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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 반갑습니다. 김명군입니다.
오늘 우리는 가정에서 정사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여러분, 기독교는 십자가의 종교입니다. 십자가는 기독교를 상징하고 대표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십자가는 교회를 의미하고, 우리 예수님을 의미하고, 복음을 의미합니다.
근데 중요한 것은 십자가와 나와의 관계입니다. 내가 십자가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내가 십자가를 어떻게 이해하는가? 십자가와 내가 어떤 관계를 가지고 살아가는가? 내가 십자가와 어떤 관계가 있는가? 하는 이것이 내 신앙의 모습이고, 내 신앙의 상태를 결정한다고 해도 가언이 아닌 것입니다.
오늘은 우리 예수님께서 2천 년 전 십자가에 못 박히신 날입니다. 흔히 정사 예배라고 하는데, 정사 예배라고 하는 말은 못 정(釘) 자, 죽을 사(死) 그래서 예수님께서 십자가 위에서 못 박혀 돌아가셨다. 그날을 기념하는 날이 그 예배가 정사 예배입니다.
예전 성도들은 밤 12시 예수님께서 못 박혀 돌아가신 그날에 교회에서 모여서 예배를 드렸습니다. 근데 우리는 이런저런 사정으로 인해서 저녁에 가정에서 이렇게 예배를 드리게 되었습니다.
여러분, 예수님은 2천 년 전 어제 저녁에 제자들과 함께 성찬식을 제정하셨습니다. 그리고 겟세마네 동산에 가셔서 피 흘려 간절히 기도하셨습니다. 그리고 원수들에게 붙잡혀서 밤새도록 여기저기 끌려다니면서 재판을 받으셨습니다. 그리고 이른 아침 빌라도의 관정에서 십자가 형을 언도받게 됩니다. 그리고는 오전 9시부터 시작해서 오후 3시까지 6시간 동안 우리 예수님은 십자가 위에서 말로 다 못할 그런 고난과 고통의 시간들을 보내셨습니다.
그래서 오늘 우리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특별한 이 날을 기념해서 주님의 십자가를 묵상하고 생각해 보는 그런 시간을 가졌으면 좋겠습니다. 여러분, 십자가에 무엇을 우리가 생각할 것인가? 십자가를 생각할 때 십자가에는 많은 의미와 뜻이 있습니다. 십자가에서 예수님이 당하신 고난, 고통을 우리가 한번 생각해 보기를 원합니다. 어떤 고통이었는가? 우리가 예수님의 십자가의 고통을 이해하려고 하면 먼저 예수님 당시에 십자가가 무엇이었는가를 먼저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지금의 십자가는 그 의미가 너무 많이 달라졌고 바뀌어졌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지금 십자가는 무엇을 의미합니까? 지금 십자가는 평화와 생명을 의미합니다. 여러분, 병원에 가면 무슨 표시죠? 십자가입니다. 약국도 십자가입니다. 생명의 상징이라고 하는 적십자의 표시도 십자가입니다. 우리는 생명을 중여긴다, 평화를 중시한다라고 하는 서를 비롯한 유럽 여러 나라들의 국기가 십자가가 들어 있습니다. 또 많은 여성분들이 목에 십자가를 걸고 다닙니다. 그리고 반지에도 십자가를 차고 다닙니다. 지금의 십자가는 평화와 생명과 사랑의 상징입니다.
그러나 원래 십자가는 그런 의미하고는 전혀 상관이 없었습니다. 지금 의미하고는 너무도 거리가 멀었습니다. 우리 예수님 당시의 십자가는 가장 잔인하고 가장 잔혹한 사형틀이었습니다. 가장 악한 원수를 가장 고통스럽게, 가장 저주하면서 죽이는 사형틀이 바로 십자가이었습니다.
원래 십자가는 페레사에서 시작이 되었습니다. 페레사 사람들은 땅을 신성시 여기는 개념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더러운 죄인은 죽을 때 땅을 더럽혀서는 절대로 안 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을 죽일 때 땅에서 들어서 띄워서 죽이는 겁니다. 그러니 십자가 사형틀입니다. 그리고 죽고 난 다음에도 땅에 바로 내리지 않습니다. 십자가 나무틀에서 그냥 썩는 거예요. 날아가는 새들이 와서 살을 뜯어먹고. 여러분, 한번 생각해 보세요. 바로 이것이 십자가의 의미입니다.
이것이 로마에 들어왔습니다. 가장 흉악한 죄인들을 죽이는 고통의 사형틀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로마인들은요, 사람들이 모여서 서로 이야기하면서 절대로 하지 말아야 할 단어 하나가 있는데, 그것은 십자가라는 말입니다. 어떤 경우에도 십자가라는 말을 쓰면 안 됩니다. 그건 대단히 신뢰입니다. 그런 것이 십자가입니다.
여러분, 이런 무서운 십자가의 사형틀이 오늘 생명과 평화와 사랑으로 바뀌어졌습니다. 왜요? 우리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셨기 때문입니다.
그럼 예수님의 십자가의 고난은 무엇입니까? 첫째는 육체적인 고통이었습니다. 여러분, 우리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고 가셨던 길을 비아 돌로로사, 그럽니다. 십자가의 길, 슬픔의 길이라고 합니다. 작년 가을에 우리 교회에서 우리 교인들과 함께 예수님께서 걸어가셨던 십자가의 그 길을 우리가 14개가 있는데, 가면서 기도하면서 찬양하면서 주님을 생각하면서 그 길을 걸어 보았습니다. 여러분, 십자가의 무게가 얼마일까요? 그거 역사학자들은 50kg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50kg면 쌀 한 가마입니다. 그 무거운 십자가를 지고 우리 예수님은 쓰러지고 자빠지고 넘어지면서, 신발틈을 당하면서, 뺨을 맞으면서, 채찍에 맞으면서, 욕을 들으면서, 머리에 가시관을 써서 피가 줄줄 흐르면서 그 먼 길을 넘어지고 자빠지면서 고난과 고통을 받으면서 가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도 살아가면서 이런저런 고난과 고통을 당할 때가 있습니다. 우리가 당해야 할 고난과 고통을 우리 예수님이 대신 지고 걸어가셨습니다.
두 번째 예수님의 고난은 부끄러움의 고통이었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사진이나 그림을 보면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계실 때 마지막 옷은 입고 있죠. 근데 사실은 다 벗는 거예요. 제가 그전에 독일에 갔을 때 큰 성당에 엄청난 성당에 십자가가 있는데, 예수님이 발가벗김 몸으로 십자가에 못 박혀 있습니다. 너무 큰 충격이었습니다. 충격이지만 여러분, 그것이 사실입니다.
여러분, 우리도 살아가면서 수치와 부끄러움과 모욕과 고난과 멸시와 천대를 받을 때가 있습니다. 자존심이 팍팍 상하는 일도 있을 수 있습니다. 참기 어려워요. 정말 견디기 어려워요. 그만두고 싶고 떠나고 싶을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참아야 합니다.
며칠 전 어떤 분이 제 방에 왔습니다. 목사님, 제가 일 못 하겠습니다. 그만 두어야 되겠습니다. 교인들이 너무 저를 힘들게 합니다. 힘들어서 제 일 못 하겠습니다. 그래요. 권사님, 교인들이 힘들게 하지요? 예. 말을 잘 안 듣지요? 예. 권사님, 교인들이 권사님에게 욕하죠? 아니요. 교인들이 권사님 밤에 뺨을 막 때리죠? 아니요. 권사님 얼굴에 침을 뱉죠? 아니요. 권사님 막 때리 가지고 막 때리면서 입에 담을 수 없는 폭언을 하고 그러죠? 아니요. 목사님, 죄송합니다. 제가 다시 힘을 내어서 열심히 하겠습니다. 목사님, 제가 잘못했습니다.
여러분, 우리도 참아야 합니다. 자존심이 상할 때가 있고 기분이 팍팍 상할 때가 있습니다. 성질이 날 때가 있습니다. 그거 참아야 합니다. 내려놓아야 합니다. 그것이 십자가를 따라가는 성도의 자세입니다.
세 번째 예수님의 고난은 영적인 고통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서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십니까?" 여러분, 이것은 예수님의 영적인 고통의 외침입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최고의 약속이 뭡니까? 내가 너와 함께 하겠다는 겁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최고의 축복이 뭡니까? 내가 너와 함께 하겠다는 겁니다. 여러분, 왜 예수님께서 이 땅에 인간의 몸으로 오셨습니까? 우리와 함께 하시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그 예수님께서 세상 끝날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하겠다, 너와 함께 하겠다. 약속하셨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십자가의 마지막 그 순간에 하나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십니까? 여러분, 우리 예수님은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하여 십자가를 지시면서 하나님과 분리되는, 하나님과 떠나는 이런 영적인 죽음, 아픔을 체험하셨습니다.
여러분, 죽음이 뭡니까? 성경에서 말씀하는 죽음은 하나님과의 분리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끊어지는 겁니다. 창세기에서 인간이 죄를 지었을 때 하나님과의 관계가 끊어졌습니다. 관계가 분리되었습니다. 둘째 아들이 아버지의 집을 떠나서 돌아올 때 아버지가 한 이야기가 뭡니까? 죽었던 아들이 다시 돌아왔다는 겁니다. 하나님을 떠나는 것, 그것이 바로 불신입니다. 그것이 바로 죽음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은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이런 영적인 고통을 경험하셨습니다. 존 웨슬리, 참 많은 책을 썼고요. 이 세계 기독교 역사를 바꿔 놓았던 엄청난 거성입니다. 그분이 이런 이야기를 합니다. 내 모든 신학과 내 모든 사상과 내 모든 신앙은 내 단어로 요약할 수 있다. "for me." 예수님이 나를 위하여 죽으셨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러면 이제 이 십자가 앞에서 우리가 생각해야 할 것이 뭡니까? 첫째는 내가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가를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나 한 사람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하나밖에 없는 독생자 예수님을 나를 위해 죽게 하셨습니다. 나를 살리셨습니다. 여러분, 내 가치는 하나님이 독생자 예수님을 내어놓을 정도로 내가 이렇게 귀한 겁니다. 여러분, 다른 사람이 생각하는 내 그게 내 가치가 아니에요. 내가 나를 생각하는 내 가치, 그게 내 가치가 아니에요. 하나님이 나를 생각하는 가치가 진정한 나의 가치입니다. 여러분, 당당하십시오. 자존심이 아니라 자존감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나는 어떤 사람인가, 어떤 존재인가, 얼마나 귀한가를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저와 여러분들을 살리시기 위하여, 구원하시기 위하여 하나밖에 없는 독생자 예수님을 내어 주셨습니다. 우리 이렇게 귀한 존재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예수님 값이에요. 예수님 값이에요. 우리 이렇게 귀한 존재입니다. 기죽지 마세요. 어깨를 펴세요. 당당하세요. 꿈을 가지세요. 자존감을 가지세요. 하늘을 보세요. 위를 바라보세요. 우리는 하나님의 아들, 딸,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성도들은 주님이 걸어가신 이 십자가의 길을 걸어가야 합니다. 주님의 몸된 교회를 충성스럽게 섬기면서 믿음으로, 말씀으로, 성령의 능력으로 승리해야 합니다. 여러분, 십자가의 죽음 뒤에는 부활이 있습니다. 우리 예수님께서 십자가 위에서 고난을 당하실 때 하나님은 그 십자가의 고난 속에 부활의 생명을 잉태시키셨습니다. 고난 뒤에 부활이 있습니다. 생명이 있습니다. 이 이 부활의 생명의 축복이 우리 연결고리 모든 가족들에게 함께 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