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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철의 조언: “부자는 손해 보는 선택을 먼저 한" | 이병철 | 가르침 | 이병철 | 인생조언 | 삶의지혜 | 오디오북

옛사람들의 지혜21:38

Transcription

사람들은 늘 이렇게 묻지. 회장님, 어떻게 그렇게 큰 불을 싸우셨습니까? 나는 그럴 때마다 웃으며 이렇게 말했네. 나는 손해부터 봤어.

이 말이 이상하게 들릴지도 모른다. 세상은 이익을 준 자에게 기회를 준다고 믿는다. 하지만 나는 평생 그 믿음이 틀렸음을 보며 살아왔다. 처음 사업을 시작했을 때 나는 늘 이익보다 신뢰를 먼저 쌓았다. 신뢰는 언제나 손의 옷을 입고 찾아온다. 남들은 그걸 왜 당신이 감당합니까? 라며 나를 어리석다고 했다. 하지만 나는 알고 있었지. 손해를 감수하는 사람만이 오래 남는다는 것을.

1950년대 나는 설탕 한 포대를 팔면서도 남는게 거의 없었다. 그러나 거래처가 어려우면 먼저 대금을 밀뤄 주곤 했다. 그때마다 직원들은 걱정했다. 회장님 이러다 다 때입니다. 나는 조용히 말했다. 그래도 사람을 떼이면 안 되지. 세상은 돈을 떼이는 걸 두려워하지만 나는 사람을 잃는 걸 두려워했다. 돈은 다시 벌 수 있지만 신뢰는 한 번 이르면 평생 돌아오지 않는다. 그게 부자의 첫 번째 규칙이다. 손해를 두려워하지 말고 신뢰를 먼저 쌓아라.

나는 늘 생각했다. 눈앞에 이익을 준 사람은 장사를 하고 손해를 감소하는 사람은 역사를 만든다. 세상은 손해를 보는 사람을 미련하다고 부른다. 그러나 나는 그 미련함 속에서 길을 받다. 짧은 안목은 지금을 이기려 하지만 긴 안목은 시간을 이긴다. 그리고 부자는 언제나 시간을 편해 둔 자다. 사람들은 성공을 운이라고 말하지만 운이란 결국 남보다 더 오래 기다릴 줄 아는 사람에게 오는 보상이다.

그 기다림의 시간 동안 나는 수없이 손해를 봤다. 거래처의 부도를 대신 갚고 직원들의 월급을 내 돈으로 메꾸고 사업 실패의 책임을 나 혼자 짊어졌다. 하지만 그 모든 손해는 결국 나를 키웠다. 그 손해들이 내 뿌리가 되었고 그 뿌리 위에서 분은 자라났다. 나는 지금도 묻는다. 당신은 언제나 이익만 보려 하는가? 만약 그렇다면 당신은 이미 손해를 보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익은 사람을 단단하게 만들지 않는다. 손해가 사람을 깊게 만든다. 그리고 그 깊이 속에서만 진짜 부부는 태어난다.

젊은 시절 나는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세상은 계산이 빠른 사람보다 신뢰가 느린 사람에게 복을 준다. 눈앞에 이익을 따지는 사람은 장사꾼으로 끝나지만 한걸음 손해를 감수하는 사람은 결국 세상을 움직인다. 그때 나는 매일 새벽 거래 장부를 들여다보며 스스로에게 물었다. 이 거래로 내가 남기는 건 돈인가? 사람인가? 그리고 언제나 같은 결론을 내렸다. 사람이 남으면 돈은 따라온다.

한 번은 이런 일이 있었다. 부산에서 거래하던 작은 공장이 부도가 났다. 그 공장은 나에게도 빚을 졌다. 누가 봐도 단칼에 끊어야 할 거래였다. 하지만 나는 그 공장 사장을 불러 밥을 함께 먹었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다. 지금은 당신이 넘어졌지만 언젠가 다시 일어서면 나를 기억해 주시오. 그는 눈시우를 붉히며 고개를 숙였다. 그로부터 몇 해 뒤 그 사람은 새 회사를 세웠다. 그리고 첫 거래를 나에게 맡겼다. 그 거래 하나로 나는 수십배 신뢰를 얻었다.

손해란 그 자체로는 고통이지만 시간이 지나면 이자부터 이익이 되어 돌아온다. 단 그 이자는 돈이 아니라 명예로 주어진다. 명예는 이상하게도 언제나 손해를 본 사람의 얼굴 위에서 자란다. 명예를 얻은 사람은 부자가 된다. 그러나 명예를 잃은 사람은 부자가 되어도 가난하다. 나는 가끔 이런 말을 했다. 부자는 돈으로 손해를 보고 가난한 사람은 마음으로 손해를 본다. 가난한 사람은 감정이 먼저 앞선다. 내가 왜 그걸 해야 하나? 내가 왜 저 사람 대신 손해를 봐야 하나? 하지만 부자는 다르게 생각한다. 내가 이 손해를 감당함으로써 언제 이익이 되어 돌아올까? 이 이 차이가 부자와 빈자를 가르는 가장 큰 벽이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 손해만큼 성장한다. 손해를 두려워하는 사람은 결국 인생에서도 이익을 얻지 못한다. 나는 손해를 볼 때마다 이렇게 중얼거렸다. 좋다. 이번엔 한걸음 더 깊이 배워보자. 그 손해들이 나를 단단하게 만들었다. 그 단단함이 기업을 지탱했다. 그리고 그 기업이 세대를 넘어 지금의 대한민국을 지탱하고 있다. 손해는 패배가 아니다. 그건 신뢰의 투자이고 인간의 품격을 쌓는 이자의 씨앗이다.

1954년 전쟁의 제더미 속에서 나는 삼성물산을 다시 일으켜 세우고 있었다. 그때는 자본도 기술도 인력도 부족했다. 모든 것이 분리했고 메일이 위기였다. 하지만 나는 그 속에서 한 가지 원칙만은 굳게 지켰다. 이익보다 사람을 먼저 세워라. 그 시절 많은 기업들이 하루라도 빨리 돈을 벌기 위해 품질을 낮추고 임금을 깎고 약속을 어겼다. 나는 그 모든 유혹을 단호히 거절했다. 왜냐면 알았다. 당장의 이익은 회사를 살릴 수 있어도 신뢰를 잃으면 기업은 죽는다. 내게 있어 손해 보는 경영은 단순한 미덕이 아니라 생존의 전략이었다.

삼성은 언제나 남들이 꺼리는 일을 먼저 했다. 그게 손해처럼 보였지만 결국 그것이 시장의 신뢰를 독점하게 만들었다. 예를 들어 거래처가 납품 실수로 손해를 입으면 우리는 계약서를 내밀지 않았다. 대신 사장을 찾아가 이렇게 말했다. 괜찮습니다. 이번 일로 사람을 일치맙시다. 그 말을들은 사람들은 나를 잊지 않았다. 10년 뒤 그들이 더 큰 회사를 운영할 때 삼성의 이름을 맨 앞에 올려 놓았다.

손해를 감수한다는 건 결국 시간을 내 편으로 만드는 일이다. 나는 늘 오늘의 손해가 내일의 신뢰를 산다는 믿음으로 움직였다. 세상은 빠르게 변하지만 신뢰의 속도는 언제나 느리다. 그래서 사람들은 기다리지 못한다. 하지만 나는 달랐다. 느림의 길을 선택한 사람만이 결국 세상에서 가장 멀리 간다.

언젠가 한 직원이 나에게 물었다. 회장님, 왜 우리는 항상 먼저 양보합니까? 왜 항상 손해를 보는 쪽을 택하십니까? 나는 그에게 이렇게 대답했다. 양보는 포기가 아니다. 우리가 한 걸음 물러서면 상대는 우리를 존경하게 된다. 존경은 돈으로 살 수 없는 가장 강력한 브랜드다. 삼성이 싸운 브랜드의 본질은 광고나 기술이 아니라 바로 그 존경의 기억이었다.

나는 지금도 확신한다. 기업의 생명은 이익이 아니라 신뢰의 총량이다. 손해를 감당할 수 있는 용기. 그 용기가 없으면 분은 오래 가지 못한다. 돈은 사람을 모을 수 있지만 손해를 감당한 신뢰만이 세대를 모은다. 손해를 두려워하지 마라. 그건 부자가 세상을 움직이는 가장 오래된 비밀이다.

사람들은 종종 착각한다. 손해를 보면 안 된다는 말이 곧 손해를 피해야 한다는 뜻이라고. 하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세상에는 피해야 할 손해와 반드시 감수해야 할 손해가 있다. 나는 그 둘을 구분할 줄 아는 눈이야말로 진짜 부자의 시작이라고 믿었다. 가짜 손해란 이런 것이다.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 감정적으로 선택하는 것. 자기 이익을 포장하기 위해 희생을 흉내내는 것. 그건 손해가 아니라 자기만이다. 반면 진짜 손해란 무엇인가? 단기적 이익을 버리고 장기적 신뢰를 쌓기 위해 감수하는 선택. 그건 외형적으로는 잃는 것 같지만 실은 미래를 사는 일이다.

나는 늘 이렇게 말했다. 이익을 남기는 장사는 누구나 한다. 하지만 손해를 감수하며 사람을 얻는 장사는 아무나 못 한다. 예를 들어 거래처와의 문제에서 계약상으로는 우리가 유리했지만 나는 일부러 상대 입장을 세워 주었다. 직원들은 이해하지 못했다. 회장님 왜 굳이 우리가 양보합니까? 나는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그건 양보가 아니라 투자요. 우리가 오늘 이런 건 돈이지만 내일 얻게 될 건 시장의 신뢰다. 그 한 번의 손해는 결국 수십년간의 관계로 이어졌다. 그 관계 위에서 삼성이 자랐다. 진짜 손해는 즉시 아픔을 주지만 가짜 이익은 나중에 상처를 남긴다.

나는 젊은이들에게 늘 말했다. 눈앞에 돈보다 오래 남는 신뢰를 택하라. 그게 손해처럼 보여도 세월이 지나면 그게 이익이 된다. 사람들은 손해를 두려워하지만 나는 손해를 통해 인간의 본모습을 봤다. 이익 앞에서의 미소보다 손해 앞에서의 태도가 그 사람의 품격을 말해 준다. 진짜 부자는 손해를 선택할 줄 아는 사람이다. 왜냐면 그는 세상의 흐름보다 시간의 흐름을 믿기 때문이다. 돈은 속도를 타지만 신뢰는 시간을 탄다. 그리고 시간 위에 쌓인 신뢰는 그 어떤 금전적 가치보다 오래 간다. 그래서 나는 지금도 이렇게 말하고 싶다. 당신이 손해를 보고 있다면 걱정하지 말라. 그건 당신이 이익을 준비하고 있다는 신호다.

나는 평생 수많은 거래를 했지만 그중 잊지 못할 손해의 하루가 있다. 1960년대 초 삼성의 한 공장이 막 완공되었을 때였다. 기계도 사람도 시장도 이제 막 자리를 잡아가던 시기였다. 그런데 갑작스러운 분량 사태가 발생했다. 수출 계약은 이미 체결되어 있었고 납기은 눈앞이었다. 직원들이 다급히 달려와 말했다. 회장님, 불량품이라도 일부 출화를 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손해가 너무 큽니다. 나는 그 말을 듣고 잠시 눈을 감았다. 머릿속에서는 계산이 돌아가고 있었다. 추라를 멈추면 첫문학적인 손실. 추화를 강행하면 신뢰의 붕괴. 그리고 나는 결정을 내렸다. 전량 폐기하시오.

그날 밤 창고 안에서 불량품들이 쏟아져 나오는 모습을 보았다. 내 가슴도 함께 쏟아지는 듯했다. 수억 원이 눈앞에서 사라졌다. 그 순간 많은 이들은 나를 미쳤다고 했다. 그건 손해가 아니라 자살 행위입니다. 하지만 나는 단호했다. 삼성의 이름을 걸고 거짓된 물건을 내보낼 순 없다. 함지어 사만. 우리 뭐 함지어 사만 함지거 함지어. 그날 나는 돈을 잃었지만 세상이 삼성의 신뢰를 보기 시작했다. 그 사건 이후 해외 바이어들은 계약서보다 삼성이라는 이름을 먼저 믿었다. 그 한 번의 손해가 수십년의 이익을 만들었다. 그때 나는 확신했다. 진짜 부자는 돈이 아니라 원칙으로 산다. 원칙은 때로 손해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 원칙이 무너지는 순간 모든 이익은 모래성처럼 무너진다.

세상은 영리한 사람을 부러워하지만 나는 손해를 감당한 사람을 존경한다. 왜냐면 그들은 언제나 양심을 잃지 않기 때문이다. 그날 이후 나는 직원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우리가 손해를 본다면 그것이 곧 우리의 자존심이다. 자존심이 있는 손해는 절대 헛되지 않다. 손해를 두려워하는 기업은 성장할 수 없다. 왜냐면 성장은 늘 희생 위에서 피어나는 꽃이기 때문이다. 그날의 손해는 나에게 하나의 법칙을 남겼다. 돈은 썩는다. 그러나 신뢰는 숙성된다. 썩는 돈을 지키려다 썩은 기업이 된 곳은 많았다. 하지만 숙성된 신뢰로 세대를 이어온 기업은 결국 세상을 움직였다.

그래서 나는 지금도 이렇게 말하고 싶다. 부자는 손해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그는 그것을 미래의 자산이라 부른다. 사람들은 종종 묻는다. 회장님, 그렇게 손해를 보면서도 어떻게 사람들을 신뢰하십니까? 나는 그럴 때마다 잠시 침묵한 뒤 천천히 대답했다. 신뢰하지 않으면 사람은 결코 성장하지 못하고 나는 평생 수많은 사람을 보았다. 능력 있는 사람보다 손해를 감수할 줄 아는 사람이 더 멀리 가더군. 왜냐면 그 사람은 단지 일을 하는게 아니라 사람을 함께 키우기 때문이다. 리더에게 가장 중요한 건 사람을 이용하는 능력이 아니라 사람을 믿는 용기다.

나는 직원이 실수했을 때 화를 내지 않았다. 대신 그 실수를 나의 책임으로 덮었다. 언젠가 공장 설비에서 큰 사고가 난 적이 있다. 원인은 관리 부주의였다. 임원들은 그 직원에게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했다. 하지만 나는 이렇게 말했다. 내가 그를 신뢰했고 그 신뢰로 일이 진행됐으니 책임은 내게 있다. 그 말을 듣고 직원은 눈물을 흘렸다. 그리고 그는 그 이후 누구보다 헌신적으로 일했다. 그때 나는 다시 한번 깨달았다. 리더의 진짜 힘은 책임을 짊어질 수 있는 그릇에서 나온다. 돈은 사람의 재능을 빌릴 수 있다. 하지만 손해를 감수하는 신뢰만이 그 사람의 영혼을 움직인다.

나는 늘 말했다. 사람은 돈보다 마음으로 빚을 져야 한다. 그 빚이 많을수록 그 사람은 결국 세상에 더 큰 불을 남긴다. 삼성이 성장할 수 있었던 이유는 기술도 자본도 아니었다. 그건 바로 신뢰의 연쇄였다. 누군가가 손해를 감수하면 그 옆 사람도 언젠가 그 신뢰를 이어받았다. 그런 문화가 조직의 DNA가 되었고 그것이 오늘날의 삼성을 만들었다.

나는 종종 이렇게 생각한다. 손해를 감소한다는 건 결국 사람을 믿는다는 선언이다. 나는 당신의 성장에 내 이익을 맡긴다. 그건 단순한 관용이 아니라 깊은 철학이다. 그래서 나는 말하고 싶다. 리더는 이익을 나누는 사람이 아니라 손해를 견디는 사람이다. 이익은 함께 나눌 수 있지만 손해는 오직 리더만이 감당할 수 있다. 그 차이가 진짜 리더와 관리자 관리를 가른다. 사람은 손해를 통해 진심을 배우고 리더는 손해를 통해 사람을 얻는다. 그게 내가 평생 믿어온 경영의 본질이었다.

나는 기업을 운영하며 늘 이렇게 말했다. 회사는 결국 사람의 집합체다. 그렇다면 리더 일은 사람의 마음을 지키는 일이다. 사람의 마음은 숫자로 움직이지 않는다. 그들은 상사의 말보다 그가 감당한 손해의 무게를 기억한다. 그 무게가 클수록 구성원은 더 깊이 따른다. 한 번은 해외 거래에서 큰 문제가 생겼다. 수출 과정에서 선적 서류의 오류가 있었고 그로 인해 거래 전체가 중단될 위기에 처했다. 책임자는 젊은 과장이었다. 그는 얼굴이 하얗질 사무실로 들어왔다. 회장님, 제 잘못입니다. 모든 손실은 제가 감당하겠습니다. 나는 잠시 그를 바라보다 말했다. 자네가 손해를 감당하겠다고 그 마음이면 이미 충분하다. 이건 자네의 손해가 아니라 나의 손해요. 하는 대로 그는 그 자리에서 울었다. 그리고 그 후 20년 동안 그는 누구보다 성실하게 회사를 지켰다. 그때 나는 확신했다. 리더는 손해를 감당할 때 비로소 신뢰를 얻는다.

손해는 조직의 중심을 잡는 추위와 같다. 이익만 줬는 조직은 위기가 오면 흔들린다. 하지만 손해를 함께 견디는 조직은 위기 속에서도 서로를 붙잡는다. 삼성이 위기를 버텨낼 수 있었던 이유는 공동의 손해를 나누는 문화 덕분이었다. 누군가의 실패를 모두가 책임졌고 누군가의 공을 모두가 기뻐했다. 그 구조 안에서 경쟁은 사라지고 신뢰가 자랐다. 나는 임원들에게 자주 말했다. 우리가 오늘 손해를 나눴다면 내일은 반드시 이익을 나눌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오늘 이익만 나눈다면 내일은 손해를 나눌 사람이 남지 않을 것이다. 이 말은 단순한 경영 철학이 아니었다. 그건 내 인생 전체를 지탱한 믿음이었다. 손해를 함께 견디는 조직은 무너지지 않는다. 그건 돈으로 살 수 없는 기업의 혼이다.

그래서 나는 지금도 이렇게 말한다. 회사는 손해를 볼 때 진짜 얼굴이 드러난다. 그 얼굴이 곱고 단단하다면 그 기업은 이미 부자의 길 위에서 있다. 손에는 약점을 드러내는게 아니라 리더의 그릇을 드러내는 거울이다. 그 거울을 피하지 마라. 그 속에는 당신의 성장과 조직의 미래가 함께 비치고 있다.

나는 인생을 돌아보며 이런 생각을 자주 했다. 사람의 품격은 손해를 대하는 태도에서 드러난다. 누군가는 손해를 보면 얼굴을 찌리고 누군가는 손해를 보면 미소를 지었다. 나는 후자의 인생을 선택했다. 왜냐면 손해는 나를 단단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어느 날 한 젊은 사업가가 내게 찾아와 물었다. 회장님, 손해를 감소하는게 그렇게 중요합니까? 나는 조용히 차잔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그대가 잃는만큼 그대는 커진다. 작은 손해를 피하려는 사람은 결국 큰 것을 잃게 되지. 그는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리고 몇 뒤 그 젊은이는 스스로 회사를 세워 내게 편지를 보냈다. 그때 하신 말씀 덕분에 저는 거래처와 싸우지 않았습니다. 대신 손해를 감소했고 그 거래는 제 회사를 살렸습니다. 나는 그 편지를 오래도록 책상 서랍에 넣어 두었다. 손해는 그에게 고통이었을지 모르지만 그 고통이 그를 성장시킨 스승이 된 것이다.

세상은 늘 묻는다. 이익은 얼마인가? 그러나 나는 이렇게 묻고 싶다. 그 이익을 얻기 위해 무엇을 잃었는가? 이익만 남은 삶은 공허하다. 그 안에는 대움도 깊이도 인간미도 없다. 나는 오히려 이름을 통해 많은 것을 얻었다. 이름은 나를 겸손하게 만들었고 겸손은 나를 더 멀리 보게 했다. 손해의 미약이란 결국 자신을 낮추는 예술이다. 세상은 남보다 앞서려하고 부자는 먼저 물러선다. 왜냐면 그 한 걸음의 물러섬이 상대에게 신뢰라는 공간을 남겨 주기 때문이다. 손해를 본다는 건 결국 누군가에게 자리를 내어주는 행위다. 그 자리를내어 준 사람이 언젠가 더 넓은 자리를 얻게 된다.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손해는 불행이 아니라 인간이 품격을 얻는 통과일다. 그 고비를 넘긴 사람만이 세월이 지나도 부끄럽지 않은 얼굴로 남는다. 그래서 나는 지금도이 말을 남기고 싶다. 손해를 보아도 품격을 잃지 마라. 그 품격이 당신을 부자로 만든다.

나는 오래 전부터 이런 말을 믿었다. 세상에 공짜 이익은 없고 모든 이익은 누군가의 손에 위에서 있다. 그래서 나는 늘 조심했다. 남의 손에 위에 내 이익을 쌓치 않으려 했다. 그건 단순한 도덕이 아니라 부의 원리를 아는 사람의 태도였다. 부부는 흐르는 것이다. 한 곳에 머물면 썩는다. 그래서 나는 늘 손해를 내보내는 사람, 즉 흐름을 만드는 사람이 되려 했다. 손에는 마치 강의 물살처럼 한쪽이 흘려야 다른 쪽이 채워진다. 이익을 움켜진 사람은 잠시 풍요롭지만 손해를 나는 사람은 오래 번다. 이건 단순한 철학이 아니라 세상에 존재하는 가장 오래된 순환의 법칙이다.

내가 회사를 세우며 배운 건 이것이었다. 이익을 가져가면 돈이 모이고 손해를 감수하면 사람이 모인다. 너로 함장 켄들은 그리고 사람은 결국 돈보다 큰 힘을 만든다. 삼성이 성장한 이유는 기술도 아니고 자본도 아니었다. 그건 사람들이 모인 집단이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나를 믿었고 나는 그들을 지켰다. 그 신뢰의 고리가 시간이 지나며 거대한 에너지가 되었다.

나는 가끔 이렇게 말했다. 손해를 본다는 건 세상과 거래하는 방법을 아는 것이다. 손해는 사라지는게 아니라 형태를 바꿔 돌아온다. 오늘 이른 돈이 내일의 신뢰로 돌아오고 오늘 감당한 수고가 내일의 이름으로 돌아온다. 그걸 모르는 사람은 손해를 두려워하지만 그걸 아는 사람은 손해를 씨앗이라 부른다. 나는 손해를 볼 때마다 마음속에 한 문장을 새겼다. 이 손해가 어디로 흘러갈까? 그 질문은 언제나 나를 차분하게 만들었다. 왜냐면 손해는 결코 멈추지 않기 때문이다. 그건 돌아온다. 시간을 돌아 사람을 돌아 결국 나에게로 돌아온다. 그래서 나는 지금도 젊은 세대에게 이렇게 말하고 싶다. 이익을 쫓기보다 손해를 흘려보내라. 그 손해가 언젠가 당신의 세상을 움직일 것이다. 손해의 순환 법칙은 단순하다. 흘려 보내는 자가 부자가 된다.

말년이 다가올수록 나는 더욱 분명히 알게 되었다. 인생의 마지막 순간에 남는 것은 돈도 명예도 아니다. 그 손해를 감당했던 기어 그리고 그때 지켜낸 사람들이었다. 많은이가 내게 물었다. 회장님 그렇게 평생 손해를 감수하며 사는게 후회되지 않으십니까? 나는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손해를 본게 아니라 배움을 얻었지요. 사람은 손해 속에서 진짜 자신을 본다. 그 순간에 결단이 그 사람의 깊이를 만든다. 나는 수많은 위기 속에서도 늘 같은 선택을 했다. 일더라도 원칙을 지켜라. 그 단순한 문장을 버리지 않았기에 오늘의 삼성도 오늘의 나도 존재한다.

한 번은 가족들이 내게 이렇게 말했다. 아버지, 그렇게까지 양보하실 필요가 있나요? 나는 조용히 대답했다. 손해를 보는 순간이야말로 사람이 시험받는 때다. 그때 욕심을 누를 줄 아는 자만이 진짜 부자가 된다. 그 말은 단순한 교훈이 아니라 나의 신념이었다. 내가 세운 기업이 세대를 넘어 존속하길 원했다면 그 기초는 반드시 신뢰와 희생의 언어여야 했다. 그것이 바로 손해의 철학이다.

나는 이제 세상을 떠나며 내 자식들에게 한 가지 당부를 남겼다. 이익보다 관계를 지켜라. 돈보다 신뢰를 남겨라. 그 신뢰가 회사를 지키고 그 회사가 결국 나라를 지킬 것이다. 나는 믿었다. 손해를 감당할 수 있는 나라가 강한 나라이고 손해를 감수할 수 있는 기업이 위대한 기업이다. 그 철학은 내 평생의 유산이었다.

사람들은 여전히 이익을 쫓는다. 그러나 나는 이렇게 말하고 싶다. 이익은 인간을 부유하게 만들지만 손해는 인간을 위대하게 만든다. 손해를 감수한 사람만이 세월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그의 분은 사라지지 않고 그의 이름은 시간이 지나도 더 깊어진다. 나는 이제 눈을 감으며 이렇게 속삭였다. 나는 손해로 시작해 신뢰로 끝나는 삶을 살았다. 그게 부자의 길이었고 인간의 길이었다. 그리고 지금 그 철학은 여전히 흐르고 있다. 누군가는 그 손해를 감당하며 또 다른 시대의 불을 만들어 가고 있다. 손해는 끝이 아니다. 그건 누군가의 시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