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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처음부터 거인이 아니었다. 어린 시절 내가 가진 것은 배움의 기회조차 없는 가난과 내 힘으로는 열 수 없는 다친 문들이었다.
16살에 복흥상이라는 쌀각의 점원으로 일할 때 내 하루는 늘 같았다. 아침이 오면 또다시 같은 고된 노동의 반복이었다. 그러나 나는 스스로에게 묻곤했다. 지금이 빈손으로 무엇을 바꿀 수 있을까? 그 답은 멀리 있지 않았다. 거대한 목표가 아니라 지금 눈앞에 작은 일을 완벽히 해내는 것. 오늘 반드시 이길 수 있는 작은 싸움부터 승리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누구보다 먼저 새벽 어둠을 뚫고 가게 문을 열었다. 미국산 포대를 내릴 때 다른 이들은 대충 구석에 세워두었지만 나는 달랐다. 포대의 방향을 곱게 맞추고 글씨가 바깥으로 보이게 정렬했다. 누군가 묻곤 했다. 왜 그렇게까지 하냐고 나는 대답했다. 정돈된 포대는 더 빠른 배달을 가능하게 하고 빠른 배달은 정확한 약속을 만들며 정확한 약속은 신뢰를 낳는다고. 작은 배달표 한 장도 허트루 쓰지 않았다. 글자 하나, 숫자 하나라도 실수가 나면 손님은 시간을 잃고 가게는 돈을 잃는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나는 그 사소한 종이 한 장이 곧 나의 신뢰라는 사실을 몸으로 배웠다.
어느 날 비가 억수같이 쏟아졌을 때 사람들은 배달을 미루자고 했다. 그러나 나는 우비를 걸치고 나섰다. 미끄러운 골목을 조심히 걸으며 포대를 옮기고 젖지 않도록 비닐를 두 개로 씌웠다. 문 앞에 놓고 돌아서는데 손님이 나와 말했다. 아직 시간이 한참 남았는데 벌써 왔네요. 그 한 마디가 나를 바꿨다. 그 작은 성리 하나가 내 일을 끌어당겼다. 그렇게 작은 성리를 쌓아가니 결국 사장은 장부를 나에게 맡겼다.
한 번은 계산 실수로 매상이 어긋났고 나는 그 자리에서 내 돈으로 메꿨다. 누구도 강요하지 않았지만 나는 알았다. 내가 지키지 않은 작은 승리는 언젠가 더 큰 실패로 돌아온다는 것을. 다음날 나는 원인을 찾아냈다. 숫자 하나의 자리 표시가 틀려 있었고 그것을 바로잡자 흐름이 정상으로 돌아왔다. 이때 더욱 확신했다. 작은 성리를 지키는 사람만이 실패 속에서도 다시 방향을 세울 수 있다는 것을. 그래서 나는 내 삶의 첫 조직을 세울 때도 자본이나 간판보다 작은 성리의 원칙을 전면에 내걸었다. 화려한 구호 대신 약속의 정확성, 결과의 선명함, 책임의 완결성을 요구했다.
이런 사고는 사실 내 개인만의 집착이 아니었다. 당시 일본의 근대 상업문화는 신용을 생명처럼 여겼고 약속을 지키는 사람이 곧 성공하는 시대였다. 심리학자 엘버트 반두라는 인간이 작은 성공 경험을 반복할 때 자기 효능감이 생기고 이는 더 큰 도전을 가능케 한다고 말했다. 내가 포대를 정렬하고 배달표를 매만지던 그 순간들 바로 그 작은 성공이 나를 조금씩 다른 사람으로 만들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오늘도 스스로에게 묻는다. 지금 내가 반드시 이길 수 있는 작은 싸움은 무엇인가? 그 싸움을 이기면 내일의 문이 열린다. 그리고 그 문을 열면 또 다음 문이 나타난다. 결국 세상은 벽이 아니라 문이 행렬이라는 걸 나는 쌀가게 배웠다.
시간이 흘러 내가 이끄는 조직이 생겼을 때 처음으로 맞닥뜨린 큰 위기는 납품 지연이었다. 몇 개의 현장에서 동시에 지연이 발생했고 미리 확보해 두었던 여유일은 이미 사라졌으며 남은 것은 서로를 의심하는 눈빛과 무겁게 가라앉은 공기뿐이었다. 모두가 말없이서 있었고 어떤이는 이젠 끝났다고 속삭였다. 그러나 나는 알았다. 위기는 한 번의 기적 같은 대책으로 뚫는게 아니라 오늘 당장 이길 수 있는 작은 성리로 뚫는 것이라는 것을.
나는 사람들을 모았다. 그리고 말했다. 큰 걱정은 잠시 접자. 큰 성과는 내일로 밀어도 된다. 오늘 반드시 지킬 수 있는 작은 성리를 만들자. 우선 순위를 다시 세웠다. 공정 흐름표를 바닥에 붙이고 어떤 작업이 병목인지 눈으로 보이게 했다. 당장 착수 가능한 공정을 골라 팀을 재편했고 손이 남는 인원들을 지연된 공정에 집중 배치했다. 밤을 세우는게 문제라면 밤을 셀 이유가 있는 사람만 남기고 나머지는 새벽 4시에 다시 합류하도록 했다.
이 이 작은 결정들이 실행되자 분위기가 달라졌다. 끊겼던 대화가 이어지고 막혔던 손이 다시 움직였다. 새벽 공기가 차갑게 가슴을 때릴 무렵 우리는 다음 단계에 필요한 최소 요건을 충족시켰다. 고객에게 전화를 걸어 금요일 약속은 지킵니다. 다만 디테일 한두 가지는 월요일 오전에 조금 더 정교하게 마무리하겠습니다라고 선제 보고를 했다. 상대는 놀라면서도 믿음을 보냈다. 그리고 약속한 금요일 우리는 문을 열었다. 그 순간 확신했다. 위기는 큰 기술이 아니라 작은 성리의 조각으로 뚫는다는 것을. 사람들은 위기 앞에서 기적을 찾지만 사실 위기를 넘는 힘은 눈앞에 한걸음을 내디는데 있다.
이 철학은 다른 성공한 기업인들도 증명해 왔다. 이나모리 가져오는 교세라가 위기에 빠졌을 때 구성원들에게 당장 오늘 처리할 수 있는 일부터 정리하게 했다. 그 작은 과업들을 성공시키며 무너진 사기를 회복시켰고 그로서 회사를 다시 세웠다. 토요타의 카이쟁 문화 역시 같은 원리다. 거대한 혁신보다 작지만 지속적인 개선이 흐름을 바꾼다는 것이다.
이 경험은 내게 흐름의 중요성을 가르쳤다. 위기 속 조직은 흔히 큰 그림에만 매달리다가 마비된다. 그러나 작은 성리는 흐름을 되살린다. 작은 성리를 반복하면 사람들이 다시 움직이고 움직임이 새로운 기회를 만든다.
이는 이는 경영학에서 말하는 애자일 사고와도 통한다. 거대한 계획을 고집하기보다 현재 상황에 맞춰 목표를 쪼개고 빠르게 실행하며 반응하는 것이다. 그날 이후 나는 어떤 위기 상황에서도 늘 똑같은 질문을 던진다. 지금 우리가 반드시 이길 수 있는 작은 싸움은 무엇인가? 그 싸움을 이기면 흐름이 바뀌고 흐름이 바뀌면 위기는 무너지기 시작한다.
위기를 넘긴다고 끝이 아니었다. 조직이 커질수록 더 중요한 건 지속적으로 성장하는 힘, 즉 규율, 유연성 회복력이었다. 많은 사람들은 규율을 억압이라 말하지만 내게 규율은 자유였다. 나는 새벽에 하루를 열었다. 사람들이 잠든 시간에 생각을 정리하고 사람들이 출근하는 시간에는 이미 첫 결정을 마쳤으며 점심 무렵에는 두 번째 성리를 준비했다. 나를 갉아먹지 않았다. 오히려 내 시간을 내가 통제하게 만들었고 통제된 시간은 내 삶을 내가 설계하게 했다.
나는이 규율을 조직의 가장 작은 단위에까지 심었다. 지각하지 않는 습관. 회의에서 핵심만 말하는 습관. 작업을 맡으면은 끝까지 책임지는 습관.이 이 작은 습관들이 모여 우리의 체력을 만들었다. 여기서 말하는 체력은 단순한 육체적 힘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버틸 수 있는 심리적 지구력이었다. 현대 심리학은이를 resiliance 즉 회복탄력성이라 부른다.
그러나 규율만으로는 부족했다. 세상은 늘 변했고 계획은 언제나 변수를 만났다. 나는 유연성을 배웠다. 원칙은 지키되 절차는 언제든 바꿀 수 있어야 했다. 고정비를 가변비로 바꾸고 외부에 맡긴 공정을 내부로 가져오거나 때로는 내부의 자존심을 내려놓고 외부의 속도를 빌렸다. 중요한 건 체면이 아니라 생존이었고 살아남는 방식으로이기는 것이었다. 어떤 이들은 이것을 원칙을 버리는 일로 보았지만 사실은 그 반대였다. 유연성은 원칙을 지키기 위해 방법을 바꾸는 것이었다.
그럼에도 사람은 언젠가 쓰러진다. 실패가 닥치면 누구나 멈춘다. 그러나 진짜 문제는 쓰러진 것이 아니라 오래 누워 있는 것이다. 나는 쓰러질 때마다 시간표를 다시 썼다. 오늘 한시간에 가능한 일. 오늘 10시간에 가능한 일. 이번 주 안에 반드시 끝낼 일. 큰 계획을 잠시 접고 다시 작은 성리의 계단을 놓았다. 계단을 오르기 시작하면 호흡이 돌아오고 눈이 맑아지며 판단이 다시 살아난다. 회복력은 타고나는 재능이 아니라 습관이었다. 쓰러졌을 때 일어나는 순서를 미리 만들어 두고 평소 그 순서를 훈련해 둔 사람만이 빨리 돌아온다.
이런 철학은 일본 제조업의 저 타임제스 시스템과 린생산 방식에서도 볼 수 있다. 완벽한 계획보다 지속적 조정과 복구력이 경쟁력을 만든다는 원리다. 그리고이는 심리학에서 말하는 마인세 즉 실패를 성장의 과정으로 보는 사고와 닮아 있다. 실패를 끝이 아니라 자산으로 대하면 사람과 조직은 훨씬 빠르게 회복한다. 규율로 기반을 다지고 유연성으로 변화에 적응하며 회복력으로 다시 일어서는 것.이 이 세 가지는 내가 오랜 시간 작은 성리를 이어올 수 있었던 보이지 않는 엔진이었다.
그러나 규율 유연성 회복력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았다. 그것들이 작은 성리를 가능하게 했다면 그 작은 성리들을 하나의 강으로 모아 거대한 흐름을 만드는 힘은 비전과 사람이었다. 나는 늘 명확성을 중시했다. 무엇을 성취하는 것이 오늘의 성리인가?이 이 질문이 없으면 사람들은 각자 다른 산을 오르기 때문이다. 한 번은 모두가 열심히 일했는데도 끝나고 보니 아무도 같은 방향을 보고 있지 않았다. 그날 밤 나는 기준표를 다시 만들었다. 그리고 아침에 말했다. 오늘의 성리는 분량이 아니라 정확도다. 오늘의 성리는 속도가 아니라 안정성이다. 오늘의 성리는 내부만족이 아니라 외부 반응이다. 기준이 바뀌자 행동이 바뀌었고 행동이 바뀌자 결과가 달라졌다. 작은 성리는 이렇게 명확성을 먹고 자란다.
하지만 명확성은 혼자서는 자라지 않는다. 나는 사람을 자산으로 보았다. 돈은 필요할 때 사라지지만 사람은 함께 있을 때 힘이 배가 된다. 그러나 사람은 노력 없이 자산이 되지 않는다. 작은 성리를 함께 지키는 사람만이 자산이 된다. 나는 신입에게도 말했다. 오늘 한 줄의 보고를 정확히 쓰고 한 번의 약속을 정확히 지키며 한 번의 피드백을 정확히 주고받아라. 그 작은 정확성이 내일의 신뢰를 부른다. 신뢰가 쌓이면 책임이 커지고 책임이 커지면 영향력이 생긴다. 그리고 영향력은 스스로를 키우기보다 타인을 살리는 방향으로 흘러야 오래 간다.
한 번은 오래된 고객이 실수로 자신들에게 불리한 조건을 제시했다. 그대로 받아들이면 당장은 이익이었다. 그러나 나는 조건을 바로잡아 통지했다. 상대는 놀랐고 그 신뢰는 훗날 훨씬 더 큰 형태로 돌아왔다. 목적이 분명하면 지금의 작은 손해는 미래에 큰 성리가 된다. 나는 그때 확신했다. 조직이 사람을 위한 목적을 품을 때만 비전은 생명을 얻는다는 것을. 비전은 현실을 무시하는 허상이 아니다. 비전은 현실의 단단한 바닥 위에 작은 성리들을 깔아든 길의 연장선이다. 나는 비전을 말할 때 늘 오늘 해야 할 구체적 목적을 함께 말했다. 비전이 클수록 오늘의 할 일은 작아야 한다. 그래야 사람들이 두려움 없이 움직인다. 사람들에게 작은 성리의 의미를 득하게 하고 그 성리들이 모여 거대한 강이 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것. 그것이 내가 거인이라는 이름을 얻게 된 이유였다.
사람들은 내 인생을 미리 정해진 운명처럼 말했다. 너는 여기까지라고 너의 한계는 이미 결정되었다고. 그 말들이 맞으려면 나는 오늘의 작은 성리를 포기해야 했다. 그러나 나는 포기하지 않았다. 나는 오늘도 묻는다. 지금 내가 반드시 지켜야 할 작은 성리는 무엇인가? 그 싸움을 이기면 내일의 문이 열리고 그 문을 열면 다시 문이 나타난다. 결국 세상은 벽이 아니라 문의 행렬이다. 문에 순서는 있고 그 순서의 열쇠가 바로 작은 성리다.
나는 거인이 되려고 한 적이 없다. 단지 오늘의 작은 성리를 지키려고 했다. 그 작은 성리들이 쌓여 내 말은 더 단단해지고 내 시선은 더 멀리 보게 되었다. 어느 순간 사람들이 내게 말했다. 당신은 거인이라고. 나는 고개를 저었다. 거인은 내가 아니다. 거인은 내가 쌓아올린 작은 성리들의 다른 이름이다.
그러니 나는 당신에게 당부한다. 오늘 반드시 지킬 수 있는 한 가지 작은 성리를 정하라. 그 성리를 정의하고 측정하고 끝까지 책임져라. 그리고 기록하라. 기록은 다음 성리를 부르고 반복은 신뢰를 부른다. 신뢰는 기회를, 기회는 더 큰 책임을, 책임은 사람을, 사람은 더 큰 비전을 부른다. 결국 어떤 시장이든 어떤 시대든 작은 성리를 반복하는 자를 이길 수는 없다. 내가 그 증거다.
나는 빈손으로 시작했다. 그러나 빈손은 문제가 아니었다. 빈손은 오히려 잡을 수 있는 손이었다. 나는 오늘 잡을 수 있는 것을 붙들었고 그 붙들이 내일의 방향이 되었고 그 방향이 내 생애의 길이 되었다. 당신도 할 수 있다. 큰 성공을 당장 꿈꾸되 그 꿈을 오늘의 작은 성리로 환산하라. 눈앞에 싸움을 이겨라. 성급한 성과를 쫓지 말고 재연 가능한 구조를 만들라. 우연의 이익을 사랑하지 말고 누적의 신뢰를 사랑하라. 칭찬보다 기준을, 위로보다 설계를, 감정보다 구조를 선택하라. 그러면 어느날 당신은 깨닫게 될 것이다. 더 이상 거인이 되고 싶다고 말할 필요가 없다는 사실을 당신은 이미 거인의 방식으로 살아가고 있을 것이고 당신의 하루하루가 거인의 길을 쌓고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나는 다시 묻는다. 오늘 당신이 반드시 지켜야 할 작은 성는 무엇인가? 답을 찾았다면 주저하지 말고 움직여라. 움직임이 성리를 낳고 성리가 길을 낳는다. 그 길의 끝에서 우리는 비로소 알게 된다. 거인은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작은 성리로 매일 커지는 존재라는 것을 그리고 그 거인의 이름이 언젠가 조용히 당신의 이름이 될 것이라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