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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76. 윤회의 고통에서 어떻게 벗어나나요?

법륜스님의 즉문즉설19:52

Transcription

먼저 간단하게 제 소개를 드리자면, 어, 일단 저는 불자가 아니고요. 어, 평생 살면서 절 근처에 도지 한번 가보지 않은 그런 사람입니다. 다만 제가 삶에 대해서 이제 고민을 하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이제 기독교나 힌두교 그리고 불교와 같은 이제 종교들을 접하게 됐습니다.

제가 오늘 스님에게 여쭤보고 싶은 질문은 불가에서 말하는 깨달음에 관한 것입니다. 어, 지금까지 제가 이해하고 있는 바로는 부처님께서는 누구나 깨달음을 통해서 윤회의 고통에서 해방될 수 있다라고 가르치신 것으로 제가 알고 있습니다. 근데 여기서 깨달음이란 도대체 어떠한 개념의 것인지, 그리고 깨달음을 얻게 되면 어떻게 해서 윤회의 고통에서 벗어나게 되는 것인지에 대해서 스님께서 좀 설명을 해 주셨으면 [음악] 좋겠습니다.

음, 네. 그 윤회의 고통이라는 게 뭐냐는 걸 먼저 알아야 돼요. 인도에서는 전통적인 인도의 그 힌두 사상에서는 사람이 태어나고 또 죽고 또 다시 태어나고 또 죽고 다시 태어나고 또 죽고, 즉 생이 계속 돌고 돈다. 이걸 윤회라 그래요. 어, 그래서 좋은 일 좀 하면 좋은 데 태어나고, 나쁜 짓 하면 다시 지옥이나 환경이 나쁜 데 태어나고, 또 죄를 다하면 또 좋은 데 태어나고, 복을 다 까먹으면 또 나쁜 데 태어나고. 이렇게 돌고 도는 인생. 그러니까 좋은 데 태어나든 나쁜 데 태어나든, 어, 그것도 중요하지만 결국은 좋은 데 태어나든 나쁜 데 태어나든 크게 보면 결국 이 이 윤회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이것이 인생의 가장 큰 고통이다. 이제 이런 가르침이.

그럼 이런 고통에서 벗어나려면 이제 브라만 신을 믿고 거기에 이제 자기 지난 생에 지은 과보를 기꺼이 받아들이고 이렇게 하면 이제 윤회에서 벗어날 수가 있다. 자기 계급 자기의 직분에 충실하고 이러면 벗어날 수 있다. 이런 데서 이제 힌두 신앙이 생겨나거든요. 거기는 이제 힌두라는 것은 한 가지 어떤 뭐 누군가 창시한 게 아니라 여러 민간 신앙들이 같이 결합된 거기 때문에 뭐 부자를 지내면 업이 녹는다, 뭐 강가 강에 목욕하면 업이 소멸된다든지 여러 이제 다신교니까 여러 이제 그런 가르침이 있다는 거죠.

어, 그리고 이제 좀 철학적으로 이제 이걸 어 연구한 게 이제 우파니샤드 철학인데. 하늘에는 이제 브라흐만이라는 신이 있다. 창조 신이 있는데 그 신은 영원하다. 영원하다. 그리고 그 신은 즐거움이다. 어, 그이는 진정한 나다. 그것은 성스러움이다. 이 네 가지를 상락아이라고 그래요. 영원하고 즐거움이고 그것이 진정한 나고 그것이 성스럽다는 네 가지 성질을 가지고 있다. 이런 얘기예요. 근데 나에게도 아트만이라는 게 있다. 신의 분신인 아트만이라는 게 있고 이 아트만을 내가 제대로 발견하게 되면 신과 똑같이 된다. 나도 상락아이가 된다. 이래서 브라흐만과 아트만이 둘이 아닌 하나가 된다. 이럴 때 우리는 해탈한 윤회에서 벗어난다. 뭐 어쨌든 정확 제가 정확하게 뭐 그걸 길게 설명하지만 대충 이런 이제 철학관을 가지고 있는 거예요.

근데 부처님께서는 뭐 이런 믿음의 브라만 사상과 그런 철학을 어릴 때 청년 때 다 공부를 했습니다. 그런데 이 세상의 일을 보면 그런 믿음이 이 세상에 인간의 고통이 해결이 안 돼요. 사람이 믿고 부자를 지내고 이러면 고통에서 벗어난다. 당시에 막 임없이 전쟁 일어나고 빈부격차는 심하고 계급 차별은 심하고 성차별은 심하고 이러는데 그렇게 사람들이 기도하고 제사를 지내는데도 왜 저 인간의 수많은 무참한 학살 질병 죽음 별 학대 저런 게 왜 해결이 안 될까. 이런 늘 의문이 있었다는 거예요. 그리고 또 수많은 깨달은 자들이 있어도 이런 인간의 고통이 해결이 안 되는. 이제 그런 데서 왜 인간은 괴로울까 이런 것을 탐구했다는 거예요.

만약에 내가 먹을 기고 입을 게 없고 잘 게 없고 부족한 게 많으면 나도 님 부처님 나 좀 도와주세요 이렇게 되겠는데 그는 왕자로 태어났고 먹고 자고 있고 생활하는데 아무 불편이 없는 사람이었어요. 그렇다 그러면 세상 사람이 볼 때는 저 사람 무슨 괴로울 일이 있나 할 만큼 부러운 존재지만 자신이 다른 사람보다 고뇌가 적다고 말할 수 없는 많은 고뇌를 가지고 있었다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그는 어디 가서 빌기 왜 괴로울 사람은 왜 이런 고통을 겪고 살까 이런 걸 자꾸 탐구하고 연구하는 쪽으로 나아가게 됐다.

그렇게 자꾸 탐구하고 연구하다 보니까 기존에 있는 브라만 사상에서는 모순이 많 있는데 그 가르침 하고 이 모순이 많 있는데 그 당시에 신흥 사상가들이 하는 출가 사문들이라 그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부처님도 어 전통 사상에서 벗어나서 신흥 사상가의 대열에 합류를 했다. 자기가 처음부터 깨달아 가지고 뭐 이게 길이 진리다 이렇게 주장하신 분이 아니고 본인도 그들의 따라가 거 길을 갔어. 그래서 왕위를 버리고 출가하고 가족을 버리고 출가해서 그들의 가르침을 따라 정진을 했다이 말이야. 6년이나.

그런데 이제 주로 이 우리의 괴로움은 원하는 게 이루어지지 않아서 괴로우니까 이거 좀 도와주세요 하고 주로 비는 그래서 자기의 바람이 성취되었을 때 얻는 그 만족감으로 즐거움을 얻는데 이 신흥 사상가들의 주장은 이 바람이 욕망이 모든 인간의 고통이다. 그렇기 때문에 욕망을 실을 말려 버려야 된다. 이렇게 고행 주의를 걸었단 말이야. 근데 부처님도 여러 얘기를 들어보니까 본인도 그게 더 합리적이라고 생각을 한. 그래서 단적인 고행을 그들을 따라 그들보다 더하게 고행을 해본 거예요. 그랬는데도 불구하고 남이 볼 때는 전에 왕자일 때는 야 저 사람이 무슨 결을 일 있겠나 저 사람은 뭐 아무 문제가 없겠다 이렇게 생각했는데 정작 본인이 듯이 엄청나게 극단적 고행을 하니까 주 있는 수행자들이 다 복을 했어요. 와 저 사람 다 겠다 어람 그렇게까지 할 수 있냐 그랬는데도 본인은 아무런 깨달음이 없었어요.

여기서 이것도 사람들이 부러워할 정도로 저것도 사람이 부러워할 정도로는 갔는데 그러나 깨닫지를 못한 거예요. 그래서 즉 깨닫는다는 건 특별한 게 아니라 길을 못 찾았다 이런 얘기야. 그래서 본인이 자기 인생을 살펴봤다. 뭐가 잘못됐냐 이거야. 이거 욕망을 충족해서 그 만족감으로 즐거움을 얻는 쪽으로 갔다 이거. 가에서는 욕망을 억지하는 거로 갔다 이거. 그래서 그것도 극단적으로지 가봤다. 이 정반대의 길을 갔는데 둘 다 아니야. 모르겠어. 어쨌든 없어.

그랬을 때 그가 새로 발견한 건 뭐냐면 두 개가 같은 거라는 거였어요. 욕망이라게 있으면 우리나 욕구가 있잖아요. 욕구가 있으면 우리는 거기 대응을 하는데 하나는 따라가는 대응을 하고 하나는 거부하는 대응을 한 거예요. 그러니까 정반대로 대응을 했는데 대응했다는 점에서는 같은 거예요. 아 여기 문제가 있었구나. 욕망이 있어 먹고 싶으면 따라가서 먹든지 욕망을 따라가서 먹든지 안 먹겠다고 참든지. 담배가 피우고 싶으면 피든지 아니면 참든지. 근데 이 두 개는 정반대의 길이지만 욕구에 대응을 했다 반응을 한 거예. 반응을. 그래서 여기서 뭐가 나왔나 반응하지 않기. 즉 욕망이 일어날 때 욕망인 줄 알고 반응을 안 하는 거예요. 그래 따라 하겠다 아니고 안 하겠다 아니고. 따라 하겠다 그러면 과보가 나타나고 안 하겠다 그러면 참으니까 스트레스가 쌓이는 거예. 그러니까 따라하지도 않고 참지도 않고 그냥 아 욕망이 있구나. 담배를 피우고 싶어 하구나. 그냥 이렇게 알아차릴 뿐이다. 그러니 따라가지 않 과보가 생기지 않고 참지 않으니 스트레스가 안 일어나는 거예. 그러니까 지금까지는 막 수행을 한다고 이어락 다물고 엄청나게 긴장해서 수행을 했는데 긴장할 일이 아무것도 없어요. 편안한 상태에서 모든 것을 그냥 다만 알아차릴 뿐이다. 이것을 중도라 그래. 중도. 이 새로운 길을 발견해서 이제 편안한 가운데 정진을 거듭해 나갔다.

그래서 이치를는 거예요. 욕망을 욕망 일어나고 욕망이 충족되면 즐거움이 생기고 욕망이 충족이 안 되면 괴로움이 생기고 충족이 되면 즐거움이 생기는데 다시 욕망이 커지고 그다음에 또 충족이 안 되면 또 괴로움이 생기고. 그러니까 고가 있으면 낙이 있고 낙이 있으면 고가 있다. 그러니까 인생은 고와 낙이 늘 대풀이 된다. 아 윤회라는 건 사람이 나고 죽고 나고 죽는게 아니라 인생이라는 거는 고락이 대풀이 되는게 윤회. 그럼 이 고락이 되풀이 되는 윤회에서 벗어나려면 어떠냐. 그 고락의 뿌리가 욕망인 욕망의 반응을 안 해 버리면 고도 안 일어나고 낙도 안 일어나는 거예요. 이것이 해탈이다 하는 새로운 길을 발견하고 그 길을 따라 정진해서 마침내 욕망으로부터 자유로 진 경지 즉 두려움도 없고 괴로움도 없는 경제에 이르렀다.

자기가 이어서 보니까 이게 어려운 길이 아니었어요. 길이 몰라 가지고 이래 돼보고 저래 돼보고 헤맸는데 이것은 쉬운 길이야. 그렇게 해서 사람들이 괴로워하면 얘기를 가만히 들어보고 몇 가지 질문을 하면서 사람들이 어 이거 내가 잘못 생각했구나. 어 이거 내가 잘못 알았구나. 이렇게 자각을 하면서 그 문제를 해결해 가는 거예요. 그 깨달음이라는 어떤 신비주의인게 아니에요. 자기의 어리석음을 깨달았거나 잘못 알고 있는 걸 깨달았거나 몰랐던 걸 깨달았거나 이런 걸. 그래서 이제 금 괴로움에서 벗어나는 길은 어디 가서 빌어어 누구로부터 뭘 얻었어 이 괴로움을 해결하는게 아니라 나의 어리석음 나의 무지를 깨치면 이 괴로움에서 벗어날 수가 있다. 그니까 누구나 다 가능하다. 의 고하를 막론하고 재물의 고하와 지식의 고화 남 성별의 관계없이 다 가능하다. 이렇게 해서 새로운 길을 열었다 이렇게 말씀드릴 수 있겠습니다.

말씀 감사합니다. 근데 지금까지 말씀하신 내용을 들어 보니까 어떻게 보면은 모든 것을 내려놔야 된다라는 식으로 이제 들리는데 제가 제대로 이해한게 맞을까요.

그걸 이제 내려놔야 된다 그렇게 단정적으로 말할 수가 없습니다. 예를 들면 내가 이걸 들었는데 뜨겁다. 안 뜨거우면 내려놔야 되겠죠. 즉 뜨겁다는 괴로움에서 벗어나려면 내놔야 되겠지. 근데 내가 이걸 들었는데 안 뜨거워. 그런데도 이거 내려놔라. 이런 말은 성립 안 하겠지. 이것이 뜨겁다면 내려놔라 말할 필요 없잖아요. 이게 뜨거우면 아 뜨고 하고 다 내려 놓잖아요. 근데도 본인이 아이 뜨고 아이 뜨고 아이 뜨고 어떻게 내려놔요? 어떻게 내려놔요? 이건 무슨 말이에요? 갖고 싶다는 얘기 아니야. 그럼 갖고 싶으면 손을 되든지. 손을 대기 싫으면 어떻게 하든지 내려 놓든지. 이거 자기 선택이지 뭐. 뭐든지 내려놔라가 아니야. 너 갖고 싶으면 손을 대면 되지 뭐. 되기 싫으면 너 내려놔야지. 내려놔야 된다라는 건 없다는 거예요. 되기 싫으면 내려놓고 갖고 싶으면 손을 대고. 그러니까 내가 괴롭고 싶으면 뭐 그렇게 해도 된다는 거예. 근데 그것이 괴로움의 원인이라면 괴롭고 싶지 않으면 멈춰야 될 거 아니겠어요.

내가 여성의 종아리를 만지고 싶다. 만지면 안 된다 된다 이런 게 없어요. 이거 만지면 지금은 잠시 감각적으로 좋을지 모르지만 성추행범으로 감옥 간다. 어 나는 감옥 가도 괜찮아 만져보고 감옥 갈래 그러면면 가면 돼. 근데 참시 그거 몇 초 감각이 좋다고 했다가 1년 감옥 사 하니까 후회가 된다 이 말이야. 그러면 다음부터는 만지고 싶어도 안 만져야 될 거 아니에요. 근데 만지고 싶은데 어떻게 안 만져요? 이런 얘기를 하면 안 되겠지. 이제 어떻게 내려놔요? 이런 질문을 할 필요가 없는 거예요. 그래서 그래서 방차 뜨거우면 내려놔라. 그냥 내려놔라. 갖고 싶으면 들고 있어라는 거야. 그러니까 자꾸 이 깨달음을 추상적으로 신비주의적 자꾸 접근하기 때문에 이제 뭐 죽어서 천당이 있다는거나 깨달으면 뭐 어 된다는거나 똑같이 신비주의적 들리기 때문에 문제지. 이것은 하나든 신비주의적인게 아니다. 이건 바로 자기가 경험할 수 있고 체험할 수 있는 얘기다. 뭘 믿으라는 얘기도 아니고 뭘 하라 말라도 아니다.

여기 음식이 맛있는 게 있어. 아 냄새도 좋아. 딱 먹으려고 하는데 어 거기 독 들었는데 이러면 자기는 어떻게 해야 되겠어. 수전 나야 되겠지. 그런데 진짜 들었을까? 조금 먹어보면 안 될까? 조금 먹어도 죽어요. 이렇게 자꾸 얘기를 하는 거는 독 들었다는 걸 모른다는 얘기 아니에요. 그러니까 부처님은 독이 들었으니까 먹지 말라라고 가르친 분이 아니고 거기 독들이 해 주시는 분이야. 그러니까 어떻게 하든 그건 니 알아 세라는 거야. 어 먹고 죽든지 뭐 다 먹는 이유는 살려고 먹는데 굳이 먹고 죽을 이유가 없잖아. 그죠. 그 아무리 냄새가 좋고 빛깔이 좋아도 독 들었다하면 어 하고 버리지 누가 그걸 먹어요. 그런데 우리는 어리석은 자는 어 그 냄새와 향기에 취해서 어 독된다.

감사합니다. 네네. 최근에 이제 불교에 관심이 생겨서 여러모로 공부를 했었었는데 어떻게 뭐 교과서처럼 이렇게 딱 한 줄기로 이제 설명해 주는 거 없이 좀 이제 파편 파편으로 이렇게 받아들이는 느낌이 강했습니다. 그래가지고 늘 스님께 한번 질문하고 싶다라는 생각을 해서 신청하게 됐는데 받아들여 주셔서 너무 감사하고 또 정말 일목 요연하게 저같이 이제 무지한 사람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게 도와주셔서 너무나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관심 있으면 번에 불교대학 할 때 한번 신청해서 한 5개월 해보면 뭐 아 이런 거구나. 그래서 들어보고 마음에 들면 해보고 경험이 되고 뭐 내가 체험할 수 있으면 하고 해 보니까 에이 이거 뭐 안 돼 이러면 그만 두면 돼요. 여기는 뭐 믿으면 돈 준다 복 준다 뭐 다음생에 좋게 태어난다 이런 얘기는 없어요. 어 아니 뭐 자기가 좋은 일해야 다음생이 있으면 좋은데 가지 나쁜 짓 해놓고 다음생이 좋은데가 나간다면 그게 바보 같은 짓 아니에요. 그렇죠. 예. 그게 다 어리석은 짓이에요. 어 욕심 때문에 나쁜 짓을 해놓고 나쁜 과분 안 받고 어 좋은 일은 하기 싫고 좋은데는 가고 싶고. 그 이런 잘못된 생각을 고쳐야 어 우리가 진리의 눈을 뜰 수 있지. 잘못된 것을 가지고 자꾸 자기 합리화를 하면 어리석음이 계속 빠져들게 됩니다.

이제 나는 인상 쓰지 않고 글을 씁니다. 지금 이대로 좋다. 나의 첫 필사 노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