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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바로 들어가 보죠. 넘버 7. 영혼 분쇄기.
당신의 몸이 스마트폰이라고 상상해 봅시다. 매일 밤 100%까지 충전해야 정상이죠. 하지만 당신은 매일 예스%까지만 충전합니다. 그래도 그는 14개의 앱을 동시에 돌리고 4K 비디오를 스트리밍하고 GPS 역할까지 수행하길 바라죠. 심지어 그 모든 과정을 열정적으로 해내라고 윽박지릅니다.
이게 바로 25, 35세대의 영혼 분쇄기, 즉 번나웃의 실체입니다. 당신은 갈아넣는 시기에 진입했습니다. 커리어를 쌓야 하고 돈도 모아야 하고 어쩌면 연애나 결혼도 해야 합니다. 이 모든 걸 동시에 해내야 하죠.
특히 한국의 직장 문어에는 눈치라는 아주 매력적인 기능이 탑재되어 있습니다. 이게 현대에 와서는 누가 더 오래 더 바쁜 척 연기할 수 있는가의 싸움으로 진화했죠. 빛나는 엑셀 시트와 퇴근 직전의 파이팅, 메시지로 싸우는 조용한 소모전입니다.
이건 그냥 피곤한게 아닙니다. 이건 시스템 오류입니다. 당신의 부신인 스트레스 호르몬 담당은 이미 이혼 서류를 제출했습니다. 내는 비상 전력으로 겨우 돌아가고 있죠. 그래서 당신은 오늘 점심을 먹었는지 아니면 먹을까 생각만 했는지 헷갈리기 시작합니다. 당신의 몸은 지금 "주인님 제발 물이라도"라고 비명을 지르지만 당신은 "시끄러워 아직 약은 남았어"라고 답합니다.
당신은 살고 있는게 아니라 처리되고 있습니다. 자를 갖게 된 엑셀 매크로가 되었는데 그러자마자 바로 후회하게 된 셈이죠. 하지만 걱정 마세요. 주말이 거의 다 왔으니까요. 뭐 주말엔 편한 오차림으로 밀린 일을 할 수 있겠죠.
넘버 9. 감정적 안전 모드.
어느 날 당신은 깨닫습니다. 마지막으로 진짜 기뻤던게 언젠지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딱히 슬픈 것도 아닙니다. 당신은 그냥 존재합니다. 마치 윈도우 98이 오류 직전에 안전 모드로 부칭된 상태 같죠. 축하합니다. 당신의 뇌가 너무 많은 감정적 과부화를 견디다 못해 그냥 감정이라는 플러그 자체를 뽑아 버린 겁니다.
이것이 바로 감정 무감각입니다. 생각해 보세요. 매일 쏟아지는 정보, 끊임없는 비교, 미래에 대한 불안감. 이 이 모든 것이 24시간 내내 당신의 감정 회로를 때립니다. 뇌 입장에서는 이 모든 자극에 일일이 반응하느니 차라리 무유 애 상태로 들어가는게 훨씬 효율적인 에너지 보존 방식입니다.
이건 우울증과는 조금 다릅니다. 우울증이 짙은 파란색이라면 이건 그냥 흐릿한 회색입니다. 색깔이 아예 없는 거죠. 그래서 당신은 친구가 엄청난 승진 소식을 전해도 "5 축하해"라고 말합니다. 당신의 목소리토는 자동 응답기 ARS와 경쟁할 수 있을 정도입니다. 당신은 심지어 아주 슬픈 영화를 보면서도 "아 저 배우는 우는 연기를 참 잘하네. 점심 뭐 먹지?" 같은 생각을 합니다.
이건 당신이 차가운 사람이 되어서가 아닙니다. 이건 생존 전략입니다. 당신의 정신은 지금 "나는 더 이상이 혼돈을 감당할 수 없으니 모든 감정 수신기에 볼륨을 0으로 맞추겠다고" 선언한 겁니다. 아주 똑똑한 전략이죠. 단 한 가지 문제가 있다면이 안전 모드에서는 기쁨이나 흥분 같은 좋은 감정들도 함께 차단된다는 겁니다. 뭐 그래도 최소한 상처받을 일은 없으니 이게 바로 현대판 가성비 감정 관리법 아닐까요?
넘버 8. 일릭십 당하는 외로움.
자, 여기 당신의 카카오톡 채팅 목록이 있습니다. 단톡방이 30개가 넘고 읽지 않은 메시지는 구비크구석구를 찍은지 오래입니다. 당신은 인류 역사상 그 어느 때보다 더 많은 사람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왜 당신은 지금이 순간 지독하게 외롭다고 느끼는 걸까요?
이게 바로 연결의 역설 혹은 제가 부르길 일 당하는 외로움입니다. 우리는 관계를 맺는게 아니라 트래픽을 처리하고 있습니다. 당신은 친구의 슬픈 소식에 유유 이모티콘을 보냅니다. 당신의 뇌는 사회적 의무 완료라고 체크하죠. 하지만 당신의 마음은 1mm도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공감을 하는 대신 반응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도 가장 효율적이고 빠른 방식으로요.
이 디지털 연결망의 가장 큰 함정은 야틈입니다. 당신은 100명의 사람에게 당신의 잘 나온 사진을 보여 줄 수는 있지만 당신의 지저분한 진짜 속마음을 보여줄 사람은 글쎄요. 한 명이라도 있나요? 25, 35세에 우리는 관리되는 관계에 너무 익숙해져 버렸습니다. 우리는 서로의 가장 빛나는 부분만 핥타 주고 어두운 부분은 존재하지 않는 척합니다.
그래서 당신은 외롭습니다. 수백개의 채팅방 한가운데서 수천 개의 좋아요 속에서 외롭습니다. 이건 마치 거대한 파티에 초대받았는데 모두가 가면을 쓰고 있고 당신의 목소리는 아무에게도 들리지 않는 것과 같습니다. 당신은 지금이 순간에도 누군가에게 키를 보내고 있지만 사실 속으로는 전혀 웃고 있지 않죠.
넘버 7. 정체성 쇼핑.
당신은 자신이 누군지 잘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일단 MBTI 검사를 합니다. 아하, 나는 INT였군. 당신은 안도합니다. 이제 당신의 모든 기한 행동. 예. 파티에서 구석에 숨어 있기. 이 이 내향적 직관이라는 멋진 라벨로 설명됩니다. 하지만 그걸로는 부족합니다.
당신은 미니멀리스트가 되기로 결심하고 비건 베이킹 클래스를 신청하고 크로스피에 등록합니다. 이게 바로 정체성 쇼핑입니다. 과거에는 정체성이 주어졌습니다. 누구의 아들, 어느 마을 사람. 하지만 지금 특히이 세대에게 정체성은 선택의 영역입니다. 그것도 아주 거대한 온라인 쇼핑몰에서의 선택이죠.
문제는 옵션이 너무 많다는 겁니다. 당신은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할지 몰라서 일단 어떤 것을 좋아하는 사람의 이미지를 소비합니다. 당신은 나라는 사람을 구축하는게 아니라 나라는 브랜드의 인스타그램 피드를 꾸미고 있습니다. 나는 이런 책을 읽고 이런 음악을 듣고 이런 가치관을 가졌어. 하지만 그게 정말 당신인가요? 아니면 당신이 보여주고 싶은 페르소나인가요? 내는이 둘을 구분하는데 아주 서투릅니다.
이 쇼핑의 비극은 환불가라는 점입니다. 당신은 비싼 돈을 주고 산 정체성, 예, 환경을 생각하는 고가 자전거. 이 자신과 맞지 않는 것을 깨닫고도 쉽게 버리지 못합니다. 결국 당신의 자는 당신이 구매한 온갖 종류의 취향과 라벨들로 가득찬 창고처럼 변해 버립니다. 정작 그 창고의 주인은 텅 비어 있는데 말이죠.
넘버 6 갓사행이라는 완벽한 덫은 새벽 5시에 일어납니다. 왜냐고요? 뇌가 시켜서가 아닙니다. 인스타그램이 시켰거든요. 이것이 바로 갓생 챌린지입니다. 신 거드처럼 부지런하고 완벽한 인생 생을 살겠다는이 순고한 다짐은 사실상 현대판 자기학대 라이선스죠.
당신의 일정표는 테트리스 블록처럼 10분 단위로 완벽하게 짜여 있습니다. 오성 기상 지스미신 명상 삼숲 경제 신문 읽기 유톰 균킨도스 헬스장 7삼숙 샐러드. 이게 왜 유행할까요? 간단합니다. 당신의 뇌는 통제감에 중독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현실을 보세요. 당신의 커리어, 서울의 직값, 인류의 미래, 당신이 통제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습니다. 거대한 불확실성 속에서 뇌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은 통제할 수 있는 아무거나에 집착하는 겁니다. 그게 바로 오늘 아침 샐러드에 방울 토마토를 다섯 개 넣는 것 같은 거죠.
당신은 자기 개발서의 모든 문장을 뇌에 직접 주입합니다. 게름은 죄다. 시간을 정복하라. 당신은 쉬는 것을 뒤쳐지는 것으로 인식하도록 뇌를 훈련시켰습니다. 그래서 주말에 10시간을 자고 일어나면 해냈다가 아니라 망했다라는 생각이 먼저 듭니다.
이 갓생의 가장 무서운 점은 이게 성공이 아니라 성공의 시뮬레이션이라는 겁니다. 당신은 더 행복해지는게 아니라 그냥 더 바빠집니다. 당신의 뇌는 지금 "주인님 지금 해야 할 일 목록을 97% 완료했습니다. 하지만 살고 싶은 이유 목록은 텅 비어 있는데요"라고 외치고 있습니다. 축하합니다. 당신은 세상에서 가장 효율적으로 불행해지는 방법을 터득했습니다.
넘버 4. 합리적 포기 선언.
자, 간단한 산수 시간입니다. 당신의 현재 월급을 X라고 합시다. 서울의 평균 아파트 가격은 음, 계산 불가능이라고 하죠. 당신의내는이 방정식을 0.3초 3초만에 계산합니다. 그리고 아주 합리적인 결론을 내리죠. 아, 이건 그냥 안 되는 거구나.
이것이 바로 엠포 세대의 핵심 논리, 즉 합리적 포기입니다. 이건 1980년대의 반항과는 다릅니다. 이건 분노가 아닙니다. 이건 그냥 수긍입니다. 당신은 "A 더러워서 안 해"라고 소리치는 대신 "안 되는 거였군요. 알겠습니다"라고 조용히 엑셀 창을 닿습니다.
당신의 뇌는 좌절이라는 비유율적인 감정을 겪는 대신 욕망이라는 폴더 자체를 휴지통으로 드래그합니다. 결혼. 아, 그거 재밌어 보이지만 전 비건이라서요. 내 집 마련. 전 미니 멀리스트라 짐 늘리는 거 별로예요. 당신은 사회가 요구하는 성공의 체크리스트, 결혼, 출산, 내 집들을 달성하지 못하는게 아닙니다. 당신은 그냥 그 게임 자체에 로그인을 안 하기로 결정한 겁니다. 왜냐고요? 게임 참가비가 너무 비싸고 서버는 엉망이고 고인물들만이기는 게임이니까요.
이건 패배주의가 아닙니다. 이건 감정적 가성비를 극단적으로 추구한 결과입니다. 얻을 수 없는 것을 계속 욕망하며 고통받느니 아예 처음부터 원하지 않는 편이 훨씬 덜 피곤하거든요. 당신의 뇌는 지금 생존을 위해 꿈의 전원을 내리고 있습니다. 아주 현명하죠. 그리고 지독하게 슬프죠.
넘버 대리 만족 나노불행.
당신은 왜 사는게 힘들까요? 아마 당신이 당신의 삶을 살고 있지 않아서일 겁니다. 아니 더 정확히는 당신의 삶을 소비할 돈이 없어서 다른 사람의 삶을 시청하고 있기 때문이죠. 이게 바로 대리 만족이라는 우아한 함정입니다.
당신은 지금 이불 속에서 5만 원짜리 스테이크 먹방을 보고 있습니다. 내는 도파민을 살짝 분비합니다. 5. 고기다. 하지만 당신의 위장은 3분 전에 먹은 편의점 삼각김밥을 소화시키고 있죠. 이것이 나노 불행이 축적되는 순간입니다.
뇌는 보는 것과 갖는 것을 생각보다 잘 구분하지 못합니다. 당신의 거울 유런 미롤, 느론은 저 유튜버가 스테이크를 심는 것을 보며 당신도 씹는 척합니다. 하지만 당신의 현실 감각은 "저기 우린 지금 빛 갚아야 하는데"라고 속삭이죠. 뇌는이 두 신호 사이에서 단기적인 쾌락과 장기적인 박탈감이라는 아주 역겨운 칵테일을 만들어냅니다.
당신은 당신이 오를 수 없는 산을 오르는 유튜버를 봅니다. 당신이 살 수 없는 집에 사는 브이로그를 봅니다. 이건 효율적인 삶의 방식처럼 보입니다. 위험 부담 없이 돈 들이지 않고 경험만 쏙 빼먹는 거죠. 하지만 이건 마치 영향과 없는 인생 풍성검을 심는 것과 같습니다. 단물은 10초만에 빠지고 당신에게 남는 건 턱 근육의 필요감과 "왜 내 인생은이 맛이 안 나지"라는 공허함뿐입니다.
당신은 삶을 경험하는게 아니라 관람하고 있습니다. 그것도 이등석에서요. 당신의 삶은 당신의 것이 아니라 당신이 구독하는 채널 목록에 총합이 되어 버렸습니다.
넘니 당신은 25, 35세입니다. 당신은 인류 역사상 가장 많은 선택권을 부여받은 세대입니다. 내연은 뭐든지 될 수 있어.라는 말을 귀에 못이 바뀌게 들었죠. 그런데 이게 축복이 아니라 저주였다는 사실을 깨닫는 데는 글이 오래 걸리지 않았습니다. 만약에 지옥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당신이 A라는 직업을 선택하는 순간 당신은 B부터 ZD까지 그리고 Z기 1,원 Z2 같은 150개의 다른 직업을 죽인 겁니다. 뇌는이 사라진 가능성들을 애도하기 시작합니다. 이게 바로 기회 비용의 고문이죠. 당신은 지금이 회사에서 보고서를 쓰고 있지만 뇌 한쪽에서는 "만약 그때 바리스타가 되었다면 지금쯤 이탈리아에서 원두를 만약 코딩을 배웠다면 지금쯤" 하는 대체 현실 시뮬레이션을 여덟 개쯤 동시에 돌리고 있습니다.
이건 단순히 결정 장애가 아닙니다. 이건 완벽주의 마비입니다. 당신은 좋은 선택을 하려는게 아니라 최고의 완벽한 단 하나의 정답을 찾으려 합니다. 하지만 그런 건 존재하지 않죠. 그래서 당신은 배달 앱에서 30분 동안 메뉴를 고르다가 결국 지쳐서 아무거나 시키고 그걸 먹으면서도 "아, 다른 거 시킬 거리"라고 후회합니다. 이제 이걸 당신의 커리어, 당신의 연애, 당신의 인생 전체에 적용해 보세요. 끔찍하죠?
당신은 선택을 하는게 아니라 틀린 답을 피하기 위한 방어 게임을 하고 있습니다. 당신은 앞으로 나아가는게 아니라 최악의 미래를 피하기 위해 옆으로 개걸음질 치고 있습니다.
넘버 정보 과식증.
당신은 잠자리에 들기 전 그냥 궁금해서 제3차 세계대전 발발 가능성과 18세기 프랑스 가발의 역사를 동시에 검색합니다. 당신의 뇌는 지금 지식을 원하는게 아닙니다. 그냥 자극을 원하는 겁니다. 이것이 바로 정보 과식증입니다.
당신은 지금 지식의 비패에서 썩은 초밥과 유통기한 진한 케이크까지 닥치는 대로 입에 쑤셔 놓고 있습니다. 과거에는 정보가 힘이었습니다. 하지만 지금 정보는 그냥 소음입니다. 그것도 아주 시끄럽고 불안감을 유발하는 고주파의 소음이죠. 당신의 뇌는 알아야 한다는 강박에 사로잡혔습니다. 뭘 알아야 하는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냥 모른다는 상태를 견디지 못하는 거죠.
그래서 당신은 세상의 모든 문제, 기후 위기, 경제 불황, 옆집 강아지의 식단 문제를 당신의 뇌라는 작은 원룸에 억지로 구겨 넣습니다. 그 결과는 분석 마비입니다. 당신은 세상의 모든 위험을 알고 있기 때문에 아무것도 할 수가 없습니다. 이 주식을 사야 하나 열음개의 기사에선 오를 거라는데 22개의 유튜브에선 망할 거했어. 당신의 뇌는 너무 많은 데이터를 처리하다가 그냥 다운돼 버립니다. 마치 계산기에 원주율을 전부 입력하려는 시도와 같죠.
당신은 더 똑똑해진게 아닙니다. 그냥 더 불안해진 겁니다. 당신은 세상의 무게를 혼자 짊어지기로 결심한 아주 성실하고 무력한 구글 검색 엔진이 되었습니다. 이 모든 지식이 당신의 삶을 1인치라도 행복하게 만들었나요? 아니죠. 그냥 잠자는 시간만 뺏어 갔죠.
넘버 1. 나라는 외로운 섬.
자,이 모든 것의 종차격입니다. 행복 코스프레, 무한 스크롤, 번나웃, 감정의 안전 모드. 이 모든 것을 겪고 난 당신에게 남은 것은 무엇일까요? 바로 나라는 아주 근본적이고 지독한 외로움입니다. 하지만 이건 당신이 친구가 없어서 외로운 것과는 차원이 다른 이야기입니다. 이건 궁극적인 개별성의 문제입니다.
25, 35세에 당신은 깨닫습니다. 결국 아무도 나를 100% 이해할 수 없다. 우리는 모두 나라는 개인화된 우주에 갇혀 있습니다. 당신은 당신의 고통을 설명하려 하지만 단어는 항상 부족합니다. 당신은 괜찮다고 말하지만 그건 설명하기엔 너무 지쳤다는 뜻이죠.
이 세대는 그 어느 때보다 개인의 가치를 강조하도록 교육받았습니다. 내오 자신이 되어라. 너의 길을 가라. 아주 멋진 말이죠. 하지만 그 결과 우리는 모두 각자의 길을 가느라 옆 사람과 손을 잡는 법을 잊었습니다. 우리는 공동체를 잃어버린 첫 세대일지도 모릅니다. 우리는 느슨한 연대라는 이름으로 서로의 인스타그램에 좋아요를 누를 뿐의 무거운 짐을 들어주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당신은 외롭습니다. 이 모든 지친 감정들을 안고 나라는 섬에 혼자서 있습니다. 당신은이 외로움조차 갓의 일부인 것처럼 자발적 아웃사이더인 것처럼 포장합니다. 하지만 본질은 같습니다. 당신은 이해받고 싶지만 동시에 이해받는 것이 두렵습니다. 당신은 연결되고 싶지만 연결되는 방법을 모릅니다.
이 지독한 역설이야말로 지금 한국의 25, 35세가 겪는 가장 조용하고도 거대한 고통의 실체일 겁니다. 오늘은 여기까지. 앞으로도 비슷한 영상 많이 올릴테니까 구독하고 놓치지 마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