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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몇 달 전에 국립 현대 미술관에서 론익이라는 예술가의 전시를 봤습니다. 저는 진짜 깜짝 놀랐어요. 지금까지 살면서 제가 수없이 많은 전시들을 봤는데 하나의 작가의 전시에 그렇게까지 많은 사람들이 모인 거는 정말 처음 봤어요. 전 되게 의외의 현상이라 생각했어요. 아무리 요즘에 미술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이 전반적으로 좀 늘어났다고는 해도 그걸 다 고려하더라도 너무 많은 사람들이 왔거든요.
그 작가의 전시 특징은 사진 찍기가 되게 좋다라는 거였던 거 같아요. 굉장히 딱 사진을 찍었을 때 인스타 같은 데다 올렸을 때 사람들이 어 이거 뭐야? 되게 흥미롭다라고 느낄 법한 그런 전시를 전형적으로 하는 작가라는 생각이 들었고 글쎄요. 의미라는 거를 되게 중요시 하는 현대 미술의 특성상 그 작품이 얼마나 많은 의미를 주는가와 그 작품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주목을 받는가는 그렇게까지 일치하지는 않는다는 걸 알 수 있죠.
아 뭐 론익이라는 미술가의 작품이 별로라고 말씀을 드리는게 아니라 뭐 의미가 없다. 뭐 현대 미술적인 가치가 떨어진다 이렇게 주장하는게 아니라 저는 잘 모르고요. 근데 다만 어쨌든 그 전시가 주목을 받게 된 결정적인 계기는 아마 사진 찍기 좋은 것이다. 그리고 사람들의 어떤 감각적인 흥미를 일단은 자극을 한다라는 면모가 굉장히 컸던 거 같아요.
그렇다고 봤을 때 저는이 현상뿐만 아니라 요즘에이 세상에서 보게 되는 정말 많은 현상들 속에서 어떤 패턴이 보이냐면 정보가 너무 많이 늘어났잖아요. SNS를 통해서 사람들이 주고받는 정보의 양이 너무 많다 보니까 어떤 하나의 상품이나 어떤 하나의 가게, 전시, 행사 그런 것들이 어떤 계기를 통해서 사람들의 주목을 받기 시작하면 그 것으로 점점 더 많은 주목도가 쏠리면서 오직 그곳에만 사람들이 가게 되는 그런 경향성이 너무 심해진 거 같아요. 물론 과거 사회도 그랬겠지만 요즘에는 정말로 그런 경향이 엄청나게 심해졌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여기서 우리가 한 가지 생각해 볼 만한 건 과연 사람들이 그렇게 쏠리는 그 대상이 과연 정말로 사람들에게 양질의 가치를 제공해 주는 것일까? 진짜로 예를 들면은 정말로 맛있는 음식을 파는 레스토랑이기 때문에 사람들이 많이 가는 걸까? 정말로 재밌는 전시, 재밌는 공연, 재밌는 행사이기 때문에 사람들이 많이 가는 걸까? 물론 기본적으로는 그런 면도 있어야겠지만 그것 이상으로 그 계기가 무엇인지는 그렇게 중요하지 않은 거 같아요. 어떤 계기를 통해서든지 사람들의 입소문을 타고 SNS를 통한 바이럴이 돌기 시작하면 거기에 엄청나게 많은 관심과 자본이 집중되는 현상이 가속화되고 있다는 거죠.
저는 이와 관련해서 과연 성공과 노력의 상관계가 얼만큼 계속 우리 사회에서는 강하게 유지되고 있는가 이런 질문을 계속 품게 되더라고요. 흔히 노력하면 성공한다라는 말도 있고 성공한 사람들은 노력한 거다. 이런 말도 있고 그런 생각을 우린 많이 합니다. 노력과 성공 간에는 상당히 큰 상관관계가 있다. 물론 맞는 말이죠. 저는 우리 사회가 그리고 많은 현대 사회가 노력하면 충분히 성공할 수 있는 사회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타고난 조건이 너무 열악하면 그것을 극복하는게 쉽지는 않겠지만 그리고 과연 성공이라는게 무엇인지를 정의하는 것도 되게 힘들죠. 사람마다 기준이 다르고 사회마다 기준도 다르고 그런데 적어도 예를 들어서 그렇게까지 큰 불을 타고 나지 않은 사람이 혹은 전혀 거의 불을 타고 나지 않은 사람이 어느 정도 주변에서 평균적으로 사람들이 꽤나 선망할 만한 정도의 불을 얻게 되는 건 노력을 통해서 꽤 많은 경우에 가능하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이렇게 노력하면 성공할 수 있다라는 명제가 있다고 했을 때 이와 관련해서 우리는 여러 가지 논리적인 실수들을 저지르는 거 같아요. 사고를 할 때 굉장히 쉽게 되게 초보적인 실수를 저지르는 거 같습니다. 그니까 우리는 많은 경우에 사고를 그렇게까지 명제들을 통해서 명류하게 하지 않기 때문에 생각보다 쉽게 자기 자신도 한 번쯤은 검토해 보면 쉽게 인지할 만한 오류를 저지르곤 합니다. 예를 들면 노력하면 성공할 수 있다는 노력하면 성공한다는 노력하면 성공할 확률이 생기고 그 확률이이 사회에서는 꽤 높다. 뭐 높은 것도 기준에 따라 다르겠죠. 어느 정도는 된다. 그렇다라고 할지라도 노력하면 곧 성공하는 건 아닙니다. 노력은 성공의 충분 조건이 절대 아니에요. 그리고 노력은 성공의 필요 조건도 아닙니다. 성공한 사람이라고 다 노력을 했던 것도 아니에요. 그리고 또 더 성공한 사람이라고 해서 더 노력한 것도 아닙니다. 같은 업계에서 더 많은 사람들이 인정을 받고 훨씬 더 많은 불을 거어진 사람이라고 해서 그 업계에 다른 사람들보다 훨씬 더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거나 그런 관계가 비례하지는 않는다는 거예요.
그리고 저는 이런 비해 관계가 성립하지 않는 현상이 최근 들어서는 아까 말씀드렸던 정보를 통한 쏠림 현상 때문에 훨씬 더 심해진 면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왜냐면 어쩌다가 바이럴이 되기 시작한 그 대상에 사람들의 이목이 집중되다 보면 그만큼 그 경쟁하고 있는 다른 비슷한 노력을 기울이는 사람들한테는 주목이 덜 가게 된다라고 생각하거든요. 한마디로 승자독식의 구조가 점점 심해진다는 건데 그런데이 승자동식의 구 독식의 구조는 언제나 있었죠. 아마 모든 시대에, 모든 사회에 다 있었을 겁니다. 그런데 요즘 사회에서 제가 계속해서 생각하게 되는 건이 포인트인 거 같아요. 과연 우리는 누가 승자가 될 수 있을지를 얼마나 정확하게 예측할 수 있는가. 그다음에 그 예측에 과연 우리는 어떤 변수들을 활용할 수 있는가에 있어서 점점 그 성공에 대한 예측이 어려워지는 사회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거는 그냥 제 가설일 뿐이고 확실하게 검증할 수 있는 건는 아닌데요. 그런데 적어도 요즘에는 제가 속한 콘텐츠 업계 중심으로는 그런 인식들이 많이 꽤나 등장하고 있는 거 같아요. 예를 들면 제가 최근에 크리에이터 벤처 서울 2025라는 행사에 갔다 왔는데요. 거기에 많은이 크리에이터 산업 관련한 분들이 오셔서 강연을 하셨는데 그중에 어 되게 큰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시는 기운 쌤이란 분이 오셨어요. 그런데 그분은 한 3년 정도 전부터 어떤 스타트업을 운영하고 계시다고 하는데 뷰티 제품을 파는 플랫폼 스타트업입니다. 그런데 그 업체에서는 처음부터 PB 상품을 많이 만들었대요. 일반적으로 많은 플랫폼들은 일단 플랫폼을 성장시키고 고객들을 유치한 다음에 그다음에 피부 상품을 만들어서 그걸 통해서 매출을 발생시키고 영업 이익을 가져가는 구조를 지향했었는데 그 업체 같은 경우는 처음부터 아예 아 우리가 만들어서 많이 우리 플랫폼에서 노출시키자라는 전략을 택했다는 거죠. 그런데 그때 단순히 하나의 PB 브랜드를 만들지 않았다고 합니다. 예를 들면 뭐 이마트면은 노브랜드 같은게 있잖아요. 근데 일단 그 기우쌤의 해메코라는 업체인데 그 해메코에서는 처음부터 다섯 개의 브랜드를 론칭을 했대요. 그리고 지금은 무려 10열 개의 브랜드를 운영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럼 왜 그렇게 남들이 보기에는 무리수처럼 보일 수 있는 전략을 선택했냐? 기웃쌤의 생각은 굉장히 명확하더라고요. 뭐냐면 요즘에는 솔직히 어떤 브랜드가 뜰지 잘 모르겠다는 거예요. 세상이 너무 빨리 변하고 여러 계기들을 통해서 도대체 어떤 계기를 통해서 하나의 브랜드가 뜰지 정확하게 예측하기가 힘들기 때문에 그니까 이런 워딩을 기웃쌤이 정확히 쓰셨던 건 아닙니다. 근데 그분의 말을 제가 해석을 해 보면 솔직히 그 브랜드 분석이 되게 어렵다는 거죠. 만약에 어떤 브랜드가 정말로 뜰 수 있을지 잘 예측할 수 있다라는 그 업계에 확신이 있으면 정말로 많은 분석을 해서 많은 공을 들여서 진짜 좋은 브랜드 소수를 론칭하는게 맞는 전략이겠죠. 근데 요즘에는 진짜 어떤 브랜드가 어떻게 뜰지 모르기 때문에 일단 많이 던져 보는게 중요한 거 같다는 거예요. 그래서 다섯 개 던져보고 열개를 던져보고 그랬을 때 사람들의 반응이 무언가에 오기 시작한다. 그러면 차라리 그것에 그때 집중하는게 훨씬 더 나은 전략인 거 같다는 생각을 하셨다고 합니다.
그리고이 행사에는 조코딩이라는 채널을 운영하시는 분도 오셨어요. 그 조코딩 님은 그런 요즘의 게임 업계 그리고 어플 업계에 대해서 상당히 흥미롭게 설명을 하시더라고요. 요즘에는 AI가 발전했고 그리고 AI가 발전하기 전에도 한 그니까 요즘 같은 채치T가 굉장히 발달하고 생성형 AI가 이렇게 급속도로 발전하기 전에도 이미 먼 몇 년 전부터 오픈 소스가 엄청 발달하고 그런 것들을 따다가 약간만 수정해 가지고 그 위에서 조금만 자신의 창의성을 발휘해서 어떤 어플을 만든다던가 그런게 굉장히 많았다는 거예요. 그렇다 보니까 개발자들이 반드시 엄청나게 공을 들여 가지고 막 몇 개월, 몇 년씩 수십명의 사람들이 수백명의 사람들이 모여 가지고 하나의 상품을 꼭 만들어야만 어이 세상에서 인정을 받고 그렇다기보다는 요즘에는 진짜 그런 것들을 만드는게 쉬워졌으니까 그냥 양산형으로 막 만드는 사람들이 있다는 거예요. 예를 들면 그중에서 제가 이름은 정확히 기억 안 나는데 어떤 게임을 만든 사람이 있는데요. 그 게임을 만드는데 하론가 걸렸다고 합니다. 엄청 단시간에 심지어 혼자 만들었어요. 근데 그게 그러면 아 엄청나게 훌륭한 게임이냐? 아니에요. 솔직히 그냥 그래픽도 굉장히 엉성하고 10년 20년 전에 나온 양질의 게임들보다 사실은 객관적인 퀄리티로 봤을 때 훨씬 떨어집니다.
근데 여기서 그러면 의문을 품게 되죠. 객관적인 퀄리티가 뭐냐? 그냥 사람들이 많이 주목하고 많이 이목을 끌 수 있고 그러면은 좋은 게임인 거지 뭐 객관적인 퀄리티라는 거를 당신이 어떻게 따질 거냐? 그러니까요. 그니까 그게 저는이 시대의 굉장히 중요한 특징이라고 생각해요. 흔히 그동안에 꽤 오랜 기간 동안 사회에는 메리터 크러시라는 말이 있어 왔습니다. 과연 사회가 얼마나 메리토크라냐. 성과에 의해서 보상을 분배받는 사회가 메리토크러시인 거죠. 근데이 메리토크러시에 대해서 사람들이 비판을 많이 하기도 했어요. 철학자들은. 왜냐면 그게 너무 차갑다는 거죠. 누군가는 상황이 별로 안 좋아 가지고 성과를 많이 못 낼 수도 있는 건데 성과에 따라서 너무 딱 그만큼의 비례하는 양을 보상을 받으면 나머지 사람들과의 격차가 너무 커지지 않겠냐? 상황이 안 좋은 사람들은 계속해서 가난하게 남아 있지 않겠냐? 이런 메리토 크러시에 대한 비판을 내놨던 경우가 굉장히 많았는데 근데 저는 한편으로론 메리토 크러시는 이미 끝났다고도 생각을 해요. 상당히 심각하게 이미 메리토 크러시는 우리 사회에서 훼손되어 있는 상태라고 생각합니다.
어떤 면에서 그러냐면 저는 이미 성과라는 거를 측정하기가 굉장히 어려운 사회가 된 거 같기도 해요. 성과가 무엇일까? 제가 생각하기 성과란 이상적으로 생각하면 사회에 많은 이익을 끼칠수록 그게 성과가 돼야 된다 생각하거든요. 그런데 과연 지금이 사회에서 시장에서 인정을 받는 것들이 정말로 사람들에게 큰 이익을 가져다 주는 걸까? 그거는 전혀 아니라고 생각해요. 근데 한번 다른 각도로 생각해서 그래 성과라는 거 자체를 그냥 시장에서 얼마나 사람들을 만족시키느냐 얼마나 사람들이 원하는 걸 만들어 내냐 그게 성과야. 그거에 따라서 그냥 보상이 주어지는 것일 뿐이야.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어요. 뭐 객관적인 퀄리티 그런 거 모르겠고 그냥 사람들을 만족시키기만 하면 돼. 그런데 제가 근본적으로 의문을 품는 지점이 바로 거기이기도 해요. 과연 지금 시대에 우리는 정말로 시장에서 합리적인 가격에 많은 경우의 만족을 느끼면서 살아가고 있는 걸까? 저는 아니기도 하다고 생각하거든요.
그 이유는 정말 많겠지만 한 가지 이유는 오늘 주제적으로 제가 말씀드리고 있는 것처럼 요즘은이 정말로 많이 증가한 정보의 복잡성 때문에 어떤 계기로 인해서 마치 카오스 이론에서 설명하듯이 나비의 미약한 날개짓이 나중에는 허리케인이 될 수도 있다고 말을 하듯이 어떤 계기로 주목을 받기 시작한 제품, 상품, 인물 그런 쪽에 너무 급속도로 너무 많은 보상이 집중되는 경우가 많아진다는 거죠. 그렇다고 했을 때 정말로 그 대상이 사람들에게 많은 만족감을 줬기 때문에 그것에 대한 보상으로서 사람들의 관심이 주어지는 걸까? 아, 당신은 나에게 이만큼 만족감을 주고 내가 시장을 봤을 때 다른 대상들보다이 대상이 훨씬 더 나한테 큰 만족감을 줍니다. 그러니까 나는 여기에다가 나의 돈을 갖다 바치겠습니다. 나의 시간을 여기에 할해하겠습니다. 정말로 이런 선택들이 이루어지고 있는 걸까? 저는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많이 드는 거죠.이 이 정보의 홍수 속에서 우리는 어떻게 보면 점점 더 그냥 주변 사람들이 점점 계속 좋다고 이야기하는 거. 나한테 주어지는 정보들을 많이 채우고 있는 것. 이미 채운 채로 계속해서 쏟아져 들어오고 있는 것. 그런 것들을 그저 선택하고 그쪽에 자본이 집중되는 현상이 계속 일어나고 있는 상황이 아닌가 싶어요. 이런 각도에서 본다면 소비자들은 굉장히 피해를 입고 있는 상황이라고도 볼 수 있겠죠.
저는 요즘 사회에 이런 현상을 해석하데 있어서 포컬 포인트라는 개념이 굉장히 인상깊더라고요. 어, 포컬 포인트라는 개념은 토마스 쉘링이라는 경제학자가 내놓은 개념이라고 하는데 사람들에게 꼭 이득을 줘서가 아니라 게임 이론적으로 봤을 때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이 이렇게 생각할 거야라는 예측을 하고 있기 때문에 어떤 한 지점으로 사람들의 선택이 수렴하게 되는 그런 현상을 뜻합니다. 그 지점을 뜻해요. 예를 들면 쉘링이 뉴욕에서 학생들한테 이런 질문을 많이 던졌대요. 당신이 모르는 사람을 뉴욕에서 만나야 되는데 근데 그 이전에 소통을 할 수가 없다. 근데 만나야 돼요. 어 그 사람한테 연락할 방법은 없어요. 그러면 너는 어디로 가겠느냐? 이런 질문을 던지면 정말 많은 학생들이 뉴욕 중앙 스테이션에 가겠다고 말을 합니다. 특히 자연스러운 현상이죠. 만약에 우리가 서울에서 누군가를 만나야 되는데 근데 어디서 만날지는 몰라요. 그냥 무작정 가서 그 사람이 있길 바래야 돼요. 그러면 어디로 가시겠습니까? 저는 서울역으로 갈 거 같거든요. 아마 대부분 서울역으로 가실 거예요. 그럼 왜 서울역으로 갈까라고 했을 때 그 서울역이라는 장소는 사실은 모두한테 이익이 되는 장소는 아닐 수도 있어요. 예를 들면 그 사람이랑 저랑 둘 다 뭐 강남에 살고 있을 수도 있죠. 그러면은 강남 주변에서 어디서 만나는게 제일 합리적인 선택일 거 아니에요. 모두에게 좋은 선택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로 소통이 잘 안 되는 상황이기 때문에 게임 이론적으로 봤을 때 서로에게 피해가 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다 정답일 것이라고 예측할 것이라고 예측이 되는 그러니까 다른 사람들의 심리를 내가 예측했을 때 그 평균값이라고 생각이 되는 근데 또 다른 사람들도 그 평균값에 대해서 생각을 할테니까 그 평균값에 대한 다른 사람들의 예측을 내가 또 예측해 봤을 때 모이게 되는 그 포인트 거기로 갈 수밖에 없다는 거죠.
저는 지금의 사회는 물론 과거 사회에도 그랬겠지만 정보의 발달 때문에 더더욱이나 점점점 많은 사람들이 많은 정보를 갖고 있을 거라고 모두가 예상을 하고 있고 그 예상 속에서 다른 사람들은 과연 그 정보들을 보고 무엇을 선택할까 그런 것에 대한 평균치에 대한 예측을 하면서 많은 사람들이 어떤 특정한 선택들을 내리고 있기 때문에 딱히 내 취향도 아니고 그냥 내 삶의 방식이랑 맞지도 않는데도 불구하고 아 그냥 사람들이 다 좋아할게 이거일게 이렇게 분명하고 그것이 그것을 선택하는게 결국에는 나한테도 이익이 될 거니까 그냥 그렇게 해야겠다라는 현상이 굉장히 많이 펼쳐지고 있다고 생각해요. 예를 들면 저는 좀 한적한 데가 굉장히 좋더라고요. 사는 데에 있어서. 근데 과연 내가 나중에 집을 산다고 했을 때 내 라이프스타일에 맞춰서 그 집을 살 수 있을까? 결코 그렇지 않죠. 그니까 결국에는 내가 큰 돈을 들여서 나의 집을 산다면 기왕이면은 오를 집을 사야 되고 그러면 어떤 집이 과연 오를 집일까? 다른 사람들이 다 정답이라고 생각할 것이라고 내가 예측하는 그런 집. 그게 바로 정답이 되겠죠. 그러면 왜 그게 정답이냐? 그 집이 왜 정답이 되느냐? 거기에서 물론 그런 집이 예를 들면 뭐 강남에 있는 집이라던가 그런 집이 효용이 크기 때문일 수도 있어요. 당연히 그렇죠. 그런 면도 있죠. 뭐 직주 근접이 있고 인프라도 좋고 그런 좋은 점이 많은 거는 어느 정도 맞을 수 있어요.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연 다른 지역의 집과 강남에 있는 집의 가격 차이가 정말로 그 효용에 의해서 나타난 가격 차이일까? 그건 아니라는 거 우리 모두가 다 알고 있잖아요. 그냥 사람들은 강남에 있는 집이 앞으로 정답인 선택지가 될 거라고 생각을 다 같이 예상을 하고 있으니까 거기에 계속해서 모이는 것일 뿐이에요. 그렇다 보니까 실질적으로 그 대상이 가지고 있는 효용 대비 가격은 천정 부지이 높아지는 거죠.
그리고 또 포컬 포인트랑 비슷한 것을 예시로 저는 이런 것도 생각해 볼 수 있는 거 같아요. 결혼식을 하는데 그 커플이 서로 잘 소통을 안 하고 자신의 속마음을 얘기를 안 한다. 그런 상황을 가정해 봅시다. 그러면 서로 눈치를 보면서 아 이런게이 사회에서 지금 사람들의 평균적인 기대값이니까 아 상대방도 이런 걸 원하겠지. 그렇게 짐작을 하면서 그냥 비싼 것들을 다 하게 되는 사실은 둘이 진짜로 깊이 원하고 있는 거는 그냥 아 조금씩 줄여도 되는데 조금 더 저렴한 거 해도 되는데 이런 생각을 갖고 있을 수도 있는데 만약에 그런 소통이 정말로 서로 진솔하게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아 그냥 상대방도 이걸 더 비싼 거 원하고 있겠지 남들처럼 똑같이 다 좋게 하고 싶어 하겠지 이렇게 생각이 들면서 그냥 좋은 걸 하게 되는 이런 상황도 생각해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저는 아까 말씀드렸던 론익 전시 같은 것이 굉장히 이래적인 성공을 거두는 것도 이런 비슷한 심리적인 효과가 발동되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사람들이 정말로 내가 욕망하고 나에게 큰 만족감을 줄 것이라고 기대를 해서 그 행동을 하는 것이라기보다는 일단 어쨌든 살아가면서 무언가는 소비하고 무언가 행동을 해야 되는데 예를 들어서 데이트가 있다 아니면 친구를 만나기로 했다. 그러면 뭔가 어떤 행동을 하긴 해야 되는데 과연 어떤 행동을 하는게 가장 좋은 선택일까라고 했을 때 사람들은 솔직히 일단 자기 자신이 원하는게 뭔지 잘 모르 채로 살아가는 경우도 많아요. 주말에 시간이 남는데 나는 과연 뭘 해야 될까? 그것에 대해서 명쾌한 값을 딱 가지고 있지 않은 경우도 많고 그렇다고 했을 때 다른 사람들이랑 같이 놀고 싶다. 근데 과연 다른 사람들은 뭘 원할까? 그러면 아, 일단 요즘에 사회에서 많이 바이럴되고 있는 거, SNS에서 많이 보이는 거 그런 거에 대해서 아, 저 사람은 흥미로워하겠지. 다른 사람들은 다 좋다고 하니까 저 사람도 이것에 대해서 괜찮아 하겠지. 이런 생각을 자연스럽게 하게 되고 거기다가 플러스 물론 아,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보니까 거기엔 뭔가 있겠지. 그럼 나도 만족감을 얻겠지. 이런 기대도 당연히 들어 있을 테고. 이런 여러 가지 심리적인 효과들이 섞여서 정말로 충분히 냉철하게 어떤 곳에 돈을 쓰고 무엇의 시간을 쏟아야 자신의 삶에 만족감이 주어질지를 돌아보지 않고 사실이 사회에서 내가 내릴 수 있는 최적의 선택이 아닌 그냥 사람들이 많이 모이게 되는 그런 지점에 가게 되는 그런 때가 정말 많은 거 같아요. 이때 그 포컬 포인트가 되는 지점 론 뮤익의 전시가 될 수도 있고 혹은 뭐 이게 정확히 이론적으로 포컬 포인트에 들어맞진 않을 수도 있어요. 하지만 저는 비슷한 지점이라고 생각을 하는데 그 특별한 그 지점 그 지점이 노력으로 결정되는 건 저는 아니라 생각하거든요. 많은 경우에 어떤 경우에는 노력으로 결정될 때도 당연히 있죠. 근데 그것 이상으로 점점 더 많은 것들이 노력보다는 어떤 계기를 통해서 그 포인트가 되어 가고 있는 세상이라고 보고요.
과연 이런 현상을 우리가 사회적으로 정치적으로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이게 정말로 정당한 거고 합리적인 걸지 진짜로 사회에 이로운 걸지 이런 거에 대해서는 다각도로 생각을 해 봐야 될 것 같아요. 이렇게 지나치게 어떤 특정한 지점에 많은 보상들이 쏠려 버리는 그런 제도는 좋은 상황이라고 보기는 어려울 것 같아요. 나머지 사람들은 굉장히 많은 박탈감을 느낄 수밖에 없고 그리고 어떤 것이 그 지점이 될지 충분히 합리적으로 예측하기가 점점 어려워진다라는 점에서 사람들이 되게 무력감을 느낄 수도 있고 점점 큰 불만을 느낄 수도 있거든요.
저는 사회가 안정적으로 유지되기 위해서는 성공한 사람들에 대한 존경심을 품을 수 있어야 된다 생각해요. 성공한 사람들을 보면서 아 저 사람들은 무언가 있으니까 아 저렇게 성공을 했구나. 현대 사회는 적어도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뭐 과거 사회처럼 권력으로 찍어 놓을 수 있는 사회는 아니니까. 우리는 충분한 정보를 갖고 있고 대중이 힘을 얻은 사회인데 이런 사회가 안정적으로 유지되려면 적어도 성공한 사람에 대한 자발적인 존경심이 뿌리깊이 진짜로 실제로 있어야 된다 보거든요. 근데 이렇게 그 포컬 포인트에 모든 것이 몰리는 그런 사회는 솔직히 존경심을 품기는 되게 점점 어려워질 거라고 생각해요. 그렇다고 했을 때 아마 잠재적으로는 앞으로 그런 지점 때문에 사회적 혼란, 정치적인 불만 이런 것들이 커질 것 같습니다.
자, 그렇다면 앞으로 어떻게 해야 되냐 했을 때 솔직히 개인으로서는 아까 그 기웃쌤이나 조코딩 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많은 시도들을 던져 보는게 되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이 이 사회 시스템 자체를 자기가 바꿀 수 있을게 아니면 일단이 시스템 속에서 내가 무엇을 해야 방향으로 노력해야 그래도 그 노력이 헛되지 않게 보상을 받을 수 있는 확률이 올라갈까 했을 때 어떤 하나의 지점을 믿고 끝까지 그냥 붙잡고 있는 것보다는 그것도 물론 가능한 방법이긴 하나 때로는 상황을 기민하게 살피면서 여러 가지 전략들을 많이 폭넓게 시도해 보는 것도 점점 중요한 흐름이 될 거 같아요. 그 중에 하나가 뭐가 얻어 걸릴지 진짜 모르기 때문에 그리고 얻어 걸린 거를 한 번이라도 해 봤냐 해 보지 않았냐에 의해서 그 삶의 격차가 정말로 커질 수가 있기 때문에 앞으로는 자신의 그 개인적인 삶에서도 되게 다양성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나름대로 꽤 이득을 볼 확률이 높아지지 않을까 저는 개인적으로 생각이 들어요. 근데 물론 이게 100% 정답은 아닙니다. 그냥 이런 삶의 방식이 괜찮을 가능성이 꽤 높다고 본다는 거고 그것 이상으로 오히려 그런 현상이 심해지면 많은 사람들은 그런 삶으로 나아갈 거고요. 근데 그런 상황일수록 오히려 아 한 길만 정말 꾸준히 파고 그런 사람들이 존경을 받으면서 누군가는 그 중에서 주목을 받게 될 수도 있겠죠. 근데 냉정히 말하자면 사실은 대부분 사람들은 주목을 못 받고 아마 거기서도 그 소수의 바이럴 되는 사람들이 장인 정신 꾸준함 이런 키워드를 통해서 주목을 받을 겁니다. 그랬을 때 내가 가는 그 장애인 정신의 길이 그 선택받는 소수의 길이 될 거라는 보장은 전혀 없다는 거죠. 그러니까 때로는 좀 기민하게 살피면서 많은 다양한 플랜 BC D를 도전해 보는 것도 되게 중요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또 이것 이상으로 사회적으로는 그 특이한 소수의 점에 몰리는 엄청난 부와 보상을 과연 우리는 어떻게 소화하고 어떻게 분배적인 관점에서 접근할 거냐도 지속적으로 고민을 해야 될 거라고 봅니다.
네. 오늘은 아 몇 달 전에 정말 인상깊게 봤던 그 론익 전시의 이야기로부터 시작해서 최근에 되게 지속적으로 많이 했던 생각에 대해서 말씀드렸어요. 아 저는 정말로 그냥 막 던져 보는게 요즘에 진짜 중요한 거 같다. 이런 생각을 진짜 많이 하면서 살고 있었거든요. 과연 내가 그런 길을 추구해야 될지는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이 사회의 흐름이 그런 거 같다는 생각은 진짜 많이 했어요. 그런데 어 때마침 그 크리에이터 벤처 서울 행사에 갔는데 거기서도 많은 크리에이터분들 또 크리에이터 산업에 계신 굉장히 큰 부을 가지고 계신 분들도 비슷한 이야기를 하시는 걸 보면서 아 요즘에 진짜 이런 거를 느끼고 있는 피부로 와닿게 느끼고 있는 사람들이 많구나 그런 생각을 해서 한번 오늘은 공유드리는 영상을 찍어 봤습니다.
네 여러분은 이런 사회의 흐름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의견을 많이 댓글로 남겨 주신다면 함께 생각해 보는데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오늘 제가 준비한 내용은 여기까지고요. 다음에 또 재밌는 영상으로 돌아오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