예언하시고 계시하고 하나님의 백성들에 그런 거 주셨다는 거예요. 그런데 그 아들이 실체인 아들이 옴으로 해서 마지막 날에 아들로 그 말씀을 완성했다고 히브리서 1장 1절, 2절 명확히 이야기해주고 계시지 않습니까?
그런데 오늘날도 사람들이 그 예언과 계시를 쫓아 다닌다고요. 어떤 사람은 아침에 일어나면서 하나님의 계시를 받는다 그래요. 많은 목사들이 하나님의 계시를 받아서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이 어린 양들에게 협박하고 회유하고 하는데 쓰고 있다라는 것입니다. 이제 계시는 하나님의 예언은 다시 이 땅에 내려오지 않습니다. 성경에서는 단 한 번도 개인의 미래를 예언이라고 해서 적어 놓은 구절이 아무데도 없어요. 저한테 가져오세요. 제가 무엇인지 설명해 드릴 테니까. 개인의 기흉 화복이 개인의 미래를 점치는 그러한 예언을 성경은 한 번도 한마디도 기록하고 있지 않습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많은 분들이 저는 제 주위에 있는 목사님이 하와이까지 비행기 타고 가 가지고 예언하는 사람에게 예언 받고 오는 사람들을 몇 명 봤어요. 큰 교회하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알고 싶은 우리의 미래가 뭐냐 말이에요. 그 예언을 통해서 우리가 알고 싶은 우리의 미래가 뭐냐 말입니다. 이 땅에서의 기류 화보 아닙니까? 나의 이 땅에서의 미래 아닙니까? 그래서 그 사람들이 어, 4월 달이면 비즈니스가 풀리겠죠. 하나님이 나에게 계시해 주셨다 말이에요. 당신은 하나님의 종으로 부르셨는데 왜 이러고 있어? 그래서 신학 간단 말이에요. 그런 사람들이 한 명이 아니에요. 당신 이렇게 계속해서 죄 짓고 이 성질 못 고치면은 내년부터 가정에 어려움이 있어. 뭐 이런 식으로 얘기하잖아요. 그러면은 깜짝 놀래요. 하나님이 자기에게 말씀하셨다고.
여러분이 알고 싶은 것이 그 정도라면 제가 얼마든지 가르쳐 드릴 수 있어요. 제가 대학 시절에 하나님은 안 계실 것 같다라고 진리가 어떻게 기독교에만 있겠냐 그래서 제가 불경이나 동양 철학은 도올 김은혁 선생보다 더 많이 공부했어요. 그래서 여러분이 생년 월일 시만 저에게 주면은 사주 팔자 그 자리에서 제가 설명해 드릴 수 있어요. 그 정도는 그냥 나와요. 그걸로도 우리가 그 예언을 통해서 알고 싶은 게 그 정도냐 말이에요. 우리가 알아야 할 미래는 성경에 명확히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까? 우리가 알아야 할 미래가 뭡니까? 하나님의 백성으로 새 하늘과 새 땅에서 우리의 미래가 어떠한 것인가. 그걸 우리가 아는 거 아닙니까? 그걸 우리가 알아야 하는 거 아니에요. 나머지 다른 것은 하나님이 거기에 눈 두지 말아라 한 거잖아요. 그런데 거기에다가 다 목숨 걸고 있지 않습니까?
아, 심지어 말이죠. 제가 아주 존경하는 그 목사님 한국에서 큰 교하는 목사님인데 어머님이 성가대요. 성가대인데 몰래 아들 몰래 치러 가셨다는 거예요. 미아리에. 그런데 들어가자마자 그 점쟁이가 그러더래요. 당신 예수 믿으라고. 깜짝 놀란 거예요. 이분이 어떻게 하셨냐 그랬더니 나는 다 안다는 거예요. 척 보면 예수 믿는 자들은 점가 안 나온다. 이분이 놀래 갖고 교회에 가서 성가대원들에게 다 이야기한 거예요. 갔더니 척 얼굴만 보더니 내가 예수 믿는 거 알아보더라. 그다음 주에 그 성가대가 전부 거기서 만났 다잖아. 뭘 알고 싶어서 간 걸까요? 여기서 새 하늘과 새 땅에서의 우리의 미래. 그것을 알고 싶어서 갔을까요? 우리 그리스인들이 이 땅을 어떻게 하면 더 하나님이 원하시는 그 방법대로 살아갈 수 있을까? 그게 궁금해서 갔을까요?
제 친구들하고 선배들이 이번에 그 총선에 많이 출마했다가 당선도 되고 떨어지고 한 그런 친구들이 있어요. 이번에 이제 서울 동대문에서 출마했다가 낙선한 분이 저한테 그러더라고요. 자기가 기독교인이 100일 동안 새벽기도 했다는 거예요. 선거 전에 100일 동안 새벽 기도하고. 근데도 마음에 확신이 없더라는 거예요. 이거 어쩌면 좋냐. 하나님 붙을까요? 떨어질까요? 붙을까요? 떨어질? 무슨 부태 도사도 아니고 말이죠. 확신이 없더요. 그래갖고 결국에는 선거 전날 그 정치인들만 봐주는 그 유명한 백모는 분에게 찾아가서 전캐를 구했다는 거지. 그랬더니 붙는다고 그랬대요. 왜냐면 여론이 확실히 앞서 갔거든요. 그런데 떨어졌어요. 이번에. 그러면서 어쩌면 이럴 수 있냐 그는 거예요. 제가 속으로 쌤통이다 그랬어요.
이분들 구하는 그러한 미래에 대한 기 복과 교회 안에서 예언이라는 것을 을 들어서 우리가 원하는 알고 싶어 하는 것이 뭐가 다르냐 말이에요. 하나님이 성경에서 말씀하시는 그 예언은 미래에 관한 이야기 맞습니다. 그렇지만 이 땅에서의 우리의 미래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라 저 새 하늘과 새 땅에서의 우리의 미래에 관한 이야기 들이라고. 그것은 명확히 한자의 오차도 없이 한자의 오타도 없이 여기에 다 일목 요연하게 적혀 있다 말이에요. 그런데 여러분들 뭘 뭘 또 듣고 싶으시다는 거예요? 도대체 계시록 22장 18절 보십시오. 내가 이 책의 예언의 말씀을 듣는 각인에게 증거하노니 만일 누구든지 이것들 외에 더하면 하나님이 이 책에 기록된 재앙들을 그에게 더하실 터이요 만일 누구든지 이 책의 예언의 말씀에서 제하여 버리면 하나님이 이 책에 기록된 생명나무와 및 거룩한 성에 참여함을 제하여 버리시리라.
하나님의 그 언약과 하나님의 예언은 하나님의 그 계시는 이제 완성이 되었. 그러니까 너희는 이 성경 66권 외에 이것들 외에는 피라는 그 헬라어 전치사 말이에요. 앞서 있는 그 성경들 전체 성경 66권 외에 어떤 것을 요만큼이라도 더하면 너네는 지금이 요한계시록에 적혀 있는 내 나팔 재앙, 대접 재앙 전혀 두려워하지 않으시군요. 뭘 읽어봤어요? 알죠. 이 무시무시한 재이 너희 거라 얘기예요.
말씀은 하나님이 하신 말씀은 성경에 기록될 수 있다 없다? 5X 문제예요. 하나님이 하신 말씀은 성경에 기록될 수 있다 없다? 있죠. 그러면 지금 이 시대에 또 다른 계시가 계속 내려온다면 우리는 성경을 또 한 번 써야죠. 내가 복음 나에게 하신 말씀 써야 될 거 아닙니까? 그런데 하나님은 성경은 이미 완성됐고 너희들이 이것들 외에 한마디라도 더하면 너희는 저주받는다 그러잖아요. 그런데 우리가 듣고 싶어 하는게 도대체 뭐냐 말이에요. 도대체.
그리고 하나님이 이렇게 명확히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우리가 믿고 있는 발을 이렇게 66권에 걸쳐서 설명해 놓으셨어요. 근데 여러분이 이거 처음부터 끝까지 몇 번이나 읽어 보셨습니까? 그리고 이해하세요 이것을? 저는 새벽 3시 반에 일어나서 11시에 잘 때까지 성경만 봐요. 아무것도 안 해요. 딴 거. 심방도 안 가요. 저는 밥도 못 먹어요. 어떨 때는. 그런데도 저는 10% 이해 못하게 어요. 아직 죽을 때까지 내가 이거 다 이해할 수 있을까 몰라요. 천국에 가야 알겠죠. 그 얘기가 그 얘기겠지. 하나님이 해 놓으신 이 말씀을 공부하기도 제 삶은 벅차다고. 그런데 또 무슨 얘기가 더 필요하냐고. 더 무슨 얘기가 듣고 싶은 거예요. 도대체.
여러분 저보다 더 공부 많이 하신 분 계실지 모르겠지만 그래요. 그분들에게도 한번 여쭤 보겠습니다. 다 이해가 갑니까? 근데 여기에는 관심 안 두고요. 하루에 한 장도 읽을까 말까 하면서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하는 것은 그렇게 관심 없으면서 또 다른 무슨 이야기를 듣고 싶어 하는 거냐 말이에요. 하나님은 분명히 이렇게 완성된 말씀을 우리에게 주고 가셨습니다.
에베소서 6장에 마귀의 개를 능히 대적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입어라. 그 전신 갑주 중에 유일한 공경 무기는 성령의 검이는 곧 하나님의 말씀이다 그러다 말이에요. 그근데 하나님이 마귀와 싸우라고 주신 그 성령의 검 이것이 성 도 안 되 있는데 하나님이 그냥 주겠어요 우리에게. 자, 어떻게 아직 완성은 덜 됐는데 그래도 이것이라도 가지고 와서 싸워 봐라. 그럼 좀 덜 맞을지도 몰라 이러면서 주셨겠지만 those 그 공경 무기인 말씀을 우리에게 주신 거라 말이에요. 사단이 예수 그리스도를 시험한 거 보면 알잖아요. 말씀으로 공격해요. 항상 우리를. 구약을 가지고 공격하지 않습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말씀을 갖고 공격할 때 우리가 말씀으로 대항하지 않으면 방어를 할 수가 없는 거예요. 그니까 장검을 가지고 나와서 사단이 자 한번 붙어보자. 우리도 뽑아야 될 거 아닙니까? 뽑았는데 요만한 요한복음 3장 16절. 예, 우리가 알고 있는 그거 하나잖아요. 딱 하나.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그거 하나 갖고 어떻게 싸우겠다고. 그걸 모르니까 이 내용을 모르니까 딴 이야기 자꾸 듣고 싶어 하는 거예요. 아니요. 이것만 가지고 얼마든지 이기면서 살아갈 수 있어요. 여러분 거기에 관심 두지 마십시오.
우리 장로 교회는 성경을 유일한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정확 무어 하다는 것을 우리가 믿습니다. 축자 영감성을 우리는 지지하는 겁니다. 이 성경을 이 전체를 정확하게 요약해 놓은 것이 바로 웨스트민스터 신앙 고백이라는 거예요. 이 웨스트민스터 신앙 고백은 15세기에 영국 의회가 선정한 41명의 신학자들 중에 천재들과 성직자들 이런 사람들이 모여서 과연 성경은 무엇을 이야기하고 있는가? 우리가 믿는 바는 무엇인가를 연구하고 연구하고 공부해서 4년 동안 연구하고 공부해서 만들어 놓은 것이 웨스트민스터 신앙 고백이에요.
제가 이 웨스트민스터 신앙 고백에 참여한 잔 오이라는 사람의 책을 가지고 한 권 그 사람이 쓴 한 권의 책을 가지고 신학교 때 페이퍼를 쓰는데 6개월 걸렸어요. 그만 이 분들은 성경에 대해서 깊고 심하다고 당대의 천재들이 것입니다. 그런 분들 141명이 모여서 4년 동안 이 성경을 요약했다 말이에요. 거기에서 그분들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1장 1절. 웨스트민스 신앙 고백의 1장 1절에 뭐라고 이야기했는지 아십니까?
주님은 여러 시대에 그리고 여러 가지 방식으로 자신을 계시하시고 자기 교회에 자신의 뜻을 선포하시 기뻐하셨으면 그 후에는 진리를 더 잘 보존하고 전파하기 위해서 그리고 육신의 부패와 사탄과 세상의 악에 대비하여 교리를 더욱 견고하게 하며 위로하시기 위해서 바로 그 진리를 온전히 기록해 두시 것을 기뻐하셨다. 이 같은 이유로 성경이 절대적으로 필요하게 된 것이다. 그리하여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에게 자신의 뜻을 직접 계시해 주시던 과거의 방식들은 이제 중단되었다. 이제 없다라는 것입니다. 엉뚱한 거 듣고 하나님의 소리라고 이야기하지 말라는 거예요.
자, 웨스터민스터 신앙 고백 1장 6절에 하나님 자신의 영광과 인간의 구원 신앙과 생활에 필요한 모든 것에 관하여 하나님이 가지고 계시는 모든 계획은 성경에 분명하게 기록되어 있다. 그러므로 이 성경에 다 성령의 새로운 계시에 의해서든지 혹은 인간들의 전통에 의해서든지 아무것도 어느 때를 막론하고 더 첨가할 수 없다. 오직 성경만이 하나님께서 우리 백성들에게 자신을 계시하시는 방법이라는 겁니다.
그리고 그 성경은 일관성 있게 예수를 설명하고 있다는 거예요. 그 예수는 누굽니까? 죄와 허물로 죽었던 여러분을 품에 안고 죽고 사심으로 우리를 구원해내는 그 분. 그것을 우리는 은혜라고 하고 그것이 믿겨지는 것을 믿음이라고 하며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오직 영광을 하나님께요. 그것을 믿고 있는 것이 바로 우리 그리스도인들입니다. 오직 성경, 오직 예수, 오직 믿음, 오직 은혜, 오직 영광을 하나님께. 이것이 바로 우리가 믿고 있는 바 신앙이라는 것입니다.
디모데후서 3장 16절, 17절 오늘 본문을 다시 읽으면서 우리가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이 성경은로 하나님의 성들에게 온전케 되는데 그것 자체로 그것 홀로 충분하다고 설명하고 있는 거예요.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케 함이라. 이 성경 하나로 여러분은 온전케 될 수 있게끔 완벽하게 완성해서 여러분들에게 주어졌다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